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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역사학자들은 냉전의 시작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점을 놓고 소련과 연합국이 벌인 ‘밀당’으로 보고 있다. 1941년 6월 독소전쟁 발발 이후 나치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당한 소련은 미국과 영국에 조속한 상륙작전을 요구한다. 서부전선이 형성되면 동부전선에서 나치의 공세가 완화될 거라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미영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 상륙작전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상륙 시기를 계속 미뤘다. 이에 대해 스탈린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공산주의 국가를 괴멸시키기 위해 일부러 상륙작전을 늦춘다고 의심했다. 이처럼 해상작전은 태평양전쟁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전체의 판세를 좌우한 핵심 요소였다. 저자는 미국 해군사관학교 교수를 지내고 ‘프리츠커 군사저술상’을 받은 해전사 연구 권위자다. 이 책은 세계대전이란 이름에 걸맞게 지중해와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해전이 어떤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전쟁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예컨대 대서양 전투에서 발생한 운송 손실은 태평양전쟁의 자원 투입에 영향을 미쳤고, 지중해 몰타섬으로 호송대를 띄운 작전은 대서양 방어에 취약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레이더 장비가 보편화되지 않은 당시 드넓은 대양은 교전 대상을 찾기조차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 이런 조건은 일본 해군이 진주만 공습에서 대승을 거두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제주도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 제16회 제주국제사진공모전에서 정희준 씨의 작품 ‘조랑말의 겨울’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제주도’를 주제로 한 올해 공모전에는 790명이 총 2395점을 출품했다. 외국인은 30개국 출신 75명이 267점을 출품해 작품 수로는 역대 가장 많았다. 수상자는 대상 1명을 비롯해 금상 1명, 은상 2명, 동상 3명, 입선 15명 등 총 22명이다. 이들에게는 상장과 총 660만 원의 상금을 수여한다.대상 수상작 ‘조랑말의 겨울’은 눈 내리는 초원의 서정적 분위기 속에서 말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는 장면을 포착해 자연의 평화로움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초원의 끝자락에 펼쳐진 숲이 깊이감을 더하며, 망원렌즈의 압축 효과로 인해 눈이 실제보다 더 많이 내리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감성적인 울림을 남기고, 자연 속의 고요한 순간을 더욱 강렬하게 전해주는 힘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공모전 심사는 3차에 걸쳐 진행됐다. 심사는 임양환 상명대 사진영상학과 명예교수와 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 국민대·서울대·한양대에서 사진학을 강의한 이탈리아 출신 자코모 오테리 씨가 맡았다. 임 심사위원은 “올해 출품작들은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신선한 접근이 돋보였으며, 제주의 다채로운 모습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들이 예년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수상작은 공모전 홈페이지(www.jejucontest.com)를 통해 공개되며, 내년 2월 제주자연유산센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제주국제사진공모전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독특한 문화를 지닌 제주도의 진면목을 국내외에 알리자는 취지에서 200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입선김재선, 김택수, 남혜림, 박재완, 박호광, 신창섭, 우승민, 임성복, 임지애, 조호훈, 홍설희, Simon Hathaway(영국), Alain Schoroeder(벨기에), Mathew Browne(영국), Jonathan Sathyadith(스리랑카)● 심사위원임양환 상명대 사진영상학과 명예교수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자코모 오테리 이탈리아 사진작가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Manners Maketh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영화 ‘킹스맨’에서 최고급 슈트를 입은 젠틀맨 해리 하트가 무례한 불한당을 손보기(?) 직전에 내뱉는 대사다. 그야말로 죽기 직전까지 이들을 두들겨 팬 이유는 ‘매너 없음’이다. 사실 해리의 이 명대사는 지어낸 문구가 아니다. 14세기 영국 주교 위컴의 윌리엄이 1382년 윈체스터 스쿨을 설립하면서 학교의 모토로 쓴 문구다. 당시 그는 매너를 단순히 정중한 행동이 아니라 도덕과 교육이 합일되는 과정으로 봤다. 서양사학자로 생활사 연구로 정평이 난 저자는 이 책에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천한 매너의 역사를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 말까지 분석했다. 이를 위해 유럽 각국의 처세서와 지침서, 편지 등 100여 권의 문헌을 섭렵했다. 기존 주류 역사학에서 잘 다루지 않은 매너를 심층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저작이다. 보수주의의 대부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는 매너가 법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매너는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야만으로 만들거나 세련되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양 문화에선 수많은 매너가 존재한다. 책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 매너는 덕을 갖춘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이를 구별하는 표지였다. 