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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한 푼도 안 쓰고 살기, 9800원으로 데이트하기, 하루 세 끼를 39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기…. 이런 극한의 체험이 요즘 청춘들에겐 일상이다. 채널A ‘먹거리 X파일’은 돈 없는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편의점 도시락과, 이보다 싼 안주를 파는 초저가 주점의 실태를 잇달아 방송했다. 서울에서 9800원에 데이트하는 노하우는 자산 컨설팅 프로그램 ‘황금나침반’에 나온다. 1000원짜리 커피 마시고→인사동과 북촌에서 인증샷을 찍은 뒤→낙원상가에서 2000원짜리 우거지국밥 먹고→2000원짜리 붕어빵 한 봉지와 900원짜리 편의점 율무차 2잔 사서→충무로영상센터에서 무료 DVD를 보는 코스다. 하루 종일 돈 안 쓰는 ‘노 머니 데이’엔 예식장 하객 알바를 뛰어 끼니를 해결한다! 어느 세대이건 청춘은 가난했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77)는 젊은 작가와 나눈 필담을 묶은 책 ‘가장 사소한 구원’에서 취업도 연애도 포기했다는 하소연에 “우리 땐 더 가난했다”고 했다. 옷이 없어 군복을 염색해서 입었고, 서울대를 졸업하고도 취직이 어려웠으며, 유학 시절 첫아이가 태어났을 땐 방을 얻을 돈이 없어 학교 기숙사 책상 서랍에 아이를 재워 키웠다는 경험담도 들려줬다. 하지만 요즘 20대는 고도 성장기를 살아온 세대와 다르다. 부모보다 더 배우고도 그만한 수준으로 살기 어려운 세대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기에 고교를 졸업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땐 모두가 힘들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독 20대에 가혹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9년 4분기(10∼12월) 전체 실업률은 5%, 20대 실업률은 8.7%였다. 올해 1분기(1∼3월) 전체 실업률은 4.3%로 외환위기 때보다 낮아졌지만 20대 실업률은 10.8%로 오히려 늘었다. 대선 후보들은 청년들을 위해 여러 공약을 내놓았다. 공공 일자리를 늘리고, 청년수당을 주고,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매달 5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만 어렵나. 자녀 키우는 중장년들은 허리가 휘고, 노인 빈곤율도 오름세다. 그들을 위한 공약도 차고 넘친다. 파이는 작은데 먹을 사람은 줄을 서 있다. 그런데 청년 세대는 투표나 거리 시위를 통해 제 몫을 스스로 챙기기가 어렵다. 통계청의 세대별 인구 구성을 보면 40대와 50대는 각각 850만 명과 800만 명이지만 20대는 640만 명, 10대는 560만 명이다. 60대 이상은 1000만 명이다. 세대 간 표 대결의 운동장도 기울어져 있는 셈이다. ‘소수자’인 청년들을 위해서는 맞춤형 정책도 좋지만 세대 간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청년영향평가제 도입을 제안한다. 교통과 환경 영향평가제를 응용한 제도다. 대형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이 교통과 환경에 주는 영향을 예측한 뒤 개발로 이익을 보는 이가 이 문제의 해결 비용을 일부 부담하듯, 새로운 정책이나 예산 집행이 미래 세대에게 주는 영향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정년을 늘리고 연금을 설계할 때,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할 때 이것이 자녀 세대에 빚더미를 안겨 그들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지는 않을지 점검해야 한다. ‘외부자들’에 출연하는 안형환 전 국회의원은 11일 방송에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기원인 고대 로마에선 식민지에서 (자원을) 가져다 공짜 빵을 약속했다”며 “우린 식민지가 없다. 우리 세대의 부담을 다음 세대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선 후보들의 장밋빛 공약이 청년세대를 식민지화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부터 따져봐야 한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사드 배치를 놓고 미중 간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G2가 동아시아에서 격돌하고 있는데 우리가 외교정책을 어떻게 짜야 할까요. 30초씩 드리겠습니다.”(19일 KBS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합동토론에서 사회자) “홍준표 후보께서는 청년 일자리 문제, 그리고 미국과 맞짱을 뜨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말씀해 주시죠. 30초만.”(19일 TV조선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후보 토론에서 안상수 후보가 홍 후보에게) 요즘 대선 경선후보 TV토론은 대개 이런 식이다. 안보 경제 같은 복잡한 문제의 해법을 물어놓고 “짧게” “간단히” 답하라고 요구한다. 논술시험인데 단답형으로 써내라는 식이다. 고차방정식 문제에 풀이과정 생략하고 답만 적으라는 격이다. 채점하는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점수를 주어야 할지 난감하다. 어느 외교안보 전문가는 “주요 후보들의 책을 읽고 TV토론도 봤는데 사드에 대한 생각이 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한국 대선에서 TV토론이 도입된 건 1997년 15대 대선(후보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때다. TV토론이 54회나 열렸고, 언론사와 각종 단체가 주관한 토론회를 포함하면 100회가 넘었다. 2002년 대선(노무현 이회창 권영길) 당시엔 27회, 2007년(이명박 정동영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엔 11회였다. 불통(不通)의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TV토론이 역대 최소인 3회, 총 6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는 공직선거법상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토론회였다. 더 큰 문제는 토론의 질이었다. 18대 대선의 TV토론 진행표를 보면 초 단위로 진행 상황을 짜놓은 방송용 큐시트를 보는 듯하다. 기조연설 각 2분, 사회자 공통 질문에 후보자 각 1분 30초 답변, 상호토론 6분…. 상호토론 공식은 이렇다. A후보 질문 1분→B후보 답변 1분 30초→A후보 질문 또는 반론 1분→B후보 답변 또는 재반론 1분 30초…. 깊이 있는 토론은커녕 ‘모범답안 읽는 학예회식 토론’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장과 반박, 재반박이 이어지며 능력과 사람됨이 낱낱이 드러나는 토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팀이 15∼18대 대선에서 진행된 12회의 TV토론을 분석한 결과, 사회자 질문이냐 상호토론이냐 하는 토론 형식보다는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느냐가 관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선 가능성이 높은 두 후보자 간의 토론에서 상대적으로 내실 있는 토론이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한국방송학보 논문 ‘TV토론은 진정한 토론인가?’) 선거 기간이 짧고 당선 후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 이번 대선에서 TV토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TV토론이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검증의 기회가 되려면 형평성을 위해 변별력을 포기했던 옛날 틀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 토론에 나오는 참여자 수를 줄이고 시간은 늘리자. 사드면 사드, 일자리면 일자리 하나만 가지고 무한토론을 해야 누가 진짜배기인지 가려낼 수 있다. 안희정 민주당 후보는 21일 채널A ‘외부자들’에 나와 “도지사(선거) 때는 질문이 작은 시냇물의 수압이었는데 대통령에 도전하니 바닷물 같은 수압을 느낀다”고 했다. 대선 주자들은 수압이 바닷물 수준인 질문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는 맷집과 설득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갈라진 국론을 하나로 모아 ‘거래의 기술자’인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공해(公海)인 남중국해에 구단선(九段線)을 그어 놓고 중국해라고 우기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을 상대해낼 수 있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58)와 노회찬 원내대표(61)가 부부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MBC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 쇼’의 진행자인 강석, 김혜영을 부부로 착각하듯 말이다. 심 대표는 노 원내대표와 함께 오랫동안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온 간판급 진보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달 정의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는데 남편은 이승배 씨(61)다. 이 씨는 경기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수재로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출신인 심 대표와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났다. 이 씨는 대선 후보의 배우자 자격으로 ‘여성동아’와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스스로를 ‘전업주부’라고 소개했다. 결혼 후 출판사를 운영하던 그는 2004년 심 대표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되자 집안 살림을 맡았다. 출판사를 접고 한의사가 될까 생각하던 참이었지만 “지금은 새롭게 일을 벌일 때가 아니다”라며 아내 뒷바라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씨는 아내가 세비를 받아오면 그것으로 살림하고 아이 키우고, 모자라면 부업을 해서 보탠다. 아내의 지역구 주민들을 위해 시민활동을 하며 적극적인 외조도 한다. 그의 ‘멀쩡한’ 스펙을 아는 지역구 주민들은 “왜 직접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결혼을 아예 안 했으면 모르지만 누군가는 받침이 돼야 다른 사람이 설 수 있으니까요. 한 사람이라도 확실하게 세우려고 주부가 된 거죠.” 알파걸 세대가 알파맘으로 자라면서 남편보다 잘나가는 아내들이 많아지고 있다. 체력보다는 머리와 소통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 변화도 여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미국은 2009년, 영국은 2010년부터 전체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아내의 수입이 남편보다 많은 부부가 38%다(미국 노동통계국 2015년 자료). 한국도 실직한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가장(家長)이 2000년 44만 명에서 2015년엔 139만7300여 명으로 증가했다(통계청). 앞치마를 두른 남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떨까. 2년 전 ‘엄마의 행복’을 주제로 특집기사를 준비하면서 전업주부 역할을 하는 남편에 대해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남성 응답자의 경우 ‘찬성’이 48.3%, ‘반대’가 29.2%였는데, 여성은 반대 의견이 67%로 압도적이었다. 당시 인터뷰에 응한 여성 가장은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 뒤 처음 한두 달은 즐겁게 집안일을 전담하더니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집안일도 육아도 내 몫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대표적인 알파맘인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는 저서 ‘린인’에서 부부 사이가 평등할수록 금실이 좋고 자녀들도 잘된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여자들에게 (직업적인) 기회에 달려들라고 부추기듯 남자들도 가정에 야망을 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갖 종류의 남자들과 사귀되 결혼할 땐 ‘자신과 동등한 동반자를 원하는 남성’과 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이 씨는 “노동운동을 하던 옛날 선배들은 여성을 옥바라지해 주는 대상 정도로 여기는 가부장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내를 만나면서 천박한 성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심 대표에게는 “평생 동반자로 같이 가자. 둘이 앞을 보고 같이 가고 싶다”고 프러포즈했다고 한다. 그는 약속대로 아내의 꿈과 그 꿈이 그려낼 사회를 위해 기꺼이 아내의 뒤에 섰다. 둘의 만남을 계기로 서로 성장하며 지향하는 바를 몸으로 살아내는 심상정-이승배 부부는 남녀 간 성공의 크기를 굳이 비교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갈 세대들에겐 훌륭한 롤 모델이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반기문 불출마 선언’이 나왔던 1일 온라인은 ‘봉 도사의 소름 돋는 예언’으로 들썩였다.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채널A ‘외부자들’에 나와 “반기문 진영(보수)의 후보가 바뀐다. 황교안으로”라고 예상한 것이 뒤늦게 화제가 된 것이다. 이 방송의 녹화일이 18일이므로 봉 도사는 2주 전 그의 중도 하차를 예견한 셈이다. 외부자들은 요즘 뜨는 종편 장르인 정치 예능이다. 정치 예능이란 정치 현안을 놓고 입담을 겨루는 토크쇼. 화요일엔 외부자들, 수요일엔 TV조선 ‘강적들’, 목요일엔 JTBC ‘썰전’이 방송된다. 미국의 언론학자인 로버트 엔트먼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저널리즘을 전통, 주창(Advocacy), 타블로이드, 오락 저널리즘으로 분류했는데 미국의 심야 토크쇼나 한국의 정치 예능이 오락 저널리즘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 예능의 인기 비결이 다매체 시대를 맞아 전통 언론의 보도 원칙으로 주목받는 ‘5I’에 충실한 데 있다는 사실이다. ‘5I’란 재미있고(Interesting) 정보를 주고(Informed) 지적이며(Intelligent) 통찰력을 제공하면서(Insightful) 해석적인(Interpretive) 보도 방식이다. 미국 언론학자인 미첼 스티븐스 뉴욕대 교수가 저서 ‘비욘드 뉴스: 지혜의 저널리즘’(2015년)에서 ‘기자들이여, 제발 육하원칙(5W1H)에서 벗어나라’며 대안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진행자 남희석과 4명의 패널이 나오는 외부자들을 예로 들어 5I를 설명하면 이렇다. 우선 이 프로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부터 사드와 국정 교과서 논란까지 정보 시민(informed citizen)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현안을 다룬다. 그러면서 “빅텐트는 떴다방” “이재명은 이삭 주워 재벌 된 케이스”(이재명 성남시장이 군소 대선 후보들의 지지층을 잠식해 지지율을 올렸다는 뜻)처럼 재미있는 독설과 비유로 시청자를 붙들어둔다. 구속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얘기가 나왔을 땐 지적인 대화가 오갔다. “인간적으로는 애처가이고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에요.”(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 “그게 해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죠. 나치도 훌륭한 아버지고 남편이고 성실한 직장인이었다는 거잖아요.”(진중권 동양대 교수) 이건 어떤가. “전쟁터에선 한 번 죽지만 정치를 하면 여러 번 죽는다.”(전여옥 전 의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지지를 선언한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때론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정치’를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검찰은 미래를 이야기하려 한다. 검사는 과거를 정리하면 되는 거다.”(안형환 전 새누리당 의원, 최순실 게이트 특검의 의욕 과잉을 경계하며) TV 출연을 꺼리던 전여옥 전 의원은 외부자들에 나오기로 결심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장사하느라 글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분이 저더러 TV에 나와 정치 얘기를 해달라고, 그러면 올바른 투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민주 사회에서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유권자들이 올바른 한 표를 행사하도록 돕는 것이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미국 성인 37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의 정치 예능인 심야 토크쇼에서 2016년 대선 정보를 얻었다고 응답한 비율이 25%였다(중복 응답). 심야 토크쇼는 TV뉴스, 신문,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11개 정보원 가운데 가장 도움이 됐던 정보원 7위였다. 올해 한국 대선이 끝난 뒤 얼마나 많은 유권자가 “투표에 필요한 걸 정치 예능에서 배웠다”고 할지 궁금하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호떡 장사로 40억 원짜리 빌딩을 올렸단다. 100억 원대 부자가 된 카센터 정비공도 있다. 채널A ‘서민갑부’(목 오후 9시 50분)는 갑부가 된 흙수저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억” 소리 나는 비법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바닥까지 내쳐졌으나 우뚝 일어서고야 마는 서민갑부들의 맷집에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된다. 12일 방송된 ‘노숙자에서 25억 자산가로’ 편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KBS2와 MBC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높았다. 