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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갖는 권력은 무엇일까요. 관객·독자의 눈을 잡아두는 능력이 첫째겠지요. 몰입 권력입니다. 다음은 영향력. 즉 관객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거나 흔들게 하는 힘입니다. 사건을 폭로하거나 사물을 제대로 보여주는 힘입니다. 사진이 이 두 힘을 다 가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있어도 권력으로서의 사진은 성공작입니다.사진은 2차원 평면 시각 예술입니다. 회화작품과 비슷한 매체이자 구조입니다. 그래서 사진이 권력을 가지는 방식은 그림과 유사합니다. 문학과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사진 또한 구성의 4단계, 즉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이야기를 이끕니다. 회화가 작가의 상상과 관찰을 손과 붓으로 그려내는 것이라면, 사진은 기계에 의존합니다. 작가의 감정과 느낌 대신 카메라라는 ‘차가운’ 기계의 메커니즘과 렌즈를 통한 빛의 왜곡과 저장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사진이 이야기를 꾸며 시각작품이 되고, 그 결과로 권력을 만드는 과정을 기승전결로 풀어보겠습니다.① 기 (起·introduction) : 공간 설정사진가는 맨 먼저 특정한 소재를 특정 공간으로 한정해 앵글을 잡습니다. 사진은 개방성이 좋은 예술 같지만 오히려 공간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폐쇄합니다. 평면 4각 매체의 한계이기도 하고 공간이 제한돼야 관객들이 집중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집중력 높은 스릴러 영화는 대부분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소재입니다. ‘오징어게임’, ‘큐브’, ‘오리엔트 특급살인사건’(달리는 기차), ‘에어포스 원’(비행 중인 항공기), ‘나이브스 아웃-글래스 어니언’(외딴 섬) 등은 모두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② 승 (承·development) : 시간 포착공간과 시간. 난학(蘭學·네덜란드 학문) 연구가인 일본학자가 번역했으리라 짐작하는 단어들인데요, 저는 이 번역에 경의를 표합니다. 동양에선 ‘간(間)’이 공간과 시간을 모두 표현하는 뜻이긴 했습니다. 외양간 곳간 막간 등 우리말에도 쉽게 녹아있고요. 도교에선 사람 세상을 ‘인간(人間)’이라 했습니다. 개념 범위가 넓습니다. 영어로 Space, Time을 공간 시간, 즉 시공간이라고 쉽게 엮을 수 있을 만큼 둘은 상통하고 연결된 세계임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번역입니다.사진은 시·공간(3차원)을 동시에 포집해 2차원 평면 안으로 가두는 매체입니다. 공간과 시간의 미학입니다. 기계적으로는 빛이라는 물리적 소재를 활용하죠. 사진가가 선택한 공간 속이 폐쇄된 압박이라면 시간은 통제 가능한 기술입니다. 프리킥을 차는 축구선수를 생각해보시죠. 선수의 두꺼운 허벅지에서 강한 슈팅이 나옵니다. 이를 공간에 비유됩니다. 기본이 됩니다. 또 선수는 발목을 이용해 킥을 하죠. 기술입니다. 이 기술로 공을 통제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차게 됩니다. 힘에 기술이 추가되고 자신만의 궤적이 완성됩니다. 공간에 시간이 끼어들었으니 이제 사진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죠. 공이 날아갑니다.③ 전 (轉·turn) : 소재의 연결과 작가의 해석촬영이 끝났습니다. 남은 것은 사진가의 선택과 해설. 달랑 한 장만 찍는 사진가는 거의 없으니 사진 한 장을 선택하거나 여러 장의 사진을 선택해 엮고 제목을 달거나 설명을 붙이죠. 사진 안에는 여러 소재들과 구성요소들이 있습니다. 메인 소재와 배경, 부제를 나눠 가지면서 소재들끼리 권력관계를 갖습니다. 이 소재들은 연결돼 있습니다. 상반된 소재는 대칭을 이루고, 비슷한 소재는 하나의 주제가 됩니다. 물론 앵글을 잡을 때 사진가는 이미 주제와 부제를 대략 잡아놓지요. 영화나 연극, 드라마에선 등장 캐릭터들이 연결되고 갈등을 일으키며 이야기가 전개되죠. 사진도 이와 비슷합니다.제목과 설명은 대부분 텍스트(문자나 글)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질적인 상승이 일어납니다. ‘기-승’이 공간과 시간을 포집하는 물리적 과정이라면 ‘전’에선 다른 과정, 즉 텍스트가 개입하기 때문이죠. 닫힌 공간과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재료와 소재를 연결해 이야기를 구성하는데요, 일종의 ‘플러스알파(+α) 역할을 하면서 독자의 추론과 상상을 돕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당연히 개입되고요, 메시지 전달에 유리한 장치입니다. ④ 결(結·conclusion) : 여운(餘韻) - 관객의 해석기-승-전까지의 의사 결정은 작가가 했습니다. 이제 관객이 의사 결정할 시간입니다.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건을 상상하고 해석하게 합니다. 닫힌 공간에 한 순간만 포착된 제한된 소재만을 제공하지만 사람의 상상력은 오히려 여기에 여백을 만들어 버립니다. 