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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년 기념식이 4일 오후 6시 고려대 CJ법학관에서 열린다. 식사 후 정년 기념 강연과 환송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회사 출근하자마자 아침 댓바람부터 펑펑 울었다. 이 나이에 혼나서? 어디가 아파서? 아니, 그날 조간에 나온 장기실종아동 송혜희 양(당시 17살)의 부친, 송길용 씨(71)의 부고 기사를 보고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 현수막의 주인공, 혜희 양의 아버지 송길용 씨가 지난 2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가끔 지나가다 전단지나 현수막을 보면 ‘아직도 못 찾았나 보다’하고 안타까워했을 뿐 자세한 사정은 몰랐는데, 부고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송길용 씨는 딸이 실종된 1999년부터 25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현수막 1만 장을 달고, 전단 1000만 장을 배포했다고 한다. 그간 이동 거리도 100만km에 달한다. 사망한 날도 칠순을 넘긴 아버지는 현수막을 달러 가던 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애타게 찾던 딸을 결국 생전에 다시 보지 못하고, 경기 평택의 어느 도로 위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 현수막 1만 장, 전단 1000만 장…생업 접고 딸 찾아 25년송탄여고 2학년이던 길용 씨의 둘째 딸 혜희 양은 1999년 2월 13일 학교에 공부한다며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막차를 타고 내린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몸에서 술 냄새 나는 성인 남성이 혜희 양의 뒤를 따랐다는 목격자 진술이 있었지만 남성을 찾진 못했다. 당시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논과 밭뿐인 농로였고 CCTV도 없었다.“공부하고 올게요”하고 나간 막내딸, 엄마 몰래 쥐어 준 5000원에 엄지를 척 들어 올렸던 모습이 생생한데 행방불명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길용 씨는 생업을 뿌리치고 직접 딸을 찾아 나섰다. 1t 트럭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전국 곳곳에 현수막을 달고 전단을 돌렸다. 벌어놓은 돈은 모두 전단지와 현수막을 만드는 데 썼다. 당연히 남부럽지 않았던 가세는 기울었고 온갖 병도 생겼다. 현수막을 달다 떨어져 허리를 다쳤고 뇌경색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됐다. 보도에 따르면 아내인 혜희 씨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다 딸 실종 몇 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길용 씨도 한때 몹쓸 생각을 했다. 다리에서 뛰어내린 적도 있고 농약도 마셔봤다. 그렇지만 그의 곁에 있는 큰딸과, 어딘가 있을 둘째 딸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내가 찾으려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내 딸 찾아주겠냐.”(중앙일보 2019년 2월 13일) ● 수사 종결, 주변 만류에도 포기 않고 전국 돌았는데…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한시인들 편했을까.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자면서도 늘 딸 혜희 양에게 미안했다고 한다. 딸은 지금 밥이나 제대로 먹는지도 모르는데, 자신만 따뜻한 방에서 호의호식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덕에 딸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실종아동’이 됐다. 전단지를 나눠주면 “잘 알고 있으니 이 전단은 다른 사람 주라”고 독려하는 시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길용 씨 혼자 이뤄낸 일이다. 부정(父情)은 위대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딸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인들은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이 정도 찾아서 안 나오면 이 세상에 없는 거라고 매정한 말로 길용 씨를 단념시키려 했다. 경찰 수사도 2004년 종결됐고 납치 혹은 인신매매 공소시효도 2014년 끝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간은 딸을 배웅하던 1999년 2월 46살의 아빠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딸이 용돈을 모아 개통해 준 016 휴대전화 번호도 20년 가까이 바꾸지 않고 두었다고 한다. 언제 혜희가 전화를 걸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 장기실종아동 1336명, 가정은 풍비박산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년 이상 장기실종아동이 1336명이고, 혜희 양 같은 20년 이상 장기실종아동도 1044명에 이른다. 2023년에만 2만 건 넘는 실종아동 신고 가운데 25건이 미해결로 남았다. 실종아동가정은 대부분 무너지고 만다. 부모는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거나 이혼하고, 함께 살더라도 아이를 찾는 데 돈과 시간을 쓰느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불화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에 따르면 장기실종 가족의 70~80%가 가정해체를 겪는다고 한다. 정부는 2005년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사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실종경보 문자 △지문 등 사전등록 △유전자(DNA) 분석 △복합인지기술 활용 과거 사진 변환·대조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을 통해 장기실종아동이 성인이 되어 가족을 찾기도 한다. 최근에도 전남 여수에서 8살 때 가족을 잃어버렸던 남성이 재수사를 통해 57년 만에 가족을 찾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경찰 내 실종수사 인력과 예산이 태부족하고 제도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실종아동이 발생하면 1년간은 실종 지역 경찰서에서 수사하다 관할 지방청으로 이관하도록 돼있다. 이 때문에 다른 지방과 공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아동보호시설의 서류 관리가 부실해 아동 정보를 대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결국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가 직접 발 벗고 뛰어다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종아동관리 진일보해 혜희 씨 찾는 날 오기를한 아이와 한 가족의 인생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실종아동 사건은 최대한 예방하고 최선을 다해 수사해야 한다. 길용 씨도 수천, 수만 번 가슴을 쳤을 것이다. 그때 초동수사가 잘 됐더라면. 그때 그 수상한 남자를 찾을 수 있었더라면. 길용 씨가 딸을 찾아 헤맨 25년이 결코 훈훈한 미담으로만 끝나지 않길 바란다. 아직 1000명이 넘는 장기실종아동이 남아있다. 그들의 부모도 자식을 찾으러 가던 길에 허망하게 스러지도록 할 순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길용 씨가 하늘에서 그렇게 바라던 딸을 만나지 못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실종아동 관리가 진일보해 이 땅 어디에선가 숨 쉬고 있던 혜희 씨를 기적적으로 찾아내길, 그래서 언니와 함께 아빠, 엄마의 묘소를 찾아 “늦게 와서 미안해요!”라고 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이제 우리가 혜희 씨를, 다른 1300여 명의 아이들을 찾을 시간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밥은 먹고 다니냐?”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명대사다. 요새 기자가 친정어머니께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다. 딸이 밥을 잘 챙겨 먹는지 물으시는 게 아니라 손주들 이야기다.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 손주 세 명이 점심은 잘 먹는지, 엄마가 챙기고 있는지 물으시는 건데, 기자가 “알아서 사 먹을 거예요” 하면 깊은 한숨을 쉬신 뒤 “내가 오늘도 가보마” 하신다. 친정은 차로 30분, 막히면 1시간 넘는 거리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이들 모두 학교 돌봄교실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2학년 때부터는 소수만 가능했고 3학년 때부터는 그마저도 안되게 되었다. 돌봄교실에 갈 수 없으니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집과 방과후, 학원 등을 오가다가 홀로 점심을 챙겨 먹어야 했다. 그동안은 엄마께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 대화를 나누다 무심코 이야기한 뒤론 내내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엄마께 감사한 한편으로 돌봄교실의 부재가 다시금 아쉽게 느껴졌다. 학교의 공백…학원·방과후로 누더기 깁듯 기울 수밖에사실 교내 돌봄을 이용하지 못하는 게 특히 아쉽고 답답할 때는 방학이 아니라 학기 중이다. 아이들 학교는 평소 너무 일찍 끝난다. 어린이집 다닐 때는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맡길 수 있었기에 아이 일정에 대해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니 귀가 시간은 오후 1, 2시로 당겨졌고 아이돌보미 선생님도 오후 5시가 돼야 출근하시기에 공백시간이 생겼다. 돌봄교실에 방과후학교를 이것저것 신청해서 누더기 깁듯 기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돌봄교실 혜택마저 사라진 것이다. 신청할 수 있는 방과후의 선택 폭도 줄어서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넣어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이렇게 기자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에 보내기 시작하는 부모가 많다. 정부와 여러 민간기관 조사에 따르면 영유아 때까지 10명 중 6명꼴이던 사교육 이용 아동이 초등학생이 되면 8~9명으로 훌쩍 증가한다고 한다. 물론 정말 교육을 위해 보내기도 하겠지만,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시간을 때울 겸 돌봄 목적으로 보내는 경우도 적잖다. 그렇게 하나둘 보내다 보면 비용 부담도 커진다. 민간 학원은 최소한으로 아이당 한두 개만 보내고 있는 우리집도 방과 후 교육비용으로 매달 상당한 돈을 쓰고 있다. 사실 돈보다 더 걱정인 건 아이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점이다. 방과 후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계속 이동해야 한다. 학원 차량을 태울 때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얼마 전에도 아이 학원차에서 안전벨트를 제대로 채우지 않는 걸 발견해 선생님께 슬며시 꼭 채워주십사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늘봄 확대한다지만 긴 공백 깁는 현실 그대로교육부는 최근 2학기부터 ‘늘봄학교’를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전면 시행한다고 밝혔다. 늘봄학교란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생들이 교내에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초등 대상 돌봄 체계로, 기존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의 확대·보완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초1을 우선 대상으로 1학기 전국 초교 절반에서 시행하기 시작했는데, 2학기부터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초 1, 2엔 성장, 발달에 맞는 프로그램을 연중 매일 2시간 무료 제공하고, 향후 초 3~6에는 기존 방과후교실보다 더 다양한 수업을 제공해 학교에서 책임지는 방과 후 시간을 늘리겠다고 한다. 좋은 소식이지만 한 편으로는 드는 생각은 ‘누더기는 그대로구나’다. 부모는 방과 후 기나긴 공백시간을 여전히 누더기 깁듯 기워야 하는데, 다만 이제 옷감이 공짜라거나 전보다 더 다양한 천을 쓸 수 있게 되는 정도랄까. 늘봄학교가 도입돼도 3~6학년인 우리 아이들 매 학기 방과 후 시간표 짜야 하는 일엔 변함이 없다. 학기 초마다 기자가 많은 시간을 들여 수행하는 고난이도(!)의 작업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네 아이의 방과 후(막내는 하원 후) 일정표를 짜는 것이다. 특히 방과 후 공백이 긴 초등학생 세 명이 복잡한데, 하교 직후부터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오시기까지 서너 시간의 시간 동안 어떤 방과후수업 혹은 학원에 가게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각자의 의사는 물론 시간, 동선, 동행 일정 등을 감안해야 하다 보니 난수표 짜는 것처럼 복잡하기 그지 없다. 학교 오후 3시까지 연장안, 6년 전 반대로 좌초그냥 학교 수업 시간을 늘리면 어떨까. 난수표 작업을 하느라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나면 늘 드는 생각이다. 늘봄학교 1, 2학년 일정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연중 매일 2시간 무료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는데 사실상 학교 의무교육이 2시간 연장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주별로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미국의 학교는 대체로 오후 3시 전후 끝난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자율적인 클럽활동이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 아이들은 4~5시까지 학교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학교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 아빠의 퇴근 시각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현재 한국의 방과후, 돌봄, 늘봄학교 체제도 오후 늦게까지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지만 이건 학교 수업이 아니고 별도 서비스이기 때문에 비용이 들어간다. 관리주체도 학교가 아니다. 학교는 장소만 빌려줄 뿐이다. 한국에서 수업시간을 늘리자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됐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2018년 정부와 교육 관련 기구에 초등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늘리는 내용의 안건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의 반대가 거셌고 일부 학부모들도 반발하면서 별달리 이야기해 볼 기회도 갖지 못하고 좌초됐다. 당시 학부모들이 반대한 이유는 ‘아이가 학교에 너무 오래 있게 된다’, ‘사교육 시간만 뒤로 더 늘어날 것이다’ 등이다. 지금은 유효하지 않거나 극복 가능한 사유로 보인다. 최근 교육부가 실시한 늘봄학교 만족도 조사에서 학부모 80% 이상이 만족을 표했다고 한다. 양질의 교육과 돌봄 서비스만 있다면 초등학생들의 학교 체류를 늘리는 늘봄학교에 학부모 절대다수가 지지를 보냈다는 뜻이다. 방과후교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다양화하고 질을 높이면 사교육 대체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미 끝난 이야기?’ 다시 얘기해 볼 수 없을까물론 인력 충원과 각종 지원이 함께 해야 한다. 현재 교원으로 일만 늘리는 식이 되어선 누구도 달가울 리 없다. 교사들은 지금도 박봉에 보람도, 명예도 예전 같지 않은 환경에서 소신으로 임하고 있다. 교육부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학교 3시 방안에 대해 물어본다. 다들 ‘이미 끝난 이야기’라는 식으로 이야기해 안타깝다. 하교와 부모 귀가 시각 사이의 공백을 계속 늘봄, 지자체, 기타 제도를 통해 메우면 비용도 배로 들고 관리도 복잡하다. 쉽게 말해 비효율적이다. 또 문제인 것은 학생 간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과후가 좋아진대도 방과후를 선택할 수 없는 아이, 방과후보다 더 좋은 사교육을 선택하는 아이가 갈릴 것이다. 당장 무얼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다시 이야기를 꺼내보면 좋겠다. 새로운 돌봄을 계속 구상하는 대신 현 공교육 안에서 해결해보는 방안을.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2024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다. 3일 현재 한국은 금메달 8개 등을 수확해 전체 순위 6위라는 높은 성적에 올라 있다. 올림픽 때면 TV에서 정말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만날 수 있다. 스포츠부와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덕에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를 예선부터 지켜봤다. 경기 결과나 결승전만 볼 때는 몰랐던 많은 종목 국내 최고 선수들의 분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대표단은 144명으로 그 종목은 22개나 된다. 축구, 배구 등 주요 구기종목이 출전에 실패한 걸 감안하면 전체 32개 종목의 거의 대부분에서 선수를 낸 셈이다. 이렇게 올림픽만 되면 여러 스포츠가 TV를 장식하는데 정작 우리 생활에선 이런 스포츠를 반의반도 볼 수 없다. 종목은 물론이거니와 운동하는 사람 자체가 적다. 특히 한창 잘 먹고 뛰어놀아야 할 성장기에 주기적으로 운동하거나 운동을 배우는 청소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 방학인데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도 썰렁하다. ● 韓 청소년, 권장운동량 못 채운 비율 94% ‘세계 꼴찌’지난해 독일에 출장 갔을 때다. 취재처를 찾아가는 길에 비가 내려서 잠시 눈에 보이는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지도를 보니 청소년 체육시설이었다. 3월 말이었는데 방학인지, 학기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독일은 생활체육이 탄탄하기로 유명하다. 동네마다 자생적으로 생긴 스포츠클럽이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도 많다. 운동을 접할 기회가 잦다 보니 독일 주재원 가운데는 사오십 평생 안 해본 운동을 독일 가서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평일에 학생들로 붐비는 체육시설을 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반면 우리는 어떨까. 청소년 대상 체육시설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평일엔 청소년들로 북적대기 쉽지 않다. 