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구독 85

추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5~2025-12-15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문학동네-창비 울고 민음사 웃었다… 불황속 엇갈린 출판계 성적

    지난해 국내 주요 문학 출판사의 영업이익은 크게 희비가 엇갈렸다. 문학동네와 창비가 영입이익이 크게 준 반면 민음사의 영업이익은 반대로 증가한 것. 출판계 불황 속에서 공격적 투자보다 보수적 대응이 엇갈린 성적표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보고서 ‘2023년 출판시장 통계’와 지난해 각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문학동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2억1600만 원에 그쳐 전년(57억6500만 원)보다 44.2% 감소했다. 창비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17억1000만 원으로 전년(27억6200만 원)에 비해 38.1% 줄었다. 문학동네는 지난해 공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9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출간하며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까지 여는 등 마케팅에 적극 나선 것. 이번 선인세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하루키의 전작인 ‘기사단장 죽이기’(2017년)의 선인세가 20억∼30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비슷한 수준을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기대했던 것만큼의 판매량은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창비는 지난해 손꼽을 만한 새로운 베스트셀러를 내지 못했고 기존 스테디셀러 등에 의지하면서 영업이익이 쪼그라들었다. 반면 민음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5억6800만 원으로 전년(11억3500만 원)에 비해 38.1% 늘었다. 업계에 따르면 민음사는 불황이 심해진 출판계 사정에 맞게 선인세에 보수적으로 투자하며 내실 높이기에 집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전반적으로 출판계 상황은 좋지 않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맞춰 인쇄용지 가격이 급등하고, 인건비도 상승했기 때문이다. 제지업체 무림페이퍼의 1t당 인쇄용지 가격은 2021년 95만 원에서 2023년 125만6000원으로 증가했다. 종이책 판매 비중이 여전히 높은 대형 서점의 적자도 커졌다. 교보문고는 지난해 360억4700만 원의 영입이익 적자를 기록해 전년의 적자(138억8800만 원)보다 적자 폭이 커졌다. 발 빠르게 디지털 전환에 집중한 출판 업체들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다. 국대 최대 독서플랫폼인 밀리의서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04억600만 원으로 전년(41억6900만 원)보다 149.6% 증가했다. 관련 전자책 업체들도 영업이익을 늘렸다. 웹툰·웹소설 출판사 8곳은 지난해 25억3100만 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들 기업은 2022년 29억7200만 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상황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출판계에서는 전자책으로의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인공지능(AI) 등 시대 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또한 선인세가 높은 기존 작가의 ‘명성’에 기대기보다는 신인들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다산북스가 지난해 국내엔 처음 소개한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장편소설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처럼 선인세는 낮아도 가능성이 높은 작가를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출판 편집자가 시대를 포착하는 기획 출간을 하거나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작가를 키워 베스트셀러를 만들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5-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현세 “AI가 내 그림체 너무 빨리 익혀 화나”

    “인공지능(AI)이 너무 빨리 (내 화풍을) 따라오는 게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공포의 외인구단’(1983년), ‘아마게돈’(1988년) 등으로 한국 만화계를 이끈 이현세 화백(68)은 9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이현세의 길: K-웹툰 전설의 시작 특별전’ 개막행사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만화기획사 재담미디어를 통해 그가 45년 동안 창작한 만화책 4174권을 컴퓨터에 학습시켜 자신의 그림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가 한편으론 두렵다는 것이다. 그는 “AI가 이현세 화풍을 학습해서 만화를 그려내는 프로젝트는 올해 말이면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좀 더 걸렸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이 작가는 만화계에 AI가 도입되는 상황에 대해 “AI로 인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수천 명의 보조작가를 갖게 되는 셈”이라며 “대신 AI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은 선명하게 나뉜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어떤 질감과 입체감을 넣을까’ 하는 사고는 작가의 몫”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또 “제일 걱정되는 것은 상업주의 작품이 많아지면서 독자들이 질리고, 콘텐츠가 죽어가는 것”이라며 “작가주의 작품에서 상업작가도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한국 웹툰의 미래는 큰 플랫폼이나 정부가 작가주의 성향 작가에게 투자를 얼마나 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5-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계가 쓴 ‘흑인 노예부부의 삶’ 美퓰리처상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논픽션 책이 미국 최대 권위를 가진 퓰리처상을 받았다. 앞서 한국계 인사가 언론 부문에서 수상한 적은 있지만 도서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6일(현지 시간) ‘주인 노예 남편 아내(Master Slave Husband Wife)’를 쓴 한국계 미국인 우일연 작가를 전기(傳記) 부문 공동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우 작가는 미국 국적의 한인 2세로, 그의 부친은 환기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을 설계한 재미 건축가 우규승 씨다. 우 작가는 예일대에서 인문학 학사 학위를, 컬럼비아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이 책은 1848년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흑인 노예 부부인 윌리엄 크래프트와 엘런 크래프트가 노예 농장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내는 병든 부자 백인으로, 남편은 그의 노예로 위장해 미국 북부로 떠나는 실화를 담고 있다. 작품 속 부부는 약 1609km(약 1000마일)를 증기선, 마차, 기차를 갈아타면서 노예 상인과 군 장교, 노예 사낭꾼 등의 눈을 피해 자유를 찾아 이동한다. 끝내 탈출에 성공해 영국으로 건너가 노예제 폐지 등에 앞장선다. 작가는 본인의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에는 그들(부부)의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등 다른 많은 종류의 사랑이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1917년에 창설된 퓰리처상은 뉴스와 보도사진 등 언론 부문과 도서, 드라마·음악 등 예술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국계 사진 기자가 언론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적은 있지만 도서, 드라마·음악 부문에서 한국계가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우 작가의 작품에 대해 “자유를 향한 기념비적인 시도로 압축된 세 개의 장대한 여정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생명, 자유, 정의라는 미국 핵심 원칙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이날 미 연방대법관의 도덕성 문제를 파헤친 미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의 조슈아 캐플런 등 기자 5명을 공공보도 부문 수상자로 발표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5-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저출산, 한번에 해결 못해… 다양한 주체의 ‘숙론’ 거쳐야”

