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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출신 세계적인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73·사진)이 18년 만에 내한해 서울시발레단 공연을 지휘한다. 나하린은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간담회를 갖고 “재능 있고 감성 풍부한 서울시발레단 무용수들에게서 보석을 발견하고 있다”며 “한국에 온 지 고작 이틀 됐는데 오래 있었던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가 안무를 맡은 작품 ‘데카당스’는 14∼23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나하린은 무용수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훈련 방식 ‘가가(Gaga)’를 개발한 스타 안무가다. 세계적인 현대무용단 ‘바체바 무용단’을 약 30년간 이끌었으며,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과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등에서 안무를 맡았다. 그의 일대기는 영화 ‘미스터 가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무브’로도 제작됐다. 나하린이 내한해 공연을 갖는 건 2007년 바체바 무용단의 ‘쓰리’ 이후 18년 만이다. 이번 공연은 1993년 초연된 ‘아나파자’부터 2023년 ‘아나파세’ 등 최신작을 아우른다. 그는 “무용단별로, 버전별로 항상 변화하는 작품”이라며 “서울시발레단과 잘 어울리도록 구성을 고민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나하린 특유의 자유롭고도 강렬한 움직임에 이스라엘 전통음악부터 쿠바의 맘보까지 다채로운 음악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는 “누구나 춤을 춰야 한다는 메시지가 읽히기를 바란다”며 “삶은 어려운 것투성이지만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적인 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춤을 추면서 거울을 보는 건 무용계의 실수예요. 거울은 무용수가 세상을, 영혼을 보지 못하게 만들죠. 이번 서울시발레단의 연습 때도 거울은 전부 커튼으로 가렸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고치기보다 움직임 자체를 느낄 수 있도록요.”서울시발레단이 14~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데카당스’의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73)은 12일 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하린은 무용수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훈련 방식인 ‘가가(Gaga)’를 개발한 이스라엘 출신 스타 안무가다. 세계적 현대무용단인 ‘바체바 무용단’을 2018년까지 약 30년간 이끌었고,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등의 안무를 맡았다. 그의 일대기는 영화 ‘미스터 가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무브’로 제작되기도 했다.나하린이 내한해 공연을 여는 건 2007년 바체바 무용단의 ‘쓰리’ 이후 18년 만이다. 이번에 서울시발레단과 호흡을 맞추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들을 하나로 엮은 ‘데카당스’. 앞서 2002년 첫 내한 공연에서 선보인 ‘데카당스’와 표지는 같지만 속은 다르다. 지난번 공연이 1992~2002년 안무한 작품들로 이뤄졌던 것과 달리 이번 공연은 1993년 초연된 ‘아나파자(Anaphaza)’뿐 아니라 2023년 ‘아나파세(Anafase)’ 등 최신작을 아우른다. 그는 “무용단별로, 버전별로 매번 변화하는 작품”이라며 “서울시발레단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구성을 고민했다”고 했다.원래 7편의 대표작에서 발췌하려 했던 계획은 열흘 전 서울시발레단의 연습 영상을 본 뒤 8편으로 늘었다. 영상에 담긴 무용수 각각의 목소리와 아름다움, 강렬한 감정이 공연에 더 잘 묻어나면 좋겠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추가된 작품은 히브리어로 ‘들판’을 뜻하는 ‘사데(Sadeh)21’로,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연출된 움직임이 특징이다. 공연에는 서울시무용단 소속 시즌 무용수 18명과 프로젝트 무용수 4명 등 총 22명이 출연한다.“통상 무용수들은 비슷한 것을 반복하다보니 새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걸 어려워하게 돼요. 그래서는 관객에게 특별한 뉘앙스를 주기 어렵죠. 그런데 재능 있고 감성 풍부한 서울시발레단 무용수들에게서 보석을 발견했어요. 한국에 온 지 고작 이틀 됐는데 꽤 오래 있었던 느낌입니다.”공연에서는 나하린 특유의 자유롭고도 강렬한 움직임, 이스라엘 전통음악부터 쿠바의 맘보에 이르는 다채로운 음악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다. 그는 “누구나 춤을 춰야 한다는 메시지가 읽히기를 바란다”며 “삶에는 어려운 것 투성이지만,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그 자체로 예술적인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016년 보물 지정 당시 도둑맞은 장물임을 감춘 사실이 몇 달 뒤에 드러났던 조선 초기 서적 ‘대명률(大明律·사진)’이 결국 보물 지정이 취소된다. 국보나 보물이 된 문화재의 지정을 취소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11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달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동산문화유산 분과 회의에서 ‘대명률’의 보물 지정을 취소하기 위한 행정처분 취소 계획이 가결됐다. 