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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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엄마 아닌 ‘나’로 쓴 글, 삶의 빛나는 시간 찾아줘”

    어두운 밤하늘 아래 이불을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는 여자, 오리발을 던져버리고 두 발과 두 손을 뻗은 채 수영장 한가운데 떠 있는 여자, ‘나의 두 번째 마흔’이라 쓴 진주가 들어있는 조개를 양손으로 고이 들고 있는 여자…. 지난달 30일 찾은 인천 부평구 ‘문화공간 시소’엔 여성들의 고민이 담긴 그림들이 가득했다. 모두 육아하는 여성이 그린 작품이지만, 아이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여자 혼자가 주인공인 작품이 많았다. 그림 옆에 놓인 에세이집을 펼치니 마찬가지였다. 에세이집에서 여성들은 어린 시절 겪었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하루 1만 원이 아쉬워 각종 아르바이트를 구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병을 진단받은 뒤 “살얼음을 걷듯 시한부 인생을 살듯” 방황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약 1년의 육아휴직을 가진 뒤 복직했을 때 내 삶은 암흑 그 자체”라며 절망했던 때를 고백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닌 삶을 버텨 나가는 한 여성이 겪는 외로움과 고통이 진하게 느껴졌다. 글과 그림은 부평구 갈산도서관이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 ‘부평에 사는 엄마 사람 혜자씨’의 결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갈산도서관이 올해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올 6월 시작했다. 5개월 동안 글감 수집과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27회에 걸쳐 배운 끝에 14명이 에세이집에 낼 글과 그림을 완성했다. 이날 만난 ‘부평에…’ 참가자들은 “‘독박 육아’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버티게 한 건 글쓰기”라고 입을 모았다. 조윤주 씨(46)는 “팬데믹을 거치며 목말랐던 대면 모임에 대한 욕구가 나를 프로젝트로 이끈 것 같다.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기 전 여자로서의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글을 제대로 써보지 않았던 이들이 서로 마음을 여는 게 쉽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땐 어색해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꺼내놓지 못했다. 정은미 씨(40)는 “아이가 아픈 날이면 당연히 수업을 못 들었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고 다짐했지만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출산, 육아를 거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여성이라는 공감대가 이들을 이끌었다. 허지영 씨(42)는 “처음엔 ‘평범한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망설였다. 하지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삶의 힘들고 빛나는 시간을 찾아나갔다”고 했다. 김양숙 씨(53)는 “서로의 글에 대해 피드백을 하면서 자극을 받았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에 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평에…’ 프로젝트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자체적으로 후속 모임을 만들어 글과 그림을 창작하고 있다. “누구의 아내, 며느리가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로만 불리기 위해서”(허 씨)다. 이혜진 갈산도서관 사서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글을 좋아하는 참가자들을 끈끈하게 뭉치게 했다. 기회가 되는 대로 지역 주민을 위한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인천=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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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 자유민주주의 언론의 지표로 조명”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전직 사우 모임인 동우회(東友會)가 12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2023 동우 송년의 밤’ 행사를 열었다. 정구종 동우회장(동서대 석좌교수·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이어지고, 국내에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의 정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동아일보는 자유민주주의의 지표이자 한국의 명실상부한 언론으로 조명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아방송의 DNA를 이어받은 채널A도 여러 킬러 콘텐츠로 새로운 영상 미디어의 총아가 됐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일생을 신문과 방송에 몸 바쳐온 동우 한 분, 한 분은 이름 그대로 ‘레전드’이자 ‘레거시’”라며 “마음의 고향인 동아미디어그룹의 큰 발전을 성원해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했다. 이날 동우회는 내년 1월 취임하는 차기 동우회장으로 최맹호 전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을 선출했다. 최 차기 동우회장은 “동아일보에 입사해 해외 특파원을 하고 부사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40여 년을 근무했다”며 “동우회를 만들고 반듯하게 이끌어준 선배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동우회의 핵심은 소통과 친목으로, 모두가 동우회에 적극 참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전·현직 사우 220여 명이 참석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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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시 안녕”… BTS 멤버 7명 모두 병역 이행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29)과 뷔(28)가 11일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지민(28), 정국(26)이 12일 입대하면 BTS 멤버 7명 모두가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RM과 뷔는 11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병역 이행 중인 진, 제이홉, 슈가는 이날 휴가를 내고 와 BTS의 나머지 멤버 5명 모두가 현장에서 배웅했다. RM은 전날 팬 커뮤니티인 위버스에 “10년간 방탄소년단으로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며 “이 시기가 우리 모두에게 낯설고 새로운 영감과 배움의 시기가 될 거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어 RM은 “잠시 동안 안녕”이라며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우리이도록! 미래에서 만나자”고 했다. BTS는 지난해 12월 맏형 진을 시작으로 차례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올해 4월 제이홉이 입대해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 중이고, 슈가는 9월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 복무를 마친 뒤 2025년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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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무분별한 작품 학습, 작가 설 곳 사라져”… 웹툰계 공포 확산[인사이드&인사이트]

