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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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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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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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미 기자의 談담]“죽음은 신의 뜻, 삶은 인간의 몫… 나누며 살아야죠”

    《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학자인 정진홍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겸 서울대 명예교수(78)에게 질문했다. “폭력시위를 주도했던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25일간 은신했습니다. 다친 새가 날아들면 품어 안는 게 종교의 속성 아닐까요. 그런데 그를 거둬준 종교계 온정이 사회 정의에 반한다는 얘기도 많습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 이사장은 “학자가 직접적으로 얘기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전제한 뒤 말했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할 수 없는 중첩된 영역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자기 주권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정교(政敎)분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이를 서술한 헌법도, 법률도 자기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어쩌면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이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현실 적합성을 확보하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다 우리 사회에 적합할 것인가 깊게 사색해야 합니다.” 》‘우주와 역사’ ‘성(聖)과 속(俗)’으로 유명한 20세기의 세계적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1907∼1986)를 사사하고 국내 종교문화의 토대를 세운 정 이사장은 지금껏 ‘긴 사색’을 강조해왔다. 그가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였던 시절(1982∼2003년), 그의 강의는 서울대 인문대 명(名) 강의로 유명했다. 그의 말과 글은 당시나 지금이나 느릿한 만연체여서 처음 접하면 거북하고 불편할 수 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의 얘기는 듣는 사람을 ‘생각하게끔’ 만든다. 극단주의 이슬람국가(IS)가 주도한 프랑스 파리 테러, 부모의 재산에 따라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로 나누는 ‘수저계급론’…. 불평등과 분노가 가득 차 보이는 지금 여기 이 세상에 사랑과 자비는 있는가. 연말을 맞아 그의 긴 사색을 조용하게 나누고 싶어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서 최근 만났다. 종교란… ―IS는 왜 종교의 이름으로 이런 무모한 테러를 일으킬까요. “종교는 신념을 기반으로 합니다. 삶을 근원적으로 긍정하기도 하지만 맹목적이고 편리한 환상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IS의 테러는 자기를 주장하고 확산하기 위해 순교라는 이름의 독선적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 폭력은 순수하게 종교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정치경제적 요인들이 얽혀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테러는 잘못된 종교행위라는 걸 지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폭력을 응징하기 위해 군사적 행위는 불가피하지만, 자신들의 폭거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전승된 기억’을 공감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이를 간과하면 보복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근원적 물음에 다다릅니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종교는 인간이 희구하는 꿈의 결정체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에서 드러난 문화의 한 모습이라고 봅니다. 다만 지금 여기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희구가 낳은 문화여서 그 내용이 신성(神性)으로 개념화되어 있을 뿐입니다. 신의 속성이나 종교의 특성은 제각기 그 종교가 출현한 그 사람들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종교가 여럿인 이유죠. 그러므로 서로 다른 종교를 존중해야 합니다. 자기 경험을 절대적 준거로 해서 다른 종교를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너무 낭만적 생각 아닐까요. 세상은 점점 극단화되고 있습니다만. “극단주의가 출현하는 것은 자기 존재감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폭력에 대한 직접적 대응이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보복을 위한 폭격 아래에서 울부짖는 부모와 아이들이 있다는 걸 얘기하는 목소리도 있어야 합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전율하는 것은 그것이 특정한 사태를 이미지화한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바닥을 정직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회주의자, 낭만주의자, 비현실적 인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이런 얘기를 해야 합니다.”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왜 종교 인구는 감소할까요. “첫째는 제도 종교의 쇠퇴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적합성 없는 얘기를 권위에 의거해 강제된 규범으로 제시하면서 실천하라면 못 견딥니다. 둘째는 사회구조가 달라지면서 개인의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에 종교도 이젠 사사로운 일이 됐습니다. 나름대로 편한 종교생활을 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이래저래 현대에는 종교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부유(浮游)하는 종교’라고 할까요. 종교 인구는 감소하는데 종교적 삶은 오히려 확장되는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종교라는 말을 기피하면서도 종교적 가치를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이 ‘영성(靈性)’이라는 말을 씁니다. 종교라는 용어는 서서히 수명을 다한 것 같습니다.” ―한국 종교의 문제점 중 어떤 게 가장 걱정됩니까. “위선과 부패, 독선과 배타 등 이익집단이 갖는 온갖 부정적 측면을 일부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종교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환상을 지니는 점입니다. 자기를 이 세상에 대한 절대적 심판자로 여기죠. 이 착각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종교의 갱신은 어렵습니다. 자기 성찰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죽음이란… 죽음을 앞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 대신 편안한 죽음을 사전에 미리 결정해 둘 수 있는 법률안(연명의료 결정법안)이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국내에서 존엄사 논의가 시작된 지 18년 만이다. 정 이사장은 그동안 죽음을 깊게 연구해 온 학자이다. ―일명 웰다잉(well-dying)법에 대해 종교계는 여전히 우려합니다. “웰다잉법은 필요합니다. 다만 구체적이고 자상한 시행령과 윤리강령으로 보완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죽음의 자기결정권 논의는 결국 ‘인간은 인간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풍토를 가져올 수 있거든요. 죽음결정권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승인되면 ‘의도적 살인’도 가능해집니다.” ―평소 품위 있는 죽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저 담담했으면 좋겠습니다.” ―담담한 죽음이라고요. “죽음은 별난 일도 아니고, 나 혼자 당하는 일도 아니잖아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괴롭지만 조금은 더 고요하고 깊고 그윽했으면 좋겠습니다. 담담하게 살다가 회복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연명치료가 아니라 통증완화 치료를 바라는 사전의향서를 의사와 가족들에게 담담하게 작성해주면 어떨까요.” ―인간 삶이 길어진 것이 오히려 불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젊을 때부터 가족과의 관계도 따뜻하게 유지하고 사회적 역할도 맑고 의연하게 한 사람의 노년을 신은 축복할 겁니다. 언제 죽든 그건 신의 일이겠지만 그때까지 지속하는 삶의 질은 결국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개인, 가정, 국가가 함께 인간 삶의 질을 유념한 ‘죽음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보람 있는 죽음은 보람 있는 삶에서 비롯되니까요.” 나눔이란… 그는 2011년부터 4년간 맡았던 아산나눔재단(청년창업지원과 교육 등의 비영리재단) 초대 이사장을 두 달 전 내려 놓았다. 과거 그가 신문에 썼던 칼럼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1915∼2001)이 읽고 연락해 와 가깝게 지낸 인연을 알고 정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제안해 일했던 자리다. ―왜 그만두셨나요. “2년씩 두 번 연임해 4년 일했는데 10월 이사회에서 또다시 맡게 되면 제가 나이 80이 되더라고요. 더 있으면 저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게 되죠. 다른 사람들이 저 늙은이가 왜 앉아 있나 할 때 나오면 안 돼요. 100세 시대니까 80세에도 일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제가 제 정신으로 판단할 때 나와야 해요. 집사람이 ‘참 잘했다’고 하대요.(웃음)” ―4년간의 소회는요. “나눔은 분배나 시혜가 아니라 참여입니다. 서로 빈 구석을 채워줘야 사람 구실을 합니다. 그 상호 간의 채움이 곧 나눔입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통 큰 기부’가 최근 화제가 됐는데요. “기부가 돈 많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라고 여겨질까 봐 걱정도 됩니다. 최근 아침 일찍 집에서 나오다 어느 중년 부인이 폐 상자를 리어카에 끌고 가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돈을 꺼내주는 걸 봤습니다. 일상 속의 그런 마음이 값진 나눔 아닐까요.” ―최근 동아일보가 진행한 ‘동아행복 시리즈’에 따르면 요즘 30대는 현실과 이상의 큰 괴리 속에서 행복감이 낮다고 합니다. “작은 일상을 잃어버리고 너무 커다란 것만 보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 전 요즘 종교문화연구소 제자들과 시장에서 두부를 먹으면서 소주 한잔씩 하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요즘 어떤 신념으로 사십니까. “거창한 이념이 갖는 작위성이 점점 두렵습니다. 그저 일상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쓰레기 잘 분류해 버리고, 신호등 잘 지키고. 일상을 배제한 이념, 일상을 간과하는 초월이나 신비. 그게 바로 미신이고 환상이고 기만 아니겠습니까.”▼ 정진홍 이사장은 ▼1937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왔다. 미국 오하이오 주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샌프란시스코신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목회학)를 받은 후 덕성여대 명지대를 거쳐 21년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를 지내고 2003년 정년퇴임했다. 한국종교학회장(1992∼1994년), 굿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사장(2009∼2011년), 아산나눔재단 이사장(2011∼2015년 10월) 등을 지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울산대 철학과 석좌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을 맡고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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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매거진]“한국 학생들 창의력 뛰어나… 전 세계 무대로 꿈 펼치길”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을 이끄는 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비에 루스텡, 남성복 ‘준지’(Juun.J)를 만든 정욱준 제일모직 상무 및 디자이너…. 현재 국내외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이들의 공통점은 에스모드 출신이라는 것이다. 에스모드(ESMOD)는 패션고등예술기술학교(Ecole Sup´erieure des Arts et Techniques de la Mode)란 프랑스어의 약자로,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궁정 재단사였던 알렉시 라비뉴가 1841년 파리에서 창설한 세계 최초의 패션 교육기관이다. 라비뉴는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줄자와 마네킹을 고안하기도 했다. 현재 에스모드는 14개국 21개 분교라는 국제적 교육망을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는 1989년 패션디자이너 박윤정 씨(현 에스모드 서울 이사장)가 에스모드 서울을 설립해 패션 전문인들을 양성해 왔다. 최근 ‘제33회 대한민국 패션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김세연 씨도 에스모드 서울 출신이다. 패션계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에스모드의 힘은 현장 실무형 패션인을 길러내는 교육에 있다는 평가다. 학생들의 졸업작품도 패션업계 실무진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외부 심사하는데, 이 졸업작품 발표회는 패션기업 대상 프로모션 형식도 띤다. 이달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에스모드 서울에서는 ‘에스모드 서울 제25회 졸업작품 발표회’가 열려 76명의 학생이 271점의 옷을 선보였다. 이 발표회에 참석한 크리스틴 발터보니니 에스모드 인터내셔널 교장을 만났다. ―한국 학생들의 쇼를 본 소감은…. “매년 에스모드 서울 학생들의 작품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패션의 성공은 감동에 있다. 표현과 연출력이 갈수록 더 풍부해지고 있다. 여성스럽기도 하고, 구조적이기도 하고, 근사한 니트와 오버사이즈 볼륨까지 여성복 컬렉션이 다채로웠다. 남성복 컬렉션은 생각지 못했던 여러 소재와 작업으로 창의력과 기술력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란제리와 아동복의 디테일은 학생들의 수준으로 보기에 놀랍도록 정교했다.” ―한국 학생들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에스모드 서울 학생들은 개개인의 열정을 표현하도록 교수진으로부터 밀착 지도를 받는다. 한국 학생들은 재단, 소재 개발, 프린트, 레이어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면에서 매우 강하다. 에스모드에서는 학생들이 ‘아방가르드’적 재능을 개발해 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데 한국 학생들이 이를 매우 잘 표현한다.” ―한국 패션계를 향한 조언은…. “개인적으로 한국의 패션은 ‘진정한’ 시작 단계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여전히 이룰 일이 많다. 이상봉, 준지 등 세계에 진출한 훌륭한 한국 브랜드가 있지만 더 큰 꿈을 꾸어야 한다. 의문을 가지고 주저함 없이 자기 브랜드를 시작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으면 좋겠다.” ―글로벌 패션업계가 지금 처한 상황과 앞으로의 과제는….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한 럭셔리 시장과 매스마켓 사이에 윤리적 패션, 장인 공예, 뉴테크놀로지, 디지털, 기능성 신소재 등이 차지할 자리가 있다. 전통과 혁신은 서로 보완적이다. 각 나라에서 젊은 학생들이 이를 이용해 차이를 만들어 내야 한다. 미래의 도구를 과거의 문화유산과 함께 활용해 그들만의 패션세계를 만드는 일은 젊은이들의 몫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흰 옷을 입는 것 같다. “나는 오랜 시간 검은색과 컬러를 내 패션에서 지워나갔다. 다양한 톤의 흰색을 좋아한다. 원색의 흰색, 베이지색, 크림색, 펄이 들어간 흰색 등. 색감이 부드럽고 눈을 편하게 하며 특히 여행할 때 편리하다.” ―‘화이트 패션’에선 어떤 점을 신경 쓰는지. “긴 옷, 레이어드, 니트를 활용해 전체적 실루엣이 망가지지 않도록 한다. 흰옷을 입을 때는 서로 다른 톤의 흰색이 잘 어우러지도록 매치해야 한다.” ―이번 동아일보 스타일섹션 Q는 연말 파티 패션을 소개한다. 추천하고 싶은 스타일이 있는가. “모든 패션이 아주 재미있을 수 있다. 다만 옷은 제2의 피부처럼 입어서 편안해야 한다.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입어서 편한 옷 중에서 색다른 연출을 과감히 시도하기를. 개성이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지 스타일이 개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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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선미]중단하라, 세일 2015

