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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컴퓨터, 가전제품, 자동차 등 우리나라 기업에서 생산하는 전자제품의 종류는 수백여 가지다. 전자기기에는 다양한 부품이 들어가는데 이들을 전기적으로 연결해주는 회로판인 PCB(Printed Circuit Board)가 공통적으로 쓰인다. PCB 기판 위에 솔더 페이스트(Solder Paste·프린트 배선기판의 납땜에 사용되는 크림의 일종)를 인쇄하는 과정을 SMT(Surface Mounting Technology·표면실장기술) 공정이라고 한다. 각 기업에서는 현재 PCB를 특수 프린터인 고속 스크린 프린터로 인쇄하고 있다. 고속 스크린 프린터와 반도체용 멀티 프린터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독보적으로 1위 자리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 ㈜이에스이다. 1994년 ‘은성엔지니어링’으로 출범했다 1996년 상호를 ESE로 변경했다. 현재 경기 평택시에 위치한 본사에서는 직원 46명이 근무중이며 스크린 프린터, 특수목적용 프린터, 일반형 프린터, 듀얼 프린터, 대형 프린터 등 8개 종류의 프린터를 생산하고 있다. 회사를 설립한 고형래 대표는 1980년대부터 대우자동차, 아남산업, 주안마이크론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꿈을 실현하고자 창업에 뛰어 들었다. 엔지니어 출신이던 그는 초창기에 노즐 및 반도체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시작했다. 2000년대 초 프린터 사업의 비전을 엿보고 장비 생산 쪽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당시만 해도 유럽과 미국 등 글로벌 회사들의 스크린 프린터가 국내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르러 국내에서도 해당 분야 진출이 이뤄졌고, 이에스이는 발 빠르게 뛰어든 덕에 국내에서 독보적인 1위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이에스이는 지난 10여 년간 연구개발을 꾸준히 해온 덕분에 국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2003년 독자적인 기술로 프린터 개발을 완료했고 유럽시장에 진출하는 데 필수적인 CE인증마크를 획득했다. 2004년에는 유망 중소기업에 선정된 데 이어 품질경영 국제표준인 ISO9001-2000 인증을 받았다. 2010년에는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인 INNOBIZ 인증, 2011년 듀얼 레인 스크린 프린터 특허 등록, 2017년 Productronica 독일 전시회 출품 등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에스이의 제품은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이노텍, 앰코테크놀로지 등 국내 대기업을 비롯해 대기업의 중소 협력사 등에 판매되고 있다. 또한 해외 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이에스이는 2002년 중국 상하이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지난해 9월에는 일본에 법인 ‘ESE 재팬 컴퍼니 리미티드’를 설립했다. 현재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세계 각지에 대리점을 두고 적극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회사의 성장은 매출로 증명된다. 회사 설립 때부터 현재까지 매년 꾸준히 15∼20%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올해는 15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가 25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한 데는 고 대표의 남다른 경영철학이 바탕이 됐다. 고 대표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는 ‘최고’가 되자는 신념으로 회사를 이끌어왔다. 현재 동종업계에서 우리 회사의 기술력은 일본을 앞질러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지금도 직접 도안을 그려 기술팀과 논의한 끝에 장비를 개발할 정도로 기술개발에 적극적이다. 또한 직원들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모범을 보이려 노력한다. 어릴 적부터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한 것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라고. 향후 65세가 되면 일주일에 사흘 정도 출근하며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스이는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이다. 