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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백 영상과 몇몇 텔레그램 문자 내용이 공개된 이후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을 믿게 됐다. 정무수석, 인사기획관, 의전비서관이 할 일까지 관여하니, 역할이 생각보다 넓고 깊다고 한다. 이럴 바엔 대통령실 안에 직책을 부여하고, 국회에 출석하고 언론 질문에 답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해 봤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정부나 실수를 범한다. 그걸 바로잡아 본궤도로 돌아가는 건 진심과 실력의 영역이다. 궁지에 몰린 용산으로선 5년 임기 반환점을 눈앞에 둔 지금부터라도 좋은 국정을 체감시켜야 한다. 김 여사 처리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김 여사가 자숙 약속한다면 반드시 지켜야 대통령실은 국회의 특검법 처리, 검찰의 도이치모터스 사건 기소 여부를 봐 가며 시나리오를 짤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2년간 용산의 계산은 번번이 빗나갔다. 정치 테크닉 대신 대통령이 후보와 당선인 때 가졌던 초심으로 판단하기 바란다. 그러자면 “당선되면 아내의 일에만 충실하겠다”는 3년 전 김 여사의 약속은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대통령 부부는 약속을 지키려 했지만 못 지킨 걸까, 지킬 수 없다는 걸 그때도 알았던 걸까. 여기에 대한 답변은 친윤 그룹까지 요구하는 김 여사의 사과와 다짐, 실천과 검증에 꼭 필요하다. 김 여사가 앞으로 할 대국민 약속은 오차 없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야당이나 누구 때문이어서가 아니다. 인플레를 잡겠다는 유의 정책 약속도 아닌데, 대통령 부부의 진심만 있다면 지킬 수 있는 영역이다. 그 점에서 용산 출신 희대의 낙하산 인사가 한 발언은 뼈아프다. 대통령을 두고 “말을 듣나. 혼자만 이야기하고. (주변 참모 중) 누가 이야기하느냐”고 했는데, 내부자의 입을 통해 국정 1인자가 이렇게 희화화된 적은 드물다. 윤 대통령이 꼭 필요한 비판적 보고를 차단한다는 의미일 수 있고, 국정의 누수를 모를 수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사실이라면, 지지층마저 자존심 상할 말이다. 말을 막는 대통령, 그렇다고 간언을 못 하는 정치세력이라면 국정의 기회를 다시 줄 수 없다. 이런 민심 이반은 당분간 보수정치는 대한민국의 미래 만들기에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대통령 선거는 좀 다를 수 있지만, 총선은 구조적으로 국민의힘에 더 힘들어진 권역별 의석수 변화를 감안하면 한가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는 여소야대에선 대통령이 국정 목표를 추진하는 게 힘들다는 걸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같은 낮은 지지율을 방치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지역구 숫자 조정… ‘중수청’ 마인드 없으면 필패 헌법재판소가 기준을 제시한 총선 지역구별 유권자 편차를 따져보면 보수정치는 항아리 밑으로 물이 새는 걸 잊어선 안 된다. 2000년에는 편차가 4 대 1까지 허용됐다. 서울 경기 부산 등에선 30만 명이 넘어야 갑을로 분구됐지만, 농촌에선 7만5000명이면 쪼개졌다는 뜻이다. 그러다 3 대 1을 거쳐 2014년 2 대 1까지 좁혀놓았다. 상대적으로 젊고 고학력인 수도권 대도시 유권자의 표심을 반영하려는 시도로, 옳은 방향이다. 올 4월 22대 총선 지역구는 수도권이 121곳, 영남이 65곳이었다. 2000년 16대 총선 땐 각각 100곳, 66곳이었다. 편차가 2 대 1로 더 좁혀진 게 2014년인데, 이후에 치러진 3번의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08∼122석을 맴돌았다. 요즘 표현으로 중수청(중도-수도권-청소년) 정치를 지향하지 않을 땐 패배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영남정파 색채가 짙어가는 용산과 집권당은 대통령 부부 이슈를 중수청 마인드로 따져보고 있는가 묻게 된다. 선거가 멀었다지만, 유권자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1, 2주 김 여사 처리는 10년 정치지형을 바꿀 수 있다. 자칫하면 만년 야당을 각오해야 한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30년 넘게 통일운동가를 자처해 온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통일, 하지 말자”고 말해 논란이다. 그는 “통일 강박관념을 내려놓자. … 당위와 관성으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다. 그제 광주에서 열린 9·19 남북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다. 문재인 정부의 첫 대통령비서실장인 그가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 3명이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합의했던 통일의 당위와 필요성을 부인한 것이다. 그 자리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통일은 겨레의 여망”이라고 손잡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함께 있었다. ▷1980년대 말 전대협 의장 시절 ‘통일의 꽃’ 임수경을 평양에 보냈던 그는 2000년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남북 간 교류 확대를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했고, 대북송금사건 특검 수사에 반대했다. 대통령비서실장직을 떠날 때 “원래 자리로 돌아가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통일이 좋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통일, 하지 말자”고 말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임 전 실장은 연설에서 ‘통일 유보’ 주장을 두 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남북 간 화해 협력에 거부감이 생긴다는 것이 하나고, 통일을 유보할 때라야 남북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북한의 불법적 핵무기 개발이 핵심적인 이유라는 사실조차 그는 외면했다.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그의 주장은 김정은의 올 초 발언과 흡사하다는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김정은은 올 초 “남북은 더이상 동족관계가 아니며, 두 개의 적대적 국가”라고 선언한 뒤 초강경 대남 압박을 주도해 왔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문 전 대통령은 “기존의 평화와 통일 담론을 전면 재검토하자”고 화답하듯 말했다. 이 말은 “북한이 연방제 통일론 등을 폐기한 것으로 해석되는 만큼 비현실적 통일 논의는 접자”는 임 전 실장 생각과 상통한다. 연설 내용이 알려진 뒤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이 비판에 나섰는데, 문재인 정부 외교부 차관 출신이 나서 방어막을 쳤다. 이날 연설이 돌출행동이 아니라 사전에 조율된 것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임 전 실장은 차제에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3조도 없애거나 고치자고 했다. 그러나 북한 땅을 우리 영토로 여길 때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다. 이 조항을 폐기하면 탈북자를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어진다. 임 전 실장은 왜 이 시점을 골라 이런 연설로 논란을 일으켰을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라는 북한의 주장에 편승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것이 1차 의도일까. 여전히 남는 의문으로, 앞으로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주장을 추가로 내놓을 때 속뜻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요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10일 포착됐다. 인천의 한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두 사람은 5∼10m 떨어져 앉았지만,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 대통령은 정해진 동선에 따라 입장했다가 축사 후 퇴장했고, 바로 옆 원탁에 30분 전부터 착석해 있던 한 대표는 다가가 인사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냉기류가 흘렀다고 주변 참석자들은 전했다. ▷악수 불발은 당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 디올백 사과 문자 등 4월 총선 전부터 쌓인 이른바 윤-한 갈등의 한 단면이다. 