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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뒤 또다시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제 인생이 더 재밌고 풍요로워졌다고 말하고 싶네요.”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올해 최고령 당선자인 시나리오 부문 정한조 씨(59)는 “28년 전 다른 신문사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뒤 인생이 재밌게 흘러간 경험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치 과거의 제가 미래의 저한테 바통을 넘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시상식에는 정 씨를 비롯해 중편소설 이상민(42), 단편소설 임택수(55), 시 한백양(본명 이상정·37), 시조 고은산(본명 고완수·56), 희곡 소윤정(50), 동화 이정민(45), 문학평론 황녹록(본명 황정화·53), 영화평론 민경민(본명 황경민·34) 씨까지 총 9개 부문 당선자가 참석했다. 당선자들은 단상에 올라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한백양 씨는 “괴로워지는 와중에도 시 쓰기가 재밌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소윤정 씨는 “오랫동안 연극의 길과 멀리 떨어져 있어 연극은 내게 ‘장롱면허’ 같았다. 어느 날 돌연히 글이라는 것이 저를 찾아와 장롱면허를 가지고 길을 나서게 됐다”고 했다. 이정민 씨는 “2016년 남편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됐을 때 이 자리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자리에 정말 설 수 있을지 몰랐다”며 감격했다. 임택수 씨는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무념무상에 이르기 전 생각하고 생각하는 한없이 지난한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찬 포부도 드러냈다. 고은산 씨는 “시조가 자유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쓰겠다”고 말했다. 황녹록 씨는 “비평이 닿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지점에 이르고 싶다”고 했다. 민경민 씨는 “스크린 아래 마련된 은은한 등불로 좋은 영화를 꾸준히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상민 씨는 “삶과 맞대면하고 말해야만 하는 것을 적겠다”고 말했다. 천광암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축사에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40세에 데뷔했다. 오늘 수상자들이 결코 늦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격려했다. 심사위원인 최윤 소설가는 “비언어적 시대, 언어가 뒤로 어딘가 숨어 들어간 때에 언어를 선택한 수상자가 귀해 보인다.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최윤 구효서 소설가, 조강석 문학평론가, 이근배 이우걸 시조시인, 노경실 동화작가, 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 김시무 영화평론가, 이정향 영화감독,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른바 ‘검정고무신 사건’을 계기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안(문화산업공정유통법)’을 두고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법 제정 과정에서 웹툰계의 여론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았고, 시행 시 웹툰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 반면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선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나온다.》● “초반 회차 무료 공개 막힐 수 있어”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건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출판·캐릭터 업체 형설앤과의 저작권 분쟁 도중 지난해 3월 세상을 등지면서부터다. 이 작가와 형설앤이 2007년 맺은 계약에 검정고무신 저작물 관련 사업화를 형설앤이 포괄적, 무제한, 무기한으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갔다는 게 이 작가 측 주장이다. 15년간 검정고무신 이름으로 77개의 사업이 이뤄졌지만 작가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고인이 이 기간 받은 금액은 1200만 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신인 창작자에게 저작권을 영구 양도받는 출판계 계약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정부와 국회가 ‘제2의 검정고무신’을 막겠다며 입법을 추진했다. ‘검정고무신법’으로 불리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지난해 3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웹툰계에선 이 법이 포괄적 규제를 명시해 웹툰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단법인 웹툰협회는 5일 성명서를 내고 “제작과 유통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주요 법안 통과를 코앞에 두고도 어느 누구 하나 우리 웹툰계에 여론 수렴 과정을 일절 거치지 않았다”며 “법안 통과 연기를 요청하고 시급히 웹툰업계 각 주체의 해당 법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특히 웹툰계에선 법안에서 불공정행위로 규정하는 ‘판매촉진비 및 가격할인 비용 전가’ 규정이 웹툰 성공에 상당한 역할을 한 사업모델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초반 회차를 무료로 공개해 독자들의 흥미를 끈 뒤 뒷이야기의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웹툰 플랫폼의 ‘기다리면 무료’, ‘매일 열 시 무료’는 작가에게 수익 배분이 이뤄지지 않아 불공정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은 “한국 웹툰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는 때에 부적절한 규제가 시장 확대를 막을 수 있다”며 “법안의 입법 취지는 좋지만 선의가 왜곡돼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초반 회차 무료 공개의 비용을 플랫폼이 모두 감당할 경우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신인 작가 등은 화면 배치 등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유명 작가의 작품에만 독자가 쏠려 작품 다양성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 특히 콘텐츠 제작사(CP)들은 법 규정 중 ‘문화상품을 납품한 후에 해당 문화상품의 수정·보완 또는 재작업을 요구하면서 이에 소용되는 비용을 보상하지 아니하는 행위’를 금지한 데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CP 관계자는 “웹툰 제작 과정에서 작업물의 수정을 요청하는 일은 항상 발생한다. 수정 비용을 일일이 지급해야 하면 작품 수정 자체를 요청하지 않아 작품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창작자 보호 위해 입법 필요” 반면 출판계나 작가들은 ‘제2의 검정고무신’ 사건을 막기 위해선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네이버, 카카오가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의 횡포를 막고, 작가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는 것.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지난해 12월 27일 성명서를 내고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입법을 지지했다. 출협은 성명서에서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기업 유통사들은 규제 법안이라며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창작자와 독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생태계 조성에 협력해주기를 바란다”며 “국회는 해당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웹콘텐츠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출협은 초반 회차 무료 공개가 온라인 플랫폼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플랫폼이 부담해야 할 마케팅 비용을 작가가 떠안는다는 것이다. 박용수 출협 전자출판·정책 담당 상무이사는 “초반 무료 공개로 플랫폼에 유입되는 독자가 증가해 플랫폼의 광고 수익이 늘었다. 하지만 정작 유료 결제는 늘지 않아 작가가 이득을 보지 못하는 구조”라며 “과거 웹툰 플랫폼들이 독자에게 무료로 일부 작품을 제공하면서 작가에게 이를 금전적으로 보상한 적이 있다. 법을 통해 현재의 기형적인 구조를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으로 ‘판매촉진비 및 가격할인 비용 전가’를 금지하면 작가의 수익이 늘어날 거라는 기대도 있다. 독자가 무료로 웹툰을 보지 못하면 유료 결제가 늘어날 거라는 얘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이용자 45.6%가 웹툰 유료 결제 경험이 있었다. 특히 1주일에 1번 이상 유료 결제를 한다는 이들이 전체의 21.7%로 유료 결제 비율이 적지 않았다. 또 웹툰 유료 결제 경험자 중 한 달에 5000원 이상을 쓴다는 비율도 53.5%로 유료 결제가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웹툰계 관계자는 “독자들의 결제를 유도하려면 작가들이 내용이 참신하고 재밌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며 “작가의 수익이 늘면 제작환경도 개선돼 작품의 질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웹툰 작가들도 법안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한 웹툰 작가는 “법안이 창작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인 만큼 제대로 입법이 이뤄진다면 작가들의 권리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웹툰 작가는 “검정고무신 사건 이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만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법안 통과가 힘들다”고 했다. 