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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상황을 다들 잘 아시겠지만….” 사흘 전 세월호 외벽 절단 작업에 참여했다 숨진 민간 잠수사 이민섭 씨(44)의 투입 경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고명석 대변인이 자주 쓴 말이다. 세월호 실종자 수습이 11일째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부족한 민간 잠수사를 급하게 메우다 보니 신분까지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숨진 이 씨가 하던 수중에서의 선체 외벽 절단은 산업잠수사 자격증을 갖거나 숙련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할 수 있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이 씨는 잠수사 생활을 하긴 했지만 산업잠수사 자격증은 없었다. 게다가 형의 이름을 사칭하며 형의 주민등록증을 제시했다. 이 씨가 자신처럼 산업잠수사 자격증이 없는 형을 굳이 사칭한 이유에도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하지만 해경이 주민등록증이나 자격증만 제대로 확인했어도 이 씨는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절단 작업을 진행한 업체 ‘88수중공사’가 건네준 자료를 믿고 인력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해경 차원에서 투입 인력의 이름, 자격증 소지, 경력 등을 확인하거나 검증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것이다. 업체만 통과하면 얼마든지 가공의 인물이 돼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책본부 측은 “자격증 확인에 1주일, 신체검사 결과에 10일 정도 들여 확실한 사람만 쓰면 되겠지만, 현장 사정이 그런 여유를 가지고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변명했다. 제때 인력수급을 할 수 없는 ‘현장의 사정’ 때문에 인력 검증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다 해도 지켜야 할 절차는 지켜야 한다. 인력 관리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작업에 투입되는 사람의 신원과 능력을 검증하는 건 안전을 위해 당연히 거쳤어야 할 절차 아닌가. 특히 지난달 6일 잠수 도중 숨진 민간 잠수사 이광욱 씨도 산업잠수 관련 자격증이 없어 논란이 되자 해경은 잠수사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했으나 빈말에 그치고 말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해경과 대책본부는 업체가 넘겨주는 인력들의 신분과 자격증 소지 여부, 경력 유무를 확인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세월호 사고는 총체적 안전부실로 발생한 사고다.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안전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면 세월호 사고의 교훈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진도=이건혁·사회부 gun@donga.com}
지난달 30일 민간 잠수사 이민섭 씨(44)의 사망으로 중단됐던 전남 진도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지난달 31일 오후부터 재개됐으나 기상 악화로 1일 오후부터 다시 전면 중단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선체 절단과 관련해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사고를 일으킨 ‘산소아크 절단’ 대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대책본부는 1일 브리핑에서 세월호 침몰 지점에 있던 바지선 ‘88 128호’와 ‘언딘 리베로호’를 각각 인근 서거차도와 조도대교 쪽으로 피항시켰다고 발표했다. 사고 해역에 비가 예보된 가운데 바람이 초속 10∼14m, 파고가 최고 4m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바지선이 정박하기 어려워져 이같이 결정한 것이다. 4일까지 수중 수색과 선체 외벽 절단 작업이 중단됨에 따라 세월호 실종자 16명에 대한 수색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책본부는 문제가 된 산소아크 절단 대신 유압 그라인더나 쇠톱을 사용한 외벽 절단 방법을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세월호 수색구조 지원 장비기술 연구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유압 그라인더나 쇠톱 절단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이 역시 사고 위험이 있어 현지 상황에 맞춰 가능한 방법을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절단할 예정이었던 선미 다인실 창문 주위 가로 4.8m, 세로 1.5m 가운데 일부가 작업이 중단된 채 남아 있는 상태다.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잇따른 참사로 대한민국이 패닉(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28일 전남 장성군 삼계면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에서 난 화재로 21명이 숨졌다. 대부분 치매 노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었다. 