문화유산위 측은 “(보물) 허위 지정 유도에 따른 형이 집행됐기 때문에 후속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법률 자문을 거쳐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보 등으로 지정을 예고했다가 문제가 파악돼 보류한 경우는 있었지만, 지정 자체를 취소하는 건 처음이다. ‘대명률’은 중국 명나라의 형률(刑律)을 담은 서적으로, 조선 시대 형률과 조선 전기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사료다. 1389년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쇄 및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유일본이다. 대명률은 원래 문화 류씨 집안이 1878년 경북 경주에 세운 서당 ‘육신당’에 보관돼 왔으나, 1998년 무렵 건물 현판 및 다른 고서들과 함께 사라졌다고 신고됐다. 이후 경북의 한 사립박물관장이 ‘선친이 물려준 유물’이라며 보물 지정을 신청해 보물이 됐으나, 지정한 그해에 장물 업자로부터 구입한 사실이 들통났다. 해당 관장은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2021년 유죄 판결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보물 지정 취소는 30일간 이의 제기가 없으면 다음 달 관보 게재를 통해 최종 완료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조선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히는 평양 부벽루(浮碧樓)에서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도과(道科·각 도 감사에게 명해 실시한 특수한 과거시험)에 급제한 두 유생을 위한 환영회다. 평안감사 오른편엔 관복으로 갈아입은 유생이 앉았고, 뜰에선 줄타기와 극놀이가 한창이다. 부채질하는 양반, 아이를 옆구리에 낀 여인 등 수백 명의 구경꾼이 잔치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10일 공개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8폭 병풍(가로 5m, 세로 1.7m) 가운데 6번째 화폭의 내용이다. 19세기 초 제작으로 추정되는 이 병풍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피보디에식스박물관(PEM)이 1927년 일본 고미술 무역상으로부터 매입해 소장 중이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리움미술관이 1년 4개월에 걸쳐 보수했다. 보존 처리를 위해 2023년 11월 국내로 들여온 병풍엔 벌레 먹은 구멍이 약 1만 개에 이르렀다. 8폭은 낱장으로 분리된 채였고, 전반적으로 꺾임과 갈라짐 등 손상이 큰 상태였다. 남유미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수석연구원은 “충해가 보존 처리 경력 25년 가운데서도 손꼽을 정도로 심각했다. 연구원 셋이 매일 12시간씩 3개월간 매달려 구멍을 메웠다. 종이 제작 당시 색을 희게 만들려고 섞은 쌀가루가 원인”이라며 “귀한 쌀을 썼고, 그림 일부에 금칠을 했단 점에서 고위 관료의 주문작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림은 원래 ‘평안감사향연도’라고 불렸으나, 보수 과정에서 낱폭의 올바른 순서와 향연의 목적이 확인돼 더 정확한 이름을 얻게 됐다. 남 연구사는 “그림 속 행렬의 장소와 방향을 19세기 평양성도와 비교해 동선을 파악했고, 급제자가 입고 있는 복식의 변화와 횃불의 밝기 정도 등으로 선후를 유추했다”고 했다. 병풍은 다음 달 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은 낮아진다. 이 때문에 우주선은 인간이 지상에서 느끼는 대기압만큼의 변화만 견디도록 설계된다. 그러나 바다라면 얘기가 다르다. 수심 45m만 돼도 갈비뼈가 으스러질 만큼의 수압을 받는다. 아무리 최신 장비를 갖춘다고 해도 심해는 접근조차 쉽지 않다. 우주여행을 기대하는 시대지만, 더 큰 미지의 영역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처럼 “우주보다 먼 세상”에 직접 배를 타고 나가 파도, 해수, 해양 생명체 등을 관찰하는 해양물리학자가 펴낸 책이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인 저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97% 이상을 차지하는 망망대해를 떠다니면서 “감옥에 수감된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매일 범람하는 정보로부터 숨돌릴 수 있는 공간이자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이 무력해지는 곳에서 겪은 파란만장한 에피소드와 삶의 이치를 담았다. 수평선에 걸린 휘황한 노을 등 저자가 선상에서 직접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은 덤이다. 넓고 깊은 바다에서 길어 올린 삶의 이치는 마음을 고요히 잠재운다. 먼 곳에 거센 소나기를 예고하는 비구름이 몰려 있던 어느 날, 배의 선장이 갑판 바비큐 파티를 제안한다. 이에 저자가 비구름을 가리키자 돌아온 답은 “비는 그냥 피해 가면 될 뿐”. 저자는 “정해진 길만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나쁜 일을 요령껏 피해 갈 수도 있다는 것. 다시 땅으로 올라온 후에도 나는 이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흔히 “아름다운 수평선과 싱싱한 해산물로 기억될 뿐”인 바다가 인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부드럽게 타이른다. 기후위기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는 탄소를 예로 들면, 매년 16억 t 이상의 대기 중 탄소가 심해에 흡수돼 우리를 탄소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다. 그러나 수온이 상승하면서 그 저장 능력은 떨어지고 있다.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심해를 지키고 연구하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불화 중 하나인 ‘충남 부여 무량사 미륵불 괘불도’(사진)가 국보가 된다. 사찰의 야외 의식에 쓰이는 괘불도(掛佛圖)의 국보 지정은 1997년 이후 28년 만이며, 무량사 괘불도의 승격도 같은 해 보물이 된 뒤 28년 만이다. 국가유산청은 6일 “조선 후기 제작된 ‘충남 부여 무량사 미륵불 괘불도’를 국보로 승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괘불도는 길이가 약 14m에 이르는 대형 화폭에 장엄신(莊嚴身·화려한 보관을 쓰고 신체를 아름답게 꾸민 부처) 미륵불을 중심에 담고 있다. 