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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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장바구니에 담은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leemail@donga.com

취재분야

2025-11-23~2025-12-23
문화 일반23%
문학/출판14%
미술14%
역사14%
인사일반11%
음악9%
연극6%
대통령3%
요리/음식3%
기타3%
  • 늦여름의 끝을 잡고… 젊은 예술가들이 온다

    무용, 국악 등 다채로운 공연 축제가 잇달아 열려 늦여름에 열기를 더한다. 올해는 젊은 안무가와 소리꾼 등 통통 튀는 신진 예술가를 앞세운 행사가 많아 눈길을 끈다.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제27회 서울세계무용축제’가 다음 달 1∼14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개최된다. 세계적인 공연예술가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자녀들로 이뤄진 ‘듀이 델’이 처음 내한공연을 펼친다. 30대 젊은 무용수 겸 안무가인 3남매는 5, 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봄의 제전’을 공연한다. 다음 달 11일 같은 장소에서 공연되는 고블린파티와 갬블러크루의 ‘동네북’ 등 총 9개국 작품 16편이 공연된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창무국제공연예술제는 세종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되는 ‘지금 뛰다’를 주요 프로그램으로 앞세웠다. 국내외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 8편을 한자리에 모았다. 실패와 극복에 대해 다룬 메타댄스 프로젝트의 ‘지금은 미끄러지지만’, 군함도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유아 안무작 ‘군함의 자태’ 등이 각각 20, 21일 공연된다. 그 밖에 국내 초청작 19편과 일본, 미국 등 해외 초청작 5편이 이달 21∼31일 서울 중구 서울남산국악당,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등에서 펼쳐진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이달 14∼18일 전북 전주 시내에서 개최되는 등 국악계도 젊은 소리꾼과 함께 흥겨운 축제를 꾸린다. 총 14개국 800여 명의 예술가가 106회의 공연을 펼친다.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는 ‘올해의 국창’ ‘라이징 스타’ 등의 키워드를 주제로 한 5편이 무대에 오른다. 김영자 ‘심청가’, 왕기석 ‘수궁가’ 등 명창의 판소리뿐만 아니라 이자람 ‘적벽가’, 박가빈 ‘춘향가’ 등 젊은 소리꾼들의 공연도 만나볼 수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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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대-현재 오가며 ‘잘 산다는 건’ 문답

    힘껏 바로잡지 않으면 과오는 반복된다. 머잖아 과거가 되고 역사로 기록될 오늘을 향해 연극 ‘장도’는 말한다. “피하지 마. 두려운 마음 그대로 봐.”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8일 마지막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연극 ‘장도’는 ‘잘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친구와 가족을 떠나보낸 고등학생 ‘장도’가 할아버지 ‘장춘’의 유품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작품은 과거 전쟁터 속 할아버지와 현재 장도의 상황을 속도감 있게 교차시킨다. 출연진은 1인 2역 이상을 연기하며 1950년대와 오늘날을 매끄럽게 오간다. 공허한 눈빛과 굽은 어깨의 장도, 공포와 결단이 공존하는 얼굴의 장춘은 배우 지민제가 연기했다. 간소한 무대임에도 조명과 영상을 활용해 전쟁터와 교실을 오간다. 스크린에는 수업 판서와 자욱한 연기가 번갈아 투사되고, 무대 바닥에 놓인 조명은 관객 방향으로 번쩍이면서 포탄과 화재를 표현했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념 갈등이나 분단의 아픔 같은 상투적인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상실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는 개인과 집단의 역사가 어떻게 건설되고 재평가돼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다 잊는 게 잘 산다는 거냐?” 등의 대사로 선택과 결과에 대한 생각거리도 남긴다. 장도와 같은 반 친구인 예지, 경훈 등 감초 캐릭터로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이야기를 조절한다. 다만 6·25전쟁에 참전했던 뉴질랜드 마오리족을 캐릭터로 차용한 것은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사기를 북돋는 마오리족의 전통 의식 ‘하카’를 활용하는 등 이야기와 시청각 요소에 입체감을 더하긴 하지만 산만한 전개로 전달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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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두장이 ‘찰리’, 내겐 위기 탈출 비상구였죠”

