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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중구의 뮤지컬 펍 ‘쇼플릭스’. 오후 8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웃고 떠들던 손님들이 일제히 식당 앞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검정 유니폼과 앞치마를 입은 배우 6명이 안개 효과 사이로 등장했다. 방금까지 와인과 감바스를 서빙하던 직원들이 뮤지컬 ‘록키호러쇼’의 캐릭터들로 변신한 것. 이들은 화려한 색감으로 변하는 조명 아래서 이 작품의 킬링 넘버 ‘타임 워프’를 노래하고 춤췄다. 10여 분간 이어진 공연이 끝나고, 손님들은 수저와 스마트폰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손뼉 치며 환호했다. 손님 채모 씨(27)는 “밥을 먹으며 공연을 관람하는 건 일반 공연장에서는 상상 못 할 특별한 경험”이라며 “일상에 치여 극장에 가지 못했던 아쉬움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이 뮤지컬 펍은 오래전 쌀 창고로 사용되던 층고 높은 건물을 170석 규모 식당 겸 공연장으로 개조한 것이다. 공연장용 음향·조명 설비를 갖추고 배우 18명을 섭외했다. 사장 곽현걸 씨는 “뮤지컬 팬이 늘어났지만 값비싼 티켓, 경직된 관람 문화로 인해 공연을 쉽게 즐기긴 어려워졌다”며 “관객에겐 편안한 공연을, 신인 배우들에겐 무대 경험을 제공하고자 뮤지컬 펍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펍이 ‘낮은 장벽’을 앞세워 젊은층 호응을 사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캐스팅’은 입장료 1만5000원에 매일 다른 공연을 제공한다. 1만 원대 음료를 주문하면 배우가 직접 서빙한다. 직장인 권지은 씨(28)는 “뮤지컬을 보려면 티켓 값 10만 원은 기본, 저녁밥도 거르고 공연장에 뛰어가야 한다”며 “뮤지컬 펍은 그보다 저렴한 가격에 객석 ‘1열’ 자리에서 공연을 보고 밥까지 먹을 수 있으니 가성비가 좋다”고 했다. 여기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경험소비 트렌드와 국내 뮤지컬 시장 성장세도 영향을 미쳤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459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부산 수영구 ‘시카고’에서는 새빨간 롱부츠를 신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킹키부츠’ 등 광안대교 야경을 바라보며 뮤지컬 갈라쇼를 감상할 수 있다. ‘시카고’ 사장 김민지 씨는 “1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젊은 손님들의 호응이 좋다. 대구, 남해 등 멀리서도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무대 경험이 소중한 신인 배우들에게는 성장의 발판이 된다. 강원 양양의 ‘양리단길호텔 Y라운지’ 무대에 서는 배우 김혁주 씨는 “올해 준비하던 공연 두 편이 무산돼 오디션을 찾아보던 중 뮤지컬 펍을 발견했다.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연기할 수 있어 더욱 즐겁고 배우는 점이 많다”고 했다. ‘캐스팅’ 사장 이재호 씨는 “오디션 문이 좁은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무명 배우들이 경험을 쌓고 즉석에서 캐스팅 제안도 받는 등용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오늘날 뮤지컬 산업은 단순 공연 관람을 넘어 관객이 교류, 소비하는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모한 대학로 대신 뮤지컬 펍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종합대백과사전으로 꼽히는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이 편찬 시작 약 42년 만에 완간됐다. 25일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은 올해 2월 가산불교대사림 제17∼20권을 출간해 발간 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 스님(1932∼2012)이 동국대 불교대학장 재직 시절인 1982년 편찬을 위한 기초 작업을 시작한 지 42년 만이다. 총 20권으로 제본된 가산불교대사림에는 표제어 11만9487항이 수록됐다. 크기는 4×6배판이며 권당 무게는 약 6kg에 달한다.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는 34만286장 분량이다. 가산불교대사림에는 불경의 삼장(경장·율장·논장)에 기반한 표제어의 다양한 용례가 담겼다. 근본 불교 용어는 물론이고 불교 전승지에서 변이·토착화하거나 새로 만들어진 술어도 망라한다. 한글로 표기하되 불교의 1차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와 한자를 병기한 것이 특징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 겨울방학을 뜨겁게 달군 채널A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이하 티처스)가 올여름 안방극장을 다시 찾는다. 강사 경력 20년, 누적 수강생 수 910만 명에 달하는 1타 수학 강사 정승제의 입에서 “이런 ‘노베이스(기초가 없는 학생)’는 처음”, “하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도전기가 펼쳐진다. 30일부터 돌아오는 ‘티처스’에는 총 16명의 도전 학생이 출연한다. 첫 성인 재수생부터 아버지를 살리고자 의대 입시에 도전한 학생까지 다양한 사례들이 눈길을 끈다. 19일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DDMC)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김승훈 채널A 책임프로듀서는 “아이와 부모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더욱 진정성 있게 다루고자 했다”며 “공부와 촬영을 병행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완주할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고 도전자들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여름방학을 맞아 국어, 과학탐구 등 티칭 과목을 늘렸다. 과목별 1타 강사들이 깜짝 출연해 냉철한 가르침을 준다. 김승훈 프로듀서는 “더 다양한 연령의 가족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초등학생 도전자의 이야기도 구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는 구독자 143만 명의 입시 콘텐츠 크리에이터 미미미누(본명 김민우)가 입시 전략 멘토로 활약한다. 고려대 법학과 출신의 ‘팩폭(팩트 폭행)’ 영어 강사 조정식과 동문으로, 5수 끝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풍부한 실전 경험을 토대로 ‘정보력 싸움’의 입시 전쟁에 대해 조언할 예정이라고 한다. 조정식은 “유튜브 콘텐츠에서 보여주는 미미미누의 활달한 이미지와 굉장히 다르다. 진정성 높은 멘토로서 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며 “촬영 전날엔 밤을 새워 정보를 수집한다”고 말했다. 단순한 입시 예능을 넘어 ‘금쪽이’ 가족들이 함께하는 성장 다큐 요소는 강화됐다. 내 아이만 뒤처질세라 ‘학원 만능주의’에 빠지기 쉬운 학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소통 창구를 터주는 것이 목표. 