속눈썹과 콧수염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보관 끝에 불상 6구와 동자, 동녀 얼굴 59구가 그려졌다. 유산청은 무량사 괘불도에 대해 “조선 인조 5년(1627년) 제작 연도가 명확하고, 이전에 국보가 된 괘불도들보다 연대가 앞선다”며 “초대형 작품이지만 자세와 비례가 균형 잡혔고, 강렬한 색채 대비 등이 빼어나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불화 중 하나인 ‘부여 무량사 미륵불 괘불도’가 국보가 된다. 사찰의 야외 의식에 쓰이는 괘불도(掛佛圖)가 국보에 오르는 건 1997년 이후 28년 만이며, 부여 무량사 미륵불 괘불도가 국보가 되는 것 역시 1997년 보물 지정 뒤 28년 만이다.국가유산청은 6일 “조선 후기 제작된 ‘충남 부여 무량사 미륵불 괘불도’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괘불도는 길이가 약 14m에 이르는 대형 화폭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신체를 아름답게 꾸민 장엄신(莊嚴身) 미륵불을 중심에 담고 있다. 네모난 얼굴에 속눈썹, 도톰한 입술, 콧수염까지 세밀하게 묘사돼있으며, 보관 끝에는 불상 6구와 동자, 동녀의 얼굴 59구가 빽빽히 그려졌다.17~20세기 주로 제작된 괘불도는 압도적 규모와 다양한 도상 덕에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 받는다. 현재 ‘칠장사 오불회 괘불’을 비롯한 국보 7점과 보물 55점 등 전국적으로 120여 건이 전해지고 있다.유산청은 무량사 괘불도의 국보 지정 배경에 대해 “조선 인조 5년(1627년) 제작된 것으로, 기존 국보로 지정된 다른 괘불도보다도 연대가 앞선다”며 “초대형 작품이지만 자세와 비례가 균형 잡혔고, 강렬한 색채 대비 등이 빼어나다”고 설명했다.고려 중기의 문인인 이규보(1168~1241)의 글을 모은 문집인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 중 권18∼22, 31∼41 등 일부도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 중인 이 문집은 전집 41책 가운데 16권 4책만 남아있으나, 현존하는 자료 중 가장 오래되고 희귀한 판본이며 인쇄 상태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산청은 “불교 문헌이 주를 이룬 고려시대에 제작된 개인 문집이란 점에서 희소성 있다”고 했다.‘부여 무량사 미륵불 괘불도’와 ‘동국이상국전집’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이 완료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비색이 아름다운 참외 모양 고려청자 두 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몸통에 꽃이 그려진 것을 제외하면 두 청자는 크기도, 세로로 난 골도, 벌어진 입구도 비슷하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청자 참외 모양 병’과 ‘청자 상감 모란·국화무늬 참외 모양 병’이다. 그런데 고려 인종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된 청자 참외 모양 병이 더 단정하고 온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간한 보고서 ‘컴퓨터단층(CT) 촬영을 이용한 문화유산의 해석과 이해’에 따르면 그 차이는 “제작 수준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CT 촬영 장비로 청자 참외 모양 병의 기공 분포와 단면 두께 등을 분석한 결과, 일체형으로 제작된 청자 상감 모란·국화무늬 참외 모양 병과 달리 목 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인 사실이 드러났다. 양석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는 “일체형보다 만들기 까다로운 대신 하중을 덜 받아 병의 어깨 곡선이 훨씬 자연스럽다”며 “내부 단면까지 꽃 모양인 것은 오늘날 도예가도 따라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근 문화재계에선 CT 기술로 유물을 조사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촬영 이미지를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발전한 덕분이다. 1, 2년 전부터는 유물의 기공 분포와 단면도, 실사용 용량 등까지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이번 보고서에는 중앙박물관 소장품 13점을 최신 CT 기술로 내부 구조나 제작 기술 등을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조선 ‘청화 백자 진사 투각 학모양 사각연적’에는 ‘卍’자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런데도 물을 담으면 새지 않는다. 내부에 숨은 이중 구조 때문이다. CT로 분석한 결과, 연적 안에 최대 0.06L의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집 모양 내기(內器)가 있다. 지붕으로 들어간 액체가 집 아래쪽에 연결된 수도를 따라 기둥으로 흘러 나오는 놀라운 구조다. 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건칠관음보살좌상’은 높이가 50.6cm로 현존하는 국내 불상 가운데 가장 작다. 이 불상 역시 CT로 촬영했더니 제작 기법의 정교함이 드러났다. 칠포(漆布·옻칠을 한 헝겊)층이 최대 9겹에 이르지만, 총 두께는 2∼5mm에 불과했다. 곽홍인 학예연구관은 “이런 제작 방식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면 육안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모조품과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중악박물관은 10월 ‘원통형 CT 장비’도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기존 장비보다 가로세로 길이가 2배가량 길어 목관 등 긴 네모꼴 대형 유물도 촬영할 수 있다. 목재 문화유산의 나이테 분석도 가능하다. 박학수 학예연구관은 “문헌상 조성 시기가 이미 알려진 목재 유물을 기준점으로 절대 연대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비색이 아름다운 참외 모양 고려청자 두 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몸통에 꽃이 그려진 것을 제외하면 두 청자는 크기도, 세로로 난 골도, 벌어진 입구도 비슷하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청자 참외 모양 병’과 ‘청자 상감 모란·국화무늬 참외모양 병’이다. 