    “최근엔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흐를 만큼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왔어요. 그때 뮤지컬 ‘킹키부츠’ 4번째 출연 기회가 주어졌고, 그건 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비상구였죠.” 이석훈(40)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그룹 SG워너비로 데뷔한 17년 차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진행자로서 바쁜 일상. 그에게 ‘킹키부츠’는 비상벨이 울린 마음을 피할 탈출구였다. 5일 서울 종로구의 연습실에서 만난 이석훈은 “후회 없이 사랑하면 미련이 없듯 2022년 공연을 끝내며 ‘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출연을 반년 넘게 고사하다가 마음을 돌린 건 내게 ‘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킹키부츠’는 폐업 위기에 놓인 아버지의 수제화 공장을 이어받게 된 찰리가 가업을 다시 일으키려 노력하는 성장기다. 유쾌한 드래그퀸(여성의 성 역할을 연기하는 남성) ‘롤라’를 만나 80cm 길이의 남성용 부츠를 만들면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다. 2014년 국내 초연 이후 누적 관객 약 50만 명을 모은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다음 달 8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10주년 기념 공연이 열린다. 작품은 찰리의 성장기인 동시에 이석훈의 성장기다. 2018년 찰리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한 해에 아들을 얻었고, 이후 2년마다 열린 ‘킹키부츠’에 빠짐없이 출연했다. “저를 꼭 닮은 아이는 마음에 사랑이 참 많아요. 그걸 보며 ‘나도 원래 저랬는데 어쩌다 몇 년 새 예민하고 방어적으로 변했지’ 생각했죠. 대본을 다시 보니 찰리도 여태 가보지 못한 길을 가면서 예민해진 거더라고요. 찰리가 결국 원래의 모습을 되찾듯 저도 돌아가려 애쓰는 중입니다.” ‘킹키부츠’를 통해 배우로서의 성장도 일궜다. 그동안 주역을 맡은 뮤지컬 가운데 그는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배역으로 찰리를 꼽았다. 우리 주변에 한 명쯤 있는 평범한 캐릭터라서 롤라만큼 튀어선 안 되기에 까다롭다는 것. “가수로 공연할 때보다 2배는 더 떨립니다.” 그의 우려와 달리 관객들 사이에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넘버 ‘Soul of a Man’도 “이석훈이 부르면 설득된다”는 평이 오간다. 찰리가 롤라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며 비수를 꽂은 뒤 이어지는 노래다. “저는 그 대목에서 너무 억울해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아요.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 시즌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했다. 찰리 역을 빼어나게 소화할 후배들이 줄을 섰다는 이유에서다. “건강 외에 엄청난 목표를 세우고 있지는 않아요. 지금은 최고의 찰리를 보여주고자 ‘킹키부츠’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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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의 미래 밝힐 24명의 샛별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어서 정말 기뻐요. 항상 저를 믿고 격려해준 가족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큰 국악인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서울 서초구 정효아트홀에서 3일 열린 제3회 동아주니어국악콩쿠르 본선에서 서용석류 대금산조를 연주해 금상을 수상한 임주하 양(15·국립전통예중 3학년)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동아일보사와 정효문화재단(대표 주재근)이 주최하고 국악방송(사장 원만식)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이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중등부 현악, 관악, 성악, 무용 등 4개 부문에서 지난달 29, 30일 예선을 거쳐 40명이 본선에 올랐다. 이날 본선에선 금상 8명 등 24명이 수상했다. 이번 대회의 최연소 참가자이자 수상자인 박서아 양(9·부산동백초 3학년)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너무나 기쁘고 다음에도 참가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국악기 공방 소리숲’의 후원으로 각 부문 금상 입상자에게 단소 또는 소금이 1개씩 수여됐다. 주요 입상자에게는 독주회와 국악방송 출연, 심사위원 멘토링 등 특전이 주어진다. 이달 중 콩쿠르 홈페이지에서 심사 결과와 심사평, 본선 연주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장려상 명단은 홈페이지 참조). ◇현악 ▽중등부 △금상 강유진(15·국립국악중 3학년) △은상 김유림(14·국립국악중 2학년) △동상 이예랑(15·국립전통예중 3학년) ▽초등부 △금상 김우혁(11·서울대도초 5학년) △은상 황민경(12·서울가락초 6학년) △동상 이다은(11·삼미초 6학년) ◇관악 ▽중등부 △금상 임주하(15·국립전통예중 3학년) △은상 양동재(15·국립전통예중 3학년) △동상 서효우(15·국립국악중 3학년) ▽초등부 △금상 윤하원(12·서울두산초 6학년) △은상 박초은(12·탄벌초 6학년) △동상 이주학(12·서울보라매초 6학년) ◇성악 ▽중등부 △금상 김은채(15·국립전통예중 3학년) △은상 양준모(15·국립국악중 3학년) △동상 김민정(15·국립국악중 3학년) 남하율(14·국립국악중 3학년) ▽초등부 △금상 구민정(12·사천사남초 6학년) △은상 손연재(12·건원초 6학년) ◇무용 ▽중등부 △금상 길도연(14·예원학교 3학년) △은상 김아름(13·온양용화중 2학년) △동상 이단비(14·일신여중 2학년) ▽초등부 △금상 박서아(9·부산동백초 3학년) △은상 이하윤(10·배방초 4학년) △동상 백도이(11·인천한길초 5학년)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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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쉿, 극장 유령 조심해요”… 공연장, 여름나기 이색 체험장 변신

    ‘관계자 외 출입금지.’ 빨간 경고문이 붙은 문을 열고 제한구역에 발을 내디뎠다. 으스스한 푸른 조명이 깜깜한 복도를 비추고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음악이 은은하게 깔렸다. 긴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에 들어서자 유령 조사단 관계자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곳은 공연이 끝난 배우들이 식사하는 곳이자 ‘버나돌이 유령’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관객들이 증강현실(AR) 모바일 앱으로 내부를 비추자 하늘색 외눈박이 유령이 눈앞에 튀어나왔다. 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극장 투어 프로그램 ‘극장에 유령이 산다’의 한 장면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이 몰리며 투어는 온라인 접수 1분 만에 160명 정원이 모두 찼다. 다이닝룸에 이어 둘러본 라커룸에서는 크로마키(특수효과용 푸른 배경)를 활용해 ‘투명 망토’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날 엄마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장세원 양(10)은 “공연을 한 달에 한 편씩 볼 만큼 좋아하지만 극장 투어는 처음”이라며 “평소에 갈 수 없는 극장 내부 공간을 유령 조사단과 함께 가볼 수 있어 재밌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공연계가 이색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잠재 관객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극장의 역사나 공간별 기능을 설명하는 기존 방식 대신 몰입도 높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해 극장 자체를 고유 ‘브랜드’로 만들려는 것. 송수찬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 매니저는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화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창작연희단체와 협업했다”며 “어린이와 부모들이 극장에 친숙하게 드나듦으로써 향후 공연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는 극작가 겸 연출가인 강현주가 구성하고 연출한 스토리텔링형 투어 프로그램 ‘고스트 가이드’를 최근 진행했다. 배우 오정택의 연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50분간 참가자들이 지하 연습실과 소극장 등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이 경험하기 힘든 ‘고스트 라이트’(극장이 문을 닫은 뒤 공연 재개 전까지 켜두는 희미한 조명)를 보여주고, 그에 얽힌 서정적인 이야기를 풀어내 감성을 자극한다. ‘1993년부터 이곳에 공연을 보러 온 고모부’ 같은 배역을 참가자들에게 즉석에서 맡겨 체험 몰입도를 높인다. 정다운 두산아트센터 교육기획 매니저는 “정보 전달만으로는 극장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극장 규모 등에서 다른 곳에 비해 변별력을 갖기 어렵다고 봤다”며 “스토리텔링을 통해 극장과 공연에 대한 따뜻한 정서를 이끌어냄으로써 신뢰감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은 공연예술박물관에서 가상현실(VR) 백스테이지 투어를 진행 중이다. 비치된 VR 기기를 통해 음향조정실 등 평소 관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백스테이지 공간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가상의 소품제작실에서는 초록색 커팅매트와 알록달록한 공구가 즐비한 모습을, 장치제작실에선 경사로 등 무대장치에 쓰이는 합판과 기자재가 놓인 장면을 각각 살펴볼 수 있다. 김연희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각종 무대장치들이 쌓여 있어 안전상 우려가 있는 장치제작실 등을 VR 투어로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다”며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는 일반 투어와 달리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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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장에 유령이 산다고? 빨간 경고문 붙은 문 열고 들어갔더니…