권혁주 웹툰작가협회장은 “물론 법안 자체의 취지는 좋지만 쇠뿔 뽑다가 소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법안 통과 과정에서 시행령을 섬세하게 조정하고 취지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비용 분담 등 사회적 합의 필요” 현재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검정고무신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통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문체위로 법안이 환송됐다. 법사위 논의 단계에서 금지행위로 규정한 조항들이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는 불공정 거래행위와 겹쳐 중복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방송사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법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해당 법안이 다양한 규제를 포괄하고 있는 만큼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 간 조정도 필요하다. 국무조정실이 부처 간 업무 조정을 하고 있는데,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세부 조문을 수정할 예정이다. 윤양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은 “법안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다양한 우려를 반영하겠다. 법안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창작자 보호 법안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융희 문화연구자(전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정부 부처가 웹툰계와 협의를 통해 방향성을 정하고 반발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초반 회차 무료 공개에 드는 비용을 플랫폼과 CP가 분담하도록 정부가 유도하려면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텍 교수는 “창작자뿐 아니라 플랫폼 등 웹툰계 전체의 목소리를 들어 법 조항을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오이.”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민음사)에서 여자 주인공 미도리가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자 암 투병 중인 아버지는 이렇게 답한다. 미도리는 “좋다”며 먹기 좋은 크기로 오이를 자른다. 김을 말아 간장에 찍은 뒤 이쑤시개를 꽂아 아버지에게 오이를 먹인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씹어 목 안으로 넘기고선 “맛있다”며 웃는다. 미도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한다. “먹는 게 맛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음식평론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신간에서 이 장면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75)의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으로 꼽는다. 앞날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아픈 이와, 수분을 한껏 머금은 아삭한 오이가 빚어내는 생기의 대조가 극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하찮게 보일 법한 식재료를 최소한의 손길로 음식으로 승화한다는 것은 일상에서든 소설에서든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문학 작품 속에 담긴 음식 이야기를 풀어놓은 에세이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은 각 시대상을 담고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미국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1832∼1888)의 장편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주인공들은 절인 라임을 먹는다. 당시 바닷물에 절인 상태로 들여온 라임은 생과일로 분류되지 않아 관세가 낮았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 앨리스 워커(80)의 장편소설 ‘컬러 퍼플’(문학동네)에서 미국 남부에 사는 흑인들은 비스킷을 자주 찾는다. 팽창제가 비싸 백인들이 먹는 스콘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강(54)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창비)에서 주인공은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남편과 싸운다. 비록 15년 전 소설이지만 대체육이 늘어나고, 채식주의 식당이 늘어난 요즘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조남주(51)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에는 가족을 위해 식사를 차려야 했던 엄마의 고달픈 삶, 이창래(59)의 장편소설 ‘영원한 이방인’(알에치코리아)에는 미국식 중식을 먹으며 살아온 재미교포들의 인생이 담겼다. 오늘은 ‘먹방’ 유튜브 대신 이 소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문학 담당 기자는 매년 12월이면 전화로 신춘문예 응모자에게 당선을 통보한다. 얼굴을 마주 보진 못하지만, 목소리를 들으면 대충 나이를 추측할 수 있다. 올해엔 유독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에 무게감이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은 채 “정말요?”라고 수차례 물어보는 당선자도, “기다렸다”며 담담하게 답하는 당선자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오랫동안 문학의 길을 꿈꿔 왔다는 건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는 수필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2021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저자의 유고 산문집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가난 탓에 친구 집에서 ‘도둑 독서’를 했던 문학소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생계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며 ‘공순이’로 살아야 했다. 종갓집에 시집간 뒤 가족을 위해 살았고, 남편과 황혼 이혼을 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일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고, 심장병과 청각장애의 고통도 겪었지만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책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돋보인다. 저자는 20여 년을 호스피스 암 병동에서 일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하루하루 통증과 사투를 벌이는 환우들을 보며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나를 버리려던 생각은 사치였다”고 고백한다. 강원도에 작고 오래된 집을 사 이사한 뒤 아흔 살이 넘은 옆집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고선 “오래 묵은 지폐에서 할머니 냄새가 났다. 명절에 다녀간 자녀들이 준 용돈이리라”고 묘사한다. 책엔 저자의 딸이 쓴 글도 실려 있다. 저자는 2021년 7월 시니어문학상 당선 소식을 들은 지 1개월 후인 같은 해 8월 세상을 떴다고 한다. 이후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화제가 됐다. 딸은 저자가 그동안 쓴 글을 펴내기를 원했을지 고민하다 출간을 결심했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에 달린 수많은 응원 댓글 때문이다. 저자의 딸은 이렇게 고백한다. “독자들은 힘든 삶에도 어머니가 지켜낸 곧은 심성과 따뜻한 시선, 특유의 위트와 희망을 읽어내 주셨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이웃에게 시선을 돌리며, ‘삶’과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을 수 있었다며 진심 어린 추모를 전해 주셨습니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평균 연령은 47.9세다. 2022년(37.4세)과 2023년(34.8세)보다 10세 이상 높다. 개인적으론 올해 당선작엔 문학에 대한 진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겪지 못하곤 풀어내지 못할 이야기도 많았다. 물론 나이 들어 당선된 당선자들이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지, 꾸준히 글을 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수필 ‘실버 취준생 분투기’ 저자가 쓴 글들이 독자들의 추모에 힘입어 산문집으로 출간됐듯, 독자들의 응원이 당선자들을 ‘진짜 작가’로 성장시키길 바랄 뿐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동아일보 디지털콘텐츠로 연재됐던 시리즈 ‘황형준의 법정모독’이 단행본 ‘포스트 윤석열: 한동훈에서 김관영까지’(인물과사상사)로 출간됐다. 연재 시리즈는 동아닷컴과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서 누적 조회수 550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신간은 올해 4월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2027년 3월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칠 유력 인사들을 다룬다.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이낙연 전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금태섭 새로운선택 대표 등이다. 