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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특파원단과 만나 “각종 보고서와 자료를 모아서 3공 파일로 묶는 일이 낙이요 즐거움”이라고 했다. 박 시장의 이날 발언 가운데 가장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서울에서 그랬기 때문이다. 2002년 가을 북한 공부를 시작한 뒤부터 논문 작성에 도움이 될 만한 기사와 자료를 A4용지에 출력해 주제별로 3공 파일에 끼우는 일은 작은 행복이었다. 2005년부터 2년 동안 잠시 취재 현장을 떠나 있을 때 사무실 책장에 꽂아 놓은 ‘특대형 3공파일’은 족히 30권은 될 것 같다. 2008년부터 통일부와 외교부를 출입하면서 각종 보도자료와 북한 정보 등을 모아서 책을 쓰는 데 활용했다. 종이 덕분에 일도 공부도 잘했다. 하지만 2012년 12월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지금까지 종이와는 사실상 결별 상태다. 업무 환경 자체가 ‘페이퍼리스 스타일(paperless style)’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매일 많은 양의 영문 텍스트를 읽어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모든 자료를 출력해서 빨간 펜으로 중요한 내용에 줄을 그을 여유가 없다. 보통 컴퓨터로 읽다가 기사가 되는 부분은 문서 프로그램에 ‘복사해서 붙이기’를 한 뒤 직접 번역한다. 기사를 쓰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수석대표 등이 쓴 몇 권의 회고록을 샀지만 대부분 아마존의 킨들 프로그램으로 보는 e북들이다. 종이 책이 싫거나 비싸서가 아니고 오로지 속보 경쟁 때문이다. 종이 책은 출간일 오전 9시(한국 시간 오후 10시)에나 서점에 나오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편집국의 초판 마감시간 전에 기사를 보낼 수가 없다. 사전 구매한 e북은 출간 당일 0시(오후 1시)에 컴퓨터로 도착한다. 졸린 눈을 부비며 밤새 읽어야 한다. 하루 일찍 기사를 보내려면 어쩔 수가 없다. 초판 기사 송고를 마치는 오전 4시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종이신문이 집 정문 현관 앞으로 배달되지만 기사 송고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 유력지들은 종이 신문 1면에 실릴 단독 기사들을 통상 전날 오후 5시 이후에 온라인판에 미리 올린다. 나중에 받아 보는 종이 신문은 구문에 가깝다. 미국 사회 자체도 종이 사용에 너그럽지 않은 것 같다. 워싱턴 싱크탱크들이 여는 세미나에 가보면 종이로 된 유인물은 발표자 약력 정도가 고작이다. 우리처럼 발표문까지 출력해 나눠주는 인심 좋은 곳은 거의 없다. 세일 기간 월마트에 가면 가정용 프린터를 싸게는 30달러(약 3만2000원)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잉크와 인쇄용지는 한국보다 몇 배나 비싸다. 한국에선 이번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부가 자료 복사 비용으로 40억 원을 썼다는 기사를 읽었다. 문득 종이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워싱턴 생활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한국의 의원님들처럼 아직 누군가가 출력해준 종이 보고서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종이 사용이 낭비는 아니다. 박 시장이 만든 3공 파일들에서는 정책도 나오고 책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종이 국감자료는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일회용 의전을 위해 국민 세금을 불사르는 일이다. 언제부턴가 정부는 기자들에게 국감자료를 CD에 담아 전달해왔다. 우리 의원님들도 ‘종이 없는 국감’을 해볼 용의는 없는가.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자국 인권과 관련한 결의안을 만들어 유엔총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전 배포한 결의안 개요에서 “특정 국가의 인권상황을 문제 삼는 유엔인권이사회(HRC)의 관행을 끝내야 한다”고 강변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11일(현지 시간) 단독 입수한 A4용지 2쪽짜리 결의안 개요는 “HRC의 보편적 정례검토(UPR) 작업이 협력과 건설적 대화를 기반으로 다시 활성화되는 것을 지지한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어 “인권 분야에 국제형사재판소(ICC) 체제를 끌어들이는 모든 시도를 비난하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북 유엔대표부가 자성남 대사 명의로 6일 각국 유엔대표부에 보낸 서한에 첨부된 결의안 개요는 최근 유엔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활발한 인권 대응 공세를 펴고 있는 북한의 노림수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등 북한 최고지도부의 ICC 피소를 막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 이수용 외무상의 유엔 방문과 총회 연설(9월 27일), 내외신 기자들에 대한 사상 첫 인권 설명회 개최(10월 7일) 등을 통해 북한이 인권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것은 ICC 제소를 막으려는 ‘충성외교’인 셈이다. ‘최고 존엄’으로 신격화된 김정은이 ICC에 제소되는 것은 북한이 헌법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일사상 10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결의안 개요에서 “북한이 올해 5월 UPR의 2차 실무그룹에 참여하고 대부분의 권고안을 받아들이거나 주의를 기울인 것에 HRC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에 주목한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도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지난달 18일 “북한이 주요 권고안들을 대부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UPR 실무그룹은 북한에 286개의 권고안을 제시했다. 북한은 83개 권고안은 즉각 거부하고 나머지 185개 권고안에는 검토 의견을 냈다. 이후 113개를 수용한다고 밝혔지만 대부분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것들이며 정작 중요한 △사형집행 자료 공개 △구금시설 공개 △식량시장 개혁 수용 등 10개는 거부했다. 북한의 결의안 개요에는 또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취한 긍정적인 조치들이 남북한 간에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는 데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여기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긍정적인 조치’란 이달 4일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등 최고위급 인사 3인의 인천 아시아경기 폐회식 참석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10일 북한군의 대북 전단 총격 사건으로 빛이 바랬다. 아울러 결의안 개요는 자국의 인권개선 노력을 자화자찬하면서 “인권문제는 각국의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특수성에 따라 공정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째 내려오는 김씨 일가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 차원에서 자행되고 있는 주민 인권 유린을 ‘체제 특수성’이라는 미명 아래 눈감아 달라는 주장인 셈이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등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초안에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뿐만 아니라 인권침해 책임자 제재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이 결의안 초안은 현재 한국을 포함한 50여 개국에 비공개로 회람되고 있으며 본보는 유엔 외교 소식통을 통해 이를 입수했다. 초안은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수집한 증언들과 입수한 정보들은 북한에서 반(反)인권 범죄가 자행돼 왔음을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면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ICC에 제소하고 △반인권 범죄에 가장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을 선별 제재(targeted sanctions)할 것을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또 “북한의 반인권 범죄가 국가 최고위층(the highest level of State)이 수립한 정책에 따라 수십 년 동안 자행됐다”고 밝혀 제재 및 제소 대상이 김 제1비서를 비롯한 북한 최고 권력집단임을 시사했다. 결의안이 채택되더라도 북한은 ICC 관할국이 아니어서 김 제1비서 등을 ICC 법정에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여행 제한이나 자금 동결 등의 제재는 각국의 의지에 따라 실현될 수도 있다. 한편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는 9일(현지 시간) 자국 인권과 관련한 결의안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유엔총회에 제출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북한대표부는 각국 유엔대표부에 보낸 서한에서 “EU와 일본의 결의안 초안은 곧 ‘(북한과의) 대결’을 의미한다”며 반발했다. 유엔 안팎에선 북한의 결의안 초안이 소관 위원회에 제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북한의 결의안이 소관 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면 더 큰 망신만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 / 뉴욕=부형권 특파원}

