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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등학교를 자퇴한 최현석 군(가명·17)은 중3 때 처음 온라인 도박을 시작했다. “바카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급기야는 주변에서 돈을 빌려 도박을 했고 빚은 1500만 원까지 불었다. 현재 최 군은 한국도박문제치유원을 찾아 도박 중독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경찰이 실시한 청소년 온라인 도박 실태 설문조사 결과 학생 10명 중 1명꼴로 주변에서 도박을 하는 친구를 봤다는 답변이 나왔다. 도박 청소년의 절반가량은 중학교 때 처음 시작했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도박을 시작했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학교에서는 도박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수사기관은 도박 사이트의 계좌를 빠르게 동결하는 등의 대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10명 중 1명 “주변에 도박하는 친구 있다”11일 서울경찰청은 5월 17일부터 3개월간 서울 지역 초중고교생 및 학교 밖 청소년 1만685명이 참여한 청소년 온라인 도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이 청소년 온라인 도박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벌인 것은 처음이다.응답자 중 157명(1.5%)은 “도박을 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응답자 중 1069명(10.0%)은 “친구가 도박을 하는 걸 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 등 때문에 도박을 해봤다고 답변한 학생은 적었을 것”이라며 “실제로는 이보다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도박에 빠진 청소년 대부분은 중학교 때 처음 도박을 시작했다. 도박 중독 청소년 중 78명(49.7%)은 중학교 때 처음 시작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때 처음 시작했다는 응답자는 35명(22.3%), 초등학교 5, 6학년 때 시작한 이들은 23명(14.6%)이다. 초1~4학년 때 시작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친구의 권유나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를 본 뒤 도박을 시작했다고 답했다.단기간에 소액의 도박 자금을 빌려주고 나중에 20∼50%의 이자를 뜯어내는 이른바 ‘대리입금’ 사례들도 있었다. 대리입금 방식으로 직접 도박 자금을 빌렸다는 청소년은 응답자 중 65명이었다. 대리입금 경험자(총 65명) 중 24명(37%)은 “과도한 이자를 요구받았다”고 했다. 신분증 등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받은 경우는 19명(29%), 돈을 갚지 못해 폭행 협박 등 불법 추심을 당한 경우도 8명(12%)이나 있었다. 그외 응답자 중 236명은 “친구가 도박을 하려고 돈을 빌리는 것을 봤다”고 답했다.● 강도 등 2차 범죄도… 전문가 “처벌과 교육 강화해야”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올해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온라인 도박, 교문을 넘다’ 시리즈에서 청소년 도박 문제를 연속 보도했다. 취재 결과 단순 도박을 넘어 불법 사채에 손대거나 도박 사이트를 만드는 청소년도 적지 않았다. 도박이 청소년들의 2차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 서울경찰청 조사에서도 “금품 갈취나 중고거래 사기 등 불법적인 방식으로 도박 자금을 마련했다”는 청소년이 7명 있었다.전문가들은 처벌 강화와 예방 교육의 ‘투 트랙’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호 한국중독전문가협회장은 “도박 사이트는 처음엔 마치 게임처럼 가상 머니를 주고 청소년을 유인한다”며 “게임인 줄 알고 시작했다가 중독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도박 조직에 대한 처벌 강화와 더불어 청소년 교육 강화가 모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민무홍 성균관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범죄처럼 불법 도박사이트 의심 계좌는 신고만 해도 빨리 동결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수사 당국이나 학교가 부모에게 자녀의 도박 사실을 알리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도박 문제가 학교 폭력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경우 해당 학생을 엄벌할 계획”며 “학생의 도박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상담기관 등에 바로 연계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임신 36주 낙태 브이로그’ 사건 당시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해당 병원장이 아니라 다른 의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해당 의사를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 12일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사건 당시 낙태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전문의 1명을 지난달 말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원장이 (수술을) 집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집도의가 별도로 있어 특정하고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고 말했다. 해당 집도의는 다른 병원 소속 산부인과 전문의인 것으로 드러났다. 집도의도 자신이 직접 낙태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경찰에 시인했다.집도의가 뒤늦게 확인된 이유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최초에 관계자들이 거짓 진술을 했다”며 “의료진에 대해 전원 조사했으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엇갈리는 내용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집도의가 새롭게 파악되면서 낙태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은 기존 5명에서 6명으로 늘었다. 병원장과 집도의는 살인 혐의를, 마취의 1명과 보조 의료진 3명은 살인 방조 혐의를 받는다. 병원장은 병원 내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의료법 위반 혐의도 받는다.자신의 낙태 과정을 브이로그에 올렸던 여성은 앞서 살인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경찰은 온라인상에서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홍보한 브로커 1명도 의료법 위반 혐의로 추가 입건했다. 이 브로커는 인터넷 블로그 등에 낙태 수술 관련 광고를 올려 환자를 알선하고 그 대가로 병원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낙태한 여성은 지인이 브로커가 올린 광고를 보고 산부인과 정보를 알려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영상을 올린 여성과 의료진 6명, 브로커 1명 등 총 8명을 입건했다. 경찰은 휴대전화와 태블릿 PC 등 13점과 진료기록부 등 자료 18점 등 총 31점을 압수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또 종합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자문업체를 통해 분만 당시 태아가 이미 숨져 있었는지 등의 의료 감정도 진행 중이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올해 추석을 일주일 앞둔 10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고 김기현 씨(23)의 집에는 생전에 쓰던 책상 위에 기현 씨의 유골함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기현 씨의 아버지 김모 씨(54)와 어머니 이모 씨(52)가 쓴 편지가 있었다. ‘착하고 예쁜 내 아들아, 다음 생에도 우리 아들로 와 줘.’ 외아들인 기현 씨는 지난달 12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전기에 감전돼 숨졌다. 원래 그가 맡았던 일은 기계를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비의 전원을 직접 끄라’는 지시를 받고 작업을 하다 고압 전류에 감전됐다. 현장에서 기현 씨가 사고를 당한 것을 인지한 건 1시간 30분 뒤, 병원에 도착한 건 그 이후로도 1시간 뒤였다. 사건 당일, 일한 지 8개월째였던 기현 씨는 휴일이었지만 출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늦게까지 자서 기분도 좋고, 친한 삼촌 부탁이라 얼른 다녀올게요.” 기현 씨는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그게 부모가 본 살아 있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기현 씨가 숨진 지 12일이 지난 지난달 24일 하청업체 책임자들이 김 씨와 이 씨를 찾아왔다. 그들이 내민 것은 처벌불원서였다. ‘유족은 하청과 원청 모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아파트 공사가 조속히 재개되길 원한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불과 6일 전 아들의 장례를 마친 김 씨는 그때까지 ‘원청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김 씨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들의 장례가 끝난 뒤에도 김 씨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원래 리모컨 조작 작업만 하기로 했던 아들이 왜 감전사를 했는지. 왜 동료도 없이 혼자였는지. 쓰러진 뒤 왜 1시간 반 동안 방치됐는지. 그 후에도 왜 1시간이나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했는지. 김 씨는 사고 당시 아들의 최후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들의 죽음은 여전히 미궁 속이었다. 김 씨와 이 씨는 5일에 걸쳐 아들의 장례를 치렀다. 다음 날 찾아간 ‘그 아파트’ 현장은 다시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엘리베이터와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이 죽은 현장만 작업이 멈춰 있었다. 이 씨는 왜 아직 아들을 봉안당에 보내지 못했느냐는 물음에 “추석에 아이가 봉안당에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아직 보내지 못했어요”라며 “집에서 마지막으로 추석을 같이 보내려고 해요”라고 했다. 