여기에 이틀 전인 일요일 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만찬이 가져온 파장도 작용했을 수 있다. ‘번개 만찬’으로 알려진 그 자리에는 인요한 김민전 등 친윤 성향 최고위원, 윤상현 의원 등이 함께했다. 한 대표는 초대받지 못했고, 이튿날 언론 보도까지는 만남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당선되면 혼밥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근혜 문재인 등 전임자들과 달리 다양하게 만나겠다는 뜻으로 한 얘기지만, 밥과 술을 통한 끈끈한 관계 맺기를 중시하는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만찬과 악수를 둘러싼 이런저런 뒷얘기들은 양측의 기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실 한 대표는 열세 살 위인 윤 대통령을 사석에선 검찰 직함 대신 형이라고 부르는 걸 봤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과 각별했었다. 둘은 2022년 대선을 전후로 정치적 동지로 발전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둘을 갈라놓고 있다. ▷윤-한 갈등은 의리와 공적 업무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 것이냐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한 대표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법무부 장관이 될 때 윤 대통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친윤 일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대표를 정치에 입문시켜 당 비대위원장 자리를 맡긴 것도 윤 대통령이다. 그런 점에서 채 상병 특검법, 김경수 사면, 의대 증원을 놓고 한 대표가 대통령 뜻에 반대하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자 친윤에선 ‘배신’이란 표현까지 쓰고 있다. 한 대표 주변의 설명은 다르다. “대표와 대통령은 사적 의리가 아닌 공적 업무로 관계를 맺어온 사이인 만큼,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대통령 뜻을 따를 수만은 없다”고 한다. ▷한 대표는 7월 전당대회 때 63%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그러나 철저히 현역 의원 중심인 당 구조에서 여전히 소수파다. 국회 또한 여소야대 구도로, 한 대표가 주도할 이슈는 제한적이다. 그 바람에 당 대표가 된 뒤 오히려 지지율은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친한 그룹에선 이를 친윤의 고사 작전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여야 간에, 또는 여당 내 힘겨루기 성격이 강하다. 지척에서 악수도 안 나누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바라보는 민심은 속이 타들어 갈 것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3년 전만 해도 정치인 이준석은 만 36세 나이에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기대주였다. 그러나 1년 4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고, 쫓겨나듯 탈당한 뒤 4월 총선 때 개혁신당 후보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가 대표 시절 “윤핵관”으로 이름 붙인 친윤 그룹과 불화한 것이 진짜 이유지만, 그는 이른바 성 상납 사건을 이유로 밀려났다. 이 사건에서 그는 2013년 이후 벤처사업가에게서 성 상납을 받았고, 선물 등을 받고 박근혜 대통령 일정에 관여했고, 이런 주장이 공개되자 회유를 통한 증거인멸을 시도했고, 성 상납 주장을 한 쪽을 무고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4개의 혐의 가운데 무고가 5일 무혐의로 종결됐다. 4번째 혐의 무죄로 이준석을 옥죄던 형사 리스크는 사라졌다. 이에 앞서 성 상납은 공소시효 만료로, 알선수재는 증거 부족으로 정리됐다. 한때 위기도 있었다. 측근인 대표 정무실장이 문제의 술자리 술값을 냈다는 A 씨를 만나 “성 상납은 없었다”는 확인서를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7억 원을 (A 씨 지인인) 피부과에 투자가 성사되도록 하겠다”는 자필 각서를 써 준 것이 빌미가 됐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왜 그런 각서를 써 주겠냐는 의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은 “의혹 제기한 쪽이 증거라고 말한 폐쇄회로(CC)TV 동영상은 원래 없었다”면서 “없는 증거를 인멸할 만한 사정이 없다”고 봤다. ▷그는 현직 대표 시절 당 윤리위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는데, 자필 각서가 핵심 사유였다. 그런데 그때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친윤의 힘이 서슬 퍼렇던 국면에서 당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 바람에 5060세대 친윤이 30대 0선 대표를 몰아붙인다는 인상을 줬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대표를 내부총질자로 묘사한 대통령의 문자를 받았다가 촬영된 게 그즈음이다. 대표직 하차는 친윤의 승리였지만, 대통령의 포용력에 대한 의구심도 생겨났다. ▷지금은 당내 평가가 달라졌지만, 3년 전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체제의 등장을 체질 개선의 신호탄으로 보는 해석도 있었다. 선거 때마다 연전연패하던 국민의힘에 이준석 정치는 ‘2030 남성’이라는 새 지지층을 더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신승하면서 그의 기여도를 놓고 논쟁도 생겼지만 분명한 건 그가 밀려난 때를 기점으로 2030의 당 지지가 급감했다는 점이다. ▷이준석 배제는 뺄셈의 정치였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는 마음에 차지 않던 이 대표와 포옹도 하고, 당선 직후 결별할지언정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했다. “9가지가 달라도 1가지만 같다는 이유로 손잡는 자가 주도한다”는 게 정치다. 하지만 친윤은 정반대였다. 9가지가 같아도 1가지가 다르면, 그걸 이유로 배제했다. 뺄셈의 종착점은 선거 패배였고, 지지층에게 돌아온 상처였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꼭 봐야 할 동영상이 있다. 야당 의원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일제강점기 때 당신 아버지의 국적은 조선 일본 대한민국 중 어디더냐’를 질의하는 장면이다. 김 장관은 제대로 답을 못 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 의정 단상에서 15분이나 얼굴 붉힐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국정의 낭비는 안보전략과는 별개로 몇몇 무리한 인사를 한 용산 탓이 크다. 대통령은 지난해 한미일 3국 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한미동맹 말고는 제대로 된 안보협력체가 없던 우리로선 껍질을 깬 중대한 결정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막겠다며 중동에서 발을 뺀 결정(Pivot to Asia)이 나온 게 2010년이다. 그 후 오커스, 쿼드, 칩4 협력이 진행됐지만, 중국의 심기 등을 고려한 한국은 어디에도 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국제 질서가 바뀌고 있다.한미일 협력 강화에서 본 미래와 기회 미중 수교의 주역인 닉슨 대통령은 1990년대에 “우리가 (중국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창조자의 도움으로 인간 사회 적응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창조자에게 복수를 시도한 소설 속 괴물 말이다. 중국을 국제무역-금융 시스템 안으로 인도했다가 오히려 당했다고 여긴 미국의 처지를 절묘하게 비유한 것인데, 워싱턴의 반중 정서는 그때보다 나빠졌다. 미국은 겉으로는 뭐라 포장하든 중국과 러시아를 사실상 배제하는 글로벌 질서를 짜고 있다. 그 바람에 ‘안보는 미국과 하고, 돈은 중국과 번다’는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은 기회주의로 여겨지게 됐다. 이런 국면에 한국이 일본과 더 밀착함으로써 3국이 한 몸처럼 경제와 안보이익을 지키자는 게 워싱턴의 생각이다. 윤 대통령은 거기서 한국의 미래와 기회를 봤다. 한미일의 군사협력은 우리 야당과 중-러가 의심하듯 훗날 다자 간 안보협력체인 ‘동아시아의 작은 나토(NATO)’가 될 수도 있다. 반성을 모르는 일본 탓에 가능성은 낮지만, 100% 안 된다고도 말 못 한다. 이재명 대표의 먹사니즘에 빗대자면 윤 대통령은 ‘죽사니즘(죽느냐 사느냐를 건 국가안보)’의 첫발을 뗀 것으로 역사는 평가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그 과정에 일본과 대타협을 시도해도 되겠느냐고 국민에게 묻지 않고 결단했는데, 2018년 남북 군사합의처럼 훗날의 평가를 받는 영역에 해당하겠다. 야당은 “한국은 들러리”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 민주당이었다면 이랬을 것”이라는 대안은 안 들린다. 