남자아이들 중엔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친구들과 모여 자주 운동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일주일에 2~3회 30분 이상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청소년은 손에 꼽을 것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146개 국가 11∼17세 학생들의 운동량을 비교한 결과 권장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 비율이 한국에서 94%로 가장 높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년 일주일에 단 1회라도 30분 이상 운동하는 비율을 조사했는데(국민생활체육조사) 10대의 경우 그렇다고 답한 이가 47.9%에 불과했다.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낮은 비율이었다. ● 학원, 숙제, 방학특강…운동할 때조차 ‘운동 학원’ 다녀야이유는 깊이 고민할 것도 없다. 우리 청소년들에겐 자유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들의 일과는 영어, 수학, 국어와 같은 교과 공부로 가득하다. 방과 후에도 대부분 이런 학원들에 다니는데 그 수업량이 어마어마하다. 버티고 버티다가 작년부터 첫째를 영어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받아오는 숙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험 봐서 들어간다는 대단한 학원도 아니고 그저 동네 초등학생 대상 일반 보습학원이건만 숙제량이 딱 봐도 하루에 다 하기 빠듯한 수준이었다. 숙제할 시간이 모자라 학교에서도 학원 숙제를 한다더니, 괜한 말이 아니었다.방학이라고 별다르지 않다. 보통 방학이 되면 학원가에서 특강이나 보강을 개설하기 때문에 이런 걸 듣는 아이들이 많다. 지난주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퇴근 후 줄넘기를 하기로 했다. 퇴근이 늦어지는 바람에 약속보다 1시간가량 늦게 운동을 나갔는데 애들이 평소 가던 놀이터가 아니라 더 작은 놀이터로 가자고 해서 이유를 물으니 첫째가 말했다. “큰 놀이터는 지금부터 붐빈단 말이야.” 그때가 오후 8시 반이었는데, 아이들이 그제야 학원이 끝나 놀이터에 몰린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방학 중인 초등학생 아이들 귀가 시각이 40대 직장인 늦은 퇴근 시각과 비슷하다니. 다들 학원에 다니고 공부를 하면 함께 운동할 친구를 찾기도 어렵다. 결국 정기적으로 함께 할 사람을 찾아 운동하려면 운동도 학원을 등록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도 운동 학원에 다니고 있다. 마음 같아선 이것저것 아이들 하고프단 운동을 다 시키고 싶은데 학원이다 보니 원비 부담이 있어 그럴 수 없다.● 학교 체육수업 늘리려는 시도, 자주 반대에 부딪혀학교에서 체육활동을 많이 한다면 좋을 것이다. 미국에서 잠시 학교 다닐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체육수업도 수업이지만 방과 후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클럽활동이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스포츠클럽엔 들지 않았는데 탁구, 농구, 수영 등 종목별로 클럽이 있었다. 학교 시설도 잘되어 있었고 학교 스포츠팀 간에 대항전도 있어서 남녀 모두 선수가 많았다. 이렇게 학교에서 쌓은 경험은 일상으로 이어졌다. 성인이 돼서도 개인적으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다들 기초체력이 좋았다.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다시 미국에 갔을 때 운동 좀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달리기 수업 수강을 신청했는데, 얼마 안 가 수업 최고 ‘저질체력’으로 자리매김했다. 10분만 뛰어도 헉헉대는 나와 달리 미국 아이들은 20분을 거뜬히 뛰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내 신체활동을 늘리려는 시도는 늘 교원이나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최근에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초등학교 저학년의 체육활동을 늘리기 위해 1989년 ‘즐거운 생활’에 흡수된 체육교과를 35년 만에 분리할 계획을 밝혔지만 교원노조 등이 강력 반대하고 나서 국교위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한 용역연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선수뿐 아니라 일반 청소년도 운동의 혜택 누릴 수 있길취재원으로 만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초등학생인 아들 둘에게 어릴 때부터 운동을 가르쳤는데 그 이유가 첫째 체력 증진이고, 둘째 ‘건강한 경쟁’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진료받으러 오는 사람 중에 왜곡되고 지나친 경쟁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건강한 경쟁에 대해 일깨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스포츠만한 게 없더라는 거다.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단 말이 있듯이 운동은 단순히 몸만 건강하게 하는 게 아니다. 특히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스포츠는 투지와 끈기, 협동, 선의의 경쟁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영리한 사람이 운동도 잘 한다고, 스포츠의 전략과 수싸움은 두뇌 운동도 된다. 우리나라는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 무대에선 수위권 안에 드는 종목이 많은 스포츠 강국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 특히 청소년은 절반 이상 일주일에 단 1회도 운동을 하지 않는 나라다.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이 철저히 유리됐다. 엘리트 체육 양성에 들이는 노력만큼 국민 체육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과거 학교에 아이들이 많을 때는 교내 체육시설을 짓기도 어려웠고 다양한 체육수업을 진행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줄어드는 만큼 공간적 여유도 생겼고 교원들의 여력도 커졌다. 만약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원을 늘려 해소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체육활동 필요성을 적극 알리고 관련 시설도 확충했으면 한다. 우리 동네에는 몇 년 전 청소년 여가시설이 생겼는데, 학원 사이 자투리 시간에 몸 누일 곳 없던 아이들이 정말 잘 이용하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쉽지 않겠지만, 분명 시설이 생기면 활동이 늘어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청소년기에 경험한 운동의 기억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올림픽 선수들뿐 아니라 모든 청소년이 운동의 기쁨과 성취를 일찍이 경험할 수 있길 기원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저물녘 바닷가에 앉아 노을과 등대 불빛이 어우러진 자연 유화를 감상합니다. “하늘아, 바다야, 깜깜해지지 마.” ―강원 강릉 정동진에서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엄마가 된 이래로 보기 힘들어진 뉴스가 있는데 바로 어린아이들의 사망사건·사고 관련한 뉴스다. 특히 영아들의 사망 소식은 제목만 봐도 울컥한다. 그것이 부모에 의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그 작고 가녀린 아기들이 얼마나 크게 부모에게 의존하는지. 그런데 그 세상의 전부 같은 부모에게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는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글만 쓰는데도 울컥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런 안타까운 사건을 줄이고자 제정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19일부터 시행됐다. 자신이 낳은 아기들을 살해해 수년간 냉동 보관해 온 여성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여만이다. ● ‘냉동고 아기’ 사건 1년여만에…출생통보·보호출산제 시행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병원 출생기록은 있지만 정식으로 출생신고되지 않은 일명 ‘그림자 아이’, ‘유령 아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끔찍한 사건이 알려진 뒤 보건복지부가 출생아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이런 음지의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게 드러났다. 2015~2022년 사이에만 출생 미신고된 아이가 2123명이었고, 그중 약 300명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당초 복지부 발표 때는 249명이었는데 경찰 수사로 50여 명 추가됨).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서 이런 아이들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출생통보제는 쉽게 말해 병원에서 출산한 아이 정보가 지자체로 자동 통보되도록 한 제도다. 이제 분만 기관이 아동 출생 사실, 생모 성명, 출생 연월일시 등을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에 저장하면 이 정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거쳐 지자체로 전달된다. 지자체는 이 정보를 토대로 출산 한 달이 넘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에게 독촉 통지를 보낸다. 그래도 답이 없으면 지자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진행한다. 과거에는 이 신고를 부모에게만 의존했기 때문에 실수 혹은 고의로 출생신고가 누락되는 아이가 발생했다.출생통보제와 함께 시행된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산부들을 위한 제도다.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키우고 싶지 않아 출생신고를 꺼리는 임산부가 있다면 보호출산을 신청하고 가명과 관리번호(주민등록번호 대체)를 받아 아이를 낳으면 된다. 출산한 아이는 입양기관으로 보내진다.기껏 출생통보제를 만들어놓고 보호출산제로 ‘아이를 합법 유기’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태어날 아이 입장에서 뭐가 더 안전한지 따져 보면 답은 명확하다. 비밀로 아이를 낳을 기회를 터놓지 않으면, 자동 통보를 꺼리는 부모들은 분만 기관을 통하지 않고 사적으로 아이를 출산하려 할 것이다. 아이가 어떤 위험에 처할진 불 보듯 뻔하다. 일단 아이 생명은 살리고 보자는 게 보호출산제의 취지라 하겠다.● 부모의 위기=아동의 위기…부모에 ‘아이 키울 수 있다’ 청사진 보여줘야이번 제도 시행으로 출생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강화됐고 우리 출생등록제도는 진일보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 등록제도만 진보하고 위기 아동과 부모의 상황은 그대로라면, 부모들은 너도나도 보호출산제를 이용해 아이를 합법적으로 유기하려고만 할 것이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등록될 뿐 아니라 원가정에서 잘 자랄 수 있게 하려면 궁극적으로 부모의 위기가 해결돼야 한다. 아동의 위기는 결국 부모의 위기다. 위기에 처한 부모에게 “힘내세요~” 응원만 보낼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보와 혜택을 제시해야 한다. 위기 부모에 대한 보육, 의료, 취업 지원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당신의 위기를 이렇게 극복할 수 있다’고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위기 부모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임신 단계부터 이런 부모들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상담창구가 생긴다지만 안타깝게도 위기 부모들은 대부분 정보취약계층이라 상담의 존재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상담창구는 물론 지원책에 대한 효과적인 홍보, 탐색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 ‘외국인 아동, 미혼부’ 출생등록 여전한 사각지대이번을 계기로 우리 출생등록제도에서 더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출생통보제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가 남았는데 바로 외국인 아동이다. 한국에선 외국인이 아이를 낳아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현행법에 따라 오직 ‘국민’만 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자국 대사관 등에 가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당연히 미등록 출생아가 발견돼도 출생통보제에 따라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애초 외국인 신고제도가 없으니 말이다.초저출산으로 외국 인력 도입을 확대하고 이민청까지 만드는 마당에 외국인들의 출생신고를 언제까지고 막아둘 순 없다. 국내 외국 인구가 늘면 분명 국내 아동과 마찬가지로 사각지대도 생길 것이다. 실제 최근 불법체류 외국인이 유기한 중증장애아의 딱한 사연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아기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그 어떠한 법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21대 국회에서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법이 발의되긴 했지만 국회 임기가 끝나며 폐기되었다.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출생신고 대상을 ‘미혼부’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재 출생신고는 생모와 그 생모의 법적 배우자만 할 수 있다. 생부라 해도 생모와 법률혼 상태가 아니면 출생신고가 불가하거나 무척 어렵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DNA 검사를 통해 생부인 것이 확인되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제도 개선 필요하다면 ‘아동 입장에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도 시행되면 또 출생신고제 관련 여러 보완할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예를 들어 ‘7일 이상’으로 규정된 보호출산 숙려기간을 더 늘려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논의를 거쳐 수정하면 된다. 다만 언제든 결정의 중심엔 아동이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동 전반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는가, 그 아동을 더 행복하게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것이 곧 더 옳은 방향이다. 모든 아이는 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이기에 잘 지키고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어른들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제도가 순항해 이제 그 어떤 아기의 미래도 짓밟히지 않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으니 볼썽사나운 꼴을 보기 전에 그만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왜 아이들 유치원에 안 보내요?” 아이들 어릴 때 종종 받았던 질문이다. 나는 네 명의 아이들을 모두 만 5세(한국 나이 7살)까지 어린이집에 보냈다. 다들 보육 분야 기자로서 특별한 이유나 신조가 있는 게 아닌가 지레짐작했지만 그런 대단한 건 전혀 없었고, 그저 그 어린이집의 교육 내용, 교사진, 우리 집과의 거리 등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말이 어린이집이지 교사진은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분들이었고, 특별활동으로 한글, 영어, 수학까지 배웠다. 그게 반드시 좋단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교사와 교육 모두 인근 유치원과 다를 게 없었다. 흔히 ‘어린이집은 보육, 유치원은 교육 위주’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데, 만 3~5세(한국 나이 5~7살) 교육과정은 누리과정으로 표준화된 지 오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모두 기본교육 내용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교사 역시 요새는 어린이집도 유아교육과 졸업자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활동 종류는 운영자의 재량이다. 지인의 아이가 다니던 기관은 유치원이었는데, 원장님이 돌봄과 놀이 위주 교육을 중시해 관련 특별활동이 많았다. 활동만 비교해 보면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보다 더 어린이집 같은 느낌이었다. ● ‘남북통일보다 어려워…’ 재원 두고 국고 vs 교부금 벌써 논쟁 이처럼 현장에선 이미 어린이집 유아반과 유치원의 질적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런데 여전히 형식적으로는 전혀 다른 기관이라 지원금액, 그 금액의 출처, 관할법, 구성원의 법적 지위 등이 다 다르다. 어느 기관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한 지붕 두 제도’라는 이상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 즉 유보통합이 여러 차례 시도됐다. 하지만 번번이 구체적인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무산되길 반복했다. 오죽하면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유보통합’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번 정부도 지난해 추진단을 꾸리고 유아 기관 관리를 교육부로 일원화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까진 야심 차게 통과시켰는데, 지난달 법 시행에 맞춰 나온 계획을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가장 큰 숙제인 재원, 인력 통합의 구체적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이제부터 만들어나가면 된다. 다만 할 일은 많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예산은 그 돈주머니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각자 안에서도 국가, 지자체, 교육청 등 출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앞으로 통합되면 어디가 어떤 예산을 맡을지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더 골치 아픈 건 유보통합에 따라 향후 3년간 연간 2조~4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돈을 어디서 끌어올지도 함께 정해야 한다. 