부모는 추석을 보내고 22일 유골함을 봉안할 계획이다.고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고등학교 1학년인 김수민(가명·16) 양은 2년 전(당시 중학교 2학년) 한 친구로부터 “네 사진이 음란물 사이트에 돌아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넘겼지만 “네 음란물을 봤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이 점점 늘었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친구까지도 “너랑 똑같이 생긴 사진이 텔레그램에 돌아다닌다. 그런데 전신 누드 사진이다”라고 알려줬다. 그제야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착취물이 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김 양의 일상은 무너졌다. 2년이 흐른 지금도 김 양은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초조하게 음란물 사이트, 텔레그램 대화방들을 뒤진다. ‘혹시 내 사진이 더 퍼지진 않았을까.’ 그러다 어느 날은 한 성인 콘텐츠 사이트에서 자신을 사칭해 딥페이크 사진을 파는 온라인 계정을 발견했다. 김 양은 아직까지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는 동아일보 취재팀을 만나 “지옥 같은 2년이었다. 이 사실을 말하면 어른들이 내 잘못이라고만 할 것 같다”며 “그 사진 속 여자가 내가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도 없고 누가 이런 걸 만드는지 알 수도 없다”며 답답해했다.● N번방 뒤 나온 대책들, 빛도 못 보고 폐기 딥페이크 성착취 영상이나 사진은 복제와 유포가 매우 쉽다. 그에 반해 정부는 텔레그램, 유튜브 등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 콘텐츠 삭제를 강제할 권한이 없다. 2021년 일명 ‘N번방’ 사건 뒤 국회와 정부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대책들이 쏟아졌다. 의원들은 앞다퉈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법무부는 산하에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었으나, 현재 시행 중인 것들은 전무했다. 국회에서는 2021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물이 발견되면 수사기관이 이를 즉시 삭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해에는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징역형 상한을 올리는 법안, 디지털 성착취물을 수사기관이 압수 및 보전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그러나 모두 여야의 무관심 속에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2년 전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대응 TF가 내놓은 권고안에도 관련 대책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불법 영상물 삭제 및 차단 관련 응급 조치 △양형 조건 개정 △성착취물 압수 및 몰수 절차 개선 △피해 영상물 재유포 방지 대책 등이었다. 응급 조치는 수사기관이 직접 인터넷 사업자에게 삭제 차단을 요청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텔레그램에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발견되면 우리나라 인터넷 사업자에게 접근 차단을 명령하는 식이다. 하지만 TF가 해산되면서 이 권고안들도 흐지부지됐다. ● 26만 건 넘게 아직 삭제 안 돼 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여가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접수된 불법 촬영물 삭제 요청 건수는 총 94만 건이다. 이 중 28.8%(26만9917건)는 아직 삭제되지 않았다. 삭제할 강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부산에서 유명 연예인과 아동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만들어 판 10대 청소년 3명이 검거되는 등 관련 범죄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추진된 대책들이 시행됐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범죄 전문 장윤미 변호사는 “딥페이크 범죄 피해자 입장에선 사진 삭제 등 응급 조치가 절실하다”며 “특히 미성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대책 시행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유포, 판매뿐 아니라 단순 제작부터 범죄로 규정해 처벌해야 한다”며 “범죄 수익이 적다거나 결과물의 질이 조악하다는 등의 이유로 지금처럼 형을 깎아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교통 좋은 무주군에 내려가 임업을 하고 싶은데 임야는 어떻게 구입할 수 있나요? 준보존산지와 보존산지 중에선 어떤 땅이 더 좋을까요?” 30일 ‘2024 에이팜쇼’ 제1전시장의 ‘귀농·귀촌관’을 찾은 강기정 씨(55)는 전북특별자치도 부스에서 무주군의 임야와 주변 환경, 경영 가능 여부 등에 대해 세세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무주군 관계자가 10여 분에 걸쳐 종이에 임야별 특징을 써 내려가며 장단점을 설명했다. 강 씨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 뒤 두 달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다음 달 10일 무주로 내려가 직접 임야를 살펴보겠다는 계획을 잡았다.● “전원주택 물색하려 3년 연속 찾아” 2016년부터 귀농·귀촌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강 씨는 “떠도는 정보는 많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정확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며 “(이번 에이팜쇼는) 농촌에서 ‘내 밥벌이를 할 수 있느냐’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66곳이 80개의 부스를 마련한 귀농·귀촌관에는 강 씨처럼 꼭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는 ‘귀농·귀촌 지망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기 과천시에서 온 원모 씨(61)는 이날 사과로 유명한 경북 청송군 부스에서 상담을 받으며 “청송에서 기를 수 있는 사과의 종류가 뭐냐” “귀농 체험 신청은 어떻게 하면 되냐”며 연신 질문을 던졌다. 청송군 관계자는 ‘청송 황금사과’로 유명한 시나노골드 품종을 추천하면서 재배한 사과가 잘 팔리지 않을 경우 청송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 씨는 “퇴직 후 노후에 대해 고민이 컸는데 귀농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며 “다양한 지자체의 귀농 정보를 한 장소에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경기 여주시 부스에서 귀촌 상담을 받은 이돌 씨(74·경기 용인시)도 “수도권 내 조용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 만한 곳을 알아보려고 에이팜쇼를 3년째 찾고 있다”고 말했다. ● “농촌유학으로 아토피 안심학교 찾아오세요” 제2전시장에 처음으로 마련된 농촌유학관에는 감성과 창의력을 길러 줄 수 있는 농촌학교 유학에 궁금증을 가진 학부모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6세 된 아들과 함께 전남도교육청 부스를 찾은 설은희 씨(41·여)는 “농촌 유학에 관심이 있지만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며 “교과 과정 대신에 농업을 주로 공부하느냐”란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정다정 전남도교육청 주무관은 “일반 교과 과정과 지역 특성에 맞는 생태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된다”며 “섬진강과 지리산을 끼고 있는 구례군이라면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과 강을 느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에이팜쇼에는 전북과 서울도 농촌 유학관을 마련했다. 전북은 특화형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앞세웠고, 서울은 전남 전북 강원과 연계해 경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전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진안군 조림초등학교의 아토피 안심학교 프로그램처럼 자연, 생태, 사회, 역사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재작년 에이팜쇼에서도 버섯을 구매했는데 만족도가 높았어요. 전국 각지에서 온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상품을 만나 볼 수 있어 올해도 오게 됐습니다.” 30일 서울 서초구 ‘2024 에이팜쇼’ 현장을 찾은 임수진 씨(38)는 어깨에 멘 장바구니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안에는 버섯과 육포, 오징어채 등 ‘에이팜 마켓관’에서 판매하는 농산물과 지역 특산품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날 에이팜쇼 ‘에이팜 마켓’에는 추석을 앞두고 농특산물과 이색 전통주 등을 구매하기 위해 찾아온 방문객들로 붐볐다. 쌀과 누룩, 남해산 유자만으로 빚은 유자막걸리(다랭이팜), 꿀을 발효해 만든 꿀술 미드(부즈앤버즈) 등 이색 전통주들도 인기를 끌었다. 이랜드 킴스클럽의 부스에는 가루쌀 피자를 시식하기 위해 10여 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청년농이 재배한 토마토로 만든 ‘토마토 고추장’ 역시 킴스클럽 부스에서 소개됐다. 김인성 토마토 아뜰리에 대표(41)는 “고추장에 밀가루나 찹쌀가루 대신 토마토 발효액을 넣어 글루텐을 전혀 쓰지 않는 동시에 염도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에이팜 마켓에서 판매된 과일, 과채주스 등은 네이버쇼핑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중계·판매됐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K푸드 기업의 제품도 호응을 얻었다. 이날 CJ제일제당 측에서 준비한 경품 600개 중 절반인 300개가 1시간 반 만에 소진됐다. 신세계푸드는 국산 가루쌀과 현미유 등 식물성 원료만 써서 만든 대체 우유 ‘라이스 베이스드’를 소개했다. 다양한 행사도 준비됐다. 오후 1시 ‘에이팜 골든벨’이 열리는 무대 곳곳에서는 탄성 소리가 들렸다. 달래의 제철이 가을인지를 묻는 OX 퀴즈에서 O를 적어내 탈락한 참가자들이 내는 소리였다. 에이팜 골든벨에 참가해 경품을 타간 양준환 군(18)은 “전북 전주시에서 왔다. 