    ‘관계자 외 출입금지’빨간 경고문이 붙은 문을 열고 제한구역에 발을 내디뎠다. 으스스한 푸른 조명이 깜깜한 복도를 비추고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음악이 은은하게 깔렸다. 긴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에 들어서자 유령 조사단 관계자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곳은 공연이 끝난 배우들이 식사하는 곳이자 ‘버나돌이 유령’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관객들이 AR(증강현실) 모바일앱으로 내부를 비추자 하늘색 외눈박이 유령이 눈 앞에 튀어나왔다.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극장 투어 프로그램 ‘극장에 유령이 산다’의 한 장면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이 몰리며 투어는 온라인 접수 1분 만에 160명 정원이 모두 찼다. 다이닝룸에 이어 둘러본 락커룸에서는 크로마키(특수효과용 푸른 배경)를 활용해 ‘투명 망토’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날 엄마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장세원 양(10)은 “공연을 한 달에 한 편씩 볼 만큼 좋아하지만 극장 투어는 처음”이라며 “평소에 갈 수 없는 극장 내부 공간을 유령 조사단과 함께 가볼 수 있어 재밌고 신기했다”고 말했다.공연계가 이색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잠재 관객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극장의 역사나 공간별 기능을 설명하는 기존 방식 대신 몰입도 높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해 극장 자체를 고유 ‘브랜드’로 만들려는 것. 송수찬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 매니저는 “극장 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화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창작연희단체와 협업했다”며 “어린이와 부모들이 극장에 친숙하게 드나듦으로써 향후 공연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는 극작가 겸 연출가인 강현주가 구성하고 연출한 스토리텔링형 투어 프로그램 ‘고스트 가이드’를 최근 진행했다. 배우 오정택의 연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50분간 참가자들이 지하 연습실과 소극장 등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이 경험하기 힘든 ‘고스트 라이트’(극장이 문을 닫은 뒤 공연 재개 전까지 켜두는 희미한 조명)를 보여주고, 그에 얽힌 서정적인 이야기를 풀어내 감성을 자극한다. ‘1993년부터 이곳에 공연을 보러 온 고모부’ 같은 배역을 참가자들에게 즉석에서 맡겨 체험 몰입도를 높인다. 정다운 두산아트센터 교육기획매니저는 “정보 전달만으로는 극장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을 뿐더러 극장 규모 등에서 다른 곳에 비해 변별력을 갖기 어렵다고 봤다”며 “스토리텔링을 통해 극장과 공연에 대한 따뜻한 정서를 이끌어냄으로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서울 중구 국립극장은 공연예술박물관에서 VR(가상현실) 백스테이지 투어를 진행 중이다. 비치된 VR 기기를 통해 음향조정실 등 평소 관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백스테이지 공간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가상의 소품제작실에서는 초록색 커팅매트와 알록달록한 공구가 즐비한 모습을, 장치제작실에선 경사로 등 무대장치에 쓰이는 합판과 기자재가 놓인 장면을 각각 살펴볼 수 있다. 김연희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각종 무대장치들이 쌓여 있어 안전상 우려가 있는 장치제작실 등을 VR 투어로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다”며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는 일반 투어와 달리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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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출생률 감소는 인류의 퇴보 탓?

    진화론에 따르면 우월한 유전자는 ‘자기 씨’를 널리 퍼뜨리려는 본능이 강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출생률이 감소한 것은 인류 역사의 퇴보를 의미할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환경과학과 인류학을 연구하는 저자들은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답을 ‘유전자-문화 공(共)진화 이론’에서 찾는다. 인류가 유전적 본성이나 문화적 학습이라는 두 경로 중 하나만을 선택해 진화해온 게 아니라, 두 속성이 상호작용하며 진화를 이뤘다는 것이다. 총 7개 장에 걸쳐 인류 진화에 대한 폭넓은 가설을 펼친 뒤 심도 있는 논증으로 뒷받침했다. 2009년 출간된 ‘유전자만이 아니다’에서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고 주석을 보강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21세기 이전에 발생했던 모든 문화 진화적 사건들은 모두 지금과 연관돼 있다. 우리가 어떤 문화적 변형을 채택하거나, 무시할 것인지를 선택함으로써 진화 과정에 깊이 관여한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떨어지는 추세에 대해선 ‘이기적인 문화 변형’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을 내놓는다. 근대화로 인해 인류는 교육기관 등을 통해 부모가 아닌 사람들로부터의 문화 전달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교육을 받는 이들이 점차 결혼과 양육을 미루는 현상이 발생했다. 문화 전달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이들이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확산시키면서 저출생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인류의 과거 선택도 치밀하게 분석한다. 과거 나치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 친구를 보호하려고 애쓴 독일인이 별로 없었던 사실에 대해 ‘사회적 본능’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서로 구분된 집단에서 살아가는 ‘부족 본능’이 극단화되면서 내집단(개인이 규범, 가치 등에서 동지의식을 갖는 집단)에 속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의심과 살해의 대상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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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기 꿈이 담긴 공간, 이젠 아이들 웃음소리 ‘꺄르르’

    무대 위 무용수가 커다란 알 속으로 쏙 들어가자 객석에서 앳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은 “우와, 신기하다”라며 감탄하고, 엄마의 귀에 대고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야?” 소곤소곤 묻곤 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어린이 무용극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의 객석 풍경이다. 3월 15일 폐관된 ‘학전’이 이름을 바꿔 아이들 관객을 다시 맞고 있는 것이다. 이제 김민기도 떠났고, 학전도 이름을 바꿨지만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공연이 필요하다”는 고인의 뜻은 새 공간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기존 극단 사무실을 임시로 재단장한 2층 ‘예술놀이터’는 공연 시작 전, 관객 20여 명으로 붐볐다. 아이들은 색칠 놀이를 하거나 비치된 동화책을 읽었다. 다섯 살 아들과 극장을 찾은 최모 씨(36)는 “5분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기다릴 라운지가 있어 좋다”고 했다. 개·보수를 마친 지하 소극장에 들어가니 기존처럼 쿰쿰한 곰팡내가 나지 않고 산뜻했다. 어린 관객을 위한 키 높이 방석도 객석 뒤편에 새로 구비됐다. 이날 공연된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은 알을 깨고 나오는 애벌레처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춤으로 풀어낸 작품. 무용수가 공중으로 흩뿌린 물이 조명 빛에 반사될 땐 아이와 어른 모두의 감탄사가 터졌다. 여섯 살 딸과 찾은 안모 씨(38)는 “지난주 김민기 씨에 대해 검색하다가 공연 소식을 접했다. 어른이 봐도 재밌는 공연을 아이와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제32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의 일환이었다. 해당 축제는 서울 공연을 마쳤고, 다음 달에 광주 등에서 지역 연계 공연을 이어 간다. 고 김민기의 유족들은 발인 후 닷새 만인 29일 장례 이후 입장을 전했다. 학전을 통해 낸 보도자료를 통해 “조의금과 조화를 사양한다고 밝혔음에도 장례 첫날 경황없는 와중에 일부 조의금이 들어왔다”며 “조의금은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은 돌려 드렸고, 또 돌려 드리려고 한다. 돌려 드릴 방법을 찾지 못하는 조의금은 적절한 기부처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고인의 작업이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았으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공연이나 추모사업을 원하지 않는다”며 “유가족은 유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왜곡되지 않도록 받들겠다. 모든 일은 학전을 통해 진행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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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전 뒤이은 꿈밭극장에서 열린 ‘아시테지 축제’