연말이면 회사 수익의 10%를 기부하고, 20%는 46명의 전체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나눠주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전체 직원 가운데 20대를 제외하고는 평균 10년 이상 장기 근무자가 대부분이다. 고 대표는 “수익이 생기면 사회는 물론 직원과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이에스이에서는 모두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정년퇴임 없이 근무할 수 있다. 또한 본인이 원하는 부서가 있다면 이동해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 대표는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중소중견기업 육성화정책’을 다양하게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로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정책이 많다. 기술로 세계 1위를 할 수 있는 회사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안타깝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마련해 중소기업을 키우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스이는 2021년 매출 200억 원 이상, 직원 60명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고 대표는 “중소기업이 성장하면 청년 일자리 창출은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도 내비쳤다. 그는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대기업 못지않게 훌륭한 중소기업이 얼마든지 많다. 특히 창업을 생각한다면 중소기업에서 1등이 될 만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뛰어들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회사가 25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한 데는 고 대표의 남다른 경영철학이 바탕이 됐다. 고 대표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는 ‘최고’가 되자는 신념으로 회사를 이끌어왔다. 현재 동종업계에서 우리 회사의 기술력은 일본을 앞질러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여성이라면 누구나 주얼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시장은 트렌드 변화가 심한 곳으로 주얼리 기업이 변화에서 뒤쳐지면 낙오하기 십상이다. 1981년 창립된 (주)인아는 변화무쌍한 주얼리 시장, 특히 규모의 경제가 어려운 파인 주얼리 산업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해 내수와 수출 모두 성공한 독보적 기업으로 손꼽힌다. 수출 위주의 인아는 지난해 자매회사인 ㈜미니센스(내수 위주)와 함께 74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 인아의 매출은 5월말 현재 작년 동기 대비 34%나 신장했다. 인아의 경쟁력은 바로 디자인에 있다. 매달 500여 종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보유한 디자인만도 무려 7만여 종에 달해, 바이어들의 다양한 요구를 원스톱으로 해결한다. 이같은 디자인 개발 능력은 세계 3대 주얼리 전시회 중 하나인 ‘홍콩 주얼리 & 젬 페어’에서 빛을 발해 디자인과 기술력을 바이어들로부터 인정받았다. 더욱 소량 다품종의 복잡 다양한 바이어들의 요구를 완벽히 소화하는 바이어 서비스 역량으로 시장에서 명성과 신뢰를 쌓았다. 2001년 베트남 호치민에 해외 공장을 세운 이래 현재는 프레스 기계 등 각종 설비를 갖추고 한국인 기술자들을 포함 약 1000명의 종업원이 귀걸이, 펜던트 등을 생산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업계 활성화를 위해 그 동안 일부 자재들은 협력 업체들로부터 연간 1200만 달러어치를 조달, 베트남 공장으로 보내고 있다. 원래 인아는 1990년대 초반 중급 다이아몬드를 통해 신세대 예물 주얼리 시장을 개척했고, 커플링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백화점 매장에 진출하며 실용과의 조화를 모토로 한 브랜드 고급화에 성공했고, 체계적이고 정확한 다이아몬드 등급을 제시해 고객의 신뢰를 얻었으며, 우리나라 귀금속 시장 양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는 귀금속 보석 시장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고, 이에 과감히 품목 전환을 결단한 오경승 회장은, 가격이 싸면서도 작고 발랄한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연 미니 귀걸이를 개발해 침체된 시장 분위기 속에서도 매출이 늘어나는 성공을 이룩했다.