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책을 노래처럼 흥얼거릴 수도 있고, 직접 만든 이야기를 책에게 들려줄 수도 있다. 뽀뽀해줘도 좋고 추울 땐 이불을 꼭 덮어줄 수도 있다. 거울에 비춰보는 것도 재밌다. 힘이 들면 책과 함께 조용히 낮잠을 자는 것도 좋다. 책 읽기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정보와 오락거리가 넘치는 시대, 독서는 멀게만 느껴진다. 책을 친구처럼, 장난감처럼 함께 노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음을 아이들에게 일러주기에 좋은 책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인 모양이다. ‘실패의 사회학’을 쓴 사회학자 메건 맥아들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다면, 우선 스타벅스 매장에 자리가 있는지부터 알아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비슷한 어록은 차고 넘친다. “철학자보다 용접공이 필요하다.”(미국 상원의원 마코 루비오), “심리학에, 철학이라…나중에 칙필레(샌드위치 체인점) 같은 데서 일하게 될 수 있단 점은 염두에 둬.”(젭 부시) 그런데 포브스 기자인 저자는 여기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반전’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은 통념과 달리 돈이 되고, 고용을 창출하며, 기술 발전과 혁신의 중심이란 것이다. 일단 브루킹스연구소가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한 미국의 전공별 최상위 10% 고성과자들의 평생소득 자료를 보자. 가장 높은 소득을 낸 건 정치학, 역사학, 철학 전공자들이었다. 경력이 쌓였을 때 인문학 전공자들은 상원의원, 주지사, 방송프로그램 사회자, 베스트셀러 작가 등으로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력 면에서 최고의 성층권에 도달할 확률이 더 높았다. 과학기술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같지만 이것도 현실과는 다르다. 미국에서 컴퓨터 관련 분야의 고용은 총 노동인구의 3%에 불과하다. 2012년부터 5년간 컴퓨터 분야에서 만들어진 일자리는 54만 개였지만 나머지 분야에서의 총합계는 230만 개 이상이 생겼다. 증시, 금융의 주류는 인문학 출신, 특히 철학 전공자들이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 설립자의 3분의 1이 인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문학적 감각이 요구되는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통한 비판적 사고에 단련된 이들은 모순, 미지 상태에서조차 유연한 자세와 수평적 사고를 유지할 수 있다. 데이터는 많지만 정확성은 부족한 빅데이터 시대에 이런 능력은 더욱 강조된다. 3차원(3D) 프린팅, 유전학, 자율주행 자동차, 스마트 하우스 등 영역을 넘나드는 첨단기술의 각축장에서는 ‘비기술적 통찰력’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훨씬 더 많다. IBM이 블록체인 팀에 사회학 전공자를 채용하고 맥킨지에 수많은 인류학 전공자가 근무하고 있는 이유다. 요컨대 우리는 인문학을 오해했다. 인문학은 지금까지 유망했으며 앞으로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물론 인문학 전공자들이 화학공장에서 발효 분야 연구자를 대상으로 낸 채용에 적합한 인재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인생을 긴 안목에서 바라볼 때 교육은 인생 최고의 투자이고, 인문학은 그 정점에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원론적으로 강조한 책은 많았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사례의 취재, 다양한 인터뷰, 통계를 통해 실제 ‘논증’해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우리 고등학생들은 교과서 이외의 책은 읽은 적이 거의 없고 주입식 입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수한 문제들을 외우고 외우는 일만 죽기 살기로 되풀이한다. 하지만 달달 외우는 암기 시험만으론 창의적 능력, 개성적 사고력을 알 수 없다.” 소설가 조정래 씨(75)가 최근 고등학생 손자 재면 군(18)과 함께 정치, 사회, 문화 현안에 대한 논술편지를 주고받은 책 ‘대화’(해냄)를 펴냈다. 조 씨는 2015년부터 신문 사설을 오려 재면 군에게 전해주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객관성과 설득력을 확보하는 논리적 글쓰기 힘을 기르는 데 사설 공부보다 좋은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 씨는 20년 전 대학생이던 아들과 신문 사설로 대화를 나누면서 글쓰기 훈련을 시킨 경험이 있다. 또다시 2015년부터 신문을 읽고 정성껏 스크랩한 사설을 매주 손자에게 전해준 지 1년여 후 고등학생이 된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논술편지를 주고받자는 제안을 해왔다. 조 씨는 “그냥 읽어보기만 하라고 줬었는데 세상에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소설가 할아버지와 고교생 손자는 박근혜 전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 남녀의 성역할 등에 대해 다양하게 논의한다. 손자가 먼저 논술을 쓰면 할아버지가 그 글을 읽고 교정할 곳을 꼼꼼히 표시한 뒤 의견을 집필해 화답하는 식이다. 손자의 글에는 10대의 눈으로 본 사회 모습이, 작가의 글에서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몸소 체험한 이들이 쓸 수 있는 노련한 관점이 담겨 있다. 맞춤법까지 일일이 바로잡은 할아버지의 교정본도 함께 실렸다. 세대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은 논술 교류에 작가는 각별히 공을 들인다. “손자가 선택한 문제를 놓고 두 가지 과제 앞에 서게 됐다. 첫째, 글이 손자가 쓴 길이보다 짧아서는 안 된다. 둘째, 손자의 예상을 넘어서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한다.” 조 씨는 “국가와 사회의 중대사를 놓고 할아버지와 손자는 그렇게 글로 대화한 것이 더없이 흡족하다”며 “이 글이 단순히 할아버지와 손자의 글쓰기 대화로 끝나지 않고 여러 사람의 논술 쓰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디지털 시대, 그간 시(詩)의 운명은 생명 유지 장치를 달고 겨우 숨만 쉬는 중환자와 비슷하게 묘사돼 왔다. 실제로 현재 출판사에서 내는 시집 대부분은 초판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한다. 