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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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재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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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1~2026-02-10
칼럼100%
  • [횡설수설/김재영]퀄컴에 인수설까지… ‘반도체 제국’ 인텔의 굴욕

    PC와 노트북마다 붙어 있던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파란색 스티커는 품질 보증서였다.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들어가 있다는 뜻으로, ‘반도체 제국’ 인텔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 제국은 붕괴의 위기에 놓여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이 인텔에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수합병(M&A)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나온다. 미국의 한 자산운용사가 인텔에 50억 달러(약 6조7000억 원) 투자를 제안한 것도 ‘제국’으로선 굴욕이다. ▷인텔의 적자 규모는 올해 1분기 3억8100만 달러에서 2분기 16억1000만 달러로 불어났다.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올해 들어 20% 오르는 동안 인텔 주가는 55%나 빠졌다. 급기야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에서도 퇴출될 위기에 몰렸다. 인텔은 전체 직원의 15%인 1만5000명을 해고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분사하는 등의 구조조정안을 내놨다. ▷인텔은 반도체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적회로(IC)를 발명한 로버트 노이스, 그리고 IC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을 만든 고든 무어가 함께 1968년 창업했다. 사명인 인텔(Intel) 자체가 ‘집적 전자공학(Integrated Electronics)’의 약어다. 1970년 세계 최초로 D램 반도체를, 1971년 최초의 CPU를 선보였다. 이후 PC 대중화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와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맺고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다. ▷‘외계인을 납치해 기술을 개발한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로 기술력을 자랑했던 인텔은 이후 PC에서 모바일, 인공지능(AI)으로 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 2006년 애플의 아이폰용 칩 생산 요구를 거절할 정도로 변화에 둔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면서 기술 경쟁력이 뒤처졌고, 조직이 비대화되며 의사결정은 굼떴다. “관료제가 인텔을 멍청한 회사로 만들어 놓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 1등이던 인텔의 몰락은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선 남의 일이 아니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기술산업의 속성이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로의 이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처럼, 혁신의 아이콘이 혁신을 게을리하다 도태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인텔의 굴욕’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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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프로참견러’ 이복현의 입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대출 규제 발언으로 시장을 혼란스럽게 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며 마침내 머리를 숙였다. 앞서 3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7월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 때도 사과한 적이 있지만, 감독기관 수장으로서의 관리 책임이 아닌 본인의 설화와 실책으로 고개를 숙인 것은 처음이다.낄 때 빠질 때 구분 안 하는 ‘실세 원장’ 그간 시장에선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대출금리는 금감원이 결정한다’고들 했다. 이 원장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요동쳤다. 7월 초 이 원장이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에 편승한 대출 확대”를 우려하자 은행들은 20차례 넘게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높이며 몸을 사렸다. 대출 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지난달 말엔 “대출금리 인상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은행들을 질책했다. 이에 은행들이 대출에 빗장을 걸자 이달 4일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호통쳤다. 다음엔 또 무슨 말을 할까, 그저 이 원장의 입만 쳐다보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알려진 이 원장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횟수만 보면 국무총리나 기획재정부 장관 등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금융기관 감독과 가계부채 대응 등 본업 외에도 빠지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법무부 주무인 상법과 형법 개정, 기재부 업무인 상속세와 금융투자소득세, 금융위 소관인 은행 지배구조와 공매도 재개 등의 이슈를 모두 이 원장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선 은행의 탐욕을 다그치고, 해외에 나가선 K금융을 세일즈하는 것도 이 원장의 몫이다. 검사 출신인 이 원장은 본인의 포지션을 ‘금융 분야의 검찰총장’으로 잡은 듯하다. 대한민국 모든 형사 범죄가 검찰총장의 손을 거치듯, 금융 전 분야가 금감원장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금감원이 상법 이슈를 챙기는 이유로 “자본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듯, 이 원장도 직제상 상위인 금융위원장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원장의 직설적 화법은 여전히 금융인보단 검사에 가깝다. 검찰은 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강조하면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금융에 대해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섬세하고 신중해야 한다.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정책대출의 금리’라고 해야 할 것을 ‘정책금리’라고 말하자 기준금리 인상으로 오해한 외국인들의 매도로 채권시장이 한때 출렁였다. 이 원장이 독주하는 데는 금융위의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금융위는 금융 정책, 외국환업무 취급기관의 건전성 감독 및 금융감독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고, 금감원은 금융위의 지도·감독을 받아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를 수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실세 원장을 앞세운 금감원의 힘이 금융위를 압도했다. 여당 국회의원들조차 신임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 “금융 당국 수장이 누구인지 헷갈린다”고 했을 정도다.금융위원장-금감원장 역할 정리부터 금융위는 존재감이 없고, 금감원은 전방위로 칼춤을 추면서 일각에선 이참에 금융감독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금융산업 정책과 금융감독 정책을 분리하자는 법안이 최근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감독 체계 개편은 성급하게 추진할 일은 아니다. 현행법대로 금융위는 금융 정책 및 감독을 총괄하고 금감원은 감독 실무를 수행한다는 원칙부터 확립해야 한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둘 다 ‘정명(正名)’을 되찾는 게 우선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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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세계 3대 신용평가사에서 ‘올A’ 받은 현대차·기아

    현대차·기아가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올 A’를 받았다. 최근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현대차·기아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A-로 상향했다. 신용평가사들은 현대차·기아를 묶어서 평가한다. 앞서 2월 미국 무디스와 영국 피치도 두 회사 신용등급을 A등급 단계로 올렸다. 세계 완성차 업체 중 모두 A등급을 받은 회사는 현대차·기아와 독일의 벤츠,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등 4곳뿐이다. 판매 대수 기준 세계 3위에 오른 데 이어 재무 건전성 등 질적인 측면에서도 인정받은 셈이다. ▷올해 들어 현대차·기아에 대한 평가가 높아진 것은 실적 개선과 유연한 생산 능력, 현금 창출 능력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부터 분기마다 역대 최대 실적을 다시 쓰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 139조4599억 원, 영업이익 14조9059억 원을 거뒀는데, 영업이익률은 10.7%로 세계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높다. 2분기엔 판매량이 줄었는데도 매출과 이익이 늘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제네시스 등 고급차 위주로 차량 구성이 재편됐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모두를 만들 수 있는 유연한 생산 능력도 현대차·기아의 강점이다. 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 하이브리드차에 주력하는 도요타와 달리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 우산과 짚신을 모두 팔아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사업구조를 갖춘 셈이다. 현대차가 인도에서 최대 30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의 시선 역시 달라졌다. 올해 2월 미국 경제방송 CNBC는 ‘현대차그룹은 어떻게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자동차 기업이 됐을까’라는 제목의 15분 분량의 방송 리포트에서 현대차·기아가 약진한 비결을 집중 분석했다. 로보틱스, 자율주행, 미래항공모빌리티 등 경쟁 업체들이 포기한 영역에도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동차 분야의 오스카’라고 불리는 월드카 어워즈에서 현대차·기아의 아이오닉, EV9 등은 2022년부터 3년 연속으로 ‘세계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해외 진출 초기 현대차의 홍보 전략은 ‘다른 차 한 대 값으로 우리 차 두 대를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반값 떨이 내지 ‘1+1’ 전략이다. 한국 경제에서 이제 자동차는 다른 의미로 ‘1+1’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 부진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울 때 자동차는 역대 최대 실적을 앞세워 수출을 떠받쳤다. 반도체라는 단발 엔진으로 버티던 한국 경제가 쌍발 엔진을 장착한 것이다. 현대차·기아의 질주가 계속돼야 할 이유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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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금융당국이 대출금리 개입? 선진국에선 상상 못 할 일”