지금까지 소개된 100여 명의 서민갑부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인생을 사는 지혜 5가지’를 꼽아봤다. ①세상이 내게 친절할 거라 기대하지 말라=한우식당을 개업했는데 구제역이 돈다. 젖먹이 아이가 있는데 외벌이 남편이 큰 병에 걸렸다. 고아로 어렵게 자랐는데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묻는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닥치느냐”고. 답은 이거다. “너만 피해가란 법 있나.” ②내가 바뀌어야 한다=억울하지만 불친절한 세상에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야구선수를 꿈꿨던 정문호 씨(52). 대학 시절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가 열린 문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왼쪽 다리를 잘라낸 그는 야구방망이 대신 실과 바늘을 들었고, 손뜨개질 사업으로 37억 원의 자산을 일궜다. 재능은 있고 돈은 없었던 화가 지망생 유영욱 씨(70)는 물감 대신 페인트로 아파트 외벽에 도안과 숫자를 그려 넣는 직업을 택했다. 그 덕분에 칠순의 나이에도 많게는 월 1000만 원을 벌고, 그렇게 생긴 여유로 집에선 그림을 그린다. “가족이 있으니 돈을 벌어야 했지. 그래도 꿈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어.” ③1만 시간? 10만 시간의 법칙!=서민들에게 갑부 되기는 마라톤 경주다. 기술 연마에 수만 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다. 장미란 씨(49)는 ‘마장동 갑부’로 불리기까지 17년간 칼을 잡았다. 고깃값 6억 원을 떼인 뒤에도 어린 아들을 들쳐 업고 발골 작업을 하며 120만 원을 벌어 100만 원을 저축했다. 손은 베이고 꿰맨 자국투성이지만 집에선 한강이 내다보이고 은행에 가면 지점장이 인사를 나온다. 세상이 변화하니 고수들의 공부에도 끝이 없다. 열쇠공 백상흠 씨(57)는 디지털 도어가 등장해 열쇠업자들이 줄줄이 폐업할 때 전자키 기술 연구에 매달려 갑부가 됐다. 세탁소 사장 백남옥 씨(66)도 세탁업계 경쟁 심화라는 위기에서 기회를 잡았다. 그는 30여 년 경력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세제와 세탁법을 다시 공부한 끝에 특수세탁이라는 ‘금맥’을 찾아냈다. ④함께 해야 멀리 간다=건강이 나빠진 남편과 귀농해 농사짓고 방앗간을 운영하는 홍종희 씨(49)는 마을 주민들의 농작물도 사들여 떡을 만든다. 그런 홍 씨 부부가 고마운 주민들이 입소문을 내준 덕에 부부는 해외에서도 떡 주문이 몰려들어 월 매출 1000만 원을 올리고 있다. 경남 통영 중앙시장 돈을 끌어모은다는 박경순 할매(68)의 마케팅 비법은 ‘개미군단’이다. 시장 내 여러 점포에서 할매의 인기상품을 판매하게 한 뒤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30년 넘게 상생하고 있다. ⑤내 일에 자존심 건다=‘이 분야만큼은 날 따를 자가 없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연매출이 10억 원인 기와공 이덕희 씨(55)는 지붕 꼭대기 아무도 못 보는 곳에서도 스스로 흠을 찾아내 보수공사를 해준다. “일이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연매출 8000만 원이 넘는 ‘칼 갈아 주는 아저씨’ 박경목 씨(61)의 철학은 이거다. “녹슬어서 못 쓰기보다 닳아서 못 쓰는 인생이 돼라.”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북한 전문가로서 그의 혜안이 새삼 주목받은 계기는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이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후 27세의 젊은 지도자 옆에 후견인으로 우뚝 선 장성택의 앞길은 훤해 보였다. 하지만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77)는 해외의 북한 문제 관계자들에게 그의 몰락을, 그것도 “2년 후”라는 것까지 정확히 예견했다. 이 얘기는 장성택의 등장에서 처형까지를 다룬 책 ‘장성택의 길’(2016년)에도 나온다. 라 교수는 미국 뉴욕주립대와 영문판 ‘장성택의 길’ 출간 계약을 맺고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김정은이 1일 신년사를 발표하자 라 교수의 ‘신통력’을 믿는 해외 관계자들이 다시 바쁘게 그를 찾아 새해 전망을 물었다. 기자도 비슷한 궁금증을 안고 3일 라 교수를 만나고 6일 전화로 추가 질문을 했다.“참수작전? 그럴 능력이 있나”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능력 부족’ ‘인민의 충실한 심부름꾼’이라고 언급해 화제다.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수하고 강성 대국을 약속했지만 빈부격차만 커졌다. 뭔가 한마디는 해야 했을 것이다. 진짜 인민을 위한다면 신년사 외우기부터 안 했으면 좋겠다. 북한 주민들은 매년 김정은의 신년사를 외워야 한다. 학교와 직장 단위로 대회도 연다.” ―핵 선제공격 능력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한국보다는 미국과 먼저 협상하려고 할 것이다. 더 쉽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3년 3차 북핵 실험 후 북한과 의미 있는 고위급 접촉이 없었던 2기)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도 트랙 투(비공식적인) 채널 10여 개로 북한과 지속적으로 대화했다. 미국에선 전직 관료와 학자들, 북한에선 최선희(외무성 미국국장) 같은 관료들이 나온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도록 내부 봉기를 일으키는 것이 100% 가능하다’고 했는데…. “북한 정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문제는 대규모 항쟁이나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도 사고까지 막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김정일 생전에도 암살 위기가 두 번 있었다고 어느 책에 나온다. 술에 취한 호위병이 김정일이 갑자기 나타나니 당황해 권총을 뽑다가 사살됐다. 또 한 번은 경호원이 총을 빼들려다 제압됐다. 당시 고영희(김정은 생모)가 김정일을 감싸 안았다고 한다. 김정일을 진짜 쏘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고의적 암살 시도와 달리 우발적 사고는 막기 어렵다.” ―김정은 유고 시엔 어떻게 되나.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관리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가이다. 김정은이 통치를 못 하게 되면 세 가지 위기가 닥친다. 첫째, 인도주의적인 위기다. 북한 주민 2400만 명의 안전을 보장하고 민생을 해결해줄 수 있는가. 둘째, 군사적 위기다. 독일은 동독 군대가 6만 명이었다. 북한은 상비군만 120만 명, 비정규군이 600만∼800만 명이다. 대량살상무기까지 있다. 셋째, 국제적 위기다. 북한에 힘의 공백이 생기면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부터 관리하려 들 것이다. 중국은 미군이 개입하는 걸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일본도 재일교포 북송과 납치 등으로 북에 있는 교포가 많게는 1만 명이다. 러시아는 접경국이다. 4강이 북한 붕괴 후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 주는 영향이 엄청나다. 그래서 안 한다. 아무 준비 없이 북한 정권이 붕괴됐을 때 북한 주민들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국방부가 4일 김정은 참수부대를 올해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그런 특별부대 창설을 공개했어야 하나. 목을 쳐야 할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정보 역량을 가지고 있나. 정확한 타격 능력은 있는가. 미심쩍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김일성 김정일, 세습 안 원해” ―장성택이 조카에게 숙청될 것을 어떻게 알았나. “장성택 사태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첫째, ‘데릴사위’다.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이 ‘데릴사위’가 뭐냐고 물어서 설명해줬더니 ‘삼성의 임우재(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맏사위) 같은 사람이군요’라고 하더라. 부잣집에 장가간 친구가 있는데 장인과는 사이가 좋지만 처남과는 그렇지 않다. 장인이 죽고 나면 끝이 안 좋더라. 둘째, ‘권력서열 2인자’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앤서니 이든 총리를 평생 후계자로 키워놓고도 서로 암투가 심했다. 셋째, ‘권력 승계의 어려움’이다. 근대사회의 위대한 성취 중 하나가 권력 승계를 규칙에 따라 하는 것이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가 ‘내가 이회창 후보보다 유리한 점이 하나 있다. 득표수가 같으면 내가 된다. 선거법에 그럴 경우 연장자가 된다고 나온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김대중 1924년생, 이회창 1935년생). 북한의 큰 실패 중 하나가 권력을 강화할 생각만 했지 넘겨주는 절차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장성택이 숙청됐다고? “그런 절차가 있었으면 장성택이 넘겨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장성택은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알파 메일(male)’이었다.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나 최태복(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과는 다르다. 김영남은 자기 운전기사도 자기가 안 고르고 당에 부탁한다. 측근을 챙긴다는 의혹을 받지 않으려고. 그래서 장수하는 것이다.” ―북한 권력 승계의 규칙은 세습 아닌가. “김일성이 세습을 생각했다면 후계자 교육 시키고 사진도 찍어 두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김정은이 그 사진 잘 써먹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김정일도 세습을 원했다면 자식을 스위스로 유학 보내지 않고 당이나 군대에 넣어 후계자 훈련을 시켰을 것이다. 영국 왕실도 후손들을 영국에서 공부시킨다.” ―김정일은 북한에서 공부했고 김일성 생전에 후계자로 낙점받은 것 아닌가. “김정일은 자기 능력으로 정권을 획득한 것이다. 그러려고 등장시킨 것이 ‘기쁨조’다. 기쁨조를 통해 계모 김성애를 아버지에게서 떼놓고, 아버지가 기쁨조에 빠져 있는 동안 실권을 장악해 나갔다.” ―김정은도 세습을 할까.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일 것이다. 하겠다고 하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후계를 일찍 정하면 후계자로 권력이 이동한다. 김일성도 말기엔 허수아비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엇갈리는 지시를 내리면 밑에서는 김정일 지시를 따랐다.” ―개혁 개방을 주장하는 제2의 장성택이 나올 수 있을까. “장성택 같은 무게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함부로 죽이니까 그런 얘기를 꺼내기 힘들다.” ―북핵 문제는 양자제재 다자제재 모두 별 효과가 없었다. ‘변칙 복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김정은 정권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문을 닫아 걸지 않으면 보전이 안 되는 그런 정권을 외부 사람이 어떻게 보장해주나. 굉장한 난제다. 그리고 미국으로선 (석유가 나는) 중동에 비해 북한은 중요한 나라도 아니다.”“광복 후 모든 위기는 기회였다” ―최순실 게이트를 역대급 위기라고 한다. “지난해 말 독일과 러시아에서 한국의 발전과 쇠락을 주제로 강연해달라고 초청을 했다. 가서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들은 위기와 발전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지만 한국의 현대사 경험에서 위기와 발전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대한민국은 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경제는 피폐했고 민주정치는 해본 경험이 없으며 공산주의의 위협이 컸다. 이 위기를 빠른 농지개혁으로 돌파했다. 위기가 아니었다면 농지개혁을 이렇게 빨리 못 하고 산업화의 기반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6·25전쟁도 발전의 계기였다. 농촌 청년들이 군대에 가서 글을 깨치고 통신 운전 무기 기술을 배우며 조직적으로 작업하는 훈련을 받았다. 근대 국가를 경영하는 인재들이 됐다. 1970년대 닉슨 독트린(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국제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주한미군 대폭 철수 발표) 위기 때는 과감히 중화학공업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 정권의 정통성 위기는 민주화로, 1990년대 외환위기는 정보기술(IT)로 극복해 IT 강국이 됐다.” ―이번 위기를 발전의 계기로 삼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대통령이 검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같은 국가 기관들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정권’정보원이다. 진보 정권 10년 동안에도 국정원장이 7명이었다(이종찬 천용택 임동원 신건 고영구 김승규 김만복).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 10년간 수장이 일곱 번 바뀌면서 정상적인 정보수집 활동을 할 수 있겠나. 천민 공직 윤리도 문제다. 대통령이 ‘그 사람 아직도 있습니까’라고만 물어도 ‘그 사람’을 인사 조치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대통령도 성공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박정희 모델’을 끝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제는 국가 주도로 할 수 없다. ‘창조경제’, 이런 건 민간에서 나와야 한다.” ―라 교수는 마키아벨리 전문가로서 장성택의 실패는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비르투(Virtu·권력 의지와 역량)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나. “마키아벨리스트는 예술가처럼 만드는 사람(maker),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자기가 활동할 무대를 만드는 능력을 가진 이다. 도덕성은 중요하지 않다.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스트가 김정일이다. 한국에선 이승만이 이에 가깝다. 지금처럼 안정된 사회에서는 마키아벨리스트가 아니라 절차에 따라 올바로 행동하는 사람(doer)이 필요하다. 이제는 이승만 박정희처럼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의욕을 줄이고 5년간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선택해 집중해야 한다. 나라 전체를 바꾸자, 그런 건 이제 대통령도 못 한다.” :: 라종일은 ::△서울대 정치학과 학사·석사△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정치학 박사△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김대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장 △김대중 정부 국가정보원 해외·북한담당 차장△노무현 정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노무현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주영 대사, 주일 대사△우석대 총장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문화 체육 분야만이 아니다. 나라의 존립을 좌우하는 외교안보 정책에도 비선 그룹이 관여했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도했던 남재준 초대 국가정보원장이 비선 그룹을 조사하다가 경질됐다고 세계일보가 15일 보도했다. 신동아 12월호는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대북정책은 정호성(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다 했다”고 폭로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남 전 원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현 정부가 출범한 해인 2013년 5월 1일부터 이듬해 1월 7일까지 국정원 1차장(해외 및 북한 담당) 산하 북한담당기획관(1급)을 지낸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52)은 “국정원직원법상 구체적인 정보를 밝히긴 어렵다. 하지만 대북 및 외교정책에 정윤회와 정호성이 상당 부분 개입한 것은 맞다”고 증언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가장 큰 문제로 친중(親中) 노선을 지목하면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역대 최강의 ‘마초형’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등장한 상황에서 친중 정책이 대가를 치르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 법대 재학 시절 주사파 리더로 주체사상을 공부하면서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의 수배를 받던 사람이 국정원 1급 공무원이 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 9월∼2002년 1월 SK텔레콤에서 남북경협 담당 상무를 지냈다. 고려대에서 북한 개혁·개방을 주제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0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박세일,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를 도와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미래전략연구원을 만들어 16년째 운영하고 있다. “대북 정책에 정윤회 정호성 관여” ―국정원에 있을 때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당시 최순실은 심부름하는 집사 비슷한 역할이었고 대북이나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한 건 정윤회, 그리고 문고리 3인방 중에선 정호성이었다.” 