경제부총리의 ‘자신만만’ 낙관론 대 한국은행 총재의 ‘노심초사’ 신중론. 9일 낮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슷한 시간 버지니아 주의 한 식당에선 이주열 한은 총재가 각각 뉴욕과 워싱턴 특파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한 사람은 한국 경제에 자신감을 드러낸 반면 또 한 사람은 한국 경제에 품은 고민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방향키를 쥔 두 사람이 미국 땅에서 엇박자를 낸 셈이다. 두 사람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및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다. 최 부총리는 기자 간담회와 미 경제인들을 상대로 한 한국경제설명회에서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은 다른 신흥국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만큼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밝혔다. 즉 “안정적 경제성장률, 풍부한 외환보유액, 30개월째 이어지는 경상수지 흑자, 낮은 단기외채 비중, 세계 최고 수준의 재정건전성 등을 감안할 때 미국이 금리를 조기에 인상하더라도 한국에서 급격히 자본이 유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변수’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북한 변수 때문에 한국경제가 좌우될 것이란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럴 가능성은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미 투자자들은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스타우드 캐피털 그룹의 제롬 실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한국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최 부총리의 설명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고 말했다. 반면 이 한은 총재는 간담회에서 “한미 간 금리차가 축소되면 투자 자금이 유출될 수 있다”며 최 부총리와 다른 시각을 보였다. 또 “지금의 소비나 투자 부진에는 구조적인 영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구조개선 정책을 병행하지 않으면 (부진에서 벗어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며 재정·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의 한계를 지적했다. 두 사람의 경제성장률 전망에도 차이가 드러났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4% 성장했고 올해 세월호 영향으로 좀 어렵지만 ‘3% 아주 후반대’가 될 것”이라며 “내년에 다시 4%대로 가면 성장세를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1분기 성장률이 3.9%였는데 2분기에 예상보다 더 떨어져 3.5%를 나타냈다”며 “연간 성장률 전망치도 ‘3% 중반대’로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뉴욕=부형권 bookum90@donga.com /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채널A가 제작한 탈북 아동 다큐멘터리 ‘특별취재 탈북’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 세미나에서 상영된다. 세미나는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10주년을 기념해 미국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와 한국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한미경제연구소(KEI)가 17일 워싱턴 KEI 회의장에서 연다. 세미나 주제를 ‘북한인권법: 10년 후’로 정한 주최 측은 이 같은 행사 일정표를 8일 발표했다. ‘특별취재 탈북’은 17일 세미나 토론이 끝난 직후인 낮 12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참가자들이 오찬을 함께하는 가운데 상영될 예정이다. 주최 측은 “특별취재 탈북은 동아미디어그룹의 종합편성TV인 채널A가 제작했으며 올해 4월 제47회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앞서 동아일보는 미국인 시청자를 위해 이 다큐멘터리에 영어 자막을 넣은 DVD 두 편을 HRNK 측에 전달했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은 “아주 감동적이고 북한 인권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며 공개 상영을 결정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유엔에서 미국 외교수장으로는 처음으로 북한 인권 관련 회의에 공식 참석하는 등 북한 인권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채널A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영상을 방영할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미 정부를 대표해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대사가 참석하며 미 연방 하원의원 출신인 도널드 만줄로 KEI 소장과 스칼라튜 사무총장, 로버타 코언 HRNK 이사회 공동의장(브루킹스연구소 비상임연구위원), 재미탈북민연대 조진혜 대표 등 10명이 참석해 지난 10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활동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KEI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끝에 10년 전 북한인권법을 탄생시켰지만 지금도 여전히 북한 인권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다고 이번 세미나 개최의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야당의 반대로 북한인권법 제정이 지연되고 있지만 미국은 이미 2004년 상하원 여야 합의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그해 10월 18일 이 법에 서명했다. 미 행정부는 이 법에 따라 국무부에 북한인권특사 직제를 신설하고 국내외 대북 방송과 북한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미국 북한 인권 운동가들은 북한이 7일 유엔본부에서 사상 처음으로 자국 인권 상황 설명회를 여는 등 국제사회의 지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올해 초 발간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의 효과가 크다고 보고 있다. HRNK와 KEI의 이번 세미나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계속 촉구하기 위해 기획됐다.:: 채널A ‘특별취재 탈북’ ::지난해 1월 채널A가 방영한 ‘특별취재 탈북’은 자유를 찾아 나선 일곱 살 꽃제비 김신혁 군(프로그램에서는 진혁)을 포함해 북한 주민 15명이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는 과정을 동행 취재한 2부작 다큐멘터리다. 