오너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 중기업에서 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오 회장은 기업혁신 의지와 함께 5년 전부터는 오영찬, 오민혜 2세들이 경영 일선에 적극 나서도록 함으로써 해외시장 다변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인아는 오영찬 사장이, 미니센스는 오민혜 대표가 맡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고급 시장으로의 진출. 특히 다이아몬드 주얼리 시장으로의 재진입도 검토하고 있다. 오 회장은 “직원, 바이어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로 지금껏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신뢰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 결과”라며 “기업 역량 제고를 위해 시장 트렌드를 읽을 수 있고 영업 마인드를 갖춘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인아의 경쟁력은 바로 디자인에 있다. 매달 500여 종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보유한 디자인만도 무려 7만여 종에 달해, 바이어들의 다양한 요구를 원스톱으로 해결한다. 이 같은 디자인 개발 능력은 세계 3대 주얼리전시회 중 하나인 ‘홍콩 주얼리 & 젬 페어’에서 빛을 발해 디자인과 기술력을 바이어들로부터 인정받았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백 ◎에 흑의 응수가 곤란해졌다. 백 76이 연이은 강수. 여기서 흑이 엉겁결에 참고 1도 흑 1로 받았다간 난리가 난다. 백 6이 묘수. 흑 21까지 대마를 살릴 순 있지만 백 22로 흑 7점이 떨어지면 승부 끝. 흑 77이 최선의 응수. 백 78로 전체 흑 대마를 끊었다. 물론 흑 대마는 살아갈 수 있다. 다만 어떻게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살아가느냐가 관건이다. 흑 81로 단수할 때 백이 참고 2도 1로 이어 바로 공격에 들어가면 어떨까. 흑은 2로 끊는 수가 생명줄이어서 6, 8로 삶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결국 흑 85로 대마가 무사히 살았다. 그 대신 하변 흑이 약해졌는데 백은 여기서 어떻게 이득을 봐야 할까.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전보에서 흑이 승기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세하다. 백으로선 끝내기에서 역전 찬스를 노려볼 만하다. 백 58의 단수를 외면하고 흑 63으로 중앙을 둔 것은 최선의 끝내기. 만약 참고 1도 흑 1로 이으면 백 2부터 10까지 선수하는 것이 기분 좋다. 백 66은 9집짜리 끝내기. 흑 67과 맞보기의 곳이다. 그런데 잘 두던 바둑이가 삐끗한다. 전보에서 말한 대로 흑 71, 백 72의 교환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 교환을 하는 바람에 백 74로 치중하는 수가 생겼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셈이다. 백 74에 직접 응수하기가 곤란하다. 참고 2도 흑 1로 두면 6까지 백이 상당히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흑 75로 방향을 돌린 것인데….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은 당연히 흑 A로 연결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바둑이의 계산은 달랐다. 흑 45, 47로 A의 단점을 커버할 수 있다고 본 것. 백이 흑 대마를 끊으려면 참고 1도 백 1, 3으로 둬야 하는데 흑 6으로 끊는 수가 성립한다. 따라서 흑이 A의 가일수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전보에서 백이 중앙 흑 두 점을 잡은 것은 매우 작은 끝내기에 불과했다. 미련이 남은 백은 54, 56으로 두며 A의 보강을 강요했지만 흑 57이 단점을 보강하면서 끝내기까지 겸하는 효율적인 수다. 찜찜하다고 해서 흑 57로 참고 2도 1로 미리 선수하는 것은 악수. 백 10까지 오히려 백이 선수로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바둑이의 판단은 정확했고, 여기서부터 형세가 흑으로 기울기 시작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31은 독특한 끝내기. 보통은 A로 뛰는데, 한 발이라도 더 들어가겠다는 뜻. 그러나 A로 뒀을 때와 집 차이는 거의 없다. 백 34가 너무 안전하게 둔 수로 완착이다. 참고 1도 백 1로 한 발 더 들어가도 흑 2로 받을 수밖에 없다. 이후 우변을 정리했으면 팽팽한 형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백 38은 아까부터 눈여겨보던 노림수. 여기서 흑은 신중히 응수해야 한다. 참고 2도 흑 1로 형태상 급소같지만 백 2, 4로 흑 대마가 끊어진다. 그래서 흑 39는 정수인데 대신 백 40으로 흑 두 점이 잡히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백의 큰 착각이 있었다. 