벌써 국고 지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사용 등을 두고 논쟁이 빚어지고 있다. ● 교원 자격도 입장차 커…합의 어떻게 이끌어내느냐 관건 교원 자격 통일도 잘 알려졌다시피 어려운 문제다. 사실 미래 교원의 자격을 어떤 기준에 맞출지, 기존 교원들의 간격은 어떻게 좁힐지 계획을 짜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전문가들이 많은 분석과 시나리오를 내놨다. 어떻게 합의를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사안마다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예를 들어 만 0~2세 영아 교원 자격을 만 3~5세와 통합하는 안은 유치원 교사들의 반발이 크다. 반대로 분리하는 건 만 0~2세 교사를 영아 전담으로 전락시킨다고 하여 보육교사 측에서 반발하고 있다. 이런 큰 틀부터 양측 최저학력기준, 이수 과정, 기존 보육교사의 보수교육까지 세부적으로 조율할 사안이 매우 많다. 인력뿐 아니라 재원도 결국 이해 당사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합의하게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정부의 강한 추진력이 절실히 필요한 지점이다. 이제 유보통합이 온전히 한 부처의 일로 넘어온 만큼 교육부가 전문가,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신속하게 팀을 꾸리고, 안을 짜고, 공론화하고, 각 당사자를 만나 설득해야 한다. ● 통합에 매몰되면 안돼…장애아 포함 모든 영유아 ‘동등한’ 돌봄 누려야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영유아기관의 통합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외형적 합체에 매몰되면 자칫 제일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지난달 27일에 발표된 ‘유보통합 실행계획 시안’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띈 내용이 있다. 5대 과제 중 마지막 과제의 끄트머리 한 단락으로 들어간 ‘특수교육 대상 영유아 통합지원’ 안이다. 장애 영유아들도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 통합될 유아기관 내 특수학급, 특수교육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간다는 내용이다. 한국에 사는 영유아라면 누구든 어디서든 동등한 혜택을 누리게끔 한다는 게 유보통합의 취지다. 장애 영유아도 함께 돌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이 과제만큼 그 취지에 부합한 게 또 있을까. 장애 아동 부모인 지인이 있어 돌봄 기관을 찾는 데 애먹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척 마음이 아팠고, 그런 현실을 잘 몰랐던 기자로서 반성했었다. 특수교육 지원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정책이다. ● 유보통합 아니라 유보‘개선’ 정서·심리 지원 강화도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앞으로 심리 전문가나 기관과 협약을 맺어 영유아는 물론 교사까지 정서심리 진료와 검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 한다. 요새 마음이 아픈 아이, 교사 소식이 적잖이 들리는 만큼 꼭 필요한 일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유보통합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보통합이 시행되면) 저출산에 대한 효과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다만 영화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를 잊지 말아야겠다. 결국 유치원, 어린이집 통합도 영유아 돌봄을 개선하자고 하는 것이다. 장애 아동, 정서심리 지원, 그리고 돌봄 시간 연장, 교원 인력 확충, 각종 시설 교체 등 이번 대책이 담은 다양한 ‘유보개선’책도 잘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출산 해소에 기여할 것이다. 유보통합 과정에서도 그 정당성을 놓치지 않고 잡고 가야만 구성원들과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합계출산율 1.0명.’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로 직접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본회의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밝힌 목표다. 이날 육아휴직급여 인상을 포함해 다양한 저출산 추가 대책이 발표됐다.불가능하다곤 안 하겠다. 그러나 목표 달성이 쉽진 않을 것 같다. 합계출산율은 2017년 1.05명을 마지막으로 0명대로 추락했고, 이후 소폭조차 반등한 적이 없다. 그 사이 정부의 노력이 없었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올해 출산율은 집계 이래 가장 낮은 0.6명대로 예측됐다. 내년부터 5년 내 출산율을 +0.4명가량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 ‘아이에게 미안해서…’ 청년들이 안 낳는 이유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근래 출산율 감소가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산 관련해 젊은 세대의 생각 자체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10여 년 전 기자가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결혼=출산’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반면 요새 젊은 기혼자들 가운데 선뜻 애 낳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 주변만 해도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거나 “배우자와 의견을 조율 중”이라는 이들이 대다수다. 주목할 점은 그 이유인데, ‘일이 바쁘다,’ ‘하고픈 게 많다’처럼 본인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자녀’에 초점을 맞춘 답이 많다는 점이다.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좋은 환경이 아니어서,’ ‘아이에게 미안해서’ 등. 처음에는 그저 하기 싫을 뿐이면서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하지만 몇 사람이 아니라 거의 모두 이렇게 답변하는 걸 보며 청년들 사이에 만연한 사고임을 알 수 있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완벽한 부모 신드롬’이라는 말로 이런 심리를 설명했다. 1982~1996년 밀레니얼 세대는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준비가 덜 되었거나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출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키우려는 마음이 커서 역설적으로 자녀를 키울 수 없게 되는 셈이었다. 실제 기자도 “잘 키우지 못할 바엔 낳지 않겠다”거나 “애 키울 능력이 없는데 애 낳는 건 죄” 식으로 말하는 청년들을 여럿 보았다.● 기후위기·AI위협까지 걱정…육아 혜택으로 마음 돌리기엔 역부족거시적이고 중장기적인 우려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다. 두 딩크(DINK·Double Income and No Kids)족을 연달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기후변화, AI 확산 등을 언급하며 미래 세대가 처할 불확실성과 불안 때문에 출산을 포기했다”고 복붙(복사해 붙이기)처럼 이야기해 놀랐다. 이 역시 솔직히 처음엔 ‘진심일까?’란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후 젊은 무자녀 기혼자들을 인터뷰할 때도 종종 같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찾아보니 이미 서구에선 몇 년 전 ‘#No future, No children’ 같은 운동이 벌어졌을 정도로 제법 보편적 사고였다.여전히 고개가 갸우뚱 기운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자녀를 잘 키우려면 안전한 사회와 깨끗한 환경이 필요하다. 그 범주에 집, 동네뿐 아니라 전 사회와 지구도 들어간다고. 내 아이가 자랄 사회와 지구의 미래가 비관적이라면? 열악한 환경에 처한 여느 생물과 마찬가지로 번식을 멈출 것이다. 이렇게 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이 육아기 지원이 좀 늘어난다고 출산을 결심할까? 내용 없는 ‘획기적 대책’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경천동지할 획기적 대책을 내지 않고선 마음을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19일 대책이 발표되고 난 뒤 결혼 3년차, 딩크족을 자처하는 지인에게도 물어보았다. 그의 답은 역시나 “육아 지원이 강화되는 건 좋은 일인데요, 저는 여전히 안 낳을 것 같아요”였다. ● 1.0명 돼도 여전히 꼴찌…인구 감소 문제 여전정부도 다 생각한 게 있겠지, 출산율이 반등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다고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다. 워낙 0명대라는 수치가 주는 이미지가 강해서 우리는 늘 출산율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실제 출생아 수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태어난 아기는 23만 명. 그 아기들의 부모가 태어난 1980~1990년대에는 한 해 출생아 수가 60~80만 명이었고, 또 그들의 부모가 태어났던 1950~1960년대에는 무려 100만 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비교도 안 되게 적은 숫자다. 출생아의 감소는 곧 미래 부모의 감소를 뜻한다. 1980년대 합계출산율 2명대 벽이 무너진 이래로 매년 출생아는 부모보다 적게 태어났다. 즉 저출산은 계속 누적되었고 이제부터 부모 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부모도 줄고 아이고 적게 태어나는, 이른바 저출산의 ‘더블링’이다. 부모가 100만 명일 땐 합계출산율이 0.6명이어도 출생아 수가 30만 명이지만, 부모가 60만 명이면 출산율이 1.0명으로 올라도 출생아 수는 똑같이 30만 명이다. 출산율이 오른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2030년 합계출산율 1.0명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인구 감소 속도를 조금 늦출 뿐 대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세계 꼴찌인 순위도 달라지지 않는다. 2021년 기준 우리에 뒤이은 합계출산율 최저 2, 3위 말타와 중국은 출산율이 각각 1.13명, 1.16명이었다. 1.0명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압도적 꼴찌에서 그냥 꼴찌가 되는 정도다. ● 극복뿐 아니라 ‘적응’을 논의해야 할 때그렇다고 19일 발표가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1.0명을 크게 괘념치 말란 이야기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 모두 소중한 우리의 국민이기에, 이들을 양질의 환경에서 키울 수 있게 하는 육아 지원책은 여전히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일부에 한해선 출산유인책이 될 수도 있다. 다자녀 부모들끼리 하는 말이 있는데 “낳아본 사람이 더 낳는다”이다. 다자녀 부모 온라인커뮤니티에 가보면 자녀가 셋, 넷인데도 “하나 더 낳고 싶다”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출산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물론 한 명 낳고 더는 못 낳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만큼 하나 키워보니 예뻐서 둘째, 셋째를 생각하게 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의지가 있는 가정엔 출산지원책이 추가 출산의 유인이 될 수 있다. 실제 한 지인은 둘째를 고민하던 중 부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휴직 기간과 급여를 늘려주는 혜택(6+6 부모육아휴직제도)을 접하고 둘째를 가졌다고 한다. 육아 가정의 상황이 나아지면 청년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수 있다. 많은 청년이 “우리 언니가,” “회사 선배가” 아이를 힘들게 키우는 걸 보고 출산을 꺼리게 됐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 출산율이 개선된대도 대세에 큰 변화는 없기에, 이제 저출산 ‘적응’책도 적극 회자하길 바란다. 고령화, 생산성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추세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저서를 통해 지적했듯 고령, 여성 인력 활용을 높이고 산업별 재편성을 통해 그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앞으로 새로 출범할 부처에서 저출산 극복뿐 아니라 적응 문제 등 인구 문제를 다각적으로 논의할 수 있길 기원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하지만 그게 제 진짜 반응이었죠.”한 국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 값(0.78명)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Korea is so screwed. Wow!)”라며 머리를 부여잡는 모습으로 화제가 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 법대 명예교수(72)는 과거 자신의 인터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찐(眞) 리액션’은 그 어떤 저출산 기사, 논문보다 우리 사회에 더 큰 경종을 울렸다. 합계출산율 0명대란 이렇게 놀라야 하는 일이라고. 인터뷰는 유명한 ‘짤(meme)’이 되어 많은 언론에도 보도됐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걸 그는 알았을까.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 인생에서 한 번도 인터넷 밈이 돼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합계출산율 0.68명, “‘매우 매우’ 이례적”방한한 윌리엄스 교수를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다소 호들갑스러운 반응과 달리 답변은 진지했고 태도에선 세련된 기품이 넘쳤다. 과거 인터뷰처럼 머리 잡는 동작을 재현해줄 수 있냐는 기자의 부탁에도 난감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저는 원래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걸요. 그땐 정말 크게 놀라서 그랬어요.”윌리엄스 교수는 노동법 전문가이자 오랫동안 일터 성차별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연구해온 저명한 사회학자다. 그의 할머니는 존스홉킨스의대 1호 여학생이었지만 결혼과 함께 자퇴해야 했고, 어머니는 지역 신문 기자였지만 세계대전이 끝나고 남자들이 대거 복귀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윌리엄스 교수가 여성 노동과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출산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봐 온 그에게도 한국의 초저출산 상황은 머리를 부여잡을 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8명으로 예측된다. 윌리엄스 교수가 듣고 놀랐던 0.78명에서 0.1명 더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윌리엄스 교수는 “그토록 낮은 수치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매우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부사를 두 번이나 쓰며 강조했다. 그는 “전쟁이나 팬데믹 상황인 나라들에서나 그런 출산율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한국) 거시경제에도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돈독한 관계를 감안할 때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근로시간 유연성’ 강조한 정부 개편안에 “아이 일주일 얼려놓을 수 있나”노동 전문가인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 초저출산 문제 원인으로 단연 ‘가족 비친화적 일터’를 꼽았다. 특히 ‘장시간 노동’이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OECD 평균 대비 2~2.5배 이상 많다”며 “노동시간이 매우 매우 길다”고 또 부사를 두 번이나 반복하며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일주일에 최대 52시간(주 52시간제)으로 규정된 제한을 풀어 근로시간을 월, 연 단위로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하겠다며 개편안을 내놨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좌초하긴 했지만, 정부는 제도의 틀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경직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면 ‘몰아서 69시간 일’할 수도 있는 대신 그만큼 ‘몰아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어서 결과적으로 근로자에게도 득이라는 설명이었다. 윌리엄스 교수는 제도의 취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한 주는 길게, 다른 한 주는 적게 일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아니냐”며 “만약 (길게 일하는) 한 주 동안 애를 ‘얼려놓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그렇게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러나저러나 길게 일하면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는데, 이런 육아 부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세계 최장 근로시간의 한국이 지금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논할 때는 아니라고 그는 지적했다. ● 가사 8배, 육아 6배 한국 여성, “출산? No Thanks!”그는 한국의 여성 노동 문제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0% 이상(종사자는 80%)을 차지하는 한국 기업 생태계의 특징을 언급하며 “대기업에선 (근로시간 단축 등 가족친화적 시스템 마련에)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엔 중소기업이 많고 대부분의 여성 역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게 문제”라며 아직 많은 여성이 아이를 키우기에 열악한 상황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나마 대기업에서 많이 이용하는 육아휴직도 ‘아직 이용 시 눈치를 봐야 하는 점,’ ‘남성 이용률이 여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점’이 여전히 문제라고 짚었다. 