    《인공지능(AI)은 웹툰 작가를 돕는 조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작가의 창작물을 표절하고 작가의 일자리를 뺏는 도둑이 될 것인가.최근 웹툰 업계에서 AI 학습 저작권 논쟁이 일고 있다. 웹툰 제작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AI가 작가들이 그린 작품을 무단으로 베끼고 모방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 AI 개발사들은 AI가 어떤 작가의 그림을 학습하거나 참고했는지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작가들이 ‘수업료’를 요구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앞장서서 AI 저작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고, AI 개발사와 콘텐츠 원저작자 사이의 적절한 계약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작품 무단 활용 허용 시 작가들 치명타”“국회에서 논의 중인 텍스트·데이터 마이닝(Text and Data Mining·TDM) 면책 규정이 무분별하게 도입될 경우 웹툰이 AI에 의해 저작권자도 모르는 새 무단으로 학습된다.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상업적 AI에 이용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는 지난달 2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TDM은 AI가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이나 구조를 추출하는 기술이다. AI가 웹툰을 그리려면 앞서 인간 작가가 그린 기존 웹툰을 학습해야 한다. AI가 결과물을 내놓은 것을 보면 마치 새로운 창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림체나 캐릭터 등 기존 인간 작가가 그린 작품의 독창적인 특징을 모방해 짜깁기한 것이다. TDM 면책은 AI가 저작물을 자유롭게 학습할 수 있도록 저작권 침해의 책임에서 면제해주는 것을 뜻한다. 최근 AI 기업 등에선 급속히 발전하는 생성형 AI 개발을 위해 TDM에 대해서 폭넓게 면책해달라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화 분석 기술을 통해 다수의 저작물을 포함한 대량의 정보를 분석”할 때 “저작물을 복제·전송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저작권법 전부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 개정안은 특히 TDM의 허용 범위를 “저작물에 표현된 사상이나 감정을 향유하지 않는 경우에는 필요한 한도 안에서”라고 정하고 있다. AI가 학습하는 범위를 폭넓게 허용하자는 취지다. 만화가협회와 웹툰작가협회는 이 같은 규정이 작가들의 저작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TDM 면책 규정이 도입되면 웹툰 작가들이 경제적 손실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창작 의욕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두 협회는 “작가의 작품이 무단 복제 및 전송될 위험이 있다”며 “창작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법적으로 복잡한 저작권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작가들은 AI가 학습할 때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다면 어떤 작품을 베끼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작권 침해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웹툰 작가와 플랫폼 간 계약 문제를 다룬 책 ‘웹툰 작가에게 변호사 친구가 생겼다’(2020년·바다출판사)의 공저자인 김성주 변호사는 “웹툰은 작품마다 독창성이 있는 만큼 AI의 학습 대상이 되는 웹툰이 무엇인지 출처를 표기하지 않으면 무단 활용과 불법 유통을 차단할 수 없다”고 했다. 대형 플랫폼과의 계약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작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부당한 계약을 수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혁주 한국웹툰작가협회장은 “이미 네이버가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은 웹툰 작가와 계약할 때 ‘AI를 활용해 작가의 작품을 학습할 수 있다’는 규정을 넣고 있어 작가들이 궁지에 몰린 상태”라고 했다.●“작품 표절당해도 알 수 없어”AI가 웹툰 등에서 활용되는 것 자체는 막기 어려운 흐름이다. 네이버웹툰이 2021년 출시한 ‘AI페인터’는 웹툰 30만 장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배경 등에 자연스럽게 색상을 입혀주는 기능을 갖췄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던 색칠이 간편해진 것이다. 또 명령어를 쓰면 10초 만에 이미지 여러 장을 만드는 ‘노블AI’처럼 해외에서도 여러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 기업만을 옥죌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웹툰의 AI 활용은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 5월 연재를 시작한 네이버웹툰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다. 이 웹툰에선 배경으로 쓰인 집들의 크기가 뒤죽박죽이었다. 화풍이 컷마다 조금씩 변하고 신체 묘사가 어색해 AI를 활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1회는 평점이 10점 만점에 2.71점을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웹툰 제작사는 “작업 마지막 단계에서 AI를 이용한 보정 작업을 했다. 앞으로는 AI 보정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독자들 사이에선 “AI 활용을 먼저 밝히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작가들도 반발했다. 한 웹툰 작가는 “웹툰 제작사가 어떤 AI를 활용했는지, AI가 어떤 작가의 작품을 학습했는지 모른다. 내 그림의 질감과 화풍처럼 수년간 노력해서 만든 작품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여러 AI가 서로의 작품을 학습하기 시작하면 독창성이라는 가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I가 또 다른 AI의 작품을 학습하면 애당초 인간 작가의 작품이 바탕이 됐다는 사실이 희미해진다. 기업이 창작자들에게 동의를 얻어야 할 의무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책임도 희석될 수 있다. 한 웹툰 작가는 “그렇게 되면 인간 작가는 저작권에 대해 문제 삼기 어렵다. 창작의 핵심인 ‘독창성’이라는 것이 사라지는 셈”이라고 했다. 해외에선 AI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작가조합(WGA) 소속 작가들은 올 6월 “AI는 문학(대본 창작)에 사용될 수 없고, 작가들의 작업물은 AI 학습 훈련에 쓰이면 안 된다”며 파업을 벌였다. 국내에서 분쟁이 곧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성주 변호사는 “(TDM 면책) 저작권법 개정안은 AI의 데이터 수집과 학습을 어디까지 허용한다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작가와 AI 개발자 및 플랫폼 간의 소송이나 법적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고 했다.●문체부 “이달 중 가이드라인 발표”AI의 저작물 무단 학습을 막고 창작자가 제대로 보상을 받으려면 적절한 계약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웹툰 작가는 “상업적 목적으로 AI를 개발하는 기업은 학습의 범위, 목적, 기간을 명시해 작가와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웹툰 작가는 “네이버, 카카오는 데이터가 적절하게 쓰였는지, 기여도는 어떤지 작가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 중 AI 학습물 저작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웹툰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AI 창작과 관련해 선제적으로 법적 문제를 정리할 것”이라고 했다. 장경근 문체부 저작권정책과장은 “웹툰 등 창작 업계에서 AI를 활용하기 위해선 작가에게 허락을 받거나 적절히 보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가 담길 것”이라고 했다. 플랫폼 측은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박정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툰 총괄 대표는 “AI를 활용한 창작에 대한 윤리 기준을 정부 부처에서 마련해주면 거기에 맞춰 준비할 수 있다. (정부 기준을) 적극 수렴해 자체 가이드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대식 네이버웹툰 AI&Data 리드는 “정부 주도로 AI 저작물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빠르게 마련된다면 콘텐츠 업계 전반의 혼란과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이호재 문화부 hoho@donga.com}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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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폭력의 세상, 문학으로 삶을 긍정하려는 의지 돋보여”

