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구독 85

추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정해진 운명을 어떻게 살 것인가”… ‘운명에 만약은 없다’

    ‘운명에 만약은 없다’(쌤앤파커스)는 노상진 명리학자가 쓴 책이다. 저자는 사주 명리학은 사주팔자를 풀어서 명(命)의 이치, 하늘이 내린 목숨과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운명에 깃든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이라는 것. 저자는 “사주를 운(運)에 따라 생각이 바뀐다는 표현도 엄밀히 말하면 ‘운로(運路)가 바뀌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생각이 바뀐다고 느끼는 것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기운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16
    • 좋아요
    • 코멘트
  • 日 작가 이치카와 “이창동 영화 ‘오아시스’ 보고 영감”

    “왜 2023년에야 중증장애인이 (아쿠타가와상을) 최초로 수상하게 됐는지 모두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올 7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169회 아쿠타가와상 시상식. 수상자 이치카와 사오 씨(43)는 단상에 올라 이렇게 일갈했다. 그는 목에 기관절개 호스를 꽂고, 전동 휠체어를 탔다. 선천적으로 ‘근세관성 근병증’이 있어 얼굴은 한쪽으로 기울고, 허리는 굽었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덧붙였다. “이 소설은 처음으로 나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써낸 소설입니다.”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중편소설 ‘헌치백’(허블)은 일본에서 출간 후 30만 부가 팔리며 화제를 모았고, 지난달 31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그는 15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장애 예술가가 주목받는 건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다. 카메라 앞에서 도발적인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간은 이치카와 씨와 같은 질환이 있는 중증장애인 여성 샤카의 이야기다. 샤카는 좁은 방 안 침대에 누워서 태블릿PC로 인터넷에 야한 소설을 쓰며 산다. 샤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명으로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다”고 쓰며 욕망을 표출한다. 그리고 부모에게 받은 재산으로 돈을 주고 남성 간병인과 섹스를 하려다가 끝내 실패하고 좌절한다. 소설은 장애 여성의 삶과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 같은 소설 속 문장은 연민의 시선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당사자만 닿을 수 있을 법한 깊이를 보여준다. 작품이 주목받은 이유에 대해 이치카와 씨는 “제가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이라며 “문학은 항상 새로움을 원하니까”라고 쿨하게 답했다. 소설은 또 ‘R18’(성인 소설), ‘슈퍼달링’(여자들이 이상형으로 손꼽는 남자) 같은 일본 인터넷 문화와 은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문학적으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난 오랫동안(약 20년) 시대와 사회를 빠르게 반영하는 라이트노벨을 써 왔다. 순수 문학의 좁고 닫힌 세계에 시대의 분위기를 불어넣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창동 감독(69)의 영화 ‘오아시스’(2002년)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장애 여성의 성(性)과 삶을 그린 이야기가 자신에게 창작의 원천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한센병, 뇌성마비 등 장애를 다룬 예술은 항상 존재했다. 하지만 장애 예술이 주류 예술계에서 인정받는 일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또 “중증장애인은 교육을 받고 독서하기 힘들다. 교육이나 독서를 돕는 환경이 없으면 중증장애인 예술가가 생겨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장애인이 읽기 어려운 종이책 중심이다. 전자책(e북)과 오디오북 보급이 많아진다면 장애인이 적극적으로 예술에 참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머를 담아 말했다. “친애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 저는 (장애 때문에) 집에서 나갈 수 없지만, 소설로나마 만나게 돼 영광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젠 겨울에서 봄으로… 밝은 소설을 쓰고 싶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데요. 이 상(메디시스 외국문학상)도 받을 거라 예측 못 했습니다. 하하.” 소설가 한강 씨(53)는 14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벨문학상에 가까워진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수줍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그는 2016년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2007년·창비)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9일(현지 시간)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문학동네)로 프랑스 메디시스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한 씨는 “작가가 글 쓰는 건 결과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상을 받는 순간보단 소설을 완성한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메디시스상은 공쿠르상, 르노도상, 페미나상과 함께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외국문학상은 1970년 제정된 이래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1929∼2023),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1932∼2016) 등이 받았다. 한 씨는 “식당에서 샴페인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일 정도로 자유로운 시상식이었다”며 “상패도, 선정 이유도 없는 시상식은 참가한 적도, 본 적도 없어 재밌었다”고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상처와 치유를 그린다. 한 씨는 “이 소설은 (폭력 등) 인간성의 밤 아래로 내려가서 촛불을 밝힌다”며 “끝까지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했다. 프랑스 문단이 한국의 역사적 상흔을 다룬 작품을 인정한 까닭을 묻자 그는 “언어, 문화가 다르지만 인간의 폭력, 제노사이드의 경험은 인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며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어판 제목 ‘불가능한 작별’에 대해 묻자 그는 “절묘하게 (작별하는) 주어를 특정하지 않고 의미를 살려서 참 좋았다. 불가능한 작별을 하는 대신에 끝끝내 작별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결의로 읽어 달라”고 했다. 한 씨는 다음 계획에 관해 “원하지 않았으나 받았고, 결국엔 반납해야 하는 ‘생명’에 대해 쓰고 싶다”며 “밝은 소설을 쓰고 싶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살면서 마주하는 극단적 시련, 그 끝에 자신이 있지 않을까요”

