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원

서지원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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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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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법 대부업의 배신… 불법사채업자에 내정보 팔았다[히어로콘텐츠/트랩]②-上

    62곳 중 단 3곳. 대부업체 중에서 정상적으로 영업한 곳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4월 15일부터 한 달간 대출 이용자로 가장해 문의하고 주소지를 찾아간 결과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 여러 곳에 광고하며 활발히 영업하는 정식 대부업체만 접촉했는데도 그랬다. 대부업체는 법정 이율(연 20% 이내)을 지키면서 대부업 등록번호를 공개해야 하는데, 이를 지킨 업체가 극소수였다는 뜻이다.현재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은 서민이 이용하는 대부 시장의 표준이다. 플랫폼에 접속하면 정식 대부업체라고 써 붙인 광고 수백 개가 “전화 한 통 OK” “이율 준수” 등 문구로 유혹한다. 하지만 ‘상담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며 전화하는 순간, 불법사채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이 학원비 등 40만 원을 대려다 딸까지 불법사채의 늪으로 빠진 강선주(가명·48)도, 빚을 탕감해준다는 유혹에 조직에 합류했던 김민우(가명·37)도 그렇게 ‘플랫폼 사채’의 덫에 걸렸다.실제로 취재팀이 접촉한 36곳은 많게는 연 4000%가 넘는 고리를 요구하거나 미등록 업체라고 당당히 밝혔다. 명백한 불법이다. 주소에 가보니 태반이 사무실도 없는 유령업체였다. 나머지 23곳은 이자나 등록번호를 묻자 답을 피하거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대부중개 플랫폼은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소굴이 됐을까.오후 2시 39분, 사무실 책상에 널린 휴대전화 중 한 대를 집어 들었다. 오전에 새로 개통한 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010-6210-××××. ‘대출○○’ 등 주요 대부중개 플랫폼 5곳에 광고를 올린 한 대부업체의 전화번호였다.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2시 41분. 2분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 번호는 010-5722-××××. 처음 보는 번호였다.“안녕하세요. 대출 문의 주셨죠? 몇 가지만 빠르게 여쭤볼게요.”상담원은 이름과 나이, 사는 지역, 직업, 재직기간, 월급, 급여일, 기존 대출 유무, 그리고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물었다. 5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상담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대출 조건을 알려줬다.“50만 원 빌리시면 1주일 뒤에 90만 원으로 갚으시면 돼요.”1주일 이자 40만 원은 연이율로 따지면 4171%였다. 법정 상한(연 20%)의 200배가 넘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취재팀이 서울 강서구로 적힌 이 업체의 주소로 가보니 3.3㎡(1평)도 안 되는 빈 사무실이 나왔다. 정식 대부업체의 가면을 쓴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하기 위해 위장 취재를 시작한 지 이틀째인 4월 16일이었다.● ‘연이율 수천%’가 기본 공식현행법상 대부업자는 정식 업체든 아니든 연 20%가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없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개인끼리 돈을 빌려줄 때도 이자가 연 20%를 초과하면 처벌된다. 하지만 취재팀이 접촉한 62곳 중 26곳은 불법 고금리를 제안했다. 상담원은 하나같이 친절했다.“웬만하면 1주일에 (원금) 50(만 원)에 (상환액) 70이나 80은 생각하셔야 돼요. FM(공식)이에요.”“60에 90이에요. 원래 60에 95인데 좋은 조건으로 해드리는 거예요.”“지금 처음 써봐서 모르는 것 같은데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대출 이용자의 신용이 낮은 약점을 노리고 엉뚱한 명목으로 돈을 더 뜯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수고비, 착수금, 거마비, 공증비…. 이름은 다양했지만 전부 이자로 계산해야 한다. “첫 대출엔 공증비라는 게 있어요. 50만 원에서 5만 원 떼고 45만 원을 드려요.”전부 광고에선 적법한 이자를 내세웠다. 취재팀이 비싼 이자를 요구하는 이유를 묻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못생긴 사람이 미용실에 가서 차은우처럼 머리를 해달라고 하면, 일단 ‘해드리겠다‘고 하잖아요? 저희도 똑같아요. 손님도 은행에서 대출 안 되고 주변에서 빌리기 민망하니까 저희를 찾으신 거잖아요. 저희도 말씀 잘 드려서 (사채) 쓰게 하는 게 일인 거죠.”● 등록번호 묻자 “원래 없어요”대부업체는 금융위원회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등록번호를 받아야 영업할 수 있다. 미등록 영업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불법 행위다. 등록번호는 사무실에 게시하고, 광고할 때도 밝혀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최고 5000만 원 물린다. 이용자가 돈을 빌리려는 곳이 등록 업체인지 확인하려면 등록번호를 알아야 한다. 금융당국은 등록번호를 알려주길 거부하면 불법 사채업자로 의심한다.그러나 62곳 중 24곳은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다”고 하거나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업체는 대놓고 불법을 인정했다.“저희는 따로 등록된 게 없어요. 어느 업체를 다 전화해보셔도 등록된 데는 없어요.”취재팀이 “등록하지 않고 영업해도 되냐”고 묻자 질문의 의도를 의심했다.“지금 대부업 하려고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렇게 걱정이 많으시면 다른 데 알아보세요.” 말을 빙빙 돌리며 등록번호를 알려주지 않다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업체도 있었다. 등록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업체도 있었다.“제가 이 바닥에서 오래 일했는데 그런 말 처음 들어보고요.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거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주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 ‘1명당 500원’ 불법조직에 팔리는 연락처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 36곳 중 33곳은 처음 전화했을 때 받지 않거나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고 한 뒤 다른 번호로 연락해왔다. 전화가 다시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짧게는 1분, 통상 15분이었다. 나머지 3곳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에 전화했는데 불법 조직으로 연결된 이유가 뭘까.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에 따르면 그 연결고리는 2가지로 요약됐다. 하나는 불법사채 조직이 정식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둔 경우다. 대다수는 바지사장을 내세운다. 조직원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거나, 돈이 궁한 사람에게 200만 원 안팎을 주고 등록 명의를 사 온다. 등록증은 통장 잔액 1000만 원을 증명하고 사무실 계약서, 18시간짜리 한국대부금융협회 교육 이수증 등만 내면 2주 안에 나온다.또 다른 방법은 정식 대부업체가 대출 문의 고객의 연락처만 모아서 불법사채 조직에 팔아넘기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런 연락처를 ‘DB(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른다. 이런 DB는 보안 메신저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이달 14일 취재팀은 DB 구매자인 척 텔레그램에서 한 판매업자를 접촉했다. 그 업자가 제시한 가격은 대출 문의 고객 1명당 500~1000원이었다. 그는 자기 물건에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저희 DB가 재구매율이 좋은 편이에요. 한번 쓰면 계속 써요. 전날 대출 물어본 사람 정보를 오늘 팔거든요.”● “번호 장사가 나쁜가요?” 당당한 업체들취재팀에게 불법 고금리 대출을 제안한 업자 2명은 DB 구매를 인정했다.“거기(광고 업체)는 등록증만 있지 대부업하는 곳이 아니에요. 거기서 번호를 뿌려주고 그걸 제가 받은 거예요.”“다 그런 식이예요. 그 사람들(광고 업체)은 ‘번호 장사’하는 거고 저희는 받아서 영업하는 거고요. 그게 나쁜 건가요?”취재팀은 대출을 문의한 휴대전화 번호를 불법사채 조직에 넘긴 것으로 의심되는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대표에게 연락해서 해명을 요청했다. 그중 11명은 “그럴 리 없다”거나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3명은 문의해온 연락처를 다른 대부업체에 넘겼다고 시인했다. 나머지 22명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이렇게 취재했습니다62개.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이번 취재를 위해 개통한 휴대전화 번호 수다. 취재팀이 검증 대상으로 정한 정식 대부업체는 62곳이었다. 25개 플랫폼에 등록된 업체 818곳 중에서 광고를 4개 이상 사이트에 게재한, 활발히 영업하는 업체였다. 이들 뒤에 숨어 있는 불법사채 조직을 특정하려면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새 번호가 필요했다.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에 한 번만 전화해도 그 번호는 여러 경로를 거쳐 조직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경로를 역추적해 최초 유포자를 찾는 건 수사기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취재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 번호는 오직 업체 1곳을 검증하는 데에만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원칙을 세웠다.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 정식 대부업체를 특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불법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돈을 빌리려는 이용자를 가장해 대출 조건과 대부업 등록번호, 업체명을 물었다. 취재팀이 만난 피해자들은 정식 대부업체에 대출을 문의했지만 연락이 온 건 불법사채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은 이런 피해 유형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어느 업체를 통해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지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 연결고리를 확인하려면 위장 취재가 불가피했다. 불법적인 제안을 한 곳엔 재차 연락해 기자 신분을 밝히고 해명을 요청했다.취재팀은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를 제안하면 불법사채 조직으로 판단했다. 또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거나, 밝히기 거부한 업체도 불법으로 봤다. 이런 기준은 금감원과 법률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정했다.새 휴대전화는 모두 동아일보 편집국 소속 기자의 명의로 정식 개통했다. 명의자의 개별 동의를 받았고, 휴대전화 개통 절차도 준수했다. :법률 자문:노희정 경기복지재단 불법사금융피해지원팀장, 박정만 경기도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장(변호사),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 안민석 법률사무소 강물 대표변호사, 윤정원 변호사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불법사채 조직와 손잡은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 주소지를 모두 방문했다. 그 결과 17곳이나 대부업체의 흔적조차 없는 ‘유령업체’였다. 전국을 돌며 추적한 결과는 ‘합법 위장한 플랫폼 사채 추적기(下)’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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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 비웃은 불법 사채조직, 그들이 세를 불리는 방법[히어로콘텐츠/트랩]①-下