    “삶의 고난과 거친 풍파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그럼에도 일상에 집중하고, 시선을 외부로 넓히며 삶을 긍정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7일 열린 ‘2024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올해 응모작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얼어붙은 경제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도 문학이 삶을 밝은 곳으로 이끌 수 있다는 희망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올해 9개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총 7337편이다. 문학을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응모작은 지난해(6970편)보다 367편 늘었다. 부문별으로는 중편소설 290편과 단편소설 687편, 시 5301편, 시조 580편, 희곡 62편, 동화 305편, 시나리오 66편, 문학평론 17편, 영화평론 29편이었다. 예심 심사위원은 △중편소설 손홍규 정한아 소설가, 정여울 문학평론가 △단편소설 김성중 김금희 손보미 소설가, 강동호 문학평론가 △시 서효인 오은 시인 △시나리오 정윤수 영화감독,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였다. 중편소설 응모작은 소재가 풍부했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이야기는 줄어들고 해외로 배경을 넓힌 작품이 많았다. 공상과학(SF), 판타지, 역사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도 돋보였다”고 말했다. 정한아 소설가는 “배달기사 등 비정규직의 애환을 다룬 작품도 있었다. 경제 불황 때문인지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시각이 일부 있었다”고 했다. 손홍규 소설가는 “단편소설의 문학적 미학을 품으면서도 장편소설의 서사성을 품은 작품을 본심 후보로 올렸다”고 했다. 단편소설에선 ‘비인간’의 존재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사람보다는 반려동물·식물을 다룬 작품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김성중 소설가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작품도 있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의 교류를 다루는 건 ‘나와 너’보단 ‘나의 세계’를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손보미 소설가는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더라도 새로 만난 사람보단 가족, 회사 동료 등 익숙한 관계를 다뤘다”고 했다. 김금희 소설가는 “선생님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이야기도 있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교권 침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시 부문에선 삶을 긍정하는 시각이 돋보였다. 오은 시인은 “화초에 물을 주는 등 일상적인 삶 속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아내는 시가 많았다”고 했다. 서효인 시인은 “코로나19가 끝나서인지 고립을 토로하는 시가 사라졌다. 삶을 감각으로 느끼려는 시도가 돋보였다”고 했다. 시나리오 부문에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영향이 드러났다.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는 “2시간 내외의 영화보단 OTT 시리즈, 드라마에서 6부작 이상의 긴 호흡으로 풀어내면 좋을 얘깃거리가 많았다”고 했다. 정윤수 영화감독은 “일제강점기, 제주 4·3사건, 5·18민주화운동 등 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은 역사물이 돋보였다. 고령화, 세대·젠더 갈등처럼 현안을 다룬 작품도 눈에 띄었다”고 했다. 이날 예심 결과 △중편소설 10편(10명) △단편소설 13편(13명) △시 60편(12명) △시나리오 8편(8명)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에서 당선작을 정한다. 당선자에게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동아일보 내년 1월 1일자 지면에 소개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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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나왔어요]어느 작가의 오후 外

    ● 어느 작가의 오후(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무라카미 하루키 엮음·서창렬 민경욱 옮김·인플루엔셜)=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미국 소설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8편과 에세이 5편을 엮었다. 절망과 상처를 담은 피츠제럴드의 1930년대 작품들이다. 1만6800원.● 생의 마지막 당부(웬디 미첼 지음·조진경 옮김·문예춘추사)=2014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쓴 에세이다. 치매가 심해지면서 겪는 다양한 일과 함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존엄하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을 따뜻하고 단단한 문체로 전한다. 1만6800원.● 신세기 사랑 이야기(찬쉐 지음·심지연 옮김·글항아리)=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되는 중국 여성 작가의 장편소설. 온천여관을 들락거리며 사랑과 성에 빠져드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내면에서 온 사람’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감각적인 문장으로 펼쳐낸다. 2만2000원.● 안영배의 수토 기행(안영배 지음·덕주)=한국의 풍수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기자가 민족의 숨결이 담긴 국내 유적지나 명승지를 샅샅이 훑어본 기록을 정리했다. 우리 땅 곳곳을 직접 찾아가 확인하고 촬영한 사진을 곁들였다. 점필재 김종직을 비롯해 전통 사상에 열린 태도를 갖고 전국을 ‘수토’했던 성리학자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2만 원.● 필수는 곤란해(피어스 콘란 지음·김민영 옮김·마음산책)=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자랐고 한국 영화, 드라마 프로듀서로 일하는 저자의 에세이다. 2018년 이경미 영화감독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뒤 겪은 좌충우돌 이야기와 한국에 대한 애정 어린 사연이 눈길을 끈다. 1만5000원.● 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단야 쿠카프카 지음·최지운 옮김·황금가지)=미국의 3대 미스터리 문학상 중 하나인 에드거상 최고 장편소설 부문 올해 수상작이다. 사형을 12시간 앞두고 탈옥을 준비하는 연쇄살인마의 삶을 그리며 폭력을 비판하면서도 열광하는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냈다. 1만7000원.● 시골을 살리는 작은 학교(김지원 지음·남해의봄날)=폐교 위기에 처했다가 되살아난 경남 함양군 서하초의 사연을 다룬 책이다. 주거지와 일자리 알선이라는 파격 공약을 내세운 서하초처럼 색다르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면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시골 마을이 부활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1만6000원.● CEO가 알고 싶은 중동이야기(문성환 지음·박영사)=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가 중동에 진출하려는 기업인을 위해 쓴 중동 입문서다. 중동 경제에 대한 상식뿐 아니라 이슬람 문화, 비즈니스 예절, 여성의 지위 등 중동 문화를 담았다. 2만 원.}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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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이 참상은 못 막지만 기억하게 할 힘은 있죠”

