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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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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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202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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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황에도 무료입장 확대한 휘트니미술관 [영감 한 스푼]

    요즘 미국은 국경을 더 강화하고, 관세를 높이며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는 장벽을 더욱 탄탄하게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런 가운데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최근 수 년간 관람객을 향한 문턱을 낮춰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2024년에는 매주 금요일 밤(오후 5~10시), 매월 둘째주 일요일을 무료 관람일로 지정하더니,최근에는 25세 이하 관람객이라면 거주지와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입장료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휘트니 미술관 입장료는 30달러로 약 4만원. 뉴욕 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구겐하임도 비슷한 수준이죠.이것을 가능케 한 사람, 스콧 로스코프 관장을 25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휘트니는 젊은 미술관,젊은 관객이 더 만나야“로스코프는 2023년 11월 휘트니미술관장에 취임했습니다. 전임 애덤 와인버그 관장이 미술관을 20년 넘게 이끌던 자리를 넘겨 받았죠.2009년 큐레이터로 미술관에 합류한 뒤 재스퍼 존스 같은 원로 작가는 물론 제프 쿤스, 글렌 라이곤 등 동시대 작가의 활력 넘치는 전시를 기획하며 빠르게 승진했습니다.그런 그에게 “관장이 된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가장 변한게 무엇이냐”고 묻자, 자신있게 “25세 이하 관객에게 무료 개방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미술관에서 15년 넘게 일하면서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 바로 입장료 문제에요.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나, 이제 막 첫 일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에게 입장료는 큰 문턱이죠.관객 조사를 해봐도 비용이 부담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휘트니미술관이 100년 전 문을 열었을 때부터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곳이었으니, 젊은 관객이 더 쉽게 오도록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이런 정책은 좋은 뜻만 있다고 실현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입장료 수익을 대체할 재원이죠.로스코프 관장은 미술관 이사회의 부유한 후원자들은 물론 예술가까지 설득했습니다. 요즘 작품이 고가에 팔리는 줄리 머레투 같은 작가가 200만 달러를 이 정책을 위해 기부해 화제가 됐죠. 미술관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 싶다는 뜻에 공감해 사업가뿐 아니라 예술가도 발벗고 나선 것입니다.특히 25세 이하 무료 입장은 전세계 관객에게 해당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뉴욕 미술관 중 뉴욕 시민이나 학생에게 혜택을 주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로스코프 관장은 “언제라도 가능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라며 “특히 미술관이 오래 전부터 젊은 작가를 지원했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정치, 경제는 장벽 높여도문화는 활짝 연다로스코프 관장의 말처럼 휘트니미술관은 설립 될 때부터 ‘살아있는 미국 미술가’ 작품을 전시하고 소장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1930년 예술가 겸 후원자인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가 설립했고, 이 때 유럽 미술가에 밀려 설 자리가 없었던 에드워드 호퍼 같은 작가를 지원했죠.호퍼의 유산이 전부 미술관으로 오면서 호퍼 작품은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컬렉션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앤디 워홀, 알렉산더 칼더, 백남준, 장 미셸 바스키아 등 미국 미술의 중요한 작품들이 있습니다.흥미로운건 이 미술관이 ‘미국 미술’을 정의하는 방식입니다. 로스코프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민자도 미국 미술가로 본다”고 했습니다.“만약 어떤 작가가 잠시만 뉴욕에 살았더라도 그가 우리 커뮤니티의 단면을 담았다면 그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합니다.이를테면 일본 출신인 야스오 쿠니요시(1889~1953)도 당시 시민권이나 그린카드(영주권)가 없었는데 휘트니에서 회고전을 열었죠.지금 개인전을 열고 있는 크리스틴 선 킴이나 마이클 주, 바이런 킴 같은 한국계 미국 작가도 미국 미술을 구성하는 일원이죠.“로스코프 관장의 말에서 정치와 경제의 장벽은 높이더라도 문화 분야에서는 문턱을 낮춰 재능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미국 사회의 단면이 인상깊었습니다.로스코프가 말하는현대미술가와의 소통로스코프 관장이 ‘살아있는 예술가’의 개인전을 계속해서 열어 온 것도 제겐 흥미로운 대목입니다.미술관에 관련한 여러 업무로 한국을 찾았다는 로스코프 관장은 전날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피에르 위그 개인전도 찾아 위그를 만났다고 합니다.하버드 대학원생일 때 위그의 전시를 열었고, 그것이 자신의 생애 두 번째 전시였다고 하네요. 서울에서 위그를 만나 무척 신기하고 기뻤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어떤 사람들은 작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이야기도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아 온 작가들과 일하기를 좋아하는데요. 재스퍼 존스도 2001년에 처음 만났는데 이제 5월이면 95세 생일을 맞아요.“작가와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습니다.“비평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선은 작가의 작품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겠죠. 그런 가운데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챌린지 하거나 여러 방면으로 검증해주는 사람을 작가들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지금 미술관에선 크리스틴 선 킴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데요. 미국 미술에서 선 킴의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선 킴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주고 받는지, ‘소통’에 관한 아이디어를 깊이 파고드는 작가에요. 문자부터 구어, 수어까지 다양한 언어 체계들에 새로운 감정을 불어 넣고, 이것을 드로잉이나 영상, 조각 등 시각 언어로 표현하죠.또한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조건, 그것을 위해 만들어내는 체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때로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오류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요. 이것을 아주 즐거운 방식으로, 한편으로는 깊은 아이러니와 냉소를 담아, 또 어떤 때는 분노하며 풀어내기도 하죠.“그러면서 한국의 젊은 관객들도 꼭 미술관에 와서 7층의 ‘미국 미술 정수’를 담은 소장품을 보고 또 다른 전시장들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고 새로운 발견을 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 테라스에서 볼 수 있는 뉴욕의 상징적인 풍경들(허드슨 강, 자유의 여신상, 하이라인 파크)도 놓치지 말라고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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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막에 뜬 미래 행성… 현실 그 너머 무한 상상 세계로

    현대 미술가 임민욱의 최근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 ‘하이퍼 옐로우’가 28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임 작가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연 뒤 10년 만에 개최하는 개인전이다. 6·25전쟁이나 5·18민주화운동, 이산가족 찾기 방송 등 한국 현대사를 직접적으로 다뤘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양상의 작품들이 소개된다.전시는 입장하자마자 미술관 1층 전시실 전체를 사막처럼 만든 설치 작품 ‘솔라리스’가 관객을 맞는다. 코르크 바닥 위에 구불구불한 언덕을 만들고 황토 분말, 테라코타 가루를 뿌려 모래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각 언덕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칠해져 있거나, 종교를 연상케 하는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사이사이로 조명이 놓여 있는데, 일본 유명 사찰 ‘도다이지(東大寺)’ 법당의 평면도를 참고했다고 한다.옛것을 연상케 하는 종교와 미래 행성이 떠오르는 전시장 분위기의 상반된 요소가 뒤섞여 정체성이 뭔지 알 수 없도록 만든 방식은 임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2층 전시실 중앙에 있는 영상 작업 ‘동해사’는 일본 ‘불의 축제’와 ‘물의 축제’를 담은 영상이 좌우로 상영된다. 가운데에는 얼굴 11개의 보살 ‘십일면관음상’을 모티프로 한 애니메이션이 펼쳐진다. 좌우 영상에선 불과 물이 대립하고, 가운데는 과거와 미래가 섞인 모양새다.3층 전시실에선 흑과 백, 파랑과 분홍 등 상반된 색채나 형태를 대비시킨 회화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장 가운데 설치 작품 ‘정원과 작업장’은 작가가 작업실 진열장에 보관하던 여러 물건들을 가져와 만들었다. 이 작품 역시 검은 유리와 투명 유리를 교차해 올리고, 상판에는 하늘을 나는 까마귀 모형과 물 위에 띄우는 부표를 함께 배치했다.일본 철학자 우카이 사토시는 임 작가의 최근작들을 “과거를 상속하는 일의 어려움”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한국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에 적극 개입하는 작품을 선보이던 작가의 돌연한 변화가 이런 ‘어려움’과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진다.임 작가가 작가 노트에서 “관광객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언어적 소통 없이도 포용성과 자비를 베푼다”고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한 발짝 물러서서 뭔가 ‘의미를 지우려는’ 태도가 작품 곳곳에서 읽힌다. 미술관은 3월 마지막 주 ‘아티스트 토크’에서 임 작가와 우카이 사토시의 대담을 준비하고 있다. 4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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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객은 정치에 관심 없다”…현대사에서 한발짝 물러난 임민욱

