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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앞바다에는 무인도 삼형제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제주도를 만든 신이 아름다운 제주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화가 나서 한라산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범섬이 됐다고 한다. 한라산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백록담이 됐다. 서귀포 세 섬은 유네스코 등록유산이자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천혜의 비경이다. 바닷속은 ‘산호정원’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성지이기도 하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살았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 그리운 섶섬 풍경제주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면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화가 이중섭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황토빛 길과 나목, 초가지붕 풍경은 콘크리트 빌딩과 도로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문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풍경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현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인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볼 수 있다. 황토빛 초가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색 제주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색채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서귀포 생활은 중섭에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원산에 살던 이중섭은 가족을 이끌고 피란해 제주 서귀포까지 내려온다. 이중섭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평짜리 단칸방을 얻어 산다. 실제로 이중섭 미술관 아래 초가집에는 이중섭 가족이 머물던 방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배급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이중섭은 서귀포 해변으로 내려가 해초를 뜯어 죽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반찬을 해 먹었다고 한다. 서귀포 칠십리로 자구리해변에 가면 전망 좋은 카페와 식당이 있는 거리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이중섭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제주도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문화예술공원에는 담뱃갑 속 포장지인 은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커다란 손이 형상화된 조각품이 있다. 이중섭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작가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중섭은 제주도에 도착한 그해 12월 가난을 해결하지 못해 1년도 채 안 돼 부산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이후 아내와 아이들도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상주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를 감상한다. 섶섬과 문섬의 풍경을 보기엔 서귀포 정방폭포 옆에 있는 이왈종미술관도 좋은 포인트다. 화가 이왈종은 1990년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제주로 내려왔다. 민화적인 색채와 도상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 세계는 단란하다. ’제주 생활의 중도‘ 연작에는 동백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제주의 유유자적한 풍경이 살아 숨쉰다.● 바닷속 곶자왈, 산호정원 섶섬은 스킨스쿠버 명소다. ’소천지‘와 ’작은 한개창‘, ’큰 한개창‘(제주 방언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지형을, ’개창‘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이라고 한다) 등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즐비하다. 섬이나 바닷가 여행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귀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5분쯤 가니 섶섬에 도착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부력조절장치(BCD)의 공기를 배출시키며 서서히 하강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육상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한 제주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류(soft coral)인 분홍색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산호, 하얀색 해송까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산호를 모아놓은 듯하다.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흰색 등 총천연색 ’산호정원‘이다. 알록달록 화려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일명 라이언피시)이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여유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 강렬한 원색의 아열대 어종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청줄돔, 파랑돔, 호박돔, 아홉동가리, 황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군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공생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등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주인공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운이 좋으면 용왕의 사신인 바다거북, 대형 가오리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대표(다이빙 강사)는 “섶섬 앞바다에는 해송이 많고, 문섬 새끼섬 직벽에는 노란색 연산호가 많다”며 “서귀포 앞바다는 세계적인 천혜의 산호정원”이라고 말했다. ● 방주교회 & 본태미술관서귀포항에서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으로 가서 미술과 건축 여행을 이어간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본태미술관‘과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이 설계한 ’방주교회‘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방주교회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모양으로 세워진 교회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방주처럼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방주교회는 지붕의 삼각형 금속조각이 반사하며 빛의 홍수를 만들어낸다. 교회 주변은 야트막한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방주의 형상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배의 골격을 본떠 기둥 없는 오각형 돔 구조로 간결하다. 벽면 아래쪽에 있는 유리창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조타실에 해당하는 정면에 십자가가 서 있고, 유리창에서는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희망의 창문‘이다. 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교회지만 누구라도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는 종교적 분위기가 가득한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본태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한국의 전통 흙담 및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답다. 투명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건물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내부에 들어가면 백남준,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고려청자와 백자, 소반, 조각보 등 동서양 미술의 다양한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는 무인도 삼형제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제주도를 만든 신이 아름다운 제주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화가 나서 한라산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범섬이 됐다고 한다. 한라산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백록담이 됐다. 서귀포 세 섬은 유네스코 등록유산이자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천혜의 비경이다. 바닷속은 ‘산호정원’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성지이기도 하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살았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 그리운 섶섬 풍경 제주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면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화가 이중섭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황토빛 길과 나목, 초가지붕 풍경은 콘크리트 빌딩과 도로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문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풍경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현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인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볼 수 있다. 황토빛 초가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색 제주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색채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서귀포 생활은 중섭에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원산에 살던 이중섭은 가족을 이끌고 피란해 제주 서귀포까지 내려온다. 이중섭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평짜리 단칸방을 얻어 산다. 실제로 이중섭 미술관 아래 초가집에는 이중섭 가족이 머물던 방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배급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이중섭은 서귀포 해변으로 내려가 해초를 뜯어 죽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반찬을 해 먹었다고 한다. 서귀포 칠십리로 자구리해변에 가면 전망 좋은 카페와 식당이 있는 거리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이중섭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제주도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문화예술공원에는 담뱃갑 속 포장지인 은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커다란 손이 형상화된 조각품이 있다. 이중섭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작가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중섭은 제주도에 도착한 그해 12월 가난을 해결하지 못해 1년도 채 안 돼 부산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이후 아내와 아이들도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상주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를 감상한다. 섶섬과 문섬의 풍경을 보기엔 서귀포 정방폭포 옆에 있는 이왈종미술관도 좋은 포인트다. 화가 이왈종은 1990년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제주로 내려왔다. 민화적인 색채와 도상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 세계는 단란하다. ‘제주 생활의 중도’ 연작에는 동백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제주의 유유자적한 풍경이 살아 숨쉰다. ● 바닷속 곶자왈, 산호정원 섶섬은 스킨스쿠버 명소다. ‘소천지’와 ‘작은 한개창’, ‘큰 한개창’(제주 방언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지형을, ‘개창’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이라고 한다) 등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즐비하다. 섬이나 바닷가 여행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귀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5분쯤 가니 섶섬에 도착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부력조절장치(BCD)의 공기를 배출시키며 서서히 하강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육상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한 제주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류(soft coral)인 분홍색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산호, 하얀색 해송까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산호를 모아놓은 듯하다.