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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1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사회적 재난이 7건 발생했지만, 관련 법안은 절반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회가 참사 직후에만 ‘반짝’ 관련 입법에 열을 올리고 시간이 지나면 관심을 거두는 탓에 비슷한 유형의 재난을 막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이후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사고는 서울 이태원 참사와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등 7건이다. 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7건과 관련해 총 138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 중 통과된 법안은 61건(44.2%)에 불과했다. 특히 14명이 사망한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관련 법안 8건 중 1건만 통과됐다.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는 관련 법안 39건 중 13건이,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발의 23건 중 10건이 통과됐다. 제천 화재 당시 건물주의 아들이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돼 소방시설 등을 자체 점검하면서 관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바로잡는 소방시설법 개정안이 2018년 1월 국회에 발의됐다. 건물주나 4촌 이내의 친족이 ‘셀프 점검’할 수 없도록 소방안전관리자의 자격을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무관심 속에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2019년 2월 2명이 숨진 대구 대보사우나 화재 등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 화재도 건물관리인의 ‘셀프 점검’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주요 참사 7건 가운데 국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재난은 이태원 참사였다. 국회 회의록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태원 참사의 언급량이 총 11만349건이었다.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1만9864건)가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3224건,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2979건 언급되는 데 그쳤다. 2015년 제주 돌고래호 전복 사고(15명 사망, 3명 실종)는 104건 언급됐다. 일부 유가족은 ‘정치인들이 정쟁거리가 될 만한 재난에만 관심을 둔다’고 비판했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의 유족 최명식 씨(57)는 “정치색 없이 유가족들을 위해야 하는데, 당시 (유족에게) 손을 내민 건 전부 정치적인 의도가 의심되는 단체들이었다”고 말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정 참사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이 문제”라며 “(국민 안전과 관련해) 정부와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협의체나 상설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이해도 안 가고 믿고 싶지도 않다. 그냥 너무 화가 난다.”(2014년 5월 12일) 김도연 씨(27)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뒤 약 한 달 만에 처음 쓴 일기엔 방향 모를 혼란과 분노가 가득했다. 알 수 없었다. 왜 수많은 친구들이 희생됐는지, 정부는 어디에 있는지, 왜 만나는 사람마다 “어른들이 미안해”라며 사과하는지…. 여러 해가 지나도 그는 ‘단원고 2학년 3반 김도연’이었다.감정이 북받칠 때마다 일기를 썼다. 떠난 친구가 그리울 때도,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옥죌 때도 펜을 들었다. 그렇게 쌓인 일기장이 17권이 됐다. 9일 동아일보와 만난 도연 씨는 일기장 일부를 열어 보였다. 사회적 재난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어른들이 미안해’라는 말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도연 씨는 “저도 이제 아이들의 눈에는 ‘어른’이잖아요. 사회적 재난으로 상처받는 아이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 책임이 저한테도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관련 백서 발간 작업에 참여하던 올 2월 21일,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내 곁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사람들 덕분에 4월이 처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찬란해줘, 4월아.”“참사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재난 반복 않도록 내 할일 할것” [세월호 10주기]잊지 않은 사람들“나도 모르게 자해… 폐쇄병동 입원, 단짝 무덤 다녀오는 길에 평온함주변 이태원 참사 영상에 덜덜 떨어… 생존자 상처 안받게 역할 고민할것”도연 씨가 처음 그 악몽을 꾼 건 2015년 1월이었다. 꿈에서 그는 투명인간이 되어 진도 앞바다에 떠 있다. 세월호 안에서 친구와 선생님이 절규한다. 도연 씨는 그 모습이 훤히 보인다. 실종자 수습을 돕기 위해 침몰 당시 상황과 배의 구조를 수도 없이 복기했기 때문이다. ‘저기 사람 있어요. 한 명만 더 살려주세요.’ 소리치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다. 눈물에 젖은 채 깨어나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같은 일이 매일 밤 반복됐다. 잠이 부족해 멍한 상태로 있다가 문득 손목에서 피가 흐르는 걸 발견했다. 다른 손에는 날카로운 학용품이 들려 있었다.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목을 숨겼다. 그러다 더 버틸 수 없게 됐을 때 처음으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자해에 쓰일까 봐 볼펜 반입이 금지돼 네임펜으로 일기를 썼다. 곧 상태가 나아져 퇴원했지만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시기에 도연 씨를 사로잡은 건 죄책감이었다고 한다. ‘그날’ 오전 8시 48분, 이름까지 비슷한 단짝 친구 도언은 세월호 4층 객실에 머물렀다. 반면 도연 씨는 물을 마시러 3층 식당으로 내려가 있었다. 그게 둘의 생사를 갈랐다. 당시 4층 승객 대다수는 ‘선내에 있으라’는 말을 믿은 탓에 생존율이 3층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내가 도언에게 같이 가자고 권했더라면….’ 이 생각이 도연 씨를 떠나지 않았다. 도연 씨도 머리로는 알았다. 친구들의 죽음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란 걸. 하지만 그걸 인정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도연 씨는 “저도 사람이다 보니 (참사 이후로도)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마다 ‘내가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에 멈칫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가 매년 4월 16일 추모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대학에서 틈틈이 노란 리본 등을 주변에 나눠준 것도 죄책감의 영향이 컸다. 떠난 친구들에게 당당해지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대학 수업을 준비하느라 4주기 영결식에 참여하지 못한 2018년엔 일기에 “‘괜찮아. 발표였잖아’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몰려오는 죄책감이 너무도 크다. 미안해요, 모두들”이라고 적었다. 특히 도연 씨는 도언이 잠든 경기 평택시 서호추모공원에 들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컸다. 그런데 2019년 12월 8일, 도언의 생일을 맞아 용기 내어 추모공원으로 향한 그날 ‘작은 기적’이 벌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낀 것. 그날은 악몽도 꾸지 않았다. 도연 씨는 “세월호 추모 활동을 열심히 한 건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이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실제로 삶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도연 씨의 불면은 잦아들다가도 다시 심해지곤 했다. 2021년 2월부턴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새로운 악몽이 시작되면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트라우마 증세가 나아졌다가 악화되면서 장기간 이어지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연 씨는 ‘시간이 약’이라는 믿음이 깨졌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해 4월 16일 일기에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한 탓일까. 