    《요즘 금리가 수상하다. 자고 일어나면 대출금리가 오른다. 지난달 이후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린 게 20차례나 된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따라 대출금리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내 집 마련을 계획하던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지난달 초 금융당국이 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모아 대출을 관리하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몇 달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은행들은 금리 인하 경쟁을 펼쳤다. 정부는 여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비교해 싼 이자로 갈아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를 주도한 공무원들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며 칭찬했다. 대출금리를 내린 것도, 몇 달 뒤 올린 것도 은행이 아닌 정부인 셈이다.》21일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를 만나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관치 금리’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물어봤다. 강 교수는 한국은행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통화금융팀장, 금융안정분석국장, 금융안정 담당 부총재보를 지낸 금융 전문가다. 그는 정부의 대출금리 개입에 대해 “금융 선진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시장금리는 내려가는데 대출금리는 거꾸로 오르고 있다. “국고채 금리, 시장금리의 하락은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다. 시장 메커니즘은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 수요와 공급 등을 통해 결정돼야 하는데 대출 역주행은 이를 거스르는 현상이다. 당국이 창구지도를 하고 은행의 팔을 비트는 식으로 대출금리 인상을 유도하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정하고, 그에 따라 시중금리가 움직이고, 이에 맞춰 기업과 가계가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통화정책의 파급 경로인데 완전히 왜곡돼 버렸다. 시장 참여자들도 금리가 오를지 내릴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나. “글쎄 후진국에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알 만한 금융 선진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몰라 다른 동료 전문가들에게 그런 사례가 있나 물어봐도 피식 웃기만 하더라. 개입하더라도 한국처럼 모두가 알 정도로 이렇게 대놓고 파열음을 내면서 하진 않을 것이다. 행정지도 방식의 직접적인 금리 통제는 아주 후진적이다. 이렇게 했을 때의 파장과 반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나. “정부는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의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은행 대출금리까지 간섭하는 모습을 보면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정부가 금융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위해 정부가 총력을 다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발목이 잡히는 것이다. 긴 호흡으로 보지 않고 우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해결하려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돈잔치’ 발언 이후 관치가 심해졌다는 지적이 있다. “대통령이 지적한 부분은 일리는 있다. 우리 금융기관들이 예대마진에만 의존해 이자 장사에 몰두해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관치에 안주해 온 은행들이 반성할 부분도 많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 이후 감독 당국이 우리 금융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게 할지를 고민해야 했는데 손쉽게 은행 때리기에만 치중한 게 문제다. 소규모 특화 은행 육성 등의 혁신 노력도 했지만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를 겪으면서 쑥 들어가 버린 건 아쉽다.” ―금융감독 당국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가.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금감원 스스로의 지배구조도 돌아봐야 한다. 금감원이 모든 금융기관의 감독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럼 금감원은 도대체 누가 감독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금감원은 금융감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은행·증권·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을 합친 통합감독기구로 1999년 출범했다. 영국의 금융감독청(FSA)을 모델로 했다. 하지만 정작 FSA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2013년 해체됐다. 건전성 감독 업무는 영국은행(BOE) 산하의 건전성감독청(PRA)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감독은 독립기구인 금융행위감독청(FCA)으로 이관했다. 모든 감독 기능이 한 지붕 아래 있으면 상호 견제가 안 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이 전면에 나서는 느낌이다. “금감원이 상법 개정,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등의 이슈를 주도하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 챙겨야 할 일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카카오페이가 고객 동의 없이 40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넘긴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도 감독 당국이 몇 년 동안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티몬·위메프 환불 중단 사태도 사전에 대비하지 못하고 뒷북을 치고 있다. 국민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고 단속하라는 것이다.” ―검사 출신 원장의 문제는 아닐까. “외부 출신이 오면 조직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부분도 있다고 본다. 다만 수사기관의 관점이 아니라 금융계의 문화나 문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부에서 원장의 행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국민에게 그렇게 인식된다면 스스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에서 한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이 나온다. “미국에서도 논란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결정 과정에 대통령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연준은 독립적인 기관이며 대통령으로서 난 연준이 하는 결정에 절대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을 했다. 해리스 후보의 말이 맞다고 본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정부 얘기는 참고만 하고, 경제 및 금융 상황과 데이터에만 집중해서 독립적으로 금리 결정을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원팀임을 강조하는 이른바 ‘F4(Finance4·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감원 한은 수장을 의미)’ 회의는 한은의 독립성을 고려할 때 어색해 보인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얼굴을 맞대고 악수하는 모습, 일본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이 만나는 그림이 상상이 되나.” ―통화정책과 금융정책이 엇박자를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의 의견이 다른 것은 정상이다. 사안을 똑같이 볼 수는 없다. 다만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인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에서는 방향을 맞춰 함께 해법을 모색했어야 했다. 한은이 통화 긴축을 하는데 정부는 대출금리를 낮춰 버리고, 이제 기준금리를 내리려는데 당국이 대출금리를 올리는 식의 엇박자는 문제다. 한쪽에서 에어컨 틀고, 다른 쪽에선 보일러 켜는 식이면 정책이 작동될 리 없다. 고금리 상황에서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는 확실히 해결하고 갔어야 했는데 아쉽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연착륙을 대전제로 깔고 저금리 정책대출을 크게 늘리고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를 늦추면서 실기한 측면이 있다.” ―9월 미 연준의 금리 인하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미국과 한국의 물가와 금융 안정 상황은 다르다. 방향성은 같다고 해도 속도와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정부의 개입으로 통화정책의 효과가 많이 왜곡된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은이 시장과 커뮤니케이션을 굉장히 섬세하게 해야 할 시점이다. 22일 한은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현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부동산 가격을 부추길 위험이 더 크다”고 했다. 결국 향후 인하를 하더라도 가계부채,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을 만큼만 내리겠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다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폭이 예상보다 더 커진다면 한은이 이 같은 스탠스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통화금융정책 당국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 가계부채 문제 해결이다. 미래 세대인 청년층이 굉장한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책 당국자들은 항상 미래 세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정책을 펼 때마다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 ‘이렇게 하면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느냐’를 계속 되물어야 한다. 이러면 내 집 마련 쉽게 해주겠다고 50, 60대에게까지 50년 만기 주담대를 내주고, 대출 총량 규제를 한다며 청년들의 대출까지 일괄적으로 막아버리는 식의 정책은 나오지 않는다. 단기적 관점에서 냉탕 온탕을 오가는 식의 정책 운용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강태수 교수△ 1958년 서울 출생△ 1993년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1982∼2014년 한국은행 통화금융팀장, 금융안정분석국장, 부총재보△ 2012∼2014년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위원△ 2014∼2020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0년∼현재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 2022년∼현재 금융위원회 자체규제심사위원장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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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AI 거품론’이 부른 검은 금요일

