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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제3인류’, ‘잠’, ‘나무’ 등으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위로 꼽힌 저자(57)가 고양이로 돌아왔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계를 그린 것. 종교 갈등으로 테러가 수시로 벌어지는 파리에 사는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도도하고 엉뚱하며 호기심이 많다. 인간이 자신을 지켜주고 사랑해 주기에 그들에게 자신은 신이라 여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다른 암고양이로 착각했을 때는 상스럽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자 단박에 고상하다며 자긍심에 부풀어 오른다. 집사 나탈리는 물론이고 물고기, 개, 참새, 거미와도 소통하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샴고양이 피타고라스를 만난다. 정수리에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 단자가 꽂힌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에 접속해 인간의 언어는 물론 각종 지식을 섭렵했다. 피타고라스에게서 역사와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빠져든다. 하지만 테러가 내전으로 격화되고 변종 페스트까지 확산되자 파리는 유령 도시로 변해 쥐가 들끓는다. 살던 집을 잃은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고양이 군대를 모아 쥐 떼와 격전을 벌이며 생존을 모색한다. 제3자의 눈을 통해 요지경 인간 세상을 꼬집는 작가의 장기는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파란색, 흰색, 빨간색이 섞인 깃발이 걸린 큰 건물(유치원)에서 나오는 아이들에게 불꽃이 나오는 막대기(총)를 겨눠 쓰러뜨린다. 나탈리는 기분이 좋을 때는 쓰담쓰담해 주지만 함께 사는 앙고라 수고양이 펠릭스의 땅콩(고환)을 떼버려 사랑도 나눌 수 없게 만든다. 초반에는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이 앙증맞은 웃음을 선사하다 전투가 벌어지고 사태가 급물살을 타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는다. 인간과 고양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도 흥미롭다. ‘내가 믿는 것이 곧 나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등 여러 번 곱씹어 보게 되는 문장 역시 눈길을 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헤어볼(몸을 다듬다 삼킨 털이 뭉친 것)을 뱉는 등 고양이의 특징과 움직임을 세밀하게 묘사해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더 반가울 듯하다. 다만 인간뿐 아니라 개, 고양이, 곤충 등 여러 종(種)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수업하듯 직설적으로 표현해 공감하는 데 장애가 되는 점은 아쉽다. 바스테트가 득도(?)의 경지에 이르며 영혼으로 인간과 소통하는 설정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느낌이 든다. 말하고 싶은 내용을 에둘러 썼다면 작품의 힘이 더 커졌을 것 같다. 고양이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는 역사를 소개할 때 한국을 언급하고, 작품을 쓰는 동안 들었던 음악 리스트의 맨 위에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베토벤 소타나’를 배치한 데에서 한국 독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원제는 ‘내일은 고양이’라는 뜻의 ‘Demain les chats’.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탈북자들의 한국생활을 생생하게 그리며 분단과 통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산지니·1만4800원·사진)이 출간됐다. 정영선 소설가(55)는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분단의 벽을 넘은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차별과 생존의 어려움으로 또 다른 분단을 겪고 있다”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탈북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에서 주영은 간판 하나 없는 출판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만난 국정원 직원에게 인터넷 댓글 달기 업무를 지시받는다. 대선 후 주영은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 교육기관에서 일하게 된다. 중국에서 유학하다 자유를 찾아온 수지, 축구를 하고 싶은 창주 등을 만난다. 돈이 필요해 선거 때마다 댓글 아르바이트를 하고, 북한에 있는 부모가 고위층일지 모른다고 여긴 국정원의 감시를 받는 등 탈북자들의 일상이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실제 정 작가는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사무소인 하나원 내 청소년학교에서 2년간 파견교사로 근무했다. 그는 “비 오는 날이면 아이들의 눈이 부어 있었다. 고향 생각에 울어서 그렇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경제협력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경제적인 측면 외에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목사, 민주화운동가, 통일운동가. 늦봄 문익환 선생(1918∼1994·사진)을 수식하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시인이었다. 