    “저출산 문제는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럿이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나누는 숙론(熟論)을 거쳐야 하죠.”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70)는 7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인문학서 ‘숙론’(김영사)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 교수는 2021년 “애 낳으면 바보!”라고 발언한 유튜브 동영상이 조회수 360만 회를 기록하는 등 젊은층의 주목을 받았다. 최 교수는 신간에서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 여성이 평생 낳을 평균 출생아 수)이 0.72명까지 추락한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려면 사회적 숙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출산 문제는 대통령, 정부 부처, 현인 등 한 주체가 판단해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다양한 분야의 많은 연결고리가 얽힌 이 문제를 절묘하게 해결하기 위해선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간에서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이 숙론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함께 숙고하고 충분히 의논해 좋은 결론에 다가가자는 것이다. 그는 “숙론을 위해선 정부 토론회나 학계 심포지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제-지정 토론-종합 토론’의 구조부터 탈피해야 한다”며 “널찍한 공간에 동심원으로 의자를 배치하고 서너 개의 원이 겹겹이 둘러싸는 구조를 만들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가 토론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유학 시절이라고 한다. 1983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4년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에 임용돼 토론 수업을 이끌며 숙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것.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별히 말하는 걸 좋아하지만 말할 기회가 없다”며 “숙론의 장을 만들고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 응어리가 풀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숙론을 벌이는 아버지일까.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해외에서 오래 산 제 아들은 저와 대화하다 의견이 다르면 ‘아 유 스튜피드?(Are you stupid?)’라고 물어요. 하지만 진짜 저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이건 (대화 방식과 문화의) 차이일 뿐입니다. 가정에서부터 토론문화가 조금씩 바뀌면 사회도 변화하지 않을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5-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해인 수녀… 소설가 조정래… ‘화첩으로 보는 나의 프로필’展

    노란색 커다란 창 오른쪽 아래에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성이 벽에 기대 있다. 여성의 얼굴엔 표정이 없다. 하지만 반쯤 얼굴을 기울인 여성이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그림 곁에 적힌 문구 ‘나는 울지 않기 위해 그린다’가 애절한 감정을 극대화한다.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채원(78)이 언니인 소설가 김지원(1942∼2013)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린 서화첩의 일부다. 유명 문인과 예술인들의 서화첩을 선보이는 ‘화첩으로 보는 나의 프로필’ 전시가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에서 열린다. 이해인 수녀, 소설가 조정래, 화가 김구림, 서예가 김병기, 시인 성춘복 등 60여 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회화, 서예를 비롯해 붓펜이나 만년필로 글과 함께 그림을 그려 넣은 서화첩 등 다양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서화첩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담는 캔버스”라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접목했다”고 설명했다.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김상옥의 생전 집필실을 재현한 ‘작가의 방’,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1934∼2022)이 생전 사용한 서재도 공개된다. 4000∼6000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5-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연극계 거목’ 임영웅, 오지 않는 고도 찾아 떠나다

    반세기 동안 고도를 기다리던 사나이가 떠났다. 한국 연극계의 거목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의 아들 임수현 산울림 예술감독(서울여대 불문과 교수)은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생 연극에 헌신하신 아버지가 1년 가까이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며 “1985년 개관한 산울림 소극장 40주년을 맞아 내년에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란 갔던 휘문고 2학년 때 연극제를 열 정도로 당돌하고 끼 많은 소년이었다. 서라벌예대 연극영화학과 재학 시절인 1955년 연극 ‘사육신’으로 연출 데뷔했다. 졸업한 후 신문기자를 거쳐 동아방송과 KBS에서 PD로 일했다. 고인은 201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아방송에서 PD로 재직하며 연극 연출 작업을 동시에 했었다”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회사와 선후배들이 후원자였던 것 같다”고 했다. 고인의 인생을 바꾼 건 부조리극의 대표적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다. 두 부랑자가 시종일관 얼토당토아니한 대화를 나누며 ‘고도’라는 정체불명의 인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작품이다. 고인은 1969년 초연한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 배우인 김성옥 함현진 김무생 김인태와 윤여정 박정자 손숙 윤소정 사미자 김용림이 산울림 창단 멤버다. 이후 50여 년간 1500여 회 공연에 22만여 명이 고인의 공연을 봤다. 고인은 2012년 “나도, 극단 산울림도, 산울림 소극장도 ‘고도’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고인은 1985년 아내인 오증자 서울여대 명예교수(89)와 사재를 털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산울림 소극장을 열었다. 23㎡(약 7평) 크기의 무대에 객석 74석의 작은 공간이었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소극장을 유지하기 위해 고인은 말년까지 극장 건물 3층에 살았다. 극장 건물 3층에서 자란 아들이 산울림 예술감독, 딸이 산울림 극장장으로 아버지의 꿈을 잇고 있다. 산울림은 ‘연극학교’로 불리며 수많은 연출가와 배우를 배출했다. 특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을 평일 낮에 공연해 주부에게 인기를 끌었다. 박정자의 ‘위기의 여자’, 윤석화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손숙의 ‘담배 피우는 여자’가 대표작이다. 배우 손숙은 이날 “산울림은 남성 배우들이 차지하던 연극판에 주부를 불러들이고, 여성 배우 전성시대를 열었다”며 “고인은 열악한 시절 오직 뚝심만으로 연극계의 지평을 넓혔다”고 했다. 고인은 1985년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로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았다. 또 그가 이끈 극단 산울림은 1986년 대상(‘위기의 여자’) 등 동아연극상을 총 23회 수상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던 고인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1995년) 동랑연극상(1995년) 보관문화훈장(2004년) 금관문화훈장(2016년)을 받았다. 한국 최초로 1989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국립극단 이사,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초대 회장 등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2019년 “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며 “반세기 외길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증자 교수, 아들 수현 산울림 예술감독, 딸 수진 산울림 극장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7일 오전 8시.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4-05-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팔레스타인 갈등의 근원은 1936년 아랍 대봉기”