    “저 역시 책을 쓰기 전까지 ‘늑대의 아이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역사에서 잊힌 이야기였죠.” 리투아니아 작가 알비다스 슐레피카스(57·사진)는 6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달 6일 국내에 출간된 장편소설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양철북)는 리투아니아에서도 생소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이 끝나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었던 동프로이센 고아를 뜻하는 ‘늑대의 아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동프로이센은 과거 독일의 영토였으며 지금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일부 지역이다. 1944년 이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이 독일인을 살해하고 핍박한 뒤 1만 명의 고아가 발생했다. 하지만 독일인이 피해자인 탓에 기억에선 지워졌다. 슐레피카스는 1996년 처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늑대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15년에 걸쳐 취재하고 집필해 2011년 리투아니아에서 이 소설을 펴냈다. 그는 “살아남은 ‘늑대의 아이들’을 만나 설득했다. 오래된 증언의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자료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소설엔 ‘늑대의 아이들’의 피폐한 삶을 날것 그대로 담았다. “독일인이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죽여라!”라고 외치는 소련 군인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떨며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렸다. 그는 “전쟁은 전장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군인뿐 아니라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의 삶까지도 파괴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역사 속에서 잊힌 비극을 흔들림 없이 묘사했다”며 그해 ‘최고의 새로운 역사소설’로 평가했다. 슐레피카스는 “‘늑대의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었다. 대부분 노예처럼 일하고, 나치 독일인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워하며 살았다”고 했다. “‘늑대의 아이들’은 자식들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못했죠. 소설이 출간된 뒤에야 인정받았고, 이들은 비로소 주변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소설 덕에 리투아니아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늑대의 아이들’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는 이 소설로 리투아니아에서 ‘국민 작가’로 불리게 됐다. 주한독일문화원 초청으로 이날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는 “리투아니아의 국가명은 리투아니아어 ‘lietus’(비)와 관련 있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주한독일문화원에서 한국 독자를 만나니 운명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아이들은 죽고 있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희생되는 걸 보면 정말 끔찍합니다. 여전히 ‘늑대의 아이들’이 발생하는 거죠. 물론 어떤 문학이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막지 못해요. 하지만 참상을 기록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었다는, 고통받았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되죠. 정치와 경제가 하지 못하지만,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건 기억하는 것 아닐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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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번역, 비평 수준까지 이른다면 AI에게 이길 수 있겠죠”

    황석희 영화번역가(44·사진)는 2017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자막을 번역한 뒤 한 청각장애인으로부터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영화의 주인공 엘라이자를 ‘농아(聾啞)’라고 번역했는데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엔 억울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엔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장애인을 가리키는 단어는 ‘농아인’으로 번역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납득하게 됐다. 그는 제작사에 연락해 주문형비디오(VOD)라도 자막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영화사 입장에선 귀찮은 일이었지만 ‘번역 AS(애프터서비스)’로 유명한 그의 설득에 결국 그 단어는 모두 바뀌었다. 그는 지난달 17일 출간된 에세이 ‘번역: 황석희’(달)에 이 에피소드를 쓰며 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했다. “아빠는 반성에 자존심 같은 거 없어.” 황 번역가는 4일 전화 인터뷰에서 “18년 전 번역을 시작할 때부터 최고의 번역가가 되진 못해도, 관객과 가장 가까운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번역에서 ‘오역’의 기준이란 굉장히 복잡합니다. 사전적 정의를 따라도 틀릴 수 있고, 연출자의 의도를 유추해야 하니까요. 다만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번역 논란에 대해 관객을 설득하고 소통하려 해요.” 그는 원작 속 선을 넘나드는 말장난을 한국어의 말맛과 동시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이른바 ‘초월 번역’으로 주목받았다. 영화 ‘데드풀’(2016년)에서 농담으로 가득한 오프닝 크레디트를 한국식 욕설로 번역한 것이 대표적이다. 출연진을 가리킨 자막 ‘God’s perfect idiot’를 ‘신이 내린 또라이’로, 제작자를 가리킨 자막 ‘Asshats’를 ‘호구들’이라고 번역해 화제가 된 것이다. 또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년)에선 스마트폰 문자 속 이모지인 ‘스마일’과 ‘주먹’을 자막에 넣었다. 가로 자막 한 줄에 넣을 수 있는 글자 수인 12자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는 “자막은 넓은 캔버스(화면 전체)가 아닌 작은 울타리(화면 맨 아래)에 넣어야 하니 물리적 한계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며 “여태 번역한 영화 자막 100만 개 중 실험적 시도는 10개 안팎에 불과하다. 전통적 틀에서 벗어날 땐 오히려 더 주의를 기울인다”고 했다. 신간엔 그가 영화계에서 일하며 겪은 여러 에피소드가 담겼다. 그는 2022년 드라마 ‘파친코’에선 자막이 아니라 대사 번역을 맡았다. 제작사가 애플TV플러스고, 배경은 한국인 만큼 영어로 쓰인 대사를 한국어로 바꿔야 했다. 그는 “과거 해외 작품에선 한국인이 듣기엔 말도 안 되는 한국어 대사가 많았다”며 “해외 제작사들이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내놓으면서 대사 번역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고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번역하는 시대, 영화번역가의 미래는 있을까.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번역이 올바른지, 틀린지 채점하는 수준을 넘어선다면요. (사람의) 번역이 영화의 맥락과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비평을 하는 수준까지 이른다면 AI를 이길 수 있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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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스트레스 푸는 수단… 모든 것 꼬일때 주로 썼죠”

