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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절차가 공식 마무리됐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것은 1998년 이후 27년 만이다. 이에 따라 전국 의대 40곳은 내년도 신입생으로 4567명을 선발하게 됐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24일 오후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대입전형위원회를 열고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심의해 승인했다. 이에 따라 내년도 전국 의대 40곳의 모집인원은 올해보다 1509명 늘어난 총 4567명으로 결정됐다.이날 심의에 참여한 오덕성 우송대 총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교육부에서 결정된 정원 조정계획에 따라 각 대학이 제출한 안건에 대해 회의에 참여한 대학 총장과 시도교육감, 학부모 등 전원이 찬성하고 동의했다”며 “심의 과정에서 반대는 없었다”고 밝혔다. 오 총장은 의대 대폭 증원 시 교육 질 저하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국가 정책으로 결정된 일로 우리 소관 밖의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날 대교협 심의는 의대 증원 절차의 사실상 마지막 단계다. 구연희 교육부 대변인은 “의대 증원이 확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일부 대학의 학칙 개정 등의 절차가 남았지만 이는 상위법에 따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원을 결정한 것의 후속 조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그럼에도 학칙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 학생 모집인원 감축 등 행정조치를 통해 불이익을 줄 방침이다.대교협은 심의 결과를 각 대학에 통보해 이달 말까지 해당 대학 홈페이지에 모집요강을 공개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교육부와 함께 30일 브리핑을 갖고 이날 확정된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발표하기로 했다. 발표에는 수시와 정시 비율, 지역인재전형 비율 등이 포함된다.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건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 이후 27년만이다. 정부는 고령화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2020년을 포함해 여러 차례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의사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때 의사들의 요구에 따라 정원 351명을 줄여 의사 부족 현상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의사단체는 이날 심의 결과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는 “급격한 정원 확대로 교육 질 저하가 불가피하다”며 “지금이라도 증원을 멈춰야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주했다. 다만 증원 확정 시 ‘일주일 휴진’을 예고했던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휴진 방침을 철회하고 “지금처럼 중증·응급 환자를 진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히며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정부가 정한 복귀 시한인 20일까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정부는 연말까지 전공의 이탈 사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비상진료체계 장기화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병원을 전공의 대신 전문의 중심으로 만들고, 경영난을 겪는 대학병원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방안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정부는 또 경증환자들이 대형병원에 몰리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할 방침이다.● “전공의 한 사이클 쉬어도 큰 문제 없어” 20일로 전공의 이탈이 3개월을 넘으면서 복귀 동력은 상당 부분 사라진 상태다. 규정상 수련기간에 3개월 이상 공백이 있으면 전문의 취득이 1년씩 늦어지게 된다. 원칙적으로는 지금 돌아오나 연말에 돌아오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겉으로 “돌아올 경우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며 연일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요구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연말까지 복귀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도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이탈한 상태로 영원히 간다면 문제가 심각해지겠지만 한 사이클 쉬어간다고 그 공백 때문에 의료체계에 크게 부담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에 속도 먼저 정부는 그동안 전공의에 의존해왔던 대형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통령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필수의료·공정보상 전문위원회’는 23일 1차 회의를 열고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보상 개편 방안을 구체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문의가 많을 경우 수가를 더 지원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공의 대신 진료지원(PA·Physician Assiatant) 간호사 역할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또 대형병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연말까지 건강보험 재정 투입을 이어갈 생각이다. 현재 정부는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에서 급여비의 30%를 선지급하고 있다. 정부 부담으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547명을 파견하는가 하면 신규 채용 인력 인건비 등으로 월 1882억 원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원하며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부담이 증가하는 건 사실이지만 의료 인프라가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흠이 생기면 안 된다”며 이해를 구했다. 정부는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상급종합병원(3차 병원)이 운영될 경우 상당 기간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경증환자를 1, 2차 병원으로 유도하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3차 병원에 가기 전 2차 병원 경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경증 환자를 지역·전문 병원으로 보낼 경우 수가를 지원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3차 병원이 중증 환자나 2차 병원을 거쳐온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형병원 경영난 심화, 간호사 반발도 하지만 의사들은 지금도 한계상황이라며 연말까지 버틸 수 있다는 건 정부의 착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은 23일 총회를 갖고 “일부 교수들은 번아웃 직전에 도달한 상태”라며 매주 금요일 휴진 방침을 밝혔다. 대형병원 경영난도 심화되고 있다. 충남대병원은 23일 비상진료 단계를 1단계에서 2단계로 상향한다고 발표했다. 조강희 병원장은 이날 병원 내부망에 “2개월 내로 통장이 바닥날 것”이란 글을 올리고 전 직원에게 주 4일 무급휴가를 권고하는 한편 직책수당을 삭감한다고 밝혔다. 전공의 대신 일을 떠맡게 된 간호사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사 약 1만 명(경찰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간호법 통과 촉구 집회를 열었다. 간협은 이 자리에서 “간호사가 필요할 때만 쓰고 버려지는 티슈 노동자일 수 없다”며 “21대 국회에서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PA 간호사) 시범사업을 보이콧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전공의 집단행동을 부추긴 혐의로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를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해 23일 전공의들에게 참고인 출석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전공의들의 반발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가족 돌봄 청소년이라는 걸 주위에 알렸다면 저도 도움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직장인 김율 씨(30)는 중학교 3학년 때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며 집에서 가장 역할을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정신질환을 앓던 아버지는 이마저 거부했다. 