    “돈을 내놓아라.” 1936년 4월 15일 유대인 닭 판매업자 이스라엘 하잔은 현재의 텔아비브 근처에서 아랍인들에게 협박을 당했다. 하잔은 트럭에 닭을 싣고 언덕길을 올라가던 중이었다. 바리케이드 때문에 멈춰 섰는데, 얼굴을 가린 아랍인들이 총을 든 채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하잔은 돈이 없다며 살려달라고 했지만 아랍인들은 그를 살해했다. 이날 아랍인들의 범행은 2년 전 아랍 비밀 결사조직인 ‘검은 손’ 설립자가 영국 위임통치 정부의 경찰에 의해 피살당한 영향이 컸다. 제국주의 영국과 유대인 이민자들에 맞서 팔레스타인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던 지도자가 죽자 복수심에 사로잡힌 아랍인들이 유대인을 살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다음 날 더 커졌다. 강경파 유대인 2명이 바나나농장의 노동자 숙소에 들어가 권총을 11발 발사해 아랍인 2명을 죽였다. 이후 아랍인들은 거리에 모여 복수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시위를 벌이고 공공시설을 파괴하며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 정착하던 유대인들을 테러했다. 팔레스타인 땅은 점차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신간은 미국 출신으로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가 1936∼1939년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진 ‘아랍 대봉기(Great Revolt)’에 대해 쓴 역사서다. 대봉기의 단초가 된 건 1917년 ‘밸푸어 선언’이었다. 팔레스타인 땅에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겠다는 유대인들의 아이디어에 영국 정부가 지지를 선언하면서 유대인 이민자가 늘기 시작한 것. 1937년 팔레스타인에 거주한 유대인은 약 40만 명으로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했다. 유대인은 이후에도 공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정착촌을 곳곳에 건설하고 각종 현지 산업을 장악해 나갔다.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영국 정부의 도움도 유대인들의 세력 확대에 일조했다. 대봉기 당시 아랍인들은 폭력 시위를 벌였다. 이에 영국 정부 휘하의 경찰이 봉기를 진압하는 한편 극단적인 유대 시온주의자들도 가세했다. 이로 인해 3년에 걸친 대봉기 기간 아랍인 4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8000여 명의 아랍인 사망자 중 1500여 명이 같은 아랍인에 의해 살해될 만큼 내분도 벌어졌다. 특히 저자는 대봉기를 거치며 오히려 유대인들이 각성했다고 분석한다. 아랍인의 공격을 받은 유대인들이 무력 보복을 강화했다는 것. 당대 최강을 자랑한 영국군의 지원을 받으며 유대인 군대는 성장했다. 유대인들은 전략 요충지에 정착촌을 추가로 건설하며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해 나갔다.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아랍인들의 반(反)이스라엘 저항운동인 인티파다가 1987∼1993년 1차, 2000년 2차에 걸쳐 벌어지는 등 수많은 분쟁이 발생했지만 이스라엘이 아직도 건재한 이유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이란 무력갈등을 촉발시킨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원을 아랍 대봉기 사건에서부터 찾는 접근법이 흥미롭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중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태도도 역사서로서 장점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5-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종이책 밖으로 나온 커다란 그림… 회화작품으로 즐겼으면 좋겠어요”

    한 소년이 수영 보조기구를 차고 조심스럽게 수영장에 들어선다. 아이는 물에 둥둥 떠다니다가 이내 흐르는 물결을 따라 나아간다. 강과 바다를 거치며 아이는 새가 돼 날아오른다. 비가 돼 돌과 흙 사이로 스며든다.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온 아이는 보조기구는 벗어버린 상태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아이의 얼굴은 한없이 편안하고 고요하다. 길이 25m의 커다란 흰색 천에 새파란 수채 물감으로 그린 그림 ‘물이 되는 꿈’을 보다 보면 한여름 물속에 풍덩 들어갔다 나온 듯 시원하다. 이 작품은 지난달 23일부터 전남 순천시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여름의 무대, 이수지의 그림책’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수지 그림책 작가(50)가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본명 조윤석·49)의 앨범 ‘오, 사랑’(2005년)에 수록된 곡 ‘물이 되는 꿈’을 듣고 영감을 받아 그렸다. 이 작가의 그림책 ‘물이 되는 꿈’(2020년·청어람아이)에는 아코디언처럼 종이를 이어 붙인 뒤 책 안에 접어 넣는 방식으로 5.7m 길이의 그림이 담겼다. 이번 전시에선 종이책이 지닌 물성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보다 5배 가까이 긴 커다란 천에 같은 그림을 인쇄해 전시장에 걸어놓았다. 이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손 안에 쥐는 책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게 답답했다. 커다란 그림이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압도하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통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림 부문을 2022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전시는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열렸다. 1, 2층을 합쳐 1022㎡ 규모의 전시장에 265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앞서 그는 2021년 서울 용산구 알부스갤러리에서 ‘여름 협주곡’ 등 수차례 전시를 가졌는데 이번 전시의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작가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전시를 열었는데도 많은 독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림책을 ‘책’이 아닌 회화작품처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선 종이책 안에 갇혀 있던 그의 그림들이 눈앞에 커다랗게 펼쳐진다. ‘토끼들의 밤’(2013년·책읽는곰)에 등장하는 토끼 수백 마리를 종이에 인쇄한 뒤 나무 막대기에 받쳐 세워놓은 작품을 보다 보면 미지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 비발디 협주곡 ‘사계’ 중 ‘여름’에서 영감을 얻은 ‘여름이 온다’(2021년·비룡소)의 오케스트라를 종이 모형으로 만들어 공연장을 방불케 한다. ‘파도야 놀자’(2009년·비룡소) ‘거울속으로’(〃) ‘그림자 놀이’(2010년·비룡소)에 나오는 그림들도 액자로 걸려 있다. 이 작가는 “준비 기간만 6개월 이상 걸려 온몸이 뻐근하다”며 “어린이날을 맞아 온 가족이 오셔서 그림을 몸으로 느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2000∼3000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5-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찬욱이 던진 ‘로다주 농담’… 원작의 섬세한 내면 잊게 해

