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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북 특사의 방북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표적 ‘대북 매파’인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대사가 4일(현지 시간) “대북제재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며 북한을 압박했다. 헤일리 대사는 이날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 9월 의장 자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서로 악수를 하고 미소를 보였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탄도미사일 개발을 용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알렸다”고 밝혔다. 이어 “안보리 이사국들은 오늘 조찬 모임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는 걸 확실히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헤일리 대사는 “불행히도 제재가 북한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말과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9월 한 달간 안보리 순회 의장국을 맡는다. 헤일리 대사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 보고서의 공개를 반대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러시아와 중국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국제사회를 거스르고 있다.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미 상무부는 북한에 미국산 방탄차량을 들여보낸 중국 기업과 홍콩 기업 한 곳씩과 중국인 한 명을 수출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2016년 3월 공개된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2015년 10월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벤츠 차량이 유럽에서 만들어져 미국에서 방탄장치를 탑재한 뒤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수출 제재 명단에 오른 기업과 개인들은 미국과 수출입 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주성하 기자}

북한의 가장 유명한 종합편의시설 창광원에서 머리를 깎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사회주의 방법’은 새벽 5시 이전에 창광원 매표소에 가서 줄 서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운행 전부터 창광원 매표소 앞엔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오전 7시가 넘으면 표를 살 수 없다. 이렇게 표를 사면 북한돈 800원(한화 약 100원)에 머리를 깎을 수 있다. 여성의 미용 요금은 스타일에 따라 북한돈 수천∼수만 원 사이다. 이는 사회주의 국정 가격이다. 두 번째 ‘자본주의 방법’은 아무 때나 창광원에 가서 접수원에게 담배 한 갑을 주고 들어간 뒤 이발사에게 북한돈 1만 원 정도 직접 주는 것이다. 그러면 더위와 추위, 어둠 속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줄 서도 표를 못 사는 일도 없다. 창광원 이발사들은 북한 최고 수준이다. 독립해 미용실을 차리면 창광원 커리어만 내세워도 큰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800원짜리 머리를 깎는 비밀은 따로 있다. 창광원 이발표는 한 사람당 봉사시간을 40분으로 환산한다. 하루에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12명만 깎으면 국가 과제가 끝난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이 손님 한 명의 머리를 깎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 길어야 15분이다. 국가 과제를 마치는 데 많아야 3시간만 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5시간이 1만 원 이상 내는 고객을 받는 ‘자본주의’ 시간이다. 자본주의 시간에는 돈을 더 많이 주거나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이 우선이다. 단골은 이발사가 접수원에게 말해 놓기 때문에 통과세인 담배를 주지 않아도 되고, 휴대전화로 예약도 받는다. 창광원은 물론 다른 고급 종합편의시설도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평양에는 국영 이발소가 아닌 봉사소 간판을 내건 고급 독립 미용실이 많다. 남성 이발 가격이 대개 2∼5달러(북한돈 약 1만7000∼4만2000원)로 창광원보다 더 비싸지만 부분 안마와 미안(얼굴 케어)까지 해준다. 여성 미용 요금은 천차만별이다. 동네 평범한 미용실에선 1만∼2만 원 정도 받는다. 하지만 50달러 이상(북한돈 40만 원 이상) 받는 고급 미용실도 많다. 최근 평양에는 1회에 200달러를 받는 미용실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런 미용실은 최상의 미용 재료를 쓰고, 머리 스타일도 매우 다양하며, 미안과 안마도 최고 수준이다. 몇 년 전 나도 북한 정보원에게서 뜻밖의 ‘사례’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 제호까지 언급하며 남쪽 최신 헤어 잡지 몇 개를 보내 달라는 것이다. 나에겐 낯선 제호라 검색해 보니 그 분야에선 상당히 유명한 잡지였다. 왜 필요하냐고 묻자 “친척이 모 지방 도시에서 미용실을 하는데, 고객에게 몰래 남쪽 잡지를 보여주며 이 모양대로 해준다고 하면 돈을 3배로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평양의 최고급 미용실에는 모름지기 고객에게 몰래 보여주는 세계 여러 선진국의 헤어 잡지가 다 있으리라 추정된다. 요즘 북한에선 이발사나 미용사는 굶을 걱정이 없다고 한다. 먹고살 만하니 꾸미는 데 신경을 쓴다는 의미다. 유명 미용실에서 경력을 쌓고 개인 미용실을 차린 뒤 머리 잘한다는 소문을 만들거나, 홍보를 잘하고 사은품을 듬뿍 주는 등 영업을 잘하면 고객이 많아진다. 물론 자기 명의의 미용실을 열 순 없고 국가 기관 소속으로 등록한 뒤 월마다 입금한다. 공식적으론 기관 소속의 전문 미용사이지만, 실제론 사장이다. 이렇게 해서 월 2000달러 이상 벌면 상위 1%미만의 ‘미용사 갑부’가 될 수 있다. 이발과 미용을 사례로 들었지만, 요즘 북한의 대다수 서비스업은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많은 서비스업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들이는 시간 비율이 절묘하게도 거의 3 대 5 비율을 유지한다. 기관 소속인 경우, 입금액과 자기가 갖는 돈의 비율도 대개 이 정도 비율을 유지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엔 사회주의에 바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자신이 갖는 몫이 커져왔고, 지금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넘어섰다. 지금은 5 대 3 비율이지만, 6 대 2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본다. 7 대 1까지 넘는다면 매우 어리둥절해질 것 같다. 진짜 자본주의에 사는 나도 소득의 2할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데 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올해 건립 200년을 맞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 역사박물관에서 2일 밤 대형 화재가 발생해 2000만 점이 넘는 과학, 역사, 문화 관련 유산 대부분이 소실됐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화재는 일요일인 2일 관람 시간이 지나고 문을 닫은 상태인 오후 7시 30분경 시작됐다. 대응이 늦어 상당수 전시물들이 화염 속에서 재로 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물이 노후한 데다 내부에 목재와 종이 문서가 많아 불길이 빠르게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3일 “하룻밤 새 잿더미로 사라진 이 박물관의 소장품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조형물, ‘루지아’로 불렸던 약 1만2000년 전의 25세 추정 아메리카인 여성 두개골, 공룡 화석, 1784년에 발견된 우주 운석 등이 이번 화재로 소실됐거나 크게 훼손됐을 것으로 보인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황급히 건물 밖으로 유물을 꺼내오는 모습이 TV 방송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현지 방송사인 ‘TV글로부’ 보도에 따르면 불이 난 직후 20개 소방서에서 소방관 80여 명이 출동했지만 불 끌 물을 얻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콜로네우 로베르투 로바다이 리우데자네이루 소방서장은 “건물 소화전 2기의 물탱크가 모두 비어 있어 사용이 불가능했다. 