한데 이례적으로 최근 ‘시 전문 애플리케이션(앱)’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창비가 지난해 4월 만든 앱 ‘시요일’이다. 3만5000여 편에 이르는 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앱은 서비스 시작 1년 만에 이용자 수 22만 명을 돌파했다. ‘워너원’ 멤버 강다니엘도 애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한때 접속이 마비되기도 했다. ‘손 안에 들어온 시’에 쏟아지는 관심은 시가 주는 ‘감성’이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함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지난달 22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시요일’ 기획위원장인 박신규 미디어창비 출판본부장(46)은 “좋은 시에 대한 열망은 짧고 감성적인 글이 잘 맞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환경에서 오히려 더 커졌다”며 “그런 콘텐츠(시집)에 어떻게 접근할지 몰랐던 이들에게 하나의 계기가 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죽은 장르 취급받던 시가 어떻게 킬러 콘텐츠로 변모한 것인가. “시의 ‘시한부설’은 1990년대부터 떠돌았다. 그런데 아직 살아있다. 시적 충동, 열망이 창작자와 독자 모두에게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은 시집을 권 단위로 읽기 쉽지 않다. 인터넷이 발달하며 시의 소비도 ‘편 단위’로 바뀌었다. 시 유통 방식에 변화가 필요함을 계속 절감해왔다. 누구나 쉽게 시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고 ‘시요일’이 그 역할을 했다.” ―‘꽃이 지네’ ‘떠나고 싶은 날에’ ‘그래도, 괜찮은 인생’ 등 테마에 맞는 추천 서비스가 인상적이다. “김수영의 ‘봄밤’을 아는 일반 독자들은 거의 없었을 텐데, 추천 시로 소개한 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좋은 시는 누구나 알아보는 생명력이 있다. 시집 한 권 읽지 않았던 10, 20대조차 ‘좋아요’를 누르고 SNS에 공유한다. 그래서 큐레이션이나 태그를 통해 이런 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젊은 시인 10명이 일일이 키워드 분류를 했다. 2000년대 이전 시집은 일일이 스캔해 텍스트로 변환하는 작업도 했다. 인터넷에 떠돌면서 왜곡, 변형된 시도 많다. 1975년 이후 창비에서 나온 시집과 저작권이 만료된 시들의 정전(正典) 확립이란 측면에서도 중요한 작업이었다.” 앞으로 ‘시요일’은 현대시를 넘어 시조까지 보유 콘텐츠를 확대할 예정이다. ‘고시조 대사전’의 약 4만6000수를 추가로 수록한다. 또 좋아하는 시를 모아 독자 개인의 시집을 직접 만드는 ‘주문제작형 시집’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시요일의 인기가 시의 생산이나 유통 과정에 또 다른 변화를 끌어낼까. “침체한 시의 세계를 매체 환경 변화에 맞춰 한번 뒤집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트계산원, 취업준비생 등 정말 다양한 이들의 절절한 후기가 올라온다. 이렇게 좋은 시가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다. 일단 이렇게 시를 접하면 독서 폭은 더 깊어진다. 장기적으로 산문, 독서문화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시를 매개로 한 ‘독서문화 운동 플랫폼’이 만들어지는 셈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한국신문협회(회장 이병규)는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1일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언론 공공성 강화를 위한 민주주의 펀드 조성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는 “언론지원 정책은 신문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추진돼야 한다”며 “신문이 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 펀드’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승호 신문협회 사무총장은 “매체 융합 등 미디어 환경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문화·통신 콘텐츠 관련 기금을 각각 운용할 것이 아니라 언론지원기금과 통합 운영하거나 교차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복권 및 포털 수익금도 민주주의 펀드로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허 사무총장은 “최근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 구조를 개선하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뉴스 서비스를 아웃링크로 전환하더라도 이를 통한 수익과 부가가치는 언론사와 공유하는 게 공정과 상생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는 김성일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국장, 박태순 미디어로드 대표, 이용성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최우석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이 참여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1일 방송되는 MBC ‘PD수첩’에서 자신에 대해 다룬 내용이 사실이면 승복을 벗겠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나를 음해하는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는 곧 밝혀질 것”이라며 “만약 방송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면 MBC 최승호 사장은 방송계를 떠나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허위 글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과 허위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며 배후에서 조종한 자들의 실체도 곧 드러나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님은 ‘PD수첩’이 직접 취재도 하지 않았고 반론권도 보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오후 4시 19분에야 담당 PD가 최초로 내게 전화문자를 보냈으나 응대하지 않았다”며 “이미 편성된 방송에 내 의견을 약간 덧붙여서 형식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저열한 방법에 이용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스님은 지난달 3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PD수첩’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PD수첩’은 이날 ‘큰스님께 묻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당시 제기된 설정 스님의 학력위조 논란과 수덕사 한국고건축박물관 보유 논란, 은처자 의혹과 함께 현응 스님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선희 기자teller@donga.com}