순간으로 정지된 화면이 오히려 더 큰 상상력을 부르는 ‘여운의 역설’을 부르는 것이죠. 동영상보다 강한 정화상의 힘입니다. 관객은 2차원 평면 사진을 3차원으로 확장해 이해하고 추론하고 추측합니다. 4각 앵글 밖의 상황도 상상합니다.▽작가+공간+시간+소재+해설+독자가 연결되며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됩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시간과 소재를 포획하고 설명을 붙인 것이 작가의 의도인데요, 이것이 마지막 ‘결’ 단계를 거치며 독자의 해석으로 연결되고 사진 권력은 탄생합니다. 기-승-전-결의 모든 단계는 연결돼 있습니다. 매 단계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졌지요. 물론 결정권은 1차적으로 작가가 가졌습니다. 의도가 다분한 메시지는 한 방향으로만 흐를 테니까요. 처음 정해진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플랫폼은 처음 선점한 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지죠. 물론 가끔은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도 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관객이 의사결정을 다르게 하면 사진이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작가도 평론가도 미리 가늠하기 힘들죠.독자의 상상과 해석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사진을 보며 상황, 분위기, 소리 등을 5감을 동원해 상상하고 추론합니다. 이를 통해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이 바뀌며 집단적인 영향력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분은 “사진이 사실을 통해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글쎄요? 그러지 않을 수도 있죠. 진실을 폭로하는 건 별개의 문제죠. 사진가가 처음부터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촬영하지는 않으니까요. 관객이 해석한 진실 또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요.그렇다면 작가의 의도가 가장 중요할까요? 이 또한 아닙니다. 의도인지, 우연인지는 작가만 압니다. 우연의 결과를 작가가 발견한 뒤 나중에 해석해 기록할 수도 있죠. 작가는 사진으로 영향력(권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갖지만, 반대로 독자와 관객, 대중이 ‘해석의 권력’을 작가에게 끼칠 수도 있습니다. 상호작용이죠. 이 때문에 창작자들은 늘 이런 ‘(관객의)영향력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사진은 소재 즉 촬영의 대상에게도 권력을 쓰기도 합니다. 사진이 촬영되는 동안 모델이 긴장하기 때문이죠. 사물은요? 양자역학에서, 관찰자가 개입될 때 실험의 결과가 다르듯 어쩌면 사물도 촬영 순간에는 긴장상태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델이 긴장하는 이유는 사진의 힘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진가가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셔터 버튼을 잡은 사진가는 권력자 행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사진도 작가의 의도로 시작하지만 관객의 상상력으로 마무리되며 작가와 관객이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재탄생합니다. 작가만의 고유 권력이 아닙니다. 모든 사진가들이 겸손한 이유입니다.(필자 사정으로 ‘고양이 눈썹’은 당분간 쉽니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오는 2024년 개통되는 GTX-A노선의 경기 화성 동탄역~서울 강남구 삼성역 구간의 관통식이 29일 수서역에서 열렸습니다. 행사에 앞서 국토교통부는 GTX 철도 공사현장을 취재진에 공개했습니다. GTX는 지하 40m 이상의 대심도이기 때문에 깊이가 어떻게 느껴질까 궁금하실텐데요, 일단 오르락내리락에 시간이 다른 지하철 보다는 많이 걸립니다. GTX 역사는 기존 지하철 역의 환승역이기 때문에 지하철 승강장보다 한 층 이상 더 내려가니까요. 승강장에서 수서역 밖으로 올라오며 계단 구간을 4군데 지났는데요, 모두 세보니 공사용 계단을 포함해 총 198개 였습니다. 개통 후 계단은 200개가 훌쩍 넘을 듯 합니다.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옛 안내문을 훈장처럼 붙인 채 카페 마당을 비추는 통나무가 있네요. 나무 전봇대가 가득했던 그 시절 거리가 생각납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Sarcasm? Is that sarcasm? (비아냥? 그거 비아냥에요?)”“No, that‘s not sarcasm. I don’t use sarcasm. It‘s irritation.(비아냥 아니에요. 나는 비아냥거리지 않아요. 그건 짜증이에요.)”영화 ‘어카운턴트’(2016년)에 나오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대사입니다. 