    “틸러와 퐁은 열정적으로, 때로는 무모하게 세계에 뛰어들어 삶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찾습니다. 이들은 매 순간 새로운 영역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마치 탐험가처럼요.” 지난달 31일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타국에서의 일 년’(알에이치코리아·사진)의 이창래 작가(58)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소설은 한국계 미국인인 이 작가의 6번째 장편으로 한국계 미국인 청년 틸러와 중국인 사업가 퐁이 중국 선전, 마카오, 홍콩 등 여러 나라를 표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가는 이번 신작을 쓴 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 이들을 그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우리가 살면서 결코 알지 못했던 어렵고 극단적인 시련을 마주하면 어떨까요.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작가는 1995년 미국 사회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는 한국인 2세 이민자 이야기를 그린 데뷔작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으로 펜·헤밍웨이상을 수상하는 등 영미문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꾸준히 거론된다. 가해자인 일본인 군의관의 시점에서 ‘위안부’의 실태를 다룬 ‘척하는 삶’ 등 한국 근현대사에 휩쓸린 이들의 삶을 주로 그렸다. 반면 이번 신작은 한국인의 피가 8분의 1 섞여 있지만, 외모로는 혈통을 알아보기 힘든 청년 틸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는 “(피가 섞였지만) 평생을 백인으로 살아온 청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며 “청년이 어떻게 아시아인 멘토(퐁)와 친구가 되는지, 세상을 접하면서 어떤 것을 알아차리게 될지, 어떻게 자아가 변할지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틸러가 미숙한 청년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미국 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일하며 젊은 학생들과 만난 경험이 반영됐느냐고 묻자 그는 “소설에서나마 학생들이 세상에서 마주할 투쟁을 그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전 늘 나이를 먹지만 학생들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항상 희망, 걱정,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어요. 학생들과 대화하는 일은 항상 저를 젊게 하고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과 사건들을 다시 마주할지라도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나요?” 감각적인 문장으로 정평이 난 그는 신작에서도 인간의 감각에 천착한 문장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소설에서 틸러는 자신이 지나쳐 온 여러 도시를 떠올리며 “대학교의 오래된 참나무 책상 서랍을 열면 피어오르는, 먼지 낀 곰팡이 냄새”, “은하수처럼 펼쳐진 탁 트인 푸른 바다라는 필터를 수 킬로미터나 거친 산들바람”을 떠올린다. 이 작가는 “나는 항상 신체와 감각에 대해 글을 쓰는 데 관심이 많았다”며 “이번 소설 역시 우리가 직면한 삶의 질감과 경험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담으려 했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이산문학(디아스포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에서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 ‘파친코’ 등 한국 이산문학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묻자 “세상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상은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젊음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 그는 “거의 완성했는데, 자전적이면서도 허구적인 작품”이라며 “아마 내년에 출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머스크의 친구 아닌 적과도 많은 시간 보내”

    “일론 머스크와 그의 가족, 친구뿐 아니라 ‘적’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올 9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다룬 평전 ‘일론 머스크’(21세기북스)를 펴낸 미국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71·사진)은 12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머스크를 기술 발전에 앞장서는 선구자로 묘사하면서도 그에 대해 “괴팍하다”며 광인적 면모를 가감 없이 서술할 수 있었던 건 균형 있는 취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는 “난 그들(취재원)의 말을 듣기만 했다. 물론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해) 책을 펴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아이작슨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 편집장, CNN방송 CEO로 일했다. 신간은 그가 2년 넘게 머스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주변 사람들 130여 명을 밀착 인터뷰해 썼다. 집필 계기를 묻자 그는 “평소 우주탐사, 지속가능 에너지, 인공지능(AI)에 관심이 많았다”며 “머스크를 알고 친구의 소개로 머스크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 전기가 출간됐을 땐 내용의 객관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간에서 오류가 발견되면서 의구심이 사라졌다. 아이작슨은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에 주둔한 러시아군에 드론(무인항공기) 공격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머스크가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를 일시 차단했다고 썼다. 머스크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스타링크를 무상 제공했지만 드론 공격이 러시아의 핵 반격을 불러 핵전쟁으로 번질까 두려워했다는 것. 하지만 머스크가 크림반도엔 원래 스타링크가 연결되지 않았다고 해명하면서 오히려 신간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아이작슨은 “책이 정말 공정하고 직설적이며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머스크의 내막을 썼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고 했다. 아이작슨은 독일 출신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전기를 쓴 세계적인 전기 작가로 유명하다. 잡스는 그에 대해 “털어놓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했다. 또 신간을 통해 머스크가 세운 뇌 이식 칩 개발 기업인 뉴럴링크 임원 시본 질리스의 아이들이 머스크의 ‘사랑 없는’ 정자 기증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나면서 화제가 됐다. 내밀한 속내를 털어놓게 만드는 비결에 대해 그는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능한 한 침묵을 지키고, 가능한 한 주의 깊게 들으려고 할 뿐”이라고 했다. 이 책을 바탕으로 한 머스크 전기 영화도 제작된다. 로이터통신은 미 영화사 A24가 신간의 영화 판권을 샀다고 1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연출은 영화 ‘블랙스완’(2011년), ‘마더!’(2017년)로 유명한 미 영화감독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맡는다. 아이작슨은 다음 계획에 대해 “(미국 툴레인대 역사학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고령화 한국… 병력 차이가 안보위기 불러올 수 있어”