다음 달 1일은 선생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해 ‘새삼스런 하루’ ‘꿈을 비는 마음’ ‘두 하늘 한 하늘’ 등 5권의 시집과 신문, 잡지에 발표한 시 가운데 70편을 추렸다. 이 시들에는 선생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윤동주 시인과 절친한 친구였던 선생은 ‘스물아홉에 영원이 된’ 친구에게 ‘너마저 늙어 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넌 영원한 젊음으로 우리의 핏줄 속에 살아 있으면 되는 거니까’라며 애틋해한다(‘동주야’). 칼날 같은 현실에서 살기 위해 공장 일을 하면서 내달리는 여성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인간다운 삶과 민주화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령하듯 염원한다(‘전태일’). 통일을 갈망하는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주장하는 일이라고’ 외친다. 평범한 아들이자 가장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니를 그리며 ‘당신 생각을 하며 글썽이는/눈물이야 얼 리 있습니까’(‘어머니4’)라고 읊조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보다 소중한 덤을 한아름 안겨준 데 대해 감사한다(‘덤’). 76년의 생애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11년 2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선생은 믿음으로 이를 견뎠다. ‘이른 새벽 창가에 불려 나와 샛별을 쳐다볼 때면/당신의 눈도 맑게 빛나겠지요’(‘당신은 언제나 내 뒤에 계십니다’) 신념을 실천하는 데 두려움도, 거칠 것도 없었지만 사람들을 향한 시선은 따뜻했다. 시대의 요구에 기꺼이 부응하며 뜨겁게 살았던 선생의 자취가 시로 피어났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꾸밈이 없다. 현학적인 말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가슴 한구석이 오래도록 찡하다. 생애 처음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쓴 시 100편을 김용택 시인(70)이 엮고 한 편 한 편마다 정겹고 솔직한 감상을 담은 ‘엄마의 꽃시’(마음서재·1만3500원)는 그렇다.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 고향집에 사는 김 시인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이들 시를 보니 가슴이 툭 터지며 가락이 흘러 들어와 한달음에 감상글 100편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내에게 한글을 배워 자신의 시를 더듬더듬 읽어내던 모습과 할머니들이 겹쳐졌다고 했다. “호미 들고 홀로 밭에 가며 학교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신 분들이잖아요. 이들 시는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00편의 시에는 100개의 인생이 담겼다. ‘사십 년 전 내 아들/군대에서 보낸 편지/언젠가는 읽고 싶어/싸움하듯 글 배웠다/…떨리는 가슴으로/이제야 펼쳐본다//콧물 눈물/비 오듯 쏟아내며/사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조남순 ‘사십 년 전 편지’)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열심히 공부해서/정갈한 편지 한 장 써 보내겠습니다.’(이경례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모진 시간을 견뎌왔지만 서러운 눈물보다 한글을 알게 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에 그는 고개가 숙여졌다고 했다. 감상글에서 ‘배정동 시인님, 김금준 시인님, 김용녀 시인님, 박옥남 시인님’이라며 할머니들을 시인으로 호명했다. “살면서 일어난 일을 진솔하게 쓰면 시가 됩니다. 어머니가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가 나고 보리타작하는 도리깨 소리 듣고 토란이 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게 시예요. 할머니들의 시가 바로 그렇고요. 그분들이야말로 진짜 시인이시죠.” 올해 70세가 되자 그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좋아 나이에 얽매이지는 않게 된다고 했다. 매일 아침 1시간 반 정도 강변으로 나가 산책하는 것도 삶의 기쁨 중 하나다. “자연이 변화무쌍해서 하루하루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요즘 찔레꽃이 많이 피어서 한참을 들여다봐요. 새벽에는 소쩍새와 뻐꾸기가 울더라고요.” 아내가 캐 온 쑥을 같이 다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쓸데없는 간섭’도 한단다. 이웃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작은 음악회도 연다. 사진과 산문을 모아 책을 내고 내년에 시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글 쓰고 싶은 분들에게 꼭 시골로 오라고 권하고 싶어요. 자연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쓸 게 무궁무진하거든요. 하하.”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가 타계했다. 향년 85세. 뉴욕타임스(NYT)는 고인이 울혈성심부전으로 숨졌다고 2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유명 문학평론가인 해럴드 블룸은 고인을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 문학의 4대 작가’로 꼽았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1933년 미국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카고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프린스턴대, 펜실베이니아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을 썼다. 