탈출 계획을 묻는 질문에 남주인공이 무뚝뚝하게 답하자 여주인공이 “그거 ‘Sarcasm’이냐”며 거칠게 항의합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남주인공의 화법을 이해 못 해 벌어진 상황이죠.불성실한 답변 태도에 ‘Sarcasm’이라며 화를 내는 장면을 보니 빈정대거나 비아냥거리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생활에선 이런 말투가 너무 많으니 한국영화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요. ▽“모멸감을 주기 딱 좋은 한국어의 특성이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다” - 소설가 장강명의 경향신문 2017년 2월10일자 인터뷰권력자를 돌려서 비꼬는 말투나 행위, 예술을 ‘풍자(諷刺)’라고 합니다. 부드럽게 찌른다는 뜻인데요,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무기입니다. 풍자는 재미있고 통쾌합니다. 반대로 강자가 약자를 풍자할 수는 없죠. 강자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요? 강자가 약자를 비아냥대면 우리는 그것을 ‘약자혐오’나 ‘협박’, 또는 ‘갑질’이라고 부릅니다.한국영화나 드라마에는 빈정대는 대사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정겹고 친한 사이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예의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놀려대며 ‘팩폭’ 직언을 하는데, 이는 동등한 관계이니 가능한 말투죠. 사회적인 갑을 관계, 수직 관계에서 이러면 곤란하죠. 빈정거리는 사람은 바로 꼰대가 되고요.어쨌든 소설가 장강명이 지적한대로 한국어의 특성 중 하나는 모멸감을 주기 쉽다는 것입니다. 빈정대고 비아냥거리며 비꼬기 좋은 언어라는 것이지요. 모멸감으로 연결됩니다. ▽“모멸은 ‘정서적인 원자폭탄’이라는 비유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이며, 평생을 두고 시달리는 응어리를 가슴에 남기기 일쑤다. ‘올드 보이’나 ‘디스커넥트’ 같은 영화에서 잘 묘사했듯이,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기억은 세상에 대한 증오 또는 자기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억울하게 수모를 당했다는 피해의식은 다른 집단에 대한 맹렬한 공격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 개인의 내면 그리고 사회에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두운 심연이 있다. 매일 접하는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규모와 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이유 없는 저주와 맹목적인 폭행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많은 경우 그 씨앗은 모멸감으로 밝혀진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의 책 ‘모멸감(굴욕과 존중의 감정사회학)’(2014년) 중에서비아냥과 빈정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모멸감이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이 김교수의 추론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장난을 넘어선 비아냥은 가랑비에 속옷 젖듯 모멸감을 마음에 켜켜이 쌓이게 합니다. 명절 때 모인 가족들끼리 싸우고 폭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평생에 걸쳐 들어온 비아냥 말투에도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면서 말입니다.▽“나는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 쓰기’ 운동을 한다. 사람들 간에 대등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상호존중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데는 존대-반말 체계의 탓이 크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존댓말을 쓰고 있다.”소설가 장강명은 위 인터뷰에서 존댓말을 제안합니다. 갑을관계, 지위고하, 나이서열 관계없이 존댓말을 쓰는 것이지요. 이미 대다수 회사들의 단체 업무 톡방에선 거의 모두 존댓말을 씁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니 불쾌하지는 않습니다. 농담 삼아 “어차피 우리는 아무도 존중해 주지 않으니 우리끼리라도 서로 존중해주자”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비꼬지 않는 유머도 좋습니다. 비꼬고 싶어서 정 입이 근질거린다면 스스로를 비꼬면 됩니다. 