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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감축·철수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5일 복수의 미일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7,18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했을 때의 영향에 대해 아베 총리의 의견을 구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동아시아의 군사균형이 깨질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이나 철수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대처 능력을 약화할 것으로 보고 경계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즉석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같은 입장을 설명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등을 검토하는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거래 재료로 삼을 생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미사일 폐기’를 향한 구체적 행동을 이끌어내려면 어느 정도 양보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평화헌법 개정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개헌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지만 일본 국민 10명 중 6명은 개헌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헌법 시행 71주년(5월 3일)을 앞두고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8%가 “아베 정권에서의 개헌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개헌 찬성은 30%였다. 지난해 같은 질문에 반대 50%, 찬성 38%였던 것에 비해 1년 만에 개헌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유권자 1949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시행 70주년인 지난해 헌법기념일에 자신의 개헌안과 2020년까지 개헌을 완수한다는 로드맵을 공개하며 본격적으로 개헌 작업에 속도를 냈다. 개헌안의 골자는 전력 포기 등의 내용을 담은 현행 헌법 9조를 그대로 두되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조항을 추가한다는 것이었다. 집권 자민당은 이후 자체 개헌안을 만드는 등 개헌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국민 여론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아베 총리가 1년 전 내놓은 헌법 9조에 자위대 조항을 두는 안에 대해서도 반대가 53%로 찬성(39%)을 크게 웃돌았다. 당정이 한목소리로 개헌 당위성을 강조함에도 여론이 따라오지 않는 것은 잇단 스캔들과 그 처리 과정에서 확인된 신뢰 상실 영향이 크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사학재단 모리토모(森友)학원, 가케(加計)학원과 관련된 스캔들에 휩싸이며 지지율 급락으로 고심했지만 10월 중의원 해산에 이은 총선 승부수를 띄워 압승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여기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도 크게 힘을 보탰다. 하지만 올해 3월 불거진 두 번째 사학스캔들이 정국을 강타하며 개헌 드라이브에 다시 급제동이 걸렸다. 실제로 이번 여론조사에서 내각지지율은 36%로 지난해 같은 조사 때의 55%보다 급락했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56%로 35%에서 크게 늘었다. 중동을 순방 중인 아베 총리는 1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개헌 스케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논의를 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1년간 상당히, 비판도 포함해 논의가 깊어졌다. 또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개헌을 계속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아베 총리는 같은 날 도쿄에서 열린 국회 초당파 의원들로 구성된 개헌추진 의원모임 집회에 보낸 메시지에서도 “일본의 독립과 평화를 지키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고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라고 거듭 주장했다. 아베 총리의 한 측근은 아사히신문에 “아베 총리가 개헌 깃발을 내리게 되면 지지기반이 공중분해 돼 버릴 것이란 걱정이 팽배해 있다”고 위기감을 전했다. 지난해와 달리 북풍몰이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회도 여론도 차갑게 식어가는 현실은 아베 총리에게 엄혹하기만 하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외교 성과인 이란 핵 합의 파기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이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내 말이 100% 옳았다는 점이 진실로 입증됐다”고 맞장구치며 핵 합의 파기를 시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3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국방부에서 TV연설을 통해 “이란이 아주 큰 거짓말을 했다”며 이란이 2015년 핵 합의에 서명하기 전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감춘 사실을 입증할 방대한 자료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주 전에 5만5000쪽에 달하는 문서와 5만5000건의 파일이 담긴 CD 183장을 입수했다”며 “이것들은 2017년 테헤란 비밀 장소로 옮겨졌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올해 1월 테헤란의 비밀 창고를 급습해 ‘프로젝트 아마드’로 불리는 이란 핵무기 프로그램의 자료들을 손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프로젝트 아마드는 핵무기를 고안하고 실험하기 위한 포괄적 프로그램”이라며 “이란이 핵 합의에 서명한 뒤 이를 숨기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비난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영어로 진행한 이날 프레젠테이션은 TV로 생중계됐다.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은 12일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관련 중대 결정을 앞두고 핵 합의 파기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옳은 일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가 내놓은 자료들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수전 멀로니는 “네타냐후가 언급한 어떤 것도 이란 핵 합의에 대한 근거를 약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모하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내가 어떤 일을 할지는 다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핵 합의 파기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다만 “탈퇴를 하더라도 진정한 합의를 위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미국의 요구들이 반영된 새로운 핵 합의를 위한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란은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은 거짓이라며 맹비난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거짓 경고를 멈출 수 없는 늑대소년이 또 말썽을 피우고 있다”며 “합의 파기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이미 처리된 해묵은 의혹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차관도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은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쇼”라고 비난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중동을 다시 뒤흔들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시도에 대해 일본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근 중동 순방(4월 29일∼5월 3일)에 나선 것도 중동 평화 유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순방에 앞서 “중동 평화와 안정에 공헌하고 싶다”고 밝혔다. 일본은 미국이 최근 북-미 정상회담에 전향적으로 나오는 배경에는 중동과 동아시아 두 지역에서 동시에 분쟁이 터지는 것을 피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달 중하순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교섭에서 ‘쉬운’ 타협을 하면서 일본에 리스크를 남길 가능성도 경계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정권이 중동 평화를 측면에서 지원해 미국의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안보에 대한 관여를 유지하게 하려 한다”고 전했다.카이로=박민우 minwoo@donga.com / 도쿄=서영아 특파원}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북한 불신론이 여전히 뿌리 깊다. 