지난해 3월 일본 니혼TV에서도 방영돼 11.8%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상과 제47회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북측은 우리(미국) 대표단에게 특별 대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과 달리 미 군용기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영빈관 대신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업 호텔에서 자야 했다.” 2005년 2월부터 4년 동안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덴버대 학장)는 7일 발간된 회고록에서 북핵 불능화 검증의정서 합의를 위해 2008년 10월 평양을 방문했던 당시 쌀쌀했던 북측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한미일 3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 참여와 북한의 과거 핵개발 활동을 추적할 수 있는 ‘시료 채취’를 의정서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합의에 없는 내용이라며 반대했었다. 그는 ‘전진기지(Outpost): 미국 외교 최전선의 삶’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북한은 검증의정서에 대해 진지하지 않았고 우리(미국)는 이미 드러난 것만 보여주겠다는 북한 측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협상 결렬 이유를 밝혔다. 힐은 결국 빈손으로 비무장지대(DMZ)를 걸어 내려왔다. 판문점 북측에 운집한 중국인 관광객들과 조우해야 하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그는 한국으로 귀환한 뒤 라이스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결렬시켜야 되겠다”고 보고했고 라이스 장관은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대답했다. 힐은 회고록에서 북한이 2008년 5월 방북한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현 주한 미 대사)에게 영변 원자로의 가동 일지를 전달하고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한 것은 ‘외교의 성공’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2007년 1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두 차례나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일화도 소개했다.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이승헌 특파원}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안보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북한의 최고위급 대표단 방남에 대해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한 제스처로 평가하면서도 북한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변화할지에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에서는 이번 대표단 방남이 강석주 노동당 비서의 유럽 순방, 이수용 외무상의 유엔 방문에 이어지는 일련의 평화 공세라며 다소 냉소적인 기류가 지배적이다.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는 진정성 있는 결단을 내리고 억류된 미국인 3명을 석방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는 외면한 채 외교적 고립만 탈피하려는 시도로 보기 때문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대표단 방남을 ‘매력 공세(charming offensive)의 하나’로 평가했다. 그는 “유엔 결의안과 국제법 위반에 따른 국제적 제재를 약화시키고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나 체제 불안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도 3일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한다”는 짤막한 논평을 내놓으며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북한은 최근 남한을 (한미 연합훈련 등으로) 집중 공격했지만 이번에 대표단을 파견해 실제 행동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중요한 일보를 내디뎠다고 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통신은 이어 “이번 북측 대표단의 방문은 최근 수년 동안 경색된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서광을 비췄고 이런 기회를 가져다준 스포츠, 아시아경기에 감사를 표시한다”고 전했다. 친중국계 홍콩 다궁(大公)보는 논평에서 “김정은의 대담하고 직설적인 외부 접촉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자 한국에 선의를 보여준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북한 2인자인 황병서의 방문에 대해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이후 남북간 최고위급 접촉이었다며 이전 수십 년 동안 북한에서 남한에 내려온 최고위층 인사라고 전했다. 신문은 김정은 최측근 3명이 한꺼번에 방한함으로써 북한에 어떤 정변이 있었다는 억측도 불식시켰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신호탄으로 해석하면서 북-일 간 납북자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5일 “북한이 남북 고위급 접촉 재개를 표명한 것은 중국과 관계가 냉각되고 대미 관계도 타개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 러시아에 이어 한국에도 접근해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은 “향후 남북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북-미 관계도 움직여 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보도했다.베이징=구자룡 bonhong@donga.com / 워싱턴=신석호 / 도쿄=박형준 특파원}

북한이 지난해 말부터 진행해온 서해 동창리 미사일 기지 발사대 증축공사를 끝냈으며 정치적 결단이 있으면 올해 안에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할 수 있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가 1일(현지 시간) 밝혔다. 38노스는 지난달 4일 촬영한 민간 상업위성 사진 판독 결과를 토대로 “(증축공사는) 2012년 12월 발사에 성공한 ‘은하 3호’보다 더 큰 로켓을 발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13일 촬영한 사진에는 발사대 옆 추진체 저장 건물 인근에 2012년 12월 발사 이후 처음으로 연료탱크가 산재해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발사대 증축공사 종료에 앞선 올해 8월 초 자체 개발 중인 이동식 발사 ICBM인 KN-08의 엔진 연소실험을 추가로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38노스 운영자인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실험이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 발사를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설명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미국 중간선거(11월 4일)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번 선거에 나서는 지한파 의원들이 당선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총 100석 중 35석의 주인을 가리는 상원의원 선거에는 지한파 모임 ‘코리아코커스’ 소속 의원 2명이 나선다. 코리아코커스 상원 공동의장인 제임스 인호프 의원(공화·오클라호마)과 마크 베기치 의원(민주·알래스카)이다. 인호프 의원은 당선 안정권으로 분류된다. 정치전문 웹사이트인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RCP)’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현재 인호프 의원 지지율은 52.0%로 30.0%인 민주당 앤드루 라이스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베기치 의원은 41.0%의 지지율로 45.7%인 공화당의 댄 설리번 후보에게 약간 뒤지고 있다. 베기치 의원은 지난달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를 알래스카로 초청해 직접 동행하며 1만여 명의 지역 한인 표심 공략에 나서기도 했다. 435석 전체를 대상으로 선거를 치르는 하원에서는 코리아코커스 소속 의원 58명 중 40여 명이 당선권에 든 것으로 워싱턴 정가에선 파악하고 있다. 코리아코커스 하원 공동의장인 제럴드 코널리(민주·버지니아) 로레타 산체스(민주·캘리포니아) 마이크 켈리(공화·펜실베이니아) 피터 로스캠(공화·일리노이) 등 4명의 의원은 당선에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평소 북한 인권에 목소리를 높여온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공화·캘리포니아)도 당선이 유력하다. 