정승제는 “부모의 과도한 교육열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이 되고자 노력 중”이라며 “어려운 문제를 풀려면 고난도 학원에, 쉬운 문제를 풀려면 쉬운 학원에 보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연진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티처스’ 촬영을 통해 “스스로를 많이 돌아봤다”고 입을 모았다. MC 전현무는 “나보다 훨씬 어른 같은 학생들을 보며 많이 배웠다.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1등급’인 아이들”이라고 했다. 배우 한혜진은 “학창 시절 공부를 하지 않은 것에 미련이 있는데, 그때 두 ‘티처’를 만났다면 공부에 쾌감을 느끼고 그 길로 들어섰을지 모른다”며 “과거로 돌아가면 도전자들처럼 열정적으로 공부해 국어 선생님을 꿈꿨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방송인 장영란은 부모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영끌’해 목동으로 이사 갔을 만큼 열성 엄마였다. 공부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나와 달리 아이들은 잘 크길 바랐다”면서 “하지만 방송을 통해 그 또한 엄마의 욕심이었음을 반성했다. 아이들이 ‘방송 출연 후 엄마가 많이 달라졌다’고 좋아한다”며 웃었다. 이어 “시청자들도 TV 앞에 앉아 함께 소통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티처스’는 매주 일요일 오후 7시 50분에 방송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주인공 ‘상’은 기계 전환 수술을 받겠다는 동생의 통보에 어안이 벙벙하다. 아이를 홀로 키우는 동생이 ‘효율적 육아’를 위해 트랜스휴먼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 잠을 자지 않아도 되고, 손목이 아플 땐 교체하면 된다. ‘상’은 고단한 인간 삶에서 벗어나려는 동생의 결정에 반대할 수도, 섣불리 동참할 수도 없다. 트랜스휴먼의 시대를 내다본 표제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집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저자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발표한 단편 10편을 엮은 책이다. 전국에 딱 3개 남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사서, 함께 시위하던 동지를 잃은 무성애자 등 ‘정상성’에서 벗어난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매끈하고 반질반질한, 예쁜 금속 덩어리”로 위장한 세상의 민낯을 공상과학(SF)적 상상력으로 폭로한다.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현실과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매끄럽게 결합했다.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으로 기그 워커(배달 라이더 등 디지털 플랫폼 등을 통해 초단기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가 대다수인 세상에서 육아는 더욱 힘들어진다(‘작은 종말’). 요일마다 일하는 곳과 시간이 다른데, 호출받는 족족 뛰어나가지 않으면 기본급 정도에 그치는 등 분유값 대기도 벅차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해 타투를 새겨주는 최신식 기계가 사람의 팔을 태우기도 한다(‘낙인’).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재단한 비(非)인간 등장인물의 형상은 몇몇 대목에선 산산이 부서진다. 편견의 시선도 함께 깨진다. 책은 맹목적인 ‘경계 지우기’와 어설픈 공감을 강요하지는 않기에 더욱 울림이 크다. 나와 너는 다르고, 다르지만 그것이 괜찮다는 것을 알린다. 책은 에이섹슈얼, 프레이로맨틱 등 다양한 성 정체성을 열거하며 이 같은 라벨링을 긍정한다. “라벨은 소수자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이성애적 표준의 ‘정상’을 강제로 적용할 수 없음을 설명한다”(‘지향’)는 것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바일라오라(여성 무용수)가 정열적인 기타 선율에 맞춰 붉은 치맛자락을 휘감았다. 엇박자를 매끄럽게 넘나드는 손뼉과 강렬한 사파테아드(구두 소리)가 멈추자 객석 곳곳에서 기립박수가 터졌다. 대만에서 여행 온 리첸양 씨는 “스페인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고 해 공연장을 찾았다”며 “귀국하면 플라멩코를 배워보고 싶을 만큼 흠뻑 빠져들었다”고 했다. 14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음악당은 스페인의 전통무용인 ‘플라멩코’를 보러 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플라멩코는 스페인 남부의 전통무용과 집시 문화가 결합된 공연예술이다. 정열과 애환이라는 민족성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인 모건 페리 씨는 “집시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고 그들 삶의 애환을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 티켓 값 55유로(약 8만 원) 이상의 가치를 했다”고 말했다. 전통 공연예술은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 통로인 만큼 외국인 관광객들의 수요가 높다. 바르셀로나에선 유서 깊은 랜드마크인 카탈루냐 음악당에서 이틀에 한 번꼴로 플라멩코를 선보인다. 소규모 공연장에서도 전문 무용수들이 매일 이 춤을 춘다. 포르투갈에서는 1800년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가요 ‘파두’가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 포르투, 리스본 등 주요 관광지의 대극장은 물론이고 음식을 곁들일 수 있는 작은 공연장에서 상시 공연된다. 체코는 마리오네트(꼭두각시) 인형극으로 유명하다.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및 독일의 지배로 인한 불합리한 현실을 풍자했던 민족주의 문화의 정수로 꼽힌다. 몽골에선 수도 울란바토르의 국립예술대극장에서 전통 민속공연을 상시로 선보이며 다양한 부족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해외 관광객들이 볼만한 전통공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와 비견될 수 있는 한국의 판소리가 있지만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이 접하기 쉽지 않다. 상설 공연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 외국어로 된 공연 정보를 찾기 어렵고, 온라인 예매를 위한 회원 가입 과정도 복잡하다. 한국인이 대신 예매를 해준대도 공연을 볼 때는 예매자 본인의 신분증(원본)을 제시해야 한다. 자막 서비스 등의 편의성을 높일 필요성도 제기된다. 백현순 한국체대 공연예술학과 교수는 “우선 주요 관광지에 인접한 국공립극장에 전통공연 일정을 관광 시즌에 맞춰 늘려 나가고 향후 상설 공연장을 마련하는 등 외국인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028년, 팝스타들이 사라졌다. 