그런데 고려 인종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된 청자 참외 모양 병이 더 단정하고 온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간한 보고서 ‘컴퓨터 단층촬영(CT)을 이용한 문화유산의 해석과 이해’에 따르면 그 차이는 “제작 수준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CT 장비로 청자 참외 모양 병의 기공 분포와 단면 두께 등을 분석한 결과, 일체형으로 제작된 청자 상감 모란 국화무늬 참외모양 병과 달리 목 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인 사실이 드러났다. 양석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는 “일체형보다 만들기 까다로운 대신 하중을 덜 받아 병의 어깨 곡선이 훨씬 자연스럽다”며 “내부 단면까지 꽃 모양인 것은 오늘날 도예가도 따라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최근 문화재 계에선 CT 기술로 유물을 조사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촬영 이미지를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발전한 덕분이다. 1, 2년 전부터는 유물의 기공 분포와 단면도, 실사용 용량 등까지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이번 보고서에는 중앙박물관 소장품 13점을 최신 CT 기술로 내부 구조나 제작 기술 등을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조선 ‘청화 백자 진사 투각 학모양 사각연적’에는 ‘卍’자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그런데도 물을 담으면 새지 않는다. 내부에 숨은 이중 구조 때문이다. CT로 분석한 결과, 연적 안에 최대 0.06L의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집 모양 내기(內器)가 있다. 지붕으로 들어간 액체가 집 아래쪽 연결된 수도를 따라 기둥으로 흘러 나오는 놀라운 구조다.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건칠관음보살좌상’은 높이가 높이 50.6cm로 현존하는 국내 불상 가운데 가장 작다. 이 불상 역시 CT로 촬영했더니 제작 기법의 정교함이 드러났다. 칠포(漆布·옻칠을 한 헝겊)층이 최대 9겹에 이르지만, 총 두께는 2~5mm에 불과했다. 곽홍인 학예연구관은 “이런 제작 방식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면 육안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모조품과 구별할 수 있다”며 “파편만 남은 도자기, 유리 유물은 기공을 분석해 소성(燒成) 온도 등 제작 방식도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중악박물관은 10월 ‘원통형 CT 장비’도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기존 장비보다 가로·세로 길이가 2배가량 길어 목관 등 긴네모꼴 대형 유물도 촬영할 수 있다. 목재 문화유산의 나이테 분석도 가능하다. 박학수 학예연구관은 “문헌상 조성 시기가 이미 알려진 목재 유물을 기준점으로 절대 연대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피아노를 연주하다 보면 의지대로 안 되는 손동작들이 있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손 모양일 때 더욱 그렇다. 그런데 손가락을 자동으로 움직여주는 보조 장치를 사용한 뒤 다시 연주해보는 실험을 하자 이전보다 손가락을 빠르고 복잡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보조장치 도움으로 터득한 몸의 감각이 새롭게 손 쓰는 방법을 익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탐색하지 않았던 몸의 가능성을 개발함으로써 ‘가짜 한계’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장애와 몸의 고유성에 대해 연구해온 일본 도쿄공업대 미래인류연구센터장이 첨단 기술 전문가 다섯 명과 함께 우리 몸의 숨겨진 능력과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고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제어하는 기술을 발명한 레키모토 준이치, 세계적인 컴퓨터과학 연구 기관인 소니 컴퓨터사이언스 연구소의 후루야 신이치 등이 참여했다. 특히 ‘생각이 몸을 통제한다’는 통념을 부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일본 프로야구 팀에서 21년간 투수로 활동했던 구와타 마스미에게 “똑같은 자세로 볼을 30회 던져달라”고 요청한 실험이 대표적이다. 에이스 투수 출신답게 결과는 안정적이었으나, 의식적으로 동일한 자세를 취하려 했던 노력은 헛수고였다. 공을 놓는 지점은 점점 앞으로 갔고 높이도 낮아졌다. 책에 따르면 이는 ‘똑같은 자세로 던지겠다’는 생각의 결과라기보다는 “오차를 포함한 정답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자 “몸이 의식에 앞서 어떤 일을 해낸 것”이었다. 인공지능(AI)에 관한 마지막 장은 ‘할 수 있다’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영어가 서투른 사람이 실시간 AI 자동 번역에 자신의 목소리까지 덧씌울 수 있다면 과연 이 사람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인가, 여전히 못하는 사람인가.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할 수 있다=뛰어나다’, ‘할 수 없다=열등하다’라는 능력주의적 척도가 갈려 있다. 그러나 능력이 확장된 ‘몸’의 관점에서 보면 할 수 있음에 대한 정의부터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 창덕궁 후원이 도심 한복판에서 펼쳐졌다.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실감형 미디어아트 전시 ‘미음완보(微吟緩步), 전통정원을 거닐다’는 16m 길이의 ‘ㄷ’자 벽면에 영상을 투사해 꽃잎 흩날리는 봄에서 눈 덮인 겨울 연못에 이르는 후원의 사계절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국가유산청이 4월 27일까지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전통 조경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기획됐다.