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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분들이 너무 걱정하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서울 금천구의 한 주택 앞에서 경찰관이 현관문을 두드리며 호소했다. 지난해 12월 8일 오전 2시경 이 주택에 사는 20대 여성 A 씨가 자살하려는 것 같다는 가족의 신고에 즉시 경찰이 출동했다. 하지만 잠긴 문을 열 장비가 없었던 것. 출동한 경찰관이 끈질기게 문을 두드린 끝에 A 씨가 문을 열었을 땐 자해한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A 씨는 다행히 곧장 응급처치받고 안정을 찾았지만 경찰 관계자는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아찔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구대 10곳 중 8곳은 개문 장비 없어 해마다 자살 의심 신고가 늘고 있지만, 정작 경찰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도 닫힌 문을 강제로 열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손을 못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 구조대가 도착하길 기다리는 사이 소중한 생명을 잃거나, 강력범죄 등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최근 서울 내 지구대 10곳을 방문해 점검한 결과, 8곳은 노루발못뽑이(속칭 ‘빠루’), 도어오프너, 드릴 등 개문(開門) 장비를 갖추지 않고 있었다. 장비를 갖춘 지구대 2곳도 이를 건물 내에 뒀을 뿐 순찰차에 상시 보관하지는 않고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개문 장비는 경찰이 필수로 보유해야 하는 장비에 속하지 않아 보유 현황 등 관련 통계가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자살 시도 등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현장에서도 건물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읍소하거나, 손으로 방범창을 뜯어야 하는 형편이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 관계자는 “개문 장비가 없어서 열쇠 수리공을 부른 적도 있다”고 했다. 31일 경찰청에 따르면 자살 관련 112 신고는 2020년 9만5716건에서 지난해 12만740건으로 3년 새 2만5024명(26.1%) 늘었다. ● 일선에선 “문값 물어내야 할까 봐 걱정” 현행 법령상 경찰이 자살 의심 신고 등 긴급상황 때 주거지 등 건물의 문을 강제로 열 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는 경찰이 ‘가택 긴급출입권’에 따라 강제로 출입문을 열고 가정에 들어갈 수 있게 돼 있다. 경찰의 긴급출입을 거부한 사람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의 112기본법도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올 6월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일선 경찰들은 강제로 문을 연 뒤에 따라올 수 있는 민사 소송이나 손실 보상 절차를 우려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1월 중순에 한 주택에서 불이 나 소방 구조대가 강제로 문을 열었는데 집주인이 ‘수리비를 물어내라’고 요구해 담당 소방관이 곤란해한 적이 있었다”라며 “혹시 모를 책임에 휘말릴까 봐 위축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 순찰차마다 개문 장비를 갖추게 하고, 이에 따른 손실 보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긴급한 현장엔 순찰 중이던 경찰이 소방 구조대보다 먼저 도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찰도 개문 장비를 갖추고 관련 훈련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현장 경찰관의 부담을 덜 관련법이 곧 시행되니 필요한 장비와 세부적인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19일 정부로 이송된 지 11일 만이다. 2022년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번이 5번째이며, 법안 수로는 9번째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영구 추모시설 건립 등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유가족 측은 “정부는 유족의 요구를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며 반발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검경 수사 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명확한 근거도 없이 추가 조사를 위한 별도의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게 과연 희생자와 유가족, 우리 국민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윤 대통령과 정부 관료, 국민의힘 의원들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결정으로 역사에 남을 죄를 지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유족들을 면담하고 “거부권 행사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유가족에 대한 지원 방안을 제시한다고 하는데 이거야말로 유가족과 국민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오직 정치적 유불리로만 판단하는 것은 참 비정하다”고 했다고 비판했다.정부 “이태원특조위 위헌 소지” 野 “진상규명마저 거부” 尹,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행사정부 “총리실 산하 피해지원委 설치… 지원금 확대-희생자 추모시설 추진”특조위 구성요건-권한엔 여야 이견… 대통령실 “문제조항 제거땐 재협상” “국무총리실 산하에 ‘10·29 참사 피해지원위원회’를 설치해 생활지원비, 의료·간병비 등 피해 지원금 확대, 희생자 추모시설 건립을 추진하겠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30일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이태원참사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이 의결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말했다. “이태원 참사는 지금도 많은 분들 가슴에 무거운 슬픔으로 남아 있다”며 “유가족들이 진행 중인 민형사 소송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에 신속하게 지원 및 배상을 진행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9개 법안 가운데 정부가 거부권 건의 배경과 지원 대책을 강조한 것은 처음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피해 유가족을 의식한 조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특별법의 문제 조항이 제거돼 여야가 재협상하면 얼마든지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거부권 행사, 재투표로 폐기 수순을 밟은 기존 법안과 달리 여야의 추가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조위 설치부터 운영 방식까지 이견 윤 대통령이 이날 9개째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압사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둘러싼 의견 차가 좁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23명에 대한 재판이 이미 진행된 만큼 특조위를 새로 꾸려 강제 조사를 진행할 명분이 없다고 본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날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발언한 점이 대표적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현재 검찰에서 기소된 사람을 보면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한 사람뿐”이라며 “무엇보다 유가족들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조위 권한을 놓고도 정부는 “초헌법적 기관이 될 수 있다”고 하고, 야당은 “정부 주장이 과장됐다”고 팽팽히 맞섰다. 정부는 특조위가 정당한 이유 없이 2차례 이상 출석을 거부한 대상자에게 직권 동행 명령을 내리고, 자료 제출 요구 거부만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위헌성이 있다고 본다. 반면 민주당은 “실제 영장 청구나 수사 지휘는 관할 검찰청 등의 사법적 통제를 받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정부는 특조위원 11명 중 여당과 야당이 각각 4명을 추천하고, 나머지 3명을 유가족 단체 등이 추천하도록 한 특별법 조항에 대해서도 “사실상 ‘야당 7명, 여당 4명’으로 국회 다수당이 특조위 구성을 좌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은 과거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여야 각각 4명, 국회의장 1명 추천) 사례를 기준으로 따랐다고 설명했다. 