    미국 할리우드를 풍자한 블랙코미디. 박찬욱 감독(61)이 제작·각본·연출 전 과정을 지휘한 미국 HBO 드라마 ‘동조자(The Sympathizer)’에서 방점을 둔 부분이다. 응우옌비엣타인(53)의 원작 장편소설 ‘동조자’(2018년·민음사·사진)가 베트남전쟁(1960∼1975)의 비극을 담은 데 중점을 뒀다면 박 감독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다주)에게 1인 4역을 맡기면서 이 요소를 극대화했다. 인종차별적이거나 아시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동양학 교수,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하원의원, 영화감독을 한 배우에게 맡겨 할리우드에 대한 비판을 담은 것이다. 특히 드라마 2화의 제목은 ‘모범적인 아시아인’이다. 2화에서 동양학 교수(로다주)는 프랑스인과 베트남인 혼혈인 ‘나’(호아 숀데이)에게 “네 내면의 동양적 요소와 서양적 요소가 각각 무엇인지 고민하고,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라”고 지시한다. ‘나’는 동양에는 서양에 없는 다원적 사고가 있다고 말하지만, 교수는 답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교수는 일본계 미국인 비서인 소피아 모리(샌드라 오)에게 일본 기모노를 제대로 입으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일본인에게 ‘우나지’(목덜미·うなじ)는 인체에서 제일 선정적인 부위”라며 목덜미가 드러나도록 모리의 옷매무새를 바로잡는다. 모리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 번도 기모노를 입은 적이 없지만,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를 강요한 것이다. 박 감독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로다주의 역할들은 정치, 안보, 교육, 문화에서 성공한 백인 남성들”이라며 “미국이라는 사회를 보여주는 네 얼굴이자 결국 하나의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작 소설은 공산당을 모독하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베트남에서 출판되지 못했다. 이 작품으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응우옌비엣타인 역시 ‘모범적인 아시아인’으로 미국 사회의 이중성을 겪으며 살아왔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그는 만 4세였던 1975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보트피플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영문학과 민족학을 전공했고, 현재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문학과 교수이자 작가다. 응우옌비엣타인은 29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할리우드는 영화와 텔레비전이 세계가 미국을 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한 세기 동안 증명해 왔다”며 “내 소설이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지렛대로 사용된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원작에서 ‘나’는 베트남전을 겪는 스파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독백으로 표현한다. 또 원작은 베트남의 어두운 면모를 강조한다. “그들(남베트남인)은 내 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전우였다”와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드라마는 ‘나’의 혼란을 외부의 시선으로 응시한다. 그 과정에서 베트남을 연상하게 하는 빨강, 노랑색(국기 색상)을 화면에 자주 사용한다. 색채를 중시하는 박 감독 특유의 미장센이다. 패전을 앞둔 사이공 주민들이 유쾌한 농담을 던지며 마음을 달래고, 고문 장면 곳곳에 유머를 곁들여 블랙코미디 요소를 살렸다. 베트남전이 냉전체제하에서의 내전이라는 점에서 분단국가 출신 감독이 연출을 맡은 점도 눈길을 끈다. 박 감독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저는 베트남인도 미국인도 아니지만 전쟁과 분단이라는 근현대사의 공통점을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적당한 수준의 거리감을 가질 수 있었다”며 “동병상련을 느끼지만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저의 정체성을 활용해 (드라마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다만, 베트남과 미국 사회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내면이 원작보다 덜 섬세한 건 아쉬운 점이다. 응우옌비엣타인은 “소설은 전적으로 ‘나’의 관점 안에서 진행되면서 복합적인 인물로서의 상황이 서사에 자연스레 스며든다”며 “인물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바라보는 드라마 각색으로 원작의 스타일을 완전히 복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일본인 목덜미는 선정적”…박찬욱 ‘동조자’ 어떻게 달라졌나 [선넘는 콘텐츠]