    최근 벌어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아랍인의 결집을 노린 하마스의 노림수라는 의견부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대응이 불러온 참사라는 지적까지. 혹시 이스라엘의 인구 구조 변화가 이번 사태 원인 중 하나가 된 건 아닐까. 2000년 이스라엘의 유대인 합계출산율은 2.66명이었다. 같은 시기 아랍인 합계출산율은 4.74명이었다. 아랍인이 유대인보다 아이를 1.8배 더 낳은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엔 인구 구조 변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의 해법이 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 투표권을 지닌 아랍인의 목소리가 커지고, 아랍인으로 구성된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20년 후 상황은 바뀌었다. 2020년 이스라엘 내 유대인 합계출산율은 3명으로 늘었다. 반면 아랍인 합계출산율은 2.99명으로 줄었다. 최근엔 유대인이 아랍인보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다. 특히 초정통파 유대인이 아이를 많이 낳았다. 이들이 아랍인의 인구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 출산 장려 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초정통파 유대인의 이스라엘 이주도 장려됐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스라엘이 보수화됐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 대응이 잦아졌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19년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했던 초정통파 유대인은 2065년엔 32%로 늘어난다. 이스라엘에서 초정통파는 병역 의무가 면제되고, 국가로부터 특별보조금을 받는다. 저자는 “초정통파 유대인의 수가 증가하면서 이스라엘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로즈 칼리지 정치학 교수이자 인구통계학자인 저자는 각 국가가 겪는 여러 문제를 인구통계학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의 기반이 사람이기 때문에 인구 구조를 모르고선 사회를 분석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최근 세계 인구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1700년 세계 인구는 10억 명에 불과했지만 1900년엔 20억 명, 2022년엔 80억 명을 넘어섰다. 80억 명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태어난 1080억 명의 약 7%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인구 폭발 상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상황이 다르다. 선진국에선 1분에 25명, 개발도상국에선 240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인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이다. 반면 독일은 고령화로 군에 입대할 젊은이가 줄어들자 최근 일부 미성년자와 유럽연합(EU) 출신 이민자를 군인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고령화로 경제 저성장뿐 아니라 안보 위협에도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 대한 분석도 눈길이 간다. 저자는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인 상황을 “놀라울 정도로 낮다”고 지적한다. 저출생의 원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남녀 간 임금 격차가 가장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2062년이면 중위 연령이 62세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저자는 한국이 안보 문제를 겪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2022년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1.9명으로 한국보다 2배 이상으로 높아 병력 차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물론 국방력엔 장비 첨단화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절대적 병력 감소와 경제 저성장은 안보에서 무시할 수 없다는 것. “(한국의) 고령화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에 맞서는 국가의 대응태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저자의 경고가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佛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53)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9일(현지 시간) 수상했다. 메디치상은 공쿠르상, 르노도상, 페미나상과 함께 프랑스의 4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상처와 치유를 그린 작품이다. 한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2019년 제33회 인촌상(언론·문화 부문)을 받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53·사진)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9일(현시 시간) 수상했다. 메디치상은 공쿠르상, 르노도상, 페미나상과 함께 프랑스의 4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상처와 치유를 그린 작품이다. 한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2019년 제33회 인촌상(언론·문화 부문)을 받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09
    • 좋아요
    • 코멘트
  • 세입자… 달동네… “집에 대한 한국사회 고민 담아”

    “8편의 단편소설을 총 3곳의 집에서 썼어요. 재개발, 계약 기간 만료로 집을 옮겨 다니며 쓰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세 번째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사진)을 1일 펴낸 김혜진 소설가(40)는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2019∼2022년 이사 다니며 작품들을 쓴 만큼 집과 관련된 애환과 고민이 실렸다는 것이다. 그는 “주거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함께 가지고 있는 집은 우리 사회에서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근래 집값 상승으로 집에 대한 논의가 많다”며 “집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여러 고민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젊은작가상, 김유정문학상을 받은 그는 신간에서 집과 관련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단편 ‘산무동 320-1번지’는 세입자에게 월세를 내라고 집주인 대신 독촉하는 관리인을 그린다. ‘20세기 아이’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재개발을 앞둔 쇠락한 동네의 현실을 바라본다. ‘이남터미널’은 빌라 투자를 위해 달동네를 돌아다니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집을 소유하려는 욕망에 대해 묻는다. 집을 소유한 이도 굴레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목화맨션’은 집주인 만옥과 세입자 순미의 이야기지만 둘을 갑을관계로 그리지 않는다. 남편이 아프고 빚에 허덕인다며 순미에게 세를 빼지 말라고 통곡하는 만옥의 속사정을 전할 뿐이다. “개발이고 뭐고 이제는 진짜 신물이 나요. 평생 그 말 쫓아다니다가 나도 우리 아저씨도 다 굶어 죽게 생겼어.”(만옥)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들의 독서 모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애’, 집 청소하는 노동자의 애환을 전한 ‘축복을 비는 마음’에선 집과 동네에 얽힌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지금보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갈지를 고민하는 마음을 다룬 ‘자전거와 세계’, 지친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사랑하는 미래’처럼 집을 간접적으로만 다룬 작품도 있다. 신작 표지는 다세대 빌라가 늘어선 달동네 하늘에 폭죽이 터지는 그림이다. 김 소설가는 “절망보단 집이 더 나은 공간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팔만대장경처럼 활판 인쇄… 중편 선집 600만쪽 찍어냈죠”