가업을 이어받아 고구마를 재배할 생각인데 스마트팜 기술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착취물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가해자들이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중학생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팔아 돈을 벌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례도 확인됐다. 당국의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로 결제가 이뤄지는 탓에 딥페이크 범죄가 음지에서 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유통 중인 대화방 10곳에 잠입해 거래 현황을 살펴봤다. 이 대화방에서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이용해 음란물을 사고파는 거래가 이뤄졌다. 취재팀이 성착취물 구매를 희망하는 것처럼 가장해 결제를 시도하자 ‘46종의 가상화폐로 이용 가능하다’는 안내가 나왔다. 대화방에서는 ‘더 적나라한 성착취물을 구입하고 싶으면 좀 더 큰 금액을 지불하라’는 취지의 안내도 이어졌다. 딥페이크 범죄를 실제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중학생이 경찰에 검거된 사례도 확인됐다. 2021년 7월 경북 구미의 중학교 3학년 A 군은 한 성착취물 제작자에게 15세 여학생 2명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해 달라고 의뢰했다. A 군은 이후 직접 딥페이크물 제작 방법을 터득한 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비롯해 총 177건의 딥페이크물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성착취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팔았다. 나아가 합성 사진을 당사자인 피해 여성에게 전송한 뒤 “알몸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협박했다. 결국 경찰에 붙잡힌 A 군은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1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범죄 조직들은 몇천 원만 내면 성착취물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일명 ‘딥페이크 봇(bot)’으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성착취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거래 구조가 유지되는 한 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화폐가 불법 음란물 유통의 핵심 도구로 이용 중”이라며 “더 큰 금액을 지불할수록 더 높은 강도의 음란물을 받을 수 있다 보니 범인들이 떼돈을 버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코인 받고 ‘딥페이크 성착취물’ 다단계 거래… 추적 어려워 [돈벌이 된 딥페이크 성범죄]퍼트릴수록 돈 더 버는 구조… ‘봇’ 통해 거래, 판매자 정체 몰라텔레그램은 광고수익탓 방치… 전문가 “범죄수익 몰수대책 필요”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의 정점에는 ‘딥페이크봇’을 만들어 굴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자동으로 가짜 이미지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뒤 텔레그램 대화방을 운영한다. 그 아래는 이들에게 구입한 성착취물을 다단계식으로 되파는 일당들이 있다. 말단에는 잠재적 구매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미끼’처럼 무차별적으로 성착취물을 퍼뜨리는 텔레그램 대화방 참여자들이 존재한다. 이들 사이의 거래가 모두 ‘가상화폐’로 이뤄지고 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퍼뜨릴수록 돈을 버는 구조 탓에 관련 범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돈 더 내면 더 수위 높은 사진 구입’ 유도 28일 동아일보 취재팀은 텔레그램봇으로 운영되는 한 대화방을 확인했다. 이 대화방은 실제 참가자들은 없고, 딥페이크봇 프로그램이 마치 운영자처럼 상주한다. 취재팀이 이 방에 접속하자 ‘여성의 사진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여기서 다이아몬드란, 일종의 가상 거래 수단인데 보통 ‘1다이아몬드=약 500원’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취재팀이 확인한 10개 이상의 텔레그램봇 방은 개당 이용자가 20만∼30만 명 정도였다. 이들 모두 비슷한 가상화폐 결제 방식을 쓰고 있었다. 취재팀이 접촉한 텔레그램봇들은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면 더 수위가 높은 성착취물을 구입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들은 “당신만의 사진을 가져보세요. VIP의 특권임. 워터마크(일종의 표식) 없음” “더 나은 디테일을 경험하세요” “더 진짜 같은 사진” 등의 홍보성 문구를 계속 쏟아냈다. 구매자로 하여금 더 적나라한 성착취물을 비싼 가격에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매자들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딥페이크봇을 통해 거래하기 때문에 내 돈이 누구한테 건너갔는지는 알 수 없다. 판매자의 진짜 정체도 드러나지 않는다. 취재팀이 관찰한 결과 이렇게 제작된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일명 ‘지인능욕방’ ‘겹지인방’ 등으로 확산, 유통됐다. 일종의 ‘공급자→도매시장→소매시장→소비자’로 연결되는 구조다. ● 범죄 수익 높아지면 텔레그램도 수익 증가 이 같은 구조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가상화폐로 거래한 경우에는 추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텔레그램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이러한 범죄 구조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착취물을 거래하는 봇, 대화방, 결제창 등에는 상업 광고가 내걸려 있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텔레그램이 광고 수익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다. 마치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높아질수록 영상 제작자와 유튜브 측이 함께 수익을 올리는 것과 같은 셈이다. 올해 4월 텔레그램은 1000명 이상이 이용하는 ‘텔레그램봇’ 제작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절반을 가상화폐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취재팀이 확인한 딥페이크봇들은 20만∼30만 명 규모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봇들을 통한 성착취물 거래가 늘어나고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텔레그램과 봇 제작자들의 수익은 커진다. 게다가 텔레그램이 발행하는 가상화폐가 주요 거래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텔레그램이 얻는 이익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수익 연결고리 깨야…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이들의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범죄로 수익을 거두는 구조를 깨뜨려야 성착취물의 제작, 배포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학장은 “딥페이크 성착취물 거래는 가상화폐를 이용하기 때문에 기존 은행 등 금융기관 시스템으로는 확인이 어렵다”며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도 “딥페이크는 성폭력처벌특례법 제14조의 2에 따라 반포와 판매만 처벌하도록 돼 있어 구매자를 처벌할 수 없다. 구매자들도 강력하게 처벌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도박에 쓰인 가상자산을 범죄 수익으로 몰수할 수 있다는 2018년도 대법원 판례를 참고할 만하다”며 “딥페이크 범죄에 쓰인 가상자산도 충분히 몰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만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실제 몰수하기 위한 수단이나 장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범죄가 온라인 성착취물 제작, 유포를 넘어 오프라인으로 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들은 피해 여성이나 그 가족에게 음란물을 전송하거나 학교폭력 및 왕따(집단 따돌림) 수단으로 딥페이크를 악용했다. 올해만 국내 피해자가 1000명을 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 가운데 미국의 한 사이버 보안업체는 전 세계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피해자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오프라인으로 번진 딥페이크 범죄 28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대전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딥페이크 관련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는 1월 2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에서 ‘딥페이크 음란물 공유방’을 운영했고, 한 여성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만든 뒤 대화방 참가자 2000∼3000명에게 유포했다. 김 씨는 피해 여성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 여성의 아버지 전화번호도 퍼뜨렸다. 이후 피해 여성과 그 가족들의 스마트폰에는 갑자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음란한 메시지와 음성 등이 담긴 문자, SNS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와 고통에 시달렸다. 학교에서도 딥페이크가 학생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 전문기관인 푸른나무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고등학교 남학생 두 명이 서로 짜고 동급생 사진으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었다. 이들은 마치 피해 학생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가짜 SNS 계정을 만들어 이를 유포했다. 