백 44 이후 당연히 흑 B로 보강해야 한다고 본 것. 바둑이는 다른 발상을 하고 있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로 젖혀 이은 수는 나중에 A로 달리는 끝내기를 엿보고 있는 것. 이렇게 되면 우하 백 집이 많이 줄어든다. 흑 99는 좌중앙을 키우는 수로 큰 곳이다. 백 100으로 끊어 응수타진을 하고는 백 106으로 흑 대마를 공격한다. 흑이 실리를 탐하는 사이에 중앙에서의 공수가 바뀐 상황이다. 흑 107은 응수타진. 백 108로 물러서는 것을 기다려 흑 109를 선수하고 흑 111로 중앙으로 진출한다. 물론 안에서 사는 수도 있다. 참고 1도 흑 1을 선수하고 3으로 붙이면 9까지 99% 완생이다. 흑 109를 선수한 것은 참고 2도 백 1, 3으로 나와 끊는 수를 방비한 것. 흑 8까지 백이 안 된다. 자체 도생보다는 외부와의 연결을 선택한 흑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을까.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이해찬(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단 세고, 유인태(국회 사무총장)보단 약해.”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난 임채정 한국기원 총재(78·사진)는 자신의 기력을 묻는 질문에 정확히 몇 단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이 대표에 대한 비교 우위를 언급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지난달 29일 취임한 임 총재는 지난해 11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갑자기 사퇴한 뒤 표류해온 한국기원을 이끄는 수장이 됐다. 특히 기전이 계속 사라지면서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바둑계의 부활을 이끌어야 한다. 바둑계는 14∼17대 4선 의원이자 국회의장을 지낸 그의 정무 감각과 균형감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야구 축구와 달리 바둑은 ‘관중’이라는 기초 재원이 없어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기전 확대에 힘을 쏟겠습니다.” 국내 대표 기전인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그동안 8개 팀 중 2팀이 부족해 5월 전반기 시즌을 제때 시작하지 못했다. 그런데 임 총재가 온 지 한 달도 안 돼 2팀이 채워졌다. 임 총재는 지난해 제정된 바둑진흥법에 대해 일반 원칙을 정해 놓았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바둑진흥법의 공백을 한국기원이 메워갈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트체육인 프로 바둑계를 기전으로 살린다면, 생활체육인 아마 바둑계는 체계적인 국가 지원 시스템을 통해 육성하고 싶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바둑 두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 중학교 때 고 조남철 9단의 ‘위기개론’을 보고 바둑에 눈을 뜬 그는 “아직 동네 싸움바둑에서 벗어나진 못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바둑에 빗대 요즘 정치권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고 하자 툭 한마디를 던졌다. “바둑 두듯 정치하면 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에게 부연 설명을 했다. “바둑을 두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바둑을 아예 두지 않거나 불리하다고 엎어 버리지 않는다면 상대와 상대의 수읽기를 존중해야 바둑을 둘 수 있죠. 지금 정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백 ◎의 탈출 대신 참고 1도 백 1, 3으로 나와 끊는 것은 어떨까. 흑의 약점이 많아 수가 날 듯하지만 흑 4로 강하게 버티는 수가 좋다. 흑 12까지 수상전에서 흑이 한 수 빠른 데다 중앙 백은 빈사 상태에 빠진다. 백 ◎에 대해 참고 2도 흑 1에 둬 호구 모양을 만드는 것이 기분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외려 백에게 수습의 리듬을 준다. 백 8까지 좌변을 자연스럽게 지우면서 안형을 갖출 수 있다. 그래서 흑은 83, 85로 좌변을 키우고 87로 막아 좌변에 두툼한 집을 만들었다. 바둑이는 직선적 공격보다는 적당히 위협하며 실리를 차지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 대신 백돌은 90, 92로 쉽게 안정권에 도달했다. 흑 93은 선수인데 95, 97로 끝내기까지 서두른 뜻은 무엇일까.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으로선 좌 중앙 백에 대한 공격이 관건인데, 백도 탄력이 있어 섣불리 달려들어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흑 71로 상변을 넘어간 것은 정수. 