민주당 예비경선을 힘겹게 통과한 22선 경력의 대표적 친한파인 찰스 랭걸 의원(뉴욕)은 지역구가 민주당 텃밭이라 공화당 후보와의 본선은 싱겁게 이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2007년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마이크 혼다 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6월 예비선거 때 맞붙었던 같은 당 로 카나 후보와 다시 한 번 격돌한다. 예비선거에서는 혼다 의원이 20%포인트가량 이겼으나 카나 후보가 에릭 슈밋 구글 회장 등 유력 기업인들의 후원에 힘입어 TV 광고에 집중한 결과 격차가 좁혀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편 이번 중간선거의 최대 관심은 현재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을 공화당이 되찾을 것인가이다. 100석인 상원은 현재 민주당 55석, 공화당 45석이다. 모두 35석이 대상인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6석을 보태면 상원을 장악하게 된다. 1일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공화당의 상원 장악 가능성을 각각 76%와 67%로 예상했다. 435명(공화 233석, 민주 199석, 공석 3석) 전원을 새로 뽑는 하원에서는 공화당의 수성이 확실하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신석호 특파원}
홍콩의 도심 점거 시위대와 홍콩 정부가 극적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물리적 충돌이 빚을 상황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위대로선 당초 예고한 최후통첩 시한을 넘기게 되면 정부청사 점거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혼란을 우려한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정부로서도 지난달 28일부터 닷새째 이어진 시위를 계속 용인할 수 없는 데다 최루탄 사용 등 강제 진압에 나서면 대규모 저항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몸을 사려 왔다. 이 때문에 양측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식의 위협공세를 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출구를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밤 홍콩섬 애드미럴티(金鐘)에 있는 정부청사 부근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생 시위대가 정부에 제시한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의 사퇴 시한(3일 0시)이 다가오자 경찰은 청사 방어를 위해 병력을 이곳으로 집결시켰다. “렁 장관이 사퇴를 거부한다면 청사들을 점거하겠다”고 선언한 시위대도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해 마스크와 고글, 비옷 등으로 다시 무장했다. 경찰은 시위대에 정부청사를 점거하거나 포위하면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티븐 휘 홍콩 경찰총부 대변인은 “불법적인 청사 포위를 묵과하지 않겠다”면서 최루탄 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오후 시위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놓고 최루탄과 고무탄환 곤봉 등 시위 진압장비들이 담긴 박스들을 청사 내부로 반입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어 오후 7시경에는 청사 정문의 수비 병력 중 일부가 고무탄 발사기를 휴대한 인력으로 교체됐다. 중국 정부도 이날부터 시위대를 겨냥해 맹렬한 여론전에 돌입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홍콩 시위는 다수의 민의를 수렴하지 않은, 소수의 사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며 “홍콩 경찰의 법에 따른 처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산당 중앙선전부 기관지인 광밍(光明)일보는 시위를 “극단적 반대파가 기획 선동한 법치 파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당장 홍콩 정부가 강제 해산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홍콩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렁 장관과 측근들이 ‘시간 끌기’ 전략을 채택했다. 시간이 지나가면 일반 시민들이 시위대에 등을 돌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사 점거 시위를 앞두고 시위대 내부에서도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시위 주도 세력 중 한 곳인 ‘센트럴을 점령하라(센트럴 점령)’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위안하이원(袁海文) 씨는 “대학생으로 구성된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와 중고생 조직인 학민사조(學民思潮), ‘센트럴 점령’ 등 세 단체는 렁 장관 퇴임과 중국 정부의 ‘가짜 직선제’ 방침 철회라는 두 가지 목표는 공유하지만 전술에서는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대안 없는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본토인들의 홍콩 여행을 제한하는 등 경제적 압박에 들어갔다. 이는 홍콩 민심을 시위대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는 국제 문제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일 오후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 예고 없이 합류해 “미국은 홍콩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홍콩 당국과 시위대 간의 입장차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앞서 왕 부장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케리 장관은 왕 부장과의 회담에 앞서 “우리는 홍콩 당국이 강경 진압을 자제하고 시위대가 평화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는 권리를 존중해 주기를 희망한다”며 압박했다. 왕 부장은 홍콩 시위가 8월 미국 퍼거슨 시 흑인 폭동과 비슷하다며 “홍콩 문제는 중국의 내부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1일 미국의 40개 도시를 포함해 런던 등 전 세계 64개 도시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다.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폭력 혐의로 세 건의 전과가 있는 계약직 경호원이 총을 지닌 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한 엘리베이터에 탔던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달 19일 백악관 담을 넘은 오마르 곤살레스(42)가 대통령 집무실 깊숙한 곳까지 침입했던 것으로 확인된 데 이어 대통령의 경호를 책임지는 비밀경호국(SS)의 부실 보안 사례가 또 제기된 것이다. 지난달 30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사건은 오바마 대통령이 에볼라 바이러스 예방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지난달 16일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방문했을 때 일어났다. 문제의 경호원은 SS 요원의 제지에도 엘리베이터에 탄 대통령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수상하게 여긴 SS 요원은 대통령이 내린 뒤 이 경호원의 신원을 조회했다. SS 규정에 따라 범죄 경력자는 대통령에게 근접해서는 안 된다. 특히 SS는 경호원이 총을 휴대한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테러범이 경호원을 가장하거나 테러집단이 경호원을 매수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던 셈이다. 이 경호원은 현장에서 총을 압수당하고 해고됐다. 줄리아 피어슨 SS 국장은 내부적으로 사건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지만 규정 위반 여부를 따지는 조사위원회에 관계자들을 회부하지는 않았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미국에서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처음 나왔다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달 30일 밝혔다. 에볼라가 창궐하는 서아프리카 5개국 이외의 국가에서 에볼라 감염 진단을 받은 첫 사례이기도 하다. 