이른바 자학개그인데 잘만 하면 비웃음 본능을 해소하면서도 겸손하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반말과 비아냥에는 상대방을 깎아내려 비교우위를 확보하려는 속내도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만을 깎아내릴 뿐입니다. ▽책 ‘모멸감’ 후반부 문단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비아냥-빈정-모멸감-자존감 등은 모두 연결돼 있으며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친밀한 사람에게 더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합니다.“소통에는 정성이 중요하다. 정성이란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 몸으로 함께 있는 사람이 내게 온 마음을 기울여줄 때 자신의 존귀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경청하고, 하나 마나 한 말들만 늘어놓으면 자존감이 상한다. 그렇게 겉도는 만남과 대화 속에서 심성은 자꾸만 건조해지고 냉랭해진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사소한 부주의가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져 섭섭한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시가 22일 오후부터 자율주행 버스 2대를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경복궁 담장길을 끼고 2.6km를 달리는 것인데요, 일반 시내버스의 자율주행 운행은 국내 첫 사례입니다. 그동안은 일부 지역에서 소형 버스 등을 통한 시범운행 정도만 있었습니다.버스는 당분간 무료이며 예약 없이 탑승할 수 있습니다. 교통카드 단말기가 있긴 하지만 태그를 해도 요금이 부과되지는 않는다네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15분 단위로 운행하며 안전운행을 위해 관리요원 한 명이 운전석에 앉아 비상상황에 대비합니다. 또 버스 내 전좌석에 안전벨트를 설치했으며 입석은 금지됩니다. 탑승 인원은 장애인석 포함해 19명. 서울시는 “청와대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자율주행까지 체험할 수 있는 명물로 자리잡길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돌담 한편에 꽃과 나비가 담기니 한 폭의 ‘화접도(花蝶圖)’가 됐네요. 아직 봄이 오려면 한참 기다려야겠지요.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호랑이가 남긴 가죽 같은 모양의 차선. 2022년 호랑이의 해가 저무는데,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시나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장사라는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너무 준비를 안 하고 들어온 거에요.” (TV프로그램 ‘골목식당’의 요리연구가 백종원씨 멘트)“니가 소상공인 모르나 본데! 우린 다 목숨 걸로 해!” (영화 ‘극한직업’에서 주인공 고반장이 빌런 이무배와 격투를 벌이며 터뜨리는 대사)“회사가 전쟁터라고?…밖은 지옥이다.” (만화 ‘미생’ 대사)“제가 땀을 좀 많이 흘리죠? 이거 육수도 아니고 골수에요.” (한 여름, 취재 현장에서 만난 타 언론사 사진기자의 넋두리)“애들에게 용돈 주면서 늘 이렇게 말하죠. 이거 그냥 아빠 월급에서 주는 거 아니다. 아빠 목숨 값이야. 생명을 줄여 가며 번 돈이다.” (건강문제로 애먹는 50대 중소기업 본부장)▽일본에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가지 무언가를 엄청 열심히 한다’는 뜻이라고들 하는데요, 원래 ‘一所懸命(사무라이가 자신의 영지(領地) 한 곳을 목숨 걸고 지키는 것)’과 발음이 비슷해 변용됐고 ‘일생에 목숨 걸고’라는 뜻쯤으로 번역될 듯 합니다. ▽‘전쟁’, ‘목숨 걸고’, ‘지옥’, ‘죽을 각오’, ‘모가지 내놓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무서운 말들입니다. 일제 강점 36년과 6.25동란을 겪은 후유증일까요? 물론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남아 세계 최빈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상당한 수준으로 일으킨 것도 사실입니다. 전쟁에서 지면 3가지 길만 남습니다. 패잔병, 죽음, 포로…. 전술적으로 ‘질서 있는 후퇴’를 한 뒤 훗날을 도모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요.전투 용어는 언론 기사에도 난무합니다. 특히 정치 기사와 스포츠 기사에. ‘저격수 정치인’, ‘토트넘 삼각편대, EPL 맹폭’, ‘OOO 한마디에 XX당 초토화’, ‘폭탄 발언’, ‘홈런왕 OOO, 장거리포 본격 가동’….▽사회가 전쟁터가 되면 승자와 패자를 정확히 가르고 승자에게는 전리품을, 패자에겐 참혹한 결과만을 남겨줍니다. 실패자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승자와 패자의 서열을 정확히 나누고 사회적 혜택을 받거나, 반대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건강 문제로 사업을 접고 은퇴를 결심한 60대 지인이 있습니다. 이젠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천천히 노후를 생각해 보겠다고 하십니다. 