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흰색 등 총천연색 ‘산호정원’이다. 알록달록 화려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일명 라이언피시)이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여유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 강렬한 원색의 아열대 어종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청줄돔, 파랑돔, 호박돔, 아홉동가리, 황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군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공생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등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주인공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운이 좋으면 용왕의 사신인 바다거북, 대형 가오리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대표(다이빙 강사)는 “섶섬 앞바다에는 해송이 많고, 문섬 새끼섬 직벽에는 노란색 연산호가 많다”며 “서귀포 앞바다는 세계적인 천혜의 산호정원”이라고 말했다. ● 방주교회 & 본태미술관 서귀포항에서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으로 가서 미술과 건축 여행을 이어간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본태미술관’과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이 설계한 ‘방주교회’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방주교회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모양으로 세워진 교회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방주처럼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방주교회는 지붕의 삼각형 금속조각이 반사하며 빛의 홍수를 만들어낸다. 교회 주변은 야트막한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방주의 형상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배의 골격을 본떠 기둥 없는 오각형 돔 구조로 간결하다. 벽면 아래쪽에 있는 유리창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조타실에 해당하는 정면에 십자가가 서 있고, 유리창에서는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희망의 창문’이다. 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교회지만 누구라도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는 종교적 분위기가 가득한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본태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한국의 전통 흙담 및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답다. 투명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건물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내부에 들어가면 백남준,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고려청자와 백자, 소반, 조각보 등 동서양 미술의 다양한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는 무인도 삼형제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제주도를 만든 신이 아름다운 제주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화가 나서 한라산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범섬이 됐다고 한다. 한라산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백록담이 됐다. 서귀포 세 섬은 유네스코 등록유산이자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천혜의 비경이다. 바닷속은 ‘산호정원’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성지이기도 하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살았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그리운 섶섬 풍경제주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면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화가 이중섭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황토빛 길과 나목, 초가지붕 풍경은 콘크리트 빌딩과 도로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문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풍경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현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인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볼 수 있다. 황토빛 초가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색 제주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색채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서귀포 생활은 중섭에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원산에 살던 이중섭은 가족을 이끌고 피란해 제주 서귀포까지 내려온다. 이중섭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평짜리 단칸방을 얻어 산다. 실제로 이중섭 미술관 아래 초가집에는 이중섭 가족이 머물던 방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배급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이중섭은 서귀포 해변으로 내려가 해초를 뜯어 죽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반찬을 해 먹었다고 한다. 서귀포 칠십리로 자구리해변에 가면 전망 좋은 카페와 식당이 있는 거리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이중섭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제주도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문화예술공원에는 담뱃갑 속 포장지인 은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커다란 손이 형상화된 조각품이 있다. 이중섭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작가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중섭은 제주도에 도착한 그해 12월 가난을 해결하지 못해 1년도 채 안 돼 부산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이후 아내와 아이들도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상주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를 감상한다. 섶섬과 문섬의 풍경을 보기엔 서귀포 정방폭포 옆에 있는 왈종미술관도 좋은 포인트다. 화가 이왈종은 1990년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제주로 내려왔다. 민화적인 색채와 도상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 세계는 단란하다. ‘제주 생활의 중도’ 연작에는 동백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제주의 유유자적한 풍경이 살아 숨쉰다.○ 바닷속 곶자왈, 산호정원 섶섬은 스킨스쿠버 명소다. ‘소천지’와 ‘작은 한개창’, ‘큰 한개창’(제주 방언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지형을, ‘개창’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이라고 한다) 등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즐비하다. 섬이나 바닷가 여행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귀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5분쯤 가니 섶섬에 도착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부력조절장치(BCD)의 공기를 배출시키며 서서히 하강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육상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한 제주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류(soft coral)인 분홍색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산호, 하얀색 해송까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산호를 모아놓은 듯하다.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흰색 등 총천연색 ‘산호정원’이다. 알록달록 화려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일명 라이언피시)이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여유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 강렬한 원색의 아열대 어종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청줄돔, 파랑돔, 호박돔, 아홉동가리, 황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군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공생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등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주인공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운이 좋으면 용왕의 사신인 바다거북, 대형 가오리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대표(다이빙 강사)는 “섶섬 앞바다에는 해송이 많고, 문섬 새끼섬 직벽에는 노란색 연산호가 많다”며 “서귀포 앞바다는 세계적인 천혜의 산호정원”이라고 말했다.○방주교회 & 본태박물관서귀포항에서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으로 가서 미술과 건축 여행을 이어간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본태박물관’과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이 설계한 ‘방주교회’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방주교회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모양으로 세워진 교회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방주처럼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방주교회는 지붕의 삼각형 금속조각이 반사하며 빛의 홍수를 만들어낸다. 교회 주변은 야트막한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방주의 형상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배의 골격을 본떠 기둥 없는 오각형 돔 구조로 간결하다. 벽면 아래쪽에 있는 유리창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조타실에 해당하는 정면에 십자가가 서 있고, 유리창에서는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희망의 창문’이다. 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교회지만 누구라도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는 종교적 분위기가 가득한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본태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한국의 전통 흙담 및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답다. 투명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건물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내부에 들어가면 백남준,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고려청자와 백자, 소반, 조각보 등 동서양 미술의 다양한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글·사진 서귀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글씨는 까만 먹물 속에 있는 가장 하얀 빛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그 빛을 발산해 세상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할 일이죠.” 1세대 캘리그라피 작가이자 20년간 KBS에서 ‘불멸의 이순신’ ‘진품명품’ ‘명견만리’ 등의 대표적인 방송 타이틀을 써온 작가 장천(章川) 김성태. 그는 글씨를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그가 쓴 역동적이면서도 세련된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서체의 아름다움을 넘어 글귀에 담긴 뜻이 마음 속에 또렷이 살아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여섯 살에 서예학원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글씨를 배웠다. 국내 최초의 서예 전공학과인 원광대 서예과 1기 생으로 졸업했고, 동국대 인문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서예사를 전공했다. 대학원 논문 주제는 ‘고운 최치원의 서예연구’. 1997년 동아미술제 입선을 시작으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 2회, 입선 4회 수상으로 초대작가가 됐다. 