가해 학생들은 ‘추가 영상을 만들어 유포하겠다’며 피해 학생을 협박하고 왕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딥페이크 사진이나 영상은 2000원대에 판매되기도 한다. 딥페이크 가해자가 피해 여성을 스토킹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경남 진주에서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한 혐의로 20대 남성이 붙잡혔다. 그는 구속을 면하자 피해 여성의 집에 찾아가 피해자가 공포에 떨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살펴본 딥페이크 관련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현실 범죄를 모의하는 대화도 오갔다. 28일 잠입한 한 대화방에서는 “협박할 사진이나 약점이 있으면 무조건 몸사(몸 사진) 얻어 드린다”, “성폭행하는 사진도 촬영 가능하다” 등의 대화가 오갔다. 다른 대화방에서는 한 피해 여성의 신상 정보, 주소 등과 가족 신상 정보까지 올라왔다. 단순 성착취물 제작 유포를 넘어 협박, 성범죄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전 세계 피해자 절반 이상이 한국인 최근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내놓은 딥페이크 범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8월 사이 전 세계 85개 딥페이크 채널을 분석한 결과 성착취물 피해자 중 53%는 국적이 한국이었다. 2위는 미국(20%), 3위는 일본(10%)이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가장 많이 이용된 인물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인 가수였다. 구체적인 피해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인기 케이팝 아이돌 등일 가능성이 크다. 딥페이크 피해 규모는 급증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2018년 4월부터 이달 25일까지 약 6년 4개월 동안 딥페이크 피해 지원에 나선 건수는 총 2154건이다. 2018년 69건에서 올해 781건(8월 25일 기준)으로 약 11배로 늘었다. 연말까지 1000건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지원을 요청한 781명 중 288명(36.9%)은 10대 이하 청소년이었다. 경찰은 28일 딥페이크 관련 텔레그램방 8곳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해당 대화방에 많게는 40만 명의 참가자가 있었다고 밝혔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딥페이크물은 가해자들에게 잘못된 판타지와 인식을 심어줘 실제 범죄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

22일 경기 부천시 호텔 화재 참사 당시 계단 방화문이 열려 있어 유독가스가 빠르게 퍼졌을 가능성을 경찰이 수사 중이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방화문은 불길이나 연기 확산을 막기 위해 평상시 닫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6일 부천 호텔과 유사한 서울의 주요 숙박시설을 살펴본 결과 상당수가 방화문을 열어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 숙박시설 10곳 가보니, 8곳 방화문 개방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부천 화재 사망자 7명 중 5명은 사망 원인이 일산화탄소 중독, 즉 ‘유독가스’였다. 이 중 2명은 처음 불이 난 7층에서, 나머지 3명은 그 위층에서 발견됐다. 호텔 복도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화재 발생 83초 만에 연기가 복도와 피난 계단 앞을 가득 메우는 장면이 담겼다. 소방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호텔의 층간 방화문에는 자동개폐장치가 다 달려 있었다”며 “다만 몇 개가 안 닫혔는데 화재 때 망가진 것인지, 처음부터 불량이었는지는 수사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연기가 위층으로 퍼진 점을 감안하면 자동개폐장치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방화문을 열어 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99년 만들어진 건축물 방화구조 규칙은 방화문을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하거나, 화재 시 연기 발생 또는 온도 상승에 의해 자동적으로 닫히는 구조로 설치하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화문을 열어 놓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취재팀이 26일 서울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 일대 숙박시설 10곳을 돌아본 결과 8곳은 방화문이 열려 있었다. 종로구의 5층 호텔은 모든 층의 방화문이 개방된 상태였다. 문 앞에 수건 포대나 이불 포대를 쌓아둔 곳도 있었다. 중구의 한 모텔은 옷걸이와 노끈을 이용해 방화문을 열린 채로 고정시켜 놨다. 기자가 힘을 주어 닫아 보려 해도 문이 닫히지 않았다. 중구의 13층 호텔에는 방화문에 자동개폐장치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문이 끝까지 닫히지 않았다. 방화문 개방은 화재 참사로 이어진다. 지난해 12월 서울 도봉구 아파트 화재 당시 3층에서 불이 났는데 유독가스가 11층까지 올라가 주민이 숨졌다. 방화문이 모두 열려 있었던 탓이다. 2022년 경기 이천시 상가 화재 사건 때도 방화문이 열려 있었던 탓에 3층의 연기가 4층으로 번져 5명이 숨졌다.● 적발돼도 유야무야… “신고제 활성화 필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동법 시행령에 따르면 방화문을 개방해 놓을 경우 100만 원 이상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당국은 종종 점검에 나서지만 실제 불이익 조치까지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이달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는 방화문 개방 등 위반으로 과태료 100만 원이 부과됐지만 아파트 측이 “시정하겠다”고 한 뒤 부과 조치가 유예됐다. 방화문을 열어두거나 피난 계단을 장애물로 막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신고포상제도 운영 중이지만 효과는 낮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올해 포상금 관련 예산 3000만 원 중 지난달 29일까지 집행된 금액은 735만 원뿐이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부천 화재 호텔은) 방화문이 닫혔다면 피해가 크게 줄었을 것”이라며 “모든 숙박시설에 자동개폐장치 부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영국은 2022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은 주기적으로 방화문을 점검하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다. 높이 11m가 넘는 건물은 담당자가 3개월마다 방화문, 자동개폐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2017년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로 70여 명이 사망한 뒤에는 화재안전시설 기준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2021년에는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건물주에게 징역 9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약 7400만 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경찰은 26일 호텔 업주와 명의상 업주 등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형사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생존 투숙객, 목격자, 직원 등 15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마쳤다. 소방 당국은 올해 5월 해당 호텔에 대해 ‘화재 발생 시 다수의 인명 피해 우려가 있다’는 조사서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 관계자는 “숙박시설이면 통상적으로 그렇게 적는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경기 부천시 호텔 화재 당시 투숙객 2명이 에어매트에 뛰어내린 뒤 숨지자 에어매트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에어매트는 소방법상 ‘구조장비’가 아니라 ‘보조장비’로 분류돼 관련 예산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장비 전체 예산 중 보조장비 예산은 0.5%에 불과해 노후화와 부실 관리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조장비’로 분류, 예산 부족 현행 소방장비관리법에 따르면 소방장비 중 에어매트는 구조장비가 아닌 보조장비로 분류된다. 보조장비란 소방 업무 수행에 간접 또는 부수적으로 필요한 장비로 카메라와 녹음기, 지휘 텐트 등이 해당된다. 구조장비는 구조용 사다리, 유압장비, 총포류, 절단기 등이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에어매트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구조장비가 아닌 보조장비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보조장비로 분류될 경우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가 소방 관련 예산 최근 5년 치(2020∼2024년)를 분석한 결과 소방장비 구매 분야 예산은 총 1조3800억 원이었다. 그중 에어매트 등 보조 장비 예산은 72억7000만 원(0.5%)에 불과했다. 반면 구조장비의 예산은 1171억3000만 원으로 훨씬 많았다.● 노후화-관리 부실 원인으로 작용 이 예산은 장비의 구입뿐만 아니라 보수, 유지, 수리 등에 쓰인다. 예산이 부족하면 노후화와 관리 미비의 원인이 된다. 현재 소방이 쓰는 에어매트는 개당 400만∼500만 원 수준이다. 22일 부천시 화재 현장에서 사용된 에어매트는 2006년에 지급돼 사용 가능 연한(7년)을 훌쩍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까지만 쓸 수 있었던 셈. 소방당국은 “매년 관리를 받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고 당시 에어매트가 뒤집힌 것을 목격한 시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에어매트의 노후화 비율은 20%가량”이라며 “매년 심사를 하고 구조적으로 사용하는 데 큰 지장이 없어서 계속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부천 화재에서 에어매트가 논란이 되자 부랴부랴 점검에 나선 소방서들도 있다. 화재 다음 날(23일) 서울 서대문소방서는 서울시가 관리하는 서울정보광장 온라인 사이트에 ‘공기안전매트 누기 및 내부 연결고리 파손’ 결재 문서를 올렸다. 