특조위 활동으로 2년간 집행될 정부 예산 96억여 원 수준(국회예산정책처 자료)을 둘러싼 시각차도 첨예하다. ● 與 “다음 달 1일 재표결”, 野 “재표결 시점 미정”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한국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각자도생 사회라는 공식 선포”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 정권은 유가족들의 상처를 두 번 세 번 헤집어 놓더니 이제 진상 규명마저 거부한다”고 비판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의 진실마저 가로막으려는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거부권”이라며 “국민을 편 가르기 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오직 정치적 유불리로만 판단하는 것은 참 비정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다음 달 1일 재표결과 함께 민주당이 재협상에 응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에 민주당은 ‘쌍특검법’(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재표결을 2월 국회로 고려 중이어서 이태원참사특별법 재표결도 뒤로 밀릴 수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독소조항을 제거한다면 여야 간에 합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임오경 원내대변인은 “2월 안에 표결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장관석 기자 jks@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이태원참사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하자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회를 또다시 놓쳤고, 재난 참사의 위협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며 반발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는 이날 오후 1시경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족이 바란 것은 오직 진상 규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유족의 요구를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고 비판했다. 이정민 유가협 대표는 “윤석열 정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159명의 희생자와 가족들을 외면했다”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가 ‘유족과 협의해 피해지원 종합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이 대표는 “일고의 가치가 없고 단 한 줌의 진정성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의 김덕진 대외협력팀장은 “진실을 찾지 않은 채 정부의 지원을 원하는 유족은 없다. 유족 동의 없이는 (정부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유가협은 이날 정부가 ‘법안에 따르면 법원의 영장 없이 동행명령과 같은 강력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어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한다’고 밝힌 데 대해 반박하는 자료도 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 참사 TF 팀장인 윤복남 변호사는 “해당 권한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등 유사한 조사위원회에 모두 있었던 권한이지만 위헌성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과 종교인들은 전날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서 대통령실까지 오체투지로 행진하며 이태원참사특별법 즉시 공포를 요구했다. 28일엔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서 “특별법을 공포하라는 유족과 시민들의 간절함을 다시 한번 전달한다”며 100여 명이 1만5900배 밤샘 기도를 하기도 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와 이준호 투자전략부문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권찬혁)는 29일 김 대표와 이 부문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30일 밝혔다. 검찰은 이들이 수년째 영업 적자를 기록하던 드라마 제작사 A사를 당시 시세보다 비싼 200억 원에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인수하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와 이 부문장은 A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기업 가치평가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방법 등으로 인수대금을 부풀렸다. A사는 배우로 활동 중인 이 부문장의 아내가 대주주였던 곳이다. 검찰은 A사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이 부문장이 김 대표와 공모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와 이준호 투자전략부문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권찬혁)는 29일 김 대표와 이 부문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30일 밝혔다. 검찰은 이들이 수년째 영업 적자를 기록하던 드라마 제작사 A사를 당시 시세보다 비싼 200억 원에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인수하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와 이 부문장은 A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기업 가치평가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방법 등으로 인수대금을 부풀렸다. A사는 배우로 활동 중인 이 부문장의 아내가 대주주였던 곳이다. 검찰은 A사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이 부문장이 김 대표와 공모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4·10총선을 75일 앞두고 정치인을 노린 정치 테러가 잇따르자 정치권에선 “모방 정치 테러 대상이 될까 봐 선거운동 하기가 두렵다”며 ‘피습 포비아’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공개 유세 일정이 늘어나면서 유권자들과의 접촉이 많아지는 만큼 모방범죄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더불어민주당의 수도권 지역 초선 의원은 26일 통화에서 “신년이라 이런저런 자리가 많은데 일정을 좀 줄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다니는 것도 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짧은 일정도 보좌진과 동행하고 있다”며 “가족들과 주변에서도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지역구 의원도 “집으로 돌아갈 때 외진 곳을 지나면 괜히 신경이 쓰일 것 같다”며 “총선이 다가올수록 거리 유세로 유권자들과 만나는 일도 더 많아질 텐데, 경호를 위해 수행하는 인력을 늘리자니 주민들과 거리감이 생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야 지도부가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분출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한 의원은 “폭력행위에 대한 엄벌과 정치권 내에서의 자정과 자숙, 변화를 위한 제도 마련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각 당의 지도부가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부터 지켜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당대표 정치테러대책위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국회의장과 여야에 국회 차원에서 정치테러 대책을 세우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잇따른 피습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 인사에 대한 신변 보호를 강화하기로 했다. 