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다’라는 뜻의 전시 제목처럼 정원과 교감하려 했던 조상들의 시선을 담았다.전시에선 전남 담양 소쇄원, 충남 논산 명재고택 등 유명 전통 정원이 미디어아트로 펼쳐진다. 그룹 이날치 출신 음악감독 장영규가 만든 음악, 전문조향사가 맞춤 제작한 꽃향기를 더해 몰입도를 높였다. 지리산 불일폭포를 형상화한 미디어 폭포는 가로 12.7m 벽면에서 약 6m 높이로 쏟아지며, 레이저 센서로 관람객 위치를 인식해 물길이 갈라지게끔 연출됐다. 전시에는 국가유산청이 2021년부터 축적한 전통조경 3차원 실측 데이터가 활용됐다. 김동현 명승전통조경과 주무관은 “모니터링할 때 쓰이던 데이터를 활용해 정원의 아름다움을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흘간 선보인 전시의 앙코르전으로, 올 8∼9월 영국 런던 주영한국문화원에서도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600년 역사의 국보 전남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이 이르면 다음 달부터 대대적인 해체·보수 공사에 들어간다.국가유산청은 24일 “극락보전의 손상이 우려돼 전체를 해체해 보수한다”며 “극락보전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것은 1983년 이후 40여 년 만”이라고 밝혔다.1962년 국보로 지정된 극락보전은 조선 세종 때인 1430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무위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됐다. 직선 위주의 목재로 아름답고 짜임새 있게 설계돼 조선 초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는다. 다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수리·보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다. 국가유산수리기술위원회는 지난해 10월 회의를 열고 무위사 극락보전에 대한 해체·보수 안건을 심의해 조건부 가결했다. 자문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구조적 변위, 각 부재의 성능 저하, 기단 침하 등으로 건물이 전반적으로 변형된 상태”라고 봤다.건물 내 불상 뒤편에 있는 국보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해체 후 옮겨 보존 처리하게 된다. 이 벽화는 조선 초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유산청 관계자는 “공동 기술지도단을 구성해 보수를 추진한다. 마무리까지 5~7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올해 중국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소의 저널에 ‘환황해(環黃海) 고인돌 문화권’ 논문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고인돌을 세운 이들이 고조선과 관련됐다는 학설이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일부 받아들여지게 되는 셈이지요.”이달 정년 퇴임하는 ‘고인돌 전문가’ 하문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65)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환황해 고인돌 문화권’이란 고인돌의 분포 지역이 고조선의 초기 강역으로 알려진 지역과 거의 일치하고, 청동기시대 대표 유물인 비파형동검 분포권과도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를 통해 고조선의 실체를 밝히려는 가설이다. 반면 중국 측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인돌을 중국 문명의 일부로 왜곡하려 하고, 북한은 대동강문화론(평양 대동강 유역이 고대문명 발상지란 주장)의 근거로 고인돌을 내세우려 하기도 한다.하 교수는 지금까지 중국을 100여 차례, 북한을 10여 차례 방문하면서 고인돌 조사에 헌신해 왔다. 보안을 이유로 카메라는 물론이고 휴대전화조차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 유적지를 쫓아다녔다. 10여 년 전 환황해 고인돌 문화권 가설을 제시한 뒤엔 북방 탁자식 고인돌과 한반도 남방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의 연결 고리를 찾고자 애썼다. 하 교수는 “경기 하남 등의 지역에서 탁자식과 개석식의 과도기에 놓인 ‘변형 탁자식 고인돌’을 발견했다”며 “고조선 강역 내 문화 전파를 보여주는 핵심 유물”이라고 주장했다.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개척자인 고 파른 손보기 연세대 교수(1922∼2010) 등을 사사한 하 교수는 고인돌이 흔히 알려진 대로 ‘지배자의 무덤’이 아니라 ‘백성 모두의 무덤’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는 “과거 한반도에 고인돌이 약 6만 기가 있었다고 추정하는데, 그중 비파형동검을 비롯해 지배자의 물품이 나오는 건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민무늬 토기나 화살촉 한두 점이 출토되는 게 전부이고, 어린이나 여성의 뼛조각도 나온다”며 “고인돌이 청동기시대에 보편적으로 축조된 무덤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퇴임 뒤에도 연세대 파른기념교수로서 연구를 이어가는 하 교수는 “아직 남은 숙제가 있다”고 했다. 중국과 북한의 아전인수식 고인돌 해석에 학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틀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인터뷰 당일도 그는 랴오닝성의 정가와자 유적에 엿새 동안 다녀온 직후였다. 비파형동검과 관련된 주요한 청동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1990년대 우리나라가 고구려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중국은 이미 고구려를 넘어 고조선까지 손댄 참이었습니다. 자꾸 한 발씩 늦는 거죠. 