뮤지션에게 주는 저작권료가 못내 아까웠던 음원 플랫폼 기업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음악을 찍어내서다. 2034년, AI 기술이 인륜적 질서마저 무너뜨리자 시민들이 데이터센터를 공격한다. AI 대기업들은 폭동을 진압하고자 3차원 프린터로 뽑아낸 사병(私兵)을 배치하고 인터넷망을 전부 차단하며 이렇게 말한다. “You Are Not My Problem(너는 내 알 바 아니고).” 14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소나르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2 Tired 2 Prompt(투 타이어드 투 프롬프트)’의 줄거리다. 작가 팀 모한이 생성형 AI를 사용해 ‘AI가 향후 10년간 예술계에 미칠 영향’을 소설로 만들어 낭독했다. 올해 제31회를 맞은 소나르 페스티벌에선 ‘AI와 창조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한 각종 공연과 전시, 포럼이 펼쳐졌다. 페스티벌 현장에서 국내외 예술가들을 만나 이들이 내다본 AI 예술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AI를 통한 예술의 확장 가능성에는 긍정적인 전망이 많있다. 전자음악 뮤지션 롭 클로스는 “AI는 내게 팔 10개를 더 달아줬다. 전문성이 부족한 여러 장르에 쉽게 접근하게 해준다”고 했다. 축제 기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아트코리아랩 부스에서 작품을 전시한 장윤영 작가는 “누구나 AI의 도움을 얻는 시대에선 분야별 전문가와 비전문가 간 경계가 흐려지기 마련”이라며 “작품의 외형보다 메시지와 목적이 더욱 주목받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AI가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에서 음악기술을 연구하는 세르히 호르다는 “이미 뮤지션들은 디지털 작업 툴을 이용함으로써 대형 제작사에 맞먹는 퀄리티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며 “AI는 더 나아가 감상자에 머물렀던 이들을 창작자로 격상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AI가 인간 예술가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선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역부족’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정동훈 작가는 “AI는 너무나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나머지 일반론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인간과 AI가 협업해야 한다”고 했다. 작가 마르타 페이라노 역시 “생성형 AI는 인간이 구축한 데이터와 표현을 흡수해 자동적 기술을 구사할 뿐 현실 맥락을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생각은 AI가 내놓은 대답을 읽은 ‘우리’가 무의식중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르셀로나=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3~15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소나르 페스티벌’(Sonar Festival·국제 전자음악 및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세계적으로 뜨거운 인공지능(AI) 열풍이 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쳐서일까. 특히 올해 페스티벌은 90여 개국 출신 15만 4000여명이 찾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1994년부터 시작돼 매년 6월 열리는 소나르 페스티벌은 전자 음악 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쇼케이스, 공연 기술 세미나, 포럼, 미디어아트 전시를 망라하며 연간 12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했다. 그중 페스티벌의 핵심 행사로 손꼽히는 ‘소나르+D’ 콘퍼런스 현장을 14일 찾았다.전 세계 기술융합예술분야 작가 70여 팀이 참여해 생성형 AI, 증강현실(AR) 등을 접목한 예술품을 선보인 올해 ‘소나르+D’의 특징은 한국 작가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총 7개 팀 14명의 한국 작가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가 운영하는 아트코리아랩의 지원을 받아 ‘소나르+D’에 참가했다. 안토니아 폴게라 소나르+D 총괄 큐레이터는 “작년까지만 해도 기술융합예술이 비교적 일찍 확산된 서구권 출신 작가들이 참가자 다수를 이뤘지만, 올해는 기술융합예술 분야에서 기술력과 창의성, 풍부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한국 작가들을 주목했다”며 “한국 작가들이 새 바람을 일으킬 거라 기대해 초청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관람객들의 주목을 한눈에 받았다. 아트코리아랩 부스의 하담우, 이승현 작가의 ‘키네틱 팝업북’이 대표적이다. 추상회화가 그려진 종이책이 코딩 수식에 따라 한 장 한 장 자동으로 넘어가고, 비치된 태블릿PC의 카메라로 그림을 비추자 3차원 조형물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눈앞에 펼쳐졌다. 현장에선 AR 기술로 평면 매체의 한계에 도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을 관람한 가우디바르셀로나 재단의 아나 아코스타 문화방문책임자는 하담우, 이승현 작가에게 “가우디 건축물을 AR 콘텐츠로 만들어 보고 싶다”며 즉석에서 협업 제안을 하기도 했다. 국내 7개 팀은 올 3월 진행된 예경의 공모를 거쳐 선발됐다. 7개 팀 작품 모두 “기술력이 돋보인다”는 관람객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인간 뇌의 신경망을 흉내 낸 머신러닝 기법인 인공신경망과 그래뉼라 신시사이저를 활용해 자연의 소리를 분해, 합성한 뒤 관객의 조작에 따라 전자음악 형태로 들려주는 콜렉티브 남산전골의 ‘뉴럴 타이드’, 확장현실(XR) 기술로 공상과학 세계관을 설계해 모니터 속 ‘AI 관리자’가 만국 언어를 실시간 통역하며 관객의 몰입을 이끈 프로젝트 팀펄의 ‘세파리움’ 등이 대표적이다.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 셀리아 수자 씨는 “평소 한국에 대해 ‘트렌드가 빠르고 미래적인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기술의 정교함은 그 이상이었다”며 감탄했다. ‘세파리움’의 정혜주 작가는 “기술 수준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해외 관객들의 접근 방식에서 얻은 영감을 향후 작품에 녹여낼 것”이라고 말했다.굵직한 기업과 기관에서 몰려온 발길은 산업 박람회를 방불케 했다. 기술융합예술은 몰입형 콘텐츠 등 상업적으로 활용하기도 좋아서다. 손바닥 땀 분비량을 측정해 관람객의 현재 감정을 분석한 뒤 생성형 AI가 추천 음악을 들려주는 이승정, 정동훈 작가의 ‘감정 울림’은 로레알 프랑스 본사로부터 협업을 제안받았고, 국제상공회의소 이사진이 줄지어 체험을 기다리기도 했다. 캐머런 매킨지 국제상공회의소 이사는 “일기 쓰듯 나를 되돌아보는 경험을 했다. 예술의 혁신”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영하의 추위에 강풍마저 몰아치는 노르웨이의 수직 절벽 ‘트롤퉁가’. 