국민의힘·민주당 대표를 대상으로 근접 신변보호팀을 운영 중인데,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 새로운미래 이낙연 인재위원장에 대해서도 신변보호팀 조기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 또 거리 유세 등 위험도가 높은 경우에는 관할 경찰서장이 현장에 직접 나가 신속히 대응하고 불심검문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경호 강화 조치가 자칫 의원 특권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안전 문제도 중요하지만 의원에게 특혜 내려놓기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최근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듯해 조심스럽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최근에도 윤석열 대통령 과잉 경호 논란이 있었는데, 정치인들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면 정치인 특권이라는 비판이 불거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여성의 (출산, 양육) 부담에 대해 적절히 보상하지 않으면 (한국의 인구 문제가) 더욱 심해질 겁니다.”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WB) 총재(65)는 2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글로벌지식협력단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성별 임금 격차와 과도한 양육 비용 문제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여성들이 인구 증가에 대한 부담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지 않으면 복잡한 문제가 초래된다”며 “일하던 여성이 (출산, 육아 등으로) 직장과 떨어져 있던 기간 때문에 손해를 입지 않고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학교 교육과 양육 비용이 너무 비싸거나 경쟁적으로 돼 가족들이 힘든 상황에 부닥치면 아이를 가지려는 욕구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저출산 완화를 위해 정부가 교육, 양육 비용을 줄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방가 총재는 이날 오후 서울대 행정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대학생 160여 명과 1시간가량 대담했다. 이 자리에서 방가 총재는 “한국 청년들이 필요하다. 다양한 국가의 청년이 모여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공유할 수 있으면 한다”며 국내 대학생들의 WB 진출을 주문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대학생들과 외국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 등 모두 훌륭한 인적 자본이다. 어떤 방면으로든 세계은행과 교류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약 20분간 이어진 학생들과의 질의응답에선 ‘인생과 일에 대한 가치관에 관해 묻고 싶다’는 질문에 “인생의 절반은 (출신 등) 운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 운으로 무엇을 하느냐다”라고 답했다. 대담에 참여한 대학생 윤모 씨(24)는 “워싱턴에서 컨설팅 회사 인턴을 하며 세계은행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대담으로 더욱 확고한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방가 총재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마스터카드 최고경영자로 일하다가 지난해 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의해 WB 총재로 지명됐고, 같은 해 6월 인도계 미국인 중 최초로 총재에 취임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검찰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과 관련해 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와 이준호 투자전략부문장을 불러 조사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권찬혁)는 24일 배임 혐의를 받는 김 대표와 이 부문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과 관련한 피의자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A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시세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한 혐의를 포착하고 리베이트가 있었는지 등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수년째 영업 적자를 기록하던 A사를 200억 원에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을 받는다. 해당 드라마 제작사는 배우로 활동 중인 이 부문장의 아내가 투자한 곳으로, 검찰은 부당 시세 차익을 얻은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A사 인수 당시 이 부문장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영업사업본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부문장의 아내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법 시세조종에 관여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과 김 대표 등을 지난해 11월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검찰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과 관련해 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와 이준호 투자전략부문장을 불러 조사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권찬혁)는 24일 배임 혐의를 받는 김 대표와 이 부문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과 관련한 피의자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검찰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A 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시세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한 혐의를 포착하고 리베이트가 있었는지 등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수년째 영업 적자를 기록하던 A사를 200억 원에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을 받는다.해당 드라마 제작사는 배우로 활동 중인 이 부문장의 아내가 투자한 곳으로, 검찰은 부당 시세 차익을 얻은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A사 인수 당시 이 부문장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영업사업본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부문장의 아내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에스엠 인수 과정에서 불법 시세조종에 관여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과 김 대표 등을 지난해 11월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경찰이 수십억 원대 불법 비자금 조성과 계열사 공사비 부당 지원 등의 혐의를 받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사진)을 조사했다. 21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 전 회장을 20일 오전 비공개로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이 그룹 임원들을 계열사에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로 장부를 작성하고 급여를 되돌려 받아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고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이 태광그룹 소유 골프장 태광CC를 통해 계열사에 대한 공사비 8억6000여만 원을 부당하게 지원하도록 한 혐의와 계열사 법인카드 8000여만 원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찰은 이 전 회장의 자택과 서울 종로구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경기 용인시 태광CC 등을 압수수색하고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임원 2명의 자택과 이 전 회장의 계좌 등도 전방위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이 전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전 회장은 회삿돈 421억 원 횡령 등의 혐의로 2011년 1월 구속 기소됐다. 이후 2019년 6월 횡령 혐의에 대해 징역 3년이 확정됐다. 재판 기간 7년 9개월 동안 구속집행정지와 병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다가 논란이 일면서 2018년 12월 보석이 취소됐다. 