야당 대표의 인식이 “그냥 중국에도 셰셰(謝謝·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는 정도라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문제는 필요한 결단이었다 하더라도 국내 정치에선 찜찜함이 넘친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이 안보전략과 역사적 아픔을 구분 못 해서 자초한 일이다. 일본과 협력한다고 해서 “역사를 잊지 말라”고 촉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독립기념관장 등에 뉴라이트 인사들을 임명한 대목에서 찜찜함은 더 커진다. 학술의 자유야 당연하지만, 굳이 공직을 맡길 필요가 있을까. 모든 정치를 한일전으로 만들겠다는 야당 생각을 알면서도 대통령은 죽사니즘 3국 협력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불필요한 역사논쟁 자초할 이유가 뭔지 김문수 장관 영상처럼 우리 장관들이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이냐 48년이냐, 일제강점기 조상들 국적이 일본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봤다면 민망해야 정상이다. 야당을 탓할 때가 아니다. 상황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면 유연한 후퇴의 수를 찾아야 한다. 내년 3·1절에도 정부와 광복회가 행사를 따로 치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퇴임 후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퇴로 찾기는 못 할 일이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미국 정치에서 “플립-플롭(flip-flop)을 했다”는 평가는 정치적 치명상을 뜻한다. 우리말로 이랬다저랬다 혹은 갈지자 행보에 가까운 표현이다.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반대여론이 높은데도 재선에 성공한 것은 상대를 이 프레임에 가두는 데 성공한 영향이 크다. 상대편 후보가 전쟁을 위한 추경예산 110조 원 편성에 찬성표를 던져 놓고도 반전여론이 생겼다고 1년 만에 돌아선 것이 대통령답지 못하다고 외면받았다. ▷이렇게 치명적인 플립-플롭은 일관성을 중시하는 미국 정치의 전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노선 변경이 잦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기 위한 플로리다주 주민투표에서 반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6주 만의 판단은 너무 일러 산모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이유였다. 여성인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등장 이후 여성표 쏠림을 막으려는 시도다. 트럼프는 애초에 낙태 반대론자였다. 여성의 낙태권을 허용한 1972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50년 만에 뒤엎는 일에 그가 재임 중 임명한 강경보수 연방대법관 3명이 앞장섰다. ▷해리스 후보는 프래킹(fracking)이란 셰일가스 채취 공법에 대한 찬반 견해를 바꿨다. 암석에 고압의 물을 분사해 셰일가스를 채취하는데, 이 방식을 도입한 뒤로는 미국은 중동산 석유 의존증에서 벗어나고 있다. 다만, 수질오염 등이 심각해 민주당에선 반대가 강하다. 해리스 자신도 2020년 경선 때는 반대했다. 그러다가 부통령 후보가 된 후로는 돌아섰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올해도 핵심 경합주가 된 펜실베이니아주 때문이다. 셰일가스 산업 관련자 30만 명이 그곳 유권자다. ▷이 밖에도 트럼프는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하기 시작했다. 술 한잔 입에 댄 적 없다는 그는 마약반대론자였다. 요새는 “자기가 피우려고 소량을 지녔다고 일일이 적발한다면 행정력 낭비”라는 논리를 댔다. 젊은층 표를 의식한 결과다. 해리스도 과거엔 불법 이민자 형사 처벌을 두고 “미국답지 못하다”며 반대했지만, 지금은 동의한다. 이처럼 공화당 트럼프의 좌클릭, 민주당 해리스의 우클릭은 뜨거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이건 어디서건 이랬다저랬다 정치는 힘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시대와 기술이 바뀌고, 안보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오래전 생각을 고집하는 일관성이 좋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왜 갈지자 행보냐”는 비판에는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게 정공법이다. 어쩌면 올 대선은 플립-플롭에 돌아앉던 과거와 달리 유연함에 주목하는 보기 드문 선거가 될 수도 있다. 해리스는 지난주 인터뷰 때 첫 내각에 공화당원을 합류시키겠다고 했다. “다른 경험과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유연함을 강조한 말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약속했다가 어긴 게 있다면 공공기관 낙하산 근절 다짐을 꼽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21년 “제가 집권하면… 사장 누구 지명하고 이렇게 안 하고요.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을 시킨다? 저 그런 거 안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에 갓 입문해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앞세우던 시점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초에 “낙하산, 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낙하산 인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란 걸 알았을 걸로 짐작된다. ▷집권 국민의힘에서 4월 총선의 낙천·낙선자가 분명해진 지금, ‘낙하산 부대’는 점프 명령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5∼8월 57개 공공기관에서 기관장 선임 공고를 냈으니, 수십 개의 낙하산이 펼쳐질 수 있다. 하태경 전 의원은 보험연수원장에 일찌감치 내정됐다. 곳곳에서 하마평이 무성하다.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동서발전 사장에 권명호 전 의원, 남동발전 사장에 강기윤 전 의원이 유력하다는 식이다.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도 공기업행에 빠지지 않는다. 차순오 전 정무1비서관은 지난달 한국수출입은행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최근 용산을 떠난 강훈 전 정책홍보비서관은 한국관광공사 사장 공모에 지원한다고 한다. 신문기자 출신인 강 전 비서관은 공식 업무 이외에 김건희 여사 일을 종종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서관 출신으로는 드물게 큰 기관의 사장직에 도전하는 셈이다. 경쟁자가 나오겠지만, 그의 취임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낙하산이란 말이 정착된 수십 년 동안 언론은 비판했지만, ‘여권 핵심부와 관계가 좋다’는 것 말고는 어떤 경영 능력이 검증됐는지 알기 힘든 고위직 인사는 반복됐다. 그 이면에는 ‘권력 재생산’을 위한 인력 충원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정치권 인사의 설명은 이렇다. ‘3년 뒤 대선을 앞두고 잠룡들은 캠프를 차리고 사람을 모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급여가 없다. 내가 미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내게 공천 또는 공직을 줄 것이란 믿음 없이 장기간 무급 자원봉사를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실 참모 경험은 기관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해당 공기관의 내부 승진자만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전력 자회사 같은 기술기업이나 금융공기업처럼 적잖은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도 비전문가를 내리꽂는 일이 잦다. 그러면 공모 절차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국민들은 ‘내가 안 풀리는 건 힘센 사람에게 부탁할 수 없어서구나’라는 허탈감에 젖게 된다. 공정하게 실력 중심으로 선발한 올림픽 종목의 선수들이 줄줄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보며 환호했던 게 불과 1, 2주 전인데….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수미 테리(김수미·52)가 체포됐다가 풀려났지만, 간첩죄를 저질렀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을 떠난 뒤 우리 국정원에 협력했다. 간첩행위를 했다고 보기엔 명품백을 선물 받은 뒤 매장의 자기 계정에 등록하는 등 어수룩한 일이 너무 많았다. 그는 “외국 정부 에이전트로 활동해도 좋지만, 법무부에 등록한 뒤 활동 내용을 신고하라”는 법 조항을 안 지킨 쪽에 가까워 보인다.