    불법사채는 가장 절박한 이를 노려 마지막 고혈을 빨아낸다. 정부의 미공개 조사에서 이 덫에 걸린 사람은 2022년 82만 명으로 추정됐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악화해 서민들이 벼랑으로 몰리면서 5년 새 30만 명이 늘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올 2월부터 5개월간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과 피해자 등 157명을 통해 불법사채의 세계를 취재했다. 그중에는 빚을 탕감받는 조건으로 불법사채 조직에 합류했다가 인생이 뒤바뀐 김민우(가명·37)도 있었다.“대리님, 저 한 번만 더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딱 한 번 만요….”휴대전화 너머로 50대 여성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사채를 사채로 갚는 ‘돌려막기’를 하느라 스무 번 넘게 돈을 빌린 그녀가 애원하는 대상은 불법사채 조직의 말단 조직원 ‘이 대리’였다.“더 빌리면 감당 못 하실 텐데요.”이 대리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며칠 뒤, 이 대리는 찜찜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녀가 넘긴 ‘비상연락망’에 남편 번호가 있었다. 전화를 걸자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의 남성이 받았다.“저희 집사람이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는데…. 누구시죠?”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 여자, 나랑 전화하고 나서 쓰러진 건가. 텔레그램으로 상사에게 보고하자 평소보다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어차피 남편은 그 여자가 얼마나 빌린 줄 모르는 거지? 그럼 남편한테 더 뜯어내면 되겠네. 오케이. 넌 신경 쓰지 마.”전화를 끊자 대포폰 검은 액정화면에 새하얗게 질린 자기 얼굴이 비쳤다. 그가 불법사채 조직에 쫓기던 채무자 김민우였을 때의 얼굴이었다. 사경을 헤매는 사람도 한 푼 더 뜯어낼 먹잇감으로 보는 불법사채의 세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불법사채의 덫에 걸려 고통받던 민우가 밑바닥 조직원 이 대리가 되어 덫을 놓던, 2022년 8월경의 얘기다.● 먹잇감을 넘기면 펼쳐지는 지옥조직에 합류하기로 한 첫날. 민우는 스스로 ‘이 대리’라는 닉네임을 붙였다. 가짜 성에 직함을 붙인 닉네임을 쓰는 다른 조직원들처럼. 그리고 한 달간 조직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매일 아침 8시 서울 종로구의 A 호텔로 향했다. 저녁 6시까지 객실에 틀어박혀 직속 상사 ‘박 팀장’에게 배운 건 불법사채라는 지옥 입구에 먹잇감을 물어다 나르는 법이었다.‘김지영/주식회사XX/서울 강북구/100만 원/010-7733-XXXX’ 이름, 직장명, 거주지, 필요 금액, 연락처가 담긴 메시지. 일명 DB(데이터베이스)가 매일 100개씩 조직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라왔다. ‘상담팀’ 소속이었던 이 대리는 DB 속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 계약을 맺고 ‘비상연락망’이라며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10명의 연락처를 받아냈다. 이를 ‘수금팀’에 넘기면 1건당 2만 원을 받았다.먹잇감이 수금팀으로 넘어가면 본격적인 지옥이 펼쳐졌다.‘니네 회사 부장한테 연락가게 해줘?ㅋㅋ’ 메시지 한 통이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왔다. 사채를 쓴 사람은 주변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채무자들은 가족상을 치르다가도 장례식장 구석에서 꼬박꼬박 답장했다. 주변에 연락가는 게 싫으면 벗은 몸을 찍어서 보내라는 요구도 거절하지 못했다.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바지만 겨우 내린 채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이 대리가 하루 대출 계약 10건을 채운 날. 박 팀장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이제 졸업해도 되겠다.”그리고 ‘졸업 선물’로 맥북을 건넸다. 하루 전화 10통으로 1주일에 100만 원을 벌 수 있다니. 두툼해지는 지갑이 반가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어온 먹잇감들이 지옥 속에서 어떻게 고통받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6개월 동안 이 대리가 갈망한 건 돈뿐이었으니까.● 출구 없는 미로의 시작민우의 첫 직장은 촉망받는 스타트업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기울면서 월급 220만 원을 주는 중소기업으로 옮겼다. 고소득 전문직인 아버지는 탐탁잖아 하며 “돈을 더 주는 회사에 다니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더 벌고 싶은 건 민우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일을 찾다가 보험 영업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고객들이 연달아 계약을 해지하면서 2021년 10월경엔 두 달 정도 월급을 받지 못했다. 생활비로 쓴 카드값 200만 원을 갚을 돈이 필요했다. 4대 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민우에게 은행 대출의 문턱은 높았다. 저소득·저신용자를 위한 정부 대출 상품 ‘햇살론’도 알아봤지만, 과거 빌린 대출금이 소득보다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가족 앞에선 돈 얘기가 안 나왔다. 민우는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걸 숨기고 있었다. 정규직도 아니고 소득이 일정치 않은 보험설계사는 중소기업 사원보다 더 아버지의 눈에 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드값 얘기를 하면 “요새 뭘 하고 다니길래 그 돈이 없냐”고 캐물을 게 뻔했다.친구들에게 얘기해볼까.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를 위아래로 훑었다. 전화를 해도 돈 얘기는 입 안에서 맴돌았다. 별일 없지. 그래. 말만 빙빙 돌리다 전화를 끊었다.● 점점 더 깊은 미로 속으로포털사이트에 ‘200만 원 소액대출’을 검색하자, 한 대부중개 플랫폼이 나왔다. 수백 개의 정식 대부업체들이 광고하고 있었다. 업체 몇 곳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30분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대출 문의하셨죠?”왜 엉뚱한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거지. 의아했지만 상대가 알려준 업체명은 금융감독원 사이트에서 검색까지 되는 정식 대부업체였다. 대출 심사를 받으려면 ‘비상연락망’이 필요하다는 말에 가족과 친구들의 연락처를 넘겼다.하지만 심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상대는 “제대로 돈을 갚는 사람이라는 신용이 필요하다”며 일단 10만 원을 빌려줄 테니 1주일 뒤에 20만 원으로 갚으라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카드값을 막고 싶어 3일 만에 돈을 보냈다. 그런데 말이 바뀌었다. 자꾸만 소액부터 갚으면 원하는 금액을 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왜 말을 바꾸냐고 따지면 돌변했다.“그럼 니네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사채 쓴 거 알려줄게.”아버지에게 전화가 가면 집안이 뒤집힐 게 뻔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돈을 빌리고 또 빌렸다. 갚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만 늦어도 연체비가 시간당 5~10만 원씩 붙었다. 상환 기간을 미루려면 수십만 원의 연장비를 내야 했다. 여유가 없어지자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녹음파일을 들려줬다“니 아들 새X가 돈을 안 갚는다고. 이 씨XX아.”평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과호흡으로 쓰러지곤 했던 어머니가 이런 전화를 또 받게 할 수는 없었다. 돌려막기가 계속됐다. 연락처를 넘긴 친구들에게는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걸어 말했다.“내가 어디서 돈을 좀 빌렸는데. 상황이 꼬였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일단 받지 말아봐…. 나중에 얼굴 보고 다 설명할게.”밤낮으로 주차장 발렛 파킹 아르바이트와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6개월 동안 쓴 사채 원금은 255만 원. 이미 약 1000만 원을 보냈는데도 갚아야 할 돈 130만 원이 남아 있었다. ● 출구가 보인다는 착각“돈 때문에 힘든 것 같은데 여기서 일해 볼래요? 지금 남은 130만 원, 까줄 수 있는데.”그날 걸려 온 불법 사채업자의 전화는 평소와는 달랐다. 반말하던 그가 갑자기 존댓말을 쓰며 조직에 들어오면 남은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했다.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끔찍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니. 흔들렸다.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에 다음 날 약속 장소였던 A 호텔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박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너만 잘하면 한 달에 1500만 원도 벌 수 있어. 못해도 500만 원은 벌 거고.”그리고 퀵서비스로 도착한 대포폰 2대를 건넸다.위험한 제안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자신 때문에 고통받던 가족들의 괴로움까지 끊어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 달에 1500만 원까지 벌 수 있다니.‘그래. 돈만 바짝 벌고 금방 관두면 괜찮을 거야.’평범한 영업사원이었던 민우가 불법사채 조직에 몸담은 첫날이었다.● 고객도 경찰도 속이다교육을 마친 이 대리는 대포폰과 노트북만 들고 모텔을 전전하며 일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배운 그대로 뱉으면 됐다.“고객님. 처음에 10만 원이나 15만 원을 쓰시고 1주일 뒤에 20만 원이나 28만 원으로 상환해 주시면, 이제 신용이 쌓여서 고객님께 100만 원 대출을 진행해드릴 수 있습니다.”‘조금씩 많이’ 빌리게 꼬드긴 뒤, 비상연락망을 인질 삼아 악착같이 돈을 뜯어내는 게 이들의 표준 수법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하루 세 번 계약 실적을 텔레그램으로 보고하기 전에는 고객이 보낸 비상연락망의 진위도 확인했다. 수금팀이 채무자의 가족에게 연락해 협박하려면, 비상연락망이 진짜여야만 하니까. 채무자의 비상연락망이 가짜면 그가 빌려 간 돈의 절반을 담당 상담원의 주급에서 깎았다.“택밴데요. 여기 101동 501호 XXX 씨 집 앞인데 문 앞에 두고 갈까요?”“우리 아들이 시킨 건가 보네. 근데 501호가 아니라 502호예요.”대포폰으로 택배 기사인 척 전화하면 고객이 넘긴 가족의 연락처와 주소가 진짜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일하는 동안 피해자 신고를 받은 경찰이 6차례 연락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리가 “그냥 제가 빌려준 돈 받는 거예요”라며 ‘배 째라’ 식으로 나간 뒤 전화를 끊으면 그만이었다. 대포폰과 대포통장, 텔레그램을 쓰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쉽지 않다는 걸 조직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조직의 행동강령은 철저했다. 조직원끼리는 서로 이름과 나이, 연락처를 밝히지 않았다. 대포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은 끄고, 수당은 무인택배함을 통해 받았다.교육 장소였던 A 호텔이 종로경찰서와 300m 거리인데도 박 팀장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덴 이유가 있었다. ● 휴대전화 너머의 ‘민우’들이 대리는 고객도 경찰도 속여가며 1주일에 180만 원까지 벌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찜찜했다. 채무자들에게서 자꾸만 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업체 이름을 물어보는 고객에겐 금감원 사이트에 올라온 업체 중 아무거나 하나 골라 말했다. 민우가 그랬듯, 이 대리의 고객들도 대부업체 이름을 듣고 나면 안심했다.“정신 차려 보니까 서른네 번이나 빌렸어요. 저 와이프도 있고 아기도 있는데.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어느 날, 돌려막기의 늪에 민우보다 더 깊숙이 빠져 있었던 40대 남성이 추심을 막아달라며 애원했다. 냉정하게 전화를 끊고 나니 민우보다 더 고통스럽겠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멍해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이 대리를 보며 다른 조직원 중 한명은 말했다.“야, 다른 채무자 출신 애들은 잘만 하던데 넌 왜 그러냐?”이 대리를 포함한 상담팀 직원 6명 중 4명은 ‘채무자 출신’이었다. 이 대리보다 10살쯤 어린 20대 남성들이었다.● 이 대리의 마지막 고객점차 돈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특히 쓰러진 50대 여성의 소식을 조직에 알린 그날. 스무 번 넘게 사채를 써 조직에서 ‘VIP’로 통한 그녀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VVIP’가 된 그 순간. 더 이상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만두기로 마음을 굳힌 뒤 떠오른 사람은 26살 박상아(가명)였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느라 늘 돈이 필요했던 상아. 조직원들은 상아를 ‘우리가 데리고 노는 애’라고 부르며 여러 번 돈을 빌리게 유도했다.어린 상아에게 못 할 짓을 했다는 생각에 평생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망설이다 상아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정말 병원에 있는 게 맞냐고 물었다.그리고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으로 향했다. 혹시 누가 볼까 싶어 본인과도 상아와도 관련 없는 동네를 골랐다. 물품보관함에 100만 원을 넣고 다시 상아에게 전화해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말했다.“저는 일 그만둡니다. 제가 돈 줬다는 건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세요. 이 핸드폰으로 고맙다는 문자 같은 것도 보내지 마시고요.”이 대리의 대포폰 마지막 통화였다.● 영원히 따라다닐 그림자상아와 통화를 마친 뒤 팀장에게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자 한 남성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루 15건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전화를 걸어 앳된 목소리로 욕을 퍼붓던, 그래서 조직의 가장 ‘윗선’이라고 생각했던 그 남자.“너 정말 후회 안 하겠어? 어디 가서 이런 돈 만질 수 없을 텐데. 지금 나가면 다시는 이 바닥에 못 들어와.”돈 이야기뿐이었던 대화는 욕 한마디 없이 금방 끝났다. 생각보다 쉽게 이 대리를 놔준 건, 또 다른 대리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대리로 산 4개월이 끝났다.조직에서 빠져나온 뒤엔 경찰에서 연락이 올까 두려웠다. 처음 조직에 합류할 때 신분증이랑 등본 사본을 넘겼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면 ‘꼬리 자르기’를 하기 위해 그 정보만 넘길 수도 있었다. 한 달 동안 민우의 휴대전화는 비행기 모드였다.‘5000% 살인 이자… 불법 사채조직 검거’이 뉴스를 본 건 1년쯤 지난 뒤였다. 익숙한 닉네임과 수법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우에게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돈의 무서움을 뼛속 깊이 깨달은 그는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돈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못한다. 누군가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빠져나오지 못하게끔 사지를 단단히 묶어두는 인간의 악랄함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사람도 믿지 못하게 됐다.지금 평범한 회사원인 민우의 주변 사람 중 누구도 한때 이 대리로 불렸던 시간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절은 불법사채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하는지 생생히 증언한다. 그 때의 어두운 기억은 앞으로도 한낮의 그림자처럼 민우의 곁을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민우는 정식 대부업체에 연락했는데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손아귀에 떨어졌을까. 조직의 ‘먹잇감’이 모인 DB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0% 넘는 피해자가 불법사채를 접한 곳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든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했다. 그 추적기는 24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2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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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채업자의 집요한 협박… 딸의 손톱 끝엔 피가 맺혔다[히어로콘텐츠/트랩]①-上