봄소식은 숫자로 오지 않는다. 화사한 꽃의 감성으로 은유된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고조된 화해 분위기는 문화계도 이어받는다. 29일 문화계에 따르면 공연, 방송, 학술 등 각 분야에서 이미 남북 교류의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남북 교차·합동 공연 정례화 대중음악계에서 우선 관심을 모으는 공연은 개최가 확정된 국제음악축제 ‘피스 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다. 6월 서울과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일원에서 열린다. 페스티벌 측은 “북한 현지 음악가 섭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듯하다”며 “남북과 세계의 대중음악가가 하나 되는 무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용필의 50주년 기념 투어가 평양, 신의주로 이어질지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5월 서울 잠실에서 시작하는 조용필 순회공연은 6월 의정부 공연까지만 확정된 상태. 앞서 조용필은 2005년 평양에서 남한의 투어와 연계된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필 앤드 피스(Pil & Peace)’란 제목을 내걸고 5월 제주에서 출발해 8월 평양 공연으로 무대를 이어갔다. 조용필의 공연 관계자는 “여건이 허락되면 투어를 북한으로 이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윤도현도 이달 남북 합동공연 때 “YB와 삼지연 관현악단이 함께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다.○ 평양서 발레 공연, 문인 교류 클래식, 무용, 국악 등의 남북 교류도 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2월과 4월 남북 예술단 공연이 대중음악에 치우쳐 있었다”며 “다음 순서는 순수예술과 무대예술 분야의 교류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올해 2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에게 “통일이 되기 전에 평양에서 발레 공연을 해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과도 맥이 통한다. 2011년 방북해 북한 현지 악단을 지휘했던 정명훈 전 서울시향 지휘자를 축으로 한 클래식 교류에 대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국악은 남북 교류로 가장 시너지를 많이 낼 분야다. 이번 정상회담 환영 만찬도 북측 악기인 옥류금(전통악기를 1970년대 개량한 현악기)과 남측 악기 해금의 합주로 문을 열었다. 현재 가장 구체화된 건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이다. 북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측은 “사업회 북측 대표인 문영호 위원장이 ‘봄이 온다’ 공연 즈음인 3월 27일 팩스를 보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재개하자고 제안했다”며 “남북 실무접촉이 늦어도 5월 중순에는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남북언어 통합을 위해 2005년 시작됐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2015년 이후 교류가 끊겼다. 편찬 작업은 이미 절반 이상 진척됐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인 시절 참여했던 ‘6·15 민족문학인협회’를 통한 남북 문학인 교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고려 유물 전시될까 개성 만월대 유적 공동 발굴조사도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만월대는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된 고려 왕궁터로 2007∼2015년 7차례 남북 공동 발굴에서 금속활자를 비롯한 고려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만, 당시 남측 학자들이 개성공단의 호텔에 머물렀던 만큼 폐쇄된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할지 여부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12월 ‘대(大)고려전’에 북측의 고려 유물을 빌려 전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도 “황해도 해주 안 의사 생가를 복원하면서 2019년 3월 안 의사 순국 109주기 추모식은 생가에서 남북이 공동 개최할 수 있도록 타진하고 있다”고 했다. 남북 문화 교류는 경중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광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공동위원장(고려대 교수)은 “평양 인근 고구려 고분 벽화의 조사와 보존 처리가 긴급하다”며 “약 10년 전 공동 조사가 중단될 당시 북한에 두고 온 설비도 있고, 북측과 합의해 놓은 조사 계획도 있어 곧바로 착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계도 교류 방안에 부심하고 있다. KBS는 △조선중앙TV와 실시간 영상 상호 교환 △교향악단 합동 공연 △백두대간 다큐멘터리 공동 제작을 추진키로 했다. KBS 남북교류협력단의 원종진 팀장은 “장기 목표는 평양지국 설치와 특파원 파견”이라며 “협의가 진행되면 TV 뉴스의 매일 날씨 꼭지에서 평양과 백두산의 실시간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희윤 imi@donga.com·조종엽·박선희 기자}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예지력을 가진 인간이 범죄 행위를 예견하는 미래 세상을 묘사한다. 그런데 구글은 이것보다 더 나은 예지 능력(?)을 갖췄다고 한다. 