시간이 지난 만큼 성장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적었다. 그러다가 2022년 10월 29일이 왔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59명이 숨진 날이었다. 도연 씨는 차마 뉴스를 보지 못했다. 모든 트라우마가 다시 시작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주변에서 스마트폰으로 참사 장면을 재생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이태원 희생자의 절규가 세월호가 침몰하는 소리와 겹쳐 들렸다. 손이 덜덜 떨렸다. 도연 씨는 최근 한 북콘서트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만났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로 각각 형제자매를 잃은 유가족을 초청해 대화를 나누는 순서였다. 충격이었다. 그의 경험은 자신의 일기장을 옮겨 놓은 듯 똑같았다. ‘비슷한 재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는 다짐까지도. 현재 이직을 준비하며 에세이 발간에 참여하는 등 세월호 관련 활동을 이어가는 도연 씨는 “제가 할 일이 더 명확해진 것 같아요. 만약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생존자가 저처럼 상처받지는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려고요”라고 말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여기가 김초원 선생님 자리예요. (추모글) 적고 가세요.”12일 오후 경기 안산시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 내 ‘기억교실’.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 씨(65)는 기억교실을 찾은 초등학생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참사 이후 안산을 벗어나 고향인 경남 거제시로 떠났지만, 단원고 교실이 재현된 기억교실을 찾기 위해 안산으로 올라오곤 한다. 딸을 잃은 상처가 아문 건 아니다. 참사가 벌어진 4월 16일은 김 교사의 생일이다. 딸의 생일에 딸을 떠나보낸 그는 “유모차에 타고 있는 딸 모습이 떠올라서 4월이면 잠에 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날도 4시간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90세가 돼도 딸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딸과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16일 세월호 참사는 발생 10주기를 맞는다. 동아일보는 10주기를 맞아 참사로 딸과 아들, 어머니를 떠나보낸 유가족 3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인천 부평구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을 관리하거나 기억교실을 종종 찾으며 떠나보낸 가족들을 매일같이 떠올리고 있었다. 이들은 “가족들의 죽음이 잊히지 않고, 참사를 교훈 삼아 안전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세월호 참사로 어머니 신경순 씨를 잃은 김영주 씨(49)는 인천에 마련된 세월호 추모관 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10년이 지났지만, 추모관에 마련된 어머니 영정 사진을 보는 건 여전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는 “참사일에 가까워지면 배가 가라앉기 전 나온 경고음 소리가 들리고,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면서 “매년 4월은 가장 추운 계절”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참사를 기억하는 일에 도움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일같이 추억관에 출근하고 건물을 관리한다. 김 씨는 “부디 참사 희생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이창현 군의 어머니 최순화 씨(58)는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들이 자신을 위해 써준 시를 지니고 다닌다. “방석이 비싸더라도, 우리 엄마 무릎 밑에 얹어주고 싶다”는 내용의 시다. 시를 보다 슬픔에 잠긴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천국으로 (좋아하던) 라면 배달해 줄까”, “롱패딩 입은 창현이 보고 싶다”는 글을 적곤 한다. 최 씨는 매주 월요일 유가족들과 만나 13일부터 5일간 열릴 세월호 추모 합창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아들과 세월호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다만 최 씨는 “우리 유족들의 이야기가 슬프게만 기억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여전히 놓지 않았다”며 “참사가 슬픔을 넘어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인천·안산=이수연 lotus@donga.com안산=이상환 payback@donga.com}
“민생에 무심한 정권을 심판하겠다.”(40대 직장인)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걸 막겠다.”(60대 요양보호사) 4·10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5일 투표한 유권자들은 세대별로 ‘정권 심판’과 ‘거야(巨野) 심판’을 두고 엇갈린 표심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수도권 4050세대의 표심은 전반적으로 정권심판론이 우세한 분위기였다. 금융회사를 다니는 박상현 씨(42)는 “계속되는 고물가 등 민생에 무심한 정권에 (심판) 신호를 주기 위해 투표했다”고 했다. 50대 직장인 허모 씨도 “최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국 혼란에 피로감을 느껴 정권을 심판하고자 투표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은행원 김모 씨(45)는 “불통하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표현하려 한 표를 던졌다”고 강조했다. 지방에서도 정권 심판을 위해 사전투표에 나섰다는 4050세대가 상당수였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서 투표한 이모 씨(53)는 “여야 후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정부가 잘못한 게 많은 것 같아 야당을 찍었다”고 했다. 전남 순천시 직장인 박모 씨(51)는 “주변에서도 정권심판론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정권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표심도 적지 않았다. 청주시 상당구 용담·명암·산성동 투표소에서 만난 문모 씨(47)는 “정부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는 했지만 아직 임기가 많이 남은 만큼 정신 차리고 제대로 나랏일을 해달라는 차원에서 여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했다. 경기 수원시민 이모 씨는 “‘성 상납’ 등 격 떨어지는 발언을 하는 민주당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안 된다”며 “아이들 보기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꼬집었다. 6070세대 중에는 전반적으로 ‘정권 안정’과 ‘거야 심판’을 위해 사전투표소를 찾은 이가 많았다. 서울 종로구 시민 이종규 씨(65)는 “남은 기간 행정부가 안정적으로 굴러가길 바라는 마음에 한 표를 보탰다”고 했다. 양천구에서 한 표를 행사한 요양보호사 신기순 씨(64)는 “한 세력(야당)이 너무 많아져서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모습은 막고 싶다”고 밝혔다. 인천 연수구 송도4동 투표소를 찾은 윤모 씨(67)는 “2년여 동안 윤석열 정부가 거대 야당에 밀려 기(氣) 한번 펴지도 못했다”며 “이번 총선에서도 밀리면 야당이 탄핵을 운운하며 국정 혼란이 올 것 같아 여당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 황금2동에서 투표한 60대 남성도 “여당이 다수당이 되면 물가가 잡히고 정책을 잘 추진하지 않겠냐”며 “지금은 ‘정권 안정’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 표를 찍었다”고 말했다. 정권심판론에 공감하는 6070세대도 사전투표 행렬에 동참했다. 한 70대 남성은 부산 수영구청에서 한 표를 행사한 뒤 “의대 정원 확대 갈등은 대통령이 만든 것이다. 정원 확대의 필요성과 확대할 정원 수는 국민에게 의견을 물어 결정해야 했다”며 “총선 결과를 받아든 대통령이 진지하게 반성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민생에 무심한 정권을 심판하겠다.”