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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COSMOS)’에서 우주가 거대한 바다라면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바다를 우주로 비유해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심해라면 더더욱.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해양생물학을 가르치는 저자가 우주만큼이나 미지의 공간인 심해와 그에 관한 인간의 책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저자는 인류의 생존이 직결된 심해를 제대로 알고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옛날 뱃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는 검은 암흑 덩어리라고 생각했던 심해는 기술과 탐사 장비가 발달하면서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생명체의 보금자리이자 자원의 보고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노다지를 어장이나 유정, 광산으로 개발하기 위해 인간은 힘 닿는 대로 그물을 내리고, 시추관을 뚫고, 채굴 장비를 내려보내고 있다. 또 공해(公海)라는 허점을 악용해 방사성 폐기물 등 각종 해로운 물질을 아무 생각 없이 밀어 넣는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1970년 4월, 아폴로 13호가 산소 탱크 폭발로 달에 착륙하는 세 번째 유인 임무에 실패했다. 우주 비행사 세 명이 달 착륙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오고 있을 때 관제센터 직원들은 함께 돌아오는 물체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방사성 동위 원소 열전기 발전기였다. 이 발전기는 플루토늄 238이 붕괴할 때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장비로, 원래 달 표면에서 예정된 실험에 전원을 제공하기 위해 두고 올 계획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달 착륙선이 남태평양의 통가 해구 위로 떨어지도록 경로를 조정했다. 방사성 물질이 든 용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은 수심 1만7000m의 초심해대 해구 어딘가에 누워 있게 되었다.”(9장 ‘상설쓰레기장’에서) 저자는 이런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다가는 심해가 과거 뱃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검은 암흑 덩어리로 돌아가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심해에서는 환경 복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육지라면 동식물을 재도입해 생태계 회복을 추진할 수도 있지만 수천 m 아래의 해저에서는 복원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1000년 된 산호를 원래 살던 곳에서 뽑아 심해에 심은들 과연 살아남을지도 의문이다. 읽다 보면 환경 문제에 관해 세계인의 인식을 바꿔놓은 생태학자 레이철 카슨의 책 ‘침묵의 봄(Silent Spring)’의 ‘심해’ 편 같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면 살고, 아니면 죽는다’란 결론도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수천 m 아래까지 내려가 생물을 남획하고 자원을 채굴한다는 자체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이미 다 고갈되고 파괴되고 있다는 방증이니까. 부제 ‘깊은 바다에 숨겨진 생물들, 지구, 인간에 관하여’, 원제 ‘The Brillant Abyss’.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데 더욱 일조하겠습니다.” 지난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에 재선출된 이용훈 마티아 주교(수원교구장)의 말이다. 경기 수원교구청에서 7일 만난 그는 “신자들이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과 똑같이 산다면 신앙생활을 하는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라며 “교회 내의 신자로만 머물지 말고 사회에 기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사에서 신앙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종교를 가리지 않고 신도 수 감소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다 보니 영성이나 신앙 쪽보다는 개인의 즐거움과 윤택함 등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경향도 줄어드는 것 같고요. 가톨릭도 감소까지는 아니지만 과거보다 신도 수 증가가 훨씬 둔화한 건 사실입니다. 그럴수록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범이 되고 사회에 기여해야지요. 교회 나오라고 얘기하면서 정작 ‘교회 다녀도 별것 없구나’, ‘안 믿는 사람보다 훨씬 못하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신앙을 가진 이유가 없겠지요.” ―기성 종교인은 줄어드는데 사이비종교가 늘어나는 건 왜일까요. “저도 그런 얘기는 듣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양극단과 극렬로 치닫는 사회 현상과도 관계가 있지 않나 싶어요. 종교에서도 좀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분들에게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다. 재림 예수다’ 하니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이고 신선하게 느껴지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어떤 갈증, 갈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나를 믿으면 즉시 풀린다’, ‘내가 풀어준다’고 하니 빠지기 쉬운 것이겠지요.” ―최근 주교회의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1922∼2009) 시복을 추진하기로 했더군요. 추진이 좀 늦은 것 아니냐는 말도 있습니다만…. “하하하, 가톨릭 절차를 잘 몰라서 그런 건데…. 시복은 순교자나 성덕이 높은 사람을 사후에 복자(福者) 품위에 올리는 것입니다. 생전의 덕행과 성덕, 모범, 신앙심 이런 것도 당연히 전제되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그분을 추모하고 공경하는지가 중요하지요. 아마 선종 6년 만에 시복된 마더 테레사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분들은 정말 놀랄 정도로 빨리 된 경우죠. 대부분은 수백 년 걸리는 게 보통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굉장히 빨리 추진하는 경우지요.” ―올해 임기 중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동양 성인으로는 처음으로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설치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성상 제막식이 있던 날(9월 16일·현지 시간) 오전에 바티칸 교황사도궁 클레멘스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했는데, 참석한 400여 명이 모두 한국인이었습니다. 