정윤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실장으로 보인상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관광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호성은 경기고와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고 고려대 정치학 석사다.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엔 정무기획 담당을 했다.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은 최순실이 고쳤다던데…. “연설문에 코멘트 한 정도일 것이다. 최순실은 2014년 말부터 분탕질한 거고 분야도 문화 체육 분야에 제한돼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든가, 드레스덴 구상도 정윤회와 정호성의 아이디어였나. “(즉답을 피한 채) 국방장관, 외교장관, 안보실장 모두 단 한 번도 자기 소신을 갖고 정책 결정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심부름꾼 역할만 했다. 자기 소신대로 논쟁하고 직언한 사람은 남재준 전 원장이 유일하다.” ―그러다가 경질된 건가. “최순실 그룹과 충돌이 있었다. 정부가 미국보다 중국 쪽에 가까워지는 데 대해 반대했던 것도 경질 사유이다.” -신동아 12월호에는 문고리 3인방이 세월호 문제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국정원에 요구했는데 남 전 원장이 ‘국내 문제에는 개입할 수 없다’고 거절해 경질됐다고 나온다. “그 부분은 잘 모른다.” 남 전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탈북 위장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파문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을 때도 건재했던 그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5월 김장수 당시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전격 경질됐다. 김 전 실장은 이후 주중 대사로 재기용됐지만 남 전 원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남 전 원장은 대통령에 이어 현 정부의 2인자였다. 남 전 원장 시절 국정원 차장급 인사는 대통령이 했지만 1급은 원장이 했다. 이후 이병기 전 원장, 이병호 원장 모두 1급 인사를 단 한 명도 못 했다. 모두 청와대가 좌지우지했다.”“앞으로 친중 정책의 대가 치를 것” ―보수 정권임에도 왜 중국 쪽에 기울었나. “정윤회나 정호성은 모두 세계 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정서적으로는 반미(反美)였던 것 같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정희 시해사건 당시 미국의 사주를 받았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리고 박 대통령을 통일국가의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했다. 중국이 도와주면 가능하지 않을까 ‘wishful thinking’(희망에 근거한 생각)을 한 거다.” ―남 전 원장도 2013년 12월 국정원 핵심 간부 송년회에서 ‘2015년 통일을 위해 다 같이 죽자(열심히 하자는 뜻)’고 했다던데, 사실인가. “그렇다.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 후 다들 북한이 곧 붕괴될 것처럼 얘기했다. 난 장성택 숙청 후 오히려 북한 체제가 안정될 거라고 예상했다. 이런 견해차로 남 전 원장과 사이가 벌어졌다. 그 송년회에 1급 간부들이 다 참석했는데 난 부르지도 않았다. 2014년 1월 7일 사직서 쓰고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구 이사장의 예상이 맞았지 않나. “장성택은 야심이 큰 사람이었다. 2009년 5월 2차 북핵 실험 후 중국은 북핵과 북한 문제를 분리해 북핵 문제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북한 문제는 친중 정부를 세워 해결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친중 세력을 만드는 데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장성택이다. 장성택의 세력이 커지자 북한의 주류인 노동당 서기실이 잘라낸 거다.” ―올 3월 세미나에서 북한은 노동당 서기실 중심의 집단지도 체제로 김정은은 형식적 수령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했다. 일종의 ‘얼굴 마담’이라는 건데….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죽은 지 석 달도 되지 않은 2012년 2월 29일 북-미 간 2·29 합의가 이뤄졌다. 김정일이 죽은 직후 중요한 합의를 한 것이다. 이걸 김정은이 컨트롤했을까. 재벌권력도, 정치권력도 지켜봤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 이미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던 거다. ” ―올 9월 뉴욕타임스가 김정은을 “합리적인 인물(too rational)”, 월스트리트저널이 “노련한 독재자(very skilled dictator)”라고 보도했는데 이는 집단지도 체제이기에 가능한 평가였을까. “그렇다. 김정은 참수 작전을 통한 북한 정권 교체 시도는 실효성이 없다. 북한 붕괴론이나 북한 정권 교체론에 근거한 대북정책으론 안 된다. 합리적인 집단지도 체제가 가동한다는 걸 전제로 전략을 짜야 한다.” “사드, 미국 보복은 두렵지 않나” ―북핵 위기의 해법으로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 운운했는데, 우리가 레짐 체인지를 하게 됐다. 국정 공백기여서 안보 위기에 대한 우려가 크다. “‘트럼프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이다. 트럼프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경제적인 국익을 우선시하는 경제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다. 트럼프는 이를 실행할 외교 수장(首長)으로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7년 지기인 틸러슨의 등장이 뜻하는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의 주요 경쟁국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를 거의 유일하게 지지하는 정통 외교 관료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는 1979년 미중수교의 1등 공신이다. 당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손잡은 것이다. 그랬던 키신저가 이번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태도로 바뀌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미중 사이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사드는 1차적으로 주한미군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예산으로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데 이걸 반대한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자에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자)다.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는 거다. 사드는 외교적 이슈이기도 하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등장하면서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접근을 막기 위해 반(反)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세웠는데 그 두 가지 축이 동북아의 사드와 남중국해 영유권이다. 사드를 배치하지 않으면 중국의 이 전략이 먹히고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쇠퇴한다. 한미동맹이 와해되는 것이다. 트럼프는 신사가 아니다. 계산기 두드려보고 죽일 수도,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사드가 배치되기도 전에 중국은 경제적 보복을 하고 있다. “왜 중국만 보복을 할 거라고 생각하나. 사드 배치 안 하면 미국은 가만히 있을까. 미국은 중국처럼 보복한다고 말하고 하는 나라도 아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지난번 인터뷰 때 ‘아베노믹스가 미국이 엔화 평가 절하를 눈감아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친중 정책 덕분에 경제가 나아졌나. (미국과 가까웠던)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더 좋았던 것 아닌가. 내년 대선에서도 사드가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야당에선 정권 교체를 기대하지만 총선은 심판이고, 대선은 미래를 보는 선거다. 박근혜 심판은 이미 했다. 탄핵안을 국회에서 가결했고, 정유라도 퇴학됐다. 사드 배치 반대는 한미동맹 깨자는 얘기인데 중국에 종속적인 국가로 가자고? 그런 야당을 박 대통령이 밉다고 해서 국민들이 찍어줄까?” ―트럼프 쓰나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미동맹을 토대로 정보, 경제, 안보적 자강(自强)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정보적 자강을 위해서는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는 국가의 정보 기능과 사정 기능이 마비돼 터진 거다. 정보기관이 보고하고 사정기관에서 잘라내야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국정원이 몰랐을 리 없다. 그건 또 다른 죄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정보기관 역량을 강화하면 엉뚱한 사람에게 밥상 차려주는 꼴이 된다. 개혁을 전제로 해야 한다. 미국처럼 해외·북한 파트와 국내 파트를 나눈 뒤 기소권과 공소유지권은 검찰이 갖고, 나머지 수사권은 미국의 연방수사국(FBI) 같은 조직이 갖도록 해야 한다. 지금 한반도는 트럼프, 푸틴, 시진핑, 아베 신조 등 역대급 마초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죽어 있다시피 한 정보수집 기능부터 살려내지 않으면 언제 팔다리가 잘려 나갈지 모른다.” 이진영 기자 colee@donga.com}

‘최틀러’가 돌아왔다. 경제관료 시절 “일국의 환율을 투기꾼의 놀이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외환시장에 강하게 개입한 환율주권론자. 이 때문에 크게 손해 본 뉴욕 외환딜러들이 “히틀러 같다”며 무서워했던 최중경(60)이 이번엔 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을 겨냥했다. 2011년부터 3년 동안 미국 워싱턴의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서 방문 연구위원을 지내며 보고 듣고 읽고 고민한 내용을 묶은 책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를 통해서다. ‘한중관계에 올인해 한미관계를 망쳤다’는 게 요지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그가 같은 보수정권의 안보 정책 담당자들을 “강대국도 아니면서 겉멋 든 외교를 한다” “분노의 주먹을 날리고 싶다”며 난타했다. 올해 6월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제치고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선출된 그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22회 행정고시 합격에 앞서 대학 재학 시절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임종룡, 경제위기 관리능력 있어” ―국정이 마비된 상태다.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경제다. 불안 요인이 많다. 미국은 금리를 인상한다고 하고, 유럽도 극우파들이 유럽연합(EU)을 깨려고 한다. 아베노믹스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동안 풀어놓은 돈 때문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터지면 일본도 굉장히 어려워진다. 중국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부실이 있더라도 부실을 덮을 만한 권력이 있고, 아직은 시멘트를 묻힐 곳(건설 수요)이 많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자원에 의존하는 신흥국이 타격을 입고 신흥국으로 수출하는 우리가 어려워진다. 가계부채 문제에 자산시장 부진까지 엮여 잘못 터지면 외환위기가 오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나. “정치 혼란이 계속되고 부동산 값이 많이 떨어지면 위기 가능성이 높아진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경제부총리로 적임자인가. “그렇다. 가계부채 문제를 다뤘고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경제금융비서관과 기획재정부 환율담당 차관도 했다. 국내외 위험 요인을 볼 줄 알고 관료로서 트레이닝을 받아온 사람이라 리스크 관리 능력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리스크도 걱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기 이전에 미국 대통령이고 공화당 대통령이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자기 색깔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 보호무역은 민주당의 어젠다이므로, 대신 안티덤핑, 상계관세 등을 활용한 공정무역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에 4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하는데 이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면 미국이 지게 돼 있다. 그래서 중국은 신경도 안 쓴다.” ―트럼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할까.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있나. “재협상 요구 이전에 리뷰를 세게 할 것이다. 환율은 미국 BHC(베닛-해치-카퍼)법의 조건을 충족하지 않도록 환율시장 개입 수준을 조절하면 조작국 지정이 어렵다고 본다.” ―미국에선 미중 간 FTA를 체결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2030년에는 중국 중산층이 10억 명(전 세계 중산층의 18%)이 되므로 미국 기업에는 기회라는 얘기다. “가능성이 매우 낮다. 미국이 중국에 날개를 달아줄 이유가 없지 않을까.” ―트럼프의 안보정책은 어떤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미국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할 수 있다. 그건 밀어붙일 것이다. 미국의 안보정책은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차이가 없다. 트럼프가 왔다고 바뀌진 않는다.”“전략적 모호성은 말도 안되는 얘기” ―경제전문가인데 안보정책을 비판하는 책을 썼다. “외교 문외한은 아니다. 국제금융국장으로 금융외교를 했다. 세계은행 상임이사를 지냈는데 거긴 외교의 각축장이다.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로 외교 일선에도 있어 봤다. 청와대에 있을 때 어떤 주제든 모든 수석이 다 같이 모여 토론했다. 외교의 기본은 돼 있는 상태에서 헤리티지에 간 것이다. 안보가 잘못되면 경제는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 제도와 동북아 안보 쪽만 들여다봤다.” ―옛날 얘기지만 현 대통령 평가에서 외교 부문 점수는 높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굉장히 중요한 최첨단 전략자산이어서 노출되면 적의 공격 대상이 된다. 이런 걸 만천하에 공개하는 안보가 높은 수준인가. ‘협상의 여지가 없는 군사보안 이슈(non-negotiable confidential military issue)’를 ‘협상 가능한 공개적 외교 이슈(negotiable open diplomatic issue)’로 만들어 버렸다.”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유지했다. “양국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고, 휴전 상태에 있으며, 미국에 전시작전통제권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략적 모호성은 이론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과 조중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어 국제법상 적군이다. 약자가 전략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양쪽에서 뺨 맞는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에서 경고했다. ‘어중간한 중립은 파멸을 부른다’고.” ―현 정부의 친중(親中)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는데…. “지금 정부는 북한이 곧 붕괴되고, 그러면 중국의 승인 아래 남한 주도의 통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 때문에 다 꼬였다. 대미 외교를 희생하면서까지 중국에 기댔던 거다. 첫 조각(組閣) 때 노무현 정권의 인사를 국방, 외교장관으로 앉힌 걸 보고 미국은 기절초풍했다(노무현 정부 시절 김장수 국방부 장관과 윤병세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을 뜻함). 미국엔 차관급을 대사(안호영)로 보내면서 중국엔 측근인 정치 거물(권영세)을 보냈다. 나중엔 국방부 장관, 대통령안보실장을 지내 군사기밀을 다 아는 사람을 주중대사(김장수)에 임명하고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가 정점을 찍었다. 대통령에게 중국의 승인 아래 통일하자는 식의 진언을 한 사람은 훗날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로서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이 현실적인 대책 아닌가. 호주도 같은 전략을 쓰고 있다. “내놓고 할 게 있고 숨기면서 할 게 있다. 그걸 굳이 안미경중이라는 구호를 만들어 할 필요가 있나. 결국 양쪽에서 비난만 받고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시비를 걸고, 미국은 엔화의 평가절하는 눈감아주면서 유독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선 날을 세운다. 이래도 미중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건가. 