(40대 직장인)“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걸 막겠다.”(60대 요양보호사) 4·10총선 사전투표 첫날 4050세대는 ‘정권 심판’을 위해 사전투표에 나섰다는 이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반면 6070세대의 상당수는 ‘거야(巨野) 심판’으로 맞서며 한 표를 행사했다.수도권 4050세대의 표심은 전반적으로 정권심판론이 우세한 분위기였다. 금융회사를 다니는 박상현 씨(42)는 “계속되는 고물가 등 민생에 무심한 정권에 (심판) 신호를 주기 위해 투표했다”고 했다. 50대 직장인 허모 씨도 “최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국 혼란에 피로감을 느껴 정권을 심판하고자 투표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은행원 김모 씨(45)는 “불통하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표현하려 한 표를 던졌다”고 강조했다.지방에서도 정권심판을 위해 사전투표에 나섰다는 4050세대가 상당수였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서 투표한 이모 씨(53)는 “여야 후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정부가 잘못한 게 많은 것 같아 야당을 찍었다”고 했다. 전남 순천시 직장인 박모 씨(51)는 “주변에서도 정권 심판론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다만 정권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표심도 적지 않았다. 청주시 상당구 용담·명암·산성동 투표소에서 만난 문모 씨(47)는 “정부가 실망스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는 했지만 아직 임기가 많이 남은 만큼 정신 차리고 제대로 나랏일을 해달라는 차원에서 여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했다. 경기 수원시민 이모 씨는 “‘성 상납’ 등 격 떨어지는 발언을 하는 민주당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안 된다”며 “아이들 보기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꼬집었다.6070세대 중에는 전반적으로 ‘정권 안정’과 ‘거야 심판’을 위해 사전투표소를 찾은 이가 많았다. 서울 종로구 시민 이종규 씨(65)는 “남은 기간 행정부가 안정적으로 굴러가길 바라는 마음에 한 표를 보탰다”고 했다. 양천구에서 한 표를 행사한 요양보호사 신기순 씨(64)는 “한 세력(야당)이 너무 많아져서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모습은 막고 싶다”고 밝혔다.인천 연수구 송도4동 투표소를 찾은 윤모 씨(67)는 “2년여 동안 윤석열 정부가 거대 야당에 밀려 기(氣)를 한 번 펴지도 못했다”며 “이번 총선에서도 밀리면 야당이 탄핵을 운운하며 국정 혼란이 올 것 같아 여당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 황금2동에서 투표한 60대 남성도 “여당이 다수당이 되면 물가가 잡히고 정책을 잘 추진하지 않겠냐”며 “지금은 ‘정권 안정’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 표를 찍었다”고 말했다.정권심판론에 공감하는 6070세대도 사전투표 행렬에 동참했다. 한 70대 남성은 부산 수영구청에서 한 표를 행사한 뒤 “의대 정원 확대 갈등은 대통령이 만든 것이다. 정원 확대의 필요성과 확대할 정원 수는 국민에게 의견을 물어 결정해야 했다”며 “총선 결과를 받아든 대통령이 진지하게 반성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평택=이경진 기자 lkj@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여성 성차별 발언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후보(경기 수원정)에 대해 이화여대와 여성단체가 연일 사퇴를 촉구했다. 이화여대 총동창회는 4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화의 역사를 모독한 김 후보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날 모인 이화여대 동창 700여 명은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볼 수 없다. 여성 폄하, 이화 폄하를 한 김 후보는 당장 사퇴하라”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2022년 8월 유튜브 채널 ‘김용민TV’에 출연해 김활란 초대 이화여대 총장(1899∼1970)이 “미군정 시기에 이화여대 학생들을 미군 장교에게 성 상납시키고 그랬다”고 주장했다. 이달 2일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60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찐(眞)여성주권행동’도 김 후보를 4일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 후보는 2019년 2월 유튜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정신대, 종군위안부를 상대로 섹스를 했었을 테고” 등으로 발언해 박 전 대통령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다. 이 단체는 “이런 자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는 이 현실을 우리 여성들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수원=이경진 기자 lkj@donga.com}

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정에 출마한 김준혁 후보(사진)가 과거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1899∼1970)이 학생에게 성 상납을 시켰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화여대는 김 후보의 사과와 사퇴를 촉구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6)는 “의원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화여대는 2일 입장문에서 “김 후보의 명예훼손 발언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후보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이날 김 후보의 발언을 ‘망언’이라며 “막말도 해선 안 될 말이 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후보는 2022년 8월 14일 유튜브 채널 ‘김용민TV’에서 “(김 총장이) 미군정 시기에 이화여대 학생들을 미군 장교에게 성 상납을 시키고 그랬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2일 “(국민의힘이 발언의) 앞뒤를 다 잘랐다”고 주장했다가 민주당 선대위가 사과를 권고한 후 페이스북에 “정제되지 못한 표현으로 상처를 입힌 점에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올렸다. 한편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일 국민의힘 나경원 후보(서울 동작을)를 ‘나베’(나경원+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라고 불러 막말 논란을 일으켰다. 이 대표는 이날 저녁 유튜브 라이브에서 민주당 류삼영 후보와 경쟁하는 나 후보를 향해 “나베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국가관이나 국가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이 많다”고 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컵뚜껑에도… 활개 치는 몰카화분이나 각휴지, 커피컵 뚜껑까지. 일상 속 물건 속에 초소형 카메라를 장착한 변형 카메라를 해외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4·10총선 사전투표소에 변형 카메라가 설치되는 등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범죄 예방을 위해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몰카(불법 카메라) 사러 누가 여기로 와요. 인터넷에서 직구(직접 구매)하지.” 1일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전자제품을 파는 유모 씨(67)의 말대로 매장엔 다른 물건으로 위장한 변형 카메라가 없었다. 다른 점포 사장 윤모 씨(58)도 “정부가 계도를 많이 해서 여기선 (변형 카메라를) 잘 안 판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취재팀이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이커머스에서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니 변형 카메라가 수십 종 나타났다. 유튜버 한모 씨(49·구속)가 4·10총선을 앞두고 사전투표소 등 41곳에 설치한 것처럼 충전기 어댑터로 꾸민 카메라도 2만∼4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정부가 국내 전자제품 판매장에서 계도에 집중하는 사이, 해외 사이트에서는 클릭 몇 번이면 변형 카메라를 직구할 수 있게 된 것.● ‘3일 안에 무료 배송’… 해외 사이트서 ‘몰카’ 직구 변형 카메라를 파는 해외 사이트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한 사이트는 화분, 각휴지, 램프 등으로 위장한 변형 카메라를 50종 넘게 홍보하고 있었다. 