    “시집에 실은 작품은 대부분 웃기기보단 슬픈 이야기예요. 모든 것이 꼬일 때,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었을 때 주로 썼죠.” 개그맨 양세형(38)은 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4일 시집 ‘별의 길’(이야기장수)을 출간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내게 시는 재미난 놀이이자 감정을 표출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이라며 “방송과 달리 내면엔 여리고 감성적인 면도 있다. 멋진 마흔 살이 되고 싶어 시집을 낼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2003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SBS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 tvN ‘코미디빅리그’ 등 개그,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까부는 캐릭터로 20년간 활동했다. 신간에는 88편의 시를 실었다. “대머리 가발을 쓰고/수염을 그리고/다크서클을 내리니//오늘은 빵빵 터지겠구나”(‘코미디언’ 중)라며 공연이 끝난 뒤의 허탈한 심정을 그렸고, “걷다가 그냥 걷다가/보고 싶어 눈을 감았어요./오늘은 어제보다 더 반갑네요”(‘아빠가 해주는 삼겹살김치볶음 먹고 싶어요’ 중)라며 2014년 암으로 세상을 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그는 “주변에 짧은 글을 써서 선물했는데 이런 습관이 이어져 시집을 펴내게 됐다”며 “나태주 시인처럼 한눈에 보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편한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시집 인세 전액은 위기에 빠진 청소년들을 돕는 등대장학회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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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간 고전 등 5000종 출판… 윤형두 범우사 회장 별세

    문고본 세계문학선으로 잘 알려진 출판사 범우사의 창업자 윤형두 회장(사진)이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1935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6년부터 월간 ‘신세계’에서, 1961년 민주당 당보 ‘민주정치’에서 기자로 일했다. 1963년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66년 범우사를 세웠다. 범우사는 1970년대 범우고전선, 1980년대 비평판 세계문학선, 범우문고 등을 내며 국내외 고전을 소개했다. 고인은 50여 년 동안 법정 스님의 ‘무소유’(1976년),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2002년) 등 약 5000종의 단행본을 출판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한국출판학회 회장,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4차례, 대통령 표창을 1차례 받았다. 2009년 국제인명센터(IBC)의 ‘21세기를 대표하는 2000명의 지식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노라면 잊을 날이’(1979년), ‘책의 길 나의 길’(1990년) 등 책 20여 권을 썼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영매 전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아들 재민 범우사 대표, 재준 서울디지털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딸 성혜 윤아트 대표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6일 오전 10시. 02-2227-7500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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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의 제전’ 재해석한 무용 ‘격’ 공연

    창작무용 공연 ‘격(隔·사진)’이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8일 오후 8시와 9일 오후 4시 이틀 동안 열린다. ‘격’은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발레음악 ‘봄의 제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삶을 탄생, 희생, 소멸이란 키워드로 표현했다. 춤, 음악, 영상 미디어의 장르 간 경계를 허문 시각적 연출이 돋보인다. 위보라 ‘알.에이컴퍼니’ 대표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걸음’을 무대 움직임으로 확장했다. 무용수 각자의 걸음걸이도 있겠지만, 걸음에 대한 인간의 공통된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풀어냈다”고 했다. 4만∼5만 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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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가 이은석 교수 ‘…환대’ 출간

    “오픈 스페이스가 과하면 평안의 내밀성을 잃어버리고, 너무 가리면 수도원처럼 폐쇄적 공간이 된다.” 이은석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61)는 1일 출간한 책 ‘건축가 이은석의 환대’(픽셀하우스·사진)에서 종교시설 건축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밝혔다. 그가 설계한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처럼 개방과 내밀함 사이의 균형을 적절히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는 신간에서 ‘들림과 열림’ ‘자연과 묵상’ 등 7개 키워드로 종교시설 건축이 나아갈 길에 관해 설명했다. “(종교시설이) 현대적 환대 개념인 공공성으로의 전환을 꾀해야 할 때”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4만5000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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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갯마을’ 등 1960년대 한국 영화 이끈 김수용 감독 별세

    19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김수용 감독(사진)이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9년 경기 안성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전쟁 때 통역장교로 복무했으며, 정전 이후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 배치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1958년 ‘공처가’로 감독에 데뷔해 코미디 영화를 주로 찍다가 1963년 ‘굴비’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다루기 시작했다. 문예영화 붐을 이끈 ‘갯마을’(1965년), 영화계의 현실을 담은 ‘어느 여배우의 고백’(1967년),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재해석한 ‘안개’(1967년) 등으로 주목받았다. 가난에 시달리는 소년 가장의 수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년)는 개봉 당시 서울에서 28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대만으로 수출됐다. 1999∼2005년 초대·2대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제33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공숙영 씨, 아들 석화 전 서울대 어린이병원장과 세화 전 용인대 이과대 학장, 딸 정화 심리상담사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5일 오후 1시. 02-2072-2020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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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웃음과 위로가 있는 유쾌한 정신과