하지만 한반도를 아는 전문가일수록 회의론이 급격히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교정치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인 기무라 간(木村幹) 고베(神戶)대 교수는 29일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실현을 최우선으로 하며 미국이 ‘노’라 말할 수 없는 선언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이번 움직임에서 한국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반면 일본 정부는 어젠다 설정에 제대로 관여하지 못했다”며 “이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이 변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전후(戰後) 일본에서는 미국이 한반도와 관련한 중요한 일로 움직일 때는 일본에 사전에 설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미국이 서방 보스라면 일본은 ‘동아시아의 지배인’ 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드러난 ‘일본 배제’는 이제 일본이 ‘동아시아의 여러 지점장’ 중 한 명에 그친다는 현실을 보여줬다는 게 그의 평가다. 기무라 교수는 일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움직임에 끼지 못한 이유는 한반도 문제에 일본이 어떻게 관여하고 싶은지 관계국들에 명료하게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이번 남북 정상회담 성과는 동아시아 지역의 중요 과제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개국에 의해 개선된 ‘실적’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일본이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하지 않은 대가는 작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미국과의 양호한 관계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정책의 그랜드 디자인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일본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외교 방침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선택지는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미국과 한국을 신뢰한다는 자세로 지켜보든지, 아니면 한국이나 중국에 날아가 일본의 이해를 강하게 어필하든지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명예교수도 앞으로 벌어질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북-미 간 인식차가 우려되지만 회담 성공 가능성은 70% 이상”이라고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최대 목적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성공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일본 내에서 ‘비핵화 방법이나 시기 등 구체적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자꾸 나오지만 이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개인적인 습관이지만 상황이 복잡할수록 그 상황을 핸들링하는 ‘사람’의 욕구가 무엇인지 짚어보곤 한다. 그러면 맞건 틀리건 그 나름대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가령 예측불허로 악명 높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의 모든 판단과 선택은 11월로 다가온 중간선거 승리와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남을 업적’에 연동된다고 해석하니 상황을 이해하기 쉬웠다. 평소 “군사옵션도 불사하겠다”며 북한에 호전태세였던 그는 지난달 9일 전격적으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하겠다고 나섰다. 마침 전직 포르노 여배우의 성추문 폭로 방송이 임박해 신경이 곤두선 상황이었다. 이후 그는 백악관 핵심에 강경파만을 포진시키며 김정은을 압박하면서, 한편으론 북한과 물밑교섭 작업을 해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혹은 일본 외교가는 이 같은 트럼프의 이기적 욕구를 읽지 못했던 듯하다. 트럼프가 그날 아침 전화로 “신조, 굿 뉴스다”라며 북-미 정상회담 추진 방침을 밝히자 충격에 빠진 아베는 즉석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미국 플로리다까지 날아간 아베가 트럼프에게서 건진 것은 “일본인 납치문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두 약속뿐이다.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양국 간 무역협상의 방식을 놓고 두 정상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간 밀월을 유지해온 트럼프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지만 오산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웃는 얼굴로 트럼프를 대하는 아베의 모습에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묻어났다. 상대적으로, 김정은은 트럼프의 욕구를 간파해 제대로 파고들었던 것 같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중간선거 승리와 재선까지 거론하며 미국이 바라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문재인 정권이 올림픽의 성공 개최나 남북대화의 공을 모두 트럼프에게 돌린 ‘칭송 외교’도 주효했다. 트럼프의 성격을 잘 파악해 분위기를 맞춰주며 지금의 대화국면을 만들어온 한국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한국 정부 주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트럼프 노벨평화상’ 아이디어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아베 정권은 왜 트럼프의 속내를 읽지 못했을까. 그 자신이 자국에서 이기적인 강자 역할에 젖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막상 일본에서는 아베의 사적 이해에 공적 영역이 휘둘리고 있다. 2대 학원 스캔들로 일본의 관료조직이 만신창이가 된 것이 그 전형이다. 아베 정권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관료들에게 ‘벼락출세’로 보답했다. 그러고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들을 ‘꼬리 자르기’에 사용하고 있다. 공(公)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의 행태를 사(私)의 논리로 이해하는 게 빠르다면 그건 바람직한 세상은 아니다. 이런 곳에서는 갑질이 통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고 권력에 기생하려는 세력이 번성한다. 약자는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트럼프와 아베의 경우에서 보듯, 지금은 강자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대다. 그리고 그 강자 트럼프에게 한반도의 운명이 상당부분 달려 있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트럼프 사심의 잣대가 갑자기 바뀌지 말란 법이 없다. 자타 공히 ‘맹우(盟友)’로 여겼던 아베가 트럼프에게 당하는 것을 보며, 더 힘없는 처지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더 조심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선다. 강자의 이기심이 작동하면 정의도, 대의명분도, 체면도 따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진정한 한반도 평화가 시작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응은 신속했다. 북한이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중지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발표한 지 1시간여 만에 트위터로 환영 입장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북한과 세계에 매우 좋은 소식이자 큰 진전이다.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적었다. 북-미 정상회담 전망을 밝게 하는 긍정적 신호로 평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 5시간 뒤 한 번 더 트위터에 “모든 이들을 위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글을 올리며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환영과는 달리 한반도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왔던 백악관 관리들의 반응은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 인사들이 이번 발표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놓은 덫일 수 있다는 경계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의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1999년 북한을 방문해 핵실험 중단과 경제 지원을 골자로 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어냈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온갖 비난과 굴욕 속에서도 완성시킨 핵능력인데 이를 쉽게 포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김정은은 비핵화 일정을 크게 늦춰 나중에는 흐지부지되는 것을 노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벤저민 실버스타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외교학)는 WP와의 인터뷰에서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자신감과 능력 과시가 이번 발표의 숨은 의미”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국장이었던 존 울프스탈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북-미 대화 의도를 밝힌 뒤부터 김정은은 타협과 양보의 제안을 줄지어 하고 있고, 미국은 그냥 받는 입장이다”며 “이는 북-미 정상회담 실패 시 책임은 자신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는 것을 공고히 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내 회의론 확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오전 트위터에 “일들(북한 비핵화)이 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오래전에 해야 했던 것”이라며 전임 행정부들을 비난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북한 발표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충분하지 않다는 복잡한 반응을 보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1일 기자들에게 “긍정적인 움직임”이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핵과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로 이어질 것인지 여부다. 