생활비가 없어 집에 가스와 전기가 끊기기 일쑤였고 급식비 낼 돈조차 없어서 배식 봉사활동을 하며 끼니를 해결했다. 김 씨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집이 싫었다”며 “아버지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자주 폭행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고교를 졸업한 뒤 집을 떠났다. 하지만 4년 후 아버지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는 “오랜만에 찾은 집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고 돌이켰다.● ‘사실상 가장’인 가족 돌봄 청소년 34세 이하이면서 김 씨처럼 중증질환이나 장애, 정신질환 등이 있는 가족을 돌보고 있거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 가족 돌봄 청소년·청년으로 분류된다.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가족 돌봄 청년의 경우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최대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 발표한 가족 돌봄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돌봄 부담이 과중한 탓에 가족 돌봄 청년의 우울감 유병률은 약 61.5%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청년(8.5%)에 비해 7배가 넘는 것이다.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응답(22.2%)도 일반 청년(10%)의 2배가 넘었다. 또 가족 돌봄 청년 10명 중 4명은 돌봄 지원 등 어떤 복지 서비스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돌봄 청년의 40.7%는 의료비나 생계비 지원 등 현금성 복지 지원을 이용해 본 경험이 없었고, 47.3%는 가정 방문 돌봄 등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다시 만난 아버지를 살뜰히 보살피고 있다는 김 씨 역시 “청소년기에 단 한 번도 외부 지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며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무엇보다 ‘너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내가 가족 돌봄 청소년인지 몰랐다” 정부와 사회복지단체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건, 가장 역할을 맡은 이들이 스스로 가족 돌봄 청소년·청년에 해당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수정(가명·21) 씨는 중증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10대 동생 두 명을 돌보고 있다.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최근 중풍에 걸렸고, 어머니는 조 씨가 어릴 때 아버지와 이혼한 뒤 집을 떠났다. 조 씨는 “가족이 아프면 재난으로 느껴질 정도로 내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면서도 “아버지가 있다 보니 스스로 가족 돌봄 청소년인지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부터 심장질환을 앓는 어머니를 혼자 돌보는 유하은(가명·18) 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 양은 어머니가 심정지로 쓰러져 장기 입원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간병을 자처했다. 최근에야 자신이 가족 돌봄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유 양은 “주위에선 효녀라고 하는데 엄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며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엄마를 그렇게 원망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양은 간병 스트레스로 자해를 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장영진 보건복지부 청년정책팀장은 “올해부터 인천, 울산, 전북, 충북에서 가족 돌봄 및 고립은둔 청년 전담 원스톱 지원체계 시범사업을 실시한다”며 “가족 돌봄 청소년이 스스로 돌봄을 받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마땅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민관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비전, 인식 증진 캠페인 실시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은 이달 말까지 가족 돌봄 청소년 인식 증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가족 돌봄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주체로 인식하고 실제 사회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며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조기 발굴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번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선 가족 돌봄 청소년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직접 응원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월드비전은 또 카카오톡 채널을 개설해 가족 돌봄 청소년들이 외부에 직접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캠페인 참여자 등이 익명 상담 등을 해준다. 월드비전은 전국 GS25 편의점 1만8500여 곳에 인식 증진 포스터도 부착했다. 포스터에서는 가족 돌봄 행위를 7가지 그림으로 보여주며 더 많은 이들이 지원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배우 공명은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위촉돼 가족 돌봄 청소년을 응원하는 활동에 참여한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정부는 22일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에 대해 “현행법을 위반한 상태가 3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며 조만간 의사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취할 방침임을 재확인하면서도 “복귀하면 충분히 상황을 고려해 적정 처분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대생 이탈이 장기화되면서 일각에서 거론되는 의사 국가시험(국시) 연기 가능성에 대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국시 연기는 있을 수 없는 일”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2일 의대 2000명 증원 발표 후 106일 만에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향후 의정갈등 대응 방안을 밝혔다.조 장관은 먼저 “법은 누구도 예외 없이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인데 3개월 넘게 현행법 위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어 “처분 절차를 언제 재개할 건지, 처분 시점을 어떻게 할 건지, 처분 수위를 어떻게 할 건지 검토 중”이라며 “저희라고 처분을 하고 싶겠는가. 업무개시명령 위반을 확인해도 처분 절차가 길게는 3개월 정도 걸리는데 그 중에 (전공의들이) 복귀하면 처분할 때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정부가 대형 병원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전공의들에게 구상권 청구를 할 것이라는 보도에 대해선 “손해배상과 관련해선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조 장관은 올 9월부터 예정된 국시를 연기해 달라는 일부 대학의 건의에 대해선 “의대생들이 지금이라도 복귀하면 국시 일정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며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도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국시 연기는 있을 수 없다”며 “지난해 시험을 떨어진 분들도 있고 소수지만 수업을 듣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을 위해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박 차관은 “2020년처럼 추가 시험으로 구제를 할 것인지는 말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박 차관은 이어 이날 게재된 본보의 전공의 실명 인터뷰를 거론하며 “문제의 본질은 전공의가 근무지를 떠나고 해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며 “환자를 생각할 때 마음이 무겁다면 한시라도 빨리 복귀해 달라. 복귀하면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고도 했다. 또 “ 복귀하고 싶어하는 수많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있다”며 “그 분들이 마음 편하게 동료 눈치보지 않고 돌아올 수 있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이날 정부는 전공의 이탈 장기화에 따라 군의관 120명을 추가로 대형병원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대형병원 등에는 군의관 및 공중보건의 총 547명이 근무하게 된다. 정부는 당분간 이들의 근무 기간을 연장하거나 새 인력으로 교체하며 인원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방침이다.