    “몸을 갈아 넣지 않으면 못 할 일이에요. 매일 10시간씩 6개월에 걸쳐 총 600만 쪽 이상을 찍어냈죠.” 6일 경기 파주시 출판도시활판공방. 인쇄공 김평진 장인(74)이 제작된 지 100년이 넘은 활판인쇄기에 활판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간 활판 위 글자에 잉크가 묻었다. ‘칙칙’ 하는 소리와 함께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자가 인쇄됐다. 김 장인은 결과물을 내밀며 웃었다. “뭐가 다른지 한번 느껴보세요.” 인쇄된 종이는 검은 글자의 농도가 진해 눈에 잘 들어왔다. 표면을 만져보니 글자마다 오톨도톨한 요철(凹凸)의 질감이 느껴졌다. 감회가 새로워 인쇄된 미국 작가 잭 런던(1876∼1916)의 중편소설 ‘야성의 부름’의 한 구절을 음미하며 읽었다. “두꺼운 목으로 늑대 무리의 노래이자 이전 세상의 노래인 야성의 부름을 울부짖는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지난달 31일부터 판매하고 있는 중편소설 33편을 모은 선집 ‘노벨라33’(전 33권·다빈치) 중 한 권이다. 노벨라는 중편소설을 뜻한다. 요즘엔 활판을 종이에 대지 않고 간접인쇄하는 ‘오프셋’ 방식을 주로 쓴다. 이에 비해 이 선집은 입체 활판을 종이에 대고 직접 눌러 깊숙이 찍어내는 고전 방식인 ‘활판인쇄’ 방식을 사용했다. 오프셋 방식이 유행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활판인쇄 방식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전자책과 웹소설이 인기를 끄는 요즘 종이책의 본류를 찾아간 기획을 내놓은 건 박성식 다빈치 대표(58)다. 박 대표는 쇠락해가는 문학 장르(중편소설)와 인쇄 기술(활판인쇄)을 되살리고 싶어 약 10년 전부터 선집을 기획했고, 2년 전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박 대표는 “팔만대장경판으로 책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며 “더 빠르게, 더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만드는 것이 발전인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먼저 기계로 글자를 활판에 새겨야 했다. 파주활판공방에 남아 있는 100년 이상 된 활판인쇄기 두 대는 고장이 잦았다. 김 장인과 권용국 장인(89)의 나이가 적지 않은 점도 근심거리였다. 알라딘에서 제작비 5억 원을 투자했고, 박 대표가 사비 5000만 원을 더 썼다. 내용도 신경 썼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의 ‘동물농장’,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이방인’처럼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작품뿐 아니라 미국 페미니스트 작가 케이트 쇼펜(1850∼1904)의 ‘각성’, 미국 호러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인스머스의 그림자’ 등 다양한 작품을 담았다.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의 ‘공놀이하는 고양이 상점’처럼 국내 초역한 작품도 있다. 이 선집은 7일까지 132세트가 팔렸다. 구매자의 85.2%가 40대 이상이다.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종이에 꾹꾹 눌러 담긴 문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가 77만 원에 이르는 선집에 왜 지갑을 연 걸까. 박한수 파주활판공방 대표(57)는 “활판인쇄로 찍어낸 책엔 ‘아날로그의 맛’이 살아 있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가 있어도 LP판을 찾듯 마니아 독자들은 소장하고 싶은 책을 찾는다. 오프셋으로 찍은 글자는 쉽게 뭉개지고 날아가지만, 활판인쇄로 종이에 글자를 꾹꾹 눌러 새긴 책은 500년 이상 가서 소장가치가 높다”고 했다. 판매가 끝나면 제작에 쓴 활판은 모두 해체해 구매자에게 사은품으로 증정할 예정이다. 인쇄된 1000세트는 다시는 출간되지 않는 한정판으로 남게 되는 셈이다. 비슷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작자들은 ‘고난의 행군’을 다시 할까. 박 대표는 “다 쏟아부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출판계에서 은퇴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 장인은 “누구라도 불러준다면 다시 인쇄기를 돌릴 것”이라고 했다.파주=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중동의 1999년생… “K그림책도 좋아요”[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한국어요? 유튜브에서 K팝 음악을 듣고,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배웠어요.” 1일(현지 시간) 제42회 ‘샤르자 국제도서전’이 열린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 엑스포센터. 1999년생 샤르자 출신 여성 프리랜서 통역가인 웨즈 단 씨는 검은색 히잡을 매만지며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했고 정규 교육 과정에서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다. 한국 대중문화와 UAE에 있는 한국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한국어를 익혔다”고 했다. 그가 도서전에 온 건 이날 저녁 도서전에서 열린 김상근 그림책 작가의 강연을 통역하기 위해서다. 그는 “사실 UAE에 한국 책이 많이 번역되진 않아서 그림책은 처음 읽어봤다. 그림책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소재와 주제의식을 담고 있어서 UAE 독자들도 재밌어할 것 같다”며 김 작가의 ‘두더지의 고민’을 가리켰다. ‘두더지의 고민’은 친구가 없어 고민인 귀여운 두더지가 주인공인 그림책이다. 어느 날 홀로 놀던 두더지는 눈덩이를 굴린다. 눈덩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눈덩이 속에서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린다. 눈덩이 속에 다른 동물들이 파묻힌 것이다. 두더지는 눈덩이에 갇힌 동물들을 구해주고 친구가 된다. 두더지는 “친구들과 뭐하며 놀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한국에서 ‘두더지의 고민’의 권장 연령은 4∼7세다. 실제로 한국에선 아이들이 많이 읽는다.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높아지는 요즘, 한국어를 배우려는 해외 성인 독자에겐 그림책이 학습용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그림책은 내용이 간단명료하고,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글의 양이 적어 처음 한국 책을 접하는 ‘입문자’에게도 어렵지 않은 셈이다. 1일부터 열린 샤르자 국제도서전에선 경혜원, 김상근, 박현민, 최혜진 작가가 참가하는 그림책 북토크가 진행됐다. 그림책 작가들과 아이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는 행사도 마련돼 성황을 이뤘다. 샤르자 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출판사 잉글리시에그의 송민우 대표(대한출판문화협회 저작권 담당 이사)는 “해외에서 ‘한국 콘텐츠는 무조건 소개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을 보니 영어 교육책을 한국어로 번역해 해외에 낼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통역가는 기자에게 “가수 유재하를 좋아한다. 요즘엔 밴드 잔나비, 싱어송라이터 심규선 노래도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가 말한 음악가는 모두 한 줄 한 줄 곱씹을 만한 의미가 담긴 가사를 쓰고 부르는 이들이다. 해외의 젊은 세대가 처음 한국에 빠지는 계기는 주로 K팝이지만 점차 그들은 인디밴드의 노래 등 ‘조금 다른’ 음악을 찾아 들으며 한국어를 음미한다. 이들이 한국 그림책을 읽으며 사전에서 한국어를 찾아보고, 한국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 이상(1910∼1937)의 시와 박경리(1926∼2008)의 소설을 밤새워 읽는 날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그림책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부르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 시집-소설 집어든 샤르자 국왕… “중동에 한국 작품 많이 번역해 주길”