하지만 로마의 키케로가 등장하면서 매너는 계급적 구별 짓기의 수단이 되어갔다.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엘리트가 갖추어야 할 요소로 매너를 처음 언급했다. 이후 중세 유럽에선 프랑스의 궁정 예절이 매너의 근간이 됐지만, 18세기 산업화와 더불어 귀족이 아닌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면서 ‘소탈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영국식 젠틀맨 매너가 주류를 이뤘다. 20세기 들어서는 계급적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사회적 구별 짓기의 단위가 계급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책은 매너가 사회 엘리트의 전유물에서 벗어난 만큼 모두에게 적용되는 의미와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역설한다. 매너는 자신과 남에 대한 존중이자, 그 존중을 행동으로 주고받는 기쁨이기도 하다. 저자는 “좋은 매너는 더 나은 관계를 만들고, 더 좋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평화로움을 창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44∼45쪽)》 한강이 2021년 발표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유독 눈 내리는 장면이 자주, 그리고 생생히 묘사돼 있다.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친구 인선의 제주 집을 향해 눈보라가 휘날리는 악천후를 뚫고 가는 장면은 한여름에 읽어도 몸이 시릴 정도. 작품에서 눈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을 잇는 중요한 상징이다. 한강은 2021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눈은 죽음과 삶 사이, 인간의 어둠과 빛 사이를 가득 채우는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한강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작별’에 이어 눈 3부작으로 이 작품을 구상했다. 그러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쓴 후 그 연장선상에서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하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폭력적인 사회에서 희생된 개인의 고통에 이어 ‘사랑’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 한강은 2022년 펴낸 산문 ‘출간 후에’에서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야 했다.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도 함께 느꼈다고 말하는 바로 그 고통을. 그 생생한 고통은 대체 무엇을 증거하는 걸까? 설마, 그건 사랑인가? 지극한 사랑에서 고통이 나오고, 그 고통은 사랑을 증거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 사랑에 대한 다음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썼다. 사실 독자들 사이에서 한강의 소설은 죽음과 고통에 대한 극한의 묘사로 인해 완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부장제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그린 ‘채식주의자’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그린 ‘소년이 온다’ 등이 특히 그렇다. 이에 비해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극한 사랑’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한결 순화된(?) 표현 덕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읽힌다. 10일(현지 시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신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어떤 책을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추천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한강은 이날 “내 생각에 모든 작가는 자신의 가장 최근 작품을 좋아한다. 제 가장 최근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유를 밝히면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가장 비중 있게 논평했다. 한림원은 “1940년대 후반 한국 제주도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의 그림자를 들춘다. 압축적이고 정확한 이미지로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집단 망각에 빠진 상태를 드러내려고 끈질기게 시도한다”고 평했다. 또 악몽 같은 이미지, 진실을 말하려는 증언 문학의 사이를 독창적으로 오간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11월 프랑스 4대 문학상인 메디치 외국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경하의 꿈 장면으로 시작한다. 눈 내리는 벌판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묘비처럼 심겨진 장면이다. 그런데 갑자기 발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경하는 무덤들이 쓸려 가기 전에 유골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잠에서 깬다. 경하는 이 꿈이 자신의 전작에서 다룬 학살에 대한 것으로 여기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친구 인선에게 이를 털어놓는다. 이에 인선과 함께 꿈과 연관된 영상을 제작하기로 하지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닥쳐 수년간 일이 진척되지 못한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경하는 목공 작업 도중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실려간 인선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는다. 자신의 제주 집에 내려가서 혼자 남은 ‘새’를 구해달라는 것. 그 길로 제주로 향한 경하는 폭설에 휩싸여 눈길을 오르다 길을 잃고 어둠에 갇힌다. 