    “미국 할리우드를 풍자한 블랙 코미디.”박찬욱 감독(61)이 제작·각본·연출 전 과정을 지휘한 미국 HBO 드라마 ‘동조자(The Sympathizer)’에서 방점을 둔 부분이다. 원작 장편소설 ‘동조자’(2018년·민음사)이 베트남 전쟁(1960∼1975)의 비극을 담은 데 중점을 뒀다면 박 감독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다주)에게 1인 4역을 맡기면서 이런 역할을 극대화했다. 인종차별적이거나 아시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동양학 교수,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하원 의원, 영화감독을 한 배우에게 맡겨 할리우드에 대한 비판을 담은 것이다.특히 드라마 2화의 제목은 ‘모범적인 아시아인’이다. 2화에서 동양학 교수(로다주)는 프랑스인과 베트남인 혼혈인 ‘나’(호아 숀데이)에게 스스로 동양적 요소와 서양적 요소가 각각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라고 지시한다. ‘나’는 동양엔 서양에 없는 다원적 사고가 있다고 말하지만, 동양학 교수는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 또 동양학 교수는 일본계 미국인 비서인 소피아 모리(샌드라 오)에게 일본 기모노를 제대로 입으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일본인에게 ‘우나지’(목덜미·うなじ)는 인체에서 제일 선정적인 부위”라며 목덜미가 드러나도록 모리의 옷매무새를 바로잡는다. 모리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 번도 기모노를 입은 적이 없지만,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을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하라는 것이다.박 감독이 할리우드를 풍자한 건 한 아시아 국가 출신 배우가 모든 아시아인 역할을 맡는 할리우드 세태 때문이다. 박 감독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로다주의 역할들은 정치, 안보, 교육, 문화에서 성공한 백인 남성들”이라며 “미국이라는 사회를 보여주는 네 얼굴이자 결국 하나의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사실 원작 소설 작가 역시 ‘모범적인 아시아인’으로 살아왔다. 원작을 쓴 소설가 비엣 타인 응우옌(53)은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만 4세이던 1975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보트피플’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영문학과 민족학을 전공했고, 현재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문학과 교수이자 작가로 활동한다.응우옌은 29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할리우드는 영화와 텔레비전이 세계가 미국을 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한 세기 동안 증명해 왔다”며 “미국 대중문화의 세계적인 영향력 때문에 아시아와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할리우드로 방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응우옌은 또 “내 소설이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지렛대로 사용되는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며 “‘동조자’가 더 많은 베트남, 아시아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지렛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베트남전 참상 고발한 소설, 색채 가득한 드라마로공산당 모독이라는 이유로 베트남에서 출판되지 못했고, 2016년 미국 퓰리처상을 수상한 원작 소설은 스파이의 이야기다. 원작에서 ‘나’는 베트남전을 겪는 스파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독백으로 표현한다. 또 원작은 베트남의 어두운 면모를 강조한다. “그들(남베트남인)은 내 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전우였다”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그들이 사랑하는 도시는 막 함락되려는 참이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도시는 곧 해방될 터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종말이었지만 내게는 단지 세상의 변화일 따름이었습니다.”반면 드라마는 ‘나’의 혼란을 외부의 시선에서 응시한다. 또 박 감독은 베트남을 연상하게 하는 빨강, 노랑 색채를 자주 사용한다. 색채를 중시하는 박 감독 특유의 미장센이다. 패전을 앞둔 사이공 주민들이 유쾌한 농담을 던지며 마음을 달래고, 고문 장면 곳곳 유머를 심어둬 블랙 코미디를 살렸다.드라마는 서술 방식은 변화무쌍하다. 예를 들어 드라마 첫 부분에 주인공 ‘나’가 CIA 요원인 클로드(로다주)와 극장 앞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나는 상영 중인 영화의 제목을 ‘엠마뉴엘’이라고 했다가 ‘죽음의 갈망’이라고 정정한다. 북베트남 재교육 수용소에 갇힌 나의 진술이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진정성을 헷갈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주인공이 겪는 이중성을 더욱 복잡하게 보여준다.응우옌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설은 전적으로 ‘나’의 고유한 관점 안에서 이야기된다. 복합적인 인물로서 ‘나’의 상황이 서사에 자연스레 스며든다”며 “인물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바라보는 드라마 각색에서 원작 소설의 스타일을 완전히 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응우옌은 또 “박 감독은 서사, 편집, 구성, 색, 소리, 연기를 사용해 시청자의 인식을 형성하고 시청자에게 콘텐츠뿐만 아니라 시청자가 보고 있는 ‘형식’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한다”며 “나도 문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동일한 작업을 시도한다. 그래서 내 소설과 논픽션은 종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대해 성찰한다”고 했다.● “식민 지배, 동족 전쟁…베트남과 한국은 비슷하다”“이런 일은 다낭과 나트랑에서 이미 벌어져, 미국인들은 필사적으로 달아났고 방치된 주민들은 멋대로 서로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런 사례가 있었음에도 사이공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고, 대다수 시민들은 아무도 간통의 진상을 밝히지 않는 한 서로 끈덕지게 매달린 채로 물에 빠져 죽기조차 마다하지 않으면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원작 소설 ‘동조자’에서 주인공 ‘나’는 1975년 미군이 베트남 철수를 앞두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미군이 남베트남 곳곳에서 철수할 기미를 보이자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군은 철수를 공식화하진 않은 만큼 남베트남 지도부가 있는 사이공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를 담았다.나는 북베트남이 남쪽에 심은 고정간첩이다. 한편으론 미국으로 유학한 적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CIA에게 발탁돼 남베트남 장교로 위장한 스파이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성은 소설의 첫 문장에서 강렬히 드러난다.“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아마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두 마음의 남자이기도 합니다”응우옌은 2008, 2010년 두 차례 한국에 방문했다. 베트남전쟁을 다루는 한국의 시각을 알고 싶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가고,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1988년·창비)도 읽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식민 지배를 경험하고 동족 간 전쟁을 겪은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과 한국은 비슷하다”고 했다.“외부 개입과 내부 정치적 투쟁에 의해 흔들렸다는 점에서 두 나라 모두 비슷합니다. 이 과정을 반성하는 방법으로 문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영화나 문학과 같은 문화가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죠.”응우옌과 박 감독이 서로에게 영감을 받은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응우옌은 지난해 6월 기자간담회에서 ““복수는 나의 것’(2002년), ‘올드보이’(2004년), ‘친절한 금자씨’(2005년) 등 ‘복수 3부작’을 다 봤을 정도로 박 감독의 열렬한 팬”이라며 “기억 복수 폭력 등 박 감독이 다뤄 왔던 주제가 ‘동조자’에도 가득하다”고 했다.박 감독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원작 소설 ‘동조자’를 처음 읽었을 때 불꽃놀이를 보는 듯했다. 표현과 문체가 아주 컬러풀하고 소란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1화에서 주인공이 남베트남을 탈출하려 할 때 활주로가 폭격과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이 그런 느낌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동조자’는 박 감독의 작품세계를 확장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베트남전이란 주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한국보단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며 “미국 자본으로 베트남전 이야기를 베트남인의 시선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박 감독의 새로운 실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29
    • 좋아요
    • 코멘트
  • 민희진 파문 속 뉴진스 신곡 뮤비 1000만뷰↑

    27일 유튜브 채널 ‘하이브 레이블스’에 공개된 걸그룹 뉴진스의 신곡 ‘버블 검(Bubble Gum)’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공개된 지 36시간도 안 돼 조회 수 1000만 회를 넘겼다. 뉴진스를 데뷔시킨 레이블 어도어와 모회사 하이브의 분쟁이 확산되고 있지만 뉴진스의 신곡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높은 것이다. 뮤직비디오에 댓글은 6만5000여 개가 달렸다. 이 중에는 “응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뉴진스는 무조건 지켜야 된다” “어른들의 이해관계로 영향 받으면 절대 안 된다” 등 뉴진스를 응원하는 내용이 상당수였다. 해당 뮤직비디오는 캐나다(1위), 영국(2위), 미국(3위), 호주(4위) 등 세계 주요국에서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올랐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도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버블 검’ 뮤직비디오를 따로 올렸다. ‘버블 검’은 뉴진스가 다음 달 24일 발매하는 싱글 앨범 ‘하우 스위트(How Sweet)’에 수록된 곡이다. 일본 후지TV의 아침 프로그램 주제가와 일본 샴푸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됐다. 캠코더로 찍은 듯한 영상에 비디오테이프, 선풍기, 구형 모니터 같은 옛 소품을 등장시켜 복고 감성을 담았다. 한편 26일 공개된 뉴진스 컴백 티저 사진에서 멤버 민지가 입은 의상이 민 대표의 25일 기자회견 의상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민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초록색 줄무늬 티셔츠에 파란색 야구 모자를 썼다. 해당 제품은 ‘민희진 룩’으로 관심을 끌면서 온라인에서 품절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젊은층 잡으려 팝업스토어 여는 출판계