살인죄를 저지른 이들은 검색창에 주로 이런 내용을 입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과 과실치사 평균 형량” “잠든 사람을 죽이고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스마트폰에 담긴 정보만으로 이미 범죄자를 교도소에 보낼 능력을 갖춘 것이다. 사람들 생각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구글의 모토는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신에 가까운 이 기업의 성스러운 자비심을 강화하는 모토”란 게 이 책의 지적이다. 구글과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등은 21세기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공룡 기업들이다. 글로벌 시가총액 1∼4위를 다투고, 초일류 기술과 탄탄한 자본력, 최고의 인재들을 보유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눈부신 성공 뒤에 가려진 어두운 이면들이 최근 자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주가가 급락했고, 애플은 고의적인 운영 시스템 다운그레이드 등으로 소비자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 책은 이렇게 창의, 혁신의 상징으로 숭배받던 기업이 초래한 부작용과 다양한 허위 신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웃는 얼굴의 파괴자’다. 물류나 판매 과정을 간소화함으로써 소매유통업 일자리를 파괴했다. 2015년 연방법원에 테러리스트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를 거부해 논란을 낳았던 애플은 실은 창업자 우상화, 프리미엄 가격 등 사치품 브랜드 전략을 그대로 밟아 현재의 위상을 확립했다. 신격화돼 추앙받는 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신랄할 정도다. 저자는 이들 기업이 한마디로 “비범한 도둑질과 사기”로 제국을 이뤘다고 주장한다. 일단 잘 훔친다. 애플은 매킨토시를 제작할 때 제록스가 만든 마우스 조작 방식의 그래픽 데스크톱을 훔쳤단다. 사기도 잘 친다. 뉴욕타임스 이사회에 참여했던 저자는 신문사들이 통째로 ‘구글’되는 사기(?)를 당하고도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구글은 헐값에 얻은 고급 뉴스 콘텐츠를 자체 광고와 함께 배열해 수익을 독차지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네이버 논란과 일맥상통한다. 이들의 미래가 영원히 장밋빛인 것도 아니다. 신흥 강자들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 차별화, 앞선 투자, 호감을 주는 이미지, 고객 경험 통제 등의 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언제든 이들을 대체할 수 있다. 알리바바, 우버, 에어비앤비 등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과 한계에 대한 분석보다는 교묘한 독과점 등으로 비대하게 성장한 네 기업의 꼼수와 문제점을 파헤치는 데 주력한 책이다. 최근 불거진 네이버의 댓글 조작 문제 등 한국 역시 거대 공룡이 된 플랫폼 기업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마존이 한국 진출을 준비하는 등 이들 기업의 영향력은 우리 삶과도 직결돼 있다. ‘혁신적인 회사’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로 추앙받는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명암을 한눈에 읽어내기에 유용하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빨간 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펜스 밖을 서성인다. 친구들 야구 놀이에 끼고 싶은 눈치다. 글러브를 만지작거리다 마침내 같이 뛰게 된 소년. 공이 날아오자 잡기 위해 힘껏 달리지만 넘어진다. 다음번도 마찬가지. 공을 잡으려고 몸을 던져보지만 연이어 넘어지거나 부딪히면서 계속 공을 놓친다. 하지만 소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을 향해 몸을 날린다. 소년은 공을 잡을 수 있을까. 그림으로만 구성했지만 아이의 마음과 주변 분위기가 선명하고 역동적으로 드러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지난 주말인 21일, 아빠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볼드 저널’ 편집실에 정기 구독자인 30, 40대 남성 10여 명이 속속 모였다. 이들은 다음 달 다룰 주제인 ‘아빠의 퇴사’에 대해 2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벌였다. 30, 40대 ‘힙한’ 아빠들을 타깃으로 하는 이 잡지가 매달 하나의 주제를 깊고 폭넓게 다루기 위해 사전 모임을 열고 의견을 구하는 자리였다. 최혜진 편집장은 “아버지란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색깔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남성이 많다”며 “이들은 우리 잡지를 단순히 읽을거리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브랜드’로 인지한다”고 말했다. 2년 전 창간된 이 잡지는 독자층이 탄탄해 광고 없이도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고 있다. 출판 및 잡지 산업은 매출이 감소하고 있지만 특색 있는 취향과 감성을 자극하는 독립잡지들은 꾸준히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서점에서 판매되는 독립잡지는 100종이 훌쩍 넘는다. 사은품이나 광고가 없고 표지부터 감각적 화보와 강렬하고 세련된 일러스트로 젊은 감각과 스타일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서울 성북구의 큐레이션 서점 ‘부쿠’는 독립잡지 전문 코너를 두고 있다. 사진, 음악, 도시, 퇴사 등 주제별로 종류가 많아 ‘광고가 없는 전문 간행물’로 기준을 세워 선별했다. 매회 이케아, 구글, 록시땅 등 스토리가 있는 한 브랜드로 전체 잡지를 구성하는 ‘브랜드매거진B’, 도시별 커피와 커피문화를 소개한 ‘드리프트’, 나무 전문 잡지 ‘우드플래닛’이 대표적이다. 가격은 1만5000원 이상으로 웬만한 단행본보다 비싸고 3호 안팎을 낸 신생 매체도 많지만 서점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나영란 점장은 “자신만의 취향을 추구하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하는 독자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잡지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잡지 전체 매출은 2012년에 비해 26% 떨어졌지만 하나의 매체만 발행하는 사업체는 1247개에서 2386개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출판사나 일반 기업도 딱딱한 계간지나 홍보물 대신 독립잡지 형태로 새로운 간행물을 잇달아 내고 있다. 