윌리엄스 교수는 “정말 놀라운 건 (한국) 여성들이 동료들에게 미안해 육아휴직을 못 간다는 것”이라며 “고용주가 돈을 아끼려 대체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을 혹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직한 여성은 불만에 찬 동료들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본 육아는 물론 자녀 교육, 물질적 성공까지, 한국 엄마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책임이 엄마들로 하여금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고 했다. “여성들은 자녀뿐 아니라 남편과 그 부모님까지 돌봐야 한다. …한국 여성은 남자보다 가사노동 8배, 육아 6배를 더 한다. …어느 순간 남자와 자신을 비교해본 여성은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출산과 육아) 더는 사양하겠어(No thanks)!’라고.”● 가족친화적 일터 없이는 ‘백약이 무효’윌리엄스 교수도 두 아이의 엄마다. 수많은 책과 논문을 쓰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건사했을까? 그는 “나는 아마도 미국에서 (일반 가정이) 유모를 둘 수 있던 유일한 시대에 산 사람일 것”이라며 “지금은 (미국에서도) 인건비가 비싸 꿈도 못 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최근 할머니가 됐다. 최근 태어난 손녀는 “생후 4개월 때부터 비싼 돈을 내고” 어린이집(childcare center)에 다닌다고 했다. “미국에 비하면 한국은 좋은 보육시스템을 가졌다. 정부가 보육과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해왔고 결국엔 결실을 맺었다.” 윌리엄스 교수가 말했다. 하지만 무상보육·교육임에도 긴 근로시간, 치열한 경쟁, 교육 부담 등으로 인해 결국 추가로 돌봄과 교육비용이 들어간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결국 한국에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려면 일터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윌리엄스 교수는 강조했다. 그간 정부가 수많은 저출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가족친화적인 일터가 구축되지 않으면 정책의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쉽게 말해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이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37개 대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연구진과도 협업을 구상하는 중이다. “한국엔 이제 선택권이 없다. 당장 바꿔야 한다”며 “한국을 지금에 이르게 한 방법과 추진력이 지금 상황을 극복하게도 할 것이다.…분명히 출구는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어머, 애가 넷?! 세상에, 어떻게 키워?”얼마 전 퇴근길, 버스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여성 두 분의 대화에 귀가 솔깃해졌다. 회사 동료들인 것 같은데, 지인 중 아이 넷인 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첫째가 중학생인데 사춘기고, 막내는 이제 6살이래.” “아니, 나는 하나도 버거운데. 그 엄마는 걔들을 다 어떻게 건사하지?”‘저도 애가 넷인데 잘 건사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모를 아이 넷 동지 이야기에 반가워 입이 근질근질하던 찰나 한 여성이 말했다. “근데 엄마도 힘들겠지만, 애들도 안됐다.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여럿이 얼마나 힘들 거야.” 그러자 다른 여성이 “그러게, 애들도 힘들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번듯하게, 남부럽잖게…“잘 키우지 못할 거면 안 낳는다”갑자기 퇴근길 경험이 떠오른 건 최근 저출산 관련해 진행한 인터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2040세대를 폭넓게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게 있었다. 아이를 (더) 낳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물었을 때 의외로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젊은 친구들이라 본인의 경력이나 일, 자유시간에 관한 답이 먼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자녀 이야기를 먼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현재 지방 소재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A 씨(31)는 “자녀를 가질지 모르겠지만 갖는다면 한 명만 갖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아이를 키운다면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번듯하게 키우고 싶은데 제 벌이로는 한 명이 적당할 것 같다”며 “둘, 셋을 키울 인프라는 꾸릴 자신이 없다”고 했다. B 씨(38)는 결혼 10년차지만 아이가 없다. 그는 “와이프가 아이를 낳으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했었다”며 “잘 키우지 못할 바에야 안 낳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B 씨 부부는 반려묘 두 마리를 오랫동안 키우고 있다. 앞으로도 아기는 갖지 않을 생각이다.이미 아이가 있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모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SNS스타이자 자수성가한 사업가 C 씨(39)는 3살 남아 한 명을 키우고 있다. 둘째는 원치 않는데, 이유가 ‘현재 자녀를 더 잘 키우고 싶어서’다. 그는 “아내가 애한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라며 “육아에서 만족감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 둘 다 하나가 좋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너무 높은 목표치에 애초 출산이 엄두가 안 난다거나 무섭다고 말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20대 여성은 “아이 키울 때 보내야 하는 기관, 들여야 하는 사교육비, 시간 이야기를 들으면 감히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도 “내가 기반을 잘 구축해서 아이에게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 봐 무섭다”고 했다. ●육아 자체보다 결과가 더 중요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답변에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던 건 아이와 육아 그 자체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내는지, 그 양육결과에 무게를 두는 듯한 뉘앙스 때문이다. 앞서 버스의 두 여성이 다자녀 가정을 안쓰럽게 보았던 이유도 그런 맥락이었을 거다. 잘 키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녀 수가 많은 집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 가구의 재화와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자녀가 많으면 더 쪼개어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녀를 많이 낳는 가구가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실제 인터뷰한 20대 여성 중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가 ‘가난해서 애 낳는 건 죄’라는 거다. 2세를 낳을 거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줘야지, 그런 것도 없이 둘, 셋 여럿 낳는 건 아이 인생을 망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물론 아이를 전혀 양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뒤 방기하거나 학대하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에서 낳은 아이들도 투자와 미래가치라는 프레임으로 우선 본다는 건 어쩐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함께 나누는 시간, 고민, 행복, 그 모든 것이 육아미국 현지 대학에서 대학강사로 일하고 있는 D 씨(45, 여)는 원래 학위만 따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고민 끝에 남편, 초등학생 아이 둘과 함께 미국에 남기로 했다. 부부 모두 미국엔 전혀 연고가 없다. 이민은 순전히 자녀들 때문이었다. D 씨는 “한국에선 아이 키우면 ‘이거 해야 하고 저거 해야 하고’ 이런 게 너무 많더라”며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게 아니라 다들 아이를 특정 성공의 롤모델대로 만들어야 하는 태스크를 짊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민을 결정했다”고 했다. 아이를 풍족하게 키우거나 잘 키워 성공시켜 나쁠 건 없지만, 육아에서 무엇보다 중심이 되어야 할 건 아이와 부모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그런 육아의 과정이다. 그리고 아이를 갖느냐 안 갖느냐 선택에 있어서도 그런 것들이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네 아이에게 값비싼 교육과 옷, 집을 주진 못했지만, 매일 저녁, 주말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이 행복했고, 비록 부딪힐지언정 어떤 미래를 그릴지 함께 구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아이들 덕분에 울고 웃는 그 모든 시간이 육아였고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생각해 보면 잘 키운다는 것도, 꼭 번듯한 미래를 갖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일본 소도시로 여행을 갔다가 웃지 못할 경험을 했다. 갑자기 비가 내려 어렵게 버스정류장을 찾고 있는데 70대로 보이는 일본인 할아버지께서 “관광객이냐”며 역까지 태워주겠다고 본인 차를 내어오셨다. 그때만 해도 ‘웬 횡재냐’ 싶었는데 다시 없을 ‘악재’가 될 줄이야. 역에 도착해 감사 인사와 함께 할아버지를 보내고 기차표를 사려는 순간 깨달은 것이다. 할아버지 차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는 걸!● 여행 중 엄마의 실수, 기특했던 아이들의 대응지갑과 열차 패스 모두 가방에 있었다. 심지어 와이파이 기계까지 가방에 든 터라 휴대전화 인터넷도 먹통이 됐다. 그 말인즉 휴대전화 일어 번역기를 쓸 수 없게 됐다는 뜻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방 소도시라 교통편도 많지 않았다. 1시간 반 뒤에 오는 막차를 놓치면 숙소 돌아갈 방법이 요원했다. ‘오, 신이시여’ 소리가 절로 나왔다. 때마침 경찰서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 무작정 들어가 일본인 경찰관 두 분께 영어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겨우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경관분들이 사정을 이해하시어 경찰차로 맨 처음 할아버지 차를 탄 곳까지 데려다주셨고, 함께 골목을 뒤진 끝에 할아버지 차를 찾을 수 있었다. 가방을 되찾았음은 물론이다.그나저나 내가 그 난리를 치르는 새 함께 간 아이들 네 명은 어디 있었을까? 아이들까지 챙길 정신이 없어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라 했는데, 아이들은 혹시나 할아버지가 가방을 갖고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돌아가며 역 앞에서 당번을 섰다고 한다. 허기질 시간이라 낮에 산 간식을 나눠 먹었고, 심심하면 서로 말 주고 받기 게임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랬단다. 미안하면서도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대형사고 수준은 아니지만, 여행 내내 작은 실수는 계속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은 조식을 먹으러 숙소 식당에 내려갔는데 조식표 한 장을 안 들고 와서 다시 방에 올라갔다 와야 했다. 아이들이 기다릴 생각에 헐레벌떡 뛰어갔다 왔는데 웬 걸, 어느덧 네 명 모두 식판에 야무지게 음식을 담아와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손에 잘 닿지 않는 음식은 주변 사람에게 ‘도와 달라’ 부탁까지 하고. ●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부모도 편해야혼자 아이들 데리고 여행 갔다 왔다고 하면 ‘엄마가 혼자 애들을 다 어떻게 챙겼느냐’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마 혼자 다 챙긴 건 아니다. 아이들끼리도 서로 챙기기도 하고, 때로는 엄마가 챙김을 받기도 했다. 엄마가 모든 걸 다 해줘야 하는 여행이었다고 하면 아마 힘들어서 가지 못했을 것이다. 평상시 육아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나는 웬만하면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혼자 스스로 해보게끔 독려하는 편이다. 아이가 서툴다고 부모가 일일이 개입하면 누구보다도 부모가 너무 힘들다. 이렇게 힘든 육아는 힘든 여행과 마찬가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스스로 완수해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은 예닐곱 살부터는 스스로 머리 감고 이를 닦게 했다(물론 처음에는 부모의 점검이 필요하다). 학교, 학원도 첫 한두 달이 지난 뒤부터 혼자 다니도록 했다. 어쩔 수 없이 근무해야 하는 휴일, 아이들끼리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처음엔 당연히 실수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세 적응하고 잘 해냈다. 지난 여행 때 아이들의 의연한 대처도 평상시 이렇게 스스로 각자 일을 해본 습관 덕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어린아이도 식사 준비하는 몽골, 부모가 등하교 동행 않는 독일최근 외국인과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분들을 만나 한국의 저출산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고 서울에 사는 몽골인 A 씨(32·여)는 한국 엄마들로부터 “시집와서 칼을 처음 만져 봤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몽골에선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부터 식사 준비에 참여한다. 감자 같은 건 네다섯 살 때부터 깎았다”고 한다. 매일 오후 학교 정문 앞에서 부모들이 줄지어 서서 아이들 하교를 기다리는 모습도 신기했다고. “한국 초등학교는 대부분 집에서 가깝다. 이상한 사람을 따라갈까 걱정이라면 아이에게 잘 가르쳐주면 될 텐데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부모들의)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A 씨의 말이다. 독일 여성과 결혼해 10년째 독일에서 사는 B 씨(37)는 반대로 독일 육아 방식을 보고 놀란 경험이 있다. “한국 부모들은 매일 규칙처럼 아이들을 씻기잖아요. 독일에선 부모들이 며칠씩 놔두더라.” B 씨에겐 아이 옷 단추를 채워주지 않거나, 넘어져도 곧장 가서 일으켜 주지 않는 부모 역시 생소했다. 등하교 모습도 독특했다고. 그는 “초등학교 같은 반 아이들이 집마다 들러 마치 기차놀이 하듯이 서로를 챙겨 등하교한다. 부모들은 따로 동행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 “부모라면 아이 뒤치다꺼리 해야”…‘빡세다’ 한국 육아두 해외 경험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 육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빡세다(힘들다)”는 것이었다. A 씨는 첫째가 서너 살쯤 시어머니에게 들은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물을 흘렸는데, 스스로 닦도록 두었더니 저에게 ‘부모란 이런 일(아이 뒤치다꺼리)이 직업인 사람’인데 왜 치우지 않느냐셨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몽골 부모란 아이에게 꼭 필요한 돌봄과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 부모는 “전업주부처럼 육아에 온 정성을 쏟는 사람”이라고 했다. B 씨도 비슷했다. 그는 “독일을 경험해보니 확실히 한국 부모들에겐 요구되는 게 더 많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왜일까. 부모와 자녀 간 유대가 각별한 유교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탓에 부모가 그 역할을 상당 부분 책임져 온 탓일 수도 있다. 갈수록 자녀 수가 줄면서 더 심해진 것일 수도 있다. 아이 둘 엄마인 한국인 C 씨(45·여)는 식당에서 본 한 가족 사례를 전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 그리고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까지 4명이 식사하는데, “엄마는 아이 밥을 떠먹이고, 할머니는 아이 반찬을 자르고, 아빠는 아이 얼굴에 묻은 것을 닦거나 물을 가져다주고 있더라”는 것. 결과적으로 아이는 거의 손 하나 까닥이는 일 없이 식사하고 있는 셈이었다. ● 헌신적인 육아, 조금만 힘 빼보면 어떨까어떤 이유이든 너무 헌신적인 육아로 인해 많은 부모가 육아를 고되고 어렵게 느낀다는 게 문제다.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귀화한 파키스탄인 D 씨는 “아이 엄마는 나보다 한국말을 못 하는데, 아이 숙제를 도와야 하고 엄마가 할 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한국어를 잘하는(!) 한국인 지인들도 힘들어하긴 마찬가지다. ‘매 주말 학원 라이드 해야 해서,’ ‘아이가 갖고 싶다는 걸 사줘야 해서,’ ‘아이가 못하면 내가 부족한 탓 같아서’ 힘들다.취재 과정 중 만난 한 외국인은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들며 “한국에선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통 부모’만 필요한 듯하다”고 우스개 아닌 우스개소리를 했다. 힘을 들일 땐 들이더라도 빼야 할 땐 없는지 찾아보면 어떨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결혼과 출산을 안 해도 된다고 답한 청년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절반 이상이 결혼과 출산을 안 할 것이라고 답했다….’자, 퀴즈다. 언뜻 보면 같은 말 같은데 무엇이 다를까. 정답은 ‘안 해도 된다’와 ‘안 할 것이다’의 차이다. 전자는 결혼과 출산을 안 해도 되고, 해도 된다는 청년이 많았다는 뜻이다. 반면 후자는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청년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안 해도 된다’가 발전하면 결국 ‘안 할 것’이 되겠지만, 결코 두 문장이 같다고 볼 순 없다. ● 결혼·출산, “해도 된다”는 20대 청년들…저출산 시대 “샤이 패밀리스트”종종 청년들의 결혼·출산관 관련한 설문조사 기사를 보면 이 두 뜻을 혼동해 쓴 곳들이 보인다. 