    현대 미술가 임민욱의 최근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 ‘하이퍼 옐로우’가 28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임 작가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연 뒤 10년 만에 개최하는 개인전이다. 6∙25 전쟁이나 5·18민주화운동, 이산가족 찾기 방송 등 한국 현대사를 직접적으로 다뒀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양상의 작품들이 소개된다.전시는 입장하자마자 미술관 1층 전시실 전체를 사막처럼 만든 설치 작품 ‘솔라리스’가 관객을 맞는다. 코르크 바닥 위에 구불구불한 언덕을 만들고 황토 분말, 테라코타 가루를 뿌려 모래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각 언덕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칠해져 있거나, 종교를 연상케 하는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사이사이로 조명이 놓여 있는데, 일본 유명 사찰 ‘도다이지(東大寺)’ 법당의 평면도를 참고했다고 한다.옛것을 연상케 하는 종교와 미래 행성이 떠오르는 전시장 분위기의 상반된 요소가 뒤섞여 정체성이 뭔지 알 수 없도록 만든 방식은 임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2층 전시실 중앙에 있는 영상 작업 ‘동해사’는 일본 ‘불의 축제’와 ‘물의 축제’를 담은 영상이 좌우로 상영된다. 가운데에는 얼굴 11개의 보살 ‘십일면관음상’을 모티프로 한 애니메이션이 펼쳐진다. 좌우 영상에선 불과 물이 대립하고, 가운데는 과거와 미래가 섞인 모양새다.3층 전시실에선 흑과 백, 파랑과 분홍 등 상반된 색채나 형태를 대비시킨 회화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장 가운데 설치 작품 ‘정원과 작업장’은 작가가 작업실 진열장에 보관하던 여러 물건들을 가져와 만들었다. 이 작품 역시 검은 유리와 투명 유리를 교차해 올리고, 상판에는 하늘을 나는 까마귀 모형과 물 위에 띄우는 부표를 함께 배치했다.일본 철학자 우카이 사토시는 임 작가의 최근작들을 “과거를 상속하는 일의 어려움”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한국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에 적극 개입하는 작품을 선보이던 작가의 돌연한 변화가 이런 ‘어려움’과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임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관광객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언어적 소통 없이도 포용성과 자비를 베푼다”고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한발짝 물러서서 뭔가 ‘의미를 지우려는’ 태도가 작품 곳곳에서 읽힌다. 미술관은 3월 마지막 주 ‘아티스트 토크’에서 임 작가와 우카이 사토시의 대담을 준비하고 있다. 4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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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청년작가 지원한 미술관 설립자 뜻 이어… 25세 이하 무료입장”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과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미국 뉴욕엔 평소 미술에 그닥 관심 없는 여행자라도 찾게 되는 미술관들이 많다. 하지만 성인 기준 30달러(약 4만3000원) 안팎인 입장료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학생 할인 등이 있지만 청년들에겐 꽤 부담스럽다.하지만 최근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휘트니 미술관은 국적 상관없이 25세 이하는 ‘무료 관람’을 시행해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다. 에드워드 호퍼와 앤디 워홀, 장미셸 바스키아, 알렉산더 콜더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한 미술관이 왜 이리 과감하게 문턱을 낮춘 걸까. 최근 한국을 찾은 스콧 로스코프 미술관장은 25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꿈꿨던 숙원을 이룬 것”이라고 했다.● 한국 청년도 무료입장2023년 11월 취임한 로스코프 관장은 2009년 큐레이터로 합류해 15년 넘게 휘트니 미술관을 지켜왔다. 재스퍼 존스 같은 원로 작가는 물론이고 제프 쿤스나 글렌 라이곤 등의 활력 넘치는 전시들을 유치해 인정받았다. 20년 동안 관장 자리를 지켰던 애덤 와인버그 전 관장의 후임인 그는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실현하고 싶었던 정책이 무료입장”이라고 했다.“공부하는 학생이거나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에게 미술관 입장료는 상당히 높은 장벽입니다. 관객 반응도 비용이 부담된단 의견이 많았죠. 휘트니는 1930년 설립 때부터 젊은 미술가 지원이 목표였어요. 당연히 젊은 관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문제는 입장료 수익을 대체할 재원 마련이다. 큐레이터 때부터 미술관 이사회나 예술가들과 활발히 소통해 온 로스코프 관장은 취임 직후 이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월마트 창립자인 샘 월턴의 딸 앨리스 월턴이 이끄는 이사회를 비롯해 여러 후원자가 도움을 줬다.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줄리 머레투는 무려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뭣보다 뉴욕 다른 미술관들은 뉴욕 거주자만 입장료를 면제해 주지만, 휘트니는 25세 이하면 세계의 모든 관객이 공짜다. 심지어 매주 금요일 오후 5∼10시와 매월 둘째 주 일요일은 나이 불문 무료다. 지난해에만 약 20만 명이 혜택을 누렸다. 로스코프 관장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프랑스에서 와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며 “휘트니 작품을 ‘더 민주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비전에 후원자들이 공감해 준 덕분”이라고 했다.● “청년 작가 후원이 휘트니의 정신”휘트니 미술관의 청년 배려 정책은 설립 당시의 취지와 관련이 깊다. 예술가이자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1875∼1942)는 당시 유럽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던 미국 청년 작가를 지원하려 이 미술관을 세웠다.로스코프 관장은 “에드워드 호퍼가 무명의 일러스트 화가였을 때에 휘트니는 작품을 사준 것은 물론이고 생활비나 여행비도 후원했다”고 했다. 휘트니 여사는 생전 자기 작업실에서 파티를 열어 작가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후원했던 인물. 그 정신을 받들어 미술관은 생존 작가의 전시를 발굴하고 작품을 소장하는 데 적극 투자해 왔다.눈길을 끄는 대목은 휘트니 미술관의 ‘미국 미술가’에 대한 정의다. 로스코프 관장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민자라도 미국 미술가로 볼 수 있다”며 “그가 뉴욕에 살며 우리 커뮤니티의 단면을 담아냈다면 미국 작가로 본다”고 했다.“미 시민권이나 그린카드(영주권)가 없었던 구니요시 야스오(1889∼1953)도 휘트니에서 회고전을 열었어요. 현재 휘트니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크리스틴 선 김은 물론이고 마이클 주나 바이런 김 같은 한국계 미국 작가도 당연히 미국 미술을 구성하는 일원입니다.”한국 관객들에게 로스코프 관장이 가장 추천하는 미술관 명소는 어디일까.“7층 전시장이죠. 휘트니가 가장 많이 소장한 호퍼의 작품부터 조지아 오키프, 워홀, 콜더, 바스키아 등 미국 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뒤에 미술관 곳곳에 산재한 젊은 작가 작품에서 ‘새로운 발견’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아, 미술관 야외 테라스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허드슨강, 그리고 하이라인 파크까지 이어지는 뉴욕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거든요, 하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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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세 이하라면 국적 불문 무료입장…청년 배려 설립정신 살린 것”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와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미국 뉴욕엔 평소 미술에 그닥 관심 없는 여행자라도 찾게 되는 미술관들이 많다. 하지만 성인 기준 30달러(약 4만3000 원) 안팎인 입장료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학생 할인 등이 있지만 청년들에겐 꽤나 부담스럽다.하지만 최근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휘트니 미술관은 국적 상관없이 25세 이하는 ‘무료 관람’을 시행해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다. 에드워드 호퍼와 앤디 워홀, 장미셸 바스키아, 알렉산더 칼더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한 미술관이 왜 이리 과감하게 문턱을 낮춘 걸까. 최근 한국을 찾은 스콧 로스코프 미술관장은 25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꿈꿨던 숙원을 이룬 것”이라고 했다. ● 한국 청년도 무료 입장2023년 11월 취임한 로스코프 관장은 2009년 큐레이터로 합류해 15년 넘게 휘트니미술관을 지켜왔다. 재스퍼 존스 같은 원로 작가는 물론 제프 쿤스나 글렌 라이곤 등의 활력 넘치는 전시들을 유치해 인정받았다. 20년 동안 관장 자리를 지켰던 애덤 와인버그 전 관장의 후임인 그는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실현하고 싶었던 정책이 무료 입장”이라고 했다.“공부하는 학생이거나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에게 미술관 입장료는 상당히 높은 장벽입니다. 관객 반응도 비용이 부담된단 의견이 많았죠. 휘트니는 1930년 설립 때부터 젊은 미술가 지원이 목표였어요. 당연히 젊은 관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문제는 입장료 수익을 대체할 재원 마련이다. 큐레이터 때부터 미술관 이사회나 예술가들과 활발히 소통해 온 로스코프 관장은 취임 직후 이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월마트 창립자인 샘 월튼의 딸 앨리스 월튼이 이끄는 이사회를 비롯해 여러 후원자가 도움을 줬다.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줄리 머레투는 무려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뭣보다 뉴욕 다른 미술관들은 뉴욕 거주자만 입장료를 면제해 주지만, 휘트니는 25세 이하면 세계의 모든 관객이 공짜다. 심지어 매주 금요일 오후 5~10시와 매월 둘째 주 일요일은 나이 불문 무료다. 지난해에만 약 20만 명이 혜택을 누렸다. 로스코프 관장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프랑스에서 와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라며 “휘트니 작품을 ‘더 민주적으로 보여주고자’는 비전에 후원자들이 공감해 준 덕분”이라고 했다.● “청년 작가 후원이 휘트니의 정신”휘트니 미술관의 청년 배려 정책은 설립 당시의 취지와 관련이 깊다. 예술가이자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1875~1942)는 당시 유럽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던 미국 청년 작가를 지원하려 이 미술관을 세웠다.로스코프 관장은 “에드워드 호퍼가 무명의 일러스트 화가였을 때에 휘트니는 작품을 사준 것은 물론 생활비나 여행비도 후원했다”고 했다. 휘트니 여사는 생전 자기 작업실에서 파티를 열어 작가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후원했던 인물. 그 정신을 받들어 미술관은 생존 작가의 전시를 발굴하고 작품 소장에 적극 투자해 왔다.눈길을 끄는 대목은 휘트니 미술관의 ‘미국 미술가’에 대한 정의다. 로스코프 관장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민자라도 미국 미술가로 볼 수 있다”며 “그가 뉴욕에 살며 우리 커뮤니티의 단면을 담아냈다면 미국 작가로 본다”고 했다. “미 시민권이나 그린카드(영주권)가 없었던 야스오 쿠니요시(1889~1953)도 휘트니에서 회고전을 열었어요. 현재 휘트니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크리스틴 선 킴은 물론 마이클 주나 바이런 킴 같은 한국계 미국 작가도 당연히 미국 미술을 구성하는 일원입니다.”한국 관객들에게 로스코프 관장이 가장 추천하고 싶은 미술관 명소는 어디일까.“7층 전시장이죠. 휘트니가 가장 많이 소장한 호퍼의 작품부터 조지아 오키프, 워홀, 칼더, 바스키아 등 미국 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뒤에 미술관 곳곳에 산재한 젊은 작가 작품에서 ‘새로운 발견’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아, 미술관 야외 테라스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허드슨강, 그리고 하이라인 파크까지 이어지는 뉴욕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거든요, 하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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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 아트’ 김아영, LG구겐하임 어워드 수상