    무대 위 무용수가 커다란 알 속으로 쏙 들어가자 객석에서 앳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은 유리구슬 같은 목소리로 “우와, 신기하다” 감탄하고, 엄마의 귀에 대고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야?” 소곤소곤 질문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어린이 무용극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에서다. 옛 ‘학전’ 소극장이었던 이곳은 올해 2월 가족뮤지컬 ‘고추장 떡볶이’ 공연 이후 약 5개월 만에 아이들의 웃음꽃으로 가득 찼다. 가수 고 김민기가 운영하다 폐관한 옛 ‘학전’의 자리에서 ‘제32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가 개최됐다.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아시테지 코리아)가 주최하는 국내 대표적인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 축제다. 28일까지 아르코꿈밭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 대학로 일대 극장에서 8개국 공연 11편을 선보였고 다음 달엔 광주광역시, 경기 광주 등지에서 지역 연계 공연을 이어간다. 고인은 세상을 떴지만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공연이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새 공간에서 이어졌다. 기존 극단 사무실을 임시로 재단장한 2층 ‘예술놀이터’는 공연 시작 전, 관객 20여 명으로 붐볐다. 아이들은 색연필을 들고 색칠 놀이에 푹 빠져들었고, 부모는 “이게 무슨 동물이야?” 묻거나 책장에 꽂힌 동화책을 꺼내 읽어줬다. 5살 아들과 극장을 찾은 최모 씨(36)는 “5분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기다릴 라운지가 있어 좋다”며 “20대부터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즐겨 봤다. ‘학전’이 어린이 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어 기쁘다”고 했다. 공연이 곧 시작된다는 안내멘트가 나오자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지하 소극장으로 향했다. 개·보수를 마친 소극장엔 더 이상 쿰쿰한 곰팡내가 나지 않았다. 기존 누수로 인해 조명 사이사이 받쳐뒀던 수많은 양동이도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 관객을 위한 키 높이 방석도 객석 뒤편에 새로 구비됐다. 암전 직전, 어린이·청소년 전용 극장에 걸맞은 공지가 흘러나왔다. “어른 관객 여러분, 주위를 둘러봐주세요.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아이는 없나요? 어린이들이 공연을 잘 볼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려요.” 이날 공연된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은 알을 깨고 나오는 애벌레처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춤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무용수가 공중으로 흩뿌린 물이 조명 빛에 반사될 땐 아이와 어른 모두의 감탄사가 터졌다. 공연 후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에선 한 어린이 관객이 손을 번쩍 들고 출연진에게 “무대 위에 있을 때 기분이 어때요?” 묻기도 했다. 6살 딸과 공연을 관람한 안모 씨(38)는 “지난주 김민기 씨에 대해 검색하다가 축제 소식을 접했다. 어른이 봐도 재밌는 공연을 아이와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한편 21일 향년 73세로 별세한 고인은 학전의 뒤를 이은 아르코꿈밭극장이 청소년과 신진 뮤지션을 위한 장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남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그 뜻을 이어받아 이달 17일부터 어린이·청소년 전용 극장으로 운영 중이다. 29일 유가족은 “삼일장 내내 ‘우리 아빠 참 잘 살았네’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과 웃음이 함께 나오는 시간이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이어 “고인은 자신의 작업이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길 바랐다. 그렇기에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공연, 추모사업은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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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 캐스팅 잦아진 연극계… “문제는 티켓 값이야”

    ‘샤이니 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티켓 1장 30만 원에 팝니다.’ 28일 한 티켓 양도 플랫폼에서 이런 매도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룹 샤이니 출신 가수 겸 배우 최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표를 팔겠다는 것인데, 원래 티켓값이 6만6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4배 이상의 가격을 부른 것. 실제 거래 가격은 보통 2배 정도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이런 ‘웃돈’까지 형성된 것은 최민호가 이 연극을 통해 무대 연기에 처음 도전하기 때문. 좋아하는 스타를 가까운 거리에서 ‘직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고 팬들이 몰리는 것이다. 연극 ‘빵야’도 마찬가지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극장 주변이 북적인다. 드라마 ‘더 글로리’ ‘눈물의 여왕’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박성훈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이 몰린 것. ‘빵야’는 그가 7년 만에 돌아온 무대다.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배우 유승호와 손호준, 고준희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각각 19∼24년 전 데뷔한 세 사람의 첫 연극 출연으로 기대가 큰 작품이다. TV와 스크린 등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기존 팬덤을 등에 업고 무대에 데뷔하거나 복귀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배우는 연기력을 직접 팬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되고, 팬들은 스타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제작자들은 흥행 확률을 높일 수 있어 3박자가 맞는다. 스타의 파워는 가난한 연극계에 돈이 돌게 하고 있다. 전도연이 27년 만에 복귀하는 연극으로 화제가 됐던 ‘벚꽃동산’은 이달 7일까지 한 달간 열린 총 30회 공연에 약 4만 명의 관객이 몰려 연극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된 국내 연극 중 티켓 판매액 1위에 오른 작품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였다. 배우 김유정, 정소민의 연극 데뷔작이자 김성철, 이상이 등 호화 캐스팅으로 이목을 모았던 연극이었다. 2위는 ‘오징어게임’의 박해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무대로 돌아온 연극 ‘파우스트’였다. 공연제작사들은 제작비가 오르면서 장기 공연 또는 전석 매진으로 수지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자 스타 캐스팅이 불가피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타 장르 팬들이 유입되지 않는 이상 극장을 가득 메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대 데뷔작일 경우 팬덤 효과는 더 커지는 한편 배우의 출연료는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서 “배우는 연기자로서의 전문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초심을 되찾는 긍정적 인상을 줄 수 있어 윈윈”이라고 했다. 한 공연계 홍보담당자는 “주최 측이 10번 홍보하는 것보다 스타가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물 하나 올리는 것의 파급력이 훨씬 크다”고 했다. 영상 콘텐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배우들이 공연계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한 연극 배우는 “신규 제작되는 영화, 드라마 수가 급격히 줄면서 콘텐츠 진출을 타진하던 연극 배우들은 판로가 막히고, 배우들이 설 자리마저 줄어들었다”며 “연기 공백을 채우려고 무대에 서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관객들로서는 스타를 직접 볼 기회가 많아져 좋지만 문제는 오르는 티켓값이다. 지난해 공연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VIP석이 11만 원으로 당시 연극 티켓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다음 달 개막하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VIP석은 12만 원이다. 연극 티켓 최고가가 1년 만에 9%포인트 인상된 셈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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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값 낮춘 스타 배우들, 줄줄이 무대로…문제는 티켓값?