해군 특수전전단(UDT) 출신인 김민준, 육준서는 카라비너와 로프에만 의존해 가파른 암벽을 탔다. 목표는 해발 1100m 정상. 땀이 줄줄 흐르지만 잠시도 쉴 수 없다. 저체온증 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 이들은 “마치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단 하나 남은 은신처를 찾아가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이는 15일 처음 방송되는 채널A 어드벤처 다큐멘터리 ‘강철지구’의 한 장면. 다큐는 특수부대 출신의 ‘강철 체력’ 출연자들이 광활한 대자연에 투입돼 겪는 ‘날것 그대로’의 도전기를 담았다. ‘강철부대’ 시즌 1에서 우승한 UDT 출신 김민준 육준서는 노르웨이에, 시즌 3에서 우승한 육군 첩보부대(HID) 출신 강민호 이동규는 인도네시아를 찾는다. 출연자들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대자연에 뛰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인들의 일상도 체험한다. 강민호, 이동규는 인도네시아의 활화산인 카와이젠에서 한 번에 유황 30∼40kg을 채굴해 나르는 광부들의 작업을 체험했다. 해상가옥이나 뗏목에서 평생을 보내 ‘바다 유목민’이라고 불리는 바자우족과도 일상을 나눈다. 두 사람은 “‘강철부대’ 촬영보다 쉬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유황 연기는 CS가스(일명 최루가스)보다 지독했다”고 했다. 총 제작 기간은 약 5개월. 현지 오지 탐험, 극한 체험 등이 많았던 탓에 출연자와 촬영팀에겐 ‘강철 체력’이 필요했다. 노르웨이 촬영에선 극심한 눈보라 때문에 카메라 2대, 렌즈 3개가 고장 나 여분의 장비로 겨우 촬영을 마쳤다. 박세훈 PD는 “10년 이상 해외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만들어본 제작진으로 팀을 꾸렸음에도 힘들었다. 출연자들이 제작진의 짐을 나눠 들어주는 등 서로 의지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이 같은 따뜻한 ‘케미’를 엿볼 수 있다. 약 100만 년 전 형성된 눈부신 피오르, 대자연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열대우림 등 두 눈을 즐겁게 하는 절경은 ‘강철지구’에서 놓칠 수 없는 하이라이트다. 육준서는 “대자연의 풍경은 마치 꿈꾸는 듯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강철지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 너머 존재들에 대한 감동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 PD는 “다른 여행 프로그램보다 ‘두 걸음 더’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더 큰 자연, 더 깊숙한 현지의 삶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강철지구’는 15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50분에 방영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집박(執拍·박을 치는 사람)이 깔끔한 박 소리를 울리자 아쟁의 장대한 선율과 떨림이 시작됐다. 국립국악원 정악단 17명이 각자 거문고, 피리, 장구 등으로 맛깔난 시김새(장식음)와 박자를 얹으며 오래전 사라진 궁중음악을 세상에 다시 들려줬다. 인공지능(AI)의 도움 덕분이다. 생성형 AI로 복원한 15세기 궁중음악 ‘치화평’과 ‘취풍형’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공연됐다. 세종이 창제한 무용음악 ‘봉래의’ 중 여민락은 16세기 이후 민간을 통해 전승됐으나 나머지 두 곡(치화평, 취풍형)은 악보로만 전해 내려왔다. 이에 진화 알고리즘과 딥러닝이라는 AI 기술로 두 곡을 복원해 냈다. 이번 공연은 국립국악원과 AI 음악 전문업체 크리에이티브마인드, 서강대 아트앤드테크놀로지학과가 약 1년간 공동으로 기획, 연구한 끝에 이뤄졌다. 크리에이티브마인드가 개발한 진화 알고리즘은 여민락의 거문고 악보를 토대로 거문고와 다른 악기들의 선율 규칙을 분석해 치화평과 취풍형의 합주 선율을 도출했다. 서강대 아트앤드테크놀로지학과의 딥러닝 기술은 정악보 수록곡 85개에 대한 악기별 정간보(井間譜·소리의 길이와 높이를 표시한 조선시대 악보)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킨 뒤 치화평·취풍형의 피리, 거문고 등의 선율을 완성했다. 그동안 AI 도움 없이 고음악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한계가 있었다. 조선시대 악보에는 빠르기나 기준음 등 실제 연주에 필요한 요소가 기록되지 않아서다. 박정경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은 “사람이 복원한 고음악 연주는 주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반면 데이터에 입각한 AI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성(調聲) 변경처럼 사람이 하려면 수개월씩 걸리는 작업을 AI는 단 하루 만에 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AI 기술은 각기 다른 음악을 내놓았다. 딥러닝으로 복원된 연주가 진화 알고리즘 방식보다 완성도가 높아 연주자들의 사후 보정 작업을 덜 필요로 했다. 이는 진화 알고리즘 방식이 서양 악보에 기반한 반면에 딥러닝은 광학인식기술로 정간보를 통째로 인식해 국악 음계에 더 근접한 데 따른 것이다. 고보석 거문고 연주자는 “진화 알고리즘 방식은 음역과 주법에서 다소 어색함이 있어, 음역을 조정하고 시김새와 대점(거문고를 내려치는 주법)을 추가해 연주했다”고 말했다. AI 복원 기술은 향후 고려가요 등 악보만 남은 고음악을 국악 공연 레퍼토리로 들려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다샘 서강대 아트앤드테크놀로지학과 교수는 “AI는 완전히 새로운 곡을 창작하기보다는 규칙과 분포에 맞는 음을 채워 넣는 작업에 특화됐다. 기존 틀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곡을 만들어 국악 레퍼토리를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심영섭 국악작곡가는 “우리 음악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문법을 개발함으로써 국악 다양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집박(執拍·박을 치는 사람)이 깔끔한 박 소리를 울리자, 아쟁의 장대한 선율과 떨림이 시작됐다. 국립국악원 정악단 17명이 각자 거문고, 피리, 장구 등으로 맛깔난 시김새(장식음)와 박자를 얹으며 오래전 사라진 궁중음악을 세상에 다시 들려줬다. 인공지능(AI)의 도움 덕분이다.생성형 AI로 복원한 15세기 궁중음악 ‘치화평’과 ‘취풍형’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공연됐다. 세종이 창제한 무용음악 ‘봉래의’ 중 여민락은 16세기 이후 민간을 통해 전승됐으나, 나머지 두 곡(치화평, 취풍형)은 악보로만 전해 내려왔다. 이에 진화 알고리즘과 딥러닝이라는 AI 기술로 두 곡을 복원해 냈다.이번 공연은 국립국악원과 AI 음악 전문업체 크리에이티브마인드,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가 약 1년간 공동으로 기획, 연구한 끝에 이뤄졌다. 크리에이티브마인드가 개발한 진화 알고리즘은 여민락의 거문고 악보를 토대로 거문고와 다른 악기들의 선율 규칙을 분석해 치화평과 취풍형의 합주 선율을 도출했다.