    미디어 아티스트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아영 현대미술가(46·사진)가 올해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됐다.LG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24일(현지 시간)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로 유명한 김 작가를 제3회 수상자로 발표했다.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기술을 활용해 현대 미술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상이다.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상금은 10만 달러(약 1억4300만 원).심사단은 김 작가에 대해 “영화나 그래픽 디자인의 전통적 제작 방식을 가상현실, 게임 엔진 등의 새로운 기술과 매끄럽게 결합했다”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생겨나는 윤리적 문제나 감정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끌어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김 작가의 대표작인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는 알고리즘이 통제하는 배달 라이더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김 작가는 “기술 발전에 잠재된 불확실한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올해 심사단엔 모하메드 알무시블리 스위스 쿤스트할레 바젤 디렉터, 노엄 시걸 구겐하임 뉴욕 아트&테크 큐레이터 등이 참여했다.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1회는 미국의 스테퍼니 딩킨스, 2회는 대만 출신 미국 작가 슈리 칭(정수리·鄭淑麗)이 받았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5월 8일 김 작가의 수상 축하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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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궈룽, 나이키 에어조던, 홍콩시위… 그 시절 낭만 속으로

    2003년 세상을 떠난 홍콩 배우 장궈룽(張國榮·장국영). 그를 사랑하는 모임 ‘장사모’ 회원들이 고인의 기일이자 만우절인 4월 1일 홍콩으로 추모 여행을 떠난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영화 속 장면을 거리에서 재연하던 회원들은 어쩌다 시위대에 휩쓸리게 되는데….장사모 회원과 시위대, 경찰까지 등장인물만 20명에 이르는 연극 ‘굿모닝 홍콩’은 극단 명작옥수수밭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배역이 많다 보니 배우들은 1인 다역을 하고, 스태프들까지 극단 전원이 출연해야 한다. 여러모로 난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지난해 국립정동극장의 ‘창작ing’ 지원 사업 선정작에 뽑히며 올해도 다음 달 3일부터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된다. 어렵사리 무대를 이어 가는 최원종 연출가는 20일 ‘굿모닝 홍콩’을 “잃어버린 낭만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1980∼1990년대 홍콩 영화는 한국인에겐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였어요. 정치 문화적으로 억압된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홍콩 영화를 보며 해방감을 느꼈죠. 하지만 이제 한국은 민주화를 이루고 자유를 쟁취했는데, 정작 홍콩에선 우리가 알던 자유가 없어져 버린 거죠.”연극에서 장사모 회원들이 홍콩을 방문한 시기는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며 범죄인의 중국 본토 강제 이송 법안인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대한 반대 시위가 거세던 2019년이다. 딱히 접점이 없던 회원들과 시위대가 이어진 매개체는 ‘나이키 운동화’다. 회원 ‘기찬’은 홍콩에서 한정판 나이키 에어조던을 샀다가 한 짝을 잃어버린다. 이 신발을 피투성이가 된 시위대로부터 돌려받으며 회원들은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저 역시 한동안 자유라는 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고하고 튼튼해서 늘 옆에 있을 거라고요. 하지만 극 중 인물들은 ‘피 묻은 나이키’를 보며 자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죠.”사실 ‘굿모닝 홍콩’은 기본적으로는 웃으며 보는 코미디극이다. ‘영웅본색2’의 총 100발 맞아도 죽지 않는 액션 등 홍콩 영화 특유의 과장된 설정이 향수를 자극한다. 하지만 깔깔 웃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거운 정치사회적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후반부에선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있었다.“이시원 작가가 각본을 쓴 계기가 2019년 시위였어요. 홍콩 시위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장면을 뉴스에서 본 뒤, 이 이야기를 극으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장치로 ‘홍콩 영화’를 덧입혔죠.”그 결과가 장궈룽과 나이키, 시위대란 독특한 조합이 빚어낸 ‘굿모닝 홍콩’으로 탄생했다. 최 연출은 “경제적 여건상 지난해가 마지막 공연일 줄 알았는데, 정동에서 ‘내년에도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했다”며 “2025년 버전은 여러 개선 과정을 거친 만큼 더 새롭고 짜임새 있는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4월 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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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궈룽, 시위대, 피묻은 나이키…독특한 인연의 ‘굿모닝 홍콩’

