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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술에는 그 어떤 위계도 없거든요.” 우산, 냉장고, TV…. 일상 속 평범한 사물들이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81·사진)에게는 예술이 된다. 그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돼 누구나 소유할 법한 사물에 낯선 색을 입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예상하지 못한 색으로 채워진 분홍색 감자튀김처럼 그의 손을 거친 사물은 어쩐지 낯설고 특별해 보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8일 개막한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展’에서는 그의 1973년 초기작부터 올해 최근작까지 회화와 디지털 미디어, 판화 등 원화 150여 점을 선보인다. 7일 전시장에서 만난 크레이그마틴은 “내 생애 가장 큰 규모로 여는 회고전이다. 전시장이 내 인생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원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출신인 크레이그마틴은 ‘영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1974년부터 2000년까지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 교수로 재직하며 데이미언 허스트, 줄리언 오피 등 젊은 영국 예술가들(YBA·Young British Artists)을 양성했기 때문이다. 그가 제자들에게 강조한 건 단 한 가지.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라”는 것이었다. 검은 윤곽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사물 위에 강렬한 색을 채워 넣는 건 크레이그마틴의 스타일이다. 전통회화의 원칙을 고수하지 않는 파격성도 지녔다. 가로 208.3cm, 세로 289.6cm 크기의 거대한 알루미늄판 위에 아크릴로 작업한 ‘카세트’(2002년)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네 면의 가장자리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카세트테이프를 그렸다. 새빨간 배경에 비스듬히 세워진 카세트테이프는 진한 초록색으로 가득 채웠다. 오브제를 캔버스 정중앙에 배치하거나 가장자리에 치우치게 그려서는 안 된다는 전통회화의 원칙을 비튼 것. 그는 일상의 사물을 톡톡 튀는 색으로 채우는 반복성을 추구하면서도 오브제를 변주하며 예술세계를 확장해 왔다. 1990년대 와인 따개, 안경, 의자 등 평범한 사물을 소재로 삼았던 그는 2000년대 글자에 주목했다. 그는 “단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을 하나씩 떼놓고 보니 고유의 윤곽선과 공간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글자회화에서는 알파벳이 열을 맞추지 않는다. 서로 엇갈린 채 뒤섞인 글자회화 연작의 제목은 ‘무제’. 관람객이 각자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팬데믹이 불러온 세상은 그에게 새로운 오브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격리가 즐거웠다”고 말한다. 반쯤 열린 랩톱 컴퓨터 4대를 지그재그로 엇갈리게 배치해 알파벳 ‘Z’를 표현한 ‘줌(Zoom)’(2020년)은 격리 기간 중 완성했다. 출구에 설치된 디지털 자화상 ‘무제’(2022년)는 가장 최신작이다. 액정표시장치(LCD)에 그의 얼굴을 상징하는 검은 윤곽선을 그리고 선 사이사이를 형형색색으로 채우는 영상이 흐른다. 단 한순간도 같은 색으로 채워지지 않아 살아 있는 그림 같다. 전시의 주제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처럼 81세 노장은 우리가 무심하게 놓친 순간의 아름다움을 색으로 기록해 왔다. 8월 28일까지. 1만3000∼2만 원.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문화재위원회가 60년간 사용한 ‘문화재’ 명칭을 ‘국가유산’으로 바꾸는 개선안을 11일 확정했다.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로 나뉜 기존 분류는 △문화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으로 각각 바뀐다.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으로 변경된다. 이는 문화재 용어에 재화 개념이 포함돼 사람(무형문화재)이나 자연(기념물)까지 아우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새 용어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와 정신을 총칭하는 유네스코의 유산(heritage) 개념을 감안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검은 물체가 보였다. 분명 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거대한 몸집 사이사이 깃털이 박혀 있고 측면에 뾰족한 부리가 있다. 이것은 곰인가, 새인가. 수심 깊은 강물마저 얼어붙은 2000년 겨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숲에서 하이킹을 하던 저자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새를 만났다. 그는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 사진을 찍어 러시아 조류학자 세르게이 수르마흐에게 보냈다. 새는 100년간 어떤 과학자도 러시아 남쪽에서 관찰한 적 없는 멸종위기종 ‘블래키스톤물고기잡이부엉이’였다.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 새들이 아직 숲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저자의 인생을 바꾼 첫 만남이었다. 2005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벌목이 블라디보스토크 명금류(鳴禽類·참새목에 속하는 새의 총칭)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박사논문 주제로 5년 전 우연히 만난 새를 떠올린다. 이 책은 그가 2006년부터 5년간 진행한 ‘물고기잡이부엉이 보존 프로젝트’를 담은 탐사기다. 날개를 펼치면 2m에 이르는 물고기잡이부엉이는 1980년 무렵 멸종위기를 맞았다. 강 하류 곳곳에 댐이 건설돼 먹이인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게 됐고, 벌목으로 생의 터전마저 잃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러시아 동부지역에서 1000여 마리에 이르던 개체 수는 1980년대 10분의 1로 급감했다. 이에 조류학자 수르마흐 등과 팀을 꾸린 저자는 5년간 네 차례에 걸쳐 블라디보스토크로 탐사를 떠난다. 목표는 새의 몸통에 동선을 추적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를 다는 것. 새들의 동선 데이터를 분석해 터전을 지키는 해법을 찾겠다는 계획이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광활한 자연에서의 여정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420쪽 분량의 탐사기에서 저자가 새와 극적으로 만난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오히려 만남보다 훨씬 긴 기다림이 생생히 담겼다. 