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마음이 울적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즐겨 찾는 곳이 있다. 도시 근교에 있는 고인돌이다.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 이라 불릴 만큼 전국 곳곳에 고인돌이 분포돼 있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고인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훨씬 이전인 청동기 때부터 조성돼온 무덤 양식이다. 돌을 즐겨 사용하는 무덤 문화는 중국 만주 지역 요하(遼河)를 중심으로 한 북방문화권에서 주로 발견된다. 만리장성 이남의 중원 문화권에서 주로 흙을 주재료로 삼아 무덤을 만들어온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문화 현상이다. 그러니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고인돌은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우리 고유문화임을 말해준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한반도에만 4만여 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실제는 그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고인돌의 50%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는 셈이다. 특히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군은 독특한 형태와 배치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기도 하다. 고인돌에는 대단히 강력한 에너지 장이 형성돼 있다. 고인돌의 기운(에너지 파장)이 미치는 곳에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절로 상쾌해진다. 응어리졌던 마음이 어느새 풀려나가는 느낌도 받게 된다. 기운에 민감한 이들이라면 에너지가 몸속에 충전되는 듯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은 명당 터에서 주로 느껴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고인돌 만든 이는 최고의 풍수 실력자 고인돌 문화를 퍼뜨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정교한 풍수 논리를 알지 못했어도 본능적으로 하늘과 땅의 기운을 읽을 줄 알았던 것 같다. 기자가 답사한 전국 각지 고인돌 중 90% 이상은 명당 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원래 있던 터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은 고인돌에서는 명당 기운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로 보아 고인돌의 명당 기운은 돌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터와 돌의 어울림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땅 기운이 개입된 유적이나 유물은 원래 터에서 벗어나는 순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문화재 당국은 깊이 새겨볼 일이다. 고인돌이 명당 터에 조성됐다는 점은 동북아시아에서의 풍수 기원을 밝히는 데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청동기 시대에 고인돌을 조성한 이들이 중국 한나라(BC 206~AD 9년) 이후 발전한 이론 풍수학을 알았을 가능성은 없다. 즉 고인돌의 주역들은 전승돼 온 문자 기록 등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과 깊이 교감하면서, 자연의 기운이 가장 밀집된 필드에 고인돌을 조성해 놓았던 것이다. 그것도 중국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한반도에서 말이다. 사실 풍수는 공간의 기운을 읽고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보면 고인돌을 조성한 주역들은 풍수에서 최고의 경지라고 일컬어지는 ‘신안(神眼)’이 열린 실력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수의 눈으로 볼 때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한반도에서 조성된 고인돌은 크게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뉘는데, 고인돌 기운에서도 차별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북쪽 지역으로 올라갈수록 공중에서 땅 쪽으로 에너지가 하강하는 기운, 즉 천기(天氣) 공간(터)에 고인돌이 많이 배치돼 있다. 이처럼 천기를 집중적으로 응용한 집단이 고인돌 시대 이후에 등장한 고구려 사람들이다. 중국 지안(集安)의 광개토대왕릉이나 장군분(장군총), 고분벽화가 발견된 무용총 등 고구려 돌 무덤들은 대부분 천기에 맞추어 묘를 조성해놓고 있다. 시신을 안치한 무덤방이 지상 7~10미터 높이에 배치돼 있는 것도 직접적으로 천기를 받아들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반면 남쪽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땅 밑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지기(地氣)에 맞추어 고인돌을 조성한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풍수는 후대로 내려올수록 이러한 지기 중심의 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물론 천기와 지기와 함께 교차되는 곳에 고인돌을 배치한 사례도 적지 않은데, 천기이든 지기이든 모두 명당 터임은 분명하다. 한편 고인돌 중 일부는 무덤 용도 이외에 성스러운 제례 공간으로도 사용됐다는 특징도 보인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고인돌(양평군 양서면)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이 고인돌 덮개돌에는 북두칠성 등 별자리를 상징하는 구멍(성혈)이 인위적으로 조성돼 있다. 고인돌이 하늘에 제를 올리는 천제단(天祭壇) 혹은 별자리를 관측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점성대(占星臺) 역할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이 천체의 움직임과 관련이 깊다는 점은 외국의 고인돌에서도 많이 목격된다. 유럽 지역 대서양 해안가를 중심으로 산재한 고인돌은 대체로 동지 일출 방향으로 무덤방이 배치돼 있고, 덮개돌에 별자리 패턴의 홈이 새겨져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종주국답게 지배계급의 무덤용, 천제를 지내는 제사용, 별자리를 측정하는 천문 관측용 등 다양한 형태로 고인돌 문화가 발전해왔다. 게다가 일부 한반도 고인돌에서는 백인 계통의 유골이 발견돼 고인돌 문화가 매우 국제적으로 퍼져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남한강 최상류인 정선 아우라지 고인돌, 제천 황석리 고인돌(현재 수몰된 충주호), 평창 하리 고인돌 등에서는 백인 형질의 인골이 출토돼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고인돌은 아직도 밝혀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아무튼 고인돌은 그 역사성이나 문화성이나 종교성을 볼 때 무의미하게 지나쳐 볼 곳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고인돌은 ‘에너지 충전소’ 역할을 하고 있다. 고인돌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기운에 취해 덩실덩실 춤을 춰도 좋고,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해도 좋고, 그저 멍때리기만 해도 좋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를 위로해주고, 충전시켜 줄 명당 고인돌 하나쯤은 삶의 동반자로 삼아보면 어떨까.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인공의 달’ 윤달올해는 3월과 4월 사이에 윤달이 들었다. 3년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윤달은 음력과 양력의 계절적 시차를 보정하기 위해 만든 달이다. 음력은 지구 둘레를 도는 달의 12개월 주기(354일)를 계산한 역법이고, 양력은 태양을 한바퀴 도는 지구의 1년 주기(365.25일)를 계산한 역법이다. 두 역법은 매년 11일씩 오차가 생긴다. 3년 차가 되면 약 1달 정도 차이가 발생하므로 음력에서 ‘가상의 1달’인 윤달을 만들어 양력과 맞출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윤달을 각별히 생각했다. 이 때가 되면 조상 묘를 손질 혹은 이장하거나, 수의를 준비하거나, 주거지를 옮기는 일이 잦았다. 윤달에는 무슨 일을 해도 뒤탈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이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윤달이 든 해에 묘를 개장(改葬)한 건수가 윤달이 없는 해보다 무려 76.7% 높게 나타났다. 굳이 윤달을 기다려 집안 대사를 치르려 한 것은 자칫 때와 장소를 잘못 선택해 신의 노여움을 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달만큼은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공달’이기에, 신들도 인간사에 개입하는 일을 멈추고 쉰다고 해석했다. 윤달에는 아무 때든, 아무 방위든 인간이 마음대로 해도 신이 까탈을 부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사실 윤달은 풍수학과는 별 관련이 없다. 윤달에 관한 이야기는 민간 풍속에서 나온 속설일 뿐이다. 풍수에도 이사하거나 이장할 때 길일(吉日)과 흉일(凶日)을 따지긴 한다. 그러나 이는 윤달과 같은 믿음 체계가 아니라 장소와 사람과 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동양철학에서 나온 계산법이다. ● 일본인이 더 무서워한 귀문 방위 윤달이 지금도 유행하는 이유는 시간이나 공간에는 신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동양인들의 사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간의 영역을 상징하는 방위(方位)에서 이같은 믿음이 강했다. 방위를 중심으로 길흉을 따지는 이기(理氣) 풍수학에서는 8방위(동·서·남·북·북동·동남·남서·서북) 중 북동(北東)과 남서(南西)를 경계의 대상으로 꼽는다. 두 방위는 귀신이 들락거리는 방위라고 하여 귀문방(鬼門方)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산 사람들이 이 방위에서 자칫 잡신으로부터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 두 방위는 서로 극성(極性)이 반대되는 기운이 부딪쳐 교란되는 곳이다. 이를 시간으로 치환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과 해가 가장 높이 뜨는 남쪽은 양(陽,+)의 시간대 영역이다. 반대로 해가 지는 서쪽과 완전히 해가 저문 북쪽은 음(陰,-)의 시간대 영역이다.8방위북북동동동남남남서서서북음양(陰陽) 극성 세기- - -- ++++++++--- -시간대한밤새벽동틀녘오전한낮오후해질녘 저녘4계절겨울환절기봄환절기여름환절기가을환절기따라서 북동 방위는 음(북)의 강력한 기운이 양(동)의 기운으로 전환하는 영역이고, 남서 방위는 양(남)의 강력한 기운이 음(서)의 기운으로 바뀌는 시간대다. 이처럼 서로 극성이 다른 기운이 충돌하기 때문에 변화가 심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동남과 서북 방위는 음양이 바뀌는 충돌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다. 풍수에서는 양기와 음기가 서로 부딪치고 기의 교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흉하게 본다. 당연히 북동과 남서의 귀문방을 꺼릴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북동 방위를 대표적인 귀문방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양택 풍수의 대표적 고전서 ‘황제택경’에서는 귀문방에 대해 무시무시하게 설명한다. “귀문 방위는 집 안의 기운을 막는 곳이다. 이곳을 침범해 치우치게 되면 반신불구가 되거나 종기가 나는 등의 재앙이 생긴다.” 실제로 옛 사람들은 집의 중심을 기준으로 북동 방위 쪽으로는 불결한 시설물을 두는 것을 경계했다. 화장실·하수구·쓰레기통 등이 이 방위에 놓일 경우 집안에 액운이 미치기 쉽다고 보았던 것이다. 또 북동 방위의 건물 구조가 방정하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것도 좋지 않게 여겼다. 일본은 귀문방에 대해 우리보다 더 큰 경계심을 가졌다. 11세기 헤이안 시대에 등장한 ‘작정기(作庭記)’는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금기사항 등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는데, 귀문 방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오척(五尺) 이상의 돌을 북동쪽에 세우지 말라. 귀문에서 귀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높이가 4~5척 되는 돌도 귀문에 세우지 말라. 이는 유령돌(靈石)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악귀들이 들어오는 것을 재촉해 사람들이 오래 거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 풍수는 귀문 방위에 절이나 신사 등을 설치하는 등으로 귀신의 작동을 진압하려고 했다. 우리나라 전통 사찰에서도 귀문 방향을 고려한 흔적이 나타난다. 전통적인 칠성각(七星閣)의 경우 밤하늘에 북두칠성이 나타나는 북동방을 뒷배경으로 하고, 새벽녘 북두칠성이 사라지는 남서방을 바라보도록 배치한 것이다. 즉 귀문방에 북두칠성의 신들을 모셔서 그 신령한 기운을 중생에게 베풀도록 적극적으로 귀문 방위를 활용한 구조다. 귀문 방위는 현대인들도 주의해서 나쁠 게 없다. 서울 우면동의 한 아파트를 보자. 이 아파트 단지의 어느 동은 모두 현관이 남서 방향으로 있고, 마주 보이는 북동 방위로는 화장실이 배치된 구조다. 화장실 문을 열면 역한 악취가 풍겨올 정도다. 집 주인은 화장실을 늘 깨끗이 하려 하지만, 냄새가 유난히 심하고 환기도 잘 안돼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세면대에 설치된 배수구 등도 툭하면 막힌다고 했다. 이 집으로 이사한 후 꾸준하던 사업도 예전에 비해 못하다고까지 말했다. 귀문방의 해로움을 겪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북동 귀문방이 화장실로 설계된 이상 최대한 위생적으로, 그리고 정결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북동쪽은 집안에서도 가장 온도가 낮아 냉기가 심한 곳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대부분 창과 문을 닫고 생활하므로 공기가 잘 순환되지 못해 악취 등이 더 심할 수 있다. 그리고 남서 귀문 방위로는 현관이 있으므로 현관 역시 신발장을 정리하는 등 깨끗하게 해야 한다. 정갈하고 방정한 상태가 신이 출입하는 귀문방의 해로움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귀문방은 외식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일수록 경험적으로 느끼는 방위이기도 하다. 귀문방으로 사람을 들이면 삿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귀문방을 피해 출입구를 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북동이나 남서의 귀문방은 기의 교란 현상이 심한 곳이므로 주의를 하는 것이 좋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수가 부쩍 늘고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특히 일본, 대만, 홍콩, 태국 등 아시아권 입국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관광 정보를 어떻게 접촉하고, 또 한국에서 무엇을 즐기려고 할까. 이에 대해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2023∼2024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제작된 ‘한국관광 100선’ 리플릿이 한국 방문시 꼭 가봐야 할 필수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 리플릿은 한국관광공사 32개 해외지사는 물론이고 국내외 관광박람회를 통해 배포되고 있다. ‘한국관광 100선’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꼭 가봐야 할 한국의 대표 관광지로 선정한 100곳을 가리킨다. 올해 선정된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은 유적지, 건축물, 유원시설 등 문화관광 자원 61곳, 숲 바다 습지 등 자연관광 자원 39곳이다. ‘한국관광 100선’은 한국의 대표적 관광지라는 위상을 확고히 구축했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실시한 인지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응답자의 80.5%가 여행지를 선택할 때 ‘한국관광 100선’ 선정 여부가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2013년부터 시작된 ‘한국관광 100선’은 2년 단위로 지금까지 6차례 선정이 이뤄졌다. 선정 때마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기존 100선으로 선정된 관광지를 포함해 지방자치단체 추천 지역, 관광 빅데이터를 활용한 새롭게 떠오르는 지역 등을 예비 후보로 선정한 다음, 서면 평가-1차 선정위원회-현장 평가-2차 선정위원회를 거쳐 최종 100선을 낙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전의 선정지가 빠지거나 새롭게 지정되는 등 치열한 경쟁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번 ‘한국관광 100선’에는 권역별로 수도권 24곳, 강원권 10곳, 충청권 13곳, 전라권 17곳, 경상권 28곳, 제주권 6곳 등 지역마다 고른 분포를 보였다. 이 중 새롭게 선정된 곳이 모두 33곳에 이른다.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서울숲, 벚꽃 나들이 코스로 유명한 창원 여좌천, 산과 호수가 아름다운 춘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백제 문화유산인 익산 왕궁리유적, 구례 천은사 상생의 길 및 소나무숲길, 야경 명소로 떠오른 통영 디피랑 등이 새롭게 선정됐다. 물론 국민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재선정됐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서울 5대 고궁, 제주 올레길, 전주 한옥마을,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등 관광지 14곳은 6회 연속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한국관광 100선 리플릿은 전국 관광안내소, 교통 거점(공항, 고속철도 등)에 비치돼 있고, 인터넷으로는 ‘대한민국 구석구석’(korean.visitkorea.or.kr) 특집관 내 ‘한국관광 100선’에서 선정지에 대한 상세 정보 및 100선 지도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옛 사람들은 방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동서남북 네 방위마다 각기 기운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식구들의 방을 배치할 때도 이런 점을 고려했다. 가옥의 중심점을 기준으로 주로 동쪽 방위의 방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서쪽 방위의 방은 안정과 휴식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했다. 또 남쪽 방위의 방은 사회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이들이 주로 사용토록 했고, 북쪽 방위의 방은 고도의 집중력과 연구 작업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사용하도록 배려했다. 이런 배치는 굳이 풍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태양의 이동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 현상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거쳐 서쪽으로 진다. 해가 비치는 위치나 방위에 따라 온도나 습도 등의 변화가 생기고, 인체 역시 이런 변화에 맞추어 생리적, 심리적 반응 등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연령이나 상황에 맞는 조건을 갖춘 방위의 방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네 방위 중 특히 동쪽 방위의 방을 매우 중요시했다. 