겨우 도착한 인선의 집에서 경하는 70년 전 민간인 학살에 얽힌 인선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접한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어린 시절 부모와 동생을 한꺼번에 잃고 오빠마저 행방불명이 된 것.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87쪽) 그 열세 살 아이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오빠의 행적을 쫓으며 끝까지 사람과 삶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 빛과 어두움 사이를 가르며 느릿하게 떨어지는 눈송이 속에서 떠나간 자를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이 정심으로부터 인선에게로, 인선으로부터 경하에게로 스며든다. 이 작품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한 한강의 말을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강은 메디치상 수상 소감에서 “제가 닿고 싶은 마음이 끝없는 사랑, 작별하지 않는 마음이었다”고 밝혔다. 작품 제목에도 이런 작가의 각오가 담겼다. 한강은 출간 간담회에서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껴안고 계속 나아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품 속 세 주인공 경하, 인선, 정심은 모두 통증을 겪는다. 경하는 위경련과 편두통으로 시달리며, 인선은 손가락 절단 사고 이후 회복을 위해 3분에 한 번씩 봉합 부위를 바늘로 찌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정심은 계속되는 학살의 악몽을 잊기 위해 전기요 밑에 실톱을 깔고 잔다. 이들에게 통증은 죽은 자를 기억하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통과의례다. 그렇기에 이들은 고통을 끌어안고 삶을 지속하기로 한다. 그것이 바로 “고통이 따르지만 죽음 대신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인선)이기 때문이리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 10일(현지 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림원은 한강의 문학이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들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이라는 비극적 역사에 무너진 개인의 트라우마를 특유의 시적 문체로 그려낸 그의 작품을 세계 문학계가 높게 평가한 것이다. 문학은 단순히 작가 개인의 감상만 읊은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작가가 자라고 배우며 겪은 국가사회의 역사와 전통이 녹아 있다. 한강이 노벨상 발표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어로 된 책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배경이다. 그렇기에 한국인 첫 노벨 문학상 수상은 근대화 이후 1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국 문학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를 담아 한강의 문학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안내서’를 마련했다. 그에게 부커상을 안기며 국제적 명성을 가져온 ‘채식주의자’와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강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주면서도 대중들의 관심이 높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국내외 한강 열풍을 점검하고 해외 번역자들의 인터뷰도 담았다.숫자로 보는 한강의 기록. (10월 11~15일 기준)5일 최단 기간 100만 부 돌파105만 부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닷새간 누적 판매량(전자책 포함)153억 원 총 판매 수익(예상치)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체내에 세포량이 많으면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 기존 과학계는 세포량이 많으면 암세포로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몸집이 큰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봤다. 실제로 개도 몸집이 작은 소형견보다 대형견의 발암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동물 중 몸집이 거대한 코끼리나 고래의 발암 확률이 인간에 비해 더 높지 않을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다. 코끼리가 살면서 암에 걸릴 확률은 5%도 안 돼 인간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종으로 범위를 넓혀 보면 신체 크기와 암 발생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이른바 ‘페토의 역설(Peto’s paradox)’이 제기된 이유다. 과학자들은 최근 연구를 통해 코끼리가 p53 단백질과 종양 억제 유전자 TP53으로 구성된 항암 시스템을 갖춰 암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국 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 동물들의 생물학적, 유전학적 사례들을 통해 첨단 기술 문명으로 야기된 인간의 각종 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생활 방식 등을 제시하고 있다. 상대방과 어떻게 소통할지, 어떻게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지 등 생활 속 교훈을 동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것. 예컨대 저자는 인간이 코끼리와 같은 항암 시스템을 갖추기 전까지 DNA 돌연변이를 막기 위한 생활 속 팁을 소개한다. 햇빛 등 자외선 노출을 피하고, 비타민제 등 영양제의 과도한 섭취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안녕이라 말해 본 사람/모든 걸 버려본 사람/위로받지 못한 사람/당신은 그런 사람/그러나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2007년 한강이 직접 가사와 곡을 쓰고 노래까지 부른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중 일부다. 