만나 뵀을 때 너무 피곤해 보이셔서 연유를 물으니 “여행 계획을 짜느라 새벽3시까지 잠을 못 잤다”며 작업 중인 엑셀 파일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시간 단위 스케줄에, 맛집 탐방 계획까지 완벽하더군요. 제가 “여행 일정을 투자계획서처럼 준비하셨네요”라고 놀리자 그제서야 ‘아차’하시며 “옛날 버릇을 못 버렸다”고 하십니다. 여행 준비마저 전투 치르듯 하신 것이죠.백두대간 종주 완료. 제주 올레길 전 구간 순례 도전. 100대 명산 등정 완료.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인증….도시 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힐링하고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시작하는 이런 활동마저 무슨 게임 포인트 쌓듯, 도장 깨기 하듯 전투를 치르려 합니다. 심지어 완주 상황을 실시간으로 소셜미디어에 중계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을 만나야 하는 시간에도 타인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하며 ‘승전’ 소식을 전합니다. 재미삼아 시작한 취미 생활도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고요.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에게 이런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물론 이런 근성 때문에 성과를 이루신 것이겠지만요.▽그런데 이 ‘전쟁’를 거부하는 세대가 등장했습니다. 참전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반 강제적으로 다 끼어든 이 전쟁에 이제 참전을 회피하거나 징집 자체를 과감히 주도적으로 거부하는 운동이 벌어진다는 느낌입니다.‘취업 전쟁’과 ‘육아 전쟁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대표적입니다. 정식 취업하지 않고 임시직으로 일하다 몇 개월 내에 그만두거나 아예 프리랜서처럼 활동하는 노동자들이 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노동시장의 변화에 ‘긱 경제(Gig Economy)’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운 노동을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직업의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죠.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필요할 때만 고용하는 형태라 사업주에게만 유리할 것 같지만 오히려 이를 선호하는 근로자도 많다고 합니다. 배달라이더 같은 업종이 대표적이죠. “취업시장이 얼어붙어서“가 1차 원인이겠지만 기업들의 신입사원 1년 이내 퇴사율이 25% 안팎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도 크게 미련을 갖지는 않는 듯 합니다.출산·육아 전쟁 징집도 거부합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입니다. 여성만 출산 거부하는 것 아닙니다. 많은 남성들도 동참 중입니다. 기성세대의 ‘졸업→취업→결혼→출산→육아·교육’ 공식을 거부하는 것이죠.결혼도 미루거나 안 하고 설사 한다 해도 아이를 안 가집니다. 출산 전쟁은 곧 육아 전쟁, 교육 전쟁으로 이어져 평생에 걸친 장기전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죠. 아예 처음부터 참전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제 주변의 한 부부는 “아이가 이런 전쟁터에 억지로 내몰리는 꼴을 보면 더 마음이 아플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이와는 반대로 입시·취업전쟁에 승리해 이른바 ‘좋은 직업’을 얻은 분들은 기득권이라는 훈장을 받습니다. 심지어 이 전리품을 쥐고 사다리를 걷어차 서열을 공고히 하려들기까지 하는 일부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게 당연하다는 것이죠. 계약직의 정규직 변경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그 예라고 봅니다. 그런데 애초에 참전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전리품에 그다지 관심 없습니다. 이들을 일본에선 사토리 세대, 한국에선 득도 세대라 명명하기도 하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평균’의 수위가 너무 높아서다”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결혼과 출산을 위해서는 ‘보통’ 이상 수준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너무 높게 설정돼 있다는 뜻이죠. 남들이 보기에 괜찮아야 한다는 것이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모르니 그냥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주장입니다.경쟁심리를 버리기 힘들다면, 전쟁이나 전투까지는 하지 말고 수위를 좀 낮춰 단순한 게임을 하면 어떨까요. 도박 말고 게임이요. 야구처럼 게임은 오늘 지더라도 내일 경기가 계속 열리니까요. 꼴지라도 어떤가요. ‘찐팬’이라면 부처님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잖아요. 