허망하다 못해 눈물이 나온다.” ―우리가 중국에 다가가는 동안 미국과 일본이 가까워졌다. “아베노믹스는 경제 이슈가 아니다. 중국의 아시아 안보 위협에도 미국이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법) 때문에 국방예산을 깎아야 하자 대신 일본을 재무장시킨 거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니 엔화 평가 절하의 아베노믹스를 허용한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실패하면 일본 재무장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일본 재무장 이슈와 관련해 외교부와 국방부에 ‘분노의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다’고 책에 썼다. “위안부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일본 재무장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외교 테이블에 결석했다. 결국 미일 간에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한다는데 외교부와 국방부는 ‘우리의 동의 없이는 불가하다’는 말만 한다. ‘우리의 요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어야지. 일본 재무장을 용인하는 대가로 우리도 무장을 강화해 달라고 했어야 한다.” ―왜 이런 실책이 나온다고 보나. “안보는 목표이고 이걸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싸울 거냐(국방) 말로 할 거냐(외교)다. 외교는 안보의 수단일 뿐이다. 외교부는 거기에 맞춰 처신해야 한다. 그리고 군사전문가와 안보전문가는 다르다. 미국 안보전문가는 군대 있을 때 대학원에서 안보를 연구한 뒤 중령이나 대령쯤에서 옷 벗고 나와 민간 싱크탱크나 대학으로 간다. 우린 별 네 개 단 싸움꾼이 안보전문가인 줄 안다. 그러니 사드가 군사 이슈인지 안보 이슈인지 외교 이슈인지 헷갈리는 거다. 군사적 긴장도가 가장 높은 한반도에서 안보 외교 군사가 구별이 안 되다니….”“대통령은 국민에게 모든것 드러내야” ―경제 수준이 외교 안보보다 높다고 볼 수 있을까.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최순실 스캔들 배후에 재벌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문제의 본질은 함량 미달의 정치인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피해자라는 뜻인가. “정치를 악용한 세력들을 걸러내지 못한 정치의 문제라는 뜻이다. 경제민주화에는 찬성하지만 그게 안 돼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의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수행한 관료들도 욕을 먹고 있다. “그런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두 가지 환경 요인이 생겼다. 하나는 국회선진화법, 둘째는 세종시다. 내가 공무원 할 때는 여당과 생각이 같으니 법안이 별 수정 없이 통과됐다. 지금은 여당에 가서 설명하고, 야당에 가서도 설명한다. 그래도 안 돼서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서 있다. 정부가 발의한 것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후배들을 만나 ‘그래도 너희들이 가장 우수한 집단이다’ 그러면 ‘일하면서도 신이 안 난다’고 답한다. 우리 땐 그런 말 들으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했는데….” ―경기고 동창인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 대해 퇴진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대통령에게 ‘그런 분야까지는 관심을 안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했어야 했는데, 아쉽고 참담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은 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최순실 게이트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신비로운 공간은 없어야 한다. 적당히 상징 조작하고 덮어주면 안 된다. 완전히 노출시켜야지. 적어도 공인(公人)이라면.”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먼저 사과부터 하고 싶다.” 팔순의 노신사가 양복저고리를 여미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박근혜가 좋은 대통령이 될 거라고, 그러니 뽑아달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대통령이 됐으니 그것부터 사과하고 싶다. 어디 사과할 데가 없어서 못 하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통해서나마….”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경선 후보의 핵심 자문그룹이었던 7인회 멤버인 김용갑 새누리당 상임고문(80)은 기자를 만나자 “대통령이 이렇게 국민들에게 불신받게 되기까지 역할을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원조 친박에 박근혜 정권 탄생의 주역인 그는 원로 자문 7명 중에서도 쓴소리를 하는 쪽이었다. “대통령 그만둘 각오하라” ―4일 대통령의 국민담화 이후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참가자가 더 많아졌다. “담화가 실망스러웠다. 수습방안을 내놨어야 했는데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한다는 얘기가 하나도 안 나왔다. 청와대 회동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건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생겼다.” ―지난달 29일 새누리당 상임고문 8명과의 청와대 회동에선 어떤 얘기가 오갔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게 민심을 묻는다면 하야, 탄핵이라고. 우리나라에 위기가 세 번 있었다. 첫째가 이승만 대통령의 3·15부정선거, 결과는 대통령 하야였다. 두 번째는 1987년 6·10항쟁, 전두환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전격 수용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세 번째가 박 대통령의 위기다. 이건 앞의 위기와 성격이 다르다. 국민들 자존심이 말도 못하게 상처를 입었다. 해결책도 안 보인다. 한 가지 방법은 대통령 그만둘 각오로 수습방안을 찾는 것이다. 사과하고 (검찰)수사도 받고, 국민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는 ‘제2의 6·29선언’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담화를 발표할 때 10분 이상 하라고 했다. 조목조목 하나하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변명하지 말고.” ―제2의 6·29선언이란 뭘 말하나. “총리에게 내치를 완전히 맡기는 거지.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만 담당하고. 이것도 국민이 안 받아들이면 대통령직 내놓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그 자리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책임총리로 추천했다는 얘기를 듣고 의아했다. 김 전 대표가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에 적극 참여했고, 1987년 개헌 때 경제민주화를 헌법에 명시한 주역도 김 전 대표가 아니라고 주장해 사이가 틀어졌는데…. “나하고 사이가 안 좋지. 하지만 그는 야당을 완전히 장악해 (4·13총선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거다. 총리감 누가 있을까 밤새도록 고민해 생각해낸 사람이 김종인이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 후보자로 발표했다. “왜 야당에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나. 불을 지른 거다. 정치 초짜도 그리 안 한다. 이제 김병준 카드는 관철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야당이 들어주겠나. 보수층에서도 (김 총리 후보자가) 사드 배치 반대하는 데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금은 수습이 우선이니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지만.” ―다른 고문들은 어떤 이야기를 했나. “다른 사람은 나처럼 얘기 안 하지. 한 바퀴 돌고 다시 내 차례가 와서 몇 가지 더 얘기했다. 직언하는 사람이 없는 게 말이 되냐고. 우병우 같은 사람을 민정수석 시켜 대통령의 눈과 귀를 어둡게 했다, 진작 잘랐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사를 왜 대통령 혼자 하느냐고 했다. 각 부처 장관에게 인사권 줘라, 인사권 하나 없는 장관이 어디에 있나.” ―대통령 반응은 어땠나.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얘기하다 나왔는데 끝날 때 악수하면서 ‘좋은 일 있을 때 다시 뵙겠습니다’ 하더라. 내가 (5공 때) 민정수석 할 때는 조그마한 청와대였다. 새 집 짓고는 이명박 대통령 때 가보고 두 번째였는데 그야말로 구중궁궐이더라. 이렇게 넓은 데서 대통령 혼자 살다니.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독대 요청 안한 조윤선도 나빠” 그는 육군사관학교 17기로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차관급)과 민정수석을 지내고, 노태우 정부에서 총무처 장관을 했다. 제15대부터 내리 3선 의원을 한 뒤 72세에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 선언을 해 박수 받았다. ―대통령은 경륜 있는 멘토 7명을 두고도 왜 실패했을까. “멘토 역할은 당선될 때까지였다. 2012년 당선 후 축하전화 한 뒤로 대통령과 연락이 끊겼다. 청와대 내부 사정을 전혀 몰랐다. 대통령 되기 전엔 내가 전화하면 (수행비서가) 다 바꿔줬다. 그런데 청와대 들어가고 나서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더라. 내게 새 번호도 알려주지 않고. (3인방 중) 한 사람의 바뀐 번호를 어떻게 알게 돼 전화했더니 사근사근하던 이놈들이 벌써 음성부터 다르더라고. 통로를 완전히 차단한 거지.” ―그럼 지난달 29일 청와대 회동이 당선 후 대통령을 처음 보는 자리였나. “그렇다. 거의 4년 만에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가슴 아픈 얘기만 하다 왔다.” ―7인회 멤버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있다. “김 전 실장에게도 가급적 전화 안 했다. 간섭하게 되니. 그리고 김 전 실장은 우리랑 다르다. 대통령에게 쓴소리 안 한다. 개인적인 일 아니면 전화 안 한다. 저거들이(청와대 참모들이) 하도 대통령 잘한다 하니까. 이병기 (전 비서실장)에게도 ‘니들이 바른말 해야지’ 하면 ‘밖에서 얘기하는 것과 다릅니다’ 했다.” ―김 고문은 민정수석 시절 ‘땡전 뉴스’를 없애고 직선제를 수용하라고 건의해 6·29선언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참모들 가운데서도 유독 민정수석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박 대통령에게도 당선 전부터 누누이 강조했다. 모든 걸 걸고 직언하는 민정수석 하나만 있어도 잘못된 걸 많이 바로잡을 수 있다고. 그리고 검사 출신은 안 된다고 했다. 직언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나. 직언은 ‘이런 사실이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문제를 보고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그걸 관철시켜야 한다.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검사는 이런 것 못한다.” ―대안을 관철시키는 게 직언이라고? “민정수석 시절이던 1986년 한강 세모유람선에 서울시 공무원이 들어가려다 구타당했다는 신문 기사가 났다. 이상하다 싶어 직원들에게 알아보라 했더니 유람선을 운영하는 유병언 삼우트레이딩 대표가 대통령을 팔고 다닌다는 거였다. 실제로 경제수석이 대통령 모시고 유병언 사무실에까지 가고, 산업은행은 융자도 해줬다. 내가 직접 염곡동 사무실에 가보니 이건 분위기가 큰일 나겠더라. 당장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산업은행에 융자 중단하라 하고, 국세청장에게 세무조사 철저히 하라고 했다. 20억 원 정도 탈루한 것으로 나와 파산했다.” 1986년 8월 국세청은 삼우트레이딩을 상대로 특별 세무조사를 해 32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이듬해 삼우는 1차 부도를 냈으나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신임 최재경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도 검사 출신이다. 지금은 민정수석이 뭘 해야 하나. “대통령 임기 마지막이고 힘이 빠지니까 바른말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정무적 감각은 있어야 한다. 총리 후보자 일방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야당 대표 불러 의견 들어 보세요’ 했어야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최근 정무수석 11개월 하는 동안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조윤선이도 책임이 있어. 대통령이 안 부른다고 독대 못하나. 꼭 만나야겠다고 하면 대통령이 오지 마라 하겠나. 그런 적극성을 보여주지도 않고 대통령이 안 만나준다고 (책임을 떠넘기다니). 안종범(전 정책조정수석)이도 나쁜 놈이야. 대통령이 미르재단 위해 기업 돈 받아오라 하면 ‘노(No)’ 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하고 그걸 지시라고 받아서 전달하나. 대통령이 이런 사람을 참모로 쓰고 있었다. 그 고통은 국민이 당하고.” ―여당도 역할을 못했다. “이정현이 당 대표 되고 나서 7월인가 고문들 하고 오찬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흙수저가 대표 됐다고 칭찬을 해. 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우병우 수석 자르는 거다. 당신은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심각하게 안 듣더라. 마지막에 또 얘기했다. ‘우병우 잘라야 한다. 주군이 잘못하고 있는데 잘한다고 하거나, 모른 척하면 그건 주군 죽이는 것이니 꼭 하라’고. 사람은 자리에 연연하면 안 된다.” “박근혜, 위기 잘 넘기고 퇴임했으면” ―왜 박근혜를 지지했나. “남자들이 대통령을 해보니 노태우, YS(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나중에 전부 사고 치잖아. 이 사람(박근혜)은 본인이 깔끔하니 비리는 없을 것이다, 친인척 관리도 잘할 것이다, 청와대에서 살아봤으니 기질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다.” ―대통령 사퇴 여론이 거세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이 위기를 잘 수습한 뒤 퇴임했으면 하는 게 간절한 바람이다. 그런데 심각성이 너무 크다.” ―책임총리로 김종인 전 대표를 추천했는데 대선 후보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본인은 욕심이 있지만 그건 아니지. 나이가 있으니. 새로운 시대 사람들이 돼야지.” ―김 고문을 ‘꼴통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수란 무엇인가. “꼴통 보수 아니다. 솔직히 이념은 잘 모른다. 한미동맹을 기초로 자유 민주시장경제를 지키는 것이 내가 주장하는 보수다.” ―여당의 ‘잠룡’들 가운데 그런 보수의 가치를 실현할 만한 재목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새누리당은 재집권하기 어렵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한. 그리고 박 대통령 추천했다 실패하고 나니 자신이 없다. 누구 지지해 달라고 하기가….”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아이를 업고 머리에 물동이를 인 흑인 소녀 사진을 보고 생각했다.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어린 동생 돌보고 집안일 하느라 여자 애는 학교 갈 여유가 없었던 때가. 그래서 ‘맏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이 덕담으로만 들리지 않던 시절이. 그런데 이 흑인 여아의 딱한 사정은 우리 경험치 밖이었다. 업은 아이가 동생이 아니라 자기 아이인 것이다. 아프리카 소녀들이 학교를 못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강제 조혼(早婚)으로 10대에 벌써 남편과 아이가 있다. 조혼이 아니어도 ‘여자가 배워서 뭐하나’라고 하는 가난한 부모가 많다. 용케 허락을 받아도 학교까지 가는 길이 안전하지 않다. 오랜 내전으로 갈 만한 학교가 없거나 학교가 있어도 교사가 없다…. 국제어린이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의 ‘스쿨미(School me)’, 우리말로 ‘나도 학교가자’ 프로젝트는 학교 갈 엄두를 못 내는 아프리카 여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캠페인이다. 개발도상국 여아 교육은 요즘 국제사회의 중요한 화두다.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이 주도하는 ‘렛 걸스 런(Let Girls Learn)’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 프로젝트를 통해 5년간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2013년 ‘스쿨미’ 캠페인을 시작해 이 분야를 선도해 온 이가 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마케팅 디렉터(55)다. 아프리카 여아 학교보내기 프로젝트 ―스쿨미 캠페인 대상이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우간다 4개국의 여자아이들이다. 선정 기준이 무엇인가. “가장 열악한 대상을 선택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초등 학령(學齡) 아동이 6100만 명이고 이 중 여아가 3200만 명(53%)이다. 학교에 못 가는 여아의 절반은 사하라 이남에 산다. 그곳 소녀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했더니 ‘당장 뭐가 하고 싶으냐고 물어주세요. 난 학교에 가고 싶어요’라고 하더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돕고 있나. “학교를 짓고 교사를 양성한다. 10대에 엄마가 돼버린 걸 마더(girl mother)가 공부하는 동안 아이를 봐주려고 보육 시설도 운영한다. 남녀 화장실을 분리해 짓는 것도 중요하다.