탐사대는 얼어붙은 강을 건너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기 일쑤. 통나무와 바위가 뒤엉킨 강 하류에는 익사한 시신이 뒤엉켜 있다. 하지만 성인 몸집보다 큰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거센 바람도 이들을 막을 순 없었다. 물고기잡이부엉이를 코앞에서 놓치기를 수차례. 탐사대는 2007년 2월 먹이를 찾아 강 하류에 온 새를 포획해 립스틱 크기의 GPS 장치를 등에 다는 데 성공한다. 이후 4년에 걸친 연구 끝에 탐사대는 러시아 일대에 물고기잡이부엉이 735쌍이 서식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들의 동선을 바탕으로 서식 분포도도 그렸다. 그 결과 수백 쌍의 물고기잡이부엉이가 사는 서식지의 절반가량이 벌목 회사가 임대한 지역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벌목을 중단시켜야 할까. 고민 끝에 저자는 부엉이와 지역경제가 공존하는 해법을 찾아낸다. 벌목 회사와 협의해 물고기잡이부엉이가 둥지로 삼는 황철나무와 난티나무를 베지 않기로 합의한 것. 벌목으로 생계를 지탱하는 지역민의 삶을 유지하면서도 새의 터전을 지켜낸 합리적인 해법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8년 다시 숲을 찾은 저자는 2년 전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휩쓴 태풍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물고기잡이부엉이 한 마리를 만난다. 인간의 도움 없이도 꿋꿋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새를 보며 자연의 자생력에 감탄하는 저자의 모습이 5년의 힘겨운 여정과 겹쳐 감동으로 다가온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웹툰 ‘그녀의 심청’에서 심청은 더는 희생당하지 않아요. 위기를 극복할 힘을 가진 캐릭터로 나오죠. 다시 쓴 고전소설에는 변화하는 사회상이 담겨 있습니다.” 신간 ‘여성의 다시 쓰기’(오월의봄)를 최근 펴낸 노지승 인천대 국어국문학과 교수(49·사진)는 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간은 고전소설 속 여성 이야기의 개작(改作) 양상을 분석했다. 노 교수는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춘향전, 장화홍련전, 심청전 등의 고전소설을 개작한 소설, 영화, 웹툰을 분석했다. 그는 21세기 들어 가장 큰 변화를 맞은 캐릭터로 심청을 꼽았다. 그는 “남성 문인들이 개작한 심청전은 성폭력 피해자인 심청을 구하지 못한 남성 조력자들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1978년 발표된 최인훈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가 대표적이다. 극중 타국으로 인신매매를 당한 뒤 성노예로 살아가는 심청은 아무런 힘없이 폭력에 휘둘리는 인형으로 묘사된다. 몇몇 남성이 심청을 구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심청은 끝내 눈먼 노파가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온다. 노 교수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겪는 폭력을 적나라하게 비췄다는 의의가 있지만 여성 캐릭터를 극도의 폭력에 방치했다는 한계점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21세기 심청은 더 이상 피해자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2017∼2019년 저스툰에 연재된 웹툰 ‘그녀의 심청’은 원작에서 심청을 위해 공양미 300석을 내주는 대신 수양딸로 삼으려 하는 승상 부인과 심청의 관계에 주목했다. 원작에선 심청이 아버지를 저버릴 수 없다며 승상 부인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웹툰에선 심청과 승상 부인이 연대한다. 노 교수는 “21세기 심청전은 단편적이던 여성 서사에 입체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여성들이 힘을 합쳐 가부장사회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광복 후 남성 작가들이 개작한 춘향전은 정절을 지킨 춘향을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묘사했다. 1930년대 여성작가 이선희는 장화홍련전에서 악녀로 등장하는 계모를 중심으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 노 교수는 “신여성이던 저자의 관점에서 다시 쓴 장화홍련전은 모성을 강요하는 가부장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고 설명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기념 파티. 영국 배우 겸 가수 리타 오라가 검은 드레스에 인상적인 무늬의 가운을 입고 나타났다.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흰색 가운 위로 산과 소나무, 사슴이 그려진 한국 전통민화가 수놓여 있었다. 드레스를 제작한 패션디자이너 박소희 씨(26)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민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민화는 이름 없는 평범한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이다. 한국 민속예술의 멋을 공유하고 싶다”고 썼다. 18∼20세기 초 조선시대 서민층에서 유행한 민화가 21세기 세계 예술계에 영감을 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퀸스칼리지 아트센터는 한 달간 민화 전시를 열었다. 앞서 2016년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과 뉴욕 찰스왕센터,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이 1년 넘게 ‘조선민화 특별전’을 연 데 이어 2020년 미국 뉴욕 패션공대(FIT) 미술관이 민화 전시를 개최했다. 시카고미술관은 2017년 발간 도록에서 폴 세잔의 정물화와 민화 ‘책거리’를 나란히 선보이며 ‘한국의 정물화’로 소개했다.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은 장수를 기원하는 민화인 십장생도를 형상화한 배경에 전자제품을 배치한 일러스트를 내놓았다. 변경희 FIT 교수는 “민화는 한류를 이끌 K아트의 선두주자”라고 했다. 최근 주목받는 민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개인의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는 민화의 진솔함이 현대예술 흐름과 부응한다고 말한다. 민화는 백성의 그림이라는 뜻처럼 태생부터 사대부의 전유물이던 문인화와 결이 달랐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민간 화가들이 조선후기 평민의 수요에 맞춰 주문 제작한 게 민화의 시초. 19세기 상업 발달로 부를 축적한 평민이 등장한 결과였다. 문인화가 절제된 색상의 수묵화로 유교의 충효사상을 담았다면 민화는 백성들의 욕망을 거침없이 다뤘다. 파랑, 빨강, 노랑, 검정, 흰색의 오방색을 자유롭게 활용했고 거창한 사상이 아닌 개인의 행복을 기원하는 욕망을 반영했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은 “19세기 평민이 예술 향유의 주체가 되면서 민화 주제도 평범한 개인의 욕망으로 옮겨갔다”며 “민화는 문인화와 반대로 색을 자유자재로 표출하는 저항성을 내재하면서도 오방색만 사용한 ‘미니멀리즘’이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민화가 갖는 개방성도 빼놓을 수 없다. 