    ‘샤이니 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티켓 1장 30만 원에 팝니다.’ 28일 한 티켓 양도 플랫폼에서 이런 매도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룹 샤이니 출신 가수 겸 배우 최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표를 팔겠다는 것인데, 원래 티켓값이 6만6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4배 이상의 가격을 부른 것. 실제 거래 가격은 보통 2배 정도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이런 ‘웃돈’까지 형성되는 것은 최민호가 이 연극을 통해 무대 연기에 첫 도전하기 때문. 좋아하는 스타를 가까운 거리에서 ‘직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팬들이 몰리는 것이다. 연극 ‘빵야’도 마찬가지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극장 주변이 북적인다. 드라마 ‘더 글로리’ ‘눈물의 여왕’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박성훈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이 몰린 것. ‘빵야’는 그가 7년 만에 돌아온 무대다.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배우 유승호와 손호준, 고준희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각각 19~24년 전 데뷔한 세 사람의 첫 연극 출연으로 기대가 큰 작품이다. TV와 스크린 등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기존 팬덤을 등에 업고 무대에 데뷔하거나 복귀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배우는 연기력을 직접 팬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되고, 팬들은 스타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고, 제작자들은 흥행 확률을 높일 수 있어 3박자가 맞는다. 스타의 파워는 가난한 연극계에 돈이 돌게 하고 있다. 전도연이 27년 만에 복귀하는 연극으로 화제가 됐던 ‘벚꽃동산’은 이달 7일까지 한 달간 열린 총 30회 공연에 관객 약 4만 명이 몰려 연극으로서 이례적 성과를 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된 국내 연극 중 티켓판매액 1위에 오른 작품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였다. 배우 김유정, 정소민의 연극 데뷔작이자 김성철, 이상이 등 호화 캐스팅으로 이목을 모았던 연극이었다. 2위는 ‘오징어게임’의 박해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무대로 돌아온 연극 ‘파우스트’였다. 공연제작사들은 제작비가 오르면서 장기 공연 또는 전석 매진으로 수지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자 스타 캐스팅이 불가피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타 장르 팬들이 유입되지 않는 이상 극장을 가득 메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대 데뷔작일 경우 팬덤 효과는 더 커지는 한편 배우의 출연료는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서 “배우는 연기자로서의 전문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초심을 되찾는 긍정적 인상을 줄 수 있어 윈윈”이라고 했다. 한 공연계 홍보담당자는 “주최 측이 10번 홍보하는 것보다 스타가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물 하나 올리는 것의 파급력이 훨씬 크다”고 했다. 영상 콘텐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배우들이 공연계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한 연극 배우는 “신규 제작되는 영화, 드라마 수가 급격히 줄면서 콘텐츠 진출을 타진하던 연극 배우들은 판로가 막히고, 배우들이 설 자리마저 줄어들었다”며 “연기 공백을 채우려고 무대에 서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관객들로서는 스타를 직접 볼 기회가 많아져 좋지만 문제는 오르는 티켓값이다. 지난해 공연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VIP석이 11만 원으로 당시 연극 티켓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다음 달 개막하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VIP석은 12만 원이다. 연극 티켓 최고가가 1년 만에 9%p 인상된 셈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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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260년 넘게 운영… 런던 뒷골목의 기묘한 고서점