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의 딥러닝 기술은 정악보 수록곡 85개에 대한 악기별 정간보(井間譜·소리의 길이와 높이를 표시한 조선시대 악보)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킨 뒤 치화평·취풍형의 피리, 거문고 등의 선율을 완성했다.그동안 AI 도움 없이 고음악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한계가 있었다. 조선시대 악보에는 빠르기나 기준음 등 실제 연주에 필요한 요소가 기록되지 않아서다. 박정경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은 “사람이 복원한 고음악 연주는 주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반면 데이터에 입각한 AI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성(調聲) 변경처럼 사람이 하려면 수개월씩 걸리는 작업을 AI는 단 하루 만에 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두 AI 기술은 각기 다른 음악을 내놓았다. 딥러닝으로 복원된 연주가 진화 알고리즘 방식보다 완성도가 높아 연주자들의 사후 보정 작업을 덜 필요로 했다. 이는 진화 알고리즘 방식이 서양 악보에 기반한 반면, 딥러닝은 광학인식기술로 정간보를 통째로 인식해 국악 음계에 더 근접한 데 따른 것이다. 고보석 거문고 연주자는 “진화 알고리즘 방식은 음역에서 다소 어색함이 있어서 시김새와 대점(거문고를 내려치는 주법)을 추가해 연주했다”고 말했다.AI 복원 기술은 향후 고려가요 등 악보만 남은 고음악을 국악 공연 레퍼토리로 들려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다샘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교수는 “AI는 완전히 새로운 곡을 창작하기보다는 규칙과 분포에 맞는 음을 채워 넣는 작업에 특화됐다. 기존 틀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곡을 만들어 국악 레퍼토리를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심영섭 국악작곡가는 “우리 음악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문법을 개발함으로써 국악 다양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때로는 폭력을 일으키고 때로는 평화를 알선하며, 가난한 이들의 위안이자 가난의 원인이기도 한 모순덩어리”가 있다. 바로 술이다. 신간은 이처럼 술이 인류에게 미친 방대한 역사를 풀어냈다. 단어의 유래와 숨은 뜻을 연구하는 데 천착해 온 작가가 썼다. “인간은 술을 마시도록 진화해 왔다”는 주장으로 시작되는 대서사는 고대 이집트와 중세 유럽, 근대 미국 등으로 이어지며 시대와 지역을 폭넓게 망라한다. 약 1만 년에 달하는 역사를 짚지만 지루하지 않다. 수다쟁이 동료의 이야기를 듣는 듯 경쾌하고 위트 있는 문체가 강점이다. 기원전 1300년경 고대 이집트인이 남긴 ‘과음 후 토하는 여성’ 벽화, ‘인간의 인격을 시험하기엔 와인을 마시는 것보다 적합한 것이 없다’는 플라톤의 말 등 눈길 끄는 자료들을 다채롭게 활용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세계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책은 아니다. 그동안 역사서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내용을 조명한다는 의미가 크다. 20세기 미국 금주법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운동도, 알코올을 반대하는 운동도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가정폭력과 가난의 위험에 놓인 여성들이 살룬(미 서부의 술집)에 반대하고 남편의 ‘맨 정신’을 염원한 진보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술의 제조법이나 멋있게 마시는 법 등을 주로 다루는 ‘술 책’들과는 색다른 지적 충족감도 준다. ‘불콰한 시골 사람들이 여관 선술집에 모여 거품 가득한 맥주를 들이켠다’는 중세풍 콘텐츠의 전형성을 깨는 대목이 그렇다. 저자는 “오늘날 고급 호텔과 동격인 여관이 시골에 존재하기란 불가능했고, 선술집은 와인을 파는 곳이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주장이 다수 제기되지만 근거가 살짝 빈약한 점은 아쉽다. 저자는 “기원전 9000년경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유는 식량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술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맥주는 빵보다 만들기 쉽다’는 등의 논리를 들지만, 과학적인 설득력은 부족해 보인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운동장에서 맘껏 뛰는 아이들을 보기 어려운 시대다. 학교 체육이 붕괴됐다는 우려가 나온 지도 오래다. 146개 국가의 청소년(11∼17세) 운동 실태를 조사한 결과(세계보건기구 2016년) 한국은 가장 운동 안 하는 나라로 꼽혔지만 상황이 나아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일상에서 생활체육이 ‘실종’된 지금의 현실을 진단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채널A 특별기획 3부작 다큐멘터리 ‘오징어 게임이 사라졌다’가 8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방송된다. 첫 회에선 체육 활동이 부족한 청소년의 현실을 짚고 학교·지역사회·공공기관이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다룬다. 대한양궁협회와 손잡고 양궁 수업을 개설한 경북 칠곡군 학림초등학교 등 체육 수업에 대한 흥미를 높이려는 다양한 사례를 보여 준다. 15일 2회에서는 성별, 체격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즐기기 좋은 ‘뉴 스포츠’를 소개한다. 무겁고 딱딱해 부상 위험이 있는 핸드볼 공을 말랑말랑한 스펀지 재질로 바꾼 ‘핸볼’ 등을 보여 주며 보급형 체육 활동의 필요성을 짚는다. 22일 마지막 회에서는 장애 아동 등 체육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츠 꿈나무 특기 장려금’을 비롯한 여러 스포츠 교육 정책에 대해 알아본다. 진행과 내레이션은 배우 박재민(사진)이 맡았다. 그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학사, 미 조지타운대 대학원 석사, 서울대 대학원 박사(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학)를 거친 연예계의 대표적인 스포츠 전문가다. 그는 “스포츠 활동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분법적 시선이 만연하다. 그러나 체육과 공부는 상호 대립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 관계”라며 “건강과 스포츠에 관한 사회적 재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해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1부에 등장하는 고등학생 최주은 양이 학교에 농구부 개설을 건의하고 체육 교사가 이를 적극 지지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경남 채널A PD는 “특별한 도구 없이도 운동장에서 뛰놀던 시절의 놀이문화를 요즘 아이들에게 돌려주고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체육 활동이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관객 눈앞에 깜깜한 무대 대신 대파, 옥발토마토 등 푸릇한 토종 작물이 펼쳐졌다. 