동쪽 방위는 해가 맨 먼저 비치는 곳으로 생동감과 생명력이 왕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침 햇빛과 함께 신선한 생명력을 받아들이도록 문이나 창도 가급적 동쪽으로 냈다. 한편 동쪽은 음양오행상 목(木)의 기운에 해당한다. 목은 발육과 성장이라는 기운 이외에도 학문적 성취, 수직적 상승, 창의력 등을 상징하는 기운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이들을 동쪽 방에서 자도록 한 것은 잘 성장하라는 기원 이외에도 공부를 잘 하라는 속내도 담겨 있었다. 조선 양반가는 자손이 학문을 잘 닦아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여겼다. 자손이 과거에 합격해 가문을 빛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효도로 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 최고의 풍수 액세서리, 매화와 모란 동쪽 방위의 방에는 공부에 도움이 되는 풍수적 소품도 동원했다. 바로 마당에 심어놓은 식물이다. 동쪽 방에서 아침 일찍 일어난 이들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으레 매화나무가 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매화는 봄의 전령사다. 만물이 아직도 추위에 움츠려 있을 때 매화가 맨 먼저 꽃을 피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봄의 생명을 노래하는 꽃이기에 집안에도 새 기운을 전달해준다고 보았다. 게다가 매화는 ‘글을 좋아하는 나무’임을 뜻하는 호문목(好文木)으로 불린다. 중국 진(晉)나라의 황제 무제가 글을 열심히 읽으면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고 게을리하면 꽃이 피지 않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매화는 특히 불의에 굴하지 않는 고고한 선비 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매화에는 이처럼 숨겨진 상징이 많다. 조선시대 오래된 가옥에 심어진 매화나무를 보노라면 자손이 학문을 잘 닦아 훌륭한 선비를 되기를 기원했던 옛 사람들의 마음이 읽혀진다. 조상이 자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마당에 심어 놓은 모란꽃에서도 보인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가 붉고 화려하게 핀 모란을 보고 ‘부귀화(富貴花)’라고 부른 이후, 모란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꽃중의 왕’이라고 불리면서 사랑받아왔다.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고려 국왕들이 궁궐 안에 핀 모란을 감상하며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 화답시를 짓게 했다는 기록들이 다수 실려 있다. 또 4월 중하순쯤에는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가면 흐드러지게 핀 모란을 구경할 수 있다.왕실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받아온 모란은 꽃말인 ‘부귀’가 말해주듯이, 자손이 출세해 풍요로운 삶을 살고 명예까지 누리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꽃이었다. 풍수에서도 모란꽃의 붉은 색깔은 재물과 번창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중국인들이 유독 붉은 색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8월 경에 노란빛이 감도는 백색 꽃을 피워내는 회화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상징하는 바는 크다. 회화나무는 궁궐이나 문묘, 정승(장관급) 등을 배출한 고택 등에 많이 심겨졌다. 큰 학자 혹은 큰 인물이 난다고 해서 ‘학자수(學者樹)’로 불렸다. 게다가 회화나무를 가리키는 한자 ‘괴(槐)’가 ‘나무(木)’와 귀신 ‘귀(鬼)’의 합성어여서 ‘귀신 쫓는 나무’로도 유명했다. 즉 회화나무가 있으면 잡스런 기운이 집안에 침범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회화나무는 매화나 모란과는 달리 웬만해서는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 주로 대문 밖이나 담장 옆 쪽에 배치했다. 높이가 20m 이상 자라는 회화나무는 자칫 집안의 기운을 누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풍수에서는 단독주택의 경우 지붕 높이 이상으로 자라는 나무를 경계한다. 집에서 바라볼 때 앞산이 너무 높으면 집이 ‘치인다’고 해석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또 네모반듯한 정원에 큰 나무가 들어서면 한자어로 ‘곤(困·곤란함)’ 자가 형성되므로 불길하다고 보았다. 이는 과학적으로 보아도 설득력이 있다. 큰 나무일수록 땅 속으로 뿌리가 깊게 뻗어가게 마련이다. 이때 나무 뿌리는 땅속을 파헤쳐 가면서 지반의 진동(振動) 파장을 흩뜨려놓을 수 있다는 게 진동 전문가들의 얘기다. 땅의 안정된 파장이 흩어짐으로써 가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풍수적으로는 큰 나무가 뜰 한가운데 있을 경우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가 집이 아닌 나무에게 빨려들어가 해로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나무와 집의 풍수적 관계를 자세히 설명해 놓은 책도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 홍만선(洪萬選·1643~1715)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다. 이 책에서는 나무를 잘 심으면 건강에 도움이 되고 집의 기운이 좋아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쪽에는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심고, 남쪽에는 매화와 대추나무를 심으며, 서쪽에는 치자나무와 느릅나무를 심고, 북쪽에는 능금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다”는 내용을 보자. 이는 특정 방위와 궁합이 맞는 나무를 심을 경우 가족들의 삶이 좋아진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반면 잘못 심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수목(樹木)이 집을 등지고 서 있으면 흉하고, 큰 나무가 마루 앞에 있으면 질병이 끊이지 않으며, 집의 뜰 한가운데에 나무를 심으면 한 달 내에 재물이 흩어지는 등 재앙이 생긴다고 한다. 마당에 나무나 화초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산림경제’ 정도는 생활실용서로 참고해보길 권한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경북 울진은 지금 해산물 잔치가 한창이다. 살이 오른 울진대게와 붉은대게(홍게)가 항구를 가득 채우고 있고, 봄이 되면서 고향인 울진 왕피천으로 회귀하려는 은어 떼도 들썩거리고 있다. 어디 맛뿐이랴. 바다 위를 누비는 스카이워크와 스카이레일, 케이블카 등은 울진의 해안 절경을 즐기는 멋이 되고 있다.》 조선 개국 참여를 거부하고 절의를 지킨 ‘고려 삼은(三隱)’ 중 한 명인 목은 이색(1328∼1396)은 미식가였다. 학문으로나 인품으로나 당대 최고의 학자로 존경을 받았던 그도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사족을 못 썼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입과 배만 생각하니/먹을 것만 찾는다는 평을 매양 받을밖에/서해의 등 푸른 생선이야 얼마든지 구하지만/동해의 대게는 어찌나 맛보기 힘든지.”(‘잔생·殘生’·이상현 번역) 이색은 맨날 먹을 것만 밝힌다는 주위의 눈총에도 동해산 대게가 그립다는 시를 남겼다. 이색은 동해안의 외가(경북 영덕군 영해면)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먹었던 대게 맛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먹방 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위와 함께 경남 밀양을 방문해서는 밀양강의 유명한 은어 맛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홍수로 물이 불어나 은어를 잡을 수 없다는 말에 실망한 채 “눈앞에 삼삼한 은어(忽得銀魚森在眼)”라는 시구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가 기억해낸 은어 역시 어린 시절 동해안에서 맛본 그 물고기였을 것이다. 동해산 은어로는 매년 봄이 오면 왕피천(경북 울진군)으로 떼 지어 거슬러 올라오는 ‘왕피천 은어’가 유명하다. 왕피천 은어는 독특한 수박 향기를 지니고 있으면서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미식가 이색이 군침을 흘렸을 만하다. 지금 경북 울진은 바다에서는 한창 살이 오른 대게 떼로 북적거리고, 왕피천 계곡에서는 귀향하는 은어 떼로 분주하다. 때맞춰 울진군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문을 닫았던 대게 축제를 3년 만에 재개했다. 26일까지 울진군 후포항 왕돌초광장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다. 이곳에서 대게 축제가 열리는 이유가 있다. 울진 왕돌초는 대표적인 대게 산지다.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km가량 떨어진 왕돌초는 여의도 땅 2배 크기의 광활한 수중 암초 지대로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울진대게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제철이지만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게는 2월부터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대게의 ‘대’가 큰 대(大) 자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8개 다리가 마른 ‘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게 중에서도 최상품은 박달대게다. 박달나무처럼 살이 단단하게 찬 최상급 대게다. 배 한 척당 하루 2, 3마리만 낚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하신 몸이어서 경매가도 한 마리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만만치 않은 대게 값이 부담스럽다면 홍게도 좋다. 살이 잘 오른 홍게는 대게 못지않은 맛을 낸다. 생김새가 대게와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진하고 짠맛이 강한데, 대게 대신 이 맛을 찾는 이들도 많다. 대게 축제가 열리는 후포항은 국내 최대의 대게잡이 항구여서 어시장 볼거리도 적잖다. 어판장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연근해에서 잡아온 대게 경매장이 선다. 어판장 바닥 가득 대게가 늘어선 광경도 이색적이거니와 경매를 진행하는 사람들에게서 활기찬 삶의 현장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어판장 인근 식당가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대게 찜통은 관광객의 침샘을 자극한다. ●바다 위를 걸어간다대게 축제가 펼쳐지는 후포항 인근에는 ‘등기산 스카이워크’가 있다. 스카이워크는 등기산 공원 출렁다리 건너 갓바위 공원에서 바다 위로 뻗은 해상교량이다. 바다에서 20m 높이로 15t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투명한 강화유리가 설치돼 있다. 57m 길이로 바다로 뻗어 있는 투명 유리를 걷다 보면 바다 위를 걸어가는 듯한 짜릿한 느낌이 든다. 비가 많이 오거나 강풍이 부는 날은 휴장한다. 바로 옆의 갓바위는 바다 위로 솟은 기암괴석과 파도가 부딪쳐 빚어내는 하얀 포말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울진 바다를 더 즐기고 싶다면 울진 해안도로와 죽변 스카이레일을 추천한다. 후포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의 죽변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울진에서 가장 멋있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다. 또 죽변 해안의 스카이레일은 깊고 푸른 바다와 해안 갯바위 절경을 가장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 코스다. 약 10m 높이로 공중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궤도 차량을 타는 스카이레일은 죽변등대 아래에서 후정해수욕장까지 4.8km 이어진다. 현재는 죽변항(죽변 승차장)에서 출발해 하트해변 정차장을 지나 봉수항 정차장에서 유턴하는 A코스(2.8km)만 운행되고 있다. 천천히 움직이는 스카이레일을 타고 가면 죽변의 명물인 하트 모양 해안 바위, 인기 드라마 ‘폭풍 속으로’를 촬영했던 죽변 드라마 세트장(언덕 위 붉은 지붕의 이층집), 울진 사람들이 동해 용왕을 모신 용왕전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죽변 용왕전은 울진 선주들과 원로들이 직접 제례를 챙기는 곳으로 매우 영험하다고 소문나 있는데, 모노레일에서는 순식간에 보였다 사라진다. 스카이레일 종점인 후정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국립해양과학관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해양 과학을 주제로 한 전시관이다. 이곳에는 바닷속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해중(海中)전망대가 있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400m쯤 떨어진 곳에 들어선 해중전망대는 8층 높이의 거대한 구조물인데, 해수면 아래 수심 7m의 바닷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은어의 고향’ 왕피천에서 울진은 바다뿐 아니라 멋진 계곡들로도 유명하다. 그중 국내 최대 규모 생태경관보전지역인 왕피천이 대표적이다. 왕피천(65.9km)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금강송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나가는 하천이다. 하천을 따라 깊은 산과 기기묘묘한 절벽과 바위들이 펼쳐지는 이곳에서는 하늘다람쥐, 산양, 수달 등 포유류 14종, 조류 60여 종, 양서류·파충류 23종이 서식한다. 물론 동해로 떠났다 돌아오는 은어도 만날 수 있다.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서 2013년 환경부로부터 전국 12곳 ‘생태관광지역’ 중 하나로 선정됐다. 특히 왕피천생태탐방로는 트레킹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생태경관보전지역인 만큼 왕피천 생태탐방은 사전 예약 후 가이드와 동행하는 것이 필수다. 수·목·일요일은 당일 코스, 금·토요일은 당일 또는 1박 2일이 가능하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워낙 길다 보니 코스는 전체 다섯 개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2구간인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굴구지마을은 농촌체험 휴양마을로 유명하다. 왕피천 하류에서 아홉 고개를 넘어야 마을이 나타난다고 해서 구고동 또는 굴구지로 불리는 오지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왕피천 입구에 나무를 깎아 만든 은어 조각상이 설치돼 있다. 이곳이 ‘왕피천 은어’의 고향임을 알리고 있다. 3, 4월이면 은어 떼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왕피천 트레킹을 할 여유가 되지 않는다면 문명의 이기인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왕피천 하구에 위치한 왕피천케이블카를 타면 왕피천의 아름다운 풍경과 청명한 동해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과 해맞이 공원으로 이어지는 짧은 산책 코스까지 준비돼 있다.글·사진 울진=안영배 기자·철학 박사 ojong@donga.com}

한국인들은 정초가 되면 올해가 무슨 띠의 해이며, 띠 동물이 지닌 상징성에 대해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나아가 자기 띠를 이용해 새해 운수를 점쳐 보기도 한다. 12동물 띠는 12년을 주기로 한 바퀴 돌아가는 시간의 표현이면서도 12방위라는 공간적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12띠는 사주팔자 같은 미래 예측학에서 중요시 여길 뿐만 아니라 풍수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2띠를 풍수적으로 살펴보자. 원(360도)을 기준으로 12띠(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는 각각 30°씩 공간을 차지한다. 이때 자신이 태어난 띠 등을 기준으로 풍수적으로 유리한 방위와 불리한 방위를 구분할 수 있다. 이를 테면 호랑이- 말- 개 띠 생들은 미(未·남남서) 방향이 길하고, 돼지-토끼-양 띠 생들은 진(辰·동동남) 방향이 길하고, 원숭이-쥐-용 띠 생들은 축(丑·북북동), 뱀-닭-소 띠 생들은 술(戌·서서북) 방향이 길하다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각각의 띠에는 흉한 방위도 있다(아래 그림 참조). 이런 식으로 해서 흉한 것은 피하고 길한 것을 취하는 피흉추길(避凶趨吉)의 풍수 공간이 설정될 수 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너무 급작스럽게 변하고 있기 때문인지, 올해 들어 더욱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강해지는 듯하다. 이는 동양철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부쩍 늘어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계묘년(2023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춘(春) 2월, 열두 띠 동물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자리한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K-ART Ⅵ. 십이지 전(展): 열두 동물로 살펴보는 한국의 문화 코드’라는 주제로 열린 이 전시회(다음달 30일까지)는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위해 마련한 특별 기획전이다. 관람객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다. 갤러리측은 12띠를 보다 다채롭고 재미있게 이해시키고자 다양한 장르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한국화가, 불화작가, 민화 작가, 조각가, 팝아티스트로 구성된 13명의 작가가 민화, 한지화, 비단 채색화, 수묵화, 도자, 조각, 팝아트 형식으로 열두 동물을 선보이고 있다. 무우수갤러리의 양효주 학예실장은 “K(Korea)로 표현되는 한류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덩달아 음양, 오행, 12지 같은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 역시 부쩍 늘어나 전시를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이 전시회를 찾아온 관람객들에게서는 흥미로운 점도 발견된다. 특정 동물을 표현한 작품에서 유독 오래 감상하는 이들을 보면 대체로 자신이 태어난 띠에 해당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태어난 띠의 동물들이 각기 자신의 수호 동물처럼 느껴지는 우리식 정서 때문일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음양, 오행, 십이지지 등 동양철학을 직접 배우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과천에서 1주일에 한 번씩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동양철학 강좌를 듣고 있는 주부 이모 씨(59)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수강하고 있다”면서 “수강생 중 나 같은 초짜는 별로 없고,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의 신분은 공무원, 교사, 직장인 등 다양하다. 