    2003년 세상을 떠난 홍콩 배우 장궈룽(張國榮·장국영). 그를 사랑하는 모임 ‘장사모’ 회원들이 고인의 기일이자 만우절인 4월 1일 홍콩으로 추모 여행을 떠난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영화 속 장면을 거리에서 재연하던 회원들은 어쩌다 시위대에 휩쓸리게 되는데….장사모 회원과 시위대, 경찰까지 등장 인물만 20명에 이르는 연극 ‘굿모닝 홍콩’은 극단 명작옥수수밭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배역이 많다보니 배우들은 1인 다역을 하고, 스태프들까지 극단 전원이 출연해야 한다. 여러모로 난이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지난해 국립정동극장의 ‘창작ing’ 지원 사업 선정작에 뽑히며 올해도 다음 달 3일부터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된다. 어렵사리 무대를 이어가는 최원종 연출가는 20일 ‘굿모닝 홍콩’을 “잃어버린 낭만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1980~1990년대 홍콩 영화는 한국인에겐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였어요. 정치 문화적으로 억압된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홍콩 영화를 보며 해방감을 느꼈죠. 하지만 이제 한국은 민주화를 이루고 자유를 쟁취했는데, 정작 홍콩에선 우리가 알던 자유가 없어져버린 거죠.”연극에서 장사모 회원들이 홍콩을 방문한 시기는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며 범죄인의 중국 본토 강제 이송 법안인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대한 반대 시위가 거세던 2019년이다. 딱히 접점이 없던 회원들과 시위대가 이어진 매개체는 ‘나이키 운동화’다. 회원 ‘기찬’은 홍콩에서 한정판 나이키 에어조던을 샀다가 한 짝을 잃어버린다. 이 신발을 피투성이가 된 시위대로부터 돌려받으며 회원들은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저 역시 한동안 자유라는 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고하고 튼튼해서 늘 옆에 있을 거라고요. 하지만 극 중 인물들은 ‘피 묻은 나이키’를 보며 자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죠.”사실 ‘굿모닝 홍콩’은 기본적으로는 웃으며 보는 코미디극이다. ‘영웅본색2’의 총 100발 맞아도 죽지 않는 액션 등 홍콩 영화 특유의 과장된 설정이 향수를 자극한다. 하지만 깔깔 웃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거운 정치사회적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후반부에선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있었다.“이시원 작가가 각본을 쓴 계기가 2019년 시위였어요. 홍콩 시위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장면을 뉴스에서 본 뒤, 이 이야기를 극으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장치로 ‘홍콩 영화’를 덧입혔죠.”그 결과가 장궈룽과 나이키, 시위대란 독특한 조합이 빚어낸 ‘굿모닝 홍콩’으로 탄생했다. 최 연출은 “경제적 여건 상 지난해가 마지막 공연일 줄 알았는데, 정동에서 ‘내년에도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했다”며 “2025년 버전은 여러 개선 과정을 거친 만큼 더 새롭고 짜임새 있는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4월 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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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에 노르웨이 ‘드림스’

    노르웨이 감독 다그 요한 헤우게루드가 연출한 영화 ‘드림스’가 22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의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열린 제75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받았다.‘드림스’는 17세 소녀 요하네가 카리스마 넘치는 여교사를 좋아하게 되고, 그러한 감정을 기록한 글을 요하네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발견하며 벌어지는 드라마를 담았다. 심사위원장인 ‘캐롤’ ‘아임 낫 데어’의 감독 토드 헤인즈는 “이 영화는 욕망의 원동력과 결과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느끼는 질투를 탐구한다”며 “독특한 접근 방식과 영향력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호평을 받았다. 은곰상 가운데 심사위원대상은 브라질 감독 가브리엘 마스카루의 ‘더 블루 트레일’이 받았다. 심사위원상은 베네수엘라 감독 이반 푼드의 ‘더 메시지’가, 감독상은 중국 감독 훠멍의 ‘리빙 더 랜드’가 차지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이 스페셜 갈라 부문에, 민규동 감독의 ‘파과’가 스페셜 부문에서 상영되는 등 한국 영화 8편이 초청됐다. 지난해 이 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홍상수 감독은 33번째 장편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가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은 불발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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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빛-물안개 젖은 왕버들… 거대한 화폭 거대한 감동

    높이 5m, 폭 20m로 캔버스 21개가 결합한 거대한 화폭 속 달빛과 물안개에 젖은 왕버들 나무가 관람객을 압도한다. ‘목탄 화가’로 불리는 이재삼이 4년 동안 그린 ‘달빛녹취록’ 연작의 5번째 버전이자 가장 큰 작품이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은 4월 20일까지 이 작가의 ‘달빛’ 연작을 비롯한 회화 31점을 선보이는 전시 ‘달빛녹취록 2020∼2024’를 연다.2018년 제3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던 이 작가는 1998년부터 목탄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연구했다. 목탄은 내구성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광목천을 사용해 캔버스를 제작하고 송진과 아교로 목탄 층을 고정한 뒤 자외선(UV) 코팅을 했다. 또 목탄을 여러 겹으로 쌓고 문지르는 등 농도를 조정해 ‘검은색’의 다양함을 보여줬다.19일부터 열린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달빛’이다. 작가는 광택이 없는 목탄의 특성을 활용해 강렬한 태양 빛과 달리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빛나는 달빛의 속성을 표현했다. 달빛에 대해 작가는 “감각을 깨우는 마음의 빛”이라며 “달빛 소리, 기운, 냄새를 작품에 담고 싶다”고 밝혔다.이번 전시는 ‘수중월(水中月)’과 ‘심중월(心中月)’ ‘검묵의 탄생’ 등 3가지 섹션으로 나눠 작품들을 선보인다. ‘수중월’은 물속에 비친 달을 표현한 공간으로 물안개가 가득한 밤 풍경, 달빛과 어우러진 폭포를 그린 작품을 볼 수 있다. ‘심중월’에선 전남 광양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을 그린 작품 등을 통해 밤 풍경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검묵의 탄생’은 1998∼2001년 제작한 초기 목탄화와 인물화, 자화상을 조명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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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초상화로 엿보는 조선시대 삶