    “국왕이 오신다!” 1일(현지 시간) 제42회 ‘샤르자 국제도서전’이 열린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 엑스포센터.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 까시미 샤르자 국왕이 도서전 주빈국인 한국관을 찾자 장내가 술렁였다. 샤르자를 ‘책의 도시’로 만들고 있는 까시미 국왕의 방문에 중동 출판인들의 이목이 쏠린 것이다. 까시미 국왕은 정호승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년·창비),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2017년·문학동네)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본 뒤 “한국 책을 중동에 많이 번역해 출판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왕이 자리를 뜨자 UAE, 이집트, 레바논 등 중동 국가에서 온 출판인 수십 명이 몰려들어 한국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샤르자는 UAE를 이루는 7개의 연합 토후국 중 하나다. 샤르자 인구는 약 140만 명으로, 아부다비(290만 명), 두바이(270만 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샤르자는 도서청이라는 정부 관청을 별도로 둘 정도로 도서 산업에 관심이 많다. 샤르자에 ‘출판도시 자유구역’을 만들어 외국인이 출판사를 차려 책을 펴낼 경우 세금을 모두 면제해준다. 1982년부터 시작된 샤르자 국제도서전은 중동 최대 도서전으로 불린다. 샤르자 국제도서전 입장은 무료다. 12일까지 열리는 올해 샤르자 국제도서전엔 109개국에서 2000여 개 출판사가 참여했다. 한국은 올해 처음으로 샤르자 국제도서전 주빈국으로 참여했다. 샤르자가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대한 건 드라마, 음악 등 한국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관심이 책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흐메드 알 아메리 샤르자 도서청장은 1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한국 책은 한국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매개체”라며 “출판도시 자유구역에선 인도 태생의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의 책도 자유롭게 펴낼 수 있다”고 했다. 루슈디는 소설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를 부정적으로 그려 1988∼1998년 이란의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에게 파트와(사형선고)를 받은 바 있다. 189㎡ 규모로 설치된 한국관의 주제는 ‘무한한 상상력’이다. 전쟁, 빈곤 등 현재 인류가 마주한 위기를 책에 담긴 상상력으로 극복하자는 취지다. 한국관에는 한국 책 79종이 전시됐다. 김혜순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2022년·문학과지성사) 등 순문학 작품을 비롯해 배명훈 공상과학(SF) 소설집 ‘타워’(2020년·문학과지성사) 같은 장르문학도 다수 소개됐다. 정호승 시인, 김애란 소설가, 황선미 동화작가 등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뿐 아니라 정무늬 등 웹소설 작가도 중동 독자를 만났다. 한국관엔 김언수 장편소설 ‘설계자들’(2010년·문학동네)처럼 아랍어로 출간된 작품도 전시됐다. 김 작가는 “2021년 이집트에서 ‘설계자들’이 아랍어로 출간됐다. UAE, 레바논 등에서도 아랍어를 함께 쓰는 만큼 모두 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라고 했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번역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중동 출판 시장은 거대한 블루 오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샤르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6년간 도서관 375곳 만든 ‘책 할아버지’… “행복은 책에 있죠”