병원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경찰은 80대 치매 환자 김모 씨(82)를 유력한 방화 용의자로 지목하고 조사하고 있다. 이날 서울에서도 아찔한 사고가 이어졌다. 오전 10시 51분경 지하철 3호선 매봉역을 출발해 도곡역으로 진입하던 오금행 전동차 안에서 불이 났다.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결과에 불만을 품은 승객 조모 씨(71)가 시너 11병과 부탄가스 4통 등 인화물질이 든 가방에 갑자기 불을 붙였다. 마침 같은 칸에 탔던 서울메트로 직원 권순중 씨(47)가 소화기를 꺼내 불을 껐고 다른 승객이 119에 신고하면서 초기 진화에 성공해 부상자는 1명에 그쳤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에 이어 2일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추돌, 26일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등 연이은 대형 재난에 국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부 박혜진 씨(40)는 “무엇보다 어디가 안전하고 어디가 위험한지 모른 채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다.장성=조종엽 jjj@donga.com / 이건혁 기자 ▼ 공중시설 점검하라 ▼백화점-콘서트장 등도 안심 못해… 방화셔터-비상구 원점서 재점검을28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 의류매장. 화재 때 불길과 연기를 차단하는 방화셔터 바로 아래에 마네킹들이 서 있었다. 식품매장 내 방화셔터 자리에는 아예 판매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은 가수들의 콘서트 무대로 인기가 많다. 23∼25일 국내 최고 인기 남성그룹 ‘엑소’의 콘서트도 여기서 열렸다. 그러나 이곳은 전문 공연장이 아니다. 한번에 최대 1만5000명의 관객이 들어차지만 객석 측 출입구는 단 세 곳이다. 개방되는 문은 폭 3m짜리 7개뿐이다. 사고가 났을 때 탈출이 쉽지 않고 2차 사고마저 우려된다. 28일 둘러본 서울 도심의 한 요양병원 복도에는 각종 재활기구와 의료장비가 쌓여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를 이용해 대피할 때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크고 화려한 디자인의 다중이용시설이 속속 등장하고 고령화로 인해 요양시설이 급증하고 있지만 안전의식이나 정부의 점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동호 인천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 안전등급제를 도입해 이용객들이 안전한 곳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김범석 bsism@donga.com·임희윤 기자 ▼ 국민들도 훈련하자 ▼재난대피훈련 대부분 대충대충… 내 안전 지키려면 실전같이 해야“불이야”를 외치고 비상벨을 누른다→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대피한다→물에 적신 담요나 수건으로 몸과 얼굴을 감싼다→연기가 많을 때는 낮은 자세로 이동한다…. 소방방재청이 밝힌 화재 발생 시 행동 요령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정도야 다 아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시뻘건 불길과 매캐한 유독가스에 한 번이라도 맞닥뜨린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종이 속 요령이 몸에 배지 않은 탓이다. 방화 설비를 제대로 갖춰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미리 내용을 알려주고 실시하는 ‘친절한 훈련’은 진짜 재난 때 목숨을 위협하는 독이 된다. 방화셔터 스프링클러의 수와 작동 여부나 따지는 형식적 점검 대신 유독가스의 움직임과 속도, 대피자의 이동 속도를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짜 훈련을 해야 한다.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로 안전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현실에서 개개인이 노력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일 수밖에 없다”며 “각자의 몸에 배지 않고서는 안전 매뉴얼이나 수칙은 절대로 지켜질 수 없다”고 말했다.이성호starsky@donga.com·신광영 기자}

“불이야!” 28일 0시 24분 전남 장성군 삼계면 소재 효실천사랑나눔(효사랑) 요양병원 별관 2층 3006호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이 병원 별관 1, 2층에는 총 78명의 환자가 있었고 대부분은 잠을 자고 있었다. 본관에 있던 간호사가 비상벨 소리를 듣고 0시 27분 소방서에 신고했다. 0시 31분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해 2분 만에 큰 불길을 잡았지만 입원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지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고령에 치매를 앓던 노인들이 수면 중 유독가스를 피하지 못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 치매 노인들 잠자다 그대로 질식 사망자 21명(남성 16명, 여성 5명)은 모두 환자 34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있던 별관 2층에서 나왔다. 소방관들이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를 간호 접수대까지 밀고 나온 뒤 환자를 업고 빠져나오길 되풀이했지만 모든 환자를 구하지는 못했다. 