고인은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탐구하기보다는 유대계 이민자들이 미국의 중산층이 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해갔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탐색했다. 1959년 펴낸 첫 소설집 ‘굿바이, 콜럼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금기를 거부하고 욕망을 긍정하는 유대인 변호사의 성생활을 고백한 ‘포트노이의 불평’(1969년)은 과거 유대계 미국인 소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을 선보였다는 호평을 받으며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화자(話者)로 네이선 저커먼을 내세운 3부작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미국의 목가’, ‘휴먼 스테인’은 미국의 현대사가 개인을 어떻게 억압하고 파멸시켰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인간의 독선과 편견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인기 있는 운동선수로, 미국 중상류층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유대계 남성이 1960, 70년대 사회 격변으로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미국의 목가’는 1998년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줬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라 미국에 관해 쓴다”는 고인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로 꼽혔다. 또 다른 대표작인 ‘휴먼 스테인’은 피부색이 흰 콜먼 실크 교수가 흑인임을 숨기고 유대인 행세를 하며 성공과 명예를 거머쥐지만 말실수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몰락하는 내용을 그렸다. 미국역사가협회상을 수상한 ‘미국을 노린 음모’를 비롯해 ‘에브리맨’ ‘네메시스’ ‘죽어가는 짐승’ ‘전락’ ‘울분’ 등 3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정영목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는 고인에 대해 “소설과 개인사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이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곧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계층, 인종, 민족, 국가에 내포된 폭력성과 배타성을 비판하고, 인간이 타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함은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했다. 고인은 자신의 삶을 미국 흑인 권투선수 조 루이스(1914∼1981)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강 소설가(48)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두 번째 수상이 불발됐다. 한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로 한국인으로는 처음 이 상을 받은 지 2년 만에 ‘흰’(The White Book)이 올해 최종 후보에 올라 두 번째 수상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맨부커상 심사위원회는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폴란드 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56)의 ‘플라이츠’(Flights)를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플라이츠’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관계에서 곧바로 떠날 수 있는 현대인의 삶과 쓸쓸함을 그린 작품이다. 2016년 국내에서 출간된 ‘흰’은 강보, 배내옷, 달 등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 쓴 짧은 글 65편을 담았다. 지난해 영국에서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저자가 24년간 독감, 기관지 염증, 폐렴, 폐결핵 환자를 진료한 과정을 담았다. 기침은 통증처럼 몸에 이상이 있을 때 보내는 신호다. 만성 기침은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거나, 기관지 천식, 기관지염이 있을 때 나타난다. 기관지 확장증과 역류성 식도염도 요인이 될 수 있다. 기침이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친 적도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생방송 선거 유세 중 무려 4분간 기침을 해 결국 방송이 중단됐다. 도널드 트럼프를 크게 앞서고 있었지만 심각하게 기침하는 힐러리의 모습은 미국 전역에 공개됐고, 건강 문제로 트럼프 측으로부터 집중 공격받았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폐암으로 숨지는 사람은 1만7400여 명에 이른다. 폐암이 사망률 1위인 것은 일찍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순 흉부 엑스레이 사진으로는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 다른 암에 비해 공격적인 성질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저자 역시 아버지를 폐암으로 떠나보낸 아픈 기억을 털어놓으며 저선량 흉부 CT 검진을 통해 폐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2주 이상 기침을 계속하면 반드시 단순 흉부 사진 촬영을 하라고 당부한다. 모든 병을 알 수는 없지만 폐결핵 등 혹시 모를 질병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호흡기 질환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찬찬히 안내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몸으로 길어 올린 언어는 단단하다. 