커피컵 뚜껑에 변형 카메라를 설치한 제품의 가격은 276유로(약 40만 원) 상당이었다. 이 쇼핑몰은 “한국은 3일 만에 배송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불법 카메라 탐지업자들은 변형 카메라를 구하는 경로가 해외 직구 사이트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탐지업체를 운영 중인 김모 씨(55)는 “과거에는 국립전파연구원 인증을 받은, 펜이나 손목시계 등으로 위장한 카메라가 많았는데 최근엔 해외에서 들어오는 미인증 변형 카메라가 90% 이상”이라고 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한 씨가 사용한) 충전기 어댑터형 카메라는 오히려 찾기 쉬운 편”이라며 “사무용품이 많은 사무실에서 카메라를 찾으려면 정말 모든 물건을 의심해야 해서 어렵다”고 했다. 변형 카메라 수입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초소형 특수카메라’ 품목 분류를 신설한 2022년엔 약 7465kg에 해당하는 변형 카메라가 수입됐다. 금액으론 242만2000달러(약 32억 원) 규모다. 지난해에는 약 299만 달러(약 40억 원) 상당의 변형 카메라 1만2818kg이 국내에 수입됐다. 올해 1분기(1∼3월) 수입량은 4832kg으로, 이 추세가 이어지면 지난해보다 수입량이 많아지게 된다. 카메라의 형태가 다양해진 만큼, 이를 악용한 범죄도 성범죄에 그치지 않고 있다. 1일 대전지법은 2022년 7월경 대전 중구의 한 기원에서 내기 바둑을 두며 단춧구멍 형태의 변형 카메라를 통해 훈수를 받는 방식으로 사기 범행을 저지른 일당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1월엔 아파트 복도 천장에 화재감지기 형태의 변형 카메라를 설치해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금품을 훔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변형 카메라 관리법, 또 국회서 폐기 우려 변형 카메라의 제조와 수입, 구매 등 이력을 관리하고 미등록 변형 카메라를 취급하면 처벌하는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2015년 19대 국회 때 처음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총 4건 발의됐지만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카메라 관련 기술이 자동차, 의료,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산업계의 우려 때문이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카메라 관련 기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변형 카메라가 범죄에 악용될 위험이 큰 것은 사실”이라며 “매매 이력의 관리를 강화하는 등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변형 카메라를 판매한 업체의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법원 결정도 나오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지난해 12월 한 50대 남성이 수건걸이 등으로 위장한 카메라로 미성년자를 불법 촬영하자 피해자 측이 해당 카메라를 판매한 사이트 아마존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아마존 측은 “판매자가 사용 목적은 미처 예상할 수 없다”며 소송 각하를 요청했지만 법원은 “잠재적 위험성을 미리 알았을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서울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 다른 지역 경찰이 수사 중이던 보이스피싱 관련 수사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체포됐다. 충북경찰청 형사기동대는 1일 오전 서울 강북구 강북경찰서를 약 4시간 동안 압수수색하고 형사과 소속 경위를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해당 경위는 경찰 내부망에 접속해 보이스피싱 사건 관련 수사 정보를 피의자에게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 등) 등을 받고 있다. 충북청은 관내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사건을 수사하던 중 해당 경위가 수사 정보를 유출한 정황을 포착한 뒤 이날 강제수색에 나섰다. 충북청은 해당 경위의 휴대전화 등 압수물을 분석해 수사 정보를 유출한 이유와 과정 등을 확인하고 있다. 정보를 유출한 피의자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충북청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인천 부평경찰서와 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2명도 보이스피싱 조직 측의 부탁을 받아 경찰 내부망에서 조직원들의 지명수배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직위 해제됐다.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몰카(불법 카메라) 사러 누가 여기로 와요. 알리(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에서 직구(직접 구매)하지.”1일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내 한 전자제품 판매장. 1980년대부터 이곳에서 장사했다는 유모 씨(67)가 이렇게 말했다. 상가 내부엔 ‘몰래카메라’ 등이 적힌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실제로 진열해둔 매장은 찾기 어려웠다. 다른 점포 사장 윤모 씨(58)도 “정부가 계도를 많이 해서 여기선 (변형 카메라를) 잘 안 판다”라며 “인터넷에서 사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실제로 이날 취재팀이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이커머스에서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니 변형 카메라가 수십 종 팔리고 있었다. 유튜버 한모 씨(49·구속)가 4·10 총선을 앞두고 사전투표소 등 41곳에 설치한 것처럼 충전기 어댑터로 꾸민 카메라도 2만~4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정부가 국내 전자제품 판매장에서 계도에 집중하는 사이, 해외 사이트에서는 클릭 몇 번이면 변형 카메라를 직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3일 안에 무료배송’… 해외 사이트서 ‘몰카’ 직구변형 카메라를 파는 해외 사이트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국 한 사이트는 향수와 디스펜서, 화분, 휴지곽 등으로 위장한 변형 카메라를 50종 넘게 홍보하고 있었다. 커피컵 뚜껑에 변형 카메라를 설치해 16GB(기가바이트)의 저장 공간을 제공한다는 한 제품은 276유로(한화 약 40만 원)에 구매가 가능했다. 이 쇼핑몰은 “한국은 3일 만에 배송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불법 카메라 탐지업자들은 변형 카메라를 구하는 경로가 해외 직구 사이트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탐지업체를 운영 중인 김모 씨(55)는 “과거엔 정부 인증을 받은, 펜이나 손목시계 등으로 위장한 카메라가 많았는데 최근엔 해외에서 들어오는 미인증 변형 카메라가 90% 이상”이라고 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한 씨가 사용한) 충전기 어댑터형 카메라는 오히려 찾기 쉬운 편”이라며 “사무용품이 많은 사무실에서 카메라를 찾으려면 정말 모든 물건을 의심해야 해서 어렵다”고 했다.변형 카메라 수입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초소형 카메라’ 품목 분류를 신설한 2022년엔 약 7465kg에 해당하는 변형 카메라가 수입됐다. 금액으론 242만2000달러(약 32억 원) 규모다. 지난해에는 약 299만 달러(약 40억 원) 상당의 변형 카메라 1만2818kg이 국내에 수입됐다. 올해 1분기(1~3월) 수입량은 4832kg으로, 이 추세가 이어지면 지난해보다 수입량이 많아지게 된다.● 변형 카메라 관리법, 또 국회서 폐기 우려변형 카메라의 제조와 수입, 구매 등 이력을 관리하고 미등록 변형 카메라를 취급하면 처벌하는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2015년 19대 국회 때 처음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총 4건 발의됐지만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카메라 관련 기술이 자동차, 의료,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산업계 우려 때문이었다. 