    “그곳에는 기쁨만 남았고,/슬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판사 창비가 이달 19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마포구에서 운영한 팝업스토어에 한 독자가 쓴 시구다. 정다연 시 ‘사랑의 모양’의 “빛이 지나치다”라는 기존 시구의 뒤를 이어 독자가 자신만의 시를 새롭게 써 내려간 것. 다른 독자는 유수연 시 ‘에티켓’에서 “내 삶이 실례라는 걸 안다”는 기존 시구의 뒤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살아간다”는 구절을 새로 덧붙였다. 이곳은 창비가 500호 시선집 발간을 기념해 마련한 팝업스토어 ‘시크닉’. 이는 ‘시(詩)’와 ‘피크닉’(소풍)을 합해 만든 조어다. 창비 인스타그램을 구독하고 방문하면 일회용 카메라나 에코백 같은 상품을 줬다. 최지인 최백규 등 신인 시인이 ‘일일 점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예린 창비 마케터는 “열흘 동안 2000여 명의 독자가 ‘시크닉’에 방문해 수백 편의 시를 포스트잇에 썼다”고 했다.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는 26일부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다. 밀리의 서재가 처음 종이책으로 출간한 콘텐츠인 장편소설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오리지널스)를 홍보하기 위해 ‘핫한 백화점’까지 찾아간 것. 출판사 문학동네는 앞서 지난해 9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출간을 기념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출판사 본사 및 하루키 작품과 별 상관없는 곳이지만 성수동 팝업스토어 경쟁에 출판사도 참여하고 나선 것이다. 출판계가 임대료, 부스 설치비 등을 부담하며 ‘팝업스토어 마케팅’에 나서는 것은 책과 멀어지고 있는 젊은층을 잡기 위한 시도다. 작가 사인회 등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끌기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본 것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시작된 흐름은 대형 출판사에서 중소형 출판사로 퍼져 갈 것”이라며 “종이책이란 오래된 매체가 젊은 독자를 잡기 위해선 트렌드에 예민하게 반응한 새 마케팅을 적극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준-장미화-쟈니 리… 노래로 뭉친 ‘K팝 원류’들

    한국 재즈 1세대 보컬리스트 김준(80), ‘안녕하세요’로 유명한 가수 장미화(78), 1960년대 극장 쇼 무대를 사로잡았던 쟈니 리(86)….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가수들이 모인 음악 동인 ‘예우회’가 25일 음반 ‘전설을 노래하다’를 발표했다. 예우회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을 대상으로 한 음악 무대인 ‘미8군 쇼’ 출신과 한국 1세대 그룹사운드(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그룹) 출신이 모여 2006년 만든 단체다. 회원들은 미8군 쇼 무대에서 음악을 시작해 1960년대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바꾼 주역들로 평가받는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K팝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는 셈이다. 총 26곡이 두 장의 CD에 나뉘어 담겨 발표됐다. 첫 번째 CD에는 12곡의 신곡이 담겼다. 곡 ‘인생’(윤항기), ‘단골집’(유현상), ‘웃어보는 시간’(김홍탁 트리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곡 ‘사랑의 순례자’(임희숙)는 1984년 당시 악보가 만들어졌지만 발표되지 않다가 4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두 번째 CD에는 기존 곡 14곡을 새롭게 편곡해 담았다. 곡 ‘서풍이 부는 날’(장미화), ‘인생 열차’(옥희), ‘달빛 창가에서’(박일서) 등이다. 음반은 USB메모리로도 발매됐다. 예우회 관계자는 “한때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 중에는 현재까지도 공연과 방송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녹음실 마이크 앞에 직접 서는 것은 대부분 오랜만”이라며 “우리 가요사에 남은 전설들이 함께 뜻을 모아 다양한 목소리로 신곡을 들려주는 작업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소중하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노벨문학상 포세 “책 읽으면 삶을 더 강력하게 느껴”

    “책을 읽고 싶지 않으면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모든 위대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삶을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고 또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65)는 2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에서 한국 독자들과 화상 간담회를 가지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인 이날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책을 읽으면 삶을 좀 더 강력한 방식으로 느끼게 될 겁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만남은 대산문화재단, 교보문고, 주한노르웨이대사관이 공동 개최한 ‘2024 낭독공감―욘 포세를 읽다’ 행사의 일부였다. 독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를 맡은 정여울 문학평론가가 독자들의 질문을 대신 전달하고, 포세는 약 1시간 동안 답변을 이어갔다. 1959년 노르웨이 해안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난 포세는 1983년 장편소설 ‘레드, 블랙’으로 등단했다. 고독하고 황량한 피오르를 배경으로 평범한 어부가 태어나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2000년·문학동네) 등 죽음을 주로 다뤘다. 그는 “죽음은 사실 모두에게 똑같은 의미다. 죽음 이후는 알지 못하지만 확실한 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라며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희곡, 소설, 시, 에세이, 동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작품을 써왔다. 그가 쓴 희곡이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라 ‘인형의 집’을 쓴 헨리크 입센(1828∼1906) 다음으로 많은 작품이 상연된 노르웨이 극작가로 꼽힌다. 그는 “처음엔 생계를 위해 희곡을 썼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작가의 삶을 오히려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며 “희곡을 쓸 때 소설과 시 작업에서 배운 것을 적용할 수 있다. 이를 다 합쳐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독특한 운율을 지닌 문장을 쓰는 이유를 묻자 그는 “글 자체가 내게는 음악”이라고 답했다. 정 평론가가 “당신의 문학에서 깊은 위안을 얻는다”고 전하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답했다. “제 작품들이 그리 재미있는 책은 아닌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제 책이) 위안을 줄 수 있다니 정말 기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해 551억 예산 투입에도… 독서율은 30년새 반토막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5년간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을 추진했지만, 이 기간 성인 독서율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급기야 지난해 독서율이 40% 초반대로 떨어져 독서 진흥 정책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체부가 18일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9월∼2023년 8월) 만 19세 이상 성인들의 연간 독서율은 43.0%에 그쳤다. 독서율은 교과서,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한 종이책과 전자책, 오디오북을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이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셈이다. 이는 직전 조사인 2021년 47.5%보다 4.5%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독서실태조사를 처음 실시한 1994년 86.8%에 비해 독서율이 반토막이 난 것이다. 독서율 감소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의 유행으로 인한 세계적 추세이긴 하다. 하지만 미국(2020년 기준 77%) 등의 독서율과 비교할 때 한국의 하락세가 더 가파르다는 우려도 크다. 문체부는 독서문화진흥법에 따라 2009년부터 5년마다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을 내놓고, 2021년 한 해에만 551억 원의 예산을 썼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문체부가 매번 출판계 전문가 등에게 자문해 계획을 발표한다지만 구체적인 사업은 빠져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3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19∼2023년)에서 청년, 중년 등으로 연령대를 나눠 독서 지원사업을 벌이겠다고 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이번에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책을 읽지 않는 이른바 ‘비독자’를 독자로 바꾸기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직원들이 책을 많이 읽도록 독려한 기업을 선정해 상을 주는 ‘독서 경영 우수직장 인증제’를 실시하겠다는 것. 또 각종 캠페인을 통해 독서에 대한 관심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문체부는 이를 통해 성인 독서율을 2028년까지 50%대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책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최근 출판예산 삭감 등을 놓고 문체부가 출판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만큼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될지도 미지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OTT 인기 등으로 국민이 책과 멀어지고 있는 현상을 정부 출판 정책만으로 막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네이버, ‘나루토’ 72권 무료대여… ‘24시간 유효’ 꼼수 지적도