실체 감추면서 ‘객관적 지위’는 누려 그는 지난해 3월 워싱턴포스트에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일본에 양보의 손을 내밀었는지를 다룬 칼럼을 썼다. 윤-기시다 정상회담 직전 시점으로, 국정원이 준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는 게 공소장에 담겼다. 그가 법을 지켰더라면 법무부에 “어디 어디에 한미일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는 정도를 보고하면 됐을 일이다. 다들 그렇게 한다. 20년 전 특파원 시절 미 법무부의 사무실 한쪽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에이전트 보고자료’라는 걸 뒤져 봤는데, 아주 개략적인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수미 테리가 합법적 에이전트로 등록했다고 가정해 보자. 신문은 그 칼럼을 실어줬을까. 미 의회는 그를 청문회에 초청했을까. 그는 한국에서 돈과 선물을 받은 자기 정체성을 감춤으로써 전직 CIA 북한 분석관이라는 객관적 전문가로 행세했다. 그 덕에 유력 매체에 글을 척척 싣고, 미 의회에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정직의 의무를 저버렸기에 가능했는데, 미 검찰의 기소는 이 점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3년 노무현 인수위 때 정태인 씨(2022년 작고)가 경제1분과 인수위원이라는 핵심 자리에 발탁됐다. 유시민 씨와 대학 동기로,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편하게 놓을 정도로 가까운 참모로 통했던 인물이다. 그때 “정태인은 대선 1년 전부터 캠프에서 노무현 후보의 경제 과외교사로 일했다”는 기사가 여럿 등장했다. 문제는 정태인이 2002년 1년 내내 공영방송 KBS에서 퇴근길 라디오 경제 시사 프로를 진행했다는 데 있다. 경제전문가라면서 발탁된 자리였다. 그는 어길 법 규정이 없었던 탓에 수미 테리처럼 법 위반은 안 했지만, 캠프 참여 사실을 감췄다는 점에서 수미 테리와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진보적 톤으로 방송했는데, 수백만 KBS 청취자를 상대로 간접 선거운동을 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당시 분위기에서 누구도 이해충돌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반칙 사례가 정태인뿐일까. 수많은 대선 때마다 ‘비공개로 뛴 대선 캠프 참여자’가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의 직함을 앞세워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 글을 쓰는 일이 적잖게 있었을 거라고 본다. 이들은 미디어의 신뢰를 훼손시킨 대가로 캠프로부터 ‘열심히 뛴다’는 평가를 챙겼을 것이다.“캠프 참여 중” 밝히는 게 어렵나 미국 매체에선 부조리 차단의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2007년 워싱턴포스트의 한 칼럼엔 이런 글이 붙었다. “이 글을 쓴 (네오콘 이론가) 로버트 케이건은 공화당 대선 후보 매케인을 비공식적으로, 무급 형태로 돕고 있다.” 두 달 뒤 오바마 캠프 인사의 글에도 비슷한 ‘편집자의 메모’가 달려 있었다. 좋은 글은 얼마든지 게재하되, 독자들이 그 글의 필자가 특정 후보의 조력자라는 걸 알고는 읽으시라는 뜻이다. 독자 친화적이고, 언론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조치다. 전문가 그룹의 자존감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종종 실수하지만, 바로잡으려 노력할 때 사회는 단단해진다. 우리 수준으로 볼 때 2007년 미국 신문의 노력을 기본으로 만드는 게 대단한 일 같지 않다. 캠프 참여 인사들이 “나는 캠프에서 활동 중”이라고 밝히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미국의 부통령 후보는 지명 후 첫 연설을 들어보면 발탁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8년 전 트럼프의 마이크 펜스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어른스러운 연설로 트럼프의 약점을 보완했다. 4년 전 바이든의 여성 후보 카멀라 해리스는 50대답게 고령의 바이든이 못 갖춘 젊음을 앞세웠다. 보통의 미국인에 가깝다며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팀 월즈(60)는 그제 첫 연설에서 맞상대인 J 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40)의 저격수를 자임했다. ▷월즈는 흙수저 신화의 주인공인 밴스의 대중성을 건드렸다. 월즈는 “그가 보통의(regular) 미국인이라고? 아니다. 그는 (최고 명문) 예일대를 졸업했고, 실리콘밸리에서 억만장자를 상대하며 돈을 벌었다”고 꼬집었다. 밴스가 자기 가족의 밑바닥 삶을 기록한 책(‘힐빌리의 노래’)을 두고는 “고향 마을을 쓰레기로 묘사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밴스를 비판할지언정, 흙수저 신화만큼은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악역을 시골 고등학교 지리교사 겸 미식축구 코치를 지낸 친근한 이미지의 월즈가 떠안았다. ▷둘 사이엔 공통점이 많다. 우선,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군에 자원입대해 병사로 복무했다. 밴스 후보는 2003년 해병대에 입대해 4년간 근무했다. 2005년에는 6개월 동안 비전투 공보사병으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결석과 지각이 허다했던 학창 시절을 보낸 밴스는 해병대에서 자신을 찾았다고 책에다 썼다. “나는 안 된다”는 좌절이 잘못이란 걸 깨달았고, “인생을 계획한다는 개념을 처음 알았다”는 대목이 있다. 17세에 주 방위군에 들어간 윌즈 후보는 상근 또는 비상근으로 24년간 포병으로 복무했다. 군 생활 중 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그 역시 오랜 군 복무를 통해 삶과 일의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자수성가를 중시하는 미국인 정서에 부합한다. 월즈 후보는 시골 농장에서 자랐고, 이름 없는 대학을 다녔다. 밴스는 마약중독자 어머니 대신 외조부모 손에서 자랐고, 가까운 친척 누구도 대학을 졸업 못 했다. 부시-클린턴-오바마-바이든처럼 하버드나 예일 출신, 30세부터 상원의원을 지낸 미국의 주류가 백악관을 차지해 온 사실에 비춰 볼 때 상대적으로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이민, 낙태, 동성애 등 사회정책 견해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2000년 이후 치러진 6차례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한쪽이 모두 이긴 주는 35곳이다. 11월 5일 대선 때도 비슷할 것이다. 결국 그때그때 지지 정당을 바꾸는 경합주 6∼8곳이 승부를 가를 텐데,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등 이른바 쇠락한 공업도시의 저학력 노동자의 표가 중요해졌다. 왜 중서부를 배경으로 하는 두 후보가 간택됐는지가 명확해졌다. 앞으로 3개월 동안 ‘내가 더 보통 미국인답다’는 부통령 싸움이 더 거세질 것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그제 90분간 만났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도 배석했지만, 사실상 독대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여당의 새 지도부를 불러 대통령실 잔디광장에서 만찬을 한 지 6일 만이다. 지금 여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는 총선 전부터 불거진 윤-한 갈등을 봉합하는 일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수 있느냐다. 한 대표가 제안한 90분 회동은 가능성을 엿볼 기회였다. ▷대통령 가족과 여권을 옥죄는 민감한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회동 형식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지됐다. 대통령-당 대표 회동은 통상 만남 첫 2, 3분을 언론에 공개한다. 대통령 집무실 회동일 때는 거의 예외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언론은 물론 용산 참모 대다수에게도 알리지 않고 만났다. 오전 11시에 만나면서 각각 점심 약속을 취소하지 않았다. 낮 12시 반까지 대화가 이어졌지만 “점심 함께 하면서 더 이야기하자”는 제안은 없었다. “화기애애했다”는 용산 대변인 설명과 실제 상황은 거리가 있었을 거란 짐작이 가능하다. ▷90분 회동치고는 브리핑이 짧았다. 양쪽 설명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2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당 인사들을 포용하고 경청함으로써 한동훈의 사람을 만들라는 것이 하나고, 당직 개편 등 당무는 한 대표가 책임지고 잘하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그러나 이걸 두고도 국민의힘 내 친한-친윤 그룹은 제각각으로 해석했다. 