차분히 읊조리듯 부르는 한강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그가 그해 펴낸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사진)의 부록으로 실린 CD 음반에 담겼다. 한강은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멜로디를 녹음했다가 전문가의 도움으로 악보로 옮기는 과정을 거쳐 10곡을 만들어 냈다. 장르는 첼로, 피아노 등의 반주가 곁들여진 팝 발라드. 그는 2019년 인촌상 수상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에 만들고 불렀던 노래들을 담담하게 다시 녹음해 보고 싶다. 그사이 새로 만든 노래들도 넣고, 음반 제목은 오래전 봤던 연극 대사 ‘안아주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짧잖아요’로 하고 싶다”며 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에 곡조가 붙으면 노래가 되듯, 예부터 음악과 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16년 미국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탄 이유다. 한강이 노래뿐 아니라 피아노 연주에 능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렸을 적 종이건반을 누르며 피아노를 배웠다는 한강은 요즘에도 자택에서 종종 피아노 연주를 즐긴다고 한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잠시 머물 당시 숙소가 있는 2층에 어렵사리 피아노를 들여놓았을 정도. 한강은 특히 집필할 때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는 2021년 문학동네 출판사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음악이 가진 정서가 있는데 그 정서가 ‘그래, 나 이것 쓰고 싶었어’라고 문득 깨닫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별하지 않는다’ 집필 당시 들은 노래들을 소개했다. 그중 한 곡이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한강은 “초고를 다 쓰고 택시를 탔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며 “아는 노래고 유명한 노래지 하고 듣는데 마지막 부분의 가사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가사는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 그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제주를 떠올리기 위해 조동익의 ‘룰라비’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제주의 바람이 불고 있으면 했기에 쉴 때 이 음반을 틀어놓고 있으면 제주에 간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고대 로마가 다른 고대 국가들과 차별화되는 요소 중 하나는 권력 승계 과정이었다. 장자 승계 원칙을 따른 중국 왕조나 유럽 중세 왕국 등과는 달리 로마는 황제가 입양자를 후계자로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입양 대상은 조카부터 먼 친척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장자 1인 승계에 비해 훨씬 넓은 인적 풀(pool)을 갖출 수 있었다. 실제로 능력을 보고 양자를 들인 ‘오현제 시기’(네르바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다섯 황제가 통치한 시기)에 로마는 최전성기를 맞았다. 공교롭게도 오현제의 마지막 주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아들 콤모두스(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한 황제)에게 황위를 물려준 순간부터 제국의 쇠락이 시작됐다. 영국의 세계적인 로마사 연구 석학인 저자는 방대한 고대 문헌과 고고 자료를 인용해 로마인의 삶을 복원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전작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이 로마 변방 도시 주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이 책은 로마 권력 심장부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내고 있다. 주요 대상은 기원전 44년 암살당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부터 기원후 235년 암살당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까지 30명의 황제다. 로마는 여러 훌륭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황제 대부분이 암살을 당하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제국 팽창에 따른 1인 권력 체제의 강화가 인간의 탐욕과 맞물려 정치적 비극으로 치달았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던 10일(한국 시간) 오후 소설가 한강(54)은 자택이 있는 서울 종로구 자하문동에서 여느 때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들과 함께했던 저녁 식사를 막 끝내던 참이었다. 스웨덴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오후 8시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있던 마츠 말름 노벨위원회 상임 사무국장이었다. 한국 최초이자 18번째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그렇게 처음 접했다.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발표였다.한강은 이날 수상자 발표 후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너무 놀랐고 영광이다. 지지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나는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다. 나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 뉴스가 한국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떻게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할 것이냐란 질문에 그는 “내가 술은 안 마신다”면서 “전화 통화 후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할 것”이라며 웃었다. 