    불법사채는 가장 절박한 이를 노려 마지막 고혈을 빨아낸다. 정부의 미공개 조사에서 피해자는 2022년 82만 명으로 추정됐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악화해 서민들이 벼랑으로 몰리면서 5년 새 30만 명이 늘었다.이들을 착취한 건 소수의 ‘사채왕’이 아니었다. 불법사채 조직은 ‘급전 대출’ 등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 있었다.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피해자 4313명 중 3455명(80.1%)이 플랫폼에서 불법사채를 접했다고 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올 2월부터 5개월간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과 피해자 등 157명을 통해 불법사채의 세계를 취재했다. 그중에는 아이 학원비를 대려다 불법사채의 늪에 빠진 강선주(가명·48)도 있었다.오후 4시쯤이었다. 하굣길이었을 중학생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선주(가명·48)는 반가운 마음에 “딸!” 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딸은 앞뒤 없이 말을 쏟아냈다.“엄마, 나한테 막 이상한 문자들이 와. 이게 다 뭐야?”선주는 직감했다. 그놈들이 내 딸한테도 연락했구나. 일하다 말고 집으로 뛰어갔다.지병 탓에 학교에서 쓰러져도 자기 입으로 이야기한 적 없는 아이였다. 엄마의 마음을 먼저 걱정하던, 일찍 철든 아이. 그런 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발견한 딸은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뜯어대고 있었다.띵동! 띵동! 띵동! 딸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쏟아졌다. 모두 [국제발신]이라 적힌 알 수 없는 번호였다.“대구 76년생 강선주 딸 하윤(가명)아. 지금 사람 한 명 보냈거든. 그 아저씨한테 X주면 돼. 알겟(겠)지??”“넌 몇 살이야? 우리 하윤이 걸X면 오빠가 좀 그런데.”심장이 쿵쾅거렸다. 물에 빠진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엄마 나 어떡해? 너무 무서워.” 딸의 목소리마저 웅웅거려 잘 들리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향해 뛰었다. 걸쇠를 건 선주는 몸을 떠는 딸을 안으며 말했다. 엄마 휴대전화가 해킹당한 거야. 괜찮아. 괜찮아.하지만 선주는 알고 있었다. 그놈들은 돈을 갚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란 사실을. 두 아이를 지키기 위해 손댔던 사채가 거꾸로 가족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선주가 문자 한 통에 돈의 덫에 갇혔던 올 4월 25일 얘기다.● 누군가에겐 당연할 쌀값“엄마는 맨날 일하는데 왜 돈이 없어?”외식하자는 아이들에게 군색하게 군 날, 초등학생 아들이 옆에 와 앉았다. 말없이 웃으면 아들은 꼬깃꼬깃한 천 원 몇 장을 꺼내 건넸다. “이거 엄마 써!” 그 작은 손을 보며, 선주는 야속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서른둘 나이에 아기용품 사업 시작, 2년 만에 당한 사기, 빚 8000만 원을 갚느라 8년. 마흔셋에 작은 수선집을 마련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괜찮았다. 좋아하던 뜨개질을 할 수 있었으니까. 내겐 의젓한 딸과 명랑한 아들이 있었으니까.다짐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2022년 11월. 남편이 해고당했다. 코로나19로 회사 사정이 안 좋아졌다는 이유였다. 며칠 내리 누워만 있는 남편의 등을 보았다. 남편도 얼마나 놀랐을까? 기죽지 말자고요, 내가 더 힘내볼게. 그날 선주는 남몰래 일기를 눌러 적었다.남편은 수선집을 함께 키워보자고 했다. 하지만 많아 봐야 월 100만 원인 수익. 네 식구에겐 턱없이 모자랐다. 꿈에서도 미싱을 돌렸다. 그곳에서라도 바쁘면 깨어나 기분이 좋았다. 오전 8시 수선집으로 출근해 적은 일기는 매일 같았다. ‘오늘은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1년 만에 모아뒀던 돈이 바닥났다. 친척과 지인들에게 5만 원, 10만 원씩 빌려 아이들 밥을 먹이고 학원을 보냈다. 한참 뜸 들이다 돈 이야길 꺼내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빌려주겠다”던 친구 몇몇은 연락을 차단했다. 그때마다 아이들만 생각했다. 올 3월 초에도 돈 나갈 구멍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어머니, 이번 달 학원비가 비어요.”“엄마! 나 마라탕 먹고 싶어!”“엄마, 동생 밥해 먹이려는데 집에 쌀이 없어.”어디 쌀 훔쳐 올 곳 없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던 그때. 지잉, 지잉, 휴대전화가 요란스레 울렸다.집으로 달려가 보니 곳곳이 빨간딱지였다. 은행 빚이 밀렸던 터였다. 일부인 30만 원을 내면 당장 압류는 정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학원비, 쌀값, 월세…. 계산이 꼬였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결국 다음 날 휴대전화를 열었다. 더 이상 지인들에게 빌릴 생각은 없었다. 적선하듯 보는 눈초리, “쌀 살 돈도 없으면서 애는 왜 키우냐”는 찬 소리.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편했다. 포털에 ‘대출’을 쳤다.한 대부중개 플랫폼에는 수백 개의 대부업체 광고가 떠 있었다. ‘정식 등록업체’ ‘안전하고 빠른 대출’ 쏟아지는 광고 문구 속 ‘당일 대출 가능’을 봤다. 3월 5일 문자를 보냈다.“돈이 필요해요.”● 박 실장의 친절함에 속다문자를 보내자마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는 자신을 박 실장이라 소개했다. 문자 보낸 대부업체의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했다. “경기가 참 어려워요. 아이는 키우시나요? 너무 힘드셨겠어요.” 오랜만에 듣는 따뜻한 말투였다.꽤 긴 시간 서러움을 토했다. 수화기 너머로 안타깝다는 듯한 숨소리가 들렸다. 선주는 제 처지를 알아주는 박 실장이 다정하다고 생각했다.전화를 끊은 그는 돈을 빌리는 데에 필요한 서류 목록을 보냈다. 신분증과 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비상연락망. 가족과 친구, 거래처의 연락처를 보내자 답장이 왔다. 그중엔 딸의 전화번호도 있었다. ‘빨리 받으실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당장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숨이 쉬어졌다.박 실장이 빌려준 돈은 40만 원, 일주일 뒤 갚아야 할 돈은 60만 원이었다. 연이율로 따지면 2607.1%. 법정 상한의 130배였다. 5일 뒤 거래처에서 선금을 받으면 갚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발주가 미뤄지며 계획이 틀어졌다. 상환 당일, 박 실장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저…오늘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내일 드려도 될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에게서 다정함은 볼 수 없었다.‘야, 장난치냐? 개소리 말고 빨리 입금해라.’그는 빌려서라도 갚으라며 다른 사람을 연결했다. 박 실장의 원금은 김 실장에게 빌렸고, 김 실장의 원금은 임 실장에게 빌려 갚았다. 상환일을 며칠만 미루려 해도 수십만 원의 연장비를 요구했다. 갚기로 한 시간보다 1분만 늦어도 연체비가 5만~10만 원 붙었다.그렇게 6주 사이 돈 빌린 사람만 8명. 40만 원은 583만 원이 돼 있었다. 8명의 독촉 전화는 밤낮이 없었고,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대출을 권하는 문자도 수십 통이 날아왔다. 이자 대신 다른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끼리 ‘또라이돈’이라고 불렀다. “원나이트 해주고 싼 이자로 돈 빌려주는 거예요.” 제안을 거절하고 전화를 끊은 선주는 치를 떨었다.욕설이 섞인 폭탄 문자에 “돈 갚으라고 함. 전달”이라는 문구가 딸려 올 때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채무자들이 불법사채 조직한테 협박당해서 보낸 것이었다. 놈들은 이자를 몇 푼 깎아주겠다며 절박한 피해자를 범죄에 동원하고 있었다.휴대전화를 못 쓸 정도로 전화가 걸려 왔다. 누구에게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도 헷갈렸다. 박 실장의 전화를 피했다. 그러자 메시지가 왔다. “안 되겠네. 너, 내가 칼로 쑤셔줄게.”누구라도 가게 앞을 지나면 몸이 움찔거렸다. 세워둔 차가 보이면 가게 문을 잠갔다. 들어오는 손님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이 박 실장일까?’ 혼자 있는 시간에는 가게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구석으로 가 미싱을 돌렸다. 그들은 날 알지만, 나는 그들을 모른다는 불안감. 지켜보고 있다는 공포에 손이 떨렸다.그러던 4월 23일, 메시지가 도착했다. “평생 니 딸년 괴롭혀 줄게.” 이어 도착한 문자에는 딸아이의 학교와 반, 선생님 이름과 번호, 교무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더는 혼자 안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경찰서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40만 원의 대가“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네가 저질렀으니 네가 해결해야지.”해고당한 후 내내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남편의 첫 마디였다. 차갑다 못해 매서웠다. 원통했던 건 남편 말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식당 일을 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선집 일을 마치면 밤 12시. 잠시 소파에 눈을 붙이면 금세 해가 밝았다. 그 햇살이 ‘지금 잠을 잘 자격이 있냐’고 묻는 듯했다.점점 남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선 말도 잘 나오질 않았다. 이혼 이야기가 오갔다. 뇌졸중과 고지혈증으로 처방받았던 약을 쓸어모았다. 한 번에 털어 넣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포털에 ‘살기 싫을 때’를 썼다. 자살예방상담전화 번호가 떴다. 전화를 거니 “우울감이 심해 보인다.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돈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 더 그 번호로 전화해 속을 털어놓았다.“돈 빌린 것, 다 제 잘못 맞아요. 그런데 살고 싶어서 선택한 일인데, 왜 이렇게까지 돼야 할까요.”그놈들에겐 “경찰에 신고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조롱만 돌아왔다.“가서 신고해ㅋㅋ 대포폰 써서 니넨 우리 못 잡아.”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경찰에서 들은 말이 그거였다. 놈들은 경찰이 손쓰지 못하는 걸 알기라도 하듯 더 날뛰었다. 초 단위로 문자와 전화가 왔다. 오전 8시 18분부터 시작된 임 실장의 전화는 4시간 32분 동안 이어졌다. 총 764통이었다. 견딜 수 없던 건 내 손으로 번호를 넘긴 사람에게도 연락이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4월 25일,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한테 막 이상한 문자들이 와. 이게 다 뭐야?”● 엄마의 소원그날 이후 딸은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등하굣길은 어쩔 수 없이 친구들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아파트 입구에 낯선 이라도 있는 날엔 한참을 걷다 들어온다고 했다. 초인종 소리도 무서워해 문 앞에 ‘누르지 마세요’ 쪽지를 붙여놓았다.언젠가 일기에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딸은 누구보다 날 닮았다고. 살갑진 않지만 정 많은 모습이 비슷했다. 무뚝뚝한 것 같다가도 자는 엄마의 휴대전화를 열어 남몰래 편지를 써놓는 아이였다.‘요즘 내가 말 안 들어서 미안해. 근데 알아? 엄만 완벽해! 나를 매일 웃게 만들어 주잖아. 엄마한테 태어나서 진짜 다행이란 생각을 할 만큼 너무 좋아.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언젠간 읽겠지? 힘내!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해.’이제는 바란다. 딸은 엄마의 삶과 닮지 않기를. 그저 자신이 딸의 엄마인 것이 미안하다던 선주의 소원은 딱 하나.“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요. 가족들, 친구들이 저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사람들이 고통받는 건 다 저와 아는 사이여서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와 인연을 맺기 전으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선주는 정식 대부업체에 연락했는데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손아귀에 떨어졌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0% 넘는 피해자가 불법사채를 접한 곳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든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했다. 그 추적기는 24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2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 등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대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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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빚 갚기 힘들지, 우리랑 일할래?”… 불법사채 조직의 ‘은밀한 제안’[히어로콘텐츠/트랩]①-下