    관공서 신축 공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많은 백성이 부역에 동원됐던 1684년. 지역 양반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누군가 소수서원에 봉안된 ‘안향 초상’을 망가뜨린 뒤 길가에 버렸다. 여기서 초상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안향’은 양반 전체를 상징했다. 1710년 윤두서는 절친했던 심득경이 세상을 떠나자 슬퍼하며 기억을 되살려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을 받아 본 심득경의 가족은 윤두서의 솜씨에 놀라며 눈물 흘렸다. 초상화를 통해 조선시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추적하는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조선 후기 사대부 초상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정조 어진 제작 과정 등과 관련해 여러 논문을 발표하는 등 초상화 속 사회사를 주로 분석해 왔다. 이번 책에서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진’부터 왕이 하사하는 ‘신하 초상’, 각 당파나 학파의 정통성을 과시하는 ‘스승 초상’, 지방 수령과 백성들의 이해관계에서 생겨난 ‘목민관 초상’까지 조선시대 초상화 120점에 얽힌 이야기를 도판과 함께 정리했다. 조선시대에는 “터럭(털) 하나라도 더 많으면 곧 다른 사람이 된다”는 송나라 유학자 정이의 말이 자주 인용됐다. 당대 화가들이 주인공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김진여가 그린 ‘권상하 초상’은 서양식의 명암법이 잘 반영됐고, 진재해의 ‘유수 초상’은 피부색의 따뜻한 질감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 얼굴의 주름이나 잡티를 보정하는 것처럼 항상 사실적인 그림만을 지향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자신의 성취를 자신감 있게 드러낸 ‘윤두서 초상’부터 86세 노모의 모습을 담은 ‘복천 오 부인 초상’,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화가가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록하려고 애썼던 ‘칠분전신첩’ 등에 담긴 인간적 이야기가 흥미롭다. 본문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초상화 14점은 부록으로 소개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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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네의 연못에는 수평선이 없다 [영감 한 스푼]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물결에 햇빛이 반짝이는 어느 연못. 이 연못 가장자리로 나이 든 화가가 일꾼과 함께 손수레를 끌고 다가옵니다.수레에 가득 실린 캔버스와 이젤이 차례로 물가로 내려지며 빈 캔버스들이 마치 조그마한 댐처럼 연못을 에워쌉니다.그림 그릴 준비를 마친 화가는 분주하게 8개의 캔버스를 오가며 각기 다른 장소에서 본 연못을 그려 나가기 시작합니다.화가는 이런 식으로 연못의 모습을 30년 넘게 그려 무려 250점을 남겼습니다. 바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입니다.꽃이 핀 수족관에 있는 듯모네가 수련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 모네는 파리를 떠나 약 75km 떨어진 근교의 농촌 마을 지베르니에 머물고 있었는데요.1883년 처음 지베르니에 정착할 때는 이 집을 임대로 살았지만 점점 형편이 나아져 집을 매입하고 그 옆 땅도 사면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이 때 모네의 나이가 50세. 청년 시절엔 인상파 그림이 인정받지 못해 가난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루앙 대성당’, ‘건초 더미’ 같은 작품이 호평을 받고 판매도 되면서 화가로서 안정기에 접어 든 시기였죠. 이런 시점에 모네가 시도한 새로운 실험이 바로 수련 연작이었습니다.모네는 이전에도 풍경화에서 성당이나 기차역처럼 같은 곳을 여러 차례 그리면서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묘사하곤 했습니다.그런데 이번 ‘수련’ 연작에서 극적으로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풍경을 구성하던 많은 요소를 과감히 지웠다는 사실입니다.성당이나 기차역을 그리면 건물이 놓인 땅, 맞닿은 하늘, 또 오고 가는 사람 등이 함께 묘사되고, 이에 따라 보는 사람은 ‘여기가 어디구나’ 짐작하게 됩니다.그런데 수련 그림에서는 사람도 하늘도 땅도 없고 오로지 화면에 물만 가득 차 있습니다.수평선도 지평선도 없이, 연못 한 가운데를 뚝 잘라내어 그린 것처럼 모네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요.이 때문에 어느 평론가는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득 찬 수련 연작을 보고 ‘꽃이 핀 수족관’에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그림을 보는 사람은 내가 어느 자리에 서서 수련이 핀 연못을 보고 있는지, 한 가운데 섬을 밟고 있는 건지 공중에서 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부차적 요소를 모두 없앤 모네는 연못만을 캔버스에 가득 채워 보여주고 있죠.한 곳에 가만히 집중한다는 것모네가 이렇게 배경을 제거한 덕분에 우리는 ‘수련’ 연작 앞에 서면 물의 표면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그리고 화가가 제시하는 대로 조용히, 오랜 시간을 들여 연못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흘러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그 이야기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물 위에 비친, 시시각각 변하는 것들입니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연잎, 가느다란 가지를 머리카락처럼 드리운 버드나무, 물의 반대편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 별사탕처럼 흩뿌려진 꽃들과 불타오르는 노을까지.모네가 사실상 연못을 그린다고 해놓고는, 주변에 비친 풍경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됩니다.‘수련’ 연작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바로 이 풍경의 설계자가 모네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그림 속 연못은 모네가 당국의 허가를 받아 만든 인공 연못이고, 그 주변의 식물들도 모두 직접 골라 심은 것입니다.정원의 규모가 가장 컸을 때는 정원사만 8명을 고용했을 정도로 모네는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었습니다.비슷한 시기 고향 액상프로방스로 이주한 폴 세잔이 정물에 집중하고, 타히티로 이민간 폴 고갱이 이국적인 풍경을 통해서 새로운 표현을 고민했다면, 모네는 자신이 원하는 풍경을 직접 만들어 그림 실험을 했던 것입니다.그 결과는 ‘예술가가 그림에서 무엇을 그려야 하느냐’에 대한 새로운 답이 되었습니다.프랑스의 평론가 레몽 레가메는 “모네가 그림 속 나뭇잎에 대해 가졌던 관심은 사람의 얼굴, 입은 옷에 대해 가졌던 관심과 똑같다. 그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은 똑같이 중요했다”고 1927년 글에서 설명한 바 있는데요.그러니까 과거의 방식으로 연못을 그린다면 그 연못이 있는 배경, 둘러싼 풍경, 그것을 보는 사람 등 ‘연못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함께 배치했을 것입니다.성당을 그릴 때 건축물이 제대로 보이게 하고, 기차역을 그릴 때 사람을 함께 그리는 것처럼요.그런데 수평선과 땅을 지워버린 연못 그림은 찰랑이는 물 표면이 주는 감각을 극대화하며 ‘사물의 형태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자아내는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단서를 제시했죠.여기다 30년 동안 이어진 ‘수련 그리기’를 통해 모네는 점차 불필요한 선들을 제거하고 연못의 풍경을 여러 붓터치와 색점의 조합으로, 거의 추상화처럼 보이도록 그리는 데 이릅니다.이런 모네의 말년 작품을 본 후대 화가들은 더 나아가 아예 그림 속에서 사물의 형태를 제거하고 감각만을 묘사한 ‘추상화’를 그리게 되죠.다른 모든 것을 제거하고 한 가지에 오랫동안 가만히 집중하는 것. 그것이 결국은 내가 느끼는 수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모네의 수평선 없는 연못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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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욕동생’ 김슬기 “이번엔 ‘남장 연기’서 웃음 폭발”