모란, 까치, 호랑이 등 유사한 소재를 활용하되 틀에 갇히지 않는 표현으로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것. 예컨대 책장에 진열된 사물을 그린 책거리는 당대 흔히 볼 수 있는 민화 양식이지만 그림 속 사물은 제각각이다. 책장에 반짇고리와 은장도, 비단신 등 여성의 물건을 배치한 작품들은 당시 예술을 향유하던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준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책거리, 모란도 등 반복되는 소재를 파격적으로 표현하는 민화의 개방성은 그래픽아트 같은 현대예술과 접목해 활용하기가 용이하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뒤 진행된 배니티 페어 오스카 파티. 영국의 배우 겸 가수 리타 오라가 검은 드레스 위에 산과 소나무, 사슴이 장식된 흰 가운을 입고 등장했다.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가운 위에는 한국 전통 민화(民畵)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 드레스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패션 디자이너 박소희 씨(26)가 돌체앤가바나의 후원으로 제작한 2022 F/W 컬렉션 제품이다.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와 카디비가 선택한 디자이너로 꼽힌 박 씨는 지난달 1일 인스타그램에 컬렉션을 소개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민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이름 없는 평범한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이죠. 한국 민속예술의 멋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18~20세기 초 조선시대 서민층에서 주로 유행한 민화가 21세기 젊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디자이너 양해일의 브랜드 해일(HEILL)은 ‘22-23 F/W 프랑스 파리 패션위크’에 선보일 컬렉션에서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해와 달, 다섯 봉우리가 그려진 그림) 등 민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은 삼성가전과 협업해 십장생도(十長生圖·장수를 염원한 민화)를 형상화한 배경에 가전을 배치한 일러스트를 제작했다. 젊은 예술가를 매료시킨 민화의 매력은 무엇일까.전문가들은 민화가 내재하고 있는 ‘모더니티’가 현대예술과 조응한다고 분석한다. 민화는 백성의 그림이라는 뜻처럼 태생부터 사대부의 예술이라 불리는 문인화(文人畵)와 달랐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민간 화가들이 조선 후기 평민 등으로부터 돈을 받고 맞춤제작한 그림이다. 문인화가 수묵으로 색을 절제하며 조선의 예사상인 충효(忠孝)를 표현했다면 민화는 백성의 욕망을 담았다. 파랑, 빨강, 노랑, 검정, 흰색 등 오방색(五方色)을 자유롭게 활용했고, 거창한 사상이 아닌 번영과 행복을 기원하는 개인의 욕망을 드러냈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은 “19세기 상업 발달로 부를 축적한 평민사회에서 민화를 소장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한 번도 예술의 수요자가 되지 못했던 평민이 예술의 향유 주체가 됐다. 자연스럽게 그림의 주제도 평범한 개인의 욕망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선임연구원은 “문인화와 정반대로 색을 자유자재로 표출하는 저항성을 내재하면서도 오방색만을 사용한 점도 매력적”이라며 “민화는 미니멀리즘과도 맞닿은 모던아트”라고 풀이했다.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민화가 각광받는 이유는 민화 본연의 개방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란, 까치, 호랑이 등 유사한 소재를 활용하되 틀에 갇히지 않는 표현으로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책장에 진열된 사물을 그린 ‘책거리’는 당대 흔히 볼 수 있는 민화 양식이지만 그림 속 사물은 제각각 다르다. 책장에 반짇고리와 은장도, 비단신 등 여성의 물건만을 배치한 작품은 가부장사회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여성주체의 존재를 암시한다. 정 교수는 “창작자가 자신만의 관점으로 피사체를 재해석하는 것이 민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미술계도 민화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뉴욕 찰스왕센터,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은 2016년 9월부터 1년 넘게 조선민화 특별전을 열었다. 시카고미술관은 2017년 발간한 도록에서 폴 세잔의 정물화와 민화 ‘책거리’를 나란히 배치하며 “한국의 정물화”라고 소개했다. 뉴욕 패션공과대(FIT) 미술관에서 2020년 ‘한국 민화전’을 기획한 변경희 뉴욕FIT 교수는 “민화는 한류를 이끌 K아트의 선두주자”라고 강조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프랑스 순방 때 착용하고 기증해 현재 인천국제공항에 전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던 샤넬 한글 자켓이 당시 김 여사가 입었던 옷과는 다른 샤넬의 별도 제작 제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샤넬이 재킷을 별도로 제작한 이유나 시점이 석연치 않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샤넬은 5일 “김정숙 여사가 2018년 10월 프랑스 방문 시 착용한 자켓은 샤넬 측이 대여한 옷으로 김 여사가 착용 후 바로 샤넬 측으로 반납됐다”며 “이후 지난해 11월 국립한글박물관 요청에 따라 별도 자켓을 제작해 기증했다”고 밝혔다. 기증이 이뤄진 건 시점은 김 여사가 이 재킷을 입은 시점보다 3년 1개월 뒤다. 샤넬 측은 실제 김 여사가 착용했던 제품의 보관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자켓은 지난달 17일부터 인천국제공항 T1 3층 출국장에서 전시 되고 있다. 샤넬은 당초 인천공항에 전시된 제품이 김 여사가 착용했던 것과 동일한 제품이라고 밝혀왔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재킷 색상과 한글 문양 등이 확연히 다른 옷이라는 지적이 커지자 입장을 번복했다. 이에 대해 국립한글박물관 측은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에서 지난해 5월 샤넬이 김 여사 착장 자켓을 기증하고 싶어 하니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며 “샤넬 본사와 협의해 지난해 11월 기증 확정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 측은 “샤넬 본사로부터 김정숙 여사가 2018년 프랑스 순방 당시 실제 입은 옷이라고 알고 기증을 받았으며 (발언의)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여사가 프랑스 방문시 착용한 샤넬 자켓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한글을 수놓은 원단을 이용해 직접 제작한 옷으로 알려졌다. 