바다출판사는 올해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와 여성의 시각에서 문화를 읽어내는 ‘우먼카인드’를 창간했다. 두 잡지의 정기 구독자는 3개월 만에 각각 600명을 넘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식재료 탐구를 표방한 ‘매거진F’를 지난달 창간했다. 첫 호에서 소금만 집중적으로 파헤쳐 주목을 받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잡지 판매가 감소하며 광고가 붙지 않아 위기에 처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오직 독자에게 중점을 둔 ‘원테마 잡지’들이 등장했다”며 “구독료를 기꺼이 내고 볼 고정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고급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만큼 독립잡지가 안착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미학자이자 시사평론가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55)가 10년 만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휴머니스트) 시리즈를 완간했다. 고전, 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으로 나눴던 시리즈에 19세기 인상주의 편을 추가하며 총 네 권으로 완성한 것. 전작 이후 5년 만에 미술 관련 책을 펴낸 진 교수는 23일 전화 인터뷰에서 “서양미술사 전체를 조망한 책들은 너무 많은 화가와 작품, 유파가 나와 헤어나기 어렵다”며 “미술사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을 세워주고자 했던 시리즈를 완간하게 돼 개운하다”고 말했다. 원래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미학을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몰라 어려워하는 걸 보고 쓰기 시작한 책이 누적 판매 9만 권을 넘긴 스테디셀러가 됐다. 서양미술사 전체를 일별한 시리즈를 쓴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고야와 세잔을 꼽았다. “화가들 중 전체가 투명하게 보이는 이들이 있고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이 있는 이들이 있는데 이 두 화가는 후자 쪽에 속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사평론가로서의 활동이 두드러지지만 그는 ‘미학 오디세이’로 미학이란 생소한 개념을 국내 독자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한 저자다. 그는 “본업이 글 쓰는 작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멍청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강연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지루해지고요. 언제나 좋은 건 글쓰기뿐인 것 같아요.” 미학을 학술적 감성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도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미학이 일반인에게는 자칫 멀게 느껴지기 쉽지만 오히려 현대 기술문명을 가장 깊이 파고들고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디자인이 기술력의 몇 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미학적 자본의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제 미학은 미와 예술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향기, 촉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는 “디지털 시대, 오감과 감성의 영역으로 도약하고 확장되고 있는 미학에 대해 꾸준히 집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25년 만에 민관 합동으로 개최된 ‘책의 해’ 대규모 행사가 강풍을 동반한 비로 인해 중도에 취소되면서 뒷말이 분분하다. 당초 책의 해 집행위원회는 22일부터 이틀간 ‘누구나 책, 어디나 책’을 주제로 책 판매, 저자와의 만남, 콘서트 등을 야외에서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었다. 해마다 진행하던 23일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행사를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기로 하고 총력을 기울였던 것. 하지만 날씨로 인해 출발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첫날인 22일에는 비가 오는 중에도 행사를 강행했지만 이튿날 아침에 강풍까지 불자 불가능해졌다. 독립서점에서 판매차 들고 나온 책과 기증 서적 일부가 물에 젖기도 했다. 결국 책의 해 사무처 담당자는 긴급 공지를 통해 “우천으로 전체 프로그램과 부스 운영이 모두 취소됐다”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돼 죄송하다”고 밝혔다. 출판계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천재지변으로 행사가 취소된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 행사에는 2억 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당초 목표했던 인원(3만 명)의 17%인 5000명 정도가 참여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침수 피해를 입은 독립서점에 대해서는 피해 보상을 준비하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첫 집을 짓는 아기 거미. 다른 거미들에겐 쉽지만 아기 거미는 어렵기만 하다. 다른 거미들에게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다. “집 짓는 거? 별거 없어!” 그러면서도 끈끈이 발에 발이 엉겨 붙지 않게 조심하라거나, 그냥 몸을 던지라는 둥 조언을 한다. 겁이 나 벌벌 떨며 집을 짓기 시작한 아기 거미. 조금씩 집이 완성돼 간다. 물론 아직은 허술하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 웃음을 자아내는 결말은 실수해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문체의 시작은 인격이다.’ 