이후 이 전 회장은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고,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로 복권됐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제복 공무원에 대한 신뢰는 대한민국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국민을 바라보며 헌신하는 여러분을 국가가 든든히 뒷받침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제복이 더욱 명예로울 수 있도록 근무 여건과 처우를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사진)는 18일 열린 ‘제12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에 축전을 보내 수상자들의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한 총리는 “빛나는 헌신과 열정으로 오늘 수상의 영예를 안으시는 열한 분의 수상자와 가족 여러분께 존경과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어서 한 총리는 대상 수상자를 언급하며 “(대상 수상자인) 윤종탁 경감은 필리핀 현지에서 납치 피해자를 구출하고 1000억 원대의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을 검거해 우리 국민이 있는 곳은 어디든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고 치하했다.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회장은 기념사에서 “오늘 시상식은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대한민국을 지켜 온 제복 공무원 열한 분을 위한 자리”라며 “매년 수상자로 선정될 분들을 뵐 때마다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여러분 덕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진태 전 검찰총장은 심사 경과보고에서 “심사위원들은 이 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제복 입는 공무원들에 대해 사기를 더 높이고 국민들의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한층 더 공정하고 엄정하게 심사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남화영 소방청장, 김종욱 해양경찰청장, 이영규 현대자동차 부사장, 이태길 한화그룹 사장, 금석호 HD현대 부사장, 금동근 두산 부사장, 김준영 현대백화점 상무, 홍진숙 포스코이앤씨 상무 등이 참석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인공지능(AI)으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려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은 뒤 수십억 원을 돌려주지 않은 업체를 경찰이 신종 사기로 보고 수사에 나선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과 거래를 승인하면서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관련 범죄를 엄단하기 위한 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단역 배우를 ‘스위스 대학교수’로 내세워”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오픈AI의 챗GPT를 활용해 하루 5%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 금융업체 A사에 돈을 맡겼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고소가 전국에서 10여 건 접수되자, 5일 인천경찰청을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경찰에 접수된 피해자는 80여 명으로, 피해액은 20억 원이 넘는다. 경찰 등에 따르면 피해자 대다수는 스위스 소재 S대학의 한국인 경제학과 교수라며 자신을 소개한 B 씨의 유튜브 영상을 계기로 A사를 알게 됐다. 해당 영상에서 B 씨는 “AI가 자동으로 최적의 타이밍에 가상자산을 사고팔아 준다. 5000만 원을 투자하면 월 300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하며 A사를 통한 투자를 권유한다. A사는 홈페이지에 자사의 투자 알고리즘에 대해 “정확도가 98.8%”라며 “매일 ―1%에서 5%의 수익을 만들어낸다”고 소개했다. A사 홈페이지에는 투자금이 불어나는 것처럼 표시됐지만, 실제로는 투자자 상당수가 수익금은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경찰 확인 결과 투자금을 유치한 계좌는 전부 ‘대포(차명)통장’이었다. 게다가 B 씨는 대학교수가 아닌 국내 사극 드라마 등에 출연한 단역 배우였다. B 씨는 15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출연료 30만 원을 받고 대역 연기를 한 게 전부”라며 “대역임을 자막에 명기한다고 해서 동의 후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B 씨가 (A사로부터) 대본만 받았는지, 투자 유치에 적극 가담했는지 등을 검토 중”이라며 “피해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범죄 수익을 회수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A사에 5000만 원을 맡겼다가 돌려받지 못한 C 씨(49)는 “하루 17시간씩 하수처리장에서 일하며 번 돈을 전부 날리게 생겼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투자 유치 처벌법, 넉 달째 국회 계류 문제는 가상자산을 대신 거래해 주겠다며 투자금을 모은 뒤 빼돌리는 행위를 엄중히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유사수신행위규제법상 가상자산은 ‘금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이 가상자산을 유사수신 대상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넉 달 넘게 본회의에 오르지 못한 채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시행됐지만 이는 공식 허가된 거래소를 통한 거래만 보호한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보통 3년 6개월 징역형을 살고 나와도 수십억 원에서 1000억 원대까지 돈이 생기니 범죄자들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제도의 사각지대 속에 가상화폐 범죄 피해 금액은 지난 5년간 약 5조4550억 원에 달한다. 경찰청 ‘가상자산 불법행위 현황’에 따르면 2022년 1∼12월 108건이었던 관련 범죄 검거 건수는 지난해 1∼8월 162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9∼12월 4개월분이 합쳐지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증가 폭이 더 가파르다. 경찰 관계자는 “유튜브 영상, 오픈채팅 등에서 수익을 인증하며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은 사기일 가능성이 크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10대 남학생이 60대 경비원을 때려 기절시키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경비원은 영상 유포자만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폭행한 남학생도 상해 혐의로 입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12일 0시경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의 한 상가에서 고등학생 A 군과 건물 경비원인 60대 남성 B 씨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A 군의 친구가 촬영해 SNS에 올린 이 영상을 보면, 건장한 체격의 A 군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B 씨의 허리 쪽을 겨냥해 달려들어 넘어뜨린 뒤 머리를 수차례 가격했다. B 씨가 일어서지 못하자 A 군은 B 씨의 목덜미와 어깨를 붙잡고 3회 이상 발로 걷어찼다. B 씨는 기절한 듯 중심을 잡지 못하고 벽면에 쓰러져 3초간 움직이지 않았다. A 군의 친구인 C 군 등은 이 상황을 말리지 않고 웃으며 영상을 찍었다. 경찰은 영상을 본 시민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그러나 B 씨는 ‘A 군으로부터 사과받았다’며 폭행 사건 접수를 원치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A 군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B 씨를 따로 찾아가 사과했다”며 “또 B 씨가 쌍방 폭행으로 자신도 처벌될 것을 염려했다”고 밝혔다. 다만 B 씨는 13일 밤 2차 조사에서는 “영상을 촬영하고 SNS에 업로드한 부분은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통상 단순 폭행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은 A 군의 폭행에 B 씨가 기절할 정도였기 때문에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는 ‘상해 혐의’를 적용해 입건할지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영상을 처음 SNS에 올린 C 군에 대해서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등을 검토해 처분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난파 직전 호화 유람선의 모습입니다. 