이 자켓을 포함해 김 여사 의상에 특수활동비가 쓰였다는 의혹이 커지자 청와대는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김 여사가 샤넬 재킷을 2018년 프랑스 국빈 방문 당시 사용 후 반납했고 이후 샤넬 측에서 국립한글박물관에 재킷을 기증해 전시 중”이라고 밝혀왔다.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넷플릭스 프랑스에서 한국 콘텐츠를 이용하는 시청자의 경우 미국 할리우드나 유럽 콘텐츠보다 ‘K콘텐츠’를 더 많이 추천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슷한 분량으로 일본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에게 미국 콘텐츠가 가장 많이 추천된 것과 비교된다. 추천된 K콘텐츠로는 ‘미스터 션샤인’ ‘태양의 후예’ ‘별에서 온 그대’ 등 드라마가 많았다. 서울대 한류연구센터와 프랑스 파리1대학 문화다원주의·디지털윤리연구소 공동연구팀은 8, 9일 ‘넷플릭스와 한류’ 국제학술대회에서 ‘넷플릭스 프랑스의 한국 콘텐츠 추천 경향 연구’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은 매일 3시간씩 넷플릭스 프랑스의 한국 콘텐츠와 일본 콘텐츠를 각각 무작위로 시청하는 봇(Bot·특정 작업을 반복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5개씩 열흘간 돌렸다. 넷플릭스 프랑스에서 콘텐츠 비중이 5∼6%로 비슷하고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한일 콘텐츠를 비교한 것. 넷플릭스는 이용자의 시청 목록을 반영한 다양한 추천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올 1월 실시한 실험 결과 한국 콘텐츠 시청 봇 5개에서 가장 많이 추천된 건 한국 콘텐츠(3만4103회)였다. 이어 미국(2만6444회), 일본(5441회), 영국(4724회), 프랑스(3481회) 콘텐츠 순이었다. 넷플릭스 프랑스에서 한국 콘텐츠 비중은 5%(263개)에 불과하지만 추천 횟수는 1위를 차지한 것. 반면 일본 콘텐츠 시청 봇 5개의 경우 미국(3만1713회), 일본(2만6963회), 한국(6728회) 콘텐츠 순으로 추천 횟수가 많았다. 한국 콘텐츠 시청 봇의 경우 추천 콘텐츠 상위 10위 중 미국 드라마 ‘아웃랜더’를 제외한 9개를 K드라마가 휩쓸었다. 추천 콘텐츠 1위는 2018년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95회)이었고 이어 ‘신입사관 구해령’(272회), ‘고요의 바다’(268회), ‘태양의 후예’(267회), ‘별에서 온 그대’(265회)가 뒤를 이었다. 넷플릭스 프랑스 홈페이지에 ‘연애에 대한 모든 것: 한국 드라마’나 ‘적이었다가 애인이 되는 한국 드라마’라는 분류 체계가 따로 있을 정도로 한국 로맨스 드라마가 강세다. 홍석경 서울대 한류연구센터장(언론정보학과 교수)은 “넷플릭스 추천 시스템의 목적은 이용자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를 제공해 계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라며 “넷플릭스는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할 역량이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추천 시스템에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한류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 센터장은 “연구 결과에서 드러나듯 현재 세계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경쟁자는 타국이 아닌 과거에 잘 만든 한국 드라마”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3개월간 손수 쪽빛으로 물들인 명주예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통 방식을 지켜야죠.”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유물의 병원’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17년째 근무 중인 서화 복원 전문가 장연희 학예연구사(44)가 명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로 8m, 가로 30cm 명주 위에 산수화 4점을 올려놓고 직접 쑨 풀죽으로 장황(裝潢·서화에 비단을 발라 꾸미는 것)을 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작자 미상의 19세기 산수화는 미국 플로리다주 새뮤얼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새뮤얼한 박물관은 2019년 이곳에 복원을 의뢰했다. 현지 전문가가 번들거리는 노란색의 중국식 장황으로 복원해 원형이 훼손됐기 때문. 국립중앙박물관은 2009년부터 외국 박물관 내 한국실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 프랑스 등 8개국 30개 기관이 도움을 요청했다. 특히 서화는 한국 전통 방식으로 장황을 해야 해 매년 한 건 이상 의뢰가 들어온다. 지금까지 복원한 해외 소재 서화는 51점. 장 연구사는 이 중 미국 오하이오주 오벌린대 앨런기념관에 소장된 병풍 ‘출행도(出行圖·왕의 행차를 그린 그림)’를 잊지 못한다. 도화서 화원이 그린 이 병풍은 국내 첫 근대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미국 선교사 달젤 벙커(1853∼1932)가 산 뒤 1933년 오벌린대에 기증했다. 2000년대 초 일본 전문가가 장황을 복원하며 고유의 빛깔을 잃었다. 2018년부터 2년간 이를 복원한 장 연구사는 “조선을 위해 희생한 벙커 선교사를 위해 작은 보답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며 웃었다. “제 손을 거친 작품이 외국 박물관에 걸린 모습을 떠올려요. 외국인에게 한국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릴 때 보람을 느낍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고통을 없애는 모든 것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중독치료센터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는 저자가 환자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20년간 수만 명의 환자를 만난 저자는 쾌락과 고통이 한 저울 위에 올려져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뇌는 큰 자극을 받을 때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쾌락과 고통을 느낀다. 수평저울처럼 쾌락을 느끼면 반작용으로 고통이 따라오는 식이다. 중독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자극적인 쾌락을 찾아 헤맬 때 시작된다. 고통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질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오히려 고통을 제거 대상으로 바라보는 현대의학을 비판한다. 17세기 영국 의사 토머스 시드넘은 “적당한 고통은 자연이 가장 현명한 용도로 사용하는 치료 수단”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고통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현대의학은 약간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수많은 약물을 처방해왔다. 