신간은 연재 시리즈의 골격을 유지하되 일부를 새로 쓰거나 보완했다.특히 신간은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각 인물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서 정치를 시작했는지, 정치 입문 뒤엔 어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거쳤는지, 정치적 지향점은 무엇인지를 담았다. 저자는 한국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따뜻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등장인물들과의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객관적, 합리적 관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또한 인물들이 보완하고 시정해야 할 지점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신간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인간적 모습도 담겼다. 저자는 한 위원장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동훈과 유시민은 묘하게 닮았다. 둘 다 말과 글이 논리정연하고, 타고난 ‘쌈닭’”이라고 했다.저자는 또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포용과 관용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준석은 한국의 오바마를 꿈꾼다. 47세 나이로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통합과 개혁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가 배워야 할 덕목이 적지 않다”고 했다.저자는 2007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뒤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에서 근무했다. 경찰, 검찰, 법원, 정당, 청와대, 기획재정부를 담당했다. 2010년 삼성언론상, 2018년 336회 이달의 기자상, 2022년 대한민국언론대상 최우수상, 2023년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역사와 문학은 아주 오래된 ‘공범’(?)입니다. 여러 언어로 쓰인 문학적 걸작들엔 문학과 역사, 전설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죠.” 지난해 11월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사마르칸트’(교양인·사진)의 레바논 출신 프랑스 작가 아민 말루프(75)는 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미지수 x’를 만들어낸 페르시아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오마르 하이얌(1048∼1131)의 실제 삶에 문학적 상상력을 버무려 쓴 이 작품을 통해 사실과 허구가 섞인 이야기의 특성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하이얌이 살던 세계에 익숙해지기 위해 당대 페르시아 책을 많이 읽으며 작품을 집필했다”며 “소설가로서 내 임무는 독자들에게 이야기의 본질을 전달하는 믿을 만한 서사로 빈칸을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1072년 청년 오마르가 페르시아의 아름다운 오아시스 도시 사마르칸트에 도착하며 시작된다. 오마르는 사내들에게 봉변을 당하던 한 노인을 구하다가 여러 사건에 연달아 휘말린다. 특히 그는 소설에서 전쟁을 겪고, 박해를 받아 쫓겨 다니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오마르의 삶을 통해 폭력과 고통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레바논에서 일간지 기자로 활동하다가 내전이 발발하자 1975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장편소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1983년·아침이슬) 등 폭력 문제를 다룬 작품을 써 온 그의 특색이 두드러진다. 그는 “난 종파 간 폭력이 얼룩진 레바논에서 태어나 전쟁과 혁명이 가득한 중동에서 자랐다”며 “폭력이 적게 일어나는 국가에 살더라도 세계적으로 폭력이 벌어지고 있기에 폭력에 대해 쓰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전쟁 등 상황은 사실 더 나빠지고 있다”며 “지도자들이 협력할 마음을 지니지 않는다면 이런 유혈사태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소설은 오마르가 시집 ‘루바이야트’를 쓰며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펼쳐내는 과정도 한 편의 대서사시처럼 펼쳐낸다. 194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T S 엘리엇(1888∼1965)을 비롯해 영미 문학에 영향을 끼친 ‘루바이야트’를 통해 중동 문화의 아름다움도 전한다. 그는 “문학을 통해 우리는 다른 나라의 문명과 사람들의 사고방식, 열망을 이해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타국에 대한 혐오, 편견, 원망을 넘어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레바논 민족의 수난을 담은 장편소설 ‘타니오스의 바위’(1993년·정신세계사)로 1993년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았다. 2022년엔 소설가 박경리(1926∼2008)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시대를 관찰하고 평화를 노래하는 작가로 불리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4개 국가의 역사를 파고든 에세이 ‘잃어버린 자의 미로(Le labyrinthe des égarés)’를 출간했다”며 “새 소설 집필을 시작했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소설을 30년 가까이 꾸준히 썼죠. 한 100편 정도 쓰다 보면 언젠가 당선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임택수 씨(55)는 50대의 뒤늦은 등단이 멋쩍다는 듯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는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학사, 프랑스 폴 베를렌 메스대 불문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당선 소식을 주위에 전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많이 울더군요. 소설을 쓸 기회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고생했다고요. 사실 이미 현장에서 글 쓰고 있는 문인 친구들도 많습니다. 늦었지만 그동안 하던 대로, 수행하듯 써나가겠습니다.” 신춘(新春)의 바람이 꼭 청춘에게만 불어온다는 법이 있을까.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9명은 모두 30∼50대다. 중편소설 이상민(42), 시 한백양(본명 이상정·37), 시조 고은산(본명 고완수·56), 희곡 소윤정(50), 시나리오 정한조(59), 동화 이정민(45), 문학평론 황녹록(본명 황정화·53), 영화평론 민경민(본명 황경민·34) 씨다. 올해 당선자의 평균 연령은 47.9세로 2022년(37.4세)과 2023년(34.8세)보다 10세 이상 높다. 만추(晩秋)에 이르러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꺼내 보인 이들은 당당하게 “삶의 고통과 슬픔을 관통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고 외쳤다. 이날 영하 13도의 한파가 몰아쳐 몸은 꽁꽁 얼었지만, 당선자들의 표정은 봄날 햇살처럼 해맑았다. 올해 최고령 당선자인 시나리오 당선자 정한조 씨는 소설가로 활동해온 ‘중고 신인’이다. 1996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추리문학 부문에 당선된 뒤 ‘미술관 점거사건’(2011년·고즈넉) 등 장편소설 5권을 펴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10여 년 몽골을 오가다 몽골이 배경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번 당선작을 쓰기 시작했다. 정 씨는 “과거 당선된 경험이 있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고 삶이 바뀌지 않는 걸 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대표작이자 유작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시조 부문 당선자 고은산 씨 역시 시조에선 신인이지만 앞서 1999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시집을 3권 낸 시인이다. 4, 5년 전부터 시조만이 지닌 운율의 아름다움에 빠져 자유시가 아닌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충남 당진시 석문중학교 국어 교사인 그는 문학의 싹을 보이는 아이들이 백일장에 나가도록 지도하기도 한다. 고 씨는 “누군가 읽어서 위안을 주는 시조를 남기는 게 목표”라고 했다. 동화 부문 이정민 씨가 뒤늦게 글을 쓰게 된 건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 문신 씨(50)가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된 뒤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읽는 것을 보고 ‘나도 저 자리에 서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 씨는 “유방암을 진단받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을 겪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결심이 섰다. 동화를 쓰기 시작해 5년 만에 결실을 맺은 걸 보고 남편이 참 기뻐한다”고 했다. 희곡 부문 당선자 소윤정 씨는 대학 때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출산한 뒤 아이를 키우며 예술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홀로 있던 시간에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소 씨는 “혼자 글을 쓸 땐 더없이 기쁘고 즐겁다. 뒤늦은 등단이지만 누군가가 나를 알아봤다는 생각에 기분이 꽤 좋다”고 했다. 문학평론 당선자 황녹록 씨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학원 강사로 20여 년을 살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석사 과정에 진학하며 뒤늦게 글쓰기에 발을 들였다. “재능이 있다”는 권유를 받고 평론을 썼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황 씨는 “문학은 전쟁터다. 