따뜻하고 찡한 여운이 오래 머문다. 고향인 전북 전주시에서 5년째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저자가 빚어낸 산문은 그렇다. 18년간 가구점을 하다 가게를 접고 48세에 관광버스를 2년 몰다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됐다. 최근 고대하던 1일 2교대제를 시범 운행 중이지만 격일제로 했던 하루 18시간의 ‘악마적인 노동’은 친절이 마음이 아니라 몸의 문제임을 깨닫게 했다. 배차 시간에 쫓기고 불법 주차 차량을 피해 곡예하듯 정류장에 버스를 댄다. 식사는 물론 용변 해결도 종점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야 한다. 갈 길이 급한데 무릎이 불편해 버스 계단을 뒤뚱뒤뚱 오르는 할머니를 보면 짜증이 치솟는다. 하지만 마음을 밝게 하는 말을 찾아냈다. “아직 젊고만 기어 올라온대요?”(저자) “아이고, 기사님 칠십이 넘어요.”(할머니) 다른 아주머니들이 “여자들 나이 먹으면 다 그리요”라며 한마디씩 거든다. 한참 만에 버스에 오른 할머니가 말한다. “젊었을 때 일을 하도 많이 히서 그리요.” 폐쇄회로(CC)TV 4대가 늘 돌아가고 있어 버스에 떨어진 10원짜리 하나도 가져가지 않는 버스기사일은 정직한 노동이라고 말한다. 석 달에 한 번 보너스에서 8만 원씩 내 운동장 사용료, 비품, 회식비로 쓰는 축구부원들을 보며 돈이 많아야 멋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릴 적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렸던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작은 일에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려 노력하는 모습은 애잔하게 다가온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철학자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읽다 보면 버스 운전기사들이 새롭게 보인다. 그들 역시 감정과 애환, 각각의 역사가 있는 존재임을 환기하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대선사 혜암 스님(1920∼2001)의 가르침과 삶을 기리는 회고록 ‘스승 혜암’(376쪽·1만6000원·김영사)이 출간됐다. ‘혜암선사문화진흥회’가 스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제자와 재가자 등 25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난 혜암 스님은 17세에 일본으로 유학해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을 공부하던 중 출가를 결심하고 귀국했다. 1946년 26세에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 출가해 인곡 스님을 은사로, 효봉 스님을 계사로 해 ‘성관’(性觀)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해인사 원당암 맨 위쪽에는 미소굴이 있다. 혜암 스님의 생전에 주로 머물던 곳으로 유품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미소굴 앞에는 혜암 스님이 제일 강조했던 ‘공부하다 죽어라’를 친필 글씨로 새긴 비가 서 있다.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은 “혜암 스님은 출가한 지 백 년이 되었더라도 참선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법랍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손수 양말을 꿰매고 호미질을 하며 장작을 패고 풀을 베고 산길을 넓히셨다. 정진 아니면 일, 일 아니면 정진으로 일관하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혜암 스님은 설법을 하는 대상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한 번은 스님들이 태백산 정상 부근에 간 적이 있었는데 무당들이 굿을 하려고 자리를 펴고 있었다. 혜암 스님은 갑자기 무당에게서 목탁을 빌려오더니 “목탁을 봤으니 반야심경 한 번 하자”며 봉독을 시작했다. 이어 법문을 했다. 법문이 끝나자 무당들은 고개 숙여 큰절을 하며 “좋은 법문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하루 한 끼만 먹고, 눕지 않고 좌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평생 실천한 혜암 스님은 제자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하며 수행을 당부했다. “용맹정진하다가 죽는 놈 못 봤어. 용맹정진하다 죽는다면 그보다 수지맞는 장사는 없어. 정진하다가 죽을 수만 있거든 죽어버려. 내가 화장해 줄 테니까.” 수행 뒷바라지도 즐거운 마음으로 손수 했다.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은 “정진하던 선방대중이 빵을 먹고 싶다고 하자 혜암 스님은 시장에 나가셔서 당시로는 먹기 힘든 고급 식빵을 사오셨다”고 말했다. 안거 중에 대중이 두부를 먹고 싶다고 하자 마을로 직접 내려가 두부를 가져온 적도 있다. ‘나는 새로 떨어뜨린다’는 이후락 일행이 동안거를 하던 지리산 칠불암에 찾아와 비구들이 정진하던 선방에서 자겠다며 방을 점거한 적이 있었다. 혜암 스님은 “당장 선방에서 나오라”며 호통 친 후 이후락 일행을 보살들이 지내던 방에 데리고 가 철야정진을 시켰다. 다음 날 이후락은 칠불암을 동양 제일 선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필요한 것을 물었다. 혜암 스님은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했다. 기력이 많이 쇠했던 70대 중반 혜암 스님은 선방에 놓여진 평상 위에서 용맹정진을 하다 떨어진 적도 있었다. 제자들이 가슴을 졸이며 ‘이제 정진을 쉬시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스님은 “끈을 가져와서 나를 평상에 묶어라”고 한 뒤 일주일간의 용맹정진을 마쳤다. 