확실히 주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최대한의 압력으로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게 하겠다는 일본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21일 “북한의 결정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동북아시아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한 단계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 뉴욕=박용 / 도쿄=서영아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 시간) 미일 정상회담 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48분이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회견을 주도했다. 취임 이후 외국 정상과 회담한 뒤 가진 회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기자들에게 할애했다. 국민들에게 회담 성과를 상세하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자신감을 보인 분야는 북핵 문제였다. 그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도록 뭐든지 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는 승부사 기질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 발언들 중 가장 확신에 찬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미국과 북한이 한 달 넘게 양측의 권력 핵심부 인사를 통해 진행해 온 물밑 조율에서 기존의 불신을 해소해 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어느 정도 확인했고, 북한 역시 미국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에 대해서는 신중한 기류를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미 간에 주고받을 내용에 대한 조율이 상당 부분 진행됐거나 논의되고 있다는 관측이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선언에 더해 실질직으로 이를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 경제적 지원 방안을 제시해 공감대가 형성되는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해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평화체제 구축에는 논리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가 포함될 수 있고, 실질적인 체제 보장을 원하는 북한도 이를 강력히 원하고 있지만, 태평양 패권을 노리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협상은 미국이 유리한 고지에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철수 논의가 아니라) 주한·주일 미군이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고난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성과 없는 회담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내가 가 있는 동안 회담에서 결실이 없으면 나는 정중하게 회담장을 떠나 우리가 해온 것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성공을 거두겠다”는 발언이 국내 정치용이었다면,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발언은 북한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북한과 이야기가 되기 시작한다고 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제재를 푸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비핵화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최대의 압박’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억류된 3명의 미국인 석방을 위해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대화가 아주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미 정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후보자가 김 위원장에게 북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은 김동철, 김상덕, 김학송 씨 등 3명으로 모두 한국계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가능한 일을 하겠다”며 “난 아베 총리에게 이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의) 조기 해결을 요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발언을 높이 평가한다”고 화답했다. 워싱턴=박정훈 sunshade@donga.com / 도쿄=서영아 특파원}

“다른 분들은 제 목소리라고 하는데, 저는 제 목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18일 오후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사진) 일본 재무성 사무차관의 설명을 듣던 기자들 사이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지난주 한 주간지의 폭로로 여기자들에게 상습적인 성희롱을 한 의혹을 받던 후쿠다 차관은 이날도 “그렇게 지독한 말은 한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다만 그런 보도가 나온 것 자체가 부덕으로 직책을 완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늘어놓으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주 시사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는 후쿠다 차관이 밤에 여기자들을 불러내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 “호텔에 가자”, “키스하자” 는 등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후쿠다 차관은 부인했고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말로 충분히 주의를 줬다”며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13일 주간지 측이 인터넷에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녹음파일에서 후쿠다 차관이 “오늘 안아도 되느냐”, “손을 묶어도 되느냐”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쿠다 차관은 “업무가 끝난 뒤 가끔 여성이 접대하는 장소에 가서 말장난을 한 적은 있다”고 변명했으나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재무성은 16일 출입 언론사에 공문을 보내 “피해를 본 여기자가 있으면 조사에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재무성 사무차관 낙마 사건은 성범죄에 대한 일본의 뒤처진 인식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무풍지대였던 일본에서도 운동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자사 기자의 피해를 묵살한 언론사, 증거가 나와도 일단 부인하고 보는 가해자, 2차 피해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 등이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야당들이 아소 부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가운데 마이니치신문은 19일 “재무성 해체론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성희롱 사무차관의 사임으로 인한 후폭풍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도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아베 총리가 급히 미국 방문길에 오른 것은 국내적으로는 모리토모(森友), 가케(加計) 등 사학스캔들 재점화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반전시키고 국제적으로는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저팬 패싱(배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였다. 방미는 지난달 9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과의 전격 회담 의향을 밝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결정됐다. 하지만 17, 18일 이틀에 걸쳐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별장에서 이뤄진 정상회담을 끝낸 아베 총리의 손에 남은 결과물은 “(5월 말∼6월 초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 하나인 셈이 됐다. 안보 분야에선 작은 선물을 챙겼지만 통상 분야에서는 ‘커다란 혹’을 붙인 채 귀국하게 됐다. 일본이 내심 기대했던 수입철강 고율관세 대상국 제외 요청을 사실상 거절당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에 못 이겨 일본이 꺼리는 미일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를 위한 협의체 마련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 미일 통상 문제로 아베 총리를 몰아붙였다. 