별관 2층에 진입해 환자들을 구출한 한 소방관은 “환자 7명은 자력으로 탈출했고, 일부는 구조됐지만 주무시고 계셨던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미처 연기를 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사히 대피해 목숨을 건진 한 환자는 “저녁에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은 사람들은 못 빠져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령 사망자는 92세의 양의묵 할아버지이고 80대 사망자도 5명에 이른다. 병원 측은 화재 당시 2층에 간호사 1명과 간호조무사 1명 등 2명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간호조무사 1명만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야간에 간호조무사 1명이 수십 명의 환자를 돌보도록 한 조치가 적절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유사시에 환자들을 모두 대피시키기에는 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이 간호조무사는 홀로 불을 끄려다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1층에 있던 환자 44명은 모두 구조됐다. 별관 1층에 있던 환자 이채규 씨(71)는 “자다가 ‘불이야’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우르르 병실을 빠져나갔다”며 “연기가 가득 차 있어서 벽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뛰어나왔다”고 말했다. 탈출한 환자 김재후 씨(70)는 “원래 병실 문은 잠겨 있다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데 문이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화재 뒤 1층 근무 간호사가 문을 연 것으로 추정된다. 15명의 병원 본관 근무자는 119구조대, 경찰과 함께 환자를 구조하고 본관 앞마당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유독가스에 질식해가는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별관 2층에 들어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병길 장성소방서 소방교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비상벨 소리에 뛰어나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별관 2층에 들어가서 환자를 데리고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고 초기 ‘일부 환자의 손이 묶여 있어 대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경찰은 감식 결과 그런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병원 측의 과실이 있는지 밝히기 위해 소방점검과 근무기록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이날 신청했다.○ 치매 환자가 유력 용의자 경찰은 별관 2층에 입원해 있던 환자 김모 씨(82)를 유력한 방화 용의자로 보고 장성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김 씨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별관 2층에 설치돼 있는 폐쇄회로(CC)TV에는 화재 3분 전 김 씨가 처음 화재가 난 3006호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 촬영돼 있었다. 경찰은 김 씨 외에는 이 시간대에 복도에 나온 환자가 없다고 밝혔다. 김 씨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뇌경색 증세로 1일 이 병원에 입원했으며 치매 증세도 있었다. CCTV 화면에서 김 씨는 담요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0시 15분경 자신의 병실인 3002호에서 나와 0시 16분 42초 화재 발생 장소인 3006호에 들어갔다. 5분 뒤인 0시 21분 30초경 3006호에서 나올 때는 빈손이었다. 그리고 약 3분 뒤인 0시 24분에 불길이 올랐다. 화재 현장에서는 라이터의 잔해가 발견됐다. 김 씨가 라이터를 갖고 들어간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3006호는 침대나 이불 등을 쌓아 놓는 창고로 쓰였다”며 “어디에 불이 붙으면서 화재가 시작된 것인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방화 혐의를 부인했다. 김 씨는 관련 전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의사 자문 결과 김 씨의 증세가 심하지 않아 혼자서도 조사를 받을 수 있는 상태인 것으로 판단하고 심적 안정을 취하게 하고 방화 여부를 규명할 방침이다.○ 일주일 전 점검에는 “이상 없음” 최근 이 병원에 대해 안전 점검이 두 차례 이뤄졌지만 ‘이상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와 점검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남도가 세월호 참사 이후 위기 관련 매뉴얼 현장 작동 여부 점검을 지시하자 병원 측은 소방설비 구비 여부 등을 자체적으로 점검한 뒤 9일 장성군에 “이상이 없다”고 보고했다. 장성군도 21일 직원들이 현지 점검을 했지만 별다른 이상을 확인하지 못했다. 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야간에 요양병원은 환자 200명이 넘으면 당직 의사를 최소 2명 배치해야 하지만 이 병원은 환자가 324명이었음에도 사고 당일 밤 당직 의사를 1명만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장성=조종엽 jjj@donga.com·권오혁광주=박성진 기자 사망자 명단 (21명·가나다순)△기세영(75) △김귀남(53·여) △김영례(74·여) △김재명(82) △김종만(51) △박기녀(88·여) △박의웅(77) △박인귀(75) △박종신(85·여) △안종길(81) △양의묵(92) △유재복(58) △이복순(76·여) △이상규(62) △이순열(72) △이순응(67) △임동운(62) △장이식(53) △정윤수(88) △최병섭(70) △홍기광(71)}