한국인만을 위한 특별 알현 시간을 만든 건데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어요. 그리고 교황께서 400여 명 모두와 악수하며 김대건 신부처럼 모두가 다 신앙의 모범이 되길 바란다고 굉장히 길게 말씀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 생활을 1년여밖에 안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공경하는, 굉장히 널리 알려지고 울림이 큰 분입니다. 인도네시아에는 김대건 신부를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성당(자카르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이 있을 정도지요. 비단 한국 천주교만의 영광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쁨이고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수원=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갈 때마다 석탑이 웁디다. 나 좀 데려가 달라고….” 일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는 확인된 것만 무려 9만여 점. 무단 반출된 것 중 하나가 도쿄 오쿠라 호텔 뒤뜰에 있는 ‘이천오층석탑’이다. 경기 이천시 이천오층석탑 환수위원회에서 2일 만난 보문 스님(환수위원회 공동위원장·대한불교조계종 평택 자비사 주지)은 “15년째 환수 운동을 하고 있는데 석탑을 찾아가 볼 때마다 훼손 정도가 심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천오층석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한 6.5m 높이의 이 석탑은 고려 초 작품으로 당당하고 빼어난 균형미를 자랑합니다. 본래 경기 이천향교 옆에 있던 것을, 조선총독부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열면서 야외 전시를 위해 공진회장인 경복궁으로 옮겼지요. 그리고 일본 재벌인 오쿠라 기하치로가 일본 최초의 사립박물관을 세우면서 1918년 반출해 갔습니다.” ―반출 시 총독부가 석탑의 문화재적 가치를 폄훼했다고 하던데요? “민간에 양도해도 별문제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죠. 가치 없는 문화재라면 왜 이천에 있는 걸 옮겨서까지 전시했겠습니까. 오쿠라가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가져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석탑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불성설이죠.” ―석탑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있다고요? “지난달에도 전문가와 함께 다녀왔습니다만, 석재와 석재 사이 이음새 부분이 많이 갈라져 있는데 이를 시멘트로 붙여 놓았더군요. 몸통과 모서리 모두 눈으로도 확인될 정도로 풍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요. 문화재 보존 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짐작은 갑니다만 석탑을 소장한 오쿠라문화재단이 반환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늘 하는 말이죠.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문화재 반환청구권이 소멸했다는…. 하지만 저희는 결코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문화재 환수라는 게 30년, 50년, 심지어 100년까지도 걸리는 일이니까요. 지난 15년 동안 일본 측과의 협상 외에도 각종 학술 세미나, 서명운동, 지역 내 초중고 순회 교육, 사생대회, 환수 염원탑 조성 등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분명히, 이천오층석탑이 우리 품으로 돌아올 거라 믿습니다.”이천=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연등회보존위원회(보존위원장 진우 스님)는 2023년 로마 한국주간(11월 5∼12일·현지 시간)을 맞아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과 함께 ‘빛의 우주, 연등회’ 특별전(11월 10일∼12월 1일)을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연등회가 이탈리아에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특별전에서는 한지로 만든 다양한 전통등과 행렬등이 전시되며 연등회의 역사, 준비 과정, 가치 등이 소개된다. 전통등인 연꽃등, 전통 무늬등을 현지인들이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5일부터 시작된 한국 주간행사에서는 K팝, K뷰티, 영화, 예술, 한식, 관광 등 한국의 전통과 현대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7, 8일에는 로마 시내 영화관에서 최신 한국 영화 4편(‘1947 보스톤’, ‘리바운드’, ‘비밀의 언덕’,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이 상영된다. 10일 한국문화원에서는 한식을 주제로 한 창작 연극 ‘아주 특별한 손님’이 공연된다. 10, 11일에는 한국 댄스 스튜디오인 ‘1Million’ 소속 안무가 장우민과 이탈리아 K팝 전문 댄서의 K팝 댄스 워크숍이, 12일에는 이탈리아 현지 K팝 커버 댄스팀들의 댄스 경연이 열린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자손들은 물가도 오르고 살기 힘든데, 내 제사상, 차례상 푸짐하게 차려내라고 할 조상님이 계시겠습니까?”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위원장 최영갑)가 2일 국회에서 ‘현대화 제사 권고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9월 ‘차례상 표준안’에 이어 두 번째. 서울 종로구 유림회관에서 지난달 30일 만난 최영갑 위원장은 “원래 유교의 정신은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것인데 잘못 알려진 문화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차례와 제사에 대한 부담은 물론이고 이로 인한 가족 내 갈등까지 그치지 않고 있어 권고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솔직히 차례상과 제사상을 혼동하는 사람도 많습니다.“주자가례에도 추석 상차림을 어떻게 하라는 건 없습니다. 그 계절 음식과 과일을 올리라는 딱 이말 하나뿐이죠. 차례는 정말 간단하게 지내는 것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제사와 혼동이 되고 이것저것 음식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과하게 변한 것 같습니다. 흔히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柹) 그러는데 예법을 다룬 문헌에 그런 말은 안 나옵니다.”―권고안은 어떻게 마련된 것인지요.“과거 예법과 명문가 상차림, 설문조사 등을 고려했습니다. 차례상은 송편, 구이, 김치, 과일, 나물, 술 등 6가지, 제사상은 기제(忌祭)에는 과일, 젓갈, 나물, 떡, 포, 탕 등을 올리라고 권고했습니다만 가족끼리 또는 지역 특성에 맞춰 얼마든지 달리 놓을 수 있습니다. 제사의 기본은 고인이 드시던 평상시 음식을 자연스럽게 차리는 것이지요. 평소 좋아하시던 걸 올려도 좋고요. 편하게 놓으면 됩니다.”