현직 교사인 김모 씨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진로 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사주명리학으로 아이의 적성을 찾아주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배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교사는 은퇴 후 명리학을 응용한 진로 컨설팅으로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50대 직장인 최모 씨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성격유형검사인 MBTI와 명리학의 성격 분류법을 응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라면서 “은퇴 후 취미 생활이나 재능 기부에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주역, 관상, 풍수 망라한 ‘동양학 잔치’ 열려 동양철학에 대한 이런 열기는 제도권 대학까지 파고드는 추세다. 이달 25일(토) 오후 2시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한양대 박물관에서 열리는 동양학 대토론회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토론회는 국내 처음으로 주역, 수상(手相), 점복(占卜), 부적, 관상, 풍수 등 동양철학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발표와 토론을 하는 ‘동양학 잔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도 무료로 얼마든지 참여 가능하다고 한다. 한양대 대학원에 설립된 동양 문화학과(석·박사 과정)가 주도하는 이 세미나는 각 분야 전문가가 ‘동양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를 다루게 된다고 한다. 이 토론회를 기획한 한양대 박정해(동양 문화학과)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시점에서 동양학의 현재를 짚어보고 동양학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살펴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양대 동양 문화학과에 석·박사 과정으로 진학한 학생들 대부분이 일반인 신분이라고 밝혔다. 아마추어로 명리학을 독학하다가 본격적으로 제도권 대학원에서 실력을 쌓고 싶어서(우○○ 씨), 풍수 문화가 짙게 깔린 우리 문화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기르고 싶어서(김○○ 씨), 젊은 시절 겪었던 운명적인 사건 사고에 대한 의문점을 풀고 싶어서(박○○ 씨, 최○○ 씨) 등 사연들은 다양했다. 이들은 동양철학이 박제화된 철학이 아니라 21세기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응용이 가능한 알고리즘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현상을 풍수적으로 풀어보는 방법도 있다. 한국에 도입된 이론 풍수학 중 하나인 ‘현 공 풍수’는 현재 지구의 운기(運氣)가 간괘(艮卦; 주역 8 괘 중 동북방에 배치된 괘)에서 이괘(離卦 ;남방에 배치된 괘)의 기운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내년부터 시작해 향후 20년간 ‘화(火)’를 주관하는 이괘 시대가 펼쳐지는데, 사람들이 그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고도의 정신문화, 종교, 항공 우주산업, 가상 자산 및 가상 공간 등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화’는 높은 것, 보이지 않는 것, 정신적인 것 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고도의 정신문화인 동양철학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설날 연휴에 경기 용인시에 있는 친지 집을 방문했다. 친지는 실내 전용 넓이만 198㎡(60평)가 넘는 대형 타운하우스에서 살고 있었다. 1층의 거실 천장이 2층까지 뻥 뚫린 복층형 구조로 서구식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집이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벽난로가 새로 설치돼 있었다. 실내 구조가 한층 더 이국적으로 보였다. 집 주인이 벽난로를 설치한 데는 사연이 있었다. 주인은 “난방용 가스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나와 벽난로를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용을 다소 들여 벽난로를 설치했을 경우 도시 가스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는 더 경제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벽난로를 설치한 후 겨울철 가스비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래도 평균 50만원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1, 2층을 합쳐 널찍한 방만 6개에 이르는 이 집에 사는 식구는 단 3명. 부부와 대학생 아들이 살기엔 집이 너무 커보였다. 텅 빈 공간이 유난히도 을씨년스러워 보일 정도다. 요즘 같은 고물가 사회에서 이처럼 넓은 집에서 사는 데는 전기료, 가스비 같은 경제적 부담도 작지 않거니와 풍수적으로도 바람직스럽지 않아 보였다. ○ 큰 집에 살면 ‘치이는’ 이유 고대광실(高臺廣室) 같은 이 집을 보면 ‘여씨춘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집권기인 BC 239년에 집필된 ‘여씨춘추’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실내 공간이 넓으면 음기가 많아지고(室大則多陰), 건물 키가 높으면 양기가 많아진다(臺高則多陽). 음기가 많아지면 각기병에 걸리고, 양기가 많아지면 중풍에 걸려 잘 걸어 다니지 못한다. 이것은 음기와 양기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그래서 옛날 훌륭한 왕들은 넓은 실내에 거처하지 않았고, 높은 대를 짓지도 않았다.” 이를 동양 음양론으로 풀어보자. 실내 공간에서 수평(가로X세로)으로 펼쳐지는 공간은 정적(靜的)으로 보아 음이라고 하고, 수직(위X아래)으로 펼쳐지는 공간은 동적(動的)으로 보아 양이라고 한다. 음과 양 어느 한쪽이라도 기운이 지나치면 인체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게 ‘여씨춘추’의 논리다. 이로 보면 용인 친지의 집은 식구 수에 비해 음(수평)으로나 양(수직)으로나 너무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의 기운이 너무 세서 사는 사람이 부대낄 수 있었다. 이미 이 집 식구들에서 건강상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기도 했다. 실제로 천장이 엄청 높거나 아득히 넓은 공간에 홀로 들어선 순간 왠지 위축되거나 겁을 먹게 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는 지나친 음기 혹은 양기에 몸이 잠시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일반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여씨춘추’는 적절한 건축 규모를 강조한다. 훌륭한 임금, 즉 지혜로운 사람은 정원, 과수원, 연못 등을 조성할 때도 관상(觀賞)하기 좋을 정도만큼만 적당한 규모로 짓는다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여씨춘추’는 왕이 검소함을 좋아하고 낭비를 싫어해서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몸과 거처를 적절히 조화시켜 본성(本性)을 잘 다스림으로써 평안과 장수의 삶을 누리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여씨춘추’는 권력과 부를 다 거머쥔 왕들조차 이처럼 현실적인 계산에 의해 적절한 집을 짓는 판인데, 하물며 일반 사람들은 지키는 게 좋을 것이라고 훈계한다. 대체로 풍수학자들도 집이 무조건 넓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파트를 예로 들면, 한 사람당 20㎡(6평) 정도의 넓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4명 가족으로 환산하면 전용면적 80㎡(24평) 정도가 적절한 규모라는 것. 또 집에 빈 방이 생길 경우 그대로 놓아두기보다 옷방 등으로 만들어 수시로 식구가 드나들도록 하거나 방문을 열어놓음으로써 사람의 기와 실내의 기가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이처럼 양택(집) 풍수론은 사람과 집의 기운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편안히 지낼 수 있다고 본다. 도시에서 탈출해 넉넉한 공간에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도 이런 점은 유의해 두는 게 좋다. 무턱대고 집을 넓게 짓기보다는 식구 수에 맞춰 적절하게 실내 공간을 확보하는 대신, 마당이나 뜰을 넉넉하게 사용하는 것이 풍수적으로 길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음양이 조화로운 터는 겨울에는 훈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고, 여름에는 창문을 열었을 때 상쾌하면서도 시원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음양의 조화로 기온이 일정하게 유지돼 일어나는 현상이다. 눈이 많이 쌓이는 겨울철 명당 터에 조성된 묘지에서는 주변에 비해 눈이 바로 녹아내리는 현상을 보이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내가 사는 집이 조화로운 기운을 갖췄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풍수학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금낭경’에서는 “온전한 기운이 있는 땅은 초목이 울창하고 무성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초목이 잘 자라는 환경은 좋은 땅이며, 그런 곳은 음양의 조화를 이뤄 생기(生氣)가 왕성한 공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험을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시장에서 파는 똑같은 크기의 양파 2개를 사와 각각 유리컵에 담은 뒤 같은 실내 공간에서 위치만 서로 달리해 3주간에 걸쳐 생장 속도를 비교 측정해보는 실험이다. 한 양파는 햇빛이 잘 드는 침실쪽 남향 자리이긴 하나 수맥파 같은 살기가 있는 자리이고, 다른 양파는 부엌 쪽 거실로 햇빛이 잘 들지 못해 침실보다 평균 온도가 낮으나 생기가 형성된 곳이다. 다른 환경적 조건은 모두 동일한 가운데 결과는 어떠했을까. 양지바른 침실이지만 살기가 있는 곳에서 키운 양파보다 어둑한 거실이지만 생기가 있는 곳에서 키운 양파가 키가 확연한 차이가 날 정도로 잘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명당 기운을 갖춘 집에서는 사람뿐만 화초도 잘 자라고 꽃도 잘 핀다는 게 풍수학자들의 이야기다. 내가 사는 집은 과연 어떠할까.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베트남 중부 꽝남성 호이안시는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다낭시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런데 이웃한 두 도시 치고는 성격이 너무 다르다.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만큼 한국 분위기가 짙은 다낭에서 아쉬움을 느낀 여행객들도 호이안에 가면 비로소 진짜 베트남을 보았다며 즐거워한다. 베트남의 옛 도시 풍경과 전통 놀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이안은 인구 15만 여명의 작은 도시다. 아직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호이안의 옛 시가지는 1999년 유네스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뼈대 있는’ 도시다. ‘올드타운’으로 불리는 호이안 옛 시가지는 고풍스런 분위기가 차고도 넘쳐난다. 호이안은 15세기 이래로 일본과 중국은 물론 저 멀리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 상인들까지 드나들던 동남아 최대 국제 무역항이었다. 이를 상징하는 게 올드타운의 명물인 내원교다. 일본식 기와 지붕이 설치된 목조 다리인데, 1593년 일본 상인들이 일본인 거리와 중국인 거리를 연결하기 위해 지은 다리라고 한다. 이외에 중국 남부지역에서 진출한 중국인들이 모임이나 제사 장소로 사용했던 푸젠(福建)회관, 광둥(廣東)회관 등이 울긋불긋한 건물 색깔로 이새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약 200년 전 무역으로 부를 일군 상인들이 거주하던 전통 가옥은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돼 있다. 호이안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데는 폴란드 건축가 카지미에르츠 크비아트콥스키(Kazimierz Kwiatkowsky, 1944~1997년)의 역할이 컸다. 그는 전세계 건축 문화가 녹아 있는 ‘융합 도시’ 호이안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호이안 올드타운은 15세기에서 19세기까의 동남아 무역항의 전형적인 모습을 특별히 잘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드타운 내 카지크 공원에 그를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진 이유다. 올드타운은 낮보다는 밤이 더 화려하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호이안 전통 등이 밤을 밝히는 가운데 낮에는 한가하던 거리가 시끌벅적한 시골 장터 분위기로 돌변한다. 올드타운을 적시며 흘러가는 투본강은 ‘밤의 제왕’ 역할을 한다. 베트남 전통 등을 매단 나룻배들이 ‘소원배’라는 이름으로 관광객을 태우고 강물 위를 노닌다. 수면 위로 관광객들이 소원을 빌며 흘려보낸 ‘소원 꽃등’과 ‘소원배’들이 뒤엉켜 장관을 이룬다. 마치 등불의 향연같기도 하고 몽환적인 신선 세상에 들어선 듯도 하다. 거리 상점에서 전시해놓은 각양각색의 전통 등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것도 인상적이다. ○ ‘코코넛 배’타고 한바퀴 돌고, 오행산에 올라 호이안에서는 베트남 전통 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바구니 배’ 체험이다. 호이안 어부들이 투본 강에서 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는 배인데, 코코넛을 반으로 갈라놓은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코코넛 배’라고도 불린다. 언뜻 보면 금방 뒤집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타보면 매우 안전하다. 노를 저어 물에서 자라는 코코넛 나무 정글 사이로 다니는 재미도 있고, 배에서 낚싯대로 강변의 숨은 게를 유인해 잡아보는 즐거움도 준다. 바구니 배 체험은 전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투어 상품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찾아오면 한국의 트로트 노래로 강변이 떠들썩해진다. 물길을 따라 코코넛 배들이 모여드는 지점에서 노래방 기계로 트로트 가요를 열창하는 현지인 사공을 보면 호주머니에서 팁이 저절로 나간다.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외국 문화를 접목해 관광 상품화시킨 노력이 돋보인다. 호이안에서 다낭 쪽으로 좀더 북상하면 만나게 되는 오행산도 베트남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서양인들은 대리석 성분이 많은 이 산을 마블 마운틴(marble mountain)으로 부르지만, 베트남 현지인들은 오행산(五行山)이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1825년, 응우옌 왕조의 민망(Minh Mang)왕이 왕족과 귀족들의 기도처로 유명한 이곳을 방문한 후 오행산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민망왕은 5개 봉우리들에다 오행설(五行說)에 근거해 수산(水山, Thuy Son), 목산(木山, Moc Son), 금산(金山, Kim Son), 토산(土山, Tho Son), 화산(火山, Hoa Son)이란 이름을 붙였다. 현재 5개 봉우리중 수산이 제일 유명하다. 이곳은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오행 풍수설’이 베트남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이다. 나아가 다섯가지 형태를 갖춘 오행산을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목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므로, 동양의 음양 오행설에 관심있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 해변 골프 코스가 인생샷 명소 호이안은 지금 한창 명품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시기적으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지금이 호이안에서 바다, 골프, 각종 액티비티를 호젓하게 즐기기에 좋다. 현재 호이안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지로 꼽히는 곳이 복합 리조트인 ‘호이아나 리조트&골프’다. 4km에 달하는 해변을 끼고 들어선 이 리조트는 호이안 올드타운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바다 저 너머로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존지역인 참 아일랜드(Cham Island)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 리조트는 원래 명품 골프 코스로 주목받았던 곳이다. 리조트에서 셔틀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호이아나 쇼어스 골프 클럽’은 세계적인 골프 코스 디자이너인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RTJ)가 설계한 18홀 코스다. 디자이너 스스로가 ‘골프의 위대한 교향곡’이라고 자찬한 이 골프 코스는 2020년 개장 이후 이미 ‘베트남 최고 골프 코스’라는 영예를 얻었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규모(약 2000평)이고, 또 아시아 최대 규모의 클럽 하우스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해변가 평평한 모래밭 위에서 세워진 이 골프장은 원래 지형과 현재의 지형이 완전 다르다. 해변의 모래를 쌓아 자연스럽게 사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코스가 울퉁불퉁해 파도처럼 현란한 기복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곳에서 골프를 치던 한국인 관광객은 “눈앞으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해안선과 참 섬을 바라보며 샷을 날리는 기분이 최고”라고 하면서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해안가 링크스 코스라 샷을 날리기 쉽지 않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이곳은 골프 코스로 개발됐지만 인생 샷 명소로도 인기를 끌만한 곳이다. 이 골프장을 찾는 사람들은 다낭을 거쳐 골프투어 코스로 오거나, 이곳 호이안 복합 리조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리조트 단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해외관광산업의 진화하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최근 이 리조트가 공식 오픈한 ‘호이아나 레지던스’는 콘도와 호텔의 장점을 취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콘도처럼 현대식 주방 시설, 세탁기 등을 갖추고 있는 한편으로 객실내에서 5성급 호텔 수준의 서비스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대표적으로 개인 전용 셰프가 특별한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인 ‘셰프 온 콜’. 경력이 오랜 현지 요리사가 그 날 공수해온 식재료로 객실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 주는 서비스다. 요청에 따라 한식, 중식, 양식, 베트남식이 모두 가능한데, 뚝딱뚝딱 30분만에 우리나라 한상차림 수준의 식사가 차려졌다. 또 리조트내 모든 서비스에 대한 파격적 할인을 제공하는 멤버십 ‘호이아나 프리미어 리워드(HPR)’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관광 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호이안이 머잖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베트남 중부 꽝남성 호이안시는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다낭시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런데 이웃한 두 도시 치고는 성격이 너무 다르다.