공기 주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달 6일에는 서울 서초소방서가 에어매트 고장을 신고했고, 서울 송파소방서는 지난달 25일과 5월 31일 두 번 수리를 요청했다. 경기의 한 소방서 관계자는 “구조대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에어매트 수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예산은 적은데 값싼 장비가 아니다 보니 많이 찢어지지 않는 이상 수리도 잘 안 하고 문제가 생겨도 바로 교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에어컨서 시작된 화재, 매트리스에서 커져 전문가들은 향후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예산 확보, 매트 교체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에어매트를 18년 동안 썼다는 것 자체가 소방의 예산 부족 문제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며 “소방안전교부세를 소방이 관리하도록 해 지금보다 더 많은 예산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부세는 현재 행정안전부가 관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화재가 발생한 건물이 스프링클러가 미설치된 숙박 시설이었기 때문에 진압이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화재가 시작된 810호 객실의 에어컨에서 떨어진 불똥이 매트리스에 떨어져 불길이 커지면서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매트리스에 불이 붙으며 실내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 오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방재학회에 따르면 매트리스는 TV보다 불이 확산되는 속도가 490배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린 고의당정협의회에선 구축 건물의 화재 진압에 필요한 장비 설치 등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수립 방안이 논의됐다. 부천=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경기 부천시의 한 숙박시설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최소 7명이 숨지고 중상자 3명을 포함해 11명 이상이 다쳤다. 22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39분 원미구 중동의 한 호텔 8층 객실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후 비슷한 신고가 20여 건 계속 접수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 당시 호텔에는 총 23명이 투숙 중이었으며, 불길이 처음 발생한 방에는 투숙객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직후 현장에는 소방차 46대, 소방대원 153명이 투입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호텔은 지하 2층∼지상 9층 규모로 객실은 총 64개다. 이날 오후 11시 30분 소방당국은 사망 7명, 중상 3명, 경상 8명 등 최소 18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 4명은 순천향대병원, 1명은 부천성모병원, 1명은 인천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부상자들은 순천향대병원 등 6곳으로 나누어 이송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망자 7명은 호텔 내부 복도와 계단 등에서 발견됐다.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고 소방은 밝혔다. 최종적인 인명피해 상황은 화재 현장 내부 수색, 그리고 병원으로 이송된 중상자들의 치료 경과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순식간에 연기 확산 “살려주세요” 비명… 창밖으로 뛰어내려부천화재 최소 7명 사망소방 에어매트 뒤집혀 중상자 늘어생존 투숙객 “문밖서 비명-타는 냄새”소방당국 “여러 곳서 희생자 발견”“시커먼 연기가 보이길래 나와 보니 호텔 창문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창문에는 불길과 연기가 보였다.”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날 화재 직후 호텔 건물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검은 연기로 분간이 어려운 가운데 호텔 앞에 소방차, 구급차들이 빼곡했고 호텔 1층 앞에는 에어매트가 설치됐다. 일부 투숙객들이 불길을 피해 고층 창문에서 에어매트로 뛰어내렸고,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매트가 뒤집어진 후에도 투숙객이 뛰어내려 중상자가 늘었다. 호텔 바로 맞은편 건물의 경비원은 “오후 8시 좀 전이었던 것 같은데 연기가 보이길래 나와봤더니 호텔 4, 5층 정도에서 불길이 보였다”며 “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사람 2명이 위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비명소리가 들리길래 깜짝 놀라서 봤더니 아래 에어매트가 깔려 있었다. 거기에 뛰어내린 것”이라며 “호텔 입구에서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는데 발을 접질렸는지 절뚝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주변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은 “오후 9시경 나와 보니 호텔 8층에서 불꽃이 보였다. 연기가 났다”며 “2, 3명 정도가 구급차에 실려갔고 그중 한 명은 구급대원이 다급하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불길을 피해 빠져나온 한 중국인 투숙객(40)은 “사업차 20일 한국에 들어와서 503호에 묵고 있었다”며 “문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타는 냄새가 나서 급하게 동료 2명과 서쪽 비상 통로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이어 “비자, 여권을 방에 다 두고 나왔다”며 “오후 7시 35, 36분 사이 화재 경보음은 딱 한 번 울렸다”고 당시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이날 화재 소식이 처음 알려진 이후 시간이 갈수록 인명 피해는 계속 늘어갔다. 오후 8시 50분경에는 심정지 2명, 부상 5명으로 알려졌다가 오후 9시 20분이 넘어가자 심정지 4명으로 늘었고, 오후 9시 반에는 사망 1명, 심정지 4명으로 늘었다. 이후 오후 11시 반경 소방당국은 사망 7명을 포함해 총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화재가 발생한 숙박시설은 호텔과 모텔의 중간 정도 시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천시의회 옆 블록에 있으며 주변에는 음식점과 상가 등이 밀집해 있다. 인근에는 비슷한 규모의 모텔 3곳이 운영 중이었다. 온라인 예약 사이트 등에 따면 불이 난 호텔에는 ‘흡연 가능 객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소방당국은 오후 7시 42분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오후 7시 57분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대응 2단계는 중형 재난에 발령되는데 사고 발생 지점 인근 5, 6개 소방서의 장비, 인력이 총동원된다. 최근에는 6월 24일 경기 화성 아리셀 배터리 공장 화재 당시 발령됐다. 마지막으로 대응 3단계는 2019년 고성 속초 산불,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강릉 산불 때 발령됐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소방 및 지방자치단체는 가용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구조 대원의 안전에도 각별히 유의해 달라”고 긴급 지시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보이스피싱 등 범죄 조직에 7만 개가 넘는 가상계좌를 판매하고 10억 원대의 수수료를 챙긴 일당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20일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은 가상계좌 7만2500개를 유통한 조직을 적발해 총책 A 씨(41) 등 4명을 입건하고 이 중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에 가상계좌를 판매한 대가로 11억2060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판매한 가상계좌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이나 도박 자금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이 가상계좌들을 통해 유통된 범죄 수익만 59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적발된 가상계좌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합수단에 따르면 A 씨는 조직폭력배 ‘신양관광파’ 조직원 출신 B 씨(28) 등과 함께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와 판매 계약을 체결해 ‘머천트’(가상계좌 판매업자)로 활동했다. 가상계좌는 PG사가 보유한 모(母)계좌에 연결된 ‘입금 전용 임시 계좌’다. PG사로부터 관리 권한을 부여받은 머천트는 가맹점과 이용 계약을 맺어 가상계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PG사로부터 개설 권한만 받으면 간단한 절차를 통해 가상계좌를 무한대로 만들 수 있고, 피해자가 신고해도 모계좌가 지급 정지되지 않는다. 일반계좌와 달리 개설 시 실명 확인 의무도 없다. 검거된 조직은 이를 악용해 보이스피싱 및 불법 도박 조직을 ‘가맹점’으로 모집하고 이들에게 가상계좌를 제공한 뒤 불법 자금을 관리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세탁한 자금에는 피해자 6명으로부터 편취한 1억2000만 원 상당의 보이스피싱 피해금도 포함됐다. 또 이들은 피해 신고가 접수될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을 대신해 피해자와 접촉한 뒤 사건을 무마시키고 계좌 지급정지를 회피하기도 했다. 합수단은 PG사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지급정지 신청이 접수된 뒤에도 이들에 대한 계약 해지와 가상계좌 이용 중지 등의 조처를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범죄 수익을 박탈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현금·계좌 등에 대해 추징 보전을 청구했고, 가상계좌를 매수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향후 금융당국과 함께 가상계좌 불법 유통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공유하고 가상계좌 악용 범죄에 대응할 방침이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우리나라에서 전기차를 판매 중인 주요 제조사들의 화재 매뉴얼에 잘못된 내용이 여럿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소방용 수조가 있어야 불을 끌 수 있는데 운전자 개인이 물을 뿌려 진압하라든가, 전기차 화재에 무용지물인 C급 소화기로 대응하라는 식이다. 