서릿발 같은 기세로 정진하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며 진리를 찾았던 혜암 스님의 자취는 책 곳곳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20대 초반에 쓴 생애 첫 소설(‘여름의 흐름’)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고 50여 년간 꾸준히 작품을 선보인 저자(75)는 취미가 많다. 영화 감상, 낚시, 오토바이·사륜구동차 타기…. 여기까지는 별 생각 없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데 이건 어떤가. 샌드백 차기, 눈 치우기, 소각로 만들기, 소총 엽총 등 각종 총 쏘기, 지역별 물 맛 비교하기…. 저자는 신비롭고 고상한 이미지를 만들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내던지고 꾸밈없이 솔직하게 일상을 보여준다. 급하고 엉뚱하며 다소 냉소적인 성격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행글라이더를 배울 때는 ‘새라기보다는 모기와 비슷한 날개를 짊어지고 뛰어내리는 것이다’고 썼다. 눈 치우기는 중노동이지만 겨울 스포츠로 이만한 게 없다고 한다. 소각로가 자주 망가지자 직접 만든다. 당일 태워야 할 목록에는 ‘매 호 매 호 작문을 겨우 면할 정도인 소설을 왕창 싣고도 시치미를 떼는 문예지’도 있다. 낚시는 사색이 아니라 철저히 승부의 영역이다. 이기지 못하면 분통이 터진다. 송어 떼를 잡을 수 없게 되자 돌을 내던져 송어가 모조리 도망가게 만들 정도다. 수시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글쓰기와 삶에 대해 고찰한 문장을 보노라면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오토바이 타기에 대해 ‘한 점을 응시하고 있으면 전복으로 이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눈은 뜨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감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한다. 소각로를 보며 ‘마음속 소각로에 온갖 체험을 던져 넣어 태우고, 그 불꽃을 열정으로 바꿔 부지런히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채로운 취미는 홀로 글을 써야 하는 소설가의 외로운 숙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듯하다. 당신에게 취미란 어떤 의미냐고.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황금빛 모자이크에 영감을 받았던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 ‘햄릿’의 배경이 된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 크론보르성,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를 허무주의에 천착하게 만든 스위스의 호수마을 렌체어하이데…. 거장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주목을 받고 있다. 북이십일의 문학 브랜드인 아르테에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지난달 처음 출간된 ‘셰익스피어’(황광수), ‘니체’(이진우), ‘클림트’(전원경). 이 시리즈는 거장이 성장한 곳을 비롯해 모험을 하고 영감을 받은 곳을 소개함으로써 한 인간으로서 이들의 삶과 함께 작품을 이해하게 한 기획이다. 우리나라 작가 100명이 런던, 파리, 프라하, 빈, 피렌체, 리스본 등 12개국 154개 도시를 다니며 모두 100권의 책을 쓸 예정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취재여행을 다녀온 후 책을 썼다. 컬러 사진도 풍부하게 실어 이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원미선 북이십일 문학사업본부장은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는 초판으로 각각 찍은 3000권이 모두 판매돼 한 달 만에 2쇄 제작에 들어갔다”며 “예상보다 호응이 훨씬 뜨거워 놀랐다”고 말했다. 조만간 ‘푸치니’(유윤종), ‘페소아’(김한민), ‘오스카 와일드’(최옥정)도 내놓을 예정이다. 시리즈가 완간되려면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독자들은 고급스러운 문화여행을 떠난 기분이라며 반기고 있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니체’를 읽은 독자들이 “여행을 하면 철학자가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철학과 여행이 이토록 잘 어울리다니”, “니체가 전해주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알프스가 그리워졌다”고 쓴 글이 올라왔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를 전방위적으로 깊숙하게 파고든 느낌이다.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이렇게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클림트’를 읽은 독자는 “클림트가 살던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며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시리즈의 아이디어를 직접 내고 기획한 김영곤 북이십일 대표는 “고전과 명작에 대한 벽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거장이 몸담았던 공간을 새로운 접근 수단으로 선택했다”며 “현장을 누비며 전문가들이 발휘한 역량이 시리즈를 통해 쌓이고 독자들도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유명한 장강명 작가(43)가 이번에는 ‘시험을 통한 계급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 출간한 르포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에서 문학상과 공채를 포함한 시험제도가 한국사회의 계급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파헤쳤다. 