    변덕스럽기가 기후변화 못잖다. 금리 인하 기대감과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서머랠리’(여름 강세장)를 외치던 글로벌 주식시장 분위기가 한여름 때아닌 한파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미국 경기 침체의 공포와 ‘AI 거품론’에 2일 아시아 증시는 ‘검은 금요일’을 연출했다. 코스피는 3.65% 급락하면서 50여 일 만에 2,700 선이 뚫렸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5.81% 폭락해 36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을 보였다. ▷불안한 투심에 불을 지핀 것은 AI 산업에 대한 회의론이다. 미국 소비와 고용이 침체되면서 AI 투자가 계속될 수 있을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지 불안감이 커졌다. AI 열풍을 대표하는 엔비디아는 6월 중순 세계 시총 1위에 오르며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자마자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전고점이던 지난달 11일 이후 한 달도 안 돼 20% 가까이 주가가 떨어졌다. 시총 4조 달러 선점 경쟁을 벌이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는 이제 뒤로 달리기 경쟁을 하고 있다. ▷일각에선 AI 시장을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에 빗대고 있다. 엔비디아의 부상과 위기를 보면서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네트워크 장비 시장을 장악하며 단번에 빅테크 반열로 올랐다가 주가가 폭락한 시스코를 떠올린다. 챗GPT의 충격과 찬탄은 잦아들기 시작했고 이제 시장은 AI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VC)인 세쿼이아캐피털은 “주요 빅테크의 AI 투자는 연간 6000억 달러(약 822조 원)에 이르지만, 수익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1000억 달러(약 137조 원) 미만”이라고 분석했다. ▷AI 진화 속도에 맞춰 인프라가 뒤따를지도 의문이다. 특히 전력이 제대로 공급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전기 먹는 하마’인 AI 데이터센터 등으로 2030년 미국의 AI 전력 수요는 2023년 대비 80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전력 공급 인프라를 단기간에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모두가 밝은 미래를 의심치 않았던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빠졌듯이 산업의 성장은 불균형을 피할 수 없다. ▷AI라는 용어는 1955년 컴퓨터 과학자 존 매카시가 발표한 ‘지능이 있는 기계를 만들기 위한 과학과 공학’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AI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며 1970년대 초반과 1980년대 후반 두 차례의 혹독한 겨울을 겪어야 했다. AI의 미래가 장기적으로 낙관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은 꽃길이 아닌 굽이굽이 비탈길이다. 이번 위기가 ‘세 번째 겨울’의 전조일지, 아니면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일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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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크루즈’ 믿고 고속도로 달리다 ‘쿵’, 올해만 9명 사망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는 버스 기사가 고속도로에서 경험한 황당한 목격담이 소개됐다. 고속도로 1차로를 달리고 있는데 앞에서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비틀비틀 저속 주행하고 있었다. 상향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주의를 줬지만 변화가 없었다. 차로를 바꿔 추월하면서 살펴보니 운전자는 주행보조 시스템을 켜놓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최근 들어 주행보조 기능만 믿고 운전을 태만하게 하다 사고를 유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운전자들이 장거리 주행 때 즐겨 활용하는 대표적 주행보조 장치가 ‘크루즈 컨트롤’로 불리는 ‘적응형 순항 제어 기능(ACC)’이다. 전방 차량을 인식해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운전자가 설정한 속도로 주행하게 도와준다. 자율주행 1∼5단계 중 2단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제조사마다 현대차·기아는 SCC(스마트크루즈), 일본 도요타는 DRCC(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 미국 테슬라는 AP(오토 파일럿) 등으로 명칭이 다양하다. ▷운전자들이 ACC에 지나치게 의존해 전방 주시를 게을리하다가 돌발 상황에 대응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7월까지 고속도로에서 ACC 이용 중 19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17명이 사망했다. 올해에만 8건의 사고로 9명이 숨졌다. 5월 호남고속도로에서도 교통사고 현장 관리 중이던 한국도로공사 순찰차를 뒤따르던 승용차가 추돌해 공사 직원이 사망했는데, 가해 차량이 ACC 작동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ACC는 건조한 노면과 평지, 일반적인 중량을 기준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에 비나 눈, 안개와 같이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 카메라와 센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젖은 노면에서는 제동 거리가 늘어나 앞차와의 거리 유지가 어렵다. 탑승자가 많아 차량 무게가 늘어난 경우나 내리막길, 굽잇길에서도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앞선 차량의 속도가 느리거나 정차한 경우, 공사 중이거나 사고 처리 중인 경우에 제때 속도를 줄이지 못해 추돌할 수 있다. 사용 설명서에 적힌 인식 제한 상황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와 고속도로사고데이터연구소(HLDI)가 보험 데이터와 사고 기록을 분석해 보니 주행보조 시스템을 장착했다고 해서 충돌 보상 청구율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하지 않았다. IIHS는 “주행보조 시스템이 거짓된 안정감을 주고 지루함을 유발해 운전자가 집중력을 잃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안전기능이 아닌 전동 창문이나 열선 시트 같은 편의기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안전 운전을 책임지는 것은 운전자 자신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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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공무원 10명 중 3명 ‘조용한 사직’ 상태

    공무원을 흔히 ‘공복’이라고 하지만 요즘 젊은 공무원들은 스스로를 ‘공노비’라고 자조한다. ‘복(僕)’이 종이나 머슴을 뜻하니 차이가 없는 것도 같지만 어감은 완전히 다르다. 공복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지만 공노비에겐 보람과 사명감이 없다. 박봉에 업무는 과중하고 악성 민원에 시달리기 일쑤다. 경직적 조직문화에 자율성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다.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누칼협(누가 칼 들고 공무원 하라고 협박했나)’이라는 비아냥만 돌아온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1021명을 대상으로 가치관 조사를 한 결과를 연세대 행정학과 연구진이 추가로 분석해 보니 공무원 10명 중 3명은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사직은 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업무만 하겠다는 태도로 자리만 지키는 것이다. 응답자의 32.52%(332명)가 ‘조직이 원하더라도 추가적인 직무를 맡을 용의가 없다’고 했다.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수록, 연령이 낮을수록 조용한 사직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공직사회는 박봉과 악성 민원, 낡은 조직문화 등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다. 올해 9급 초임(1호봉) 공무원의 월평균 급여액은 222만2000원(세전)으로, 주휴수당을 포함한 월 최저임금보다 16만 원 많은 수준이다. 하루에만 평균 100건씩 생기는 악성 민원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공무원까지 나왔다. 선망의 대상이던 공무원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 경쟁률은 21.8 대 1로, 1992년 이후 32년 만에 가장 낮았다. 재직 기간이 5년이 안 된 공무원 퇴직자는 지난해 1만3566명으로 5년 만에 2.4배로 늘었다. ▷조직문화는 무기력을 학습시킨다. 한국행정연구원이 공직을 떠난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국민의 삶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공직 문을 여는 순간 깨졌다고 했다. 갓 배치되자마자 인수인계도 없이 수억 원의 예산 편성을 떠넘기며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순환보직으로 1, 2년 뒤 다른 자리로 옮기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반복됐다. 능력 있으면 보상과 대우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업무 부담만 늘어났다. ▷고위 공무원들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극단을 오가는 정책 기조에 따라 눈치를 봐야 한다. 일을 열심히 하면 직권남용, 안 하다간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소신과 적극 행정은 접고 적당히 소극 행정을 하는 게 안전하다는 보신주의가 몸에 밴다. 직원들이 잠재적 퇴사 상태인 회사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젊은 인재들은 공무원 되기를 꺼리고, 기존 공무원들은 자리만 지키려는 분위기에서 국가 행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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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매년 이공계 인력 3만명 해외로… 위험수위 ‘두뇌 유출’