인천 서구 전기차 화재 이후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이 같은 잘못된 매뉴얼이 오히려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에 전기차를 시판 중인 업체 중 테슬라, 현대차, 기아, 벤츠, KG모빌리티(KGM), 캐딜락, 렉서스 등 7곳은 각 사 홈페이지에 자체적으로 만든 화재 대응 매뉴얼을 공개하고 있다. 본보는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 등 전문가 6명과 함께 각 사 매뉴얼을 분석했다. 테슬라의 모델X는 매뉴얼에 ‘고압 배터리에 난 불은 물로 꺼야 합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이호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일반적인 물로 진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불을 끄려는 과정에서 운전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운전자가 직접 물을 뿌려 불을 꺼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운전자까지 다칠 수 있다는 것. 이항구 원장은 “소방 당국이 사용하는 ‘이동식 침수조’를 제외하곤 배터리를 냉각시킬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기아의 EV6, KGM의 코란도 EV 등 4개 모델은 매뉴얼에서 ‘반드시 전기화재 전용 분말 소화기를 사용해 화재를 진압하십시오’ 등으로 안내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설명이 반만 맞다는 것이다. 국내 안전기준에 따르면 화재 유형은 일반(A급), 유류(B급), 전기(C급), 주방(K급) 등 총 4가지로 분류된다. 전기 소화기로 통하는 C급 소화기는 일반 내연기관 차량 화재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전기차 배터리 화재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이영주 교수는 “보이는 불꽃을 일시적으로 잠재울 순 있어도 완전 진화는 어렵다”고 했다. 이덕환 교수는 “배터리는 밀폐돼 있고 외부 프레임도 강하게 만들어져 아무리 소화수나 소화액을 뿌려도 내부로 들어가지 못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리튬 배터리 화재에 효과가 있다는 금속화재용(D급) 소화기가 시중에 판매 중이지만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 인천 서구 화재 뒤 소방 당국은 국내외에 현재 시판 중인 소화기들은 전기차 배터리의 불을 끌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매뉴얼이 차주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소방 당국이나 국책연구기관을 통해 전기차 운전자들을 위한 공통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기차 화재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김필수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에서 불이 났다면 ‘대피 후 신고’ 원칙을 명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학훈 교수는 “전기차를 구입하면 반드시 매뉴얼을 완독해야 차량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매뉴얼은 (배터리 화재만 특정한 게 아니라) 차량 전반 화재를 가정한 것”이라며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고 소방서에 연락해 전기차 화재임을 알리고 조치를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KG모빌리티 관계자는 “소화기와 충분한 양의 물을 이용하라는 내용은 배터리 화재가 발생했을 때의 매뉴얼이 아니다”라며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 소방서 등에 연락하라는 내용도 매뉴얼에 함께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한재희 기자 hee@donga.com}

보이스 피싱, 온라인 불법도박 등 범죄 조직에 7만 개가 넘는 가상계좌를 판매하고 10억 원대 수수료를 챙긴 일당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은 가상계좌 7만2500개를 유통한 조직을 적발해 총책 A 씨(41) 등 4명을 입건하고 이 중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들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유령법인을 설립한 뒤 보이스 피싱과 온라인 불법도박 조직에 가상계좌를 판매한 대가로 11억2060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판매한 가상계좌는 보이스피싱 피해금 및 도박자금 5900억 원 등을 이체받는 데 활용된 것으로 조사됐다.합수단에 따르면 이들이 판매한 가상계좌는 검찰 적발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합수단 조사 결과, A 씨는 조직폭력배 ‘신양관광파’ 조직원 출신 B 씨(28) 등과 함께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결제대행업체(PG사)와 판매계약을 체결해 ‘머천트(가상계좌 판매업자)’로 활동했다. 가상계좌는 PG사가 보유한 모(母) 계좌에 연결된 입금 전용 임시 계좌번호로, PG사로부터 관리 권한을 부여받은 머천트는 가맹점과 이용계약을 맺어 가상계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PG사로부터 개설 권한만 받으면 간단한 절차를 통해 사실상 가상계좌를 무한대로 만들 수 있고 피해자가 신고하더라도 모 계좌가 지급 정지되지 않는다. 일반계좌와 달리 가상계좌는 개설 시 실명 확인 의무도 없다. 이번에 적발된 조직도 이를 악용해 보이스피싱 및 불법도박 조직을 가맹점으로 모집하고 이들에게 가상계좌를 제공해 범죄 조직의 불법 자금을 관리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세탁한 자금에는 피해자 6명으로부터 편취한 1억2000만 원 상당의 보이스 피싱 피해금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들은 피해 신고가 접수될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을 대신해 피해자와 접촉해 사건을 무마시키고 계좌 지급정지를 회피하는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합수단은 PG사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지급정지 신청이 접수된 뒤에도 이들에 대한 계약 해지와 가상계좌 이용 중지 등 조처를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범죄수익을 박탈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현금·계좌 등에 대해 추징보전을 청구했고 가상계좌를 매수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합수단은 향후 금융당국과 함께 가상계좌 불법유통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공유하고 가상계좌 악용 범죄에 대응할 방침이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더워진 바다에 위험 어종 주의보독성이 강한 노무라입깃해파리 출현 규모가 작년의 약 360배로 늘었다. 피서객과 어민들은 비상이 걸렸다. 맹독을 품은 바다뱀과 문어를 봤다는 신고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온난화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전기가 흐르는 회초리로 맞은 느낌이었어요.” 대학생 이은희 씨(26)는 지난달 30일 강원 고성군의 한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왼쪽 손등과 무릎, 발등을 해파리에게 쏘였다. 손과 발등이 심하게 부은 탓에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주사까지 맞았다. 이 씨는 “응급처치 방법을 몰라 더 심하게 상처가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약 2주가 지나서도 이 씨의 몸에선 붉은 반점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폭염을 피해 피서객들이 해수욕장으로 몰리면서 덩달아 해파리에게 쏘이는 피해도 크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바닷물 온도가 오르고 아열대화되며 ‘독성을 가진 바다 생물’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파리 출현율 4주 연속 증가 3일 오후 3시경 취재팀이 찾은 강원 강릉시의 한 해수욕장에선 안전요원 김모 씨(22)가 삽으로 노무라입깃해파리의 잔해를 모래사장 한편에 묻고 있었다. 김 씨의 배에는 20cm 길이의 흉터가 있었다. 그는 “일주일 전 해파리에게 쏘여 응급실을 다녀왔다”며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흉터가 남고 간지러워서 괴롭다”고 말했다. 이날 경북 경주시의 한 해수욕장에서 해파리에게 쏘인 김수경 씨(57)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몇 분 만에 쏘였다”며 “해파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일부 피서객은 전신 수영복으로 중무장을 한 채 해수욕장을 찾았다. 이날 강릉시 송정해변을 찾은 피서객 절반은 팔다리가 가려지는 긴 옷을 입었다. 전국 연안에 해파리 출현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동해안과 남해안에서 자주 발견되는 해파리는 강한 독을 가진 노무라입깃해파리로, 직경 길이 1∼2m에 달한다. 한 번 쏘이면 발열, 근육 마비, 쇼크 증상을 유발한다. 2000년 이후 매년 여름철 동중국해 북부 해역을 거쳐 우리 연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의 ‘해파리 모니터링 주간 보고’ 자료에 따르면 노무라입깃해파리 출현율은 14일 기준 56.5%를 기록했다. 출현율은 한 주간 어업인 모니터링 요원 응답자 292명 중 해파리를 관찰한 사람 수를 백분율화한 값이다. 즉 어업인 10명 중 5.7명이 이번 주 바다에서 노무라입깃해파리를 봤다는 뜻이다. 이는 4주 연속 증가한 수치다.● 노무라입깃해파리 360배 급증 지난달 기준 제주와 남해 연안에서 출현한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바다 1ha(1만 ㎡)당 108마리다. 가로세로 10m 면적마다 1마리가 넘게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0.3마리)의 약 360배다. 수과원에 따르면 이는 측정을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또 다른 강독성 해파리인 유령해파리와 커튼원양해파리, 두빛보름달해파리도 국내 바다에서 꾸준히 관측되고 있다. 