    지난달 27일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 한국도 K세일을 한다기에 혹시 살 만한 게 있나 싶어 롯데백화점 본점을 찾아갔다. 행사장에서는 일부 옷이 70∼80% 세일을 했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요즘 나는 싸다고 무조건 사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는 걸 산다. 10여 년 전만 해도 세일은 꽤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한국에서는 턱없이 비싸거나 수입되지 않는 제품을 사러 홍콩으로 쇼핑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해외 직구는 소비의 시공간 제약을 없애 버렸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온라인 판매가 늘면서 미국도 반짝 세일 때 몰아서 쇼핑하기보다는 연중 꾸준한 소비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는 정부가 세일을 주도했다. 통계청이 그제 발표한 10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옷과 가전제품 등 전체 소매 판매가 전달보다 3.1% 늘었다. 57개월 만의 최대 증가 폭이다. 그런데 개운치 않다. 소비와 함께 늘어야 할 생산과 투자는 감소하고, 기업들의 재고만 소폭 줄었다. ‘세일 약발’이 먹혔다고 하기엔 씁쓸한 재고처리 세일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가 더 첩첩산중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청장년층(15∼64세) 인구, 즉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은 내년 3704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선다. 특히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40대 중반 연령층이 줄어드는 게 가장 큰 리스크다. 잘나가던 국내 아웃도어업계는 저성장 시대의 직격탄을 맞았다. 업계에서는 연매출 5000억 원 이상 브랜드를 ‘전국구 브랜드’라고 부르는데, 최근 몇 년간 성장을 견인했던 이들이 고전하고 있다. 매년 120% 생산량을 늘려 넉넉한 마진을 붙여 팔던 상품들은 재고가 됐고, 이를 털기 위한 할인이 연중 계속된다. 세일 피로감이 쌓인 소비자들은 이제 제값 주고 등산복 사는 걸 한심하게 여긴다. 가격표가 신뢰를 잃었다. 소비를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세일을 중단해야 한다. 국내 여성복의 제조원가는 판매가의 10%대인 경우가 많다. 유통회사에 주는 높은 마진과 세일을 감안해 가격을 책정하니 ‘미친 옷값’이 되고 만다. 세일 거품을 빼고 직구 상품들과 승부를 가려야 한다. 애국심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 직구가 늘어나면 당장은 국내 소비재 시장이 잠식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둘째, 시각적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 스토리텔링만큼 비주얼텔링(Visualtelling)도 중요하다. 해외 패션브랜드들의 인스타그램은 각자가 지향하는 스타일을 이미지로써 한눈에 보여주는 반면 일부 국내 브랜드의 인스타그램은 스타들이 행사장에 온 사진을 올려놓는 수준이다. 끝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해야 한다. 아디다스는 오리지널, 풋볼, 스케이트보딩 등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제품 라인을 잘게 쪼갠다. 나이, 성별이 아니라 추구하는 생활방식으로 소비자를 나누고 그에 맞는 상품을 판다. ‘라이프스타일을 팔자’란 모토를 내건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도 있다. 책 음악 영화 카페가 어우러진 매장은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여는데, 깊이 있는 콘텐츠들로 지적인 놀이터가 됐다. ‘쓰타야를 다니는 사람=멋있는 사람’. 이보다 더 근사한 소비 공식이 있을까. 당장 고통스럽다고 근시안적으로 세일에 매달려선 안 된다. 소비자는 세일을 마다하지도 않지만 무작정 반기지도 않는다. 소비자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 ‘생각하는 갈대’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1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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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매거진]‘우아한 루이까또즈’ 모던 스타일로 젊은 고객층 확보 나선다

    우리는 패션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동안 지켜봐왔다.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 루이뷔통의 마크 제이컵스, 구치의 톰 포드, 발망의 크리스토프 데카르냉…. 사실 글로벌 패션 은하수에서 브랜드의 갈 길을 정하는 몫은 온전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브랜드의 콘셉트를 정하고 홍보, 광고, 디자인까지 모두 총괄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마법을 부리는 패션 생태계에 ‘루이까또즈’도 추가해야겠다. 올해부터 간호섭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45)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루이까또즈가 확 달라졌다. 그를 18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루이까또즈의 올해 가을겨울 광고 캠페인 사진들을 꺼내 보여주기 시작했다. ‘불과 얼음의 땅’으로 불리는 아이슬란드의 비크에서 찍은 자연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했다. 화산재가 뒤덮인 검은 모래 해변과 얼음덩어리. 이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거울이라는 인공적 오브제로 몽환적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왜 거울인가. “루이까또즈는 프랑스어로 루이14세다. 그가 누구인가. ‘태양왕’으로 불리며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왕이다. 그를 상징하는 태양에서 베르사유 궁전 내 거울의 방을 떠올린 뒤 루이까또즈의 패션DNA를 ‘빛’으로 도출해냈다. 빛의 재발견이랄까. 빛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 루이까또즈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루이까또즈는 프랑스 태생의 국내 브랜드이다. 1980년 프랑스 기업 ‘크레시옹 드 베르사유’가 파리에서 이 브랜드를 만든 후 1990년 태진인터내셔널이 국내 라이선스 사업권을 따내 생산하다가 2006년 프랑스 본사를 아예 인수해 국내 브랜드로 거듭났다. ―왜 광고 비주얼에 그토록 공을 들였나 “소비자들의 뇌리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서양 여자와 한국 남자가 모델이다. “과거 동양 남자의 이미지는 공부만 하고 운동은 못하는 ‘범생이’ 이미지에 그쳤다. 서양 여자와 동양 남자의 조합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요즘 잘나가는 한국 남자 모델은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수천 개를 받는 ‘월드 스타’이다. 기존 선입관을 깨고 싶었다.” ―교수 이외의 대외적 활동을 많이 해 왔다. 이번에도 직업적 ‘외도’ 아닌가. “나는 될 수 있는 한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다. 단, 패션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 것은 없다. 화장품 ‘오딧세이 스포츠’ 용기 디자인, ‘페리에주에’ 샴페인 디자인 협업,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유니폼 디자인, 케이블TV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 심사위원 등 패션에 대한 열정을 총체적으로 담을 수 있는 자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생각한다.” ―루이까또즈는 프랑스 브랜드 ‘까르띠에’를 닮은 자주빛 가죽, 이후엔 로고 패턴으로 디자인 변화를 겪었다. 이번에 보니 깔끔한 파스텔톤 토트백, 군복무늬 남성백 등이 눈에 띈다. “정확하다. 어느 날 돌아보니 루이까또즈 고객층도 브랜드와 함께 나이가 들었다. 변하지 않는 우아함을 지키면서 신선한 비주얼과 젊은 트렌드를 접목해 고객층을 확대하겠다.” ―중국에서도 반응이 좋다고 들었다. “2년 전부터 중국 백화점과 명품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하며 적극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루이까또즈 브랜드 탄생 35주년이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념파티를 열었더니 중국 바이어와 유명인사 등 6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루이까또즈는 자체 제작 의상으로 처음 패션쇼를 열었다. 중국 패션 관계자들이 루이까또즈를 고급스러운 토털 브랜드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올해부터 소녀시대-태티서가 루이까또즈 모델로 활동하던데…. “한류 스타만큼 반짝이는 ‘빛’이 또 있을까.”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루이까또즈 신제품들을 보니 모던한 느낌의 메탈릭 가죽 백이 눈에 띄었다. 간호섭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눈빛처럼 그 가방도 빛나고 있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1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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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미 기자의 談담]“중동의 고통, 우리 아픔으로 공감해야 세계화 의미있죠”