책의 서두부터 등장하는 논쟁적인 한 구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누군가의 패션스타일이나 헤어스타일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만큼이나 논란을 낳을 법하다. 특정 스타일을 고집한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시대 기준에 뒤처진다거나 평균 이하라고 볼 순 없으니까. 문체 역시 그런 유(인격과는 무관한)의 ‘스타일’인 것 아닌가? 하지만 저자는 지금까지 문체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 잘못된 지점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단어의 선택, 형용어구 삽입 등 글쓰기 기술에만 초점을 맞춘 건 건물 초석을 무시하고 상부 장식물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 문체는 일반적인 ‘스타일’과는 다르다. 저자는 “문체는 타인과 인간이 접촉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단어라는 옷을 입은 인격이 발화 속에서 구현된 결과물, 즉 ‘인품’이란 것이다. 이 책은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7개 언어에 정통했던 언어학자 겸 문학평론가였던 F.L 루카스(1894∼1967)가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재직한 동안 맡았던 글쓰기 강연을 엮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작법이나 기법에 대한 논의보다 인격 문제를 먼저 들고 나온다는 점에서 초장부터 범상치 않다. 저자는 좋은 글을 쓰려면 글쓴이의 인격이 겉보기뿐 아니라 ‘실제로도’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 롱기누스는 “문체의 절정은 숭고한 인격의 울림”이라고 말했다. 그럴 듯하게 써도 종국에는 탄로 난다. 품격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수사학 지침이나 제유법, 환유법 공부보다는 차라리 성격을 고치는 게 낫다. 새뮤얼 버틀러는 “조바심, 성급함 같은 결점을 고치는 게 문체에 도움이 된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문체의 기초를 우선 인격에 둔 후에는 낙천적 기질, 건강과 활력 등을 바탕으로 ‘좋은 글’이라는 구조물을 완성해가는 방법을 안내한다. 독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 예의는 명료성이다. “모호함은 가증스러운 허식”(몽테뉴)이다. 간결성도 중요하다. “글이 지루해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생략하는 기술”(몽테스키외)이 필요하다. 낙천적 기질과 유쾌함이 좋은 글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꼽은 것도 재미있다. 낙천적 기질은 세련성의 일부이며 이것이 부족한 것은 미학적 문학적 결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장 나쁜 글은 불편한 심기에서 쓴 글이다. 유쾌하지 않을뿐더러 설득력을 갖지도 못한다. 저자는 “불편한 심기에서 쓴 글의 가장 좋은 배출구는 휴지통”이라고 말한다.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누구나 작가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좋은 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분출하듯 올린 글로 온라인이 도배되는 시대, 품격 있는 글을 쓰기 위한 기본을 되새겨 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저자의 기지 넘치는 문체관이 호메로스부터 단테, 셰익스피어 등 시대를 넘나드는 풍부한 고전 예시들과 함께 어우러져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문체의 시작은 인격이다.’책의 서두부터 등장하는 논쟁적인 한 구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누군가의 패션스타일이나 헤어스타일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만큼이나 논란을 낳을 법하다. 특정 스타일을 고집한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시대 기준에 뒤쳐진다거나 평균 이하라고 볼 순 없으니까. 문체 역시 그런 류(인격과는 무관한)의 ‘스타일’인 것 아닌가? 하지만 저자는 지금까지 문체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 잘못된 지점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단어의 선택, 형용어구 삽입 등 글쓰기 기술에만 초점을 맞춘 건 건물 초석을 무시하고 상부 장식물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 문체는 일반적인 ‘스타일’과는 다르다. 저자는 “문체는 타인과 인간이 접촉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단어라는 옷을 입은 인격이 발화 속에서 구현된 결과물, 즉 ‘인품’이란 것이다.이 책은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7개 언어에 정통했던 언어학자 겸 문학평론가였던 F.L 루카스(1894~1967)가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재직한 동안 맡았던 글쓰기 강연을 엮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작법이나 기법에 대한 논의보다 인격 문제를 먼저 들고 나온다는 점에서 초장부터 범상치 않다. 저자는 좋은 글을 쓰려면 글쓴이의 인격이 겉보기뿐 아니라 ‘실제로도’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 룽기누스는 “문체의 절정은 숭고한 인격의 울림”이라고 말했다. 그럴 듯하게 써도 종국에는 탄로 난다. 품격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수사학 지침이나 제유법, 환유법 공부보다는 차라리 성격을 고치는 게 낫다. 새뮤얼 버틀러는 “조바심, 성급함 같은 결점을 고치는 게 문체에 도움이 된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문체의 기초를 우선 인격에 둔 후에는 낙천적 기질, 건강과 활력 등을 바탕으로 ‘좋은 글’이라는 구조물을 완성해가는 방법을 안내한다. 독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 예의는 명료성이다. “모호함은 가증스런 허식”(몽테뉴)이다. 간결성도 중요하다. “글이 지루해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생략하는 기술”(몽테스키외)이 필요하다. 낙천적 기질과 유쾌함이 좋은 글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꼽은 것도 재미있다. 낙천적 기질은 세련성의 일부이며 이것이 부족한 것은 미학적·문학적 결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장 나쁜 글은 불편한 심기에서 쓴 글이다. 유쾌하지 않을 뿐더러 설득력을 갖지도 못한다. 저자는 “불편한 심기에서 쓴 글의 가장 좋은 배출구는 휴지통”이라고 말한다.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누구나 작가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좋은 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분출하듯 올린 글로 온라인이 도배되는 시대, 품격 있는 글을 쓰기 위한 기본을 되새겨 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저자의 기지 넘치는 문체관이 호메로스부터 단테, 셰익스피어 등 시대를 넘나드는 풍부한 고전 예시들과 함께 어우러져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박선희 기자teller@donga.com}