이 전장에서 작가가 나타내려 했던 것을 더 넘치게 읽어주는 평론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30대 당선자들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일어섰다. 시 부문 당선자 한백양 씨는 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문예창작학과 입시 강사로 일하며 10여 년간 시를 써왔다. 입시에 실패한 아이들에겐 “끝을 볼 때까지 써야 한다”고 격려했지만, 등단하지 못한 자신이 ‘재능이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떠나지 않았다. 한 씨는 “내겐 정말 재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실패를 남기지 않고 싶어 끝까지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올해 최연소 당선자인 영화평론 부문 민경민 씨는 7년 연속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에 응모했다. 2018년 심사평에만 언급되고 낙선했지만, 올해는 드디어 당선이라는 영광에 닿았다. 그동안 온라인 사이트에 영화 리뷰를 써 왔는데 이제 ‘평론가’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내걸 수 있게 됐다. 민 씨는 “7전 8기의 마음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포기하지 않고 응모했다. 리뷰를 넘어서 평론이란 무게감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에 비해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 이상민 씨는 처음 쓴 소설을 신춘문예에 처음 응모해 당선됐다. 잡지사에서 기자, 편집자로 15년을 일하며 문장을 단련해 왔지만, 소설은 읽기만 했을 뿐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뒤늦은 등단이 활동에 장애가 되진 않을까. 짓궂은 질문에 이 씨는 당당하게 답했다. “오히려 다른 일을 해봐서 문학 말곤 미련이 없어요. 당장이라도 청탁이 온다면 글쓰기에 삶을 ‘올인’할 겁니다.”※2024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전문은 동아신춘문예 홈페이지 ()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지난해 한국문학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 해였다. 한강 작가(54)는 지난해 11월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문학동네)로 프랑스 메디시스(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천명관 작가(60)는 장편소설 ‘고래’(2004년·문학동네)로 지난해 4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정보라 작가(48)는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로 지난해 10월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올해 한국 문학계에선 어떤 신작들이 찾아와 독자들을 설레게 할까.● 한국문학은 여풍(女風) 먼저 여성 작가들의 신작이 눈길을 끈다. 김애란 작가(44)는 올 상반기(1∼6월) 두 번째 장편소설(제목 미정·문학동네)로 돌아온다. 2014년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두근두근 내 인생’(2011년·창비) 이후 13년 만의 장편소설로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82년생 김지영’(2016년·민음사)을 쓴 조남주(51)는 여름에 청소년소설 ‘네가 되어 줄게’(문학동네)로 돌아온다. 중학생 딸과 엄마가 각각 1993년과 2023년의 서로에게로 7일간 영혼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타임슬립(시간여행) 장르다. 정유정 작가(58)는 인간에게 삶과 죽음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묻는 스릴러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은행나무)을 7월에 출간한다. 정이현 작가(52)는 부동산, 청년현실 등 사회문제를 다룬 장편소설을 상반기 중 내놓는다(제목 미정·창비). 정보라 작가는 해양생물을 주제로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연작소설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인플루엔셜)를 연내 펴낼 계획이다. 김금희 작가(45)는 창경궁 대온실 수리 공사를 계기로 잊고 싶은 과거를 마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을 선보인다. 김성중 작가(49)는 미래의 화성을 그린 공상과학(SF) 장편소설 ‘화성의 아이’(문학동네)를 상반기에, 조해진 작가(48)는 전쟁과 재난 속에서도 끝내 사람을 향해 손을 뻗는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제목 미정·문학동네)을 하반기(7∼12월)에 각각 내놓는다. 거장도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윤흥길 작가(81)는 일제강점기 한 가족의 엇갈린 삶을 다룬 대하소설 ‘문신’(문학동네) 4, 5권을 올 3월 동시에 펴낸다. 2018년에 3권까지 나온 뒤 공백이 길어지면서 독자들의 애를 태웠는데 대장정을 끝낼지 주목된다.● 해외문학은 남풍(男風) 해외 작가 중에선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65)의 중편소설 ‘샤이닝’(문학동네)의 가을 출간 소식이 눈에 띈다. 차가 멈춘 눈 내린 숲에서 밤중에 혼자 길을 잃고 헤매던 한 남자가 하얗게 빛나는 신비한 존재와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2023년 ‘고래’를 제치고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56)의 장편소설 ‘타임 셸터’(문학동네)도 주목된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그렸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퀸의 대각선’(가제·열린책들)은 7월쯤 출간될 예정이다. 두 동갑내기 여성이 체스대회에서 만나 성장하면서 경쟁한다는 내용이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튀르키예 작가 오르한 파무크(72)는 14년간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을 모은 에세이 ‘먼 산의 기억’(민음사)을 8월쯤 출간한다.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7)의 에세이 ‘진실의 언어’(문학동네)는 가을에 나온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75)는 2022년 출간한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문학동네)의 속편을 들고 올해 찾아온다. 해외 비문학 책들 중에는 기후변화 신간을 주목할 만하다. 미국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79)은 물과 생태 위기를 다룬 신작(제목 미정·민음사)을 9월에 선보인다. 20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출신 미국 기상학자 마나베 슈쿠로(93)의 ‘기후 변화를 넘어서’(사이언스북스)는 여름에 나온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야당이 자진 사퇴를 촉구했던 김홍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날 임명된 장관급 5명 중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건 최 부총리 한 명이다. 나머지 4명에 대해선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됐고,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 기한이 지나자 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다. 현 정부 들어 인사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장관급은 24명으로 늘었다. 김 위원장에 대해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부적격 사유를 거론하며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등 반대가 거셌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재송부 기한(28일)이 지나자마자 29일 곧바로 김 위원장을 임명했다. 민주당은 이날 “부적격 인물 옆에 또 부적격 인물을 앉히는 ‘인사 참사 도미노’”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뉴스 추천과 배열 등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방송사업자들의 부담을 가중하는 재허가·재승인 제도와 소유 규제, 광고 규제 등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를 정비하겠다”며 미디어 산업의 규제 개혁을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또 “사회적 공기(公器)인 방송·통신·미디어의 공공성을 재정립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그동안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공영방송이 정치와 자본, 내부의 힘에 좌우되지 않고 중립성과 공정성을 제고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임금님, 옷이 정말 멋집니다.”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신하들은 임금에게 이렇게 말한다. 재봉사가 ‘어리석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을 임금에게 바치자 신하들은 옷이 안 보이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친 뒤에야 진실이 드러난다. 개인이 집단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행동하지 못한 채 쉽게 동조하고 그로 인해 집단적 무지에 이르는 상황을 풍자한 이야기다.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개입을 소개한 베스트셀러 ‘넛지’(2009년·리더스북)의 공저자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펴낸 책 2권이 연달아 국내 출간됐다. 그는 행동경제학과 공공정책을 결합한 연구로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정부에서 정책 고문으로 활동했다. 