중국 북부에서 발생한 옅은 황사의 영향으로 한반도가 영동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뿌옇게 변한 가운데 28일 서울 남산 산책로를 지나던 시민이 입을 가린 채 흐린 서울 도심을 바라보고 있다. 황사는 29일에도 일부 지방에 머물겠고 낮 최고기온은 서울이 31도, 대구가 34도까지 오를 것이라고 기상청은 예보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6일 발생한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졌다. 사고 당일 신복자 씨(70·경기 파주시)는 일산백병원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로 되살아났으나 27일 오후 끝내 숨을 거뒀다. 그는 남편 이성령 씨(77)의 진폐증 치료를 위해 경기 안산의 안산산재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원래 아들들이 번갈아 가며 데려다 주는데 이날은 노부부가 단둘이 나들이하겠다며 길을 나선 뒤 변을 당한 것이다. 아들 이규윤 씨(47)는 “어머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불이 나 아버지만 빠져나왔다. 몸이 안 좋은 아버지의 충격이 너무 크다”며 괴로워했다. 중국 국적의 사망자 김탑 씨(37)는 10년간 교제한 중국인 여자친구와 9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 김수안 씨(50)는 “큰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주도에서 웨딩사진을 찍겠다며 알아보고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주말을 어머니가 있는 고양시에서 보낸 뒤 직장인 울산 소재 자동차 공장으로 돌아가려고 터미널에 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중국 연변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어머니 김 씨는 남편과 함께 2000년 한국으로 건너와 2006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2012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이번에 큰아들마저 잃는 슬픔을 겪게 됐다. 김 씨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오후 6시가 넘을 때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중국 국적이라고 차별 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사망자 신태훈 씨(56)는 울산으로 출장을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신 씨의 딸 수진 씨(25)는 “아버지는 평소 KTX를 타고 출장을 다녔는데 이날은 ‘버스가 KTX보다 4만 원 싸다’며 처음으로 버스를 타려다가 사고를 당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유가족들은 고양시 대책본부의 부실한 업무 처리에 불만을 터뜨렸다. 고양시는 27일 오전 유가족들에게 브리핑을 하는 문제로 내부 혼선을 빚었고 합동분향소를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했다가 번복하는 등 우왕좌왕했다. 유가족 측은 “밤새 대기할 장소도 마련해주지 않고 제대로 된 상황 설명조차 없다”며 항의했고, 고양시 측은 “관계 기관의 협조를 구하고 정보를 모으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일산경찰서는 발화 지점에서 작업을 했던 용접공 성모 씨(51)를 비롯해 공사 관계자와 건물 관리자 등 총 12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소방, 경찰, 가스안전공사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단은 현장 감식을 진행했다. 감식단은 화재 현장에서 그라인더(금속 절단기)에 의한 불꽃 흔적을 발견해 화재와의 연관성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용접공과 근처에 있던 배관공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양=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용접 불티가 가스 배관에 옮겨 붙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는 안전수칙을 지켰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는 “터미널 지하 1층 내부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용접 작업 중 튄 불티가 누출된 도시가스에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가스에 붙은 불이 근처에 있던 공사 자재 등으로 다시 옮겨 붙으면서 대형 화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시공업체가 용접 작업 시 화재 방지 조치를 규정대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용접 작업 시 발생하는 불티는 3000도 이상의 고온이고 풍속이 강하면 15m 이상까지 튈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통풍이나 환기가 잘 안되고 가연물이 있는 건축물 내부에서 용접을 하는 경우 불티가 날리지 않게 불티 방지 덮개와 용접 방화포 등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작업장 내 위험물 현황을 파악하고 인화성 물질에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한 뒤 소화 기구를 비치해야 한다. 