만약 공격 강도를 높이려면 참고 1도 흑 1로 백의 중앙 탈출로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백 2, 8이 선수. 이어 백 10으로 붙여 나오면 상변 흑도 탈출해야 해서 공격이 제대로 듣지 않는다. 백 72로 빠져나오자 흑이 중앙을 깔끔하게 틀어막기는 어려운 모습이다. 흑 77은 백의 안형을 뺏어 밖으로 몰아내겠다는 뜻. 2차, 3차 공격을 염두에 둔 행마다. 백 78은 어정쩡한 행마 같지만 참고 2도 1, 3처럼 평범하게 행마하면 흑 6으로 더 압박을 받는다. 백 82까지 탈출은 했으나 아직 사방이 흑 천지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는 사실 팻감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만약 백이 받아준다면 이후로도 계속 이 부근에 흑이 두는 팻감을 받아줘야 한다. 결국 백은 58, 60으로 우하귀 흑을 잡고 흑은 59, 61을 연타해 좌중앙 백을 크게 공격하는 태세를 취했다. 백의 실리가 적지 않지만 흑이 계속 공세를 취할 수 있게 됐다는 면에서 흑이 좀 더 기분 좋은 결과다. 아무래도 백이 우하 패를 들어간 것이 빨랐다는 평이다. 그 대신 흑도 공격을 하다가 삐끗해서 백을 쉽게 살려주면 우하에서 실리를 내준 것이 부담이 된다. 백 62의 응수타진에 흑 63은 확실히 귀를 차지하면서 중앙 백의 공격은 여유 있게 하겠다는 뜻. 어차피 백이 한 걸음 더 달아나도 공격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흑 63으로는 참고도처럼 두는 것도 방법이다. 실전과 큰 차이가 없다. 백은 68, 70으로 백 모양에 탄력을 붙이며 수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로 때 이르게 패를 걸어갔는데, 흑 47까진 외길. 지금 이 패를 백이 이기려면 세 번을 연속해서 둬야 한다. 백의 팻감은 어디 있는 걸까. 사실 흑은 패를 이겨도 큰 전과를 거두기 어렵다. 백은 패를 이기면 우하 귀를 잡긴 하지만 여러 번 둬야 한다. 서로 이 같은 핸디캡이 있기 때문에 팻감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백 48의 팻감이 백의 자랑. 손해가 없는 팻감이다. 뚜렷한 팻감이 없는 흑은 51의 저공비행을 팻감으로 쓴다. 정상적 상황이라면 참고도 백 1로 반발해야 하지만, 그러면 흑 2부터 팻감도 많이 나온다. 또 이 전투 자체가 서로 만만치 않다. 백 54의 팻감도 흑으로선 안 받을 이유가 없다. 우하 귀 패를 흑이 해소해도 별 이득이 없는데 백 54에 대해 손을 빼면 좌상 귀가 송두리째 백의 수중에 들어가기 때문. 흑은 팻감 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흑 57에는 악수 팻감을 쓰지 않겠다는 바둑이의 고심이 잔뜩 묻어 있다. 50 56=◎, 53=47.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33은 좋은 행마로 중앙으로 진출하려면 오직 이 한 수라고 봐야 한다. 우상 귀에서 공방을 주고받는 와중에 백은 38로 끊어간다. 이게 무슨 뜻일까. 실전처럼 흑 39로 받으면 나중에 패의 부담이 있다. 패를 피하려면 참고 1도 흑 1, 3으로 두면 되는데 모양 자체가 굴욕적이다. 게다가 백 ‘가’가 놓이면 ‘나’도 선수가 된다. 우상을 완전히 정리하기 전에 백 38로 응수를 물어본 건 적절했다는 평이다. 사실 백이 원했던 것은 참고 2도. 흑 1로 잡으면 바꿔치기가 되는데 백 8이 절호점이 돼 만족이다. 그래서 흑 39로 받고 다시 우상 귀로 돌아갔는데, 백 44가 뜻밖이었다. 이렇게 이른 타이밍에 패를 걸어가는 것이 괜찮을까. 딱히 눈에 보이는 팻감도 없는데….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전보 마지막 수인 흑 ○는 방향 착오라는 지적이 있었다. 우하 백 세력이 좋은 만큼 27의 곳에 선착하는 것이 더 좋았다는 얘기다. 백 18은 흑이 귀를 받으면 하변을 벌리겠다는 뜻으로 고수들의 대국에서 종종 등장하는 수법이다. 백 22가 좀 특이했다. 참고 1도 백 1로 붙이는 것이 흔히 보는 정석이다. 흑 4 때 선수를 뽑을 수 있는 것이 백의 자랑거리다. 하지만 백이 22를 둔 것은 참고 2도 흑 2로 젖혀 반발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백 7로 빵따냄하는 것이 두텁지만 흑 16까지 하변에서 터를 잡으면 실리에서 흑이 앞서게 된다. 백 28로 어깨 짚은 수는 좌변 흑 모양을 견제하면서 상변 백의 모양을 넓히는 일석이조의 수. 초반 포석은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예선 2회전은 한일전이다. 바둑이의 상대는 일본의 인공지능(AI) 레인즈. 바둑이로서는 중국의 골락시와 벨기에의 릴라제로와 함께 가장 경계해야 할 강자다. 흑 5의 3.3 침입에 백은 참고 1도 1로 막아 선수를 잡고 5로 굳히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에는 실전 백 6으로 막는 것을 더 많이 둔다. 백 12로는 손을 빼고 다른 곳으로 달려가거나 참고 2도처럼 진행하는 정석을 많이 둔다. 이 정석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참고 2도 백 13까지 이어진 뒤 흑이 ‘가’로 뒀다. 