가장 영감을 준 작가에 대한 질문에는 “어릴 때부터 봤던 많은 작가들이 영감이 됐고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그중 한 명인데 그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어릴 때 좋아했고 인간에 대한 내 질문을 그 작품과 연관시킬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모든 작가들은 가장 최근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맨부커상을 안긴 ‘채식주의자’에 대해선 “3년 동안 쓰면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책에 등장하는 적절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 매우 고군분투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강은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에 꾸준히 천착해왔다. 지난해 11월 세계한글작가대회 특별강연에서 그는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쓴 과정을 설명하며 “역사 속의 인간을 들여다본다는 행위는 폭력의 반대편에 서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의 일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중학교 3학년인 동호가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후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한강은 “소설을 쓰기 위해 한 달 정도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증언집을 읽었다”며 “900여 명의 증언을 읽으면서 당시의 상황적인 파편들을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1980년 서울로 온 한강은 자신의 고향에서 5·18이 일어난 것을 보고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인촌상 수상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친 한승원 소설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사방에 널린 책들 속에서 자랐다는 것. 그는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니 현실의 세계가 절대적이지 않았고, 그렇게 두 세계에서 살 수 있었던 점이 유년기의 나를 도와줬다”고 말했다. 소설을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습작기를 거쳐 출판사에 취직한 뒤 3∼4시간씩만 자면서 글을 썼다. 그는 뜨거움이나 열정보다 끈기로 소설을 써왔다고 했다. 그는 집필 땐 칩거한 채 작품에만 오롯이 몰두하는 작가다. 한강은 “지금까지 쓰고 싶은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왔다. 그 결과는 통제 밖의 영역”이라며 “오직 쓰는 과정에 있는 사람만이 작가이며, 다행히 지금 쓰고 있으니 나는 아직 작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따금 그는 소설 밖 세계를 꿈꾸기도 한다고 했다. “전에 만들고 불렀던 노래들을 담담하게 다시 녹음해보고 싶습니다. 그사이 새로 만든 노래들도 넣고요. 음반 제목은 오래전 보았던 연극의 대사인 ‘안아주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짧잖아요’로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백일몽일 뿐이지만 언젠가 그런 여유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일제가 도로를 놓아 갈라놓은 서울 창경궁∼종묘 사잇길이 산책로로 개방된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9일부터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있는 율곡로 궁궐 담장길 쪽 출입문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창경궁 율곡로 출입문과 종묘 북신문이 열려 건너편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조선시대 창경궁과 종묘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1932년 일제가 사잇길에 도로(율곡로)를 개설해 갈라놓았다. 일각에선 풍수지리상 창경궁에서 종묘로 흐르는 북한산 주맥을 끊기 위해 일제가 일부러 도로를 냈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시는 2010년 11월부터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 사업’을 시작해 기존 율곡로를 지하로 옮기고, 그 위에 산책로를 2022년 만들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가 시간제 관람으로 운영되는 점을 감안해 사잇길 출입문을 제한적으로 개방할 방침이다. 왕실제례를 올린 종묘는 조선시대에도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국가유산청은 9∼13일 열리는 ‘2024 가을 궁중문화축전’ 기간에는 사잇길 출입문을 매일 특별 개방할 예정이다. 이후에는 매주 토·일요일, 공휴일,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만 연다. 단, 사잇길에서 창경궁이나 종묘로 들어가기 위한 관람권은 따로 발권해야 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전근대 시절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 주변을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 과학기술 혁명에 따른 교통과 도시의 발달이 이뤄진 뒤에야 활동 반경이 급격히 넓어졌다. 지구상 어디라도 가지 못하는 곳이 없어졌다. 그만큼 많은 경험을 누리고,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됐지만, 현대인들의 고독과 불안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일까. 이에 대해 영국 유명 작가로 국내에도 팬층이 두꺼운 저자는 이 책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대인이 갖는 고통의 원인이 현대사회 자체에서 기인한다는 것. 과학 발달로 인한 가치관의 붕괴가 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맞물려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얘기다. 