이미 회담 전 워킹런치 자리에서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크다”라며 “그것을 제거하고 가능한 한 가까운 미래에 균등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일 FTA 요청을 경계하며 미국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촉구할 방침이었으나, 트럼프는 전날 밤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 및 한국은 미국의 TPP 복귀를 바라겠지만 미국에는 양자협상이 더 좋다”고 적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아베 총리와의 오찬장에서 “우리는 북한과 매우 높은, 극도로 높은 수준의 직접 대화를 나눴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후보자가 이달 초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과 면담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간 대북 강경 일변도를 주장해 온 아베 총리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아사히신문은 19일 아베 총리가 한반도 문제에서 향후 대북 정책의 방향성을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서영아 특파원}
미일 간의 무역 문제는 회담 이틀째에 집중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간) 미일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 기자들 앞에서 “내일은 무역에 대해서도 논의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일본은 미국에서 많은 방위장비품을 구입하고 미국은 일본에서 많은 차를 사고 있지만 무역에 대해서는 논의해야 할 게 있다”며 통상 문제에 대해 집중 논의할 생각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무역 불균형 문제에 관한 한 일본에 대해 비판을 거두지 않아 왔다.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 제한 조치에서는 일본이 동맹국인데도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고 철강 알루미늄 등의 수입 제한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기존 미일 경제대화와 별도로 무역이나 투자 문제에 관해 대화하는 새로운 논의의 틀을 만들자고 제안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미일 정상 간의 만찬이 끝난 뒤 트위터에 “일본은 우리에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요구하지만 양국 간 협의 쪽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만일 TPP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만일의 사태가 너무 많고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며 “양자 간 거래가 우리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효율적이고, 이익이 되며, 더 좋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얼마나 미국에 나쁜지 보라”고 덧붙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의를 다시 요구해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 소유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을 위해 납치 문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날 5월 또는 6월 초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 대응 방안으로 북한 핵·미사일 계획의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폐기’를 지향한다는 방침을 확인하고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날 회담은 처음 양 정상 간에 55분간 진행된 뒤 1시간 10분 동안 소인수 회담으로 진행됐다. 소인수 회담엔 일본 측에서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관방부(副)장관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이, 미국 측에선 존 설리번 국무장관대행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그리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참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베 총리와 같은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기자들 앞에 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등 대화 국면에서 일본이 소외되고 있다는 ‘저팬 패싱’ 우려를 해소하려는 듯 자신과 아베 총리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매우 매우 특별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시종일관 ‘도널드’로 부르며 친분을 과시했다. 아베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국제사회를 리드해 압력을 최대한으로 높인 결과, 북한이 대화를 요청해왔다. 우리의 접근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결단한 대통령의 용기를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미국은 북한 문제에서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납치문제 제기를 요청하자 “납북 일본인 문제를(북-미 정상회담에서) 제기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해결해야 할 때다. 일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기쁜 표정으로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얼마나 걱정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외에 일본인 납북자와 억류 미국인 등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다.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인 김동철, 김상덕, 김학송 씨 문제가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 앞에서 “혹 가능하다면, 시간이 된다면 우리는 내일 아침 살짝 빠져나가 (아베 총리와) 골프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 회동 요청을 한 차례 거절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차 제안하자 미일 간 밀월 분위기를 깰 것을 우려해 받아들였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얘기를 꺼내자 옆에 서 있던 아베 총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상회담을 끝낸 뒤 만찬을 앞두고 두 정상은 부부 동반으로 별장 앞 잔디밭을 함께 거닐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직 포르노 여배우와의 스캔들로 인한 불화설을 불식하듯 멜라니아 여사의 손을 잡고 등장했다. 아베 총리는 사학재단 모리토모(森友) 스캔들의 주인공 아키에(昭惠) 여사와 손을 잡지는 않았으나 아키에 여사가 잔디밭에서 나올 때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기도 했다. 소인수 회담에 참석한 니시무라 관방부장관은 이날 회담에 대해 “대부분 북한 문제였다”며 이틀째가 되는 18일 워킹런치에서는 통상문제가 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고령화가 진행되면 인지증(치매) 환자도 늘기 마련이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제대로 알고 대응한다는 자세로 인지증과의 공존을 모색 중이다. 아사히신문은 15일 인지증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당사자나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인지증 서포터’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제도를 이끄는 ‘전국 캐러밴 메이트 연락협의회’에 따르면 서포터는 3월 말 현재 1015만1600여 명으로 처음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20세 미만 서포터만 210만 명에 이른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단위로 서포터 양성 강좌를 수강하는 경우가 늘어난 덕이다. 인지증 서포터가 되려면 약 90분의 무료 강좌를 들어야 한다. 인지증 원인이나 증상에 대해 설명을 듣고 ‘놀라게 하지 않는다, 서둘지 않는다, 자존심에 상처 주지 않는다’ 등 인지증 환자에게 접근하는 자세를 배운다. 서포터 제도는 후생노동성이 2005년 당시 치매라는 단어가 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여 인지증으로 바꾼 직후 도입했다. 인지증에 대해 잘 모르면서 편견에 찬 시선이 많다는 평가에 따라 제대로 알고 불안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서포터 확산이 조기 대응이나 치료로 연결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32.6%에 달하는 후쿠이(福井)현 와카사(若狹)정은 인구 1만5000명 중 1만2000명이 서포터 양성 강좌를 수강했다. 간호사들이 고령자 집을 방문해 뇌의 모형을 사용하며 일대일로 설명하거나 부인회나 지역 모임을 찾아갔다. 그 결과 과거 인지증을 숨기려던 분위기가 확 달라져 “우리 아버지가 이상해 보이면 알려 달라”고 이웃에 부탁하는 등 개방적으로 변했다. 이 지역 병원 조사에 따르면 와카사정은 인근 지역보다 조기에 인지증 검진을 받는 사람이 늘었고 그만큼 병세도 가벼웠다. 초진 단계에서 경증 이하인 사람이 와카사정은 75%였던 데 비해 주변 지역은 50∼64%에 불과했다. 아키타(秋田)현 우고(羽後)정에서도 서로 돕는 정신이 확산되고 있다. 이 지역 인지증 서포터 협회 회원은 약 60명. 환자와 주민이 교류하는 카페를 열고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트레이닝도 도입했다. 