한문과 한글 분야의 전통 서예가의 길을 걸었던 그가 어떻게 캘리그라피 작가가 됐을까. “1997년 어느날, 당시 핫한 드라마였던 KBS1TV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을 보면서 나도 저런 방송 타이틀을 쓰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방송 타이틀을 다양한 스타일로 연습하면서 차곡차곡 포트폴리오를 모으기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나의 캘리그라피 인생이 시작됐습니다.”그로부터 6년 후인 2003년. 그는 KBS의 방송미술을 담당하는 자회사인 KBS아트비전에 공채 3기로 입사했다. ‘불멸의 이순신’ ‘태종 이방원’ ‘한국인의 밥상’ ‘진품명품’ ‘명견만리’ ‘전설의 고향’ ‘장영실’ ‘동행’ 등 KBS의 굵직한 방송 타이틀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방송 타이틀 의뢰가 들어오면 드라마 같은 경우는 시놉시스를 여러차례 읽으며 고민합니다. 이후 연출팀과 논의를 하죠. 연출팀에서는 힘이 있으면 좋겠다, 거칠었으면 혹은 깔끔했으면 좋겠다, 세련되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원한다 등등 여러 가지 주문을 합니다. 그 말을 종합해서 제가 생각하는 글씨를 여러 가지 시안으로 써나가게 됩니다.”―올해 방영된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글씨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이방원을 다룬 사극이라 전쟁과 권력 쟁탈의 스토리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거칠고, 힘있는 글씨가 어울릴 것이다. 그런데 연출팀에서는 타이틀에서 너무 센 느낌은 살짝 줄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PD가 강력한 왕권을 세웠던 이방원의 카리스마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재조명함으로써 이방원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의 드라마 타이틀 첫 입봉작은 2003년 TV소설 ‘찔레꽃’이었다. 60-70년대 부모님 세대의 애환과 희노애락을 담은 드라마였다. 김 작가는 “누구나 가난했던 시절, 찔레꽃처럼 가시덤불 같은 애환과 곡절을 겪으면서도, 하얗게 꽃을 피워내는 찔레꽃의 느낌을 글씨에 담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방송 타이틀 글씨는. “‘한국인의 밥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밥상은 고정된 식탁이 아니라, 평상에서 펼쳐놓고 먹어도, 너럭바위에 앉아서 차려 먹어도 되는 밥상이다. 최불암 씨가 시골 곳곳을 찾아가 숨은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맛집이 장사를 하는 가게가 아니라 동네주민들로부터 참 음식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일반 가정이다. 그런 집을 찾아가 대대로 손맛을 이어온 어머니들의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끌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글씨 자체가 나무처럼 친숙하고 정다운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다. 영상앨범 ‘산’은 산봉우리 모습을 그대로 본뜬 상형문자의 형태로 썼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현재는 타이틀이 다르게 바뀌었는데, 상형문자 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견만리’는 최초로 강연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형태의 프로그램이어서 개성있는 글씨를 원했다.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는, 끝이 예리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색다른 글씨체로 표현하려 했다.” 김 작가가 늘 가슴에 품고 사는 말은 ‘의재필선(意在筆先)’이다. ‘붓질보다 뜻이 먼저다’라는 말이다. 그는 “글씨와 정신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최근 캘리그라피가 유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감에 따라 자칫 보기에 예쁘고 좋은 글씨로만 캘리그라피를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단호하다. “캘리그라피를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라는 외형적인 것만 바라보면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그저 글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거지요. 아무리 글씨를 잘 써도 그 안에 철학과 감성을 담지 못하면 그건 그저 글씨일 뿐입니다.” 그는 그동안 충무공 이순신 장군, 다산 정약용,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등의 ‘명사(名士) 어록’을 주제로 한 시리즈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2011년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초대전으로 열린 법정스님 추모 1주기 전시회를 준비할 때도 몇달간 깊은 묵상을 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스승이신 법정스님의 향기로운 글을 발췌해 전시회를 준비하는 기간만 9개월에 걸렸습니다. 문장 마다 그 의미를 느끼고 작품으로 옮기기 위해 스님의 발간된 모든 책을 끊임없이 다시 정독했죠. 법정스님의 가르침에 맞는 글씨를 쓰기 위해 스님이 머물렀던 송광사 불일암에도 몇 번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는 2013년에는 다산 정약용 탄신250주년 기념전을 아라아트갤러리에서 다산학술문화재단 주최로 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이해인 수녀의 시문을 선화랑에서 전시했는데 수익금 전액을 소아암어린이돕기에 기부했다. 2016년에는 아산시 초청을 받아 이순신 장군 어록을 쓴 글씨를 아산문화재단갤러리에서 전시했다. 김 작가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붓으로 배우는 캘리그라피’(덕주)라는 책을 펴냈다. 붓과 먹물, 화선지를 이용해 기본기부터 시작해 완성된 작품까지 따라서 써보며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사람에게 기초인 붓을 다루는 법을 강조한다. ―왜 붓으로 배우는 캘리그라피인가. “캘리그라피의 시초인 서예를 하는 데 가장 필요한 재료는 ‘문방사우(文房四友)’다. 한자로 ‘지필연묵(紙筆硯墨)’이라고도 부르는데, 종이·붓·벼루·먹 네가지를 말한다. 요즘에는 전통적인 도구인 붓이나 화선지를 사용하지 않고 번지지 않는 종이에 펜, 색연필, 나무, 풀뿌리 등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 캘리그라피를 연출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이런 도구는 다루기가 쉬워 빨리 배울 수 있고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감성적인 캘리그라피를 표현하는 데 붓만큼 변화무쌍한 소재가 없기에, 붓으로 작업해보지 않는 캘리그라퍼들은 그 심오한 예술적 무게를 파악하기 힘들다. 붓과 먹물, 화선지가 만나 표현되는 그 힘과 맛은 다른 어떤 재료로도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즉 번지고, 마르고, 윤택하고, 거칠고 또 담묵과 농묵 등 검정 속에서도 그 색의 깊이가 다양하게 표현되는 매력이 있다.” 김 작가는 책에서 붓으로 긋는 획의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한다. 붓은 누르는 힘 ‘필압(筆壓)’을 조절해 획의 좁고 넓은 폭의 차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힘있게 누르면 굵어지고 살짝 누르면 가늘어진다. 그리고 붓에 묻은 먹물의 양에 따라서도 예술적 감성을 표현해낼 수 있다. ”붓에 물기가 많으면 번짐 현상이 나타나고, 붓이 마르면 비백(飛白) 현상이 나타난다. 화선지에 먹물이 100%로 닿지 않고 흰 부분이 생기는 현상인데, 항상 같은 농도의 글씨보다는 자연스럽게 먹물이 말라 비백현상이 나타날 때 글씨는 더 아름답습니다. 또한 붓에 먹물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필압을 가하면 붓이 갈라지는데, 이런 획으로 구사하는 필법을 ‘갈필(渴筆)’이라고 한다. 또한 먹물의 농도에 따라 옅은 회색에서부터 진한 검정색까지 굉장히 폭넓은 먹색의 농담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소품은 붓펜으로도 충분하지만, 작품성 높은 큰 작품을 하려면 종이, 붓, 먹물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는 다양한 캘리그라피 서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한글 판본체의 시원인 ‘훈민정음체’와 필사체 중에서 ‘궁서’ 정자체에 바탕을 두고 자유분방한 캘리그라피로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예에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로 변천하게 된 사연은. “서예(書藝)라는 말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정부에서 처음 실시한 미술전람회에 다른 미술품과 함께 글씨 부문이 참여하면서 그동안 일본인들이 부르던 ‘서도(書道)’라는 말 대신 독자적으로 붙인 명칭이다. 중국에서는 ‘서법(書法)’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사용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문화권에서는 서예라는 한정된 영역에 속한 시각예술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IT의 발전은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전문 서예인들을 디자인 시장으로 나오게 했고, 그들에 의해 정형화된 서예의 틀을 넘어 다양한 표현양식으로 발전하며 자연히 서예라는 용어 대신 캘리그라피란 용어가 사용됐다.” ―캘리그라피와 서예의 차이점은? “서예가 기록이라는 수단에서 예술적 영역으로 넓혀간 반면, 캘리그라피는 서예가 가진 예술적 영역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됐다. 문방사우를 가지고 하는 서예가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 색을 입고, 다양한 문양으로치장을 하며, 3D로 변형되어 움직이며 입체감이 생겨난다. 심지어 효과음까지 넣어 문자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캘리그라피는 디자인 시장으로 외연을 넓히고, 방송·영화·신문·CI·BI·패키지·출판물·광고·LED·패션·머그컵·핸드폰케이스·문구류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현재 캘리그라피는 자격증 시험을 통해 민간자격증(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록)을 발급하는 기관이 전국에 300곳이 넘는다. 김 작가는 현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회장과 한국미술협회 캘리그라피 분과 이사를 맡고 있다. 서울 인사동 무우수 아카데미와 천안 나사렛대학교 평생교육원과 등에서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그는 커다란 붓과 먹물을 담은 양동이를 들고 10m 이상의 천에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도 즐겨 한다. 국악팀의 연주음악을 배경으로 3~5분 이내의 시간 안에 미리 밑그림도 없는 천에 글씨와 그림을 척척 써나간다. “글씨 퍼포먼스는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체력이 중요합니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붓과 양동이를 들고 온 몸으로 글씨를 써 나간다는 사실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내야 하는 작업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 퀸즐랜드가 2년여의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준비 끝에 외국 관광객에게 국경을 다시 개방합니다. 한국 관광객들이 다시 찾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 서울호텔에서 호주 퀸즐랜드주 관광청 임원들이 내한해 ‘CEO 투어리즘 미션 코리아’라는 타이틀 아래 미디어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행사를 위해서 리앤 코딩턴 퀸즐랜드주 관광청장, 퍼트리샤 오캘러헌 골드코스트 관광청장, 줄리엣 앨러배스터 브리즈번 관광청 최고운영책임자를 비롯한 지역 관광청 관계자들이 대거 방한했다. 퀸즐랜드주 남동부에 자리한 최대 휴양지 골드코스트를 비롯해 2032년 여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브리즈번은 새롭게 단장한 여행지를 소개했다. 코딩턴 퀸즐랜드주 관광청장은 환영사를 통해 “퀸즐랜드 주정부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공항의 전 세계 국제선 노선 및 승객 확대를 위한 항공 기금으로 1억 달러를 지원할 예산을 확보했다”며 항공편 확충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퀸즐랜드는 올해 ‘Good to Go’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2023년 골드코스트 관광교역전 개최, 100개 이상의 다채로운 여행 상품을 준비 중이다. 코딩턴 관광청장은 “이번 제150회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캐머런 스미스는 바로 호주 퀸즐랜드주 출신”이라며 “퀸즐랜드를 대표하는 골프 테마상품과 워킹홀리데이 상품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2032년 여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브리즈번은 내년 하반기(7~12월)에 브리즈번 중심상업지구 내에 36억 달러 규모로 짓는 세계적인 종합리조트인 퀸즈 워프를 오픈한다. 다양한 실내외 공간, 레스트랑, 카페, 바, 호텔,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자리해 있다. 브리즈번 공항은 2020년 7월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했다. 또한 도시와 야생이 공존하는 론파인 보호구역, 탕갈루마, 스피릿 오브 더 레드 샌드 등에서는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하다. 앨러배스터 브리즈번 관광청 최고운영책임자는 “브리즈번은 예술과 미식로드부터 자연환경,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소개했다. 골드코스트는 다이빙 명소인 원더리프가 있는 곳. 올해 말까지 골드코스트 공항 3단계 터미널을 확장한다. 미술관과 공연장으로 구성된 대규모 문화테마 프로젝트인 ‘호타(HOTA)’와 시월드, 드림월드 테마파크가 매력적이다. 