안전보건공단의 기술 지침도 용접은 인화성 물질이 없는 곳에서 하고 그럴 수 없을 경우에는 가연성 물질을 미리 제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득이하게 화재 발생 우려가 있는 장소에서 작업할 때는 불이 났을 때 바로 끄고 비상경보를 울릴 수 있도록 화재 감시인을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기신 세명대 소방방재학교 교수는 “불이 붙을 수 있는 물질을 치우지 않고 용접을 했다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인태 화재보험협회 부장은 “불을 사용하는 작업을 할 때는 건물 관리자가 알 수 있도록 사전에 화기 작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가스가 왜 누출됐는지도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대목이다. 경기 일산경찰서 관계자는 “공사장 근로자들은 ‘작업 전 가스 밸브를 잠근 상태에서 공사를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가스 밸브를 제대로 잠그지 않은 것인지, 가스밸브 자체에 이상이 있던 것인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짧은 화재 시간과 규모에 비해 유독가스가 대량 발생한 것은 공사 자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CJ푸드빌은 지하 1층에 식당, 미용실, 상점 등이 입주하도록 수도 전기 등을 설치하고 내부를 구획하는 벽을 세우는 설비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내부에 설치하기 위해 비치해 놓은 인테리어용품 등이 불에 타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양시청 관계자는 “점포와 점포를 가르는 칸막이벽에 샌드위치 패널 같은 가연성 소재를 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양종합터미널 건물을 시공한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지하 1층의 마감재는 불에 잘 타지 않도록 벽과 천장은 석고보드로, 바닥은 대리석과 비슷한 폴리싱 타일 소재가 쓰였다”고 말했다. 화재와 직접 관련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고 전부터 현장에서 인화성 물질 냄새가 심하게 났다는 증언도 나왔다.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박상균 씨(42)는 “사고 5일 전부터 공사 현장 근처에서 시너나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며 “구청 민원실에 민원을 했는데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화재보험협회에 따르면 용접 및 절단 작업 중 일어난 화재는 지난해에만 1017건으로 전체 화재 건수(4만932건)의 2.5%에 이른다. 인명 및 재산 피해도 크다. 지난해 3월 전남 여수시의 한 공장에서는 분말 상태의 플라스틱을 저장하는 탱크의 보강판을 용접하던 중 불꽃이 탱크 내에 남아있던 가루에 옮겨 붙어 폭발해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다. 2008년 12월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에서도 냉장실 문틀을 수리하기 위해 용접을 하던 중 불티가 벽체 샌드위치 패널에 옮겨 붙어 7명이 사망하고 건물이 모두 타 721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조종엽 jjj@donga.com / 고양=이건혁 기자}
2월 17일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내 체육관 붕괴 사고로 딸 진솔 양(19)을 잃은 김판수 씨(53)는 부인과 함께 지인의 소개로 3개월째 부산의 한 대학병원 정신과를 찾는다. 한 달에 두 번 처방을 받고 약봉지를 100개 넘게 받아온다. 하루 세 번 3알을 먹고, 오후 11시 딸아이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던 시간에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까지 복용한다. 김 씨는 사고 후 정부로부터 정신과 치료에 대한 어떠한 안내나 지원도 받지 못했다. 27일이면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로 부산외국어대 대학생 9명과 이벤트 업체 직원 1명 등 10명이 숨진 지 100일째가 된다. 사고 당시 정부 부처(교육부)와 지자체(부산시), 부산외대 등은 “피해자 가족들이 사고로 인한 충격을 완전히 극복할 심리지원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피해자 가족들을 취재한 결과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연락이 닿은 다섯 가족 모두 “심리 지원과 관련해 어떤 도움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정신과 치료에 필요한 병원 섭외와 비용을 자비로 해결해 왔다. 고 윤체리 양(19)의 아버지 윤철웅 씨(48)는 “정부 등으로부터 정신과 치료에 대한 지원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부산시는 부산진구 인제대 백병원에 있는 재난심리지원센터를 피해자 가족들이 활용하도록 주선했지만 심리상담 외에 치료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또 지원센터가 부산에만 있어 다른 지역에 사는 피해자들은 이용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윤철웅 씨는 “거주지가 서울인데 부산까지 치료받겠다고 어떻게 가느냐”라고 했다. 