아무리 축구가 전쟁이라지만 ‘월드컵을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관람하면 지더라도 충분히 좋지요.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전기 없인 한시도 돌아가지 않는 전기 문명 시대. 탄소중립이 화두인 만큼 전기 절약 지혜도 필요한 때입니다. ―서울 마포새빛문화숲에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언북초교 후문에서 학생들이 국화를 헌화대에 올려놓고 있다. 2일 이 학교 후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의 이면도로에서 하교하던 이 학교 3학년 학생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굴뚝이 내뿜는 매연에 눈살이 찌푸려지다가… 앗, 지나가는 구름이네요. 오해해서 미안해요. ―서울 마포구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동아일보 지면의 ‘고양이 눈’ 애독자시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게재된 사진들 상당수는 골목에서 찍힌 것들입니다. 골목만큼 아기자기하면서도 다채로운 공간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숨결과 흔적이 늘 느껴지는 공간이죠. 그만큼 사진 소재도 많기 때문에 ‘고양이 눈’ 취재를 위해 저희는 골목길을 많이 걸어 다닙니다. ▽물론 요즘 골목엔 예전의 정취가 없다는 푸념도 많이 들립니다. 시대가 변하듯 골목도 변했죠. 요즘 골목이 옛날 골목같이 안 느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차도 많이 다니는데다 주차장처럼 됐기 때문이죠. 주차구역 선이 그려지며 ‘골목다움’을 잃었습니다. 좁아요. 어렸을 때 골목길은 광장 같이 느껴졌습니다. 몸집이 작은 어릴 때이기도 했지만 그때는 주차된 차들이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방범·주차 위반 CCTV 등도 곳곳에 있어 더 삭막하게 느껴집니다. 그 덕분에 범죄가 줄었지만요. 골목이 오직 이동만을 위한, 지나치는 공간이 된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골목은 생동감이 넘치는 공간임에는 분명합니다.▽옛날 골목은 교류와 소통, 놀이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웃주민들이 만나 대화를 하고 음식을 나눴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갖은 놀이를 즐겼습니다. 집이 확장된 구역이었죠. 마당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골목엔 하늘이 있었습니다. 비와 눈도 맞고요. 도시였어도 자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골목이 생활의 콤플렉스(복합)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이 역할을 지금은 도시계획에 의해 나뉜 구역이 대체합니다. 이웃간의 교류는 동네 카페(상업구역)에서 하고요,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여 놉니다. 놀이터 옆엔 동네 경로당이 같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을 느끼려면 곳곳에 조성된 공원 녹지를 찾으면 됩니다.도심 재개발이 끝나면 피맛골이 사라지고 아케이드로 바뀌어 있죠. 시장도 캐노피를 덮어 날씨를 알 수 없습니다.물론 요즘 ‘*리단길’ 같은 이른바 ‘핫플레이스’들은 여전히 골목의 몫이지만 지자체가 의도적으로 기획·개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자연 발생적인 골목에 대한 아쉬움도 남습니다.▽‘복합 공간’으로서의 골목을 현대도시에선 복도가 대신합니다. 새로 짓는 건물들은 복도가 널찍널찍합니다. 대형 쇼핑몰의 복도는 광장급이죠. 지붕을 투명하게 설계해 햇볕도 들어오게 합니다. 피맛골 자리를 대체한 아케이드도 복도로 봐야 합니다. 복도 양쪽엔 가게들이 나열돼 구경거리를 제공합니다. 출입이 자유롭습니다. 큰 아파트 단지엔 상가 건물이 있기 마련이고, 그 안에도 제법 넓은 복도가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골목의 역할은 상가 건물의 복도가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대형 건물에 개방된 복도, 즉 골목이나 광장 느낌을 주는 첫 건물로 보험회사 로이드의 영국 런던 본사 빌딩을 꼽습니다. 1978년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했는데요, 중정(中庭) 역할을 하는 건물 가운데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복도 한 편에서 맞은 편 복도를 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부서 직원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구조지요. 요즘엔 국내 대기업 본사나 쇼핑몰도 이런 형태로 많이 설계해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대형빌딩들이 복도를 이용해 옛날의 개방된 골목길을 재현하려는 이유는 교류와 소통 때문입니다. 