해파리 쏘임 사고도 늘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수과원 조사 결과, 올 6월 전국 해수욕장 개장 이후 이달 5일까지 접수된 해파리 쏘임 사고는 총 2989건이다. 폭우 등으로 관광객이 줄어든 2023년(753건)을 제외하면 2021년 2434건, 2022년 2694건보다 많다. 전문가들은 해파리 급증이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열대성 어종인 해파리가 늘어난 건 우리나라 인근 해수면 온도뿐만 아니라 전체 바다 온도가 올라간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며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 산성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해양 생태계의 존립 자체가 위협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민호 해양생태기술연구소 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우리나라 동해 온도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고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수과원의 동해 표층 수온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에는 따뜻한 바닷물이 우리나라 남해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속도가 10년간 연평균 2.09km였다. 하지만 2020년대에는 10년간 북상하는 속도가 연평균 4.95km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이처럼 바다가 빠르게 더워지면 해파리가 급증하고 생태계도 바뀐다. 어민들도 “살길이 막막하다”는 입장이다. 17년차 어부 김명호 씨(59)는 “해파리 때문에 물고기도 잘 안 잡히거나 많이 죽어 수입이 5분의 1로 줄었다”며 “수온이 계속 높아진다면 폐사하는 물고기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맹독 바다뱀-문어도 출현… 9년 만에 물림 사고 수과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표면층 온도는 2020년대 평균 18.2도다. 2070년에 20도를 넘긴 뒤 2090년대에는 21.7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연중 내내 20도를 넘기면 ‘열대 바다’로 분류된다. 올해 제주에선 9년 만에 ‘파란선문어’에게 물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말 50대 여성이 통발에서 어획물을 꺼내던 중 파란색 고리 무늬가 선명한 문어에게 쏘였다. 여성은 손이 퉁퉁 붓자 인근 병원을 찾아 진통제 등을 처방 받았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2015년에는 제주의 한 해수욕장 갯바위에서 고둥을 잡던 30대 관광객이 이 문어에게 손가락을 물려 열흘 만에 겨우 회복했다. 파란고리문어속에 속하는 파란선문어의 독은, 청산가리보다 10배 강한 복어 독(테트로도톡신 성분)보다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과원 집계를 보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파란선문어는 총 34건이다. 고준철 수과원 아열대수산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해안에 파란선문어가 정착하는 단계로 보고 있다”고 했다. 단순 유입을 넘어 번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려갈 수 있다는 의미다. 맹독 바다뱀도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2015년 넓은띠큰바다뱀이 제주 서귀포 연안에서 처음 포획된 뒤 현재까지 32건의 바다뱀 포획 및 발견 신고가 접수됐다. 대다수는 넓은띠바다뱀이며, 좁은띠바다뱀(2건)과 바다뱀(4건) 신고도 있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연구원은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 일본 아열대 해역에서 독성이 강한 바다뱀이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현재 동아시아권 해역에서 보고된 바다뱀은 총 13종이다. 강독성인 노무라입깃해파리보다 독성이 더 강한 ‘맹독성 해파리’들이 국내 연안에 출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양 동물 중 가장 치명적인 독을 지녀 ‘바다 말벌’이란 별명이 붙은 ‘호주 상자해파리’는 호주, 필리핀 등 열대기후 바다에 주로 서식한다. 호주에서만 누적 6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것으로 보고됐다. 촉수 길이가 3m까지 뻗는 데 비해 몸집은 약 15cm로 작고 몸체가 투명해 미리 발견한 후 피하기가 어렵다.● 쏘이면 바닷물로 상처 씻은 뒤 병원으로 가야 해파리 등에게 쏘이면 바닷물로 상처 부위를 충분히 씻어야 한다. 이후 온찜질(45도 내외)로 통증을 완화시킨다. 만약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아야 한다. 신경독 계열인 파란선문어와 바다뱀 등에게 물리면 119에 신고하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맹독 생물 관련 물림·쏘임 사고가 많은 호주는 정부 차원에서 24시간 핫라인을 구축해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독성 전문가(SPI)’가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가 회복된 이후에도 또 다른 SPI가 24시간 이내 해당 처방의 적절성을 이중으로 검토하도록 했다. 국내 독성학 분야의 한 전문가는 “맹독 관련 사고가 적어 해독에 필요한 혈청이 없거나 유통기한이 만료된 경우가 많다”며 “제주·남해안 등 맹독 해양생물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 내 병원에서는 필수 해독제를 사전에 구비해둘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강릉=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선릉을 훼손한 50대 여성에 대해 경찰이 사안이 중대하고 모방 범죄가 우려된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6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성종대왕릉 봉분을 훼손한 50대 여성 이모 씨에 대해 전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14일 오전 2시 반경 강남구 삼성동의 성종대왕릉을 모종삽으로 파헤쳐 지름 10cm, 깊이 10cm의 구멍을 낸 혐의(문화 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는다. 경찰은 “유네스코 유산인 점과 최근 잇단 문화재 훼손 사건으로 모방 범죄가 우려되는 점 등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이 씨는 이날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왜 구멍을 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했다. 선릉은 조선 9대 왕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가 묻힌 왕릉으로 200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현행 문화유산법에 따르면 문화재를 훼손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왜 내 물건 훔쳐 이 도둑×아. 죽여버린다.” 지난달 8일 새벽 경기도의 한 지하철역 인근 인도. 환경미화원으로 혼자 쓰레기를 치우던 50대 여성 김영숙(가명) 씨의 손을 한 취객이 강하게 잡아채며 이렇게 말했다. 벤치에 엎드려 자던 취객 옆에 있던 맥주병과 과자 봉지를 김 씨가 치우자 대뜸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이 취객은 꼬인 혀로 침을 튀겨가며 연신 김 씨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놀란 김 씨가 “뭐 하는 짓이냐”며 손을 뿌리치자 취객은 더 흥분해 고성을 질러댔다. 마침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으로 위험을 모면했지만, 행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더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환경미화원들 이달 2일 오전 5시 10분경에는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지하보도에서 청소를 하던 6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당하는 등 환경미화원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늦은 밤이나 새벽 등 인적이 드문 시간 홀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은 탓에 범죄는 물론이고, 교통사고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의왕시에서 20년 동안 환경미화원으로 일해 온 손재선 씨(56)는 “외딴곳에서 낯선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경우도 많다”며 “혼자서 일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하기 마련”이라고 토로했다. 12일 오전 동아일보 취재팀이 손 씨와 동행하며 근무 현장을 확인한 결과 ‘안전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지 않은 으슥한 골목 안쪽까지 들어가 쓰레기를 수집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져 자칫 범죄에 노출될 수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손 씨의 등 뒤로 덤프트럭이 쌩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덤프트럭과 손 씨의 간격은 채 1m도 되지 않았다. 