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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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승련 논설위원입니다.

srkim@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100%
  • [횡설수설/김승련]트럼프는 좌회전, 해리스는 우회전

    미국 정치에서 “플립-플롭(flip-flop)을 했다”는 평가는 정치적 치명상을 뜻한다. 우리말로 이랬다저랬다 혹은 갈지자 행보에 가까운 표현이다.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반대여론이 높은데도 재선에 성공한 것은 상대를 이 프레임에 가두는 데 성공한 영향이 크다. 상대편 후보가 전쟁을 위한 추경예산 110조 원 편성에 찬성표를 던져 놓고도 반전여론이 생겼다고 1년 만에 돌아선 것이 대통령답지 못하다고 외면받았다. ▷이렇게 치명적인 플립-플롭은 일관성을 중시하는 미국 정치의 전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노선 변경이 잦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기 위한 플로리다주 주민투표에서 반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6주 만의 판단은 너무 일러 산모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이유였다. 여성인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등장 이후 여성표 쏠림을 막으려는 시도다. 트럼프는 애초에 낙태 반대론자였다. 여성의 낙태권을 허용한 1972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50년 만에 뒤엎는 일에 그가 재임 중 임명한 강경보수 연방대법관 3명이 앞장섰다. ▷해리스 후보는 프래킹(fracking)이란 셰일가스 채취 공법에 대한 찬반 견해를 바꿨다. 암석에 고압의 물을 분사해 셰일가스를 채취하는데, 이 방식을 도입한 뒤로는 미국은 중동산 석유 의존증에서 벗어나고 있다. 다만, 수질오염 등이 심각해 민주당에선 반대가 강하다. 해리스 자신도 2020년 경선 때는 반대했다. 그러다가 부통령 후보가 된 후로는 돌아섰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올해도 핵심 경합주가 된 펜실베이니아주 때문이다. 셰일가스 산업 관련자 30만 명이 그곳 유권자다. ▷이 밖에도 트럼프는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하기 시작했다. 술 한잔 입에 댄 적 없다는 그는 마약반대론자였다. 요새는 “자기가 피우려고 소량을 지녔다고 일일이 적발한다면 행정력 낭비”라는 논리를 댔다. 젊은층 표를 의식한 결과다. 해리스도 과거엔 불법 이민자 형사 처벌을 두고 “미국답지 못하다”며 반대했지만, 지금은 동의한다. 이처럼 공화당 트럼프의 좌클릭, 민주당 해리스의 우클릭은 뜨거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이건 어디서건 이랬다저랬다 정치는 힘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시대와 기술이 바뀌고, 안보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오래전 생각을 고집하는 일관성이 좋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왜 갈지자 행보냐”는 비판에는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게 정공법이다. 어쩌면 올 대선은 플립-플롭에 돌아앉던 과거와 달리 유연함에 주목하는 보기 드문 선거가 될 수도 있다. 해리스는 지난주 인터뷰 때 첫 내각에 공화당원을 합류시키겠다고 했다. “다른 경험과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유연함을 강조한 말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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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그런 거 안 한다”고 번번이 약속하지만… 또 낙하산 논란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약속했다가 어긴 게 있다면 공공기관 낙하산 근절 다짐을 꼽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21년 “제가 집권하면… 사장 누구 지명하고 이렇게 안 하고요.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을 시킨다? 저 그런 거 안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에 갓 입문해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앞세우던 시점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초에 “낙하산, 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낙하산 인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란 걸 알았을 걸로 짐작된다. ▷집권 국민의힘에서 4월 총선의 낙천·낙선자가 분명해진 지금, ‘낙하산 부대’는 점프 명령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5∼8월 57개 공공기관에서 기관장 선임 공고를 냈으니, 수십 개의 낙하산이 펼쳐질 수 있다. 하태경 전 의원은 보험연수원장에 일찌감치 내정됐다. 곳곳에서 하마평이 무성하다.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동서발전 사장에 권명호 전 의원, 남동발전 사장에 강기윤 전 의원이 유력하다는 식이다.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도 공기업행에 빠지지 않는다. 차순오 전 정무1비서관은 지난달 한국수출입은행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최근 용산을 떠난 강훈 전 정책홍보비서관은 한국관광공사 사장 공모에 지원한다고 한다. 신문기자 출신인 강 전 비서관은 공식 업무 이외에 김건희 여사 일을 종종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서관 출신으로는 드물게 큰 기관의 사장직에 도전하는 셈이다. 경쟁자가 나오겠지만, 그의 취임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낙하산이란 말이 정착된 수십 년 동안 언론은 비판했지만, ‘여권 핵심부와 관계가 좋다’는 것 말고는 어떤 경영 능력이 검증됐는지 알기 힘든 고위직 인사는 반복됐다. 그 이면에는 ‘권력 재생산’을 위한 인력 충원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정치권 인사의 설명은 이렇다. ‘3년 뒤 대선을 앞두고 잠룡들은 캠프를 차리고 사람을 모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급여가 없다. 내가 미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내게 공천 또는 공직을 줄 것이란 믿음 없이 장기간 무급 자원봉사를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실 참모 경험은 기관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해당 공기관의 내부 승진자만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전력 자회사 같은 기술기업이나 금융공기업처럼 적잖은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도 비전문가를 내리꽂는 일이 잦다. 그러면 공모 절차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국민들은 ‘내가 안 풀리는 건 힘센 사람에게 부탁할 수 없어서구나’라는 허탈감에 젖게 된다. 공정하게 실력 중심으로 선발한 올림픽 종목의 선수들이 줄줄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보며 환호했던 게 불과 1, 2주 전인데….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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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2024년 수미 테리, 2002년 정태인

    수미 테리(김수미·52)가 체포됐다가 풀려났지만, 간첩죄를 저질렀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을 떠난 뒤 우리 국정원에 협력했다. 간첩행위를 했다고 보기엔 명품백을 선물 받은 뒤 매장의 자기 계정에 등록하는 등 어수룩한 일이 너무 많았다. 그는 “외국 정부 에이전트로 활동해도 좋지만, 법무부에 등록한 뒤 활동 내용을 신고하라”는 법 조항을 안 지킨 쪽에 가까워 보인다.실체 감추면서 ‘객관적 지위’는 누려 그는 지난해 3월 워싱턴포스트에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일본에 양보의 손을 내밀었는지를 다룬 칼럼을 썼다. 윤-기시다 정상회담 직전 시점으로, 국정원이 준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는 게 공소장에 담겼다. 그가 법을 지켰더라면 법무부에 “어디 어디에 한미일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는 정도를 보고하면 됐을 일이다. 다들 그렇게 한다. 20년 전 특파원 시절 미 법무부의 사무실 한쪽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에이전트 보고자료’라는 걸 뒤져 봤는데, 아주 개략적인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수미 테리가 합법적 에이전트로 등록했다고 가정해 보자. 신문은 그 칼럼을 실어줬을까. 미 의회는 그를 청문회에 초청했을까. 그는 한국에서 돈과 선물을 받은 자기 정체성을 감춤으로써 전직 CIA 북한 분석관이라는 객관적 전문가로 행세했다. 