    “1984년 12월 19일이었어요. 둘째 아들 나이는 만 6세 80일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구 정다운도서관에서 29일 만난 김수연 목사(77·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39년 전 사고 날짜를 정확히 기억했다. 당시 그의 집이 있던 아파트에 불이 났다. 집에 홀로 있던 둘째 아들은 베란다로 뛰어가 에어매트가 깔린 밖으로 몸을 던졌지만 크게 다쳤다. 방송기자로 김포공항에서 취재하던 그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렸다. 하지만 아들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사고 며칠 전 그의 옆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 모습이 떠올랐다. “책은 얼마든지 사준다”고 했지만 아이와 도서관 한번 가보지 못했다. 직업 특성상 야근하기 일쑤였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후회스러웠다. 그는 기자를 그만두고 목사가 됐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종교에 삶을 의탁한 것. 김 목사는 이날 허공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살아있으면 40대가 됐겠지만, 내 가슴속에서 아들은 여전히 만 6세 80일에 머물러 있어요.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보면 둘째 아들이 생각납니다.” 그는 1987년부터 36년간 전국에 도서관을 짓고 다녔다. 그가 만든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도서관은 392개에 달한다. 그가 사재를 털거나 후원을 받아 세운 학교마을도서관이 262개, KB국민은행 후원으로 세운 작은도서관이 113개, 강남구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구립도서관이 17개다.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농어촌과 지역 축제 현장을 찾는 이동형 도서관인 ‘책 읽는 버스’도 운영한다. 이날 그를 만난 정다운도서관은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2004년부터 강남구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구립도서관이다. 그는 도서관을 채운 수십 명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속삭였다. “실의에 빠져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서관을 짓는 일이었어요. 세상을 떠난 둘째 아들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서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서관을 세워준다며 찾아갔지만 “책 안 산다”고 문을 걸어 잠그는 초등학교도 있었다. “도서관을 설립하지 말고 현금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한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도 성숙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독서운동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네 곳곳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야말로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라며 “국가 발전의 속도는 국민의 독서량에 비례한다”고 했다. “돈을 기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선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 생선(돈)을 주기보단 독서를 통해 낚시(인생을 사는 법)를 가르쳐 주고 싶었죠. 젊을 때는 ‘책 전도사’였는데 나이 들어 머리가 하얘지니 애들이 ‘책 할아버지’라고 부르더군요. 하하.” 그는 강남구 한길교회 담임목사다. 전국에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주중에 뛰어다니고, 주말이면 자택이 있는 강원 평창군에서 상경한다. 이날도 그는 예배를 끝내고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달려왔다. 동영상을 즐겨 보는 시대, 독서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책에 푹 빠진 아이들을 가리키며 자신 있게 답했다. “살다 보면 두렵고, 무서운 일과 마주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혜가 담긴 책에서 길을 찾아요. 고통이 가득한 인생을 산 뒤에야 이를 깨달았죠. 하지만 책을 읽는 이 아이들은 다를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서라벌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리극

    당나라에서 통일신라로 향하던 배에서 한 상인이 살해됐다. 갑판에 쓰러져 있는 시신의 목엔 졸린 흔적이 짙게 남아 있고, 몸 뒷면은 멍이 들어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올라타 목을 조르며 무릎이나 발로 누른 듯했다. 누가,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유학을 떠났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던 신라인 유학생 설자은은 추리를 시작했다. 시신에 진주 장신구가 걸쳐져 있는 걸 보니 범행 목적이 돈이 아닌 것 같았다. 상인은 배에 탈 때 두 여자를 데리고 탔는데 보이지 않았다. 여러 배가 함께 항해하고 있었던 만큼 범인이 살인을 벌인 배에서 다른 배로 옮겨 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조사 끝에 설자은은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낸다. 하지만 설자은은 곧 추리를 그만둔다. 사라진 두 여자가 과거 당나라에 끌려갔던 여성들이고, 상인은 이 여성들을 이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왜 범인을 밝히지 않냐고 묻자 설자은은 웃으며 답한다. “일단 가기나 갑시다, 금성(서라벌)으로.” 통일신라 서라벌을 배경으로 남장 여자 설자은이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오빠가 당나라 유학을 앞두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오빠로 행세하기로 결심한다. 오빠와 얼굴이 닮았고, 머리가 좋았다. 하지만 여성이어서 공부를 할 수 없어 기회를 만든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신라에 돌아온 설자은은 왕실에서 일하며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척척 해결한다. 동명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가 된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2015년·민음사)으로 유명한 작가가 3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소설이다. 남장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설정은 여성 삼대를 통해 여성주의 시각을 담은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2020년·문학동네)를 생각나게 한다. 논리적 사고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추리 소설의 전형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공상과학(SF),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문학을 썼던 작가가 추리물에 처음 도전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2편 ‘설자은, 불꽃을 쫓다’, 3편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를 펴낼 계획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계절마다 경주에 가 다음 이야기를 건져오고 싶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기억이 모인다면, 다시는 이런 참사 없을 것”

    “이 책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전의 일상, 참사 당일 상황, 참사 이후 앞으로의 발걸음을 떼기 힘들어하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2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인터뷰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창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이 대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이주영 씨의 아버지다. 참사 1년에 맞춰 책을 내는 건 생존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국민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참사에 대해서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며 “기억이 조금씩 모여 커진다면 다시는 대한민국에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고 더 이상의 유가족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간은 유해정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 등 13명으로 구성된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14명의 증언을 듣고 정리했다. 생존자들은 참사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제 위로 몇 명인지도 모를 사람들이 한꺼번에 쓰러졌어요. 사방이 살려 달라, 구해 달라는 절규였어요.”(생존자 이주현 씨 증언 중) 희생자에 대해 ‘왜 이태원에 놀러 갔냐’고 악플을 달았던 누리꾼과 소송까지 했던 유가족의 사연도 담겼다. “악플을 손수 모았어요. 피해 대상이 저였다면 사과도 받아들이고 합의도 고려했겠죠.”(희생자 김유나 씨의 언니 김유진 씨 증언 중) 참사 1년이 지난 지금도 남겨진 이들은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슬퍼하고 애도한 기억도 정리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희생자 김의현 씨의 누나 김혜인 씨는 “기억되지 않는 참사는 반복될 수 있다”며 “왜 사고 후 처리 과정이 불투명한지, 왜 책임자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유 활동가는 “집필은 슬픔의 연대를 통해 위로가 확장되는 과정이었다”며 “참사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위로하고 또 격려하고 싶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中 산둥대 학생들 한국문학 실력 탁월… 서울대 뺨칩니다”