두 책은 ‘정보 부족’과 ‘정보 과잉’이 가져오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동조하기’는 정보 부족이 불러온 문제를 지적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정치, 경제, 법률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된 정보를 취득하기 힘들다. 그럴 때 이른바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강한 주장을 펼치면 이에 쉽게 휩쓸린다. 동조가 벌어지는 데엔 남들과 다른 의견을 내면 유별난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하는 탓도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이런 동조 현상은 커지고 있다. 문제는 동조가 집단적이고 급진적으로 일어나면 ‘폭포 현상’처럼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대표적 폭포 현상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온라인에서 허위 조작 정보가 들불처럼 번지고, 음원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횟수가 많은 노래가 계속 선택되는 것도 폭포 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그는 타인의 의견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자주 바꾸는 이들이 늘어나면 사회가 ‘다원적 무지’에 빠진다고 우려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남들과 다를지 자체 검열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밝혔을 때 뒤따라올 반대에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한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그는 반대 목소리나 내부 고발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서로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한다면 동조 현상을 막아낼 수 있다고 제언한다. 반면 정보가 너무 많아도 문제다. ‘TMI: 정보가 너무 많아서’는 정보 과잉의 문제를 다뤘다. 현대인들은 종일 스마트폰, TV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수많은 SNS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둘러싸여 있다. 물론 정지 표지판, 청구서 납부 기한 같은 정보는 이롭다. 하지만 정보를 취득하는 데 애쓰다 보면 사실 정보를 소화하진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꼭 이런 정보까지 알아야 하나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해외여행 계획이 없는 이에게 세계의 날씨는 불필요한 정보다.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는 모두가 팝콘의 열량을 알고 싶어 하진 않는다. 결국 지나치게 많은 정보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쩔 땐 “‘모르는 게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저자가 정부와 기업의 정보 공개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정보를 친절하게 공개해야 정보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넛지’에서 강조했듯 사람들이 적절한 선택을 내리도록 부드럽게 이끄는 건 리더들의 몫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보 공개는 사람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해서 그들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개입이며, 일종의 넛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국신문협회는 네이버의 생성형 인공지능(AI) ‘하이퍼클로바X’ 학습에 뉴스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시정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2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신문협회는 이날 공정위에 제출한 ‘네이버 뉴스 콘텐츠 제휴약관 개선방안에 대한 신문협회 의견’에서 “(네이버가) 저작권자인 언론사의 개별 이용 허락 절차를 거친 바가 없고 일련의 절차를 건너뛸 수 있도록 한 것은 불공정 계약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불공정 논란이 있는 뉴스 콘텐츠 제휴약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시정해야 한다”며 “기존 불공정 약관은 전면 재검토(폐기)하고 새로운 약관을 투명한 공론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협회는 뉴스 학습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언론사에 할 수 있게 관련 조항을 제휴약관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대가 산정 시 네이버는 언론사와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학습에 사용한 뉴스의 규모와 범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신문협회는 “정부는 하이퍼클로바X의 학습에 사용된 뉴스 이용료의 산정 근거가 되는 뉴스 데이터의 정보, 이용 목적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신문협회는 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각각 제출한 ‘생성형 AI의 바람직한 뉴스 이용과 저작권 보호를 위한 신문협회 의견’에서 생성형 AI 기업의 뉴스 무단 학습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올해 9월 세계신문협회(WAN-IFRA)도 AI 개발·운영·배포자는 콘텐츠 소유자에게 공정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글로벌 AI 원칙’을 발표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방통위는) 5인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2인 체제가) 위법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이날 허숙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의 공정성, 독립성 보장을 위해서 바람직한 방통위 구성은 5인”이라며 ‘방통위 2인 체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방통위 상임위원은 정원이 5인이지만 현재 이상인 부위원장만 있다.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위원이 2인이 돼 심의·의결에 필요한 최소 정족수를 맞추게 된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경험해 보지 못한 너무나 생소한 분야인데 늦깎이 도전치고는 무리한 도전”이라며 김 후보자가 방송·통신 분야 경험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는 “내부 도움을 받아 법률, 규제 관련 부분을 파악해 업무 처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따로 기자회견을 열고 “(김모 순경 사건에 대해) 진실된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김 순경 사건은 1992년 교제 중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12년형을 받은 김 순경이 뒤늦게 진범이 잡혀 풀려난 사건으로, 김 후보자가 주임 검사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김 순경을 기자들과 만나게 해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게 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늘 가슴 아프고 나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던 일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옥자’ ‘설국열차’와 제 소설엔 공통점이 있죠. 모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진지한 작품이지만, 유머가 넘친다는 겁니다.” 장편소설 ‘미키7: 반물질의 블루스’(황금가지)를 지난달 국내 출간한 이탈리아 출신 소설가 에드워드 애슈턴(55)은 26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봉 감독이 자신의 전작 ‘미키7’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키 17’(내년 3월 개봉)을 연출한 건 그 작품에서 재기발랄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봉 감독과 영화화에 대해 2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눴다. 봉 감독은 작품에 담긴 자본주의에 대한 미묘한 비판뿐 아니라 예술 작품에서 유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미키7’은 복제인간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한 사내를 내세운 공상과학(SF) 소설이다. 주인공 미키가 새로운 행성을 찾는 개척단에 투입된 초기 모험을 다뤘다. 봉 감독이 ‘기생충’(2019년)에 이어 5년 만에 연출하고 ‘더 배트맨’(2022년)의 로버트 패틴슨과 ‘미나리’(2021년)의 스티븐 연이 캐스팅된 영화의 원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에서 3만 부가 팔렸다. 그는 “영화화 외에도 제 소설의 딸깍거리는 무언가가 한국 독자를 흔든 것 같다”며 “내가 만든 미지의 세상이 탐험되지 않은 채 남은 탓에 후속작을 쓰게 됐다. 이미 소설의 캐릭터와 설정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번 후속작은 9개월 만에 빠르게 썼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새 행성에 정착한 뒤 평범하게 살아가던 미키가 폭탄을 구해오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다시 모험을 떠나는 과정을 그렸다. 새 행성을 개척하려는 인간과 토종 생명체 간의 갈등은 식민주의라는 주제를 파고든다. 또 복제인간인 주인공이 툭하면 “방금 (또 다른) 날 봤어”라고 말하는 등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블랙 유머가 가득하다. 척박한 얼음 행성에서 벌어지는 활극은 전편보다 발전해 액션 영화처럼 생생하다. 그는 “독자를 끌어당기기 위해선 매력적인 인물, 재밌는 대화가 필요하다”며 “유머 없이 무거운 주제만 담는다면 설탕 없는 식사처럼 재미없는 소설이 되고 만다”고 했다. 