오캘러헌 골드코스트 관광청장은 “아름다운 해변을 잇는 트램과 페리를 이용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코딩턴 관광청장은 “퀸즐랜드주 관광청이 지향하는 글로벌 캠페인인 ‘travel for good’ 메시지는 지속가능하고, 삶에 힐링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여행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속 국립전쟁기념관에는 한 열차의 객실이 보존돼 있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연합군과 제1차 세계대전 휴전 협정을 맺었던 장소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침공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1940년 6월 22일 이 열차 객실에서 프랑스 항복 서명식을 치러 굴욕을 되갚았다. 2018년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굴욕이 엇갈린 이 열차를 찾아 양국의 화해를 다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부여서동연꽃축제가 3년 만에 새롭게 돌아온다. ‘스무 살 연꽃 화원의 초대―빛나는 이야기를 담다’라는 주제 아래 14∼17일 부여 서동공원(궁남지)에서 치러진다. 부여서동연꽃축제는 궁남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서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치유와 휴식을 제공할 예정이다. 올해 처음으로 축제장에서 백제역사 너울옛길 관광거점시설을 거쳐 부여읍 시가지를 순환하는 무료 셔틀버스와 100원 택시도 운행한다. 또 ‘궁남지 야(夜)한 밤’을 통한 레이저와 조명, 바닥 매핑 및 홀로그램 등 트렌디한 경관과 감성 포토존을 조성해 분위기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14일 개막식에서는 축하 공연, 해외 연꽃나라 문화예술 콘서트를 진행해 본격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연꽃을 국화로 하는 해외 8개국 대사와 각국 전통공연단 초청 공연으로 세계인과 함께 즐기는 글로벌 축제로의 도약을 알린다. 메인 프로그램으로는 △물 위에서 펼쳐지는 대형 뮤지컬 ‘궁남지 판타지’ △드론 300대의 불꽃과 조명으로 여름밤을 다채롭게 물들일 ‘Lotus 별밤 드론 아트쇼’ △‘서동 선화 달빛퍼레이드’ 등이 있다. 연꽃이 핀 연못을 카누를 타고 탐험하는 이색 체험을 비롯해 ‘스무 살 청춘 페스티벌’ ‘사랑토크콘서트’ ‘궁남지 여름밤의 음악회’ 등도 함께 펼쳐진다. 수상에서 펼쳐지는 이색적이고 역동적인 공연을 경험하고 싶다면 축제 기간 매일 30분 동안 운영되는 ‘궁남지 판타지’를 주목해 보자. 궁남지가 지닌 장소성과 역사성을 활용하고 공간적, 시간적 판타지 연출을 위해 출연진 발목까지 물에 잠기는 수상 무대를 설치한다. 배우들이 마치 물 위에서 연기하는 듯한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또 포룡정 프로젝션 매핑, 둘레길 버드나무 조명과 다양한 야외무대 특수효과로 더욱 입체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Lotus 별밤 드론 아트쇼’는 드론 300대가 형형색색의 불꽃과 조명, 희망의 메시지를 펼친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서동 선화 캐릭터의 익살스러운 모습과 사랑과 응원을 담은 메시지로 여름밤을 다채롭게 물들일 예정이다. 15∼16일에는 천상에서 내려와 연꽃화원에 소풍 온 서동 선화를 콘셉트로 한 퍼레이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5∼7개 동선 스폿에 멈춰 팀별 테마에 맞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행사 기간 중 낮과 밤, 자연생태를 고려한 경관시설물도 설치된다. 서동공원을 감성, 사랑, 추억 등 6가지 테마로 나눠 루미나리에 및 큐브조명 설치와 음향을 접목한 홀로그램 연출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힐링 공간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포룡정 주변과 행사장 곳곳에 연지 포토존을 조성한다. 체험 행사도 풍성하게 펼쳐진다. 가장 인기 있는 체험은 연지 속 연꽃을 헤치며 즐기는 ‘연지 카누 탐험’이다. 서동 선화의 사랑, 연 소재를 활용한 이색 체험 19종과 연잎차 시음, 연낭 만들기 체험 등도 준비했다. 부여서동연꽃축제 관계자는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치러지는 이번 축제는 코로나19로 침체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함께하는, 즐기는 축제’로 치러진다”며 “연꽃이 가장 아름다운 궁남지, 천만 송이 연꽃 향기가 흘러넘치는 자연친화적 공간에서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길 권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로마의 바티칸미술관에 있는 라오콘 군상은 헬레니즘 조각의 걸작품으로 불린다. 신화에서 트로이 성직자인 라오콘은 목마를 들이는 것을 반대했고,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살해당했다. 라오콘 군상은 1506년 1월 로마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인근의 포도밭에서 발견됐다. 라오콘 군상의 비틀어진 육체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루벤스의 예수 고난 작품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북 영주는 소백산 자락에 둘러싸인 은자(隱者)의 땅이다. 깊은 산과 맑은 물소리, 글을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선비의 땅이다. 조선 최초의 서원이자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서는 지금도 소나무 숲 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휘돌아가는 강물에 둘러싸인 무섬마을은 17세기 병자호란 후 출사를 단념한 선비들이 충절과 은자의 정신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던 마을이다. 그런가하면 6.25이후에는 피난민들이 모여들었다.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풍기인삼과 풍기인견을 지역의 명물로 만들었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 있는 문화도시인 영주에서 품격있는 선비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을 떠났다.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외나무 다리이른 새벽,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나니 새소리에 잠을 깼다. 강가로 나갔다. 새벽공기에 강물 위에는 옅은 안개가 끼었다. 금빛 모래가 펼쳐진 들판에는 느릿한 강물이 곡선을 그린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노래가 저절로 떠올려지는 풍경이다.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도리동을 만들어낸 영주의 무섬마을.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란 뜻이다. 행정지명은 수도리(水島里)다. 앞은 물로 가로막혀 있고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섬처럼 고립된 마을이다. 풍수지리상 ‘물위에 핀 연꽃(蓮花浮水形)’ 또는 ‘매화 떨어진 자리(梅花落地形)’로 풀이되는 길지다. 17세기에 박수가 병자호란 후 출사를 단념하고 이 곳에 들어와 만죽재를 짓고 살면서 생긴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 들어가려면 외나무 다리를 건너야 했다. 지금은 널찍한 콘크리트 다리(수도교)가 놓였지만, 아직도 S자 모양으로 생긴 외나무 다리(약 150m)는 그대로 남아 있다. 반원형으로 자른 나무를 대충 다듬은 뒤 얕은 물길 위에 세운 것이다. 폭이 20~30cm에 불과한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은 짜릿한 스릴이 넘친다. 외나무 다리에서 원수를 만나지 말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끔 가다가 삐걱대고, 덜커덩 거리기도 한다. 시인 위초하는 ‘무섬행여나 물여울에 마음을 뺏기면 물멀미가 나고,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 물은 깊지 않지만 옷과 소지품이 젖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걷는 길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렇게 마음이 굽은 듯 외나무 다리를 건너거들랑 물너울에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위초하의 시 ‘무섬 외나무 다리에 서면’) 예전에는 마주오는 사람과 만나면 한 사람이 앉고, 그 위를 넘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중간중간에 ‘잠깐 비켜다리’를 만들어놔 마주오는 사람과 인사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드라마, 영화, 광고 촬영지가 되기도 하고,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돼 명소가 됐다. 다리를 건너서 들어간 무섬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이 정겹다. 돌로 쌓은 담장에는 접시꽃이 한창 피었다. 초가집에는 ‘까치구멍집’이라는 설명이 써 있다. 지붕의 용마루 양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까치구멍집이다. 까치구멍은 난방이나 조리 시 발생하는 연기를 외부로 배출하고 낮에는 빛을 받아들여 집 안을 밝혀주며 통풍과 습도를 조절하는 숨구멍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섬마을에서는 까치구멍집, 기와집을 골라서 민박을 할 수도 있다. ●선비문화 체험할 수 있는 선비세상 무섬마을에서 나와 발걸음을 소수서원으로 옮긴다.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최초의 성리학자인 회헌 안향(1243~1306) 선생을 기리고자 백운동서원을 건립한 것이 서원의 시초다. 소수서원 입구에 들어서니 울창한 소나무가 반긴다. 서원 앞 죽계천에는 퇴계 이황이 터를 닦고 ‘취한대(翠寒臺)’란 이름을 붙인 정자가 그림같이 놓여 있다. 선비들이 푸른 산의 기운과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죽계천에는 주세붕이 쓴 ‘경(敬)’ 자가 새겨진 바위도 있는데, 그 앞에서 검은 가마우지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니 장맛비 떨어지는 처마 너머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강학당 안에는 머리에 탕건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 두 명이 있었다. 황영회(72) 씨는 “소수서원을 찾는 방문객에게 선비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조를 짜서 강학당에서 글을 읽는다”고 말했다. 소수서원 인근에는 영주의 선비문화를 현대적으로 되살린 테마파크도 들어섰다. 9월3일 문을 여는 K-문화 테마파크 ‘선비세상’이다. 한옥, 한복, 한글, 한국음악, 한지, 한식촌 등 6개 테마별 전시관을 조성했다. 지난달 24일 선비세상의 정자에서 열린 음악과 명상이 함께한 ‘웰니스 숨숨공연’은 비오는 날씨에 더욱 어울리는 힐링체험이었다. 이 곳에서는 선비의 이상향을 주제로 한 몰입형 미디어아트와 한지뜨기 및 다도체험, 한글놀이터 등 다양한 타깃층을 겨냥한 콘텐츠와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장원급제 행렬을 18m 규모로 구현한 ‘오토마타’ 인형극이 공연되기도 한다. 부지 면적만 96만974㎡ 에 달한다. 영주시는 사업비 1700억 원을 투입, 9년 만에 선비세상을 완공했다. 공식 개관을 앞두고 22일부터 8월 15일까지 매주 토, 일요일과 광복절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임시개방을 진행한다. 이 기간 중에는 선비세상 퍼레이드 공연과 ‘힙(hip)선비’ 크루의 풍류한마당, 뮤직콘서트, 저잣거리酒페스티발夜, 한스타일 플리마켓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다.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는 문화도시 지난달 24일 영주시내 경북전문대 안에 있는 148아트스퀘어에서는 이여운 작가가 캔버스 천에 수묵화로 그린 노동당사 그림 앞에서 민경인 재즈피아니스트의 공연이 펼쳐졌다. 100여 명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 열띤 박수를 보내며 민경인, 이여운, 권무형 작가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은 한때 연초제조창이었던 담배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역민을 위한 복합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가로 100m, 세로 48m를 뜻하는 148아트스퀘어는 공연장(117석)을 비롯해 전시장, 연습실, 북카페, 창작작업실 등을 갖추고 있다. 옛 영주역 주변의 골목길과 중앙시장, 365시장, 후생시장 근처에는 영주 근대역사 문화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그 중에서 영주1동 두서길 일대 ‘관사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영주역에서 근무하던 철도직원들이 거주하던 관사가 모여 있는 마을. 골목길 곳곳에는 담장 가득 ‘은하철도 999’가 그려져 있는가 하면, 아예 커다란 기차 조형물이 설치된 벽도 있다. 굽이굽이 마을 길을 오르며 땀이 맺힐 즈음 숨이 확 트이는 전망대 ‘부용대’가 나타난다. 부용대에서 바라다보이는 소백산 능선도 아름답지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시가지가 한눈에 보여 도시 야경을 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사과로 유명한 영주의 시골길에는 초록색 사과가 달린 사과나무를 곳곳에서 만난다. 일부는 한쪽 면이 붉그스레 익어가기 시작했다. 영주의 특산물 중에는 ‘부석태(콩)’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 인근은 ‘콩 마을’로 불린다. 콩세계 과학관에 가면 부석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고, 영주 부석면에 있는 콩세계 과학관에서는 부석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인근 동네는 ‘콩 마을’로 불린다. ‘부석태 콩타령’을 부르는 ‘콩 할매 합창단’은 영주 인삼축제, 사과축제 무대에 오르면서 일약 동네 스타로 급부상했다. ‘콩 마을‘은 2020년 경북도 행복농촌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문화·복지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인근에 폐교된 부석북부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영주 소백예술촌에는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모듬북 타악팀 ‘락&무‘가 연습과 공연을 한다. 