희희낙락하다가 태풍 맞으니까 우왕좌왕…. 이러다가 몰살하는 수가 있습니다.”(국민의힘 장제원 의원) “보니까 이게 검사들의 전형적인 수법인 것 같습니다. 대장동 사건은 범인 바꿔치기를 한 겁니다.”(민주당 김용민 의원) 2022년 3월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회의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두고 열린 394회 법사위 전체회의는 격앙된 분위기였다. “짓이라뇨?”, “끼어들지 말라고요”, “이게 무슨 생쇼입니까?” 같은 원색적인 비난과 고성이 오갔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 문제가 아니었다. 양당은 대화의 초점도 서로 달랐다. 국민의힘은 이날 민주당이 급하게 회의를 열었다며 비난하는 데 바빴다. 반면 민주당은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의 특검을 요구하는 데 몰두했다.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자기 얘기만 하는 ‘끼리끼리’ 대화의 전형이었던 것. “어차피 그쪽에서 얘기하는 것은 이쪽에서 마음에 안 든다”(민주당 송기헌 의원)는 체념적인 고백이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끼리끼리 대화’는 21대 국회 법사위 회의록 전문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함께 21대 국회가 개원한 2020년 5월 30일부터 지난해 7월 사이에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 110건 가운데 106건의 회의록을 전수 분석했다. 나머지 회의록엔 민주당 측 발언만 들어가 있어 제외했다. 그 결과 여야 의원이 각자 자주 발언한 단어 가운데 서로 겹치는 단어는 거의 없었다. 양당 간 ‘발언 유사도’가 매우 낮았던 것. 이 중 발언 유사도가 가장 낮았던 394회 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가장 자주 입에 올린 단어는 “민주당”과 “회의”, “법안”이었다. 민주당을 “옹기종기 모여 작당을 모의한다”고 비난하면서 이런 단어를 썼다. 반면 민주당에서 자주 나온 단어는 “수사”와 “검찰”, “후보”였다. 윤석열 후보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며 그를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수사와 기소가 안 된”, “대검 중수부 철저하게 수사” 등 표현이 함께 나왔다. 여야 의원 간 발언 유사도가 두 번째로 낮았던 401회 회의는 감사원법 개정안과 전북·제주특별자치도 설치가 쟁점이었던 2022년 12월 27일 진행됐다. 국민의힘은 “특별자치도”, “기관”, “소위” 순으로 자주 발언했고, 민주당은 “사건”, “수사”, “위원회” 순으로 발언했다. 국민의힘은 “특별자치도의 난립”, “특별자치도가 남발되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민주당은 “감사원 관련 사건이 진행되지 않는다”, “월성원전 1호기 사건”, “사건 처리 지연” 등 감사원의 중립성을 지적하는 데 중점을 뒀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동아일보 취재팀은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간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팀과 함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사회연결망 분석(Social Network Analysis) 기법으로 국회에 발의된 의원 법안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2012년 6월부터 지난해 7월 사이에 발의된 법안 5만6951건이다. 엄 교수는 공동 발의 분석을 토대로 ‘정서 양극화 지수’(양극화 지수)라는 개념을 최초로 고안했다. 대표 발의자를 기준으로 그가 발의한 법안에 서명해준 의원의 소속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공동 발의는 의원 간의 정치적 지지와 호혜 관계를 보여준다고 다수 논문에서 입증된 바 있다.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같은 정당 소속 의원의 서명에 의존한 비율이 높은 경우다. 반면 다른 정당 의원과의 협업이 활발하면 ―1에 가까운 점수가 나온다. 정당 성향이 비슷하거나 무소속이어도 명목상 다른 정당이라면 다른 당 의원이 서명한 것으로 계산했다. 회기 중에 의원의 당적이 변경된 경우 법안에 서명했을 당시의 소속을 기준으로 했다. 21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이 사용한 단어를 분석하는 데엔 ‘코사인 유사도’ 기법이 사용됐다. 코사인 유사도는 회의록의 모든 단어를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벡터’ 값으로 바꿔 문서 간 유사도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엄 교수의 경북대 벤처기업 ‘빅힐애널리틱스’는 이 같은 분석 방법이 적용된 오픈소스를 만들어 일반인들도 쉽게 키워드를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AI가 본 ‘21대 국회 양극화’21대 국회의 ‘협치’ 수준이 19·20대 국회보다 낮아지면서 다른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함께 발의한 법안이 줄어들었다. 동아일보가 엄기홍 경북대 교수와 함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19∼21대 국회 법안을 전수분석한 결과다.》9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회의장.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상정되자 조용했던 장내가 술렁였다.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조사를 벌이는 내용의 법안에 반발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 퇴장한 것.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의 반대토론 발언은 장내 야유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날은 21대 국회 마지막 해에 열리는 첫 본회의였다. 한 주 전인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 이후 여야가 ‘증오 정치의 종식’을 한목소리로 약속했기에, 화합하는 국회의 모습을 기대하는 시민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저버린 채 9일 본회의는 또다시 파행했다. 이를 지켜본 회사원 임준걸 씨(43)는 “이번 국회는 여야가 서로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다가 끝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끼리끼리 입법’ 지수, 4년 새 32% 증가 21대 국회 들어 서로 다른 정당 소속 의원끼리 교류 없이 법안을 발의하는 ‘끼리끼리 입법’ 성향이 과거보다 강해졌다는 인공지능(AI)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최근 11년여간 국회에 발의된 의원 법안 5만6951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한국정당학회장)와 함께 19대 국회가 출범한 2012년 5월 30일부터 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약 10개월 앞둔 지난해 7월 24일까지 발의된 의원 법안의 대표 발의자와 공동 서명자의 소속 정당을 AI로 분석했다. 법안 공동발의는 협치의 수준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그 결과 같은 정당 의원의 서명만으로 발의된 법안의 비율과 비례하는 국회 내 ‘양극화 지수’는 20대 때 1.94에서 21대 때 2.56으로 치솟았다. 4년 새 여야의 양극화 지수가 32%나 높아진 것. 대표적인 게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다. 공동 발의자에 이름을 올린 의원 183명 중 국민의힘 의원은 1명도 없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그간 국민의힘이 낸 24개의 법안에도 민주당 의원은 3명만 서명했다. ● 유력 정치인일수록 ‘끼리 입법’ 비율 높아 21대 국회에서 다른 당과 공동 발의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의원은 총 6명이다. 해당 의원들은 자기 대표 발의에 다른 당 의원이 한 명도 서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도 다른 당 의원 대표 발의에 서명한 적이 없다. 국민의힘에선 홍준표 대구시장이 의원 재직 당시 총 16건을 대표로 발의했지만, 참여자는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국민의힘 윤희숙, 정찬민, 김영선, 윤한홍 의원도 다른 정당과 공동 발의한 기록이 없었다. 민주당에서 다른 당 의원과 공동발의 기록이 없는 경우는 이재명 대표가 유일했다. 