하지만 요즘엔 ‘가’를 두지 않고 발 빠르게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진행이 많다. 흑 15로 걸친 것은 당연하고 레인즈는 백 16으로 받으며 유연하게 초반을 운영한다. 아직은 탐색전. 그런데 흑 17이 도마에 올랐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마지막 수인 흑 153 때 백이 참고 1도 2로 단수하며 나오면 어떻게 될까. 흑은 중앙 백과 수 싸움을 할 필요 없이 5∼9로 상변 백을 잡으면 된다. 한국의 바둑이는 이 바둑을 통해 수읽기와 완급 조절 능력이 프로기사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승부처는 참고 2도였다. 중앙과 상변, 좌변에 흑의 거대한 세력이 형성된 상황에서 특공대 백 ◎의 생사가 관건이었다. 얼핏 봐선 위험해 보이지만 백말이 탄력 있어 쉽게 죽을 돌은 아니었다. 하지만 참고 2도 백 1(실전 98)이 초점에서 벗어난 수. 흑 2로 백 대마가 빈사 상태에 빠졌다. 백 3 땐 흑 4로 우직하게 끊어가자 대책이 없다. 백은 A로 붙여 타개를 도모했어야 했다. 바둑이가 골루아를 꺾고 상큼하게 출발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인공지능(AI)이 생각보다 사활에 약하다는 것이 프로기사들의 평가다. 물론 포석, 전투, 형세 판단에 비해 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그들도 사활에선 가끔 실수를 한다. 흑 41도 참고 1도 1로 호구하면 더 간단했다. 흑 9까지 알기 쉽게 백을 잡을 수 있다. 흑 43이 흑이 백을 제압하게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 백이 44로 젖혔는데 참고 2도 1로 곱게 이으면 흑은 중앙 백과 수상전을 위해 4로 끊는다. 흑 12까지 흑이 한 수 빠른 수상전이다. 백 44는 참고 2도를 피한 것인데 흑 45, 47로 이번엔 상변 백과 수상전을 하겠다고 나선다. 백은 이도저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 흑 53으로 끊자 백은 항복을 선언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는 사실 참고 1도 백 1로 물러나는 것이 정수다. 하지만 흑 2로 막히면 백의 희망은 사라진다. 백 5까지 중앙 대마는 살릴 수 있지만 흑 6으로 두면 백 넉 점이 고스란히 잡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 ◎는 혼신을 다해 버틴 수. 그러나 흑 27로 끊자 백이 급한 곳이 많아졌다. 흑 29도 맥점. 여기서도 백은 고민이다. 참고 2도 백 1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백 11까지 좌상에서 크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변 백이 발목을 잡는다. 흑 12∼16의 연타로 잡히는 것.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답답할 지경이다. 백은 40으로 상변 흑의 삶을 방해하며 수상전에 나섰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중앙 백 대마는 백 18로 흑 한 점을 잡으며 일단 한 집을 만들었다. 이때 흑은 굳이 대마를 잡으려 하지 말고, 참고 1도처럼 둬도 유리하다. 흑 19로 끊은 수는 끝내기까지 가지 않고 여기서 승부를 보겠다는 강수. 바둑이의 과감함이 엿보인다. 흑 21로 둬 백을 양분했고 백은 22로 젖혀 최후의 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흑 23 대신 참고 2도 흑 1로 끊을 수도 있다. 흑 7이 급소여서 상변 흑이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백 12까지 좌상 귀를 차지하면 흑은 17까지 중앙을 확보한다. 이 그림 역시 흑이 유리하지만, 바둑이는 흑 23, 25로 밑으로 기어 대마 전체를 집요하게 노린다. 백 26으로 뻗은 것은 일견 당연한 수처럼 보이는데….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은 중앙 말을 돌보기 전에 ◎를 뒀다. 보통은 선수가 되는 곳. 하지만 지금은 흑이 백 ◎를 완전히 무시하고 흑 99로 백 말의 숨통을 조인 것이 좋았다. 백 ◎로는 참고도 백 1, 3을 선수하고 백 5, 7로 두어 적극적으로 중앙 말을 수습하는 것이 좋았다. 백 15까지 된다면 백은 수세에서 벗어나 반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흑이 상변을 받지 않고 흑 99로 지키자 중앙 백 돌들의 수습은 점점 어려워진 상황이다. 골루아는 백 100으로 우선 상변을 접수하고 중앙 타개에 승부를 내려고 하지만, 흑 101로 나와 흑 109로 끊는 것이 선수여서 백이 상당히 곤란한 모습이다. 백은 106, 110으로 동분서주하지만 마땅한 타개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백 110에 응수하지 않고 흑 111, 113으로 두 점을 잡은 것도 백을 점점 갑갑하게 만들고 있다. 이젠 백이 중앙에서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최후 승부처가 됐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