제작진이 두 달간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앞마당에 직접 가꾼 텃밭이다. 관객은 지급된 스마트폰의 안내에 따라 극장 로비에서 텃밭으로, 건물 옥상으로 이동했다. 여정의 끝인 극장으로 입장한 이들은 천장에 달린 별을 바라보며 자연의 순환을 ‘감각’했다. 1, 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이동형 연극 ‘극장 앞 텃밭, 텃밭 뒤 극장’이다. 만약 기후위기로 인해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작물을 본 적 없는 세대가 나타난다면 연극은 무엇을, 어떻게 재현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이처럼 파격적인 형태로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연들이 최근 잇달아 관객을 만나고 있다. 다음 달 3∼11일 서울 성동구 우란2경에서 공연되는 연극 ‘디망쉬’는 기괴한 느낌의 인형과 신체극, 영상 매체 등을 다채롭게 결합해 기후 문제를 은유한다. 한 가족이 자연재해에 부닥치며 벌어지는 사건과 지구의 종말을 기록하는 취재진의 여정을 교차시키며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펼친다. 지난달 23∼29일 서울 대학로의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 연극 ‘가덕도를 아십니까?’에는 전문 배우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았다. 대신 연구자, 활동가 등이 무대에 올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기후에 미치는 악영향을 꼬집었다. 공연계가 이처럼 열띠게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뭘까. ‘극장 앞 텃밭…’의 전윤환 연출가는 “기후위기에 대해 여전히 ‘머나먼 재난’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을 통해 숫자나 이론이 아닌 감각을 사용할 때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님’을 직관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덕도를 아십니까?’의 이성직 연출가는 “각자 놓인 상황에 따라 신공항 건설이 자신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연기와 관련 없는 출연진이 무대에 오름으로써 관객도 연관성을 부여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디망쉬’를 기획한 김혜리 우란문화재단 PD는 “환경에 대한 교훈적 메시지만을 내세우기보단 독특한 표현 방식이 대중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다”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백인 무용수가 살풀이 곡조에 맞춰 한발 한발 예사롭지 않은 발 디딤새를 뽐낸다. 곱게 빗어 넘긴 백발의 쪽머리에 비녀를 꽂은 그는 아쟁 선율에 따라 빙글빙글 돌며 미색 치마저고리를 부풀리고, 하얀 수건으로 호를 그려 살(煞)을 신명 나게 풀어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열린 ‘일이관지―조선춤방Ⅱ’에서 미국인 무용가 메리 조 프레슬리(사진)가 춘 ‘아쟁살풀이’의 한 장면이다. 이민 3세 한국계 미국인 전수생 2명과 무대에 올라 ‘한국인의 정서’인 한(恨)을 춤으로 담아낸 것.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불문하고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콘텐츠가 각광받는 가운데, 해외에서도 한국무용을 추는 무용가들과 전승자들이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디아스포라 춤은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프레슬리는 하와이에서 한인 디아스포라 무용가로 활동한 한라함(본명 배용자·1922∼1994)의 제자이자 하와이대 한국무용과 강사다. 부산에서 태어난 한라함은 1948년 하와이 이민자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국무용을 알리는 데 헌신했다. 프레슬리는 “어린 시절과 여생을 각각 일본과 미국에서 보낸 한라함 선생은 생전 그리움을 춤으로 담아냈다”며 “특히 그가 말년에 안무한 ‘도살풀이춤’에는 이방인으로서의 애환이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들 춤은 우리나라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고 합쳐진 각 전통무용의 ‘원형’을 간직한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 옌볜은 한국 근대무용의 효시로 여겨지는 무용가 최승희의 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이주한 디아스포라 무용가 박용원(1930∼1992)을 중심으로 그 제자 최미선 등이 계보를 잇고 있다. 박용원은 1950년대 최승희무용단, 옌볜예술대 등에서 활동하며 전통무용 확산에 힘썼다. 이처럼 원형을 보전하려는 의지는 이민자들의 지리적, 문화적 고립에서 비롯했다. 프레슬리는 “하와이는 캘리포니아 등 미국 내 다른 주보다 규모가 작고 고립돼 있어 초기 이민자들은 춤과 음악을 지킴으로써 고국과 연결되고 문화적 자긍심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최미선은 “옌볜예술대 등 민족 교육기관을 설립하며 해외에서 민족 예술을 지키려던 과거 조선인들의 디아스포라적 노력이 원형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오디션만 100번 넘게 떨어졌어요. 대본 리딩을 하다 잘린 적도 있죠. ‘선재’ 역할도 다른 배우들이 거절했기에 제게 왔죠. 그렇게 어렵게 만난 선재가 제 인생 캐릭터가 됐네요.”배우 변우석(33)은 최근의 ‘선재앓이’ 현상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2016년 첫 드라마 이후 8년 만의 작품이었던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주인공 류선재 역을 맡은 그는 최근 가장 핫한 배우가 됐다. 종방 이틀 뒤인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189cm의 큰 키와 촉촉한 눈빛, 입가에 언뜻언뜻 맴도는 미소가 ‘비현실적’으로 융합된 매력적인 배우였다.드라마는 과거 자신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준 톱스타 류선재를 살리기 위해 사고로 하반신 장애를 얻은 임솔이 시간을 거슬러 2008년으로 돌아가는 타임슬립 로맨스물이다. 대본을 읽고 첫눈에 반했다는 변우석은 소속사에 출연 가능 여부를 한 달 넘게 묻고 또 물을 만큼 선재 역할이 간절했다고 전했다. “어릴 때 드라마 ‘쾌걸춘향’을 재밌게 봤거든요. 과거 로맨스물에선 남자주인공이 까칠한 경우가 많았는데, 선재는 일편단심이라 좋았어요.”실제로 변우석은 선재의 순애보 연기로 팬들의 환호를 샀다. 특히 “너 구하고 죽는 거면 난 괜찮아” 등 여심을 울린 명대사는 종영 후에도 화제가 됐다. 그는 “본명 대신 ‘변선재’라고 불리는 게 너무도 행복하다”며 웃었다.그는 꽤 오랜 시간 ‘무명 배우’로 지냈다. 탄탄한 어깨와 큰 키가 장점인 덕에 2010년 모델로 데뷔했다. 2016년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출연하며 배우로 전향했다. 여러 작품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 배우로서 자질이 없나 고민도 했다. 