이 대표는 21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를 총 6건 했지만 모두 민주당 의원들만 서명하고 다른 당 의원의 서명은 없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를 맡거나 대선주자였던 당내 유력 인물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1대 국회에서 16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무소속 의원 3명과 열린민주당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민주당 의원과 발의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도 대표 발의한 44개 중 민주당 의원의 서명을 받은 법안이 없었다.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2021년 9월 스스로 사퇴해 임기를 못 채웠지만, 그전까지는 김진애 당시 열린민주당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민주당 의원들과만 발의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13개 대표 발의 중 민주당 의원 서명을 2번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향성이 ‘주요 인사일수록 협력보다는 독자성을 내세워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내 주요 인사들은 ‘다른 정당과의 협력은 향후 입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방지법’ 등 민생법안도 따로 발의 주목할 건 ‘끼리끼리 입법’의 경향이 정파성이 크지 않은 민생 법안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이다. ‘정인이 사건’ 때가 대표적이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가 학대로 숨진 2021년 ‘정인이 사건’ 이후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후속 대책 마련을 위해 관련 법안을 각 6건씩 발의했지만, 양당 간에 서명을 주고받은 법안은 없었다.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 피해자가 많았던 전세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할 때도 여야는 협력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가 전세사기 피해방지 대책을 발표한 2022년 9월 이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발의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23건(정의당, 무소속 대표 발의 6건 제외) 중 국민의힘과 민주당 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안은 없었다. 이는 4년 전 20대 국회와 비교하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20대 국회에선 2017년 12월 21일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등 주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정당이 협업해 피해 대책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민주당 김영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민주당 7명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6명, 바른미래당 2명, 민주평화당 2명이 참여했다. 자유한국당 신상진 의원이 대표로 낸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도 민주당 2명, 민주평화당 2명이 참여했다.● 정쟁 도구된 법안들… 대통령 거부권만 ‘8건’ 21대 국회에서는 법안이 협치보다는 갈등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았다. 가장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법안 중 하나인 ‘간호법 제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부터 본회의까지 사실상 여당 의원들의 부재 속에서 표결이 이뤄졌다. 지난해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표결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예지 의원과 간호사 출신인 최연숙 의원 등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퇴장했다. 이러한 입법 과정은 보건의료계에 혼란과 갈등을 일으켜 의료계 파업까지 초래했다. 합의가 부재한 가운데 통과된 법안들은 대통령의 잦은 법안 거부권 행사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양곡관리법, 간호법 제정안 등 총 8개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모두 국민의힘 의원이 집단 퇴장한 뒤 민주당 주도로 표결해 통과된 사례들이다. 반면 19, 20대 국회는 한쪽 당이 집단 퇴장하고 상대 정당 주도로 단독 표결 처리된 주요 법안이 각각 1건뿐이다. 19대 국회의 경우 2016년 3월 테러방지법이 민주당 의원 전원 퇴장 후 새누리당 주도로 통과됐다. 20대 국회는 2019년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이 국민의힘 의원 전원 퇴장 후 통과됐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많았다는 것은 국회가 타협 대신 갈등이 가득하고, 대통령도 이에 동참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끼리 10명 채우자’는 분위기 강해져” 국회에서 실무를 맡은 보좌진들은 21대 국회 들어 다른 당과 협업하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가 됐다고 말한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21대 국회 들어 다른 당에 공동 발의 요청을 해도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당 내부에서 발의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굳이 상대 정당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요청하기도 눈치 보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이미 의석수가 많은 정당은 굳이 다른 정당을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10명을 채워서 공동 발의할 수 있다”며 “여야 쟁점이 아닌 법안은 공동 발의 요청서를 의원회관 지하에 있는 우편사서함을 통해 300여 명 의원 모두에게 보내기도 하지만 반응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대면 접촉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고 본다. ‘전자 입법발의시스템’(전자 발의)은 2005년에 도입됐지만 거의 쓰이지 않다가 코로나19 영향에 더해 21대 국회 들어 대폭 쓰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전자 발의로 제출된 첫 법안이 2019년 4월 26일 ‘선거제·검찰개혁 법안’이다.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본청 220호 앞에 단체로 드러누워 패스트트랙 법안을 상정하기 위해 들어가려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막았고, 민주당은 전자 발의로 이를 우회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요즘은 전자 발의로 법안을 거의 다 내 다른 정당과는 교류 자체가 없다. 법안에 대한 정보는 상대 측의 적극적인 설명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갈등 아닌 화합 이끄는 ‘큰 정치인’ 필요” 전문가들은 경험과 역사를 다른 당과 공유하는 정치인들이 줄어들었다고 지적한다.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뒤에서는 ‘형 동생’ 했다. 지금은 서로 대화를 거의 안 하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고 미움이 크다”며 “정치인, 나아가 국민을 아우를 수 있는 공통분모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준한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정치엔 갈등을 중재할 ‘큰 정치인’이 없고 오히려 싸움을 일으키는 ‘작은 정치인’만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화합을 위해서라도 여야 간의 합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여야의 합의로 법안이 만들어진다면 극단적인 지지층들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다음 총선에서는 단절된 국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양극화 지수각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다른 정당 소속 의원이 얼마나 서명해줬는지를 토대로 산출한 지표. 수치가 높을수록 타 정당과 공동 발의한 사례가 적었다는 뜻으로, 협치 수준이 낮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동아일보 취재팀과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한국정당학회장)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분석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여긴 미등록 경로당이라 뭐 나오는 게 없어. 