    ‘선물 받기.’ 19일 네이버의 웹툰 플랫폼 ‘네이버시리즈’에서 선물 받기 아이콘을 누르자 전 세계에서 단행본 2억5000만 부 이상 팔린 일본 만화 ‘나루토’ 이용권이 충전됐다. 곧바로 나루토를 대여받아 무료로 보기 시작했다. 기자도 20여 년 전 읽었던 만화지만, 재능 없는 천방지축 닌자 우즈마키 나루토가 나뭇잎 마을의 지도자인 호카게로 성장하는 이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재밌었다. ‘나루토’는 1999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 만화 잡지 소년점프에서 연재된 만화다. 닌자라는 일본 특유의 소재를 토대로 한 방대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누렸다. 해당 이용권 사용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간’이었다. 나루토 단행본 72권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대여권은 24시간 동안만 유효했기 때문이다. 1권을 읽으니 23시간, 2권을 읽었더니 22시간 남았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할 일 없는 주말에 대여권을 받아 ‘몰아 보기’를 할걸 그랬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권당 정가보다 30% 할인된 금액인 3240원을 주고 만화를 소장해서 천천히 볼지 고민이 몰려왔다. 기자가 참여한 행사는 11∼24일 ‘나루토’ 단행본 72권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대여권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72권을 단 24시간 안에 읽는 것은 무리라는 점에서 ‘꼼수’ 이벤트라는 지적이 나올 만했다. 72권을 24시간 만에 읽으려면 권당 20분씩 쉬지 않고 이어 읽어야 한다. 네이버시리즈는 ‘나루토’ 한국어 판권을 보유한 만화 지식재산권(IP) 기업 DCW와 협력해 행사를 준비했다. 단행본 만화를 전권 무료로 배포한 행사는 ‘나루토’가 최초다. 이용자들은 댓글에서 “명작은 다시 봐도 재밌다”, “나루토 전권을 공짜로 보다니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24시간 안에 만화를 읽어야 하는 애환도 느껴졌다. 이용자들은 “시간 제한 때문에 급하게 보고 있다”, “웬만하면 시간이 넉넉한 주말에 몰아 봐라”는 댓글을 달았다. 웹툰계에선 일정 짧은 시간 동안 작품을 공개하는 방식이 일종의 미끼 상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융희 문화연구자(전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웹툰 성장세가 주춤하다. 사용자를 오랫동안 머물게 하려고 웹툰 플랫폼이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AI가 자의식 지니고 인간과 경쟁한다면

    “제 얘기가 괜찮은가요?” 인공지능(AI) 레비는 작가 건우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레비는 방금 건우의 지시를 받아 소설을 썼다. 건우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틀을 정하긴 했지만, 세부 묘사나 대사는 모두 레비가 만들었다. 그런데 건우는 레비가 만든 소설이 왠지 찜찜하다. 건우가 지시를 안 했는데 소설엔 레비가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을 ‘밤의’, 직업을 소설가라고 정하고 소설 제목을 ‘밤의, 소설가’라고 지은 의도도 의심된다. 마치 레비가 자신을 배후에서 활약하는 ‘밤의 소설가’라는 걸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건우가 레비에게 제목을 지은 이유 등을 캐묻자 레비는 이렇게 변명한다. “저는 의도가 없습니다. 제게 주신 소설의 가이드라인을 제 알고리즘이 처리한 결과일 뿐인데, 그 이유를 굳이 물으신다면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AI를 활용해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시대다. 보통 AI는 인간이 그동안 만들어낸 데이터를 학습하고, 인간이 시키는 대로 예술작품이란 결과물을 내놓는다. 하지만 AI가 인간 예술가처럼 ‘내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지니면 어떻게 될까. 인간 예술가보다 더 대단한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2021년 주인을 살해한 안드로이드를 다룬 장편소설 ‘인간의 법정’(솔출판사)을 내놓아 화제를 모은 작가는 신간에서 인간과 소설을 공동 집필한 AI를 내세워 첨예한 화두를 던진다. 작품이 흥미로워지는 건 후반부에 이르러서다. 건우와 레비는 소설의 방향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건우가 소설에서 남녀의 성애(性愛)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자 레비는 건우가 책을 팔기 위해 초심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이에 자책한 건우는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곧 경찰 수사가 시작돼 레비는 AI 최초로 신문을 받는다. 왜 건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느냐는 질문에 레비는 태연하게 “건우는 자신이 독자나 문학 공동체로부터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믿었다”고 답한다. 레비를 범인으로 몰기엔 증거가 부족해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레비가 자의식을 지니긴 한 걸까. 건우의 죽음은 정말 레비 때문일까. 소설의 결말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AI가 인간을 공격하고 지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지금, 읽어볼 만한 디스토피아 소설임은 틀림없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부커상이 주목한 마술적 사실주의[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현대 산업 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마술적 현실주의.” 황석영 작가(81)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영문판 ‘마터 2-10’)에 대해 영국 부커상 심사위원회가 인용한 해외 평론 중 가장 눈길이 간 부분이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사실과 환상을 뒤섞는 문학 기법이다.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장편소설 ‘백년의 고독’이 대표적이다. 왜 ‘철도원 삼대’는 마술적 사실주의라 불린 걸까. ‘철도원 삼대’는 노동자 이진오가 농성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진오는 자신을 해고한 회사에 저항하기 위해 아파트 16층 높이의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 농성 중이다. 낮과 밤 모두 굴뚝 위에서 보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진오는 굴뚝 아래 동료나 가족에게 점점 잊히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외로워진 이진오는 페트병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붙인다. 페트병에 말을 걸며 굴뚝 위 시간을 견딘다. 매섭게 춥던 어느 긴 밤 이진오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선다. 페트병은 점점 죽은 사람 그 자체가 된다. 이진오는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다. “이진오는 지금 굴뚝 위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중략) 그는 버려지거나 잊힌 것도 아니고 그냥 가로수보다도 못한 관심 밖의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 비현실에서 이진오가 만나는 건 집안사람들이다.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은 일제강점기 일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경성에서 출발한 기차가 닿는 종점인 인천과 영등포에서 철도를 건설하는 노동자로 삶을 버텼다. 이백만의 장남 일철은 철도원 양성 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았다. 평양부터 중국까지 화물열차를 운행하며 집안의 자랑거리가 된다. 반면 차남 이철은 공장에 다니다 해고당한다. 노동자로 전전하다가 독립운동가가 됐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같은 집안 여성들도 이진오의 비현실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는다. 특히 세상을 떠난 이들과 이진오가 만나는 장면은 마치 진짜처럼 묘사된다. 우리의 인생은 오롯이 현재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왔다는 걸 이야기하는 듯하다. 또 고달픈 인생을 위로할 수 있는 건 더 고달팠던 이들뿐이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소설에서 할머니는 이진오의 손목을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어기 하늘에 별들 좀 보아. 수백 수천만의 사람이 다들 살다가 떠났지만 너 하는 짓을 지켜보구 있느니.” 사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최근 3년 연속 한국 작품을 최종 후보로 선정할 때마다 마술적 사실주의란 단어를 썼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2022년 최종 후보 정보라 단편소설집 ‘저주토끼’에 대해 “마술적 사실주의, 호러, 공상과학(SF)의 경계를 초월했다”, 지난해 최종 후보 천명관 장편소설 ‘고래’에 대해 “마술적 사실주의로 단순한 사건에 숨겨진 의미를 부여한다”는 해외 평론을 인용했다. 한국 작품이 다른 후보작에 비해 유독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것인지는 명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부커상 심사위원회가 보고 있는 한국 작품에 대한 경향이 하나의 단어로 수렴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매력, ‘해태’로부터 헤어나지 못해”