    《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중)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중동 전문가로 언론에 자주 나오는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47)를 최근 만났다. 그는 말했다. “사막의 밤하늘은 별이 쏟아져 아름답지만, 한낮의 사막은 죽음을 연상케 하는 절망의 느낌도 있어요.” 그의 ‘사막론’은 중동의 이미지와 겹치는데, 왠지 인간적이다. ‘천일야화’의 신비함과 테러의 공포가 상존하는 그곳과 사람들을 향한…. 》 젊은이들 무기력이 귀결된 게 IS한국에 중동은 산유지역으로서 중요한 생명줄인 동시에 국제분쟁 지역이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강국 연구에 밀려 중동 연구는 미흡했다. 영국 더럼대에서 중동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하던 인 교수가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의 전신)에 2005년 들어간 것도 같은 이유였다. 2004년 이라크에서 일하던 김선일 씨가 알카에다 무장 테러조직에 납치 살해됐을 때 부랴부랴 원인과 대책을 찾아 나섰지만 정작 우리 외교부 싱크탱크인 연구원에는 중동 연구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파리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Islamic State)가 자신들을 국가라고 칭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면 국가가 됩니까. “국가가 구성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하죠. 국민, 영토, 주권. 어찌 보면 IS는 국민과 영토는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국민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주권이 없습니다. 국가가 아니죠. 그러나 그들은 지금 2015년에 이슬람교 최초의 칼리프(최고 지배자)가 나온 632년의 국가를 재현한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중동의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자기들만의 이상향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겁니다.” ―이상향이라고요. “중동에는 뿌리 깊은 패배주의가 있습니다. 7∼10세기 지중해 문명의 표준을 이끌다가 놓쳤다는 역사적 박탈감이죠.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1918∼1970)이 아랍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런 패배감을 극복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아랍의 봄’(2010년 12월 이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들) 이후 혼란이 더해지면서 중동의 극단주의 청년들은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선거나 정당 등 서구식 제도로는 안 된다. 힘과 칼과 강력한 꾸란(아라비아어로 쓰인 이슬람 경전)으로 우리의 이상향 국가를 재건하자’고요.” ―왜 극악한 폭력 테러로 나타납니까. “절대 다수는 폭력과 테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염세주의가 중동의 젊은이와 지식인 사이에서 퍼지고 있어요. IS는 이 틈을 파고들죠. 과거 이슬람의 영화로운 시대를 자기들이 구현하고 있다고 속이면서 피를 부르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미화합니다. 문제는 무슬림과 상관없는 서양인도 IS를 하나의 대안으로 여기는 겁니다. 이슬람 순교주의자(샤히드)들은 인생 별거 없다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테러로 목숨을 바치면 36명의 처녀와 36명의 천사 등 72명의 아내가 생긴다’고 말하죠. 21세기 젊은이들의 무기력이 가장 나쁜 형태로 귀결된 게 IS입니다.”문명 충돌 아닌 근본주의자들의 충돌 ―문명의 충돌인가요. “그렇게는 안 봅니다. 이슬람권에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다수이니까요. 텍스트에 사로잡힌 근본주의 사람들끼리의 충돌이죠. 과거 독일 나치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근거도 예수를 못 박은 유대인을 심판한다는 성서적 맥락이었듯 말이죠.” ―각국의 이해관계가 지금의 중동 정세를 어렵게 만든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중동에 자기 세력을 만든 게 지금 이라크 시리아 문제의 발단이니까요. 또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소련군과 맞서 싸우도록 수니파 아랍인들을 모아 만든 무자히딘(아프가니스탄 반군단체)의 일부가 나중에 알카에다가 됐으니 역사적 아이러니죠. 2011년까지 미국이 중동 문제에 개입하면서 이슬람의 일부 광적인 세력은 ‘우리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보수주의(네오콘)와 싸워 미국을 쫓아냈다’는 환각도 갖게 됐어요.” ―국제사회는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아랍의 대중은 현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수니파 자국민을 참혹하게 죽이는 데 반해 IS는 주로 외국인을 죽이면서 적어도 시리아의 수니파 국민은 아사드로부터 보호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리아 국민들은 지금까지 이슬람 극단주의의 지배를 받아보지 않은 세속주의자들입니다. 지금은 정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IS에 복종하지만, 결국 극단주의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겁니다. 아사드도 IS도 아닌 착한 정권(굿 거버넌스)이 들어서 시리아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확신과 모델을 국제사회가 만들어줘야 합니다.” ―중동의 나라별 향후 전망이 궁금합니다. “전 이란을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인구 8000만 명의 대국이고 카스피 해와 걸프 해의 석유를 관할하는 페르시안의 후예로서 교육열과 여성 인력의 활용도 높습니다. 개혁 개방의 물꼬가 트이면 진도가 빠를 겁니다. 시리아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당장은 답이 없는데 유엔을 믿어봐야죠.”자기만의 공간-역사를 만드세요 인 교수는 20일 국립외교원에서 베스트 교수상을 받았다. 2년 연속 수상이다. 그는 중동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평소 페이스북에서 활발하게 나눈다. 대학에도 종종 출강한다. 그의 강의를 듣고 중동으로 진로를 정한 ‘인남식 후학(後學)’들도 생겨났다. ―중동을 연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중동 관련 석사논문을 쓰려고 하니 교수님들이 말릴 정도로 당시 중동 연구는 비주류였습니다. 그래도 성서를 읽으면 늘 궁금했습니다. 수천 년 전 땅(예루살렘)에 대해 20세기에 서로 내 땅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떤 이유일까.” ―그래서 답을 찾았나요. “그들의 역사와 세계관에 대해 지식으로는 어느 정도 알게 됐습니다. 다만 그들의 정서 깊은 곳에 깔려 있는 분노와 회한까지 공감하고 알아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호기심이 끊이지 않아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후학들에게 어떤 이유로 중동 연구를 권합니까. “유럽 외교관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선호하는 근무지역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상당수가 중동 근무를 원하더라고요. 왜 그런가 물었더니 왕정, 공화정, 민주정, 신정 등 다양한 정치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분쟁, 테러, 석유, 3대 유일신 종교 등 한 명의 외교관으로서 도전해 볼 만한 현대 국제 쟁점이 죄다 중동에 모여 있다는 거예요. 신화와 역사와 낭만이 버무려져 있는 중동을 공부하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입니다. 다만 알라딘의 요술램프나 신드바드의 낭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지금 중동에선 하루하루 숱한 사람이 죽음에 노출돼 있는데, 중동을 공부하면 이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세계화된 인간상을 물어보면 이렇게 답해요.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전문성으로 비즈니스나 협상을 성공시킨 뒤 고급 와인과 함께 저녁을 즐기는 것’이라고요. 저는 동의를 하면서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그것이 밖으로 나가는 세계화라면 우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세계화가 선행돼야겠다. 중동의 고통을 우리 아픔으로 내면화하고 공감해야 세계화가 의미를 갖는다’고요.” ―어떤 공감일까요. “식민역사, 전쟁, 빈곤, 군부독재, 민주화 투쟁…. 우리가 과거 몸서리치며 걸었던 길을 지금 중동과 아프리카가 걷습니다. 우리는 시리아 국민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 심정 우리가 알아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감의 자산을 가진 나라입니다.” ―중동에 자주 가나요. “잦을 때는 1년에 10차례 이상 다녔습니다. 나일 문명의 피라미드, 시리아 고대 유적지도 좋지만 늘 생각나는 곳은 사막입니다. 모래와 하늘밖에 없는 사막에 서면 ‘내’가 보여요. 숨소리도 크게 들리고, 생각도 선명하게 알게 된답니다. 하지만 요즘은 IS 때문에 사막에 가는 게 위험해졌어요. 평화와 안정이 찾아오면 더 많은 사람이 꼭 사막을 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중동을 이해하기 위해 추천할 만한 책이나 영화가 있나요. “학자로서 추천하기 민망한 제목이지만 ‘하룻밤에 읽는 중동사’입니다. 미야자키 마사카쓰 일본 홋카이도 교육대 교수가 정리한 책인데 무엇보다 소주제별로 중동의 다양한 쟁점을 잘 정리했어요(대형서점에 확인하니 현재 품절). 어렵더라도 성서와 꾸란, 유대인의 탈무드도 읽어보면 좋겠네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사막의 라이언’은 지금의 중동과 북아프리카 정세를 규정하는 중요한 시점을 다룬 역사물이고요. ‘천국의 아이들’이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보면 마음이 맑아지면서 현대 중동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어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 젊은이들을 향한 조언은…. “바빌론과 이집트 제국에 안주해 성(城)을 쌓으려고만 하지 말고, 광야로 사막으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다 가는 자리, 몰려드는 자리를 마다하고 자기만의 공간과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어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의 말처럼 ‘광야로, 사막으로’ 나갔고 자신이 얻은 것을 꾸밈없이 열정적인 방식으로 나누고 있었다. IS는 왜 만행을 저지르며 동조자들은 무엇 때문에 추종하는지, 그리고 이슬람과 중동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그와 두 시간여 인터뷰하는 동안 계속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오직 마음으로 찾아야해.”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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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제이씨, 베트남 고엽제 문제해결 위한 4개 기관 공동협약 체결

    ㈜비제이씨는 11일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안전성평가연구소, 한국농어촌공사 등과 함께 베트남 고엽제 다이옥신 문제 해결을 위한 4개 기관 공동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2일 밝혔다.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 당시 살포된 고엽제로 인해 300만ha 가량의 국토가 다이옥신에 오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개 기관은 앞으로 토양 내 다이옥신 분해 기술을 연구해 실용화할 방침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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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선미]‘발맹×H&M’ 쇼핑 고해성사

    나: 돈 카밀로 신부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신부: 아니 저런, 누굴 섬겼단 말이오. 나: 지름신입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참지 못하고 ‘지른다’는 뜻의 이방신입니다. 신부: 지름신을 어떻게 영접했다는 거요. 나: ‘H&M’과 ‘발맹’의 컬래버레이션(협업) 옷을 샀습니다. 신부: 한국에서 엿새간 구매 노숙 행렬이 이어졌다던데, 노숙을 했단 말이오. 나: 5일 오전 8시부터 세 시간 만에 거의 다 팔렸다기에, 노숙 행렬이 휩쓸고 간 흔적을 보려고 오후 7시 명동 매장에 갔더니 일부 과감한 디자인의 옷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가슴이 V자로 깊게 파인 초록 반짝이 미니 원피스를 입어 봤는데, 의외로 어울렸어요. 잠깐 망설이다가 심호흡 한 번 하고 그냥 나왔습니다. 신부: 그런데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요. 나: 흔들리기 시작한 건 이날 밤부터였어요. 입어본 셀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멋지다’, ‘살 수 있다면 사라’는 친구들의 댓글이 달렸거든요. 페이스북이 덕담의 공간인 줄 알면서도 한정판에 약해지는 행동경제학 인간이 바로 저였어요. 다음 날 서울 강남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진짜 ‘발맹’ 매장부터 가 봤습니다. 바이커 진바지는 150만 원대, 재킷은 600만 원대. 명품 취재를 좀 했다는 저도 진짜 발맹을 입어보는 건 부담스럽더군요. 명품 매장의 분위기는 늘 위압적이니까요. 신부: 발맹 오리지널을 샀다는 건가요. 나: 아이고, 아니에요. 명품관에서 가까운 H&M 압구정점으로 갔더니 뜻밖에도 전날 구매자들이 환불한 옷이 여럿 있었어요. 탈의실로 가져가 마음 편히 입어본 후 턱시도 스타일의 긴 조끼(13만9000원)를 샀습니다. 신부: 발맹이 나 젊었을 때엔 이렇게 명품 소리를 못 들었던 것 같은데…. 나: 발맹이 ‘뜬’ 건 몇 년 안 됐어요. 무분별하게 라이선스를 팔아 2003년 파산신청까지 했던 ‘피에르 발맹’에 투자가 들어오면서 브랜드 이름을 ‘발맹’으로 바꾸고 새 수석 디자이너를 영입했어요. 2009년 어깨에 달걀을 넣은 듯 봉긋한 뽕이 든 재킷과 날씬한 바이커 진을 내놓아 ‘발맹 대박’을 쳤죠. 2011년부터는 20대의 올리비에 루스탱이 디자인을 맡아 잘나가고 있어요. 신부: H&M과 발맹은 왜 손을 잡았죠. 나: H&M은 명품 이미지를 얻고, 명품은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죠. 세계 의류시장 1위 H&M(지난해 매출 23조 원)은 똑똑해요. 요즘 젊은 세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소비를 놀이로 여기는데, 그 입소문 효과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신부: 한국도 섬유 강국 아니오. 나: 과거 섬유는 행세를 했지만 솔직히 패션은…. 서구 미디어가 유행을 만들어 확산하는 시스템에서 우린 독자적 기획력이 부족해 브랜드를 키우지 못했죠. 대기업들도 해외 브랜드 수입 판매에 열을 올렸고. 웃돈을 얹어 되팔려는 H&M 노숙 행렬은 한심하게 볼 게 아니라 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했던 장면이에요. 신부: 당신이 샀다는 조끼는 좀 비싼 것 같은데…. 나: 제 근검절약 의지를 꺾을만큼 ‘발맹’ 디자인이 근사하고 가성비가 높았어요. 신부: 소비의 효용은 개인마다 다 다른데, 무슨 잣대로 단죄하겠소. 과한 지출을 하면 메우느라 고통을 겪지요. 그것이 죄라면 죄고 벌이라면 벌인 것을. (기자의 실제 쇼핑 경험담을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책 속 돈 카밀로 신부와의 가상 고해성사로 구성했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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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미 기자의 談담]남산의 소나무, 샹보르의 소나무… “문화는 섞어야 발전합니다”