    불법사채는 가장 절박한 이를 노려 마지막 고혈을 빨아낸다. 정부의 미공개 조사에서 이 덫에 걸린 사람은 2022년 82만 명으로 추정됐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악화해 서민들이 벼랑으로 몰리면서 5년 새 30만 명이 늘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올 2월부터 5개월간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과 피해자 등 157명을 통해 불법사채의 세계를 취재했다. 그중에는 빚을 탕감받는 조건으로 불법사채 조직에 합류했다가 인생이 뒤바뀐 김민우(가명·37)도 있었다. “대리님, 저 한 번만 더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딱 한 번 만요….”휴대전화 너머로 50대 여성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사채를 사채로 갚는 ‘돌려막기’를 하느라 스무 번 넘게 돈을 빌린 그녀가 애원하는 대상은 불법사채 조직의 말단 조직원 ‘이 대리’였다.“더 빌리면 감당 못 하실 텐데요.”이 대리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며칠 뒤, 찜찜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녀가 넘긴 ‘비상연락망’에 남편 번호가 있었다. 전화를 걸자 기운 하나 없는 목소리의 남성이 받았다.“저희 집사람이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는데…. 누구시죠?”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 여자, 나랑 전화하고 나서 쓰러진 건가. 텔레그램으로 상사에게 보고하자 평소보다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어차피 남편은 그 여자가 얼마나 빌린 줄 모르는 거지? 그럼 남편한테 더 뜯어내면 되겠네. 오케이. 넌 신경 쓰지 마.”전화를 끊자 대포폰 검은 액정화면에 새하얗게 질린 자기 얼굴이 비쳤다. 그가 불법사채 조직에 쫓기던 채무자 김민우였을 때의 얼굴이었다. 사경을 헤매는 사람도 한 푼 더 뜯어낼 먹잇감으로 보는 불법사채의 세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불법사채의 덫에 걸려 고통받던 민우가 밑바닥 조직원 이 대리가 되어 덫을 놓던, 2022년 8월경의 얘기다.● 먹잇감을 넘기면 펼쳐지는 지옥조직에 합류하기로 한 첫날. 민우는 스스로 ‘이 대리’라는 닉네임을 붙였다. 가짜 성에 직함을 붙인 닉네임을 쓰는 다른 조직원들처럼. 그리고 한 달간 조직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매일 아침 8시 서울 종로구의 A 호텔로 향했다. 저녁 6시까지 객실에 틀어박혀 직속 상사 ‘박 팀장’에게 배운 건 불법사채라는 지옥 입구에 먹잇감을 물어다 나르는 법이었다.‘김지영/주식회사XX/서울 강북구/100만 원/010-7733-XXXX’ 이름, 직장명, 거주지, 필요 금액, 연락처가 담긴 메시지. 일명 DB(데이터베이스)가 매일 100개씩 조직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라왔다. ‘상담팀’ 소속이었던 이 대리는 DB 속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 계약을 맺고 ‘비상연락망’이라며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10명의 연락처를 받아냈다. 이를 ‘수금팀’에 넘기면 1건당 2만 원을 받았다.먹잇감이 수금팀으로 넘어가면 본격적인 지옥이 펼쳐졌다. ‘니네 회사 부장한테 연락가게 해줘?ㅋㅋ’ 메시지 한 통이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왔다. 사채를 쓴 사람은 주변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채무자들은 가족상을 치르다가도 장례식장 구석에서 꼬박꼬박 답장했다. 주변에 연락가는 게 싫으면 벗은 몸을 찍어서 보내라는 요구도 거절하지 못했다.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바지만 겨우 내린 채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이 대리가 하루 대출 계약 10건을 채운 날. 박 팀장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이제 졸업해도 되겠다.”그리고 ‘졸업 선물’로 맥북을 건넸다. 하루 전화 10통으로 1주일에 100만 원을 벌 수 있다니. 두툼해지는 지갑이 반가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어온 먹잇감들이 지옥 속에서 어떻게 고통받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6개월 동안 이 대리가 갈망한 건 돈뿐이었으니까.● 출구 없는 미로의 시작민우의 첫 직장은 촉망받는 스타트업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기울면서 월급 220만 원을 주는 중소기업으로 옮겼다. 고소득 전문직인 아버지는 탐탁잖아 하며 “돈을 더 주는 회사에 다니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더 벌고 싶은 건 민우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일을 찾다가 보험 영업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고객들이 연달아 계약을 해지하면서 2021년 10월경엔 두 달 정도 월급을 받지 못했다. 생활비로 쓴 카드값 200만 원을 갚을 돈이 필요했다. 4대 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민우에게 은행 대출의 문턱은 높았다. 저소득·저신용자를 위한 정부 대출 상품 ‘햇살론’도 알아봤지만, 과거 빌린 대출금이 소득보다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가족 앞에선 돈 얘기가 안 나왔다. 민우는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걸 숨기고 있었다. 정규직도 아니고 소득이 일정치 않은 보험설계사는 중소기업 사원보다 더 아버지의 눈에 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드값 얘기를 하면 “요새 뭘 하고 다니길래 그 돈이 없냐”고 캐물을 게 뻔했다.친구들에게 얘기해볼까.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를 위아래로 훑었다. 전화를 해도 돈 얘기는 입 안에서 맴돌았다. 별일 없지. 그래. 말만 빙빙 돌리다 전화를 끊었다.● 점점 더 깊은 미로 속으로포털사이트에 ‘200만 원 소액대출’을 검색하자, 한 대부중개 플랫폼이 나왔다. 수백 개의 정식 대부업체들이 광고하고 있었다. 업체 몇 곳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30분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대출 문의하셨죠?”왜 엉뚱한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거지. 의아했지만 상대가 알려준 업체명은 금융감독원 사이트에서 검색까지 되는 정식 대부업체였다. 대출 심사를 받으려면 ‘비상연락망’이 필요하다는 말에 가족과 친구들의 연락처를 넘겼다.하지만 심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상대는 “제대로 돈을 갚는 사람이라는 신용이 필요하다”며 일단 10만 원을 빌려줄 테니 1주일 뒤에 20만 원으로 갚으라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카드값을 막고 싶어 3일 만에 돈을 보냈다. 그런데 말이 바뀌었다. 자꾸만 소액부터 갚으면 원하는 금액을 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왜 말을 바꾸냐고 따지면 돌변했다.“그럼 니네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알려줄게.”아버지에게 전화가 가면 집안이 뒤집힐 게 뻔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돈을 빌리고 또 빌렸다. 갚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만 늦어도 연체비가 시간당 5~10만 원씩 붙었다. 상환 기간을 미루려면 수십만 원의 연장비를 내야 했다. 여유가 없어지자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녹음파일을 들려줬다“니 아들XX가 돈을 안 갚는다고. 이 씨XX아.”평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과호흡으로 쓰러지곤 했던 어머니가 이런 전화를 또 받게 할 수는 없었다. 돌려막기가 계속됐다. 연락처를 넘긴 친구들에게는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걸어 말했다.“내가 어디서 돈을 좀 빌렸는데. 상황이 꼬였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일단 받지 말아봐…. 나중에 얼굴 보고 다 설명할게.”밤낮으로 주차장 발렛 파킹 아르바이트와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6개월 동안 쓴 사채 원금은 255만 원. 이미 약 1000만 원을 보냈는데도 갚아야 할 돈 130만 원이 남아 있었다. ● 출구가 보인다는 착각“돈 때문에 힘든 것 같은데 여기서 일해 볼래요? 지금 남은 130만 원, 까줄 수 있는데.”그날 걸려 온 불법 사채업자의 전화는 평소와는 달랐다. 반말하던 그가 갑자기 존댓말을 쓰며 조직에 들어오면 남은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했다.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끔찍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니. 흔들렸다.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에 다음 날 약속 장소였던 A 호텔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박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너만 잘하면 한 달에 1500만 원도 벌 수 있어. 못해도 500만 원은 벌 거고.”그리고 퀵서비스로 도착한 대포폰 2대를 건넸다.위험한 제안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끔찍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자신 때문에 고통받던 가족들의 괴로움까지 끊어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 달에 1500만 원까지 벌 수 있다니.‘그래. 돈만 바짝 벌고 금방 관두면 괜찮을 거야.’평범한 영업사원이었던 민우가 불법사채 조직에 몸담은 첫날이었다.● 고객도 경찰도 속이다교육을 마친 이 대리는 대포폰과 노트북만 들고 모텔을 전전하며 일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배운 그대로 뱉으면 됐다.“고객님. 처음에 10만 원이나 15만 원을 쓰시고 1주일 뒤에 20만 원이나 28만 원으로 상환해 주시면, 이제 신용이 쌓여서 고객님께 100만 원 대출을 진행해드릴 수 있습니다.”‘조금씩 많이’ 빌리게 꼬드긴 뒤, 비상연락망을 인질 삼아 악착같이 돈을 뜯어내는 게 이들의 표준 수법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하루 세 번 계약 실적을 텔레그램으로 보고하기 전에는 고객이 보낸 비상연락망의 진위도 확인했다. 수금팀이 채무자의 가족에게 연락해 협박하려면, 비상연락망이 진짜여야만 하니까. 채무자의 비상연락망이 가짜면 그가 빌려 간 돈의 절반을 담당 상담원의 주급에서 깎았다.“택밴데요. 여기 101동 501호 XXX 씨 집 앞인데 문 앞에 두고 갈까요?”“우리 아들이 시킨 건가 보네. 근데 501호가 아니라 502호예요.”대포폰으로 택배 기사인 척 전화하면 고객이 넘긴 가족의 연락처와 주소가 진짜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일하는 동안 피해자 신고를 받은 경찰이 6차례 연락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불법사채가 아니라 제가 빌려준 돈 받는 거예요”라며 ‘배 째라’ 식으로 나가고 전화를 끊으면 그만이었다. 대포폰과 대포통장, 텔레그램을 쓰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쉽지 않다는 걸 조직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조직의 행동강령은 철저했다. 조직원끼리는 서로 이름과 나이, 연락처를 밝히지 않았다. 대포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은 끄고, 수당은 무인택배함을 통해 받았다.교육 장소였던 A 호텔이 종로경찰서와 300m 거리인데도 박 팀장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덴 이유가 있었다. ● 휴대전화 너머의 ‘민우’들이 대리는 고객도 경찰도 속여가며 1주일에 180만 원까지 벌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찜찜했다. 채무자들에게서 자꾸만 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업체 이름을 물어보는 고객에겐 금감원 사이트에 올라온 업체 중 아무거나 하나 골라 말했다. 민우가 그랬듯, 이 대리의 고객들도 대부업체 이름을 듣고 나면 안심했다.“정신 차려 보니까 서른네 번이나 빌렸어요. 저 와이프도 있고 아기도 있는데.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어느 날, 돌려막기의 늪에 민우보다 더 깊숙이 빠져 있었던 40대 남성이 추심을 막아달라며 애원했다. 냉정하게 전화를 끊고 나니 민우보다 더 고통스럽겠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멍해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이 대리를 보며 다른 조직원 중 한명은 말했다.“야, 다른 채무자 출신 애들은 잘만 하던데 넌 왜 그러냐?”이 대리를 포함한 상담팀 직원 6명 중 4명은 ‘채무자 출신’이었다. 민우보다 10살쯤 어린 20대 남성들이었다.● 이 대리의 마지막 고객점차 돈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특히 쓰러진 50대 여성의 소식을 조직에 알린 그날. 스무 번 넘게 사채를 써 조직에서 ‘VIP’로 통한 그녀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VVIP’가 된 그 순간. 더 이상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만두기로 마음을 굳힌 뒤 떠오른 사람은 26살 박상아(가명)였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느라 늘 돈이 필요했던 상아. 조직원들은 상아를 ‘우리가 데리고 노는 애’라고 부르며 여러 번 돈을 빌리게 유도했다.어린 상아에게 못 할 짓을 했다는 생각에 평생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망설이다 상아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정말 병원에 있는 게 맞냐고 물었다.그리고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으로 향했다. 혹시 누가 볼까 싶어 본인과도 상아와도 관련 없는 동네를 골랐다. 물품보관함에 100만 원을 넣고 다시 상아에게 전화해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말했다.“저는 일 그만둡니다. 제가 돈 줬다는 건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세요. 이 핸드폰으로 고맙다는 문자 같은 것도 보내지 마시고요.”이 대리의 대포폰 마지막 통화였다.● 영원히 따라다닐 그림자상아와 통화를 마친 뒤 팀장에게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자 한 남성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루 15건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전화를 걸어 앳된 목소리로 욕을 퍼붓던, 그래서 조직의 가장 ‘윗선’이라고 생각했던 그 남자.“너 정말 후회 안 하겠어? 어디 가서 이런 돈 만질 수 없을 텐데. 지금 나가면 다시는 이 바닥에 못 들어와.”돈 이야기뿐이었던 대화는 욕 한마디 없이 금방 끝났다. 생각보다 쉽게 이 대리를 놔준 건, 또 다른 대리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대리로 산 4개월이 끝났다.조직에서 빠져나온 뒤엔 경찰에서 연락이 올까 두려웠다. 처음 조직에 합류할 때 신분증이랑 등본 사본을 넘겼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면 ‘꼬리 자르기’를 하기 위해 그 정보만 넘길 수도 있었다. 한 달 동안 민우의 휴대전화는 비행기 모드였다. ‘5000% 살인 이자… 불법 사채조직 검거’ 이 뉴스를 본 건 1년쯤 지난 뒤였다. 익숙한 닉네임과 수법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우에게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돈의 무서움을 뼛속 깊이 깨달은 그는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돈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못한다. 누군가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빠져나오지 못하게끔 사지를 단단히 묶어두는 인간의 악랄함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사람도 믿지 못하게 됐다.지금 평범한 회사원인 민우의 주변 사람 중 누구도 한때 이 대리로 불렸던 시간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절은 불법사채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하는지 생생히 증언한다. 그 어두운 기억은 앞으로도 한낮의 그림자처럼 민우의 곁을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민우는 정식 대부업체에 연락했는데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손아귀에 떨어졌을까. 조직의 ‘먹잇감’이 모인 DB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0% 넘는 피해자가 불법사채를 접한 곳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든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했다. 그 추적기는 24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2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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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순간 ‘딸 판 여자’ 된 엄마… 40만 원이 낳은 비극[히어로콘텐츠/트랩]①-上