근처 호수에서 급수차로 물을 길어 와야 했다”고 말했다. 브라질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포르투갈의 왕 동 주앙 6세가 1818년에 건립한 이 박물관은 남미 최대의 자연사박물관이다. 주앙 6세의 아들 동 페드루 1세가 브라질의 첫 왕으로 즉위해 독립을 선언하며 이 박물관에 높은 가치의 소장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은 우리나라 박물관학에 있어 매우 슬픈 날이다. 200년에 걸친 연구와 지식의 유산을 잃었다”며 애통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최근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과학과 교육 관련 예산을 삭감한 정부가 이번 화재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왕립 기관으로 출발한 이 박물관은 1946년 리우데자네이루 연방대 부속으로 운영권이 변경됐다. 경제난에 처한 테메르 정부가 과학 부문 지원을 끊은 탓에 소장품 관리와 시설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조차 마련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루이스 두란치 박물관 부관장은 “화재 발생 위험이 상존하는 건물이었는데도 정부는 시급한 설비 보수를 위한 비용 보조 요청조차 외면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6월 열린 개관 200년 행사에 참석한 정부 관료는 한 명도 없었다. 소장품 보호 예산을 얻기 위해 정부와 오랜 세월 투쟁해 왔지만, 그렇게 애써 지켰던 모든 유산이 사라졌다”며 분노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시정부가 국립 박물관 설비 보수를 도외시한 채 최근 미래를 주제로 삼은 새 미술관 개관을 위한 예산 책정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정신 나간 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브라질의 유명 칼럼니스트 베르나르드 멜루 프랑쿠 씨는 현지 일간지 칼럼에서 “지난 일요일의 비극은 브라질의 국가적 자살이었으며, 과거와 미래 세대에 대한 심각한 범죄 행위였다”고 밝혔다.손택균 sohn@donga.com·주성하 기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타이거 우즈보다 골프를 더 많이 쳤지만 우리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일해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16년 12월 한 공개 연설에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을 이렇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4년 10월에도 “미국이 직면한 어려움을 두고 오바마 대통령이 골프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라며 트위터로 비난했다. 그랬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임기의 25%를 골프장에서 보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경제 웹진 비즈니스인사이더는 2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 취임 후 590일을 근무했는데 이중 골프장에 있었던 날은 153일(25.9%)이라고 전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에 머문 기간은 196일(33.2%)로 나타났다. 매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던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에 90일을 골프장에서 보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첫 1년 동안 1번 밖에 골프장에 가지 않았다”고 비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100일 동안 골프를 친 날이 전임자 3명과 비교해서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많은 외부 일정을 보낸 장소다. 그는 1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날’에도 마라라고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을 찾아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워싱턴에서 30분 거리인 버지니아주 스털링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도 자주 찾는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애리조나)의 장례식이 열린 1일에도 버지니아주 골프장을 방문했다. 여름휴가는 2년 연속으로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이곳에서 17일간의 ‘일하는 휴가(working vacation)’를 가졌다. 백악관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시설 수리 문제로 외부에서 근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백악관은 지난해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골프가 비난을 받자 “골프를 하면서 면담을 하는 등 업무의 연장”이라고 변명했다가 빈축을 산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골프 사랑’을 비판하며 비교대상으로 인용한 세계적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는 정작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골프 친구. 트럼프 대통령은 2일에도 트위터에 “타이거 우즈는 백악관과 나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 데 ‘훌륭한 기품(great class)’을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이는 타이거 우즈가 지난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노던트러스트 최종 라운드 종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트럼프)을 옹호한 데 대한 보은성 트윗으로 풀이된다. 당시 우즈는 미국프로농구(NBA), 미국프로풋볼(NFL) 일부 선수들과 트럼프 대통령의 불화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다. 여러분은 그 직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누가 그 자리에 있건, 성격이나 정치를 좋아하든 말든, 우리는 모두 그 직무를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우즈는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나는 많은 해를 도널드(트럼프 대통령)와 알고 지냈다. 우리는 함께 골프를 하고 저녁도 먹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아는 사이였고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도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올여름 한반도의 기록적 폭염이 가장 끔찍했을 사람들은 아마 북한 주민이 아닐까 싶다. 수치로는 남쪽이 더 더웠지만, 한국은 에어컨이 많아 대다수 사람이 직장과 집에서 헉헉대며 살지 않아도 됐다. 북한엔 에어컨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한 줌도 안 되고 선풍기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전기가 부족하다. 이 와중에 북한은 9월 9일을 맞아 집단체조를 한다며 평양 시민과 학생 수만 명을 불러내 야외 훈련을 시키고 있다. 밖에 10분 서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폭염에 확확 단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꼼짝 못 하고 강제로 몇 시간씩 훈련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나도 예전에 평양에서 겪었던 일이지만, 이 무더위에 그런 훈련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남쪽의 은행처럼 들어가 몸을 식힐 데도 없으니 노인들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평양에서 누구나 몸을 식힐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지하철이다. 지하 100m 이상 파고 들어간 지하철은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평양 시민에게 여름에는 무더위를 식혀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몸을 덥혀 주는 곳이 바로 이 지하철이다. ‘소(小)보수날’로 지정된 매월 첫 일요일을 빼고는 항상 운행된다. 게다가 싸기까지 하다. 평양 지하철은 2012년부터 지하철 카드라는 것을 도입했는데, 카드 가격은 쌀 1kg을 살 수 있는 5000원이고 별도로 승차 요금을 충전한다. 