안 해도 된다는 것과, 안 할 것이라는 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인데 말이다. 갑자기 이런 국어 문법 강의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최근 20대 청년들을 인터뷰하며 깨달은 점 때문이다. 그동안 청년들의 인식을 설문 조사한 기사들을 보며 기자 역시 은연중에 혼동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하니, 당연히 젊은 청년들일수록 결혼과 출산을 안 하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취재해 보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안 해도 된다’는 청년들은 많았지만, ‘안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청년은 예상외로 드물었다. A 씨(24·여)는 대학 졸업 후 항공업계 취업 준비 중이다. 그는 “제 친구들 70%는 결혼하겠다고 하고 아이도 갖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기자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청년이 더 많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자, “요즘 초등학교의 전교생이 몇 명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 결혼을 안 하는구나’ 싶긴 한데, 적어도 내 주변에 확고한 독신주의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 산하기관 인턴으로 일하며 건축기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인 B 씨(26)는 “주변 지인들이 ‘결혼하고 싶다’ 반, ‘안 하고 싶다’ 반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 같다”며 “나도 평생 혼자 살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다른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거나 ‘어려울 것 같다,’ ‘엄두가 안 난다’고 말하는 이들은 있었으나, ‘그래도 언젠가 결혼하지 않을까요’라거나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면 낳을 것’이라며 열린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동안 설문조사나 기사를 보면 온통 부정적인 청년들뿐이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전문대 졸업 후 온라인 스토어에서 자신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C 씨(24·여)는 “나도 창업해 성공하고 싶은 한편으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픈 마음이 있다. 하지만 주변에는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거나 ‘비혼주의자’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아직 안정적으로 이룬 것도 없는데 ‘결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니는 건 어쩐지 민망하다. 또 결혼이나 자녀 계획 같은 걸 이야기하면 약간 옛날 사람 같은 느낌도 든다”고 했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을 것”이라며 “일종의 ‘샤이 패밀리스트(숨은 가족주의자)’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코로나 끝나자 ‘자녀 계획’↑…출산 원하는 청년들 어딘가에최근 많은 언론에서 기사화된 한 실태조사는 이런 청년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6∼7월 전국 1만2000가구 만 12세 이상 모든 가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가족 실태조사’ 결과를 17일 공개했는데, 2030 젊은 층에서 자녀 계획이 있다고 밝힌 사람이 그 전 조사인 2020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계획이 ‘있다’고 답한 30대가 전체 응답자의 27.6%, 30세 미만 15.7%로 각각 2020년 조사 값에서 9.4%포인트(2020년 18.2%), 6.8%포인트(8.9%) 오른 것. 이를 두고 ‘출산율이 반등하는 신호’라며 팡파르를 울린 분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히 변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전에 없던 출산 의지가 솟아났을 리 만무하다. 그보다는 원래 출산을 원했거나 할까 말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기다렸다가 자녀 계획을 재개했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 있을 것이다. 실제 2020년 자녀 계획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유달리 적긴 했다. 그 전 조사(2015년)와 비교할 때 20% 이상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2015년 조사에서 자녀 계획이 있다고 답한 30대는 33.2%, 30세 미만은 37.5%였다). 자연적으로 떨어졌다기엔 너무 큰 낙폭이었다. 기존에 출산 의지가 있는 청년들이 코로나19라는 사건으로 인해 뜻을 드러내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출산 원하는 청년들 심층 조사…저출산 해법에 새로운 착점 줄 수도이렇게 결혼과 출산에 우호적인 청년층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안타깝지만, 30대로 넘어가면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과 맞닥뜨리면서 ‘할까 말까’ 고민하던 청년 다수가 비혼, 무자녀 대열에 합류한다. ‘코로나 종식 때처럼 환경이 나아지면 다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겠지만, 코로나 종식급 국면 전환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청년들을 찾아 심층 조사해 보기를 권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결국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던 사람들이 안 하고 안 낳기 때문이다. 저출산 원인을 묻는 대규모 객관식 설문조사는 사실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조사 했다 하면 판에 박힌 듯 나오는 집값, 일자리 불안정, 일·가정양립 불가…그 답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를 낳으려거나 혹은 낳으려 했던 사람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면 생각지 못한 착점을 발견할지 모른다. 왜 배우자와 자녀를 원하(했)는지, 어떤 가정을 이루고 싶고 그러자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걸림돌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를 낳고자 하는 청년들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공유하자. 그들이 더는 ‘샤이’로 남아있지 않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기순도발효학교는 11일 전남 담양 창평면 기순도 장고(醬庫)에서 발효학교 한국 측 운영진인 (사)한국전통장보존연구회(이사장 기순도), ㈜다이어리알(대표 이윤화)과 일본 측 (사)한일교류협회(대표 카나이 마수미), 파이브유니티(대표 우선희)가 상호 협력 협약서(MOU)를 체결했다고 16일 밝혔다. 기순도발효학교는 일본인 대상 학교 개교를 앞두고 있다. 학교 측은 이번 협약이 “기순도전통장의 가치를 해외에 알리고 보급하는 첫 발걸음이자 K-발효 문화교류의 교두보가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저출산 관련 취재차 딩크(DINK)족이라 밝힌 30대 기혼여성을 인터뷰했다. 딩크란 Double Income, No Kids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정상적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적극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뜻한다. 여성에게 취재를 위한 질문임을 전제로 조심스레 물었다. 기자: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여쭐게요. 어째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하셨을까요?” 여성: “아, 저도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궁금해서요. 기자님께서는 어째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셨을까요?”상대방의 기습적인 반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잠시 우물쭈물했다.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받은 것도 당황스러웠거니와, ‘왜 아이를 네 명이나 낳았느냐’는 질문이면 모를까 ‘왜 아이를 낳았느냐’는 질문은 받아 본 적도, 답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짧은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다. “제가 낳을 땐 다들 으레 낳았거든요.”● 으레 낳던 사회에서 으레 낳지 않는 사회로…정말이지 그랬다. 13년 전 결혼하고 첫 아이 임신할 때만 해도 출산은 결혼한 부부가 ‘으레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기자에겐 이유나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출산에 관한 고민이라고 하면 흔히 말하는 ‘자녀 계획’ 정도였다. 몇 명을 낳을까, 몇 살 터울로 낳을까 등.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주변 지인들 이야기만 들어봐도 아이는 으레 낳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결혼 후 한동안은 ‘으레 낳지 않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출산 고민도 달라졌다. 몇 살 터울로 낳을까가 아니라 언제 낳을까, 몇 명 낳을까가 아니라 낳긴 낳아야 할까.생각해 보면 요새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나 ‘출산을 유예해야 하는 이유’는 넘쳐난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도 아마 어렵지 않게 서너 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는? 넷이나 낳은 기자도 머뭇거렸던 것처럼 선뜻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 세월 출산은 지극히 당위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젊은이들에게 출산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다. ‘설문조사 했더니 아이는 낳아도 되고 안 낳아도 된다고 답한 청년들이 많았다’는 소식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한 20대 후배는 “요즘은 ‘아이를 꼭 낳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별종 취급을 받는다”며 “그렇게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도대체 이유가 뭘까, 희한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것이 급격하게 당연하지 않은 게 된 것. 과거엔 출산하는 절대다수 속에서 ‘출산하지 않는 이유’가 필요했다면, 점점 출산하지 않는 다수 속에서 ‘출산할 이유’ 혹은 ‘출산할 결심’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달까.어쩌면 앞서 인터뷰한 여성은 기자의 질문이 외려 더 새삼스럽다고 느꼈을 수 있다. ‘아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이유는 너무 잘 알려져 있고 상식인데, 왜 이런 당연한 질문을 하는 거지?’ ● 10명 중 3명만 결혼 2년 내 출산…‘결혼=출산’ 공식 깨지고 있어과거 정부는 ‘그래도 결혼하면 아이는 낳는다’며 신혼부부 혜택에 집중해 왔다. 담당 부처 공무원으로부터 “아이 낳을 것도 아닌데 결혼을 왜 하겠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갖는 부부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2022 신혼부부 통계’를 보면 일단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 부부가 절반에 가까웠다. 2022년 11월 1일 기준 혼인 신고한 지 5년 이내 부부 가운데 자녀가 없는 비중이 46.4%에 달했다. 출생아 상황을 봐도 비슷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부모가 결혼하고 2년 내 태어난 아이는 전체 출생아의 40.3%였는데, 2022년 31.5%로 떨어졌다. 반면 결혼 후 5년이 지나 태어난 아이 비율은 2012년 23.3%에서 2022년 27.5%로 올랐다. 출산에 대해 갈수록 장고하는 추세란 이야기였다. 이 기간 출생아 수가 반토막이 난 탓에 출생아 수로 따지면 그 차이는 더 크다. 2012년 부부 결혼 후 2년 내 태어난 아이가 19만3613명이었다면, 2022년에는 7만5767명으로 쪼그라들었다. ● 결혼만 하지, 출산 왜 해? 이 질문 답할 수 있나결혼과 출산은 동반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을 인터뷰해 보면 그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확연히 달랐다. 결혼에 대해선 대부분 “하면 하죠, 뭐”라는 등 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출산의 경우 “낳을 가능성이 높지만 솔직히 엄두는 안 난다”거나 “지금은 낳고 싶지만 살아보고 결정하겠다” 등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가 많았다. 그만큼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었다. 한 20대 취업준비생은 “동거가족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출생아 수가 늘지 모르겠다. 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출산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출산의 부담과 상대적으로 낮은 결혼의 부담, 그로 인해 ‘무자녀 부부’가 늘어난다면, 그는 ‘아이와 가족이 행복’이라는 현 정부의 인구정책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흔들 가능성이 있다. 부부만 해도 가족이고, 부부끼리 재밌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굳이 왜 출산을?’ 많은 부부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질문에 기자처럼 제대로 된 답을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현실적인 여건이 개선된다 한들 출생아 수는 더 줄어들 것이다. 결국 생각과 가치관을 이기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남편이 토요일에 일하는 직업을 가진 탓에 매주 토요일 네 명의 아이들을 혼자 돌보는데 귀찮더라도 웬만하면 네 아이들을 데리고 꼭 바깥나들이를 가는 편이다. 그냥 집에 있다가는 자칫 평온한 주말 층간소음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가까운 산에 다녀왔다. 요즘에는 어린아이들도 걸을 수 있게 길을 잘 내어놓은 야트막한 산들이 많다. 보통 산을 오르면 올라가는 곳과 내려오는 곳의 위치가 달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날도 오며 가며 지하철을 탔는데,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노약자석은 물론 일반좌석까지 공석이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 첫째는 머리 위 손잡이에 손이 닿았지만, 둘째부터 넷째까지는 지하철이 출발, 정지할 때마다 휘청거리는 몸을 서로에 의지해 지탱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30여 분 힘들게 지하철을 타는데 어린아이들에게 “와서 앉으라”며 말을 거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아이들 앞의 일반좌석엔 이런 문구가 붙어있었다. ‘이곳의 일곱 개 좌석은 몸이 불편하신 분, 어린아이를 안고 계신…을 위한 자리입니다. 양보해주세요.’ 양보가 강제는 아니고 자리에 앉아있던 젊은이들에게도 저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려 해도, 솔직히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배려 없는 배려 좌석, 노키즈존…얼마 전 아이들을 키우는 지인을 만나 이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그는 기자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리 양보를 기대했어? 어린애 여럿 데리고 대중교통 탔다고 ‘민폐’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야.” 그러면서 본인이 얼마 전 어린아이 세 명을 데리고 나가 외식하려다가 입장을 거부당한 경험을 덧붙였다. ‘어린아이들은 데리고 올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지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기자도 지난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취재원으로부터 산 옆에 자리한 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은’ 카페를 소개받았는데, 누가 봐도 아이들과 가면 좋을 곳이라 날이 따뜻해지면 방문할 생각으로 인터넷 후기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계곡 옆에 자리했다는, 누가 봐도 아이들이 놀기 좋아 보이는 그 카페는 놀랍게도 실내가 ‘노키즈존(No Kids Zone)’이었다. 2014년쯤부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노키즈존은 말 그대로 아이가 들어올 수 없는 구역, 아이 출입을 제한한 상업시설이다. 처음엔 ‘아이가 짐승도 아니고 아예 못 들어오게 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했지만, 혐오니, 차별이니 하는 논란 속에서도 서서히 늘어 현재 공식적으로 전국 수백 곳에 이르렀다. 2023년 제주연구원 사회복지연구센터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 노키즈존 매장은 542곳, 누리꾼들이 직접 구글 지도에 표시한 매장은 459곳이라고 한다. 애초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영업장(술집 등)을 제외하고도 이 정도다. 대놓고 표방하진 않았지만 지인이 방문한 가게처럼 구두로 아이 동반을 자제시키는 곳도 있을 걸 감안하면 실제 노키즈존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의회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노키즈존 제한을 골자로 하는 조례 통과를 시도했는데, 심의 과정에서 반대가 많아 결국 처벌 조항을 빼고 문구를 ‘확산 방지’로 수정해 가결했다. ●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어른들도 힘드니까 앉아있고 싶겠지.” “까짓거, 그 가게 안 가면 돼.” 이렇게 대범하게 넘기면 그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무시와 배척일지언정 육아 가정 입장에서는 마음이 위축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요즘처럼 ‘무개념’과 ‘몰상식’을 싫어하는 분위기에선 더욱 그렇다. 자칫 잘못해 ‘진상’ 혹은 ‘맘충(엄마와 벌레의 합성어로 경우 없는 엄마들을 비난하는 말)’이 될까 봐 노심초사 아이들을 더 단속하게 된다.