익명의 이 남성 환자는 미 텍사스 주 댈러스 시의 텍사스건강장로병원에서 고열 등의 증세로 검사를 받은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19일 비행기 편으로 라이베리아를 출발해 다음 날 미국에 도착했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의사와 인도적 지원단체 직원이 현지에서 감염 사실이 확인돼 미국으로 송환된 적이 있지만 미국 내에서 감염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자신도 모르게 에볼라 바이러스를 미국으로 들여온 유사 환자가 더 있을 가능성이 확인된 셈이어서 미국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상륙했음이 사실상 처음으로 밝혀졌다. CDC는 7월 27일 이후 뉴욕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플로리다 주 등에서 모두 12명이 에볼라 감염 유사 증세를 보여 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CDC는 이 환자가 미국 시민인지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병원 측은 “라이베리아에 거주하는 사람인 것으로 생각된다”고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이 환자는 지난달 20일 미국에 입국했고 24일 감염 증세가 나타나 26일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으며 28일 입원했다. 방역 당국은 환자를 집중치료실에 격리해 치료하는 동시에 그가 지난주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증세를 나타낸 이후 접촉한 모든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토머스 프리덴 CDC 국장은 “환자를 개인적으로 접촉한 사람은 3주 뒤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며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퍼지지 않게 에볼라 유입을 통제하고 봉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 환자는 지난달 20일 미국에 도착한 지 6일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같은 비행기에 탔던 승객이나 그와 접촉한 가족 등이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CDC는 환자와 같은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은 전염의 위험이 없다면서 공포감 확산 차단에 나섰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증세가 나타난 뒤부터 전염되는데 비행기를 탈 당시 환자는 체온 검사를 받았고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는 이유에서다. 바이러스는 환자의 체액이나 감염된 동물을 통해 전염되며 공기 전염은 없다고 CDC는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라이베리아 기니 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에서 현재까지 6553명의 발병 사례가 보고됐으며 3083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 총회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국제 공동대응을 강조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백악관에서 개최한 ‘글로벌 보건안보 구상(GHSA)’ 폐막식에서 “에볼라 확산 방지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보건안보 이슈를 최우선 의제로 삼아 달라”고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다음 회의는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당초 미국 백악관 담을 넘어 들어가 현관문 앞에서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던 ‘월담범’ 오마르 곤살레스(42)가 실제로는 대통령 관저 깊숙한 곳까지 침입했던 것으로 드러나 비밀경호국(SS)의 부실 보안 논란이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30일 “사건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곤살레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침실이 있는 중앙관저 현관문을 통과해 경호원 한 명을 제치고 대통령 침실로 연결된 계단을 지나 이스트룸으로 직행했다”고 폭로했다. 백악관 동쪽 1층에 있는 이스트룸은 대통령이 연설을 하거나 외부 인사들과 만찬행사 등을 하는 곳이다. WP에 따르면 곤살레스는 이스트룸 남쪽 끝까지 질주한 뒤 그린룸으로 향하는 복도에 도달해서야 출동한 보안요원에게 저지됐다. 검거 당시 그는 바지 안에 길이 9cm의 접이 칼을 가지고 있었다. 침입 당시 현관문 자동경보가 울리지도 않았다. 이에 앞서 SS는 곤살레스가 19일 백악관 외곽의 담을 넘은 뒤 180m가량 질주해 중앙관저 현관문까지 침입했다가 체포됐다고 밝혔다. 근처에 주차된 그의 차량에서는 총알 800여 발과 도끼 등이 발견됐고 SS는 백악관 주변에 검문소를 설치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WP는 “침입자들이 백악관 담을 넘는 일은 종종 있지만 건물 안으로 진입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백악관과 SS는 현재 곤살레스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건물 안까지 들어가게 된 경위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SS의 백악관 부실 보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11월 11일 밤 오스카 오르테가에르난데스라는 21세 청년이 백악관 앞 도로에 주차한 자신의 차량에서 백악관을 향해 총을 발사했을 때에도 닷새 뒤 백악관 청소부가 깨진 유리조각 등을 발견한 뒤에야 SS는 사건을 인지했다고 WP는 보도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가 한국, 중국과의 역사적 갈등을 악화시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 CRS는 곧 발간될 예정인 ‘미일관계’ 보고서에서 “역사적 상처를 쑤시는 아베 정권의 행태는 한국과 건설적 관계를 만들고 중국과 잠재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관리해 나가는 일본의 역량을 저해한다”며 “이는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이익에 손해”라고 지적했다. CRS는 미 의회 정책 입안과 법안 작성에 필요한 분석 자료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2월 일본의 역사인식에 유감을 표명한 데 이어 이번에 비판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과거사 부정 시도에 실망하는 미 의회의 변화된 기류를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CRS는 특히 6월 아베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발표를 역사수정주의 행태의 대표 사례로 지적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담화로 한일 외교관계의 기반 중 하나다. CRS는 “고노 담화가 한국 정부와 조율을 통해 작성됐다는 검증 결과는 담화가 전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는 점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라며 “비판가들은 이런 검증 결과가 일본 정부가 내놓은 사과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아베 정권이 역사수정주의를 추구하는 증거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2007년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작성에 관여한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최근 기사에서 자신들의 인터뷰 발언을 왜곡 보도했다며 항의했다.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한미연구소 방문교수와 래리 닉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및 한미연구소(ICAS) 선임연구원 등 4명은 26일 워싱턴 외교 소식지 넬슨리포트를 통해 “마이니치는 취재한 대로 올바른 기사를 쓰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아사히신문이 오보를 시인한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의 증언 기사’와 관련해 이달 초 마이니치의 취재에 응했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과는 달리 허위로 드러난 요시다 증언이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작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도했다고 했다. 