하지만 운임이 5원에 불과해 1000원만 충전하면 200번을 탈 수 있다. 평양 지하철은 2개 노선이며, 총길이 34km에 정차역은 16개이다. 아마 요즘도 평양 지하철역마다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들어와 머무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다. 다만 그런 사진은 공개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외국인이 참관할 수 있는 역은 승리역이나 영광역, 개선역 정도로 제한돼 있고, 이런 역은 통제가 된다. 북한 사람은 지하철에서 동영상과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사진 찍다 걸리게 되면 사진기나 휴대전화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직장에 통보되고 보안 기관에 불려가는 등 각종 시끄러운 일을 당하게 된다. 아무리 외국인이 우대되고 자국민이 천시되는 북한이라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평양 사람들조차 불평이 크다. 근래엔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이 늘었다. 하지만 지하철엔 통신망이 없어 전화를 할 수 없고 대다수가 미리 내려받은 도서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지하철에 들어가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간은 개장 시간인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쯤까지이다. 평양 지하철은 입장 마감이 오후 9시 30분인데 2년 전쯤 30분이 더 연장됐다. 9시 30분 정각에 평양 지하철을 관리하는 지하철도운영국 군인들이 입구를 막는다. 여단 규모의 이 부대는 평양에서 근무하니 권력자의 자식들이 모이는 ‘꿀보직’이며, 여군의 비율이 높아 ‘임신 사건’이 가장 많이 나오는 부대이기도 하다. 평양 지하철은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미군의 신조를 떠올릴 만한 독특한 관습이 있다. ‘누구도 지하에 남겨두지 않는 것(No one left underground)’이다. 종점에서 막차는 오후 9시 30분에 들어온 사람이 플랫폼에 올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해 9시 45분에 떠난다. 그리고 환승역인 전우역이나 전승역에 와서는 다른 노선에서 내린 사람들을 기다리느라 20분 이상 정차한다. 그래서 막차를 타면 집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막차를 타면 단 8개 역을 가는 데 1시간 이상 걸리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막차가 지나는 중간 역에선 10시가 넘어도 전철을 탈 수는 있다. 그 대신 9시 30분 이후엔 군인들에게 담배 한 갑 정도는 찔러줘야 한다. 평양 지하철은 전쟁이 나면 평양 시민을 위한 ‘전시 대피호’로 사용하려고 땅속 깊이 뚫었다. 대피호로 쓰인 적은 없지만, 다행히 지금과 같은 무더위 속에선 시민을 위한 ‘폭염 대피소’로 제격이다. 북한 당국이 요즘 같을 때는 전철 운행 시간이 지나도 역사 안에서 무더위를 식힐 수 있게 개방 시간을 늘려주면 찬사를 받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시민과 아이들에게 더위를 먹게 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같은 살인 더위에 집단체조 훈련이 웬 말인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올여름 한반도의 기록적 폭염이 가장 끔찍했을 사람들은 아마 북한 주민이 아닐까 싶다. 수치로는 남쪽이 더 더웠지만, 대신 한국은 에어컨이 많아 대다수 사람이 직장과 집에서 헉헉대며 살지 않아도 됐다. 북한엔 에어컨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한 줌도 안 되고 선풍기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전기가 부족하다. 이 와중에 북한은 9월 9일을 맞아 집단체조를 한다며 평양 시민과 학생 수만 명을 불러내 야외 훈련을 시키고 있다. 밖에 10분 서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폭염에 확확 단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꼼짝 못하고 강제로 몇 시간씩 훈련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도 예전에 평양에서 겪었던 일이지만, 이 무더위에 그런 훈련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남쪽의 은행처럼 들어가 몸을 식힐 데도 없으니 노인들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평양에서 누구나 몸을 식힐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지하철이다. 지하 100m 이상 파고 들어간 지하철은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평양 시민에게 있어 여름에는 무더위를 식혀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몸을 덥혀 주는 곳이 바로 이 지하철이다. ‘소(小)보수날’로 지정된 매월 첫 일요일을 빼고는 항상 운행된다. 게다가 싸기까지 하다. 평양 지하철은 2012년부터 지하철 카드라는 것을 도입했는데, 카드 가격은 쌀 1㎏을 살 수 있는 5000원이고 별도로 승차 요금을 충전한다. 하지만 운임이 5원에 불과해 1000원만 충전하면 200번을 탈 수 있다. 평양 지하철은 2개 노선이며, 총길이 34㎞에 정차역은 16개이다. 아마 요즘도 평양 지하철역마다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들어와 머무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다. 다만 그런 사진은 공개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외국인이 참관할 수 있는 역은 승리역이나 영광역, 개선역 정도로 제한됐고, 이런 역은 통제가 된다. 북한 사람은 지하철에서 동영상과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사진 찍다 걸리게 되면 사진기나 휴대전화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직장에 통보되고 보안 기관에 불려 가는 등 각종 시끄러운 일을 당하게 된다. 아무리 외국인이 우대되고 자국민이 천시되는 북한이라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평양 사람들조차 불평이 크다. 근래에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은 늘었다. 하지만 지하철에선 통신망이 없어 전화할 수 없고 대다수가 미리 내려받은 도서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지하철에 들어가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간은 개장 시간인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쯤까지이다. 평양 지하철은 입장 마감이 9시 30분인데 2년 전쯤 30분이 더 연장됐다. 9시 30분 정각에 평양 지하철을 관리하는 지하철도운영국 군인들이 입구를 막는다. 여단 규모의 이 부대는 평양에서 근무하니 권력자의 자식들이 모이는 ‘꿀보직’이며, 여군의 비율이 높아 ‘임신사건’이 가장 많이 나오는 부대이기도 하다. 평양 지하철은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미군의 신조를 떠올릴 만한 독특한 관습이 있다. ‘누구도 지하에 남겨두지 않는 것(No one left underground)’이다. 종점에서 막차는 9시 30분에 들어온 사람이 플랫폼에 올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해 9시 45분에 떠난다. 그리고 환승역인 전우역이나 전승역에 와서는 다른 노선에서 내린 사람들을 기다리느라 20분 이상 정차한다. 그래서 막차를 타면 집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막차를 타면 단 8개 역을 가는데 1시간 이상 걸리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막차가 지나는 중간 역에선 10시가 넘어도 전철을 탈 수는 있다. 대신 9시 30분 이후엔 군인들에게 담배 한 갑 정도는 찔러줘야 한다. 평양 지하철은 전쟁이 나면 평양 시민을 위한 ‘전시 대피호’로 사용하려고 땅속 깊이 뚫었다. 대피호로 쓰인 적은 없지만, 다행히 지금과 같은 무더위 속에선 시민을 위한 ‘폭염 대피소’로 제격이다. 북한 당국이 요즘 같을 때는 전철 운행 시간이 지나도 역사 안에서 무더위를 식힐 수 있게 개방 시간을 늘려주면 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시민과 아이들에게 더위를 먹게 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같은 살인 더위에 집단체조 훈련이 웬 말인가.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할리우드 여배우 스칼릿 조핸슨(33·사진)이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여배우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가 2017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세전 수입을 조사한 결과 조핸슨이 4050만 달러(약 455억 원)로 1위를 차지했다. 