●의협 “대화할 준비 돼 있다”, 정부 “환영”한편 대한의사협회와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맞서 공동 행보를 펴기로 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의협은 22일 오후 대한의학회,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과 연석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의협과 의대 교수 등은 앞으로 매주 정기적으로 연석회의를 진행하며 단일 의견을 내기로 했다. 성혜영 의협 대변인은 이날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료계와 정부는 대화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박 차관은 중대본 브리핑에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환영한다”며 “연락을 취해 구체적인 자리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다만 의협과 정부는 서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고 있다. 최창민 전의비 회장은 “의사단체는 정부와 협상할 준비가 어느 정도 돼 있다. 다만 정부가 전제조건을 달아 놓고 우리보고 조건 없이 만나자니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책임이 증원을 기정사실화한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 차관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원점 재검토와 같은 비현실적인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의협 내부에선 그 동안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개원의들이 휴진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의협은 2020년에도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2차례 집단휴진을 진행했다. 다만 당시에는 개원의 중 실제 휴진에 참여한 비율은 10∼20% 수준이었다.한편 이날 경상국립대와 전북대에서 의대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안이 부결되는 등 대학가에서도 진통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경상국립대의 경우 전날 학무회의에서 통과한 학칙 개정안이 교수·대학 평의원회에서 부결됐고, 전북대에서도 교수평의회에서 학칙 개정안이 부결됐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전공의들이 말하는 ‘사직, 그후’ 정부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복귀 시한으로 정한 20일 서울아산병원 필수의료과 레지던트 3명은 병원으로 돌아가는 대신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동아일보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 이들은 “고통받는 환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라면서도 “현 상황에서 병원에 돌아갈 생각은 없고 내년에 전문의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필수의료 전문의가 필수의료를 못 하게 만드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2000명을 늘려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아이들 보는 게 너무 좋았고, 제 삶을 소아청소년과에 바치고 싶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4년 차로 일하다 사직한 김서연 씨(33)는 환자 생각에 지금도 서울 송파구에 있는 병원 앞을 종종 찾는다고 했다. 김 씨는 “병원을 떠나던 날 암 수술을 앞둔 아이가 ‘수술 잘 받고 기다리겠다’고 했던 걸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면서도 “병원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정부가 병원을 떠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에게 복귀 시한으로 제시한 20일 서울아산병원 필수의료과에서 일했던 고연차 레지던트 3명이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병원을 떠난 이유와 현재의 심경 등을 밝혔다. 올 2월 의료공백 사태 후 전공의 단체 지도부가 아닌 일반 전공의들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언론에 나선 건 처음이다. 내년 전문의 자격 취득 시험을 앞둔 이들은 “이대로 의대 증원 정책이 강행된다면 내년도 전문의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병원 이탈 말곤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전공의들은 ‘탕핑(躺平·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 전략을 취하며 외부에 노출되는 걸 꺼렸다. 지난달 4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만난 걸 제외하면 정부의 대화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 김 씨는 그 이유가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경찰이 병원에 와 직원과 함께 전공의 근무시간을 확인했고 집에는 면허정지 사전통지서가 날아왔다. 정부도 매일 브리핑을 하며 전공의들을 압박하는데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고 돌이켰다. 이 병원 신경과 레지던트 4년 차로 일했던 윤명기 씨(30)도 “정부에서 집단행동 금지 명령을 내려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 내과 레지던트 3년 차로 일했던 백동우 씨(29)는 “국민과 환자의 고통이 가중되는데 계속 침묵만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개석상에 나서지 못했던 것은 향후 전략이나 계획이 불명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 씨는 “주위에서 전략이 뭐냐고 묻는데 전공의들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나온 것도 아니고 향후 전략이 어떻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다”며 “솔직히 말하면 다른 방법이 없어 이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의사 늘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전공의들은 의사 수가 늘어도 지금 같은 구조에선 필수의료가 살아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백 씨는 “필수의료 전문의가 되더라도 그 분야에서 일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의사가 2000명 늘어도 대부분 미용의료 분야로 가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 씨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지금도 매년 늘고 있는데 수가 문제, 소송 리스크 등 때문에 그 길을 포기하는 게 문제”라며 “최근 정부에서 (의료공백으로 투입된 비용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필수의료를 한다는 이유로 사법적 처리 대상이 된다면 앞으로 누가 필수의료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또 “같은 과 1년 차 전공의들이 이번 사태 후 ‘이럴 줄 알았으면 일반 미용의료를 할걸’이라고 말하는 게 정말 슬프다”고 덧붙였다.● “환자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 이들은 모두 “환자를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이라고 했다. 백 씨는 “황달로 병원을 찾은 여고생이 나은 후 선물한 네 잎 클로버 자수를 부적처럼 명찰에 달고 다녔다”며 “2월 20일 오전 7시 병원 앞에 경찰들이 깔린 걸 확인하고 짐을 정리하던 중 그 자수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돌이켰다. 또 “밥그릇을 위해 환자를 두고 나온 게 아닌데 오해가 쌓이고 비난을 받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전공의들은 의료공백 사태를 통해 환자와 의사 간 신뢰가 깨진 것도 문제라고 봤다. 백 씨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는 어떤 약을 쓰는지만큼 중요하다”며 “환자들과 잘 지내며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필수의료 전공의들은 아예 안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전공의들은 또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증원 정책을 일시 중지하고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혀야 전공의 다수가 돌아갈 거라고 입을 모았다. 김 씨는 “부족한 의사 1만 명을 5년으로 나눠 2000명이란 증원 규모가 나왔다는 걸 듣고 필수의료를 얼마나 단순하게 보는지 충격을 받았다”며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 일시 정지하고 의사와 정부 관계자가 일대일 비율로 협의체를 꾸려 논의를 시작해야 복귀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병원을 떠나 급여가 끊긴 지 3개월째인 전공의들은 적금을 깨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백 씨는 “(정부 방침으로) 진료 행위를 할 수 없으니 일용직으로 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왔는데…. 10년째 이 병원에 다니는데 오늘 정말 진료 못 받나요?”