    1761년부터 260년 넘게 문을 열고 있는 한 서점이 있다. 영국 런던의 퇴락한 골목에 을씨년스럽게 버티고 있는 ‘헨리 소서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중 하나다. 저자는 이곳의 삐걱대는 책장 빼곡한 고서적을 관리하는 직원이다. “빅토리아 시대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정체불명의 괴짜 방문객들에게 맞서면서도 이 골동품 서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책으로 풀어냈다. 에세이지만 모험담과 오컬트를 버무린 소설을 읽는 듯하다. 저자는 흡인력 있는 전개와 문체를 갖춘 스토리텔러다. 소서런이 거액을 들여 매입했으나 지구 반 바퀴를 돌고서도 팔리지 않았던 책에 얽힌 저주를 풀어낸 대목이 그렇다. 책은 겨우 주인을 찾을 뻔했으나 타이타닉에 실려 영원히 바다로 침몰했고 제본업자는 몇 주 뒤 익사했으며, 다시 제작된 책은 독일의 공습으로 산산이 조각나는 결말을 맞는다. ‘덕후’들의 구미를 당길 깨알 같은 주석도 소소한 재미다. 저자가 희귀 서적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허물어져 가는 철교를 가로질렀던 경험에 대해선 “영국에서 희귀 도서에 관한 경력을 쌓으려면 책 수집가와 딜러들이 사랑하는, 녹슨 철교를 헤매고 다녀야 한다”고 덧붙인다. 서점 직원으로서 겪는 좌충우돌 현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서점에 대한 독자의 환상을 부수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에 흔들리는 법이 없는 곳’이란 인식을 향해 “서점은 원래 재정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로 정평 나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서점은 역사의 흐름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일상다반사”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 벨리코어(vellichor·중고 서점 특유의 애틋한 분위기) 내음이 물씬한 공간에 안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스로 “달리 둘 데를 찾지 못한 물건”이라 느꼈던 저자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서점에서 “남들보다 덜 사회적이고 내면의 햇볕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성장한다. 왠지 모를 위안까지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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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합창 들으며 마지막 길 떠난 김민기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옛 ‘학전’ 소극장 앞. 고 김민기를 태운 운구차에 유가족이 탑승해 이제 장지로 떠나려 하자 누군가 ‘아침이슬’을 선창했다. 두 겹 세 겹으로 줄지어 늘어선 추모객 수십 명은 흐느끼며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잠잠했던 빗방울이 갑작스럽게 굵어졌다. 비가, 눈물이, 아니 슬픔들이 흘러내렸다. 누군가 외쳤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김민기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극장 앞 고 김광석의 노래비 앞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소주, 막걸리와 국화 꽃다발이 줄지어 있었다. 유족은 영정을 안고 옛 학전 내부를 잠시 둘러봤다. 학전 출신인 배우 설경구와 장현성은 참아보려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었으나 터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배우 오지혜, 방은진은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다. 운구차가 떠난 뒤에도 추모객들은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색소포니시트 이인권 씨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고인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했다. 울음은 다시 파도처럼 번졌다. “가족장을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장현성은 힘겹게 입을 뗐고, 그제야 사람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이슬’ 등 노래로 1970년대 군부 시절 ‘청년 정신’을 심어줬고, 학전에서 올린 창작 뮤지컬로 대학로의 상징이 됐던 김민기는 이렇게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앞서 위암 4기로 투병하다 73세를 일기로 21일 별세했다. 1971년 김민기가 작곡해 건네준 ‘아침이슬’을 부르며 열아홉에 데뷔했던 가수 양희은은 24일 라디오에서 김민기를 “어린 날의 우상”이라고 불렀다. “제가 부른 그분의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도 함께 떠오릅니다. 많은 청취자분이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앞서 김민기의 서울대 후배인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전날 빈소를 찾아 조문객의 식사비 명목으로 유족에게 5000만 원을 전달했다. 조의금을 받지 않았던 유족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이도 돌려줬다고 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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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전서 마지막 인사 故김민기, 아침이슬 들으며 떠났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슬픔이 알알이 맺힐 때….”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옛 ‘학전’ 소극장 앞. 고 김민기를 태운 운구차에 유가족이 탑승해 이제 장지로 떠나려 하자 누군가 ‘아침이슬’을 선창했다. 두 겹 세 겹으로 줄지어 늘어선 추모객 수십 명은 흐느끼며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잠잠했던 빗방울이 갑작스럽게 굵어졌다. 비가, 눈물이, 아니 슬픔들이 흘러내렸다. 누군가 외쳤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김민기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극장 앞 고 김광석의 노래비 앞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소주, 막걸리와 국화꽃다발이 줄지어 있었다. 유족은 영정을 안고 옛 학전 내부를 잠시 둘러봤다. 학전 출신인 배우 설경구와 장현성은 참아보려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었으나 터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배우 오지혜, 방은진은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다. 운구차가 떠난 뒤에도 추모객들은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색소포니시트 이인권 씨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고인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했다. 울음은 다시 파도처럼 번졌다. “가족장을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장현성은 힘겹게 입을 뗐고, 그제야 사람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이슬’ 등 노래로 1970년대 군부 시절 ‘청년 정신’을 심어줬고, 학전에서 올린 창작 뮤지컬로 대학로의 상징이 됐던 김민기는 이렇게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앞서 위암 4기로 투병하다 73세의 일기로 21일 별세했다. 1971년 김민기가 작곡해 건네준 ‘아침이슬’을 부르며 열아홉에 데뷔했던 가수 양희은은 24일 라디오에서 김민기를 “어린 날의 우상”이라고 불렀다. “제가 부른 그분의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도 함께 떠릅니다. 많은 청취자분이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앞서 김민기의 서울대 후배인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전날 빈소를 찾아 조문객의 식사비 명목으로 유족에게 5000만 원을 전달했다. 조의금을 받지 않았던 유족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이도 돌려줬다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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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뮤지컬 ‘프리다’ 9월 美 무대 오른다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그린 국내 창작 뮤지컬 ‘프리다’(사진)가 미국 무대에 오른다.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프리다’가 9월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던캘리포니아대(USC)가 주최하는 ‘USC 비전스 앤드 보이스(Visons & Voices)’ 프로그램에 초청받았다고 23일 밝혔다. 2006년부터 열린 이 행사는 USC 교수진과 유명 예술가들이 참여해 연극, 음악, 무용 등의 공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뮤지컬 ‘프리다’는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를 극복한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생애를 그린 작품. 2022년 초연 당시 매회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재연에서도 흥행을 이어 갔다. 이번 미국 공연에서는 지난해 공연에 출연한 배우 김소향, 전수미, 박시인 등이 나선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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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떠나다

    노래 ‘아침이슬’의 원작자이자 대학로의 상징이었던 소극장 ‘학전’을 설립해 33년간 운영했던 가수 김민기 씨가 21일 오후 8시 20분 별세했다. 향년 73세. 22일 유가족에 따르면 위암 4기로 투병 중이던 고인은 최근 폐렴까지 겹쳐 20일 응급실에 입원했고 하루 만에 세상을 떴다. 고인의 노래는 암울한 군부 시절 저항의 상징이었다. ‘아침이슬’(1970년)을 비롯해 발표한 노래들은 민중가요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판매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1991년 소극장 ‘학전’을 열어 고 김광석 등의 무대로 인디밴드 공연 문화를 이끌었다. 1994년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관객 73만 명을 불러모으며 국내 창작 뮤지컬 바람을 일으켰다. 배우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김윤석 조승우(학전의 ‘독수리 5인방’) 등이 이곳 출신이다. 하지만 고인은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돕는 ‘뒷것’에 머물렀다. 고인은 마지막 가는 길에도 “나를 가지고 뭘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죽고 나서도 ‘뒷것’으로 남겨 달라는 얘기다. ‘아침이슬’로 청춘 울리고, ‘학전’으로 공연계 큰 발자취 남기고… “난 할 만큼 다 했다” 하늘무대로[김민기 별세]군사정권 시절 ‘상록수’ 등 발표… 저항운동 상징 되며 체포-취조 고난‘학전’ 열어 창작 뮤지컬 토대 닦아… 숱한 스타 배우 키우며 ‘뒷것’ 자처“어린이가 미래”라며 어린이극 제작… ‘학전’ 간판 내린지 나흘만에 숨져가수 김민기가 운영하다 경영난으로 폐관한 소극장 ‘학전’이 정부가 운영하는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새로 문을 열었던 17일. 그날은 김민기가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는 날이기도 했다. 당초 개관 행사에 “불참한다”고 알려졌던 김민기도 사실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다만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지나면서 ‘쓱’ 봤다고. 33년간 학전을 운영했던 그에겐 ‘달라진 학전’에 만감이 교차했을 터. 학전의 간판이 내려간 지 나흘 만에 김민기는 세상을 떴다. 그는 정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새 극장의 운영에 대해 별다른 희망사항을 밝히지 않아 왔다. 하지만 22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 혼잣말처럼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청소년과 신진 뮤지션이 ‘놀 수 있는 장’으로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다.” 생전 어린이·청소년극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비를 털어가면서도 제작을 계속해 왔던 뜻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 것이다.● 군부 시절, 시 같은 가사로 청춘들 마음 울려 고인은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한 뒤 동문 김영세와 함께 2인조 밴드 ‘도비두’를 결성하며 가요계에 들어왔다. 특히 삶을 성찰한 한 편의 시 같은 아름다운 가사는 새로운 문화에 목말라 있던 청춘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아침이슬’ ‘상록수’ ‘작은 연못’ ‘백구’ ‘봉우리’ 등이 탄생했다. 가수 한영애는 “중학교 때부터 김민기의 노랫말을 들으며 자랐다. 광장에서, 대학가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김민기 노래가 늘 울려 퍼져 제게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노래가 저항운동의 상징이 될수록 삶은 고단해졌다. 아침이슬, 상록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고 1971년 낸 솔로 1집 ‘김민기’도 판매 금지됐다. 전역 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며 비밀리에 음악 활동을 계속했지만 군사정권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숱하게 체포되고 취조를 받았다. 고인은 한동안 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음악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그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낸 건 학전이었다. 학전을 차리기 위해 목돈이 필요해진 그는 그간 썼던 노래를 모아 총 4장의 ‘김민기 전집’(1993년)을 발표했다. 1971년 낸 첫 음반이 판매 금지 조치된 후 처음으로 정식 발표한 음반이었다.● 스타 키우면서도 본인은 ‘뒷것’ 자처 1991년 대학로 ‘학전’의 문을 연 그는 공연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등을 만들어 국내 창작 뮤지컬의 토대를 닦은 것. ‘의형제’는 1998년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지하철 1호선’으로 독일 문화훈장인 ‘괴테 메달’을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서항석, 윤이상, 백남준에 이어 네 번째였다. 학전은 배우들의 ‘사관학교’로 유명했다. 스타들을 키우면서도 그는 언제나 별 뒤에 서 있는 ‘뒷것’에 머물렀다. 배우 장현성은 “졸업 후 용돈을 벌어야 해서 학전 입단 오디션을 본 게 배우 인생의 시작이었다. 학전에서 작품들을 공부하며 내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했다. 고인은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표준계약서도 작성했다. 배우 오지혜는 “힘없는 연극배우가 일반 극단에서 계약서 쓰고 공연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창작 뮤지컬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돌연 어린이극으로 핸들을 꺾었다. 국내 공연계에서 어린이극은 소위 ‘돈 안 되는’ 장르로 꼽히지만 “어린이들이 미래이고, 이들이 좋은 공연을 보고 자라야 한국의 미래 문화가 밝다”는 게 소신이었다. 최근 수개월은 고인에게 ‘아픈’ 시간이었다. 자식처럼 생각했던 학전이 올 3월 15일 문을 닫은 것. 오랜 경영난에 김민기의 건강까지 나빠지며 폐관을 결정했다. 학전의 폐관 전후로 높아진 대중의 관심에도 고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건강이 악화되자 주변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끝내는 게 맞다. 고맙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8시. 02-2072-2010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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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행작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국립극장, 5년만에 재공연