장 작가를 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11년간 기자생활을 한 경험을 발휘해 문학상 심사 현장과 삼성그룹 필기시험장, 사법고시 존치 반대 집회장 등을 누비며 60명 이상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는 “유사신분제 사회인 한국을 떠받치는 기둥은 시험”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학상 공모전 4관왕(한겨레문학상,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에 언론사 시험, 대기업 공채까지 합격했던 그가 아닌가. “한국에서 소설가가 되려면 왜 시험 같은 공모전을 통과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취재를 시작했어요. 부조리한 구조에서 제가 현재의 위치에 온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는 좀 달랐다. 문학상은 문단 권력자가 당선자를 고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살벌할 정도로 팽팽하게 설전을 벌이는 모습에 그는 “내가 그 작품을 썼다면 울면서 뛰쳐나갔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문학상용 작품’이 따로 있다는 것도 허상이었다. 그는 지금 한국사회의 시험제도는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과거제도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나이는 평균 36.4세로, 10대 중반부터 공부했다고 치면 20여 년 걸린 셈입니다. 60, 70대까지 시험을 준비하는 장수생도 있었고요.” 19세기 후반에는 응시자가 20만 명을 넘었지만 최종 합격자는 한 해 30여 명이었다. 하지만 선발된 이들은 과학기술과 경제, 국제 정세에 취약했다. 그는 “중국의 과거제도를 받아들인 한국과 베트남이 근대화에 뒤처지고 과거제도가 뿌리 내리지 않은 일본이 승승장구한 역사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제도를 둘러싼 풍경은 2011년부터 5년간 국가 공무원 시험 응시자 127만여 명에 합격자는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색종이를 접어 오린 뒤 펼치면 어떤 모양이 나올지 유추하는 대기업의 필기시험 문제, ‘쌈’이 바늘 몇 개인지 묻는 공무원 시험문제처럼 ‘선발’을 위한 시험이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사법고시생이 로스쿨생을 바퀴벌레에 빗대 ‘로퀴벌레’라 부르고, 로스쿨생은 사법고시생을 ‘사시충’이라 비하하는 것도 시험을 두고 벌어지는 살벌한 현실이다. “시험이 유능한 사람을 못 뽑는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합격자는 영원히 합격자로, 불합격자는 영원히 불합격자로 구분 지으며 신분 격차를 너무 크게 가른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는 문학상은 필요하지만 현 제도로는 튀는 작가나, 심사위원은 이해가 안 돼도 독자들이 환호하는 작가를 뽑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누군가를 발탁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크 저커버그, 조앤 K 롤링처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는 현재 범죄 관련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비인간적인 경제구조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그리는 소설집 ‘산 자들’(가제)에 담을 단편도 쓰고 있다. “소설만큼 제게 강렬한 짜릿함을 주는 건 없어요. 소설과 르포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꾸준히 던지고 싶습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안미옥 시인(34)과 이주란 소설가(34)가 계간 ‘21세기 문학’이 주관하는 제25회 김준성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안 씨의 시집 ‘온’(창비)과 이 씨의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민음사). 상금은 시, 소설 각각 1000만 원. 시상식은 31일 오후 7시 반 서울 서대문구 시집전문책방 ‘위트앤시니컬’에서 열린다. 김준성문학상은 2007년 작고한 소설가이자 기업인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한 프랑스의 피에르 리시엥 프로듀서 겸 평론가(사진)가 5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뤼미에르 기념관이 밝혔다. 향년 82세. ‘칸의 대부’로 불리는 고인은 칸 국제영화제 자문위원을 지냈다. 임권택, 이창동, 봉준호, 홍상수 감독이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 3편도 칸 영화제 클래식에 초대했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극장전’에서 공동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고인은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한국 영화를 눈여겨 본 뒤 해외에 알리는 등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고인은 한국 영화에 대해 “열정과 폭발력을 지녔다”고 평가하며 애정 어린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쿠엔틴 타란티노, 클린드 이스트우드 감독의 실력을 알아보고 이들이 칸 영화제 진출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건 언제까지일까. 인간에게 잠재된 힘은 얼마나 될까. 알래스카 인디언에게 구전되는 이야기를 정리한 소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알래스카에 맹추위가 닥치자 주요 식량이었던 큰사슴 무리가 자취를 감춘다. 유목민 아이들은 굶주림에 죽어 나갔다. 족장은 사냥감을 찾아 떠나기로 결정한다. 단, 80세의 칙디야크와 75세의 사는 두고 가기로 했다. 음식이 부족한 데다 이동하는 데 짐이 됐기 때문이다. 칙디야크의 딸은 부족민의 반발이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버려진 칙디야크와 사는 충격과 배신감에 눈물을 흘린다. 