아직 연구가 미흡한 북한 지역의 고인돌 자료를 선제적으로 힘 닿는 데까지 정리하고 싶습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올해 중국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소의 저널에 ‘환황해(環黃海) 고인돌 문화권’ 논문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고인돌을 세운 이들이 고조선과 관련됐다는 학설이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일부 받아들여지게 되는 셈이지요.”이달 정년 퇴임하는 고인돌 전문가 하문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65)는 1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환황해 고인돌 문화권’은 고인돌의 분포 지역이 고조선의 초기 강역으로 알려진 지역과 거의 일치하고, 청동기시대 대표 유물인 비파형동검 분포권과도 비슷한다는 점에서 이를 통해 고조선의 실체를 밝히려는 가설이다. 이에 비해 중국 측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인돌을 중국 문명의 일부로 왜곡하려 하고, 북한은 대동강문화론(평양 대동강 유역이 고대문명의 발상지라는 주장)의 근거로 고인돌을 내세우려 하기도 한다.하 교수는 중국을 100여 차례, 북한을 10여 차례 다니면서 고인돌 조사에 헌신해 왔다. 보안을 이유로 카메라는 물론 휴대전화조차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 유적지를 좇아다녔다. 10여 년 전 환황해 고인돌 문화권 가설을 제시한 뒤엔 북방 탁자식 고인돌과 한반도 남방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의 연결 고리를 찾고자 애썼다. 하 교수는 “경기 하남 등 지역에서 탁자식과 개석식의 과도기에 놓인 ‘변형 탁자식 고인돌’을 발견했다”며 “고조선 강역 내 문화 전파를 보여주는 핵심 유물”이라고 했다.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개척자 고(故) 파른 손보기 연세대 교수(1922~2010) 등을 사사한 하 교수는 고인돌이 흔히 알려진 대로 ‘지배자의 무덤’이 아니라 ‘백성 모두의 무덤’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는 “과거 한반도에 고인돌이 약 6만 기가 있었다고 추정하는데, 그 중 비파형동검을 비롯해 지배자의 물품이 나오는 건 1%도 안 된다. 대부분 민무늬 토기나 화살촉 한두 점 출토되는 것이 전부이고, 어린이나 여성의 뼛조각도 나온다”며 “고인돌이 청동기시대 보편적으로 축조된 무덤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학부 때 발굴 현장을 다닐 때부터 그런 짐작이 들었어요. 1983년부터 중고교 국사 교사로 일했는데, 교과서가 고인돌을 지배자의 무덤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학교를 나와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게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네요.”퇴임 이후에도 연세대 파른기념교수로서 연구를 이어가는 하 교수는 “아직 남은 숙제가 있다”고 했다. 중국과 북한의 아전인수식 고인돌 해석에 학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틀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인터뷰 날도 그는 랴오닝성의 정가와자 유적에 엿새간 다녀온 직후였다. 비파형동검과 관련된 주요한 청동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1990년대 우리나라가 고구려 연구를 본격 시작할 때 중국은 이미 고구려를 넘어 고조선까지 손을 댄 참이었습니다. 자꾸 한발씩 늦는 거죠. 아직 연구가 미흡한 북한 지역의 고인돌 자료를 선제적으로 힘 닿는 데까지 정리하고 싶습니다.”(하 교수)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약 1500년 전 한반도 남부에서 위세를 떨친 ‘대가야’가 자리 잡았던 경북 고령군이 고도(古都)로 지정됐다. 국가유산청은 18일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에 맞춰 ‘고령 대가야’를 우리나라의 다섯 번째 고도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2004년 경북 경주와 충남 부여·공주, 전북 익산이 고도로 지정된 뒤 21년 만에 새로운 고도 지정이다. 고도는 우리 민족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로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 가운데 선정된다. 유산청은 “고대 한반도에서 대가야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버금갈 정도로 발전한 국가였다”며 “5세기 후반 대가야는 현재의 고령뿐 아니라 경남 합천·거창부터 전북 남원, 전남 순천·광양 등까지 세력을 확장됐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학술조사에 따르면 대가야는 왕위 세습체계와 중국식 왕호(王號), 시조 탄생 설화, 순장 의례 등을 제대로 갖춘 중앙집권식 국가였다. 특히 고령은 대가야의 핵심적인 중심지로 평가 받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가야고분군’으로 등재된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해 다양한 유·무형 문화유산이 잘 보존돼 있다. 대가야 도성(都城) 체계를 보여주는 궁성지와 왕궁 방어성(주산성), 수로 교통 유적, 금관 및 ‘대왕(大王)명’ 토기 등이 대표적이다. 고도로 지정되면 세계유산 탐방거점센터가 건립되며 역사문화공간 조성과 주거 환경 및 가로 경관 개선 등을 지원받는다. 유산청은 “고도 지정을 계기로 고령 대가야의 역사적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려 지역 관광문화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푸드덕, 날갯짓만 했을 뿐인데 비둘기에게 따가운 눈총이 쏟아진다. 한때 정보 메신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비둘기가 도심의 ‘유해 동물’로 전락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비둘기는 고대 페르시아에선 전령으로 활약했고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적군의 이동에 관한 결정적 정보를 전달했다. 20세기 중반 미국 서민에겐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신과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공장식 닭 사육이 가능해지면서 비둘기는 설 자리를 잃었다. 