그 덕에 유력 매체에 글을 척척 싣고, 미 의회에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정직의 의무를 저버렸기에 가능했는데, 미 검찰의 기소는 이 점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3년 노무현 인수위 때 정태인 씨(2022년 작고)가 경제1분과 인수위원이라는 핵심 자리에 발탁됐다. 유시민 씨와 대학 동기로,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편하게 놓을 정도로 가까운 참모로 통했던 인물이다. 그때 “정태인은 대선 1년 전부터 캠프에서 노무현 후보의 경제 과외교사로 일했다”는 기사가 여럿 등장했다. 문제는 정태인이 2002년 1년 내내 공영방송 KBS에서 퇴근길 라디오 경제 시사 프로를 진행했다는 데 있다. 경제전문가라면서 발탁된 자리였다. 그는 어길 법 규정이 없었던 탓에 수미 테리처럼 법 위반은 안 했지만, 캠프 참여 사실을 감췄다는 점에서 수미 테리와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진보적 톤으로 방송했는데, 수백만 KBS 청취자를 상대로 간접 선거운동을 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당시 분위기에서 누구도 이해충돌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반칙 사례가 정태인뿐일까. 수많은 대선 때마다 ‘비공개로 뛴 대선 캠프 참여자’가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의 직함을 앞세워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 글을 쓰는 일이 적잖게 있었을 거라고 본다. 이들은 미디어의 신뢰를 훼손시킨 대가로 캠프로부터 ‘열심히 뛴다’는 평가를 챙겼을 것이다.“캠프 참여 중” 밝히는 게 어렵나 미국 매체에선 부조리 차단의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2007년 워싱턴포스트의 한 칼럼엔 이런 글이 붙었다. “이 글을 쓴 (네오콘 이론가) 로버트 케이건은 공화당 대선 후보 매케인을 비공식적으로, 무급 형태로 돕고 있다.” 두 달 뒤 오바마 캠프 인사의 글에도 비슷한 ‘편집자의 메모’가 달려 있었다. 좋은 글은 얼마든지 게재하되, 독자들이 그 글의 필자가 특정 후보의 조력자라는 걸 알고는 읽으시라는 뜻이다. 독자 친화적이고, 언론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조치다. 전문가 그룹의 자존감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종종 실수하지만, 바로잡으려 노력할 때 사회는 단단해진다. 우리 수준으로 볼 때 2007년 미국 신문의 노력을 기본으로 만드는 게 대단한 일 같지 않다. 캠프 참여 인사들이 “나는 캠프에서 활동 중”이라고 밝히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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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흙수저 美 부통령 후보들의 ‘평범한 미국인’ 전쟁

    미국의 부통령 후보는 지명 후 첫 연설을 들어보면 발탁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8년 전 트럼프의 마이크 펜스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어른스러운 연설로 트럼프의 약점을 보완했다. 4년 전 바이든의 여성 후보 카멀라 해리스는 50대답게 고령의 바이든이 못 갖춘 젊음을 앞세웠다. 보통의 미국인에 가깝다며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팀 월즈(60)는 그제 첫 연설에서 맞상대인 J 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40)의 저격수를 자임했다. ▷월즈는 흙수저 신화의 주인공인 밴스의 대중성을 건드렸다. 월즈는 “그가 보통의(regular) 미국인이라고? 아니다. 그는 (최고 명문) 예일대를 졸업했고, 실리콘밸리에서 억만장자를 상대하며 돈을 벌었다”고 꼬집었다. 밴스가 자기 가족의 밑바닥 삶을 기록한 책(‘힐빌리의 노래’)을 두고는 “고향 마을을 쓰레기로 묘사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밴스를 비판할지언정, 흙수저 신화만큼은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악역을 시골 고등학교 지리교사 겸 미식축구 코치를 지낸 친근한 이미지의 월즈가 떠안았다. ▷둘 사이엔 공통점이 많다. 우선,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군에 자원입대해 병사로 복무했다. 밴스 후보는 2003년 해병대에 입대해 4년간 근무했다. 2005년에는 6개월 동안 비전투 공보사병으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결석과 지각이 허다했던 학창 시절을 보낸 밴스는 해병대에서 자신을 찾았다고 책에다 썼다. “나는 안 된다”는 좌절이 잘못이란 걸 깨달았고, “인생을 계획한다는 개념을 처음 알았다”는 대목이 있다. 17세에 주 방위군에 들어간 윌즈 후보는 상근 또는 비상근으로 24년간 포병으로 복무했다. 군 생활 중 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그 역시 오랜 군 복무를 통해 삶과 일의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자수성가를 중시하는 미국인 정서에 부합한다. 월즈 후보는 시골 농장에서 자랐고, 이름 없는 대학을 다녔다. 밴스는 마약중독자 어머니 대신 외조부모 손에서 자랐고, 가까운 친척 누구도 대학을 졸업 못 했다. 부시-클린턴-오바마-바이든처럼 하버드나 예일 출신, 30세부터 상원의원을 지낸 미국의 주류가 백악관을 차지해 온 사실에 비춰 볼 때 상대적으로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이민, 낙태, 동성애 등 사회정책 견해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2000년 이후 치러진 6차례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한쪽이 모두 이긴 주는 35곳이다. 11월 5일 대선 때도 비슷할 것이다. 결국 그때그때 지지 정당을 바꾸는 경합주 6∼8곳이 승부를 가를 텐데,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등 이른바 쇠락한 공업도시의 저학력 노동자의 표가 중요해졌다. 왜 중서부를 배경으로 하는 두 후보가 간택됐는지가 명확해졌다. 앞으로 3개월 동안 ‘내가 더 보통 미국인답다’는 부통령 싸움이 더 거세질 것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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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尹-韓 90분 만났지만 독대는 없었다는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그제 90분간 만났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도 배석했지만, 사실상 독대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여당의 새 지도부를 불러 대통령실 잔디광장에서 만찬을 한 지 6일 만이다. 지금 여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는 총선 전부터 불거진 윤-한 갈등을 봉합하는 일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수 있느냐다. 한 대표가 제안한 90분 회동은 가능성을 엿볼 기회였다. ▷대통령 가족과 여권을 옥죄는 민감한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회동 형식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지됐다. 대통령-당 대표 회동은 통상 만남 첫 2, 3분을 언론에 공개한다. 대통령 집무실 회동일 때는 거의 예외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언론은 물론 용산 참모 대다수에게도 알리지 않고 만났다. 오전 11시에 만나면서 각각 점심 약속을 취소하지 않았다. 낮 12시 반까지 대화가 이어졌지만 “점심 함께 하면서 더 이야기하자”는 제안은 없었다. “화기애애했다”는 용산 대변인 설명과 실제 상황은 거리가 있었을 거란 짐작이 가능하다. ▷90분 회동치고는 브리핑이 짧았다. 양쪽 설명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2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당 인사들을 포용하고 경청함으로써 한동훈의 사람을 만들라는 것이 하나고, 당직 개편 등 당무는 한 대표가 책임지고 잘하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그러나 이걸 두고도 국민의힘 내 친한-친윤 그룹은 제각각으로 해석했다. 친한은 당 대표 주도권을 인정해 줬다고 말했고, 친윤은 친윤 포용과 경청이 대통령의 진짜 생각이라고 풀이했다. ▷90분 만남 평가는 정점식 당 정책위의장이 유임하느냐, 교체되느냐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검사 출신으로 친윤 핵심인 정 의장의 1년 임기는 10개월 더 남았지만, 과거 정책위의장은 새 당 대표가 새로 뽑았다. 이 자리가 중요한 이유는 9명으로 구성되는 최고위원회 구성 때문이다. 현재 4 대 4인 친한 대 친윤의 구도가 정 의장 교체 여부에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윤-한은 당직 개편도 논의했다. 한 대표가 교체를 강행한다면 대통령이 한동훈 당 주도를 용인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독대나 다름없던 90분 회동의 특징은 과거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만날 때 있었던 ‘따로 만남’이 없었다는 점이다. 통상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와 식사를 한 뒤 20분(문재인-송영길) 정도 1 대 1 진짜 독대를 갖는다. 