복도가 이동만 하는 공간이라면 재미가 없죠. 다른 회사나 다른 부서 사람들을 조우하게 만드려는 의도입니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성과가 뛰어난 연구원들의 업무 패턴을 분석했는데,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무실 밖에서 연구와는 관련 없는 직원들을 만나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내식당, 탕비실, 복도, 엘리베이터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를 즐긴다는 겁니다. 가장 실적이 좋은 연구원은 환경미화원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며 근무시간에 ‘쓸 데 없는’ 잡담을 많이 했음을 발견했다고 하네요.이질적인 것들과 교류할 때 ‘스파크(불꽃)’ 이 튄다고 하죠.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즐겁고 신나는 일임은 분명하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접촉하며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봐야 시야가 넓어지겠죠. 요즘 공유 오피스의 로비는 매우 수다스런 공간이라고 하는데 맞는지요? ‘복도’가 대신하고 있는 현대의 골목도 ‘익명의 자유’를 넘어 사람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며 얽히고설키며 융합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봅니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9일 서울 강남구 은광여고에서 3학년 수험생들이 이날 받은 자신의 성적표를 확인하고 있다. 이번 수능도 수학 표준점수 최고점이 국어를 11점 웃도는 등 이과생에게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몸은 생활과 현실에 묶여 있지만 마음만은 늘 여행지에 먼저 가 있습니다. 여객기를 보면서 언젠가 출발을 꿈꿉니다. ―서울 양천구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밤이 되면 딱 이만큼까지 밝아요.” 노란 선이 말해주는 듯합니다. 덕분에 낮에도 어스름 저녁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네요. ―충남 공주에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새해에는 감사가 넘치게 해주세요.” 촛불 모양 카드에 소망을 적습니다. 이렇게 또 새해를 맞습니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전하려는 걸까요. 한옥 처마에 매달아둔 연분홍 매듭의 주인이 궁금해집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순신 : “되겠느냐!” 나대용 : (머뭇거리며) “그러다 다 죽습니다!” 이순신 : (단호하게) “된다고 말하게!” 나대용 : (결심한 듯) “예! 해보겠습니다!” - 영화 ‘명량’의 전투 장면 대사▽‘긍정의 힘’ ‘긍정 습관’ ‘자기 긍정감’ ‘긍정 사고’ ‘긍정의 코치 기술’ ‘매일매일 긍정하라’…. 시중에 나와 있는 ‘긍정’을 주제로 하는 자기계발서 제목들입니다.일부 뇌 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는 부정을 인식하지 못 한다고 합니다. 대표 사례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입니다. 스키선수들은 경기 전 마인드 컨트롤을 하거나 사전 연습을 할 때 기문(깃대)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문은 피해야 하는, 즉 부정의 대상이기 때문이죠. 부정을 의식하다보면 무의식적으로 긍정의 대상으로 착각해 부딪힐 가능성이 커진다고 합니다. 대신 지나야 할 ‘길’만을 응시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경기에서도 눈 위에 길의 굴곡을 파란색 페인트로 칠 해 놓습니다. 선수들이 코스를 벗어나는 사고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그런데, 과연 긍정은 부정보다 더 좋은 것일까요?▽TV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서는 출연자들이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합니다. 채집과 수렵이라는 원시적인 활동을 하는데요, 먹거리를 발견하면 먼저 ‘부정’부터 합니다. 먹으면 배탈이 나겠지?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잡으면 현지법을 어기는 것 아닌가? 등등. 현지 전문가가 ‘먹어도 된다’고 조언을 해 준 뒤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먹습니다. 선 부정, 후 긍정입니다.자연에서의 생존은 긍정보다 부정이 유리합니다. 덮어놓고 먹다보면 큰 일 나지요. 옆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면 일단 도망치는 게 낫습니다. 긍정보다는 부정이 자연의 리듬에 더 맞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부정은 야만이나 본능의 어법이고, 긍정은 진일보한 문명의 언어일까요?