그러다 8년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꿰찬 ‘선재 업고 튀어’에서 만루홈런을 날리게 된 것.“모델로 일할 때였어요. 리허설 대타를 설 기회가 생겨 설레는 마음으로 메이크업을 받고 무대에 올랐죠. 근데 갑자기 ‘집에 가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라인이 번지도록 울었어요. 배우 활동 초반 땐 ‘넌 안 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하지만 드라마처럼 시간을 거슬러 돌아간대도 바꾸지 않을 거예요. 아픔을 이겨냄으로써 지금의 제가 됐으니까요.”소중하게 얻은 주연의 기회였지만 ‘선재 업고 튀어’의 촬영 과정은 그에게 정신적, 육체적 도전의 연속이었다. 겨울에 차디찬 물에 풍덩 빠져 오들오들 떨었고, 상체 탈의를 하는 날엔 쉼 없이 ‘펌핑’을 했으며 캐릭터가 겪는 감정적 파고가 때론 벅차기도 했다. 선재를 향해 ‘대체 내게 무슨 보상을 줄 셈이냐’고 따져 물은 적도 있다.드라마는 그에게 전성기로 가는 문을 열게 만들었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큼지막하게 사진이 내걸리고, 생애 처음 서울은 물론이고 태국 방콕, 필리핀 마닐라 등 아시아 전역을 도는 팬미팅 투어도 열게 됐다. 그는 자신이 이 드라마에서 빛을 볼 수 있게 된 공을 상대역 임솔을 연기한 배우 김혜윤에게 돌렸다. “솔이의 감정만 받으면 곧장 선재가 될 수 있었다. 촬영 중 지칠 때 혜윤이가 이를 알아채고 과자를 건네주는 등 큰 힘을 줬다”며 웃었다. 그는 본인도 선재의 ‘팬’이라고 했다. “생각조차 못 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어요. 저 역시 ‘선재앓이’를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1화부터 다시 볼 생각이에요. 선재가 그리우신 분들은 같이 되감기하며 선재를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리투아니아계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국내 1세대 음악감독 박칼린(사진).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낸 그는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돌아온 뒤부턴 국악 작곡을 공부했다. 판소리 명창 박동진에게 직접 소리도 배웠다. 외가에선 대대로 ‘샤먼’의 피가 흘렀다. 그러나 그가 이름을 떨친 건 국악계도 굿판도 아닌 뮤지컬 시장이었다.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박칼린이 처음으로 창극 연출에 나선다. 국립창극단이 다음 달 26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창극 ‘만신: 페이퍼 샤먼’을 통해서다. 박 연출가는 “예민함을 타고난 주인공이 사람과 자연에 보탬이 되고자 굿을 하며 수많은 넋을 달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극작과 연출, 음악감독을 겸한 그는 “세계 각지에서 전쟁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영혼을 달래주고 싶어 만신(萬神)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고 했다. 작품은 소녀 ‘실’이 내림굿을 받은 뒤 세계 5개 대륙의 샤먼을 만나 세계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한국은 물론이고 서부 개척 시대에 희생당한 미국 원주민, 열대우림 파괴로 집을 잃은 아마존 부족 등 곳곳의 아픔이 등장한다. 국립창극단 모든 단원이 출연하며 ‘실’ 역은 소리꾼 김우정과 박경민이 연기한다. 작창은 국립창극단 단장 출신인 안숙선 명창이 맡았다. 창극단 간판 소리꾼 유태평양이 작창을 보조했다. 음악은 판소리와 민요, 민속악에 무가(巫歌)를 더해 만들었다. ‘실’이 오대륙 샤먼을 만나고부터는 세계 각지의 토속음악이 가미된다. 유태평양은 “아프리카, 아마존 등지의 토속음악을 조사하면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3박 계열 리듬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토속음악을 살짝 변형해 우리 전통 선율을 얹고, 국악기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무대에는 약 4m 높이의 나무와 언덕, 개울 등을 설치해 북유럽 숲부터 한국의 작은 마을, 아프리카 해변까지 오간다. 굿에 사용되는 일부 무구(巫具)는 종이로 제작된다. 박 연출가는 “종이는 자연에서 오고, 역사를 써 넣을 수 있다. 운명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엇갈린다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해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수상한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강미선. 발레복 튀튀 대신 검정 재킷과 하얀 바지를 입은 채 한 발로 높이 뛰어올랐다. 최근 촬영한 신세계인터내셔날 델라라나의 봄 컬렉션 화보에서 그는 기성복을 입고 발레 동작을 하며 새로운 매력을 선보였다. 이는 무용수와 패션 브랜드 간 화보 촬영 ‘윈윈 협업’의 일례다. 이 외에도 국립무용단 소속 최호종과 현대무용수 서예진은 지난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EE’의 화보를 찍었다. 이들은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2인무를 추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사진의 역동감을 높였다. 국립발레단은 이달 1∼5일 초연된 ‘인어공주’ 공연을 앞두고 한 패션잡지와 화보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인어공주 역의 솔리스트 조연재와 공주 역 수석무용수 정은영 등 5명의 출연진이 참여했다. 이들은 ‘인어공주’ 무대에서와 비슷한 화장을 하고서 등을 둥글게 젖히는 캉브레, 한 다리로 서는 아라베스크 등 발레 동작을 활용한 다채로운 자세를 취했다. 패션업계가 무용수를 앵글에 담으려는 이유는 무얼까. 델라라나 관계자는 “무용수 모델은 일반 모델에 비해 선이 굵은 데다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포즈를 잘 표현해낸다”면서 “또한 세계적인 무용수로서 ‘자신만의 아름다움과 당당함’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해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무용수와 무용단에도 홍보와 기회가 됨은 물론이다. 강미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는 “무용복을 입고 무대에 서는 것과 기성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무용수로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KBS가 음주 뺑소니 혐의로 구속된 트로트 가수 김호중에 대해 한시적 방송 출연 정지 결정을 내렸다.KBS는 29일 방송출연규제심사위원회를 열어 김씨에 대해 출연 규제 심사를 진행하고 한시적 방송 출연 정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시적 방송 출연 정지는 대상자에 대해 법적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출연 정지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KBS는 “법원의 판결 전이지만 가수 김호중이 음주운전 도주 사고와 관련해 거듭된 거짓말로 심각한 사회적 물의를 빚었고, 방송 출연을 금지해달라는 여러 시청자의 청원 등이 접수돼 ‘한시적 출연 정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1심 판결에 따라 추후 다시 규제 수위를 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KBS의 방송출연 규제는 성폭력, 음주운전, 마약 범죄 등 위법하거나 비도덕적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이나 일반인 출연진에 대해 방송출연규제심사위원회에서 사안의 경중에 따라 방송 출연 정지나 한시적 출연 규제, 출연 섭외 자제 권고 등의 결정을 하고 있다.