    4000명 대 3만 명. 2010년 이후 이공계 인력의 연평균 국내 유입과 국외 유출 규모다. 우수 인재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기만 하고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는 ‘인재 수지 적자’ 상태다. 기초과학 분야는 물론이고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인재 유출이 심상치 않다. 더 우려스러운 건 숫자보다 질이다. 국내의 에이스급 연구자와 학생들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이탈하고, 그 빈자리를 인도 베트남 파키스탄 등에서 온 학생들이 채우는 실정이다. 4대 과학기술원의 박사후연구원 4명 중 1명이 외국인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한국 이공계 두뇌들의 ‘탈(脫)한국’은 심각한 수준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2021년 24위에서 2023년 36위로 추락했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대학원을 마친 AI 인재의 약 40%가 해외로 나갔다. 인도,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다. 미 스탠퍼드대가 조사한 1만 명당 AI 인재의 국제 이동 지표에서 한국은 순유출을 보였다. ▷‘인재 엑소더스’의 가장 큰 이유는 확연히 차이 나는 처우다. 구글의 신입 직원 평균 연봉은 18만4000달러(약 2억5000만 원)에 이른다. 이에 비해 국내 대기업들의 평균 연봉은 1억 원을 갓 넘고, 정부출연연구소는 9500만 원에 불과하다. 기초과학 분야에선 처우를 떠나 제대로 된 일자리조차 부족하다. 1990년대엔 이공계 박사 인력 대비 박사급 일자리가 2.6배였는데, 지금은 0.5배에 그친다. 이러니 대학 입시에서 최상위 학생은 의대에 뺏기고, 학부와 대학원에서 기껏 키운 인재는 해외에 뺏긴다. ▷사실 보상에만 초점을 맞추면 애초에 경쟁이 어렵다. 하지만 고급 인재를 붙잡아 두는 데는 보상만큼이나 연구 환경이 중요하다.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 AI 연구자들에게 ‘귀국을 고려할 만한 조건’을 물었더니 우수한 동료 연구진과 연구 인프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연구 문화를 우선적으로 꼽았다. 이공계 인재들이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는 연구를 한다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는 것도 과제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이공계 인재 확보는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다. 우수한 학생들을 이공계 핵심 인재로 키워내고, 양질의 해외 인재를 한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마음껏 연구하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혁신 연구개발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공계 인재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첨병이다. 무역적자보다 더 두려운 인재적자를 해소해야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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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역대급 엔저에 ‘싸구려 국가’ 된 일본

    최근 일본에선 하와이 문화를 체험하는 ‘하와이 물산전’이란 행사가 성황이다. 일본인들의 하와이 사랑은 원체 각별하지만 인기를 끄는 이유를 알고 보면 짠하다. 이젠 하와이에 직접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9년까지 일본인의 해외 관광지 톱3 안에 빠지지 않던 하와이 호놀룰루는 올해 명단에선 사라졌다. 달러당 엔화값이 160엔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엔저(엔화 가치 하락)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싸구려 일본(야스이 닛폰)’이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로 엔저가 장기화된 일본인들의 일상은 팍팍하다. 수입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학교 급식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사라졌다. 1980년대에도 가던 해외 수학여행을 포기하는 학교가 늘었다. 지갑이 얇아진 사람들이 저렴한 상품만 찾으면서 ‘100엔 숍’의 매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1조 엔을 돌파했다. 과거엔 일본인들이 해외를 누비며 “야스이, 야스이(싸다 싸)”를 외쳤지만, 이젠 반대로 일본으로 몰려든 외국인 관광객들이 “싸다 싸”를 연발한다.엔화 구매력 감소에 가난해진 일본인들 일본이 엔저를 용인한 건 2013년 금융 완화와 재정 확대, 성장 전략 등 ‘3개의 화살’을 쏘아 올린 ‘아베노믹스’로부터 시작됐다. 엔화 약세는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주요 수단이었다. 하지만 투자 확대와 소득·소비 증가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긴 일본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수출 확대의 온기가 내수로 퍼지지 않았고 저성장은 장기화됐다. 오히려 수입가격 상승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았고, 엔화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일본 국민이 가난해지는 결과만 낳았다. 장기 저성장은 익숙한 일본의 문화도 바꿔 놓았다. 선진국의 넉넉한 여유가 사라지면서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환대)’ 문화가 실종됐다. 값싸게 일본을 즐기러 온 해외 관광객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에 외국인에게 웃돈을 받는 ‘이중 가격제’가 확산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을 상징하는 ‘모노즈쿠리’(장인 정신)도 희미해졌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업계 전체에 만연한 인증 조작 스캔들은 일본 기업들에 적당주의가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다. ‘좋은 엔저’를 표방하며 시작한 정책이 ‘나쁜 엔저’를 넘어 ‘슬픈 엔저’로까지 전락하게 된 것은 구조개혁을 통한 경제 체질 개선이라는 고리가 빠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기업들은 엔저로 손쉽게 실적을 올리면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외면했다. 글로벌 트렌드인 디지털 전환에 뒤졌고, 성장을 견인할 새로운 산업에 대한 투자는 부족했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20년째 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구조개혁 없인 저성장 탈출 없다’는 교훈 한국도 일본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본이 엔저라는 마약에 취했다면 한국은 수출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준 중국의 달콤함에 취했다. 반도체의 물결에는 잘 올라탔지만,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산업에선 뒤졌다. 올해 들어 반도체 수출이 반짝 호황을 보이자 그나마 지난해 바짝 긴장하던 위기감도 쑥 들어가 버렸다. 노동·연금·교육 개혁은 어느새 화두에서 사라졌고,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은 이제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듯하다.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앞질렀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정작 핵심은 따로 있다. 통계 기준연도를 개편해 보니 이미 2014년에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3만 달러 초중반의 덫에 걸려 있었단 얘기다. 장기 저성장의 위험을 보여주는 일본에서 교훈을 얻어 구조개혁의 돌파구를 열지 못한다면,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신세 한탄하는 다음 차례는 한국이 될지도 모른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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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11시간 지연에 거짓 해명 논란까지, 이런 항공사 믿고 탈 수 있나