그는 “난 재미와 주제의 균형을 위해 가벼움과 무거움을 공존시키려 한다”며 “블랙 코미디와 SF를 엮은 작가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내년 4월 인공지능(AI)을 다룬 스릴러 장편소설 ‘Mal Goes to War’를 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지구에서 AI가 사이보그의 몸에 갇힌 뒤 벌어지는 이야기”라며 “인공지능이 놀랍도록 빠르게 발전하는 현 상황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미키 17’은 재밌을까. 곤란할 수도 있는 질문에 그는 농담으로 답했다. “유감스럽게도 환상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는 말 외엔 할 수가 없습니다. 워너브러더스(제작사)가 제게 비공개 계약서에 서명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절 잘라 장기를 고양이 사료 공장에 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웃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성탄절 당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SBS 가요대전 공연장에서 대량의 위조 티켓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26일 SBS와 피해자 등에 따르면 전날 가요대전 행사에 위조 티켓을 들고 입장하려던 관객이 다수 적발됐다. 이들이 가진 위조 티켓은 가로인 진짜 방청권과 달리 세로 모양이거나, 자외선(UV)을 비췄을 때 로고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파악된 피해자만 90명이 넘어 실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연에는 뉴진스, 아이브 등 유명 아이돌 그룹이 대거 출연해 티켓 구하기 경쟁이 치열했다. 사전 응모 당첨자 등에게 무료 배포된 방청 티켓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40만, 50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려는 일당이 위조 티켓을 대량으로 제작해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 SBS 측이 행사 당일 위조 티켓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해 실제 티켓을 소지한 방청객이 입장하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SBS는 “공연 당일 현장에서 피해 사실을 알게 된 후 바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 중부서는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중국인 팬을 상대로 “티켓을 구해 주겠다”며 돈을 받은 뒤 잠적한 판매자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섰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과징금이 부과된 ‘뉴스타파 허위 조작 녹취록 인용 보도’와 관련해 민원 신청인들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며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26일 밝혔다. 류 위원장은 “개인 정보 불법 유출은 중대 범죄행위로, 특별감사와 수사의뢰로 범법행위를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했다. 전날 뉴스타파와 MBC는 류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방심위에 민원을 넣었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허위 의혹이 있는 뉴스타파의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방송사에 문제가 있다는 민원을 류 위원장 측이 제기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류 위원장은 당시 뉴스타파 관련 보도에 대한 민원은 180여 건 접수됐으며, 뉴스타파 관련 심의는 민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취임하기 전 긴급안건으로 이미 상정돼 민원 제기와는 무관했다고 밝혔다. 류 위원장은 “민원인 정보는 자유로운 심의신청 보장을 위해 법으로 보호한다”며 “허위조작 녹취록 당사자인 뉴스타파와 그것을 인용 보도해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 MBC 등이 불법 유출 정보를 취재 명분으로 활용한 것은 이해충돌 시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권 추천인 옥시찬 윤성옥 김유진 방심위원은 “‘청부 민원’ 의혹 진상규명 방안 마련을 위한 전체 회의 개최를 요구한다”며 “류 위원장은 공익제보자에 대한 월권적이며 부당한 탄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무열작은도서관이 생긴 뒤 삶이 바뀌었어요. 도서관에서 두 아이와 책을 읽다 남편이 퇴근하면 관사로 돌아가 온 가족이 저녁을 먹죠. 그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이에요.” 대구 수성구 육군 제2작전사령부에 근무하는 군인의 가족 오유민 씨(37)는 22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대 안에는 1일 무열작은도서관이 생겼다. 오 씨는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는 것만큼 중요한 문화생활이 없다”며 “군인 자녀들끼리 도서관에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친해지는 모습을 보는 일도 뿌듯하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무열작은도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의 후원으로 만들었다. 2015년부터 조성하고 있는 32번째 군인가족 작은도서관이다. 190m²(약 57평) 규모에 6000여 권의 책이 비치됐다. 제2작전사령부 관사에 사는 800가구의 군인 가족은 예전에는 책을 보려면 걸어서 30분 이상 걸리는 대구시립수성도서관에 가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야 했다. 이젠 관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도서관이 생기면서 삶이 달라졌다. 개관한 지 3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서관은 매주 200명 넘게 방문할 정도로 붐빈다. 아이들은 원형 책상에 책을 올려놓고 원목 의자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지곤 한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올라갈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아이들은 집처럼 편안하게 엎드리거나 누워서 책을 읽는다. 도서관은 평일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 오후 5시 반에 퇴근하는 군인 부모와 함께 방문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동안 군인과 결혼한 젊은 배우자들이 군부대 내 편의시설이 적어 불편을 겪었는데, 도서관이 이를 보완하고 있다. 제2작전사령부 관계자는 “아이들이 많이 찾다 보니 동화, 만화책 대여가 많다”며 “내년부터 구연동화, 토론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해 군인 가족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 한다”고 했다. 김수연 목사는 “군부대는 그 특성상 문화 혜택을 누리기 쉽지 않거나 차가 없이는 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지역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걸어서 갈 수 있는 군 관사 복지시설에 도서관을 꾸준히 조성해 독서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책 10 북극 한파 같은 경기 침체, 삶을 옥죄는 고물가, 최악의 폭염…. 팍팍한 현실 때문일까요. 출판인, 학자 등 30명이 뽑은 ‘2023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엔 현실 문제를 다룬 책이 많았습니다. 집중력, 돈, 비혼처럼 삶에 밀착한 사안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생태, 환경, 기술에 대한 담론도 주목했죠. 소설과 에세이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선정위원마다 3권씩 추천을 받아 그 가운데 상위 10권을 추려 소개합니다.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 올해의 책 선정위원 투표1위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지음·김하현 옮김/464쪽·1만8800원·어크로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TV에 집중력을 빼앗긴 세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멀티태스킹에 대한 신화를 부순 인문학서 ‘도둑맞은 집중력’이 각계 전문가들에게 6표를 받아 1위에 올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사회학을 전공하고, 2003년 ‘올해의 젊은 영국 기자상’, 2007년 국제앰네스티 ‘올해의 신문기자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가 썼다. 저자는 현대인의 집중력 부족을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250명의 인터뷰를 통해 현대인은 집중력을 잃는 게 아니며, 거대 테크기업에 의해 도둑맞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출판인들은 집중력을 잃어버린 시대를 저격한 시의성을 높게 평가했다. 박상준 민음사 대표는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에 치밀하고 폭넓은 취재, 전문가의 호쾌한 통찰이 탄탄하게 전개된다. ‘도둑맞은 집중력’도 되찾아놓는 책”이라고 했다. 김효형 눌와 대표는 “소리 없이 겪던 집중력 위기를 시의적절하게 끄집어냈다. 문제를 발견하고 원인을 폭넓게 탐구한 것만으로도 빛난다”고 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 이용자들이 투표로 선정한 ‘올해의 가장 사랑받은 책’,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인문 분야에서 각각 1위에 오르는 등 독자 반응이 좋은 점도 언급됐다. 황서현 휴머니스트 주간은 “독자들의 반응이 증명하듯,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는 키워드를 정확히 포착해냈고 적중했다”고 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이 시대의 가장 널리 퍼진 전염병, 즉 산만함에 대한 백신을 제공한다”고 했다. 