    “‘당신, 길거리 흡연은 규칙 위반이야’라고 주의를 줘본들 적반하장 격으로 오히려 화를 내서 싸움만 날 테니까.” 정신과 의사 이라부에게 회사원 가쓰미가 찾아와 하소연했다. 가쓰미는 규칙을 어기는 이들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 과호흡 발작까지 간혹 일으킬 정도다. 그러나 타인에 대해 지적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만 받고 있다. 이라부는 분노 조절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방 화를 내는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화를 안 내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라부는 태평하게 웃으며 “화를 내면 된다”고 진단했다. 가쓰미는 며칠 뒤 전철 건널목에 갔다. 그곳에서 일본의 국민체조로 불리는 라디오 체조를 시작했다. 두 발 뛰기로 전신을 가볍게 흔들고, 팔과 다리를 접었다 폈다 했다. 주위에선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가쓰미는 신경 쓰지 않으며 소리쳤다. “이렇게 화창한 날씨는 거의 없단 말이야! 바다가 반짝이는 시간대는 지금뿐이야!” 가쓰미는 행복해졌을까. 단편 ‘라디오 체조 2’의 내용이다.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인기를 모았던 ‘공중그네 시리즈’의 4편이다. 일본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을 받은 ‘공중그네’와 ‘인 더 풀’, ‘면장 선거’ 등 3권은 국내에서 총 100만 부 팔렸다. 일본에서 2006년 ‘면장 선거’, 올해 ‘라디오 체조’가 출간됐으니 이라부가 17년 만에 복귀한 셈이다. 신간엔 5편의 단편을 담았다. 컴퓨터만 벗어나면 불안증을 앓는 주식 투자자(단편 ‘어쩌다 억만장자’), 원격 수업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대학생(단편 ‘퍼레이드’)으로 마음이 피폐한 현대인을 그렸다. 이라부는 웃음을 선사하며 우울증을 치료하고(단편 ‘해설자’), 광장공포증에 걸린 피아니스트에게 밴드 공연에 참여해보라고 따뜻하게 조언하며(단편 ‘피아노 레슨’) 이를 해결한다. 과거 작품의 연장선이라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이라부의 유쾌한 진단을 받으면 옛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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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지산에 문화 입힌… 다자이 오사무의 펜[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최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산세계유산센터’를 들렀을 때 눈길이 가는 소개 문구가 있었다. 후지산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일본의 예술 작품 덕이라는 것이다. 후지산을 묘사하고 예찬한 작품들이 유네스코의 마음을 끌었고, 등재에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회화, 하이쿠뿐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1909∼1948) 같은 근대 문학 작가들의 작품들이 영향을 끼쳤다고 쓰여 있었다. ‘다자이, 다자이’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소설 작가인 다자이의 자전적 작품을 엮은 선집이다. 특히 눈길이 가는 건 1938년이 배경인 ‘부악백경’이란 단편이다. 부악은 후지산의 별명이다. 백경은 100가지 풍경이란 의미다. 다자이가 후지산 기슭에서 2개월간 지내면서 썼다. “방의 커튼을 살짝 걷어 유리창 너머로 후지를 본다. 달이 있는 밤은 후지가 창백하게 물의 정령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나는 한숨을 쉰다. 아아, 후지가 보인다. 별이 크다. 내일은 맑겠구나.” 주인공 ‘나’는 어느 밤 후지산을 바라보고 내일 날이 맑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살며시 커튼을 치고 그대로 잠이 들려다가 만다. “맑다고 해서 딱히 이 몸에 별다른 것도 없는데, 하고 생각하니 웃겨서, 혼자 이불 속에서 씁쓸히 웃는다”고 냉소할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자이는 1935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1936년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타지 못해 좌절했다. 복막염으로 입원하고 마약 중독에 시달리기도 했다. 소설에선 삶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후지산의 절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사실 ‘나’가 후지산을 처음부터 좋아한 건 아니다. 처음에는 후지산의 풍경을 마치 목욕탕 벽에 그려진 그림 같다고 경멸한다. “연극의 무대 배경 같은 풍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후지산의 풍경에 젖는다. 후지산 인근 사람들과 교류하고 한 아가씨와 결혼식까지 치르며 닫혀 있던 ‘나’의 마음은 점차 열린다. 후지산이 근사하다고 감탄할 정도로 마음이 누그러진다. 다자이가 주목하는 건 자연의 영속성이다. 후지산을 깎아내리다가 아름답다고 말하며 갈대처럼 휘날리는 ‘나’의 마음과 달리 후지산은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나’는 “순간마다 변하는 내 마음속의 애증이 부끄러워지면서 역시 후지산은 멋지다”고 돌아본다. 다자이가 후지산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다. 지난달 24일 사단법인 제주학회는 ‘한라산의 문화유산적 가치와 활용 방안 탐색’을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한라산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으로 인정받았지만, 예술과 인문학적 가치는 제대로 발견되지 못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날 학술대회에선 문화유산적 가치를 부각해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 아직 한라산 하면 외국인들이 바로 떠올리는 문학작품은 많지 않다. 그러나 언젠가 정지용(1902∼1950)의 시 ‘백록담’을 읽고 한라산을 찾았다는 이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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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년전 꼰대 철학자의 ‘팩폭’에 감동”… 쇼펜하우어 신드롬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 “천국에는 무료함밖에 남아 있지 않다”….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가 남긴 명언들이다. 삶의 희망 따윈 인정하지 않는 독설가의 충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사실 이 두 가지가 삶의 궁극적인 요소”라는 그의 격언을 읽다 보면 비관주의에 빠질 듯하다. 최근 출판계에 쇼펜하우어 신드롬이 불고 있다. 철학 교양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유노북스)는 온라인 서점 예스24와 알라딘에서 11월 3∼4주, 온라인 교보문고 11월 3주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쇼펜하우어의 격언을 모은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페이지2),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포레스트북스)도 각각 11월 4주 예스24 종합 4, 7위에 올랐다. ‘마흔에…’는 15만 부가 판매됐고, ‘남에게…’는 5만 부가, ‘당신의…’는 7만5000부가 각각 팔렸다. 독자 반응도 뜨겁다. “자기계발서의 거짓 위로에 지쳤는데 철학책에 위로받았다”, “거침없는 ‘팩폭’(팩트폭격)에 감동했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독서를 인증하고, 격언을 퍼나르는 이도 많다. 200여 년 전 ‘꼰대’ 철학자가 남긴 말에 2023년 한국 독자들이 반응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이라는 철학으로 유명하다. 부, 명예 등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을 넘어 자기 자신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짜 고통을 경험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염세주의자라는 시각도 있지만,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모든 희망을 잃고도 진리를 추구”한 사람으로 평가할 정도로 행복에 대한 현대 철학의 기틀을 세웠다. 쇼펜하우어 관련 책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마흔에…’가 최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기가 지속되는 건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등 명확한 조언이 독자를 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선행 포레스트북스 본부장은 “‘괜찮다’, ‘잘하고 있어’라는 하나 마나 한 위로보단 명확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조언이 통한 것”이라고 했다.