손 씨는 “혼자 일하는데 눈이 뒤통수에 달린 게 아니니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일하다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환경미화원은 최근 5년 새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근무 중 사망 또는 부상을 당해 산업재해가 인정된 환경미화원은 2019년 5078명, 2020년 5136명, 2021년 5627명, 2022년 5859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지난해엔 6439명까지 늘어났고, 올 1∼6월에도 3127명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 “‘2인 1조’ 근무해야 안전” 환경미화원들은 적어도 도로에서 일할 때나 인적이 드문 시간만이라도 ‘2인 1조’로 근무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인 1조로 일하면 차량이 지나갈 때 서로 “조심하라”고 알려줄 수 있고, 범죄 대응력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고용하는 공무직이나 청소용역업체 모두 예산과 비용 등을 이유로 2인 1조 근무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지자체 공무직 노조 관계자는 “환경미화원들에게 1km가 넘는 골목의 청소를 ‘혼자서 오전 중에 모두 끝내놓아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자체나 용역업체 모두 안전 비용을 추가로 부담할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근로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용역 방식의 경우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있어 2인 1조는커녕 있는 인원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먼저 나서 ‘2인 1조’를 기준으로 제시하는 한편 기준에 부합하는 업체가 낙찰되는 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명문대 학생들로 구성된 마약 연합동아리 일당이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마약 투약 ‘예행연습’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접한 영상 중에는 마약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든 가짜 뉴스들도 있었다. 이른바 ‘마약 인강(인터넷 강의)’이 10, 20대로 하여금 마약 범죄를 시작하게 만드는 ‘트리거(방아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서울남부지검 등에 따르면 최근 검거된 마약 동아리 일당은 투약에 앞서 ‘명상’이라는 제목의 환각 체험 영상을 시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함께 마약을 투약할 사람들끼리 모여서 “마약을 하면 이런 느낌일 것”이라는 예행연습을 한 것이다. 이들은 유튜브 영상 여러 개를 함께 시청하며 ‘마약 공부’도 했다. 이들이 여러 번 시청한 한 영상에는 “실로시빈과 LSD는 이른바 ‘사이키델릭’ 약물로 마약 아닌 신약”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로시빈은 환각 효과를 일으키는 버섯에 들어 있는 성분이다. LSD 역시 강력한 환각 약물이다. 실로시빈과 LSD는 모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마약류에 속한다. 이 영상을 올린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12일 기준 53만 명이 넘었다. ‘마약 체험’을 검색하면 관련 유튜브 영상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사 당국은 유튜브 동영상이 실제 마약 접촉 및 투약으로 이뤄진 흐름을 파악하고 유사한 추가 사건 가능성을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독성 없다” 등 거짓 유튜브 영상 수두룩… 마약범죄 온상 돼유튜브 보며 마약 예행연습초보자들 영상보며 호기심에 투약… “영상 보니 해보고 싶다” 등 댓글유튜브, 1020세대에 강한 영향력… “정부 특위 만들어 강력 규제” 지적전문가들은 유튜브 등 플랫폼이 마약 범죄에 들어서는 루트로 활용되는 상황에 대해 대책과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2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유튜브에 ‘실로시빈 체험’, ‘LSD 체험’ 등 키워드를 넣고 검색하자 10건이 넘는 체험 영상이 떴다. 1인칭 시점으로 몸이 허공에 떠서 걷는 듯한 영상, 빠르게 돌아가는 이미지가 반복되는 영상 등이 재생된다. 해당 영상들에는 “실제 마약하는 기분이 들어 종종 찾아온다”,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영상을 보니 한 번쯤 해보고 싶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마약 인강’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마약 범죄 ‘트리거’ 유튜브 이 같은 영상을 본 뒤 실제 마약에 손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에 검찰이 적발한 마약 동아리 회원 중 대부분은 이전에 마약 투약 경험이 없었던 초보자였다. 이들은 마약 환각 체험 영상을 모여서 시청했다. 2022년 3∼8월 이 동아리에서 활동한 한 회원은 “(운영진이 마약을) 강요하기보단 유튜브 영상 등을 보여주거나 조심스레 권유해 거부감 없이 호기심에 투약하는 회원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들은 “실로시빈, LSD는 마약이 아닌 신약”이라는 내용이 담긴 유튜브 영상 등도 공유했다. 이를 믿은 동아리 회원들은 검거된 뒤에도 “LSD 등은 중독성이 없고 새로운 영감을 얻게 해준다”고 수사 당국에 말했다. 공판검사 시절 이 사건을 포착해 수사한 이영훈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 검사는 “검증되지 않은 유튜브 영상을 공유하는 건 (동아리 내에서) 부지기수였다”면서 “관련 논문 등을 조금만 찾아보면 유튜브 영상들이 거짓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동아리 회원 중에는 마약을 구입하기 위해 6개월에 수백만 원가량을 쓴 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전문가 “정부 특위 구성해 대책 모색해야”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의 마약류 정보 유통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추세다. 1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따르면 유튜브를 비롯해 X(옛 트위터), 인터넷 게시판 등 온라인상 마약류 매매 및 알선 등 정보에 대한 시정 요구 조치는 2020년 8130건, 2021년 1만7020건, 2022년 2만6013건 등 매년 급증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는 총 2만8811건에 대해 시정 요구 조치가 이뤄졌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특히 유튜브에 큰 영향을 받는 10, 20대들이 자극적인 영상을 보고 마약 등 범죄에 빠져들고 있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컨설팅업체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 조사 결과 국내 10, 20대의 월평균 유튜브 시청 시간은 각각 49.7시간과 46.0시간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길었다. 특히 유튜브에 올라온 마약 관련 정보는 ‘해롭지 않다’, ‘중독성이 없다’는 설명이 많다. 검증되지 않은 허위 정보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유튜브를 지식채널로 오해하고, 거짓 정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곤 한다”며 “마약 관련 영상에 문제의식 없이 반복 노출되면 투약과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뒤에 숨은 유튜브는 영향력은 크지만 책임은 그만큼 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특별위원회 등을 구성해 유튜브 규제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방심위 “해외 사업자에 강제성은 떨어져” 실제 유튜브 등 해외에 서버를 둔 플랫폼 사업자는 방심위가 단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마약 관련 콘텐츠를 점검하고 필요시 국내에서라도 접속 차단을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해외 기반 사업자에겐 국내 법령 위반 사실을 고지하고 자체 단속을 요구하는 수준이라 강제성은 떨어지는 편”이라고 밝혔다. 유튜브 측은 실로시빈 등 관련 영상에 대해 “해당 영상이 안전 기준인 커뮤니티 가이드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청소년 도박 근절을 위해 하나금융그룹이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향후 3년간 100억 원대 규모의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한다고 11일 밝혔다. 하나금융그룹은 9일 서울 마포구 하나은행 사옥에서 ‘청소년 불법 도박 피해 예방 및 치유를 위한 프로젝트’ 선포식을 열었다. 최근 심각해지는 청소년 불법 도박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과 금감원·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경찰청·서울시교육청이 함께 참여했다. 최근 동아일보의 ‘온라인 도박, 교문을 넘다’ 기획 보도를 통해 심각한 실태가 알려지자 금감원 등이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금융그룹은 3년간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과 함께 100억 원 규모의 청소년 불법 도박 근절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청소년 도박 문제를 주제로 한 뮤지컬과 웹툰, 애니메이션 등 문화 콘텐츠 공동제작·배포 △버스킹 공연과 토크콘서트를 비롯한 각종 캠페인 △청소년 도박 예방 실천학교 선정 및 운영 △하나금융그룹 스포츠단 연계사업 등을 준비 중이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명동 황제’로 불렸던 1세대 원로 주먹 신상현 씨가 10일 오전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조폭 추모객’ 탓에 경찰까지 배치됐다.11일 오후 5시경 서울 송파구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에는 검은색 양복 차림의 건장한 남성 6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빈소 앞에는 화환 100여 개가 늘어섰고 분향실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 등 리본이 달린 조기(弔旗)가 놓였다가 논란 끝에 철거됐다.신 씨는 1950~1970년대 서울 명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김두한, 이정재, 시라소니(본명 이성순) 등과 함께 ‘전국구 주먹’으로 불렸다. 1932년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서 태어난 그는 1953년 대구 특무부대에서 1등 상사로 전역한 경력 때문에 ‘신상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54년 상경해 명동 중앙극장 옆을 근거지로 삼아 ‘신상사파’ 두목으로 활동했다. 은퇴 후에는 외제차 사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까지 빈소에는 15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오갔다. 시라소니의 아들 이의현 목사, 배우 이동준 씨도 빈소를 찾았다. 스스로를 ‘명동파 후계자’라고 밝힌 장례위원장 홍인수 씨(72)는 “1974년부터 고인을 보좌했다. 의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사복 경찰 50여 명을 장례식장 곳곳에 배치했다. 발인은 12일 오후 1시 30분이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