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만큼 한국 분위기가 짙은 다낭에서 아쉬움을 느낀 여행객들도 호이안에 가면 비로소 진짜 베트남을 보았다며 즐거워한다. 베트남의 옛 도시 풍경과 전통 놀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이안은 인구 15만여 명의 작은 도시다. 아직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호이안의 옛 시가지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뼈대 있는’ 도시다. ‘올드타운’으로 불리는 호이안 옛 시가지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차고도 넘쳐난다. 호이안은 15세기 이래로 일본과 중국은 물론이고 저 멀리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 상인들까지 드나들던 동남아 최대 국제 무역항이었다. 이를 상징하는 게 올드타운의 명물인 내원교다. 일본식 기와지붕이 설치된 목조 다리인데, 1593년 일본 상인들이 일본인 거리와 중국인 거리를 연결하기 위해 지은 다리라고 한다. 이 외에 중국 남부지역에서 진출한 중국인들이 모임이나 제사 장소로 사용했던 푸젠(福建)회관, 광둥(廣東)회관 등이 울긋불긋한 건물 색깔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약 200년 전 무역으로 부를 일군 상인들이 거주하던 전통 가옥은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돼 있다. 호이안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데는 폴란드 건축가 카지미에시 크비아트코프스키(1944∼1997)의 역할이 컸다. 그는 전 세계 건축 문화가 녹아 있는 ‘융합 도시’ 호이안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호이안 올드타운은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동남아 무역항의 전형적인 모습을 특별히 잘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드타운 내 카지크 공원에 그를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진 이유다. 올드타운은 낮보다는 밤이 더 화려하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호이안 전통 등이 밤을 밝히는 가운데 낮에는 한가하던 거리가 시끌벅적한 시골 장터 분위기로 돌변한다. 올드타운을 적시며 흘러가는 투본강은 ‘밤의 제왕’ 역할을 한다. 베트남 전통 등을 매단 나룻배들이 ‘소원 배’라는 이름으로 관광객을 태우고 강물 위를 노닌다. 수면 위로 관광객들이 소원을 빌며 흘려보낸 ‘소원 꽃등’과 ‘소원 배’들이 뒤엉켜 장관을 이룬다. 마치 등불의 향연 같기도 하고 몽환적인 신선 세상에 들어선 듯도 하다. 거리 상점에서 전시해 놓은 각양각색의 전통 등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것도 인상적이다. ●‘코코넛 배’타고 한 바퀴 돌고, 오행산에 올라호이안에서는 베트남 전통 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바구니 배’ 체험이다. 호이안 어부들이 투본강에서 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는 배인데, 코코넛을 반으로 갈라놓은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코코넛 배’라고도 불린다. 언뜻 금방 뒤집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타보면 매우 안전하다. 노를 저어 물에서 자라는 코코넛 나무 정글 사이로 다니는 재미도 있고, 배에서 낚싯대로 강변의 숨은 게를 유인해 잡아보는 즐거움도 준다. 바구니 배 체험은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투어 상품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찾아오면 한국의 트로트 노래로 강변이 떠들썩해진다. 물길을 따라 코코넛 배들이 모여드는 지점에서 노래방 기계로 트로트 가요를 열창하는 현지인 사공을 보면 호주머니에서 팁이 저절로 나간다.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외국 문화를 접목해 관광 상품화시킨 노력이 돋보인다. 호이안에서 다낭 쪽으로 좀 더 북상하면 만나게 되는 오행산도 베트남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서양인들은 대리석 성분이 많은 이 산을 ‘마블 마운틴’으로 부르지만, 베트남 현지인들은 오행산(五行山·응우하인선)이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1825년, 응우옌 왕조의 민망왕이 왕족과 귀족들의 기도처로 유명한 이곳을 방문한 후 오행산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민망왕은 5개 봉우리들에다 오행설(五行說)에 근거해 수산(水山·투이선), 목산(木山·목선), 금산(金山·낌선), 토산(土山·토선), 화산(火山·호아선)이란 이름을 붙였다. 현재 5개 봉우리 중 수산이 제일 유명하다. 이곳은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오행 풍수설’이 베트남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이다. 나아가 다섯 가지 형태를 갖춘 오행산을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목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므로, 동양의 음양오행설에 관심 있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해변 골프 코스는 인생 샷 명소 호이안은 지금 한창 명품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시기적으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지금이 호이안에서 바다, 골프, 각종 액티비티를 호젓하게 즐기기에 좋다. 현재 호이안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지로 꼽히는 곳이 복합 리조트인 ‘호이아나 리조트&골프’다. 4km에 달하는 해변을 끼고 들어선 이 리조트는 호이안 올드타운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바다 저 너머로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존지역인 참섬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 리조트는 원래 명품 골프 코스로 주목받았던 곳이다. 리조트에서 셔틀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호이아나 쇼어스 골프 클럽’은 세계적인 골프 코스 디자이너인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가 설계한 18홀 코스다. 디자이너 스스로가 ‘골프의 위대한 교향곡’이라고 자찬한 이 골프 코스는 2020년 개장 이후 이미 ‘베트남 최고 골프 코스’라는 영예를 얻었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또 아시아 최대 규모의 클럽 하우스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해변가 평평한 모래밭 위에 세워진 이 골프장은 원래 지형과 현재의 지형이 완전 다르다. 해변의 모래를 쌓아 자연스럽게 사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코스가 울퉁불퉁해 파도처럼 현란한 기복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곳에서 골프를 치던 한국인 관광객은 “눈앞으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해안선과 참섬을 바라보며 샷을 날리는 기분이 최고”라면서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해안가 링크스 코스라 샷을 날리기 쉽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이곳은 골프 코스로 개발됐지만 인생 샷 명소로도 인기를 끌 만한 곳이다. 이 골프장을 찾는 사람들은 다낭을 거쳐 골프투어 코스로 오거나, 이곳 호이안 복합 리조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리조트 단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해외 관광 산업의 진화하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이 리조트가 공식 오픈한 ‘호이아나 레지던스’는 콘도와 호텔의 장점을 취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콘도처럼 현대식 주방 시설, 세탁기 등을 갖추고 있는 한편으로 객실 내에서 5성급 호텔 수준의 서비스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대표적으로 개인 전용 셰프가 특별한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인 ‘셰프 온 콜’. 경력이 오랜 현지 요리사가 그날 준비해 온 식재료로 객실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 주는 서비스다. 요청에 따라 한식, 중식, 양식, 베트남식이 모두 가능한데, 뚝딱뚝딱 30분 만에 우리나라 한상차림 수준의 식사가 차려졌다. 또 리조트 내 모든 서비스에 대한 파격적 할인을 제공하는 멤버십 ‘호이아나 프리미어 리워드(HPR)’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관광 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호이안이 머잖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글·사진 베트남 호이안=안영배 기자·철학 박사 ojong@donga.com}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베트남의 해안도시 다낭에는 ‘마블 마운틴(marble mountain)’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다. 다낭 시내에서 남쪽 해안도로를 따라 8km 가량 떨어진 평지에 있는데, 서로 점점이 흩어진 채 우뚝 솟은 다섯 개 봉우리를 가리킨다. 이곳을 찾은 유럽 상인들에 의해 대리석과 석회암 성분으로 이뤄진 산이라고 해서 마블 마운틴, 혹은 원숭이들이 많이 살아 ‘원숭이 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작 베트남 현지인들은 이 산을 오행산(Ngu Hanh Son)이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1825년, 응우옌 왕조의 ‘민망(Minh Mang; 재위 1820~1840년)’왕이 이곳을 방문한 후 오행산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민망왕은 5개 봉우리들에다 오행설(五行說)에 근거해 목·화·토·금·수 다섯가지 이름을 붙였다. 화산(火山, Hoa Son), 수산(水山, Thuy Son), 목산(木山, Moc Son), 금산(金山, Kim Son), 토산(土山, Tho Son)이 그것이다. 이곳은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오행 풍수설’이 베트남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유적이다. 나아가 다섯가지 형태를 갖춘 오행산을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오행산을 안내한 베트남 현지 관광 가이드는 이처럼 진귀한 산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했다. 중국 고전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이 난동을 부리다가 부처의 다섯 손가락을 가리키는 오행산에서 500년 동안 갇혔다는 얘기를 빌려와 이곳의 전설로 삼기에는 시대와 배경이 너무 달랐다. ○ 목산(木山)은 간에 좋고, 화산(火山)은 혈액 순환에 도움돼 우주를 구성하는 5가지 질료로도 해석되는 오행론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서도 여전히 적용이 가능하고,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실용적인 이론이다. 베트남의 오행 산을 보면서 오행 풍수를 익혀 보자. 전통 풍수에서는 산을 그 생김새에 따라 목산·화산·토산·금산·수산 등 오행(五行) 산으로 분류하거나, 땅에서 감도는 기(氣) 에너지 자체를 오행으로 분류해 기의 성질이나 속성을 해석하기도 한다. 목산(木山)은 길쭉한 모습으로 선 봉우리 정상부가 홀(笏)처럼 생겼거나, 붓처럼 뾰족하게 생긴 산을 가리킨다. 흔히 문필봉(文筆峰)이라고 불리는 산이다. 목산에서는 곧게 뻗은 나무처럼 수직 상승하는 기운인 목기(木氣)가 강하다고 본다. 목기는 교육, 연구, 성장 등에 유리한 에너지로 보기 때문에 목산의 기운이 강한 곳에서는 뛰어난 학자나 문인, 고위급 관료 등이 배출된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다낭의 오행산에서는 횡으로 길게 누워 있는 형상의 봉우리를 목산으로 분류해 놓았다(위 사진 참조). 오행 풍수론이 베트남으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변형됐거나, 후대에 잘못 인지돼 오류가 빚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수산(水山) 정상에서 바라본 다낭의 목산(木山)은 목기보다는 토기(土氣)가 왕성한 것으로 느껴졌다. 화산(火山)은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의 봉우리들이 여럿 돌출돼 있어서 마치 불꽃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을 가리킨다. 불꽃 모양을 하고 있는 서울 관악산이 대표적인 화산으로 꼽힌다. 화산의 주 기운인 화기(火氣)는 나무를 원료로 삼아 타오르는 불꽃처럼 사방팔방으로 치솟아 뻗어가는 기운인데 예술, 문화, 종교 등 창조적 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기운에서는 예술가, 종교인 등이 배출된다고 본다. 단 화기가 너무 심하면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도 본다. 다낭의 화산은 삼각형 모양의 작은 산 두개를 합쳐서 부른다고 한다. 하나는 양(陽)화산, 다른 하나는 음(陰)화산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화기를 음기와 양기로 구분해놓은 것이 재미있다. 토산(土山)은 정상부가 수평으로 길게 늘어진 모양을 가리키는데, 한 일(一)자와 비슷하다고 해서 ‘일자문성(一字文星)’이라고도 부른다. 토산의 주 기운인 토기는 조화와 균형을 이룬 기운으로 보는데, 푸근히 감싸는 듯한 기운으로 다가온다. 토기(土氣)가 왕성한 토산에서는 제왕(帝王)이나 왕비가 배출되며, 풍요로운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다낭의 경우 목산으로 설정한 곳에서 바로 이런 토기가 느껴지기 때문에 토산으로 수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거꾸로 다낭에서 토산으로 설정된 봉우리는 오히려 목기가 강하므로 목산으로 보는 게 옳을 듯 싶다. 금산(金山)은 산사나 성당의 종처럼 생겼거나, 솥이나 바가지를 엎어 놓은 형태의 산을 말한다. 농사를 끝내고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듯하다고 해서 ‘노적봉(露積峰)’이라고도 부른다. 모양이나 이름에서 암시하듯이 금산은 재물과 부자를 배출한다고 본다. 금산의 주 기운인 금기(金氣)는 철모를 쓴 것처럼 수축하듯 조여드는 듯한 에너지 속성을 보이는데, 이 역시 재물이 빠져나가지 않고 차곡차곡 쌓임을 의미한다. 다낭의 금산이 바로 그러하다. 수산(水山)은 산 정상부가 비슷한 크기의 봉우리들로 물결치듯 이어져 있거나 뱀이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듯한 형태의 산을 가리킨다. 수산의 주 기운은 수기(水氣)는 기 에너지가 수직으로 곧게 뻗치는 느낌을 주는데 지혜, 건강, 자손 번성 등을 상징한다고 본다. 다낭의 수산은 오행산 중 가장 대표적인 산으로 정상에 3개의 봉우리들이 연이어 있는 게 특징이다. 국자처럼 생긴 북두칠성 7개 별 중 자루에 해당하는 3개의 별처럼 보인다고 해서 땀 타이(Tam Thai, 三台)라고 부르기도 한다. 관광객들은 주로 수산에 오르기 때문에 수산의 외형을 보기는 힘들다. 대신 수산에는 후옌 콩(Huyen Khong)이란 동굴이 있는데, 예부터 이곳에서 두가지 특별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하나는 분란이 생겼을 때 닭의 목을 잘라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맹세하는 제사로, 만일 거짓말을 하면 닭처럼 죽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임신 못한 여자들이 신의 은혜를 비는 제사인데, 이곳 동굴 종유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이 두가지 풍습은 지금은 사라졌다. 하지만 수산의 특징인 지혜와 자손 번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행 기운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음양오행기공’의 저자 양요한씨는 우리나라 산들 중 대표적인 오행 산을 소개해놓았다. 이에 의하면 가야산(경남 합천)은 목기가 왕성하고, 희양산(경북 문경)은 화기가, 계룡산(충남 공주)은 토기가, 금오산(경북 구미)은 금기가, 그리고 지리산은 수기가 많은 산으로 분류돼 있다. 이를 건강으로 도입시켜보면 재미있다. 간 기능이 약한 사람은 목기가 부족한 것이므로 해인사가 자리한 가야산자락에 오래 머물면 간 기능이 좋아진다고 한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잘 보관돼오고 있는 것도 왕성한 가야산의 목기 덕분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마찬가지로 심장이 약한 사람은 화기가 부족하므로 희양산이 좋고, 비장과 위장 등 소화기 계통이 좋지 않은 사람은 토기가 부족하므로 계룡산이 좋고, 폐 기능이 약한 사람은 금기가 부족하므로 금오산이 좋고, 신장이나 방광이 약한 사람은 수기가 부족하므로 지리산이 좋다는 것이다. 수술 등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해당 장부에 좋은 기운이 있는 터를 골라요양한다면 회복 속도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빠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오행을 알면 자신에게 필요한 터를 찾아서 유용히 쓸 수 있다. 안영배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조선의 선비들은 수토(搜討) 여행을 즐겼다. 영남 사림파의 으뜸 인물로 평가받는 점필재 김종직(1431~1492년)은 자신이 남긴 글에서 선조의 얼이 담긴 역사 및 문화 유적지를 찾아 살피는 행위를 ‘수토’라고 규정했다. 수토는 원래 ‘샅샅이 수색하여(搜) 토벌하는(討)’ 의미를 가진 공격적 단어인데, 감추어진 참(진리)을 치열하게 파헤쳐내는 학문적 행위를 뜻했다. 그러다가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국토를 탐구하고 즐기거나, 풍토가 달라 벌어지는 세상의 변화 등을 관찰하는 행위로 확장됐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우리 땅을 넘보는 적들로부터 국경을 지키는 행위도 본격적으로 ‘수토’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아예 ‘수토사(搜討使)’라는 국가 공인 관직도 생겨났다. ‘수토(守土)’의 성격까지 띤 수토(搜討)는 자연히 땅의 기운을 다루는 풍수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대표적인 수토 코스 중 하나가 한양도성을 한바퀴 돌아보는 순성(巡城)놀이였다. 순성은 원래 한양도성 성벽을 점검하며 순행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점차 민간의 풍류로 정착됐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유득공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도성을 한 바퀴 빙 돌아서 도성 안팎의 화류(花柳) 구경을 하는 멋 있는 놀이”로 순성놀이(巡城之遊)를 소개했다. 순성놀이는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 종 칠 때에 다 볼 수 있지만, 산길이 깎은 듯 험해서 지쳐서 돌아오는 사람도 많다고 부연 설명도 했다. 실제로 ‘독서하는 마라토너의 여행과 자전거 타기’ 저자인 박종필씨가 지난해 10월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 돌기에 도전한 바 있다. 아침 8시30분에서 시작한 순성 순례는 저녁 6시50분에 끝나, 10시간 20분 정도 걸렸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밝혔다. ● 하루만에 성 한바퀴 돌아야 소원 성취 순성놀이는 구복적 행위로도 ‘발전’했다. 이와 과련해 대일항쟁기인 1916년에 ‘매일신보’가 순성장거(巡城壯擧)라는 이름으로 순성놀이 행사(1916년 5월14일 시행)를 소개한 기사가 흥미롭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는 “옛날 과거를 행했던 때에는 당시의 고등문관(高等文官;일제가 시행한 고급관료제) 후보자가 순성을 했다”면서 친일파 관료인 백작 이완용, 자작 박제순 및 임선준 등이 청년 시절 순성놀이를 했다고 전했다. 순성을 하고 나면 과거에 합격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단 순성놀이 성공에는 조건이 있었다. 