미국에서는 2013년 신경안정제 처방을 받은 성인 인구가 1996년에 비해 67%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단 약물뿐일까. 인스타그램, 유튜브, 넷플릭스…. 고통을 잊게 해주는 쾌락은 도처에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중독에 포위된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를 찾아온 10대 소녀 델릴라는 한 달간 대마를 끊으면서 대마 없이도 스스로 불안감을 견뎌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만성 통증을 경감시키려 10년간 진통제에 의존해온 한 환자는 약을 줄인 뒤부터 아플 때 음악을 듣는다. 고통을 견디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쾌락을 찾아 헤매는 순간이 있다. 그때 자신을 찾아온 마약중독 환자에게 저자가 남긴 말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고통을 견뎌내는 것은 어렵지만 당신에게는 기회예요. 생각, 감정, 고통 등 당신을 들여다볼 기회요.” 저자의 조언을 따르다 보면 고통을 견뎌낼 힘이 이미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1989년부터 33년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 범종을 연구해 온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63·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가 최근 ‘한국의 범종’(미진사)을 펴냈다. 29일 서울 마포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만난 그는 “이 책은 일본, 중국 등 전 세계에 있는 한국 범종 363구를 기록한 아카이브”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 범종 41구의 종소리를 녹음한 QR코드를 담았다. ‘일승원음(一乘圓音·부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한국 범종의 미학을 온전히 전하고자 종이책에 종소리까지 담아낸 것이다.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국 범종 48구를 직접 찾아낸 그는 1995년 후쿠이(福井)현 조구(常宮)신사에서 통일신라 833년에 만들어진 ‘연지사종’을 마주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연지사종은 경남 진주 연지사에서 보관해 오다 임진왜란 때 왜구에 약탈당했다. 현재까지 조구신사가 소장 중이다. 일본은 1953년 연지사종을 국보로 지정했다. 최 교수는 “종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필름만 100여 통 챙겨갔다”며 “하지만 보관고의 문을 연 순간 설렘은 탄식으로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종 표면이 녹슬어 푸르뎅뎅했고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어요. 어떤 국가가 국보를 이렇게 방치합니까.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죠.” 최 교수는 수차례 일본을 찾아가 연지사종의 실태를 파악했다. 2018년 8월에는 학술대회를 열어 보존 처리를 촉구했다. 결국 일본 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5월부터 연지사종을 보존하고 있다. 책에는 한국 범종 363구를 소장 국가와 제작연대별로 분류한 31쪽 분량의 목록도 담겼다. 최 교수는 “저와 후학들이 목록에 새로운 사료를 더해 나갈 것”이라며 “이 책은 범종 연구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05년 4월 5일, TV에서 강원 양양군 낙산사에서 큰 불이 나 보물 ‘낙산사종’이 소실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연구관으로 근무하던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63·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는 불과 3개월 전 낙산사를 찾아가 종을 직접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낙산사종은 영롱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얼마 뒤 다시 찾은 낙산사에는 높이 1.56m에 이르는 거대한 종은 사라지고 불에 녹아 쪼그라든 흉물만 남은 채였다. “낙산사 종이 자아내던 아름다운 소리를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때 결심했죠. 언젠가 종소리까지 담아낸 한국 범종 아카이브를 구축해야겠다고.” 1989년부터 33년간 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한국 범종을 연구해온 최 교수가 그간의 연구를 총망라한 신간 ‘한국의 범종’(미진사)을 최근 펴냈다. 29일 서울 마포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만난 그는 “이 책은 일본, 중국 등 전 세계에 있는 한국 범종 363구를 기록한 아카이브”라고 말했다. 책에는 범종 41구의 종소리를 녹음한 QR코드도 담았다. ‘일승원음(一乘圓音·부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한국 범종의 미학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종이책에 종소리까지 담은 것이다.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국 범종 48구를 직접 찾아낸 최 교수는 “아직까지도 1995년 후쿠이현(福井縣) 조구신사(常宮神社)에서 연지사종을 만난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소재 한국 범종을 연구하기 위해 1년간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소속 연구원으로 지내던 때였다. 통일신라 833년 만들어진 연지사종은 경남 진주 연지사에서 보관해오다가 임진왜란때 왜구에 약탈당했다. 현재까지 조구신사가 소장중이다. 일본은 1953년 연지사종을 국보로 지정했다. 최 교수는 “종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필름만 100여 통 챙겨갔다”며 “하지만 보관고의 문을 연 순간 설렘은 탄식으로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종 표면이 녹슬어 곰팡이 쓴 듯 푸르뎅뎅했고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어요. 어떤 국가가 국보를 이렇게 방치합니까.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죠.” 최 교수는 연구를 마친 뒤에도 두 차례 조구신사를 찾았다. 특히 2018년 다시 만난 종의 상태는 처참했다. 종을 천장에 걸어두는 고리가 부식돼 천장에 매달지 못하고 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것. 최 교수는 2018년 8월 연지사종의 실태를 알리는 학술대회를 열어 보존처리를 촉구했다. 결국 일본의 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5월부터 연지사종 보존처리에 나섰다. 그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은 아직까지도 1995년 촬영한 연지사종의 필름 사진으로 설정돼 있다. “녹슨 채 방치돼 있던 종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의 연구 덕분에 한국 범종의 약탈 증거를 찾기도 했다. 