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안과 의원. 눈에 이물감을 느껴 의원을 찾은 이모 씨(59)가 접수대 앞에서 “오늘부터 신분증이 없으면 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는다”는 직원 말을 듣고 당황하며 말했다. 운전면허증 등도 없었던 이 씨는 결국 대기실 한쪽에서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발급받았다.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지 않다 보니 직원 도움을 받으며 본인 인증 등을 거치는 데 10분가량 걸렸다.● “어떻게 돌려보내나” 확인 없이 진료도 이날부터 개정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되며 모든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 신분증이나 모바일 건강보험증이 있어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타인 신분을 도용해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처방받거나 해외 거주자 등이 지인 명의로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다만 단골 병원의 경우 한 번 본인 인증을 하면 6개월 동안은 다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병의원들은 혼선을 줄이기 위해 입구에 안내문을 붙이고 예약 환자에게 사전에 문자메시지로 내용을 알렸다. 하지만 현장에선 크고 작은 소동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의 한 의원에선 간호사들이 접수대에서 한 명씩 신분증을 검사하다 한 환자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자 “다시 방문해달라”며 돌려보내기도 했다. 복통을 호소하던 박모 씨(47)는 “신분증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회사와 가까운 병원을 방문했는데 진료가 안 된다고 해 당황했다”고 말했다. 신분증을 안 가져온 경우에도 진료를 받을 순 있지만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평소의 3∼4배인 진료비를 내야 한다. 14일 내 신분증과 진료비 영수증 등을 제출하면 건강보험이 사후 적용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일부 병원은 신분증을 안 가져온 고령 환자들에게는 본인 확인을 생략하기도 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동네병원장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온 환자들까지 어떻게 돌려보내느냐”며 “얼굴 다 아는 할머니까지 신분증을 확인하는 건 부정수급 방지란 제도 취지에도 안 맞는다”고 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가정의학과 원장은 “신분증이 없는 환자가 ‘나를 무시하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경찰을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병원이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다만 8월 19일까지는 계도기간이라 실제 과태료를 부과하진 않는다.● “설익은 정책이 부작용 키워” 지적도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신분증이 없으면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데 그렇다고 환자를 진료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금지된 ‘진료 거부’에 해당된다”며 “일선 병의원의 혼선이 크다”고 말했다. 모바일 건강보험증에는 본인 사진이 없고 다른 사람 스마트폰에도 설치할 수 있어 ‘반쪽짜리’ 본인 확인이란 비판도 나온다. 이에 공단은 본인 명의 스마트폰에만 건강보험증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대통령실이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의사 중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임 회장과 윤 대통령의 만남이 성사돼 의료공백 사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는 만큼 의협이 적극적인 대화 의지가 있는지 보건복지부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임 회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실의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환영한다. 윤석열 대통령께 국민 모두에게 공명정대하게 공개되는 일대일 생방송 토론을 요청드린다”는 글을 올린 것에 답한 것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임 회장이 대통령과 토론하자고 정부에 정식 연락한 것도 아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적으로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며 “대화를 하려면 대화 형식과 주제를 사전에 조율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임 회장은 1일 취임 직후만 해도 “의대 정원 원점 백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화할 생각이 없다”며 “의대 증원 문제를 포함해 일대일로 대화하자”는 정부의 제안을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 결정으로 증원이 기정사실화되자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임 회장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판사를 두고 “대법관 자리에 회유됐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아무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대통령실이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에 의사 중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임 회장과 윤 대통령의 만남이 성사돼 의료공백 사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화의 문은 열려있는 만큼 의협이 적극적인 대화 의지가 있는지 보건복지부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임 회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실의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환영한다. 윤석열 대통령께 국민 모두에게 공명정대하게 공개되는 일대일 생방송 토론을 요청드린다”는 글을 올린 것에 화답한 것이다.다만 이 관계자는 “임 회장이 대통령과 토론하자고 정부에 정식 연락한 것도 아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적으로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며 “대화를 하려면 대화 형식과 주제를 사전에 조율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임 회장은 1일 취임 직후만 해도 “의대 정원 원점 백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화할 생각이 없다”며 “의대 증원 문제를 포함해 일대일로 대화하자”는 정부의 제안을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 결정으로 증원이 기정사실화되자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한편 서울고등법원은 임 회장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판사를 두고 “대법관 자리에 회유됐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아무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되 그 중 일부를 의사과학자로 뽑을 경우 의대생 등이 우려하는 의대 교육의 질 저하를 일정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제안이 나왔다. 의사과학자는 의사 면허를 가진 과학자로 바이오헬스 분야에 기여할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등을 위한 의사과학자 양성 과제’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과학자가 활약하는 글로벌 제약 시장은 연평균 약 5% 성장해 2027년 시장 규모가 1조9170억 달러(약 2600조 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화이자, 노바티스 등 다국적 제약회사 상위 10곳 중 7곳의 최고과학책임자(CSO)도 의사 출신이다. 의사과학자들은 화이자와 모더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하기도 했다.반면 국내에선 의사과학자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고서는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은 연간 3800명 정도인데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졸업생은 30명 정도로 1% 미만”이라며 “의과학대학원도 대부분이 자연과학대나 공대 졸업생으로 충원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KAIST 의과학대학원의 경우 100명 넘는 졸업생 중 의사과학자로 자리를 잡는 비율은 약 10%에 불과하다.보고서는 “늘어나는 의대 정원의 일정 비율을 ‘의사과학자 트랙’으로 지정하고 별도 선발체계와 교육과정을 적용해 의사과학자를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금처럼 2000명을 모두 의사만으로 선발할 경우 “이공계 우수 인력의 의료계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고 의학 교육의 질이 하락할 수 있다”고도 했다. 