직전 조사에서 수입 상위 10위 안에 들지 못했던 조핸슨은 올해 마블 슈퍼히어로 10주년 기념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출연해 큰 인기를 얻으며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블랙 위도 연기는 적어도 내년까지는 그녀에게 탄탄한 수입을 보장할 것이라고 포브스는 전했다. 여배우 수입 2위는 앤젤리나 졸리(43)로 2800만 달러(약 315억 원)를 벌었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된 시트콤인 ‘프렌즈’ 이후 특별한 히트작이 없는 제니퍼 애니스턴(49)은 여러 건의 광고 출연으로 1950만 달러(약 219억 원)를 벌어 3위를 차지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리용호 북한 외무상(사진)이 이란을 방문 중이던 9일(현지 시간) “우리는 미국과 협상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핵화에 동의했지만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핵 지식을 보존하겠다”고 말했다고 이란 매체들이 9일 전했다. 북한 최고위층이 “핵 지식은 보존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도에 따르면 리 외무상은 9일 테헤란에서 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의 주요 목표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려면 미국이 자신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리 외무상의 발언은 북한이 향후 핵 폐기에 있어 하드웨어에 포함되는 핵무기와 관련 생산 설비 등은 폐기할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핵 인력과 자료는 보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경우 언제든 다시 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핵 능력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또 이는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서 불가역적(Irreversible)의 의미를 담고 있는 ‘I’는 빼고 ‘CVD’까지만 동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리 외무상이 이란에 대한 미 정부의 독자적인 제재 조치가 시작된 첫날인 7일 이란을 방문해 이런 발언을 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방문은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리 외무상은 남북 경협에 대해선 좋은 관계에 방점을 뒀다. 그는 “우리의 새로운 정책인 경제개발을 위해 안보를 확보해야 하고 이 안보의 한 요소가 남조선과 좋은 관계다”라며 “이를 위해 계속 협상을 하겠다. 남북 사이에 곧 도로와 철도가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9일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조미(북-미)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역행하여 일부 미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터무니없이 우리를 걸고 들면서 국제적인 대조선 제재·압박 소동에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대사 등 대북 강경파들과 분리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이 새로 만든 무궤도전차를 보며 크게 만족해하는 사진이 4일 북한 매체들에 실렸다. 김정은은 “대부분의 부품을 국산화하고 손색없이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고 “인민들이 낡아빠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불편을 느끼고 거리에는 택시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는 전망이 보인다. 정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를 보니 3년 전 김정은이 자체로 만들었다는 새 지하 전동차를 둘러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는 “수입병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을 실천으로 확증해줬다”며 흥분했다. 나중에 들으니, 중국에서 전동차를 수입하려 했는데 너무 비싸 김정은이 200만 달러를 줘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기관차도 만들었는데 전동차 하나 못 만들겠는가”라며 내리먹이는 지시에 몇 달 만에 급히 만들다 보니 주요 부품을 모두 중국에서 사 와서 조립한 것에 불과했다. 평양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3년이 지난 지금 북한제 전동차는 딱 한 개 편성만 뛴다고 한다. 부품 사올 돈이 없으니 그 이상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3년 뒤 김정은이 이번엔 버스를 보고 똑같이 기뻐하고 있다. 사실 오늘 칼럼은 버스 부품 국산화율이나 따지려 쓰는 게 아니다. 김정은이 대중교통 문제의 해법을 새 버스에서 찾았다면 현실을 모르고 있다. 평양에서 가장 ‘자본주의화’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대중교통이다. 평양엔 표 받는 차장이 없는 버스도 많다. 북한에서 쌀 1kg이 약 5000원인데 버스비는 5원밖에 안 되니 차장이 없어도 차표를 잘 낼 수밖에 없다. 사실상 공짜 버스인데 버스 운전사들의 처지에서 보면 아무리 일해 봐야 남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배급을 제대로 주는 것도 아니고 월급도 있으나마나다. 결국 운전사들은 역이 아닌 곳에서 사람을 태워주거나 내려주고, 또 장사 물건을 옮겨주는 것으로 가외로 벌어 먹고산다. 평양 버스는 뒷문으로 탑승하는데 가다가 도로에서 손을 드는 사람을 앞문으로 태워주고 보통 1000원을 받는다. 이미 평양에는 교통보안원이나 단속대가 있는 곳을 피해 운전사와 시민들 사이에 무언의 약속이 이뤄진 노선별 탑승 장소도 다 정해져 있다. 1000원을 내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고 언제든 시간 맞춰 타고 내릴 수 있어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막차 시간인 오후 11시 이후 버스는 ‘아무 곳에서 세우고 타는 초대형 택시’로 변한다. 평양 사람들은 이런 버스를 ‘무궤도택시’ 또는 ‘궤도택시’라고 부른다. 전기로 운행되지 않는 다른 노선버스는 출퇴근시간에만 다닌다. 나머지 시간에는 합법적 택시와 장사 물건 운반 버스가 된다. 이들의 명분은 이렇게 돈을 벌어야 출퇴근시간에 뛸 수 있는 연료와 부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서 줄 수 없는 것이라 통제도 못 한다. 평양에는 국영버스 외에 대중교통 노선을 따라 달리며 돈을 버는 기업 외화벌이용 ‘벌이차’도 많다. 보통 북에서 ‘롱구방’이라 불리는 미니버스다. 벌이차는 정전이나 혼잡으로 대중교통이 마비되는 시간을 노려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데 평양역에서 광복역까지 약 6km에 5000원을 받는다. 그래도 기본료가 2달러(북한 돈 약 1만7000원)에, 이후 1km에 0.5달러씩 오르는 택시보단 훨씬 싸다. 특히 시내 변두리로 향하는 노선에 벌이버스가 많은데 서평양∼낙랑 노선의 부흥역 앞, 지체되기로 악명 높은 선교∼만경대 노선의 역전백화점 앞에 벌이차가 제일 많다. 이 밖에 통일거리엔 ‘통통이’라고 불리는 중국식 삼륜 전동차가 근거리 운송의 최강자로 부상했다. 평양엔 시외버스터미널 역할을 하는 곳도 여러 군데다. 대표적으로 서성구역 ‘3대혁명전시관’ 앞 등에 가면 ‘몰이꾼’이라 불리는 호객꾼들이 저마다 자기 버스를 타고 가라고 사람들을 잡아끈다. 이렇게 평양의 교통체계는 자연발생적으로 시장화하고 있다. 평양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전기 문제와 국영 운전사에 대한 보상 현실화가 시급하다. 또 국영 교통체계를 보조하는 벌이차, 택시, 통통이도 더 많이 경쟁시켜야 한다. 버스는 중국에서 사와도 된다. 골동품 공장 몇 개를 겨우 가동하면서 아직도 제품을 국산화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지고 있는 북한이 참 안쓰럽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접촉한 북한과 일본 외교 수장들이 만남의 수위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은 4일 “북한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보도한 기사는 완전한 오보”라고 일축하며 “우리도 양자 회담 횟수에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만남을) 넣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전날 ARF 환영만찬에서 이뤄진 고노 외상과의 만남을 두고 북한 관계자가 “양자 회담 상대국에 일본을 포함하지 않았으며 다만 접촉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 데 대한 반박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냉랭한 반박은 전날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고노 외상은 환영만찬 뒤 “리 외무상과 만찬 전후로 만나 이야기를 했다. 