친한은 당 대표 주도권을 인정해 줬다고 말했고, 친윤은 친윤 포용과 경청이 대통령의 진짜 생각이라고 풀이했다. ▷90분 만남 평가는 정점식 당 정책위의장이 유임하느냐, 교체되느냐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검사 출신으로 친윤 핵심인 정 의장의 1년 임기는 10개월 더 남았지만, 과거 정책위의장은 새 당 대표가 새로 뽑았다. 이 자리가 중요한 이유는 9명으로 구성되는 최고위원회 구성 때문이다. 현재 4 대 4인 친한 대 친윤의 구도가 정 의장 교체 여부에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윤-한은 당직 개편도 논의했다. 한 대표가 교체를 강행한다면 대통령이 한동훈 당 주도를 용인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독대나 다름없던 90분 회동의 특징은 과거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만날 때 있었던 ‘따로 만남’이 없었다는 점이다. 통상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와 식사를 한 뒤 20분(문재인-송영길) 정도 1 대 1 진짜 독대를 갖는다. 갈등이 컸던 박근혜-김무성 체제 때도 19분, 때론 단 5분 정도라도 밀담을 나눴다. 하지만 독대인 듯 독대 아닌 90분 회동은 대통령과 한 대표가 아직은 준비가 덜 됐거나, 독대 후 터져 나올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부담스럽다는 뜻일 수도 있다. 윤-한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시각은 여전히 우세하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해 사과한 일이 뒤늦게 공개됐다. 김 여사는 지난 주말 대통령경호처 별관으로 출장조사를 하러 온 검사들에게 “이런 자리에서 뵙게 돼 송구스럽다”며 “심려를 끼쳐 드려 국민들에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검사 앞에서 한 이른바 ‘대국민 사과’는 대통령실 공식 채널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변호사가 25일 신문사 유튜브에 출연해 공개했다. 4월 총선과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뜨거운 이슈였던 김 여사의 명품백 관련 첫 사과였으나, 형식도 어색한 전언(傳言) 사과가 돼 버렸다. ▷수사 때 입회 변호사는 인터뷰에서 “제가 공식적으로 말하는 게 부적절할 수 있다”면서도 준비한 메모를 확인해 가며 답했다. “김 여사가 사죄를 하고 싶어도 정무적 판단을 거쳐야 해 사죄를 쉽게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런 마음이 진심이라는 거는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김 여사의 동의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다. 해당 변호사는 얼마 전까지 용산 대통령실에서 법률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으로 일했다. 서울의소리 7시간 전화 녹취 사건 등에서 김 여사를 변호해 왔다. ▷명품백 사건은 ‘몰카 공작’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배우자가 선물이라며 사진까지 미리 보내온 300만 원 상당의 명품백을 받은 것은 충격적이다. 게다가 용산의 해명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처음엔 “대통령기록물이라 돌려줄 수 없어 보관해 왔다”고 설명하다가, 최근엔 “김 여사가 돌려주라고 지시했으나 실무자가 깜빡 잊었다”고 했다. 온 나라를 뒤흔든 명품백 수수 동영상이 공개된 지 8개월이 지나는 동안 김 여사는 침묵했다. 이런 중대 사안을 뒤늦게 변호인이 당사자의 사과를 갈음하는 듯이 불쑥 공개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김 여사의 변호사는 유튜브 방송 내내 일방적 방어논리만 폈다. 김영란법으론 처벌이 불가능했고, 서면조사로도 충분하지만 12시간 수사에 협조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가조작 수사가 본 수사였던 만큼 명품백은 시간이 남으면 조사받기로 했다는 설명에선 ‘검찰총장 패싱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장황한 변명은 이어졌지만 정작 국민이 궁금해하는 명품백을 어떻게 처리했고, 앞으로 어떻게 수사받고 국민 앞에 어떤 설명을 내놓을 것인지는 쏙 빠졌다. ▷김 여사의 이번 ‘전언 사과’는 그 적절성도 문제지만, 사과로서의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장면은 4월 총선 패배 후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논란’과 비슷한 점이 많다. 당시 대통령은 “민심을 더 받들겠다”는 사과의 말을 비공개 국무회의와 참모회의 때 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결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공개 사과했다. 사과는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어제, 진짜 관심은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의 상대가 누구냐였다. 현재로선 당연히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하지만 세 번째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백악관 밖에서 치료 중인 81세 바이든은 후보직 포기를 강하게 압박받고 있다. 민주당의 대모 격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총대를 멨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돌아선 것 같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젠 백악관 참모들까지 ‘결심 임박설’을 말하고 있다. ▷1968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여론 악화를 이유로 중도 하차한 전례가 있기는 하다. 다만, 3월 말 결단이었다는 점에서 대선이 100여 일 앞으로 닥친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묻게 된다. 왜 백악관은 당연해 보이는 불출마 가능성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걸까. 1년 전 여름 바이든은 충분히 노쇠해 있었다. 프롬프터 없는 연설에선 논리정연함도, 단단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바이든을 좋아하는 이들의 불출마 촉구가 그때부터 터져 나왔다. ▷백악관 참모들은 감추기에 급급했다. 바이든은 번번이 걸려 넘어졌고, 이름을 헷갈렸다. 그럴 때면 대통령의 일정과 카메라 노출을 줄였다. 참모들은 올봄까지도 “내부 회의 때 바이든은 날카롭고, 디테일에 강하다. 그걸 몰라준다”며 방어벽을 쳤다. 라디오 인터뷰에 응하면서 앵커에게 질문을 미리 제공한 것이 드러난 최근 해프닝도 보좌 실패의 작은 사례다. 바이든 곁 참모들이 진실을 가리면서 바이든은 궁지에 몰렸고, 민주당은 경선을 준비할 시간을 잃었다. ▷언론도 제 역할이 미흡했다. 한국계인 특별검사 로버트 허가 올 2월 “바이든은 기억력 나쁜 노인”이라고 보고서에 썼다. 5시간 대면 조사의 결과였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특검 발표는 새로울 게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그러면서 “바이든은 원래 말을 더듬지 않느냐”며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6월 말 첫 TV 토론 직후 “바이든은 후보에서 물러나라”는 사설을 쓴 뉴욕타임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동안 건강 상태를 지적했지만 “문제없다”는 백악관 반론을 매우 충실히 싣는 바람에 독자는 판단이 어려웠다. ▷바이든이 만약 7월 중 물러나더라도 실기(失機)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본인 몫이다. 그는 닷새 전 NBC 인터뷰에서 “여전히 출마한다”고 했는데, 정확한 현실 진단을 못 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큰 영향력을 지녔다는 질 여사도 남편의 명예를 지키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바이든은 출마를 강행해 트럼프를 이기거나, 깨끗이 양보해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원래 남의 바둑 훈수는 쉬워도, 자기 수는 안 보이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훈수꾼이 곁에 없었다. 남 탓 할 일이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재선 포기 압박이 더 강해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어떤 결심을 할까. 8월 중순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1개월 남짓이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①출마 강행. 부통령 후보에는 카멀라 해리스 현 부통령을 관행대로 지명한다. ②출마를 강행하되 부통령 후보로 제3의 인물을 지명. 재선 대통령을 지낸 버락 오바마가 유력 후보다. ③불출마 선언. 민주당은 초고속 경선을 통해 대체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선출 아니라 승계 땐 3번 중임 가능” 바이든은 선택지 ①을 움켜쥐고 있다. 그는 30세 이후 상원의원(36년), 부통령(8년), 대통령(곧 4년)을 지냈다. 