순성은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꼭 하루만에 마치지 않으면 효험이 없다는 것이다. ‘매일신보’에 의하면 성을 도는 순서도 정해져 있었다. 반드시 서대문이나 동대문에서 출발해야 했다. 서대문에서 시작하면 성문을 한번 돈 다음 곧장 직선거리로 3km 떨어진 동대문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순성에 나서고, 반대로 동대문에서 시작하면 마찬가지로 성문을 돈 다음 서대문으로 가서 순성을 하는 식이다. 이는 경복궁을 둘러싼 한양도성을 입 구(口) 자 모양으로 보고, 그 가운데를 사람이 직선으로 걸어감으로써 ‘중(中)’자를 성립시킨다는 의미를 띤다. 한자어 중은 ‘적중’ 혹은 ‘관통’의 의미가 있어서, 과거 시험에 길한 점괘와도 같다. 이게 효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지방에서 올라온 과거 응시생들이 너도나도 순성 놀이에 가담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서대문(돈의문)이 대일항쟁기때 일제의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없어져 버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순성놀이는 관직에 오르려는 사람들의 소원만 들어주는 게 아니다. 서울 종로의 상인들도 복을 받기 위해 순성놀이에 나섰다. 주로 봄과 여름철에 상인들은 남 몰래 성벽을 한바퀴 돌면서 상점의 번영과 운수를 기원했다고 한다. 성벽을 한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효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순성놀이에 등장하는 구복적 요소는 풍수적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 동대문과 서대문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사람이 개입함으로써 ‘중中’을 완성시킨다는 사고나, 한양을 상징하는 도성을 돌아봄으로써 한양 땅의 좋은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물아일체(物我一體;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됨)’의 원리를 응용한 풍수관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한양도성 곳곳의 길목에는 명당 길지가 포진돼 있다. 대표적으로 창의문과 옛 성터인 대한상공회의소를 살펴보자. 먼저 한양도성 서북쪽 관문인 창의문(자하문, 장의문)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천기(天氣)가 왕성한 곳이다. 조선 초기의 지관 문맹검은 창의문을 하늘의 천주성(天柱星·하늘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별자리) 기운이 깃든 곳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니 평소에 닫고 보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릴 정도였다. 또 남대문에서 소의문 터로 이어지는 성벽재현 구간에 자리잡은 대한상공회의소는 보기 드문 지기(地氣) 명당 터다. 지기는 풍요와 재물의 기운으로 본다. 바로 이 일대는 근대식 백동전을 찍어내던 주전소(鑄錢所)기 있던 곳이기도 해서 부를 상징하는 대표적 명소중 하나로 꼽힌다. 이로 보면 조선 경복궁과 한양도성을 설계한 전문가들은 땅의 지형 및 기운을 읽어가면서 성문과 성벽을 건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도성을 돌면 이런 곳에서 명당 기운을 흠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풍수는 집터나 무덤터를 고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광의적으로 자연에서 땅의 기운을 즐기는 문화적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기에 활약한 산수화가인 종병(宗炳·375~443년)은 ‘화산수서(畵山水序)’에서 “눈이 감응한 바를 마음으로 깨달아 구현해놓은 것이 산수화”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방안에 걸린 산수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 상태의 명산 기운을 똑같이 누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운생동(氣運生動)을 중시하는 산수화의 거장이 남긴 말이니 허투루 넘길 말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양도성을 직접 걷다 보면 한양 기운을 온전히 누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도 좋지 않을까.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계묘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입춘(2월 4일)맞이 행사로 충남 서산을 찾았다. 바다 섬과 육지 산, 그리고 갯벌의 좋은 기운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서산 남쪽의 간월도 간월암은 극강(極强)의 기운이 뭉친 터로 유명하다. 중심부인 팔봉산 정상에서는 기기묘묘한 바위 봉우리들에서 에너지를 받을 수 있고, 북쪽의 갯벌지대 웅도에서는 신령스러운 반송이 기다리고 있다. 추운 겨울철에 미각을 유혹하는 서산 전통의 맛집들은 여행의 덤이다.》 ●산과 바다 정기에 취하는 간월암서해의 작은 바위섬에 산신(山神)이 살고 있는 곳이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육지가 됐다가 다시 차면 두둥실 물 위로 떠오르는 서산 천수만의 간월도 간월암이다. 보통 바닷가 절이나 암자에서는 ‘바다의 신’인 용왕을 모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면적이 3000㎡(약 900평)도 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섬에서 산신을 모신다는 건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육지의 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은 있다. 간월도가 지형적으로 육지 쪽 산에 뿌리를 둔 곳이기 때문이다. 간월도의 ‘육지 족보’는 대강 이렇다. 간월도는 1980년대 초반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서산 간척 사업을 하기 전만 해도 천수만 한가운데 섬이었지만, 바다 밑 지형은 북쪽의 부석사(서산)가 있는 도비산과 이어지고 있었다. 도비산은 다시 더 북쪽으로 서산의 진산(鎭山)인 부춘산으로 이어지고, 이곳에서 또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듯이 나아가 동쪽의 충남 예산 가야산까지 맥이 닿아졌다. 즉, 풍수적으로 간월도의 간월암은 가야산 정기가 멀리 휘돌아와 압축적으로 맺힌 곳으로 풀이된다. 그 정기가 뭉친 간월암 산신각에는 호랑이 등에 앉은 인자한 모습의 산신 탱화가 있다. 관람객들의 동선을 보면 간월암 법당과 바로 옆에 있는 산신각에서 참배한 뒤, 맞은편 해신각(용왕각)에서 용왕에게 인사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가야산 기운과 천수만의 바다 기운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명당 길지에는 고승(高僧)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곳 암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에 의해 창건됐다. 무학대사는 이곳에서 떠오른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看月庵(간월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간월암에서 일몰 풍경과 바다 위로 어른거리는 달빛 여행을 즐기다 보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다. 이 지역 출신인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보낸 어리굴젓이 궁중의 진상품이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굴의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제’가 매년 정월 보름날(올해는 2월 5일) 만조 시에 부석면 간월도리 어리굴젓 기념탑 앞에서 벌어진다. 간월암은 한때 폐사됐다가 만공 스님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대일 항쟁기 가야산 자락에서 득도한 만공 스님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이곳에서 천일기도(1942년 8월∼1945년 8월)를 했다. 기도를 마친 사흘 후 조국이 독립을 맞이하는 경사가 생김으로써 간월암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팔봉산 바위에서 활력 얻기 서산 팔봉산(362m)은 8개의 봉우리가 바둑돌처럼 줄지어 서서 갯벌과 바다를 굽어보는 산이다. 원래는 9개 봉우리인데 가장 작은 봉우리를 제외하고 보통 8개만 친다. 이 때문에 제외된 한 봉우리가 매년 12월 말이면 홀로 빠졌다고 운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팔봉산은 철계단과 로프를 이용해 오르내리는 험한 산이지만, 8개 봉우리 모두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암산(巖山)을 즐기는 맛을 준다. 산행은 팔봉면 양길리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제1봉을 지나 제8봉을 끝으로 어송리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의무적으로 모든 봉우리를 다 둘러보지 않아도 좋다. 제1봉에서 제3봉까지의 코스가 가장 풍광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제1봉은 감투봉 또는 노적봉이라고 부른다. 벼슬아치가 쓰는 감투 모양 또는 곡식을 쌓아둔 노적(露積)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을 보며 소원을 빌면 부귀영화를 얻게 된다는 전설을 소개하는 안내판도 있다. 실제로 풍수에서는 노적봉이 재물 기운을 불러 모은다고 본다. 제1봉에서 제2봉 가는 길에서는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를 보며 고향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는 거북바위, 용왕이 파견한 우럭이 팔봉산 경치에 반해 그만 바위가 돼버렸다는 우럭바위, 암수 코끼리 2마리처럼 생긴 코끼리부부바위 등 전설과 생김새가 그럴싸한 암반들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제2봉은 ‘어깨봉’으로 불린다. 힘센 용사의 어깨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용맹과 건강을 상징한다. “어깨봉을 오르며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면 기(氣)가 몸에 충만해 활기가 넘치고 새 힘을 얻어 삶이 새롭게 변화된다”는 흥미로운 안내판도 눈에 띈다. 제2봉에서 제3봉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급하고 험한 코스이지만, 정상의 절경은 충분히 고생을 보상해 준다. 삼면이 석벽으로 이뤄진 정상에서는 서해안 지역의 가로림만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곳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천제단도 남아 있다. 큰 바위가 자연스럽게 단을 이루고 있는 형태다. 서산읍지인 ‘호산록’에 의하면 예부터 가뭄이 들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가뭄이 심할 때 군수나 지역 대표들이 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낼 정도로 영험한 곳으로 소문났다. 제3봉에서 양길리 주차장으로 향하는 하산로를 따라 내려올 수도 있고(약 1시간 거리), 능선길을 따라 제8봉까지 갈 수도 있다(약 3시간 거리).●신비의 웅도 반송서산 북쪽에는 곰을 닮은 섬 ‘웅도’가 있다. 대산읍 웅도리에 있는 섬으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다. 웅도(1.58㎢)는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가로림만 내에 있는 여러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육지와 연결된 마을이 되기도, 섬마을이 되기도 한다. 뭍에서 불과 700m 떨어진 웅도는 유두교라는 다리가 섬의 관문 역할을 한다. ‘하루 두 번 물에 잠기는 다리’로 유명한 유두교는 ‘웅도 잠수교’라는 이름으로 인증샷 명소로 떠올랐다. 유두교 위로 물이 찰랑찰랑 차오르기 시작하는 밀물 때 다리 위에서 찍는 사진이 하이라이트다. 바닷물이 차고 빠지는 시간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이곳을 찾기 전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를 통해 물길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아쉽게도 유두교는 2025년이면 사라진다고 한다. 이 다리가 바닷물의 흐름을 방해해 갯벌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평가 때문이다. 웅도 마을회관을 지나 섬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수령 400년이 넘은 ‘웅도 반송’을 만나게 된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 덕에 일부러 이곳을 찾는 이가 적잖다. 밑동은 하나지만 나뭇가지가 아홉 줄기로 갈라진 신비한 모습이다. 반송이 자리 잡은 터의 기운이 범상치 않아 나무 또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 외에도 조그만 섬치고 볼거리도 꽤 있다. 선캄브리아 시대의 규암층은 12억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지질학 교과서로 웅도 선착장에서 북서쪽으로 30m 떨어진 지점에서 관찰할 수 있다. 웅도에서 또 다른 섬인 조도를 연결하는 갯벌길은 모세의 기적이 열리는 바닷길이다. 현재 조도에는 단 1명만 살고 있다고 한다. 서산에서는 음식 맛의 기운도 느껴볼 일이다. 간월도와 웅도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굴과 젓갈로 만든 서산어리굴젓,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특징인 게국지, 뽀얀 국물과 꾸덕꾸덕 마른 우럭이 어우러져 감칠맛을 내는 우럭젓국, 낙지를 박속과 함께 탕으로 조리해 먹는 밀국낙지탕이 서산의 대표적 전통음식이다. 이와 함께 서산 제1경으로 꼽히는 해미읍성 바로 인근에 있는 씨앗호떡 집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소개된 뒤 지금도 긴 줄을 서야 맛볼 수 있는 별미집이 됐다. 또 해미읍성 출입구인 진남문 근처 탱자성 사랑방 카페는 2014년 해미읍성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먹은 키스링 마늘빵으로 유명하다. 교황의 간식 식탁에 오른 이 빵은 서산의 6쪽 마늘로 만들었다고 한다. ‘서산 스토리가 있는 맛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글·사진 서산=안영배 기자·철학 박사 ojong@donga.com}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1940년대 대일항쟁기 때 아동문학가 윤극영(1903~1988년)이 작사·작곡한 ‘까치까치 설날은’의 첫 구절이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입안에서 뱅뱅 도는 이 노래는 까치와 인간이 참 가깝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실제로 까치는 동북아시아권 사람들 사이에서 길조(吉鳥)로 대접받아 왔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우리 속담은 까치가 귀인(貴人)의 출현을 예고하는 전령사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웃인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속담에 ‘집에 네가지 기쁜 일이 나타나면 집안에서 훌륭한 인물이 난다(宅子現四喜,家中出能人)’는 말이 있다. 네가지 기쁜 일은 △까치가 집안에 들어올 때(喜鵲登堂) △제비가 집에서 둥지를 틀 때(燕子壘巢) △고목에서 새싹이 날 때(枯木逢春) △떠돌이 개가 집안으로 들어올 때(野狗進宅)를 가리킨다. 이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게 바로 까치다. 즉 까치가 집으로 날아 들어오면 집안에 귀인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왜 까치의 등장을 집안의 경사스러운 일로 연결시킬까. 여기에는 풍수적 배경이 깔려 있다. 사실 까치는 명당을 고르는 데 있어서 매우 탁월한 ‘풍수 실력가’라고 할 수 있다. 까치는 일단 아무데나 집을 짓지 않는다. 해마다 이르면 1월부터 알을 낳고 새끼를 잘 키울 수 있는 명당 터를 찾아 나선다. 태풍이 와도 끄떡없는 나무를 고른 다음 여름철에 적당한 그늘이 지고 통풍도 좋은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다. 주변에 떨어진 마른 나뭇가지, 철사 등을 부리로 물어와 대충 얼기설기 엮은 듯한 둥지도 찬찬히 살펴보면 매우 튼튼하다. 둥지는 나뭇가지가 겹치게 쌓일수록 서로 얽혀들어가 단단해지는 재밍(jamming)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한번 지어지면 잘 부서지지 않는다. 또 둥지 둘레에 수직으로 세워진 나뭇가지는 비가 올 때 빗물을 빨리 흘려보내는 홈통 역할을 한다. 까치 둥지가 비가 와도 덜 젖고 잘 새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까치가 둥지 터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명당 기운’이 서려 있는 나무다. 까치집이 있는 나무를 보면 아무 나무나 선택한 게 아님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도로나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느티나무, 미루나무, 메타세쿼이어 등 가로수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똑같은 수종의 나무들이 2~3m 간격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도 까치가 선택한 나무와 피한 나무가 있다. 사람 눈으로 보기에는 나무의 나이나 크기가 서로 비슷한 데도 말이다. 이를 풍수의 눈으로 바라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까치가 둥지를 튼 나무는 예외없이 천기(天氣)나 지기(地氣) 등 기 에너지가 형성된 곳이다. 까치가 전봇대나 철도 전차선로에 둥지를 튼 경우도 있는데,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감각이 민감한 사람들은 까치 둥지가 있는 나무 아래와 아무 둥지도 없는 나무 아래에서 한참 서 있다 보면 무언가 기운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즉 까치는 새끼들이 좋은 기운을 받아 잘 자랄 수 있는 명당 나무만 골라 집을 짓는 것이다. 심지어 한 나무에 겹겹이 둥지를 튼 경우도 볼 수 있다. 마치 아파트나 빌라처럼 높은 나뭇가지 위에다 층층이 지어놓은 까치집을 보면 마치 사람 사는 집을 보는 듯하다. 이를 유추해보면 한국과 중국 등에서 전해 내려오는 까치 속담이 근거가 있다. 명당 터를 좋아하는 까치가 집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그 집의 기운이 좋아 자연스럽게 이끌리기 때문이다. 나아가 좋은 기운이 서린 집에서는 때가 되면 경사스런 일이 생길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양택(집)풍수학의 고전인 ‘황제택경’에서는 좋은 집터에 대해 “조상의 무덤이 흉해도 집터가 길하면 자손이 부귀 영화를 누린다”고 말한다. ○ 제비 등장하는 ‘흥부전’의 풍수 스토리 까치 뿐만 아니다. 동물과 관련된 명당 얘기는 많다. 앞서 소개한 중국 속담 4가지 기쁜 일(4喜)에서는 까치 외에도 제비와 개가 등장한다. 이들 모두 집안으로 들어올 때 길조(吉兆)로 여긴다. 제비와 개 역시 명당 터를 좋아하기에 명당 집으로 찾아오는 이치인 것이다. 특히 ‘제비가 집에서 둥지를 틀 때’의 속담은 우리나라 소설 ‘흥부전’ 얘기와 매우 유사하다. 판소리 ‘흥보가(신재효본)‘에 의하면 악한 형인 놀보와 착한 동생인 흥보를 대립시켜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내세우는 듯하지만, 스토리 밑바닥에는 풍수 논리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 놀보의 집에서 쫓겨난 흥보는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불쑥 나타난 시주승이 골라준 집터에다 움막을 짓고 살게 된다. 시주승은 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이 가까이 있음)를 이룬 이 터에서 살면 가세(家勢)가 속히 일어나 자손 대대로 이어진다는 말을 남긴다. 그 증표는 이듬해 봄에 나타난다.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가 흥보의 움막에 찾아온다. 