―성균관은 형식에 더 엄격할 것 같은데 의외입니다.“중요한 건 상에 놓는 음식이나 예법 자체가 아니라 왜 우리가 조상님께, 돌아가신 부모님께 제를 올리는지를 아는 마음입니다. 제사, 차례 때문에 가족이 모여 싸운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지요. 그동안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지만 성균관이 나서지 않은 것은 집안 문제니까 외부에서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였습니다. 하지만 집안 갈등은 물론이고 물가도 올라 힘든데 그 많은 음식을 다 놓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는 나서서 그런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발표하게 된 거지요.”―1인 가구가 증가하는데 혼자서는 제사를 챙기기 힘들 것 같은데요.“벌써 30%가 넘는다고 하던데, 그런 면에서도 제사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지요. 정 안되면 냉수 한 그릇을 올리더라도 그날만큼은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법적으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돌려받을 길은 없어졌지만 반환 운동까지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절도범이 일본에서 훔쳐 국내로 밀반입한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이 일본 사찰에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 불상이 2012년 일본 쓰시마섬 간논지(觀音寺)에서 도난당해 한국에 밀반입된 지 11년 만이다. 높이 50.5cm, 무게 38.6kg의 이 불상은 고려시대(14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불상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한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은 지난달 31일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대법원은 타인의 물건이라도 일정 기간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취득시효 법리로 판단했는데, 이런 논리라면 다른 해외 반출 문화재의 소유권도 다 넘겨주는 게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경내에 땅 파는 공사가 한창인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올 2월 2심은 1심과 반대로 일본에 소유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볼 때 1330년경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 부석사에 봉안하려고 제작한 것은 인정되지만, 그때 부석사와 지금 부석사가 같은 절이라는 걸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요. 절의 위치가 달라진 것도 아닌데 같은 절이 아니라니요. 그래서 그 뒤부터 경내 땅을 다 파헤치고 있습니다. 당시 유물이 나오면 같은 절이라는 걸 입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요.” ―당시 유물이나 문화재가 나왔습니까.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조사를 맡았는데, 고려시대의 특징을 반영한 어골문 기와, ‘만(卍)’ 자가 새겨진 기와, 석탑 부재 등이 다수 나왔습니다. 고려시대 부석사와 지금 부석사가 같은 절이라는 증거지요. 대법원이 2심과 달리 두 절의 동일성을 인정한 것도 당시 유물이 출토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8개월 만에 대법원 결정이 난 게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2017년 1월 1심 판결이 났고, 6년이 지난 올 2월에야 2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8개월 만에 나오니 왜 이렇게 빨리 처리하려고 하는지 좀 의아했지요. 통상의 속도보다 너무 빠르니까요. 9월 중순, 변호사로부터 대법원이 집중심리에 들어갔고 10월 중 결과가 나올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 ‘이렇게 빨리 처리하려는 걸 보니 유리하게 나오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재판 결과에 아쉬움이 없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2017년 문정왕후(명종의 어머니) 어보가 미국에서 반환됐습니다. 6·25전쟁 때 불법 반출된 것을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지요. 반환된 이유는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박물관 측이 정당한 소장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점유자가 소장 경위를 입증해야 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지요. 그런데 우리 법도 아니고 일본법을 근거로 20년 이상 소유했으니 취득을 인정한다니요. 그렇다면 일본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 반출된 수십만 점의 우리 문화재도 모두 그 나라의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셈 아닙니까.” ―아쉽지만 법적인 방법은 더 이상 없는 듯합니다만…. “그렇겠지요. 하지만 법적인 방법이 없어졌다고 반환 운동을 안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1913년 일제에 강제 반출된 국보 조선왕조실록도 2006년 소장자인 일본 도쿄대가 학술 교류와 협력 차원에서 기증하는 형식으로 돌아온 선례도 있으니까요. 일본의 양심을 믿고 반환 운동은 계속할 계획입니다. 우리 부처님을 타국에서 울고 계시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서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어릴 적 동네에는 봄이 되면 배추흰나비, 노랑나비 등 나비가 지천이었다. 여름에는 하늘소를 잡기 위해 나무를 타고 올라갔는데, 두세 그루만 올라도 10여 마리는 금방 잡을 수 있었다. 늦여름부터 보이기 시작한 잠자리는 얼마나 많은지, 거짓말 안 보태고 잠자리채를 허공에 몇 번 휘두르기만 해도 잡히는 놈이 있을 정도였다. 변두리긴 했지만 그래도 서울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나비와 잠자리, 하늘소가 놀던 야산과 밭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신 아파트촌이 들어섰다.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하는 생각. 답도 대개는 안다. ‘환경이 파괴돼서’ ‘기후변화 때문에’ ‘서식지가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세상에는 늘 엉뚱한 사람이 있나 보다. 사라져가는 그들을 따라다닐 생각을 하다니. 생태학자이자 아웃도어 교육자인 저자가 엘로사리오(멕시코)∼댈러스∼수시티(이상 미국)∼오타와(캐나다)∼보스턴·뉴욕∼오스틴(이상 미국)을 거쳐 다시 엘로사리오까지 1만6000km가 넘는 거리를 제왕나비를 따라 자전거로 달렸다. 제왕나비는 노랑나비, 배추흰나비처럼 북아메리카 지역의 대표적인 나비다. 멕시코에서 겨울을 난 뒤 봄이 되면 캐나다까지 이동했다가 겨울이 되기 전에 다시 멕시코로 돌아온다. 