    《 한국과 프랑스는 내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2015∼2016년 ‘한불 상호 교류의 해’ 행사들을 연다. ‘프랑스 내 한국의 해’가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한국 내 프랑스의 해’ 행사가 내년 1월부터 1년간 계속된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이를 계기로 처음 방한해 4일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갖는다.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행사 중 하나는 30여 년 몰두해 온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씨(65)의 사진전이다. 그는 9월 26일부터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유서 깊은 고성(古城)인 샹보르 성에서 ‘숲 속으로(D’une for^et l’autre)’ 전시를 열고 있다. 샹보르 성 측은 그가 찍은 경북 경주 남산과 프랑스 샹보르 숲 사진 59점을 내년 4월 10일까지 성 내부에 전시한다.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 한불 130주년 사진전 ―어떻게 준비했나요. “샹보르 성 큐레이터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고 1년여 동안 샹보르 성과 경주를 오가면서 사진들을 새로 찍었습니다. 성 측은 성채 내의 작가 숙소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주었어요. 파리 면적만큼 넓고 늪지대가 많은 샹보르 숲을 찍는 데 필요할 거라면서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프랑스 루아르 계곡에 있는 여러 고성 중 하나인 샹보르 성은 프랑수아 1세가 1515년 건립을 지시해 루이 14세가 완공했다. 그 성을 찾는 하루 평균 6000여 명의 방문객이 요즘 배 씨의 사진을 관람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 반응은 어떤가요. “프랑스 관람객들이 제 샹보르 숲 사진을 보고 한국의 숲 사진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몇몇 사진을 한지에 인화했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동양 수묵화 같다면서.” ―서양 평론가들이 배병우 사진은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 그림과 유사하다고 하던데요. “한국 사람들은 저를 사진에 가둬서만 설명하는 데 반해 서양 사람들은 현대미술 전반에 동양 전통을 아울러 제 사진을 설명합니다. 미술에 해박한 사람들이 많아서인가 봐요. 일례로 장 오송빌 샹보르 성 대표는 19세기 프랑스 고전파 화가인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의 유명한 그림 속 인물 ‘오송빌 부인’의 손자더라고요. 엘리트 공무원 출신인데, 예술적 배경도 있습디다.”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적 토양 차이를 느끼나요. “우린 단숨에 오느라 현대예술의 전통이 짧잖아요. 나무는 100년이 돼야 나무 같아요. 최근 스페인 북부 소리아 지방의 국립공원에 갔더니 해발 2000m에 100∼500년 된 소나무 숲이 있더라고요. 한국의 소나무는 대부분 100년이 안 됐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벚나무가 속성수예요. 100년이 전성기거든요. 30년 후쯤이면 우리나라 벚나무가 일본보다 멋있을 거예요. 경남 하동 섬진강변 벚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나무를 잘 기르면 되는 거지 ‘벚나무는 일본 나무’라고 백안시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요. 그게 문화적 성숙도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문화적으로 100년이 되면 성숙된 힘을 가질 겁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에 나선 지 지금까지 50년 됐다고 보고 앞으로 50년 노력하면 되지 않겠어요. 문화적 힘이 생겨야 다양한 예술가와 문화가 탄생합니다.” ―다른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행사도 보셨나요. “파리 국립장식미술관에서 시작된 ‘코리아 나우(Korea Now)’ 전시(9월 18일∼2016년 1월 3일) 개막식에 갔더니 제 홍익대 응용미술과 70학번 동기인 최병훈(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교수)과 안상수(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장)가 전시자로 참석했더라고요. 관람객이 넘치는 국립장식미술관에서 한국 전시가 열리는 게 뿌듯했습니다. 과거 한국은 삼성 LG와 같은 기업 이미지가 우선했는데, 이젠 문화 이미지 시대가 열리고 있어요.”○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최근 조성진 씨의 쇼팽 콩쿠르 우승 등으로 한국을 보는 프랑스의 시선이 달라졌나요. “전문가 사회에서 변화하는 시선이 느껴져요. 이번에 샹보르 성에서 전시하니까 파리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스타 대접을 받았어요. 조성진 씨 우승 덕도 본 셈이죠. 그동안 케이팝이 한국 문화를 알렸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스포츠 문학 미술 클래식음악 등 여러 분야가 ‘으싸으싸’하는 힘으로 새로운 것과 전통을 서로 주고받아야 발전하죠. 한-프랑스 교류가 그 바탕을 다지는 모멘텀이 됐으면 합니다. 조성진 씨가 다니는 파리 국립고등음악원도 이번에 함께 떴잖아요. 우리로 인해 파리가 다시 문화적 융성기를 맞을 수도 있죠.” ―프랑스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인도 최근 2013년 빈티지 와인 라벨에 한국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이우환 화백 그림을 넣기로 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등 대가들의 작품만 들어가던 라벨이었으니 정말 대단한 일이죠. 미술계의 변방이던 한국이 요즘 ‘되는 느낌’이에요. 저도 11월 12일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리는 세계적 사진전 ‘파리 포토’에서 ‘살롱 도뇌르(귀빈실)’ 전시를 하게 됐어요. 주변에서 이 전시가 사진계의 ‘명예의 전당’인 셈이라고 하더라고요.”○ “문화는 섞어찌개 형태로 발전한다” ―중도좌파의 사회당 올랑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우파 대통령 시절과 비교해 프랑스 예술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나요. “국가 정책의 영향이 있죠. 파리는 더 이상 현대예술의 중심이 아니에요. 부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니까 ‘큰손’들이 인접 나라들로 떠났거든요. 그러면 예술은 죽어요. ‘분배의 정의’와는 별개로 예술 작품은 아무래도 부자가 사는 거거든요.” ―어떻게 해야 예술이 살아날까요. “사람을 모여들게 해야죠. 요즘 파리엔 하다못해 술주정뱅이도 잘 안 보여요. 오히려 서울 홍익대 앞이 밤새 시끌벅적하죠. 도시는 그래야 창조를 담을 수 있어요. ‘에콜 드 파리’(파리학파·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로 이주해 온 외국인 화가 집단)가 생겨났던 게 정부가 나서서 ‘자, 여기 에콜 드 파리입니다. 모여주세요’ 해서 된 게 아니잖아요. 돈이 곧 예술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경제적 여건이 예술에는 중요합니다. 요즘 영국 런던은 부자가 많이 와서 작품을 사기 때문에, 독일 베를린은 물가와 월세가 싸서 아티스트가 모여요. 이럴 때 중요한 게 나라의 경제력을 살리는 것, 아티스트가 살 길을 현실적으로 마련해 주는 거예요. 문화는 ‘섞어찌개’ 하면서 발전하는 거니까요.” ―섞어찌개라…. 재밌네요. “제가 전시하면 각국의 아티스트와 사진가들이 모이잖아요. 그렇게 자주 만나다 보면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남녀 예술가도 생기고, 한마디로 드라마가 탄생하죠. 작년에 프랑스 쇼몽 성(城)이 초청해서 ‘경주의 소나무’ 전시를 했는데, 그곳 아트 디렉터가 말하더라고요. ‘10년 전에 당신의 사진을 러시아 예르미타시(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유심히 봤었다’고. 그렇게 인연들이 꼬리를 물어 제가 해외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게 됐고, 살아남은 것 같아요.”○ “자연은 상상력의 공간으로 남겨둬야” ―제주의 오름, 섬도 찍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배병우는 소나무’로 보는 것 같습니다. “소장가들은 아무래도 소나무를 선호하네요. 사실 전 바다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배병우 소나무 에디션이 흔해졌다는 말도 들립니다. “작품은 깔릴수록 좋아요. 피카소가 일생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전 세계 미술관에 깔린 거예요. 예술도 양이 뒷받침돼야 해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려면 작품이 수천 개는 있어야 하죠.” ―인물사진 의뢰도 받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재계 인사로부터 제안받은 적이 있지만 거절했습니다. 냉면집(자연사진) 하다가 불고기집(인물사진) 할 생각이 없어요. 젊은 사람들도 한 우물을 팠으면 해요.”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요즘은 디지털 시대 아닌가요. “대세는 디지털이죠. 그런데 작년에 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이 제 사진을 소장용으로 두 점 사면서 옛날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작업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디지털은 잘못하면 싸구려 느낌이 나요. 아날로그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자연의 숨결을 나타낼 수 있죠.” ―하루 일과는 어떻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요. 하루가 길어지니까요. 예술가들은 게으를 것 같지만 실은 부지런한 사람만 살아남아요. 엊그제 이른 새벽 추자도 절벽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그게 살아 있는 것이더라고요.” ―살아 있음을 느끼는 또 다른 순간들이 있나요. “아침에 숲 속에서 눈을 뜰 때, 카메라를 들고 숲과 바다를 거닐 때.” ―역시 자연이군요. “제주는 해안일주도로가 없던 때가 전성기였어요. 경주 월성에 가보면 나무에 변압기를 달아놓고 조명으로 써요. ‘발굴병’, ‘개발병’에 걸린 것 같아요. 곧 화(禍)로 돌아올 거예요. 자연은 상상력의 공간으로 남겨 놓아야 해요. 귀중한 자연을 아무 근거 없이 고치고 개발하는 일은 이제라도 막아야 해요.” 어제 안부 문자를 보냈더니 평소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그는 카메라를 들고 경주에 갔다면서 새벽 감포 해변의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내 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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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서 소나무 사진전 배병우 씨 “서로 주고받아야 함께 발전합니다”

    한국과 프랑스는 내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2015~2016년 ‘한불 상호 교류의 해’ 행사들을 연다. ‘프랑스 내 한국의 해’가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한국 내 프랑스의 해’ 행사가 내년 1월부터 1년간 계속된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이를 계기로 처음 방한해 4일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갖는다.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행사 중 하나는 30여 년 몰두해 온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씨(65)의 사진전이다. 그는 9월 26일부터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유서 깊은 고성(古城)인 샹보르 성에서 ‘숲 속으로(D’une for¤t l‘autre)’ 전시를 열고 있다. 샹보르 성 측은 그가 찍은 경북 경주 남산과 프랑스 샹보르 숲 사진 59점을 내년 4월 10일까지 성 내부에 전시한다.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한불 130주년 사진전 ―어떻게 준비했나요. “샹보르 성 큐레이터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고 1년여 동안 샹보르 성과 경주를 오가면서 사진들을 새로 찍었습니다. 성 측은 성채 내의 작가 숙소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주었어요. 파리 면적만큼 넓고 늪지대가 많은 샹보르 숲을 찍는 데 필요할 거라면서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프랑스 루아르 계곡에 있는 여러 고성 중 하나인 샹보르 성은 프랑수아 1세가 1515년 건립을 지시해 루이 14세가 완공했다. 그 성을 찾는 하루 평균 6000여 명의 방문객이 요즘 배 씨의 사진을 관람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 반응은 어떤가요. “프랑스 관람객들이 제 샹보르 숲 사진을 보고 한국의 숲 사진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몇몇 사진을 한지에 인화했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동양 수묵화 같다면서.”―서양 평론가들이 배병우 사진은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 그림과 유사하다고 하던데요. “한국 사람들은 저를 사진에 가둬서만 설명하는 데 반해 서양 사람들은 현대미술 전반에 동양 전통을 아울러 제 사진을 설명합니다. 미술에 해박한 사람들이 많아서인가봐요. 일례로 장 오송빌 샹보르 성 대표는 19세기 프랑스 고전파 화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유명한 그림 속 인물 ‘오송빌 부인’의 손자더라고요. 엘리트 공무원 출신인데, 예술적 배경도 있습디다.”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적 토양 차이를 느끼나요. “우린 단숨에 오느라 현대예술의 전통이 짧잖아요. 나무는 100년이 돼야 나무 같아요. 최근 스페인 북부 소리아 지방의 국립공원에 갔더니 해발 2000m에 100~500년 된 소나무 밭이 있더라고요. 한국의 소나무는 대부분 100년이 안 됐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벚나무가 속성수에요. 100년이 전성기거든요. 30년 후쯤이면 우리나라 벚나무가 일본보다 멋있을 거에요. 경남 하동 섬진강변 벚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나무를 잘 기르면 되는거지 ‘벚나무는 일본 나무’라고 백안시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요. 그게 문화적 성숙도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문화적으로 100년이 되면 성숙된 힘을 가질 겁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에 나선지 지금까지 50년 됐다고 보고 앞으로 50년 노력하면 되지 않겠어요. 문화적 힘이 생겨야 다양한 예술가와 문화가 탄생합니다.” ―다른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행사도 보셨나요. “파리 국립장식미술관에서 시작된 ‘코리아 나우(Korea Now)’ 전시(9월 18일~2016년 1월 3일) 개막식에 갔더니 제 홍익대 응용미술과 70학번 동기인 최병훈(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교수)과 안상수(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장)가 전시자로 참석했더라고요. 관람객이 넘치는 국립장식미술관에서 한국 전시가 열리는 게 뿌듯했습니다. 과거 한국은 삼성 LG와 같은 기업 이미지가 우선했는데, 이젠 문화 이미지 시대가 열리고 있어요.”●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최근 조성진 씨의 쇼팽콩쿠르 우승 등으로 한국을 보는 프랑스의 시선이 달라졌나요. “전문가 사회에서 변화하는 시선이 느껴져요. 이번에 샹보르 성에서 전시하니까 파리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스타 대접을 받았어요. 조성진 씨 우승 덕도 본 셈이죠. 그동안 K팝이 한국 문화를 알렸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스포츠 문학 미술 클래식음악 등 여러 분야가 으싸으싸 하는 힘으로 새로운 것과 전통을 서로 주고받아야 발전하죠. 한불 교류가 그 바탕을 다지는 모멘텀이 됐으면 합니다. 조성진 씨가 다니는 파리 국립고등음악원도 이번에 함께 떴잖아요. 우리로 인해 파리가 다시 문화적 융성기를 맞을 수도 있죠.”―프랑스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인도 최근 2013년 빈티지 와인 라벨에 한국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이우환 화백 그림을 넣기로 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등 대가들의 작품만 들어가던 라벨이었으니 정말 대단한 일이죠. 미술계의 변방이던 한국이 요즘 ‘되는 느낌’이에요. 저도 11월 12일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리는 세계적 사진전 ‘파리 포토’에서 ‘살롱 도뇌르(귀빈실)’ 전시를 하게 됐어요. 주변에서 이 전시가 사진계의 ‘명예의 전당’인 셈이라고 하더라고요.”●“문화는 섞어찌개 형태로 발전한다” ―중도좌파의 사회당 올랑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우파 대통령 시절과 비교해 프랑스 예술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나요. “국가정책의 영향이 있죠. 파리는 더이상 현대 예술의 중심이 아니에요. 부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니까 ‘큰손’들이 인접 나라들로 떠났거든요. 그러면 예술은 죽어요. ‘분배의 정의’와는 별개로 예술 작품은 아무래도 부자가 사는 거거든요.” ―어떻게 해야 예술이 살아날까요. “사람을 모여들게 해야죠. 요즘 파리엔 하다못해 술주정뱅이도 잘 안 보여요. 오히려 서울 홍익대 앞이 밤새 시끌벅적하죠. 도시는 그래야 창조를 담을 수 있어요. ‘에콜 드 파리’(파리학파·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로 이주해 온 외국인 화가 집단)가 생겨났던 게 정부가 나서서 ‘자, 여기 에콜 드 파리입니다. 모여주세요’ 해서 된 게 아니잖아요. 돈이 곧 예술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경제적 여건이 예술에는 중요합니다. 요즘 영국 런던은 부자가 많이 와서 작품을 사기 때문에, 독일 베를린은 물가와 월세가 싸서 아티스트가 모여요. 이럴 때 중요한 게 나라의 경제력을 살리는 것, 아티스트가 살 길을 현실적으로 마련해 주는 거예요. 문화는 ‘섞어찌개’ 하면서 발전하는 거니까요.” ―섞어찌개라…. 재밌네요. “제가 전시하면 각국의 아티스트와 사진가들이 모이잖아요. 그렇게 자주 만나다 보면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남녀 예술가도 생기고, 한마디로 드라마가 탄생하죠. 작년에 프랑스 쇼몽 성(城)이 초청해서 ‘경주의 소나무’ 전시를 했는데, 그곳 아트 디렉터가 말하더라고요. ‘10년 전에 당신의 사진을 러시아 예르미타시(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유심히 봤었다’고. 그렇게 인연들이 꼬리를 물어 제가 해외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게 됐고, 살아남은 것 같아요.”●“자연은 상상력의 공간으로 남겨둬야” ―제주의 오름, 섬도 찍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배병우는 소나무’로 보는 것 같습니다. “소장가들은 아무래도 소나무를 선호하네요. 사실 전 바다 시리즈를 좋아하는데….”―배병우 소나무 에디션이 흔해졌다는 말도 들립니다. “작품은 깔릴수록 좋아요. 피카소가 일생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전 세계 미술관에 깔린 거예요. 예술도 양이 뒷받침돼야 해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려면 작품이 수천 개는 있어야 하죠.” ―인물 사진 의뢰도 받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재계 인사로부터 제안 받은 적이 있지만 거절했습니다. 냉면집 (자연사진)하다가 불고기집(인물사진) 할 생각이 없어요. 젊은 사람들도 한 우물을 팠으면 해요.”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요즘은 디지털 시대 아닌가요. “대세는 디지털이죠. 그런데 작년에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미술관이 제 사진을 소장용으로 두 점 사면서 옛날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작업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디지털은 잘못하면 싸구려 느낌이 나요. 아날로그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자연의 숨결을 나타낼 수 있죠.” ―하루 일과는 어떻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요. 하루가 길어지니까요. 예술가들은 게으를 것 같지만 실은 부지런한 사람만 살아남아요. 엊그제 추자도 절벽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그게 살아 있는 것이더라고요.”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나요. “아침에 숲 속에서 눈을 뜰 때, 카메라를 들고 숲과 바다를 거닐 때.” ―역시 자연이군요. “제주는 해안일주도로가 없던 때가 전성기였어요. 경주 월성에 가보면 나무에 변압기를 달아놓고 조명으로 써요. ‘발굴 병’, ‘개발 병’에 걸린 것 같아요. 곧 화(禍)로 돌아올 거에요. 자연은 상상력의 공간으로 남겨 놓아야 해요. 귀중한 자연을 아무 근거 없이 고치고 개발하는 일은 이제라도 막아야 해요.” 어제 안부 문자를 보냈더니 평소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그는 카메라를 들고 경주에 갔다면서 새벽 감포 해변의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내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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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자리 창조하는 청년들… 아이디어 하나로 ‘젊은 도전’