소백예술촌은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자료 보관소와 비품실과 연습실, 의상실, 음악실 등을 갖춘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소백산 옥녀봉 자락에 있는 국립산림치유원은 숲 속에서 힐링을 체험하는 시설이다. 산림치유지도사 80여 명이 상주해 스트레스 해소와 심신 안정에 탁월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해준다. 무장애 데크로드를 따라 숲속 길을 걷고, 소나무 밑에서 해먹에 누워 명상도 할 수 있다. 수치유센터에선 14가지 종류의 다양한 수압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난세를 피해 오는 곳 6.25 전쟁 전후 영주 풍기읍에는 북한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민초들이 난세에 몸을 보전할 최적지는 ‘교남양백(嶠南兩白ㆍ영남의 소백과 태백 사이)’이라는 ’정감록‘에 예언된 말을 믿고 풍기로 내려온 피난민들이다. 30~40년 전만해도 풍기의 60대 이상 인구의 약 70%가 북에서 내려온 이들이었다고 한다. 이들 중엔 명주의 본고장인 평안도 영변 덕천 등지서 남하한 직물공장 경영자와 기술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무에서 실을 뽑은 인견사를 원료로 한 인견직물을 짜기 시작했다. 이후 풍기에는 인견을 짜는 집이 한때 2000여 호를 넘었고, 읍내의 골목에선 ‘철커덕 철커덕’ 직조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인견은 시원하고 정전기가 생기지 않아 ‘에어컨 이불’ ‘냉장고 섬유’로 불리며 요즘 같은 끈적끈적한 여름철에 인기 만점이다. 풍기인삼이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는 데에도 개성과 황해도 등지에서의 보다 앞선 재배기술을 익힌 피난민들의 영향이 크다. 풍기읍내 평양냉면집인 ‘서부냉면’도 피난민들 덕분에 생겨난 곳이다. 지금은 전국의 냉면 마니아들이 꼭 들러야 하는 순례지로 꼽힌다. 영주에는 묵집도 많다. 산간 지방이 많은 영주는 예부터 메밀 재배가 흔해 제사나 잔치를 지낼 때 메밀묵이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묵집에는 김치찌개와 비슷한 ‘태평초’라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맛이 기가막힌 메뉴가 있다. 잔칫날 먹고 남은 메밀묵과 돼지고기, 김치를 넣어 끓여 먹은 찌개라고 한다.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어머니께서 묵을 쑤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던 영주의 향토음식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북 영주는 소백산 자락에 둘러싸인 은자(隱者)의 땅이다. 산 깊은 골에 맑은 물소리와 글을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선비의 땅이다. 조선 최초의 서원이자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서는 지금도 소나무 숲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휘돌아 가는 강물에 둘러싸인 무섬마을은 17세기 병자호란 후 출사를 단념한 선비들이 충절과 은자의 정신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해 생겨난 마을이다. 그런가 하면 6·25전쟁 이후에는 피란민들이 모여들었다.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은 풍기인삼과 풍기인견을 지역의 명물로 만들었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 있는 문화도시인 영주에서 품격 있는 선비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을 떠나 보자.》 ○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외나무다리이른 새벽,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나니 새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공기에 강물 위에는 옅은 안개가 끼었다. 금빛 모래가 펼쳐진 들판에는 느릿한 강물이 곡선을 그린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노래가 저절로 떠올려지는 풍경이다.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도리동을 만들어낸 영주의 무섬마을.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란 뜻이다. 행정지명은 수도리(水島里)다. 앞은 물로 가로막혀 있고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섬처럼 고립된 마을이다. 풍수지리상 ‘물 위에 핀 연꽃(蓮花浮水)’ 또는 ‘매화 떨어진 자리(梅花落地)’로 풀이되는 길지다. 17세기에 박수가 병자호란 후 출사를 단념하고 이곳에 들어와 만죽재를 짓고 살면서 생긴 집성촌이다.오랜 세월 동안 이 마을에 들어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 널찍한 콘크리트 다리(수도교)가 놓인 후에도 S자 모양으로 생긴 외나무다리(약 150m)는 그대로 남아 있다. 반원형으로 자른 나무를 대충 다듬은 뒤 얕은 물길 위에 세운 것이다. 폭이 20∼30cm에 불과한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짜릿한 스릴이 넘친다. 가끔 가다가 삐걱대고, 덜커덩거리는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행여나 물여울에 마음을 뺏겨도 안 된다. 물멀미가 나 균형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마주 오는 사람과 만나면 한 사람이 앉고, 그 위를 타고 넘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중간중간에 ‘잠깐 비켜다리’를 만들어 놔 마주 오는 사람과 인사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드라마, 영화, 광고 촬영지가 되기도 하고,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돼 명소가 됐다. 다리를 건너서 들어간 무섬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이 정겹다. 돌로 쌓은 담장에는 접시꽃이 한창이다. 초가집에는 ‘까치구멍집’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지붕의 용마루 양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미음(ㅁ)자형 집이다. 까치구멍은 난방이나 조리 시 발생하는 연기를 배출하고, 낮에는 빛을 받아들이고 통풍과 습도를 조절하는 숨구멍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섬마을에서 까치구멍집, 기와집 중에 골라서 민박을 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선비문화 체험할 수 있는 선비세상무섬마을에서 나와 발걸음을 소수서원으로 옮긴다.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최초의 성리학자인 회헌 안향 선생(1243∼1306)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이다. 소수서원 입구에 들어서니 울창한 소나무가 반긴다. 서원 앞 죽계천에는 퇴계 이황이 터를 닦고 ‘취한대(翠寒臺)’라 이름 붙인 정자가 그림처럼 놓여 있다. 죽계천에는 주세붕이 쓴 ‘경(敬)’ 자가 새겨진 바위도 있는데, 그 앞에서 검은 가마우지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니 장맛비 떨어지는 처마 너머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강학당 안에는 머리에 탕건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 두 명이 있었다. 황영회 씨(72)는 “소수서원을 찾는 방문객에게 선비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조를 짜서 강학당에서 글을 읽는다”고 말했다. 소수서원 인근에는 영주의 선비문화를 현대적으로 되살린 테마파크도 조성됐다. 9월 3일 문을 여는 K문화 테마파크 ‘선비세상’이다. 한옥, 한복, 한글, 한국 음악, 한지, 한식촌 등 6개 테마별 전시관을 갖췄다. 선비의 이상향을 주제로 한 몰입형 미디어아트와 한지 뜨기 및 다도 체험, 한글놀이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영주도령의 장원급제 행렬을 18m 규모로 구현한 ‘오토마타’ 인형극이 볼만하다. 부지 면적만 96만974m². 영주시는 사업비 1700억 원을 투입해 9년 만에 선비세상을 완공했다. 공식 개관을 앞두고 22일부터 8월 15일까지 매주 토, 일요일과 광복절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임시 개방을 한다. 선비세상 퍼레이드 공연과 ‘힙(hip)선비’ 크루의 풍류한마당, 뮤직콘서트, 저잣거리酒페스티벌夜, 한스타일 플리마켓 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열릴 예정이다.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는 문화도시지난달 24일 영주시내 경북전문대 안에 있는 148아트스퀘어에서는 이여운 작가가 수묵화로 그린 철원 노동당사 그림 앞에서 민경인 재즈피아니스트의 공연이 펼쳐졌다. 100여 명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 민경인, 이여운, 권무형 작가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은 한때 연초제조창이었던 담배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역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 공연장(117석)을 비롯해 전시장, 연습실, 북카페, 창작작업실을 갖추고 있다. 옛 영주역 주변의 골목길과 중앙시장, 365시장, 후생시장 근처에는 영주 근대 역사 문화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그중에서 영주1동 두서길 일대 ‘관사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영주역에서 근무하던 철도 직원들이 거주하던 관사가 모여 있는 마을. 골목길 곳곳에는 담장 가득 ‘은하철도 999’가 그려져 있는가 하면, 아예 커다란 기차 조형물이 설치된 벽도 있다. 마을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 부용대에서는 소백산 능선의 아름다운 풍경과 영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 인근은 ‘콩 마을’로 불린다. 영주의 특산물인 ‘부석태’라는 콩이 나기 때문이다. 콩세계 과학관에 가면 부석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고, 콩마을에는 부석태 콩타령을 부르는 ‘콩할매 합창단’이 유명하다. 콩할매 합창단과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모둠북 타악팀 ‘락&무’는 폐교를 리모델링한 영주 소백예술촌에서 연습과 공연을 한다. 소백예술촌은 손진책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자료와 비품이 보관돼 있고, 연습실과 의상실 등을 갖추고 있다. ○난세를 피해 오는 곳6·25전쟁 직후 영주 풍기읍에는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몰려들었다. 민초들이 난세에 몸을 보전할 최적지는 ‘교남양백(嶠南兩白·영남의 소백과 태백 사이)’이라는 ‘정감록’에 예언된 말을 믿고 온 피란민들이다. 이들 중엔 명주의 본고장인 평안도 영변 덕천 등지에서 남하한 직물공장 경영자와 기술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무에서 실을 뽑은 인견사를 원료로 한 인견직물을 짜기 시작했다. 한때 풍기에는 인견을 짜는 집이 2000여 가구가 넘었다고 한다. 풍기인견은 시원하고 정전기가 생기지 않아 ‘에어컨 이불’ ‘냉장고 섬유’로 불리며 요즘 같은 끈적끈적한 여름철에 인기 만점이다. 풍기인삼이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에도 개성과 황해도에서 앞선 재배 기술을 익힌 피란민들의 영향이 크다. 전국 냉면 마니아들의 순례지로 꼽히는 풍기읍내 정통 평양냉면집 ‘서부냉면’도 피란민들 덕분에 생겨난 곳이다. 영주에는 묵집도 많다. 그런데 묵집에서는 김치찌개와 비슷한 ‘태평초’라는 독특한 묵 메뉴가 인기다. 잔칫날 먹고 남은 메밀묵과 돼지고기, 김치를 넣어 끓여 먹은 찌개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 어머니께서 묵을 쑤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던 영주의 향토음식이다.글·사진 영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흔히 신한금융그룹을 가리켜 ‘평범한 사람이 만든 비범한 조직’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창업 후 짧은 시간 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딩 금융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한결같이 인재 육성에 진심인 회사였다. 신한금융그룹의 모태(母胎)가 되는 신한은행은 창업 초기부터 직원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는 회사, 금융권 인재사관학교로 명성이 높았다. 또한 신한은행이 최초로 구입한 부동산이 ‘신한연수원’일 정도로 직원들의 학습과 성장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이런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신한금융그룹의 중기 전략 ‘FRESH 2020s’의 근간이 되는 과제 역시 ‘Human Talent¤미래를 선도하는 융·복합형 인재 육성’이다. 여성리더 육성으로 리더십의 다양성 추구신한금융그룹은 그룹 내 리더십 다양성 확보 전략으로 2018년부터 쉬어로즈(SHeroe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금융권 최초의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으로 ‘신한(SH)의 영웅들(Heroes)’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그룹 코칭과 다양한 특강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여성 부서장들이 수료했고 이들 중 최초 여성 CEO를 비롯한 임원, 본부장 등 최상위 리더를 꾸준히 배출했다.신한에서 쉬어로즈는 인재 다양성을 상징하는 핵심 프로그램으로 그룹 CEO인 조용병 회장이 모든 것을 챙긴다. 작년 코로나 시기에도 회장이 모든 쉬어로즈 리더들을 대상으로 비대면 티타임 형태의 그룹 코칭을 실시했다. 특히 올해는 여성 리더가 그룹의 중심, 미래 지속 성장의 핵심이 된다는 의미로 C.O.R.E 육성 원칙을 수립했다. C.O.R.E는 Confidence(자신감과 자부심), Opportunity (성장 기회 확대), Reinforce(동반 성장 및 관계 강화), Embrace(포용적 문화 구축)를 뜻한다. 그동안 해당 프로그램을 수료한 쉬어로즈 펠로우즈가 내부 코칭 강사로 참여해 여성 리더들이 현업에서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코칭할 방침이다.