갈등이 컸던 박근혜-김무성 체제 때도 19분, 때론 단 5분 정도라도 밀담을 나눴다. 하지만 독대인 듯 독대 아닌 90분 회동은 대통령과 한 대표가 아직은 준비가 덜 됐거나, 독대 후 터져 나올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부담스럽다는 뜻일 수도 있다. 윤-한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시각은 여전히 우세하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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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檢조사에서 ‘국민들에 죄송하다’ 말했다”… 명품백 ‘전언사과’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해 사과한 일이 뒤늦게 공개됐다. 김 여사는 지난 주말 대통령경호처 별관으로 출장조사를 하러 온 검사들에게 “이런 자리에서 뵙게 돼 송구스럽다”며 “심려를 끼쳐 드려 국민들에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검사 앞에서 한 이른바 ‘대국민 사과’는 대통령실 공식 채널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변호사가 25일 신문사 유튜브에 출연해 공개했다. 4월 총선과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뜨거운 이슈였던 김 여사의 명품백 관련 첫 사과였으나, 형식도 어색한 전언(傳言) 사과가 돼 버렸다. ▷수사 때 입회 변호사는 인터뷰에서 “제가 공식적으로 말하는 게 부적절할 수 있다”면서도 준비한 메모를 확인해 가며 답했다. “김 여사가 사죄를 하고 싶어도 정무적 판단을 거쳐야 해 사죄를 쉽게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런 마음이 진심이라는 거는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김 여사의 동의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다. 해당 변호사는 얼마 전까지 용산 대통령실에서 법률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으로 일했다. 서울의소리 7시간 전화 녹취 사건 등에서 김 여사를 변호해 왔다. ▷명품백 사건은 ‘몰카 공작’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배우자가 선물이라며 사진까지 미리 보내온 300만 원 상당의 명품백을 받은 것은 충격적이다. 게다가 용산의 해명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처음엔 “대통령기록물이라 돌려줄 수 없어 보관해 왔다”고 설명하다가, 최근엔 “김 여사가 돌려주라고 지시했으나 실무자가 깜빡 잊었다”고 했다. 온 나라를 뒤흔든 명품백 수수 동영상이 공개된 지 8개월이 지나는 동안 김 여사는 침묵했다. 이런 중대 사안을 뒤늦게 변호인이 당사자의 사과를 갈음하는 듯이 불쑥 공개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김 여사의 변호사는 유튜브 방송 내내 일방적 방어논리만 폈다. 김영란법으론 처벌이 불가능했고, 서면조사로도 충분하지만 12시간 수사에 협조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가조작 수사가 본 수사였던 만큼 명품백은 시간이 남으면 조사받기로 했다는 설명에선 ‘검찰총장 패싱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장황한 변명은 이어졌지만 정작 국민이 궁금해하는 명품백을 어떻게 처리했고, 앞으로 어떻게 수사받고 국민 앞에 어떤 설명을 내놓을 것인지는 쏙 빠졌다. ▷김 여사의 이번 ‘전언 사과’는 그 적절성도 문제지만, 사과로서의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장면은 4월 총선 패배 후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논란’과 비슷한 점이 많다. 당시 대통령은 “민심을 더 받들겠다”는 사과의 말을 비공개 국무회의와 참모회의 때 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결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공개 사과했다. 사과는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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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사퇴 궁지 몰린 바이든… ‘실기’ 누구 때문일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어제, 진짜 관심은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의 상대가 누구냐였다. 현재로선 당연히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하지만 세 번째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백악관 밖에서 치료 중인 81세 바이든은 후보직 포기를 강하게 압박받고 있다. 민주당의 대모 격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총대를 멨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돌아선 것 같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젠 백악관 참모들까지 ‘결심 임박설’을 말하고 있다. ▷1968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여론 악화를 이유로 중도 하차한 전례가 있기는 하다. 다만, 3월 말 결단이었다는 점에서 대선이 100여 일 앞으로 닥친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묻게 된다. 왜 백악관은 당연해 보이는 불출마 가능성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걸까. 1년 전 여름 바이든은 충분히 노쇠해 있었다. 프롬프터 없는 연설에선 논리정연함도, 단단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바이든을 좋아하는 이들의 불출마 촉구가 그때부터 터져 나왔다. ▷백악관 참모들은 감추기에 급급했다. 바이든은 번번이 걸려 넘어졌고, 이름을 헷갈렸다. 그럴 때면 대통령의 일정과 카메라 노출을 줄였다. 참모들은 올봄까지도 “내부 회의 때 바이든은 날카롭고, 디테일에 강하다. 그걸 몰라준다”며 방어벽을 쳤다. 라디오 인터뷰에 응하면서 앵커에게 질문을 미리 제공한 것이 드러난 최근 해프닝도 보좌 실패의 작은 사례다. 바이든 곁 참모들이 진실을 가리면서 바이든은 궁지에 몰렸고, 민주당은 경선을 준비할 시간을 잃었다. ▷언론도 제 역할이 미흡했다. 한국계인 특별검사 로버트 허가 올 2월 “바이든은 기억력 나쁜 노인”이라고 보고서에 썼다. 5시간 대면 조사의 결과였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특검 발표는 새로울 게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그러면서 “바이든은 원래 말을 더듬지 않느냐”며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6월 말 첫 TV 토론 직후 “바이든은 후보에서 물러나라”는 사설을 쓴 뉴욕타임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동안 건강 상태를 지적했지만 “문제없다”는 백악관 반론을 매우 충실히 싣는 바람에 독자는 판단이 어려웠다. ▷바이든이 만약 7월 중 물러나더라도 실기(失機)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본인 몫이다. 그는 닷새 전 NBC 인터뷰에서 “여전히 출마한다”고 했는데, 정확한 현실 진단을 못 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큰 영향력을 지녔다는 질 여사도 남편의 명예를 지키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바이든은 출마를 강행해 트럼프를 이기거나, 깨끗이 양보해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원래 남의 바둑 훈수는 쉬워도, 자기 수는 안 보이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훈수꾼이 곁에 없었다. 남 탓 할 일이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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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버락 오바마라는 부통령 카드