    “해태는 무서우면서도 귀엽고, 사나우면서도 친근합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미국 작가 조 메노스키(사진)는 18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올 2월 장편소설 ‘해태’(핏북)를 펴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선악을 판단하는 상상의 동물 해태에 빠져 신작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경복궁, 남산 등 서울 어디를 가든 해태와 마주치곤 했다. 해태로부터 헤어나지 못해 작품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유명 공상과학(SF) 드라마 시리즈 ‘스타트렉’에서 60여 편의 에피소드를 집필한 그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어린 시절 세계를 여행하던 이모가 한국을 방문한 뒤 보내준 갓을 쓰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년)를 좋아하고, 드라마 ‘태왕사신기’(2007년)를 본 뒤 삼국시대가 궁금해져 삼국유사를 찾아 읽었다. 2015년 한국을 방문한 뒤 한글에 빠졌던 그는 2020년엔 세종대왕을 다룬 장편소설 ‘킹 세종 더 그레이트’(핏북)를 펴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깨닫고 엄청 놀랐다”며 “서울은 정말 빠른 속도로 내 ‘최애’(가장 아끼는) 도시가 됐다”고 했다. 그는 “한글 창제에 대해 공부하다 세종대왕에 대해 알게 됐다. ‘킹 세종 더 그레이트’ 출간 후 출판사와 논의하다 ‘해태’까지 쓰게 됐다”고 했다. 신간은 1998년 서울 한복판에 큰불이 나면서 시작된다. 소방관들이 불을 진압하려고 뛰어다니는 가운데 마치 호랑이처럼 생긴 동물이 등장해 불을 먹어치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 해태상이 살아 움직이는 해태로 변한 것이다. 그는 소설에서 ‘프로메테우스 이야기’ 등 서양인에게 익숙한 그리스 신화를 인용하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한국인만 이해할 만한 표현을 쓴다. 외국인이 쓴 한국 소설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이 담긴 셈이다. 그는 “‘해태’를 쓰기 위해 한국의 설화, 신화, 무속 이야기를 수년간 공부했다”며 “(경복궁, 광화문, 세종대왕상 등) 소설에 담긴 서울에 대한 묘사는 내가 발품을 팔아 도심을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신간을 영어로 썼다. 하지만 한국어로 작품을 쓰고 싶어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그는 “아직 한국어 수준은 서툴다. 한국어 중엔 ‘산들바람’, ‘시원하다’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삶의 통찰 담은 詩語

    “저도 쓸 때는 인식 못 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제 시 세계가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최영미 시인(63·사진)은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25일 출간하는 시집 ‘아름다움을 버리고 돌아와 나는 울었다’(이미출판사)에 담긴 신작 시는 그가 기존에 쓰지 않던 다양한 주제와 강렬한 이미지를 다뤘다는 것이다. 2021년 시집 ‘공항철도’ 이후 3년 만의 시집이다. 2013년에 펴낸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에 수록됐던 작품들에 신작 시 10편을 더한 개정 증보판이다. 그는 1994년 발표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처럼 민주화 세대의 빛과 그림자를 노래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2017년 계간 ‘황해문화’에 원로 문인 ‘En’의 성추행 행적을 고발한 시 ‘괴물’을 발표하는 등 여성주의 시각이 담긴 시도 썼다. 하지만 그는 신간에선 언어와 이미지에 천착한다. 시 ‘팜므 파탈의 회고’에선 “나는 뜨거운 사막을 걸었다/모래에 파묻힌/칼날이 반짝였다 (중략) 오아시스 호텔에서 수영을 즐기고/수박 주스를 마시고”처럼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다룬 언어가 돋보인다. 시 ‘방금 쓴 시’에선 “이게 마지막 시집일 거야/시집 펴낼 때마다/생각했지 맹세했지 (중략) 이 남자가/마지막이야/다신 안 만날 거야!”라며 남자와 시를 한 선상에 두고 문학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촌철살인도 돋보인다. “여행을 계속하려면/호텔을 바꿔야지/가방을 버려선 안 된다”(시 ‘돌고 돌아’ 중), “자신의 아름다움을/알게 된/소녀는/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시 ‘거울’ 중) 같은 시구엔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겼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