높은 지능과 번식력은 되레 혐오의 명분이 됐다. 연구 결과 비둘기는 이들의 배설물을 흡입하지 않는 이상 병균을 옮기지 않는다. 산성비만큼 건물에 해롭지도 않다. 이 책은 비둘기처럼 애꿎게 혐오의 대상이 된 동물들의 편에서, 이들을 향한 인식의 변천사를 짚는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이기심 등이 동물에 ‘골칫거리’ 이미지를 덧씌웠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동물행동학자, 야생동물 보전활동가, 토착 원주민 등과 함께 살펴본 동물의 다층적 면모를 유쾌하고 현장감 있게 들려준다. 같은 동물도 나라에 따라 다른 취급을 받는다. 한국인은 동물 카페에서 돈을 일부러 주고 봐야 하는 귀염둥이 라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악명 높은 ‘쓰레기 판다’로 불린다. 집집마다 쓰레기통을 헤집고 다니면서 도시를 악취 나게 하기 때문이다. 토론토는 라쿤이 열지 못하는 쓰레기통을 설계하고 배포하는 데 한화로 약 315억 원을 썼지만, 이 천재 동물은 아예 쓰레기통 부수기를 택했다. 하지만 사실 라쿤은 죄가 없다. 도시화와 생태계 파괴 때문에 먹이를 찾아 서식지를 떠났을 뿐이다. 동물의 이미지는 국제 정세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도시민에게 영물인 코끼리는 가까이에서 사는 현지인에겐 ‘살아 있는 탱크’다.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을 찢어발기고, 농부의 한철 작물을 싹 먹어 치운다. 경제 가치에 따라 사람보다 코끼리 목숨이 더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케냐에서 코끼리는 사람보다 귀하다. 코끼리가 밀렵을 당하면 현장에 서른 명이 출동하지만, 코끼리에게 사람이 다칠 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코끼리 살해 벌금은 2000만 케냐실링이지만 코끼리에 받쳐 죽은 피해자에겐 고작 500만 케냐실링이 주어진다. 이런 모순은 코끼리를 보러 오는 서구 관광객과 이들이 내는 서식 환경 보전 지원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저자는 서구에서 오는 이런 ‘온정주의적 지원’이 결과적으로는 생태계 질서를 왜곡시키고 현지인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해동물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과 혐오는 이면의 사정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무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우리 주변 동물들의 생태를 이해하고 알맞은 공생 방식을 찾음으로써 ‘정신적 쥐덫’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방식대로 계속 사는 한 유해 동물은 늘 우리 앞을 막아설 것”이라며 ‘더불어 사는 삶’의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20년대 민족 종교 수운교의 가르침을 그린 종교화가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13일 “‘수운교 삼천대천세계도’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수운교는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의 호에서 이름을 따 1923년 창시된 동학 계통의 신종교다. 국가유산청은 삼천대천세계도에 관해 “부처와 하늘, 인간의 마음이 하나라는 교리를 표현한 그림으로 근대기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은 30일 동안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칠곡 구(舊) 왜관성당’과 1950∼1960년대 한국 영화 ‘낙동강’ ‘돈’ ‘하녀’ ‘성춘향’ 등 5건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확정했다. 칠곡 구 왜관성당은 1928년 건립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예배당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오늘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이 ‘기(氣) 받아 가겠다’며 장난을 치더라고요. 솔직히 아직 우승이 실감나지 않아 받았던 상을 매일 꺼내 보고 있어요.” 한국 발레리노 최초로 로잔발레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쥔 박윤재 군(17·서울예고)은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아트센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의젓하면서도 앳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꼽히는 로잔발레콩쿠르는 15∼18세만 참가할 수 있어 무용수들의 등용문으로 불린다. 박 군은 이번 콩쿠르가 “나와 발레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항상 콤플렉스였던 두꺼운 다리가 로잔에선 저만의 강점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신체 조건보다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매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박 군은 로잔콩쿠르에서 18년 만에 배출된 한국인 우승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이 2007년 우승한 뒤 처음이다. 다섯 살에 취미로 시작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발레의 길을 걸은 박 군은 지난해 제54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도 고등부 동상을 수상했다. 