    “제가 남편 차의 브레이크를 터뜨렸어요. 전부 다 계곡 아래로 떨어져 죽었을 거라고요!” 10주년을 맞은 장진 감독의 연극 ‘꽃의 비밀’에서 막내 지나는 이렇게 외치며 무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서 보험금을 타 내려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하는 네 여자의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극이다. 연장자인 소피아가 극을 이끌고 자스민이 ‘감초’이며 모니카가 ‘미녀’라면, 지나는 겁 많은 소녀 같지만 대범한 범행을 저지르는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지나 역으로 무대에 오른 배우 김슬기를 19일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김슬기는 서울예대 재학 중 무려 ‘21년 선배’인 장 감독이 동아리 30주년 기념으로 만든 연극에서 주연을 맡은 것을 계기로 2013년 tvN ‘SNL 코리아’에 출연해 대중에게 존재를 각인시켰다. 귀여운 얼굴에 밉지 않은 욕설 연기로 ‘국민 욕동생’이란 별명까지 붙은 ‘SNL 원년 크루’. 이 무렵 장 감독은 ‘꽃의 비밀’ 각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 지나는 김슬기를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이번 무대는 장 감독이 보았던 배우 김슬기의 매력을 오롯이 발휘하는 자리인 셈이다. 연극이 끝난 뒤 무대 아래에서 만난 김슬기는 앉자마자 “중요한 대사를 틀렸다”며 “티가 많이 났느냐”며 걱정부터 했다. 무대나 스크린에선 유쾌한 이미지지만, 평소엔 소심하고 웅크리는 성격이라 에너지를 많이 쓴다고도 털어놨다. “극 초반에 소피아와 자스민, 모니카가 웃고 떠들 때 지나는 혼자 불안해하고 겁을 먹기도 해요. 또 자기가 저지른 일을 뒤늦게 자각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복잡한 캐릭터죠.” 그런 지나가 에너지를 터뜨리는 순간은 극 후반부 남장 연기를 시작할 때다. 김슬기는 이때가 “마음 놓고 웃길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남장 이후로는 모든 캐릭터가 몰입하는 ‘쇼 타임’이죠. 우선 남장한 모습만 봐도 너무 웃기잖아요. 배우들도 ‘웃음 면역력’을 키우려 1∼2주 전부터 연습실에서 가발 쓰고 분장을 한 채로 연습해요. 특히 자스민의 얼굴을 미리 많이 봐둬요.” 극에서 지나는 범행을 들킬 수도 있단 절망감에 ‘엎드려뻗쳐’를 하거나, 남자인 척 능글맞은 미소를 짓기도 한다. 김슬기는 “배우가 깔깔 웃는다고 코미디극이 되는 건 아니다”라며 “당황, 긴장, 슬픔 등 웃음 외의 감정을 보여줘야 관객을 웃길 수 있는 게 희극의 특징”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은 욕망은 있었지만, 중학생 때 “자신이 재밌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는 김슬기. 그때부터 “잘 짜인 대본을 충실히 연기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는 그는 작품에서 애드리브를 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실제로도 주어진 역할을 야무지게 해내려는 다부진 분위기가 더 짙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번 ‘꽃의 비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직전 공연에서 제가 남장으로 등장하니 누군가 크게 ‘귀여워!’라고 외쳤어요. 감사했습니다!” 5월 1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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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의 비밀’은 남장 연기부터가 쇼타임” ‘지나’역으로 무대 선 배우 김슬기

    “제가 남편 차의 브레이크를 터뜨렸어요. 전부 다 계곡 아래로 떨어져 죽었을 거라고요!”10주년을 맞은 장진 감독의 연극 ‘꽃의 비밀’에서 막내 지나는 이렇게 외치며 무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서 보험금을 타 내려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하는 네 여자의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극이다. 연장자인 소피아가 극을 이끌고, 자스민이 ‘감초’이며 모니카가 ‘미녀’ 라면, 지나는 겁 많은 소녀 같지만 대범한 범행을 저지르는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지나’역으로 무대에 오른 배우 김슬기를 19일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에서 만났다.김슬기는 서울예대 재학 중 무려 ‘21년 선배’인 장진 감독이 동아리 30주년 기념으로 만든 연극에서 주연을 맡은 것을 계기로 2013년 tvN ‘SNL 코리아’에 출연해 대중에게 존재를 각인시켰다. 귀여운 얼굴에 밉지 않은 욕설 연기로 ‘국민 욕동생’이란 별명까지 붙은 ‘SNL 원년 크루’. 이 무렵 장 감독은 ‘꽃의 비밀’ 각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 지나는 김슬기를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이번 무대는 장 감독이 보았던 배우 김슬기의 매력을 오롯이 발휘하는 자리인 셈이다.연극이 끝난 뒤 무대 아래에서 만난 김슬기는 앉자마자 “중요한 대사를 틀렸다”며 “티가 많이 났느냐”며 걱정부터 했다. 무대나 스크린에선 유쾌한 이미지지만, 평소엔 소심하고 웅크리는 성격이라 에너지를 많이 쓴다고도 털어놨다.“극 초반에 소피아와 자스민, 모니카가 웃고 떠들 때 지나는 혼자 불안해하고 겁을 먹기도 해요. 또 자기가 저지른 일을 뒤늦게 자각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복잡한 캐릭터죠.”그런 지나가 에너지를 터뜨리는 순간은 극 후반부 남장 연기가 시작할 때다. 김슬기는 이때가 “마음 놓고 웃길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남장 이후로는 모든 캐릭터가 몰입하는 ‘쇼 타임’이죠. 우선 남장한 모습만 봐도 너무 웃기잖아요. 배우들도 ‘웃음 면역력’을 키우려 1~2주 전부터 연습실에서 가발 쓰고 분장을 한 채로 연습해요. 특히 ‘자스민’의 얼굴을 미리 많이 봐둬요.”극에서 지나는 범행을 들킬 수도 있단 절망감에 ‘엎드려뻗쳐’를 하거나, 남자인 척 능글맞은 미소를 짓기도 한다. 김슬기는 “배우가 깔깔 웃는다고 코미디극이 되는 건 아니다”며 “당황, 긴장, 슬픔 등 웃음 외의 감정을 보여줘야 관객을 웃길 수 있는 게 희극의 특징”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은 욕망은 있었지만, 중학생 때 “자신이 재밌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는 김슬기. 그때부터 “잘 짜인 대본을 충실히 연기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는 그는 작품에서 애드리브를 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실제로도 주어진 역할을 야무지게 해내려는 다부진 분위기가 더 짙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번 ‘꽃의 비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직전 공연에서 제가 남장으로 등장하니 누군가 크게 ‘귀여워!’라고 외쳤어요. 감사했습니다!” 5월 1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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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가 75분간 그림 20점 그리는 과정을 영화로