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할 위험도 있고, 여자 화장실이 없으면 생리 기간에 학교에 안 온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면 수업을 못 따라가 자퇴한다. 유목민 마을의 경우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어 학교 가는 길이 매우 위험하다. 맹수들이 공격하거나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학교 안에 기숙사를 짓는다. 돈이 없어 학교 못 보낸다고 하는 엄마들에겐 국수나 신발 장사를 하도록 종잣돈을 지원한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부모에게 딸을 학교에 보내라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겠다. “교육이 배고픈 아이 먹이는 일 다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워야 미래가 있는 거니까. 세이브더칠드런이 1953년 한국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영국인 직원이 부산 피란민촌을 둘러보고 쓴 글이 있다. 엄마들이 국밥 장사를 하고 집에 갈 땐 쌀 한 봉지와 함께 책을 꼭 사들고 가더라는 내용이다. 피란민촌엔 어디에나 학교가 있었다. 그걸 보고 한국엔 희망이 있다, 여길 돕자고 설득했단다. 아프리카는 젊다. 15세 미만이 절반인 마을이 많다. 그런 곳에서 아이들을 10년간 죽어라 교육하면 그 마을은 바뀌는 거다.” ―왜 남아가 아닌 여아들의 교육인가. “여자아이들은 약자다. 전 세계 빈곤 인구의 70%가 여성이다. 여자를 교육해야 엄마가 된 후 아이를 위생적으로 키운다. 2011년 유네스코 통계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모든 여아가 중등교육을 받을 경우 이 지역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이 41%포인트 낮아진다. 엄마가 번 소득의 70, 80%는 집으로 돌아간다. 남자는 이보다 훨씬 낮다. 여자의 배움은 가정의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된다.” ―올해까지 3년 캠페인을 마무리했는데 성과는 어떤가. “3년간 90억 원을 들여 학생 5만 명(남자아이 포함), 학부모 2만5000명, 교사 1000명이 혜택을 봤다. 2019년까지 3년 연장해 2기 캠페인을 한다. 2기 목표는 중퇴율을 낮추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률이 90%인데 졸업률은 15%도 안 된다. 여학생들은 4학년이 지나면 중퇴율이 확 높아진다. 이때쯤 되면 덩치가 커져 집에서 일을 거들고, 양 30마리에 늙은 남자에게 팔려가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선 7초에 한 명씩 조혼을 하는데 이는 무지막지한 폭력이다. 시에라리온의 경우 15세 미만 소녀 8명 중 1명이 임신 상태다. 학교에 다니면 조혼을 막는 효과도 있다.”수저론 무색게 하는 아프리카 현실 최 본부장은 이화여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카피라이터로 출발해 레보버넷코리아 등 여러 광고 회사에서 일했다. 세계 3대 광고제 중 칸광고제(은사자상)와 뉴욕광고페스티벌(금상)에서 수상했다. 어린이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08년 7월 이 단체에 합류해 22년간 광고업계에서 익힌 감각으로 ‘모자 뜨기’ 캠페인을 성공시켰다. 2007년 개도국 신생아들의 저체온증을 방지하기 위해 시작된 ‘모자 뜨기’는 올해로 10년이 됐다. 지금까지 모자로 살린 아이들이 290만 명이라고 한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할 땐 아프리카에 출장 갈 일이 없었겠다. “아프리카에서 깨지면서 깨치고 있다. 처음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여자아이들을 인터뷰했다. 그런데 질문을 해도 대답을 안 하는 아이가 많았다. 수줍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살면서 한 번도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거다. 그 후로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한번은 ‘아침은 먹었니?’ ‘주말엔 뭐하니?’라고 물은 적이 있다. 오후 3시에 한 끼 먹는 게 전부인 아이들에게, 일하느라 잠자는 시간도 부족한 아이들에게 황당한 질문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우간다의 어느 유목민 마을에서 아홉 살 꼬마를 봤다. 비쩍 마른 아이가 맨발에 물통을 지고 있어 받아서 내려주었는데 순간 물통이 너무 무거워 깜짝 놀랐다. 20kg이었다. 아버지는 아프고, 어머니는 돈 벌러 다른 나라로 갔고, 동생이 있고…. 난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가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물론 희망도 본다. 시에라리온의 열 살 소녀 페라 무스는 19kg의 몸으로 5kg의 물 봉지를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판다. 어느 날 물 봉지를 인 채 교실을 기웃거리는 걸 보고 교복을 입혀 공부를 시켰다. 지금은 변호사가 되겠다며 열심이다. 우간다 어느 마을의 5학년 교실에서 유일한 여학생 린다를 봤다. 그 아이가 중학교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은 조혼해 아이 업고 다니는데…. 무력감에 분노하다가도 린다 같은 아이를 보면 더 열심히 도와줘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국제 비정부기구(NGO)로서 힘든 점은…. “지구가 연결돼 있어 나비 효과가 크다. 아침에 본 국제 뉴스가 오후쯤 내게 영향을 준다. 환율, 경제 동향, 자연 재해, 선거….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에 에볼라가 확산돼 1년 정도 학교 문을 닫았다. 그런데 에볼라 사태가 끝난 뒤에도 여자아이들이 안 오는 거다. 학교에 안 오는 동안 여기저기서 성폭행 당해 임신을 한 거였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세계는 끝없이 변화하고, 이는 어려운 사람들에겐 더 심각한 영향을 준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한 아이가 학교를 가는 게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도 린다가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 하고 위로한다.”“나도 구호물자 세대” ―광고 일과 NGO 일의 차이는…. “광고대행사는 시작도 끝도 광고주다. 광고주가 갑이다. 여기에선 농사짓는 자영업자 같다. 씨도 내가 뿌리고 수확도 내가 한다. 갑을병 동체라고나 할까.” ―경쟁이 치열한 광고대행사보다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다. “여기도 경쟁이 있다. 우리가 못 미더우면 후원자들이 다른 단체로 간다. 보람은 있지만 일이 즐겁진 않다. 인디언들이 기우제 지내듯 일이 될 때까지 해야 한다. 다자 간 협력이 중요해 회의가 많고, 기다려야 하는 일도 많다. 무엇보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열정에 불 지르기라고나 할까. 이게 난롯불과 같아서 식으면 돈이나 사람이 있어도 일이 되지 않는다.” ―국내에도 불쌍한 아이들이 많은데 왜 해외 아이들을 도와야 하나. “밖에 나가면 우리가 (성공의) 증거라고 말한다. 한국은 전후 원조를 받고 일어나 수십 년 만에 원조하는 나라가 된 유일한 사례다. 아이티도 전후 2000달러(지금 시세로 약 700만∼800만 달러)를 한국에 원조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전후 한국 원조 활동에 쓴 돈이 현 시세로 환산하면 2000억 원 정도 된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란 이름하에 우리 돈으로 해외 원조 활동을 시작한 게 2005년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보내준 우유와 옷, 소독약을 받았다. 내가 그걸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다. 우리는 아직 그 빚(해외 원조) 다 못 갚았다. 한국은 사랑에 빚진 나라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8월 탈북을 결심한 데는 영국 핵 관련 기밀을 빼내라는 북한 정부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주간지 선데이익스프레스는 16일 영국 정보기관 소식통을 인용해 "2년 전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하면서 태 공사에 100만 파운드(약 13억 8200만원)로 관계자를 매수해 영국의 핵 억지 기밀을 빼내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에 태 공사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특히 100만 파운드로 관련자를 매수하는 건 '코미디'라고 여겼다고 주간지는 전했다. 그러나 기밀을 빼내지 못할 경우 승진은 물론 외교관 경력이 끝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매수한 영국 첩자를 북한에 망명시키라는 지시까지 내려지자 압박감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6개월 동안 거짓된 정보를 전달할까도 고민했지만 결국 골프를 통해 친해졌던 한 영국 정부 관리에 연락을 취해 탈북 의사를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 공사는 최근 한국과 미국, 영국의 정보 관리들과 면담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박노해와 백태웅. 상고 출신 시인과 서울대 법대생은 한때 같은 길을 걸었다. ‘해방 후 최대 규모의 자생적 사회주의 혁명조직’이라는 사로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 주도자로 1991년 나란히 구속됐던 두 사람은 각각 무기징역과 15년 징역을 선고받았고,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이후 둘의 길은 갈라진다. 박노해(58)가 시인 또는 사진작가로 제도권 밖에서 서성이는 동안 백태웅(53)은 미국 유학 4년 만인 2003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캐나다 최초의 한국인 법대 교수이자 북미 최초의 전임 한국법 교수였다. 2011년엔 하와이대로 옮겨갔다. 안경환 서울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저서 ‘조영래 평전’에서 “백태웅의 성공은 개인적 성공인 동시에 한국 인권탄압의 역사가 국제사회에 진 부채이며 서울대 법대 출신이 한국 사회에 지고 있는 무거운 빚”이라고 했다. 민주화투쟁 경력과 학벌 덕을 봤다는 뜻이다. 그는 대학에서 국제인권법과 비교법을 강의하면서 지난해 7월부턴 유엔 인권이사회 강제실종실무그룹 위원으로 임명돼 세계 곳곳을 다니고 있다. ‘빚’을 갚으며 살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아시아인권포럼 참석차 서울을 찾은 백 교수를 만났다. 추석 연휴에 추가로 질문지를 보냈더니 유엔 강제실종실무그룹 회의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가는 기내에서 답을 보내왔다.운동권 출신서 법학교수로 변신 ―세계 인권과 관련해 요즘 최대 이슈는 무엇인가. “스리랑카 파키스탄 터키 등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어 하나만 거론하기 쉽지 않다. 인권 옹호자에 대한 탄압과 시리아 난민 문제도 심각하다. 이번 달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치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권침해 상황과 강제실종 문제도 논의한다.” 유엔 강제실종실무그룹은 제네바 회의를 앞두고 지난해에만 37개국에서 766개의 강제실종 청원이 새로 접수됐다고 밝혔다. 강제 실종자 수는 증가 추세고, 유엔에 접수되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북한과 관련해 접수된 사례도 있나. “납북자 가족들이 강제실종 청원을 한다. 북쪽에서도 비슷한 청원을 한다. 어부가 풍랑으로 남한에 와서 안 돌아가겠다고 하는데 북한에선 강제실종이라며 찾아달라고 하는 거다.” ―북한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2009년부터 헌법에 인권이라는 규정을 넣고, 인권 보장에 관한 조항을 담아 형법과 형사소송법도 개정했다. 이제는 북한 때리기 식 인권 문제 제기가 아니라 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북한이 핵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어 인권 이슈가 가려진 듯하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핵 협상은 즉시 시작해야 한다. 경제 개방을 하고 인권을 보장하고 주변국과 공존하는 길을 갈 수 있게 해줘야 핵 문제도 해결된다.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략핵감축 협상을 이어가고 있듯이 북한과의 핵 대화도 오래 걸릴 수 있다.” ―미국이 대선을 앞두고 있는 것도 주요 변수다. “미국은 특정 지역의 정책을 만들어서 강요하지 않는다. 해당 지역에서 내놓는 정책을 미국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식으로 채택한다. 미국에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할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한국 언론이 미 싱크탱크 전문가들을 인용하곤 하는데 한국에서 신비화하는 것처럼 이들의 수준이 높지 않다. 한국 신문들 열심히 읽고 분석해서 얘기하는 거다.” “아버지 세대는 ‘헬’에서 살았다” 백 교수는 출소 후 함께 노동운동을 하며 13년간 사귀어온 동갑내기 전경희 씨와 결혼하고 이듬해인 1999년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51)의 권유로 미국 노터데임대로 유학을 떠났다. 김광웅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유학비자를 받지 못하는 그를 위해 미 대사관을 찾아가 ‘보증’을 섰다. 사로맹 비서실장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던 부인 전 씨는 미국공인회계사(AICPA)로 일하고 있다. ―6년 3개월 수감 생활에 수배 기간까지 합치면 13년간 갇혀 지냈다. 유학 준비는 언제 했나. “감옥이 대학이었다. 영자신문을 포함해 신문 8, 9개를 다 읽었다. 원주에서 옥살이를 할 때 독방 사동에 마크라는 시카고 출신 미국인이 들어왔다. 세면하거나 운동하러 갈 때 말을 섞으면서 재판도 도와주고 장기도 두곤 했는데 그 몇 개월간 영어가 엄청 늘었다.” ―왜 사회주의자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나. “(답답한 듯 안경을 벗으며) 국가정보원은 나를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했지만 난 한 번도 나를 그런 틀로 규정한 적이 없다. 1980년대 운동권들이 생각했던 사회주의란 핍박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그런 체제를 위해 싸우는 개념이었다. 박제된 개념과 본질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있다. 난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자유주의자이다. 사람을 하나의 이념으로 규정하는 시대는 끝났다.” ―사로맹이라는 이름은 직접 지은 것 아닌가. “그렇다. 박노해 씨와 둘이서 정했다. 1986년 4월 1일 밤에.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쓰다 잡히면 사형당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그는 1심에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때는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극단적 좌절감이 있었다.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가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그래서 우리가 그 과실을 누릴 거라고 기대해 본 적이 없다. 그 과정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걸 운동의 방편으로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나보고 마르크스·레닌주의자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말한다.” ―민주화가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고? “한국이 내놓을 수 있는 두 가지 상품이 단시간 내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및 인권신장인데 그것을 제대로 마케팅하지 못한다.” ―1980년대 20대들에겐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도 있고, 경제 사정도 점차 나아졌다. 요즘 20대들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한다. “그건 (다른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전쟁을 치렀던 우리 아버지 세대는 진짜 ‘헬(지옥)’ 속에 살았다. 시대마다 다른 어젠다들이 있다. 사회 전체가 대처방안을 세워야 하고, 청년세대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대학생이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희망을 만들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을 거다. 문제가 있으면 그걸 해결할 노력은 나오기 마련이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으면 문제는 해결된다. 단, 감옥엔 안 갔으면 좋겠다. 선배들은 내게 학교 가지 말고 지하에서 다른 책 읽으라고 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1980년대) 학생들 곁에 있었다면 효과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법 테두리 내에서? “아니, 법 테두리조차도 끌어안아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내면서 그걸 넘어서는.” “진영 논리는 반(反) 지성적” 그는 육군 장교였던 부친의 근무지인 경기 파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선거 때마다 좌우 양쪽에서 PK(부산경남)의 기대주로 거론된다. 하지만 “기존 체제에 들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다”며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국 정치권에 실망해서인가. “운동권 경험을 가진 정치인들이 과거의 활동을 현재와 연결시키면서 과거와 현재를 뛰어넘는 미래의 비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밖에서 볼 때 아직도 과거의 틀과 시야에 머물러 있다. 정치적 어젠다 수준이 낮다. 우린 서로를 고양시키지 못한다. 