    ‘꼭 스마트폰을 저렇게 손으로 오랫동안 들고 있어야 할까?’ 정재현 ㈜마이포브 대표(31)는 2012년 지하철을 탔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주변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쥐고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불편해 보였다. 당시는 대학 졸업 후 은행에 취직했다 관둔 뒤, 통·번역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하던 때였다. 그 역시 이동할 때마다 영어 공부를 위해 스마트폰으로 영어 강연이나 미국 드라마를 틀곤 했고, 손으로 기기를 들고 시청해 왔다. 영상을 볼 땐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목걸이형 스마트폰 거치대가 있다면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 같은 장비가 없었다. 창업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일단 아이디어만 갖고 특허청을 찾아갔다. 변리사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이듬해 실용신안을 출원했다. 입시 준비와 제품 개발을 동시에 하다가 생각했다. ‘지금이 제품을 만들 타이밍이다!’○ 창업사관학교에서 꿈을 키우다 정 대표는 그렇게 대학원 진학을 접고,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지난해 입교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 창업자를 매년 선발해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총사업비의 70%에 대해 1억 원 이내의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창업 교육을 받는 한편, 사관학교 동기생들과 교류하면서 아이템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대중교통에서 어색한 기구(목걸이형 거치대)를 사용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조언했다. 야외 활동객이 목걸이형 장비를 이용해 손을 대지 않고도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면 인기 있는 제품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정 대표는 고민 끝에 스마트폰과 액션캠 등을 얹어서 스스로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는 다목적 셀프촬영 디바이스 ‘셀디’를 만들었고, 지난해 10월 ㈜마이포브를 창업했다. 창업자금은 중진공에서 5600만 원 정도를 지원받고, 일부는 기술보증기금 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조만간 크라우드펀딩(소액 투자자의 인터넷을 통한 투자)을 통해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그는 몇 년 사이에 ‘은행원’에서 ‘창업자’로 변신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오전 7시에 일어나 출근한 뒤 오후 7시 전에 퇴근했지만,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출근하고, 때로는 오전 2, 3시까지 일을 하기도 한다. 정 대표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할 때는 굉장히 무료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몸은 힘들어도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창업은 마치 게임을 진행하는 것 같아요. 구상부터 제품 출시까지 각 단계가 넘어갈 때마다 게임의 미션을 완수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재미있더라고요.” ○ 기업 키운다는 포부로 어려움도 견뎌 중소기업청이 이달 발표한 ‘창업기업 실태조사’(2012년 기준, 창업 7년 이내 기업)에 따르면 창업자 166만1481명 중 20대(2만2817명)와 30대(24만3275명)는 16%를 차지한다. 특히 20대는 1.4%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제조업 창업은 아이디어 구상도 어렵지만 자본금도 많이 들고 시장 개척도 쉽지 않아 20대 청년에게는 만만찮은 도전이다. 크기 조절이 가능한 저장용기를 만드는 ㈜퍼즐락의 박현진 대표(26)는 25세이던 지난해 5월 회사를 설립했다. 2012년 대학에서 ‘창업론’이라는 수업을 듣다가 생활밀착형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에 이색 저장용기를 구상하게 됐고, 2013년 한 방송사에서 진행한 발명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지난해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해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했다. 제조업 창업은 쉽지 않았다. 우선 자본금이 많이 들었다. ‘안 먹고, 안 쓰면서’ 돈을 모았고, 중진공에서 지원받은 5600만 원가량을 포함해 총 1억 원 남짓을 창업자금으로 지출했다. 박 대표는 “돈만 벌 생각으로 시작하면 못 버틴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일확천금을 얻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제 자신보다는 제가 키우는 기업이 부자가 되는 게 목표예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 우리 가족도 안심하고 만족하며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동안 회사에 취업할 기회가 있었고 괜찮은 회사에 들어갈 자신도 있었다. 주변에도 창업을 한 친구가 거의 없었지만, 고민 끝에 창업을 택했다. 조만간 제품 출시를 앞둔 가운데, 나이 많은 거래처 임직원들을 만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무시를 당한 적도 많았고, 부당한 납품가격을 제시받기도 했다. 제조업 분야에서 쓰는 전문용어와 현장에서 쓰는 일본식 표현도 몰라서 일일이 몸으로 부딪치면서 업무를 익혀야 했다. 박 대표는 “자신만의 일을 주도적으로 하다 보면 며칠 동안 밤을 새워도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제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생각해요.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사업을 키워 나갈 겁니다.”특별취재팀▽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장윤정 박민우 김준일(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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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振公 창업사관학교, 사업자금 최대 1억원 지원

    청년들은 창업을 하고 싶은 열정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절차도 잘 모르고, 자본금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는 이런 청년들을 위해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는 만 39세 이하의 예비 창업자 및 창업 후 3년 미만인 사람을 매년 선발해 창업 전반을 지원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와 연계해 시장 분석부터 디자인, 시제품 검증, 시장 창출까지 사업 단계별로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는 △창업법규 △노무인사 △디자인 △연구개발(R&D) △지식재산권 △마케팅 등 15개 분야 외부 전문가 풀을 갖추고 창업 과정의 애로사항에 대한 조언도 제공하고 있다. 창업에 필요한 사업비의 70% 이내에서 최대 1억 원의 보조금도 준다. 청년창업사관학교는 2011년 1기생을 선발한 뒤 최근 4년간 청년 CEO 963명을 배출했다. 이들은 총매출 2591억 원에 3998명의 일자리를 만드는 한편 지식재산권 1428건을 등록했다. 서류와 면접 등을 통해 창업에 열의가 있는 사람을 선발하고 탄탄한 교육시스템을 운영한 것이 좋은 성과를 낸 배경이라고 청년창업사관학교 측은 설명한다.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는 2회 중간평가를 통해 기준에 미달한 사람은 중도에 퇴교 절차를 밟고, 우수 졸업자에겐 1년간 1억 원 이내의 추가 지원을 해준다. 중진공은 우수한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창업자에게 ‘청년전용 창업자금’도 융자해주고 있다. 기업당 1억 원 이내로 2.7% 고정금리를 적용하며, 융자기간은 5년 이내다. 융자 신청자는 서류심사를 통과하면 사업계획서 작성 교육과 컨설팅을 받고, ‘청년창업지원 심의위원회’의 공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후 경영실무 및 창업에 대한 교육을 받고 사업계획서에 대해 심화 멘토링을 받은 뒤 창업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중진공은 사업계획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대출금 사용 내역을 점검하는 한편 컨설팅 등 사후관리도 실시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청년들이 전통시장에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시장 내 빈 점포를 활용해 만 39세 이하 청년 상인을 육성하길 희망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창업 지원에 필요한 비용(점포 한 곳당 2500만 원 이내)을 1년간 지원한다. 창업 교육비, 임차료, 인테리어, 컨설팅, 홍보·마케팅비 등이 지원 대상이다. 공단에서는 청년들에게 전통시장 창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청년 상인 아카데미’도 운영한다. 상권 분석, 창업자금 준비, 경영 및 마케팅 기법 등 창업 전반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특별취재팀▽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장윤정 박민우 김준일(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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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력단절 없이 일-육아 둘다… 되찾은 가족과의 저녁