    불법사채는 가장 절박한 이를 노려 마지막 고혈을 빨아낸다. 정부의 미공개 조사에서 이 덫에 걸린 사람은 2022년 82만 명으로 추정됐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악화해 서민들이 벼랑으로 몰리면서 5년 새 30만 명이 늘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올 2월부터 5개월간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과 피해자 등 157명을 통해 불법사채의 세계를 취재했다. 그중에는 아이 학원비를 대려다 불법사채의 늪에 빠진 강선주(가명·48)도 있었다.4월 25일, 어쩐지 고단하게 느껴지는 오후 4시쯤이었다. 마침 하굣길이었을 중학생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딸!”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앞뒤 없이 말을 쏟는 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 나한테 막 이상한 문자들이 와. 이게 다 뭐야?”선주는 순간 직감했다. 그놈들이 내 딸에게도 연락했구나. 일하다 말고 집으로 뛰어갔다. 딸은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뜯어대고 있었다. 띵동! 띵동! 띵동! 딸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쏟아졌다. 모두 [국제발신]이라 적힌 알 수 없는 번호였다.“대구 76년생 강선주 딸 하윤(가명)아. 지금 사람 한 명 보냈거든. 그 아저씨한테 X주면 돼. 알겟(겠)지??”“넌 몇 살이야? 우리 하윤이 걸X면 오빠가 좀 그런데”심장이 쿵쾅거렸다. 물에 빠진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엄마 나 어떡해? 너무 무서워.” 딸의 목소리마저 웅웅거려 잘 들리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향해 뛰었다. 걸쇠를 건 선주는 몸을 떠는 딸을 안으며 말했다. 엄마 휴대전화가 해킹당한 거야. 괜찮아. 괜찮아.하지만 선주는 알고 있었다. 그놈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놈들은,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딸의 몸을 빌려달라 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할 쌀값“엄마는 맨날 일하는데 왜 돈이 없어?”외식하자는 아이들에게 군색하게 군 날, 초등학생 아들이 옆에 와 앉았다. 말없이 웃으면 아들은 꼬깃꼬깃한 천 원 몇 장을 꺼내 건넸다. “이거 엄마 써!” 그 작은 손을 보며, 선주는 야속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서른둘 나이에 아기용품 사업 시작, 2년 만에 당한 사기, 빚 8000만 원을 갚느라 8년. 마흔셋에 작은 수선집을 마련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괜찮았다. 좋아하던 뜨개질을 할 수 있었으니까. 내겐 의젓한 딸과 명랑한 아들이 있었으니까.다짐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2022년 11월. 남편이 해고당했다. 코로나19로 회사 사정이 안 좋아졌다는 이유였다. 며칠 내리 누워만 있는 남편의 등을 보았다. 남편도 얼마나 놀랐을까? 기죽지 말자고요, 내가 더 힘내볼게. 그날 선주는 남몰래 일기를 눌러 적었다.남편은 수선집을 함께 키워보자고 했다. 하지만 많아 봐야 월 100만 원인 수익. 네 식구에겐 턱없이 모자랐다. 꿈에서도 미싱을 돌렸다. 그곳에서라도 바쁘면 깨어나 기분이 좋았다. 오전 8시 수선집으로 출근해 적은 일기는 매일 같았다. ‘오늘은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1년 만에 모아뒀던 돈이 바닥났다. 친척과 지인들에게 5만 원, 10만 원씩 빌려 아이들 밥을 먹이고 학원을 보냈다. 한참 뜸 들이다 돈 이야길 꺼내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빌려주겠다”던 친구 몇몇은 연락을 차단했다. 그때마다 아이들만 생각했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을 보내던 올 3월 초, 그 주에도 돈 나갈 구멍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어머니, 이번 달 학원비가 비어요.”“엄마! 나 마라탕 먹고 싶어!”“엄마, 동생 밥해 먹이려는데 집에 쌀이 없어.”어디 쌀 훔쳐 올 곳 없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던 그때. 지잉, 지잉, 휴대전화가 요란스레 울렸다.집으로 달려가 보니 곳곳이 빨간딱지였다. 은행 빚이 밀렸던 터였다. 일부인 30만 원을 내면 당장 압류는 정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학원비, 쌀값, 월세…. 계산이 꼬였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결국 다음 날 휴대전화를 열었다. 더 이상 지인들에게 빌릴 생각은 없었다. 적선하듯 보는 눈초리, “쌀 살 돈도 없으면서 애는 왜 키우냐”는 찬 소리.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편했다. 포털에 ‘대출’을 쳤다. 한 대부중개 플랫폼에는 수백 개의 대부업체 광고가 떠 있었다. ‘정식 등록업체’ ‘안전하고 빠른 대출’ 쏟아지는 광고 문구 속 ‘당일 대출 가능’을 봤다. 3월 5일 문자를 보냈다.“돈이 필요해요.”● 박 실장의 친절함에 속다문자를 보내자마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는 자신을 박 실장이라 소개했다. 문자 보낸 대부업체의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했다. “경기가 참 어려워요. 아이는 키우시나요? 너무 힘드셨겠어요.” 오랜만에 듣는 따뜻한 말투였다.꽤 긴 시간 서러움을 토했다. 수화기 너머로 안타깝다는 듯한 숨소리가 들렸다. 선주는 제 처지를 알아주는 박 실장이 다정하다고 생각했다.전화를 끊은 그는 돈을 빌리는 데에 필요한 서류 목록을 보냈다. 신분증과 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비상연락망. 가족과 친구, 거래처의 연락처를 보내자 답장이 왔다. 그중엔 딸의 전화번호도 있었다. ‘빨리 받으실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당장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숨이 쉬어졌다.박 실장이 빌려준 돈은 40만 원, 일주일 뒤 갚아야 할 돈은 60만 원이었다. 5일 뒤 거래처에서 선금을 받으면 갚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발주가 미뤄지며 계획이 틀어졌다. 상환 당일, 박 실장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저…오늘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내일 드려도 될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에게서 다정함은 볼 수 없었다.‘야, 장난치냐? X소리 말고 빨리 입금해라.’그는 빌려서라도 갚으라며 다른 사람을 연결했다. 박 실장의 원금은 김 실장에게 빌렸고, 김 실장의 원금은 임 실장에게 빌려 갚았다. 상환일을 며칠만 미루려 해도 수십만 원의 연장비를 요구했다. 갚기로 한 시간보다 1분만 늦어도 연체비가 5만~10만 원 붙었다.그렇게 6주 사이 돈 빌린 사람만 8명. 40만 원은 583만 원이 돼 있었다. 8명의 독촉 전화는 밤낮이 없었고,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대출 상담을 권하는 문자도 수십 통이 날아왔다. 이자 대신 다른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끼리 ‘또라이돈’이라고 불렀다. “원나잇 해주고 싼 이자로 돈 빌려주는 거예요.” 제안을 거절하고 전화를 끊은 선주는 치를 떨었다.욕설이 섞인 폭탄 문자에 “돈 갚으라고 함. 전달”이라는 문구가 딸려올 때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채무자들이 불법사채 조직한테 협박당해서 보낸 것이었다. 놈들은 이자를 몇 푼 깎아주겠다며 절박한 피해자를 범죄에 동원하고 있었다.이젠 누구에게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두려운 마음에 박 실장의 전화를 피했다. 그러자 메시지가 왔다.‘안 되겠네.’ ‘이제 시작해보자.’ ‘너, 내가 칼로 쑤셔줄게.’누구라도 가게 앞을 지나면 몸이 움찔거렸다. 세워둔 차가 보이면 가게 문을 잠갔다. 들어오는 손님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이 박 실장일까?’ 혼자 있는 시간에는 가게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구석으로 가 미싱을 돌렸다. 그들은 날 알지만, 나는 그들을 모른다는 불안감. 지켜보고 있다는 공포에 손이 떨렸다.그러던 4월 23일,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평생 니 딸 괴롭혀줄게.’ 이어 도착한 문자에는 딸아이의 학교와 반, 선생님 이름과 번호, 교무실 번호가 덩그러니 적혀있었다. 더는 혼자 안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경찰서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40만 원의 대가“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네가 저질렀으니 네가 해결해야지.”해고당한 후 내내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남편의 첫 마디였다. 차갑다 못해 매서웠다. 원통했던 건 남편 말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식당 일을 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선집 일을 마치면 밤 12시. 잠시 소파에 눈을 붙이면 금세 해가 밝았다. 그 햇살이 ‘지금 잠을 잘 자격이 있냐’고 묻는 듯했다.점점 남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선 말도 잘 나오질 않았다. 이혼 이야기가 오갔다. 뇌졸중과 고지혈증으로 처방받았던 약을 쓸어모았다. 한 번에 털어 넣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포털에 ‘살기 싫을 때’를 썼다. 자살예방상담전화 번호가 떴다. 전화를 거니 “우울감이 심해 보인다.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돈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 더 그 번호로 전화해 속을 털어놓았다.“돈 빌린 것, 다 제 잘못 맞아요. 그런데 살고 싶어서 선택한 일인데, 왜 이렇게까지 돼야 할까요.”그놈들에겐 “경찰에 신고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조롱만 돌아왔다. “가서 신고해ㅋㅋ 대포폰 써서 니넨 우리 못 잡아.” 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경찰에서 들은 말이 그거였다. 놈들은 경찰이 손쓰지 못하는 걸 알기라도 하듯 더 날뛰었다. 초 단위로 문자와 전화가 왔다. 오전 8시 18분부터 시작된 임 실장의 전화는 4시간 32분 동안 이어졌다. 총 764통이었다. 견딜 수 없던 건 내 손으로 번호를 넘긴 사람에게도 연락이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4월 25일,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한테 막 이상한 문자들이 와. 이게 다 뭐야?”● 엄마의 소원그날 이후 딸은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등하굣길은 어쩔 수 없이 친구들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아파트 입구에 낯선 이라도 있는 날엔 한참을 걷다 들어온다고 했다. 초인종 소리도 무서워해 문 앞에 ‘누르지 마세요’ 쪽지를 붙여놓았다.언젠가 일기에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딸은 누구보다 날 닮았다고. 살갑진 않지만 정 많은 모습이 비슷했다. 무뚝뚝한 것 같다가도 자는 엄마의 휴대전화를 열어 남몰래 편지를 써놓는 아이였다. 요즘 내가 말 안 들어서 미안해. 근데 알아? 엄만 완벽해! 나를 매일 웃게 만들어 주잖아. 엄마한테 태어나서 진짜 다행이란 생각을 할 만큼 너무 좋아.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언젠간 읽겠지? 힘내!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해.’이제는 바란다. 딸은 엄마의 삶과 닮지 않기를. 그저 자신이 딸의 엄마인 것이 미안하다던 선주의 소원은 딱 하나.“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요. 가족들, 친구들이 저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사람들이 고통받는 건 다 저와 아는 사이여서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와 인연을 맺기 전으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선주는 정식 대부업체에 연락했는데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손아귀에 떨어졌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0% 넘는 피해자가 불법사채를 접한 곳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든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했다. 그 추적기는 24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2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 등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대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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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계 몰리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컨설팅 받으며 法 악용도