변형 카메라는 범죄에 악용될 위험이 큰 만큼 매매 이력 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선 변형 카메라를 판매한 업체의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법원 결정도 나오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지난해 12월 한 50대 남성이 수건걸이 등으로 위장한 카메라로 미성년자를 불법촬영하자 피해자 측이 해당 카메라를 판매한 사이트 아마존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아마존 측은 “판매자가 사용목적은 미처 예상할 수 없다”며 소송 각하를 요청했지만 법원은 “잠재적 위험성을 미리 알았을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4·10총선 사전투표를 앞두고 전국 18곳의 사전투표소와 개표소, 본투표소 등에서 불법 카메라가 발견되면서 유권자들이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2년 전 대선 사전투표 당시 ‘소쿠리 투표’ 등 관리 부실의 난맥상이 또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경남 양산시와 인천 일대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40대 극우 성향 유튜버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유튜버 1명의 일탈로 볼 사안이 아니라 사전투표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은 선관위의 총체적 관리 부실”이라고 지적했다.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전투표소. 동아일보 취재진이 이날 방문한 주민센터는 사전투표소로 공지된 2층 다목적회의실까지 올라가는 데 제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2층 회의실의 철문 한 쪽이 활짝 열려있어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서울 시내 사전투표소 5곳을 찾아가본 결과 제대로 통제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오모 씨(54)는 “사전투표소로 지정된 곳이 누구나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장소인데, 상주하는 공무원도 없고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사전투표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긴 한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선관위는 “투표설비가 설치되기 전까지 주민센터 건물의 관리 책임 주체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며 안일한 태도를 보여왔다. 전국 곳곳에서 불법 카메라가 발견된 사실이 드러나자 29일 오후에서야 “전국 모든 투·개표소의 불법 시설물 특별 점검을 실시한다”고 뒷북 대응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전투표소 관리 부실이 선관위와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정주의적 발상에서 빚어진 사태라고 지적했다. 전학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거는 선관위 본연의 사무인데도 이런 일이 벌어질때마다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길 때가 많았다”며 “선거와 관련한 업무는 선관위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중앙선관위를 항의 방문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별도 입장을 내진 않았다.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체포된 유튜버 한모 씨(49)는 이날 경찰 조사에서 “선관위가 사전 투표율을 조작하는 걸 감시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서울 강서구와 인천 연수구와 부평구, 울산 북구의 사전투표소 등에 설치된 불법 카메라를 확인하고 총 18곳에 대해 동일범의 소행인지 확인하고 있다. 송유근 기자 big@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양산=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경찰이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사전투표소와 본투표소, 개표소가 설치될 예정인 경남 양산과 인천 지역 행정복지센터 등에 불법 카메라 11개를 설치한 40대 유튜버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 유튜버가 울산 사전투표소 1곳과 서울 강서구 1곳에도 카메라를 설치한 것으로 의심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범행을 도운 공범을 추적하는 데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인천 논현경찰서는 28일 오후 9시 10분경 경기 고양시 한 주택에서 유튜버 한모 씨(49)를 긴급체포했다고 29일 밝혔다. 한 씨는 남동구 장수·서창동, 서창2동, 계산 1·2·4동 등 인천 지역 사전투표소로 지정된 행정복지센터 5곳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건조물침입, 통신비밀보호법 위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불법 카메라 설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서 주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한 씨를 체포했다.한 씨는 평소 개표기 조작과 대리 투표 등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온 보수 성향 유튜버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 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사전투표에서 투표율 조작과 같은 부정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또 한 씨가 다른 지역에서도 카메라를 설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한 씨는 경남 양산시 덕계동, 양주동, 평산동, 물금읍 등 사전투표소로 지정된 4개 행정복지센터와 본투표소 및 개표소로 지정된 양산문화원과 양산종합운동장실내체육관 등 6곳에도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양산지역 설치 장소 6곳 모두 강당 정문 앞 콘센트에 멀티탭과 카메라를 결합시키는 동일한 수법으로 카메라를 설치하고, 각도는 강당 내부를 비추도록 했다”며 “어댑터로 위장된 카메라에 통신사 라벨이 붙여져 있어 일반인들이 카메라라고 쉽게 단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한 씨와 같은 차량을 타고 이동한 1명에 대해서도 신원 확인에 나서는 등 추적 중이다. 경찰은 또 이날 울산과 서울 강서구에서 발견된 불법 카메라도 한 씨가 설치한 것인지 수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0분경 울산시 북구 농소3동 행정복지센터 1층 사전투표소 내에서 불법 카메라 1대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수법 및 카메라 기종을 봤을 때 동일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화곡8동 주민센터에서도 불법 카메라가 발견돼 한 씨의 소행인지 확인 중이다. 한 씨는 지난해 10월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한 사전투표소에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영상을 확인해 혐의 입증이 가능한지 추가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양산·울산=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28일 오전 4시에 시작된 서울 시내버스 총파업이 11시간 만에 종료됐지만,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새벽에 출근하는 건물 청소원과 경비원, 일용직 근로자 등은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에서 10년 넘게 청소미화원으로 근무해 온 김모 씨(70)는 이날 출근길에 일당 5만5000원의 절반에 가까운 2만6000원을 내고 택시를 타는 ‘사치’를 부려야 했다. 평소 타던 버스가 파업으로 멈췄기 때문이다. 김 씨는 “버스가 안 다닐 걸 어제 알았으면 차라리 건물 지하 4층 휴게실에 가서 잤을 텐데요”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가 평소 타는 640번 버스는 지하철 첫차(오전 5시 40분)가 다니기 전인 오전 4시 20분부터 양천구 신월동과 강남구 강남역을 오간다. 고 노회찬 의원이 “강남 빌딩에 출근하지만 투명인간으로 사는 청소근로자가 타는 버스”라고 한 6411번(양천구 신정동∼강남구 선릉역)처럼 도시 하층민에게 유일한 새벽 출근 수단이다. 민생행보에 나선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해 1월 타고 나서 첫차 시간을 오전 3시 50분으로 앞당긴 8146번(노원구 상계동∼강남구 강남역) 버스 등도 운행을 멈췄다. 일자리를 잃을까 봐 불안에 떠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양모 씨(70)는 “지하철 첫차를 기다리느라 30분 지각했다. 해고당할까 봐 식은땀을 흘렸다”고 했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새벽에 인력소개소에 집결하지 못하면서 공사가 중단된 현장도 있었다. 광진구 자양동 한 인력개발소는 이날 일용직 30명 중 20명이 출근하지 못해 공사 현장 15곳 중 9곳에 인력을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건 바둑밖에 없어요. 그 묘미가 큽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젠 노인들만 바둑을 두네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기원. 43년째 바둑을 두고 있다는 조원국 씨(73)의 말이다. 