    국립극장이 다음 달 28일부터 내년 6월 29일까지 새 시즌 공연을 선보인다. 신작 23편과 레퍼토리 공연 8편을 포함해 총 61편이 공연된다. 우선 장르 간 경계를 허문 신작들이 눈에 띈다. 국립무용단은 안애순 현대무용가와 협업한 ‘행+―’를 다음 달 개막작으로 선보인다. 사람의 몸으로 전해지면서 정형화된 한국 춤의 움직임을 현대무용의 시선으로 해체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올 11월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음악을 작곡해 콘서트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에서 연주한다. 국악관현악 창작곡을 서양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편곡해 선보이는 공연도 있다. 내년 6월 열리는 ‘스위치’(가제)에서다. 국립창극단은 실존 인물의 삶을 재창작한 공연들을 초연한다. 올 11월 신작 ‘이날치傳’에서는 양반집 머슴으로 태어나 최고의 명창이 된 이날치의 삶을, ‘수양’(가제)에선 세종의 위업을 계승한 수양대군의 삶을 그린다. 인기작들도 잇달아 재공연된다. 국립창극단은 올 9월 스테디셀러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5년 만에 다시 공연한다. 스타 연출가 고선웅과 한승석 작창가가 판소리 일곱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 타령’을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궁중무용, 종교무용, 민속춤 등 11개의 전통춤을 사계절 안에 담아낸 국립무용단의 대표작 ‘향연’도 올 연말 6년 만에 돌아온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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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로 소극장 학전 이끈 ‘아침이슬’ 김민기 별세…향년 73세

    자신의 히트곡 ‘상록수’처럼 30여 년간 작은 극장을 지킨 가수 겸 소극장 학전 대표 김민기 씨가 암 투병 끝에 21일 눈을 감았다. 향년 73세.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한 후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대표곡 ‘아침이슬’ ‘꽃 피우는 아이’ 등이 수록된 ‘김민기 1집’(1971년)은 고인의 데뷔음반이자 마지막 정규음반이다. 당대 20, 30대 젊은층에게 민중가요로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이듬해 방송금지,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직접 쓴 시적인 가사는 당시 번안곡 위주이던 우리나라 포크 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활동에도 제재가 이어졌지만 ‘상록수’ ‘공장의 불빛’ 등 노래들을 꾸준히 발표했다.1990년대에는 공연 연출가로서 인생 2막을 열었다. 고인은 1991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훗날 대학로 공연문화의 상징이 된 소극장 학전을 개관한다. 초기에는 가수들의 콘서트장으로 활용됐다. 아이돌 문화가 급속 확산하면서 설 곳이 사라진 가수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며 오늘날 인디밴드 공연문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시인과 촌장, 동물원, 유재하, 나윤선 등이 학전을 거쳐 갔고 고(故) 김광석은 1991∼1995년 매년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극장 입구에는 김광석을 추모하고자 세워진 ‘김광석 노래비’가 1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인은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초연하며 국내 창작뮤지컬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의 ‘1호선’을 1990년대 말 한국 상황에 맞춰 각색해 2008년까지 4000회 공연해 70만 명 이상 관람했다. 고인은 이 작품으로 윤이상, 백남준에 이어 2007년 한국인으로서는 3번째로 독일 문화훈장인 괴테 메달을 수상했다. 그밖에 뮤지컬 ‘모스키토’, ‘의형제’, 연극 ‘복서와 소년’ 등을 제작했다.고인은 척박해진 대학로에서도 추수를 내다보는 못자리로서 자리를 지켰다. 1991년 개관 당시 임대료, 설비비 등 재원을 마련하려다 매일 병원 신세를 지고, 극장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22년 만에 신보(1993년)를 내는 등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나 다른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관객 감소 등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며 학전은 올해 3월 문을 연 지 꼭 33년 만에 폐관했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주도로 이달 17일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으로 재개관했다. 고인은 위암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 등 공연을 올리는 데 매진했다. 동아연극상 작품상(1999년) 한국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2018년) 호암문화재단 호암상 예술상(2020년) 등을 수상했다.학전 개관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상록수)라는 가사처럼 생전 꼭 닮은 궤적을 남기며 이렇게 말했다. “기존 노선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저 나일뿐입니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미영 씨, 장남 김종화 씨, 차남 김소윤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 02-2072-2010.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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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릴 가득 맥베스, 파격의 女 햄릿, 묵직한 정통 햄릿까지