▽성경의 십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등 총 10개 계명 중 7개가 부정 명령입니다. ‘하라’ 보다 ‘하지마라’가 훨씬 많죠. 기독교는 순종과 긍정의 종교인데도 말이죠.‘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문제지만, 만약 ‘긍정이 먼저인가, 부정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이 있다면 저는 부정이 먼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부정은 힘이 셉니다. 어쩌면 우리는 부정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는 지도 모릅니다. 태초의 습성이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긍정을 하라는 가르침이 나오는 것이겠죠. 즉 부정을 부정하라는 것이죠.‘지하경제’인 사채업계에는 ‘고객’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합니다. 웃는 고객 vs 화를 내는 고객.돈을 빌리러 와서는 연신 싱글벙글하고 이자에 대해 설명하면 ‘예예’하며 다 수긍하는 사람과, “이런 고금리가 말이 되느냐”며 항의하고 짜증을 내는 손님입니다. ‘예스맨’에게는 돈을 내주지 말라는 것이 저 업계의 불문율이라고 합니다. 웃으며 돈을 빌려가는 이유는 어차피 돈을 갚을 마음이 없기 때문이죠. 짜증을 내는 사람은 돈을 빌리면서 상환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는 증거라네요. 그러니 고금리에 분노하는 것이고요.▽사진기자로 일하면서도 사실 긍정할 때보다 부정할 때가 많습니다. 취재현장에선 보여주는 것보다 숨기려는 것을 찾아야 하니까요. 보이면 믿는 것이 사진기자의 직업병 중 하나인데요, 그 성향을 극복하고 사실을 통한 진실에 접근하려면 일단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으려 애를 씁니다. ▽얘기를 할 때 그냥 흔히 버릇처럼 쓰는 말이 있죠. 영어로 ‘you know’, ‘well’. 일본인들은 ‘아노…’ 라는 말을 낳이 쓰시더군요. 한국어로는 ‘에… ’ ‘음…’ ‘글쎄…’ 도 있는데, 사실 한국사람들이 버릇처럼 많이 쓰는 단어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아니’입니다.“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아니, 밥은 먹었고?”“아니, 세상에 비가 이렇게 오다니…”‘아니’라는 부정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한국인입니다. 피해야 하는 버릇일까요? 우리는 이미 부정의 언어와 태도가 몸에 완전히 밴 사람들인가요? 긍정 문화의 가장 큰 폐해는 부정에 대해서까지 긍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권모술수’ 권민우 변호사 캐릭터는 권력자를 수긍하는 한편 본인도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부당한 지시도 ‘현실’이라며 긍정하고 약자의 어려움에는 고개를 돌리는 흔한 우리네.물론 이런 무조건적인 긍정의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성장해 나가죠. 드라마 마지막 회에선 ‘저도 좀 바보같이 살려고요’라며 ‘아니오’를 말하기 시작합니다.사실 긍정이 더 쉽습니다. ‘예’라고 대답하고 나면 사실 더 이상 할 말도 없습니다. ‘이건 먹어도 돼’라면 그냥 먹으면 되니까요. ‘아니오’라고 부정하면 더 어려운 상황이 닥칩니다. 아닌 이유를 설명을 해야 합니다. 먹어도 되는지 검증해야 합니다. ‘아니오’는 ‘왜’로 이어집니다. 그 다음엔 ‘그게 아니면 어떻게 할 건데?’로 또 이어집니다.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야기가 꼬리를 뭅니다. 발전합니다. 인류가 여태까지 진보하고 발전해 온 것도 “이건 아니야” “이래선 안 돼”라고 생각하고 외친 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 덕분 아닐까요?긍정이 쉬운 길이고, 부정이 어려운 길이라해도 굳이 힘든 길을 갈 필요 있을까요? 가야 하는 길이라면 가야겠죠. 괜찮습니다. 부정을 부정하면, ‘쉬운 길’ 긍정이 되니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강한 긍정이라고 국어시간에 배웠잖아요. 오늘도 저는 씩씩하게 ‘아니오’를 외쳐보렵니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줄기는 새끼줄 두르고 가지는 비닐 옷을 입었네요. 든든히 채비했으니 올겨울 추위가 두렵지 않겠네요.―서울 종로구 북촌에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30일 오후 7시경 서울 마포구 서교동 걷고싶은거리 광장에서 중국인 유학생 등 수십 명이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참가자들은 ‘시진핑 주석 하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중국어와 한국어로 “인권 개선” “언론 자유” 등의 구호를 외쳤다. 상당수 참가자는 중국에 있는 가족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모자와 선글라스, 팻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집회에 참여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