핼핀 교수는 “극우단체 인사들이 나를 방문하기 이틀 전인 8일 마이니치로부터 e메일을 받고 ‘결의안은 요시다 증언이 아닌 수많은 다른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장문의 답변을 보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11일자 마이니치신문에 기사가 나간 뒤 기자에게 ‘매우 실망스럽다’는 의견을 보냈다”고 밝혔다. 핼핀 교수는 “진보 진영의 아사히신문이 공격당하고 중도 마이니치신문까지 흔들리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이 극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살면서 오로지 자동차에 출퇴근을 의존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에 들어온 2012년 12월부터 약 1년 8개월 동안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집에서 워싱턴DC에 있는 사무실과 주미 한국 대사관, 각종 싱크탱크 사무실 등을 오가기 위해 자동차만 이용해야 했다. 버지니아 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워싱턴DC를 잇는 메트로(한국의 전철과 지하철) 실버 라인의 1단계 구간이 개통된다는 말을 지난해 여름에 듣고 비엔나 타운 북쪽의 타운 하우스(일종의 미국식 연립주택)에 세를 들었다. 올해 7월 26일 메트로가 드디어 개통됐다. 지금까지는 싫건 좋건 자동차가 거의 유일한 출퇴근용 이동수단이었지만 대체 수단이 생긴 것이다. 서울에서 ‘걷기’는 건강을 챙기는 가장 쉬운 운동이었다. 특히 하루 한 시간 이상 걷기는 고마운 특효약이었다. 하지만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는 따로 시간을 내 공원을 산책하지 않는 한 걷기가 쉽지 않았다. 운전자 처지에서 본 미국은 사통팔달로 잘 정비된 고속도로와 간선도로를 갖춘 나라지만 ‘걷기족’에게는 매우 불편한 곳이다. 도시 구조 자체가 걷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설계됐다. 아예 ‘함부로 걷지 말라’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집에서 각종 모임이 있는 한국 식당까지 걸으면 꼭 30분이 걸린다. 슬슬 걸어가기 딱 좋은 거리다. 그런데 20분 정도까지는 길가에 걸어서 갈 보도가 있지만 이 식당이 눈앞에 보이는 간선도로(7번과 123번) 교차로에서 보도가 끊어진다. 할 수 없이 20분 정도를 다시 돌아가거나 아니면 무단횡단을 감행해야 한다. 한국의 한 특파원은 저녁에 술을 한잔 걸친 채 걸어서 집에 가다가 경찰에게 연행돼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를 적발한 경찰관은 “음주 운전뿐만 아니라 음주 도보도 공공안녕을 해친다. 당신도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루 자고 가는 게 낫다”고 ‘친절하게’ 안내했다고 한다. 워싱턴DC 시내 중심은 보도가 잘 연결됐지만 걸어서 진입하는 것이 문제다. 주차난 때문에 2시간 이상 사설 주차장에 차를 대면 20달러(약 2만 원) 안팎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길가에 돈을 내고 차를 세워두는 주차는 규칙이 복잡해 그동안 25∼100달러의 주차 위반 딱지를 두세 번이나 떼였다. 견인을 당하면 200달러를 내고 찾아와야 한다. 버지니아 지역 기존 메트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워싱턴DC로 들어가려 해도 빈 공간이 없어 5달러에 가까운 주차료만 내고 다시 돌아 나온 일도 허다했다. 하다못해 DC 북서쪽에 있는 한국 영사관 무료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다니다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눈물겨운 걷기 투쟁을 하기도 했다.‘걷기’를 도와준 메트로 개통 두 달 전부터 집 앞에 메트로가 개통되면서 모든 고민과 고통이 사라졌다. 집 문을 나와 메트로를 타고 내려 워싱턴DC 사무실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시간. 자동차로 나올 때보다 시간은 두 배나 걸리지만 삶은 더 윤택해졌다. 운전과 주차의 고통에서 해방됐다. 메트로로 이동하는 동안 신문을 읽고 e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 DC의 도시 풍광을 즐길 수도 있다. 메트로 개통식 날 1단계 개통구간 종착역인 필레-레스턴 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한 정거장 지나 실버 스프링 역에 내린 데버러 슈프렌츠 씨(여·자영업) 부부를 만났다. 평소 자동차로 이용했던 월마트 쇼핑을 걸어서 해보기 위해 부부가 손을 잡고 나왔다고 했다. 슈프렌츠 씨는 “정말 행복하다. 이젠 지하철을 타고 걸어서 워싱턴DC나 인근 지역 어디라도 다닐 수 있게 됐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이어진 그린즈버러, 매클린 등 이날 개통된 5개의 지상 메트로 역 인근 주민들은 저마다 가족의 손을 잡고 시승을 하면서 하늘에서 처음 내려다보는 동네 풍경을 즐겼다. 이 지역 최대 쇼핑몰인 타이슨스 코너 역은 DC에서 지하철을 타고 쇼핑하러 온 미국인들로 붐볐다. 이스트 폴스처치 역에서 기존 오렌지 라인과 만나 워싱턴DC로 들어가는 메트로 실버 라인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기존 메트로는 이용객들이 인근 대형 주차장에 차를 대고 타는 ‘파크 앤드 라이드(Park and Ride)’ 형식이지만 실버 라인 주변에는 종착역인 레스턴 역을 빼곤 주차장이 거의 없다. 걸어와 메트로를 타라는 ‘워크 앤드 라이드(Walk and Ride)’ 방식이다. 주차장 터로 쓸 수 없을 만큼 치솟은 땅값도 이유지만 이면에는 자동차에 갇혀 건강을 잃어가는 미국인들에게 걸어서 지하철 타기를 권하는 뜻이 담겨 있다. ‘패스트푸드의 나라’ 미국에서는 비만과 각종 성인병으로 개인과 사회의 비용이 급격히 늘었다. 그런 몸살을 앓고 있는 개인의 환경을 구조적으로 바꿔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워크 앤드 라이드’다. 올해부터 미국에서는 한국의 전 국민건강보험제도에 해당하는 건강보험개혁법안(오바마 케어)이 발효됐다. 이를 계기로 의사와 약에 건강을 맡기지 말고 하루하루 삶의 현장에서 국민들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마을과 생활의 구조를 바꾸자는 운동이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6월 워싱턴포스트(WP)가 주최한 ‘건강 보험을 넘어선 건강’ 포럼이 그런 예다. 포럼은 메트로 실버라인 개통에 맞춰 걷기 좋은 ‘타이슨스 코너 만들기’ 운동을 모범 사례로 소개했다. 타이슨스 코너가 속해 있는 페어팩스 카운티는 2010년부터 2050년까지 40년 동안 ‘그린 웨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로 했다. 주민과 쇼핑객들이 타이슨스 코너 인근 지역을 보도나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 계획이다. 쇼핑센터들은 벌써부터 메트로 역에서 매장 건물까지 보도를 만드는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올해 6월에는 당국과 업체들의 동참을 촉구하는 걷기 대회와 자전거 타기 대회가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열렸다. 지난해 파산한 미국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미시간 주)에서는 일군의 시민단체들이 시 정부 소유의 공원을 사들여 시민들이 걷기와 요가 등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자율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비영리단체인 ‘네트워킹아웃’이 운영하는 ‘런 디스 타운(run this town)’ 프로젝트는 매주 화요일 오후와 토요일 오전을 ‘뉴 해피 아워(The new happy hour)’로 정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등록할 필요 없이 무료로 함께 뛰기 행사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건강도 챙기고 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는 동료들과 직업적인 관계를 다질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네트워킹아웃의 테런스 톰프슨 회장은 “올 4월 19일 37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한 번에 300∼500명의 시민이 모일 정도로 커졌다”고 성과를 자랑했다. 그는 “첫 9주일 동안 23명이 체중 50파운드(약 23kg)를 뺐고 100명 이상이 15∼50파운드를 감량했다”고 전했다.미국 내 건강 ‘먹거리’ 관심도 고조 도시민의 건강을 위해서 ‘먹거리’ 관심도 새삼스럽게 고조되고 있다. 햄버거와 피자 등 온통 패스트푸드가 지배해 온 식탁 위에 유기농 야채 혁명을 일으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로 농지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긴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시에서는 수해를 피한 땅에 신선한 채소를 직접 가꿔 먹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진보적인 농장주들은 각급 학교 학생들을 농장원으로 채용했다. 