기원에는 노인 20명이 두세 명씩 모여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인 명지대 바둑학과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했다. 명지대는 25일 교무회의를 열고 바둑학과 폐과를 결정했다고 27일 밝혔다. 1997년 개설된 명지대 바둑학과는 한종진 9단, 양건 9단, 이민진 8단 등 19명의 프로 기사를 배출했다. 올해 정원은 21명으로, 전체 재학생은 유학생을 포함해 100명이 넘는다. 하지만 학교 측은 경영 악화와 바둑을 두는 젊은층이 감소하는 이유 등으로 폐과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대한바둑협회에 따르면 바둑을 둘 줄 아는 인구의 추산 비율은 2000년 32%에서 올해 19.4%로 떨어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21억 원이었던 대한바둑협회 지원 예산을 올해 전액 삭감했다. 유튜브 ‘쇼츠’(1분 미만의 짧은 동영상) 등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바둑은 접근하기 어려운 취미로 통한다. 직장인 김도연 씨(26)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시대”라며 “별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서 머리 쓰며 해야 하는 바둑에는 관심이 잘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결정으로 인해 한국의 바둑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신진서 9단이 중국 상하이에서 끝내기 6연승으로 세계 바둑의 새 역사를 쓴 가운데, 이 흐름을 역행할 수 있다는 것. 학과 폐지 확정 이후 국내 바둑계에서는 이를 두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바둑학과 학생회장 김한결 씨(24)는 “학생들은 폐과 확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학생회 차원에서) 폐과 반대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둑학과 교수들 역시 이날 오후 1시 30분경 관련 회의를 열었다. 남치형 바둑학과 교수는 “일본, 중국 쪽에서 유학생들이 많이 오고 있는 상황에서 폐과를 결정한 게 굉장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명지대 바둑학과에는 독일과 프랑스, 브라질 등 세계 각국 출신 학생이 다녔다. 헝가리 출신의 한국기원 프로 초단인 디아나 사범도 유럽과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2005년 명지대로 유학 온 후 2008년 프로 기사가 됐다. 대한바둑협회는 27일 “바둑학과 진학을 희망하던 학생들의 꿈이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관련 기관과 협의해 대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건 바둑밖에 없어 그 묘미가 큽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는 것 같아요. 노인들만 바둑 둡니다.”27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기원. 43년째 바둑을 두고 있다는 조원국 씨(73)의 말이다. 기원에는 노인 20명이 두세 명씩 모여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이를 분위기를 반영하듯 세계 유일 바둑학과인 명지대 바둑학과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했다. 명지대는 25일 교무회의를 열고 바둑학과 폐과를 결정했다고 27일 밝혔다.1997년 개설된 명지대 바둑학과는 한종진 9단과 양건 9단, 이민진 8단 등 19명의 프로 기사를 배출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경영 악화와 바둑을 두는 젊은 층이 감소하는 이유 등으로 폐과를 결정했다. 2022년 처음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마인드스포츠(경영)학과’로 개편될 예정이었으나, 점차 폐과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재학생과 교수들은 반발하고 있다. 바둑학과 학생회장 김한결 씨(24)는 “학생들은 폐과 확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학생회 차원에서) 폐과 반대 운동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바둑학과 교수들 역시 이날 오후 1시 30분경 관련 회의를 열었다. 남치형 바둑학과 교수는 “일본, 중국 쪽에서 유학생들이 많이 오고 있는 상황에서 폐과를 결정한 게 굉장히 유감스럽다”고 했다.실제 명지대 바둑학과에는 독일과 프랑스, 브라질 등 세계 각국 출신 학생이 다녔다. 헝가리 출생의 한국기원 프로초단인 디아나 사범도 유럽과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2005년 명지대로 유학온 후 2008년 프로 기사가 됐다.한국의 바둑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 신진서 9단이 중국 상하이에서 끝내기 6연승으로 세계 바둑의 새 역사를 쓴 가운데, 이 흐름을 역행할 수 있다는 것. 학과 폐지 확정 이후 국내 바둑계에서는 학과 폐지를 두고 반대하는 목소리 이어졌다.유튜브 ‘숏츠(1분 미만의 짧은 동영상)’ 등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바둑을 외면하고 있어 위기가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직장인 김도연 씨(26)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만 봐도 시간 가는 모르는 시대”라며 “별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이 많아서 머리 쓰며 해야 하는 바둑에는 관심이 잘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대한바둑협회에 따르면 바둑을 둘 줄 아는 인구의 추산 비율은 2000년 32%에서 올해 19.4%로 떨어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21억 원였던 대한바둑협회 지원 예산을 올해 전액 삭감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사활(돌이 죽고 사는 법) 등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어 여전히 매력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1월 대한바둑협회가 발표한 ‘바둑에 대한 국민인식 및 이용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바둑을 두지 않는 응답자 중 62.9%가 ‘바둑을 배울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대한바둑협회는 27일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은 폐과 결정에 강력히 유감을 표한다”며 “바둑학과 진학을 희망하던 학생들의 꿈이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관련 기관과 협의해 대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한국기원은 “2022년부터 반대 성명을 내는 등 폐과 재고 의견을 여러 방면으로 전달했다”며 “최근 프로 기사들이 맹활약해 바둑의 위상이 높아진 시점에서 폐과 결정이 안타깝다”고 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2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노숙 집회를 벌였다. 전장연은 27일 오전에도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탑승 시위를 벌이기로 해 출근길 혼잡이 예상된다. 전장연은 26일 오후 2시 1호선 서울역 일대에서 ‘326 전국장애인대회’와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을 개최했다. 이들은 오후 3시경부터 세종대로 2개 차로를 점거한 채 서울시청 동편까지 1시간가량 행진했다. 행진 여파로 해당 도로에선 차량이 평균 시속 9km로 통행하는 등 정체했다. 이후 전장연 활동가 약 1000명(경찰 추산)은 오후 4시부터 서울시청 동편에서 ‘야간 문화제’를 진행했다. 이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서울형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 등을 요구했다. 전장연 측은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장애인 권리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려오지 않는다”며 “(집회 현장 등에서) 강제 퇴거당하는 일이 심해지더라도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에 대한 요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참석자 중 약 300명은 오후 9시경부터 1호선 시청역 역사 내에서 노숙했다. 전장연은 노숙 집회 다음 날인 27일 오전 8시부터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탑승 시위를 이어갈 방침이다. 전장연은 이날 오전 8시경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도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했다. 