    13일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티웨이항공을 통해 인천공항에서 일본 오사카로 떠나려던 승객들은 여행의 설렘이 악몽으로 바뀌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낮 12시 5분 출발 예정이었는데 기체 점검 등을 이유로 예정보다 4시간 늦게 탑승했다. 기내에서도 3시간 넘게 머물러야 했다. 다시 항공기에서 내려 기다린 끝에 오후 11시 4분에야 이륙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승객은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쓰러졌고, 탑승객 310명 중 204명이 출국을 포기했다. ▷운항 지연도 문제지만 이유를 알고 보면 더 어이가 없다. 당초 오사카행 비행기는 HL8500편이었는데 실제 출발한 건 HL8501편이었다. 먼저 출발 예정이었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행 항공기가 기체 결함으로 지연되자 오사카행을 대신 투입한 것이다. 일각에선 티웨이 측이 회사 손해를 줄이기 위해 오사카행 승객에게 피해를 떠넘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EU)에선 항공사 문제로 지연·결항될 경우 환불 외에 최대 600유로 상당의 보상을 해야 하는데, 티웨이 측이 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항공기를 바꿔치기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항공사의 거짓 해명 논란도 불거졌다. 티웨이 측은 오후 6시 45분에 정비를 모두 마쳤지만, 승객들이 내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시간이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곧 이륙할 수 있었는데 승객들 탓에 늦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탑승객들은 기장이 기체에 문제가 있다고 안내 방송을 한 것은 오후 6시 57분이었다고 주장한다. 오후 9시 30분경까지도 사다리차가 항공기 꼬리 부분에 설치돼 있는 등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도 있다. ▷오사카행 승객들이 발을 구르던 시간 태국 방콕에서도 티웨이항공 승객들의 발이 묶여 있었다. 13일 0시 5분(현지 시간) 방콕에서 청주공항으로 출발 예정이던 여객기가 정기 점검을 이유로 20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LCC의 중대사고 14건 중 8건이 티웨이에서 발생했다. 국토부의 지난해 ‘항공운송서비스 평가’에서도 티웨이의 이용자 만족도는 국내 항공사 10곳 중 9위에 그쳤다. ▷단거리 노선 중심이던 LCC들은 최근 미국 유럽 등 장거리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티웨이의 경우 지난달 자그레브 노선을 취항해 국내 LCC 최초로 유럽 노선 운항을 시작했고, 하반기엔 파리 로마 등 유럽 4개 노선 취항을 앞두고 있다. 여객 운송에서 LCC의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반복되면서 불안감은 여전하다. 사고를 예방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정직하게 설명하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승객들이 LCC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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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41년 만에 납입한도 올렸지만 쓸 곳 없는 청약통장

    성인이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주택청약통장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2022년 6월 2703만1911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올해 4월 2556만1356명으로 줄었다. 2년도 안 돼 청약통장 147만 개가 사라진 것이다. 분양가가 치솟으면서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줄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가 시들어가는 청약통장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 불씨를 지피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공공분양주택 청약 때 인정되는 청약통장 월 납입액 한도를 1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올린다고 13일 밝혔다. 납입 인정액이 늘어나는 것은 1983년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다. 매월 2만∼50만 원을 자유롭게 저축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월 10만 원까지만 납입액으로 인정돼 더 넣을 유인이 없었다. 월 25만 원까지 넣으면 올해부터 300만 원으로 늘어난 청약통장 소득공제 한도도 모두 채울 수 있다. ▷일견 한도가 늘어나면 무주택 청년에게 기회가 더 돌아갈 수 있다. 공공주택은 청약통장 저축총액 순으로 당첨자를 정하는데, 현재 당첨선은 1200만∼1500만 원으로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지난해 서울의 공공주택에 당첨되려면 평균 18년 이상을 부어야 했다. 납입기간이 짧은 청년들에겐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다. 납입 인정액이 늘어나 그만큼 더 저축하면 청년층도 예전보다 짧은 기간에 당첨선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납입액을 늘리면 생각보다 기간은 길어질 수 있다. ▷월 10만 원을 넣기도 버거운 저소득층의 당첨 가능성은 더 낮아져 중산층에게만 유리한 개편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늦게 시작했더라도 더 많이 납입한 사람에게 역전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10년 2000만 원 증여 기본공제 한도 내에서 미성년 자녀의 청약통장까지 대신 납입해 줄 수도 있다. 이러니 정부가 청약통장 납입 한도를 늘리려는 진짜 이유는 청약통장 저축액을 재원으로 하는 주택도시기금 확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납입액 한도를 높이는 게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앞당겨 줄 수 있을지는 궁극적으로 의문이다. 통장이 있어도 마땅히 사용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LH의 공공분양 공급 목표는 6만 채였지만 실제 공급은 3185채로 목표 대비 5.3%에 그쳤다. 원자재 가격, 인건비 등 공사비 상승으로 민간 공급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공공마저 손을 놓고 있으면 수급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청약할 곳 자체가 없으면 당첨 가능성이 높아져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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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서학개미’ 美 주식 4년 반만에 10배… 800억 달러 넘었다