    2008년 결혼한 문진석 한국한의학연구원 선임연구원(34)은 7년간 ‘기러기 엄마’였다. 두 딸은 부산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남편이 맡았고, 문 연구원은 대전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주말에만 부산에 머물렀다. 다행히 올해 8월부터 주 30시간만 일하는 시간제로 전환하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일단 수요일은 아예 쉬는 날로 정했다. 월, 목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화, 금요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한 뒤 부산으로 간다. 화요일 저녁부터 수요일까지,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내내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문 연구원은 “그동안 여기저기 눈치를 보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었다”며 “경력 단절 없이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문 연구원은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다시 전일제로 전환해 연구에 좀 더 집중할 계획이다.○ 전일제와 시간제의 ‘하이브리드’ 정부는 올해부터 ‘전환형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환형 시간제란 육아, 학업 등 개인의 필요에 따라 전일제를 시간제로 전환하고, 본인이 희망하면 다시 전일제로 전환하는 ‘하이브리드형 일자리’다. 급여는 근로시간에 비례해서 지급되지만 엄연한 정규직이기 때문에 수당, 복지혜택 등은 전일제와 동일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남기원 선임연구원(35)은 나로호 발사 성공의 주역이지만 딸(8)과 아들(5)에게는 주역이 되지 못했다. 발사체 구조를 설계하고 시험하는 업무를 맡다 보니 출장이 잦았고, 두 아이의 육아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맡았다. 나로호 발사 성공에 대한 책임감과 경력 단절 우려 때문에 휴직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했다. 결국 지난해 2월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했다. 휴직 기간 동안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연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남 연구원의 이런 고민을 한번에 해결해준 것이 바로 전환형 시간제였다. 올해 3월 복귀를 앞두고 남 연구원은 한 주에 25시간만 일하는 시간제로 전환했다. 시간제로 전환한 뒤 가장 큰 변화는 ‘저녁’이었다. 과거에는 가족들이 모두 저녁을 따로 먹고 잠만 같이 잤다. 그러나 요즘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모든 가족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시간제로 가족의 저녁을 돌려받은 것이다. 남 연구원은 “경력 단절과 육아 스트레스가 한번에 해결된 것은 물론이고 저녁의 소중함도 깨달았다”며 “급여가 다소 줄었지만 육아도우미를 쓰던 돈을 아낄 수 있어 오히려 이득”이라고 말했다.○ 근로자와 기업 모두에 ‘윈윈’ 신규로 만드는 시간제 일자리는 업무 강도가 낮은 직무가 많다.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이라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도 크고, 정규직보다 근로조건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전환형 시간제는 기존 일자리를 활용하기 때문에 기업의 부담이 적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다. 사업주 입장에서도 숙련 인력을 경력단절 없이 오래 고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총괄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강건용 경영본부장은 “과학기술 연구자의 휴직과 이직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연구기관은 창의성이 중요한 만큼 전환형 시간제 적용 범위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구회 산하 연구기관 25곳 가운데 21곳이 전환형 시간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전환형 시간제가 정착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조직문화와 동료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육아 목적으로 올해 7월부터 하루 4시간(주 20시간) 근무로 전환한 한영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37)은 “같은 팀원이 시간제로 전환하면 다른 팀원들의 업무량이 늘어나기 마련”이라며 “동료들의 협조와 지원이 없었다면 마음 놓고 시간제로 전환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연구원 역시 내년 초부터 전일제로 다시 전환해 동료들에게 진 빚을 갚을 예정이다. 나영돈 고용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은 “독일 네덜란드 등 노동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은 전환형 시간제를 통해 고용률을 높였다”며 “전환형 시간제가 널리 보급되면 일·가정 양립을 통해 저출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정부 장려금 지급 이후 시간제 전환 늘어 ▼근로자 1인당 月12만∼20만원 지원… 대체인력 채용시 인건비도 보조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면서 일자리의 질도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시간선택제가 확실히 정착되고, 고용률도 더 상승하려면 ‘전환형 모델’이 확산돼야 한다고 보고 정책 역량을 전환형에 집중할 계획이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2년 33.8%에 불과했던 시간제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이 지난해에는 58.4%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년 사이 24.6%포인트나 증가한 것. 시간제 근로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6개월 이상 일하다 퇴직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같은 기간 시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대비 시간당 임금 비율도 67.3%에서 73.5%로 6.2%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올라감과 동시에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도 점차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용부는 올해부터 전환형 시간제를 도입한 기업에 전환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전일제에서 주 15∼25시간으로 전환한 근로자에게는 1인당 월 20만 원을 1년간 지원하고, 주 25∼30시간으로 전환한 근로자는 1년간 월 12만 원을 정액으로 지급한다. 기존에는 전일제를 시간제로 전환하고, 사업주가 추가 부담하게 된 비용이 있어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근로자 1인당 일정금액을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제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또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장려금을 먼저 지급한 뒤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수령토록 해 사업주가 중간에서 정부 지원금을 가로채는 일이 없도록 했다. 정부는 또 근로자를 고용할 때 발생하는 간접노무비(건강보험료, 산재보험료 등)도 전환형 시간제 근로자 1인당 월 2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다만 지원 대상을 중소, 중견기업으로 한정했다. 특히 기업이 시간제로 전환한 근로자의 대체 인력을 채용할 경우 중소, 중견기업은 대체 인력 인건비의 50%(월 60만 원 한도)까지 1년간 지원받는다. 대기업도 대체 인력 인건비의 50%까지 월 30만 원 한도로 1년간 지원받을 수 있다. 시간제 전환으로 생긴 일손 부족을 해결하고,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조치다. 정부가 전환형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지원사업을 올해부터 본격 시작한 결과 지난달 말까지 총 442개 기업에서 183명의 근로자가 시간제로 전환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아직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시기”라며 “시간제를 신규 채용한 기업들이 전환형을 함께 도입하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장윤정 박민우 김준일(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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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선미]시월의 멋진 날, 다시 일자리 만나기

    영화 ‘인턴’에 나온 70세 인턴 ‘벤’(배우 로버트 드니로)은 인간으로도, 남자로도 멋있었다. 한 온라인쇼핑몰 회사가 사회공헌으로 뽑은 시니어(노년) 인턴에 용기 있게 도전한 것이다. 그는 입사 이후 늘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해 30세 여사장과 젊은 직원들의 업무를 돕는다. 인생 상담도 해 준다. 은퇴 전 직장에서 부사장까지 지냈는데도 “내가 왕년에…”라는 뻣뻣한 태도가 없다. 이 회사에서 남녀노소 직원이 서로를 이해하며 각자의 부족한 점을 메우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 70세 인턴은 정규직이 아니다. 그런데 재취업하려는 중장년이 인턴 자리 하나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동아일보는 10월 22,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5 리스타트 잡페어―다시 일하는 기쁨!’을 연다. 중장년층, 경력 단절 여성, 청년층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소개한다. 이 박람회가 소개하는 일자리 중 상당수는 최근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드는 주역인 ‘시간선택제 일자리’다. 원하는 시간대에 일하면서도 4대 보험 혜택 등 정규직과 비교해 차별받지 않는다. ‘소수가 장시간 일하는 사회’에서 ‘다수가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회’가 되는 길이다. 육아와 병행할 수 있어 여성 근로자의 호응이 크고, 업무 효율이 높아져 기업의 만족도도 높다고 한다. 다니던 직장을 관뒀다가 최근 시간선택제로 입사해 낮 12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일하는 한 30대 여성은 “아기가 잠잘 때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마음이 짠해졌다. 며칠 전 친정엄마는 바쁜 나를 대신해 미장원에 데려갔다 왔다며 한껏 훤해진 세 살배기 아들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명문대를 나오고 아이 키우느라 직장을 관뒀던 내 친구들은 “나도 다시 일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이 박람회 실무를 맡아 일하면서 이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60대 중소기업 임원 A 씨, 40대 대기업 부장 B 씨와 은퇴 후 리스타트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친구들과 만나면 은퇴 후 일자리보다 ‘일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요. 제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프로젝트 단위로 맡아 일하는 게 기업이나 저나 부담이 덜할 것 같아요.”(A 씨) “‘리스타트’할 기회가 있다면 과거 비슷한 일을 했어도 신입의 자세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 후배들이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언하겠어요.”(B 씨) 다시 70세 인턴 이야기. 아내와 사별한 그는 사랑도 ‘리스타트’한다. 새 직장의 마사지사로 일하는 어느 ‘돌싱’ 할머니를 만난다. 중장년 남성들은 말했다. “그 나이에 상대의 과거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지금 마음이 맞으면, 편안하면 되는 거죠.” 리스타트하려면 편안하고 너그러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대개의 중장년층 남성은 ‘과거의 나’에 얽매여서, 혹은 수입이 크게 줄어드는 게 두려워서 전일제 일자리만을 고집하다가 재취업이 어렵다고 한다. 70세 인턴은 말했다. “뮤지션에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엔 아직도 음악이 남아 있어요.”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아직도 음악이 들리나요. 그렇다면 10월의 어느 멋진 날 일자리 미팅을 나와 보시죠. 그럼 다음 주 목요일 광화문광장에서 뵙겠습니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1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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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 12시 등장하는 ‘큰언니 지원군’… 은행 창구가 환해져요

    국내 한 카드사에서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던 6년 차 직장인 김모 씨(30)는 2013년 출산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뒀다. 전문계약직으로 근무하던 그는 마침 정규직 전환 시점이 출산과 맞물렸다. 김 씨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일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곧 출산하면 육아휴직도 해야 할 텐데…. 정규직 전환은 힘들 것 같다”는 회사 측의 말을 듣고 마음을 접어야 했다. 출산으로 직장을 포기해야 했던 김 씨는 지금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슈퍼맘’이 됐다. 신한은행에서 도입한 시간선택제 덕분이다. 지난해 6월 신한은행에 입사한 김 씨는 낮 12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영업점 창구에서 일한다. 연봉은 1600만 원 남짓.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다른 전일제 행원들과 마찬가지로 정규직이라는 점이다. 김 씨는 “다른 직장에 조건이 좋은 전일제 일자리가 있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다”며 “다른 ‘직장맘’처럼 이른 새벽에 잠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건 이제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 금융권에서 일하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던 여성들이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시간선택제 근무를 속속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슈퍼맘’ 지원하는 은행들 신한은행은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시간선택제를 가장 먼저 도입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1년 여성 행원들의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도입했다. 육아휴직(2년) 중에 복귀를 원할 경우 남은 휴직 기간을 시간선택제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일제 근무로 연착륙하기 위한 일종의 적응기간이다. 현재 신한은행에서는 180명이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이용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또 2013년 아예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새로 뽑는 ‘신규형’을 도입했다. 시간제 소매서비스(RS) 직군인 이들은 총 351명으로 모두 정규직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시간선택제를 도입함으로써 직원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확보하고 바쁜 업무 시간대에 고객 편의도 높일 수 있었다”며 “근무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점차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도 시간선택제 근로자 고용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기업은행은 2013년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뒤 총 248명을 고용했다. 신한은행과 마찬가지로 복지와 정년이 보장되는 사실상 정규직이다. 대부분 영업점 창구에서 근무하는 타행 시간선택제 근로자와 달리 기업은행의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은 전일제 행원과 동일하게 본점 등 다양한 직군에서 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해 기업은행에 시간선택제로 입사한 유모 씨(43)는 과거 8년 동안 은행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육아로 13년간 경력이 단절됐던 그는 “자녀가 중학생이 되니까 사회생활에 대한 미련이 생기더라”고 밝혔다. 유 씨는 오랫동안 전업주부 생활을 한 것이 고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한번은 불같이 화를 내는 고객이 있었다. 만약 신입직원이었다면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을 텐데 제 또래 여성이었다”며 “차분히 들어주고 공감을 해주니 결국 소통이 됐다”고 말했다. 경단녀이기 때문에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시간선택제 고용 확대해야 신한은행과 기업은행뿐만 아니라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도 시간선택제를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우리은행은 370명을 채용했고, 올해 추가로 130명을 뽑을 예정이다. 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1∼6월) 공채에서 시간선택제 200명을 채용했고, 현재 진행 중인 하반기(7∼12월) 공채에서도 비슷한 규모로 채용할 예정이다. 다만 이들 은행에서 뽑는 시간선택제의 근무 기간은 모두 2년이다. 올해 한 시중은행에 시간선택제로 입사한 박모 씨(42)는 “새 삶을 되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육아휴직 중이었던 그는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식에 회사를 그만뒀다가 18년 만에 직장인으로 복귀한 셈이다. 하지만 박 씨는 이 생활이 짧은 꿈으로 끝나진 않을까 불안하다. 함께 입사한 동기 가운데 2년 뒤 누가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고용이 보장되는 질 좋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은행권이 먼저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내년 7월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의 고용 연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 무기한 시간선택제를 도입하지 못했지만 경영지표가 나아지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며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장윤정 박민우 김준일(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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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고객 입장 잘 아는 ‘엄마’들이라 민원처리 능숙”