아주 흔한 나비였지만 갈수록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 1996년 20.9ha를 차지하던 군집 규모가 2019년에는 2.8ha로 급감했다고 한다. 읽다 보면 제왕나비가 왜 사라져가고 있는지 알게 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저자가 264일(2017년 3∼11월) 동안 제왕나비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며 본 사람들과 그에 관한 생각, 자연과 환경에 대한 깊은 애정이 더 가슴 깊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불과 8cm 남짓한 이 작은 생명 수백만 마리가 함께 서로의 날개를 껴안고 폭풍과 겨울을 이겨낸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여러 제왕나비가 모여 대이동을 해내고, 짧은 거리가 모여 모험이 되듯, 우리의 목소리가 모일 때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해법을 찾는 사람들,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 이동하는 나비들이 있는 한 우리의 공동 행동은 희망이 된다.”(‘마지막 구간’ 중) 환경 파괴로 인한 멸종위기종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흔하면 안 되는데도 흔한 이야기가 돼버렸다. 일부 깨어 있는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외쳐도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늘을 나는 나비를 길을 따라 쫓아가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4800km에 이르도록 제왕나비를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늘 제대로 가고 있는지 걱정하고 불안했지만, 그럴 때마다 보이는 ‘나비 한 마리’가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이정표가 됐다고 술회한다. 인류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아직 멸종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나비 한 마리’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원제 ‘Bicycling with Butterflies: My 10,201-Mile Journey Following the Monarch Migration’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마음을 다해 모셨건만 돌아보니 큰스님(성철 스님)은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23일 만난 원택 스님은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성철 스님 생전 21년, 입적 후 30년을 시봉(侍奉)한 원택 스님은 불교계의 유명한 효 상좌(제자)다. 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백련불교문화재단은 성철 스님 30주기(11월 3일)를 맞아 각종 학술 세미나와 4만8000배 참회 법회, 추모 다례 법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연다. ―큰스님 가신 지가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참 무상하지요. 1971년 친구 따라간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서 처음 뵌 게 엊그제 같은데…. 그 후 다시 찾아뵀을 때 큰스님이 몇 마디 묻더니 ‘니 고마 중 돼라’고 하셨어요. 그 한마디에 이듬해(1972년) 출가했지요. 아직도 큰스님 목소리가 귀에 성한데 돌아보니 훌쩍 그렇게 지났습니다.” ―성철 스님의 장서가 1만여 권이나 되더군요. 세상에는 성철 스님의 “책을 보지 말라”란 말이 회자하는데 의외입니다. “‘책을 보지 말라’는 말은 일반인들에게 한 말이 아니고 선방에서 정진하는 수좌들에게 한 말이죠. 한눈팔지 말고 화두에만 마음을 모으라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큰스님께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는 최상급 경지에서나 하는 말이다. 부처님이나 조사 스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살면 그것이 외도고 악인이 되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1만 권을 소장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동서양 철학책은 물론이고 신구약 성경, 일본 역대 조사들의 어록과 일본 불교학자들의 책 등 굉장히 방대하게 두루 읽으셨지요. 큰스님은 책 심부름을 시킬 때 제목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항상 ‘어느 책꽂이, 몇 번째 칸, 오른쪽에서 몇 번째 책을 가져오라’고 하셨지요. 읽지 않고 소장만 한 책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생전 21년, 입적 후 30년을 시봉했는데 여전히 성철 스님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고요. “중국 남북조시대 양무제(502∼549)는 달마대사 열반 후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거기에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고, 만나고서도 만나지를 못했구나. 예나 지금이나 후회하고 또 한이 될 뿐이다’라고 비문을 새겼지요. 달마대사를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음을 한탄한 것입니다.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떠나신 지금 돌아보니 큰스님이 이룬 도력은 분명했는데, 20여 년을 옆에서 모시고도 제가 마음이 어두워 아직도 깨치지 못하고 언제 깨칠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지요.” ―큰스님의 가르침 중에 요즘 사람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게 있는지요. “큰스님은 삼천 배를 한 신도는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고, 다 못 한 사람은 앞에 오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천 배를 하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는다는 불평도 나왔지요. 큰스님은 늘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십시오. 나를 찾는 것은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기왕 왔으니 부처님께 자기 자신이 아닌 모든 중생을 위해 삼천 배를 하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삼천 배를 하고 나면 누구나 심중에 어떤 변화가 옵니다. 큰스님이 하신 말씀이야 많지만 이런 뜻을 가슴에 지니고 살다 보면 무언가 밝은 햇살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17년 한국 교회 주요 교단들이 모여 시작한 ‘나부터캠페인(대표 류영모 전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이 22일 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중단을 호소했다. 