하늘에서만 머물던 그는 TV토론 참패 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바람에 출마 집착이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질 확률이 더 커진 것으로 조사되고, 승리한다 해도 만 86세까지 대통령직 수행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패배한다면 노욕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으며 민주당에 죄짓는 일이기도 하다. 승리하더라도 정상 통치가 어렵다면 대통령직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②의 경우라면 현직 부통령을 내치는 평지풍파를 감수해야 한다. 미국 블로그를 중심으로 퍼져 가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통령 발탁 카드라면 돌파 가능하다. 여기에 “트럼프 집권을 막아낸 뒤 나는 취임 100일 되는 날 사임하겠다”고 바이든이 자기 희생을 약속한다면 설득력이 커질 수 있다. 내년 4월 말까지만 집권한다면 인지 능력 저하 우려도 어느 정도 씻게 된다. ‘부통령 오바마’가 대통령직을 승계해 3번째 4년 임기 대통령에 오르는 시나리오다. 미국 수정헌법 22조는 2번까지만 대통령에 투표로 선출(elected)될 수 있다고 못 박고 있다. 오바마의 3번째 임기는 얼핏 불가능해 보이지만, 실은 가능할 수 있다. 오바마는 2008년, 2012년 2차례 선출됐지만, 대통령 사퇴에 따른 부통령 승계(succeed)라면 선출된 것이 아니니 명시적 위헌이 아니다. 이재명의 헌법 84조 논란처럼 일종의 입법 미비다. 공화당은 꼼수 아니냐고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반민주, 부도덕의 대명사가 된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다퉈볼 수 있다. 선택 ③도 순탄할 수 없다. 새 후보를 뽑는다는 건 대혼란을 의미한다. 경선 룰 갈등은 분열을 부르고, 표 응집력을 떨어뜨린다. 갑작스러운 경선으로 국정 준비가 덜 된 후보가 뽑히더라도 트럼프를 꺾을 수 있을까. 바이든은 개인의 명예, 민주당의 승리, 민주주의의 앞날을 놓고 번민할 것이다. 바이든이 선택할 확률은 ①40% ②20% ③40%라고 생각한다. 노쇠함이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된다면 출마를 강행하는 ①의 가능성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트럼프를 꺾을 가능성만 본다면 시나리오 ②가 80%에 이른다고 생각한다. ①과 ③ 방식으로 약진하는 트럼프를 이길 확률은 20%를 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어떻게든 바이든과 민주당이 고사 가능성이 큰 오바마를 설득해 내는 것이 관건이다.권력은 외롭다… 그래서 오판한다 바이든은 전국 선거에서 9전 9승 기록을 갖고 있다. 그래서 ①을 통해 10번째 승리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②는 본인도 승리하고, 미국의 향후 4년을 경험 많은 오바마가 이끌도록 할 수 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권력의 속성상 “사퇴하시라”는 입바른 ③번 조언 받기는 참 어렵다. ②방식이 바이든과 민주당이 윈윈하는 모델이지만, “대통령님 말고는 트럼프를 이길 사람이 없다”며 ①을 속삭이는 백악관 참모가 아직까지는 다수일 것 같다. 질 확률이 큰 ①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40%나 되고, 이길 확률이 큰 ②의 가능성을 20%로 낮게 보는 이유다. 이처럼 권력은 외롭다. 그래서 권력은 종종 오판한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독점 인터뷰하는 행운을 얻었던 라디오 채널 2곳의 진행자 2명이 “시키는 대로 질문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동부 필라델피아의 앤드리아 로풀샌더스 앵커와 중서부 밀워키의 얼 잉그램 앵커가 그들인데, 로풀샌더스는 방송이 나간 뒤 이틀 만인 6일 해고됐다. 두 라디오는 청취자 대부분이 흑인인 곳이다. 노쇠한 바이든이 첫 대선 TV토론을 망친 뒤 압도적 지지층인 흑인 표심을 붙들어 두려고 기획한 인터뷰였다. ▷잉그램 앵커의 첫 질문은 “위스콘신주에서 대통령이 이룩한 성취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81세 대통령이 국정 수행 능력을 의심받던 그 순간에 자기 홍보의 시간을 안겨준 것이다. 이 질문은 바이든 캠프에서 사전에 제공한 질문이었다. 이 앵커는 5개 질문을 제시받고 그 가운데 4개를 골랐다고 인정했다. 로풀샌더스 앵커는 질문 8개를 캠프로부터 받았고, 그중 4개를 실제로 질문했다. ▷저널리즘의 기본을 깬 행위를 간파한 것은 CNN 앵커였다. CNN은 6일 바이든과 전화 인터뷰를 한 진행자 둘을 연결해 3자 간 화상 대담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둘의 질문이 이상하리만치 비슷하더라. TV 토론 평가, 당신들 주(州)에서 이른 성취, 바이든 안 찍겠다는 유권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혹시 바이든 쪽에서 준 것이냐”고 물었다. 로풀샌더스 앵커는 순순히 인정했다. 대선 4개월을 앞두고 라디오 저널리즘의 독립성을 뒤흔드는 말이었다. 라디오 채널 대표는 주말인 토요일에 앵커를 해고한 뒤 “우리는 바이든의 보호 도구(mouth-piece)가 아니다”라는 성명을 냈다. ▷라디오 인터뷰 때 바이든은 “뭐든 물어라(fire away)”라고 힘주어 말했다. 뭐든 답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았지만, 그는 상당수 질문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바이든은 TV토론이 부진했던 이유에 대해 녹음기 틀듯 동일한 답을 내놓았다. “나쁜 밤(a bad night)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는데, 백악관이 추가로 기획한 지상파 ABC방송과 한 인터뷰에서도 같은 답을 내놓았다. ▷해고된 앵커는 CNN 생방송 인터뷰 중에 “우리 라디오가 (바이든에게) 선택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바이든 측 질문 가운데 내가 몇 가지를 승인한 것”이라고 말할 땐 표정과 말투에서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해고되지 않은 잉그램 앵커의 라디오 채널에선 아직 반응이 없다. 하지만 전화 인터뷰 녹음 영상에 달린 댓글에는 지역의 소규모 라디오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대선 공론장에서 기본이 흔들리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이 여럿 달렸다. 바이든 캠프는 처음엔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비판이 커지자 떠밀리듯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물러섰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TV토론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자 여론조사 회사들이 바빠졌다. 바이든 외에 누가 트럼프의 맞상대가 될 수 있는지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인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62)의 부인 미셸(60)이 단연 주목 대상이다.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현직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 등 어떤 정치인도 트럼프에 못 미쳤지만, 미셸은 50%-39%로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서는 걸로 나타났다. “두 번까지만 선출될 수 있다”는 수정헌법 22조에 따라 남편 오바마는 출마가 불가능하다. 미셸을 향해 민주당 지도부의 눈이 반짝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오바마라는 지명도를 고려하더라도 예상 밖 수치였다. 미셸은 “선거에 관심 없다”고 말해왔는데,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그의 X(옛 트위터)를 보면 8년을 백악관에서 함께 보냈던 당시 부통령 바이든 이야기가 없다시피 하다. ‘무당파도 투표하자’는 시민운동 응원 글 정도가 눈에 띈다. 바이든의 모금 파티에 남편은 자주 참석하지만, 미셸은 가지 않았다. 미국의 부부 동반 문화를 감안하면 바이든 선거에 관심을 끊었다는 뜻이다. ▷44세에 영부인이 된 미셸은 백악관 8년 동안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퇴임 시점 호감도 조사 때 남편보다 높은 60%대 후반을 기록했다. 시카고대 병원 부원장 출신으로 청소년 비만 퇴치 운동에 앞장섰고, 변호사 경험을 살려 흑인 여성 아동 인권 신장을 위해 일했다. 절제된 언어로 하는 연설 실력도 인정받았다. 첫 자서전(비커밍·Becoming)은 31개 언어로 번역됐고, 1000만 부 넘게 팔렸다.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바이든 사퇴와 본인 결심이 꼭 필요하다. 그런 뒤에도 50개 주에서 약식이나마 경선에서 이겨야 한다. 경제, 복지, 범죄, 국방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과 중동, 한반도 등 대외정책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11월 5일 대선 때까지 4개월. 