    재선 포기 압박이 더 강해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어떤 결심을 할까. 8월 중순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1개월 남짓이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①출마 강행. 부통령 후보에는 카멀라 해리스 현 부통령을 관행대로 지명한다. ②출마를 강행하되 부통령 후보로 제3의 인물을 지명. 재선 대통령을 지낸 버락 오바마가 유력 후보다. ③불출마 선언. 민주당은 초고속 경선을 통해 대체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선출 아니라 승계 땐 3번 중임 가능” 바이든은 선택지 ①을 움켜쥐고 있다. 그는 30세 이후 상원의원(36년), 부통령(8년), 대통령(곧 4년)을 지냈다. 하늘에서만 머물던 그는 TV토론 참패 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바람에 출마 집착이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질 확률이 더 커진 것으로 조사되고, 승리한다 해도 만 86세까지 대통령직 수행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패배한다면 노욕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으며 민주당에 죄짓는 일이기도 하다. 승리하더라도 정상 통치가 어렵다면 대통령직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②의 경우라면 현직 부통령을 내치는 평지풍파를 감수해야 한다. 미국 블로그를 중심으로 퍼져 가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통령 발탁 카드라면 돌파 가능하다. 여기에 “트럼프 집권을 막아낸 뒤 나는 취임 100일 되는 날 사임하겠다”고 바이든이 자기 희생을 약속한다면 설득력이 커질 수 있다. 내년 4월 말까지만 집권한다면 인지 능력 저하 우려도 어느 정도 씻게 된다. ‘부통령 오바마’가 대통령직을 승계해 3번째 4년 임기 대통령에 오르는 시나리오다. 미국 수정헌법 22조는 2번까지만 대통령에 투표로 선출(elected)될 수 있다고 못 박고 있다. 오바마의 3번째 임기는 얼핏 불가능해 보이지만, 실은 가능할 수 있다. 오바마는 2008년, 2012년 2차례 선출됐지만, 대통령 사퇴에 따른 부통령 승계(succeed)라면 선출된 것이 아니니 명시적 위헌이 아니다. 이재명의 헌법 84조 논란처럼 일종의 입법 미비다. 공화당은 꼼수 아니냐고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반민주, 부도덕의 대명사가 된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다퉈볼 수 있다. 선택 ③도 순탄할 수 없다. 새 후보를 뽑는다는 건 대혼란을 의미한다. 경선 룰 갈등은 분열을 부르고, 표 응집력을 떨어뜨린다. 갑작스러운 경선으로 국정 준비가 덜 된 후보가 뽑히더라도 트럼프를 꺾을 수 있을까. 바이든은 개인의 명예, 민주당의 승리, 민주주의의 앞날을 놓고 번민할 것이다. 바이든이 선택할 확률은 ①40% ②20% ③40%라고 생각한다. 노쇠함이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된다면 출마를 강행하는 ①의 가능성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트럼프를 꺾을 가능성만 본다면 시나리오 ②가 80%에 이른다고 생각한다. ①과 ③ 방식으로 약진하는 트럼프를 이길 확률은 20%를 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어떻게든 바이든과 민주당이 고사 가능성이 큰 오바마를 설득해 내는 것이 관건이다.권력은 외롭다… 그래서 오판한다 바이든은 전국 선거에서 9전 9승 기록을 갖고 있다. 그래서 ①을 통해 10번째 승리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②는 본인도 승리하고, 미국의 향후 4년을 경험 많은 오바마가 이끌도록 할 수 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권력의 속성상 “사퇴하시라”는 입바른 ③번 조언 받기는 참 어렵다. ②방식이 바이든과 민주당이 윈윈하는 모델이지만, “대통령님 말고는 트럼프를 이길 사람이 없다”며 ①을 속삭이는 백악관 참모가 아직까지는 다수일 것 같다. 질 확률이 큰 ①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40%나 되고, 이길 확률이 큰 ②의 가능성을 20%로 낮게 보는 이유다. 이처럼 권력은 외롭다. 그래서 권력은 종종 오판한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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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캠프서 준 질문지로 바이든 인터뷰했다 해고된 앵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독점 인터뷰하는 행운을 얻었던 라디오 채널 2곳의 진행자 2명이 “시키는 대로 질문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동부 필라델피아의 앤드리아 로풀샌더스 앵커와 중서부 밀워키의 얼 잉그램 앵커가 그들인데, 로풀샌더스는 방송이 나간 뒤 이틀 만인 6일 해고됐다. 두 라디오는 청취자 대부분이 흑인인 곳이다. 노쇠한 바이든이 첫 대선 TV토론을 망친 뒤 압도적 지지층인 흑인 표심을 붙들어 두려고 기획한 인터뷰였다. ▷잉그램 앵커의 첫 질문은 “위스콘신주에서 대통령이 이룩한 성취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81세 대통령이 국정 수행 능력을 의심받던 그 순간에 자기 홍보의 시간을 안겨준 것이다. 이 질문은 바이든 캠프에서 사전에 제공한 질문이었다. 이 앵커는 5개 질문을 제시받고 그 가운데 4개를 골랐다고 인정했다. 로풀샌더스 앵커는 질문 8개를 캠프로부터 받았고, 그중 4개를 실제로 질문했다. ▷저널리즘의 기본을 깬 행위를 간파한 것은 CNN 앵커였다. CNN은 6일 바이든과 전화 인터뷰를 한 진행자 둘을 연결해 3자 간 화상 대담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둘의 질문이 이상하리만치 비슷하더라. TV 토론 평가, 당신들 주(州)에서 이른 성취, 바이든 안 찍겠다는 유권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혹시 바이든 쪽에서 준 것이냐”고 물었다. 로풀샌더스 앵커는 순순히 인정했다. 대선 4개월을 앞두고 라디오 저널리즘의 독립성을 뒤흔드는 말이었다. 라디오 채널 대표는 주말인 토요일에 앵커를 해고한 뒤 “우리는 바이든의 보호 도구(mouth-piece)가 아니다”라는 성명을 냈다. ▷라디오 인터뷰 때 바이든은 “뭐든 물어라(fire away)”라고 힘주어 말했다. 뭐든 답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았지만, 그는 상당수 질문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바이든은 TV토론이 부진했던 이유에 대해 녹음기 틀듯 동일한 답을 내놓았다. “나쁜 밤(a bad night)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는데, 백악관이 추가로 기획한 지상파 ABC방송과 한 인터뷰에서도 같은 답을 내놓았다. ▷해고된 앵커는 CNN 생방송 인터뷰 중에 “우리 라디오가 (바이든에게) 선택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바이든 측 질문 가운데 내가 몇 가지를 승인한 것”이라고 말할 땐 표정과 말투에서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해고되지 않은 잉그램 앵커의 라디오 채널에선 아직 반응이 없다. 하지만 전화 인터뷰 녹음 영상에 달린 댓글에는 지역의 소규모 라디오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대선 공론장에서 기본이 흔들리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이 여럿 달렸다. 바이든 캠프는 처음엔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비판이 커지자 떠밀리듯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물러섰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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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트럼프 대항마는 미셸 오바마?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TV토론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자 여론조사 회사들이 바빠졌다. 바이든 외에 누가 트럼프의 맞상대가 될 수 있는지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인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62)의 부인 미셸(60)이 단연 주목 대상이다.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현직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 등 어떤 정치인도 트럼프에 못 미쳤지만, 미셸은 50%-39%로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서는 걸로 나타났다. “두 번까지만 선출될 수 있다”는 수정헌법 22조에 따라 남편 오바마는 출마가 불가능하다. 미셸을 향해 민주당 지도부의 눈이 반짝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오바마라는 지명도를 고려하더라도 예상 밖 수치였다. 미셸은 “선거에 관심 없다”고 말해왔는데,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그의 X(옛 트위터)를 보면 8년을 백악관에서 함께 보냈던 당시 부통령 바이든 이야기가 없다시피 하다. ‘무당파도 투표하자’는 시민운동 응원 글 정도가 눈에 띈다. 바이든의 모금 파티에 남편은 자주 참석하지만, 미셸은 가지 않았다. 미국의 부부 동반 문화를 감안하면 바이든 선거에 관심을 끊었다는 뜻이다. ▷44세에 영부인이 된 미셸은 백악관 8년 동안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퇴임 시점 호감도 조사 때 남편보다 높은 60%대 후반을 기록했다. 시카고대 병원 부원장 출신으로 청소년 비만 퇴치 운동에 앞장섰고, 변호사 경험을 살려 흑인 여성 아동 인권 신장을 위해 일했다. 절제된 언어로 하는 연설 실력도 인정받았다. 첫 자서전(비커밍·Becoming)은 31개 언어로 번역됐고, 1000만 부 넘게 팔렸다.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바이든 사퇴와 본인 결심이 꼭 필요하다. 그런 뒤에도 50개 주에서 약식이나마 경선에서 이겨야 한다. 경제, 복지, 범죄, 국방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과 중동, 한반도 등 대외정책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11월 5일 대선 때까지 4개월. 가난한 흑인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역경을 이겨냈지만, 지금 삶의 안락함을 떨쳐낼 수 있을까. 그가 쓴 책의 선인세는 800억 원대였다. ▷만약 미셸이 출마한다면 그건 ‘트럼프만은 안 된다’는 민주당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범적 안주인으로 누린 인기는 내려놓아야 한다. 비판이 집중적으로 쏟아질 것이고, 경험 부족에 따른 실수도 잇따를 수 있다. 여론조사 숫자만 믿고 덤빌 수 없는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출마 강행의 의지가 여전하다. 그렇다면 미셸과 바이든 둘 모두 같은 질문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나서면 혹은 내가 양보하면 과연 민주당은 트럼프 재선을 막을 수 있을까. 누구도 답을 모를 그 질문 때문에 민주당 핵심부는 당분간 머리를 싸매고 있게 됐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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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성과도 무용지물 만든 마크롱의 ‘오만’ 이미지