학생들은 작물을 가꾸면서 몸을 움직여 살을 빼고 자신이 가꾼 싱싱한 채소를 섭취하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이 같은 ‘농업+헬스’ 프로그램은 미국 전역으로 번질 조짐이다. 뉴올리언스 시에서 나고 자란 팀 듀브클렛 씨(20)는 학교가 끝나면 이곳저곳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도심 거리를 배회하고 햄버거와 탄산음료로 배를 채우는 보통 흑인 남자 아이였다. 17세 때 몸무게는 이미 300파운드(약 136kg)를 넘었다. 하지만 3년 전 ‘그로 댓 유스 팜(Grow Dat Youth Farm)’에 취직하고부터는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농장에서 일한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무와 양배추 같은 채소를 가꾼다. 최근에는 직접 가꾼 채소로 요리를 하는 일에 흠뻑 빠져 있다. 그 결과 3년 동안 몸무게 80파운드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듀브클렛 씨는 “농장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패스트푸드와 소다 음료가 건강에 얼마나 나쁜지 알게 됐다”며 “무엇보다 건강한 삶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농장 주인인 조애나 길리건 씨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도시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야 했고 이전의 많은 저소득층 주민들이 싱싱한 채소를 접하지 못하고 생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학생 농장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2011년 11명으로 시작한 학생 농부는 현재 40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자녀들이 패스트푸드를 끊지 못해 애를 먹었던 학부모들은 “농장에 갈 수 없을 때는 아이와 함께 마트에서 채소를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그것만으로도 아이의 관심을 건강으로 돌리고 오랜 패스트푸드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헬스 프로그램이 작은 성공을 거두자 일군의 건축가들은 학교의 구조와 식당을 바꾸는 ‘카페테리아 혁명’을 구상하고 있다. 각급 학교 학생들이 먹고 뛰고 공부하는 학교 건물 구조를 바꿔 어린 시절부터 건강한 삶을 위한 교육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다. 학교 식당에서 피자와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를 추방하고 학생들의 학습 동선을 늘리도록 건물 구조를 개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1976년부터 교육시설 설계에 집중해 온 VMDO 설계사무소가 건설한 버지니아 주 버밍햄 초등학교의 식당은 사방이 넓은 창으로 둘러싸여 학생들이 마치 숲 속에 소풍을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식사를 한다. 학생들은 개방식 주방에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야채 등으로 짜인 식단 가운데 원하는 음식을 스스로 골라 먹을 수 있다. 디나 소런슨 건축사는 “청소년 비만과 건강의 관점에서 학교 건축물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미국 태평양군사령관이 25일 퇴임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이동식 발사 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갖출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고 이를 사전 탐지가 어려운 이동식 발사대에 실어 발사하는 것은 한미 군 당국이 크게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이 아직 이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새뮤얼 로클리어 사령관(사진)은 미 국방부 출입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지난 2년 동안 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환경 변화를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북한이 핵물질을 무기화하고 이를 이동식 미사일 시스템에 탑재했을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우리가 북한을 다시 돌아보고 ‘어, 이게 뭐야’라고 말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에 앞서 “우리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확실하게 원한다”며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극도로 위험하고 현재로서 북한이 언제 종국적인 상태(end state)를 맞을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의) 특별한 안보 이슈는 내 마음에 최우선 순위로 남아 있다”며 핵탄두의 이동식 미사일 탑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24일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에 미 보병 1사단 사령부 병력의 이동 배치를 승인했다. 미국이 2011년 이라크에서 철군한 이후 사단 사령부를 파견하는 것은 처음이다. 사령부는 이미 파견된 1600여 명 규모 병력의 지휘 조정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IS 격퇴 작전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향후 지상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배치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25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헤이글 장관이 어제 캔자스 주 포트 라일리의 1사단 사령부 병력 500명을 이라크에 배치하는 방안을 승인했다”며 “이들은 10월 말 중동지역을 관할하는 중부사령부 산하로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커비 대변인은 “500명 가운데 216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0일 대국민 연설 때 추가로 파견하겠다고 밝힌 475명의 일부”라며 “216명 중 138명은 바그다드의 합동작전본부, 68명은 북부 아르빌의 합동작전본부, 10명은 이라크 국방부에서 각각 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이날 워싱턴 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국인 기자 2명 등을 참수한 IS 조직원의 신원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조직원의 이름이나 국적 등은 공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때론 국가도 잘못을 저지릅니다. 미국도 건국 얼마 동안 노예제도를 운영했죠. 국가든 개인이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샤론 불로바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의장(사진)은 22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위안부 문제도 비슷하다. 여성들이 의지에 반해 성적 노예 행위를 강요당했다”며 단호한 태도를 나타냈다.그는 “나의 조상은 독일인과 아일랜드인”이라며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를 인정하고, 기억하는 행사를 갖는 것은 전 세계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고 늘 깨어있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기림비 등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기억하고 재발을 막는 일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불로바 의장은 워싱턴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한인 단체들이 5월 30일 카운티 청사 내에 위안부 기림비와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수도권에 첫 위안부 기림비가 제막된 지 4개월을 맞아 이뤄진 이번 인터뷰에서 불로바 의장은 “페어팩스 카운티의 한국 교민사회는 매우 활동적”이라며 “한인들이 기림비를 만들어 역사를 기리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덧붙였다. 