    ‘나는 가만히 앉아 있고,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코앞에서 그림을 그려준다?’ 상상만으로도 호사스러운 이 경험을 영화로 간접 체험할 수 있다. 14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 영상관에서 상영을 시작한 1956년 영화 ‘피카소의 비밀’을 감상하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피카소가 70대였을 때 제작된 이 영화에 필요한 건 단순하다. 카메라와 종이, 물감, 팔레트, 붓, 그리고 피카소다. 16일 관람한 영화는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랭보가 시를 쓰고 모차르트가 작곡하는 과정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화가가 그림 그리는 과정은 볼 수 있다. 그리고 피카소 씨가 그 과정을 공개해 주기로 했다.” 흰 종이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피카소가 펜과 붓으로 쓱쓱 선을 그려 나간다. 화가의 손은 보이지 않고 선들만 저절로 움직인다. 지금처럼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 비밀은 ‘종이’에 있다. 물감이 스며들어 뒷면으로 비치는 종이를 이용해 한쪽에선 화가가 그리고, 다른 쪽에선 카메라로 이 모습을 담아냈다. 75분 러닝타임 동안 피카소는 총 20점을 그린다. 이날 객석에선 특별한 서사도 없이 그림 그리기만 이어지자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서사’가 아니라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 선, 그리고 이와 함께 흐르는 다양한 음악에 집중하면 대가의 즉흥 연주회를 보는 듯한 황홀함을 얻을 수 있다. 검은 선을 그릴 때는 현악 선율이 고요하게 흐르다 화가가 채색할 때는 금관 악기가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리드미컬한 드로잉을 할 때는 타악기가 귀를 두드렸다. 그래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무렵, 카메라는 열중하는 피카소를 비춘다. 반바지만 입은 맨몸의 화가가 ‘초집중’해 짧은 시간에 드로잉을 완성하는 모습, 촬영 감독을 맡은 클로드 르누아르(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손자)도 볼 수 있다. 13번째 그림부터 피카소는 ‘더 야심 찬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유화와 콜라주 작품을 그린다. 여기서는 유화 물감을 덧칠하고 수정하며 다양한 형태와 구도를 조합하는 복잡한 과정이 펼쳐진다. 압권은 마지막 두 그림이다. 해변 풍경 하나를 두고 수십 개의 버전을 짜임새 있게 그려내는 모습을 보면 ‘피카소 할아버지의 마술쇼’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피카소의 비밀’은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 2025 ‘창작의 순간―예술가의 작업실’의 출품작으로 23일까지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8편이 5월 24일까지 매주 수·금·토·일요일에 상영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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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네의 연못에는 수평선이 없다[김민의 영감 한 스푼]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물결에 햇빛이 반짝이는 어느 연못. 이 연못 가장자리로 나이 든 화가가 일꾼과 함께 손수레를 끌고 다가옵니다. 수레에 가득 실린 캔버스와 이젤이 차례로 물가로 내려지며 빈 캔버스들이 마치 조그마한 댐처럼 연못을 에워쌉니다.그림 그릴 준비를 마친 화가는 분주하게 8개의 캔버스를 오가며 각기 다른 장소에서 본 연못을 그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화가는 이런 식으로 연못의 모습을 30년 넘게 그려 무려 250점을 남겼습니다. 바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입니다.꽃이 핀 수족관에 있는 듯모네가 수련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 모네는 파리를 떠나 약 75km 떨어진 근교의 농촌 마을 지베르니에 머물고 있었는데요. 1883년 처음 지베르니에 정착할 때는 이 집을 임차해 살았지만 점점 형편이 나아져 집을 매입하고 그 옆 땅도 사면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이때 모네의 나이가 50세. 청년 시절엔 인상파 그림이 인정받지 못해 가난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루앙 대성당’, ‘건초 더미’ 같은 작품이 호평을 받고 판매도 되면서 화가로서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였죠. 이런 시점에 모네가 시도한 것이 바로 수련 연작이었습니다.모네는 이전에도 풍경화에서 성당이나 기차역처럼 같은 곳을 여러 차례 그리면서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묘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련’ 연작에서 극적으로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풍경을 구성하던 많은 요소를 과감히 지웠다는 사실입니다.보통 성당이나 기차역을 그리면 건물이 놓인 땅, 맞닿은 하늘, 또 오고 가는 사람 등이 함께 묘사되고, 이에 따라 보는 사람은 ‘여기가 어디구나’ 짐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수련 그림에서는 사람도 하늘도 땅도 없고 오로지 물만 가득 차 있습니다.수평선도 지평선도 없이, 연못 한가운데를 뚝 잘라 그린 것처럼 모네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어느 평론가는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벽을 가득 채운 수련 연작을 보고 ‘꽃이 핀 수족관’에 있는 것 같다는 표현도 했습니다.그림을 보는 사람은 내가 어느 자리에 서서 수련이 핀 연못을 보고 있는지, 한가운데 섬을 밟고 있는 건지 공중에서 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부차적 요소를 모두 없앤 모네는 연못만을 캔버스에 가득 채워 보여주고 있죠.한곳에 가만히 집중한다는 것모네가 이렇게 배경을 제거한 덕분에 우리는 ‘수련’ 연작 앞에 서면 물의 표면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화가가 제시하는 대로 조용히, 오랜 시간을 들여 연못을 바라보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그 이야기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물 위에 비친, 시시각각 변하는 것들입니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연잎, 가느다란 가지를 머리카락처럼 드리운 버드나무, 물의 반대편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 별사탕처럼 흩뿌려진 꽃들과 불타오르는 노을까지. 모네가 사실상 연못을 그린다고 해놓고는, 주변에 비친 풍경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됩니다.‘수련’ 연작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바로 이 풍경의 설계자가 모네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네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 정원에 인공 연못을 만들고, 그 주변에 식물도 모두 직접 골라 심었습니다. 정원의 규모가 가장 컸을 때는 정원사만 8명을 고용했을 정도로 모네는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었습니다.비슷한 시기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이주한 폴 세잔이 정물에 집중하고, 타히티로 이민 간 폴 고갱이 이국적인 풍경을 통해서 새로운 표현을 고민했다면, 모네는 자신이 원하는 풍경을 직접 만들어 그림 실험을 했던 것입니다.그 결과는 ‘예술가가 그림에서 무엇을 그려야 하느냐’에 대한 새로운 답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평론가 레몽 레가메는 “모네가 그림 속 나뭇잎에 대해 가졌던 관심은 사람의 얼굴, 입은 옷에 대해 가졌던 관심과 똑같다. 그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은 똑같이 중요했다”고 1927년 글에서 설명한 바 있는데요.그러니까 과거의 방식으로 연못을 그린다면 그 연못이 있는 배경, 둘러싼 풍경, 그것을 보는 사람 등 ‘연못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함께 배치했을 것입니다. 성당을 그릴 때 건축물이 제대로 보이게 하고, 기차역을 그릴 때 사람을 함께 그리는 것처럼요. 그런데 수평선과 땅을 지워버린 연못 그림은 찰랑이는 물 표면이 주는 감각을 극대화하며 ‘사물의 형태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자아내는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단서를 제시했죠.여기다 30년 동안 이어진 ‘수련 그리기’를 통해 모네는 점차 불필요한 선들을 제거하고 연못의 풍경을 여러 붓 터치와 색점의 조합으로, 거의 추상화처럼 보이도록 그리는 데 이릅니다. 이런 모네의 말년 작품을 본 후대 화가들은 더 나아가 아예 그림 속에서 사물의 형태를 제거하고 감각만을 묘사한 ‘추상화’를 그리게 되죠.다른 모든 것을 제거하고 한 가지에 오랫동안 가만히 집중하는 것. 때로는 그것이 결국은 내가 느끼는 수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모네의 수평선 없는 연못이 보여주고 있습니다.※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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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카소의 펜과 붓이 화면 위를 쓱쓱…영화 ‘피카소의 비밀’