    집권당이 선거에 패배했다면 나빠진 경제, 불통 이미지에 빠진 대통령을 패인으로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두 기준에서 비교적 성과를 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일요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크게 졌다. 그가 이끄는 중도 연합 앙상블은 제3당으로 밀릴 전망이다. 7일 시행되는 2차 결선 투표가 1차 때와 비슷하다면 극우파가 1당, 좌파 연합이 2당이 된다. 프랑스 언론은 대통령의 엘리트 이미지를 민심이반 요인으로 꼽았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마크롱의 오만하다는 이미지가 치명적이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은 임기 초 시민들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했는데, 실직한 청년 정원사와 나눈 대화가 카메라에 잡혔다. 마크롱은 “다른 일을 찾아보라. 가령 식당 웨이터 같은…”이라고 했다. 현실적인 조언일 수 있겠지만, 정원사로서 일했던 경험은 아무래도 좋다는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 대중은 상처 받았다. ▷지지율은 30%에 묶여 있지만, 업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전임 대통령들이 엄두를 못 낸 구조개혁에 매달렸다.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그로선 ‘나는 할 수 있다. 나 아니면 누가 할까’ 싶었을 것 같다. 그는 해고를 쉽게 하는 친기업적 노동개혁을 했고, 연금개혁을 시도해 구멍난 연금재정을 메워야 하는 납세자의 부담을 줄였다. 정책 수혜자는 쉽게 잊지만, 손해를 입었다고 믿는 유권자는 표로 응징하곤 한다. 이런 표심을 마크롱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가 야당의 반대를 넘어선 것은 절충과 타협 대신 프랑스 특유의 헌법 조항을 활용한 결과였다. 대통령이 49조3항을 발동하면 법안은 국회 표결 없이 발효된다. 의회주의를 거스른다는 비판 때문에 역대 프랑스 대통령은 이 조항을 대체로 1년에 1번 정도만 쓰는 절제력을 보였다. 마크롱은 2022년 재선 후만 따져도 20번 넘게 썼다. 여소야대 속 야당은 일방주의적이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경제 지표는 좋아졌지만 지지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취임 때 9%였던 실업률이 7% 선으로 떨어지면서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6%대 물가상승률도 2%대로 안정됐다. 46세 젊은 대통령답게 메모 한 장 없이 몇 시간씩 시민들의 질문을 받았고, 부유세를 폐지할 때는 전국을 돌며 끝장 토론을 11번이나 벌였다. 이런 마크롱의 ‘진심’은 “소통 쇼” 비판에 가려졌다. ▷1992년 미국 대선 때 클린턴 후보가 들고 나온 슬로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란 말이야(Stupid, it’s economy)”였다. 그 후로 먹고사는 민생이 선거의 제1 요건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프랑스 총선에선 먹히지 않았다. 비교적 좋아진 경제나, 대국민토론을 통한 설득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마크롱에겐 엘리트주의 이미지가 악몽처럼 돌아왔다. 흠집 나기는 쉬워도 되돌리기는 지난한 법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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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쉰 목소리와 어눌한 말투로 TV토론 완패한 바이든

    100년 동안 미국 대통령 후보들은 경제 정책과 대외 전략과 함께 개인적 인품, 인생 역정을 기준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어제 CNN 본사에서 열린 첫 TV토론을 본 시청자들은 건강과 스태미나라는 새 기준을 떠올렸을 것이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전직 대통령으로는 132년 만에 재선에 도전하는 가운데 81세(바이든)와 78세(트럼프)의 초고령 경쟁이 본격 시작됐다. ▷TV토론을 누가 더 잘했느냐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완승했다. 67% 대 33%. 승부는 두 후보의 목소리에서 갈렸다. 청소년 시절 말 더듬는 습관을 노력으로 극복했던 바이든은 유난히 더듬었고, 발음도 번번이 샜다. 잔뜩 쉬고 힘 없는 목소리에선 미국 대통령다운 단호함과 명료함이 안 보였다. 민주당이 토론 도중에 “감기 탓”이라고 해명을 내놓을 정도였다. 트럼프는 “방금 전 그 말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바이든 본인은 알까”라고 꼬집었는데, 바이든의 민주당 지지층도 반박하기 어려웠다. ▷악수도 없이 시작한 토론답게 두 후보는 후벼 파는 말을 앞세웠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성인물 여배우와 불륜을 저지르고 회삿돈을 꺼내 입막음용으로 준 사실을 상기시켰다. “당신은 아내가 임신한 그때 포르노 배우와 잤다”며 공화당 주류의 가족 중시 정서를 건드렸다. 또 “당신이 미군 전사자를 가리켜 썼던 호구(sucker)와 패배자(loser)는 바로 트럼프”라고 몰아세웠다. 대표적 신사 정치인인 바이든답지 못한 이런 강공은 곧 빛을 잃었다. 평소와 달리 비속어나 조롱성 발언을 절제한 트럼프의 변신이 더 눈길을 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멕시코 불법이민 등 정책 이슈가 나왔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바이든에겐 뼈아팠다. 트럼프는 늘 그렇듯 과장하고 왜곡해가며 “내 재임 시절 미국 경제가 최고였다”고 자랑했다. 이런 식의 왜곡은 미 언론이 수년간 팩트체크로 반박한 것이었지만, 바이든은 현장에서 반박할 능력이 없는 듯했다. 자신을 중국으로부터 돈을 받는 “만주(滿洲)의 대통령 후보”라고 부르는데도 별 대응을 못 했다. 하나하나가 바이든의 순발력과 집중력 부족을 부각시켰다. ▷미국 대선 TV토론은 1960년 처음 도입됐다. 당시 닉슨-케네디 중 승자는 젊은 상원의원 케네디 후보였다. “카메라 덕을 가장 크게 본 후보는 케네디”라는 말이 60년 넘게 힘을 얻고 있지만, 트럼프가 그 주인공이 될 듯하다. 바이든의 고민은 이제부터다.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거리던 고령 문제가 공론의 장에 올려졌다. 같은 편인 민주당 지지층이 더 아우성이다. 통상적이라면 바이든이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축제의 장이 될 8월 전당대회까지 민주당과 백악관은 큰 혼돈과 마주하게 됐다. 2차 TV토론은 9월 10일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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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기생충에 꿰맨 양말까지… 北 궁핍 만방에 알린 오물풍선

    북한의 오물풍선 공세에 골머리를 앓던 우리 당국이 선택한 대응법은 저강도 심리전에 가깝다. 통일부와 군 당국은 그제 오전 오물풍선이 또 날아올 정황을 파악한 뒤 풍선 속 오물의 실체를 일부 공개했다. 인분이 든 퇴비, 칼로 난도질한 청바지, 다 쓴 건전지, 체제 선전물 조각 등이었다.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제 밤 5번째로 풍선 350여 개를 날려 보냈다. 하지만 1개월 동안 날아든 2000개 안팎의 풍선에는 공작을 주도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예상치 못한 북한의 속살이 여럿 담겨 있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오물에선 사람의 DNA도 나왔다. 인체에 있던 회충 편충 등 기생충이 토양에 섞인 것으로 당국은 추정했다. 퇴비에 인분을 썼거나, 화장실 부족으로 일어난 일일 것이다. 7년 전 판문점에서 북 병사가 귀순했을 때도 기생충이 뉴스가 됐었다. 총상을 수술한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가 수십 cm 길이의 기생충 수십 마리를 제거한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영양 상태가 좋았을 최전방 병사에게서 벌어진 일이다. 풍선에는 찢어진 걸 몇 겹이고 기운 장갑, 구멍 난 곳을 여러 번 덧댄 양말, 옷감을 겹쳐 조악하게 만든 마스크도 있었다. ▷북 당국이 정보 노출을 막으려고 신경 쓴 흔적이 없지는 않았다. 병뚜껑에선 안쪽이 뜯겨 있었고, 플라스틱 병에선 라벨을 일일이 떼어낸 듯했다. 하지만 물자 부족을 드러낼 물건들을 전수 조사로 걸러내지는 못했다. 특히 오물의 DNA 분석까지 할 것으로는 북측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풍선 속에서 훼손된 김정은 찬양물이 나왔다는 점이다. ▷풍선에는 “김일성 대원수님의 교시”와 같은 선전물이 있었다. 