협회가 상담창구 역할을 맡고 상점이나 택시회사, 학부모회 등이 속속 참가하면서 “같은 물건을 몇 번이나 사가는 사람이 있다”거나 “길을 헤매는 할머니가 있다”는 정보들이 빈번하게 들어오고 있다. 한편 총무성이 14일 발표한 인구추계(2017년 10월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3515만 명으로 인구의 27.7%를 차지했다. 인지증 환자도 갈수록 늘어 2025년에는 약 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3연임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15일 일본 언론이 전했다. 아베 총리는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을 노리고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전날 이바라키(茨城)현 미토(水戶)시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모리토모(森友)학원과 가케(加計)학원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총리의 자세를 지적하며 “이제 신뢰가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들린다”며 “3연임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전 문제로 갈라서기 전까지 아베 총리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15년 야나세 다다오(柳瀨唯夫) 당시 총리비서관이 에히메(愛媛)현 직원 등과 만나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 문제가 ‘총리안건’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나왔음에도 “면회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그는 “많은 국민은 기억보다는 기록을 믿을 것이다.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 모두가 상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14일 오후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아베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집회가 3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참석자들은 “제대로 된 정치를 하라” “아베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일하는 기쁨을 누구에게나.” 일본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에 자리한 분필제조회사 ‘니혼리카가쿠(日本理化學)공업’. 4일 찾은 공장은 오전 8시 반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언뜻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공장이지만 종업원 85명 중 63명이 지적장애인이다.특히 제작라인 직원 15명은 전원이 지적장애인이다. 》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없지 않았으나 이 회사는 현재 일본 내 분필업계에서 시장점유율 1위(60%)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매년 성장하고 있기도 하다. 비결은 남다른 집중력이다. 지적장애인은 보통 사람의 10배가 되는 집중력으로 일할 수 있다. 물론 공장 직원들은 남들보다 모자란 부분이 적지 않다.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 글씨를 못 읽는 사람, 눈으로 본 것은 따라 해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이런 결점들이 약간의 연구와 배려를 통해 메워지자 여느 인재들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여줬다. 회사 측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래시계를 제공하고 색색 그림으로 이뤄진 공정표를 만드는 등 각자에게 맞는 업무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애써 왔다. 이들을 채용할 때 회사는 ‘5가지 약속’을 요구한다. △혼자 힘으로 회사에 출퇴근할 수 있을 것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것 △인사를 잘 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할 것 △열심히 일할 것 △주변 사람의 얘기를 잘 들을 것 등이다. 입사하면 대부분 정년까지 일하는 충성도를 보인다. 대개 18∼19세에 입사하니 직원의 나이가 곧 경력인 경우가 많다. 항상 웃는 얼굴인 나카야마 후미아키 씨(39)는 20년 경력이다. 분필을 프레스로 절단해 건조 공정에 넣는 일을 한다. ‘뭐가 그렇게 즐거우냐’고 묻자 더듬으면서도 “모두 함께 일하니 늘 즐겁다”고 말했다. 38년 경력의 하라 나오미 씨(57)는 분필을 상자에 넣는 일만을 해 왔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손놀림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가나가와현의 최저시급인 시간당 956엔. 주 40시간, 한 달 20일 일하면 15만여 엔(약 150만 원)을 받게 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땀 흘려 번 돈이다. 일본 정부에선 1인당 월 2만1000엔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193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원래 ‘보통’ 분필공장이었다. 일본 최초로 탄산칼슘에 가리비 껍데기 가루를 섞은 분필을 개발해 ‘인체에 무해한 분필’로 문부성 추천을 받은 게 자랑인, 평범한 회사였다. 장애 직원을 고용한 것은 1960년 회사 인근 장애인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여학생 2명을 실습생으로 받은 일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장애인학교 교사가 근처 공장들을 찾아가 제자들의 취직을 부탁했다. 두 번을 거절했지만 교사는 세 번째 찾아와 “취직이 아니어도 좋다. 제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일하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며 며칠만이라도 실습을 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일본에서 지적장애인은 15세에 장애인학교를 졸업하면 지방의 장애인시설로 보내져 평생을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대 사장으로 당시 전무였던 오야마 야스히로(大山泰弘) 회장은 순전한 동정심에서 두 여학생을 2주간 실습생으로 받아들였다. 아이큐 70 이하로 읽고 쓰기도 못하는 소녀들은 상품에 스티커 붙이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인 것처럼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려도 옆에서 흔들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침이면 공장 문을 열기 2시간 전부터 출근해 문 앞에서 기다렸다. 2주일이 끝나는 날, 직원들이 ‘우리가 돕겠다’며 2명의 채용을 회사에 건의했다. “아이들이 열심인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일에 더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거였다. 두 소녀는 그 뒤 정사원으로 채용돼 65세 정년퇴직 때까지 무지각 무결근으로 회사를 다녔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과정에서 회사로서도 고민이 없지 않았을 터. 당시 오야마 전무는 우연히 한 스님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이렇게 물었다. “장애인을 몇 명 고용하고 있는데 실수도 많고 가르쳐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매일 야단을 맞고서도 다음 날이면 출근 시간보다 빨리 회사에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왜 힘들게 회사에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돌아온 스님의 답에 그는 무릎을 쳤다. “당신은 돈 많고 물건을 많이 가지면 행복합니까. 아닐 겁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 칭찬받는 것, 도움이 되는 것,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 사랑받는 것을 제외한 3가지가 충족됩니다.” 이후 회사는 장애인 고용을 늘려 왔다. 3대 사장은 이때 ‘기업의 존재 가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훗날 밝혔다. ▼ 2008년 책으로 소개… 日 총리도 국회연설서 언급 ▼2008년 4대 사장에 취임한 오야마 다카히사(大山隆久·사진) 사장 또한 입사 초기에 고민이 많았다. 20대 후반까지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입사한 그는 “저출산 시대에 분필시장은 갈수록 좁아진다. 기업은 효율을 높이고 이윤을 창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업종을 바꾸고 장애인 고용도 줄여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수년간 회사에서 일을 해본 뒤 “이 회사에서 장애인 고용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함께 일해 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절대 하루 8시간을 그렇게 집중해서 일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저희 회사를 장애인을 돕는 사회공헌기업이라 하지만 사실은 장애인들 덕에 회사가 운영되는 겁니다.” 이 회사는 2008년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라는 책에 소개된 뒤 2009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총리가 국회 연설에서 언급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매출은 연 6억∼8억 엔 정도지만 매년 늘고 있다(표 참조). 어디에나 그릴 수 있고 물로 지울 수 있는 고형 분필 ‘키토파스’를 개발하는 등 시대 변화에 맞는 제품 개발에 힘을 쏟은 게 주효했다. 4대 사장은 “저희는 일반 회사다.