    피비린내 나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잇따라 관객을 만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와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서로 다른 버전의 ‘햄릿’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맥베스’가 무대에 올랐다. 세 작품의 색다른 매력을 비교 분석해 봤다.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낳은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유명하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독살된 선왕의 원수를 갚으면서 겪는 선악의 고뇌를 그렸다. 신시컴퍼니의 대학로 아트센터 공연에는 배우 전무송 이호재 손숙 박정자 등 연극계 거목들이 주·조연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원작의 클래식함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희곡 ‘열하일기 만보’, ‘3월의 눈’ 등을 쓴 극작가 배삼식이 각색해 원전 텍스트의 아름다움과 한국어의 말맛을 모두 잡았다. 미쳐버린 햄릿을 향한 오필리아의 대사 “아, 이 얼마나 고귀한 정신이 파괴됐나”는 극에서 “무너졌구나. 그 고귀한 마음이, 내 사랑이, 모든 것이 무너졌구나”로 바뀌었다. 무대 소품과 조명 색채를 최소화하는 등 절제에서 비롯된 묵직한 정극을 만나볼 수 있다. 4대 비극 중 마지막에 쓰인 ‘맥베스’는 군더더기 없고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꼽힌다.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을 따라 국왕을 살해한 뒤 왕좌에 오르지만, 끝내 파멸하는 삶을 그렸다. 해오름극장의 ‘맥베스’ 공연에선 배우 황정민과 송일국, 송영창 등이 5주간 단일 캐스트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특히 이번 작품은 스펙터클하게 연출돼 고전 희곡은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강렬한 핏빛 조명,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대관식, 긴장감을 절로 자아내는 음악은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1000만 배우’ 황정민의 연기는 ‘악으로 시작한 일은 악으로 끝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는 대사 마디마다 쉴 새 없이 바뀌는 말투와 걸음걸이, 입매 등으로 격랑처럼 몰아치는 맥베스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목소리 톤은 원작의 운문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단지 왕위 찬탈을 부추기는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분출한 끝에 파멸로 치닫는 독립된 인물로 그려진다. 국립극단의 명동예술극장 ‘햄릿’ 공연에선 드라마 ‘일타 스캔들’ 등에 출연한 배우 이봉련이 ‘햄릿 공주’ 역으로 나온다. 대사, 캐릭터 설정에 현대적 감수성이 파격적으로 반영돼 햄릿은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해군 출신 공주로 등장하는 등 원작의 성차별적 요소를 없앴다. “내겐 이 무슨 흙 중의 흙이란 말인가. 인간이 즐겁지 않아. 여자도 마찬가지야”라는 원작 대사는 “인간은 얼마나 우스운가. 인간도 싫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 세상도 싫다”로 바뀌었다. 아들 햄릿의 숙부와 재혼한 왕비 거트루드에게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어머니의 면모를 투영해 선악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 제59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은 정진새가 각색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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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통 햄릿’‘부터 ‘여자 햄릿’까지…셰익스피어 연극 3편 비교 리뷰

    피비린내 나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잇따라 관객을 만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와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서로 다른 버전의 ‘햄릿’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맥베스’가 무대에 올랐다. 세 작품의 색다른 매력을 비교해봤다.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낳은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유명하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독살된 선왕의 원수를 갚으면서 겪는 선과 악의 고뇌를 그렸다. 신시컴퍼니의 대학로 아트센터 공연에는 배우 전무송 이호재 손숙 박정자 등 연극계 거목들이 주·조연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원작의 클래식함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희곡 ‘열하일기 만보’, ‘3월의 눈’ 등을 쓴 극작가 배삼식이 각색해 원전 텍스트의 아름다움과 한국어의 말맛을 모두 잡았다. 미쳐버린 햄릿을 향한 오필리어의 대사 “아, 이 얼마나 고귀한 정신이 파괴됐나”는 극에서 “무너졌구나. 그 고귀한 마음이, 내 사랑이, 모든 것이 무너졌구나”로 바뀌었다. 무대 소품과 조명 색채를 최소화하는 등 절제에서 비롯된 묵직한 정극을 만나볼 수 있다.4대 비극 중 마지막에 쓰인 ‘맥베스’는 군더더기 없고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꼽힌다.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을 따라 국왕을 살해한 뒤 왕좌에 오르지만, 끝내 파멸하는 삶을 그렸다. 해오름극장 공연에선 배우 황정민과 송일국, 송영창 등이 5주간 단일 캐스트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특히 이번 공연은 스펙터클하게 연출돼 고전 희곡은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강렬한 핏빛 조명,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대관식, 긴장감을 절로 자아내는 음악은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1000만 배우 황정민의 연기는 ‘악으로 시작한 일은 악으로 끝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는 대사 마디마다 쉴 새 없이 바뀌는 말투와 걸음걸이, 입매 등으로 격랑처럼 몰아치는 맥베스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목소리 톤은 원작의 운문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국립극단의 명동예술극장 ‘햄릿’ 공연에선 드라마 ‘일타 스캔들’ 등에 출연한 배우 이봉련이 ‘햄릿 공주’ 역으로 나온다. 대사, 캐릭터 설정에 현대적 감수성이 파격적으로 반영돼 햄릿은 왕위계승 서열 1위의 해군 출신 공주로 등장하는 등 원작의 시대착오적 사고나 성차별적 요소를 없앴다. “내겐 이 무슨 흙 중의 흙이란 말인가. 인간이 즐겁지 않아. 여자도 마찬가지야”라는 원작 대사는 “인간은 얼마나 우스운가. 인간도 싫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 세상도 싫다”로 바뀌었다. 제59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은 정진새가 각색했다.공연 중인 셰익스피어의 세 작품 모두 주인공 이외 캐릭터들의 시선을 강화해 입체적 재미를 더했다.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단지 왕위 찬탈을 부추기는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분출한 끝에 파멸로 치닫는 독립된 인물로 그려진다. 국립극단 공연에서는 아들 햄릿의 숙부와 재혼한 왕비 거트루드에게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어머니의 면모를 투영해 선악에 대한 판단을 흐릿하게 한다. 신시컴퍼니의 ‘햄릿’에서는 이름 없는 조연까지 굵직한 원로 배우들이 연기해 그간 가려져 있던 명대사를 부각한다. 손봉숙이 연기하는 ‘배우 4’의 대사 “이 기나긴 광대놀음도 이제 끝인가”는 공연의 대미를 묵직하게 장식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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