    #1. 수도권의 한 기업 팀장은 부하 직원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했다. “뭐 하는 짓이야”라고 반말을 하며 괴롭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오히려 부하 직원이 평소 업무 마감 기한을 지키지 않는 등 근무 태만을 저질렀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이어졌던 것. 팀장은 존대를 하며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부하 직원이 무시하는 태도로 팀장에게 반말을 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해당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던 것으로 마무리됐다. #2. 올 3월 한 정보기술(IT) 업체 대리는 상사의 지시를 상습적으로 이행하지 않아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해당 대리는 상사가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신고했다. 남성인 자신에게 “여성스럽다”는 발언 등을 했다는 것이다. 신고하기 전 노무법인 등에서 신고 요령 등 관련 상담까지 받았다고 한다. 결국 회사 측은 신고가 접수된 직후 징계 절차를 중단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평소 근무 태도가 심각하게 불량한 직원이었는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경우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결론이 나기 전까지 징계는커녕 업무 관련 지적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019년 7월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가운데 이처럼 제도를 오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법 취지에 맞게 구제받은 이들도 많지만 괴롭힘에 대한 모호한 기준을 파고들어 무분별하게 신고부터 하고 보자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징계 피하고, 계약 갱신하러 신고 악용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지난해 1만28건으로 사상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신고 건수는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엔 8961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접수된 신고 10건 중 8건 넘게(86.2%) ‘법 위반 없었음 결론’ ‘신고 요건 성립 안 돼’ ‘신고 취하’ 등으로 종결됐다. 문제는 상사의 정당한 업무 지시에도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를 들어 신고하는 ‘오피스 빌런’(직장 내 악당)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실업급여 수급 △부서장 교체 △근로계약 갱신 △징계 회피 등을 목적으로 신고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중소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두 달 전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퇴사자로부터 “상사가 괴롭혀 퇴사한 것이니 자발적 퇴사가 아닌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직 사유를 정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하면 자발적 퇴사와 달리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결국 이 퇴사자는 직장 상사를 고용부에 신고했다.● 모호한 규정 탓에 행정력 낭비 부작용도 무분별한 신고로 인해 이를 심의·감독하는 노동 당국의 행정력도 낭비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양측 진술이 엇갈릴 때가 많아 조사부터 처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두 달 내에 조사를 완료하게 돼 있는데 신고 건수가 1만 건을 넘어서 감독관들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신고가 접수되면 지방 고용노동청 소속 근로감독관 1명이 조사를 벌여 괴롭힘 여부를 판단한다. 고용부는 지난해 11월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 조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진전은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 개념과 기준을 명시하는 것도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선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때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통해 일회성 신고를 걸러내고 있다”며 “노동위원회와 같이 전문성이 높은 기관에 조사 권한을 넘겨 모호한 기준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신고 남용을 막을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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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내 괴롭힘’ 호소한 이 직원, 실제론 ‘월급루팡’이었다

    #1. 수도권의 한 기업 팀장은 부하 직원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했다. “뭐 하는 짓이야”라고 반말을 하며 괴롭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오히려 부하 직원이 평소 업무 마감기한을 지키지 않는 등 근무 태만을 저질렀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이어졌던 것. 팀장은 존대를 하며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부하 직원이 무시하는 태도로 팀장에게 반말을 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해당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던 것으로 마무리됐다. #2. 올 3월 한 정보기술(IT) 업체 대리는 상사의 지시를 상습적으로 이행하지 않아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해당 대리는 상사가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신고했다. 남성인 자신에게 “여성스럽다”는 발언 등을 했다는 것이다. 신고하기 전 노무법인 등에서 신고 요령 등 관련 상담까지 받았다고 한다. 결국 회사 측은 신고가 접수된 직후 징계 절차를 중단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평소 근무태도가 심각하게 불량한 직원이었는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경우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결론이 나기 전까지 징계는 커녕 업무 관련 지적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019년 7월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난 가운데 이처럼 제도를 오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법 취지에 맞게 구제받은 이들도 많지만 괴롭힘에 대한 모호한 기준을 파고들어 무분별하게 신고부터 하고 보자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징계 피하고, 실업급여 타내려 신고 악용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지난해 1만28건으로 사상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신고 건수는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엔 8961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접수된 신고 10건 중 8건(86.2%) 넘게 ‘법 위반 없었음’, ‘신고 요건 성립 안됨’, ‘신고 취하’ 등으로 종결됐다. 문제는 상사의 정당한 업무 지시에도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를 들어 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실업급여 수급 △부서장 교체 △근로계약 갱신 △징계 회피 등을 목적으로 신고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한 중소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두 달 전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 둔 퇴사자로부터 “상사가 괴롭혀 퇴사한 것이니 자발적 퇴사가 아닌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직 사유를 정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하면 자발적 퇴사와 달리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결국 이 퇴사자는 직장 상사를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모호한 규정 탓에 행정력 낭비 부작용도무분별한 신고로 인해 이를 심의·감독하는 노동 당국의 행정력도 낭비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양측 진술이 엇갈릴 때가 많아 조사부터 처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두 달 내에 조사를 완료하게 돼있는데 신고 건수가 1만 건을 넘어서 감독관들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신고가 접수되면 지방 고용노동청 소속 근로감독관 1명이 조사를 벌여 괴롭힘 여부를 판단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 조정을 통해 직장내 괴롭힘을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진전은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 개념과 기준을 명시하는 것도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선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때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통해 일회성 신고를 걸러내고 있다”며 “노동위원회와 같이 전문성이 높은 기관에 조사 권한을 넘겨 모호한 기준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신고 남용을 막을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 202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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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층 타깃 자체 앱으로 ‘4400억대 폰지사기’ 120명 검거

    4000억 원대 투자금을 불법 조달한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 업체 아도인터내셔널 관계자 120명이 검거됐다. 이 업체는 자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돈이 오가는 것처럼 꾸미고 서버를 자주 교체하는 방식으로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했다. 압수하거나 몰수한 금액이 피해액의 약 3분의 1에 그쳐 피해 복구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5일 서울 동작경찰서는 아도인터내셔널 대표 이모 씨(40) 등 책임자 11명을 구속하고, 상위 모집책 10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지난해 2∼7월 “원금과 함께 최고 13.8%의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 약 3만6000명으로부터 약 4467억 원을 유사수신한 혐의를 받는다. 유사수신은 허가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뜻한다. 경찰에 따르면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최소 2106명, 피해액은 약 496억 원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이 씨의 자택에서 현금 28억 원을 압수하고 147억 원을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했지만, 나머지 피해액 321억 원은 찾아내지 못했다. 이 업체는 ‘아도 페이’라는 자체 금융결제 앱을 만들고 이를 통해 리퍼브(반품 물건 재판매)와 렌터카, 정육 등 사업 명목으로 주로 60세 이상 고령층으로부터 투자금을 모았다. 피해자 정모 씨(77)는 “지인이 ‘핀테크’ ‘플랫폼’ 등 낯선 단어를 늘어놓으며 유망한 기업이라고 투자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이모 씨(83)는 “앱을 설치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해 모집책이 대신 모든 자금을 관리해줬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이 업체가 자체 금융결제 앱을 수사망을 피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했다고 판단했다. 거액이 특정 계좌로 송금될 경우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에 추적될 수 있으므로, 실제로는 투자금은 한데 모아 관리하면서 정상 거래가 진행되는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앱을 운영하는 전산실도 두 차례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 씨와 계열사 사장 박모 씨(56) 등 20여 명은 재판에 넘겨졌고 이 씨는 14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현행법상 유사수신 범죄의 법정 최고형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불과해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3월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의 남편인 이종근 변호사가 아도인터내셔널 계열사 대표를 대리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사임하기도 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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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층 타깃 자체 앱으로 ‘4400억대 폰지사기’ 120명 검거

    4000억 원대 투자금을 불법 조달한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 업체 아도인터내셔널 관계자 120명이 검거됐다. 이 업체는 자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돈이 오가는 것처럼 꾸미고 서버를 자주 교체하는 방식으로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했다. 압수하거나 몰수한 금액이 피해액의 약 3분의 1에 그쳐 피해 복구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5일 서울 동작경찰서는 아도인터내셔널 대표 이모 씨(40) 등 책임자 11명을 구속하고, 상위 모집책 10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지난해 2~7월 “원금과 함께 최고 13.8%의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 약 3만6000명으로부터 약 4467억 원을 유사수신한 혐의를 받는다. 유사수신은 허가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뜻한다.경찰에 따르면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최소 2106명, 피해액은 약 496억 원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이 씨의 자택에서 현금 28억 원을 압수하고 147억 원을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했지만, 나머지 피해액 321억 원은 찾아내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 일당이 (범죄 수익을) 고급 아파트 임차 등에 탕진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은닉 재산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이 업체는 ‘아도 페이’라는 자체 금융결제 앱을 만들고 이를 통해 리퍼브(반품 물건 재판매)와 렌터카, 정육 등 사업 명목으로 주로 60세 이상 고령층으로부터 투자금을 모았다. 피해자 정모 씨(77)는 “지인이 ‘핀테크’ ‘플랫폼’ 등 낯선 단어를 늘어놓으며 유망한 기업이라고 투자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이모 씨(83)는 “앱을 설치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해 모집책이 대신 모든 자금을 관리해줬다”고 토로했다.경찰은 이 업체가 자체 금융결제 앱을 수사망을 피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했다고 판단했다. 거액이 특정 계좌로 송금될 경우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에 추적될 수 있으므로, 실제로는 투자금은 한데 모아 관리하면서 정상 거래가 진행되는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앱을 운영하는 전산실도 두 차례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이 씨와 계열사 사장 박모 씨(56) 등 20여 명은 재판에 넘겨졌고 이 씨는 14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현행법상 유사수신범죄의 법정 최고형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불과해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3월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의 남편인 이종근 변호사가 아도인터내셔널 계열사 대표를 대리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사임하기도 했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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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년전 대피령 엊그제 같은데…” 연천군 한숨