나부터캠페인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전쟁은 어린이, 노인,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무한한 피해를 초래하고, 그 사회가 쌓아온 온갖 가치를 부정하며 죽음과 죽임의 문화를 확산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분쟁 당사자들이 하루빨리 적대적인 행위를 벗어나 평화를 위해 동행하길 바란다”고 밝혔다.‘나부터 캠페인’은 20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 500주년을 기념해 한국 사회와 교회의 개혁을 구현하기 위해 출범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욱’하면 일단 이불 뒤집어쓰고 자세요. 일어나면 대부분의 화가 사라집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인 주경 스님(사진)이 최근 에세이집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것’(마음의숲)을 출간했다. 삶에 지쳐 늘 화가 가득한 현대인을 위한 다양한 조언을 담았다. 주경 스님은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뉴스를 보면 세상이 온통 거칠고 험악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곳에는 많은 사람의 사랑과 세상을 보는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이 있다”며 “사람들의 마음이 물가의 쉼터처럼 평온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스님은 “흔히 ‘욱하지 말고 참으라고 하지만 그게 쉽게 되느냐’고 반문하는데, 욱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생겨도 자제심을 잃고 ‘확’ ‘팍’ 하고 상대를 치는 등의 행동으로 나가는 것은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화를 내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욱’하고 뭔가 감정이 치받쳐 올라올 때 그것을 꿀꺽 삼키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등 그 순간만 넘겨도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이런 순간을 넘기는 행동이 쌓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스스로 화를 조절하는 능력이 길러진다”고 했다. 스님은 풀잎이 자라는 소리, 먹이를 물고 이동하는 개미가 신나서 지르는 소리, 햇빛이 어깨 위에 떨어지며 전하는 말 등 평소 인간이 듣지 못하는 의외의 소리를 열거하며, 우선 한숨 돌리는 여유를 지니라고 권했다. “선문답 같지만 보지 못하는 것을 보려면 멀리 떨어져서는 안 되고 가까이 다가가서 묵묵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며 쉬다 보면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되고, 그 뒤와 앞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겨를도 생기죠. 그런 너그러움이 있는 삶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들으며 사는 삶입니다.” 스님은 천천히 가는 것이 오히려 빠르게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늘 조급해서 빠르게 가려다 보니 성숙해지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제대로 끝까지 가지도 못하는데, 여전히 그 허술하고 허망한 빠름에 몰두하다 보니 자꾸 넘어지고 무너져 사람들 속에 있어도 허전하고 외로워진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책을 통해 사람들이 잠시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지난달 16일(현지 시간)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 제막식이 열렸다. 성상은 높이 3.7m, 가로 1.83m 크기의 전신상으로, 갓을 쓰고 도포 등 한복을 입은 김대건 신부가 두 팔을 벌린 모습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동양 성인의 상이 세워진 건 처음이다. 대성당 외벽에 수도회 창설자가 아닌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 역시 최초다. 성상을 제작한 한진섭(요셉·67) 조각가를 17일 경기 안성시 작업실에서 만났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와 동 대학원 조각과 석사를 마친 그는 이탈리아 국립카라라아카데미 조소과를 졸업했다. 2014년 서울국제조각페스타 대회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그동안의 모든 작품 활동이 김대건 신부 성상을 만들기 위한 훈련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5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성상을 설치한 뒤 탈진했다고요. “성상이 완성된 후에도 작업실이 있는 이탈리아 카라라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 운반하고 설치할 걱정 때문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어요. 성상이 워낙 크다 보니 발목 부분에 무게가 집중되는데, 그 부위가 약하기 때문에 옮기다 잘못하면 부러질 수 있거든요. 대성당 벽감(壁龕·벽면을 안으로 파서 만든 공간)에 성상을 안치하는 것도 그 작업에만 수천만 원이 들 정도로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과정이에요. 안치한 뒤 어떻게 보일지 걱정도 컸고요.”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셨다고요? “조각은 빛의 예술이에요. 작품이 놓이는 자리와 보는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죠. 그런데 대성당이라는 특성 때문에 제가 성상을 놓을 자리에 미리 올라 볼 수도 없고, 예행연습을 해볼 수도 없잖아요. 더군다나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 다르니…. 다행히 대성당 내 모든 예술 작품의 관리 총책임자인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이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시더군요. 그 순간 2년여 동안 긴장했던 마음이 확 풀려서….” ―처음에는 다른 모습의 성상이 채택됐다고 하던데요. “두 팔을 벌린 모습, 가슴에 손을 모은 모습, 십자가를 든 손을 앞으로 뻗은 모습(왼손, 오른손 각 1개) 등 4개 시안을 제시했어요. 교황청에서 처음에는 십자가를 든 모습을 채택했죠. 그런데 변형이 올 수 있다는 이유로 지금 모습으로 바뀌었어요.” ―변형이 올 수 있다니요? “십자가 든 손을 앞으로 뻗는 성상으로 하면 팔 중간 부분부터 벽감 밖으로 나오게 돼요. 설치 장소가 외부라 눈과 비, 바람, 햇빛 등에 노출돼 시간이 지나면 색감 등의 변형이 생겨 팔의 벽감 안 부분과 밖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거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은 미켈란젤로 등 어마어마한 거장들의 작품이 있는 곳이잖아요. 정말 아주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쓰더라고요.” ―김대건 신부의 무엇을 가장 표현하고 싶었습니까. “김대건 신부는 사제품을 받자마자 죽을 각오를 하고 조선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사제가 된 지 1년 만에 25세의 나이로 순교하지요. 