보고서는 또 연구의 연속성이 끊기지 않도록 의사과학자 트랙을 택한 이들에게 대체복무를 적용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왔는데…. 10년째 이 병원에 다니는데 오늘 정말 진료 못 받나요?”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안과 의원. 눈에 이물감을 느껴 의원을 찾은 이모 씨(59)가 접수대 앞에서 “오늘부터 신분증이 없으면 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는다”는 직원 말을 듣고 당황하며 말했다. 운전면허증 등도 없었던 이 씨는 결국 대기실 한쪽에서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발급받았다.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치 않다 보니 직원 도움을 받으며 본인 인증 등을 거치는 데 10분가량 걸렸다.● “어떻게 돌려보내나” 확인 없이 진료도이날부터 개정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되며 모든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 신분증이나 모바일 건강보험증이 있어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타인 신분을 도용해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처방받거나 해외 거주자 등이 지인 명의로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다만 단골 병원의 경우 한 번 본인 인증을 하면 6개월 동안은 다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병의원들은 혼선을 줄이기 위해 입구에 안내문을 붙이고 예약 환자에게 사전에 문자메시지로 내용을 알렸다. 하지만 현장에선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서울 종로구의 한 의원에선 간호사들이 접수대에서 한 명씩 신분증을 검사했다. 한 환자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자 “다시 방문해달라”며 돌려보내기도 했다. 복통을 호소하던 박모 씨(47)는 “신분증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회사와 가까운 병원을 방문했는데 진료가 안 된다고 해 당황했다”고 말했다.신분증을 안 가져온 경우에도 진료를 받을 순 있지만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평소의 3~4배인 진료비를 내야 한다. 14일 내 신분증과 진료비 영수증 등을 제출하면 건강보험이 사후 적용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일부 병원은 신분증을 안 가져온 고령 환자들에 대해선 본인 확인을 생략하기도 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동네병원장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온 환자들까지 어떻게 돌려보내느냐”며 “얼굴 다 아는 할머니까지 신분증을 확인하는 건 부정수급 방지란 제도 취지에도 안 맞는다”고 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가정의학과 원장은 “신분증이 없는 환자가 ‘나를 무시하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경찰을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병원이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다만 8월 19일까지는 계도기간이라 실제 과태료를 부과하진 않는다.● “설익은 정책이 부작용 키워” 지적도의료계에선 설익은 정책이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신분증을 없으면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데 그렇다고 환자를 진료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금지된 ‘진료 거부’에 해당된다”며 “일선 병의원의 혼선이 크다”고 말했다. 모바일 건강보험증에는 본인 사진이 없고 다른 사람 스마트폰에도 설치할 수 있어 ‘반쪽짜리’ 본인 확인이란 비판도 나온다. 공단은 본인 명의 스마트폰에만 건강보험증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앱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발표에 반발하며 병원을 이탈한 지 20일로 3개월이 됐다. 대통령실은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은 전공의의 행동 변화 여부에 달려 있다”며 복귀를 촉구하고 있지만 전공의 대다수는 “법원 결정에도 달라진 건 없다”며 버티는 모습이다. 의료계에선 전공의 이탈이 길어져 전문의 배출이 중단될 경우 심장혈관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안 그래도 지원자가 적은 필수의료 분야부터 마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공의들 “법원 결정으로 복귀 안 해”장상윤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은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16일 서울고법의 기각·각하 결정은 의료개혁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사법절차 내에서 인정받은 것”이라며 “내년도 전문의 자격 취득을 위해선 20일까지 복귀해야 하는 만큼 전공의들도 돌아올 결심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또 “휴가 휴직 병가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소명을 거쳐 (20일 데드라인이) 일부 조정될 여지는 있다”며 다소 늦더라도 돌아와 달라고 촉구했다.전문의 수련 규정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을 따려면 1년의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또 매년 2월 말까지 수련을 마치는 게 원칙이지만 공백이 있는 경우 추가 수련을 5월 말까지 마쳐야 전문의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 올해 레지던트 3, 4년 차의 경우 병원을 이탈한 시점부터 3개월 이상 지나면 수련을 내년 5월 말까지 마무리할 수 없게 되는 만큼 전문의 자격 취득도 1년 늦어지게 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휴가나 병가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한 달 정도 수련 기간을 제외할 수 있는데 그래도 6월 20일경까지는 복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전공의 대다수는 요지부동이다. 18일 울산대 의대와 서울아산병원 전공의들이 함께 연 의료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공의들은 대부분 “돌아가지 않겠다”는 반응이었다. 한성존 아산병원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법원 결정이 전공의 복귀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또 정부가 한 달 더 유예기간을 줄 수 있다고 시사한 걸 두고도 “기한을 두고 싸우는 게 아니다”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도 ‘탕핑(躺平·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일관하는 전공의들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의사단체 등의 소송을 도맡고 있는 이병철 변호사는 18일 전공의들을 향해 “법원에 탄원서 하나를 낸 적이 있느냐. 너희는 유령이냐”라며 비판했다.● “흉부외과·신경외과부터 붕괴”전공의들이 다음 달 20일경까지도 안 돌아오면 내년 전문의 배출이 중단되는데 이 경우 전문의 수가 적은 필수의료과부터 큰 타격을 입게 된다.대한의학회에 따르면 올해 새로 배출된 2727명 중 흉부외과는 30명(1.1%), 신경외과는 93명(3.4%)에 불과하다. 또 전국적으로도 활동 중인 흉부외과 전문의는 1170명, 신경외과는 3089명뿐이어서 전문의 배출이 중단될 경우 전국 곳곳에서 수술과 진료에 차질이 불가피하다.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대형병원이라고 하지만 뇌혈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4명밖에 없는데 그중 한 명은 올해가 정년”이라며 “외과 수술에 최소 3, 4시간이 걸리는 만큼 교수 혼자 할 수 없고 전문의가 도와야 하는데 전문의가 충원되지 않으면 수술 건수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전국에 흉부외과 레지던트는 100명가량인데 상당수가 수련을 포기하면 10년 뒤 국내에서 심장이나 폐 수술을 할 의사가 멸종되다시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한편 의협은 22일 법원 결정과 관련해 전국의대교수협의회,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 대한의학회와 비공개 긴급 총회를 열고 총파업 등을 포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20일부터 병원 등 의료기관에 방문할 경우 신분증을 지참해야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타인 신분을 도용해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처방받거나 해외 거주자 등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1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일부터 병원과 한의원 등을 찾는 경우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외국인등록증 등을 제시해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신분증이 없는 경우 스마트폰으로 즉석에서 본인 인증을 거쳐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발급받아 사용할 수도 있다.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다만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을 때 신분을 확인하기 때문에 약국에선 따로 신분증 확인을 하지 않는다. 