쓰레기와 함께 담겼다는 것도 경을 칠 일이지만, “위대한 령도자(…)”에서 잘려 나간 것도 있었다. 북한에선 신성모독과 다를 바 없는 일로, 형법상 사형까지 가능하다. 2016년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체제 선전물을 훼손한 혐의로 장기간 억류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떠올려 보라. 엄격한 처벌을 모를 리 없는 북쪽의 누군가가 ‘령도자’ 관련 인쇄물을 훼손했고, 그걸 남쪽으로 내려보내는 과정도 꼼꼼하게 걸러지지 않았다. ▷상상도 못 할 오물풍선 공작은 탈북자 단체가 북으로 날려보낸 대북전단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은 맞다. 북한 매체들은 탈북자들을 “인간쓰레기”라고 비난해 왔으니 북한 나름대로는 형식 논리를 갖췄다고 여겼을 것이다. 오물풍선은 우리 불안감은 고조시켰지만, 북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헤집고 돌아다닐 때처럼 남남갈등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헛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지금의 긴장이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는 점에서 긴장해야 한다. 북은 남북이 더 이상 단일 민족이 아니라고 선언했고, 러시아와 동맹 수준으로 관계를 격상시켰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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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팀 이재명’은 멈춰 세울 능력이 있을까

    9분 능선을 넘어 끝난 일처럼 됐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헌(黨憲) 개정을 중단해야 한다. 중단할 수 있다는 유연함과 과단성을 국민 앞에 보여 줘야 한다. 친명의 충성심이 빚은 당헌 개정 작업을 두고 내부 깊숙한 곳에서 경고음이 울렸을 때 바로잡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저하의 상당 부분이 잘못을 스스로 교정할 능력이 부족했던 때문 아니던가. 이 대표는 이른바 개딸 정치를 해 온 40대 최고위원에게 당헌 개정의 실무책임을 맡겼다. 국회의장 후보 선출에 당원 의견 20% 반영, 연장 가능한 당 대표 임기, 기소될 때 당직 박탈 조항 폐지 등 3군데를 뜯어고치자는 의견이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이 대표가 “이건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임기 문제로 국한해 보자. 이 대표는 30년 관행을 깨고 올 8월 연임에 도전할 것이 분명하다. 그가 2027년 3월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1년 전에는 대표직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지금의 당헌이다. 당 대표가 자신도 출마할 대통령 후보 경선을 쥐락펴락하는 비민주성을 줄이자고 여야가 공히 채택한 제도로, ‘당권·대권 분리’라고 부른다. 이 조항을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땐 사퇴 시한을 바꿀 수 있다”는 쪽으로 수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몇 개월 임기 연장의 길을 터 준 조치로 여겨진다.“설탕만… 이 다 썩는다”는 최측근 경고 반론이 엄두가 안 나는 1인 체제 민주당이지만, 지난주 원조 친명인 7인회 소속 김영진 의원이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 대표가 설탕만 먹고 있다면 이빨이 다 썩는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개인 설득을 하기엔 너무 나가 버려,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김 의원은 이 대표의 중앙대 후배이자, 대학 총학생회장 시절 전대협 활동을 했다. 당 주류로서 손색없는 인물이 나섰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주 연석회의에 의원 등 206명이 참석했지만 반대 의견은 2명에 그쳤다고 한다. 지금대로라면 월요일 중앙위원회가 추인하면 절차는 끝난다. 하지만 이 대표의 대통령 꿈은 오히려 반발짝 멀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옳지도 않고 이익도 생기는 게 없는 일이다. 전두환도 7년 대통령 단임제로 개헌하면서 임기 조항은 변경을 하더라도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된다고 했다. 그게 신군부도 알던 상식이고 염치다. 이런 수준의 정치가 중도층 확장에 도움이 되는 걸까. 둘째, 민주당은 “윤석열 독재”라는 비판을 반복하지만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민주당은 뭐가 다른 걸까. 김영진 의원 말처럼 민주당이란 큰 공기(公器)에 대한 역사적 책임의식 부족에서 비롯된 일 아닌가. 셋째, 이 대표를 희화화할 소지가 있다. 이 대표는 “임기 조항은 손 안 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여럿 나왔다. 그런데 조항 손질 작업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 말이 이 대표의 진심이 아닐 것으로 민주당 핵심부가 판단해서였을까. “손대지 말란다고 정말로 그런 줄 알았느냐”는 패러디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브레이크 제때 밟는 솜씨 입증해야 이 대표가 대통령 꿈을 이루려면 이 대표 본인은 물론 참모그룹을 포함하는 ‘팀 이재명’에 액셀과 브레이크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추진력이 액셀이라면, 경고음에 멈출 줄 아는 능력이 브레이크다. 완급 조절 능력을 보여 준다면 국민들은 훗날 이재명 정부가 이렇게 돌아가겠구나 하고 기대감을 키울 수 있겠다. 지지지지(知止止止)라는 옛 말씀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멈출 때를 알아, 멈출 곳에서 멈춰야 하는 것은 만사의 이치다. 집권을 꿈꾼다면 이 대표도, 팀 이재명도 멈춰야 한다. 그럴 수 있음을 유권자에게 입증해야 한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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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6월4일 中의 두 얼굴… 천안문 지우기 vs 달 뒷면 탐사

    중국에는 6월 4일이 없다. 그제는 ‘5월 35일’이었다. 포털에서 6월 4일을 검색하면 “해당 결과를 찾을 수 없다”는 글이 뜬다. 중국 메신저에선 6월 4일이 포함돼 있으면 문자가 전달되지 않는다. 8964라는 숫자도 마찬가지다. 1989년 봄 중국에서 개방파 공산당 총서기가 숨진 뒤 시작된 민주화 및 반부패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덩샤오핑이 무자비하게 탱크로 진압한 날이 바로 6월 4일이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5월 35일, 8의 제곱(64), 로마숫자 VIIV(64)로 검열을 피하고 있다. ▷35년 전에도 무자비했지만 1인당 소득이 1만3000달러에 이른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지우겠다는 당국의 뜻은 여전하다. 그제 네덜란드 기자가 중국 외교부 대변인에게 “사실상의 학살이었던 그 사건”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항의 풍파(소동)는 이미 끝난 일”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런 뒤 외교부는 이 대목을 삭제한 속기록을 공개했다. 톈안먼(天安門) 망루 관광이 하루 중단됐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걸 막기 위해 온라인 게임 사용자가 프로필 사진이나 아이디를 변경하는 것이 금지됐다. 일요일에 발간된 홍콩 종교 전문 주간신문의 1면은 백지로 나왔다. ▷같은 6월 4일이지만 달에선 중국의 우주 굴기(崛起)가 빛을 발했다. 중국의 무인 달 탐사선 ‘창어(달의 여신) 6호’는 달 뒷면에 착륙한 지 이틀 만에 로봇 팔로 토양과 암석 2kg 정도를 채취한 뒤 지구 복귀에 나섰다. 달 뒷면 착륙도, 뒷면 암석 채취도 인류 최초다. 달은 자전주기와 지구를 도는 공전주기가 모두 28일이다. 그래서 지구를 향해 늘 같은 쪽 절반(앞면)만 보여 준다. 역사상 달 토양 채취는 미국이 5번, 옛 소비에트가 3번 성공했지만 모두 앞면의 일이었다. ▷달의 뒷면은 앞면보다 울퉁불퉁해 착륙이 더 어렵고, 지구와는 직선 무선 통신이 불가능하다. 중국은 오작교라는 이름을 붙인 통신 중계위성을 미리 띄워 뒷면-오작교-베이징 3자 통신에 성공했다. 달 뒷면은 헬륨 3가 더 많아 광물 자원화 가능성이 더 크고, 소행성 충돌도 잦아 달 생성과 진화의 비밀을 풀 열쇠를 지녔다고 한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내려서서 성조기를 내건 뒤 미국이 달을 잊은 듯한 사이 중국은 오성홍기를 달 뒷면에 펼쳤다. ▷6월 4일의 두 얼굴은 중국에 대해 묻게 만든다. 억압과 창의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걸까. 달 뒷면 탐사는 과학 역량은 물론이고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도전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국가적 투자는 물론 과학자의 자유로운 사고와 연구 투명성이 불가결한 요소다. 베이징 권부가 개개인의 기억마저 장악하려는 6월 4일의 비극과 상충된다. 중국은 자유와 통제의 기로에 선 걸까. 아니면 국가 과학이 억압과 공생하는 두 얼굴이 상당 기간 유지되는 것인가.