옆 동네 경로당으로 가라는데 텃세도 걱정되고 무릎이 닳아서(아파서) 갈 수가 있나.”9일 대전 서구 가수원동에서 만난 김학순 씨(91)는 1층짜리 임시 건물로 들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출입문에는 세로로 길쭉한 나무판자 위에 ‘17통 노인 경로회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경로당은 66㎡(약 20평) 면적에 부엌을 중심으로 방 세 개가 있는데, 두 개는 천장에서 물이 새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화장실은 건물 밖에 따로 있는 재래식이다.김 씨를 포함해 주민 세 명은 이날 경로당 안에서도 추위를 피하려 외투를 입은 채 엉덩이 밑으로 손을 찔러 넣고 얇은 이불을 덮고 있었다. 난방은 연탄 보일러로 한다. 하루에 연탄 3장을 때고 날이 추우면 더 쓴다. 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먹거리로 끼니를 때웠다.● 집계도 못 한 미등록 경로당, 복지 사각지대이곳은 시에 등록되지 않은 이른바 ‘그림자(미등록) 경로당’이다. 6·25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국유지에 지은 무허가 건물이다. 경로당 등록 기준에도 못 미치고, 무허가 건물이라 정식 경로당으로 등록할 수도 없다. 통상 노인들이 개인 주택 등에 모여 사랑방처럼 운영하다가 경로당 현판을 달면서 미등록 경로당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곳을 포함한 대다수 그림자 경로당이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소액의 민간 후원에 기대고 있다. 마을 통장인 빙성자 씨(55)는 “다른 지역 경로당에 가서 새로 적응하는게 쉽지 않아 미등록 경로당이라도 익숙한 곳에 모이게 된다”고 말했다.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950만 명(2023년 기준)으로, 국민 5명 중 1명은 고령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경로당은 6만8180곳에 달한다. 정식 경로당으로 등록하려면 △이용 정원 20명 이상(섬 또는 읍면 지역은 10명 이상) △남녀 화장실 각각 1곳 △전기 시설, 20㎡(약 6평) 이상 거실이나 휴게실 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문제는 지방 인구가 줄면서 이런 기준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그림자 경로당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전시가 지난해 관내 미등록 경로당을 조사한 결과 21곳에 달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165만여 명에 달하는 서울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있는 장수노인정은 경로당 조건을 채우지 못한 미등록 경로당이다. 10일 취재팀이 방문해보니 컨테이너를 개조한 이 건물은 가스 배관과 전선이 외부로 노출돼 화재 안전 등에 취약한 상태였다. 난방 시설은 온풍기가 전부였다. 김상동 장수노인회장(86)은 “노인 10명 이상 모이는 곳인데 정부에서 혜택을 조금도 안 준다”며 “우리끼리 1만 원씩 모아서 전기세를 낸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등록 경로당은 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집계 자체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용 정원으로 구분하는 건 비현실적”경로당 지원은 모두 지방예산으로 충당하게 돼 있어 지자체별로 천차만별이다. 대전시의 경우 시가 70%, 자치구가 30%씩 부담해 평균 70만 원을 매달 경로당 1곳마다 지원한다.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감시팀장은 “낙후 지역일수록 지원이 절실한데 경로당 설치 기준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며 “어느 동네에 사느냐에 따라 어르신의 삶의 질이 갈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전문가들은 지역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용 정원 등을 기준으로 등록, 미등록 경로당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분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로당은 인원 규모보다 생활권 내 접근성이 중요하고, 미등록 경로당일수록 열악한 지역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로당은 노인들이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거점으로서 의미 있는 복지공간”이라며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차등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대전=김태영 기자 live@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습격한 김모 씨(67)는 2015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 당원으로 가입한 뒤 2020년 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지난해 4월 민주당에 입당했다. 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씨와 같은 이름, 생년월일의 인물이 2015년부터 5년간 당적을 유지하다 2020년 탈당했다. 새누리당은 2017년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2020년 2월 미래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국민의힘은 공식적으로는 박정하 수석대변인이 “2020년 탈당한 동명 인물이 있으나 인적사항이 분명치 않아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만 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김 씨가 민주당에 온라인으로 입당한 당원인 것은 맞다”라면서도 “당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김 씨가 국민의힘에도 당적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 대표를 따라다니기 위해 고의적으로 입당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씨 당적을 확인하기 위해 3일 국민의힘과 민주당 중앙당사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벌였다. 민주당은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는 방침에 따라 임의제출 형식으로 피의자의 당적 여부를 확인해 줬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장동혁 사무총장도 “국민의힘도 수사당국에 협력하기 위해 피의자 당적을 확인해 줬다”며 “참고로 현재 피의자는 국민의힘 당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공지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정당 가입 이력 등을 두고 양극단의 혐오 정치로 몰아가려는 불필요한 논쟁은 지금 상황에 어떠한 도움도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김 씨 주변에서는 김 씨가 최근 3년간 급격히 보수 성향으로 기울었으며 태극기 집회에도 참석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 씨의 친척 이모 씨(58)는 “김 씨가 박근혜 대통령 시절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 A 씨도 “김 씨가 배낭에 태극기 2개를 꽂고 2, 3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집회에 꼬박꼬박 나갔다”고 전했다. 김 씨가 운영하는 충남 아산시 공인중개사무소 인근 상인 B 씨는 통화에서 “김 씨가 코로나19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관련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해 불만이 컸었다”고 했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아산=김태영 기자 live@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에서 김모 씨(67)로부터 피습됐다는 소식이 2일 오전 알려지자 시민들은 ‘충격의 하루’를 보내야 했다. 특히 이 대표의 피습 순간이 고스란히 녹화된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본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당수의 시민이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있어선 안 되는 일이자 반민주적 행태”라고 입을 모았지만, 일부 진보 및 보수 성향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피습 경위를 두고 논쟁을 벌이거나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진보 보수 모두 “있어선 안 될 일” 2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강태열 씨(79)는 이 대표의 피습 소식을 접하고 몹시 충격을 받은 듯 10초간 허공을 바라봤다. 자신을 진보 성향이라고 밝힌 강 씨는 “기절초풍할 일이다. 