미성년자는 기존처럼 주민등록번호만 대고 진료받을 수 있다. 응급환자, 요양원 입소자 중 장기요양 등급 환자, 진료 의뢰 및 회송 대상자도 신분증 제시 의무가 없다. 신분증을 한 번 제시하면 같은 병원에선 6개월 동안 추가로 신분을 인증하지 않아도 된다. 신분증 등이 없는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진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대신 진료 14일 내 신분증과 진료비 영수증 등을 제출하면 건강보험이 사후 적용돼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20일부터 병원 등 의료기관에 방문할 경우 신분증을 지참해야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타인 신분을 도용해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처방받거나 해외거주자가 치료가 필요할 때 다른 사람 이름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일부터 시행하는 ‘요양기관 본인 확인 강화 제도’의 주요 내용을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신분증은 어디까지 허용되나.“건보공단이 인정하는 신분증에는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외국인등록증 등이 포함된다. 모바일 운전면허증도 가능하다. 신분증이 없는 경우 스마트폰으로 즉석에서 본인인증을 거쳐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발급받아 사용할 수 있다.”-한의원·약국에 갈 때도 신분증을 챙겨야 하나.“원칙적으로는는 병·의원, 한의원, 요양병원 등 모든 의료기관에서 건보 혜택을 받으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다. 다만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을 때 신분을 확인하기 때문에 약국에선 신분증 확인을 안 한다.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미성년자는 어떻게 하나.“미성년자는 기존처럼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응급환자, 요양원 입소자 중 장기요양 등급 환자, 진료 의뢰 및 회송 대상도 본인 확인 의무가 면제된다. 또 신분증을 한 번 제시하면 같은 병원에선 6개월 동안 추가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신분증이 없으면 진료를 못 받나.“진료를 받을 순 있다. 다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진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대신 진료 14일 이내에 신분증과 진료비 영수증 등을 제시하면 건강보험이 사후 적용돼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채용하지 못해 19일까지 두 달 넘게 야간 진료를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억6000만 원의 연봉을 제시했음에도 문의가 없다고 한다. 안성병원은 올 2월 홈페이지에 ‘의료진 공백으로 3월 1일부터 소아청소년과 야간진료가 중단된다’는 공지를 올리고 현재까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구하고 있다.이 병원은 “지역 공공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며 지난해 10월 18일부터 평일 오후 10시까지 소아청소년과 야간 진료를 해 왔다. 그런데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3명 중 1명이 2월에 사직하면서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여기에 대학병원에서 파견돼 일하던 전문의 1명도 파견 기간이 만료돼 복귀했다. 전문의 1명만 남은 상태다 보니 야간 진료가 불가능한 것이다. 병원 관계자는 “전문의를 파견해 주던 대학병원도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이탈의 여파로 추가 인력을 파견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안성병원은 야간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2월 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올렸다. 1년 계약으로 연봉 약 2억6000만 원을 주는데 주간에 8시간 일하고 돌아가며 6시간 야근을 하는 방식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주·야간 근무를 모두 하면 최대 주 70시간 일하게 된다”며 “여기에 계약직이고 휴일 및 당직 근무까지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사들 입장에선 조건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간 진료가 중단되기 직전인 2월 안성병원이 공지한 야간 소아과 진료 일정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3명이 한 달에 평균 6.3일 야간 진료를 했는데 일주일 내내 주야간 진료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의대 교수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의대생 등이 의대 증원 절차를 중지해 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신청한 집행정지 신청에서 항고심 법원이 정부 손을 들어주며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현실화됐다. 정부가 올 2월 6일 ‘2000명 증원’을 발표한 지 꼭 100일 만이다. 다만 전공의 사이에선 “돌아갈 이유가 없어졌다”는 말이 나오고 의대 교수 사이에선 사직과 휴진이 확산될 것으로 보여 의료 공백이 한층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16일 1심과 달리 의대생에게는 집행정지를 신청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집행정지를 인용하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이 미칠 우려가 있다”며 청구는 기각했다. 공공복리에 미칠 영향으로는 “필수의료·지역의료 회복 등을 위한 필수적 전제인 의대 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 준비생에 대해선 1심과 마찬가지로 집행정지를 신청할 자격이 없다며 청구를 각하했다. 2000명 증원의 근거가 없다는 원고 측 주장에 대해선 “일부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엿보이기는 하나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연구와 조사, 논의를 지속해 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증원 규모에 대해선 “내년도부터 매년 2000명씩 증원할 경우 의대생 학습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여지도 없지 않다”며 대학이 자체적으로 정한 규모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법원 결정으로 전국 의대 40곳의 모집인원은 올해 3058명에서 내년도 4547∼4567명으로 늘게 된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대학은 이달 31일까지 증원이 반영된 수시 모집요강을 발표해야 한다. 수험생들은 모집요강에 따라 9월 수시전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입시 일정을 진행하게 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법원 결정 후 대국민 담화에서 “오늘 결정으로 정부가 추진해 온 의대 증원과 의료 개혁이 큰 고비를 넘어설 수 있게 됐다”며 “더 이상 혼란이 없도록 대학입시 관련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의사단체는 즉각 재항고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대법원에서 서두르더라도 결정이 나오려면 1, 2개월 이상 걸리는데 이때는 이미 모집요강 발표가 마무리된 다음이어서 더 이상 증원을 돌이키긴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많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이번 결정으로) 전공의들이 못 돌아오면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질 것”이라고 말했다.법원 “의대 증원, 학습권 침해 여지 있지만 공공복리 더 중요” 집행정지 신청 각하-기각교수-전공의 등 신청자격 인정안해韓총리 “의료개혁 큰 산 넘었다”의사단체는 즉각 재항고 뜻 밝혀… 교수들 자율 휴진도 확산될 듯 서울고법이 16일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부 손을 들어준 건 증원 시 예상되는 의대생의 학습권 피해보다 증원 중단에 따른 공공의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규모나 속도는 별개로 하더라도 의대 증원의 필요성은 부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매년 2000명을 증원할 경우 헌법 등에 보장된 의대생들의 학습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여지도 없지 않다”며 증원 규모에 대해선 이견을 드러냈다.