일본의 생각과 입장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리 외무상에게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어도 침묵했다. 그러다 북한 쪽에서 자신과의 만남을 평가절하하자 뒤늦게 “우리도 양자 간 회담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며 정상회담 제안 보도도 오보라고 밝힌 것이다. 북-일 외교 수장의 3일 만남은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일 양국 간 첫 고위급 접촉으로 관심을 끌었다. 아사히신문은 고노 외상이 만찬장에서 리 외무상과 접촉한다는 ‘작전’을 짰고, 실제로도 고노 외상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고 보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를 맞기 위해 하와이로 출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전용기 ‘에어포스투’는 ‘특별한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잠시 착륙했다. 각각 네 살과 세 살 때 한국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다이애나 브라운 샌필리포 씨와 릭 다운스 씨였다. 두 사람은 한국전쟁 전사자 유가족을 대표해 유해 봉환식에 참가했다. 샌필리포는 네 살 때 공항에서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네바다 방위군 소속이던 아버지 프랭크 살라자르 중위는 1952년 12월 31일 P-51기를 타고 북한 상공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중 대공포에 격추됐다. 샌필리포는 이후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10대에 비행복을 입은 아버지 사진을 처음 보게 됐고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샌필리포는 나중에 P-51 조종법까지 배웠다. “지금까지 늘 이런 질문에 시달려 왔어요. 아빠는 비행기에서 탈출했을까. 혹 고문을 당했을까.” 샌필리포는 하와이에서 열린 봉환식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비록 이번에 돌아온 유해가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같은 아픔을 나누고 있는 미국의 유가족들은 누구의 가족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운스의 아버지 할 다운스(당시 26세)는 B-26 폭격기 레이더 관제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폭격기가 북한 상공에서 피격됐을 때 조종사와 항법사는 비상탈출에 성공했다. 그들은 다운스에게 “비행기가 언덕에 추락해 폭발하는 것이 우리가 본 마지막”이라고 아버지의 최후 순간을 들려줬다. 펜스 부통령은 하와이에 도착한 뒤 트위터에 에어포스투에서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진주만 히컴 기지로 오는 도중에 다이애나 브라운 샌필리포와 그의 남편 로버트가 합류하게 돼 나와 (아내) 캐런은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썼다. 백악관도 이날 한국전쟁 전사자 유족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온 편지 2통을 소개했다. 해군 125함대에 배치돼 대북 공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한 존 C 매킬 중령의 조카 더그 씨는 편지에서 ‘대공황기에 성장했고 나라를 위해 복무한 자신의 삼촌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이었는지’라고 썼다.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는 매리언 씨는 1951년 9월부터 한국에서 작전을 수행하다 실종된 삼촌 앤드루 보이어 하사의 헌신을 잊지 않기 위해 거실에 사진을 걸어 놓고 있다고 밝혔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유족들은 사랑하는 이가 집으로 돌아오길 60년 넘게 기다렸다. 유해들의 신원이 확인돼 유족들이 평화를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주성하 zsh75@donga.com·전채은 기자}
“어떤 이들은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오늘 우리는 이 영웅들이 절대 잊혀지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아이들(boys)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1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에서 열린 6·25전쟁 참전 미군 전사자 유해 봉환식에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이렇게 선언했다. 6·25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뒤 정전 65년 만에 돌아온 55구의 유해를 영웅이라고 부르며 “전사한 영웅들 모두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의 일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의 귀환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나머지 6·25전쟁 전사자들도 데려오겠다고 유가족들 앞에서 약속한 것이다. 이날 봉환식은 ‘군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국가와 국민은 군인의 명예를 책임지고 지켜준다’는 미국의 가치와 정신을 제대로 보여줬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뒤 너무도 늦게 돌아온 용사들을 미 정부는 최고의 예우로 맞이했다. 미국 언론들은 “전사자들이 국가정상급 예우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영웅들의 귀환 북한으로부터 넘겨받은 미군 추정 유해 55구를 싣고 1일 오후 경기 평택시 오산 미 공군기지를 떠난 C-17 수송기 2대는 1일 오후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관을 뒤덮고 있던 푸른색 유엔 깃발은 미국 도착에 앞서 붉은빛 성조기로 바뀌어 있었다. 장중한 군악대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유해들은 한 번에 2구씩 수송기 뒤쪽으로 내려져 봉환식이 열리는 격납고 안으로 이동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소속 군인 4명이 각기 다른 정복을 입고 4인 1조로 관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6·25전쟁 참전용사 아버지를 둔 펜스 부통령은 유해가 담긴 관이 옮겨지는 내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부동자세로 서 있었고 그 옆에 선 필 데이비슨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거수경례를 유지했다. 행사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도 관이 지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거나 거수경례로 영웅들에게 예를 표했다.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식장에 울려 퍼졌다. 송환된 유해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하와이에 위치한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이 맡는다. 평생을 기다려온 유가족들은 신속하게 결과가 나오기를 희망하지만 신원 확인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로이터통신은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유전자와 치아 검사, 흉부 X선 대조 작업 등을 거쳐 미군 전사자로 밝혀지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오늘 이들이 누구인지는 신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곧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복잡한 신원 확인 과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존 비드 DPAA 과학분석국장은 “예비조사 결과 북한에서 송환된 유해들은 과거 발굴된 미군 병사들의 것과 대부분 일치한다”며 “한국전쟁 전사자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6·25전쟁 전사자는 7699명이다. 이 중 5300명은 북한 지역에, 약 1000명은 비무장지대(DMZ)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6·25전쟁 전사자의 9%는 유가족의 유전자(DNA) 정보가 없다. 10명 중 한 명은 신원을 밝힐 수 없는 것이다. ○ “김정은 감사하다. 