문제의식을 사회구조로 넓힌 점도 높게 평가받았다. 안병현 교보문고 대표는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경쟁을 요구하는 주변 환경 등 저자가 새롭게 파악한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우리 모두가 지금 이 문제로 고통받고 있음을 깨달으면서도 다행히 이 책에는 집중과 몰입이 된다는 사실에는 위안을 받는다”고 했다.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홍은주 옮김/768쪽·1만9500원·문학동네 “하루키 마니아로서 그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추천한다.”(김기중 더숲 대표) 한국에서도 폭넓은 팬층을 보유한 일본 소설가가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30대 남자 주인공 ‘나’가 10대 시절에 글쓰기라는 취미를 공유했던 여자친구를 떠올린 뒤 ‘사방이 높은 벽에 둘러싸인, 아득히 먼 수수께끼의 도시’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청춘, 누군가의 나이 듦을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체 불가능한 작가”(양은경 허블 편집주간)라는 추천이 꺼지지 않는 ‘하루키 신드롬’을 뒷받침한다.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노고운 옮김/544쪽·3만5000원·현실문화 “인류학 연구의 모범이 될 만한 책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직장과 공장에 속하지 않고 소나무가 베어진 산을 돌아다니며 일확천금이 될 만한 송이버섯을 찾아다니는 이들을 추적한다.”(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산림 산업, 송이버섯 채집인의 역사와 현재를 담았다. 채집, 임업, 균류학, DNA 연구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든다. “송이버섯 나는 소나무 숲과 시골 장터를 다녀보고 싶다”(조재은 양철북 대표)는 말처럼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각이 돋보인다. 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 지음·양병찬 옮김/624쪽·2만9000원·어크로스 “동물의 세계를 동물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준다. 동물이 바라본 세계는 우리가 일상을 경험하는 세계와는 확연히 다르며, 엄청나게 풍부하다.”(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 과학저널리스트가 동물들이 지닌 화려하고 장엄한 ‘감각의 제국’을 펼쳐놓았다. 앞다리에 있는 긴 냄새 센서로 길을 찾는 채찍거미, 열한 쌍의 더듬이가 돋아난 별 모양의 코를 지닌 별코두더지 등을 소개했다. “이 책을 읽으면 지구를 조금은 더 사랑하게 될 것”(표정훈 출판평론가)이란 말처럼 세계를 인식하는 시각을 확장한다. 편집자의 시간 ◇김이구 지음/264쪽·1만5000원·나의시간 “편집자라는 존재에 대해, 편집의 사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책의 본질을 새롭게 각인해줄 것이다.”(김태희 사계절출판사 총괄팀장) 1984년 창비에 입사한 후 30여 년간 수많은 작가의 책을 편집하다 2017년 세상을 떠난 편집자의 유고 에세이다. “오랜 시간 자신의 일에 묵묵히 복무해온 편집자의 기록이다. 일체의 화려함 없는 글이 책의 세계에 직업을 둔 우리의 본령을 깨닫게 한다”(이현화 혜화1117 대표)는 평가처럼 직업인의 사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기욤 피트롱 지음·양영란 옮김/364쪽·1만8500원·갈라파고스 “이 책을 읽지 않고서 환경 담론을 제대로 논할 수 있을까?”(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 디지털 환경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행위가 막대한 양의 전기와 다른 자원을 소모하고 지구 환경은 그만큼 파괴된다고 강조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없이 누르는 ‘좋아요’나 e메일 전송을 위해서는 복잡한 정보 처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정보가 많아질수록 자원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물질로 인한 오염이나 훼손으로부터 결백하다는 상식을 깬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말처럼 신선한 시각이 눈에 띈다. 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지음·김승진 옮김/736쪽·3만2000원·생각의 힘 “기술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통렬히 전복한다.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와 관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기술 진보로 인한 풍요가 공동체보다 소수의 엘리트와 권력자들의 주머니를 불렸다는 걸 손꼽히는 경제학자들이 지적한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시대에 대처해야 할 길을 제시한다”(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는 말처럼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지음/736쪽·7200원·데이원 “아들에게 선물하는 책이다. 돈, 성공, 삶의 지혜 등 세상의 거의 모든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거의 모든 이야기가 잘 정리돼 있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세상의 통념에 ‘세이, 노(Say, no)’ 하라는 의미로 세이노란 필명을 쓰는 작가가 삶의 태도에 대해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조언한 자기계발서다. “재야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던 고수의 인생 지침서다. 정가 7200원, 무료 전자책도 놀랍다”(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고백처럼 출판계에 충격을 선사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352쪽·1만6800원·문학동네 “소설가의 맑은 눈이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섬세하게 묘사되는 인물들의 상실감과 어긋나는 관계가 읽는 가슴에 들어찬다.”(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관계의 시작과 부서짐을 섬세하게 그린 단편 7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낮고 작고 연약한 여자들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의 목소리를 특유의 조곤조곤한 문장으로 들려준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평가처럼 작가만의 따뜻한 문체가 두드러진다. 에이징 솔로 ◇김희경 지음/332쪽·1만6800원·동아시아 “혼자 사는 40, 50대 비혼 여성 19명의 솔직 담담한 삶의 이야기다. 우리의 현실, 시대의 단면이 개인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펼쳐진다.”(표정훈 출판평론가) ‘이상한 정상 가족’(2017년·동아시아)을 통해 우리 사회 아동 인권과 가족 정책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며 문제점을 파헤쳤던 저자가 중년 비혼 여성에게 돋보기를 들이댔다. “전직 저널리스트답게 다양한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비혼 중년의 삶에 대해 분석했다. 혼자 나이 들어가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김기중 더숲 대표)는 말처럼 비혼 여성이란 시의적절한 주제를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30명·가나다순)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세규(김영사 대표)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기중(더숲 대표) 김태희(사계절출판사 총괄팀장)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효형(눌와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성열(사이드웨이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박정재(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서현(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안병현(교보문고 대표) 안지미(알마 대표) 양은경(허블 편집주간)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치억(공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현화(혜화1117 대표) 장은수(출판평론가)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찬(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 정지혜(업커밍스토리즈 기획실장)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조재은(양철북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표정훈(출판평론가) 황서현(휴머니스트 주간)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면 이후로도 그 분야를 계속 고수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일찍 성공했더라면 오로지 입자물리학만 공부하고 다른 분야는 공부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복잡계(complex system)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기회도 없었겠죠.”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물리학자 조르조 파리시(75)는 17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리시의 에세이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사이언스북스·사진)는 지난달 15일 국내에 출간됐다. 1973년 스위스 제네바. 당시 25세로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던 파리시는 네덜란드 물리학자 헤라르뒤스 엇호프트(당시 27세)와 아침 식사를 하며 “정말 대단한 성과를 거두셨다. 