그 젊음이 주는 배짱과 담대함, 용기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인자하고 부드러운, 모든 걸 포용하는 느낌도 주고 싶었지요.” ―“그동안의 모든 작품 활동이 성상을 만들기 위한 훈련인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탈리아 국립카라라아카데미에서 10년을 공부했어요. 카라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리석 산지예요. 그 경험이 돌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지요. 또 몇 년 전 김대건 신부 성상을 맡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할 때인데, 우연히 정하상 바오로 등 한국 성인 석상을 여럿 제작하게 됐어요. 이 모든 게 김대건 신부 성상을 만들게 하기 위해 준비를 시키신 게 아닌지…. 여기 작업실 바로 인근에 김대건 신부 묘소가 있는 미리내 성지가 있어요. 그 때문에 여기 온 건 아닌데… 생각할수록 참 놀랍지요. 하하하.”안성=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가톨릭 신자인 장면 요한 파리 유엔 사절단 대표. 성하께 드릴 한국 대통령 서한 들고 12월 14일 로마행. …(중략)… 유엔 승인받은 현 정부를 교황청에서 계속 인정해 주시길.’(사도좌 순시자로 한국에 파견된 패트릭 번 신부가 장면 대표를 소개하며 1948년 12월 교황청 푸마소니 추기경에게 보낸 전보) 한국과 교황청 수교 60주년을 맞아 2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한국과 교황청 간 역사를 보여주는 특별 기획전 ‘모든 이를 위하여’가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관장 원종현)에서 열리고 있다. 12월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과 교황청 간 역사를 조망하고, ‘모든 이를 위하여’ 지향해야 할 공동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됐다. 1811년 조선 천주교 신자들이 교황 비오 7세에게 신유박해(1801년) 후 10년 동안 조선에서 일어난 일을 구체적으로 적어 보낸 편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베이징 교구에서 완전히 독립된 조선대목구를 설정한다는 내용의 소칙서(1831년) 등 일반에 잘 공개되지 않았던 교황청 문서들을 볼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장면 전 부통령이 1948년 9월 6일 자로 발급받은 대한민국 외교관 여권 1호. 1948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 제3차 회의에 수석대표로 파견된 장 전 부통령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합법적이고 유일한 정부임을 승인받은 직후인 12월 16일 특사 자격으로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 비오 12세를 알현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교황청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한국 신자들이 서울 대주교좌 창설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를 교황에게 전달했다. 이 밖에 세계 교회에 한국 교회의 주권을 인정하는 ‘한국 천주교회 교계 제도 설정 교서(1962년 3월)’, 교황청 사절로 교류하던 관계를 ‘주한 교황청 공사관’으로 승격시킨 교황 바오로 6세의 대칙서(1963년 12월)도 전시된다. 한국―교황청 수교 60주년은 바오로 6세의 대칙서로 교황사절이 교황 특권 공사로 승격된 1963년부터 기산한 것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어릴 적 식당에서 안주로 나온 돼지머리 고기를 보며 ‘제일 처음 돼지머리를 먹을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을 텐데…’ 하며.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하게 되는 ‘이게 어디서 유래한 거지?’라는 상상. 경희대 사학과 교수가 이런 의문을 일상생활과 역사 속 각종 사례를 대상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대중 술인 소주는 어떻게 유래됐을까. 저자는 증류주를 만드는 기술은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됐기 때문에 한마디로 기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중국 지린성에서 발굴된 거란 시대(10, 11세기)의 술을 빚는 솥과 쟁반 등을 근거로 기호품으로서의 소주는 거란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배경에는 유목민이라는 그들의 생활 방식과 만주라는 지리적 환경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증류주는 도수가 높아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취할 수 있어 유목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는 휴대하기 편리한 술이었고, 겨울이 긴 만주는 증류 과정에서 냉각을 위해 필요한 얼음을 구하기 쉬운 곳이었다. 또 농사가 발달해 누룩 같은 술 재료를 구하기도 쉬운, 소주를 대량 생산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에 몽골 제국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는데, 이는 우리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경상도 방언에 있는 ‘아라기’란 말은 술 또는 술지게미를 가리킨다. ‘아라기’는 아랍 지역의 증류 시설인 ‘알렘빅’(아랍어로 ‘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증류 과정에서 술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땀과 같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물을 통해 과거의 사람들도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도 말한다. 1950년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노브고로드에서 800년 전 ‘온핌’이라 불린 아이가 쓴 필기 뭉치가 발견됐다. 종이 대용으로 사용한 자작나무 껍질에는 성경 구절과 그림, 낙서 등이 있었는데, 함께 수업받는 학생들을 그린 그림에는 공부하기가 싫었던 듯 ‘아, 벌써 6시인데…’라고 써 있었다. 온핌의 필기 뭉치는 지금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유물 중 하나라고 한다. 