곧 보게 되기를” 이날 유해 송환 행사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가시적 성과가 있음을 보여줘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 속에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러졌다. 앞서 1990년부터 2007년까지 443구의 유해가 미국에 도착했지만 부통령급 인사가 봉환식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미군 유해 송환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봉환식에 매우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오전 트윗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곧 만나길 기대한다”고 적었다. 이어 “이같이 친절한 조치를 한 것에 대해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며 “당신의 ‘좋은 서한’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 서한이 유해들과 함께 전달된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윗에서도 하와이 유해 봉환식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행사였다. 호놀룰루와 모든 군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호평했다. 유해 송환을 계기로 김정은 친서 전달과 2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이 새롭게 진척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북한이 미군 유해를 송환하면서 어떤 금전적 요구도 하지 않았고, 실제 돈도 오가지 않았다고 미국 국무부가 29일(현지 시간) 밝혔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미국의 법규는 북한 또는 어느 나라든 유해 발굴 및 보관과 관련한 경비에 대해 보상할 권한을 국방장관에게 부여한다”면서도 “이번 경우에는 북한이 돈을 요구하지 않았고 어떤 돈도 오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돼 온 보상 지급설을 일축한 것이다. 27일 미군 C-17 수송기는 북한 원산에 들어가 미군 유해 55구를 싣고 경기 평택시 오산 미군기지로 돌아왔다. 미국 측은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 관계자들을 통해 오산 기지에서 유해 확인 절차를 밟은 뒤 다음 달 1일 신원 확인 작업을 위해 하와이에 있는 DPAA로 옮겨 공식 유해 송환 행사를 개최한다. 미국이 유해 송환과 관련해 북한에 보상을 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DPAA 대변인실은 13일 “1990년부터 2005년 사이 북한으로부터 약 629구로 추정되는 유해를 돌려받았다”며 “이 중 334구의 신원을 확인했고 북한에 2200만 달러(약 246억 원)를 보상했다”고 밝혔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를 기준으로 약 6만6000달러씩 지급한 셈이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6·25전쟁 용사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현장에 갈 수 있게 돼 깊은 영광이다”고 말했다. 6월 싱가포르 공동성명 합의사항의 하나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유해 55구가 하와이 진주만의 히컴 공군기지로 이송될 예정인 가운데 펜스 부통령은 다음 달 1일 이곳에서 열릴 유해 송환식에 참석한다. 펜스 부통령은 인터뷰에서 부친이 6·25전쟁에 참전했던 사실을 자세히 언급하며 유해 송환에 특별한 애착을 보였다. 그는 “아버지도 군에서 복무했고 한국전쟁에서 싸웠다. 그는 ‘포크찹힐(Pork Chop Hill·경기 연천 북부)’을 비롯한 여러 전설적인 전투에 참전했다”며 “내 부친은 6·25전쟁의 영웅은 집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이를 배우며 자랐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 에드워드 펜스는 1952년부터 1953년까지 6·25전쟁에 참전해 동성훈장을 받았다. 주성하 zsh75@donga.com·한기재 기자}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첫 조치로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유해 55구를 27일 송환했다.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이날 북측이 싱가포르 성명 이행의 첫발을 떼면서 지지부진했던 북-미 협상과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다시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이날 오전 5시 55분 미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가 유엔군사령부 및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국(DPAA) 관계자들을 태우고 경기 평택 오산미군기지를 이륙해 북한 원산비행장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수송기는 미군 유해 55구가 안장된 나무상자들을 싣고 미군 전투기 2대의 엄호를 받으며 오산기지로 돌아왔다. 백악관은 송환 직후 성명을 내고 “북한의 행동과 긍정적 변화에 고무됐다”고 밝혔다. 또 “오늘 조치는 북한에 남은 유해 송환과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한 약 5300명의 미국인을 찾기 위한 중대한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 측은 유해 확인 절차를 밟은 뒤 다음 달 1일 오후 5시 오산기지에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주관하는 공식 송환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27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이번 조치는 많은 (미군) 가족에게 위대한 순간이 될 것”이라면서 “김정은에게 고맙다(Thank you to Kim Jong Un)”라고 직접 사의를 표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주성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37·사진)이 운영하던 패션 브랜드 ‘이방카 트럼프’가 판매를 중단한다. 이방카는 25일 발표된 성명에서 “내가 처음 이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 아무도 우리가 이룬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며 “워싱턴에서 17개월을 지낸 지금, 나는 내가 언제 사업으로 복귀하게 될지, 복귀는 하게 될지 등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워싱턴에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당분간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기에 오롯이 나의 팀과 파트너들을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며 백악관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뉴욕포스트는 “이방카가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일하는 직원 18명과 면담한 뒤 해고를 통보했다”고 전했다. 현재 시중에 있는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 상품은 올해 말까지 팔리며, 내년 신규 상품 출시를 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방카가 발표한 명분과 달리 그가 패션 사업에서 손을 뗀 진짜 이유는 실적 부진과 윤리적 논란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이방카는 26세였던 200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고, 2014년 패션 브랜드로 정식 등록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뒤 그는 경영 일선에서는 손을 뗐지만, 계속 이 브랜드의 소유주로 있었던 데다 이방카 스스로가 ‘걸어 다니는 브랜드 홍보 모델’ 효과를 내면서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방카는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대외 행보를 할 때마다 자기 브랜드의 옷을 즐겨 입었다. 지난해 2월 니먼마커스와 노드스트롬 등 미국 내 백화점에서 ‘실적 부진’이란 이유를 대며 브랜드를 퇴출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내 딸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뒤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는 훨씬 더 잘 팔렸다. 지난해 이 브랜드는 2016년에 비해 60% 늘어난 4760만 달러(약 536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방카는 500만 달러(약 56억 원)를 벌었다. 