이 연구 결과를 다른 이론에 사용할 수 있을지 한번 보자”고 했다. 엇호프트가 분석한 쿼크(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 관련 연구를 확장해보자는 가벼운 제안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머리를 맞댔지만 쉽지 않다고 보고 포기했다. 하지만 얼마 뒤 미국 물리학자들이 엇호프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양자색소역학’ 이론을 만들어냈다. 파리시는 깜짝 놀랐다. 자신도 30분만 더 투자했으면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물리학자들은 이 이론으로 200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파리시는 찌르레기 무리의 비행에서 복잡계 과학의 핵심 원리를 발견하는 등 물리학적 체계에서 무질서와 변동의 상호작용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마침내 노벨상을 받았다. 파리시는 인터뷰에서 “1973년 그날 오후, 우리는 노벨상을 받을 기회를 잃고 말았지만 어떤 면에선 젊은 시절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 그때가 유일한 기회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신간에서 ‘미시적 창의력’을 강조한다. 일상에서 떠오른 작은 아이디어를 시간을 갖고 조금씩 발전시키면 큰 발견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 연구의 시작-실패 후 잠복기-깨달음의 순간-수학적 증명이란 4단계를 긴 인내심을 갖고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하루아침에 엄청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매일 문제를 들여다보고,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면 질문에 다르게 접근할 수 있어요. 열려 있는 사고와 이해력을 갖고 깨달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신간에서 가난했던 한국이 빠르게 성장한 건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가 부(富), 번영,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을 꾀한다면 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은 잘 이해하고 있다”며 “한국에는 매우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다. 앞으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 7월 다른 과학자 99명과 ‘기후 위기를 단순한 악천후로 축소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사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9월 유럽에 에너지 공급 부족이 심해지자 “파스타를 만들 때 끓는 물에 면을 넣고 끓을 때까지 다시 가열한 뒤 냄비 뚜껑을 덮고 가스 불을 끄거나 최소한으로 줄이라”며 연료를 절약하는 법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됐다. 그는 2021년 “이탈리아는 기초과학 분야 연구개발 투자가 부족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뒤 사회적 문제가 있으면 개입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대중이 과학을 이해하는 건 민주주의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선 전염병 확산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기후 변화 관련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선 과학적으로 기후 변화 원인에 대해 이해해야 해요.” 그는 “아직도 세상엔 이해하지 못하는 물리적 현상이 많다”며 “그것들을 언젠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어느 날 스웨덴 북부의 작은 마을 ‘베어타운’과 ‘헤드’에 폭풍이 덮친다. 마을 사람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 몸을 피한다. 하지만 나무가 쓰러지고, 정전이 일어나는 건 막을 수 없다. 더군다나 폭풍으로 헤드의 아이스링크 경기장이 무너진다. 헤드의 하키팀은 베어타운의 아이스링크장에서 연습하려 한다. 하지만 베어타운 주민들은 아이스링크장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이로 인해 베어타운, 헤드 주민들 간에 잠시 이어진 정전(停戰)은 깨지고 다시 사이가 나빠지는데….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앙숙인 두 마을 주민들은 화해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1300만 부가 팔린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오베라는 남자’는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하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아내까지 세상을 떠난 이후 스스로 세상을 떠나려는 남성을 엉뚱하고 따뜻한 유머를 담아 그려냈다. 이에 비해 ‘위너’는 폭풍이 몰고 오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세밀한 장면과 심리 묘사로 풀어낸다. “진실이 있다면 그들의 인생이 무엇을 했는지보다 무엇을 할 뻔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남자아이들의 경우에는 맨 처음 사귄 단짝 친구가 진정한 첫사랑”이라는 문장처럼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도 엿보인다. 신간은 ‘베어타운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1편인 ‘베어타운’이 아이스하키 선수의 성폭행 사건을 앞세워 갈등의 시작을 그렸고, 2편인 ‘우리와 당신들’이 분노가 가득한 마을 주민들이 빚는 갈등의 전개를 다뤘다면 ‘위너’에서는 갈등이 비로소 해결된다. 슬픔에 잠긴 외로운 소년 마테오가 위험한 계획을 실행하고, 술집 주인이자 하키팀 운영위원인 라모나가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는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든다. 마지막에 두 마을 주민들은 폭풍의 여파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서로라는 점을 깨닫고 화해한다. 삶엔 패배자와 승리자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들은 제목처럼 ‘승리자(Winner)’가 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세이노의 가르침’ 열풍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격도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전자책(e북)을 무료로 배포하면서 팬덤을 만들었고, 결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최근 만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출판계를 뒤흔든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의 인기의 이유를 가격으로 분석한 것이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세상의 통념에 ‘세이, 노(Say, no)’ 하라는 의미로 세이노란 필명을 쓰는 작가가 삶의 태도에 대해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조언한 자기계발서다. 1000억 원대 자산가라고 밝혔을 뿐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저자가 20년간 발표한 칼럼을 엮었다. 올 3월 출간된 뒤 입소문을 타며 70만 부 이상 팔렸고 교보문고, 예스24가 최근 발표한 연간 베스트셀러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판매량과 화제성에서 이른바 ‘올해의 책’이 됐다. ‘세이노의 가르침’ 열풍은 최근 자기계발서 열풍의 연장선에 있다. 교보문고가 4일 내놓은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및 결산’에 따르면 종합 10위 중 자기계발서가 4종에 달한다. ‘세이노의 가르침’과 게리 켈러의 ‘원씽’(2위), 자청의 ‘역행자’(3위), ‘김미경의 마흔수업’(7위)이다. 지난해 종합 10위 중 ‘역행자’(5위)만 포함된 것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자기계발서 전체 판매량도 지난해보다 20.8% 증가했다. 예전에는 교수, 종교인 등 저명인사가 인생 멘토로서 조언해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나 최근에는 얼굴 없는 작가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경향도 담겼다. e북을 공짜로 배포하면서 팬덤을 만든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온라인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세이노의 가르침’을 소개한 글이 많다. 이 중 e북으로 읽는 법을 소개한 글도 적지 않은데, 이들은 e북 내용을 불법으로 캡처해 올리지 않는다. “다른 이에게 지식을 나누는 데 의미를 두고, 인세를 버는 데 큰 목적이 없다”고 밝힌 저자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블로거도 적지 않다. 낮은 종이책 가격은 대중을 끌어모았다. 종이책은 736쪽에 7200원에 불과하다. 온라인 서점에서 10% 할인받아 사면 6480원이다. 1쪽에 10원도 되지 않는 셈이다. 보통 비슷한 분량의 ‘벽돌책’이 3만∼4만 원 안팎인 것에 비하면 많이 저렴하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최근 종이값, 인건비가 오르면서 전체적으로 책값이 올랐다. 그런데 ‘세이노의 가르침’은 종이책 가격이 획기적으로 저렴해 독자가 살 때 전혀 망설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세이노의 가르침’의 성공은 이례적인 사례다. 출판사와 저자 입장에선 e북을 무료로 배포하는 건 수익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e북을 무료 배포한 건 아직 e북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출판계에 마케팅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e북을 무료로 먼저 배포하는 출판계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한 출판사 관계자의 말처럼 올해 ‘세이노의 가르침’ 열풍이 내년 출판계에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