죽은 자들이 남긴 물건이나 흔적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흔한 물건 하나에도 수천 년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생각에 왠지 겸손함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막걸리, 맥주 맛이 나오게 된 것은 물론이고 판사의 판결, 의사의 진찰과 처방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즐기는 모든 것은 수천 년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쌓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흔히 과거와 미래를 단절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실에서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거는 현재, 미래로 이어지고, 미래는 다시 과거의 반복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이 미래를 판단하고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바로 우리가 지나온 과거이며, 죽어있는 유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고고학은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유의미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수천, 수만 년 전 유물 한 조각에 남아있는, 그 옛날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소망했던 모습을 읽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내 주변, 사랑하는 대상들을 돌아보게 하니 참 신통하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기념식이 21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주지 법해스님)에서 열린다. 기념식에서는 성파 종정이 ‘감로, 함께하는 세계를 위한 축복과 환희’라는 법문을 주관한다.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전쟁 희생자들의 왕생을 기원하고, 참전용사 극락왕생을 위한 위패봉안을 한다. 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희생자 등 세계 곳곳에서 사고로 희생된 이들과 가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며 전쟁 종식·평화 기원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진관사 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는 조선 태조 때 조종(朝宗)의 명복을 빌고, 중생을 복되게 하기 위해 진관사 경내에 총 59칸의 수륙사를 건립하면서 시작됐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불교계 가을 축제인 ‘2023 불교문화대전’이 1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대와 대구, 강원, 전북 등지의 지역 사찰에서 열린다. 올해로 4회를 맞은 불교문화대전은 불자는 물론이고 국민과 불교문화를 향유하는 장으로 마련됐다. 조계사 앞 특별무대에서 18일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불교미술대전, 불교예술 콘서트, 불교언론문화상, 불교출판문화상, 신작찬불가 공모상 시상식도 함께 진행된다. 또 경북 성주 심원사 가야산 산신대제, 경주 굴곡사 전통무예대회, 경남 창원 성주사 산사문화예술제, 전남 해남 대흥사 사랑나무 음악회, 광주 증심사 무등산 가을 산사음악회 등 지역 사찰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대표이사 묘장 스님)은 지난달 8일 모로코에서 발생한 규모 6.8의 대형지진 재난과 관련해 현지를 찾아 텐트 150동, 책가방 500개, 위생키트 500세트 등 긴급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고 11일 밝혔다. 재단 측은 “대지진이 일어난 지 한 달 정도 지났지만, 아직 피해복구가 완료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특히 산간 지역에 있는 마을들은 외진 곳에 있는 데다 도로 복구가 지연돼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단은 지난달 18일 선발대, 이달 5일 본대를 파견해 스모고스트 등 지진 피해 지역에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많은 사람이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꼽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걷기.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800km에 이르는 여정은 한국에서도 한 해 5000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인기 있다. 올해 2월부터 ‘산티아고 순례길 인문학’ 강의를 열고 있는 홍사영 신부(63·천주교 서울대교구 청년순례사목담당)는 6일 서울 마포구 카페 산티아고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로 가는 방법, 숙박 등에 대한 자료는 넘치지만 그 길에 담긴 의미와 인문학적 이야기에 대한 정보는 적어 강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의 신청은 카페 산티아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가능하다. ―순례길의 의미를 모르고 걷는 분들이 많은가요? “2014년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 많은 한국인을 만났어요. 한 청년이 제게 ‘신부님, 그런데 산티아고가 뭐예요?’라고 묻더라고요.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도시까지 걷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 길의 역사나 의미, 길의 주인공인 산티아고란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거죠. 걷는 것만으로도 보람이 있겠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면 더 풍성한 순례길이 될 것 같아 책(‘산티아고 길의 마을과 성당’)도 내고 강의를 시작했죠. 1년에 두 번씩 순례단과 함께 다녀오고 있어요.” ―길의 주인공이 야고보가 아니라 산티아고입니까? “야고보를 스페인어로 이야고라고 불러요. 거기에 ‘성스러운’이란 ‘산토(santo)’가 붙은 거죠. 야고보는 예수의 뜻에 따라 스페인에서 복음을 전파한 인물이에요. 잠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처형됐는데 그의 제자들이 유해를 스페인으로 옮겨 매장했고, 수백 년간 잊혔죠. 그러다 813년 한 수도자가 기도 중에 신비로운 별빛에 이끌려 나간 들판에서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해요. 그곳을 ‘별(estella)이 비추는 들판(campo)’으로 부른 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지명의 유래가 됐다고 해요.” ―인문학 이야기도 풍성한 길이라고요. “순례란 각종 성지, 유물, 예수와 성인의 발자취 등을 찾아 방문하며 걷는 여정이에요.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개지만 우리나라에서 보통 산티아고길이라고 하는 ‘프랑스길’(생 장 피에드포르∼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는 170개가 넘는 마을과 300여 개 성당, 수많은 문화유산이 있어요.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도 뭔지 몰라서 그냥 지나친다면 아깝지 않나요.”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한 안토니 가우디를 말하는 겁니까? “네, 순례길 중간쯤 레온과 아스토르가란 도시가 있어요. 레온에 있는 ‘카사 보티네스’란 중세풍의 현대적 건물이, 아스토르가에 자리한 네오고딕 양식의 ‘카미노 박물관’이 모두 그의 작품이죠. 나바레테란 도시에는 큰 성당이 있는데, 그 안에 성모 승천을 묘사한 거대한 바로크 주제단화도 정말 볼만합니다.” ―그 많은 문화유산을 다 볼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산티아고 순례길도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길이기 때문에 어떤 구간은 공장지대를 지나기도 해요. 