그룹 내 인재 교류 통한 경험 확대이뿐만 아니라 신한금융그룹 16개 자회사 간 인력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직원들에게 직무 경험 확장 기회를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신한은행의 리스크 관리 담당 직원이 리스크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금융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러한 인력 교류는 매년 80¤90여 명 규모로 실시되고 있다.미래 성장동력 확보 위한 과감한 인재 투자인재육성 전략은 시대 변화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금융전문가 육성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금융 전문성과 디지털 역량을 함께 보유한 인재를 육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디지털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으로는 고려대와 함께 운영 중인 ‘디지털금융공학 석사과정’을 꼽을 수 있다. 매년 30여 명의 그룹 직원이 2년 석사과정에 입학해왔으며 현재까지 모두 127명이 수료했다. 이들은 그룹 내 디지털 분야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신한금융은 그룹 차원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기존의 디지털 연수 프로그램을 직급별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개편해 하반기 중 시행할 예정이다.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신한DBL, 차세대 리더급을 대상으로 한 신한DBS, 실무자급 대상 신한DU 과정이 8월부터 운영된다. 투명하고 공정한 HR 운영 체계 구축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HR 운영 체계 구축을 위해 신한금융은 작년부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2021년 7월 신한문화 RE: Boot 선포 이후 그룹 차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진 중인 영역 중 하나다. 그간 HR은 소수 인사 담당자를 중심으로 의사 결정이 이뤄져 폐쇄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신한의 주요 자회사들은 객관적인 데이터 기반 인사 운영 체계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룹의 대표 자회사인 신한은행은 금년 초 HR 빅데이터 및 AI 알고리즘 기반의 새로운 인사 전산 ‘S-HR’을 마련했으며, 성과, 역량 평가, 연수 이력 등 50여 개 요소를 활용한 AI 승진 심사와 이동 배치 알고리즘을 실제 인사에 활용해 공정성을 강화하고 인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신한은행, 신한카드, 신한금융투자는 사내공모(Open Job Posting) 프로세스 운영 확대를 통해 직원주도형 경력관리 체계를 강화했다. 또한 직원의 역량개발 동기부여 및 인사 결과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비공개로 관리하던 HR 데이터의 직원 공유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인사평가 또한 큰 변화가 진행 중이다. 전통적으로 금융회사의 인사 평가는 과정보다는 성과 중심의 정량평가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직원에 대한 상시 코칭 및 목표 달성을 위한 동기 부여를 강화하기 위해 2021년부터 OKR(목표 및 핵심 결과 지표)을 활용한 직원 성과관리 프로세스를 본격 운영 중이다. 분기 단위 OKR 설정과 매월 1회 이상 부서장의 상시 피드백을 정착시킴으로써 기존의 결과를 측정하고 평가등급을 부여하는 수단으로서의 인사평가가 아니라 직원을 성장시키는 상시 코칭 기반 육성형 인사평가 체계로 업그레이드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의 천장화는 마르크 샤갈이 1964년에 그린 ‘꿈의 꽃다발’이다. 작곡가 14명의 발레와 오페라 장면을 몽환적 색채로 표현한 그림에는 무희와 악사, 천사와 유령들이 둥둥 떠다닌다. 천장화 아래엔 340개의 등과 크리스털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빛나고 있다. 1896년 무게 8t의 이 엄청난 샹들리에가 떨어져 박살난 사건은 작가 가스통 르루가 쓴 ‘오페라의 유령’의 모티브가 됐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는 덥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눈이 내리는 곳도 있습니다. 전국 13개 관광 지역에 1만1000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지가 있을 뿐 아니라 사막 탐험, 수상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가 있습니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사우디아라비아관광청이 주최하는 ‘코리아 로드쇼’가 열렸다. 이날 알하산 알다바그 사우디아라비아관광청 APAC(아시아 태평양) 최고 책임자는 기자회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여행엔 다른 문화적 에티켓(비키니, 음주 금지)이 따르지만, 술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사우디를 찾는 외국인 여행객 중 한국이 상위 10개국에 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우디관광청은 8월 16일부터 인천∼리야드 직항 노선에 국영 사우디아항공 항공편을 주 3회 일정으로 취항할 예정이다. 알하산 알다바그 최고 책임자는 1960∼80년대 ‘중동 신화’의 주역인 한국인 건설 역군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VIP 초청 투어 계획도 밝혔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국민은 당시 땀 흘려 나라 곳곳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신 대한민국 건설 노동자들을 존중한다”며 “그분들을 초청해 달라진 사우디의 발전상과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과 사우디는 60년 넘게 외교적 관계를 이어온 만큼 정서적으로도 맞닿아 있습니다. 노인을 공경하고 손님을 환대하고,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 등도 닮았습니다. 사우디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 케이팝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광지는 요르단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 문명이 남긴 2000년 역사의 ‘알 울라’ 고대 도시 유적이다. 또한 홍해를 접하고 있는 제다에서 스킨스쿠버, 스노클링, 크루즈 등 해양 스포츠와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이슬람 신자 외엔 방문이 불가능했던 이슬람 성지 메디나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개방된다. 메카 북쪽 340km 지점에 있는 메디나는 622년 무함마드가 이주(헤지라)한 후 이슬람의 중심이 된 ‘예언자의 도시’다. 사우디 정부는 2030년까지 대규모 호텔과 친환경 리조트를 건설하는 ‘홍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알하산 알다바그 최고 책임자는 “사우디는 두바이, 아부다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관광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며 “다양한 국가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에는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해바라기가 들판 가득히 피어난다. 수백만 송이의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얼굴을 들고 서 있는 장면은 마치 위대한 영웅이나 지도자를 숭배하는 군중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바라기를 사랑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남프랑스 도시 아를의 노란 집에 살면서 강렬한 터치의 해바라기 작품을 남겼다. 해바라기는 정열의 화가 고흐의 자아를 상징하는 분신이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제주도 섬 속의 섬, 우도(牛島)는 누워 있는 소의 모습과 닮았다. 섬에서 가장 높은 우도봉(해발 126.8m)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봉, 쇠머리오름이라고 불린다. 우도봉을 오르는 길은 완만한 경사지만, 우도봉 아래쪽에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톨칸이 해변은 바로 소의 여물통에 해당한다. 톨칸이는 제주도 방언으로 촐까니라고도 불린다. ‘촐’은 소에게 먹이는 ‘꼴(건초)’이고, ‘까니’는 소에게 먹이를 주는 큰 그릇이다. 톨칸이 해변에 퇴적암이 층층이 쌓인 기암절벽은 마치 큰 바위 얼굴처럼 보일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는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마리오 보타, 김중업, 정기용과 같은 대가들의 건축물로도 유명한데, 우도에 자연을 테마로 한 세계적 예술가의 뮤지엄이 올해 3월 개관했다. ●우도의 자연과 어우러진 예술 공원, 훈데르트바서 톨칸이 해변 맞은편에 양파돔이 올려져 있는 알록달록한 예술 건축물. 우도의 자연을 그대로 살린 낮은 구릉 같은 형태로 지어진 훈데르트바서 파크를 걷노라면 한 작가의 그림 속에 빠져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인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테마로 한 ‘훈데르트바서 파크(Hundertwasser Park)’다.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로 꼽힌다. 스페인의 가우디를 방불케 하는 곡선의 미학을 선보인 독창적인 건축가였던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10여 년 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여행할 때 깜짝 놀라 돌아다본 건물이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과 도로가 있는 도심 한복판에 동화책에서 튀어나왔을 법한 노랑, 빨강, 파랑으로 칠해진 궁전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쓰레기 소각장이라는 사실이 더 놀랐다. 훈데르트바서가 리모델링한 빈의 아파트 단지에 난방을 공급하는 친환경 시설이자 연간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독일에서 제작해 공수해 온 알록달록한 78개의 세라믹 기둥, 3개의 양파돔, 131개의 개성 있는 창문으로 지어진 파크는 곳곳이 인증샷 명소다. 파크는 훈데르트바서의 일생과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훈데르트바서 뮤지엄’과 미술관인 ‘우도갤러리’, 카페 ‘레겐탁’ 등으로 이뤄져 있다. 쌍둥이 분수인 ‘쯔블링 분수’, 우도갤러리의 세라믹 기둥, 톨칸이 카페에서 바라보는 큰 바위 얼굴을 품은 해안 절경은 압도적이다.그런데 천천히 파크를 돌아보다 보면 “당신은 자연에 잠깐 들른 손님입니다. 예의를 갖추세요”라고 말한 훈데르트바서의 자연주의 건축 철학과 미학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나무 세입자“나무 세입자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화폐로 월세를 지불합니다. 나무 세입자는 산소를 공급하고, 사막과도 같은 도시에 습기를 공급합니다. 도시의 진공청소기로서 먼지를 빨아들이고, 소음의 울림 현상을 감소시켜 조용한 도시를 만듭니다. 나무 세입자는 아낌없이 주는 사람입니다….” 훈데르트바서가 1980년에 주창한 ‘나무 세입자’론이다. 그는 메마른 도시의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건축물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힘쓴 ‘건축 치료사(Architecture doctor)’다. 그는 인간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뽑힌 나무들을 지붕과 창문 주변에 ‘나무 세입자’로 심는 것을 설계에 넣곤 했다. 그래서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창문 베란다마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들이 밖으로 나와 있다. 그의 철학에 따라 우도에 파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생하고 있던 1600여 그루의 나무들은 모두 그대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의 이름은 ‘백 개(Hundert)의 강(Wasser)’이란 뜻이다. 그는 물을 사랑했다.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그의 판화는 ‘비 오는 날(Regentag)’ 시리즈다. 그는 “비 오는 날 세상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날 나는 행복에 흠뻑 젖는다”고 했다. 비 오는 날, 자연의 모든 색이 선명하게 떠오르면 훈데르트바서는 곡선으로 떨어지는 자연 앞에 경배하며 그림을 그렸다. 훈데르트바서 파크 안에도 우도에서 빗물이 고이는 샘인 ‘각시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물이 귀했던 우도에 생긴 최초의 연못에 대해 이러한 전설이 내려온다. “우도의 땅의 기운이 남자라서, 샘에서 물이 나오려면 서쪽 어두운 곳의 ‘색시물’을 구해 와야 했다. 동네 사람들은 수소문 끝에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사이에 있는 ‘서느랭이굴’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발견해 정성껏 제를 지내고 새 각시를 모셔오듯 물을 항아리에 담아 샘물통에 부었다. 메말랐던 흙 속에서 숨기가 차기 시작하더니 물이 솟아났다.” 이후로 ‘각시물통’이라는 지명이 탄생했으며, 이 각시물에서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손이 번창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나선(The Spiral)“나선은 삶과 죽음의 상징이다. 나선은 무생물이 생명으로 변화하는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한다. 진화는 언제나 나선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창조 행위에는 나선의 본성이 담겨 있다고 확신한다. 멀리 있는 별들은 나선 형태로 배열돼 있으며, 보이지 않는 분자들 역시 그렇다. 우리의 삶조차도 나선 형태로 진행된다.”파란색 양파 모양 돔이 있는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에 들어서면 기둥과 계단이 온통 물결치는 곡선이다. 나선 모양으로 돌아 올라가는 계단의 바닥도 구불구불하다. ‘직선은 신(神)의 부재를 뜻한다’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에서 나온 건축이다. 