지난날 열심히 일했기에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긴 건 착각이었다. 하지만 이내 죽음의 공포가 다가온다. 사는 말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 극한의 두려움은 잠자던 기억과 감각을 깨워냈다. 사가 젊은 시절 익혔던 사냥 기술을 떠올려 손도끼로 나무다람쥐를 잡은 것. 이들은 가죽 끈으로 눈신발을 만들고, 토끼 덫을 놓는가 하면 올가미로 버들뇌조를 잡는다. 기억을 더듬어 물고기가 많이 살던 곳을 가까스로 찾아내고 식량을 저장하기에 이른다. 부족은 어떻게 됐을까. 사냥감을 찾는 데 실패해 더 처참하게 굶주린 모습으로 돌아오고 여인들은 기꺼이 식량을 내준다. 야생의 벌판에서 두 여인이 벌이는 치열한 사투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자신들이 나약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님을 당당히 증명해낸 두 여인은 나이 들어도 늙지는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한다.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놓지 않는 한, 인간은 계속 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다고. 내 안에 숨겨진 가능성의 씨앗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찾아보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박경리 선생(1926∼2008) 추모 10주기를 맞아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 선생의 동상을 세운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은 12일 오후 2시 토지문화관에서 동상 제막식과 음악회를 연다. 권대훈 조각가(서울대 교수)가 제작한 동상은 책을 두 손으로 펼쳐든 선생의 모습을 135cm의 입상으로 표현했다. 동상 아래는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는 문구를 한글과 영어로 새겼다. 이는 선생의 에세이집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에서 따 왔다. 같은 제목의 산문에서 선생은 “개발의 소음 속에서 숨을 죽이며 떨고 있는 숲의 나무들처럼, 바로 그런 끔찍스러운 것을 끔찍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야말로 내 동기간이며 나는 그들을 가슴 뜨겁게 사랑한다”고 썼다. 경남 통영시 박경리기념관과 하동군 박경리문학관에도 권 조각가가 만든 동일한 동상이 있다. 이들 동상에는 선생의 유고시집 제목이자 시 ‘옛날의 그 집’ 마지막 시구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가 한글로 새겨져 있다. 한국과 러시아 간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도 올해 선생의 동상 제막식을 열 예정이다. 12일 열리는 음악회에서는 소프라노 조현애, 테너 강훈이 선생의 시 ‘바람’ ‘연민’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부른다. 033-766-5544,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황금찬, 문익환, 조흔파….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이다. 이들을 조명하는 ‘2018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열린다. 시인은 김경린 문익환 박남수 심연수 오장환 황금찬, 소설가는 박연희 조흔파 한무숙으로 모두 9명이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이번 문학제의 주제는 ‘분단과 충돌, 새로운 윤리와 언어’다. 1918년 태어난 작가들은 1939년 조선어 교육이 폐지돼 급격한 조선 문학의 단절을 경험했고 친일문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절망에 빠졌다. 문학제 기획위원장인 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친일의 길로 들어선 조선문인 1세대, 프롤레타리아 문학에서 민중문학으로 전환한 2세대와 달리 3세대인 1918년생들은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후 모더니즘 문학을 이끌어갔다”고 말했다. 김경린 시인(∼2006년)은 암울한 시대 상황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을 도시적으로 풀어냈다. ‘김경린 시의 재조명’ 학술행사는 6월 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목사, 사회운동가로 유명한 문익환 시인(∼1994년)은 ‘새삼스런 하루’, ‘꿈을 비는 마음’, ‘옥중일기’ 등 7권의 시집과 여러 산문집을 냈다. 오장환 시인(∼사망 시기 미상)은 시집 ‘나 사는 곳’, ‘병든 서울’을 남겼다.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하다 1948년 월북했다. ‘오장환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6월 20, 21일 대전에서 열린다. 새를 활용해 선명한 이미지와 순수성을 지향한 박남수 시인(∼1994년), 1940년대 만주에서 활동한 심연수 시인(∼1945년)도 조명한다. 황금찬 시인(∼2017년)은 초기에는 자연을 노래하며 현실을 성찰했고, 후기에는 종교적 주제에 몰두하는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줬다. 한무숙 소설가(∼1993년)는 억압된 여성의 목소리를 작품으로 드러냈다. ‘얄개전’으로 유명한 조흔파 소설가(∼1981년)는 명랑소설 장르를 정착시켰고 박연희 소설가(∼2008년)는 6·25전쟁 이후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을 썼다. 심포지엄은 다음 달 3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세미나실에서 개최된다. 작품 낭독과 음악공연을 하는 ‘문학의 밤’은 4일 오후 7시 반 마포중앙도서관 6층 세미나홀에서 열린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저자의 이번 신작은 사뭇 결이 다르다. 