    “‘쾅’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해 뛰쳐나갔던 9년 전 일이 엊그제 같아요.” 3일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한 민가 앞에서 만난 이명녹 씨(77)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씨는 “포탄이 떨어져 맨발로 허둥지둥 대피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두려운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또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어떡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북한의 ‘오물 풍선’ 테러 등 연이은 도발에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하면서 접경 지역 주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2015년 8월 북한이 확성기 방송에 대한 보복으로 고사포 1발과 평곡사포 3발을 쏘면서 대피령이 내려졌던 연천군에서는 대피소와 경보 시설 점검에 나섰다. 당시 군이나 민간 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연천군에서 평생 살았다는 주민 김모 씨(73)는 “‘혹시나’ 하는 걱정에 슈퍼에서 물과 라면을 넉넉히 사뒀다”고 말했다. 조장희 횡산리 이장은 “남북 상황이 더 급박해지면 마을회관에서 주민 상대로 비상시 대피 매뉴얼을 교육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면 관계자는 “지난달 31일과 이달 3일 두 차례 대피소를 점검해 비상 발전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비축물자 중 수량이 모자란 것을 채웠다”고 했다.연천=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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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년 전 확성기 보복 포격 엊그제 같아” 불안 떠는 연천군 주민들

    “‘쾅’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해 뛰쳐나갔던 9년 전이 엊그제 같아요.”3일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한 민가 앞에서 만난 이명녹 씨(77)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씨는 “포탄이 떨어져 맨발로 허둥지둥 대피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두려운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또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어떡할지 모르겠다”고 했다.북한의 ‘오물 풍선’ 테러 등 연이은 도발에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하면서 접경 지역 주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2015년 8월 북한이 확성기 방송에 대한 보복으로 고사포 1발과 평곡사포 3발을 포격하면서 대피령이 내려졌던 연천군에서는 대피소와 경보 시설 점검에 나섰다. 당시 군이나 민간 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연천군에서 평생 살았다는 주민 김모 씨(73)는 “‘혹시나’하는 걱정에 슈퍼에서 물과 라면을 넉넉히 사뒀다”고 말했다. 조장희 횡산리 이장은 “남북 상황이 더 급박해지면 마을회관에서 주민 상대로 비상시 대피 매뉴얼을 교육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면 관계자는 “지난달 31일과 이달 3일 두 차례 대피소를 점검해 비상 발전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비축물자 중 수량이 모자란 것을 채웠다”고 했다.연천=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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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물풍선, 車유리 박살’ ‘인천공항 91분 스톱’… 北 GPS 교란에 군함 등 1409건 수신장애도

    북한이 지난달 말부터 대규모 ‘오물 풍선’ 테러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 교란 공격을 이어가면서 대남 ‘회색지대(Gray zone·그레이존)’ 도발 전술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군에 따르면 북한은 1일 밤∼2일 오후, 지난달 28∼29일(260여 개) 살포량의 3배인 720여 개의 오물 풍선을 한국 전역으로 날려보냈다. 1일 오후 8시부터 시간당 20∼50개 정도로 서울 등 수도권과 충청·경북 지역에 날아든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풍선을 포함하면 총 1000개가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인천국제공항 안팎에서도 대남 오물 풍선이 발견돼 항공기 이착륙이 약 91분간 차질을 빚었다.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1일 오후 10시 48분경 공항 활주로 사이에서 대남 오물 풍선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인천국제공항에 ‘이륙하지 말고 대기하라’란 지침이 전파됐고 11시 42분까지 약 54분간 항공기 약 10대의 이륙이 지연됐다. 2일 오전 6시 6분과 7시에도 각각 활주로 사이 상공에서 풍선이 발견돼 이착륙이 총 37분간 통제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2일 오전 10시 22분경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는 오물 풍선이 매달린 5kg 넘는 비닐봉지가 터지지 않은 채 빌라 주차장에 주차된 그랜저 차량에 추락해 앞 유리가 박살 났다. 서울 양천구 신정2동에서도 이날 오전 5시 40분경 주차된 쏘렌토 차량 위로 풍선이 떨어져 조수석 유리가 깨졌다. 같은 날 오전 9시 15분경 경기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에서는 오물 풍선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화재로 1t 트럭 앞부분 타이어와 운전석 외부 일부가 그슬렸다. 이달 2일까지 오물 풍선과 관련해 860건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회색지대’ 전술은 무력 사용이 아닌 비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저강도 도발을 통해 군사 대응이 애매한 상황을 만들어 상대를 자극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된 북한의 GPS 전파 교란 공격으로 우리 군 함정도 101차례나 GPS 신호 수신 장애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국민안전 일일관리상황’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 5일간 접수된 GPS 수신 장애 신고는 군 함정을 포함해 총 1409건에 달했다. 어민들의 불안과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한 어민은 “선박의 GPS 위치가 조업 가능구역 밖으로 표시돼 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도저히 조업할 수가 없다”며 “특히 조업이 한창인 오전에 교란 공격이 계속되면서 피해는 커져 가는데, 대책은 전혀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 어민들은 그저 손 놓고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건가”라고 토로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 20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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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대남 ‘회색지대’ 전술 본격화…항공기 이륙지연-軍함정도 GPS 장애

    북한이 지난달 말부터 대규모 ‘오물 풍선’ 테러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 교란 공격을 이어가면서 대남 ‘회색지대(Gray zone·그레이존)’ 도발 전술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2일 군에 따르면 북한은 1일 밤~2일 오후, 지난달 28~29일(260여 개) 살포량의 3배인 720여 개의 오물 풍선을 한국 전역으로 날려보냈다. 1일 오후 8시부터 시간당 20~50개 정도로 서울 등 수도권과 충청·경북 지역에 날아든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풍선을 포함하면 총 1000개가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인천국제공항 인근에서도 대남 오물 풍선이 발견돼 항공기 이착륙이 약 70분간 차질을 빚었다.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1일 오후 10시 46분경 공항 활주로로부터 약 1.6km 떨어진 삼목선착장에서 대남 오물 풍선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에 따라 인천국제공항에 ‘이륙하지 말고 대기하라’란 지침이 전파됐고 10시 50분부터 11시 43분까지 약 53분간 항공기 약 10대의 이륙이 지연됐다. 2일 오전 7시에도 풍선이 발견돼 이착륙이 약 18분간 통제됐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발견된 오물 풍선은 10여 개인 것으로 알려졌다.경찰 등에 따르면 오물 풍선이 2일 오전 10시 22분경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는 오물 풍선이 매달린 5kg 넘는 비닐봉지가 터지지 않은 채 빌라 주차장에 주차된 그랜저 차량에 추락해 앞 유리가 박살 났다. 서울 양천구 신정2동에서도 이날 오전 5시 40분경 주차된 쏘렌토 차량 위로 풍선이 떨어져 조수석 유리가 깨졌다. 같은 날 오전 9시 15분경 경기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에서는 오물 풍선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화재로 1t 트럭 앞부분 타이어와 운전석 외부 일부가 그을렸다. 이달 2일까지 오물 풍선과 관련해 860건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회색지대’ 전술은 무력 사용이 아닌 비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저강도 도발을 통해 군사 대응이 애매한 상황을 만들어 상대를 자극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군 관계자는 “전통적 군사 행동과 달리 명확한 전쟁 선포나 국지적 도발을 하지 않고도 상대국에 실질적 피해를 주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이런 가운데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된 북한의 GPS 전파 교란 공격으로 우리 군 함정도 101차례나 GPS 신호 수신 장애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국민안전 일일관리상황’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 5일간 접수된 GPS 수신 장애 신고는 군 함정을 포함해 총 1409건에 달했다.어민들의 불안과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한 어민은 “선박의 GPS 위치가 조업 가능구역 밖으로 표시돼 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도저히 조업할 수가 없다”며 “특히 조업이 한창인 오전에 교란 공격이 계속되면서 피해는 커져 가는데, 대책은 전혀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 어민들은 그저 손 놓고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건가”라고 토로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 20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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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n번방’ 피해자 “텔레그램 고유ID 확보해 추적 강화를”

    “(이전에는) 내가 조심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숨만 쉬어도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의 피해자 A 씨는 2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A 씨는 서울대 출신 박모 씨(40·구속) 등이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성착취물의 피해자 60여 명 중 한 명이다.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합성물이든, 실제 촬영물이든 피해자는 똑같이 공포를 느낀다”며 “처벌을 강화하고 텔레그램 성범죄 수사 매뉴얼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텔레그램을 이용한 유포범은 추적하기 어렵다’며 관련 수사에 공들이지 않는 일부 경찰관의 인식과 관행부터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성착취물을 처음 접한 건 2021년 7월. 이후 경찰은 4차례나 성과 없이 수사를 종결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텔레그램 측이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에도 관련 정보를 주지 않고 서버도 해외에 있어 추적이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경찰이 초기부터 유포범의 텔레그램 ‘고유 ID’ 등을 확보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시로 바꿀 수 있는 일반 ID와 달리, 고유 ID는 유전자(DNA)처럼 텔레그램 탈퇴 전까지 유지된다. 그 자체로 피의자의 소재나 정체를 밝힐 순 없지만 향후 여죄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A 씨는 2022년 3월 박 씨로부터 텔레그램 메시지를 받았을 때 곧장 경찰서로 달려가 박 씨의 고유 ID를 확보한 덕에 추후 그의 범행을 특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A 씨는 “박 씨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회사를 조퇴하고 택시 타고 경찰서로 달려가며 일부러 장단을 맞춰 줬다”며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 고유 ID 추적 및 방법을 성범죄 수사 매뉴얼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 합성 성착취물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은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박 씨 등에게 적용된 허위 영상물 반포죄는 징역형 상한이 5년이다. 촬영물 반포죄의 7년보다 처벌이 약하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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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n번방’ 피해자들 “텔레그램 고유 ID 확보해 추적 강화해야”