최 교수가 일본 아이치현(愛知縣)에 있는 ‘만다라지종’에 새겨진 글자를 분석한 결과 ‘천정(天正)’이라는 연호가 확인됐다. 일본에서 사용한 연호로 1593년을 뜻한다. 최 교수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선의 어느 절에서 약탈한 뒤 일본에서 새롭게 연호를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에는 한국 범종 363구를 소장 국가와 제작연대별로 분류한 31쪽 분량의 목록도 담겼다. 최 교수는 “앞으로도 저와 후학들이 목록에 새로운 사료를 더해나갈 것”이라며 “이 책은 33년 범종 연구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그가 가는 길이 곧 미국 장애 인권사였다. 이 책은 미국 장애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이다. 1970년 당시 23세였던 저자는 교사를 꿈꿨다. 성적은 우수했고 실무 경험도 갖췄다. 하지만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그의 교사 면허를 불허했다. 그가 생후 18개월 때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에서였다. 멈출 것인가 싸울 것인가. 그는 꿈을 지키기 위해 후자를 택했다. 1970년 5월 연방법원에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년간의 법정 싸움에서 승리해 교사 면허를 받아낸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교사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용기 있는 첫걸음이 세상을 바꿨다. 얼마 뒤 뉴욕주는 장애인의 교직 접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저자와 장애운동가 60명은 1989년 9월 공공·민간 모든 영역에 걸쳐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장애인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정문 앞에 83개의 계단이 있었지만 이들을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휠체어에서 뛰어내린 이들은 하룻밤을 새워 몸을 끌고 계단을 올랐다. 미국 언론은 이날의 사건을 ‘시민권 투쟁’으로 대서특필했고 1년 뒤 법안은 통과됐다. 꿈을 지키기 위해 차별과 맞서온 저자는 “장애가 나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성취하게 했다”고 말한다. 훗날 저자는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발탁돼 장애 인권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행정가가 된다. 차별에 굴복하지 않고 싸워 왔기에 찾은 길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저자와 같은 길을 걸은 국내 장애운동가 박찬오 씨의 감상평이 나온다. 20년 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무작정 세계은행 빈민구제팀에서 일하던 저자를 찾아갔다고 한다. 당시 저자는 그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힘껏 문을 열어 보자”고 말했다. 이 말에 힘입어 박 씨는 2002년 서울시 지원을 받아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세웠다. 저자의 발자취를 묵묵히 쫓은 그는 20년이 흘러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때 당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났다’고.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분단국가의 사회학자로서 북한 사회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인 1990년대 독일에서 10년간 유학한 이희영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59·사진)는 북한 사회가 궁금했다. 독일에서는 통일 이전부터 장벽을 넘나드는 연구가 진행됐다. 서독 사회학자들은 동독 정부의 허가를 받아 동독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결과 동독 주민의 삶에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현실이 괴리돼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70년의 분단 역사를 지닌 한국에도 필요한 연구라는 판단에 이 교수는 탈북 여성의 생애를 2006년부터 추적했다. 이로부터 13년간 다양한 연령대와 신분의 탈북 여성 수십 명을 만났다. 이 중 1990년대 대기근 이후 탈북한 여성 8명과, 2015∼2018년 탈북한 신세대 여성 12명에 대한 연구기록을 담아 신간 ‘경계를 횡단하는 여성들’(푸른길)을 최근 펴냈다. 그는 23일 전화 인터뷰에서 “탈북여성의 삶에는 격변하는 북한 사회가 녹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2006∼2008년 만난 탈북여성 8명은 1990년대 북한 대기근 이후 오직 살아남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남한에 오려고 탈북한 이는 없었다. 당시 북한에서는 돈벌이를 할 방법 자체가 없었다. 국경을 넘은 이들은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같은 공산권 국가인 중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교수가 2019년에 인터뷰한 신세대 여성들은 달랐다. 1987∼1997년생으로 MZ(밀레니얼+Z)세대인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남한행을 택했다. 신세대 탈북 여성 12명 중 11명은 북한에서 공장에 다니거나 장사를 하며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을 했다. 탈북 후 남한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최선숙 씨(27)는 “간부가 될 필요 없다. 평로동자(일반 노동자)라도 장사해서 돈 버는 게 낫다”고 강조한다. 최 씨는 북한에서 상업에 종사한 아버지를 찾아와 “도와 달라”고 손을 벌리는 고위 간부를 보며 “‘공화국 영웅’보다 장사꾼의 삶이 낫다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깨달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금 북한 여성들은 정치체제가 개인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구세대 북한 여성들이 경험한 삶은 천지차이예요. 이들의 삶을 따라가면 북한 사회의 변화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한복 입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24일 한복 입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발표하며 “한복 입기는 우리 민족의 중요 자산인 만큼 문화재로 지정해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올해 2월 중국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둘러싸고 ‘문화 공정’ 논란이 불거진 후여서 눈길을 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중국과의 갈등 관련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한복은 신라시대 토우(土偶·흙으로 빚은 사람이나 동물의 상) 등 삼국시대 유물에서도 확인되는 우리 민족의 전통복식이다. 