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쇼펜하우어는 유머와 예리함, 삶을 꿰뚫는 시각을 갖춘 문장을 썼다”고 했다. “천국과 지옥의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 같은 문장이 독자를 매료시켰다는 것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이 늘어난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마흔에…’를 쓴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은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추운 날씨에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상대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는 고슴도치에 비유했다”며 “직장, 가정, 학교뿐 아니라 나이 들어 홀로 살아가며 관계와 고독에 대해 고민한 독자가 반응한 것 같다”고 했다. 알라딘에 따르면 ‘마흔에…’ 독자의 45%, ‘남에게…’, ‘당신의…’ 독자의 35%가 40대다. 2008년 ‘30대 위로’ 열풍을 불러왔던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김혜남 지음·갤리온)를 읽었던 독자들이 이제 40대가 돼 쇼펜하우어에서 조언을 찾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현정 유노북스 편집팀장은 “무게 있는 독서에 관심이 깊은 40대가 철학에서 인생의 답을 찾고 있다”고 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한 해를 마무리할 때를 맞아 삶에 대한 고찰과 지혜를 얻고자 하는 분위기도 반영됐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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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경매 뛰어들려면 법률 용어부터”…초보자 위한 조언부터 고수 가는 길까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부동산 경매에 뛰어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경매 초보자들은 기초적인 지식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리하게 경매에 뛰어들어 큰 손해만 보고 물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제대로 부동산 경매를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10년 동안 수천 건의 경매사건을 다뤄온 주희진 변호사(사법연수원 44기)는 신간 ‘물어보기 부끄러워 묻지 못한 부동산 경매’(새로운제안)에서 “경매로 부동산을 산다는 건 공인중개사한테 부동산을 소개받는 게 아니라 법원에서 소개받아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낙찰받고 싶은 부동산에 아무런 법률적 하자가 없는지 알기 위해서는 경매와 관련한 부동산 법률용어를 이해해야 한다. 직접 부동산 주변을 둘러보고,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인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런 문제는 법률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주 변호사는 신간에서 부동산 경매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동산 법률용어부터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또 경매사건 의뢰인들에게 생각하지 못하게 손해가 났던 상황이 무엇인지, 독자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무엇을 꼭 알고 있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주 변호사는 나아가 ‘고수들의 세계’도 소개한다. 싼값에 낙찰받아 하자를 고치고 비싸게 되팔아 수익을 극대화하는 ‘특수물건’은 물론 유치권·선순위 가등기·공유지분·법정지상권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초보자라면 피하면 좋을 물건들도 자세하게 알려준다.주 변호사는 한양대 법학과를 조기, 우수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경매사건 전문 로펌에서 경매 사건을 다뤘다. 2019년부터는 ‘열린 아카데미’에서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경매 강의를 했다. 현재 법무법인 윈스의 파트너 변호사다. 2만 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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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구성원 이끌 ‘리더십’ 기를 방법? 오로지 인문학, 독서뿐”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대학에서 문학, 역사, 철학과는 문을 닫고,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이란 말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정말 인문학은 인생에서 전혀 쓸모없을까. 동아일보는 인문학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사회 문제를 극복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며 인문학의 저력을 들여다봤다. 4회에 걸쳐 매주 연재한다. “자연과학은 하나의 질문에서 하나의 답을 찾고, 사회과학은 하나의 질문에서 파생된 여러 답 중 타당성 높은 하나의 답을 고르지요. 하지만 인문학은 하나의 질문에 모두가 같은 답을 내놓으면 안 됩니다. 인문학은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다르다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해요.”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고, 효율이 최고로 여겨지는 시대다.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103)는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삶의 목적’을 묻는 인문학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뿌리라며 최근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리적, 이성적 판단력을 기르는 인문학의 토대 위에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꽃피었다는 것. 그는 “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전체주의가 범람할수록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 등 갈등이 첨예하다”며 “시대를 화해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인문학”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인문학 전도사’다. 전국을 다니며 인문학 강연을 열고, 전공인 철학을 기반으로 문학, 역사학을 버무린 인문학적 사고를 풀어낸다. 에세이 ‘영원과 사랑의 대화’(1961년·김영사), ‘백년을 살아보니’(2016년·덴스토리) 등 60여 년 동안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냈고 여전히 현역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비결이다. 그는 “기업에서도 부장이나 임원 등 관리자가 인문학적 기반이 없으면 다양한 구성원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삼성 등 여러 대기업에서 강의했는데, 특히 임원들이 인문학의 가치를 인정하더군요. 각기 다른 생각을 지닌 구성원을 이끄는 리더십을 기를 방법은 오로지 인문학, 독서입니다.” 김 교수가 인문학에 매료된 건 중학생 때다. 그는 평양 숭실중 3학년 때 시련을 맞았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해 이를 거부하면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됐다. 나중에 시인이 된 동급생 윤동주(1917∼1945)에게 어떡할 거냐고 물으니 “신사참배는 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도 윤동주를 따라 자퇴했다. 김 교수는 “도서관에 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책을 읽으며 학업을 대신했다”며 “이때 문학, 역사, 철학책을 셀 수도 없이 많이 읽었다. 독서가 인문학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회고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의 연설도 그를 인문학의 길로 이끌었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도산이 요양차 가석방됐는데, 그가 사는 평안남도 대동군 송산리로 와서 연설을 했던 것. 