가난한 흑인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역경을 이겨냈지만, 지금 삶의 안락함을 떨쳐낼 수 있을까. 그가 쓴 책의 선인세는 800억 원대였다. ▷만약 미셸이 출마한다면 그건 ‘트럼프만은 안 된다’는 민주당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범적 안주인으로 누린 인기는 내려놓아야 한다. 비판이 집중적으로 쏟아질 것이고, 경험 부족에 따른 실수도 잇따를 수 있다. 여론조사 숫자만 믿고 덤빌 수 없는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출마 강행의 의지가 여전하다. 그렇다면 미셸과 바이든 둘 모두 같은 질문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나서면 혹은 내가 양보하면 과연 민주당은 트럼프 재선을 막을 수 있을까. 누구도 답을 모를 그 질문 때문에 민주당 핵심부는 당분간 머리를 싸매고 있게 됐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집권당이 선거에 패배했다면 나빠진 경제, 불통 이미지에 빠진 대통령을 패인으로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두 기준에서 비교적 성과를 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일요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크게 졌다. 그가 이끄는 중도 연합 앙상블은 제3당으로 밀릴 전망이다. 7일 시행되는 2차 결선 투표가 1차 때와 비슷하다면 극우파가 1당, 좌파 연합이 2당이 된다. 프랑스 언론은 대통령의 엘리트 이미지를 민심이반 요인으로 꼽았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마크롱의 오만하다는 이미지가 치명적이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은 임기 초 시민들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했는데, 실직한 청년 정원사와 나눈 대화가 카메라에 잡혔다. 마크롱은 “다른 일을 찾아보라. 가령 식당 웨이터 같은…”이라고 했다. 현실적인 조언일 수 있겠지만, 정원사로서 일했던 경험은 아무래도 좋다는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 대중은 상처 받았다. ▷지지율은 30%에 묶여 있지만, 업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전임 대통령들이 엄두를 못 낸 구조개혁에 매달렸다.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그로선 ‘나는 할 수 있다. 나 아니면 누가 할까’ 싶었을 것 같다. 그는 해고를 쉽게 하는 친기업적 노동개혁을 했고, 연금개혁을 시도해 구멍난 연금재정을 메워야 하는 납세자의 부담을 줄였다. 정책 수혜자는 쉽게 잊지만, 손해를 입었다고 믿는 유권자는 표로 응징하곤 한다. 이런 표심을 마크롱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가 야당의 반대를 넘어선 것은 절충과 타협 대신 프랑스 특유의 헌법 조항을 활용한 결과였다. 대통령이 49조3항을 발동하면 법안은 국회 표결 없이 발효된다. 의회주의를 거스른다는 비판 때문에 역대 프랑스 대통령은 이 조항을 대체로 1년에 1번 정도만 쓰는 절제력을 보였다. 마크롱은 2022년 재선 후만 따져도 20번 넘게 썼다. 여소야대 속 야당은 일방주의적이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경제 지표는 좋아졌지만 지지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취임 때 9%였던 실업률이 7% 선으로 떨어지면서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6%대 물가상승률도 2%대로 안정됐다. 46세 젊은 대통령답게 메모 한 장 없이 몇 시간씩 시민들의 질문을 받았고, 부유세를 폐지할 때는 전국을 돌며 끝장 토론을 11번이나 벌였다. 이런 마크롱의 ‘진심’은 “소통 쇼” 비판에 가려졌다. ▷1992년 미국 대선 때 클린턴 후보가 들고 나온 슬로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란 말이야(Stupid, it’s economy)”였다. 그 후로 먹고사는 민생이 선거의 제1 요건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프랑스 총선에선 먹히지 않았다. 비교적 좋아진 경제나, 대국민토론을 통한 설득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마크롱에겐 엘리트주의 이미지가 악몽처럼 돌아왔다. 흠집 나기는 쉬워도 되돌리기는 지난한 법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00년 동안 미국 대통령 후보들은 경제 정책과 대외 전략과 함께 개인적 인품, 인생 역정을 기준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어제 CNN 본사에서 열린 첫 TV토론을 본 시청자들은 건강과 스태미나라는 새 기준을 떠올렸을 것이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전직 대통령으로는 132년 만에 재선에 도전하는 가운데 81세(바이든)와 78세(트럼프)의 초고령 경쟁이 본격 시작됐다. ▷TV토론을 누가 더 잘했느냐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완승했다. 67% 대 33%. 승부는 두 후보의 목소리에서 갈렸다. 청소년 시절 말 더듬는 습관을 노력으로 극복했던 바이든은 유난히 더듬었고, 발음도 번번이 샜다. 잔뜩 쉬고 힘 없는 목소리에선 미국 대통령다운 단호함과 명료함이 안 보였다. 민주당이 토론 도중에 “감기 탓”이라고 해명을 내놓을 정도였다. 트럼프는 “방금 전 그 말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바이든 본인은 알까”라고 꼬집었는데, 바이든의 민주당 지지층도 반박하기 어려웠다. ▷악수도 없이 시작한 토론답게 두 후보는 후벼 파는 말을 앞세웠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성인물 여배우와 불륜을 저지르고 회삿돈을 꺼내 입막음용으로 준 사실을 상기시켰다. “당신은 아내가 임신한 그때 포르노 배우와 잤다”며 공화당 주류의 가족 중시 정서를 건드렸다. 또 “당신이 미군 전사자를 가리켜 썼던 호구(sucker)와 패배자(loser)는 바로 트럼프”라고 몰아세웠다. 대표적 신사 정치인인 바이든답지 못한 이런 강공은 곧 빛을 잃었다. 평소와 달리 비속어나 조롱성 발언을 절제한 트럼프의 변신이 더 눈길을 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멕시코 불법이민 등 정책 이슈가 나왔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바이든에겐 뼈아팠다. 트럼프는 늘 그렇듯 과장하고 왜곡해가며 “내 재임 시절 미국 경제가 최고였다”고 자랑했다. 이런 식의 왜곡은 미 언론이 수년간 팩트체크로 반박한 것이었지만, 바이든은 현장에서 반박할 능력이 없는 듯했다. 자신을 중국으로부터 돈을 받는 “만주(滿洲)의 대통령 후보”라고 부르는데도 별 대응을 못 했다. 하나하나가 바이든의 순발력과 집중력 부족을 부각시켰다. ▷미국 대선 TV토론은 1960년 처음 도입됐다. 당시 닉슨-케네디 중 승자는 젊은 상원의원 케네디 후보였다. “카메라 덕을 가장 크게 본 후보는 케네디”라는 말이 60년 넘게 힘을 얻고 있지만, 트럼프가 그 주인공이 될 듯하다. 바이든의 고민은 이제부터다.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거리던 고령 문제가 공론의 장에 올려졌다. 같은 편인 민주당 지지층이 더 아우성이다. 통상적이라면 바이든이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축제의 장이 될 8월 전당대회까지 민주당과 백악관은 큰 혼돈과 마주하게 됐다. 2차 TV토론은 9월 10일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북한의 오물풍선 공세에 골머리를 앓던 우리 당국이 선택한 대응법은 저강도 심리전에 가깝다. 통일부와 군 당국은 그제 오전 오물풍선이 또 날아올 정황을 파악한 뒤 풍선 속 오물의 실체를 일부 공개했다. 인분이 든 퇴비, 칼로 난도질한 청바지, 다 쓴 건전지, 체제 선전물 조각 등이었다.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제 밤 5번째로 풍선 350여 개를 날려 보냈다. 하지만 1개월 동안 날아든 2000개 안팎의 풍선에는 공작을 주도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예상치 못한 북한의 속살이 여럿 담겨 있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오물에선 사람의 DNA도 나왔다. 인체에 있던 회충 편충 등 기생충이 토양에 섞인 것으로 당국은 추정했다. 퇴비에 인분을 썼거나, 화장실 부족으로 일어난 일일 것이다. 7년 전 판문점에서 북 병사가 귀순했을 때도 기생충이 뉴스가 됐었다. 총상을 수술한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가 수십 cm 길이의 기생충 수십 마리를 제거한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영양 상태가 좋았을 최전방 병사에게서 벌어진 일이다. 풍선에는 찢어진 걸 몇 겹이고 기운 장갑, 구멍 난 곳을 여러 번 덧댄 양말, 옷감을 겹쳐 조악하게 만든 마스크도 있었다. ▷북 당국이 정보 노출을 막으려고 신경 쓴 흔적이 없지는 않았다. 병뚜껑에선 안쪽이 뜯겨 있었고, 플라스틱 병에선 라벨을 일일이 떼어낸 듯했다. 하지만 물자 부족을 드러낼 물건들을 전수 조사로 걸러내지는 못했다. 