삼국시대 때 하의와 저고리로 이뤄진 한복의 복식구조가 완성됐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는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활을 쏘는 남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어 조선시대 때 한복의 복식 전형이 확립됐고, 1879년 개항 후 서양 복식과 구분하기 위해 ‘한복’으로 불렸다. 19세기 말 서양 의복이 도입돼 평상복에 큰 변화가 생겼지만 한복의 근간은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다. 망자에게 입히는 수의(壽衣)나 갓 태어난 아이에게 입히는 배냇저고리, 명절에 입는 설빔이 대표적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지정 과정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온 국민이 전승하고 있는 문화라는 이유에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대문감옥(옛 한성감옥)에는 진귀한 보물이 있다. 지난날 이승만 박사가 동지들과 같이 투옥됐을 때 옥중 도서관을 만들어 죄수들에게 나라 구하는 길을 가르쳤다. 나는 이곳에서 그의 손때와 눈물자국이 얼룩진 책을 보았다.’ 백범 김구(1876∼1949)가 1911년을 회고하며 백범일지에 쓴 글이다. 당시 그가 투옥된 서대문감옥의 종로구치감은 구한말 한성감옥의 후신이었다. 대한제국 시기 개혁운동을 벌이다 한성감옥에 갇힌 우남 이승만(1875∼1965)을 포함한 지식인들은 옥중 도서관을 세우고 밤새 책을 읽었다.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선 이들은 감옥에서 어떤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을까. 독립기념관 산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월남 이상재(1850∼1927) 서거 95주기를 맞아 그의 후손인 이공규 씨가 올 초 기증한 ‘한성감옥 도서대출 장부’를 공개했다. 1903년 1월부터 1904년 8월까지 수감자와 간수의 책 대출내역이 기록된 143쪽짜리 장부에는 우남, 월남 등 독립협회 활동으로 투옥된 인사들의 이름도 담겼다. 대출목록에는 근대국가 정치체제와 사상을 담은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1903, 1904년 대출순위 1위(45회)에 오른 ‘유몽천자(유蒙千字)’는 미국 독립운동사를 소개한 책이다.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쓴 이 책은 우남과 백범, 월남 모두 읽었다. 2위는 프랑스 혁명 등 19세기 근대국가를 형성한 유럽사를 다룬 ‘태서신사(泰西新史)’.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의회정치 체제가 확립된 과정을 그린 저자 불명의 이 책도 우남과 백범, 월남이 탐독했다. 백범은 백범일지에 “태서신사를 읽을 때마다 이승만의 얼굴을 보는 듯 반갑고 무한한 느낌이 일었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월남은 서구 관점에서 유학(儒學)을 비판한 ‘경학불염정(經學不厭精)’을 수차례 읽었다. 이 책은 독일인 선교사 에른스트 파버가 썼다. 서구 근대국가의 정치체제를 소개한 ‘자서조동’(自西조東·에른스트 파버 지음)은 이동녕이 1903년 출옥하며 따로 챙겨갈 정도로 즐겨 읽은 책이다. 훗날 이동녕은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의장으로 ‘대한민국의 정체는 민주공화정’임을 선포하며 “우리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은 군주제를 부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요, 국민이 국가가 되는 민주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1899년 고종 폐위 음모에 연루돼 한성감옥에 투옥된 20대 청년 이승만은 1902년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250여 권을 소장한 옥중 도서관을 만들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수감시설로 바뀐 한성감옥에 ‘수감자 중 서적 보는 것을 청한 자가 있으면 필요한 것만 허락한다’는 규칙이 신설된 데 따른 것. 1902년 6월 투옥된 월남은 도서관 서기가 됐다. 임정 초대의장 이동녕,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종일도 장부에 이름을 올렸다. 한성감옥이 근대개혁 정신을 싹틔운 배움의 장이 된 것이다. 윤소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당대 지식인들은 감옥에서 서구 근대사상을 탐닉하며 건국의 뼈대를 구상했다”며 “한성감옥은 구한말 근대국가 수립을 모색하던 지식인들의 지적 탐구의 장이자, 독립운동가의 배출 통로로 기능했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난해 미국 동부지역은 17년 만에 수백만 매미 떼의 습격을 받았다. 일명 ‘17년 주기 매미’는 2004년 알에서 깨어나 땅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딘 뒤 2021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왜 하필 17년일까. 이 책 저자는 매미가 17이란 숫자를 선택한 건 합리적 셈법이라고 말한다. 비둘기, 쥐 등 천적이 많은 매미는 포식자의 성장주기를 비껴가는 소수(素數·1과 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수)를 선택해 생존율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천적의 성장주기가 3년이고 매미의 주기가 17년이면 매미는 51년 뒤에야 천적을 마주친다. 자연에서 소수는 포식자를 피하는 생존전략인 셈이다. 독일 수학자이자 세계 최초 수학박물관 마테마티쿰을 세운 저자는 전작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21세기북스)에서처럼 수학의 문화사적 의미를 일상사에서 흥미롭게 풀어냈다. 책에는 1, 2, 3처럼 작은 숫자뿐 아니라 원주율, 무한대 등 수와 얽힌 39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수학 원리를 풀어내려는 수학자들의 고군분투도 소개했다. 1903년 10월 31일 미국 수학자 프랭크 넬슨 콜은 2^67-1의 약수를 증명하는 강연을 열었다. 해당 숫자가 소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지만 어떤 수학자도 이 수의 약수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칠판에 자신의 계산식을 증명해낸 콜은 “이 문제를 풀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3년 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무한한 수를 탐닉한 인간의 역사에는 숫자를 뛰어넘는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책에는 1965년부터 2011년 8월 6일 세상을 떠난 날까지 매일 캔버스에 숫자를 써내려간 폴란드 화가 ‘로만 오팔카’의 이야기가 나온다. 46년간 233점의 숫자 연작을 남긴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그린 수는 560만7249.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기록한 가장 큰 수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지녔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죽는 날까지 무한에 닿기 위해 쓰고 또 쓴다는 것. 