박 군은 “무조건 잘하자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을 최대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며 “무대를 즐기다 보니 큰 상도 주어졌다”고 말했다. “무용수라기보단 아직 배울 게 많은 학생”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그는 “앞으로도 내가 ‘좋아서 하는 발레’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고도 했다. 현재 많은 해외 학교에서 유학 제안이 쇄도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없다고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미래에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오페라 가르니에 무대에 꼭 한번 서보고 싶고요. 강한 야생의 에너지를 품은 ‘돈키호테’의 바질 역이 꿈의 배역입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3년 만에 내한하는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 전방위 예술의 거장 윌리엄 켄트리지, 스페인 출신 스타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 4월 24일 개관하는 GS아트센터의 올해 공연 라인업이다. 주제는 ‘경계 없는 예술’. GS아트센터는 LG아트센터로 운영되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의 공연장을 재단장해 새롭게 문을 연다. 박선희 GS문화재단 대표는 11일 간담회에서 “관객의 시간과 기억이 어우러지는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2년 넘게 걸린 공연장 리모델링에는 총 320억 원이 투입됐다. 기존 객석 양옆으로 108석을 추가해 약 1200석으로 늘어났다. 의자는 일본 도쿄 산토리홀 등에 사용된 고토부키사 제품으로 교체했다. 노후했던 극장 로비와 분장실, 무대 구동장치 등도 새로 단장했다. 다만 무대 폭이나 객석 단차 등은 그대로 유지했다. 개관 뒤 첫 무대는 세계적인 발레단인 ABT가 장식한다. 4월 24∼27일 한국인 발레리나 서희, 발레리노 안주원 등을 포함한 수석무용수 15명이 내한해 단막극 5편을 선보인다. 4월 30일과 5월 1일에는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이 파격적인 안무와 현대적 미장센이 특징인 현대무용가 모라우의 안무작 ‘아파나도르’를 공연한다. 기획 공연 시리즈 ‘예술가들’에선 5월 9, 1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시각예술가 겸 연출가인 켄트리지의 대표작 ‘시빌’이 국내 초연된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실내 공연도 GS아트센터에서 예정돼 있다. 대관 공연으로는 7월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와 11월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박 대표는 “저변 확대를 목표로 다채로운 예술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세계적인 발레 경연인 로잔발레콩쿠르에서 한국인 발레리노가 처음으로 우승했다. 8일(현지 시간) 스위스 로잔 볼리외 극장에서 열린 제53회 로잔발레콩쿠르 결선에서 박윤재 군(16·서울예고)이 한국 남자 무용수로는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로잔발레콩쿠르는 바르나, 잭슨, 모스크바, 파리 콩쿠르와 함께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꼽힌다. 15∼18세 학생들만 참가할 수 있어 무용수들의 등용문으로도 불린다. 박 군은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승자로 호명되고도 전혀 믿기지 않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너무 놀라고 감격한 나머지 눈물부터 났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발레를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줄곧 꿈꿔왔던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데 큰 상까지 받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별처럼 빛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롤모델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김기민 수석무용수”라고도 밝혔다. 박 군은 이번 대회에서 특별상인 ‘최우수 젊은 인재상(Best Young Talent Award)’도 함께 수상했다. 올해 대회에는 42개국 출신 남녀 무용수 445명이 지원했으며 영상 심사를 거쳐 85명이 대회에 참가했다. 결선에서는 미국, 일본 등 6개국 출신 남녀 무용수 20명이 겨뤘다. 박 군은 러시아 안무가 바실리 바이노넨이 안무한 고전발레 ‘파리의 불꽃’ 중 남자 배리에이션과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발레단 킨순 찬 예술감독이 안무한 ‘레인’을 선보였다. 결선에 오른 또 다른 한국 발레리나 김보경 양(17·부산예고)은 8위로 입상했다. 입상자들은 연계된 해외 발레단이나 발레학교에 갈 수 있다. 로잔발레콩쿠르는 앞서 1985년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1등에 올랐던 바 있다. 이후 박세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이 2007년 우승을 거뒀다. 홍향기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2006년·3위), 서희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2003년·4위) 등도 입상했다. 발레리노로는 2018년 이준수가 4위와 현대무용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박 군은 지난해 열린 제54회 동아무용콩쿠르 고등부 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2022년 계원예중 재학 당시에는 제52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중등부 장려상을 수상했다. 초등학교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하에 있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다니면서 두각을 드러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