특히 오물의 DNA 분석까지 할 것으로는 북측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풍선 속에서 훼손된 김정은 찬양물이 나왔다는 점이다. ▷풍선에는 “김일성 대원수님의 교시”와 같은 선전물이 있었다. 쓰레기와 함께 담겼다는 것도 경을 칠 일이지만, “위대한 령도자(…)”에서 잘려 나간 것도 있었다. 북한에선 신성모독과 다를 바 없는 일로, 형법상 사형까지 가능하다. 2016년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체제 선전물을 훼손한 혐의로 장기간 억류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떠올려 보라. 엄격한 처벌을 모를 리 없는 북쪽의 누군가가 ‘령도자’ 관련 인쇄물을 훼손했고, 그걸 남쪽으로 내려보내는 과정도 꼼꼼하게 걸러지지 않았다. ▷상상도 못 할 오물풍선 공작은 탈북자 단체가 북으로 날려보낸 대북전단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은 맞다. 북한 매체들은 탈북자들을 “인간쓰레기”라고 비난해 왔으니 북한 나름대로는 형식 논리를 갖췄다고 여겼을 것이다. 오물풍선은 우리 불안감은 고조시켰지만, 북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헤집고 돌아다닐 때처럼 남남갈등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헛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지금의 긴장이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는 점에서 긴장해야 한다. 북은 남북이 더 이상 단일 민족이 아니라고 선언했고, 러시아와 동맹 수준으로 관계를 격상시켰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9분 능선을 넘어 끝난 일처럼 됐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헌(黨憲) 개정을 중단해야 한다. 중단할 수 있다는 유연함과 과단성을 국민 앞에 보여 줘야 한다. 친명의 충성심이 빚은 당헌 개정 작업을 두고 내부 깊숙한 곳에서 경고음이 울렸을 때 바로잡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저하의 상당 부분이 잘못을 스스로 교정할 능력이 부족했던 때문 아니던가. 이 대표는 이른바 개딸 정치를 해 온 40대 최고위원에게 당헌 개정의 실무책임을 맡겼다. 국회의장 후보 선출에 당원 의견 20% 반영, 연장 가능한 당 대표 임기, 기소될 때 당직 박탈 조항 폐지 등 3군데를 뜯어고치자는 의견이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이 대표가 “이건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임기 문제로 국한해 보자. 이 대표는 30년 관행을 깨고 올 8월 연임에 도전할 것이 분명하다. 그가 2027년 3월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1년 전에는 대표직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지금의 당헌이다. 당 대표가 자신도 출마할 대통령 후보 경선을 쥐락펴락하는 비민주성을 줄이자고 여야가 공히 채택한 제도로, ‘당권·대권 분리’라고 부른다. 이 조항을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땐 사퇴 시한을 바꿀 수 있다”는 쪽으로 수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몇 개월 임기 연장의 길을 터 준 조치로 여겨진다.“설탕만… 이 다 썩는다”는 최측근 경고 반론이 엄두가 안 나는 1인 체제 민주당이지만, 지난주 원조 친명인 7인회 소속 김영진 의원이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 대표가 설탕만 먹고 있다면 이빨이 다 썩는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개인 설득을 하기엔 너무 나가 버려,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김 의원은 이 대표의 중앙대 후배이자, 대학 총학생회장 시절 전대협 활동을 했다. 당 주류로서 손색없는 인물이 나섰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주 연석회의에 의원 등 206명이 참석했지만 반대 의견은 2명에 그쳤다고 한다. 지금대로라면 월요일 중앙위원회가 추인하면 절차는 끝난다. 하지만 이 대표의 대통령 꿈은 오히려 반발짝 멀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옳지도 않고 이익도 생기는 게 없는 일이다. 전두환도 7년 대통령 단임제로 개헌하면서 임기 조항은 변경을 하더라도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된다고 했다. 그게 신군부도 알던 상식이고 염치다. 이런 수준의 정치가 중도층 확장에 도움이 되는 걸까. 둘째, 민주당은 “윤석열 독재”라는 비판을 반복하지만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민주당은 뭐가 다른 걸까. 김영진 의원 말처럼 민주당이란 큰 공기(公器)에 대한 역사적 책임의식 부족에서 비롯된 일 아닌가. 셋째, 이 대표를 희화화할 소지가 있다. 이 대표는 “임기 조항은 손 안 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여럿 나왔다. 그런데 조항 손질 작업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 말이 이 대표의 진심이 아닐 것으로 민주당 핵심부가 판단해서였을까. “손대지 말란다고 정말로 그런 줄 알았느냐”는 패러디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브레이크 제때 밟는 솜씨 입증해야 이 대표가 대통령 꿈을 이루려면 이 대표 본인은 물론 참모그룹을 포함하는 ‘팀 이재명’에 액셀과 브레이크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추진력이 액셀이라면, 경고음에 멈출 줄 아는 능력이 브레이크다. 완급 조절 능력을 보여 준다면 국민들은 훗날 이재명 정부가 이렇게 돌아가겠구나 하고 기대감을 키울 수 있겠다. 지지지지(知止止止)라는 옛 말씀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멈출 때를 알아, 멈출 곳에서 멈춰야 하는 것은 만사의 이치다. 집권을 꿈꾼다면 이 대표도, 팀 이재명도 멈춰야 한다. 그럴 수 있음을 유권자에게 입증해야 한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중국에는 6월 4일이 없다. 그제는 ‘5월 35일’이었다. 포털에서 6월 4일을 검색하면 “해당 결과를 찾을 수 없다”는 글이 뜬다. 중국 메신저에선 6월 4일이 포함돼 있으면 문자가 전달되지 않는다. 8964라는 숫자도 마찬가지다. 1989년 봄 중국에서 개방파 공산당 총서기가 숨진 뒤 시작된 민주화 및 반부패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덩샤오핑이 무자비하게 탱크로 진압한 날이 바로 6월 4일이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5월 35일, 8의 제곱(64), 로마숫자 VIIV(64)로 검열을 피하고 있다. ▷35년 전에도 무자비했지만 1인당 소득이 1만3000달러에 이른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지우겠다는 당국의 뜻은 여전하다. 그제 네덜란드 기자가 중국 외교부 대변인에게 “사실상의 학살이었던 그 사건”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항의 풍파(소동)는 이미 끝난 일”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런 뒤 외교부는 이 대목을 삭제한 속기록을 공개했다. 톈안먼(天安門) 망루 관광이 하루 중단됐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걸 막기 위해 온라인 게임 사용자가 프로필 사진이나 아이디를 변경하는 것이 금지됐다. 일요일에 발간된 홍콩 종교 전문 주간신문의 1면은 백지로 나왔다. ▷같은 6월 4일이지만 달에선 중국의 우주 굴기(崛起)가 빛을 발했다. 중국의 무인 달 탐사선 ‘창어(달의 여신) 6호’는 달 뒷면에 착륙한 지 이틀 만에 로봇 팔로 토양과 암석 2kg 정도를 채취한 뒤 지구 복귀에 나섰다. 달 뒷면 착륙도, 뒷면 암석 채취도 인류 최초다. 달은 자전주기와 지구를 도는 공전주기가 모두 28일이다. 그래서 지구를 향해 늘 같은 쪽 절반(앞면)만 보여 준다. 역사상 달 토양 채취는 미국이 5번, 옛 소비에트가 3번 성공했지만 모두 앞면의 일이었다. ▷달의 뒷면은 앞면보다 울퉁불퉁해 착륙이 더 어렵고, 지구와는 직선 무선 통신이 불가능하다. 중국은 오작교라는 이름을 붙인 통신 중계위성을 미리 띄워 뒷면-오작교-베이징 3자 통신에 성공했다. 달 뒷면은 헬륨 3가 더 많아 광물 자원화 가능성이 더 크고, 소행성 충돌도 잦아 달 생성과 진화의 비밀을 풀 열쇠를 지녔다고 한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내려서서 성조기를 내건 뒤 미국이 달을 잊은 듯한 사이 중국은 오성홍기를 달 뒷면에 펼쳤다. ▷6월 4일의 두 얼굴은 중국에 대해 묻게 만든다. 억압과 창의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걸까. 달 뒷면 탐사는 과학 역량은 물론이고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도전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국가적 투자는 물론 과학자의 자유로운 사고와 연구 투명성이 불가결한 요소다. 베이징 권부가 개개인의 기억마저 장악하려는 6월 4일의 비극과 상충된다. 중국은 자유와 통제의 기로에 선 걸까. 아니면 국가 과학이 억압과 공생하는 두 얼굴이 상당 기간 유지되는 것인가.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