    “전업주부로 살면서 ‘동남아(동네에 남아있는 아줌마)’로 불릴 때마다 직장생활을 꿈꿨다는 직원이 다시 일을 하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하더군요. 시간선택제 직원들은 비록 직장생활은 잠시 쉬었지만 육아와 사회봉사 등 다양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들이 은행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은행권 최초로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IBK기업은행은 2013년 109명, 2014년 69명에 이어 올해도 70명의 경력단절 여성을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채용했다. 기업은행이 경쟁 은행들에 앞서 적극적으로 시간선택제를 확대하고 나선 데는 여성 은행장인 권선주 행장(사진)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다. 권 행장은 “출산과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는 데 기업은행이 기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마침 점심시간 등 특정 시간대에 집중되는 고객 응대를 위해 일손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기업은행의 시간선택제 직원들은 현재 창구 텔러, 전화상담, 사무지원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채용 후 전산이나 금융상품 등에 관한 실무교육을 받고 자택 인근의 영업점과 고객센터 등에 배치돼 일과 중 가장 바쁜 시간대에 하루 4시간 동안 반일제로 일한다. 특히 기업은행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며 복리후생 혜택도 동일하게 받을 수 있어 구직 여성들의 인기가 높다. 은행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권 행장은 3년간의 시간선택제 운영에 ‘합격점’을 주고 있다. 권 행장은 “시간선택제 직원들은 직원과 고객 입장을 모두 경험해본 이들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가능하다”며 “고객들에게 유연하게 응대하며 다양한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풍부한 인생 경험을 가진 ‘맏언니’들이 영업점에 배치돼 어린 직원들에게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초반에는 이들이 조직에 잘 어우러질 수 있을지 우려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조직 융화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도입해 이를 보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은행은 채용 후 3주간의 단체연수 및 1주간의 재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앞으로도 시간선택제 직원 채용을 이어갈 계획이다. 권 행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해 시간선택제 운영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한편 수요를 조사해 시간선택제 직원 채용에 나설 것”이라며 “시간선택제가 제대로 정착되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선택제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데도 적극 노력할 방침이다. 시간선택제 직원들은 업무에 대해서는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으나 다른 직원과 출퇴근시간이 달라 동료와의 소통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기업은행은 전 직원이 서로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체육·문화행사를 매년 상·하반기 2회 개최할 예정이다. 특별취재팀▽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장윤정 박민우 김준일(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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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미 기자의 談담]“아프리카 자립 이끌 마을 지도자, 이 닭들로 키울 겁니다”

    《 강원 원주의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의 엄격한 정신교육이 지긋지긋했다. 매끼 밥을 먹을 때엔 구호를 외쳐야 했다. ‘먹기 위하여 먹지 말고 일하기 위하여 먹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자, 음식 한 끼에 반드시 네 시간씩 일하고 먹자.’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된 가나안농군학교 창설자 일가(一家) 김용기 선생(1909∼1988)의 손자이자, 원주 가나안농군학교 김범일 교장(80)의 차남인 김장생 연세대 원주캠퍼스 교양학부 교수(41). 2일 그를 만나러 원주 가나안농군학교에 다녀왔다. 2008년 이곳에 가나안 세계지도자 교육원을 세운 그는 “빈국(貧國)에 대한 맹목적 원조는 자립을 막는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일군 가나안농군학교 모델을 아프리카에 심겠다”고 말했다.》 원조 중독에 빠진 아프리카―태어난 집으로 돌아왔네요. “어려서는 남들도 아버지처럼 새벽에 한 시간씩 산길을 뛰고 낮에 고구마 캐면서 사는 줄 알았어요. 전 중학교 때부터 외지에서 살면서 다시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결국 돌아왔네요.” 그는 서울 감리교신학대를 나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성 어거스틴의 고통에 대하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종교철학)를 받고 2006년 귀국할 때만 해도 가나안농군학교에 뜻이 없었다. 성장기에 받은 강도 높은 교육에 질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2007년 아버지의 부탁으로 이 학교 국제 콘퍼런스에서 통역을 하다가 우간다에 가본 것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마실 물을 뜨러 꼬마들은 노란 물통을 들고 6시간을 걸었다. ―그때는 한 번만 통역으로 일하고 끝내자는 생각이었나 보군요.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아프리카에 가보니 그동안 제 삶의 궤적들이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았어요. 집안 배경, 고통에 대한 공부…. 전 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비전이 생겨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프리카를 46번 다녀왔어요.” ―아프리카에 가선 뭘 했나요. “신혼 초기 아내를 설득해 혼자 우간다에 가서 1년 가까이 살다 왔어요. 우간다 정부로부터 ‘선진국 원조공여 평가’ 프로젝트를 맡아 일하면서 깨달았어요. 돈을 주는 사람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너무나 모른다는 걸요. 그래서 시골로 갔어요. 풍토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가 많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물은 어디에서 뜨는지, 친족 관계는 어떤지 알게 됐어요. 그들은 1달러짜리 말라리아 약을 살 돈이 없어 무당을 찾아가요. 물론 대부분 못 고치고 죽죠. 그때 제 방향이 분명해졌어요.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소득을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지도자를 길러내 그들의 ‘원조 중독’을 끊어야겠더라고요.” ―원조 중독이라고요. “갈 때마다 아프리카가 새롭게 보였어요. 처음엔 국가, 다음엔 부족, 그리고 씨족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국가(國歌)는 몰라도 씨족 노래는 알아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씨족이 구성하거든요. 그런데 오랫동안 가난했던 아프리카는 원조를 안 받아본 곳이 거의 없어요. 마사이족도 외국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당신은 뭘 줄 수 있는가’ 물어요. 그런데 선진국이 아프리카에 모기장을 계속 갖다 주니까 현지 모기장 사업자는 망해요. 그게 원조의 역설이에요. 가서 같이 살면서 마을에서 한 사람이라도 변화시켜야 했어요. 바로 그게 할아버지, 아버지가 해온 가나안농군학교 교육이더라고요.” 가나안농군학교는 1954년 김 교수의 할아버지인 김용기 선생이 구국·농민운동을 목표로 당시 경기 광주군 풍산리의 3000여 m² 땅을 개간해 가나안농장을 세운 데에서 출발해 1962년 설립됐다. 김용기 선생은 1966년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 1973년 제1회 인촌문화상을 받았다.해외 12곳에 가나안농군학교 설립 김 교수의 아버지 김범일 원주 가나안농군학교(1973년 개교) 교장도 이날 인터뷰에 동석했다. 김 교장은 오래된 트럼펫을 꺼내 연주해 주었다. 농민들을 오전 5시에 깨워 근로 봉사 희생의 지도자로 길러냈던 그 트럼펫이었다. 경기 양평 가나안농군학교와 원주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지금까지 기업체 임직원, 학생 등 72만 명이 정신교육을 받았다.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해외에 12곳의 가나안농군학교가 세워져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변화가 있습니까.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정신·영농교육을 받은 아프리카인들이 요즘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합니다. ‘너 한국 다녀오더니 미친 것 같아.’ 100명 중 한두 명은 아프리카에 돌아가 여기에서 배운 걸 똑같이 합니다. 일례로 우간다는 길버트 부케냐 전 부통령부터 농민까지 180명이 배우고 갔어요. 이 나라 카치리 마을에서 온 한 청년은 2008년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배운 뒤 고향으로 돌아가 마을 사람들과 오전 5시에 일어나 뛰고, 양계협동조합과 마을은행을 만들었어요. 한 사람이 활력을 얻어 변하니까 지역사회 전체가 변하더라고요.” 가나안농군학교 본관 맞은편, 가나안 세계지도자 교육원 2층의 외국인 교육생을 위한 카페에 김 교수와 마주 앉았다. 교장실과 달리 현대적 느낌이 났다. “가건물이던 직원 숙소를 지난해 새로 지으면서 아버지와 갈등이 많았어요. 아버지는 이곳 직원들은 순교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저는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은 왜 예전보다 좀 더 편한 데서 살면 안 되느냐고 했죠. 이 카페도 아버지는 못마땅해했어요.” 아버지와 아들은 그래도 동병상련이다. 김 교장은 아버지의 혹독한 정신교육에 지쳐 17세 때 가출한 적이 있다. 김 교수도 원주 가나안농군학교에서 태어나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생활이 힘겨웠다. 그런데 이 철저한 생활화 프로그램이 둘의 개척자 인생을 이끌게 됐다. ―아프리카 원조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선진국이 아프리카에 투입한 돈이 6000조 원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계속 가난해요. 한국 정부는 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각종 공사를 통해 돕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정부들이 취약해요. 한국도 원조의 역사가 짧다보니 이 정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하고요. 국가기관 사람들이 자주 바뀌니까 아프리카의 씨족 단위 현상에 대한 이해도 힘들어요. 빨리 실적을 내야 하니까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드는 데에만 치중하죠. 또 요즘 중국이 아프리카에 ‘돈 폭탄’을 떨어뜨리니까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른 나라들에 ‘이것밖에 안 주느냐’고 큰소리를 치기도 해요.” ―비정부기구(NGO)들도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습니까. “민간 차원의 원조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보이게 해야 NGO도 할 일이 많아지니까요. 그러다 보니 원조기구가 빈곤과 싸우는 주인공이 돼 현지인들을 소외시키고 손만 벌리게 한 측면도 있어요. 또 기부자들은 자신의 돈이 곧바로 굶어 죽는 아이들이 먹을 빵으로 직결되길 원합니다. 아프리카 수혜자들이 스스로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자꾸 원조에 기대는 원조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겁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군요.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는 물고기 잡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에요. 이미 방법을 아는데, 거센 풍랑과 싸우며 바다로 나갈 의지가 없어요. 땀 흘려 농사짓는 것보다 서방 언론에 슬픈 표정을 지으면 훨씬 손쉽게 돈을 만질 수 있으니까요. 가나안농군학교가 하는 일은 어부들을 바다로 나가게 해서 물고기를 잡게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죠.”2000마리로 늘려 年60명 교육 김 교수는 가나안농군학교 양계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닭 800마리가 햇볕이 내리쬐는 농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김 교수는 국내 양계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항생제를 먹이지 않고 건강한 닭을 키우기 때문에 ‘정직한 계란’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프리카 지원 기금을 마련하고 양계를 자립 재원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이 달걀은 다음 달 초부터 판매된다. ―왜 양계사업인가요. “제 목표는 닭 2000마리를 키우는 것이고, 잘하면 하루 1500개의 달걀이 나올 수 있습니다. 1년에 아프리카 지도자 60명을 키울 수 있는 수익이 생겨요. 후원에만 의존해서는 50년 후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건강한 달걀을 먹는다는 마음으로 이 달걀을 사주면 좋겠네요. 수익금 사용처는 투명하게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가나안농군학교가 시대와 맞지 않는 점은 없나요. “이제 한국의 굶주림 문제는 해결됐으니 국가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개개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화하지를 못했어요. 페이스북으로 소통하는 글로벌 젊은 세대를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산업구조가 고도화하면서 국내에서는 가나안농군학교의 억척스러움을 적용할 곳이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서 이 학교 창설자의 3대손인 김장생 교수는 가나안의 신념을 60년 전의 우리와 비슷한 빈곤국들에 심으려 한다. “지금 당장 아프리카를 변화시키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씨를 뿌려야 합니다. 10년, 20년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보고 일합니다.”―원주에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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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터로 돌아온 독일의 경단녀… 가정도 나라도 행복