흥보는 튼튼하게 잘 지은 부잣집을 마다하고 자신의 집 허름한 처마 안에다 진흙으로 둥지를 튼 제비 부부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후 흥보가 뱀의 공격을 받은 제비를 구해주고, 대신 제비는 그 보은으로 보물이 가득 찬 박을 가져다준다. 결국 흥보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얘기다. 한편으로 개와 고양이 풍수론도 있다. 타이완(臺灣)의 민간 속설인 “고양이는 빈곤을 부르고 개는 부를 부른다(猫來窮,狗來富)”는 말이 대표적이다. 길고양이가 찾아오는 집은 살림이 궁핍해지는 징조이며, 떠돌이개가 방문하는 집은 부유해지는 길조라는 뜻이다. 같은 짐승인데 왜 그럴까. 고양이들은 사람 건강에 유해한 수맥 등 날카로운 기가 있는 곳을 선호한다. 그러니 고양이들이 찾아오는 집은 유해한 기운이 있을 확률이 높고, 그만큼 거주자의 건강이나 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반면 개들이 좋아하는 터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기운이 있는 곳이므로 거주자에게도 길한 작용을 하게 된다. 물론 타이완의 민간 속설은 떠돌이 고양이나 개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은 밖에서 야생 생활을 하면서 본능적 감각이 활성화된 상태다. 따라서 집에서 오랫동안 키우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이런 감각이 무뎌져 풍수 지표로 삼기에는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꿩, 매, 노루 등 동물이 명당을 점지해준 풍수 설화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실제로 멧돼지나 노루가 잠을 잔 곳이나 변을 본 곳은 좋은 지기(地氣) 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동물을 ‘스승으로 삼는’ 풍수 공부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전국 각지의 명문 고택과 전통 가옥 등을 둘러보면 대개 남향집들이 많다. 남향집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햇볕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와 사계절 살기에 좋기 때문이다. 반면 북향집은 낮에도 실내가 다소 어두컴컴하고 겨울에는 확실히 춥다. 자연히 전기세나 난방비가 남향집보다 많이 드는 편이다.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거실 베란다가 남쪽으로 난 남향 아파트는 다른 향의 아파트보다 분양이 잘 되고 더 높은 값에 거래된다. 북향 아파트는 꺼리는 대상 1순위로 꼽히기도 한다. 과연 북향집은 무조건 피해야 할까.서울 한강변을 지나다보면 강을 사이에 두고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인다. 한강 북쪽의 강북 아파트들은 한강을 바라보는 남향(남동,남서 포함) 구조가 많다. 반면 한강 남쪽의 강남 아파트들은 최근 지어진 곳일수록 한강이 바라보이는 북향(북동, 북서 포함) 구조가 많은 편이다. 여기에는 ‘한강 뷰’를 확보해야 아파트 값어치가 높아진다는 현실적 계산이 개입돼 있다.그렇다면 한강뷰를 가진 강변의 강남 아파트와 강북 아파트 중 어느쪽이 더 비쌀까. 남향집과 북향집의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남쪽으로 한강을 바라보는 강북 아파트가 더 인기가 좋고 값도 높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각종 부동산 통계를 보면 북향인 강남 아파트들이 훨씬 더 인기가 높다. 심지어 원래 남향으로 지어진 강남 아파트들 중에는 거실 베란다 반대쪽으로 통유리를 설치하는 등 리모델링을 통해 한강 조망권을 확보하는 경우도 적잖다. 이는 인위적으로 아파트를 북향집으로 개조한 사례에 해당한다. ‘남향집에 살려면 3대가 적선(積善)해야 한다’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다.사실 두 지역의 부동산값 차이는 남향이나 북향과는 별 관계가 없다. 이는 오히려 서울의 지운(地運)과 연계돼 있다. 강북과 강남은 행정구역상 모두 서울시이지만 땅의 ‘족보’는 엄연히 다르다. 한북정맥에 속하는 강북지역(한양)은 500여 년 넘게 조선의 수도 역할을 하면서 지운이 상당히 쇠한 반면, 한남정맥에 속하는 강남 땅은 백제의 수도였다가 1500년만에 다시 지운이 한창 부활하고 있는 곳이다. 강남의 지운이 강북보다 왕성하다는 뜻이다. 서울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수도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한양기운을 강남이 보충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풍수적 해석이다. 남향보다는 배산임수(背山臨水)가 먼저다강남과 강북의 비교는 오히려 배산임수의 풍수 원리로 살펴보아야 한다. 배산임수는 산을 집 뒤로 두고 물을 앞에서 맞이하거나 가까이 두는 구조를 가리킨다.강북은 지형상 북쪽으로 산을 두고 남쪽으로 한강을 끼고 있는 지형이다. 그러니 강북에서는 배산임수와 잘 어울리는 남향집이 자연친화적인 주거가 된다.강남은 강북과 지형이 다르다. 청계산에서 펼쳐져 나온 우면산이나 대모산 등이 남쪽에 있고 한강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다.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지는 남고북저(南高北低) 지형이다. 따라서 남쪽의 산을 집 뒤로 두고 북쪽의 한강을 앞으로 바라보는 북향집이 자연친화적이다.만약 강남에서 강을 뒤쪽으로 두고 산이 앞으로 보이는 남향집을 지으면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도 바람이 부는 방향을 생각해보면 억지스러운 구조가 될 수 있다.바람은 기압의 차이에 따라 생기는 물리적 현상이다. 보통 낮에는 한강 쪽에서 우면산, 대모산 등 산쪽으로 강바람이 불고, 밤에는 반대로 산에서 아래쪽 즉 강쪽으로 산바람이 분다. 밤에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름에도 써늘한 기운을 느낄 만큼 한기(寒氣)가 강하다. 인체 건강에 해롭다고 해서 살풍(殺風)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강남의 남향집은 밤마다 살풍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셈이다. 풍수에서는 건강뿐 아니라 재물운까지 빠져나간다고 본다. 다만 강남 남향집들은 주변에 들어선 고층건물 등이 살풍을 가려주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북향 집도 풍수 명당은퇴를 전후한 시니어 세대 중에는 자연을 즐기는 전원주택단지나 쾌적하고 전망이 좋은 아파트를 찾는 이들이 많다. 부동산 종사자들에 의하면 이들은 대체로 ‘전망 뷰’를 확보한 곳을 으뜸으로 꼽고, 습관적으로 남향 구조를 주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그러나 전망이나 향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점이 배산임수의 조건이다. 집 뒤로 산이나 언덕이 든든한 배경처럼 자리잡고 있고, 앞이 낮게 툭 트인 곳이나 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남향이든 북향이든 동향이든 가릴 게 없다.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형과 지맥(地脈)의 흐름에 맞추어야 온전히 땅 기운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예가 전북 고창군 줄포면 인촌리에 있는 인촌 김성수 생가와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 있는 조선의 명재상 맹사성 생가다. 두 곳 모두 북향집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양택 명당으로 꼽힌다.두 집이 북향을 하게된 데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따랐기 때문이다. 즉 남쪽으로 산을 두르고 있고 북쪽으로 물길이 보이는 북향 구조를 해야만 지기가 맺힌 혈(穴)에 집을 지을수 있었던 것이다.한편으로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지는 북향집을 역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단독주택을 허물어 건물을 신축할 계획이라면 북향집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뒷집의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건물높이를 제한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낮에도 어둑한 것은 현대의 조명으로 해결할 수 있고, 겨울 추위는 최신식 난방 기구가 해결해주는 세상에서 북향집의 단점은 충분히 극복된다. 배산임수에 맞는 북향집이 점차 주목받게 될것이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경기도 과천시 한 단독주택에서 전세살이를 하고 있는 이수영씨(58). 쾌적한 환경을 갖춘 데다가 명당 터라는 조언을 듣고서 이 집에서 산 지 올해로 4년째다. 이씨는 곧 전세 만료를 앞두고 매입할지 이사할지를 결정지어야 했다. 나머지 생을 보낼 주거지를 마련하는 일인 만큼 이씨의 고민은 깊어갔다. 결국 이씨는 집 주인에게 이사하겠다고 통보했다. 제2의 강남으로 불리는 주거 선호지 과천을 떠나기로 결정하기까지 이씨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 잘 풀려서 나갔다는 말을 들었고, 집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어 이사를 왔다. 실제로 이 집에서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식구들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리는 큰 아이가 어느새 기침 증상이 없어졌고, 몸이 골골하던 식구들이 활력을 찾는 것같았다. 지은 지 30년을 넘어가는 낡은 주택이라는 점을 빼고는 은퇴용 내집으로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문제는 1년 전쯤부터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식구들이 예전에 없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고 화목하던 집안 분위기도 점차 썰렁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식구들 사이에 전에 없는 다툼도 생겼다. 집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판단한 이씨는 풍수 전문가를 찾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집 자체에 풍수상 하자가 있는 게 아니었다. 현재 집 뒤쪽 단독주택가 이곳저곳에서 다세대주택들이 건설되고 있는 게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실제로 이씨 집 주변으로 1년 전쯤부터 단독주택을 허물고 3~4층 규모의 다세대주택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었다. 현재도 동네 전체로 공사판이 유행병처럼 번져나가는 상황이었다. 이게 이씨 집에 흉한 기운을 불러들이고 있으므로 이사하는 게 좋다는 풍수적 조언을 들었다. 이씨의 경우는 음양(陰陽)풍수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양택(집) 풍수의 고전으로 통하는 ‘황제택경’에서는 집을 양(陽)의 영역과 음(陰)의 영역으로 나눈다. 대체로 집의 앞쪽을 복덕방(福德方)이라고 하며 음(陰)의 방위로 보고, 집 뒤쪽을 형화방(刑禍方)이라고 하며 양(陽)의 방위로 본다. 말 그대로 복덕방은 복과 덕을 불러들이는 방위이고, 형화방은 흉한 일이 발생하는 방위라는 뜻이다. 내 집에서 복 받는 방위는? 복덕방과 형화방의 방위를 정밀하게 가려내기 위해서는 나침반이 필요하지만, 일반인들도 쉽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집의 중심점에서 베란다 혹은 현관문 쪽을 바라보며 똑바로 서서 양팔을 옆으로 든다. 대개 아파트 베란다 혹은 단독주택 현관문 등 바깥 환경과 연결되는 방향이 집의 앞쪽(向)에 해당하고 그 반대 방향은 뒤쪽(坐)에 해당한다. 이때 집의 앞쪽 및 오른손이 가리키는 범위까지가 복덕방이고, 집의 뒤쪽 및 왼손이 가리키는 범위까지가 형화방이 된다. (아래 그림 참조)이때 양의 기운이 강한 형화방에서는 집을 짓거나 소란스런 행위 등 동(動)적 활동이 벌어지면 이씨 경우처럼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본다. 양 기운이 지나치게 활성화돼 역작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방위에서는 고요한 정(靜)적 상태로 있는 게 음양의 조화를 이를 수 있다. 반대로 음의 기운이 강한 복덕방에서는 동적 활동이 있을 때 오히려 길하다고 본다. 이 방위에 공사 현장이나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 등이 있으면 좋게 본다는 뜻이다. 음의 방위에서는 동적인 움직임이 음양의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되도록 집 뒤쪽은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 조선의 명문 양반 가옥을 가보면 집 뒤쪽으로 휑하니 비워 놓은 터가 자주 발견되는데, 집으로 이어지는 양의 기운을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이유에서다. 이는 집이 아닌 묘지(음택)에도 작용한다. 흔히 조상의 묘 윗자리에 자손의 묘를 쓰는 것을 역장(逆葬)이라 하여 꺼린다. 유교식 예(禮)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는 조상 묘의 윗자리(뒤편)가 형화방이므로 묘지를 조성하는 등 동적인 행위를 하면 흉한 일이 발생한다고 보는 풍수적 배경이 깔려 있다.복덕방과 형화방은 음양이라는 보편적 원리가 개입돼 있다. 현대에서도 통하는 생활의 지혜로 활용할 수 있다. 집 뒤쪽이나 왼쪽으로 차가 드나드는 주차장, 소음이 큰 도로, 집회 장소 등 동적인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공간이 있다면 일단 주의해야 한다. 또 이 방향으로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축이 예정된 경우 해당 지역의 공사가 끝날 때까지 피하는 게 좋다. 반면에 집 앞쪽이나 오른쪽에서 동적인 활동이 이뤄지고 있으면 즐겁게 받아들여도 좋다. 건축 공사를 하는 이들에게 음료수 한 병씩 사들고 가서 인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자신이 사는 집에 길한 기운을 가져다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원주택지에서는 복덕방과 형화방의 원리가 더욱 강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수도권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한 지인이 어느날 집 뒤쪽에 소규모 닭장을 지어놓았다. 닭을 키우면서 닭장에서 싱싱한 계란을 꺼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런데 계란을 먹는 즐거움보다는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었다. 정적 상태로 있어야 할 공간에 닭이라는 생명체가 양적 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닭장을 복덕방에 해당하는 집 오른쪽으로 옮기도록 권했다. 잘 살고 있던 집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감지된다면, 먼저 집 주위로 변수가 생겼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한일 갈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꽁꽁 얼었던 일본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 정부가 무비자 개별 자유여행을 허용하고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방역 조치 등을 모두 해제함에 따라 한일 노선 비행기 편도 급증했다. 특히 한국에서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후쿠오카는 부산에서 출발하는 배편도 재개됐다. 온천과 골프, 다양한 면 요리로 유명한 후쿠오카에서 겨울 풍경을 담아보았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의 추천을 받은 후쿠오카의 겨울 명소는 일본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힐링 여행지다.》 ○‘거울의 바다’에서 ‘빛의 길’을 보다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북쪽의 후쿠쓰(福津)시 해변. 대마도를 바라보며 3km가량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진 이 해변은 ‘거울의 바다’(가가미노우미·かがみの海)라고 불린다. 썰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모래사장 위로 얕게 펼쳐지면서 후쿠쓰의 하늘을 담아내는 ‘거울’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남미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처럼 아름다운 반영(反影)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곳인데, 후쿠오카 현지인들에게도 이제 갓 알려진 인증샷 명소다. 남쪽의 후쿠마(福間) 해수욕장에서 미야지하마(宮地濱) 해수욕장을 거쳐 북쪽의 쓰야자키(津屋崎)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가가미노우미에서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겨울이라고 해서 추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후쿠오카는 겨울의 절정인 1월에도 온도가 영상 10도 아래로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가미노우미의 전망 좋은 곳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몰려 있다. ‘바다뷰 맛집’ 중 하나인 ‘스시야타이 우미노이로((지,기)屋台 海の彩)’를 찾았다. ‘초밥 포장마차’라는 콘셉트로 항구에서 갓 사온 신선한 해산물로 초밥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요리사가 손님들 앞에서 직접 요리를 해가며 내어주는 미식을 즐길 수 있고, 요리사 뒤편으로 펼쳐진 유리 창문을 통해서는 툭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이곳 바다는 한국인이기에 또 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바다 저 너머로 아이노시마(藍島)라는 작은 섬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조선통신사들이 일본 내륙으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섬이다. 200여 년에 걸쳐 총 12차례 일본을 왕래한 조선통신사들은 부산항에서 출발해 쓰시마섬∼이키섬∼아이노시마를 거쳐 일본 본토의 첫 착륙지인 시모노세키(下關) 항에 도착했던 것이다. ‘고양이 섬’으로도 유명한 아이노시마는 둘레 6.14km, 면적 1.22km²로 초승달 모양으로 생겼다. 지금도 이곳에는 조선통신사들이 머물던 객사 터가 남아 있다. 조선 숙종 때 신유한이 남긴 사행기록인 해유록(海游錄)은 아이노시마 밤바다에 엄청난 수의 등불을 켜 놓고 음악을 연주하며 통신사를 맞이하는 일본인들을 상세히 묘사해 놓았다. 일본인 요리사가 내어주는 초밥을 먹으며 바다 멀리 아이노시마에서 벌어졌던 한일 교류의 향연을 떠올려 보았다. 후쿠오카가 왠지 친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썰물 때에 맞춰 거울의 바다 해변으로 가보았다. 웨딩 기념사진을 찍는 일본인 커플, 친구들과 멋진 포즈로 반영을 촬영하는 젊은이들로 바다가 잠시 소란스러웠다. 이곳은 또한 일몰 포인트로도 유명한데, 미야지다케(宮地獄) 신사에서의 일몰 풍경이 그중 압권이라고 한다. 이 신사에서는 ‘거울의 바다’ 중간 지역인 미야지하마 해수욕장 입구까지 직선으로 1.3km가량의 도로가 나 있다. 신사 입구임을 알리는 도리이와 고마이누 석상이 바닷가 쪽에 설치돼 있다. 바로 이 길이 해가 지는 길이다. 매년 2월과 10월이면 바다에서 신사로 이어지는 도로와 햇빛이 일직선이 되는 ‘빛의 길’이 열리는데, 해가 저 멀리 아이노시마 뒤로 질 때까지 사람들이 도로를 꽉 메울 정도라고 한다. 빛의 길에서 해의 정기를 받으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곳 입간판에는 해가 지는 시각과 방위를 안내하는 ‘석양풍경시계(夕陽風景時計)’도 게시돼 있다. 미야지다케 신사는 91개의 붉은색 도리이가 인상적인 이나리 신사(우키하시 소재)와 함께 후쿠오카의 이색 신사로 유명하다. ○바다 가운데 길, 자전거로 가다 가가미노우미에서 남쪽으로 13km가량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명소가 기다리고 있다. 먼바다인 대한해협(쓰시마해협)과 하카타만을 양 옆에 둔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이다. ‘바다 가운데 길(海ノ中道)’이라는 이름처럼 바다를 양 옆에 끼고 땅이 길게 뻗어 있는 형태다. 이곳은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지정된 국영공원이다. 