예컨대 개인의 모든 성취를 신과 결부시킨 전통사회에선 사람들이 자신의 실패를 자기 존재의 결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을 믿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실패는 오롯이 자신에게 귀결되며, 구원의 희망조차 품을 수 없게 됐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이 전통사회의 10배에 이르는 현대사회의 자살률에 주목한 이유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현대가 일종의 질병이며,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홀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비록 각자가 괴로움을 겪고 있긴 해도, 우리가 처한 상황은 우리 마음이 아니라 이 시대의 산물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넥스트 차이나 vs 빈곤율 60%’. 오늘날 인도의 모순된 두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샨터누 너라연 어도비 CEO 등 인도는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주름잡는 핵심 인재의 바다다. 인도 공과대를 졸업한 인재들을 중심으로 116개의 유니콘 기업이 활약하며 한때 중국 경제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인도의 또 다른 면은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14억 인구의 빈곤율이 60%에 이르는 가운데 10억 명의 생산연령인구 중 3억3000만 명이 구직 활동조차 포기했다. 첨단 이미지와는 달리 인도 경제활동인구의 46%는 여전히 농업에 종사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로 인도 출신인 저자는 신간에서 인도 경제가 표류하는 이유를 정치 부패와 도덕의 실패에서 찾고 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시크교 등이 신봉되는 인도에서 정치인들이 힌두 민족주의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02년 구자라트주 주지사로 재직할 당시 힌두교도들의 무슬림 학살 및 강간을 묵인한 것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인도에는 공동의 발전을 중시하는 공공 윤리가 부재하다고 말한다. 공공 윤리의 부재는 사회 규범 준수나 정치적 책임 의식의 약화를 초래했다는 것. 공익보다 표를 우선시하는 정치 포퓰리즘이 고개를 들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경종을 울리는 지적 아닐까.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970년대 초반. 서울 곳곳 쌀가게에선 ‘007 작전’이 벌어지곤 했다. 몇 해 묵은 ‘정부미(政府米·정부가 수매하는 통일벼)’보다 품질이 좋은 ‘일반미(一般米·일반 품종의 쌀)’를 찾는 손님과 주인 사이에 벌어진 숨바꼭질이다. 주인은 낯선 손님에겐 품절을 외쳤지만, 단골 손님에겐 은근한 눈짓을 주고받은 뒤 한밤중 일반미 쌀가마니를 몰래 배달해줬다. 정부 단속에 걸리는 상황에 대비해 한 가마니를 세 자루로 나눠 세 번 배달하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당시 쌀값 급등으로 인해 박정희 정부가 내놓은 ‘일반미 판매 금지령’이 낳은 ‘웃픈’ 풍경이다. 정부미는 개량종(통일벼)으로 수확량이 많아 값이 쌌지만, 식감이 좋지 않고 수분 함량도 낮아 맛이 떨어졌다. 이에 찰진 식감을 살려 품질은 좋지만 비싼 일반미에 수요가 몰리면서 쌀값이 치솟자 정부가 규제에 나선 것이다.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유행하며 매년 쌀 소비량이 줄고 있는 요즘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30대 중후반의 젊은 연구자 5명이 최근 내놓은 ‘소비의 한국사’(서해문집)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 책은 쌀, 술, 커피, 음반 등 다양한 소비재의 내력을 훑으며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는 흥미로운 시도를 담고 있다. 정치사나 사회사 위주의 기존 역사서술이 대중들의 삶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미시사, 생활사 연구가 활발하다. 영국 역사학자 메리 비어드가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글항아리)에서 고대 로마 변방도시 주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게 대표적. 공저자 중 한 명인 김재원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강사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를 그린 역사책이 별로 없다는 점에 착안해 동료 연구자들과 집필에 나섰다”고 말했다.책에선 쌀에 대한 한국인의 갈망이 눈길을 끈다. 일제의 쌀 수탈과 6·25전쟁의 기아에 시달린 한국인의 쌀밥에 대한 집착은 197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폭발하게 된다. 실제로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65년 120.9kg에서 1970년 136.4kg으로 12.8%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지금은 현격히 줄어 지난해 쌀 소비량은 1인당 56.4kg). 이에 따라 80kg짜리 쌀 한 가마니(일반미) 가격은 1970년 5784원에서 1975년 1만8367원으로 3배 넘게 급등했다. 쌀값 오름세에 놀란 박정희 정부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의 4대 도시에서 값싼 정부미만 팔도록 강제하며 서울 시내 70여 개 쌀가게에 단속원을 상주시켰다. 하지만 일반미를 찾는 대중의 입맛을 길들일 수는 없었다. 정부미를 일반미로 속여 팔거나, 쌀값을 올려 받아 정부에 적발된 건수는 1972년 두 달 동안에만 513건에 달했다. 쌀에 대한 집착이 기아의 역사가 낳은 산물이라면, 커피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평등주의’ 시대 정신이 반영된 소비재라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한국 대중은 6·25전쟁 전후 미군 PX에서 빼돌린 인스턴트 커피를 통해 처음 커피를 접했다. 유럽에서 커피가 17세기 후반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특권층의 위세품으로 소비된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1890년 처음 발명돼 제2차 세계대전 때 본격적으로 소비된 인스턴트 커피는 원두의 진한 향을 담지 못하는 등 품질이 떨어졌지만, 대량생산으로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1972년 국내 인스턴트 커피 150g짜리 제품 값은 750원으로 한 잔에 10원도 되지 않았다(당시 다방 커피 한 잔 값은 50∼60원).