    기자가 최근 방문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상공회의소(IHK). 프랑크푸르트 지역 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다. 라인하르트 프롤리히 IHK 홍보국장은 “1980년대 이후 여성 노동자들을 뒤늦게나마 일터로 끌어들인 것은 독일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현재는 일할 수 있는 여성의 70%가 직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여성의 노동력 비중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 IHK도 직원 200여 명 가운데 여성이 110여 명으로 남성보다 더 많다. 특히 여성 직원 중 절반 정도는 ‘일주일에 3일’이나 ‘매일 오전 4시간’ 등의 시간선택제로 일하고 있다. 프롤리히 국장은 “프랑크푸르트 시내 임대료는 독일에서도 매우 비싼 편”이라며 “재택근무 비율도 높아져 사무 공간 활용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노동 유연성이 뒷받침한 경제성장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추진한 ‘하르츠 개혁’은 10여 년이 지난 현재 한국을 포함한 각국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성공적인 노동개혁으로 평가된다. 페터 하르츠 박사를 위원장으로 재계, 학계, 정계, 노동계, 기타 등 각 부문 전문가들이 모인 ‘하르츠 위원회’(15명)는 실업자 감축을 위해 고용형태 유연화 및 다변화를 추진했다. 고용안정을 보장받는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고, 인력파견 회사와 계약해 임시직을 활용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점차 사회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여성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늘어나자 대거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또 과거엔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던 여성들도 근무시간 조정을 통해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지난달 14일 독일 함부르크의 물류회사 하르트로트에서 만난 아니타 마이스 씨(37)가 그런 경우였다. 2013년 자녀를 출산한 마이스 씨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지난해 초 복귀하면서 주당 25시간만 일하는 시간선택제로 전환했다. 그는 “육아에 전념하고도 싶었지만 새로 집을 장만하느라 경제적 부담이 커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기로 했다”며 “또래 친구들도 대부분이 전일근무에서 시간선택제로 전환해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 내 고용률(15∼65세 기준)은 2003년 47.9%였지만 하르츠 개혁의 효과에 힘입어 2008년 50%대로 올라섰다. 이후에도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고용률은 55.8%에 이르렀다. 2005년 11%가 넘었던 실업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막스 콘제미우스 독일연방고용주협회(BDA) 사회정책 담당자는 “고용주들도 자꾸 사람이 바뀌어서 생산성이 낮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일하는 시간을 줄이더라도 기존 직원들을 그대로 남겨두기 위해 기업들이 시간선택제 정책에 적극 동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선택제로 행복감도 상승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가장 행복감이 높은 나라로 꼽힌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그 이유를 ‘높은 시간선택제 비율’에서 찾기도 했다. 실제 네덜란드는 전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시간선택제로 일하고 있다. 특히 여성은 70% 이상이 시간선택제 직이다. 네덜란드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여성 고용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1996년에는 ‘근로시간에 따른 차별 금지법’도 제정했다. 실제 총 인구가 1700만 명인 네덜란드에서 1995년 이후 10년간 늘어난 시간선택제 일자리만 50만 개에 달했다. 네덜란드는 이것도 모자라 2008∼2009년 무렵 정부 주도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파트타임 플러스’라는 캠페인을 추가로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급증하고 있는 산업은 헬스케어와 교육 등이다. 주로 여성들이 많이 필요로 하는 산업들이다. 특히 인구 전체의 고령화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헬스케어 산업은 네덜란드 내에서 급성장 중이다. 네덜란드 대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MKB의 톤 스훈마에커르스 인사정책 담당자는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면서 청년들 사이에서도 시간선택제에 대한 편견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며 “현재 25세 미만의 젊은 취업자 중 70%가 시간선택제 근무일 정도”라고 말했다.○ 시간선택제 확대가 남긴 과제 최근 네덜란드, 독일 등 시간선택제 비율이 높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비차별적 승진이 주요한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시간선택제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지 길게는 20년, 짧게는 10년이 넘어가면서 공통적으로 직면하게 된 문제다. 각 나라는 전일근무와 시간선택제 간 차별을 줄여 많은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직원들을 관리자 등급으로 승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보기술(IT) 등 전문 분야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일반 사무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스훈마에커르스 MKB 인사정책 담당자는 “유럽연합(EU)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에 일정 비율 이상의 여성 임원을 쓰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까지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 출산 육아기엔 단축 근무… 아이 자라면 다시 전일제 ▼노사가 만든 스웨덴의 유연근로… 근로자 여건따라 자유롭게 선택스웨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성 고용률(지난해 발표 기준)이 82.5%로 가장 높다.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 역시 1.92명으로 2명에 육박한다. 출산과 육아는 물론이고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가와 기업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다. 스웨덴 근로자들은 대부분 ‘유연근무’로 일한다. 학업과 육아 등 개인의 여건과 상황에 따라 전일제와 시간제 근무를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형태다. 전일제와 시간제 근로라는 개념이 엄격히 구분되지도 않는다. 본인 희망에 따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스웨덴 최대 은행인 SEB는 이 같은 유연근무제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전일제 직원도 학업, 간병, 육아, 출산 등 개인 사정에 따라 특정 요일에는 단시간 근로를 하고, 다른 요일에는 장시간 근로를 할 수 있다. 주당 근로시간(38.5시간) 내에서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은 물론 남성도 부인의 출산과 육아기에 단축 근무를 할 수 있고 또 본인 희망에 따라 언제든지 전일제 근무로 전환할 수 있다. 일단 전일제 근로자로 입사한 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시간제 근로로 전환하고, 아이가 자라면 다시 전일제로 복귀했다가 정년이 가까워지면 다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근로자가 대부분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급여는 국가가 보충해 주고, 은퇴 이후에도 다양한 사회복지제도와 연금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이런 근무 형태가 자리 잡다 보니 굳이 정부가 나서서 ‘노동 개혁’을 선도하거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SEB는 여성 근로자의 비율이 54%로 남성보다 높다. 특히 여성뿐만 아니라 고령 직원들에게도 유연근무제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스웨덴의 유연근무제는 고용의 유연성보다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목표 아래 도입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정부가 밀어붙였거나,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도 아니다. 노사가 수십 년간 대립하고 협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겪은 뒤 자발적으로 규범을 만들어 냈고, 정부가 이를 측면 지원하면서 구축해 온 것이다. 배규식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노사의 자발적 참여와 합의 하에 노동시장의 규범을 공동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업과 노조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역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박민우(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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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사율 20% → 4% 뚝… 그 회사의 비결은

    8일 낮 대구 북구의 어린이 직업 체험 테마파크 ‘리틀소시움’. 빨간색 모자를 쓴 박창경 씨(37·여)가 베이커리 부스에서 10여 명의 초등학생과 파이를 굽고 있었다. 박 씨는 결혼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가 8년 만인 올해 4월 이 회사의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재취업했다. 박 씨는 “오전에는 4세, 9세인 두 아이 등교시키고 낮 12시 반에 출근해 오후 6시 반까지 일한다”며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리틀소시움은 전체 직원(170명) 중 약 40%인 67명이 시간선택제 근로자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가 3년 차에 접어들며 결실을 거두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이 제도를 도입한 기업 300곳을 조사한 결과 ‘만족한다’고 답한 기업이 전체의 80.7%였다. 고용노동부의 시간선택제 인건비 지원(1년간 직원 급여의 절반 지원) 혜택을 받은 인원은 8월 말 현재 1만6888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60% 늘었다. 리틀소시움을 운영하는 ㈜캥거루리퍼블릭은 20%에 육박하던 퇴사율(올해 4월)이 제도 시행 6개월 만인 이달 현재 4.28%로 떨어졌다. 이 회사 김태준 경영지원본부장은 “예상외로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여성, 중장년층을 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과 청년층 일자리 마련을 위해 22,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5 리스타트 잡페어-다시 일하는 기쁨!’ 박람회를 연다. 대기업과 공기업, 정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가 참가해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박민우(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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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한 시간 택해 일하니 업무에 더 집중… 생산성도 쑥쑥”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보우테크는 올해 4월 직원 11명을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전환시켰다. 지난해 10월 시간선택제로 신규 채용한 2명까지, 이 회사에서는 전체 직원 35명 중 3분의 1이 넘는 13명이 시간선택제로 일한다. 이 중 11명이 남자다.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이유가 단지 여성의 육아에 국한된 건 아니라는 뜻이다. 거북목 증상이나 허리디스크 등 질병 치료를 위해 혹은 가족 간병을 위해 시간선택제를 택한 사람도 있다. 이 회사를 보면 시간선택제는 직원의 만족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이득이다. 이창학 보우테크 대표는 “사실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면 매 시간 업무에 집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시간선택제는 본인이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효율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시간선택제 근로자의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1년의 기간이 끝나도 제도를 계속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보우테크처럼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채용하거나 기존 근로자를 전환시킨 기업 20곳을 대상으로 시간선택제가 가져온 변화에 대한 심층 연구를 했다. 대상 기업은 제조업종 6곳, 서비스업종 6곳, 금융회사 4곳, 병원 4곳이었다. 시간선택제 근로자, 기업 대표와 인사 담당자를 각각 인터뷰했다. ○ 불량률 퇴사율 줄고 회사 충성도는 상승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회사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용품을 생산하는 업체인 다솔(전체 직원 49명)은 지난해 4월 도입한 시간선택제로 13명이 일하고 있다. 시간선택제 실시 후 1주일에 100건 정도이던 고객 불만 건수가 40∼50건으로 줄었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평화오일씰공업은 2013년 7월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뽑기 시작했다. 제도 도입 이전인 2013년 2분기(4∼6월) 불량품 비율을 100으로 봤을 때 2014년 3분기(7∼9월)는 82.4로 줄었다. 이 회사에서는 시간선택제 근로자의 목표량 대비 달성률이 93%로 전일제 근로자(89%)보다 높다. 기업들은 단순히 정부 정책에 호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간선택제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시간선택제 도입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4.3%가 ‘피크타임 때의 업무를 분산하기 위해’, 그리고 역시 34.3%가 ‘인력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시간선택제를 도입했다고 답했다. 정부의 인건비 지원 때문이라는 응답은 0.7%뿐이었다. 시간선택제로 기업의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은 근로자들이 대부분 업무 노하우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또 이 제도는 직원들의 심리적 안정에도 큰 기여를 한다. 경기 안산시에 있는 최재활의학과는 시간선택제 근로자 13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 중 3명이 육아를 위해 전일제에서 시간선택제로 전환한 경우다. 안민선 씨(26·여)는 “시간선택제로 입사하거나 전일제에서 전환한 선배들을 보면, 나도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더라도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된다”고 말했다. 이런 안정감은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요소다. 스타벅스코리아 같은 대기업을 비롯해 대부분의 시간선택제 도입 기업에서 퇴사율과 이직률은 도입 이전에 비해 절반 미만으로 하락했다. ○ 인구절벽 시대,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로 돌파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국가적으로 핵심생산인구(생산가능 연령 인구 중 국가 경제의 핵심이 되는 25∼49세의 경제활동인구)의 확대를 가져온다. 그동안 우리 사회 일자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전일제와 아르바이트 등 대립되는 형태로 양분돼 왔다. 기업이나 근로자나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던 것. 이도영 고용노동부 고용문화개선정책과장은 “시간선택제 확산은 기존 ‘소수가 장시간 일하는 노동문화’에서 ‘다수가 효율적으로 일하는 노동문화’로 전환을 이끌어 낼 것”이라며 “다수가 시간선택제를 통해 유연하게 일하는 문화는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토대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 내부 갈등 줄여야 시간선택제 확산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간선택제 도입을 꺼리는 기업들도 있다. 기업이 우려하는 것은 시간선택제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다. 시간선택제를 실시하는 대부분 기업에서 시간선택제의 시간당 임금은 전일제보다 높다. 일부 기업은 둘의 전체 임금이 아예 같아 전일제 근로자들이 불만을 갖는다. 전일제 근로자들이 일하는 도중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이 퇴근하는 상황도 조직원 간 갈등을 부를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시간선택제를 택한 기업들은 내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쏟고 있다. 시간선택제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들이 함께하는 사내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서로 팀을 이뤄 공동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한 후 성과가 좋으면 보상을 해주기도 한다. 떡 프랜차이즈 회사인 ‘떡파는사람들’은 시간선택제 시행 이후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1년에 두 차례 외부 강사를 초청해 인성 교육을 한다. 콜센터 대행업체인 한국고용정보는 아예 시간선택제와 전일제를 분리한 팀제를 운영하면서 갈등의 소지를 없앴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박민우(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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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이 전하는 중장년 재취업 비결… “업무능력 자랑 말고 기업 필요에 맞춰야”

    시간선택제 일자리 중 상당수는 출산과 육아 등으로 일을 쉬었던 여성, 그리고 기존 직장에서 퇴직한 이후 새 일자리를 구하는 중장년층에 적합하다. 특히 중장년층의 재취업에 대한 욕구는 매우 높다.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재취업을 원하는 중장년층은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정보를 모으면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게 기업 인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휴대전화 부품 제조회사인 퓨어테크의 천정필 상무는 “업무 노하우를 가진 중장년층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적잖다. 다만 구직자가 갖춘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기업을 한번에 찾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천 상무는 “대단한 업무 노하우가 있어도 기업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자신에게 맞는 기업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취업에 대한 의지는 강하지만 막상 관련 정보를 찾는 데에는 소홀한 구직자도 많다. 그들에게 중장년층 일자리 박람회는 좋은 수단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들이 운영하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도 눈여겨볼 만한 기구다.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구직자와 기업을 연결해 취업을 돕는다. 재취업에 성공한 중장년 중에는 입사 후 얼마 못 버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회사와는 다른 근무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 때문에 중장년층을 고용하는 많은 기업은 중장년층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기 전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3개월 이상 인턴 기간을 둔다. 이 기간은 중장년층 구직자의 업무 역량뿐만 아니라 기존 직원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살피는 기간이다. 위탁 세탁업체인 한강산업의 신우진 이사는 “조직에 융화되기 위해서는 중장년층 구직자가 먼저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 나이 어린 직원들이 대접해주길 바라기보다는 먼저 나서서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고 친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팀장)▽김범석 박선희 한우신 최고야 김성모(소비자경제부) 이지은 유성열(정책사회부) 박민우(경제부) 김창덕 이샘물 기자(산업부) 장원재 도쿄특파원}

    •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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