이날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 등 직원 60여 명을 혜화역 안에 배치했고, 열차는 정상 운행됐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27일에도 안전을 위해 안전요원 60여 명을 배치해 승객 이동을 도울 것”이라며 “안전 상황에 따라 열차 무정차 통과와 역사 내 펜스 설치도 가능하다”고 밝혔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민원 릴레이’에 참여하면 치킨 경품을 드려요.” 지난달 경기의 한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파트 인근 도로 보수 등을 관할 시청과 국토교통부에 요구한 뒤 이를 게시판에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치킨 주문 교환권을 나눠준다는 내용이었다. 게시자는 민원 접수 사이트로 연결되는 QR코드까지 첨부했다.● 해운대구, 전국 최초로 직원 이름 비공개 최근 경기 김포시의 한 9급 공무원(주무관)이 온라인에 신상이 공개되는 이른바 ‘좌표 찍기’ 방식으로 민원에 시달린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악성 민원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로도 특정 지역 주민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사안으로 여러 차례 민원을 접수시키는 일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취재팀이 포털 사이트에서 ‘민원 릴레이’를 검색하자 이처럼 집단 민원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수십 건 검색됐다. 그중엔 공무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며 전화를 유도하는 글도 있었다. 경북의 한 구청에서 일하는 주무관도 이달 초 관내 한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에 전화번호 등이 공개됐다. 해당 주무관은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하루에도 30통 넘게 받느라 업무가 마비됐다”며 “대부분 구청이 해결할 수 없는, 개인 간 계약 갈등을 중재하라는 내용이어서 무력감이 들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임용된 지 5년도 안 돼 퇴직한 공무원은 2019년 6663명에서 2022년 1만3321명으로 2배로 늘었다. 주로 일선에서 민원 처리 등을 담당하는 저연차 공무원들이다. 25일 부산 영도구청에선 한 70대 주민이 ‘주택 보수를 요청했는데 들어주지 않는다’며 공무원을 흉기로 위협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공무원 신상털이’가 문제가 되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부산 해운대구는 21일 홈페이지 내 공개된 행정조직도에서 담당 직원의 성만 남기고 이름을 모두 ‘○○’으로 익명 처리했다. 또 직원 이름과 사진이 담긴 좌석배치표를 청사에서 모두 철거했다. 이런 정보보호 조치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이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악성 민원에 악용되는 걸 방지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美선 공무원 신상 유포 시 48시간 내 삭제해야 행안부는 26일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온라인으로 마음건강을 자가 진단해본 뒤 상담이나 병원 진료를 연계해주는 내용이다. 민원 과정에서 폭언이나 폭행 등의 위험에 자주 노출되는 직원은 민원 업무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고 승진 시 가점을 부여하도록 권장하기로 했다. 또 민원 공무원이 안전한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17개 기관이 협업하는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4월 중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다만 이런 조치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우므로 공무원의 신상을 무분별하게 유포하는 움직임 자체를 제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유포 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이 적용되지만, 실제론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신상 유포자 등을 엄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선 공무원 개인정보의 온라인 유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행정기관이 소속 공무원의 개인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기 위해선 미리 허락받아야 하고, 만약 해당 정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유포되면 SNS 운영 업체는 피해 신고를 접수한 지 48시간 이내에 이를 삭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업체가 벌금을 물거나 해당 공무원에게 위자료를 줘야 한다. 전문가들은 민원 편의성을 유지하면서 공무원들의 ‘숨을 권리’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름 역시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공무원이 위축될뿐더러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업무와 내선 번호만 공개하고, 추가적인 정보를 유출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최대 1000%의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비상장 주식이 곧 상장된다고 투자자들을 속여 100억 원대 투자금을 빼돌린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26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2021년 1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피해자 548명을 상대로 175억 원 상당을 가로챈 비상장주식 판매 사기 범죄집단 총책 등 45명을 검거하고 이 중 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 일당은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은 채 ‘고성능 전기모터 전문기업’을 표방하는 주식회사 법인 대표와 수익을 나누기로 공모하고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일당은 투자자에게 가짜 상장 청구심사 승인서 등 조작된 기업 정보를 제공하면서 ‘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면 500∼1000%의 수익이 날 것’이라는 취지로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경제지와 경제방송 등에 사실과는 다른 내용의 기사형 광고를 내보내 범죄에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투자 권유 과정에서 상장 예정, 단기간 고수익 등 투자자를 현혹하는 문구를 사용하는 경우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고 밝혔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민원 릴레이’에 참여하면 치킨 경품을 드려요.”지난달 경기의 한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파트 인근 도로 보수 등을 관할 시청과 국토교통부에 요구한 뒤 이를 게시판에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치킨 주문 교환권을 나눠준다는 내용이었다. 게시자는 민원 접수 사이트로 연결되는 QR코드까지 첨부했다.● 해운대구, 전국 최초로 직원 이름 비공개최근 경기 김포시의 한 9급 공무원(주무관)이 온라인에 신상이 공개되는 이른바 ‘좌표 찍기’ 방식으로 민원에 시달린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악성 민원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로도 특정 지역 주민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사안으로 여러 차례 민원을 접수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26일 취재팀이 포털 사이트에서 ‘민원 릴레이’를 검색하자 이처럼 집단 민원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수십 건 검색됐다. 그중엔 공무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며 전화를 유도하는 글도 있었다. 경북 지역의 한 구청에서 일하는 주무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달 초 관내 한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에서 벌인 집단 민원의 표적이 됐다. 해당 주무관은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하루에도 30통 넘게 받느라 업무가 마비됐다”며 “대부분 구청이 해결할 수 없는, 개인 간 계약 갈등을 중재하라는 내용이어서 무력감이 들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임용 5년 미만 퇴직 공무원은 2019년 6663명에서 2022년 1만3321명으로 2배로 늘었다. 