하지만 올해는 온라인 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다시 45% 하락했다. 거기에 대다수 제품이 중국에서 생산되는 이 브랜드가 올해 5월 임금 착취 문제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방카는 패션 사업을 접어도 ‘가계소득’에는 큰 지장이 없다. 지난해 이방카는 패션 사업으로 번 500만 달러를 더해 모두 1200만 달러(약 135억 원)를 벌었다. 여기에 남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부동산에서 얻는 소득까지 더하면 이들 부부는 지난해 8200만 달러(약 924억 원), 재작년에는 9900만 달러(약 1115억 원)를 벌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하는 것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퇴임하면 백두산과 개마고원 여행권 한 장을 보내주겠습니까.” 그러자 김정은은 엉뚱한 답을 한다. “오늘 내가 걸어서 온 여기 판문점 분리선 구역의 비좁은 길을 온 겨레가 활보하며 쉽게 오갈 수 있는 대통로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왜 그랬을까. 내 생각엔 김정은이 ‘트레킹’이란 외래어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 같다. 북한에선 안 쓰는 단어다. 머릿속에 “개마고원에서 뭘 하고 싶다고?”라는 궁금증이 생기니 즉답을 못 했을 것이다. 만약 “개마고원을 걷고 싶다”고 했다면 김정은은 별것도 아니라며 흔쾌히 응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가을에 평양에 오시면 개마고원도 같이 갑시다”라고 역제안을 했을지도 모른다. 김정은은 돌아가서 트레킹이 뭔지 찾아봤을 것이다. 이달 그의 삼지연 방문을 보며 그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은 삼지연에서 관광구획 건설과 함께 예전과 달리 특별히 생태환경 보전을 강조했다. “산림을 파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안 된다. 봇나무를 많이 심으라”고 구체적인 지시까지 했다. 어쩌면 김정은은 “남조선 대통령까지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오고 싶어 한다니, 여길 원산 관광지와 엮어서 결합하면 좋은 관광 코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개마고원은 트레킹, 산악자전거, 산악자동차 대회 등을 유치해 전 세계 관광객을 모을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대북 제재가 풀려야 가능한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이후 김정은은 모두 세 차례의 현지 시찰을 했다. 간 곳들을 보면 콩밭에 가 있는 김정은의 마음이 읽힌다. 그가 지난달 말 찾은 신도군과 신의주는 북한의 1순위 특구 개발 예정지다. 그가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위태로운 선착장을 올라, 구두에 진흙을 묻히며 걸었던 곳에 황금평 경제특구가 있다. 북-중이 2011년 6월 성대한 착공식까지 열었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대만 폭스콘이 최근 황금평에 400만 달러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다른 방문지 삼지연은 백두산을 끼고 있어 향후 원산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그가 일주일 전에 세 번째로 방문한 청진과 어랑은 모두 북한이 지정한 경제개발구다. 김정은은 유명한 주을온천과 염분진해수욕장의 호텔 건설장에도 들렀다. 김정은이 시찰한 세 곳은 북한이 지정한 25곳의 경제특구 중에서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들이다. 김정은의 시찰은 현지 요해(파악)와 군기 잡기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 그는 “과연 여길 열어도 될지, 환경과 분위기는 어떨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는 속셈이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그의 구상은 이뤄질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 부진으로 화를 낸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사실 더 조급한 것은 김정은일 것이다. 미국인 인질도 보내고, 핵실험장과 미사일 발사장을 없애고, 미군 유골도 곧 보내기로 했지만 미국은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없다. 체제 안전 보장이나 제재 해제, 경제 지원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언제 얻을지 기약도 없다. 일각에선 미국이 북한의 시간 끌기 전술에 말렸다고 하지만, 반대로 김정은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그가 시간을 끌어 얻을 이득이 무엇이란 말인가. 고작 시간이나 끌려 했다면 자신이 직접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를 오가며 초대형 쇼를 벌일 필요까진 없었다. 정상회담 결과들을 북한 내부에 최근 몇 달간 선전한 이상 김정은도 인민에게 보여줄 실질적 성과가 시급하다. 지금 북-중 국경에서 밀거래가 다시 활발해진다고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돈줄인 광물·수산물 수출과 의류 임가공에 대한 제재를 풀지 못하면 북한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시간은 트럼프의 편도 아니지만 김정은의 편은 더욱 아니다. 마음은 이미 제재를 푼 이후에 가 있지만 미국 말만 믿고 전 재산인 핵을 선뜻 내놓기 두려운 것이 김정은의 현재 심정 아닐까. 열대야로 푹푹 찌는 지금, 김정은은 평소 여름마다 애용하던 원산 별장에 머무르고 있을 것 같다. 어디에 있든 몸과 마음이 참 덥고 답답할 듯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 아칸소주 ‘지로마운틴’사의 물류창고는 지금 포화 상태다. 철제 선반에 냉동 육류제품이 12m 높이로 탑처럼 쌓여 있다. 이 회사는 늘어난 육류 재고를 보관하기 위해 텍사스주에 새 시설을 짓고 있다. 미국이 중국 멕시코 등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뒤부터 미국 내 육류 재고가 사상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돼지고기 전쟁’에 숨겨진 각국의 득실 미국산 육류가 각국의 보복 관세의 집중 표적이 되면서 미국 내 육류 재고가 늘어나고 동시에 가격까지 떨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 시간) “보복관세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칠면조 등 재고가 기록적인 수준인 25억 파운드(약 113만4000t) 이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경기 호황과 아시아 국가의 육류 소비 증가로 사육 및 가공 시설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던 미국 축산농가와 육류 가공업자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됐다. 중국은 4월 미국산 돼지고기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이달 관세를 다시 62%로 높였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최근 몇 주간 대중 돼지고기 수출은 하나도 없었다. 미국산 돼지고기 2위 수입국인 멕시코도 지난달 10%의 관세를 부과했고, 이달 20%로 관세를 올렸다. 미국 돼지고기가 들어오지 못하면서 중국 소비자들도 당분간 비싼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 반면 ‘돼지고기 전쟁’ 때문에 혜택을 보는 국가와 소비자도 있다. 미국산 돼지고기의 최대 수입국인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인들은 어느 때보다 싼값에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고, 미국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독일 스페인 덴마크 등 유럽 돼지고기 수출국가도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산 대신 유럽산 돼지고기를 수입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란도 미중 무역전쟁의 수혜자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하면서 반사이익에 웃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돼지고기와 함께 무역전쟁의 표적이 된 대두도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에 기회를 만들고 있다. 중국이 미국산 대두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대두 수입업자들은 수입처를 브라질로 돌리고 있다. 