정치는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느껴지고, 변화를 위한 기획들이 안 보인다.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되느냐는 얘기는 많지만 어떤 대통령이 무엇을 해주길 바라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이념 양극화가 심각하다. 영화도 보수는 ‘인천상륙작전’, 진보는 ‘부산행’으로 나누어 본다. “한국의 이념 논쟁 수준이 저열해지고 있다. 진영 논리 자체가 지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것이다. 운동이란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하는 게 아니다. 80년대 운동이라는 것도 자기와 생각이 다른 세대조차 그 어젠다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설득력이 있어 변화의 힘이 생긴 것이다.” ―80년대 운동권들은 대부분 반미주의자들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나. “미국이라는 나라를 여러 요소로 나눠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도 다면적이어야 한다. 안보를 위해 경제를 희생한다거나,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는 등의 접근 자체가 미국을 잘 모르니까 나오는 얘기다. 미국은 냉전을 대체할 새로운 평화와 협력의 질서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세계질서에 대한 이해 수준이 미국은 너무 낮다.” ―인권 전문가로서 계획은…. “아시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인권 법원이 없다. 아시아 인권규약 초안을 만드는 활동으로 첫 단추를 끼워 보려 한다. 광주에서 선포된 아시아인권헌장이 20주년을 맞는 2018년까지 아시아가 인권 차원에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담은 초안을 만들고 싶다.” ―당신은 실패한 혁명가인가. “지금도 마음은 혁명을 하고 있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하고 한국 사회를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할 거다. 내년에 안식년을 맞아 서울에 가면 그동안의 시차와 거리감을 따라잡고 싶다. 같은 색깔끼리 모여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 경계를 넘어서 자유롭게 발언하고 일하고 싶다.” ―당신의 과거가 현재 개인에게, 한국 사회에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헨리 롱펠로가 ‘인생찬가’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미래를 믿지 말라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라, 행동하라,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64)을 만난 건 공직자의 윤리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합헌 결정을 받았고, 120억 원대 주식 대박의 주인공 진경준은 검사장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되고 해임까지 청구됐다. 2014년 11월 삼성 인사통(通)으로 초대 인사혁신처장(차관급)에 발탁돼 공직사회 개혁을 주도하다 6월 돌연 사퇴한 이유가 궁금해 청한 만남이었지만 대화는 진경준, 김영란법으로 시작됐다. 공직자 윤리 담당 부처의 수장(首長)이었던 그는 “공무원윤리헌장을 35년간 창고에 방치해 둔 결과가 진경준 사태이고 김영란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법인 김영란법에 대해서는 감시사회를 경고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빗대어 “김영란의 1984”라며 길고도 세게 얘기했다.“김영란법? 차라리 CCTV를 달지”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는 공무원의 부패를 막자는 것입니다. “일부 공무원이 문제인데 왜 100만 명 전부를 잠재적 범죄자로 감시하는 법을 만듭니까. 모든 공무원을 야단치고 눈총 주면서 국민을 위해 봉사해 달라고? 이건 이율배반입니다. 언론사와 사립학교 임직원에 그 배우자까지 적용 대상이 400만 명이라지요. 어느 나라가 이런 법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예 개개인에게 CCTV(폐쇄회로 TV)를 달지 그래요. 공무원도 국민입니다.” ―그만큼 공무원 비리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죠. “잡초 뽑듯 일부 문제 있는 공무원을 솎아내면 됩니다. 그런데 잡초 안 뽑습니다. 배임 횡령한 사람들, 기업에선 어떻게 됩니까. 공직사회에선 용서받고 다 살아 돌아옵디다. (1980년 제정 후 사문화된) ‘공무원윤리헌장’부터 올 1월 1일자로 ‘공무원헌장’으로 개편했습니다. 전 교육 과정에서 교육시키고 있어요.” ―구속력 없는 윤리규정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기독교인들이 주기도문을 왜 매일 외는 걸까요. 아는데 안 하니까 그런 겁니다. 처음부터 봉사하는 자세로 임하는 공직 가치를 심어줘야 합니다. 요즘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은 많지만 ‘하고자’ 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소명의식 없이 누리려고만 하는 거죠.” ―공무원 비리 방지를 위한 제도 중의 하나가 공직자윤리위원회입니다. 인사혁신처장이 부위원장을 맡지요. 처장 재임 시절 진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을 조사했지만 ‘진 검사장의 주식 보유는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결론 내려 부실 검증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공직자윤리위는 (재산 변동 관련) 성실 신고 여부를 따지는 것이지 형성 과정을 들여다보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공직자윤리위가 진 검사장이 신고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니 법무부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발표한 점은 평가받아야 합니다.”(공직자윤리위는 법무부에 진 검사장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정부 인사행정, 40년 제자리” 세월호 사건이 아니었다면 그는 37년간 삼성에서 인사 업무를 맡아 온 민간 전문가로 이력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세월호는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사회의 민낯을 드러냈고, 박근혜 대통령은 “관피아의 폐해를 끊고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며 인사혁신처를 신설하고 칼자루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는 1년 7개월간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관리제를 도입하고 민간 전문가의 공직 유입 문호를 넓히는 등 다양한 개혁 작업을 주도했다. ―민간 기업과 비교하면 정부의 인사행정은 어떻습니까. “1960년대엔 민간에서 정부의 인사행정을 배워 갔습니다. 이후 40년간 기업의 인사 업무는 총무과 인사계→인사부 총무과→인재담당 CEO로 조직이 커지면서 인재 경영으로 발전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서무 기능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전엔 사람이 부속품 같은 존재였죠. 요즘 기업들은 개인이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내도록 교육합니다. 기업들이 상향평준화하는 동안 정부는 여전히 하향평준화를 하고 있어요.” 그는 33년간 공직에 있다 퇴직하는 사람과 나눴던 대화를 길게 소개했다. “퇴직 후엔 뭐 하고 싶으세요?” “이제 생각해 봐야죠.” “공직에 있는 동안 가장 오래 한 일이 뭡니까?” “7년 동안 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일로 재취업할 수 있을까요?” “아뇨.” “그럼 잘하는 일이 뭡니까?” “시키는 것 잘합니다.” 그는 “이게 개인 책임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무원들이 시대의 변화에 못 따라가게 한 게 누굽니까. 공무원은 자원이지 소모품이 아닙니다. 인사가 만사라고요? 인사는 만사의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정부엔 인사만 있지 인사관리는 없었습니다.” ―공직을 맡은 민간 전문가들이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공무원들이 우수하더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집단보다 우수한 인재들을 정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퍼포먼스(성과)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1650만 명 가운데 150만 명이 정부와 공기업에서 일합니다. 비상장 회사를 포함해 10대 그룹 종업원 수가 90만 명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죠. 이들의 혁신 없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습니다. 이중 국적이 허용됐으니 국민이 정부를 선택하게 될 겁니다. 세금 적게 받고도 행복하게 해주는 정부를 선택하지 않을까요. 정부의 본질에 다가가야 합니다.” ―공무원들의 퍼포먼스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가장 심각한 문제가 1, 2년마다 담당 업무가 바뀌는 순환보직제입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지죠. 민간인 입장에서는 매일 담당자가 바뀌는 셈이지요. 정책의 질과 영속성의 문제입니다.”(그는 지난해 9월 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해 필수 보직기간을 2∼3년으로 연장했다.) ―민간 기업은 다른가요. “영업 마케팅 인사 등 분야별로 나뉘어 끝까지 갑니다. 흔히 ‘두루 경험한 전문가’라는 표현을 쓰는데, 지금처럼 지독하게 전문화된 사회에선 ‘그것만 판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모든 포지션(자리)을 소화하는 선수는 동네 축구팀에 필요하지 프로팀엔 없습니다.” ―순환보직제는 공무원 비리를 막자는 취지도 있습니다. “인사로 못 막아요. 시스템으로 막아야죠. 범죄는 예방하는 방법과 형무소로 해결하는 법이 있습니다. 제품 검사는 할수록 비용이 늘지만 사전 예방은 할수록 비용이 줄지요.” 이 전 처장은 ‘소극 행정’을 유도하는 감사 제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직사회는 문제가 일어나면 원인을 규명할 생각은 않고 문제를 일으킨 자체를 문제 삼습니다. 그러니 복지부동할 수밖에요. 모든 걸 규정할수록 공무원은 책대로 하게 됩니다. 책대로 할 거면 기계가 하지 왜 사람이 합니까.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 후 공직사회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들이 모두 망했습니까. 세종시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면 됩니다.”“이제는 학용(學用)의 시대” ―특별한 인재감별법이 있나요. “난 ‘눈과 말’이 95%입니다. 옛날에 관직에 사람을 뽑을 때 신언서판(身言書判) 네 가지 기준을 적용했는데 그것과 비슷합니다. 우선 첫인상이 중요합니다(身). 그다음이 말하기(言)죠. 여기엔 목소리도 포함됩니다. 개인이 가진 능력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서(書)’도 표현력에 해당하겠네요.” ―학력(學歷)은 안 보나요. “학습(學習)이 아닌 학용(學用)의 시대입니다. 인터넷에 다 있는데 익힐 필요는 없죠. 지식이 힘이던 시절엔 이를 측정하기 위한 학력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서 말의 구슬(지식)을 꿰는 창의적 사고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종합적 사고, 마니아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삼성에서 배운 건 뭡니까. “성공한 기업들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기업문화, 비전 그리고 이것을 실현해내는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에서 중요한 건 인재죠.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님의 마지막 작품이 1987년 설립한 삼성종합기술원입니다. 미래엔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테니 기술을 개발할 인재를 기르자는 거였죠. 30년 전 기술 인재에 대한 투자가 변방의 삼성을 세계기업으로 만든 겁니다. 우린 30년 후의 집단적 꿈이 있습니까.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이후 기억할 만한 집단의 어젠다가 있었나요.” ―처장 임명 당시엔 얼마나 오래 할 거라고 예상했나요. “순장조로 정권 말까지 가는 게 그쪽(임명권자) 희망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다음 정권까지 7, 8년은 해야 (공직사회가) 바뀔 거라는 얘기도 나왔고요.” ―그런데 2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셨네요. 6월 24일 퇴임할 때 청와대에선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지만 공무원들이 기업식 개혁에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습니다. “(약 봉지를 꺼내 보이며) 건강 때문에 자진해서 그만둔 것 맞습니다. 오후 6시면 칼퇴근을 해야 할 만큼 몸이 힘들었어요. 사의 표명은 (4월 13일) 총선 전에 했습니다. 제 인사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어요.” 그는 사임 배경을 거듭 묻자 “이번 정권이 끝난 뒤에…”라고 여운을 두면서 재임 기간에 대해 “착점 중 일부가 잘못된 것은 있지만 포석은 깔아뒀다”고 자평했다. 그의 후임으로 공직개혁이란 바둑돌을 잡은 이는 30년간 공직에서 주로 인사 업무를 맡아 온 정통 관료 김동극 처장(54)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세계 해양사에 크게 남을 기념비적인 결정이다. 12일 유엔해양법협약 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중국과 필리핀이 다툰 남중국해 분쟁 사건에 내린 중재판정 말이다. 중국 정부가 국제법정에 불려나온 것부터가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은 ‘바다의 무법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약소국인 필리핀에 완패하는 망신을 당했다. 영유권 주장의 출발점이 되는 ‘섬’에 관한 해석은 독도와 이어도를 놓고 중국 일본과 신경전을 벌이는 한국에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15일 오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실을 찾았을 때 이창위 교수(57)는 479쪽짜리 결정문을 읽고 있었다. 그는 “무법자처럼 행동하던 중국에 작심하고 법의 철퇴를 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해양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해양 분쟁 담당 부처인 외교부와 해양수산부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무법자처럼 굴다 철퇴맞은 중국" ―뉴욕타임스는 이 중재판정에 대해 ‘중국을 응징하다(chastise)’라고 표현했더군요. “중국이 지금까지 남중국해에서 주장하고 활동해온 것들의 국제법적인 근거를 일거에 무너뜨린 거죠. 한마디로 남중국해는 중국도, 누구의 것도 아닌 공해(公海)이니 더 이상 싸우지 말라고 선언한 겁니다. 이번 결정의 핵심은 중국이 주장한 9단선이 무효이고, 남중국해의 중심인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南沙 군도)에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인정할 만한 섬이 없으며, 중국의 인공섬 건설은 해양환경을 훼손하고 필리핀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입니다. 또 매립으로 암석이나 간조 노출지를 섬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재판관들이 작심한 것 같습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무력행사를 막자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남중국해가 공해라면 우리에게도 유리한 판정이네요. “그렇죠. 한국은 거의 모든 에너지 자원이 이곳을 통해 들어옵니다. 미국과 일본처럼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지지할 수밖에 없어요.” ―재판관 5명이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결정이 나오리라 예상했나요. “이렇게까지 세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9단선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중국이 9단선에 대해 EEZ를 갖는다고 명확하게 주장하지 않고 있거든요. 중재재판은 양쪽이 모두 동의해야 열 수 있습니다. 2013년 1월 필리핀이 제소하고, 2014년 12월 중국 외교부가 응소(應訴)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 중재재판소가 이걸 응한 걸로 해석하고 재판이 성립된다고 결정했습니다. 중국으로선 억울한 부분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9단선을 인정하면 남중국해의 90%, 멕시코 크기만 한 바다가 중국의 해역이 되는 건데 중국의 억지가 심한 것 아닌가요. “중국이 가장 잘못한 게 그겁니다. 2009년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대륙붕 범위 신청에 반대해 처음으로 유엔대륙붕한계위원회에 9단선을 포함한 지도를 제출했어요. 아세안 국가들이 황당해하면서 그때부터 9단선이 유엔해양법협약에 맞는 것인지 따지기 시작했죠.” ―중재결정의 이행을 강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제법의 실패’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반면 이번 결정이 향후 협상에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긍정론도 있습니다. 골대를 필리핀 같은 약소 연안국들 쪽으로 움직여 놓은 효과가 있다는 거죠. 앞으로 남중국해 분쟁이 어떻게 전개될까요. “현실적으로 중국이 중재판정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명분도 중요합니다. 판정을 이행하라, 인공섬을 철수하라고 압력을 넣을 수 있습니다. 필리핀과 베트남은 중국이 밉지만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어 중국과 공동개발 방향으로 갈 겁니다. 