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도 있고, 혹여 외출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종일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를 연발하게 된다. 특히 기자 같이 아이가 많으면 더 신경이 쓰인다. 조용히 타일러도 될 일을 두고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아이를 혼낸 적도 있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까지 아이를 옥죄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개념한 아이와 몰상식한 부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고의로 소란을 피우거나 누굴 괴롭힐 목적으로 사고를 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원래 자유분방하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교과서인 홍창의 서울대 명예교수의 ‘소아과학’은 매우 유명한 문구로 시작한다.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소아과학의 특징을 잘 담았다는 이 한 문장은 일반적으로 아이를 설명할 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그저 ‘몸만 작은 어른’이 아니다. 아직 잘 알지 못해 크게 얘기하고, 배우지 않았거나 신체 기관이 미성숙해서 실수를 저지른다. 한 지인은 “애한테 ‘쿵쿵 걷지 말라’고 소리 지르기 더는 미안해서 1층으로 이사 갔다”고 한다. 애는 멋모르고, 혹은 아직 다리가 온전치 않아 쿵쿵 걷는 건데 부모로서 너무 한단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런데 이런 아이들에 대한 양해는 갈수록 줄어드는 듯 보인다. 아이들에게 양보해 주고 길을 비켜주는 사람보다, 아이가 왔다고 눈살을 찌푸리고 뭔가 실수하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더 많아졌음을 느낀다. 눈에 띄는 증가세는 아니지만 서서히, 그렇지만 광범위하게 노키즈존과 진상 부모, 맘충과 같은 콘텐츠 유행은 그런 상황을 대변한다. ● ‘10년 새 반토막’ 사라진 아이들, 사라지는 이해와 배려동네서 오며 가며 알게 된 아이 엄마는 이런 일련의 이야기를 듣더니 “아이가 너무 줄어서 아이에 대한 이해심도 줄어든 것 아니냐”고 했다. 실제 만날 떠드는 합계출산율만 준 게 아니라 출생아 수도 급감하고 있다. 1980년대 초 80만 명에 이르던 아이 수가 30년 만에 반토막이 났고, 다시 불과 10년 새 40만 명대에서 20만 명대로 반감했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올 1월 출생아 수는 2만1442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88명이 줄어 7.7%나 감소했다. 통상 1월은 아기가 가장 많이 태어나는 달이다. 더구나 2023년 코로나19 영향이 끝나면서 결혼이 늘고 따라서 올해 출산도 소폭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올 첫 달 출생아 수는 역대 1월 중 가장 적었고, 전년 대비 감소율도 2022년 –1.0%, 2023년 –5.7%로 과거보다 외려 더 컸다. 앞서 이야기한 동네 아는 엄마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중학생,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최근 친척 모임에 갔는데 사촌 동생이 데리고 온 24개월 아기가 너무 예뻐 온 가족 모두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만한 아기를 본 지 몇 달은 된 거야. 요새 내 주변에 그만한 아기가 없거든.”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젊은 친구들은 나보다 더 아이 볼 일이 없으니 아이들을 잘 몰라서 배려해야 하는 것도 모르는 게 아닐까?”그럴지도 모르겠다. 최근 인터뷰한 두 청년은 “아이들이 싫진 않지만 어떻게 대하고 보살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주변에 아이가 있냐고 물으니 “사촌 언니의 아이”, “회사 선배의 딸”과 같이 한 다리 건너 먼 관계를 댔다. 둘 다 자주 보기는 어려운 아이일 터다. 본인은 물론 본인의 형제나 친구 중엔 아이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 약자끼리도 싸우는 각박한 사회, ‘이런 세상서 못 키워’ 저출산 악순환아이를 향한 배려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배려가 줄고 각박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인터뷰한 30대 여성 직장인은 “우리나라처럼 차별에 항의하는 장애인을 대놓고 욕하며 끌어 내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약자에 대한 태도가 이럴진대 아이라고 다르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소재 직장에 다니는 50대 아이 아빠는 “집에서도 남매간에 ‘남자는 다 그렇다’, ‘여자는 이래서 문제다’며 젠더 갈등을 빚어지고, 직장에서는 자녀 복지에 대해 싱글 청년들이 ‘자기들이 좋아서 낳았는데 왜 혜택을 주느냐’며 서로 눈을 부라린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급기야 약자끼리도 날을 세운다. 이 50대 남성은 “아내와 아이가 지하철을 탔다가 웬 어르신과 싸움이 붙었단다”며 이야기를 전했다. 일반좌석에 자리가 없어 아이를 노약자석에 앉혔는데 한 어르신이 ‘노인들 앉을 자리도 없는데 왜 애를 앉히냐’며 화를 냈다는 것. 여기에 아내 분이 대거리를 하면서 말싸움이 났다는데, 누구도 배려하지 않는 가운데 급기야 약자들끼리 배려석을 두고 다툼이 난 셈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선 출산과 육아가 더욱 꺼려질 수밖에 없다. 기자가 만난 청년들은 아이를 낳기 싫은 이유 중 하나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험해서’를 꼽았다. 해외 언론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다루며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합계출산율 1.8명대로 서구 선진국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출산율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르몽드는 2024년 2월 한국의 저출산을 기획 기사로 다뤘다. 해당 기사에서 ‘한국 사회가 저출산 문제로 고통을 겪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인 예로 노키즈존을 들었다. 르몽드는 제주연구원이 집계한 전국 노키즈존 수도 소개하면서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에서 이런 현상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렇게 줄어든 아이는 다시 또 아이에 대한 몰이해를 부른다.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아이가 자연스레 배려받고 존중받도록 유인하는 제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레이디 퍼스트처럼 ‘키즈 퍼스트’가 상식으로 자리 잡아야 출산의 심리적 문턱도 한층 낮출 수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초저출산 시대라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한 해 수십만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약 40%가 출산 순위 둘째 이상 아이다. 물론 출생아도 줄고 둘째 이상 아이들의 비율도 크게 떨어졌다. 1981년 59.0%였지만, 2001년 52.3%, 2011년 49.1%에서 지난해 2023년 39.8%까지 줄었다. 정부는 결국 지난해 다자녀 지원 혜택의 기준을 두 자녀 이상으로 하향했다. 그 수가 현격히 줄고 있다지만 아직 적잖은 수가 둘째 이상 아이를 낳고 또 낳을까 고민하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7만여 명의 둘째와 1만여 명의 셋째 이상 아이가 태어났다. 둘째 이상의 아이를 낳은 부모들은 어떤 생각으로 둘째를 낳았을까. 또 둘째를 낳고픈 청년들은 어떤 마음일까. ● 두 자녀 육아휴직父, “고통 49%, 행복은 51%…그래도 출산·육휴 잘했다 생각”서울 소재 직장에 다니는 A 씨(45)는 지난해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외벌이인데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하기로 한 것. 팀 내 중간관리자라는 중요한 위치였지만, 그는 “(가정을) 이대로 두면 큰일 날 것 같았다”며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A 씨는 첫째와 둘째 모두 마흔 살 넘어 낳았다. “늦게 결혼했으니 마냥 여유 있을 수 없어서 1년 정도 저희 시간 보내고 그 뒤로 바로 아기를 낳았어요.” 둘째를 갖게 된 이유를 묻자 “첫째가 외롭지 않게 자연스레 둘째 계획도 가진 것 같아요”라고 했다.A 씨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전업주부였던 아내는 짬짬이 프리랜서 강사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와 둘은 정말 큰 차이입니다. 하나가 돌아가도 다른 하나가 안 돌아갈 때가 많으니까…제가 육아를 계속 해 오던 사람이 아니잖아요. 갑자기 몇 시간이라도 혼자 둘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솔직히 불안해요. 사고 터지면 어떡하나. 근데 와이프가 ‘나간 김에 그럼 언니 좀 만나서 좀 수다 좀 떨고 올게’ 하면 몇 시간이 지나고…그래도 그걸 뭐랄 수는 없는 게 일종의 보상 심리라고 생각하거든요. ‘너 없는 동안 나 고생했는데 이제 네가 대신 해줘’ 이런.” A 씨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아내는 사실상 독박육아를 했다. 유급 휴직기간은 최대 1년이지만 A 씨는 휴직을 몇 개월만 쓰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비용 부담도 있다. “이번에 육아휴직급여 올라서 한 달에 200만 원 받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 그건 둘이 육아휴직 해야만 받는 거예요. 외벌이인 저희랑 아무 상관도 없는 거였습니다.” 정부는 아빠 육아휴직을 장려하기 위해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3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올려주는 ‘3+3 육아휴직제’를 시행하고 있다. A 씨는 “외벌이든 맞벌이든 (아빠) 육아휴직 혜택이 공평하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정신없고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과 후회의 비율을 따진다면 “51대 49”라고 한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육아는 51% 행복, 49% 고통이라고. 둘째 낳고 육아 휴직한 거 힘들지만 그래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보람도 느낍니다.” ● 네 아들 워킹맘, “나만 여자라 특별” 웃음…“인프라 중요, 희망 가질 수 있는 사회 필요”부부가 서울 소재 대기업에 다니는 B 씨(41)는 회사는 물론 지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다자녀 맘이다. 초등학생부터 유치원생까지, 아들만 넷이기 때문이다. 아이 넷은 남편의 오랜 바람이었다. “남편이 외동이에요. 외로운 게 싫었던 거야. 결혼하기 전부터 넷 낳고 싶다고 했어요. 이름까지 다 지어놨다니까요.” 딸이 없는 게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제 B 씨는 가족 중 ‘유일한 여자로서 특혜를 누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집 화장실 2개 중 1개 저 혼자 써요. 하하하.”C 씨는 여러 직장을 거쳐 현재 유연근로가 가능한 대기업에 자리 잡았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을 터다. “(베이비)시터가 안 구해지는 거예요. 아들 넷인 집에 어떤 시터가 와요? 그래서 시터 2명도 써봤거든요. 아침, 저녁으로. 근데 두 분이 자매였는데도 싸우시더라고요.” 돌봄 공백에 ‘일을 그만둘까’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일명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동네 중 한 곳으로 이사했다. 이유가 인상적이다. “‘시터 안 쓰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 해서 찾아보니까 강남은 다들 영어유치원 보내니까 구립 어린이집이 대기가 없더라고요. 선생님도 너무 좋고. 동네 도서관은 밤 10시까지 해요. 학교 방과후에서 최상위 수학도 배우고.” 아이들이 많이 살다 보니 아이들 공공인프라가 잘돼있어 되레 교육비용이 덜 든다는 것이다. B 씨는 말했다. “공교육도 양질을 잘 찾으면 되는데, 부모들이 안 믿고 이용하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아들 넷 워킹맘으로서 애로도, 불만도 많을 듯한데 B 씨는 부정적이기보다는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인프라 너무 중요하고…근로 시간이 유연해져야…남녀 가르는 거, 아이 모든 걸 부모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 안 돼요.…회사 다니며 10년을 꼬박 모았는데 집을 사는 건 꿈도 못 꾸잖아요. 사람이 목표와 희망을 갖고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주면 아이 낳지 않을까요?”● 20대女, “아직은 자녀 낳고픈 마음 70%”…잘 키우는 가족서 해법 찾아보면 어떨까직장인 C 씨(26)는 동료들 사이에서 ‘요즘 청년 같지 않은 청년’으로 유명하다. 결혼도 출산도 하고 싶은 20대 여성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이 제 인생에 (우선순위) 1번이라고 한다면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건 0번이에요.” C 씨의 말이다. 그가 기자를 만나기 전 간략히 보내온 질의응답엔 이런 말이 들어가 있었다. ‘왜 결혼하고 싶나?…희망을 가지고 싶은 것일 수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누구나 이상형 연인과 이상적 직업이 있듯이 C 씨에게는 이상적인 가족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부정적 답변이 많아 자신감이 줄어든다. “얼마 전 동종업계 기혼자들을 만났는데 저출산 얘기 나오니까 다들 ‘애 낳는 것 자체가 자살이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좋은 세상을 주고 싶은데…두려움이 생기는 건 사실이에요.” C 씨가 말했다. 그래도 아직은 “낳고 싶은 마음 70%, 두려운 마음 30%”라고 한다. 일도 잘하고 싶을 텐데 육아휴직 할 수 있겠냐고 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미래의) 남편이 할 수도 있죠.” 사회가 초저출산으로 치닫고 있다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둘째를 낳고 두 자녀 이상을 꿈꾼다. 둘째 이상 가족과 둘은 낳고픈 청년을 만나 보니 ‘100명에게 100가지 낳지 않는 이유’가 있듯이, 아이를 낳는 사람들에게도 ‘100가지 이유’ 혹은 ‘100가지 육아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았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두 아이 아빠 D 씨(41), 미대 교수를 꿈꿨지만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두 아이 엄마 E 씨(45)도 바쁜 삶 혹은 빠듯한 경제 상황 속에서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가족에 “만족한다”,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 같이 두 자녀 이상 낳아서 키우는 사람들 케이스를 많이 듣고 조사하다 보면 (저출산 해법의) 답도 좀 보이지 않을까요?” E 씨의 말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저 애들이 다 한 집 자식이오?”주말을 맞아 네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내려와 잠시 숨을 고르는데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께서 물으셨다. 그렇다고 답하니 “참 다복하고 좋아 보이네” 하시며 한참 시선을 거두지 못하셨다. 80대에 가까워 보이는 그 어르신도 아마 다자녀 부모일 것이다. 1960, 1970년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4~6명이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 모습에서 과거 본인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보고 계셨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그 어르신처럼 아이들을 ‘추억’해야 하는 날에 이를 것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한 대학 선배는 자녀들이 이미 장성했는데 “퇴근 버스에서 내리면 정류장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아빠’하고 달려와 와락 안기던 그때가 아직도 엊그제 같다”며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억만금이라도 낼 수 있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땐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는데, 부모가 되어 아이들이 나날이 커가는 걸 보니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넷이라 더욱 왁자지껄한 우리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휑뎅그렁해질 집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헛헛하다. 기쁨이자 행복이었던 아이들이 없는 미래는 감히 상상이 안된다. ● 최초 0.6명대 출산율…청년들 “출산 무섭고 육아 부담”얼마 전 통계청이 2023년 출생·사망통계를 발표했다. 단연 눈길을 끈 건 출생통계였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초 0.6명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연간 합계출산율도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그냥 꼴찌가 아니라 2위에 큰 차이가 나는 압도적 꼴찌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동기간 출산율이 0.7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국은 가히 전쟁과 비견될 만한 저출산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사실 결과는 진작에 예견됐다. 코로나19 탓에 2021년과 2022년 혼인 건수가 19만 건 아래로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해 출산율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런 초저출산이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게 문제다. 청년세대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 출산과 육아는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지다. 그것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다. 근래 만난 2030 세대 청년들은 하나 같이 출산과 육아에 부정적이었다. 