고 강혜승 양(19)의 큰아버지 강모 씨는 “동생(강혜승 씨 부친)이 울산에 사는데 아무도 챙겨주지 않고 혼자 병원 알아보고 약 지어 먹는 상태”라고 전했다. 부산외대 내에 설치된 심리상담센터도 한 달여간 운영된 뒤 3월 말 문을 닫았다. 심리지원과 관련해 취재진이 문의하자 교육부는 “소방방재청 소관이라 잘 모른다”고 했고 소방방재청은 “학교 내에 상담센터를 운영했다”고 해명했다. 부산외대 재난대책본부 관계자는 “유가족들이 정신과 치료를 자비로 받고 있다는 걸 처음 들었다”고 밝혔다.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부의 허술한 심리치료 지원체계로 볼 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홀대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아내 관리하고 지원부서를 일원화하는 등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횡령 및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66·여)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올해 3월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 김 전 이사장이 검찰에 출석한 것은 처음이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최창호)는 22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김 전 이사장을 소환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김 전 이사장은 1월 교육부로부터 학교법인 재산 수백억 원을 자의적으로 관리해 손해를 끼치고 업무추진비 등의 명목으로 교비 12억61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김 전 이사장은 건국대 교직원노조와 교수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로부터도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비대위 측은 김 전 이사장이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건국대병원과 더클래식500의 점포에 김 전 이사장의 지인이자 Y갤러리 대표 정모 씨(67·여)가 주변 매장의 3분의 1 수준의 임차료만 내도록 특혜를 줬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대위는 정 씨의 미술품을 건국대 법인이 평균 거래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한 의혹도 제기했다. 김 전 이사장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은색 정장 차림에 변호사와 함께 서울동부지검을 찾은 김 전 이사장은 오후 10시 45분경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혐의를 인정하느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 전 이사장은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 다 밝혀질 것”이라고 답한 뒤 검찰청을 빠져나갔다. 검찰 관계자는 교육부 고발 후 4개월이 지나 김 전 이사장을 소환한 것에 대해 “자료가 많아 돈이 흘러간 정황을 확인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한편 비대위는 김 전 이사장의 차녀 유모 씨가 건대 스타시티 아파트를 구입할 당시 비자금이 쓰였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유 씨가 시간강사로 재직 중이던 2003년 마땅한 수입도 없이 분양가 7억8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김 전 이사장의 측근에 대한 조사 수위도 높이고 있다. 검찰은 최근 측근인 전 법인 비서실장 김모 씨와 전 법인 사무국장 정모 씨를 불러 김 전 이사장의 비리에 연루됐는지 조사했다. 건국대 측은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대출을 받아 대기자 순서를 지켜서 분양받은 것으로 법인과 상관없다”고 밝혔다.이건혁 gun@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21일 오후 서울 중구 수표동. 깔끔하게 정비된 청계천 옆으로 낡은 목조건물이 눈에 띄었다. 1951년 지어진 이른바 ‘화교(華僑) 사옥’이다. 과거 국내 거주 화교들이 지은 건물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실상은 월세 10만 원을 내면 살 수 있는 쪽방촌이다. 1층에 20여 개의 점포가, 2층에는 40여 개의 단칸방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방 한 칸의 크기는 6∼10m²이고, 화장실과 조리실은 공용이다. 올해 2월 17일 이곳에선 큰불이 났다. 누전으로 추정되는 불로 2명이 숨졌다. 건물 절반이 탔고 나머지도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28일이면 불이 난 지 100일이 되지만 여전히 복구가 되지 않은 채 화마(火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화교 사옥 안에는 아직도 불에 탄 나무나 플라스틱 등 집기가 곳곳에 방치돼 있었다. 매캐한 악취도 여전히 배어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환경이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20명가량이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1984년 이곳에 터를 잡은 정광수 씨(46)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막노동 등을 하며 부모와 자녀 등 7명의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정 씨 가족은 쪽방 5개에서 나눠 살고 있다. 