미중의 해양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증폭될 테죠.” ―중국은 중재재판소가 ‘필리핀의 돈을 받았다’며 중립성을 의심합니다. “원래 중재재판은 양쪽이 절반씩 부담하는 건데, 중국이 내지 않으니 필리핀이 다 부담한 겁니다.” “남중국해는 주인 없는 公海” ―남중국해는 자원이 풍부한 데다 세계 물동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분쟁의 역사도 길겠네요. “과거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제국주의 정책의 연장선에서 항해 문제로 대립하던 곳입니다. 그러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던 프랑스와 동남아를 침략한 일본 사이에서 1930년대 이후 영유권 분쟁이 시작됐죠. 1960년대 후반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해양 분쟁이 본격화했고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남중국해 연안국들은 수많은 도서의 영유권을 다퉈 왔습니다. 중국은 베트남과의 무력충돌을 통해 1974년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西沙 군도, 베트남명 호앙사 군도)를, 1988년엔 존슨사우스 암초(중국명 츠과자오·赤瓜礁)를 점령했습니다. 1994년부터는 필리핀 쪽 해역에 진출해 2012년 스카버러 숄에서 심각한 어업 분쟁을 일으킵니다. 중국이 암석과 간조 노출지를 집중 매립해 기지를 건설하고, 불법 조업하고…. 필리핀이 오죽했으면 제소했겠습니까.” ―왜 중국은 무리한 해양 정책을 펴는 걸까요. “해양법의 역사는 자유로운 해양의 이용을 주장하는 해양 강대국과 약소 연안국 그룹 간의 갈등사입니다. 중국은 대표적 연안국이었다가 해양 강대국으로 지위가 바뀌었어요. 대륙국인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하고 해양을 통해 침략을 당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양국의 해양 패권에 반대했어요. 필리핀 베트남처럼 연안국의 해양 관할권 확대를 지지했죠. 그러다 강대국으로 입장이 바뀌면서 무리한 해양 정책을 힘으로 밀어붙이다가 그게 결정적 패착이 된 겁니다.” ―이번 판정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섬에 관한 해석인데요. 남중국해에 도서(島嶼)가 200개가 넘는데, 섬으로 인정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남중국해엔 150∼200개의 도서가 있습니다. 700개라는 설도 있어요. 대부분 암석이나 암초여서 옛날부터 항해하기 위험한 지역으로 꼽혔습니다. 도서나 암초의 이름을 그곳에서 좌초한 배의 이름을 따 지을 정도였죠. 그런데 이번 결정에선 스프래틀리 제도에 EEZ를 가질 수 있는 섬이 없다고 해석한 겁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타이핑다오(太平島·영문명 이투아바)마저 섬이 아니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부분은 충격적입니다. 타이핑다오는 대만이 실효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번 결정으로 남중국해는 공해가 됐기 때문에 이제 각 연안국은 대륙붕의 범위를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상대국과 해양 경계 획정을 위한 협상을 벌여야 합니다.”“무조건적 해양개발 시대 끝났다” ―타이핑다오가 섬이 아니면 독도도 섬이 아닌 건가요.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섬은 사람이 거주하고 독자적 경제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재재판소는 이번에 해양경찰과 같은 공무원은 거주민이 아닌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섬에 대해 까다롭게 규정한 판례를 남긴 거지요. 이 기준을 따른다면 독도는 섬이 아니라 (12해리 영해만 가질 수 있는) 암석입니다.” ―중국의 인공섬 건설이 해양환경 훼손이라는 대목에서 이어도의 해양과학기지가 떠올랐습니다. 이어도의 시설물도 문제가 될 수 있나요. “이어도 기지는 해양과학기지이기 때문에 중국이 환경 훼손을 이유로 시비를 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부에서 독도에 호텔을 짓자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함부로 인공 시설물을 지을 경우 일본이 해양환경 훼손을 이유로 제소할 수 있습니다. 독도나 이어도 모두 분쟁으로 부각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서해의 불법 어업 문제나 한중 간 서해 해양 경계 협상에서 중국의 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바다에는 유엔해양법협약이라는 ‘바다의 헌법’이 있습니다. 중국은 이 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한층 강해졌는데 이는 중국과의 협상에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겁니다. 특히 서해에서 중국 측의 불법 어업 문제를 다룰 때 그런 부분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남중국해든 서해든 불법 어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 중국이네요. “선진국은 인건비가 비싸 불법 조업을 못하죠. 국제회의장에 가보면 중국에 피해받은 나라들끼리 국제기구를 만들자, 중국의 불법 조업 영상을 유엔에 가서 보여주자 이런 얘기들도 나옵니다.” ―우리 시각에서 필리핀의 승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국제해양법을 이용해 중국에 맞선 필리핀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한국은 전통적 해양 강대국인 일본과 신흥 해양 강대국인 중국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주변의 해양 경계는 일부를 제외하고 획정되지 않았어요. 우리는 관할 수역을 최대한 확보하고 독도나 이어도 해역을 굳건히 지켜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21세기는 무조건적인 해양 개발의 시대가 아닙니다. 해양에서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국가만이 해양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 용어 :: 9단선(九段線)=중국이 남중국해의 관할권 경계를 표시한 9개의 점선. 중국은 9단선에 근거해 남중국해 전체의 90%가 자국의 해역이라고 주장해 왔다. 영해(領海)=연안국의 주권이 미치는 해역.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12해리까지 인정. 배타적 경제수역(EEZ)=경제주권이 인정되는 수역으로 200해리까지 인정.대륙붕=육지에 인접한 해저와 하층토로 350해리나 2500m 등심선에서 100해리까지 인정.해양 지형=수중 암초, 간조 노출지(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 잠기는 땅), 암석, 섬 등 4가지로 구분한다. 수중 암초는 관할 수역을 갖지 못하고, 간조 노출지는 육지나 섬의 12해리 영해 범위 이내에 있을 때에만 영해의 기점이 된다. 암석은 영해만 가질 수 있고, 섬만이 영해, EEZ, 대륙붕을 모두 가질 수 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4·19혁명 땐 고려대에 진학해 데모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이 중3 때다. 이듬해 5·16군사정변이 났을 땐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쿠데타를 해야 하나 싶었다. 야심만만한 대전고 수재는 결국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사가 됐다. 슬롯머신 사건, 이용호 게이트,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했고 대검찰청 초대 마약과장에 대검찰청 중수부장, 서울지검장을 지냈다. 검사로서의 운은 30년, 거기까지였다. 전관(前官) 예우부터 현관(現官) 로비까지 법조계 비리로 나라가 시끄러운 와중에 검사 유창종을 떠올린 건 변호사로 ‘떳떳하게’ 벌어 국내 유일의 기와박물관을 세우고 운영하며 ‘풍요로운’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어서다. 세속에서 상식으로 일군 삶은 은둔형 딸깍발이 선비의 죽비소리 못지않게 후배 법조인들, 법조 비리에 실망한 이들에게 울림을 줄 것이라 기대했다. “수사는 증거로, 미술은 유물로 입증”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중턱에 정남향으로 자리 잡은 유금와당박물관을 찾았다. “와당부터 감상하시지요.” 유 관장이 전시실로 안내했다. 마침 ‘돌아온 와전 이우치 컬렉션’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인 컬렉터 이우치 이사오(井內功)의 소장품으로 유 관장이 사재로 사들여 환수해 온 한국 와전 1296점 가운데 16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와당(瓦當)은 기와지붕 끝을 마감하는 기와로 다양한 무늬가 장식돼 있다. “고구려 와당은 웅건 활달하죠. 이쪽 백제 와당은 고아한 귀족적 기품이 느껴지죠? 통일신라에 와서 와당예술은 정점에 도달합니다.(기와 문화는 고구려를 통해 중국에서 건너온 거지만), 이런 건 중국엔 없는 겁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민속적이고 해학적인 독특한 와당이 출현하지요.” 검사 출신인 유 관장의 꼼꼼한 설명을 들으며 그가 와당을 상대로 수사하는 엉뚱한 모습이 그려졌다. “피의자 와당은 언제 누구의 영향을 받아 제작됐는지 자백하라”고 다그치는. 그는 1978년 2월 청주지검 충주지청 검사로 발령받은 후부터 공부 모임을 만들어 주말마다 답사를 다니고 기와를 수집해 왔다. 당시 기와는 고미술품을 살 때 덤으로 주기도 하는, 검사 월급으로 수집 가능한 문화재였다. ―범죄인을 수사하고 문화재를 수집하는 일이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사는 증거로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일이죠. 고고학과 미술사는 유물로 어렴풋한 문헌의 기록을 입증하는 겁니다. 검사로서 논리적 사고 훈련이 돼 있어 와당 연구에 도움이 됩니다.” ―거꾸로 와당 연구가 수사에도 도움이 되던가요. “와당을 연구하는 건 한중일 문화교류사를 연구하는 건데, 3개국 3000년을 넘나들다 보면 시야와 사고의 틀이 넓어지죠. 무엇보다 검사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예술이 많이 도움이 됩니다. 범죄와 전쟁을 치르려면 몸과 마음이 바쁘거든요.” ―검사 사주에 들어 있다는 칼의 부담을 흙의 기운으로 덜었다는 뜻인가요. “검사 일 정말 좋아했습니다. 비리와 거악을 척결하는 일, 얼마나 멋있습니까. 검사 된 지 한 달 만에 전국 8개 자해공갈단 조직을 일망타진했어요. 1994년엔 송종의 서울지검 검사장과 홍준표라는 독특한 검사와 함께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했죠. 정계 안기부 법무 검찰 경찰 수뇌급 인사까지 기소 대상이 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검사들이 너무 힘들다고 하면 제가 그랬어요. 우리가 이런 것 하려고 검사 된 것 아니냐. 군인 되려고 육사 나온 사람이 전쟁터 가서 밤새 전쟁한다고, 그러다 다리에 총 맞을지 몰라 힘들다고 하면 되겠느냐고요.”“前官 대접, 절제해야” ―검사 일에 자부심이 컸던 만큼 요즘 검사 비리 사건을 보며 실망이 크겠습니다. “돈 벌겠다고 검사 하면 안 되지요.” ―전관예우와 관련 있는 형사 사건을 거의 맡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궁박한 상황에 몰린 사람에게 도를 넘는 돈을 받는 게 아니죠. (업계 톱이 아닌) 법무법인 세종을 선택한 이유도 윤리의식이 강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관예우가 나쁜 게 아닙니다. 전관예우를 악용하는 일부 사례가 나쁜 거지요. 전관이란 경험과 지혜가 있어 대접받고 돈을 더 버는 겁니다.” 얘기가 전관예우와 법조계 비리로 이어지자 유 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관이라고 다 돈 잘 버는 게 아닙니다. 검사장 출신들 중엔 사무장도 못 두고, 버스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요. 실력 차이가 있는 겁니다. 나는 변호사 생활 3년간 홍만표(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 관련 법조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기소된 검사장 출신 변호사)보다 사건 더 많이 맡았습니다. 스스로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수임료를 3분의 1로 줄여달라고 했죠.” ―일반인들의 생각과 거리가 있네요. 고위 판검사로 퇴직한 경우 일정 기간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는 ‘홍만표방지법’까지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건 사고 치니까 애 낳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은 얘기네요. 저도 검사장실 가서 사건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부자(父子) 구속은 윤리에 반(反)한다, 부자 구속을 피해야 아버지를 엄하게 처벌할 수 있는 구실도 생기는 거다, 이런 식으로 의견을 말합니다. 전관의 경험은 활용돼야 합니다. 단, 의와 불의를 바꾸고, 선과 악을 바꾸면 안 되지요.” ―무리한 수사로 기업에 피해를 준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검사는 외과의사입니다. 수술은 최소한만 해야죠. 환부 도려내고, 재발하지 않도록 해놓고 끝내야지요. 혹시 전이됐을지 모른다고 장기를 이것저것 다 들쑤시면 안 됩니다. 진단을 정확하게 하고, 소환도 최소한으로 하고, 사법처리 범위도 넓지 않아야 하고요.” ―법조인의 윤리의식 제고가 절실합니다. “지금의 법조인 양성 교육은 수사 잘하는 기술자만 양산하고 있습니다. 수사하고 판결문 쓰는 건 6개월만 하면 다 잘하게 됩니다. 어려운 사람 법률 구조도 하고, 피의자들과 교도소에서 일주일씩 살아 보게도 하고. 칼잡이 외과 기술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 가린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수사 사령탑을 맡았던 이용호 게이트 부실 수사로 대검 중수부장에서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됐다가 같은 해 서울지검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2003년 노무현 정부 ‘검찰 인사 파동’ 때 대검 마약부장으로 후배를 상사로 모시게 되자 사표를 냈다. “주위에서 놀라더군요. 며칠간 여행하면서 마음 추스르고 하지도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퇴임식 하고, 오후에 세종에 가서 책상 확인하고, 다음 날 출근했거든요. 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고교 때 ‘한다발’이라는 대전지역 고교생 철학모임을 만들어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며 치열하게 토론했습니다. 그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검사 일을 그만두면 와당을 즐기고, 와당의 깨우침을 나누며 살겠다고 생각했죠.” 변호사 수임료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를 팔아 2008년 3월 박물관을 개관했다.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이 “운영비가 월 수천만 원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렸지만, 부인인 금기숙 홍익대 섬유미술학과 교수(64)가 “그냥 하자”고 했다. 박물관 이름 앞 글자 ‘유금(柳琴)’은 유 관장 내외의 성을 따왔다. 부부는 박물관의 공동 관장이다. 박물관은 5000점이 넘는 동아시아 기와와 전돌, 그리고 금 교수가 복식문화 연구를 위해 수집해 온 중국 도용 2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학예사 3명을 포함해 직원이 5명이고, 매년 4000명이 다녀가는데, 그중 3000명이 초중고교생이다. 유 관장은 육십 넘어 배운 중국어와 일본어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매년 700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고 했다. 다음 달 13일엔 동북아역사재단 수요포럼에서 ‘와당으로 본 한국 고대사 쟁점들’을 주제로 강의한다. ―‘검사는 폭탄주 마실 때만 박수 받는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던데, 검찰을 떠나고 박수 받는 일이 많은 듯합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슬롯머신 사건, 마약수사로 이름이 알려지자 순천지청장 시절에 정치하라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자민련에 고시 합격자가 없고, 대전고 나와 명성 가진 이가 없다고요. 제가 ‘국회의원 선거법에 유창종은 평생 국회의원 할 수 있다고 돼 있어도 안 한다’고 했어요.” 그는 어깨가 처져 있을 후배 검사들에게 이런 말도 전했다. “어려서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서 살았는데, 강경 장이 유명해요. 장날에 가면 시장 골목 입구에 잘 차려입은 할아버지들이 있어요. 뭐 하는 분들인가 궁금했는데, 장날이 되면 다들 장에 가니까 불안해서 집에 못 있고 나오신 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무얼 하며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좋다는 것만 좇아 사는 거죠. 검사는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는 문화인이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기와 검사’ 유창종▼△1945년 충남 당진 △1964년 대전고 졸업△1969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1974년 사법연수원 4기 수료, 서울지방검찰청 검사△1978년 청주지검 충주지청 검사 시절 기와 수집 시작△1979년 2월 예성문화연구회 회원들과 충주고구려비 발견, 국보 205호로 지정△1987년 서울올림픽조직위 법무실장△1989년 대검찰청 초대 마약과장△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부장검사△2000년 대검 강력부 부장검사(검사장)△2001년 대검 중앙수사부 부장검사△2002년 서울지검 검사장한중일 와전(瓦전) 1873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2층에 ‘유창종 기증와전실’ 개설,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2003년 대검 마약부 부장검사△2003년∼현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2005년 일본 이우치 와당 컬렉션 1301점 사들여 국내 환수△2006∼2011년 국립중앙박물관회장△2008년 유금와당박물관 설립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트럼프가 살아났다. ‘멕시코계 판사는 불공정하다’고 했다가 인종주의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기죽어 지내던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12일 플로리다 주 올랜도 테러가 발생하자 “거봐, 내 말이 맞잖아” 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발언 통로는 트위터다. 