한 후배는 “출산하고 나면 내 일상,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이 송두리째 무너질 것 같아 무섭다”고 했고, 또 다른 후배는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아이까지 건사하는 건 무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남들 육아 이야기 들으면 도저히 키울 엄두가 안 난다”, “아이 키울 여력이 안 되고 언제 여력이 될지 기약도 없다” 등. 청년마다 사정은 달라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이는 부담스럽고 육아는 고된 일이라는 인식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요즘 TV를 봐도 아이나 육아 관련 긍정적인 콘텐츠를 찾기 힘들다. 과거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흐뭇한 육아는 비주류로 밀려난 지 오래다. 아이 키우기 힘들어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난다는 뉴스나 힘든 양육 과정을 조명하는 상담 프로그램, 부모에게 이것저것 준비하고 공부시켜야 한다고 압박을 주는 프로그램들만 가득하다. ● 잃는 만큼 얻는 게 많은 육아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육아가 쉬웠던 적이 있을까. 그럼에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는 인식이 있었다. 먼저 자녀가 주는 기쁨과 행복, 사랑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 종종 ‘인생의 낙이 아이뿐’이라며 한숨 쉬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불행한 게 아니라 부러움을 살 일이다. 아이가 줄 수 있는 낙은 친구나 회사가 줄 수 있는 낙과 차원이 다른 큰 기쁨이다. 그런 낙이 있다니, 없는 사람들에겐 부러울 일 아닌가. 아이를 키우면 무한한 사랑도 경험할 수 있다.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있다면 그건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아이를 낳고 알았다. 누군가를 이렇게 깊고 넓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부모가 주는 헌신적인 사랑은 알겠는데, 자녀가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은 뭘까? 어릴 때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뭐 주는 것 없어도 ‘부모 바라기’다. 혼이 나도, 잔소리를 들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하고 와서 안기는 게 아이들이다. 크면서 부모와 다투기도 하고 남남이 되는 자녀도 있지만, 그런 자녀라도 마음 한구석엔 부모에 대한 조건 없는 애정을 품고 있다. 효자든 불효자든 부모에 대한 모욕을 들으면 발끈하는 이유다. 육아는 부모에게도 많은 걸 가르쳐준다. 옛말에 ‘아이 키워 봐야 어른 된다’고 했는데 아이를 키워 보니 알 것 같았다.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좀 더 바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사회·경제적으로도 책임 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단단하고 보다 번듯한 사람으로 거듭난다.물론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되지 않기로 했다면 강요는 할 수 없다.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나 비혼주의자처럼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저 부담과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기엔 자녀를 키우며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 누가 성공한 삶을 정의할 수 있을까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출산과 육아가 그 가치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음을 안다. 특히 한국처럼 정형화된 성공 답안이 있는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작금의 한국에서 성공한 삶이란 수도권에 살고,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며, 번듯한 집과 차가 있는 삶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런 삶에 오를 기회는 적고 경쟁은 치열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아이를 낳아서 회사에서 뒤처지고 돈도 못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너무 바쁘게 사느라 함께 기쁨을 나눌 배우자도, 자식도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년배 가운데 큰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보면 당연히 부럽다. 하지만 ‘대신 당신한텐 이렇게 당신만 바라봐 주는 예쁜 아이 넷은 없잖아’라고 생각한다면? 무얼 성공한 인생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개개인이 인식을 바꿔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말은 아니다. 통계청 ‘2022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발표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평균은 286만 원으로 대기업 근로자 평균 소득 591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대기업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4%에 불과하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출산과 육아 후 경력 단절에 내몰린다. 여성들의 경력단절과 일·육아 병행으로 인한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가운데 최악 수준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성차별, 그밖에 구조적 문제는 정부와 기업이 나서 해소해야 한다. 다만 그와 함께 출산, 육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했으면 한다. 육아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리는 청년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3년 전 생일 기자는 아주 특별한 상을 받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이들 넷이 고사리 손으로 접은 쪽지를 전했다. ‘XX방으로 가서 하얀 종이를 찾으세요.’ 쪽지를 따라가자 또 다른 쪽지가, 다시 또 다른 쪽지가 이어졌다. 엄마 생일을 위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들 넷이 준비한 깜짝 보물찾기 이벤트였다. 마지막 선물에 이르렀을 때 주책맞게 울고 말았다. 쇼핑백엔 ‘엄마는 건강해야 하니까 무가당 크래커, 화장 안 해도 입술은 꼭 바르니까 빨간 립글로스를 샀다’는 메시지와 함께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첫째, 둘째의 2주치 용돈을 털어 고심 끝에 준비한 과자와 화장품 선물이 들어있었다. 그날 기자는 네 아이를 키운 노력에 대한 모든 보상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것도 내 아이들로부터. 2명이 만나 0.65명을 낳는 시대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되돌린대도, 4명을 낳을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요 며칠 한 기업의 출산 혜택 소식이 화제다. 재계 순위 20위권인 이 기업의 회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앞으로 출산하는 모든 직원에게 출산장려금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초유의 저출산 위기에도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한 사기업 회장님의 ‘통 큰’ 출산 지원은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곳곳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지급 과정에서 과도한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고, 급기야 대통령이 콕 집어 ‘지원방안을 적극 고려하라’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의 화끈한 출산 지원과 그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 정책의 맹점도 개선할 기회를 얻었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통 큰 지원이라고 마냥 반기기엔 어딘가 씁쓸함이 남는다. ‘부익부 빈익빈’ 때문이다. ● 대기업 ‘육아휴직 2년, 수천만 원 지원’…중소기업엔 그림의 떡 몇 달 전 직원 십여 명의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한 사업가와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여성 직원들의 잦은 휴가와 퇴사”였다. 직원도 적은데 업종 특성상 여성이 절대다수라, 출산·육아로 인한 인력 공백의 타격이 다른 회사보다 배로 크다고 했다. 특히 그는 최근 아끼던 직원에게 “뒤통수를 맞”은 일을 거론했다. 일 잘하는 친구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에 어렵게 대체인력을 구해 육아휴직까지 내주었는데, 복직하기 직전 ‘그만두고 싶다’며 연락해 왔다는 것. 휴가, 단축근로 같은 것이 쉽지 않은 작은 회사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그 친구도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을 것임을 알면서도 솔직히 서운하고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도 육아휴직, 단축 근로, 지원 혜택 다 주고 싶어요. 근데 그럴 여력이 없잖아요.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나 참고하고 싶어도 기사에 나오는 혜택 좋은 기업들은 죄다 대기업이고…. 우리로선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얘기들뿐이에요.” 지인의 말이다. 그와 헤어지고 난 뒤 곧장 기사를 검색해 봤다. 저출산 해법을 모색한 기획 기사들을 보니, 여느 보육 선진국 부럽지 않은 우수 기업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직원 자녀 출산 시 500만 원 지급,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3년간 교육비 총 1800만 원 지원’, ‘출산 시 제휴 호텔, 리조트, 숙박, 식사 제공’, ‘여성 직원 자동육아휴직제, 휴직 기간 2년’, ‘일반 휴직과 별개의 자녀돌봄 휴직 6개월’ 등. 하지만 모두 회사명 들으면 아는 대기업의 사례였다. 지인 말처럼 아무리 봐도 작은 사업체에서 참고할 수 있는 사례는 아니었다. 괜히 보면 볼수록 배만 아프고 상대적 박탈감만 커지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마 최근 ‘출산장려금 1억 원’ 소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국내 사업체 99.9%가 중소기업, 직원 평균 10명 내외문제는 이런 사업체가 비단 지인 업체뿐이 아니라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1년 기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기본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중소기업 수는 771만4000개였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무려 ‘99.9%’다. 종사자 수는 1849만3000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80.9%에 달했다. 흔히 직장과 직장인 하면 이름이 잘 알려진 대기업과 공장들을 떠올리지만,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과 근로자의 절대다수는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라는 의미다. 이들 기업의 규모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기준이 되는 상시 근로자 수를 300인 미만이라 하는데, 2022년 중기부의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 이들 기업 평균 고용인원은 제조업 14.1명, 서비스업 9.0명으로 10명 내외에 불과했다. 지인의 사업체처럼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다. 사람 한 명 들고 나는 것의 체감도가 클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507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 ‘육아휴직 제도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한 사업체에 이유를 물었더니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25.2%), ‘추가인력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23.3%),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19.7%)와 같이 매우 현실적인 답변들이 나왔다. 교육·휴양비 지원이나 출산장려금 1억 원 같은 것도 중소기업에선 당연히 언감생심이다. 한 중소기업체 대표는 “요새 가장 큰 고민이 인력 확보다. 우리도 사내 복지 혜택을 강화해 좋은 직원들을 끌어들이고 싶다”며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기업처럼 할 여력은 없는 걸 알지 않느냐”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 휴직 대신 단축근로, 전면재택…일·가정 양립 노력그렇다고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마냥 감내하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공동으로 기획한 정책포럼에 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업 규모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용률에 대한 발표였는데,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에서 육아기 단축근로를 활용하는 비율이 각각 29.1%, 22.0%로 300인 이상 대기업 활용률(32.9%) 못지않게 높았다. 50~300인 중규모 사업체의 경우 10%도 안 된 것과 비교해 큰 차이였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란 만 8세(초등학교 2학년, 올 하반기 만 12세로 확대 예정) 이하 자녀가 있는 근로자가 최대 1년간(육아휴직 합치면 2년) 주당 15~35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여 일할 수 있는 제도다. 어째서 중규모 기업보다 소규모 기업에서 제도 활용률이 더 높았을까. 발표자는 ‘소규모 사업체에서 단축근로를 육아휴직의 대체재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육아휴직의 타격이 큰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직원들에게 휴직 대신 단축근로를 적극 권장함으로써 직원 손실을 최소화하고 사내 복지도 강화하는 기제로 이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업체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일·가정 양립 지원에 방법이 없는 건 아님을 시사한다.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제품을 판매하는 아기띠 제조업체 ‘코니바이에린’은 주로 워킹맘으로 구성된 직원 55명을 채용하고 있다. 이들을 계속 고용하기 위해 회사는 전 직원 재택근무를 실현했다. 현재 코니의 직원들은 4개국 24개 도시에서 흩어져 일한다. 매일 아침이면 일명 ‘홈오피스’라 부르는 자택에서 회사망에 접속해 각자의 업무를 하고, 화상회의를 통해 협업한다. 필요하다면 일과 중 육아 등으로 잠시 자리를 비울 수도 있다(배려시간제). 일반적으로 전면 재택근무라 하면 “말이 안 된다”거나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갈 것”이라 하는데, 이 회사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보완책을 만들었고 7년째 별문제 없이 재택 시스템을 운용해 오고 있다.● “중소기업 롤 모델도 제시해줬으면”그러나 이렇게 근무 형태에 맞는 일·가정 양립 방안을 도입한 중소기업은 극소수다. 여전히 절대다수 중소기업의 현실은 열악하다. 한 중소 규모 업체 대표는 “우리도 능력 있는 젊은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지원책을 운용하고 싶은데 좋은 사례라고 해서 찾아보면 대기업 사무직에 적용할 법한 것들뿐이고 중소기업의 롤모델이 없다”며 “정부나 언론에서 잘하고 있는 중소기업 사례도 발굴해 업종별로 레퍼런스를 제시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중소기업 지원도 더 강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육아휴직을 부여한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최대 200만 원을 주고, 인건비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대체인력뱅크’를 통해 채용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하나 나는 것만 못 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열악한 중소기업의 현실 탓에 젊은 세대 다수가 대기업 취업 혹은 이직을 꿈꾸며 늦은 나이까지 경쟁에 매진한다. 소수의 대기업이 블랙홀처럼 인재를 빨아들이면서 중소 규모 기업의 인재, 인력난은 더 심해진다. 이로써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강화되고 경쟁과 격차가 커지면서 저출산도 심화한다. 악순환이다.출산지원금 1억 원을 주는 큰 회사들이 느는 것도 좋지만, 자칫 1억 원 주는 회사 들어가기 위해 대기업 입사 경쟁만 더 심각해지는 꼴이 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시장의 부익부 빈익빈이 육아의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바뀐다고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국가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총괄하고 심의하는 컨트롤 타워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통령 직속기구다. 부위원장만 해도 장관급인데, 현재는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지난해 1월 임명돼 임기 2년 중 절반이 남은 상태다. 김 부위원장이 정말 그만두는지, 사유는 무엇인지 대통령실이 명확히 밝힌 건 하나도 없다. 다만 후임으로 구체적인 이름이 거론되고 딱히 반박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교체 시점까지 거의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달 저고위 상임위원과 민간위원이 잇따라 사표를 던진 것, 눈에 띄는 정책은 없고 출산율은 계속 떨어진 것을 두고 책임을 물어 경질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현역 시절 별칭이 ‘불도저’였을 정도로 강한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지닌 경제관료가 바통을 이어받게 된다는 것이다. ● 사람 문제인가…타부처 질의해도 ‘읽씹’ 일쑤, 실권 없는 저고위문제가 있다면 교체하는 게 맞다. 하지만 저고위의 문제는 사람이 아니다. 