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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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낙선·낙천자 행렬 이어 ‘문고리 3인방’ 출신까지 용산행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 중 하나로 국정농단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정호성 전 대통령부속비서관을 대통령실에 기용하기로 했다. 그가 맡을 자리는 시민사회수석 아래 3비서관이다. 정 전 비서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복심 중의 복심이었다. 검찰이 압수한 그의 휴대전화에는 비선(秘線) 최순실과 나눈 대면 대화와 전화 통화가 여럿 녹음돼 있었다. 최순실이 그에게 “받아 적으라”며 지시하는 듯한 육성이 공개되면서 대통령직은 무게를 잃었고, 탄핵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2016년 특검 파견검사 시절 그를 수사했고, 구속기소했다. 1년 6개월 만기 출소한 이후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에게 우호적이었다. 취임 첫해 사면·복권시켰고, 이젠 비서관으로 기용하기에 이르렀다. 정 전 비서관이 지난해 국가정보원 산하 기관에 자문위원으로 비공개 위촉됐는데, 용산의 힘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수사와 재판으로 소원해졌던 박 전 대통령이 추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친박계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청와대 문서를 최순실에게 유출한 혐의로 자신이 구속한 인사를 발탁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국정 농단의 문제점을 국민들이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논란이 될 게 뻔한 이런 인사를 왜 단행하려는지는 정확지 않다. 정 전 비서관의 대통령실 근무는 부적절하다. 정부문서 유출이란 범죄 말고도 그는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했다. 법원이 그의 판결문에 “농단의 방조자가 됐다”고 쓸 정도였다. 그가 맡을 시민사회 3비서관 자리는 민심을 파악해 대통령에게 정확히 보고해야 하는 자리다. 부적절한 인사를 기용한다면 총선 패배 후 “민심에 더 귀 기울이겠다”던 대통령 말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농단 문고리’ 인사의 발탁은 4월 총선 참패 후 뭔가 어긋나는 듯한 대통령실 인사의 극적인 사례가 될 듯하다.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정의 중핵인 용산 대통령실이 낙천·낙선자로 채워지고 있다. 교체된 비서실장, 정무수석, 시민사회수석이 그렇다. 정무수석실 아래 비서관 3명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지금의 공직기강비서관은 총선 출마를 위해 인사비서관을 그만둔 지 4개월 만에 다시 회전문이 되어 돌아왔다. 탕평이니 삼고초려니 하는 말은 역사책에만 있는 일이 돼 버렸다. ▷민주당은 “탄핵에 대비하는 거냐”는 조롱성 비판을 내놓았다. 형사처벌 대상이 된 총선 후보가 유독 많았던 조국혁신당조차 “(용산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반응했다. 그런데도 집권당에선 아무런 대응이 없다. 누구도 “발표 전이니 인사 결심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말을 못 하고 있다. 용산은 민심에서 동떨어져 가고, 여당은 민심의 전달자 역할을 못 하고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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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첫 회의서 ‘용산 비서들 정치 행위’ 근절 강조한 정진석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그제 정책실장, 수석비서관들과 가진 첫 회의에서 “대통령실의 정치는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 비서들이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또는 대통령실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부정확한 얘기가 산발적으로 (언론에)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런 경고는 용산발 국정 난맥을 끊어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듯하다. ▷‘말의 기강’을 세우겠다는 첫 지휘 메시지는 공식라인을 건너뛰는 일 없이 업무계통을 정확히 밟으라는 지시이기도 하다. 지난주 불거졌던 ‘박영선 국무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유력 검토’ 보도가 남긴 파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보도된 대로 ‘문제 발언’의 당사자로 지목된 용산 참모는 인사, 정무, 대언론 접촉이 본 업무가 아닌데도 나섰다. 또 휘발성이 강한 더불어민주당 측 인사의 핵심 요직 발탁 아이디어를 비서실장, 정무수석 등 최고위 참모들조차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언론에 흘렸다. ▷민주당 인사의 총리 발탁이 상상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협치 의지를 밝히고, 국회 제1당이 된 민주당에 의견을 구하기도 전에 공개되면서 일의 순서가 뒤엉켰다. 최고 권부의 일 처리가 느슨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총선을 거치며 얇아진 대통령 지지층의 반발과 실망을 다독이는 사전정지 작업은 할 틈도 없었다. 대통령의 업무가 이렇게 다층적 고려 없이 추진되어도 되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변인은 첫 보도 3시간 뒤 “논의한 바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그런 뒤에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한 적은 맞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단순 실수를 넘어 ‘말의 실패’였다. 영입 대상으로 삼았던 박영선, 양정철 두 인사는 대통령 부부와 이런저런 사적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와중에 김건희 여사와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용산 참모가 발언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대통령실 계통 파괴의 심각성이 더 부각됐다. 지난 2년간 검찰 출신, 측근 그룹 출신 등 참모 그룹은 ‘누가 윤심에 더 가까운가’를 두고 경쟁이 존재했다고 한다. 과거 정부 때도 있었던 일이라지만, 비서들의 정치가 구설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다. ▷“(비서실은) 말하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라고 질책한 정 실장은 용산을 어떻게 이끌어 갈까. 그동안 직보(直報)의 형식으로, 다양한 의견 청취라는 이름으로 걸러지지 않은 의견과 정보가 용산 최상층부에 전달된다는 후문이 많았다. 그러던 중 어설픈 언론 플레이로 대통령실의 권위와 기강을 흔든 일이 생겼다. 이런 비공식 정보의 흐름을 교통정리 해내는 것 또한 정 실장이 다짐한 ‘말의 기강’을 잡는 일이다. 그 당사자를 솎아내지 않은 채 용산의 난맥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용산 비서들의 정치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정 실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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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80년 광주, 중동 분쟁지역 현장 지킨 AP기자 잠들다

    1980년 5월 광주의 한 모텔에 몇몇 외국인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모텔 창문 밖으로 멀리 저항에 나선 광주시민들이 보였고, 신군부 진압부대도 대오를 갖추고 있었다. 그때 모텔에서 6m쯤 떨어진 옆 건물 옥상에 총을 든 군인이 나타나더니 기자들에게 손짓하며 떠날 것을 요구했다. 잠시 후 모텔방 유리창이 깨지며 총알이 날아들었다. 한 기자가 카메라를 꺼내 들고 창밖 촬영을 시도했다. 총알이 더 날아들자 기자들은 바닥을 기어서 빠져나왔다. UPI통신 기자가 1989년 미국 LA타임스에 쓴 5·18민주화운동 취재기에 담긴 내용이다. ▷어떻게든 촬영하려고 카메라를 꺼내 든 이는 AP통신 도쿄지국 테리 앤더슨 기자(당시 33세)였다. ‘뉴스 현장’을 찾아 한국으로 건너온 그로선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내밀었을 것이다. 80년 광주에선 희생자 수를 두고 논란이 컸다. 신군부는 초기에 3명이라고 발표했고, 시민들은 261명이라고 주장했다. 앤더슨 기자는 거리 취재 때 시신을 직접 셌다. “그렇게 많은 시신은 처음 봤다”며 하루에 179구까지 확인했다고 기억했다. 왜 굳이 세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기자는 원래 그렇게 일한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앤더슨 기자가 지난 주말 미 뉴욕주 자택에서 76세를 일기로 숨졌다. 그가 세상에 더 알려진 것은 광주 취재 5년 뒤 AP통신 중동지국장으로 일하던 때 내전 중이던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에게 납치된 일 때문이다. 그곳 수도 베이루트에서 동료와 테니스를 친 어느 날 괴한 3명에게 끌려갔다. 