    “중국 산둥대 한국어학과 학생들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학생들만큼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특히 한자에 능숙한 만큼 고전문학, 근대문학 연구에 뛰어나요.” 서울 종로구 문예지 ‘유심’ 사무실에서 24일 만난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75)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1983∼2012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산둥대 학생들의 실력이 서울대 학생들과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산둥대 학생들은 한국어로 한국문학에 대해 토론하고 발표한다”며 “영어, 일본어에도 능통해 4개 언어로 소통하며 문학적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하버드옌칭연구소 초빙교수, 도쿄대 한국조선문화연구소 초청교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겸임교수로 전 세계를 돌아다녀 ‘한국문학 전도사’로 불린다. 그가 중국으로 향한 건 1992년 한국어학과를 설립한 산둥대가 ‘국제 동아시아연구원’(가칭) 설립을 추진하면서다. 권 교수는 “2026년 국제 동아시아연구원 개설을 목표로 올 7월부터 산둥대에서 외국인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학, 언어, 문화에 대한 학술적 교류가 목표”라고 했다. “한국과 중국 연구자들은 보는 관점이 달라요. 예를 들면 시인 이상(1910∼1937)의 작품을 한국 연구자들은 폐병에 시달린 성장 과정이나 건축학도라는 점에서 해석하죠. 중국 연구자는 이상의 작품을 일제식민지라는 당대 역사와 결부 짓더군요.” 권 교수는 중국 학생들이 근대 한국과 중국의 사상 교류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박은식(1859∼1925), 신채호(1880∼1936) 등 독립운동가들이 근대 중국의 개혁을 주창했던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의 변법론을 조선에 소개한 과정을 연구하는 식이다. 권 교수는 평생 모은 근현대 문헌 1654점을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25일 기증한다. 정지용(1902∼1950) 시집 ‘백록담’ 초판본, 이광수(1892∼1950) 소설 ‘무정’ 5판본, 염상섭(1897∼1963) 소설 ‘만세전’ 초판본을 비롯한 희귀 자료가 다수 포함돼 있다. 북한 주간지 ‘문학신문’도 창간호부터 1960년 12월 27일까지 기증됐는데 이는 국내 유일의 자료다. 고문헌 400점도 포함돼 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고문헌이 기증된 건 1994년 이후 처음이다. 이를 모은 전시 ‘어느 국문학자의 보물찾기’는 25일부터 12월 15일까지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한 문헌을 왜 기증했을까. 속물적인 질문을 던지니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자식들은 문학에 관심이 없으니 물려줄 필요가 없잖아요. 평생을 서울대에 있었어요. 후배 연구자를 위해 자료를 받아준다니 제가 고맙고 영예로운 일이죠.” 1970년대 문학 평론을 시작한 그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1일에는 문예지 ‘유심’을 재창간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25일 열리는 기증식에 참여하는 그는 28일 다시 중국으로 떠난다. 한국문학의 미래를 묻자 그는 진중히 답했다. “한류를 방탄소년단(BTS)이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서만 찾지 마세요. 이미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외국 학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이 다음 한류를 이끌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본보 양충현-하승희 부장 한국편집상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김창환)는 제29회 한국편집상 수상작으로 본보 편집부 양충현 하승희 부장의 ‘표류, 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우수상) 등 8편을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대상은 조선일보 신상협 차장의 ‘카카오 ‘뚝’’이 차지했다. 시상식은 12월 8일 오후 7시 반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고전 따분? 학생들 현대문학만 좋아한다는건 편견”

    2021년 3월 박희병 서울대 명예교수(67)는 마지막 학부 강의를 열었다. 1996년부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그해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과목명은 ‘한국고전문학사’. 고조선 단군신화부터 김소월(1902∼1934)의 시까지 한국 고전문학의 시작부터 끝을 다루는 만만치 않은 수업이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수업은 화상으로 진행됐다. 이전 학기까지 약 30명이 듣던 이 수업은 박 교수의 ‘마지막 강의’라는 게 알려지면서 수강생이 61명으로 늘었다. 국문학과뿐만이 아니라 간호학과, 경영학과, 디자인학과, 기계공학부 등 전공도 다양했다. 청강생도 16명 참가했다. 매주 2회씩 75분간 예정된 수업은 번번이 시간을 넘겼다. 학생들은 토론과 질문을 쏟아냈다. 따분한 과목으로 여겨지는 고전문학 수업에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16일 출간된 ‘한국고전문학사 강의’(전 3권·돌베개·사진)는 그가 2021년 1학기에 진행한 32강의 수업을 묶었다. 신간에서는 향가, 고려속요, 시조 등 고전문학을 두루 다룬다. 학생들은 왜 고전문학에 매료된 걸까. 박 교수는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대학생들이 현대문학만 좋아한다는 건 편견”이라고 했다. “문학을 통해 인식의 눈을 키우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고전문학에 담긴 희로애락에 학생들은 특히 공감했습니다.” 그는 지식보단 인간에 방점을 두고 작품을 읽어 나간다. 학생들은 삶을 통찰한 옛 문장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조선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누나를 잃은 뒤 ‘큰누님 박씨 묘지명’에서 ‘외배 지금 가면 어느 때 돌아올꼬?/보내는자 쓸쓸히 강가에서 돌아가네’라고 통곡하는 모습엔 짙은 슬픔이 묻어난다. 고려 문호 이규보(1168∼1241)의 문장 ‘한 알 한 알을 어찌 가볍게 여기겠나/사람의 생사와 빈부가 달렸으니./나는 농부를 부처처럼 존경하네’(‘햅쌀의 노래’ 중)에선 당대 백성의 삶을 볼 수 있다. 박 교수는 “문학의 본령은 인간의 삶과 정신에 대한 탐구다. 작품에 깃든 마음의 궤적을 좇고 싶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물은 균등하다’는 조선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의 ‘담헌서’의 한 구절도 인상적이다”며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역관 시인 이언진(1740∼1766)의 ‘호동거실’ 중 “서산에 뉘엿뉘엿 해 넘어갈 때/나는 늘 이때면 울고 싶어요./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어서 저녁밥 먹자고 재촉하지만”이라며 외로움을 토로한 시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중인 출신 문인의 빼어남을 엿볼 수 있다. 여성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소설 ‘완월회맹연’을 통해 고전문학 속 여성의 영향도 연구한다. 그는 “조선시대,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려는 지적 요구는 중인과 여성에게도 있었다”고 했다. 요즘 그는 어떻게 지낼까. “문하생들과 함께 조선 문인 김시습(1435∼1493)의 작품을 읽고 있어요. 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이니 계속 해나갈 뿐이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70년간 써온 글 갈무리… 문학인생 돌아보게 돼”