지금까지 브라질산 대두는 미국산에 비해 약 20% 비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 “브라질 남부에서 수출된 대두 가격은 t당 396.6달러(약 44만8200원)로, 미국 남부 멕시코만에서 선적된 대두에 비해 t당 66.1달러(약 7만4700원) 비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25%의 관세를 고려하면 가격이 역전된다. 수입처를 바꾼 중국 수입업자들 때문에 브라질산 대두의 프리미엄은 4년 만에 최고치가 됐다고 FT는 전했다. 신난 것은 브라질만이 아니다. 미국산 대두 가격이 하락하자 이번엔 유럽 바이어들이 분주해졌다. 과거 브라질산 대두를 사오던 유럽 국가들은 싼 미국산 대두로 수입처를 급히 갈아타고 있다. 미 농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3월 이후 중국 이외 지역에 대한 미국산 대두 수출은 1년 전보다 50%가량 늘어났다. 심지어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도 미중 무역전쟁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미국산 석유화학제품에 25% 보복관세를 매기면 해당 제품을 중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중동이 반사이익을 얻고, 특히 중국의 최대 석유화학제품 수입국인 이란이 득을 볼 수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미국에서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닮은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로 선출직 공무원 선거에 출마해 화제가 되고 있다. 미시간주 켄트카운티에 사는 사업가 제시카 앤 타이슨과 방송인 모니카 스팍스는 카운티 12지구·13지구 커미셔너 선거에 나란히 출마했다. 타이슨이 먼저 13지구 커미셔너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고, 이어 스팍스가 민주당 소속으로 12지구 커미셔너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스팍스는 “내가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는 타이슨이 공화당을 선택한 이유와 같다. 우린 같은 문제를 각각 다른 시각에서 볼 뿐”이라고 말했다. 자매는 “정치 성향이 다른 것이 자매 사이에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며 “좌와 우는 새의 양 날개”라고 입을 모았다. 두 자매는 어릴 적 어머니가 마약에 중독돼 각기 다른 임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한 가정에 함께 입양돼 살았다. 그들은 교사인 양부모로부터 “적극적인 유권자가 되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타이슨이 “언제나 가장 큰 성원을 보내주던 스팍스의 지지를 이번엔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워하자 스팍스는 “우리는 분열된 것이 아니라 목적에 따라 분리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집단방어 원칙을 무시하고 러시아 편을 드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을 입에 올려 또다시 나토 동맹국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진행자 터커 칼슨이 ‘나토는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집단방어가 의무화돼 있다. 우리 아들이 왜 몬테네그로에 가서 방어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나도 같은 질문을 해왔다. 나토 동맹국을 미국이 방어하려다가는 3차 대전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나토에 가입해 러시아를 자극한 소국 몬테네그로를 방어하려 할 경우 러시아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논리로 동맹국의 안전보다는 적국 러시아를 편드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발언이다. 나토 조약 5조는 회원국의 집단안보 원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냉전시대 소련의 침공을 우려한 데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몬테네그로는 매우 강한 국민이 있는 아주 작은 국가다. 그들은 매우 강하고 매우 공격적인 국민”이라며 “(침공을 받으면) 그들은 공격적으로 될 수 있다. 축하한다. 3차 대전이다”라고 비웃듯 말하기도 했다. 발칸반도 남서부에 있는 인구 63만 명의 소국 몬테네그로는 2006년 신유고연방에서 독립했다. 과거 소련과 동맹관계였지만 독립 후 2015년부터 나토 가입을 추진했고 지난해 29번째 나토 회원국이 됐다. 러시아는 나토가 동유럽 발칸 국가들로 세력을 넓히면서 자국을 압박한다며 몬테네그로에 정치·경제적 보복을 가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즉각 나토 회원국뿐만 아니라 미국 안팎에서 반발을 일으켰다. 특히 ‘미국이 지킬 가치가 없는 나라’로 언급된 몬테네그로는 매우 격앙됐다. 란코 크리보카피치 전 몬테네그로 대통령은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가장 이상한 대통령이다. 외교정책에 대해 이런 지식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느냐”고 비난했다. 존 매케인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몬테네그로를 공격하고, 나토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러시아 전문가 앤드루 와이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도 트위터에 “소국 몬테네그로가 3차 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도대체 누가 심어준 거냐”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의 집단안보 원칙에 의문을 던지며 3차 대전까지 언급한 것은 동맹국 홀대와 러시아 존중을 통해 기존 국제질서의 판을 흔들면서 방위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상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니컬러스 번스 전 미 국무부 차관은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동맹국을 방어할지를 놓고 의심의 씨앗을 추가로 뿌렸다”며 “푸틴에게는 또 하나의 선물”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실수를 주워 담느라 백악관도 진땀을 흘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그러자 하루 뒤 이를 말실수였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18일엔 ‘러시아가 여전히 미국을 겨냥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까지 가로저으며 “아니다(No)”라고 답변했다. 러시아가 더 이상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자 백악관이 나서 “(트럼프 대통령의) ‘아니다’는 더 이상 답변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어설프게 해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푸틴 대통령은 19일 “미-러 관계를 방해하는 거대한 세력이 미국에 존재한다”며 “내부 권력 투쟁의 야심 때문에 양국 관계의 전진과 개선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우리 양국은 긍정적 변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자평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과 매우 잘해 가고 있다.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수년 동안 진행돼 온 일”이라고 말했다.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 결과 이행을 위해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나는 정말로 서두르지 않는다”며 “그러는 동안 막후에서 아주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다시피 우리 인질들이 돌아왔고 실험도 핵폭발도 없었다. 지난 9개월 동안 일본으로 날아가는 로켓도 미사일도 없었다”며 “관계도 매우 좋다. (김정은 위원장이 보낸) 좋은 편지도 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나는 지난달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김 위원장과 가진 회담 진행 상황을 푸틴 대통령에게 설명했다”며 “푸틴 대통령이 북한 문제와 관련해 협력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도 이날 정상회담 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일부로 북한에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데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북핵 협상에 있어 과거 6자회담과 같은 다자 협력 프로세스가 가동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