    ‘나는 가만히 앉아 있고,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코 앞에서 그림을 그려준다?’상상만으로도 호사스러운 이 경험을 영화로 간접 체험할 수 있다. 14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 영상관에서 상영을 시작한 1956년 영화 ‘피카소의 비밀’를 감상하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피카소가 70대였을 때 제작된 이 영화에 필요한 건 단순하다. 카메라와 종이, 물감, 팔레트, 붓, 그리고 피카소다. 16일 관람한 영화는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랭보가 시를 쓰고 모차르트가 작곡하는 과정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화가가 그림 그리는 과정은 볼 수 있다. 그리고 피카소 씨가 그 과정을 공개해 주기로 했다.”흰 종이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피카소가 펜과 붓으로 쓱쓱 선을 그려 나간다. 화가의 손은 보이지 않고 선들만 저절로 움직인다. 지금처럼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 비밀은 ‘종이’에 있다. 물감이 스며들어 뒷면으로 비치는 종이를 이용해 한쪽에선 화가가 그리고, 다른 쪽에선 카메라로 이 모습을 담아냈다.75분 러닝타임 동안 피카소는 총 20점을 그린다. 이날 객석에선 특별한 서사도 없이 그림 그리기만 이어지자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서사’가 아니라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 선, 그리고 이와 함께 흐르는 다양한 음악에 집중하면 대가의 즉흥 연주회를 보는 듯한 황홀함을 얻을 수 있다. 검은 선을 그릴 때는 현악 선율이 고요하게 흐르다가, 화가가 채색할 때는 금관 악기가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리드미컬한 드로잉을 할 때는 타악기가 귀를 두드렸다.그래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무렵, 카메라는 열중하는 피카소를 비춘다. 반바지만 입은 맨몸의 화가가 ‘초집중’해 짧은 시간에 드로잉을 완성하는 모습, 촬영 감독을 맡은 클로드 르누아르(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손자)도 볼 수 있다.13번째 그림부터 피카소는 ‘더 야심 찬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유화와 콜라주 작품을 그린다. 여기서는 유화 물감을 덧칠하고 수정하며 다양한 형태와 구도를 조합하는 복잡한 과정이 펼쳐진다. 압권은 마지막 두 그림이다. 해변 풍경 하나를 두고 수십 개의 버전을 짜임새 있게 그려내는 모습을 보면 ‘피카소 할아버지의 마술쇼’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피카소의 비밀’은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 2025 ‘창작의 순간-예술가의 작업실’의 출품작으로 23일까지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8편이 매주 수·금·토·일에 5월 24일까지 상영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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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떼어낸 뒤 뒤집어… ‘물감의 속살’ 고스란히

    소파에 앉은 사람, 나란히 선 두 사람, 꽃을 보는 사람. 첫눈에 보면 그림들은 큰 붓으로 그린 듯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이 납작하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면 입체감이 생겨야 하는데, 그림 전체가 한 덩어리인 듯 매끄럽다. 비밀은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에 있다. 비닐 위에 형체부터 그린 뒤 마지막에 배경을 칠한다. 이후 전체 물감을 떼어내 뒤집어 캔버스에 붙여 ‘물감의 속살’을 보여주는 정의철 작가의 개인전 ‘낯설게 하기’가 충남 공주 갤러리정안면에서 열린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미술학교를 수료한 뒤 줄곧 ‘정체성’을 주제로 다뤘던 작가는 몇 년 전만 해도 자화상 위주로 어두운 색채 작품을 해왔다. 그런 그가 공주로 작업실을 옮긴 뒤 한층 밝은 색채와 편한 구도로 신작을 내놓고 있다.정 작가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이사한 뒤 식물도 키우고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색이 달라졌다”고 했다. 신작들은 붓 대신 물티슈로 물감을 칠해 선과 형태도 부드러워졌다. 인물화를 낯설어하는 한국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고민의 결과다. 이 고민의 과정은 갤러리 한쪽 벽면에 전시된 종이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작가는 3년 전부터 매일 한 점씩 그리기로 결심한 뒤 그린 드로잉 중 일부를 선별해 함께 전시했다. 3월 2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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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정의철, 개인전 ‘낯설게 하기’서 독특한 작업방식 공개

    소파에 앉은 사람, 나란히 선 두 사람, 꽃을 보는 사람. 첫 눈에 보면 그림들은 큰 붓으로 그린 듯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이 납작하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면 입체감이 생겨야 하는데, 그림 전체가 한 덩어리인 듯 매끄럽다. 비밀은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에 있다.비닐 위에 형체부터 그린 뒤 마지막에 배경을 칠한다. 이후 전체 물감을 떼어내 뒤집어 캔버스에 붙여 ‘물감의 속살’을 보여주는 정의철 작가의 개인전 ‘낯설게 하기’가 충남 공주 갤러리정안면에서 열린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미술학교를 수료한 뒤 줄곧 ‘정체성’을 주제로 다뤘던 작가는 몇 년 전만 해도 자화상 위주로 어두운 색채 작품을 해왔다. 그런 그가 공주로 작업실을 옮긴 뒤 한층 밝은 색채와 편한 구도로 신작을 내놓고 있다.정 작가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이사한 뒤 식물도 키우고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색이 달라졌다”고 했다. 신작들은 붓 대신 물티슈로 물감을 칠해 선과 형태도 부드러워졌다. 인물화를 낯설어하는 한국 관객에 다가가려는 고민의 결과다. 이 고민의 과정은 갤러리 한 쪽 벽면에 전시된 종이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작가는 3년 전부터 매일 한 점씩 그리기로 결심한 뒤 그린 드로잉 중 일부를 선별해 함께 전시했다. 3월 2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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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상화가 하종현의 눈에 비친 전후 한국 모습은…

    마포(麻布·삼실로 찬 천) 뒷면에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背押法)’을 사용한 연작 ‘접합’으로 잘 알려진 추상미술가 하종현 작가의 초기작들을 살펴보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14일 개막한 ‘하종현 5975’전은 하종현이 1959년 홍익대를 졸업한 직후부터 ‘접합’을 시작한 1975년까지 만든 작품을 살펴본다. 이들 작품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당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다. 총 4개 시기로 나눠진 전시는 시간 순서대로 펼쳐진다. 1부 ‘전후의 황폐한 현실과 앵포르멜’(1959∼1965)에선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 뒤 나타난 추상회화의 한 경향인 앵포르멜을 보고 그린 작품들을 모았다. 물감을 두껍게 칠하거나 그림 표면을 불에 그을리고 어두운 색조를 활용해 불안한 시대상을 담고자 했다. 1959년 ‘자화상’ 같은 인물화도 있다.1960년대 후반 작품을 조명하는 2부 ‘도시화와 기하학적 추상’에서는 연작 ‘도시계획백서’가 등장한다. 이 시리즈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년)으로 인한 급격한 산업화에서 영감을 얻어 강렬한 색채와 반복적인 패턴을 넣은 기하학적 추상화다. 또 단청 문양이나 돗자리 직조 기법을 인용한 연작 ‘탄생’도 이때 작품이다. 하 작가는 1969년 비평가 이일 등 작가 및 이론가 12명과 함께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한다. 실험 미술의 영향을 받아 철조망, 신문, 스프링 등 일상적 재료를 작품에 활용하는데, 이때 작품이 3부에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특히 도면으로만 남아 있던 거울 설치 작업 ‘작품’(1970년)을 재현해 첫 전시 이후 처음으로 다시 선보인다. 거울 여러 개와 두개골, 골반 엑스레이 필름을 재료로 활용한 작품이다. 마지막 4부는 연작 ‘접합’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는 ‘접합―배압법’(1974∼1975)이다. 이 무렵 작가는 마포 뒷면에 물감을 듬뿍 바르고 나무 주걱으로 물감을 밀어내는 ‘배압법’을 고안했다. 이런 배압법을 이용한 여러 시도들을 4부에서 살펴볼 수 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하종현의 작품 속에 담긴 시대적 메시지와 물성에 관한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트선재센터는 이번 전시와 연계해 지난해 10월 신정훈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와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레슬리 마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근현대 아시아 미술 큐레이터 등이 참여한 심포지엄도 개최했다. 세 연구자가 심포지엄에서 발제한 ‘근대화의 회화, 면밀하고 고집스럽게 물질주의적인’(신정훈), ‘하종현의 6년(1969∼1975): 매체의 물질성에 대한 실험과 방법론’(정연심), ‘표식 만들기의 정치학: 1960∼1970년대 하종현 회화’(레슬리 마)는 전시 도록에 수록돼 다음 달 출간 예정이다. 4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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