흥미로운 건 커피가 한국인들의 일상에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냉전이라는 역사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1970년 동서식품이 미국 제너럴푸드와 손잡고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출시한 과정이 대표적. 당시 ‘미제 커피’를 최고로 치던 국내 소비시장에서 해외 커피회사와의 합작은 필수였다. 이에 동서식품은 미국뿐 아니라 그 동맹국인 일본, 서독, 이스라엘로부터 자본, 인력, 장비를 각각 지원받아 커피를 선보일 수 있었다. 공저자인 김동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농업국가 한국에 커피 제조업 투자를 결정하기는 어려웠지만 냉전시대 의사결정은 경제적 동기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디즈니 인기 캐릭터 미키 마우스가 한국 문화유산과 만난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와 함께 28일부터 덕수궁 돈덕전에서 ‘미키 인(in) 덕수궁: 아트, 경계를 넘어서’ 전시를 선보인다고 23일 밝혔다. 디즈니 캐릭터 ‘미키와 친구들’이 덕수궁 돈덕전을 찾아 왕실 유산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예술가 9명이 작품으로 펼친다. 우나영 작가(필명 흑요석)는 ‘미키와 친구들’이 한국을 여행하며 덕수궁 등 여러 국가유산을 체험하는 모습을 6폭 병풍에 담아 보여준다. 장수를 기원하는 궁중 회화 십장생도(十長生圖)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전통 혼례복을 입은 미키와 미니, 한복을 입은 도널드 덕이 등장한다. 김세동 작가는 궁궐 앞에서 디즈니 캐릭터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디지털 출력(프린팅) 작품으로 선보인다. 부원 작가는 연꽃 위에 서 있는 디즈니 캐릭터를 도자기로 표현했다. 현대미술가 장승진 작가와 안유진 단청장 이수자는 미키의 손을 소재로 한 협업 작품을 발표한다. 새 위에 디즈니 캐릭터가 걸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강재원 작가의 풍선 조형물이 덕수궁 연지에 설치된다. 전시 기간 덕수궁 곳곳에 디즈니 캐릭터 조형물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촬영 구역이 마련된다. 그룹 악뮤(AKMU)의 이수현이 덕수궁 석조전을 배경으로 디즈니 주제곡을 새롭게 해석해 촬영한 뮤직비디오가 국가유산청 유튜브에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핼리팩스는 모든 나치 지도자가 마음에 들었다고 털어놓았어요. 심지어 헤르만 괴링까지도요.” 영국 정치인 헨리 채넘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화론자였던 핼리팩스 영국 외교장관과의 대화를 회고한 내용이다. 핼리팩스가 나치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이들이 진정으로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핼리팩스는 나치의 재무장이 가속화될 때도 공동의 적(소비에트 공산주의)에 맞서 영국이 독일과 협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역대 최악의 전쟁으로 기억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불과 21년 만에 2차 대전이 터진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1차 대전에 패배한 독일에 대한 과도한 배상금, 경제 불황, 나치 의도에 대한 연합국의 오인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당시 시대상은 한 가지 요인으로만 설명하기 힘든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어서다. 전간기 국제관계사 연구 권위자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공산주의에 대한 연합국의 과도한 두려움과 혐오가 2차 대전 발발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을 편다. 반공주의를 앞세운 파시즘에 현혹된 영미권 자본주의 세력이 초기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는 것.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자국에서 권력을 얻는 과정과 스페인 내전, 만주사변 등 일련의 변곡점에서 국제 공산주의가 변수가 됐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의 승리, 이탈리아·독일에서 파시즘의 권력 쟁취 등 정치 불안이 투자를 위축시켜 극단주의가 부상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로 이어진 것도 2차 대전 발발에 영향을 미쳤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016년 리우 올림픽 펜싱 에페 남자 개인 결승전. 이전 올림픽에서 메달 2개를 딴 백전 노장과 맞붙은 2라운드 점수는 13 대 9. 넉 점을 뒤진 한국의 박상영이 마지막 3라운드를 앞두고 갑자기 혼잣말을 되뇐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마지막 3라운드 14 대 10으로 한 점만 잃으면 경기가 끝나는 위기의 순간. 가슴을 향해 찌르는 연속 공격으로 동점을 이룬 박상영이 기습 공격으로 1점 차 우승을 차지했다. 긍정의 힘이 대역전의 드라마를 쓴 원동력이 된 것. 이 책은 스포츠 정신의학자로 올해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의 심리상담을 맡은 저자가 평창·소치·베이징 겨울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쇼트트랙 선수 김아랑과 공저한 심리 안내서다. 이론과 실전에 각각 경험이 많은 두 전문가가 쓴 책답게 실생활에서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실질적인 팁을 제공한다. 책에서 김아랑은 박상영처럼 결정적인 순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쇼트트랙은 언제나 넘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고 그게 불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스케이트를 잘 타는 걸 생각하지, 넘어지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요한 면접이나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저자들이 꼽은 불안 완화법을 참고할 만하다. ‘첫째,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는다. 둘째, 자기만의 시선 포인트를 정해 둔다. 