혹시 (이 대표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까 봐 울분이 터진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 시민들도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모 씨(34)는 통화에서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폭력을 저지르는 건 야만적인 행위이고 시대를 역행하는 반민주적인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을 두고 “극단화된 정치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자신을 진보 성향이라고 밝힌 이모 씨(55)는 “서로에 대한 미움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예전에 경험했던 정치적 양극화와는 너무 다르다. 요즘 정치는 극단으로만 치닫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이라는 이모 씨(26)도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습 사건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게까지 극단화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음모론과 허위정보 나돌기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피습 경위를 두고 논쟁을 벌이거나 근거없는 음모론이 펼쳐지기도 했다. 진보 성향 커뮤니티의 일부 이용자는 “극우 유튜버들이 세뇌 방송을 한 결과다” “분명 사주한 세력이 있을 것이다” “정적 제거 시도”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반면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선 “1cm 열상이라는데 깊은 상처가 맞느냐” “(진보 진영은) 박근혜 전 대통령 피습 당시 ‘자작극이다’, ‘안 죽어서 아쉽다’ 등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느냐” 등의 주장이 나왔다. X(옛 트위터)등 SNS에서는 이 대표를 습격한 남성에 대해 ‘이낙연 지지자’ 또는 ‘한동훈 지지자’로 근거없이 규정짓는 추측이 난무하는 등 허위정보들이 퍼져 나가기도 했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은 “피해자가 어떤 진영, 어떤 인물이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사건을 두고 진보와 보수 성향 지지자들이 갑론을박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우리 정치 문화의 부끄러운 실상”이라고 했다.● 대장동 등 재판 일정 지연 이 대표가 받고 있는 각종 재판은 지연될 전망이다. 당초 이 대표는 이달 최소 4차례 재판에 출석해야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가 심리 중인 위증교사 사건 첫 정식 공판이 8일로 예정돼 있었고, 같은 재판부의 대장동·위례신도시·성남FC 배임 및 뇌물 혐의 재판 역시 9, 12일 열릴 예정이었다. 이 대표는 같은 법원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강규태)가 심리 중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도 19일 출석을 앞두고 있었다. 쟁점이 단순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던 위증교사 사건 선고 역시 4월 총선 이후에 가능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법원 관계자는 “이 대표의 건강 상태에 따라 재판부가 재판 기일변경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부터 새해 첫날까지 이틀간 전국 곳곳에서 해넘이, 해맞이 행사가 개최될 예정인 가운데 80만 명이 넘는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돼 정부가 종합 안전대책을 시행한다. 강원 정동진 등에 30만 명이 찾을 것으로 보이고, 서울은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리는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 10만 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돼 주요 명소 인파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 보신각에만 10만 명 운집 예상돼 비상서울경찰청은 “31일과 다음 달 1일 서울 시내 해넘이, 해맞이 행사 등 다중운집에 대비하기 위해 인파 관리 종합 안전대책을 시행한다”고 29일 밝혔다. 서울시가 이 기간에만 약 17만3000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면서 경찰은 인파 관리를 위해 인력 3265명을 곳곳에 배치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예정된 해넘이 행사는 6개, 해맞이 행사는 12개다.이중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리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만 경찰은 2490명을 투입하기로 했다. 테러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해 특공대도 6곳에 배치한다. 서울시는 안전 펜스를 설치해 보신각 일대를 31개 구역으로 나눠 관리한다. 지하철 환풍구, 변압기 등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장소에는 안전요원을 둬 진입을 차단할 계획이다. 올해 제야의 종 행사엔 기존 타종 행사에 400m 구간 퍼레이드와 K팝 공연 등이 새롭게 추가됐다. 특히 2024년 1월 1일 0시를 맞아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지름 12m 규모의 태양 형태 구조물인 ‘자정의 태양’을 세종대로에서 선보인다. 자정의 태양은 크레인에 매달려 15m 상공에서 3분 10초간 빛을 발산할 예정이다.서울시는 인파 관리를 위해 행사가 열리는 31일 오후 11시부터 1월 1일 오전 1시까지 종각역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킨다. 대신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1월 1일 오전 2시까지 연장 운행한다. 또 행사장 주변을 운행하는 택시 운전사에게 심야 운행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했다.경찰은 이 밖에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인파가 집중되는 공간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불의의 사고를 막는다는 방침이다.● 강원 30만 명 등 전국 곳곳 구름 인파 예상한반도 내륙에서 가장 먼저 새해가 뜨는 울산 울주군 간절곶에선 1일 약 13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울주군은 1200명의 공무원을 동원해 안전사고 관리에 나선다. 울산경찰청은 행사 현장에 경찰 124명을 투입하고, 인파가 몰리는 장소에 대형 스피커를 통해 1km 떨어진 곳까지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송 차량도 2대 배치한다.강원도에서는 일출 명소인 강릉, 정동진 일대 약 30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돼 강원도와 강원경찰청이 동해안 해맞이 명소 11곳에 1300여 명의 안전관리 요원을 배치하기로 했다. 또 방파제, 전망대, 해안선 둘레길 출입을 통제하고, 교통혼잡 방지 및 사고 예방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1일 해맞이 교통량은 40만 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1일 0시를 맞아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상공에선 국내 최대 규모인 2000대의 드론이 날아올라 공연을 펼친다. 드론은 청룡의 해를 맞아 여의주를 품은 청룡의 힘찬 움직임을 표현할 예정이다. 일몰과 일출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충남 당진시 왜목마을 등도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경찰은 충남, 부산 등에 각각 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방문할 것으로 보고 경력을 배치하고 지자체와 협의해 인파 관리에 나설 방침이다.특히 이들 지역은 해변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취약 장소엔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드론을 운영해 인파 운집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해양경찰도 구조정을 띄워 해변 익사 사고 등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특정 장소에 갑자기 인파가 몰리면 이태원 참사 당시처럼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어 인파가 밀집하기 전부터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며 “행사 장소를 중심으로 단계별로 인파를 나눠서 통제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강원=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울산=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