    “(이전에는) 내가 조심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숨만 쉬어도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의 피해자 A 씨는 2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A 씨는 서울대 출신 박모 씨(40·구속) 등이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성착취물의 피해자 60여 명 중 한 명이다.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합성물이든, 실제 촬영물이든 피해자는 똑같이 공포를 느낀다”며 “처벌을 강화하고 텔레그램 성범죄 수사 매뉴얼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피해자들은 ‘텔레그램을 이용한 유포범은 추적하기 어렵다’며 관련 수사에 공들이지 않는 일부 경찰관의 인식과 관행부터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성착취물을 처음 접한 건 2021년 7월. 이후 경찰은 4차례나 성과 없이 수사를 종결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텔레그램 측이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에도 관련 정보를 주지 않고 서버도 해외에 있어 추적이 어려운 탓이다.하지만 피해자들은 경찰이 초기부터 유포범의 텔레그램 ‘고유 ID’ 등을 확보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시로 바꿀 수 있는 일반 ID와 달리, 고유 ID는 유전자(DNA)처럼 텔레그램 탈퇴 전까지 유지된다. 그 자체로 피의자의 소재나 정체를 밝힐 순 없지만 향후 여죄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A 씨는 2022년 3월 박 씨로부터 텔레그램 메시지를 받았을 때 곧장 경찰서로 달려가 박 씨의 고유 ID를 확보한 덕에 추후 그의 범행을 특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A 씨는 “박 씨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회사를 조퇴하고 택시로 경찰서로 달려가며 일부러 장단을 맞춰 줬다”며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 고유 ID 추적 및 방법을 성범죄 수사 매뉴얼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합성 성착취물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은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박 씨 등에게 적용된 허위영상물 반포죄는 징역형 상한이 5년이다. 촬영물 반포죄의 7년보다 처벌이 약하다. 지난해 12월부터 재수사에 착수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은 약 5개월 만에 주범인 박 씨와 강모 씨(30)를 모두 체포해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또 이들이 만든 성착취물을 2차 유포한 20대 남성 박모 씨도 24일 구속 기소했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 202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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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김호중, 내일 구속심사… ‘서울 콘서트’ 출연 힘들듯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33)가 구속 갈림길에 섰다. 경찰은 김 씨가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서 메모리카드를 직접 빼냈다고 의심하고 범인도피 방조 혐의도 적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 씨가 모친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한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인권보호부(부장검사 임일수)는 22일 김 씨와 소속사 대표 이광득 씨(41), 소속사 본부장 전모 씨 등 3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 실질심사)은 24일 낮 1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김 씨는 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채 운전하다가 중앙선 너머 택시를 들이받고 달아난 혐의(특정범죄가중법상 위험운전치상) 등을 받고 있다. 김 씨는 사고 후 음주 사실을 부인하다가 열흘 만인 19일에야 “음주운전을 했다”고 시인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22일 김 씨의 구속영장 신청서에 ‘범인도피 방조’ 혐의도 적시했다. 경찰 초동 조사에서 김 씨의 사고 차량인 벤틀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블랙박스 메모리카드가 사라진 상태였다. 김 씨 측은 처음엔 ‘원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다가 “사고 직후 매니저(전 씨)가 스스로 판단해 제거했다”고 말을 바꿨다. 전 씨는 ‘메모리카드를 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메모리카드를 빼낸 게 김 씨 본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김 씨가 범죄 혐의의 유력 증거를 다른 이가 인멸할 것을 알면서도 방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범인도피 방조죄의 법정 형량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김 씨 측은 메모리카드 직접 제거에 대한 입장을 묻는 동아일보에 “일일이 답변드릴 여력이 없다”고만 밝혔다. 경찰은 김 씨가 사고 전 음주량을 축소하는 것으로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21일 경찰에 출석해 ‘음식점에서 소주·맥주 폭탄주 한두 잔, 유흥주점에서 소주 서너 잔 등 총 10잔 이내의 술을 마셨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또 사고도 음주 때문이 아니라 휴대전화와 차량 블루투스 연결을 조작하다가 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음주 영향이 있어야 성립하는 위험운전치상 혐의를 벗어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찰은 사고 전후 김 씨의 행적을 조사한 결과 이런 주장에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또 김 씨가 모친 명의의 휴대전화를 실사용했다고 보고 이를 확보해 디지털포렌식 작업을 진행했다. 김 씨 측은 22일 오전 “23, 24일 ‘월드 유니온 오케스트라 슈퍼클래식 김호중 & 프리마돈나’ 공연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하겠다”고 밝혔다. 한때 6000여 장의 취소표가 쏟아졌던 이 공연은 팬덤이 표를 재구매하며 잔여석이 점차 줄고 있다. 하지만 구속 심사 일정에 따라 24일 공연은 어려워졌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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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경찰, 김호중이 직접 블랙박스 뺀 걸로 보고 수사…金 실사용 휴대전화도 확보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33)가 구속 갈림길에 섰다. 경찰은 김 씨가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서 메모리카드를 직접 빼냈다고 의심하고 범인도피 방조 혐의도 적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 씨가 모친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한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서울중앙지검 인권보호부(부장검사 임일수)는 22일 김 씨와 소속사 대표 이광득 씨(41), 소속사 본부장 전모 씨 등 3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 실질심사)은 24일 낮 1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김 씨는 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채 운전하다가 중앙선 너머 택시를 들이받고 달아난 혐의(특정범죄가중법상 위험운전치상) 등을 받고 있다. 김 씨는 사고 후 음주 사실을 부인하다가 열흘 만인 19일에야 “음주운전을 했다”고 시인했다.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22일 김 씨의 구속영장 신청서에 ‘범인도피 방조’ 혐의도 적시했다. 경찰 초동 조사에서 김 씨의 사고 차량인 벤틀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블랙박스 메모리카드가 사라진 상태였다. 김 씨 측은 처음엔 ‘원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다가 “사고 직후 매니저(전 씨)가 스스로 판단해 제거했다”고 말을 바꿨다. 전 씨는 ‘메모리카드를 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경찰은 메모리카드를 빼낸 게 김 씨 본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김 씨가 범죄 혐의의 유력 증거를 다른 이가 인멸할 것을 알면서도 방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범인도피 방조죄의 법정 형량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김 씨 측은 메모리카드 직접 제거에 대한 입장을 묻는 동아일보에 “일일이 답변드릴 여력이 없다”고만 밝혔다.경찰은 김 씨가 사고 전 음주량을 축소하는 것으로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21일 경찰에 출석해 ‘음식점에서 소주·맥주 폭탄주 한두 잔, 유흥주점에서 소주 서너 잔 등 총 10잔 이내의 술을 마셨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또 사고도 음주 때문이 아니라 휴대전화와 차량 블루투스 연결을 조작하다가 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음주 영향이 있어야 성립하는 위험운전치상 혐의를 벗어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찰은 사고 전후 김 씨의 행적을 조사한 결과 이런 주장에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또 김 씨가 모친 명의의 휴대전화를 실사용했다고 보고 이를 확보해 디지털포렌식 작업을 진행했다.김 씨 측은 22일 오전 “23, 24일 ‘월드 유니온 오케스트라 슈퍼클래식 김호중 & 프리마돈나’ 공연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하겠다”고 밝혔다. 한때 6000여 장의 취소표가 쏟아졌던 이 공연은 팬덤이 표를 재구매하며 잔여석이 점차 줄고 있다. 하지만 구속 심사 일정에 따라 24일 공연은 어려워졌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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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서울대, ‘n번방 사건’ 계기로 성폭력 피해 지원 전담센터 신설하기로

    서울대가 최근 불거진 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 피해를 신고받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담센터를 신설하기로 했다.서울대는 22일 첫 디지털 성범죄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성폭력 피해자 신고센터’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서울대 동문 등 여성 수십 명을 무단으로 합성한 성착취물을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학내외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21일 해당 사건의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TF 마련을 지시한 데 이어 이튿날 첫 회의를 주재했다. 유 총장은 TF 마련을 지시하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만큼, 서울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TF는 교육부총장(단장)과 학생처장, 인권센터장, 협력부처장 등 핵심 실무자로 구성됐다. 이날 회의에는 총학생회장 직무대행도 함께 논의에 참여했다.신설될 성폭력 피해자 신고센터는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하고 심리 상담 연계와 법률 지원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구제 대상은 디지털 성범죄나 여성으로 국한되지 않고, 모든 유형의 성범죄와 성별을 포괄한다. 서울대는 신입생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화할 방안 또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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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생 등 60명 ‘딥페이크 음란물’ 유포한 일당

    서울대 동문 등 여성 수십 명을 무단으로 합성한 성착취물을 ‘n번방’과 같은 보안 메신저에서 유포한 서울대 졸업생 2명이 구속됐다. 경찰은 약 3년 전 고소를 접수하고도 유포범 추적에 실패해 수사를 4차례 종결했지만, 피해자 측의 ‘함정 추적’에 힘입어 검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서울대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에 착수했다. 21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서울대생 12명 등 여성 60여 명의 사진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해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로 서울대 출신 남성 박모 씨(40)와 강모 씨(30)를 최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강 씨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이다. 경찰에 따르면 두 남성은 2021년 7월부터 올 4월까지 동문 여성의 졸업 앨범 사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 사진 등을 이용해 성착취물 100여 건을 제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씨 등은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을 200여 개 개설한 뒤 그중 20여 곳에서 성착취물을 유포했는데, 최대 50여 명이 접속한 대화방도 있었다. 경찰은 대화방에서 활발히 활동한 공범 1명도 검거한 상태다. 박 씨와 강 씨는 텔레그램에서 처음 만난 뒤 약 3년간 함께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 씨는 동문의 얼굴 사진을 구해서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과 합성한 뒤 이를 피해자의 출신 학과, 나이 등 신상정보와 함께 박 씨에게 넘겼다. 박 씨는 이를 텔레그램에서 유포하고 피해자에게 통화를 시도하는 등 접근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두 남성은 서로를 ‘합성 전문가’로 치켜세우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2021년 7월 이후 피해자들로부터 4차례 개별·단체 고소를 접수하고 수사를 벌였지만 익명성이 강한 텔레그램의 특성상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수사를 자체 종결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지시로 재수사에 착수해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하는 방식으로 추적을 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2019년 n번방 사건을 알린 ‘추적단 불꽃’이 피해자들과 연대해 경찰 수사에 협조한 끝에 박 씨 등을 검거할 수 있었다. 서울대는 디지털 성범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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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생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 최소 60명…‘함정 추적’으로 3년만에 검거

    서울대 동문 등 여성 수십 명을 무단으로 합성한 성착취물을 ‘n번방’과 같은 보안 메신저에서 유포한 서울대 졸업생 2명이 구속됐다. 경찰은 약 3년 전 고소를 접수하고도 유포범 추적에 실패해 수사를 4차례 종결했지만, 피해자 측의 ‘함정 추적’에 힘입어 검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서울대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에 착수했다.21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서울대생 12명 등 여성 60여 명의 사진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해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로 서울대 출신 남성 박모 씨(40)와 강모 씨(30)를 최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경찰에 따르면 두 남성은 2021년 7월부터 올 4월까지 동문 여성의 졸업앨범 사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 사진 등을 이용해 성착취물 100여 건을 제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씨 등은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을 200여 개 개설한 뒤 그중 20여 곳에서 성착취물을 유포했는데, 최대 50여 명이 접속한 대화방도 있었다. 경찰은 대화방에서 활발히 활동한 공범 1명도 검거한 상태다.박 씨와 강 씨는 텔레그램에서 처음 만난 뒤 약 3년간 함께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 씨는 동문의 얼굴 사진을 구해서 다른 여성의 나체와 합성한 뒤 이를 피해자의 출신 학과, 나이 등 신상정보와 함께 박 씨에게 넘겼다. 박 씨는 이를 텔레그램에서 유포하고 피해자에게 통화를 시도하는 등 접근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두 남성은 서로를 ‘합성 전문가’로 치켜세우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2021년 7월 이후 피해자들로부터 4차례 개별·단체 고소를 접수하고 수사를 벌였지만 익명성이 강한 텔레그램의 특성상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수사를 자체 종결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지시로 재수사에 착수해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하는 방식으로 추적을 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2019년 n번방 사건을 알린 ‘추적단 불꽃’이 피해자들과 연대해 경찰 수사에 협조한 끝에 박 씨 등을 검거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 합성물을 삭제하고 있으며, 재유포자 등을 계속 추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대는 디지털 성범죄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대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부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TF팀을 구성해 피해자 보호 및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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