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가 일할 터전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필사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기업’의 저자는 “복지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1명에게 국가가 들이는 돈은 연간 500만 엔 선이다. 20∼60세까지 1인당 2억 엔이 들어간다는 얘기”라며 “1인당 연간 100만 엔 정도만 기업에 지원해줘도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에 적극 나설 것이고 국가도 엄청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가와사키=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하는 기쁨을 누구에게나.” 일본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에 자리한 분필제조회사 ‘니혼리카가쿠(日本理化學)공업’. 4일 찾은 공장은 오전 8시 반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언뜻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공장이지만 종업원 85명 중 63명이 지적장애인이다. 특히 제작라인 직원 15명은 전원이 지적장애인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도 있지만 이 회사는 현재 일본 내 분필업계에서 시장점유율 1위(60%)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매년 성장하고 있기도 하다. 비결은 남다른 집중력이다. 지적장애인은 보통 사람의 10배가 되는 집중력으로 일할 수 있다. 물론 공장 직원들은 남들보다 모자란 부분이 적지 않다.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 글씨를 못 읽는 사람, 눈으로 본 것은 따라 해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이런 결점들이 약간의 연구와 배려를 통해 메워지자 여느 인재들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여줬다. 회사 측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래시계를 제공하고 색색 그림으로 이뤄진 공정표를 만드는 등 각자에게 맞는 업무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애써 왔다. 이들을 채용할 때 회사는 ‘5가지 약속’을 요구한다. △혼자 힘으로 회사에 출퇴근할 수 있을 것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것 △인사를 잘 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할 것 △열심히 일할 것 △주변 사람의 얘기를 잘 들을 것 등이다. 입사하면 대부분 정년까지 일하는 충성도를 보인다. 대개 18~19세에 입사하니 직원의 나이가 곧 경력인 경우가 많다. 항상 웃는 얼굴인 나카야마 후미아키 씨(39)는 20년 경력이다. 분필을 프레스로 절단해 건조 공정에 넣는 일을 한다. ‘뭐가 그렇게 즐거우냐’고 묻자 더듬으면서도 “모두 함께 일하니 늘 즐겁다”고 말했다. 38년 경력의 하라 나오미 씨(57)는 분필을 상자에 넣는 일만을 해 왔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손놀림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가나가와현의 최저시급인 시간당 956엔. 주 40시간, 한 달 20일 일하면 15만여 엔(약 150만 원)을 받게 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땀 흘려 번 돈이다. 일본 정부에선 1인당 월 2만1000엔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193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원래 ‘보통’ 분필공장이었다. 일본 최초로 탄산칼슘에 가리비 껍데기 가루를 섞은 분필을 개발해 ‘인체에 무해한 분필’로 문부성 추천을 받은 게 자랑인, 평범한 회사였다. 장애 직원을 고용한 것은 1960년 회사 인근 장애인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여학생 2명을 실습생으로 받은 일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장애인학교 교사가 근처 공장들을 찾아가 제자들의 취직을 부탁했다. 두 번을 거절했지만 교사는 세 번째 찾아와 “취직이 아니어도 좋다. 제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일하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며 며칠만이라도 실습을 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일본에서 지적장애인은 15세에 장애인학교를 졸업하면 지방의 장애인시설로 보내져 평생을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대 사장으로 당시 전무였던 오야마 야스히로(大山泰弘) 회장은 순전한 동정심에서 두 여학생을 2주간 실습생으로 받아들였다. 아이큐 70 이하로 읽고 쓰기도 못하는 소녀들은 상품에 스티커 붙이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인 것처럼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려도 옆에서 흔들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침이면 공장 문을 열기 2시간 전부터 출근해 문 앞에서 기다렸다. 2주일이 끝나는 날, 직원들이 ‘우리가 돕겠다’며 2명의 채용을 회사에 건의했다. “아이들이 열심인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일에 더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거였다. 두 소녀는 그 뒤 정사원으로 채용돼 65세 정년퇴직 때까지 무지각 무결근으로 회사를 다녔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과정에서 회사로서도 고민이 없지 않았을 터. 당시 오야마 전무는 우연히 한 스님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이렇게 물었다. “장애인을 몇 명 고용하고 있는데 실수도 많고 가르쳐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매일 야단을 맞고서도 다음 날이면 출근 시간보다 빨리 회사에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왜 힘들게 회사에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돌아온 스님의 답에 그는 무릎을 쳤다. “당신은 돈 많고 물건을 많이 가지면 행복합니까. 아닐 겁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 칭찬받는 것, 도움이 되는 것,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 사랑받는 것을 제외한 3가지가 충족됩니다.” 이후 회사는 장애인 고용을 늘려 왔다. 3대 사장은 이때 ‘기업의 존재 가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훗날 밝혔다. 2008년 4대 사장에 취임한 오야마 다카히사(大山隆久) 사장 또한 입사 초기에 고민이 많았다. 20대 후반까지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입사한 그는 “저출산 시대에 분필시장은 갈수록 좁아진다. 기업은 효율을 높이고 이윤을 창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업종을 바꾸고 장애인 고용도 줄여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수년간 회사에서 일을 해본 뒤 “이 회사에서 장애인 고용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함께 일해 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절대 하루 8시간을 그렇게 집중해서 일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저희 회사를 장애인을 돕는 사회공헌기업이라 하지만 사실은 장애인들 덕에 회사가 운영되는 겁니다.” 이 회사는 2008년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라는 책에 소개된 뒤 2009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총리가 국회 연설에서 언급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매출은 연 6억~8억 엔 정도지만 매년 늘고 있다. 어디에나 그릴 수 있고 물로 지울 수 있는 고형 분필 ‘키토파스’를 개발하는 등 시대 변화에 맞는 제품 개발에 힘을 쏟은 게 주효했다. 4대 사장은 “저희는 일반 회사다.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가 일할 터전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필사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기업’의 저자는 “복지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1명에게 국가가 들이는 돈은 연간 500만 엔 선이다. 20~60세까지 1인당 2억 엔이 들어간다는 얘기”라며 “1인당 연간 100만 엔 정도만 기업에 지원해줘도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에 적극 나설 것이고 국가도 엄청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가와사키=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나는 안락사로 가고 싶다’고 선언한 93세 노작가 하시다 스가코 씨. 그의 저서를 두 권 읽고도 인터뷰 신청을 할지 오래 망설였다. 이미 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죽음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럽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안락사라는 주제가 너무 쇼킹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인터뷰 기사(본보 3월 30일자 A32면)에 달린 댓글들은 그런 망설임이 기우였음을 보여줬다. 대부분이 하시다 씨의 안락사론에 공감을 표하는 내용이다. 솔직히 놀랐다. 특히 “내가 나일 수 있을 때라는 말이 뼛속 깊이 다가온다”거나 “안락사라는 보험이 있다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글들이 그랬다. 죽음이란 과거에는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이었다. 어른들은 때가 되면 늙고 자연의 한 과정으로서 죽어갔다. 그 바로 곁에서는 아이들이 새로 태어났다. 하지만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의술이 발전하면서 죽음은 병원 안에 가둬졌다. ‘삶’과 ‘숨만 쉬는 상태’의 괴리는 더 이상 보이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게 됐다. 