주로 일선에서 민원 처리 등을 담당하는 저연차 공무원들이다. ‘공무원 신상털이’가 문제가 되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구책을 찾아나섰다. 부산 해운대구는 21일 홈페이지 내 공개된 행정조직도에서 담당 직원의 성만 남기고 이름을 모두 ‘○○’으로 익명 처리했다. 또 청사에 설치됐던, 직원 이름과 사진이 담겨있는 좌석배치도를 모두 철거했다. 이런 정보보호 조치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이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악성 민원에 악용되는 걸 방지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美선 공무원 신상 유포시 48시간 내 삭제해야행안부는 26일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온라인으로 마음건강을 자가 진단해본 뒤 상담이나 병원 진료를 연계해주는 내용이다. 민원 과정에서 폭언이나 폭행 등의 위험에 자주 노출되는 직원은 민원 업무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고 승진 시 가점을 부여하도록 권장하기로 했다. 또 민원 공무원이 안전한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17개 기관이 협업하는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4월 중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다만 이런 조치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공무원의 신상을 무분별하게 유포하는 움직임 자체를 제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근본적으로는 신상 유포자 등을 엄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미국 일부 지역에선 공무원 개인정보의 온라인 유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행정기관이 소속 공무원의 개인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기 위해선 미리 허락받아야 하고, 만약 해당 정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유포되면 SNS 운영 업체는 피해 신고를 접수한 지 48시간 이내에 이를 삭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업체가 벌금을 물거나 해당 공무원에게 위자료를 줘야 한다.전문가들은 이처럼 민원 편의성을 유지하면서 공무원들의 ‘숨을 권리’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름 역시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공무원이 위축될뿐더러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업무와 내선 번호만 공개하고, 추가적인 정보를 유출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참가인원 뻥튀기 집회’ 몸살 봄이 되면서 날씨가 풀리자 각종 단체가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동아일보가 이달 서울 도심에서 3000명 이상 참석하겠다고 신고한 집회 4곳의 현장을 둘러본 결과 1만 명 규모로 신고한 집회에 불과 경찰 추산 70명(주최 측 추산 200명)만 참석하는 등 신고 인원에 미치지 못하는 ‘뻥튀기 집회’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는 존중하되, 참가자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집회 신고에 대해선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20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북문 앞 한강대로. 보수성향 단체 신자유연대가 참가자 1만 명 규모로 신고해 점거해놓은 편도 2개 차로에는 빈 의자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머지 편도 3개 차로에선 차량 정체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집회 참가 인원은 경찰 추산 70명(주최 측 추산 200명)이었지만, 실제 참가자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신고 인원의 1%도 채우지 못한 집회 때문에 1시간가량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야외 활동이 늘어나는 봄철을 맞아 각종 단체의 집회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집회 인원과 시간을 실제보다 크게 차이 나게 신고하는 집회 사례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되다 보니 제재할 방법도 없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고의성이 인정되는 뻥튀기 집회의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텅 빈 거리에 시민 불편만 가중돼 이날 신자유연대 집회는 같은 날 오후 3시경부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금속노조가 중구 숭례문에서 이곳으로 행진해오는 집회에 맞불을 놓기 위해 열렸다. 동아일보가 9∼20일 ‘3000명 이상 참가하겠다’고 신고한 주요 집회 4곳의 현장을 취재한 결과 모두 인원과 시간이 경찰 추산 인원, 실제 집회 시간을 넘어서는 범위에서 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4곳 중 2곳은 경찰 추산은 물론이고 주최 측 추산 참석 인원마저 신고 인원보다 적었다. 민노총 금속노조 집회는 무대 설치 등을 이유로 본집회 시간보다 4시간 전인 오전 10시부터 열겠다고 신고하고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 편도 3개 차로를 사용했다. 평일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집회로 인해 인근 버스정류장 3곳은 상당 시간 이용할 수 없었다. 주부 김모 씨(56)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어떡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진보성향 단체 모임인 전국민중행동은 9일 오후 3시경부터 1시간 반가량 집회를 열고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세종대로 편도 전 차로를 점거했다. 집회 신고 인원은 5000명 규모였지만 경찰 추산 700명(주최 측 추산 2000명)이 참석했다. 오전 10시부터 집회를 신고해 오전 11시 반경 무대 설치가 끝난 뒤 본집회가 열리기 전까지 3시간 넘게 이곳 도로는 텅 빈 채 방치됐다. 대학생 이모 씨(24)는 “도로가 비어 있길래 의아했다”고 했다. 이날 오후 2시 반경 인근 차로를 지나는 차량의 통행 속도는 시속 7∼9km에 그쳤다. 16일 촛불행동 집회 역시 1만 명 신고에 경찰 추산 3000명(주최 측 추산 1만 명)이 참가했다.● 전문가들 “고의성 있으면 과태료 부과해야” 집회 단체들은 당일 참가 인원을 추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고 인원이 많을 뿐 집회의 자유 내에서 허용된 권리라고 주장했다.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는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지 않느냐”며 “국내 집회는 신고제이며 허가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도 “조직 점검을 통해 예상한 만큼의 신고 인원을 내는데 사정상 못 오거나 더 오는 조직원도 있는 것”이라며 “무대 설치에 몇 시간이 걸릴지도 예측하지 못하기에 안정적 진행을 위해 시작 시간도 여유를 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내부적으로 집회 신고 단체의 과거 집회 전력 등을 토대로 실제 인원을 예측해 도로 통제 등을 집행하지만 현실적으로 신고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헌법 21조는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못 박고 있다. 이에 집회 및 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에 따라 국내 집회 신고는 미국 등과 달리 준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된다. 경찰 관계자는 “집시법에 따르면 통제 차로 등을 줄이는 제한은 반드시 서면으로 집회 주최자 등에게 송달해야 한다”며 “참가 인원이 적어도 집회나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이를 처리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고의적인 허위 신고 집회에 대해선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희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부득이하게 신고한 규모보다 실제 집회에 적게 참가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무조건 제재하는 규정을 둘 순 없다”면서도 “참가 인원의 50% 이하, 70% 이하 등 관련 기준을 지속적으로 충족하지 못할 경우 ‘뻥튀기’ 집회 신고로 판단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시행령이나 규칙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