‘근본 없는 페미니즘’ ‘평등하다는 헛소리에 대한 반격’ ‘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 요즘 신간 목록을 보면 올해 출판계는 그야말로 페미니즘 서적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페미니즘 서적 출간이 2015년과 비교해 3배 이상 늘어났다. 인터넷서점 예스24 관계자도 “최근 3년 동안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해마다 3배가량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최근엔 페미니즘 열풍이 또 한번 업그레이드되는 모양새다. 관련 분야나 소재가 갈수록 다채로워졌다. ‘빠미니즘’(아빠 페미니즘)부터 ‘남페미’(남성 페미니즘) ‘걸페미’(10대 소녀 페미니즘)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기존에 찾아보기 힘들던 새로운 페미니즘 서적들이 부쩍 늘었다. ○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급부상 “바보냐, 지 빤스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권력이 폭력으로 작동하는 것은 일상에서부터 무의식에 각인된 결과야.” 양말과 속옷을 찾을 때도 툭하면 아내를 찾는 남성들의 일상적 행태를 신랄하게 비난한 ‘아빠 페미니즘’(책구경)은 이른바 ‘빠미니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진정한 딸 사랑은 딸이 살아갈 세상의 처참한 현실을 직시하고 분노하는 ‘빠미니즘’에서 출발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페미니즘 서적들은 이렇게 여성의 고발이나 고백에서 멈추지 않는다. 남성 의식과 행동 변화를 직접적으로 주문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특히 남성 저자가 같은 남성을 향해 젠더 문제를 제기하는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영국 예술가 그레이슨 페리가 쓴 ‘남자는 불편해’(원더박스)도 강인함, 극기 등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남성성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관용, 융통성 등 새로운 남성성의 모색을 강조한다. 고교 국어교사가 ‘남페미’임을 선언한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생각의힘) 역시 여성만큼 남성도 자유롭게 해주는 페미니즘을 받아들이자고 ‘동료 남성’에게 외친다. 담당 편집자 한의영 씨는 “실제 사회 변화를 위해선 남성이 달라져야 하는데 정작 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많지 않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여전히 페미니즘 서적을 구매하는 이들은 80%가 여성이다. 하지만 최근엔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된다. 이혜숙 교보문고 사회·정치부문 MD는 “여성 문제에 무관심했던 중년 남성도 최근엔 여성의 입장에서 어떤 게 불편한지 알아야겠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다”며 “남성을 대상으로 한 페미니즘 책 출간에 갈수록 탄력이 붙는 추세”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의 젠더 감수성부터 챙기자 사회 전반에 번진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의 효과적인 성교육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젠더교육 서적의 출간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다산에듀)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미디어일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당황하지…’는 예스24 종합베스트셀러 12위까지 올랐다. 많은 부모들이 고민하던 아들 성교육 문제를 명료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대에게 성의식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제시하려는 ‘나의 첫 젠더 수업’(창비)도 올해 예스24 청소년서적 베스트셀러 7위까지 올랐다. 전체적으로도 청소년 젠더서적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김태희 예스24 청소년부문 MD는 “문학이나 공부법 위주였던 베스트셀러 목록에 젠더교육 서적이 강세를 보이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페미니즘 교육이 어릴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진 게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소설가 한강(48·사진)의 ‘흰’이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또다시 지명됐다. 2년 전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수상했던 한강의 작품이 또다시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수상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2일(현지 시간) 맨부커 운영위원회는 한강의 ‘흰’을 포함한 6명의 최종 후보작을 발표했다. ‘흰’은 지난달 운영위원회가 심사해 선정한 1차 후보작 108편에 뽑힌 데 이어 다시 6편으로 추려진 최종 후보에 오름으로써 수상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맨부커상은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라 한강이 중복 수상할 수 있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며 영미권에서 노벨문학상 못지않은 권위를 지닌 상으로 평가받는다. 