셋째, 신호가 되는 짧은 단어를 사용한다. 넷째, 심리적 안정을 주는 특정 행동을 만든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35년 전 미국 워싱턴에 들어선 대한제국 공사관(사진)이 미국 국가사적지(NRHP)로 지정됐다. 11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따르면 1889년 워싱턴에 설치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이 미국 국가사적지로 등재됐다. 국가사적지는 미국 정부가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나 구조물, 장소 등을 보존하기 위해 지정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소유한 역사적 장소가 미국 국가사적지로 등재된 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은 “한미 외교의 현장으로 미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라는 점이 인정됐다”고 밝혔다. 백악관에서 1.5km 떨어진 이 건물은 조선이 서구권에 처음 설치한 외교공관이다.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 정치인 세스 펠프스의 저택을 매입해 1889년 2월 주미 공관으로 사용했다. 앞서 조선은 1882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뒤 1887년 박정양을 초대 주미 전권공사로 보냈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일제가 이 건물을 판 이후 군인 휴양시설 등으로 쓰였다. 2012년 우리 정부가 사들여 역사전시관으로 복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웹툰 종주국’ 한국에서 세계 웹툰 축제와 시상식이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시, 한국콘텐츠진흥원, 서울경제진흥원과 함께 26∼29일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 등에서 ‘2024 월드 웹툰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웹툰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지식재산권(IP)이 드라마, 영화로 확장되는 가운데 웹툰 팬들을 위한 축제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페스티벌은 웹툰 기업들의 팝업스토어에서 관련 상품을 구매하고 체험하는 방식으로 기획됐다. 축제 기간 통합 거점 1곳과 인근의 기업 특화관 3곳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팝업스토어가 열린다. 통합 거점 1, 3층에서는 웹툰 제작사의 팝업스토어와 특별전이 개최되고, 기업특화관에선 웹툰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이 밖에 인공지능(AI) 캐리커처, 증강현실(AR) 포토카드 등 실감형 콘텐츠 체험과 웹툰 IP 연계 사진 체험, 웹툰 작가 토크콘서트, 라이브 드로잉쇼도 진행된다. 26일에는 우수 웹툰 작품을 선정하는 ‘2024 월드 웹툰 어워즈’가 에스팩토리에서 열린다. 문체부는 국제 공모와 어워즈 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총 104편의 웹툰을 심사해 본상 수상작 10편과 특별상 3편을 선정했다. 본상 수상작은 ‘전지적 독자 시점’ 등 10편이 뽑혔으며, 대상은 시상식 때 발표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974년 8월 30일 낮 12시 37분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입구에 시한폭탄이 설치돼 있다”는 것. 4분 후 같은 내용의 전화가 또 왔지만, 장난전화로 생각한 교환원은 이를 무시했다. 이로부터 4분 후 실제 폭탄이 터지면서 8명이 사망하고 376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다. 폭탄 테러를 일으킨 단체는 극좌 계열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며 태평양전쟁 시절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을 응징하겠다고 벌인 일이었다. 신간은 일본의 유명 논픽션 작가가 테러범 중 한 명인 다이도지 마사시(2017년 옥사)와 그의 가족들을 인터뷰하며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 쓴 것이다. 그가 책을 쓰게 된 배경이 독특하다.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다이도지가 저자가 쓴 ‘두붓집의 사계’를 보고 “깊이 감동했다”며 편지를 보내온 것. 1969년에 쓰인 이 책은 가업으로 두붓집을 물려받은 저자가 자신의 일상을 하이쿠(일본의 짧은 시)로 적은 것이었다. 무고한 인명을 숨지게 한 다이도지는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인민을 구성하는 한 사람의 일상이나 개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테러 직후 희생자들을 일본 제국주의에 기생해 살찐 식민주의자라고 단정한 과거를 참회한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건 인명을 살상하는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테러범들도 이 점에서 참회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일제 식민주의에 대한 속죄 의식만은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正殿) 중 가장 오래된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내부가 26일부터 공개된다. 정전은 궁궐 내 으뜸 전각으로 국왕 즉위식이나 신하들과의 하례, 외국 사신 접견 등의 주요 국가 의식을 치른 곳이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매주 목∼일요일에 창경궁 명정전 내부 특별관람을 실시한다고 4일 밝혔다. 국보로 지정된 창경궁 명정전은 성종 15년(1484년) 처음 건립됐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돼 광해군 8년(1616년)에 재건됐다. 명정전 가운데에는 임금이 앉는 어좌(御座)가 있고, 그 뒤로 임금이 다스리는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악도’ 병풍이 설치돼 있다. 다른 궁궐들의 정전이 남향으로 설계된 데 비해 명정전은 풍수지리 등을 감안해 동향으로 지어졌다. 명정전 특별관람 기간 중 하루 2번(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30분) 전문 해설사의 설명이 진행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