    “가장 오래된 글부터 최근 글까지 시차가 약 70년이 되더군요. 천천히 읽으며 제 생애를 돌아봤습니다.”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고문(85)은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 산문, 수상 소감, 문학평론 등 평생 써 온 44편의 글을 모은 ‘기억의 양식들’(문학과지성사)을 9일 펴낸 건 자신의 삶을 곱씹어 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는 “내 삶의 기억을 ‘양식’(良識·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화함으로써 체험을 내면화하고 싶었다. 또 기억을 ‘양식’(樣式·일정한 모양이나 형식화)해 타인과 공유하려 했다”고 말했다. 신간에 담긴 가장 오래된 글은 그가 대전중학교에 다니던 1954년 쓴 시다. “눈엔 방울이 아롱져/바라보던 북쪽이 울적해지고/북극성/호올로/외로움이 흘러.”(시 ‘눈 오는 밤’ 중)라는 시구에선 그의 문학적 재능이 엿보인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던 1967년 발표한 평론 ‘문단의 세대연대론’에선 평론 실력을 선보인다. 당시 갈라져 있던 원로 작가와 신진 작가들이 다툴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한국 문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가 1975년 문학과지성사를 창립하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며 이청준(1939∼2008), 최인훈(1936∼2018) 등 당대 유명 작가를 거침없이 평론하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그가 “문화란 삶의 속살이자 사회의 품격”이라고 쓴 2016년 제30회 인촌상(언론·문화 부문) 수상 소감도 담겼다. 신간엔 그의 아내 정지영 씨가 1956년 발표한 소설 ‘여상의 빛’도 실려 있다. 그는 서두에 “일흔네 해 전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얼굴을 내게 보인 정지영”에게 책을 헌정한다고 썼다. 그는 인터뷰에서 “신간에서 가장 아끼는 글은 아내가 쓴 작품”이라고 말했다. 2만6000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불안과 우울의 극단에서 마주한 인간의 초상

    누구나 중요한 일을 앞두곤 불안에 사로잡힌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일을 하기에 자격이 없을 거라고, 일에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에 갇힐 때도 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끼곤 한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사진)가 1995년 발표한 ‘멜랑콜리아 I’은 누구나 느끼는 불안과 우울이란 감정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소설의 배경은 1853년 독일 뒤셀도르프다. 화가 지망생 라스는 멋진 보라색 양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다.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 교수가 곧 그를 제자로 받을지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아카데미에서 퇴짜를 맞을까 걱정하며 “내 그림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말을 듣기 싫다. 나는 오직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을 뿐이다”고 되뇐다. 그는 불안을 떨쳐 보내기 위해 자신이 짝사랑하는 헬레네를 생각한다. 헬레네는 그가 사는 하숙집 주인의 딸이다.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독이는 데 환상만 한 게 있을까. 그는 “두 팔로 헬레네를 감싸 안았고, 가슴은 자신도 모를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상은 망상으로 커진다. 그는 헬레네의 삼촌에게 자신과 헬레네가 연인 사이라고, 삼촌이 헬레네를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숙집에서 쫓겨나고, 망상에 가득 찼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멜랑콜리아 I’은 실존 인물인 노르웨이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1830∼1902)의 생애 중 이틀을 소재로 했다. 죽은 뒤에야 세상의 주목을 받은 라스의 실제 인생에 소설적 상상력을 버무렸다. 라스가 정신착란에 빠진 건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셈이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지닌 이 불안을 포세는 문학으로 극대화했다. 포세가 1996년 발표한 ‘멜랑콜리아 II’는 라스의 누이이자 허구의 인물인 올리네의 삶을 그린다. 1902년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 사는 올리네는 치매를 앓고 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허둥거리고 기억을 잊을 때마다 좌절한다. 파편처럼 부서지는 올리네의 머릿속에선 이미 세상을 떠난 라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소녀 시절 라스와 행복하게 뛰놀던 기억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두 작품을 묶은 ‘멜랑콜리아 I-II’엔 포세의 문학적 특성이 짙게 묻어난다. 포세는 같은 문장을 반복하면서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고,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조금씩 드러낸다. 주인공들이 혼잣말로 내뱉는 문장은 연극 배우의 대사처럼 시적이다.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재림이자 아일랜드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환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희곡과 산문의 경계를 부순 포세 답다. 책은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오가는 서술 방식 때문에 쉽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다만 현학적인 문장은 적고, 서사를 파악하긴 쉽다. 우울증(Melancholia)에 시달리는 현대인이라면 주인공들이 겪는 혼란도 와닿을 것이다. 작가는 노르웨이 표준어 중 인구의 10∼15% 정도가 쓰는 뉘노르스크어로 작품을 쓴다. 이 언어는 자체적인 리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화수 번역가는 “작품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특유의 아름다운 리듬감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0-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