    ‘국장(국내 증시) 대신 미장(미국 증시)으로.’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에 입문했던 이른바 ‘동학개미’들이 깃발을 내리고 ‘서학개미’로 바뀌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6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은 821억1849만 달러(약 113조 원)로, 사상 처음 8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만 해도 84억 달러 정도였는데, 4년 반 만에 10배로 늘었다.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3위인 LG에너지솔루션(82조6020억 원) 주식을 전부 사고도 30조 원이 남을 만큼 엄청난 규모다. ▷서학개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인공지능(AI) 관련주다. 엔비디아는 올해 들어서만 147% 오르는 등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주식은 엔비디아, 테슬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순이다. 요즘엔 주식을 1주 미만으로 거래하는 소수점 거래를 통해 소액으로 꾸준하게 해외 주식을 사 모으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상속과 증여 목적으로 유망 종목을 골라 장기 투자하는 부모도 많다.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에 자산을 많이 보유한 것을 전적으로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지지부진한 국내 주식시장이다. 올해 들어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이 150억 달러(약 21조 원) 늘어나는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11조5000억 원을 순매도했다. 개미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이다. 올해 들어 이달 7일까지 미국 S&P500지수는 12.74% 상승했지만 코스피는 2.54%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은 AI발 글로벌 증시 랠리에서 소외돼 있는 데다 지난해 증시를 이끈 2차전지 관련주도 주춤해 마땅한 주도주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수익률은 낮은데 배당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변동성은 심하다. 테마주, 주가 조작 등이 판을 치면서 도박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미국 투자 상위 상품은 배당·테크 관련인 데 반해 국내 상품은 단기 투자 성격의 ‘레버리지’ 상품에 쏠려 있다. ▷올해 4월 한 온라인 재테크 커뮤니티가 2030세대 투자자 593명에게 물어보니 5명 중 4명(78.8%)은 현재 한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지 않거나 앞으로 투자 비중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기업들의 주된 자금 조달 통로인 주식시장의 물길이 마르면 기업과 한국 경제의 성장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기업의 체질 개선을 통해 실적을 높이고 후진적 자본시장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면 한국 증시를 버리고 미국으로 향하는 서학개미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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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또 터진 도요타의 인증조작 스캔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일본 도요타의 준중형 코롤라다. 1966년 출시돼 지금까지 5300만 대 이상 팔렸다.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가격이 저렴해 일본의 ‘국민차’이자 세계적으로 마이카 붐을 주도한 차로 평가받는다. 한 광고에선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를 위해’라는 카피를 넣어 화제가 됐다. 안전엔 지나침이 없다, 품질엔 타협이 없다는 철학을 강조한 것이다. 이랬던 코롤라에 일본 국민들이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도요타를 비롯해 마쓰다, 혼다, 스즈키 등 5개 업체가 자동차 성능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도요타의 경우 코롤라 필더와 코롤라 악시오, 소형차 야리스 크로스 등 현재 생산 중인 3개 모델과 크라운, 아이시스, 시엔타, 렉서스RX 등 과거 만들었던 4개 모델이 해당된다. 2014년부터 약 170만 대에 이른다. 이 중 코롤라와 아이시스는 일본 내수 전용이지만 나머지 모델은 해외로까지 팔려 나갔다. ▷도요타의 인증 조작은 여섯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다. 충돌 검사 시 에어백이 자동으로 터지도록 타이머를 설치했다. 규정과 다르게 시험 차량의 무게를 조정해 충돌 시험을 했다. 보행자와 자동차의 충돌 시험에선 한 방향의 결과만 가지고 양쪽 방향에 모두 적용했다. 엔진 출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컴퓨터 제어를 조정해 데이터를 조작했다. 국토성은 현재 생산 모델에 대해 출하 정지를 지시했고, 도요타는 공장 두 곳의 생산라인 가동을 6일부터 중단하기로 했다. ▷도요타의 부정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상용차 자회사인 히노자동차가 20년 동안 배기가스와 연비 데이터를 조작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말엔 경차 전문 자회사 다이하쓰공업에서, 올해 초엔 디젤 엔진을 납품하는 도요타자동직기에서 인증 부정이 발각됐다. 국토성은 다른 업체도 이런 문제가 없는지 조사하도록 했다. 일부 자회사의 일탈일 뿐임을 증명하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도요타 본사를 비롯해 일본 자동차업계 전체에 부정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만 드러나 버렸다. ▷2015년 독일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이 벌어지자 외신들은 도요타의 ‘안돈 코드’에 주목했다. 안전과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작업자가 곧바로 생산라인을 멈출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효율 경영과 성과주의만 강조되고 사내 소통 문화가 경직되면서 도요타의 품질 우선주의는 빛이 바랬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도요타의 위기에 반사이익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품질 관리 시스템과 조직 문화 전반을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브랜드 신뢰를 쌓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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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아파트 한 채면 끝”… ‘인생역전’ 어려워진 로또 당첨금

    ‘로또’는 단순한 복권 명칭이 아니라 ‘인생역전’의 대명사다. 과거엔 주말 인사로 “월요일에 회사 안 나오면 로또 된 줄 알아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로또 1등이 돼도 회사를 그만두긴 쉽지 않다. 올해 21차례 로또 1등 당첨금은 1개당 평균 20억3300만 원, 세금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건 14억 원 정도다. 평균 12억 원인 서울 아파트 한 채 사면 끝이다. 이젠 1등 당첨금액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최근 정부도 “의견을 수렴해 볼 이슈인 것 같다”고 응답했다. ▷한국에서 로또는 2002년 12월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한 게임당 2000원이었고, 5회까지 당첨금 이월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7∼9회 차 1등 주인을 못 찾으면서 한 주에 2600억 원이 팔릴 정도로 광풍이 일자 2003년 2월부터 이월을 2회로 제한했다. 2003년 4월 약 407억 원의 역대 최고액 당첨금이 나오자 사행성을 우려한 정부는 2004년 8월부터 게임당 1000원으로 가격을 낮췄고, 이후 20년 동안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로또 당첨금이 20년째 평균 20억 원 수준을 유지하는 동안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로또 1등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1983년 처음으로 1등 당첨금 1억 원 시대를 열었던 올림픽복권의 경우 당첨금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15㎡를 두 채 살 수 있었다. 2004년 1월 로또 1등 당첨금액은 서울 평균 수준의 아파트 10채 값이었다. 하지만 이젠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를 살 수 있기는커녕 목 좋은 곳의 ‘로또 청약’보다 못한 수준이 됐다. ▷한국 로또 당첨금은 해외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미국의 로또인 파워볼과 메가밀리언은 1등 당첨 확률이 3억분의 1 정도다. 814만분의 1인 한국 로또에 비해 극히 희박하다. 이월 제한도 없어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는 경우가 나온다. 역대 최대 당첨금액은 2022년 11월 파워볼에서 나온 20억4000만 달러(약 2조8000억 원)다. 유럽 9개국에서 공동 판매되는 유로 밀리언은 2022년 7월 2억3000만 유로(약 3400억 원)의 당첨자가 나왔다. 일본의 로또7은 이월금이 있을 경우 최대 10억 엔(약 87억 원)까지 가능한데 한국과 달리 세금도 붙지 않는다. ▷지난해 로또 등 복권 판매액은 6조7507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팍팍한 살림살이의 서민들에게 로또는 버릴 수 없는 희망이자 행운이다. 안주머니에 복권 한 장 품고 있으면 당첨일까지는 부자가 된 듯 든든하다.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할 정도는 곤란하겠지만 서민들에게 위로를 주는 희망의 가격이 지금보단 조금 높아져도 괜찮지 않을까.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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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삼성전자 상대 前 임원 특허소송에 美법원 “혐오스럽다”

    “부정직하고 불공정하며 기만적이고 법치주의에 반하는 혐오스러운(repugnant) 행위다.”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회사를 상대로 낸 특허 침해 소송에서 최근 미국 법원이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기각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원고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재판을 맡은 미 텍사스 동부지법은 ‘특허권자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원고 승소율이 높은 곳이다. 여기에서 이렇게까지 판단한 것을 보면 원고의 행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안승호 전 삼성전자 IP센터장(부사장)이 설립한 특허관리전문회사(NPE) 시너지IP와 미국 이어폰·음향기기 업체인 스테이턴 테키야 LLC는 2021년 11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갤럭시 S’ 시리즈와 이어폰 ‘갤럭시 버즈’ 등에서 테키야의 무선이어폰과 음성 인식 관련 특허를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부사장은 2010∼2019년 삼성전자에서 지식재산권(IP) 업무를 총괄했다. 이번 소송 대상인 음성 인식 관련 특허 전략 등도 짰다. 그래놓고는 퇴사 후 2020년 시너지IP를 설립하고 친정을 상대로 칼을 겨눈 것이다. ▷미국 법원은 특허 침해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소송 자체가 불법적으로 제기됐다고 판단했다. 안 전 부사장이 부하 직원들과 공모해 회사 내부 기밀 정보를 빼돌린 뒤 이를 활용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삼성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안 전 부사장이 삼성전자 재직 당시 회사 지원을 받아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점도 지적했다. 안 전 부사장은 국내에서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NPE들은 기술적 가치는 높지 않지만 권리 범위는 넓은 특허를 싸게 사들인 뒤 소송을 제기해 거액의 합의금을 노린다.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 가전 등 다양한 제품군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은 좋은 먹잇감이다. 삼성전자는 2019∼2023년 미국에서만 NPE들로부터 9일에 1번꼴인 208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다. 한국 기업이 개발한 특허를 사들인 뒤 이를 무기로 한국 기업에 거꾸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NPE를 흔히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고 부른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트롤은 동굴 등에 숨어 살면서 심한 장난을 걸거나 사람들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온라인에서 고의로 도발하는 것을 ‘트롤링’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특허 소송이 남발되면 기업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산업 전체에도 부담을 준다. 더 이상 악의적인 ‘트롤링’에 억울하게 당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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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도박, 마약, 살인… 태국에 둥지 트는 韓 범죄조직들