어쩌면 인간의 의지야말로 가장 경이로운 이야기가 아닐까.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조선시대 무신 이기하(1646∼1718)의 묘지석(墓誌石·고인의 행적을 기록해 묘소에 묻는 돌판)을 지난달 자진 반환한 것을 계기로 국외로 반출된 묘지석을 환수하기 위한 협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해외 박물관들과 묘지석 환수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데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며 “클리블랜드미술관의 반환 이후 윤리적 결정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박물관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유럽, 미국 등 해외 박물관들에 소장된 국내 묘지석은 최소 170여 점에 이른다. 미국 브루클린박물관이 55점으로 가장 많고 메트로폴리탄미술관 34점, 프랑스 세르뉘시미술관 21점, 영국 대영제국박물관 14점 등이다. 이 중 브루클린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문인 박은(1475∼1504)의 묘지석에는 그가 생전에 쓴 한시가 적혀 있다. 1504년 갑자사화 당시 박은이 사형을 당한 후 행적과 사료가 남아 있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재단은 2013년부터 묘지석 반출과 기증 경로를 추적해 도굴 등 불법성이 입증될 경우 환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단은 2017년 일본인 소장자로부터 조선 전기 고위관직에 오른 이선제(1390∼1453)의 묘지석을 환수했다. 이 묘지석이 무덤에서 도굴된 뒤 1998년 한국 고미술상에 의해 일본에 밀반출된 경로가 확인된 것. 재단 실무자가 일본인 소장자 도로키 다카시 씨를 찾아가 불법 반출 증거를 제시하며 환수를 설득했다. 묘지석은 인물의 생애를 통해 그 시대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어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은 환수 1년 만인 2018년 ‘이선제 묘지석’을 보물로 지정하면서 “해당 묘지석은 그동안 생몰연도조차 알려지지 않은 조선 전기 문인의 생애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사료”라고 밝혔다. 문화재계에서는 서구 박물관들이 제국주의 시절 약탈한 문화재를 자진 반환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묘지석 반환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로텐바움박물관은 19세기 나이지리아의 베닌 왕국에서 서구 열강이 약탈한 왕실 예술품 5000여 점의 출처를 밝히고, 올해부터 소장 유물 1000여 점을 나이지리아에 반환하기로 했다. 차미애 재단 실태조사부장은 “독일의 베닌 프로젝트가 해외 박물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박물관의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추세가 이어져 해외에 밀반출된 국내 유물 환수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년 전 딸이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말할 때 나섰어야 했는데…. ‘중학교 졸업 때까지 견디자’고 한 게 너무 후회됩니다.” 지난해 3월 경기도 학교전담경찰관(SPO) 장석문 경감(53)에게 고교생 딸을 둔 엄마가 찾아왔다. 아침마다 “학교에 가기 싫다”며 눈물을 흘리던 중학교 2학년 딸에게 엄마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가면 해결될 것”이라며 달랬다. 하지만 딸과 같은 고교에 진학한 가해학생들의 폭력은 3년째 이어졌다. “난 언제쯤 지옥에서 벗어나느냐”는 절규에 뒤늦게 학교폭력을 신고했지만, 딸은 부모에 대한 마음의 문을 이미 닫아버렸다. 장 경감은 최우성 경기도교육청 학교폭력전담 장학사(50)와 함께 ‘올 어바웃 학폭’(가치창조)을 10일 출간했다. 장 경감은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학교전담경찰관으로 지낸 8년간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자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학부모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최 장학사는 2012년부터 매주 1건 이상의 학교폭력 사안을 심의하고 있다. 그는 “피해 학생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자해하는 사건을 2개월에 한 건씩 접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로부터 아픔을 외면받은 아이들은 자해를 해요. 마음에 난 상처는 보이지 않으니 제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겁니다.”(최 장학사)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내놓은 해법은 조기 대응. 최 장학사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 상당수가 부모에게 이를 알리지 않는다. 학교폭력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만큼 부모가 먼저 자녀의 신호를 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녀가 휴대전화 알림에 불안해하거나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면 학교폭력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급격한 체중 감소나 잦은 지각과 결석도 유심히 살펴봐야 할 피해 징후다. “자녀가 어느 날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면 부모에게 지금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 있어요. 아이가 내민 손을 외면하지 않아야 구할 수 있습니다.”(장 경감)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가상화폐 투자자 모임인 헤리티지 DAO(탈중앙화 자율조직)가 최근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으로부터 구입한 국보 금동삼존불감(金銅三尊佛龕)의 소유권을 간송 측에 돌려주기로 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16일 입장문을 내고 “헤리티지 DAO가 금동삼존불감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51%의 지분을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금동삼존불감의 소유주는 전 관장에서 헤리티지 DAO로 바뀌었다. 헤리티지 DAO에 투자한 금융업체 크레용의 레온김 대표는 최근 미국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보를 활용한 대체불가토큰(NFT) 상품 지분을 확보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간송재단 관계자는 “헤리티지 DAO는 금동삼존불감을 활용한 NFT 상품화 등의 조건 없이 국보를 기증했다”며 이를 부인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