제막식 전 워싱턴의 일본대사관 직원이 찾아와 “위안부 기림비가 일본 국민에게 얼마나 논란거리인 줄 아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정작 제막식 이후에는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는 소식도 전했다. 불로바 의장이 아시아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작고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일본 오키나와(沖繩)와 이오(硫黃) 섬, 사이판 등에서 일본군과 싸웠던 아버지는 ‘모두에게 불행했던’ 전쟁의 경험을 자주 들려줬다. 2012년 조지메이슨대에서 열린 위안부 관련 세미나 자료를 구해 본 뒤 위안부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잘라 말했다. 불로바 의장은 최근 페어팩스 카운티 한인 센터를 만드는 일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집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에밀레종 모형은 그가 얼마나 한국 및 미주 한인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미국과 아랍 동맹국들이 24일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주요 자금줄의 하나인 시리아 동부의 정유시설들을 집중 타격했다. 22일 시리아 공습이 시작된 이후 IS의 군사 거점을 공격해 온 미국이 이제 IS를 고사시키기 위해 돈줄 차단에 나선 것이다. 미 국방부는 이날 미군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시리아 동부 마야딘, 하사카, 아부카말 등의 정유시설 12곳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CNN은 이번 공습의 목표물은 분해와 조립이 가능한 이동식 정유시설들이었다고 전했다. IS는 이동식 정유시설들을 이용해 하루 300∼500배럴의 석유를 정제해 암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또 이를 통해 매일 200만 달러(약 20억8000만 원)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전열도 갈수록 정비되고 있다. 미 육군은 이라크에 파견된 1600여 명 규모 병력의 지원과 조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단 본부를 파견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군사전문지 디펜스뉴스는 미국이 2011년 이라크에서 철군한 이후 사단 본부를 파견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공습에 참여한 아랍 국가들에 이어 유럽 국가들도 속속 동참을 약속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이날 각의 결정을 통해 이라크 전선에 F-16 전투기 6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예비 전투기 2대와 조종사 등 병력 250명, 이라크군 훈련요원 130명도 보낸다. 벨기에 정부도 이날 전투기 6대 파견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고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라크 공습 참여 승인을 얻기 위해 26일 의회를 소집하겠다”며 공습 참여 의지를 내비쳤다. 한편 유엔은 이날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외국인이 시리아와 이라크 등의 테러단체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 국무부도 시리아에서 활동 중인 IS 연계 단체 2곳과 개인 10명을 ‘특별지정 국제테러리스트(SDGT)’로 지정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4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 공습에 대해 “죽음의 네트워크를 해체하는 연합세력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결국에는 폭력적 이슬람 극단주의를 뿌리 뽑겠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IS 합류자들은 전장에서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고 경고했다. 앞서 22일 전격 이뤄진 IS 공격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오랜만에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도 벗었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꿔놓았다. 미 국방부는 24일에도 시리아 동부의 이라크 접경지역과 이라크의 바그다드, 아르빌 등을 5차례 공습했다고 밝혔다. 시리아 동부는 IS가 이라크에서 노획한 무기를 들여가는 요충지다. BBC는 이날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도시인 아인알아랍 인근에서도 추가 공습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넘어야 할 산은 한두 개가 아니다. 영국 등 맹방들이 시리아 공습을 주저하고 러시아는 공개 비난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균열 드러낸 강대국 국제정치 시리아 공습 직후 유엔총회로 향한 오바마 대통령은 각국 대표단을 향해 ‘국제공조’를 외쳤다. 지구촌 분쟁을 동맹국 및 협력국과의 공조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원칙은 올해 5월 오바마 대통령이 밝힌 ‘제한적 개입주의’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습에 중동 5개 국가가 참여한 것은 외교적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미국의 군사 개입에 반대했던 아랍 국가들은 대체로 공습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중동 맹주인 이집트마저 IS 격퇴 작전에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다만 전통 우방국인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아직도 공습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공습이 시리아 정부의 승인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이뤄졌다”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중국이 공습 지지 태도를 밝힌 것은 미국의 위안이 되고 있다.○ 중동 내 ‘적과의 동침’ 딜레마 공습에 참여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바레인 카타르 등 수니파 5개국은 ‘적의 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IS의 약화 또는 붕괴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회생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이란-시리아-헤즈볼라(레바논 무장정파)로 이어지는 중동의 시아파 세력 연대가 더욱 강력해지는 것을 뜻한다. 아직 핵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지 않은 시아파의 맹주 이란과 공조해야 한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이란은 IS 퇴치를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지상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로 꼽힌다. 미국은 ‘핵 문제와 IS 공조는 별개’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이란은 미국이 핵 협상에서 융통성을 보여준다면 IS 격퇴 전략에 협력할 수 있다고 손을 내민다. 한편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24일 미국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IS 격퇴 방안을 논의했다. 양국 간 정상회담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35년 만에 처음이다.○ 돌고 돌아 ‘전쟁 대통령 오바마?’ 오바마 대통령은 의도와 무관하게 ‘전쟁을 수행한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IS 격퇴가 장기전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 상황에 따라선 2017년 1월 퇴임 때까지 IS와 전쟁을 치를 수도 있다. 이는 2008년 대선 레이스에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비난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정체성과 충돌한다. 그는 시리아 공습 다음 날인 23일 기자로부터 ‘이번 공습으로 전쟁 대통령(war president)으로 인식되게 생겼는데 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자 “고맙다”라고만 답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하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