우리는 막상 자신의 일로 맞이하기 전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생활한다. 그런 점에서 분게이괴주(文藝春秋) 지난해 3월호가 명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명 설문조사 내용도 공감이 갔다. 60명 중 33명이 적극적 안락사에, 20명이 존엄사에 찬성한 가운데 고령자일수록 안락사에 찬성하는 비중이 높았다. 이들은 질문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답을 하고 있었다. 안락사는 회복할 가망이 없는 환자가 약물 등을 복용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고, 존엄사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연명치료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걸 뜻한다. 안락사에 찬성한 82세의 각본가는 “지금까지의 내 생에 납득하고 있다. 이별의 슬픔은 있겠지만 주위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고 적었다. 91세의 모친을 얼마 전 여읜 70세 평론가는 “마지막 1년은 불안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죽여 달라고 호소하는 엄마를 보며 정말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84세의 작곡가는 “자신이 자신으로 있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들었다. 75세의 전 방위청장관은 존엄사에 한해 찬성하면서 “태어난 것도 운명이고 죽을 때도 죽음을 회피하려 말고 운명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82세의 전 NHK 회장도 “자연의 흐름에 맡겨 종말을 맞고 싶다”며 존엄사에 찬성했다. 하시다 씨는 일본에서 ‘셀럽(유명인)’이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평생 미친 듯이 극본을 써낸 덕에”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매일 오전 가정부 5명이 집으로 와 살림을 돌봐주고 매년 호화 크루즈 여행에 나선다. 이런 하시다 씨가 ‘안락사로 가고 싶다’며 일본 내에서 관련 논의를 해달라고 문제 제기한 것은 작가로서 사회현상에 대해 그만큼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 무거운 주제를 아주 가볍게 꺼낸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안락사라는 ‘보험’이 있으면 더 맘껏 현재를 즐길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가령 저는 매년 해외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데, 어느 날 이렇게 돈을 써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혹시라도 100세를 넘겨 산다면? 그때 돈이 다 떨어져 버리면? 이런 생각을 하면 돈도 쓸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최후를 자신이 정한다는 것. 그에겐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저는 평생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90을 넘어서 죽을 때 존엄하게 죽을 권리 정도는 가져도 되는 것 아닐까요. ‘이젠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중일전쟁 초기 일본군의 손에 시민 수십만 명이 학살당했다는 ‘난징(南京)사건’의 현장 중국 난징에서 길을 묻는 일본인 여학생에게 지역 주민들이 친절하게 안내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중국의 인터넷에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고 NHK가 9일 전했다. 이 동영상은 인터넷 등에 동영상이나 의견을 보내는 중국의 ‘개인 미디어’ 팀이 제작한 것으로 4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등에 투고됐다. 동영상에서는 중국에서 유학 중인 일본인 여학생이 난징 거리 등에서 길을 묻자 20여 명의 지역 사람들이 누구나 친절하게 안내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중에는 여학생이 ‘난징사건’에 대해 말하며 “난징 사람들은 일본인을 증오하고 있지 않을까 하여 무서웠다”고 털어놓자 난징 사람들이 “과거 일은 당신들 세대와는 관계없다”거나 “우리 모두는 일본인에 대해 우호적이다”라고 답하는 장면도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방송은 이 동영상이 이미 300만 회 이상 재생됐다며 “마음이 따뜻해진다”거나 “감동했다”는 댓글이 적지 않아 화제라고 전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아이의 전학 수속을 밟기 위해 일본 도쿄 도심의 한 초등학교를 찾은 학부모 A 씨는 교장실로 안내받기까지 몇 번의 관문을 거쳐야 했다. 교문을 통과하기 위해 쪽문에 달린 초인종을 누르자 학교 안에서 인터폰으로 용건을 묻는다. 문이 열리면 학교 건물 1층 구석에 마련된 접수처에 신분증을 맡긴 뒤 이름과 주소, 방문 목적 및 시간, 연락처 등을 적고 나서야 출입증을 받았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목에 거는 출입증이다. 일본의 ‘학교시설 방범관리 지침’에 따르면 방문자 출입증의 경우 앞뒤 모두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목에 거는 명찰을 권고한다. 일본의 학교들은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2001년 6월 일본 오사카의 이케다 초등학교에 흉기를 든 괴한이 침입해 초등학생 8명을 살해하고 교사 2명에게 상해를 입힌 일이 학교 출입 통제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38세로 정신 병력이 있던 전과 15범의 범인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 이후 문부과학성을 중심으로 학교시설 안전관리 매뉴얼이 만들어지는 등 보안이 강화됐다. 일본 초등학교들은 등하교 때도 집 방향이 같은 학생들끼리 팀을 짜서 집단으로 귀가하도록 지도한다. 학내 총기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학교 내 모든 출입문에 상시 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범지대에 있는 일부 학교의 경우에는 총기 반입을 막기 위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에서는 학생증에 학생 정보가 담긴 칩을 심어 인식기에 갖다대는 방식으로 학교 시설 출입을 관리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에선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교가 출입자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친다. 버지니아주 롱펠로 중학교의 경우엔 재학생이라도 지각을 하면 별도의 소속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미국은 2012년 20대 괴한이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에 들어가 총을 난사해 26명(학생 2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로 대다수 주에서 경찰관 1명을 학교 안에 고정 배치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모든 학교에는 가디언(지킴이)이 있어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학부모조차도 학교 측이 정한 시간이 아니면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돼 있다. 자녀가 학용품이나 과제물을 빠뜨리고 등교한 경우라도 학부모는 자녀가 아닌 가디언에게 학용품 등을 전달해야 한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 / 워싱턴=박정훈 / 파리=동정민 특파원}

미국의 주지사들과 일본의 현지사들이 교류하는 ‘미일 지사회의’가 올여름 일본에서 개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아사히신문이 2일 전했다. 20년 이상 중단됐던 이 회의가 부활한 데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 탄생이 있다. 미국 통상무역정책의 불투명성이 커지면서 지사급에서라도 신뢰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커진 것. 2월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전미주지사회 동계총회에는 소노우라 겐타로(薗浦健太郞) 총리보좌관이 미국을 방문해 이틀간 네브래스카, 유타 등 5개 주 주지사를 만나고 다녔다. 같은 시기 일본의 전국지사회도 방미단을 만들어 히라이 신지(平井伸治) 돗토리(鳥取)현 지사가 총회 개회식에 출석했다. 미국 주와 일본 현 대부분이 참여한 미일 지사회의는 1962년 시작돼 1995년을 끝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제일주의’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 불가능성’을 외교카드로 삼자 불안을 느낀 일본이 지사들과 풀뿌리 차원의 교류 강화에 발 벗고 나섰다. 미국과 무역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각국이 주지사들에 대한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일본의 행보를 재촉하고 있다. 이번 전미주지사회 개회식에서는 호주의 맬컴 턴불 총리가 빅토리아주 총독 등을 데리고 날아왔다. 또 총회 전날에는 캐나다와 멕시코 주미대사관이 주지사들을 초대해 리셉션 파티를 열었다. 중국도 빈번하게 주지사들과의 회합을 갖는다.● 트럼프-아베 17,18일 美서 회담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7∼20일 미국 플로리다주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17, 18일 이틀간 정상회담을 갖는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남북과 미중의 4개국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을 대체할 4자회담 카드를 들고나오면서 미중 주요 2개국(G2)의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구상에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은 지난달 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과 미중 등 4개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포함해 ‘새로운 (한반도) 안전보장의 틀’을 제안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1일 보도했다.