    한국인이 많이 찾는 태국의 유명 휴양지 파타야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11일 파타야의 한 저수지에서 태국 경찰이 건져 올린 플라스틱 드럼통 안에서 손가락이 모두 절단되는 등 크게 훼손된 30대 한국인 남성의 시신이 나왔다. 파타야에선 2015년 한국인 20대 남성을 취업 빌미로 꾀어 도박사이트 설계와 운영을 맡기고 감금과 폭행을 하다 숨지게 한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은 영화 ‘범죄도시 4’의 모티브가 됐다. ▷두 사건 모두 한국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다. 사업, 관광 등으로 왕래가 활발해지면서 보이스피싱, 온라인 도박, 마약 밀매, 납치·살인 등 한국인을 노린 범죄가 동남아시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내의 범죄자들과 한탕을 노린 청년들이 치안이 느슨한 동남아로 건너가 범죄조직을 결성하고, 한국과 연계해 범행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드럼통 살인사건’의 피의자들도 폭력, 절도 등의 전과가 있었고, 국내 폭력조직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 ▷동남아의 한국인 대상 범죄는 필리핀에서 가장 많았지만 요즘은 태국이 범죄자들 사이에서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단 90일 동안 무비자로 출입국이 가능해 한국으로 오가기 쉽다. 동남아 국가 중 상대적으로 인터넷 등 정보기술(IT) 인프라가 발달해 도박사이트를 운영하기 유리하다. 2022년 6월 대마를 마약류에서 제외해 사실상 합법화하면서 마약을 유통하기도 쉽다. 범죄가 탄로 나더라도 육로를 통해 인근 국가로 숨어들기 용이하다. ▷특히 태국, 미얀마, 라오스의 접경지대인 ‘골든 트라이앵글’이 범죄의 온상이다. 3국 정부의 공권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내륙 오지여서 마약 생산과 밀매, 납치·감금 범죄가 빈번하다. 해외 취업을 미끼로 불러들인 뒤 휴대전화와 여권을 빼앗고 보이스피싱이나 투자 사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취업 사기를 당했다고 신고한 한국인 건수는 2021년과 2022년 각각 4건에서 지난해 94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한국인 27명이 불법 업체에 감금됐다 풀려났고, 범죄의 배후인 한국인 조직원 37명이 최근 검거됐다.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사실상 국경이 의미가 없다. ‘동남아 한국인 3대 마약왕’ 가운데 ‘텔레그램 마약왕’ 박모 씨는 필리핀에서 체포돼 수감 중이다. ‘탈북 마약왕’ 최모 씨는 태국에서 잡혔다 풀려난 뒤 캄보디아에서 검거됐고, 셋 중 우두머리 격인 ‘사라 김’ 김모 씨는 베트남에서 잡혔다. 중국,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과 합동수사팀을 결성하는 등 협력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경 없는 범죄와 맞서려면 우리 경찰도 좀 더 글로벌해져야 한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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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세계 유일 대기업 총수 규제… 쿠팡 오너는 손 못 대는 이유

    해마다 5월이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있다. ‘공시 대상 기업집단’ 지정 결과가 나오는데 보통 ‘대기업 집단’이라 부른다. 이 순위가 흔히 말하는 공식 재계 서열이다. 자산 5조 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은 올해 88개로 지난해보다 6개 늘었다. 새로 ‘대기업’으로 인정받은 기업들에게 자부심은 잠깐일 뿐이다. 공정거래법과 이 법을 원용하는 다른 41개 법률에 따라 274개의 규제를 새로 적용받는다. 대기업이 안 되려고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대기업 규제를 받는 기업집단은 매년 5, 6개씩 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커지고 있는데 자산 5조 원이라는 허들은 2009년부터 15년 동안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48개였던 대기업집단은 3, 4년 뒤엔 100개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30대 그룹 정도의 재벌에 대한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완화한다는 취지였는데, 이제는 중견기업 수준까지도 규제 대상이 됐다.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그룹을 지배하는 1인을 특정하도록 하는 ‘동일인(총수) 지정제’도 현실과 동떨어진다.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이란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개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4촌 이내 친족과 3촌 이내 인척 등의 사업 현황과 주식 보유 현황 등을 신고해야 한다.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고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친인척의 자료까지 뒤져야 하는데 자료 제출 의무가 있는 동일인 관련자가 5000여 명, 총수 1명당 60여 명에 이른다. 혹시 자료를 빠뜨리거나 오기를 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국내 기업만 규제를 받는 역차별 논란도 크다. 쿠팡의 최대주주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올해로 4년째 총수 지정을 피했다. 공정위는 김 의장이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2021년부터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정해 왔다. 쿠팡은 한국 법인인 ㈜쿠팡 지분 100%를 미국 모회사(쿠팡Inc)가 소유하고 있고, 쿠팡Inc 의결권의 76.7%를 김 의장이 갖고 있다. ▷공정위가 올해부터 외국인도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김범석)이 최상단회사(쿠팡Inc)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고, 총수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의장이 사실상 지배력을 갖고 있는데도 국내 기업과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 애초에 국내 경제력 집중을 막으려고 37년 전에 도입한 ‘국내용’ 규제를 국경이 무의미해진 현재에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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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구리값 오르니, 다리 명판 도둑