● “의대 증원 중단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이날 의대 교수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의대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증원 처분 집행정지 신청’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교수와 전공의, 수험생은 의대 증원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로 판단해 집행정지 신청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1심 재판부와 달리 의대생의 학습권은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의대생에게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성질”이라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구제) 필요성이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집행정지의 세 요건인 △신청인 적격성 △손해를 예방할 긴급한 필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 없음 중 앞의 두 가지를 충족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고, 이는 의사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의대 증원을 중단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헌법 등에선 의대생의 학습권과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며 각 대학이 증원분의 최대 50%를 감축해 내년도 모집인원을 자율적으로 정하게 한 것처럼 이후에도 대학 측 의견을 존중해 자체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숫자를 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원 유연하게 논의” vs “대법원에 재항고” 정부는 재판부 결정을 환영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결정 직후 대국민담화에서 “오늘 법원 결정으로 국민과 정부는 의료개혁을 가로막던 큰 산 하나를 넘었다”며 “(법원의 지적대로) 의료계가 통일된 합리적 의견을 제시한다면 언제라도 (2000명) 정원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법원에서 정부가 적법 절차를 갖춰 진행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앞으로 의사단체와의 대화 노력 및 전공의·의대생에 대한 설득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의사단체는 “즉각 재항고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최창민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위원장은 “정부가 제출한 허술한 근거 자료를 보고도 재판부가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의대 교수들의 휴진과 사직이 더 확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장 전의비는 논의를 거쳐 ‘일주일 휴진’ 등 예고했던 조치를 취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김성근 가톨릭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공의 복귀가 더 어려워진 만큼 피로도가 높아진 교수들의 자율 휴진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결정이 나온 집행정지 신청을 포함해 의대 증원 관련으로 의사단체와 의대생 등이 정부나 대학 총장 등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은 총 16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번을 포함해 법원이 의사들 손을 들어준 적은 한 번도 없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이번 사법부의 결정으로 의료공백이 종식되길 촉구한다”며 “의사들은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이제는 병원으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어른이 된 후에도 술은 안 마실 거예요.” 15일 휴일을 맞아 ‘2024 서울헬스쇼’ 행사장을 찾은 초등학교 5학년 이유진 양(11)은 눈앞이 빙빙 도는 ‘음주 고글’을 체험한 뒤 같이 온 엄마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이 양은 보건복지부 부스에서 음주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고안된 고글을 착용한 채 고리 두 개를 5m 앞 고깔에 던졌으나 모두 빗나갔다. 마찬가지로 고리를 거는 데 실패한 신지아 양(11)은 “쉬워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해보니 어지러워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공공기관 부스에선 다양한 건강 관련 체험 행사가 진행됐다. 정의훈 씨(69·여) 부부는 오전 11시경 서울 종로구보건소 부스를 찾았다. 정 씨는 남편이 스트레스 측정기를 머리에 착용한 채 뇌파를 측정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눈을 감고 약 1분간 편안한 자세를 취하자 모니터에는 ‘두뇌 스트레스 수치가 매우 높은 수준’이란 문구가 나타났다. 정 씨는 “남편의 경우 스트레스가 높게 나왔지만 나머지 수치는 모두 양호했다”며 “앞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를 많이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금연지원센터 부스에서 상담을 받은 뒤 금연을 결심하거나, 금연 의지를 재차 다지는 시민도 있었다. 약 30년 동안 흡연을 하다가 한 달 전부터 금연을 시작했다는 설국한 씨(52)는 이날 10분가량 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서울시 금연지원서비스에 등록했다. 설 씨는 “흡연 충동과 금단 현상이 심해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물어보려고 왔다”며 “힘들 때마다 상담사에게 전화하면서 계속 금연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부스에서 담배의 유해성을 알리는 ‘룰렛 ○× 퀴즈’가 진행돼 참여 시민들이 상품으로 화장품을 받아 가기도 했다. 한국1형당뇨환우회 부스에선 시민들의 혈당을 무료로 측정해줬다. 20년째 당뇨를 앓고 있다는 한규식 씨(78)는 “최근 당뇨 약을 끊은 뒤 혈당이 걱정돼 체크를 받았다”며 “오늘은 일단 혈당이 118로 높지 않게 나와 다행이다. 앞으로도 혈당을 잘 관리하겠다”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8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질병관리청 흡연폐해실험실. 연구원이 가느다란 스포이트를 전자담배 액상 용기 안에 넣었다. 끈적한 액체가 스포이트에 담기자 희석을 위해 파란색 실험용 유리관을 꺼냈다. 눈금을 관찰하며 액상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자 담배 성분 분석기 모터 소리가 들렸다. 이어 분석기와 연결된 컴퓨터 모니터에 성분 분석 결과가 그래프로 나타났다. 이날 시연한 액상 전자담배에선 프로필렌 글리콜, 글리세린, 니코틴 순으로 유해성분이 검출됐다. 나경인 질병청 보건연구관은 “몸에 니코틴이 더 잘 흡수되게 하는 프로필렌 글리콜 성분이 액상담배에 많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액상형 전자담배 자체에도 니코틴이 포함된 만큼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질병청은 이날 액상형 전자담배 성분 시험과 함께 인체에 축적된 니코틴 등을 측정하는 바이오마커 측정 시험을 시연했다. 미리 채취한 소변에 니코틴 함유 여부를 분석한 결과 흡연자의 니코틴 농도는 mL당 약 2만2000ng이 나왔다. 반면 12년간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의 니코틴 농도는 mL당 약 1ng에 불과했다. 1ng은 10억분의 1g이다. 나 연구관은 “담배를 많이 피우면 몸에 니코틴이 많이 축척돼 여러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며 “전자담배의 중금속 노출 정도를 파악하는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질병청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담배 폐해 기획보고서: 신종 담배 소개’ 보고서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는 청소년들의 흡연 가능성을 3∼6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민경 인하대 의대 교수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액상형이나 궐련형 전자담배가 건강에 덜 유해하다는 공인된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민선녀 질병청 건강위해대응과장은 “담배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데이터로 산출하는 질병청 흡연폐해실험실은 WHO의 공인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담배의 유해성 성분 분석 기법 등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하나 더, 하나만 더!” ‘2024 서울헬스쇼’가 개막한 14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시민들이 외치는 격려 구호가 울려 퍼졌다. 아들 김은결 군(9)과 함께 ‘풀업(턱걸이) 챌린지’에 참가한 김민희 씨(43)의 턱걸이 행진이 잠시 멈추자 시민들이 응원에 나선 것이다. 김 씨는 다시 힘을 짜내 몸을 끌어올렸고 총 19개를 해내 박수를 받았다. 김 씨는 “컨디션 관리를 잘한 편이 아니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잘한 것 같다”며 웃었다. 아들 김 군도 23개의 턱걸이를 해내며 이날 모자는 ‘턱걸이 스타’가 됐다. 김 군은 “엄마보다 많이 해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풀업 챌린지 1위는 강철부대 출신 이날 서울헬스쇼에는 풀업 챌린지 외에도 단체 줄넘기 대회, 점핑머신 체험 등 동료와 가족, 친구와 함께 땀 흘리며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5월의 따뜻한 햇살 아래서 진행됐다. 관심을 모았던 턱걸이 대회에는 사전등록을 한 약 80명이 참가했다. 영광의 1등은 채널A 프로그램 ‘강철부대’ 시즌 3에 출연했던 제707특수임무단 출신 오요한 씨(30)에게 돌아갔다. 