김 교수는 “어릴 적엔 기독교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신학자를 꿈꿨지만 도산의 연설을 듣고 난 뒤 더 넓은 시각을 지닌 인문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달걀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세상이 다시 보였어요. 도산의 연설과 그때 읽었던 책들이 인생의 거름이 됐죠.” 김 교수는 “평생 철학을 공부했지만 러시아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 인간에 대해 알게 됐다.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로 판단력을 배웠다”고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등장한 지도 1년이 됐다. 점차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된다면 인문학의 빛이 바래지 않을까. 그는 웃으며 어림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AI가 못하는 게 하나 있어요. 휴머니즘이죠. 휴머니즘이 없으면 어른은 약한 아이를 상대로 싸우고, 악(惡)을 악으로 갚습니다. AI가 인간을 위해,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선 휴머니즘을 세우는 인문학이 사라질 수 없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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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환상도 없이 전쟁을 이야기하기[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소설집 ‘저주토끼’엔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기 힘든 환상소설이 주로 담겨 있다. 그러나 단편 ‘재회’는 예외다. 비현실적인 요소 없이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소설이기 때문이다. ‘재회’는 대학원 논문을 쓰기 위해 폴란드로 자료 조사를 떠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도서관에서 폴란드 남자와 대화한다. 남자는 여자가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몇 번의 만남 끝에 여자와 가까워진 남자는 자연스레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남자의 할아버지는 나치가 만든 강제수용소 생존자였다.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군에 의해 수용돼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전쟁이 끝났지만 할아버지는 고통에 시달렸다. 할아버지는 물과 식료품을 오랫동안 아껴가며 먹었다. 집엔 통조림을 가득 채워놓았다. 해가 져도 불을 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씻기 위해 물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비상 시 탈출하기 위해 여행 가방을 싸서 현관 옆에 뒀다. 남자는 여자에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이미 지나간 전쟁을, 이미 사라져버린 수용소를 평생 두려워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낸 수용소 안에서 살고 있었던 거야. 할아버지는 죽고 난 뒤에야 정말로 자유롭게 자기 도시의 거리를 걸을 수 있게 됐어.” ‘재회’를 읽으며 여자 주인공에게서 작가 정보라의 모습이 보였다. 정 작가는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폴란드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이후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할 땐 폴란드 출신 작가 브루노 야시엔스키(1901∼1938)로 논문을 썼다. 한국에선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1892∼1942)의 ‘브루노 슐츠 작품집’(2013년·을유문화사)을 번역했다. 정 작가가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폴란드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잠시나마 폴란드에 살며 전쟁의 비극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는 많다. 하지만 이익과 엮일 때 전쟁 반대를 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올해 전미도서상 시상식을 이틀 앞둔 1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난 기사를 읽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기사는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자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중동전쟁에 대해 의견을 발표하려 하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기업들이 전미도서상 후원을 철회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려가 무색하게 전미도서상 재단은 14일 성명을 통해 “정치적 발언은 전미도서상 역사상 혹은 그 어떤 시상식에서도 결코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다”라며 작가들 편에 섰다. 15일 시상식에서 소설 부문 최종 후보인 미국 작가 알리야 빌랄은 단상에 올라 “우리는 반유대주의와 반팔레스타인 정서, 이슬람공포증을 동등하게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정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동의를 표했다. ‘저주토끼’가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재회’에 담긴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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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간장게장이 먹고 싶다, 여긴 화성인데

    “아, 망했다. 간장게장이 먹고 싶어.” 어느 날 이사이는 이런 충동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주위 동료들은 고개를 젓는다. ‘게살 맛이 나는 합성 단백질 식품’을 권할 뿐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선 식량이 아니라 음식이 필요하다는 이사이의 말에 동료들은 동의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한다. 사실 이사이가 사는 곳이 한국이라면 간장게장을 먹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해외라도 발품을 팔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사이가 사는 곳은 다름 아닌 화성이다. 화성에 해산물을 들여오려면 바다와 비슷한 인공 생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수조 전체를 방사선 차단 시설 안에 둬야 한다. 특히 생물을 산 채로 화성으로 배송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이사이는 “포기하라고 하지 마세요! 우리(화성인)는 계속 원하고 싶은 걸 원할 거예요!”라고 소리친다. 단편소설 ‘위대한 밥도둑’의 내용이다.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했을 때 벌어질 법한 일을 상상한 공상과학(SF) 단편소설 6편을 담은 연작소설집이다.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은 작가는 2020년 한국 외교부의 의뢰를 받아 2년을 연구한 뒤 ‘화성의 행성정치’라는 보고서를 썼다. 화성이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를 인문학으로 탐구한 것이다. 작가가 본업으로 돌아와 문학적으로 풀어놓은 소설들은 처음엔 엉뚱한 상상으로 시작하지만 끝내 독자를 납득시킨다. 화성 이주 초창기 벌어진 첫 살인 사건을 그린 ‘붉은 행성의 방식’부터 인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뒤 개발 제한 구역을 해제할지 여부를 다룬 ‘나의 사랑 레드벨트’까지 인류의 화성 이주 과정을 시기대로 풀어냈다. 지구 기상학자와 화성에 사는 유전학자의 연애를 담은 ‘김조안과 함께하려면’, 화성에서 태어났으나 지구로 이주하는 이의 이야기인 ‘행성 탈출 속도’에선 인간 군상의 모습을 애잔하게 그렸다. ‘행성봉쇄령’처럼 첨예한 행성 정치 문제도 정면으로 다뤘다. ‘작가의 말’에서 “새로 시작한 행성의 문명은 지구에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가뿐히 초월한 문명이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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