동서 약 6km, 면적 350ha(350만 m²)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공원은 1년 사계절 내내 꽃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졌다. 12월 현재 공원에는 동백꽃과 거의 비슷한 산다화(山茶花·さざんか), 수선화과 식물인 네리네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이 외에 어린이 놀이기구가 모인 원더월드를 비롯해 동물의 숲(동물원), 새들의 연못, 자연 체험관, 마린월드(아쿠아리움), 캠핑장 등 다양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공원이 워낙 넓다 보니 걸어서는 하루에 다 둘러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 해변공원을 찾는 많은 여행자가 자전거를 빌려 공원을 돌아본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대여용 자전거는 3시간 이용하는 데 500엔(약 5000원),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는 1일권이 700엔(약 7000원)이다. 해변길을 따라 전용 자전거도로가 잘 조성돼 있어서 외국인들도 마음 편히 자전거를 타고 즐길 수 있다. 시아야곶의 현해탄(겐카이나다)을 180도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는 ‘시사이드 힐 시오야’와 아름다운 해안선이 일품인 해변 전망대 등 곳곳에 포토존이 있고 쉼터도 마련돼 있다. ‘자전거 힐링’ 코스로 적극 추천할 만하다. ○하카타만의 해상 낙원후쿠오카에서 바다 여행 중 하나인 섬 탐방도 빼놓을 수 없다. 후쿠오카시 메이노하마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고 10분이면 닿는 섬이 있다. ‘하카타만에 떠 있는 꽃의 낙원’이란 수식어가 붙은 노코노시마(能古の島)라는 작은 섬이다. 선착장에서 배를 내려 버스를 타고 언덕배기를 올라가면 섬 북쪽 끄트머리 ‘아일랜드 파크’라는 정원이 나온다. 약 15만 m² 부지가 온통 꽃으로 도배를 한 듯한 분위기를 내는 곳이다. 봄에는 유채꽃과 벚꽃, 여름에는 수국과 해바라기, 그리고 11월 중순까지는 노코노시마 명물인 50만 송이 코스모스 꽃밭이 절정을 이루는데, 지금은 겨울이어서 애기동백과 일본 수선화 등이 허전한 꽃밭을 채워주고 있다. 파크 내에는 ‘오모이데도리(추억의 거리)’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19세기 후반 메이지시대에서 20세기 초반인 쇼와시대 초기까지의 하카타 옛 거리와 건축물을 재현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일본인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막과자와 장난감 등을 팔고 있다. 섬에서 만든 ‘고찬(노코) 우동’도 명물로 통한다. 연인들을 위해 꾸며놓은 명소도 있다. 사랑의 관음보살인 ‘연관음(戀觀音)’상을 안치해 놓은 것인데, 동양의 ‘사랑의 여신’ 개념이다. 연관음 옆에는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원을 담은 나무 명패들이 기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지금 후쿠오카는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 급증에 ‘엔저 현상’까지 겹쳐 한국인들의 방문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현지 여행업계의 전언이다. ‘일본의 지중해’라고 자부할 만큼 아름다운 후쿠오카의 해변은 힐링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글·사진 후쿠오카=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2023년을 맞이하는 겨울 여행으로 ‘기(氣)의 고장’ 전남 영암 월출산 자락을 찾았다. 남도의 따스한 해바라기를 즐기며 월출산의 영험한 기운을 받으면, 삶이 더욱 팍팍해질 내년을 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해서다. 월출산 자락 중 풍수적으로 검증된 기(氣) 포인트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월출산 정기 축적된 용바위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준험한 암봉,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월출산(809m)은 남도의 대표적 명산이다. 기암괴석에 영험한 기운이 서려 있어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불려왔다. 영암(靈巖)이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한다. 월출산의 영험한 바위 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용바위다. 월출산 정기가 가장 많이, 그리고 밀도 높게 모인 것으로 소문난 바위다. 용바위는 월출산으로 오르는 천황사지구탐방로(영암군 영암읍)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 8m, 폭 9m의 거대한 화강암이다. 누구나 보기만 해도 예사롭지 않은 바위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월출산 기 체험 명소로 소개된 이곳은 풍수적으로 대단한 명당 터에 해당한다. 바위 아래로는 제단이 설치돼 있다. 매년 월출산 암영지신(巖靈之神)에게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산천제인 ‘월출산 바우제’가 이곳에서 거행된다. ‘바우’는 바위의 전라도 사투리다. 용바위를 품 안 가득 안아 보거나 바위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 명상을 하다 보면 바위 에너지가 몸으로 전달됨을 느낄 수 있다. 월출산에서 용바위 체험만으로는 아쉽다면 바로 인근 천황사와 구름다리 코스 산행을 해볼 만하다. 용바위에서 울창한 대나무 숲을 통과해 400m쯤 오르다 보면 천황사가 나타난다. 사자봉이 올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황사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천황사에서 한숨 돌리고 이어지는 구름다리까지는 가파른 돌산이 시작된다. 거리로는 1km에 불과하지만 그 품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월출산의 ‘명성’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는 코스다. 1시간 남짓 오르막길을 밟는 동안 초겨울에도 구슬땀이 흐르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마침내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월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에 도착하면 장엄한 산에 동화되는 쾌감이 느껴진다. 짙은 오렌지색 구름다리는 월출산의 웅장한 암릉과 대비돼 눈에 확 띈다. 구름다리는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해발 510m, 길이 54m의 현수교다. 구름다리에서 사방이 탁 트인 경관을 보면 ‘천상의 바위 조각공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고려시대 문인 김극기는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며 기이함을 자랑한다”고 표현했다. 구름다리에서 하산하는 구간 또한 만만치 않다. 철제 계단과 돌계단으로 이뤄진 경사로가 급하고 협소하기 때문에 조심조심 내려와야 한다.○기운을 사는 기찬묏길과 기찬랜드 영암군은 월출산의 기를 관광 상품화했다. 산책을 하며 월출산의 기를 즐길 수 있는 코스는 ‘氣(기)찬묏길’이 대표적이다. 월출산 기슭을 따라 조성된 산자락 길인 기찬묏길은 1구간(4.5km·천황사∼탑동약수터∼솔바람숲∼기체육공원), 2구간(2km·기체육공원∼국민여가캠핑장∼기찬랜드), 3구간(6.5km·기찬랜드∼대동제∼문산재·양사재), 4구간(2km·문산재·양사재∼왕인 박사 유적지) 등 총 15km 구간이다. 물(水), 숲(林), 바위(巖), 길(路)이 조화를 이뤄 월출산의 정기를 듬뿍 쐴 수 있다는 길이다. 이 중 2구간 끝이자 3구간 시작 지점인 기찬랜드는 영암군이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명소다. 월출산 용추골의 기찬랜드를 찾은 우승희 영암군수는 “월출산 천황봉 자락 맥반석에서 나오는 월출산의 기(氣)와 월출산 계곡을 흐르는 청정 자연수를 활용해 조성해 놓은 이곳은 영암의 대표적인 관광지”라고 소개했다. 기찬랜드에는 볼거리도 많다. 영암 출신의 악성 김창조(1865∼1919)를 기리는 가야금산조기념관, ‘영암의 딸’인 가수 하춘화를 기념하는 노래비 및 대한민국 최초의 한국트로트가요센터, 조훈현 바둑기념관 등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기찬랜드에서 기 포인트로 주목되는 곳은 김창조의 생가 터와 가야금동산의 신선바위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악성을 배출한 생가는 현재 빈터로 남아 있지만, 땅의 기운만큼은 출중하다. 팔각 정자(산조루)가 있는 가야금동산의 신선바위는 김창조가 천황봉을 바라보며 가야금을 연주하고, 산조 음악을 창안한 곳이라고 한다. 신선이 이 바위에 앉아 쉬어 갔다는 전설을 가진 신선바위는 주변 경치를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다.○주민자치제의 원조 구림마을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은 자그마치 2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12개 동네가 모여 광역 마을을 이룬 이곳은 고색창연한 고택과 돌담 길, 웅장한 고목들을 곁에 둔 누각과 정자들로 가득한 곳이다. 지금도 낭주 최씨, 함양 박씨, 해주 최씨, 창녕 조씨, 연주 현씨 등이 집성촌을 이뤄 살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자그마한 호수 모양의 ‘상대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원래 포구였음을 말해준다. 일본에 한문과 선진 백제 문화를 전한 구림마을 출신 왕인 박사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최치원도 모두 이곳에서 배를 탔다. 이름난 국제무역항이었던 이곳은 일제강점기 이후 간척 사업과 영산강 하굿둑 공사 등으로 옛 모습을 잃었다. 지금은 배를 댔던 포구와 물길 모습을 되살려 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마을 안쪽에 들어서면 솔숲 사이로 커다란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회사정(會社亭)’이란 간판이 걸린 이 정자는 마치 관아 건물처럼 웅장한 기품이 느껴진다. 바로 이곳이 구림 대동계의 집회 장소다. 구림 대동계는 1565년 조선 명종 때 창설된 이후 지금까지 450여 년간 이어온 주민자치 조직이다. 향약적 성격이 강한 대동계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다수결 투표 등 민주적 절차로 전통을 이어 왔다. 계원들의 상부상조를 주목적으로 하면서도 엄격한 규율을 강조해 마을 질서를 유지하는 등 주변 고을의 귀감이 됐다고 한다. “혼사 때 구림 대동계원이면 집안 내력을 따지지도 말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회사정 바로 옆으로는 범상치 않은 땅 기운도 서려 있다. ‘회사정 제단’이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구림마을 사람들이 봄가을로 풍년을 빌고 감사제를 올리던 제사 터였음을 알려준다. 제단 주변에는 풍기문란, 불효 등으로 마을의 규약을 어긴 이들을 벌주던 돌도 있다. 마을 곳곳에는 역사적 향기가 짙게 밴 기념물들이 숨은 듯이 자리하고 있다. 연주 현씨 가문이 건립한 정자 죽림정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친필 편지(사본)가 보관돼 있다. 충무공은 임진왜란 당시 군수물자 보급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호남의 지인에게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는 친필 편지를 보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구림마을의 현덕승, 현건 부자였다. 충무공은 이 마을을 두 번이나 찾았다고 전해진다. 함양 박씨 가문이 세운 육우당의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다. 한석봉은 스승인 신희남을 따라 영암으로 내려와 죽림정사에 머물며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한석봉과 어머니가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을 했다는 곳도 바로 이 구림마을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풍수지리로 유명한 도선 국사의 탄생과 관련된 국사암, 왕인 박사의 발자취를 복원해 놓은 왕인 박사 유적지 등이 있다. 영암군이 세운 ‘도기박물관’과 가마터, ‘하정웅미술관’도 방문해볼 만하다. 이처럼 명당 마을 한 바퀴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기운 충전과 함께 충분히 힐링이 된다.글·사진 영암=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충북 진천과 증평에는 진가에 비해 덜 알려진 명소들이 많다. 진천군이 동양 최고(最古)의 징검다리라고 자랑하는 ‘농다리’는 천년 전 별자리를 지상에 구현해 놓은 돌다리이고, 태령산의 김유신 장군 태실은 현전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탯줄 풍수’ 현장이다. 바로 이웃인 증평군의 좌구산과 벨포레는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추천하는 숨겨진 가족 나들이 명소다. ○28개 별자리를 구현해 놓은 농다리징검다리가 참 희한하게 생겼다. 붉은 빛깔의 돌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안으로 켜켜이 들이쌓여 하나의 교각을 이루고 있다. 물길을 가로질러 촘촘하게 늘어선 교각들 사이로는 상판석을 놓아 건너가도록 했다. 전체 길이가 93.6m인 다리는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지네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모두 28칸(교각과 교각 사이)으로 구성된 징검다리는 석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의 크고 작은 돌들을 적절히 배합해 쌓은 형태다. 자세히 살펴보니 교각들 모두 양 끝이 유선형으로 오므라져 있고,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계단식 구조를 하고 있다. 오랜 기간 물의 흐름을 연구한 결과 강한 물살에 잘 버틸 수 있도록 고안해낸 ‘과학 작품’인 셈이다. 이 징검다리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굴티마을) 앞 미호천(세금천)에 있는 돌다리다. ‘농다리’로 불리는 지방유형문화재다. 농다리는 일제강점기 일부 교각이 인위적으로 훼손되긴 했지만 오랜 세월 거의 원형 그대로 버텨 왔다. 지금의 다리는 2008년에 고증 작업을 거쳐 훼손됐던 4칸까지 모두 복원해 놓은 것이다. 향토지인 ‘상산지’(常山誌·1825년 편찬, 1932년 재간행)와 인문지리서인 ‘조선환여승람’에 의하면 농다리는 고려 초기 (상산) 임씨의 선조인 임 장군이 처음 건축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다리이다 보니 범상치 않은 내력도 가지고 있다. 먼저 임 장군은 농다리의 28칸 교각이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하도록 배치했다(‘상산지’). 동양 천문학은 하늘의 별자리를 동서남북 4개 영역으로 구분한 다음, 각각의 방위에 7개의 별자리를 배속해 28(4방위×7별자리)수라고 부른다. 즉 다리의 28칸 교각은 동(각·항·저·방·심·미·기) 서(규·누·위·묘·필·자·삼) 남(정·귀·유·성·장·익·진) 북(두·우·여·허·위·실·벽)의 28개 별자리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임 장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양의 기운이 고루 배합된 돌들을 사용해 농다리를 축조했다. 결론적으로 음양의 조화와 우주를 상징하는 농다리는 그 자체가 모든 사람의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도량이라는 의미다(‘농다리원형복원사적비’). 자색(紫色)의 사암(砂巖) 성분인 농다리 돌들은 하늘의 중심이자 옥황상제가 머문다는 자미원을 상징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28수 별자리를 하나하나 세면서 농다리를 건너가면 소원이 이뤄질 법도 하다. 희한하게도 농다리 자체가 명당 혈(穴)에 축조됐다는 점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호랑이가 버티고, 용이 서린 것 같은 농다리’(조선환여승람)를 건너면 나지막한 고갯길인 살고개가 나타나고, 곧 초평저수지 둘레길로 이어진다. ‘초롱길’로 불리는 이 코스는 고즈넉하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진천군청소년수련원 인근 하늘다리(길이 93m의 출렁다리)로 이어지는 약 1.5km 수변 덱 구간(1.6km)이 산책의 백미로 꼽힌다. 초평저수지는 곳곳에 자리 잡은 수상가옥 좌대, 카누 선수들의 연습하는 모습, 한반도 모습의 지형 등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윤기가 잘잘 흐르는 진천 쌀밥에다 초평 붕어마을의 붕어요리(찜과 조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김유신 탯줄 묻힌 태령산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 하면 보통 경주를 떠올리게 된다. 그가 살던 옛집과 묘가 경주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김유신이 태어난 곳은 진천이다. 그가 태어난 생가 터와 그의 탯줄이 묻힌 태실이 모두 진천 땅에 있다. 어린 시절 김유신에게 큰 영향을 준 곳은 진천인 것이다. 김유신 탄생지는 태령산 남쪽 자락(진천읍 상계리)에 있다. 그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만노군(현 진천) 태수로 부임했을 당시 집무를 보던 공간이다. 한눈에 보아도 대명당 터에 해당한다. 이곳을 안내한 김유신 장군의 27대 손인 김동열 씨(79·진천군 거주)는 “이 터에서 아이를 낳으면 최소 장관급은 된다는 소문이 나서, 땅기운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적잖게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가 태어난 장소에 큰 담을 쳤다고 해서 ‘담안밭’으로도 불리는 김유신 탄생지는 김유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탄생지의 뒷배가 되는 태령산 자락엔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인 연보정이 있고, 산 정상에는 김유신의 탯줄을 묻어 놓은 태실이 있다. 김유신 탄생지에서 연보정을 거쳐 산 정상의 태실(약 462m 높이)까지는 등반 느낌이 들 만큼의 땀을 필요로 하지만, 태실의 기운은 그 노고를 넉넉히 보상해준다.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아 올린 뒤 그 위로 흙을 덮은 봉분 형태인 태실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태실로 꼽힌다. 김서현 장군은 태실을 조성한 후 주위에 태아의 모습으로 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그 흔적이 지금도 있다. 김유신 태실은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먼저 금관가야 왕족 후손인 아버지 김서현이 조성한 태실은 신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 가야에서 유래한 풍속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태실 풍속이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라는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있다. 또 태실은 생명의 상징인 탯줄이 명당에 묻힘으로써 탯줄의 주인공 역시 살아서 땅기운을 받아 누린다는 풍수관을 보여준다. 이는 풍수가 망자(亡者)와 산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조선 왕조가 왕자와 공주들의 탯줄을 명당에 안치하기 위해 전국 명산을 뒤져 태실을 조성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어쨌든 진골 출신의 김유신이 사후 왕급인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데는 진천의 신령한 땅기운도 단단히 거들었으리라 생각된다. ○가족 힐링 여행의 별천지 증평 서울과 가까워 하루 나들이 코스로 적당하면서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힐링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 증평군의 좌구산자연휴양림과 에듀팜관광특구(벨포레)다. 먼저 증평의 남쪽 끝에 있는 좌구산(坐龜山·657m)은 행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앉아 있는 모습을 한 산이다. 