이 소설은 강보, 소금, 눈, 달, 쌀 등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 쓴 짧은 글들을 묶은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을 거둔 작가의 친언니에 대한 이야기 등 소설과 시의 경계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운영위원회 측은 ‘흰’에 대해 “애도와 부활, 인간 영혼의 강인함에 대한 책”이라며 “삶의 연약함과 아름다움, 기묘함을 탐구한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 재작년 5월 출간됐고 영국에서는 ‘채식주의자’ 번역가인 데버러 스미스가 또 한번 번역해 지난해 11월 출간됐다. 출간 후 영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일간 가디언이 ‘2017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강은 1차 후보에 올랐을 때 맨부커 홈페이지를 통해 “이렇게 실험적 형식의 책이 후보작에 포함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좋은 의미에서 놀라운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종 수상자는 다음 달 22일 열리는 공식 만찬 자리에서 발표된다. 수상자와 번역가에게는 5만 파운드(약 7600만 원)가 수여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한국인에게 소고기는 특별하다. 한때 이런 개그도 유행했다. “취업하면 뭐하노, 잘됐다고 소고기 사먹겠지. 결혼하면 뭐하노. 좋다고 또 소고기 사먹겠지.” 한국인에게 소고기는 이런 존재다. 삶의 모든 기쁨과 벅찬 감격이 대부분 소고기로 마무리된다. 거의 완전체적인 존재랄까. 소고기에 대한 한국인의 갈망은 사실 유래가 깊다. 20세기를 살아온 우리 조부모들은 ‘니밥에 괴기국(쌀밥에 소고기국)’ 먹는 세상을 꿈꾸며 달려왔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소고기는 사람을 가장 이롭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고기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이 이토록 절박한 문제였음에도” 학술적으로 해명된 적은 없었다. 주로 조선시대 역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소고기 역사를 통해 조선시대 문화를 되짚는 신선한 시도를 한다. 책에 따르면 소가 본격적으로 한국인의 식탁에 올라온 건 조선시대부터였다. 고려시대에는 키우는 수도 적었고 불교의 성행으로 육식 선호도가 낮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들어 소는 농업의 근간이자 왕실부터 양반, 일반 백성까지 모두 열광한 탐식의 대상이 됐다. 저자는 “요즘의 ‘치맥 인기’에 비견할 만했다”고 평가한다. 물론 소고기는 함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소고기는 국왕의 품격을 상징했기 때문에 자칫 잘못 먹다간 큰일을 당했다. 명종 당시 박세번은 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인들과 소를 잡았단 이유로 “반역의 흔적이 있다”며 처단됐다. 조선 전기 무신인 남이는 국상 중에 소고기를 먹었다가 체포됐다. 중종반정의 명분 중 하나가 연산군이 소를 너무 도살하고 소고기를 남용했다는 점이기도 했다. 소의 도살은 관의 허락하에 이뤄져야 했다. 소의 수가 곧 국력이었으므로 나라에서 소의 개체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세조 때는 소를 사육할 경우 국역을 면제해주는 정책을 펴기도 했고 17세기 이후에는 우역이 만연하자 소 도살을 금지하는 강력한 우금령을 내리기도 했다. 유일하게 소고기를 마음껏 먹는 집단은 공부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소고기로 달래는 게 허락된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재밌게도 서울 도성 내 유일하게 소 도축이 하가된 장소가 성균관이었다. 왕실 및 양반과 달리 일반 백성들은 소고기를 즐기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통념과 달리 백성들도 소고기 잔치를 자주 벌였다고 말한다. 18∼19세기 초까지 새해에는 열흘간 허가 없이 도살할 수 있었고 제사 등의 핑계를 들어 도축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조 당시엔 설날, 단오 등 네 번의 명절에 2만∼3만 마리를 잡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인구로 나눠 보면 1인당 100g 안팎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조선시대 1인당 소고기 섭취량이 20세기 말 한국인보다 많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당시 소 한 마리 값은 쌀 한두 가마니(현재 한 가마니 기준 20만 원 미만)로 현재와 비교하면 무척 저렴했다. 책을 보다 보면 소와 소고기에 대한 조선의 ‘이중적 갈망’이 뚜렷하게 읽힌다. 소가 곧 국력이 되는 농업사회에서 소만큼 귀한 가축은 없었지만 다들 시시때때로 입맛을 다시며 살았다. 이규보는 “어찌 차마 그 고기를 먹으리오”(‘소고기를 끊다’)라고 노래하면서도 “눈으로 보고서는 즉시 안 먹을 수 없다”(‘병서’)고 소고기의 마력 같은 힘을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인의 지극한 소고기 사랑이 생각보다 더 깊은 내력과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형식이 독특한 책이다. 모든 장이 삼등분돼 있고 서로 상관없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첫 장을 열면 깜깜한 우주에서 보이는 푸른 별 지구, 행성을 탐험하는 우주선과 우주인이 보인다. 3등분된 각 장을 넘기면 완전히 다른 그림과 이야기가 이어진다.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도시와 성, 빙하, 수영장, 파티, 북극…. 뒤죽박죽인 수많은 그림을 맞춰가면서 아이들이 어떤 상상력을 풀어놓을지 궁금해지는 책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농장에 살다 도시로 이사 간 소녀. 다락방에서 무지개가 뜨는 것을 보면서 농장의 무지개와 비교한다. 도시의 무지개 아래에는 회색빛 건물들이 있다. 농장에서는 확 트인 하늘 아래 무지개가 선명했었다. 소녀는 무지개 일곱 색깔이 도시와 농장에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비교한다. 도시는 무채색에 가깝지만, 농장에서는 총천연색이 펼쳐진다. 소녀처럼 농장이 절로 그리워지는 그림책. 농장의 다채로운 색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뻥 뚫린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