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한 다음 날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의 제안에 답하지 않은 채 중국에 대북 압박을 유지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주장해온 ‘쌍궤병행(雙軌竝行)’을 좀 더 구체화한 제안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협정이 같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제안은 1953년부터 이어진 휴전협정 체제를 종식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중국이 당사국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정전 65주년’에 맞춰 7월 26일 북한을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등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해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시 주석의 4자회담 카드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3개국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종전선언을 검토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과는 결이 다르다. 청와대는 중국의 개입에 긍정적이면서도 시 주석이 제안했다는 4자회담을 통한 남북미중 평화협정 체결 구상에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이 평화협정의 당사국이 맞느냐는 말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이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당사국 권리가 있는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며 “1974년 북한이 미국에 미군 철수 조건부 남북평화협정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정전협정 당사국의 권리를 북한에 맡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정전협정에 참여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종전선언 당사국이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북-미 간 비핵화 해법의 간극을 메울 새로운 해법을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선(先) 핵 포기-후(後)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만큼 미국이 원하는 북핵 포기와 북-미 수교를 원하는 북한의 요구를 절충할 로드맵을 중재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금은 누가 해법을 내도 포괄적, 단계적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며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포괄적 합의를 정상 간에 도출하되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해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방위비 협상을 연계해 한국을 압박하고 나선 것에 대해 백악관과 청와대의 긴밀한 핫라인 재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른바 ‘정-맥 라인’을 통해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며 양국 이슈를 조율해왔다. 하지만 존 볼턴 신임 보좌관이 9일부터 맥매스터 보좌관을 대체하기로 하면서 청와대는 곧 자리를 떠날 맥매스터와도, 그렇다고 볼턴과도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후임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의회 인사청문회 등을 통과한 뒤에야 제대로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한미 간 불협화음을 차단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북한의 불법적인 유류 및 석탄 밀수와 관련해 선박 27척과 운송 및 무역회사 21곳, 기업인 1명을 제재 명단에 추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대북제재 리스트를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제재 기조를 충실히 담은 것이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도쿄=서영아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북한 비핵화 의제는 포괄적·일괄타결 외에 다른 방안은 없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31일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북한의 비핵화 의제와 관련해 이렇게 단언하고 “다만 이행과정에서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이날 도쿄 와세다(早稻田)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반도 핵 위기-대화에 의한 해결은 가능한가’ 주제의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견해를 밝혔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 과정인 동결, 신고, 사찰, 검증, 폐기는 순차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원칙에 있어서는 일괄타결로 나가되 이행에 있어서는 단계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도 한꺼번에 줬다가 북한이 말을 안 들으면 손해인 만큼 단계별로 주고받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 특보는 북한이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의 남북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한 48개 교류협력사업을 검토해보니 최소한 20개는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와 관계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 나무심기 사업, 결핵환자 지원 등을 그 예로 들었다. 그는 “북한이 원하는 만큼은 아닐 수 있지만 제재 체제 안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다”며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면 우리 정부가 중국, 미국과 함께 유엔에 제재 완화를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문재인 정권 초기에 실시되는 만큼 남북 정상이 정례적으로 만나는 셔틀외교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북한의 비핵화 행보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전제로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1년에 한두 번씩 남북 간 정상외교를 한다면 남북 관계에 상당히 많은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특보는 “남북 정상회담은 성공하겠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변수가 너무 많아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기회를 포착해 앞으로 3개월 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문제에 대해 낙관론도, 비관론도, 회의론도 존재하지만 모두 비현실적”이라며 “남북 회담을 잘 준비하되, 그 과정에서 북한을 그대로 보고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북한을 정상국가로 유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1월 이래 북한을 정상국가로 대접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북한을 실제 정상국가로 행동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 등 일본 내 한반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일본의 한반도 관심이 많은 학자와 시민, 기자들이 420석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문 특보는 ‘북한이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경우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국내 정치가 혼란스러워지고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해질 테니 문 대통령이 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하면 주한미군의 철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딱 1번 쏜 ICBM 대신, 내미는 주한미군 철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연방제 방식 통일 구상과 관련해서는 “통일 방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2개 주권을 가진 남과 북 사이에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며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만드는 ‘남북연합’”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한국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되 결정적인 공적은 북-미 정상회담에 남겨줘 트럼프 대통령에게 (결정적 공로를) 돌리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토론자로 나온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요즘 한국 인터넷에는 ‘트럼프에겐 노벨평화상을, 한반도엔 평화를!’이란 슬로건이 등장했다”고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