이 산에 조성된 자연휴양림에서는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즐길 수 있다. 낮에는 숲속 산책 및 ‘명상의 집’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주변에 볼거리도 풍성하다. 거북바위정원, 협곡에 설치한 길이 230m, 높이 50m의 출렁다리(명상구름다리), 어린이들을 위해 꾸민 병영하우스 조형물 등이 있다. 밤에는 휴양림 내 맨 꼭대기에 있는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며 다양한 천문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좌구산휴양림만의 장점이다. 증평군 북쪽 두타산 자락엔 또 다른 별세상이 있다. 양떼 목장, 4계절 썰매장, 골프(18홀 규모), 제트보트와 요트, 루지 등 종합레저단지(에듀팜관광특구)인 벨포레다. 이곳에서 어른, 아이 모두에게 인기를 끄는 것이 2.9km 길이의 루지다. 리프트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간 다음 무동력 카트를 타고 산길을 지그재그로 내려오며 스릴을 즐길 수 있다. 또 양떼 목장에서 양몰이 개의 양몰이 시범 공연도 아이들의 인기를 끄는 코스다. 증평군은 울릉군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제일 규모가 작은 군이지만, 알찬 관광 콘텐츠로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글·사진 진천=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6월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창공으로 날아올라 국민적 주목을 끌었던 곳이다. 용처럼 불을 토하며 우주로 치솟은 누리호는 대기권 밖에다 ‘여의주’인 위성을 토해 놓는 데성공했다. 2027년까지 4차례의 추가 발사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나로우주센터의 발사 장면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 고흥우주발사전망대다. 근처엔 용이 승천하는 형상인 용바위가 자리 잡고 있어 발사체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격렬한 화산 활동이 빚어낸 용바위는 우주와 교감할 수 있는 에너지가 형성된 터이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높이 떠서(高) 흥하는(興)’ 고흥을 찾아 우주와 하늘을 느껴본다.》○미르마루길에서 만난 ‘등용문’고흥군 우미산 아래쪽의 해안길인 미르마루길. 용(미르)과 하늘(마루)을 테마로 조성한 산책로로, ‘용바위하늘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푸른 하늘처럼 펼쳐진 바다 경관을 즐기며 약 4km(도보로 약 1시간 15분 거리) 길을 걷다 보면 용바위 용굴 용두암 등 용과 관련된 형상들을 유난히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미르마루길은 영남면 고흥우주발사전망대에서 시작한다. 나로도에 위치한 나로우주센터에서 쏘아 올리는 우주 발사체 궤적은 아무데서나 잘 보이지 않는다. 직선거리로 바다 건너 15km가량 떨어진 이곳 전망대가 최고의 관람 포인트다. 바닷가 언덕 위에 로켓 발사대처럼 꾸며놓은 전망대는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로 꾸며져 있다. 전망대 전시관에 들어서면 강아지 동상이 눈에 띈다. ‘비극의 우주 개, 라이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라이카는 세계 최초로 우주 공간으로 나간 지구 생명체다. 1957년 11월 3일 구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져 우주공간으로 떠난 모스크바의 떠돌이 개 라이카는 발사 몇 시간 만에 극심한 고열과 공포에 질려 죽었다. 인류의 우주 진출 욕심으로 인해 희생한 동물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전망대는 우주도서관과 우주체험 공간을 마련해 놓았고, 7층에는 360도로 돌아가는 회전카페가 있다. 천천히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나로우주센터와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미르마루길 안내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잘 조성해 놓은 해안 산책로로 이어진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사자인 사자바위와 길이 300m의 몽돌해변을 뒤로하고 계속 걷다 보면 두 개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하나는 해안절벽에 2개의 동굴이 형성된 용굴(길이 약 200m, 폭 7m)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이고, 다른 하나는 80m 해안절벽 위에 철제 빔을 설치한 미르전망대다. 승천하려고 다투던 2마리 용 중 패배한 쪽을 상징하는 곳이 용굴이고, 승리한 쪽을 상징하는 곳이 미르전망대라고 한다. 현재 출입이 통제된 용굴은 싸움에서 진 용이 동굴로 들어간 후 나오지 못했다는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태풍이 올라오거나 해일이 닥치려 할 때 동굴에서 나는 소리를 “(분노한) 용이 운다”고 말한다. 너울성 파도가 용굴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라고 한다. 10km 거리까지 퍼져 나가는 용 울음 소리가 들리면 마을 사람들은 바로 재난에 대비했다고 한다. 동굴에 갇힌 용과 달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곳이 바로 미르전망대다. 막상 용이 승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발아래 투명유리를 통해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아찔함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 아래는 유명 낚시 포인트여서 전국에서 낚시꾼들이 찾아온다. 잘 조성된 덱길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용바위와 용두암(영남면 우천리 용암마을 해변)으로 간다. 이 일대는 바닷가에서 120m 높이로 우뚝 선 바위산과 함께 화산활동이 빚어낸 기암괴석, 크고 작은 돌개구멍, 넓은 반석층이 제주도 용두암 못지않은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먼저 용바위에는 당연히 용의 ‘흔적’이 있다. 용바위 절벽 중앙 부위에는 깊고도 굵은 선 모양으로 골이 파여 있는 곳이 있다.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자국이라고 한다. 절벽 위에는 위풍당당하게 여의주를 들고 있는 용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조선 후기 지리지인 ‘여지도서’가 “팔영산 동쪽 바닷가 바위에는 용이 서려 있던 자취가 남아 있고, 바위 아래로는 마치 깎아 만든 듯한 평평하고도 넓은 암반층이 있어 1000명도 앉을 수 있다”고 묘사한 곳이 바로 여기다. 용바위에서 70m 옆에 있는 용두암 역시 용 스토리를 풍성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용바위에서 승천한 용의 머리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늘이 빚어놓았다는 바위인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용바위 일대는 나로우주센터와 더불어 고흥의 명소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난 화산 활동 지형, 단체 혹은 가족 단위 나들이 장소로 활용하기 좋은 넓은 반석 지대, 바닷고기가 풍성한 낚시 포인트 등 다양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풍수적으로도 용바위에는 훌륭한 기운이 배어 있다. 예부터 이곳은 등용문(登龍門·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크게 출세함)을 기원하는 이들이 즐겨 찾았다. 지금도 입시철이면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명당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팔영산에서 만난 주역 8괘미르마루길의 용 설화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내력을 가진 곳이 고흥 팔영산(八靈山)이다. 기이한 자태의 봉우리 8개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산이다. 공룡의 등 돌기처럼 불거져 나온 8개 봉우리 형상은 일찌감치 중국까지 알려졌던 모양이다. 중국 위(魏)나라 왕이 세숫대야에 비친 8개 봉우리에 감탄해 수소문한 끝에 팔영산을 찾아내고는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팔영산은 조선 때 봉수대가 설치됐었고, 구한말에는 의병 활동의 근거지였으며, 신흥 종교의 요람이기도 했다. 팔영산은 산세가 수려해 암릉 산행지로 유명하거니와, 산자락 곳곳에 명소들을 품고 있다. 먼저 북측 산자락에 자리 잡은 능가사는 팔영산의 8개 봉우리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절집 뒤로 펼쳐지는 팔영산 봉우리를 바라보다 보면 절로 ‘멍을 때리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절집 뒤쪽(남쪽)이 팔영산이다 보니 대웅전 등 법당이 북향(北向)을 하고 있다는 점도 이채롭다. 한때 호남 4대 사찰에 들 만큼 번창했었다는 능가사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동종(범종) 등이 유명하다. 특히 1698년(숙종 24년)에 주조된 범종은 ‘주상전하 만만세’라는 명문과 함께 주종장(鑄鐘匠) 김애립과 시주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17세기를 대표하는 범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능가사에는 팔영산의 8(八)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주역 8괘(八卦)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범종에는 불법(佛法)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주역 8괘(건, 감, 간, 진, 손, 이, 곤, 태)가 새겨져 있고, 300여 년 전의 작품인 능가사사적비(전남 유형문화재)에도 8괘가 보인다. 우주만물 혹은 천지팔방을 의미하는 8괘가 왜 범종 등에 새겨졌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8괘의 흔적은 팔영산 서쪽 자락의 편백 치유의 숲에서도 발견된다. 30∼40년생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길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은 팔영산과 편백숲에서 나오는 8가지 기운(木, 金, 土, 風, 光, 藝, 感, 學)으로 인체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증진시켜 주는 힐링 명소로 소개돼 있다. 이곳에서는 이색적인 숲속 경관 체험과 함께 여러 치유 프로그램을 경험해 볼 수 있다. 특히 ‘세러피센터’에서는 고흥의 대표적 특산물인 유자와 석류 그리고 편백나무에서 추출한 천연수에 몸을 담그고 쉴 수 있는 ‘수(水) 치유’가 인상적이다. 지역 특산품의 좋은 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 또한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글·사진 고흥=안영배 기자·철학 박사 ojong@donga.com}

《충북 제천에는 힐링 명당 터를 재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저수지가 워낙 크고 넓어 그 자체가 천하 명당임을 알아채기 어려운 의림지가 있고, 산 정상에 올라 청풍호(충주호)의 절경에 취한 나머지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기상을 놓치기 쉬운 비봉산도 있다. 그뿐이랴. 제천 점말동굴은 대표적 구석기시대 유적인데, 신라 화랑들의 수행처이자 순례지였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옥순봉과 천등산 박달재의 향기 진한 문화 스토리 역시 빠뜨리면 아쉽다.》○물이 샘솟는 저수지 명당제천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다. 벽골제와 수산제는 저수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의림지만큼은 ‘현역 복무’ 중이다. 현재도 호반 둘레 1.8km 안에다 물을 가득 담아두고서 287만여 m²의 인근 들판을 기름지게 해주고 있다. 의림지 역사는 천년 세월을 훌쩍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삼한시대에 축조됐다는 말도 있고,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시초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우륵대와 집터인 우륵당 등 옛 흔적이 남아 있다. 의림지는 그 후에도 사람의 손길을 거치면서 저수지 기능을 확장해 왔다. 고려 때는 현감 박의림이 연못 주위에 3층으로 돌을 쌓는 등 개축했고, 조선시대에는 정인지(1397∼1478)가 또 손을 보았다. 당시 풍수에 해박했던 정인지는 1500명의 병력을 동원해 의림지를 개축하면서 “샘이 밑 없는 구멍으로부터 나와 펑펑 솟아서 절로 못을 이룬다”고 묘사하는 등 의림지가 범상치 않은 명당임을 알아보았다. 호수 바닥에서 물이 솟아 나오기 때문에 둑을 의미하는 ‘제(堤)’가 아닌 ‘지(池)’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관개 시설이었던 의림지는 국가명승 제20호로 지정돼 있다. 뛰어난 절경으로 인해 조선 선비들의 모임 공간이던 누정(누각과 정자)도 많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영호정(1807년 건립, 1954년 중건)과 경호루(1948년 건립), 그리고 2007년 제천시가 의림지 명소화 사업으로 건립한 우륵정 등이 남아 있다. 현재 의림지는 제천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는 등 사계절 휴식 공간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로 보면 의림지는 풍수 명당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명당 터는 그 기능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곳이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의림지는 호반 주위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명당 기운을 쐴 수 있다. 수백 년 자란 소나무 군락과 수양버들 숲, 높이 30m의 용추폭포 등은 산책의 운치를 한층 더해준다. 의림지 아래쪽으로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제천시가 의림지에서 청전동까지 이어지는 2km 길에다 4계절 산책로로 조성한 ‘삼한의 초록길’이다. 농로(農路)를 확장해 놓은 듯한 길 양옆으로는 황금색 들판이 펼쳐지고, 길 중간중간에는 4계절을 주제로 한 140여 종의 식물이 늘어서 있다. 삼한의 초록길을 가로지르는 4차로 도로 위로 조성해 놓은 에코브리지(보행자용 육교) 또한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다. 공중정원처럼 꾸며놓은 이곳은 제천시의 새로운 관광 랜드마크로 주목받고 있다. 삼한의 초록길은 자전거로도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삼한의 초록길 입구 쪽 그네정원 바로 옆에 자리한 자전거체험센터에서 무료로 빌려 탈 수 있다. ○청풍호반 절경 포인트, 비봉산과 옥순봉 남한강 물길을 막아 생긴 호수인 충주호는 제천에서는 청풍호라고 부른다. 호반 전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비봉산(531m) 정상이다.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2.3km 구간을 운행하는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로 10분 남짓 걸려 정상에 도착하니 사방이 짙푸른 청풍호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넓은 바다 한가운데 높은 섬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호반 주위로 펼쳐지는 풍경은 외국 시골마을의 목가적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이국적이다. 정상의 전망대에는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고, 발 딛는 곳곳마다 포토존이 된다. 머리에 전망대를 이고 있는 비봉산은 알을 품은 봉황이 비상하는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제천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신성시해온 산이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커다란 새 등에 올라타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청풍호의 또 다른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옥순봉. ‘단양8경’ 중 하나로 유명한 옥순봉은 사실 제천 땅에 속한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로 재직하던 퇴계 이황은 이곳의 희고 푸른 석벽이 마치 대나무 순이 솟은 듯하다고 해서 옥순봉이라고 이름 지었다. 퇴계는 옥순봉에 반해 당시 청풍군수에게 단양으로 넘겨달라고 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퇴계는 옥순봉 석벽에다 단양의 관문이란 뜻인 ‘단구동문(丹丘洞門)’을 새김으로써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옥순봉에 오르기에 앞서 옥순봉 인근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출렁다리는 빠뜨릴 수 없는 명소다. 지난해 10월 개장한 옥순봉 출렁다리는 길이 222m, 너비 1.5m 규모로 청풍호를 가로지른다. 걸음을 뗄 때마다 전해지는 출렁거림이 아찔할 정도다. 다리를 건너면 약 400m 길이의 생태탐방 덱로드와 야자매트가 깔린 트레킹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통해서도 옥순봉에 오를 수 있지만 사유지여서 출입이 통제된다.○신라 화랑들의 수련처 점말동굴제천의 진산인 용두산(871m) 자락에 있는 점말동굴 유적은 남한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시대 동굴 유적으로 역사 교과서에 자주 언급된 곳이다. 점말동굴은 병풍바위로 불리는 거대 암벽 틈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동굴인데, 중심 동굴 근처에 6개의 가지 굴이 발달돼 있는 형태다. 그 모양새가 용의 눈 혹은 콧구멍과 비슷하다고 해서 ‘용바위’라고 불리는 곳이다. 지금도 샘물이 흐르고 있는 이 유적에서는 구석기시대 동물 화석과 석기 등 다양한 유적이 발견돼 선사시대 생활상 연구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신라시대 화랑들의 흔적이 발견됐다. 그 증거가 점말동굴 외벽에 새겨진 80여 자의 각자(刻字)다. 烏郞徒(오랑도), 祥蘭宗得行(상란종득행), 西郞徒陽月(서랑도양월) 등 신라 화랑을 연상시키는 한자들이 대거 발견됨으로써 이곳이 화랑들의 수행처이자 순례지였음을 말해준다. 실제 신라 화랑들은 명당 동굴에서 즐겨 수행을 했다. 경북 영천의 중악석굴은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의 수행처였고, 충북 진천의 장수굴과 강원 통천의 금란굴은 화랑들의 순례지이자 기도처로 활용됐다는 기록도 있다. 실제로 점말동굴은 구석기시대 이후 지금까지도 지기(地氣)가 뻗쳐 나오는 명당 터로 손색이 없다. 즉, 점말동굴은 선사시대 생활 유적이자 신라 화랑들의 신앙 유적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 곳이다. 현재 제천시는 점말동굴의 특징을 살려 동굴체험관 건립 등 명소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외에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대중가요로 유명한 천등산 박달재에서는 조선 중기 박달과 금봉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예술로 표현해놓은 조각상도 유명하다. 성각 스님이 2005년 천년을 살다 죽었다는 느티나무 고목을 가져와 3년 2개월에 걸쳐 고목 내부에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작은 법당인 ‘목굴암’을 완성했는데, 현생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연꽃처럼 피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불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제천의 마스코트이기도 한 박달과 금봉을 만나는 것으로 제천 여행을 갈무리한다. 글·사진 제천=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