저고위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닌 조직이다. 관련 정책이 여러 부처에 걸쳐있어 한 부처가 관할할 수 없고 여러 부처와 조율이 필요할 때 만드는 게 정부위원회다. 그러나 그만큼 부처의 입지가 모호하고 실권이 없다. 저고위가 그렇다. 사무국에는 30명의 상임 직원들이 있지만, 각 부처 파견 인력으로 1년~1년 반 근무하고 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야 하는 ‘뜨내기 직원’이라 전문성이 없고 업무 연속성이 떨어진다. 사무국 자체 예산은 0원이다. 저출산 예산이 수십조 원이라지만 모두 각 사업 담당 부처에 있는 것이지, 저고위가 가진 게 아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신생아 특례대출’ 예산은 국토교통부, 육아휴직 예산은 고용노동부(고용보험 기금)에 있는 식이다. 저출산 사업을 발굴하지만, 각 부처에 사업을 지시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컨트롤 타워란 외양만 그럴듯할 뿐 제대로 된 조직도, 돈도, 실행력도 없는 곳이 현재 저고위다.내부에 자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각계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놓았지만 획기적인 안을 내고 합의를 이루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대부분 생업이 따로 있는 전문가들은 한 번 모이기도 어렵다. 각자 생각이 달라 의견 모으기도 쉽지 않다. 이런 지적이 하루 이틀 나온 게 아니다. 그렇기에 현 김 부위원장이 지명됐을 때부터 안팎으로 우려가 컸다. 그나마 그동안은 ‘실권 없는 조직’이라도 ‘실권 있는 부위원장’이 있어 영이 섰는데, 이제 일개 대학교수로 부처와 전문가들에게 말발이 서겠느냐는 것이다. 앞서 3명의 부위원장은 모두 여당 유력 정치인이었다. 1대 김상희 부위원장은 여당 4선 국회의원, 2대 서형수 부위원장은 대통령 측근, 3대 나경원 부위원장도 4선에 여권 중진이다. 한 내부 관계자는 “기재부(기획재정부)에 사업 예산 관련 질의를 하면 ‘안 된다’, ‘어렵다’는커녕 답조차 주지 않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시쳇말로 ‘읽씹(문자를 읽었지만 무시하고 답하지 않는 것) 당했다’는 건데,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 ● ‘이슈 메이킹’ 하라지만 논란, 뭇매만 지난해 가을 대통령실에서 저고위 핵심 관계자들을 불렀다. 이 자리에서 호통이라 할 수준의 매서운 질책이 있었다고 한다. 저고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하다못해 이슈 메이킹이라도 하라’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것인지 지난해 말부터 저고위는 비교적 적극적인 대언론 행보를 보였다. 구상 중인 정책을 어필하고, 새로운 사업을 위한 토론회, 자문위도 열고, 취임 후 한동안 몸을 사리던 김 부위원장도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슈 메이킹을 하자 이번에는 또 ‘상의도 없이 논의 중인 정책을 공개했다’며 부처의 불만이 쏟아졌다. 출산 후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즉각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자동육아휴직제’나 3명 이상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다자녀 전용차로 이용’ 같은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저고위는 온전히 뭇매를 감수해야 했다. 한 내부 관계자는 당시 이야기를 하며 “생각해 보면 전임 위원장이 이슈 메이킹으로 3개월 만에 옷을 벗었는데 (현 부위원장이) 이슈 메이킹이라니, 될 일이 아니었다. 힘 있는 여권 중진도 그렇게 된 판에 무슨 이슈 메이킹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전임이었던 나경원 부위원장은 2022년 10월 부임했지만 3개월 만인 이듬해 1월 사퇴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출산가정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 원금까지 탕감해 준다’는 이른바 ‘헝가리식 제도’ 도입을 살펴보고 있다고 언급했다가 논란이 커진 탓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현 정부의 저출산 정책 방향이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고, 나 부위원장의 독단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듯한 입장을 취해 사실상 자진사퇴를 종용한 셈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 조사·연구 또 주문…“원인 몰라 해결 못 했나”얼마 전 저고위에서도 나 전 부위원장 사퇴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며칠 전 김 부위원장이 한 언론에 나가 인터뷰를 하며 ‘2월 말이나 3월 초 중 중장기 전략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다음 날 위원회가 다시 ‘확정된 내용이 아님’이라며 보도설명자료를 낸 것이다. 단순한 말실수도 아니고, 기관에서 수장 인터뷰의 주요 내용을 부정하는 해명자료를 낸 희한한 상황이었다. 보통 기관장급 공식 인터뷰는 질문지를 미리 받아 각 부서와의 조율을 거쳐 답안을 완성한다. 즉 기관장의 답변은 본인 개인 생각이 아니라 기관의 입장이다. 그런데 기관이 기관 스스로 작성한 답변을 부정한 것이다. 정황상 내부 판단이라기보다 외부의 판단이 개입된 듯한 모습이었다.조용할 때는 조용해서, 적극 나설 때는 나서서 문제였다.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쯤 되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니, 우리가 춤을 춰도 되는 건 맞아요?” 사실 저고위 부위원장이 아무리 기막힌 장단을 준비해 춤을 춰봐야 ○○○이 없으면 소용없다. 각 부처가 저고위를 조율 기구로 인정하고 경청하는 건 부위원장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위원장인 대통령이다. 그러나 지난 1년여 저고위 활동에서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실 차원에서 획기적인 정책을 주문하고 하다못해 이슈 메이킹이라도 하라며 호통까지 쳤다는데, 막상 이슈 될 만한 정책이 다른 부처와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 ‘손절(손절매·자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발을 빼는 행위)’이었다. 그러더니 지난달 초 돌연 ‘저고위가 제대로 역할 하기 위해 데이터와 수치에 근거해 저출산 원인과 정책 효과를 설명할 전문가를 찾아보라’며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당시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 데이터와 수치가 없고, 전문성이 없어 저출산 원인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결정권자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라 위원장인 대통령이 저고위 회의를 한 번밖에 주재하지 않았다거나 심지어 지난 정부에선 임기 내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대통령의 관심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실제 회의 참석 여부가 아니다. 저고위가 하는 일에 대한 실질적 관심과 지원이다. 대통령이 한 번 언급하고 사인만 줬어도, 기재부가 저고위 질의를 읽씹하는 일이 반복되진 않았을 것이다.이런 안팎의 지적에도 변화가 없는 걸 보며 일각에서는 “일부 자문위원들이 주장했듯 정부가 저출산 ‘극복’에서 ‘적응’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더 이상 획기적인 정책으로 저출산 추세를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가 ‘연착륙’으로 기조를 틀었고, 그래서 내부 관료, 그것도 경제관료 출신을 부위원장으로 앉힌다는 분석이다.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런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 자체가 저고위와 저출산 정책에 좋을 것이 없다. 저출산이 정말 국가적 과제고 1순위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 여긴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저고위 전면에 서라. 사람 바꾸고 부처로 간판 바꿔서 다는 지난한 방법을 택하기에 앞서 한 번만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고 적극 지원하는 저고위를 만들어 보자. 저고위가 발굴하고 조율한 정책을 직접 보고 받고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이라. 불도저가 아니라 탱크를 끌고 온다고 해도 혼자 공사하고 혼자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다. 지휘관이 나서야 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약속한 듯 한 날에 ‘저출생’ 대책을 내놨다. 18일 국민의 힘 공약개발본부는 ‘1호 공약: 일·가족 모두행복’을,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총선을 앞두고 양당이 가장 중요하고 제일 먼저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정책이 인구정책이었다는 건 개인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양당의 발표엔 일부 겹치는 것도 있었지만, 주로 방점을 찍은 곳은 달랐다. 과연 어느 당의 대책이 더 나았을까? 기자인 동시에 네 아이 엄마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를 내려 본다. ● 與 “육아기 유연근무 의무화”, 가족친화 일터 위해 긍정적 국민의힘 대책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육아기 유연근무 확대’다. 육아기 유연근무란 어린 아이가 있는 직원에게 시차근무(다른 직원들과 시차를 두고 근무하는 것), 재택근무, 단축 근로와 같은 유연한 근무를 허용하는 것이다. 흔히 일터에서 필요한 육아 관련 제도라고 하면 ‘육아휴직’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육아휴직보다 더 먼저 권장돼야 하는 것이 육아기 유연근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직’하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게 우선 고려가 돼야 하고 그게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은 육아하는 부모를 휴직시켜 일터에서 배제시키는 반면, 육아기 유연근무는 육아하는 부모도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일터에 가족 친화적인 근로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시행되고 있다. 만 8세 이하 부모가 육아를 이유로 단축 근로를 신청하면 사업주는 최대 1년까지 이를 허용해야 한다. 여당은 이런 단축 근로를 유연근무 전체로 확대해, 일정 규모 이상 기업부터 의무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중소기업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근로자뿐 아니라 기업 지원책도 함께 내놓은 점 역시 눈길을 끈다.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으로 인한 인력 공백의 타격이 대기업의 몇 배, 몇십 배로 크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률을 높이려면 기업에 인센티브를 높게 주어 육아휴직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여당은 중소기업이 직원 육아휴직을 허용하고 대체인력을 채용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고 기업에 대체인력지원금도 2배 높이겠다고 밝혔다. 남은 동료들을 위한 동료수당도 신설할 계획이다. 반면 민주당은 육아휴직자를 위한 ‘워라밸 프리미엄 급여(50만 원)’를 제시했지만,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밝히지 않았다. ● 아동수당·아이돌봄지원…양육부담 커지는 학령기 지원 확대 바람직민주당 대책에서 특기하고 싶은 것은 아동수당 대상과 금액을 대폭 확대하고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책을 개선하는 등 만 8세 이후 학령기 가정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나온 점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주로 임신·출산 전후에 집중됐다. 출산을 늘리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 전후로 많은 혜택이 쏠린 것이다. 정작 많은 돈이 들어가는 학령기가 되면 지원이 급감해 양육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있었다. 아동수당의 경우 스웨덴,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대부분 법적 아동 기한인 만 18세까지 준다. 심지어 25세까지 주는 나라도 있다. 최근 일본도 중학생까지 주던 아동수당을 고등학생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은? 만 7세까지만 준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아동수당이 아니라 사실상 ‘영유아수당’에 가까운 수준이다. 민주당은 8세부터 17세까지 아동 1명당 월 20만 원의 아동수당을 카드로 지급하는 ‘우리아이 키움카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8세 이후 매월 10만 원씩 정부가 입금하고 부모도 매월 10만 원 입금할 수 있는 ‘우리아이 자립펀드’도 만들겠다고 했다. 만 12세 이하 아이가 있는 가정에 아이돌보미 인력을 제공하는 아이돌봄서비스도 소득에 상관없이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소득이 어느 이상이면 정부 지원이 없어 모든 금액을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심지어 아이돌봄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부모 가정조차 2인 가구 소득 기준을 넘으면 한 푼도 지원받을 수 없다. 많은 저출산 대책이 이처럼 소득 요건을 두고 있어 실질적으로 저소득층만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중산층이라 해서 육아 부담이 없는 건 아니기에, 특히 지금 같은 초저출산 상황에서는 정책의 보편성을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환영할 만한 제안이다. 다만 재원 마련은 숙제다. 여당이 ‘저출생대응특별회계’ 신설을 공약한 데 반해 민주당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아동수당 예산이 지금의 배 이상 늘어나고 아이돌봄서비스도 이용료가 인하되면 이용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에 예산 마련 방안이 꼭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도 매년 아이돌봄 지원 확대안을 냈지만, 예산이 없단 이유로 번번이 추진에 실패했다. ● 육아휴직 의무화보다 근로문화 개선 우선돼야양당 모두 육아휴직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여당은 아빠의 1개월 출산휴가를 의무화하고 임신 중 육아휴직 사용을 배우자에게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여성들이 결혼·출산을 꺼리는 이유로 ‘독박육아’가 꼽히고 있는 만큼 남성의 육아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이들 대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육아휴직급여를 인상하고 유명무실한 사후지급금은 없애겠다고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사후지급금은 육아휴직급여 중 25%를 떼어놓았다가 복직 후 6개월 넘게 일하면 돌려주는 돈이다. 복직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복직 효과는 크지 않고 육아휴직 기간 급여액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민주당은 육아휴직 대상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육아휴직급여가 고용보험에서 나가는 탓에 현재는 고용보험 가입자만 육아휴직 혜택을 받고 있다. 이에 따른 형평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고 방안 마련이 요구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고용보험 가입률은 전체 임금근로자 77%이며, 비정규직의 경우 54.2%에 불과하다. 육아휴직 개선안 대부분 공감할 만한 내용이지만, 양당 모두 제시한 육아휴직 자동 개시 제도는 개인적으로 썩 마음이 가지 않는다. 현재도 출산 직후 육아휴직은 여성에 극히 편중돼 있다. 의무화까지 해버리면 육아휴직자 중 여성 비율이 더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복지가 잘 자리 잡은 대기업을 제외하면 여전히 남성의 육아휴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여성의 직장 내 인사 불이익, 도태도 심각하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의무화를 추진했다가 되레 근로 현장에서 여성과 엄마를 더 배제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휴직 강제보다는 일을 하며 아이 키우는 일터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 아닐까. ● 다자녀 주거지원은 ‘빛 좋은 개살구’ 아닌지 따져봐야다자녀 가정에 분양전환 공공임대 아파트를 제공한다는 민주당의 공약은 언뜻 큰 혜택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는 아닌지 따져 볼 일이다. 그동안 정부도 특공, 대출 혜택 등 다양한 주거 혜택을 내놓았는데, 네 자녀인 기자조차 한 번도 그 혜택을 본 일이 없다. 원하는 장소, 넓이가 아니거나 유주택자라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제한이 많다. 실제 이런 주거대책으로 얼마나 수혜를 보았는지, 저출산 해소에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조사된 자료도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선택지를 넓히는 차원으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전반적으로 일·가정 양립에, 민주당은 현금성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좀 더 실현 가능한 구체적 대책을 내놨다는 생각이 든다. 여당인 만큼 정부에서 실제 진행 중인 정책을 많이 참고했을 테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인 홍석철 공약 총괄본부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코칭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동수당, 아이돌봄 지원 확대 같은 민주당의 공약도 양육기 부모들의 부담을 줄이고, 더불어 청년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도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다. 양당이 정책이 ‘누가 더 낫다’ 경쟁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여 더 나은 정책으로 실제 구현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기자이기에 앞서, 엄마로서.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