저는 그런 구간은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서 시간을 단축하고 좀 더 의미 있는 곳을 방문하는 것도 좋지 않나 싶어요.”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굉장히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궁극적인 순례의 목표는 변화된 나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에요. 새로 태어나는 일은 늘 고통을 수반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목표에 더 충실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걷고, 그 과정에서 큰 힘을 얻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신앙이 있든 없든 상관없죠.”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원장 범해 스님)에서 한국 불교의 주체적 관점에서 집필한 국내 첫 ‘대승불교개론’이 지난달 출간됐다. 그동안은 일본 또는 유럽에서 쓴 대승불교개론을 번역해 공부해왔다고 한다. 발간을 주도한 교육원 교육부장 지우 스님(사진)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교육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대승불교가 17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데도 지금까지 우리만의 관점으로 대승불교 전반을 담아낸 개론서가 없었다”며 출간의 의미를 설명했다. ―기존 개론서는 어땠습니까. “일본이나 서양에서 그들의 시각으로 쓴 대승불교개론엔 한국 불교는 생략되거나 아주 간단하게 다뤄졌지요. 그걸 번역해 공부해왔으니…. 개론서는 학인 스님들은 물론이고 신도들도 공부를 위해 처음 접하는 책인데 그 안에 우리 것이 없었으니 말이 되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부족했던 것입니까. “기존 번역서들은 중국과 일본 불교를 주로 다룹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불교에 큰 족적을 남긴 고승들과 한국 불교에 깊이 스며 있는 밀교 등은 없거나 빠져 있지요. 밀교는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한 이래 종파를 막론하고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밀교 사상과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 불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요.” ―가장 기본적인 책인데 왜 그동안 없었던 것입니까. “대승불교 역사는 2000년이 넘습니다.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 율종 선종 등 우리 땅에서 꽃피운 여러 종파를 아우르고, 금강경 반야경 화엄경 아미타경 등 경전도 어마어마하게 방대하고 정교하지요. 여기에 개론서를 만들려면 각 경전을 해석한 기존 학설은 물론이고 최신 학설까지 담아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광복 후에도 상당한 세월이 흐를 때까지 여력이 없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현실적으로 엄두를 내지 못했지요.” ―연구 역량도 쌓여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어느 학문이든 개론서는 가장 역량 있는 교수들이 쓰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 방대하고 심오한 내용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하니 중간자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만의 대승불교개론서가 필요하다는 자성이 나온 뒤에도 바로 만들 수 없었던 게 사람을 먼저 키워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 유학 갔던 분들이 돌아와 학문적 업적을 쌓으면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 것이죠. 이번 개론서 발간은 우리 불교가 상당한 수준의 연구 인력을 키워냈다는 의미도 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을 세우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지하에 통로를 만들어 관람객이 아래에서 쳐다보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우 스님은 총무원장 취임 1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26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스님은 “행정 절차와 기술적 문제 등 여러 제약 때문에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일단은 마애불을 바로 세우는 게 목적이지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지하 통로 관람 방식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7년 5월 경주 남산 기슭에서 엎어진 채로 발견된 경주 마애불(약 80t)은 지형적, 기술적 어려움과 파손 우려 탓에 지금까지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있다. 조계종은 ‘마애불 바로 모시기’를 올해 종책 사업으로 정해 추진 중이다. 진우 스님은 최근 정치권의 극한 대립에 대해 안타까움도 표시했다. 스님은 “정치인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만날 때마다 화합시키려고 굉장히 꾸짖기도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워낙 진영논리가 첨예하다 보니 종교 지도자로서 공개적으로 일갈하기도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며 “각자 아전인수로 해석해서 또 다른 논란이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내년 상반기에 한국적 명상 프로그램인 ‘K명상’을 개발해 보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진우 스님은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불안감, 적대감 등 심리적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그 해소 방안으로 우리 정서에 맞는 ‘K명상’을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계획안이 마련되면 템플스테이와 연계해 전국적인 명상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조계종 조직을 개편하기 위해 조계종 헌법에 해당하는 종헌과 종법도 이르면 내년 3월경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진우 스님은 “고통받는 국민에게 자비, 상생, 화쟁 등 불교 정신이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화엄사 원로 적암당 종효 스님이 26일 입적했다. 세수 77세, 법랍 53세. 전남 구례 천은사 주지를 지내며 승려 노후 복지, 청소년 대상 템플스테이 체험 확대에 힘썼다. 분향소는 구례 화엄사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28일 오전 10시에 엄수된다. 화엄사 다비장 연화대에서 다비장이 봉행된다. 061-783-7600이진구 종교전문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