자연에는 곡선만 있듯이, 전시돼 있는 그의 그림과 건축은 온통 곡선의 향연이다.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독일 다름슈타트의 ‘나선의 숲’ 건축물 모형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나선형으로 지어져 있어 낮은 구릉을 오르듯 지붕 위로 산책할 수 있게 돼 있다. 양파 모양의 나선형 동심원은 훈데르트바서 건축의 상징물이다. 뮤지엄 옥상에서 톨칸이 해변을 바라볼 때 보이는 비너스, 다비드상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훈데르트바서는 생전에 “황금의 양파첨탑은 거주자의 신분을 왕의 지위로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창문권“집은 벽이 아니라 창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은 눈과 같다. 일반적인 평이한 창문들은 슬프다. 창문들은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훈데르트바서는 오스트리아 빈의 공공주택 훈데르트바서하우스를 완공한 뒤 세입자 계약서에 창문을 꾸밀 권리인 ‘창문권’ 권리 조항을 넣었다. “모든 세입자가 자신의 창문을 어떤 색깔로도 칠할 수 있고, 장식물을 달 수 있으며 색색의 타일로 장식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거주공간이 인간을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우도의 훈데르트바서 파크 건축물에도 총 131개 창문이 있다. 뮤지엄에서 크고 작은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우도의 풍경은 어떤 그림보다도 더 감동적이다. 창문을 장식하는 세라믹 타일은 현장에서 인부들이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장 독특한 타일 문양은 화장실에서 발견된다. 세면대를 꾸민 푸른색, 빨간색, 흰색 타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화장실을 만들어냈다.해질 녘. 톨칸이 해변에서 우도의 노을을 바라보면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분홍색이다. 바다 건너 성산일출봉뿐 아니라 한라산까지 붉게 물든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제주도 섬 속의 섬, 우도(牛島)는 누워 있는 소의 모습과 닮았다. 섬에서 가장 높은 우도봉(해발 126.8m)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봉, 쇠머리오름이라고 불린다. 우도봉을 오르는 길은 완만한 경사지만, 우도봉 아래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톨칸이 해변은 바로 소의 여물통에 해당한다. 톨칸이는 제주도 방언으로 촐까니라고도 불린다. ‘촐’은 소에게 먹이는 ‘꼴(건초)’이고, ‘까니’는 소에게 먹이를 주는 큰 그릇이다. 톨칸이 해변에 퇴적암이 층층이 쌓인 기암절벽은 마치 큰 바위 얼굴처럼 보일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는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마리오 보타, 김중업, 정기용과 같은 대가들의 건축물로도 유명한데, 우도에 자연을 테마로 한 세계적 예술가의 뮤지엄이 올해 3월 개관했다. ○ 자연과 어우러진 예술 공원톨칸이 해변 맞은편에 양파돔이 올려져 있는 알록달록한 건축물. 우도의 자연을 그대로 살린 낮은 구릉 같은 형태로 지어진 훈데르트바서 파크를 걷노라면 한 작가의 그림속으로 빠져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인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테마로 한 ‘훈데르트바서 파크(Hundertwasser Park)’다.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로 불린다. 스페인의 가우디를 방불케 하는 곡선의 미학을 선보인 독창적인 건축가였던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10여 년 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여행할 때 깜짝 놀라 돌아다본 건물이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과 도로가 있는 도심 한복판에 동화책에서 튀어나왔을 법한 노랑, 빨강, 파랑으로 칠해진 궁전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쓰레기 소각장이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훈데르트바서가 리모델링한 빈의 아파트 단지에 난방을 공급하는 친환경 시설이자 유명한 관광 상품이 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독일에서 제작해 공수해 온 알록달록한 78개의 세라믹 기둥, 3개의 양파돔, 131개의 개성 있는 창문으로 지어진 파크는 곳곳이 인증샷 명소다. 파크는 훈데르트바서의 일생과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훈데르트바서 뮤지엄’과 미술관인 ‘우도갤러리’, 카페 ‘레겐탁’ 등으로 이뤄져 있다. 쌍둥이 분수인 ‘쯔블링 분수’, 우도갤러리의 세라믹 기둥, 톨칸이 카페에서 바라보는 큰 바위 얼굴을 품은 해안 절경은 압도적이다. 그런데 천천히 파크를 돌아보다 보면 “당신은 자연에 잠깐 들른 손님입니다. 예의를 갖추세요”라고 말한 훈데르트바서의 미학과 철학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나무 세입자 “나무 세입자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화폐로 월세를 지불합니다. 나무 세입자는 산소를 공급하고, 사막과도 같은 도시에 습기를 공급합니다. 도시의 진공청소기로서 먼지를 빨아들이고, 소음의 울림 현상을 감소시켜 조용한 도시를 만듭니다. 나무 세입자는 아낌없이 주는 사람입니다….” 훈데르트바서가 1980년에 주창한 ‘나무 세입자’론이다. 그는 메마른 도시의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건축물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힘쓴 ‘건축 치료사(Architecture doctor)’다. 그는 인간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뽑힌 나무들을 지붕과 창문 주변에 ‘나무 세입자’로 심는 것을 설계에 넣곤 했다. 그래서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창문 베란다마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들이 밖으로 나와 있다. 그의 철학에 따라 우도에 파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생하고 있던 1600여 그루의 나무들은 모두 그대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의 이름은 ‘백 개(Hundert)의 강(Wasser)’이란 뜻이다. 그는 물을 사랑했다.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그의 판화는 ‘비 오는 날(Regentag)’ 시리즈다. 그는 “비 오는 날 세상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날 나는 행복에 흠뻑 젖는다”고 했다. 비 오는 날, 자연의 모든 색이 선명하게 떠오르면 훈데르트바서는 곡선으로 떨어지는 자연 앞에 경배하며 그림을 그렸다. 훈데르트바서 파크 안에도 우도에서 빗물이 고이는 샘인 ‘각시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물이 귀했던 우도에 생긴 최초의 연못에 대해 이러한 전설이 내려온다. “우도의 땅의 기운이 남자라서, 샘에서 물이 나오려면 서쪽 어두운 곳의 ‘색시물’을 구해 와야 했다. 동네 사람들은 수소문 끝에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사이에 있는 ‘서느랭이굴’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발견해 정성껏 제를 지내고 새 각시를 모셔오듯 물을 항아리에 담아 샘물통에 부었다. 메말랐던 흙 속에서 숨기가 차기 시작하더니 물이 솟아났다.” 이후로 ‘각시물통’이라는 지명이 탄생했으며, 이 각시물에서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손이 번창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나선(The Spiral) “나선은 삶과 죽음의 상징이다. 나선은 무생물이 생명으로 변화하는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한다. 진화는 언제나 나선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창조 행위에는 나선의 본성이 담겨 있다고 확신한다. 멀리 있는 별들은 나선 형태로 배열돼 있으며, 보이지 않는 분자들 역시 그렇다. 우리의 삶조차도 나선 형태로 진행된다.” 파란색 양파 모양 돔이 있는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에 들어서면 기둥과 계단이 온통 물결치는 곡선이다. 나선 모양으로 돌아 올라가는 계단의 바닥도 구불구불하다. ‘직선은 신(神)의 부재를 뜻한다’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에서 나온 건축이다. 자연에는 곡선만 있듯이, 전시돼 있는 그의 그림과 건축은 온통 곡선의 향연이다.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독일 다름슈타트의 ‘나선의 숲’ 건축물 모형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나선형으로 지어져 있어 낮은 구릉을 오르듯 지붕 위로 산책할 수 있게 돼 있다. 양파 모양의 나선형 동심원은 훈데르트바서 건축의 상징물이다. 뮤지엄 옥상에서 톨칸이 해변을 바라볼 때 보이는 비너스, 다비드상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훈데르트바서는 생전에 “황금의 양파첨탑은 거주자의 신분을 왕의 지위로 끌어올린다”고 말했다.○창문권 “집은 벽이 아니라 창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은 눈과 같다. 일반적인 평이한 창문들은 슬프다. 창문들은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훈데르트바서는 오스트리아 빈의 공공주택 훈데르트바서하우스를 완공한 뒤 세입자 계약서에 창문을 꾸밀 권리인 ‘창문권’ 권리 조항을 넣었다. “모든 세입자가 자신의 창문을 어떤 색깔로도 칠할 수 있고, 장식물을 달 수 있으며 색색의 타일로 장식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거주공간이 인간을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우도의 훈데르트바서 파크 건축물에도 총 131개 창문이 있다. 뮤지엄에서 크고 작은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우도의 풍경은 어떤 그림보다도 더 감동적이다. 창문을 장식하는 세라믹 타일은 현장에서 인부들이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장 독특한 타일 문양은 화장실에서 발견된다. 세면대를 꾸민 푸른색, 빨간색, 흰색 타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화장실을 만들어냈다. 해질 녘. 톨칸이 해변에서 우도의 노을을 바라보면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분홍색이다. 바다 건너 성산일출봉뿐 아니라 한라산까지 붉게 물든다. 글·사진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현대제철이 전기차용 고성능 소재 시장 공략을 위해 감속기 기어용 합금강과 해당 제조기술을 개발하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신기술인증(NET)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이 개발한 합금강은 기존 감속기 부품에 들어가는 강종 대비 열변형이 48% 향상돼 기어 구동 시 발생하는 소음을 줄여 주행 정숙성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고온 안정성을 확보해 감속기 기어 내구성을 기존 대비 2배 이상 늘렸다. 이 기술은 올해 출시되는 고성능 전기차 EV6 GT에 적용되며 이후 적용 차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산업기술혁신 촉진법’에 근거한 신기술인증은 국내 최초로 개발된 기술 또는 기존 기술을 혁신적으로 개선, 개량한 우수 기술로서 경제적, 기술적 파급효과가 크고 상용화 시 제품의 품질과 성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제도다. 신기술인증을 보유한 업체는 정부에서 투자하는 연구개발(R&D)사업 신청 시 우대를 받게 되며, 핵심 부품 국산화 지원 등의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현대제철이 이번에 인증을 획득한 기술은 현대자동차·기아와 공동 개발한 기술로 현대제철이 합금성분 설계 및 제조 공정의 최적화를, 현대차·기아가 소재개발 기획과 시제품 제작을 맡았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이번 신기술인증 전기차 감속기 기어에 적용되는 고성능 특수강 부품 관련 핵심 기술을 갖추게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로마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창문’이 있다. 주일 삼종기도 시간에 교황청의 집무실 창문이 열리면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순례객이 환호를 보낸다. 교황이 발코니에서 광장을 바라보며 주례하는 삼종기도는 1954년 비오 12세 교황 때부터 시작됐다. 코로나19 기간 교황의 삼종기도는 인터넷 생중계로 대체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삼종기도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촉구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에 있는 기메동양박물관(Musée Guimet)은 1889년에 문을 연 유럽 최대의 동양미술 전문박물관이다. 기메박물관에는 김홍도의 풍속화를 비롯해 화조화, 산수화, 인물화 등 다수의 한국 미술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방대한 조선시대 민화 수집품이 유명하다. 1888년 프랑스 인류학자이자 여행가인 샤를 바라(1842~1893)가 한국에서 수집한 민화들과 2001년에 현대화가 이우환 씨가 기증한 민화들이다. 그 중에서 프랑스 관람객들이 가장 눈을 떼지 못하는 작품은 ‘책가도(冊架圖)’ 혹은 ‘책거리(冊巨里)’로 불리는 병풍이다. 책과 문방사우(文房四友) 등 사랑방에 있는 책장 속에 여러 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민화 책가도를 접한 첫 인상이 매우 현대적이다. 책장 속 책은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반듯반듯해 디자인 작품처럼 표현돼 있다. 또한 쌓여 있는 책더미가 마치 건물처럼 투시도법으로 표현돼 있는데, 시점이 다양하다. 책장의 칸에 있는 기물들이 왼쪽에서 본 모양, 오른쪽에서 쳐다본 모양, 위에서 본 시점, 아래에서 올려다본 시선으로 변화무쌍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발명품인 원근법이 조선시대 민화에 사용됐는데, 마치 입체파 화가 피카소 작품처럼 왼쪽, 오른쪽, 위 아래에서 내려다본 다양한 시점이 한 폭의 그림에 담겨 있다. 