이날 턱걸이 50개를 한 오 씨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일을 일찍 마치고 경기 파주시에서 왔다. 12년간 턱걸이를 꾸준히 해온 덕분에 좋은 성과를 냈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44개로 3위를 한 이래헌 씨(40)는 “턱걸이를 워낙 좋아해 경기 오산시에서 왔다”며 웃었다. 1등에게는 100만 원, 2등에게는 50만 원, 3등에게는 30만 원의 상금이 주어졌지만 등수를 떠나 참가자들은 최선을 다하는 서로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직장인 줄넘기 ‘포상 회식’ 내걸기도 낮 12시경부터 진행된 단체 줄넘기 대회에는 19개 팀이 참여했다. 광화문에 있는 직장에 다니는 이주현 씨(26) 팀이 우승했는데 직장 동료 5명이 함께 참가해 100회 줄넘기에 성공했다. 이 씨는 “시합 일주일 전부터 서울광장에서 연습에 매진했다”며 “상금 100만 원으로 동료들에게 맥주를 사겠다”고 말했다. 2위는 “잘하면 오마카세(주방장에게 맡기는 특선 요리)를 사주겠다”는 회사 대표의 말을 듣고 70회를 성공한 직장인 팀이 차지했다. 김지훈 씨(43) 팀은 “순위에 들면 한우를 쏘겠다”는 임원의 말을 듣고 의기투합해 46회 줄넘기에 성공했다. 순위권에는 못 들었지만 회사 측에서 줄넘기 멤버들에게 ‘한우 회식’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대회에서 77개로 1등을 차지했던 고진혁 씨(34) 팀은 이날 2연패를 노렸으나 호흡이 안 맞아 5회만 성공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90여 명이 동시에 점핑머신 체험도 개그우먼 김혜선 씨가 오후 2시 반부터 진행한 점핑머신(트램펄린) 체험도 인기였다. 무대에서 신나는 음악이 나오자 김 씨를 비롯해 강사 4명이 먼저 점프를 시작했다. 이어 시민 약 90명이 강사들의 움직임을 따라 하며 1시간 동안 하늘로 뛰어오르기를 반복했다. 이승혜 씨(40)는 “지난해 서울헬스쇼 점핑머신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즐거워서 올해도 남편과 사전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점핑머신 운동은 신체 밸런스 개선, 코어 근력 강화 등의 효과가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동명 씨(25)는 “20대 남자도 숨찰 정도로 충분히 힘들었다”며 땀을 닦았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자료 공개는) 여론전을 통해 재판부를 압박해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려는 의도다.”(한덕수 국무총리) “세 문장이면 끝나는 근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같은 의료농단, 국정농단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장)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의대 증원 및 배정 관련 자료를 의사단체가 13일 공개한 것을 두고 의정은 각자 브리핑을 열어 상대를 거칠게 비판했다. 의사단체는 “공개 검증을 통해 2000명 증원 및 배정 결정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증원을 결정했고 대학별 교육 여건을 확인해 배정했다”며 반박했다.● “증원-배정 근거 소명” vs “밀실 야합 논의” 양측의 주장이 가장 크게 엇갈리는 건 2000명 증원 결정에 근거가 있는지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1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연구보고서 3개가 모두 2035년 의사 1만 명 부족을 예측했다”며 “이를 토대로 증원 시기와 방식을 정책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발표 전 500명부터 3000명까지 증원 규모 추정치가 보도되는 상황이라 2000명 증원은 예측 가능했다”고도 했다. 반면 이날 정부 자료 검증 결과를 발표한 김 회장은 “수많은 회의를 했다고 주장하는데 2000명은 올 2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유일하게 언급됐다”며 “국가 중요 대계는 주술의 영역이 아닌데 도대체 어디서 나온 숫자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에 복지부는 “당시 보정심 위원 23명 중 19명이 2000명 증원에 찬성했고 의사 3명을 포함해 4명이 반대했지만 이들도 증원 취지에는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대학별 정원 배정 과정을 두고도 양측은 대립했다. 검증에 참여한 김종일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학교별 조사는 매우 형식적이었고, 배정 과정은 밀실에서 근거 없이 진행됐다”며 “몇십 분 만에 실사를 마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의대 40곳 중 26곳은 현장 실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에 교육부와 복지부는 이날 오후 긴급 합동브리핑을 갖고 “학교별 신청 규모를 기반으로 현재 교육 여건, 향후 투자계획, 지역필수의료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증원 규모를 정했다”고 강조했다. 현장실사를 생략한 이유에 대해선 “자료가 충실히 왔기 때문에 자료와 비대면 인터뷰를 통해 계획을 확인했고 샘플링해 일부만 방문한 것”이라고 했다.● 16, 17일 중 항고심 결과 나올 듯 정부는 가처분 신청인의 자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법원 제출 자료에서 “신청인은 서울대 교수, 연세대 전공의, 부산대 학생, 수험생인데 서울대 연세대는 증원이 안 이뤄졌고 부산대는 내년도 모집인원이 38명 늘어 재학생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근거가 없다. 수험생은 개별 의대에 입학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의사단체 측에선 “증원으로 이익이 생기는 대학 총장이 소송을 제기할 리 없다. 교수, 전공의, 의대생이 원고 자격이 없다면 누가 극단적 정책 추진을 막을 수 있겠느냐”며 반박했다. 항고심 결정은 16, 17일경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정부가 추진하던 의대 증원은 당분간 중단된다. 박 차관은 “인용 결정이 나면 즉시 항고해 대법원 판결을 구하겠다”고 했지만 법조계에선 대법원 판결까지 2, 3년은 소요될 것으로 본다. 기각 시에는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확정된다. 이 경우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복귀 가능성이 더 희박해지면서 내년 전문의 배출 중단 등 후폭풍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발령을 기다리고 있어요. 당장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간호사 정모 씨는 원래 이달 경기 화성시 한림대동탄성심병원에서 일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발령이 미뤄지는 바람에 최근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는 “올 3월에 입사가 예정됐던 친구도 아직 발령을 못 받은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의료 공백이 3개월째 이어지며 대형병원 경영난이 심화되자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와 임상병리사 등 보건·의료직 종사자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로 진료와 수술이 줄면서 신규 간호사 출근이 수개월째 지연되고, 계약직 근로자들은 근로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선 임상병리사 등 계약직 근로자들이 계약 연장에 차질을 겪고 있다. 이 병원 노동조합 관계자는 “병동을 축소 운영하면서 직원들이 할 일이 없어진 탓에 계약 연장이 거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며 병동을 통합했는데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인력이 일부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3월 15일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세브란스병원 계약직 근로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통상 계약직 근로자 재계약은 매년 5월에 이뤄지는데 병원 내 업무가 줄어 환자 이송 업무 담당자 등의 계약이 갱신되지 않고 있다. 권미경 세브란스병원 노조 위원장은 “계약직 근로자 대부분이 재계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병원 하청업체에 고용된 미화원들도 의료 공백으로 무급 휴직을 강요받거나 근무시간을 줄이며 수입이 줄어든 상황이다. 소병율 전국의료서비스노조 위원장은 “미화원 등은 근무일을 하루 줄여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수입도 줄어든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중에서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급휴직을 하거나 신규 발령이 중단 또는 연기된 경우가 적지 않다. 부천성모병원에서 일하기로 했던 한 간호사는 “3월에 발령을 받긴 했지만 병원에서 무기한 출근 연기를 통보받았다”며 “한창 일해야 할 때 출근이 지체되니 답답하다”고 했다.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각 대학병원의 누적 적자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 직전인 2월 16일부터 3월 말까지 500병상 이상인 전국 수련병원 50곳의 전체 수입은 2조240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238억 원 감소했다. 견디다 못한 일부 병원은 수당 등 직원 급여 일부를 삭감하거나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중이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