앞서 김호중은 9일 서울 강남구에서 술을 마신채 운전하다 반대편 도로에 정차돼있던 택시를 들이박고 도주한 바 있다. 범행 열흘이 지난 19일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은 24일 김호중을 구속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찢어지는 기차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아르데코풍 전등 아래로 구부정한 노파가 선다. 한 아이가 자신을 ‘벤자민’이라고 소개하며 다가가지만 치매에 걸린 노파 ‘블루’는 아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린아이의 몸에 갇힌 벤자민은 과거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노파에게 기억을 돌려주고자 그녀와의 인생을 담은 극중극을 펼치기 시작한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1일 초연된 창작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이렇게 시작된다. 1920년대 미국,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단편 소설을 재창작했다. “블루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삶의 의미”였다는 벤자민의 회상을 통해 현재의 소중함과 운명적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벤자민 역은 그룹 동방신기 멤버 심창민과 김재범, 김성식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2003년 가수 데뷔 후 처음으로 뮤지컬 도전에 나선 심창민은 22일 공연에서 안정적인 보컬로 배역을 소화했다. 소년 시절의 맑고 순수한 목소리에서 점차 무게감을 더해감으로써 세월의 흐름이 자연스레 묻어나도록 했다. 재즈클럽 사장 ‘마마’ 역은 김지선이 맡아 재치 있는 연기와 간드러진 기교로 주인공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벤자민이 사랑하는 재즈 가수 블루 역은 김소향, 박은미, 이아름솔이 맡았다. 재밌는 건 극중극 속 노인에서 아이로 어려지는 벤자민의 모습은 배우가 아닌 ‘목제 퍼핏’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벤자민 역 배우는 자신의 대사에 맞춰 직접 퍼핏을 움직이거나 입을 벙긋거리게 한다. 다만 극중극으로 진입하고 빠져나오는 경계가 불분명해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점은 아쉬웠다. ‘인생의 황금기는 다름 아닌 지금’이라는 작품 주제는 괴리감을 주는 이질적 대사, 모호한 연출 등으로 인해 명료히 드러나지 않는 듯했다. 다음 달 30일까지, 7만∼12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뮤지컬의 본고장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00만 달러 클럽’(주당 매출 100만 달러 이상)에 입성한 K뮤지컬이 처음 등장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데스노트’ 등을 만든 국내 공연 제작사 오디컴퍼니(대표 신춘수·사진)의 글로벌 신작 ‘위대한 개츠비’가 바로 그 주인공. 신 대표는 작품에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5일 정식 개막한 ‘위대한 개츠비’는 최근 3주 연속 주간 매출액 100만 달러를 넘겼다. 개막 첫 주 105만 달러였던 주간 매출액은 셋째 주(13∼19일)엔 128만 달러까지 오르며 상승세다. 특히 ‘위대한 개츠비’가 상영 중인 브로드웨이 시어터는 ‘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 등 대작이 거쳐 간 극장으로, 브로드웨이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약 1700석)다. 이 큰 극장에서 매회 좌석 점유율 90%대를 유지할 정도로 관객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브로드웨이는 주간 매출액이 100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작품성과는 별개로 작품을 무대에서 가차 없이 끌어내리는 냉정한 곳이다. 이런 경쟁 무대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당초 11월 공연까지 판매 예정이던 티켓 판매를 내년 봄까지 연장키로 했다. ‘롱런 가능성’을 보이는 셈이다. 이 뮤지컬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주인공 제이 개츠비 역은 뮤지컬 ‘뉴시즈’ ‘보니 앤드 클라이드’로 이름을 알린 제러미 조던이, 데이지 뷰캐넌 역은 뮤지컬 ‘하데스타운’, ‘미스사이공’ 등에 출연한 이바 노블러자다가 연기한다. 공연을 안착시키고 한국에 돌아온 신 대표는 이날 전화 인터뷰에서 “100만 달러 클럽은 브로드웨이 성공의 상징이기에 소식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며 “숙소에서 홀로 센트럴파크를 내다보는데 ‘드디어 이 도시가 나를 안아주는구나, 내가 가는 외로운 길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 위안이 됐다”고 했다. 사실 그는 공연계의 ‘돈키호테’로 불렸다. 앞서 프로듀서로 브로웨이에 3번 도전했으나 거푸 쓴잔을 마신 것. 2009년 뮤지컬 ‘드림걸즈’ 미국 전국 투어에 이어 2014년 ‘홀러 이프 야 히어 미’, 2015년 ‘닥터 지바고’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렸으나 흥행엔 참패했고, 한 달여 만에 공연을 접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개츠비’로 3전 4기의 모습을 보여준 것. 한국인 제작자로서는 브로드웨이 사상 처음으로 ‘단독 리드 프로듀서’도 맡았다. 그는 좋은 현지 반응에 대해 “개츠비의 ‘위대한 파티’가 결국 ‘위대한 비극’임을 나타내는 콘셉트가 강렬함을 줬다고 본다”며 “다른 브로드웨이 작품과 비교해 폭풍처럼 몰아붙이는 속도감도 현지 젊은층 취향에 잘 맞은 듯하다”고 했다. 이를 반영한 환상적 무대와 화려한 의상은 공연의 볼거리. 작품은 다음 달 개최되는 제77회 토니상에서 최우수 의상디자인 부문 후보로 올라 있다. 신 대표는 “미국 작품을 외부인으로서 바라봤기에 더욱 창의적이고 열린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현재 ‘위대한 개츠비’는 호주, 영국, 중국 등 제작사로부터 적극적인 라이선스 공연 제안을 받고 있다. 국내에는 늦어도 2026년 초까지 ‘위대한 개츠비’를 선보인다는 계획. 작품은 한국 관객의 취향과 눈높이에 맞춰 다듬을 예정이다. 신 대표는 “오디컴퍼니가 전 세계 공연권을 갖고 있기에 자유롭게 작품을 보강할 수 있다”며 “브로드웨이에서 통하면 전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영원한 돈키호테’로서 꿈과 이상을 가지고 뚜벅뚜벅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