이들은 영어로 “걱정 마라. 이건 정치적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로부터 2454일, 6년 8개월 동안 그는 인질이 됐다. ▷훗날 쓴 ‘사자굴’이란 회고록에 자세한 기록이 담겨 있다. 대부분을 눈이 가려진 채 지냈고, 수갑과 족쇄가 채워졌다. 몇 시간씩 기도하며 버텼다고 썼다. 당시 약혼녀는 임신 6개월이었고, 그때 태어난 딸은 여섯 살이 되어서야 사진으로만 보던 아빠를 만났다. 그는 귀국 후 헤즈볼라의 배후인 이란 정부를 상대로 1억 달러(약 140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액수가 밝혀지지 않은 큰 배상금을 받아냈다. 그 돈으로 해병대원으로 참전했던 베트남을 위해 학교 50개를 지었다. ▷언론을 떠난 그의 삶은 대학 강의와 자선사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레바논 근무 시절 “분쟁지역 취재는 내 삶에 가장 매혹적인 일”이라고 했던 대로 ‘현장을 지킨 기자’로 기억될 것이다. 민주화 시위를 기록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고, 남들은 피하는 중동의 분쟁지역을 지켰다. 그의 모습이 담긴 영상에는 왼쪽 가슴팍 주머니에 꽂힌 검은 볼펜과 빨간펜이 눈에 띈다. 세련된 정장 차림은 아니었지만 현장 기자라면 누구나 그랬을 모습 그대로였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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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7 초청 불발… 외교 실패 논란 [횡설수설/김승련]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이 초청받지 못하면서 국내 정치로 불똥이 튀었다. 올해 G7 의장국인 이탈리아가 한국을 초청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시점이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당의 총선 참패 직후여서 파장이 더 미묘하다. 이탈리아는 6월 중순 열리는 G7 회의 때 정식 회원국 7개국 외에 아르헨티나 브라질(이상 남미), 이집트 튀니지 케냐 알제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이상 아프리카), 그리고 인도(아시아) 등 8개국 등을 초청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대중국 관계를 희생시켜가며 미일 등 서방국과 연대를 강화했음에도 이렇다니 참담하다”고 외교 실패라는 주장을 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한 조국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눈 떠 보니 후진국”이란 표현까지 썼다. 대통령실은 “이탈리아가 자국 내 이민자 문제와 연결된 아프리카·지중해 국가 위주로 정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부는 애써 태연한 듯했지만 이탈리아 초청을 위한 물밑 노력은 치열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한-이탈리아 외교장관 회담에서 강력한 희망을 전달했다. 하지만 지난주 G7 외교장관 회의에 이미 조 장관은 초청받지 못했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늘었다. 정부가 G7 초청에 매달린 데는 이유가 있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3국 협력을 외교의 골간으로 삼는 것과 동시에 높아진 국제 위상에 걸맞게 처신한다는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 노선을 채택했다. 이런 마당에 계속 초대받던 G7 회의에 초청받지 못한다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이 G7 무대에 처음 초청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한 2020년부터다. 우리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이 주목받던 때와 겹친다. 코로나 위기로 그해 회의는 취소됐지만, 이후로 영국의 문 대통령 초청(2021년), 독일의 미초청(2022년 한국의 정권 교체기), 일본의 윤 대통령 초청(2023년)으로 이어졌다. 2020년 이후 4번 중 3번을 초청받게 되자 국내에선 ‘준(準)회원국쯤은 된다’는 분위기도 생겼다. 하지만 G7 회원국의 속사정은 제각각이다. ▷미국이 G7을 주도하는 가운데 영국 캐나다 일본이 밀착 공조를 한다. 하지만 유럽대륙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국익 계산법이 다르다. 미국 영국 일본이 우리를 초청했고, 독일 이탈리아가 뺀 것이 우연만은 아니다. 미국과 함께 쿼드, 오커스, 칩4 동맹을 만들어 중국의 위상 약화를 노리는 나라들은 한국을 품으려 애쓰고 있다. 관행대로라면 내년 이후로 캐나다 프랑스 미국이 차례로 의장국이 된다. 나라마다 초청 기준은 다를 것이다. 그때마다 일희일비할 수는 없다. 초청받았다고 과잉 홍보할 필요도 없고, 공들였던 외교 노력이 실패했을 때 “별일 아니다”라며 축소할 일도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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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이재명이 찍는 2번째 결재 도장

    뭘 어떻게 해야 여야 협치인가. 이명박(MB) 정부의 4대강 사업에서 반면교사를 찾을 수 있겠다. MB 정부는 2008년 소수당인 민주당의 반대를 딛고 한강 금강 등 4곳에서 사업을 동시에 추진했다. 속도전까지 벌여 MB 정부 임기 내 모두 완성했다.4대강 사업 MB-민주-朴 협의했더라면 뒷거래처럼 들릴지라도, 정치에서 협치는 주고받는 거래 요소가 있다. 4대강 사업에는 MB 1인의 직인(職印)이 강렬히 남아 있다. 민주당 텃밭인 전남이 원하던 영산강 등 한두 곳에서만 공사하고, 그 결과를 확인한 뒤 나머지 강으로 확대했더라면 어땠을까. 민주당 대표에게는 ‘MB 사업을 크게 축소시켰다’는 공적이 돌아갈 테니 협력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친이-친박 갈등이 극심하던 그때 ‘여당 내 야당’인 박근혜 전 대표의 의중도 살폈어야 했다. 4대강 프로젝트의 결재란에 이명박, 민주당 대표, 박근혜 3인이 각각 도장(印)을 찍는 상상을 해 보자. 4대강은 MB 독식을 넘어서 협치 프로젝트로 거듭나고,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총선 전부터 전체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을 나눠 주자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기본시리즈 공약에 맞춰 14조 원대 추경예산 편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인플레 고통을 줄이겠다면서도 인플레를 유발할 돈 풀기에 나서면서 논란이 크지만, 일단 논외로 해 보자. 대통령은 이에 대해 며칠 전 “무분별한 포퓰리즘은 나라를 망친다”며 거부의 뜻을 밝혔다. 과거 같았다면 이렇게 끝날 일이지만 지금은 달라야 한다. 대란(大亂)을 대치(大治)로 풀어야 할 만큼 용산은 사정이 급하다. 대통령이 수용한다고 가정해 보자. 대통령 결재서류 옆 칸에 이 대표의 도장 찍는 공간을 두는 셈이 된다. 대통령은 민생과 협치의 이름으로 자기가 며칠 전 꺼내 든 반대를 거둬들여야 한다. 민주당이 엇비슷한 크기의 반대급부를 내놓으려면 ‘대통령의 정책’을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외국인력 비자 완화 등 여러 건의 킬러규제 완화 법안을 이제라도 처리해 줘야 한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다음 주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나기로 합의했는데, 이런 주고받기 협치를 논의하기를 바란다. 양쪽 모두에 불편하고 낯선 일인 것은 맞다. 대통령은 권력의 생살을 떼주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이 대표도 지금이 지지율이 23%까지 떨어진 대통령을 몰아붙일 기회라고 여길 것이다. 양쪽 극렬지지층은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타협이 없었더라면 사장됐을 프로젝트 2개는 실현되지 않나. 솔로몬의 재판처럼 위기에 빠진 국정을 걱정하는 진짜 어머니가 누구인지 살피는 기회도 있을 것이다. 협치와 절충은 여야 지도부의 정치력에 달렸다. 특히 여당인 국민의힘은 상상력을 발휘해 민주당이 동의할 교환 패키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한쪽이 60 대 40으로 유리하다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40 대 60인 법안을 찾아 2, 3개 묶어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용산과 與, 손해보는 주고받기 추진해야 비슷한 타협이 없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입법에 반대가 많았던 법안일수록 총대를 메고 거래를 성사시킨 여야 정치인 이름을 법안에 넣곤 한다. 의원들이 반대한 정치자금규제법(매케인-파인골드법), 기업 회계장부에 대한 책임 수위를 높여 재계가 반발한 법(사베인스-옥슬리법)이 그런 사례다. 우리도 대타협의 물꼬를 튼 정치인의 이름을 단 ○○○-○○○법이 나와야 할 때가 됐다. 박영선 총리 구상은 어설픈 소동이 됐지만 그 정도로 용산이 절박하다는 걸 확인하는 계기였다. 용산과 여당은 조금 손해 보는 듯한 거래를 민주당과 시도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작은 손해 보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고, 쓰러진 국정을 일으켜 세우는 기회도 된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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