외국 관람객들도 “조선시대 민화에서 어떻게 이렇게 현대적인 회화 느낌이 날 수 있느냐”며 연신 “뷰티풀!”을 외치게 만든다. 조선시대 민화인 ‘책거리 병풍도’는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고 있는 ‘책거리: 우리 책꽂이, 우리 자신’ 전시회에서도 선보였다. 한·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 전시는 합스부르크 왕가 페르디난트 대공의 방대한 소장품이 있는 ‘빈 세계박물관(Weltmuseum Wien)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회에서 단독 디지털아티스트로서 참가한 이돈아 작가의 작품 ’To be, Continued‘(렌티큘러 에디션)는 빈 세계박물관에 영구 소장됐다. 이돈아 작가의 디지털아트 영상작품은 전시회 오프닝 콘서트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이 작가의 ’책거리‘ 작품은 뉴욕의 마천루 빌딩과 책가도가 오묘하게 중첩돼 있는 모양이다. 전통 민화가 현대 도시의 공간으로 확장돼 재탄생한 독특한 세계다. 이 작품의 제목은 ’시공연속체(時空連續體)-Space Time Continuum‘. 오스트리아에서 선보인 이돈아 작가의 조선 민화와 책가도, 달항아리, 모란화 등 다양한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도 열리고 있다. 21일까지 볼 수 있는 ’무우수갤러리 기획전 K-ART 시리즈2 : 이돈아 초대전 Omni_Verse‘ 전시회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온 이 작가를 만나 인터뷰했다. ―책가도와 뉴욕의 빌딩숲을 겹쳐서 그리는 이유는. “책가도 병풍 속의 책더미들과 도시의 빌딩이 처음엔 조형적으로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속에 담긴 의미까지도 닮은 것을 발견하게 됐다. 책가도는 정조가 특별히 사랑했던 그림이었다. 책과 그림을 사랑한 정조는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병풍을 두는 관례를 깨고 책거리 병풍을 펼쳐놓을 정도였다. 정조는 학문에 정진하라는 의미에서 책가도를 사랑했는데, 왕실과 사대부들을 넘어 서민층으로까지 유행하면서 자기가 갖고 싶은 기물을 책가도에 하나씩 채워나갔다. 학문에 대한 열망부터 인생의 행복과 장수까지 상징하는 물건들이었다. 책가도에 민초들의 욕망이 담겼듯이, 빌딩숲도 네모난 한칸 한칸마다 사람들의 강렬한 욕망이 담긴 것이 똑같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욕망이 아니라, 더 발전하고 싶은 삶의 긍정적인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이돈아 작가의 그림 속에는 ’비뚤어진 사다리꼴‘ 모양의 도형이 등장한다. 2005년 뉴욕에서 생활하던 때 뉴저지의 공장을 빌려 작품 활동을 하며 번민, 불안 속에서도 자아를 지키려했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도형이다. “2000년도부터 조선시대 민화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어요. 뉴욕에 있는 친정집에서 머물며 2년 동안 작업을 했는데,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민화니 꽃이니 다 빼고 나를 그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콘크리트 빌딩이 제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뚤어진 6면체 건물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모양이다. 원근법에도맞지 않는 기하학적 조형물이다. 내 불안한 현재의 심리상태를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조선시대 민화인 책거리 병풍도가 현대적인 미술로 보이는 이유는. “저도 내가 그린 기하학적 도형과 책거리 그림이 조형적으로 비슷하다고 느꼈다. 책거리는 원근법, 투시도법상으로 정확히 맞지 않는 데,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책가도 속 시렁 위에 놓인 책과 기물들은 밑에서 위로 보기도하고, 위에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좌우에서 바라본 시점이 다양하다. 정말 천재적인 회화 작품이다. 이렇게 다양한 시점은 진정한 ’자유로움‘이 담겨 있다. 선비들이 공부를 할 때 한쪽 면만 파고들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에서 이리저리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궁리해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한 뜻일 수도 있다. 유럽에서 피카소와 같은 입체파가 나온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정해진 틀을 깨고 자유롭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표현된 것 같다.” 전시장에는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온 책이 세로로 가득 꽂혀 있고, 책이 동동 떠다니는 거대한 책꽂이 모양의 책가도 그림도 있다. 이 작가는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아빠를 만나는 서가를 상상하며, 책가도를 변형시켰다”고 말했다. 책가도와 빌딩숲을 그린 작품에 이어 이돈아 작가가 새롭게 내놓은 작품은 ’달항아리‘ 시리즈다. 순백의 달항아리가 우주를 배경으로 한 보름달로 변화하는 모습이 중첩되는 렌티큘러(lenticular·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변화하는 3D입체 제작기법) 작품이다. 이 작품 앞에서 걸어가거나, 고개를 약간씩 움직이면 각도에 따라 달이 되었가, 달항아리로 변화한다. 이 작가의 책가도와 달항아리, 모란꽃 그림은 10월에 오픈하는 경기도청 신청사 1층 로비에 대형작품으로 설치돼 선보일 예정이다. ―조선백자인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이유는. 달항아리의 매력은 무엇인가. “달항아리는 크고, 넉넉해서 여유와 풍요를 상징하는 기물이다. 그런데 저는 달항아리를 볼 때마다 ’절제‘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감명적이었다. 누구나 하얀 도화지를 주면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겠는가. 애들이 벽에 낙서를 하고 싶어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새하얀 달항아리 표면에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이렇게 큰 항아리 같은 경우에 도공이라면 그림을 그려넣고 싶었을 것이다. 고려청자, 청화백자, 분청사기처럼 얼마든지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넣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도, 달항아리는 거기에서 멈췄다. 미완성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절제에서 오는 숨막히는 아름다움이다. 맥시멀리스트인 나는 언제나 캔버스를 꽉꽉 채우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정반대인 예술작품을 보니까 비어있는 여백의 아름다움이 정말 매력적이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막사발에 대해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처음엔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일본 나오시마 축제 때 여행을 가서 깨달았다. 일본은 도자기 뿐 아니라 공원의 조경까지도 극도의 완벽함을 추구한다. 흐트러뜨리는 것을 못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막사발 같은 것을 못 만든다. 매뉴얼에 따른 완벽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이 무심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만든 막사발에 그렇게 흥분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그려넣지 않은 달항아리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빠져드는 것도 그 이유다.” ―달항아리와 달을 겹치는 작품을 만든 이유는. “10월에 오픈하는 경기도청사 1층 로비에 설치되는 10폭짜리 족자(가로 30m) 작품 중의 하나로 달항아리 작품이 들어간다. 10폭짜리 족자에는 그림과 렌티큘러 작품, 미디어아트가 융합된 작품들이 들어간다. 지난해에 8개월에 걸쳐 이 작품을 만들고 있던 중 뉴욕에 살고 계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어머니 장례식에 갈 수가 없었다. 작품 완성기일이 임박해서 미국에 다녀오면 자가격리 때문에 작업을 완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튜브로 장례식을 치르면서 정말 울면서 작업을 했다. 2018년에 아버지가 뉴욕에서 돌아가셨을 때 물려주신 달항아리가 있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밤하늘의 달을 쳐다보면서,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게 쉬시길 기원하면서 달항아리 시리즈를 시작하게 됐다. 방 안에 놓인 달항아리가 우주로 올라가 둥그런 보름달로 변화하는 작품이다.” ―렌티큘러 제작기법으로 만든 이유는. “렌티큘러는 옛날에 학교 다닐 때 책받침에서 많이 보던 것이다. 과자봉지 속에 들어있는 캐릭터도 렌티큘러로 만든 것이 많다. 책받침이나 엽성, 캐릭터에는 ’렌즈‘라고 불리는 얇은 아크릴판을 사용한다. 제 작품은 2mm 짜리 아크릴판을 사용해 3차원 입체감을 높였다. 제 그림 속 민화적 소재는 과거를 상징하고, 빌딩과 같은 것은 현재(미래)의 상징한다. 제가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작가니까, 2차원으로 보여주는 렌티큘러 제작기법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민화를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를 만들게 된 계기는. “제가 30년 전 결혼할 때 부모님께서 혼수품으로 시댁에 병풍을 보냈다.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남편에게 물어봐서 시댁에서 병풍을 찾았다. 병풍에는 전서체로 글씨가 써 있었는데 해석이 안됐다. 아는 지인의 도움으로 구글링을 해서 번역해보니 후한시대 학자 중장통(仲長統)의 시 ’낙지론(樂志論)‘이었다. 물질을 넘어 행복하게 사는 삶에 대해 쓴 시인데, 시집가는 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 ’낙지론‘을 내용으로 한 미디어 아트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디어아트의 주요 모티브 중의 하나는 단청이다. 우리나라 건축에서 단청은 지붕과 기둥, 면과 면을 ’연결‘해주는 무늬다. 뉴욕과 서울을 이어주는 모티브로 오방색 끝과 단청을 선택했다. 그 안에 달항아리, 빌딩, 책가도, 모란꽃과 같은 다양한 영상이 이어진다. 부모님이 사랑하셨던 옛 기물들은 그리움의 대상이고, 알루미늄이나 렌티큘러, 미디어아트 같은 소재는 현대적인 것을 상징한다.” ―모란꽃 그림도 많은데, 그 의미는. “민화에서 모란꽃은 부귀영화를 상징한다고 해서 집 안에 걸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부귀영화하면 부(富)에만 집중하는데, 저는 고귀함에 더 끌린다. 모란은 황후의 꽃같은 느낌이라 매우 좋아한다. 모란은 스스로 뽐내지 않는다. 본인 자체가 고귀한 화려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뽐내지 않아도 주변에서 다 느끼니까 존중받는 것이다. 남을 귀하게 여기면 자신도 귀함을 받게 된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필리핀 관광부는 14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 서울’에서 필리핀 여행을 테마로 한 팝업 이벤트 ‘It’s More Fun With You in the Philippines‘를 개최한다. 더현대 서울 지하1층 이벤트 플라자에서 열리는 팝업 이벤트 행사장에서는 버추얼존, 사진전시회, 포토존, 액티 비티존을 마련해 다채로운 필리핀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날 오전 오프닝 기념식에는 마리아 테레사 디존 데 베가 주한 필리핀 대사, 마리아 아포 필리핀 관광부 한국지사장, 알렉스 마카투노 한-아세안센터 문화관광 총괄, 더현대 서울 김창섭 전무, 하나투어 송미선 대표, 모두투어 유인태 대표 등이 참석했다. 팝업 이벤트는 대표 여행지인 마닐라, 세부, 팔라완, 보홀, 클라크, 보라카이를 비롯하여 시아르가오, 코르디예르 지역과 같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보물 같은 여행지들의 영상과 이미지를 선보이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다. 해양생물의 보고인 필리핀 바닷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고래상어 및 물고기들을 입체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버추얼 존‘, 총 7641개의 섬의 영감 가득한 비주얼로 가득한 ’사진전시회 존‘, 실제로 현지에 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포토존‘, 그리고 필리핀을 비롯한 휴양지 테마의 다채로운 상품이 판매되고 고객이 흥미로운 게임과 이벤트에 직접 참여해 볼 수 있는 ’액티비티 존‘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팝업 이벤트 기간 동안 세부퍼시픽, 필리핀항공, 진에어, 대한항공 등이 공동으로 협찬한 총 13장의 필리핀 왕복 항공권이 방문객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제공될 예정이다. 당첨자는 행사 종료 후 필리핀 관광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지된다. 이와 함께 현장 이벤트에 참여하는 고객들에게는 필리핀 관광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선물이 제공된다. 또한 필리핀 관광부의 온라인 및 소셜 미디어 채널을 통한 이벤트 참여 시에도 다양한 경품이 제공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의 타이틀인 ’It‘s More Fun With You in the Philippines (필리핀에서 당신과 함께하면 더욱 즐겁다)’는 필리핀 관광부의 글로벌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을 통해 필리핀 관광 진흥위원회(TPB)와 함께 코로나 이후 뉴노멀 시대에 최적화된 전세계 글로벌 여행객들 대상으로 다양한 지역별 테마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한항공, 세부퍼시픽, 아시아나항공, 에어서울, 제주항공, 진에어, 필리핀항공, 플라이강원(양양-클라크) 등의 주요 항공사가 마닐라, 세부, 클라크, 보홀, 보라카이 등으로의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필리핀 관광부 마리아 아포 한국 지사장은 “일주일간 열리는 더 현대 서울과 함께하는 필리핀 테마의 팝업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코로나 이후 달라진 안전하면서도 즐거움이 가득한 필리핀의 매력적인 비경과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