그는 900만 팔로어에게 “급진적 이슬람 테러에 대해 내가 옳았다고 축하해줘 고맙다”고 했다. 많이 죽고 많이 다쳤는데 ‘축하’라니. “올랜도에서 벌어진 일은 시작일 뿐”이라고 겁준 뒤 바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민자를 막아야 한다니까.”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겨냥해선 “우리 좀 안전해지자. 힐러리가 대통령 되면 큰일 난다”고, 눈엣가시였을 힐러리의 백기사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겐 “우리 리더십은 약하다”며 “사퇴하라”고 윽박질렀다. 미국판 ‘북풍(北風)’이라고 해야 할까. 9·11을 기억하는 미국 유권자들은 테러 공포에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보수당 후보에게 꼭 유리할 것 같진 않다. 트럼프가 입을 열수록 무지도 드러나고 있다. 그는 반(反)지성주의자다. 우치다 다쓰루의 신간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이마)에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나온다. 첫째, 근거 없는 얘기를 자신 있게 떠든다. 트럼프는 “올랜도 테러범이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다고 한다”고 했다. 경찰도 목격자들도 이렇게 얘기한 사람은 아직 없다. 폭스뉴스에 나와선 “올랜도 난사범보다 더 흉악한 수천 명이 미국에 나돌아 다닌다”고 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미국 내에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범)’가 900명가량 된다고 발표한 적이 있을 뿐이다. 둘째, 분풀이 대상을 콕 집어 단정적으로 얘기한다. 트럼프는 “미국이 위험한 건 불법 이민자들 때문”이고, “미국이 가난한 건 중국이 돼지저금통 털듯 미국을 털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게 다 유대인 때문이야’ ‘이게 다 ○○도 놈들 때문이야’ 하는 식이다. 물론 테러나 경제난 같은 복잡다단한 문제의 원인이 하나일 리 없고 이렇게 쉽게 풀릴 수도 없다. 셋째, 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문구를 무한 반복하는 인내력이다. 트럼프 하면 똑같은 슈트에 똑같은 헤어스타일, 특유의 입 모양과 제스처가 떠오른다. “무슬림은 위험하다” “장벽을 세우면 된다”는 말을 하고 또 한다. 새로운 어휘를 구사하거나 새 논리를 펴지 않는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을 관통하는 본질이 반(反)시간성이다. 지성이란 앎의 쇄신이다. 여기엔 시간이 필수다. 반지성주의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거짓임이 들통날 얘기를 되풀이하면서 지금 눈앞의 상대를 압도하는 일에 열중한다. 그래서 반지성주의의 적(敵)은 시간이다. 장사꾼들에게 불황은 한몫 챙길 기회다. 기업인 출신 트럼프에겐 국가적 비극이 표를 끌어모을 정치적 찬스로 보이는 모양이다. 저널리스트 리처드 로비어는 저서 ‘상원의원 조 매카시’에서 매카시를 ‘공산주의라는 유전을 파내 석유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탐사꾼’이라고 했다. ‘공산주의’를 ‘반이민주의’로 바꾸면 이 정치적 투기꾼은 딱 트럼프다. 시절이 수상하면 매카시, 트럼프 같은 반지성주의자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해온 것이 되풀이돼온 역사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여기에 마르쿠제는 한마디를 보탰다. “희극으로 반복되는 게 원래 비극보다 훨씬 끔찍할 수 있다”고. 역사는 미국에서만 반복되는 게 아니다. 이진영 국제부 차장 ecolee@donga.com}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웃 마을 언니 집에 가는 길에 납치된 이후의 생활은 입에 담기도 싫었다. 그저 무사히 집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납치범들 손에서 풀려나 집에 왔을 때 소녀는 싸늘한 시선들과 마주쳤다. 그제야 달거리가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한 나이지리아 루카이야 양(13)의 이야기다. 이 나라에선 극단주의 무장반군 보코하람(Boko Haram)과 정부군의 대립이 8년째 계속되면서 여성들의 인권 유린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코하람은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뜻이다. 인구의 절반은 기독교도, 절반은 이슬람교도인 이 나라에 이슬람 신정(神政)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2009년부터 마구잡이 테러를 자행해왔다.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을 끌고 가 자살폭탄 테러에 이용하거나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성폭행했다. 유엔아동기금에 따르면 2012년 이래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성은 약 2000명. 최근엔 정부군의 소탕 작전이 성공해 납치됐던 소녀들의 기적 같은 생환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쁨의 귀향은 절망의 시작이다. 전쟁 피해자들은 아군과 또 다른 무언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적군과 함께 살다 온 여성은 적군만큼 위험한 존재로 간주된다. 부모들은 “딸을 포기하라”는 협박을, 정부는 “평생 여자애들을 가둬놓으라”는 압력을,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개들 속의 하이에나’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보코하람의 여자’라는 낙인은 조선시대 전쟁 피해자들인 환향녀(還鄕女)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학자들은 속환녀(贖還女)라고 부른다. 병자호란을 기록한 인조실록엔 “오랑캐에게 정조를 잃은 며느리에게 조상 제사를 받들게 할 수는 없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시아버지 얘기가 나온다. 반대로 딸이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는데도 사위가 새 장가를 들려고 한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친정아버지의 사연도 있다. 당시 좌의정 최명길은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다는 이유로 이혼을 허락해선 안 된다고 했다가 “나라의 풍속을 무너뜨린 자”로 역사에 기록됐다(인조실록 36권). 인조는 마을마다 ‘회절강(回節江)’을 지정해 몸을 씻는 여인들은 받아주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적잖은 속환녀들은 그 이후로도 이혼당하고 버림받았다. 이제는 환향녀도, 속환녀도 입에 올릴 일이 없다. 그렇다고 부당한 낙인찍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서 착공식을 마치고도 마포구 성미산 자락으로 쫓겨나 건립된 이유는 일본이 반대해서가 아니다. 일부 단체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며 들고일어났기 때문이다. 보코하람에 납치된 소녀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우리 딸을 돌려 달라’(#BringBackOur Girls)는 해시태그 캠페인에 동참했던 이들은 이제 소녀들의 ‘슬픈 귀향’에 분노하고 있다. 2012년 5월 문을 연 후 4주년을 맞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문제를 넘어 이름 그대로 전시 성폭력이라는 보편적 여성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면 어떨까. 전쟁의 만행뿐 아니라 전쟁에서 소녀를, 국민을 지켜내지 못한 이들이 오히려 적군과 함께 그 희생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을 일깨우는 곳 말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놓듯 지은 건물은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서 여전히 횡행하는 피해 여성에 대한 낙인찍기 관행을 역설적으로 선명히 드러내줄 것이다.이진영 국제부 차장 ecolee@donga.com}
똑똑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학업 성취도 면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도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다(보건복지부 2013년 조사 결과). 동아일보는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이어지는 ‘2020 행복원정대’의 올해 주제를 ‘초행길’로 정했다. ‘초등 고학년생의 행복 찾는 길’을 줄인 말이다. 초등학생, 그중에서도 4∼6학년은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옮겨가는 과도기로 스트레스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다. 초등학생으로 묶이기엔 몸도 마음도 커버렸다. 초등학생이지만 고교생처럼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이런 어정쩡함 속에 스트레스의 싹이 자란다. 이들의 삶의 만족도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의 평범한 4∼6년생 64명과 그 어머니 6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아이들은 행복의 제1조건으로 ‘화목한 가정’을 꼽았다. 아이 64명 중 46명(72%)이, 엄마는 64명 중 37명(58%)이 ‘화목한 가정’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은 “친구랑 있으면 즐거운데 가족과 있으면 따뜻하다” “성적은 나중에 올리면 되지만 가족은 한번 금이 가면 안 된다”고 했다. 두 번째 행복 조건은 ‘자유시간’이었다. 아이는 7명, 엄마는 10명이 행복하려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아이들은 이 학원 저 학원 바쁘게 다니느라 늘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타임 푸어(Time-poor)’였다. 아이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의지하면서도 부모의 기대에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녀로서 나의 점수’를 매겨 달라는 질문에 3.98점을 주었다. 엄마들이 준 자녀 점수(4.36점)보다 낮았다. “성적이 2학년 때보다 떨어져서 죄송하다” “공부를 못해서 내가 집안의 걱정거리”라는 아이가 많았다. 사춘기가 시작돼서일까. 초등 5학년은 질풍노도의 시기임도 확인됐다. 주관적인 행복도는 물론이고 학교생활과 부모에 대한 만족도, 미래의 행복도 평가에서 이 또래의 점수가 두드러지게 낮았다. 아이들은 행복을 말하면서 엄마 얘기는 많이 했지만 아버지에 관한 언급은 별로 하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만족도(4.81점)가 아버지에 대한 만족도(4.66점)보다 높았다. 특히 딸이 아버지를 인색하게 평가(4.63점)했다. 이진영 ecolee@donga.com·김아연 기자}

“한류 덕분에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2010년 100여 명에서 지금은 180명으로 늘었어요. 이 대학 학생들은 체육관에서 ‘강남 스타일’을 틀어 놓고 파티를 해요. 동아시아 팝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90% 이상이 한국 대중가요랍니다.” 호주 캔버라에서 만난 최혜월 호주국립대 한국학연구소장(54·사진)은 한국학의 인기를 이같이 전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를 연구하는 학생들로 한정하면 그동안 학생 수가 중국학-일본학-인도네시아학 순으로 많았는데 지금은 인도네시아 대신 한국학이 3위로 올라섰다고 한다. 한국학은 한국어→한국사와 문학→사회과학 순으로 확산되는 경향이었지만 이곳 학생들은 한국어 다음으로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6·25전쟁이나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죠. 탈북자와 동남아 결혼 이주 여성, 한국의 대중문화와 민주화 역사도 인기 있는 연구 주제입니다.” 최 소장은 제자들이 쓴 졸업논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으로 △캐나다 선교사의 일기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사와 종교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 △한일 지식인 네트워크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정도 △미국 문화가 유입되던 시기인 1950년대 한국 영화계 이야기 △중국 조선족 결혼 이주 여성을 다룬 논문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 대학의 아시아 전문 연구진 250명 가운데 한국학 교수는 5명밖에 안 된다. 전공은 주로 역사와 문학 분야로 사회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최 소장은 “사회과학 분야 연구진이 보강돼 한국학을 주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캔버라=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전 7시. 옛 기차역을 문화 시설로 개조한 호주 시드니 로코모티브 가(街)에 자리한 기술 공원은 일찍부터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여성 2000여 명으로 북적였다. ‘안전한 가정과 안전한 지역사회’를 주제로 유엔여성기구 호주전국위원회가 기금 모금을 겸해 연 조찬 행사였다. 기업과 정부 기관, 여성단체에서 95달러(약 8만5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성인들 사이사이에 교복 차림의 앳된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여학생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뜻의 보라색 리본을 단 채 아침을 먹으며 “세계 여성 3명 중 1명 이상이 다양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태평양 연안 국가들에선 3명 중에 2명꼴로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발표를 경청했다. 여성과 소녀를 상대로 한 폭력 방지를 포함해 성평등 문제는 호주 외교부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다. 줄리 비숍 외교장관은 “폭력 없는 삶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삶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연방정부는 호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규정상 성과 학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여중생 이사벨 양(15)은 “지리 시간에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사는지 알게 됐다. 다른 나라 여성들의 현실에 관심이 많아 친구들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여고생 엘리자 양(17)은 친구들과 ‘사회 속에서의 균형(Balance in Society)’이라는 학내 동아리를 만들어 여성 문제를 공부한다. 친구들을 독려해 제3세계의 여성 상대 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편지를 20∼30통씩 써서 해당국 대사관에 전달했다. 그는 “낙태를 지지하는 활동도 하고 싶지만 학교가 가톨릭계여서 안 된다”며 아쉬워했다. 앞서 6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토크 페스티벌 ‘올 어바웃 우먼(All About Woman·여성에 관한 모든 것)’도 페미니즘이 일부 여성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담아내는 이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30명의 연사가 △성에 관한 미신 △나 자신이 되는 법 △무의식적 편견 △남성성 등 모두 24개 주제별로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다. 24개 주제 모두 입장권이 일찌감치 동날 정도였다. 기자는 이 중 ‘변해야 할 것들’이라는 세션에 예약 취소된 표를 36달러에 구하여 막판에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보수적인 캐나다 원주민 환경운동가부터 동성 파트너, 남성 유모와 함께 아이 셋을 키우며 사는 레즈비언까지 다양한 패널이 나와 “매직 맘(만능 엄마)이 되려고 해선 안 된다” “아니다, 돌봄은 여성의 몫이다”라며 설전을 벌였다. 청중에게 질문 차례가 돌아오자 10대 소녀들이 우르르 마이크 앞으로 몰려 나갔다. “(어른들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서 부자 남편, 의사 남편을 만나라고 하는 건 이중적이지 않으냐”는 질문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13세 딸과 함께 페스티벌에 참여한 미셸 로빈슨 씨(43·여)는 “젠더 이슈를 배우는 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는 데 중요하다”며 “이건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호주에는 여성에게 여전히 차별적인 요소가 많다. 1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풀타임 정규직 여성 근로자 임금이 남성보다 19.1% 적고,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고위직 임원 중 여성 비율은 15.4%밖에 안 된다. 직장 내 양성평등법이 제정되고 양성평등청이 신설된 것도 2012년의 일이다. 시드니 기금 모금 행사장에서 만난 프루던스 고워드 뉴사우스웨일스 주 여성부 장관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자원봉사에 나선 여고생 앨리 양(16)은 “미래에 내가 살아갈 사회를 위해서는 지금 행동하는 것이 좋다. 남자와 똑같이 일하고 적게 받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들이 바꿔 놓을 호주의 미래가 궁금해졌다.시드니=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