    경남 진주시의 농촌 지역 교량에서 다리 이름을 적어 놓은 교명판과 공사설명판 등이 잇따라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교량 12곳에서 4개씩 동판 48개를 누군가 몰래 떼 갔다. 충북 보은에서도 동판이 사라진 교량이 발견돼 군내 다리를 전수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에도 대구와 경북 청도 등에서 명판 절도 사건이 발생하는 등 수년에 한 번씩 비슷한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다. ▷동판이 절도범의 집중 표적이 된 것은 최근 구리 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열풍과 이상기후 우려로 전선의 주요 소재인 구리 수요가 크게 늘었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구리 가격은 지난달 말 t당 장중 1만 달러를 넘어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난당한 명판은 구리가 70% 포함된 황동으로 만들었다. 30kg 명판 1개를 팔면 고물상에서 20만 원가량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에서도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케이블 절도가 횡행하는 등 구리를 노린 절도가 세계적으로 빈번하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경기 침체 시기나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뛸 때마다 쇠붙이 절도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배수관, 철제 대문, 공사장 철근, 고기불판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기승을 부렸다. 2007년 울산에선 10여 곳의 학교에서 밤새 스테인리스 재질의 교문이 사라지기도 했다. 전신주를 타고 올라가 구리 전선을 훔치는 경우가 많아 한국전력은 10여 년 전부터 전선 재질을 구리 대신 저가의 알루미늄으로 교체해 왔다. 맨홀 뚜껑도 단골 표적이었는데, 최근엔 잠금장치를 단 덕분인지 도난이 많이 줄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수십억 원어치의 기름을 빼돌리는 도유(盜油) 범죄도 많이 일어났다. 특히 2007, 2008년에는 한 해에 30여 건씩 발생하기도 했다. 그 자체로도 중대 범죄지만 자칫 송유관 폭발이나 환경오염 등 2차 사고를 부를 수 있는 위험천만한 범죄다. 지금은 첨단감지시스템 덕분에 많이 줄긴 했지만, 지난해에도 모텔을 통째로 빌려 지하실 벽을 뚫고 송유관 근처까지 땅굴을 파던 일당이 목표지점 30cm 앞에서 붙잡히는 영화 같은 일이 있었다. ▷CCTV 보급이 확대되고 현금 보유가 줄면서 절도 사건 자체는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생활이 팍팍해지면서 10만 원 이하 소액 절도는 최근 4년 새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점원이 없는 무인점포가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깊어지는 불황에 푼돈에 손을 댄 ‘생계형 범죄’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민 안전을 위협하면서 공공시설을 훔치는 조직적 절도까지 ‘불황형 범죄’라며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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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뱅크런 위기에 1조 수혈받고도 4800억 배당 잔치한 새마을금고

    지난해 정부 혈세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위기를 넘긴 새마을금고가 출자 회원들에 약 4800억 원의 배당금을 지급해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860억 원의 5배가 넘는 규모다. 순이익이 전년 대비 18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고 전체 1288개 금고 중 3분의 1이 적자를 봤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서 세금으로 한숨 돌리게 도와줬더니 배당만 알뜰하게 챙긴 것이다. ▷지난해 7월 한 부실 금고의 합병 소식에 불안해진 예금주들이 돈을 찾으려고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18조 원이 빠져나갔다. 위기감이 고조되자 정부가 나서 1인당 보호한도(5000만 원)를 넘어가는 원리금까지 보장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원장은 수천만 원을 예치하며 고객들을 안심시켰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새마을금고의 부실 채권 1조 원어치를 매입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새마을금고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이 7%대를 넘어서는 등 위기는 진행 중이다. ▷새마을금고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한 수준이다. 3월에는 대출 컨설팅을 해주겠다며 대출수수료 40억 원을 가로챈 전현직 직원들이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신입 직원이 고객의 비밀번호를 바꿔 통장에 있던 돈을 빼돌리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대학생 딸을 사업자로 꾸며 금고로부터 대출을 받은 ‘작업대출’ 의혹도 불거졌다. 이 밖에도 부정·부실 대출, 횡령, 직장 내 갑질, 성희롱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새마을금고의 가장 큰 문제는 단위 금고 이사장이 인사와 예산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구조에 있다. 이사장은 임기 4년에 2번 연임해 12년까지 연임할 수 있는데, 중간에 대리인을 두거나 상근이사로 근무하는 등 편법을 써서 사실상 종신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2021년 기준으로 임직원 2만8891명 가운데 임원만 1만3689명인 기형적 조직도 문제다. 직원 100명당 임원이 85명이나 되니 현장 인력의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뒤늦게 PF 대출을 확대했다가 부실이 커진 새마을금고에 대해 “주린이(주식 투자 초보자)가 상투 잡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고가 빈발해도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새마을금고의 주 업무는 금융이지만 금융위원회가 아닌 행정안전부의 감독을 받는다. 1983년 새마을금고법을 만들 때 재무부에서 내무부로 권한이 넘어간 게 여태껏 이어져오고 있다. 금융을 잘 모르는 행안부 직원 10여 명이 1300개 가까운 금고를 관리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덩치만 커졌을 뿐 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본래의 역할은 제대로 못 하는 새마을금고에 대해 대대적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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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부자들의 아침 일과, 종이신문 읽기

    억만장자들의 신문 사랑은 각별하다. ‘신문 중독자’라고까지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하루에 5, 6개의 신문을 샅샅이 훑는다. 청소년들에게는 “세상을 알려면 신문부터 읽어라”고 조언하곤 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도 매일 아침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소학교만 나와서 어떻게 명문대 출신들을 거느리고 있냐는 질문에 “나는 ‘신문대학’을 나왔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부자들의 아침에는 여전히 신문이 있다. 25일 하나금융연구소가 내놓은 ‘2024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의 33%는 오전 루틴으로 종이신문·뉴스를 본다고 답했다. 금융자산 1억 원 미만인 일반 대중(18%)의 응답보다 훨씬 높았다. 부자 중에서도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신문, 뉴스를 가까이 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일반인들이 주로 연예·스포츠 뉴스를 많이 챙겨 본 반면 부자들은 경제, 정치, 생활문화 순으로 관심을 보였다. ▷부자들이 빠뜨리지 않는 루틴에 독서가 있는 것도 신문 읽기와 무관치 않다. 일반 대중이 1년에 약 6권의 책을 읽는 동안 부자들은 10여 권의 책을 읽었다. 특히 금융자산 100억 원 이상의 부자들은 연간 20여 권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경영 도서보다는 오히려 인문·사회 분야의 책과 소설을 선호했다. 부자들에게 ‘읽는다’는 행위는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 아닌 일상 자체였다. 신문과 책을 늘 곁에 둠으로써 사유의 폭을 넓히고 남들이 보지 못한 보배를 활자 속에서 건져 올렸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부자들이 종이신문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평면적이고 파편화된 정보만으로는 뉴스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꼭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고 뉴스의 경중을 편집으로 보여주는 종이신문의 힘이 여기서 나온다. 미국 카네기멜런대와 다트머스대 연구진의 실험에 따르면 디지털 화면을 볼 때보다 종이로 글을 읽을 때 내용을 더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한다. 종이신문을 매일 꾸준히 읽으면 주의·집중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관심 있는 것만 보여주는 알고리즘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허위 정보에 속지 않도록 하는 것도 신문의 강점이다. 지난해 12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한미일 3국의 30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신문을 읽는 사람이 그러지 않는 사람보다 허위 정보를 더 잘 가려내는 것으로 분석됐다. 좋은 정보를 골라 꼭꼭 씹어 삼킬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신문의 힘이다.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통찰력을 얻기 위해 부자들이 선택한 가성비 높은 투자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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