엉뚱하면서도 따뜻한 유머가 담긴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약간 당황할 수도 있다. 가슴 찡한 코미디 연기를 주로 했던 배우가 진지한 캐릭터로 변신한 것 같다고 할까. 숲과 눈에 뒤덮여 긴 겨울을 보내는 베어타운은 일자리가 줄어들며 나날이 쇠락해 가는 마을이다. 사람들은 전국대회 준결승에 진출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의 우승에 희망을 건다. 척박한 환경에서 신화를 이루면 정부와 기업이 관심을 보이며 새 아이스링크를 지어주고 콘퍼런스센터, 쇼핑몰을 건설해 마을이 살아날 수 있다고 꿈꾼 것. 베어타운은 인간 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도 꺼리지 않는 코치 다비드와 과정을 강조하지만 구닥다리 노인 취급을 받는 코치 수네는 성공 지상주의와 올바른 성장을 상징한다. 그러다 하키팀 에이스로, 왕자처럼 군림하는 부잣집 아들 케빈이 하키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마을은 극심한 갈등에 휩싸인다. 공동체는 갈가리 찢겨지고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갖가지 상처와 사연을 지닌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세밀하게 묘사해 이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한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몰입도를 높인다. 어디나 존재하는 권력 관계와 시기 질투, 사건이 터지게 만든 구조적 요인도 설득력 있게 그렸다. 끝을 알 수 없는 욕망과 이기심, 모순이 단단히 똬리를 튼 인간 사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따스하다. 언 땅에서도 꽃을 피우는 벚나무처럼 희망 한 자락을 살포시 남겨 놓았다. 인생살이의 핵심을 예리하게 담아낸 문장들에는 오래 눈길이 머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저자(1962∼2008)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소설가다. 장편소설 ‘무한한 재미(Infinite Jest)’는 ‘타임’이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 소설’로 선정했지만 1000쪽이 넘는 데다 각주가 300개가 넘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남긴 장편소설은 ‘시스템의 빗자루’, ‘창백한 왕’을 포함해 모두 3권이다. 이 책은 저자의 산문집 3권에서 9개의 글을 골라 엮었다. 비관적이고 냉소적이지만 신선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일상과 사회를 관찰한 괴짜 소설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표제작인 ‘재밌다고들…’은 잡지사의 의뢰로 호화 크루즈를 타고 카리브해 여행을 한 소감을 담았다. 선 베드를 잠깐만 비워도 처음 상태로 정리하는 놀랍도록 신속한 서비스, 넘치는 음식, 끝없이 이어지는 즐길 거리를 향한 그의 시선은 요란하고 희한한 쇼를 보는 듯하다. 카리브 해를 보며 ‘파란’, ‘새파란’이란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파란 빛깔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긴 한다. 하지만 저자가 손수 가방을 날랐다는 이유만으로 담당 직원이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간신히 사태를 수습한 뒤 자본주의의 그늘에 씁쓸해한다. 상어에 집요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그가 실제 상어가 몰려드는지 확인하고 싶어 피가 흐르는 음식물 쓰레기를 달라고 했다 거절당하는 모습은 아이 같다. 9·11테러 현장을 TV로 시청하다 느끼는 공포 중 일부는 미국 내의 암울한 현실임을 깨닫는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은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준다.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미국 영어 어법,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 등 방대한 주제를 거침없이 써 내려간 글은 독특한 방식으로 음식을 해내는 요리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각주는 때로 두 페이지 이상을 차지하며 그야말로 ‘홍수’를 이루지만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 저자의 소설이 문득 궁금해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단편소설 ‘투계’로 유명한 소설가 송영(1940∼2016)의 유고 소설집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문학세계사·사진)가 출간됐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 고인은 소설집 ‘선생과 황태자’ ‘지붕 위의 사진사’ ‘비탈길 저 끝방’ ‘발로자를 위하여’ ‘새벽의 만찬’을 비롯해 장편소설 ‘또 하나의 도시’ ‘금지된 시간’ 등을 냈다. 큰 인기를 모은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땅콩 껍질 속의 연가’는 뮤지컬과 영화로도 제작됐다. 유고집에 실린 작품들은 기행문과 소설 형식이 섞여 있는 듯하다. 표제작 ‘나는 왜…’는 러시아 문학 기행 중에 얻은 성찰을 담았다. ‘화롄의 연인’은 대만 화롄지역을 여행하며 마주한 일상을 통해 극복하기 쉽지 않은 갈등에 대해 생각한다. ‘라면 열 봉지와 50달러’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등 실존 인물이 여러 명 등장한다. 북한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금강산 가는 길’도 실렸다. 소소한 일화가 등장하는 이들 소설은 에세이 같기도 하다. 담담하고 깊이 있게 현실을 진단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화해의 의미를 파고드는 글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