불이 난 뒤 이사도 생각했지만 지금의 돈벌이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정 씨는 “냄새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아 청소도 하고 시설도 고치고 싶은데 구청에서 새로운 입주자가 생길까 봐 못하게 한다”며 한숨을 지었다. 개·보수가 어려운 것은 화교 사옥이 무허가 건물이기 때문이다. 화교 사옥 같은 노후 건물에 한 번 사고가 나면 안전에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민들은 경제적 형편 때문에 위험을 안은 채 그대로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화교 사옥에 불이 나기 6일 전인 2월 11일 중구 약수동 약수시장 내 3층짜리 건물 외벽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1층 생선가게 주인 양모 씨(65)가 머리를 다쳤다. 양 씨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그는 “위험해도 이곳의 임차료나 월세가 다른 건물의 절반밖에 안 되는데 어디로 가서 장사를 하겠냐”고 되물었다. 화교 사옥과 약수시장 상가 건물은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 사람이 살려면 긴급 보수가 필요한 상태다. 중구 측은 사고가 난 뒤 두 건물을 위험시설로 분류하고 사용 중지 명령과 거주민 퇴거 명령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중구 관계자는 “퇴거 명령 불응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려 해도 워낙 어려운 사람들이라 쉽게 집행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긴급한 보수 보강이 필요한 D등급 이하 건물은 서울에만 198곳(2013년 말 기준)이 있다. 대형 참사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입주자 대부분은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살고 있다. 화교 사옥 주민 김영복 씨(74)는 “화재도 무섭지만 빚도 무섭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임현석 ihs@donga.com·이건혁 기자}
《“안전 기능이 분산돼 일사불란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국가안전처를 공직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범 부처로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며 안전 분야 컨트롤타워 운용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밝힌 대로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해 각 부처에 흩어진 안전 관련 조직을 모두 통합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이 방안에 반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청와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지 않으면 부처 간 협업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도 정홍원 총리가 전면에 나섰지만 현장의 혼란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안전처가 얼마나 전문성을 갖고 현장을 장악할 수 있느냐가 통합의 시너지효과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사고 유형별로 주무 부처가 달랐다. 비행기 사고가 나면 국토교통부가, 선박 사고가 나면 해양수산부가 수습하는 식이었다. 여기에 안전행정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중앙과 현장이 분리되는 문제가 빚어졌다. 앞으로 국가안전처가 신설되면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한다. 육상 재난은 국가안전처 산하의 소방본부가, 해상 재난은 해양안전본부가, 항공·에너지·화학·통신 인프라 등 특수 재난에는 특수재난본부가 주무를 맡는다. 국가안전처가 분야별 재난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것이다. 그만큼 어떤 재난 상황에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국가안전처가 제 역할을 하려면 이에 걸맞은 인력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안전공동체연구센터 안영훈 센터장은 “미국 9·11테러 이후 선진국들은 모두 중앙 재난 담당 부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문제는 조직의 유기적 운영과 전문성 확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외부 공모를 통해 민간 전문가를 대폭 선발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엇보다 국가안전처장은 각종 재난의 현장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또 직급도 장관급으로 만들어 다른 부처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 대통령이 “국가안전처에 안전 관련 예산 사전협의권과 재해 예방에 관한 특별교부세 배분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부처나 지자체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예산권의 일부를 국가안전처에 떼어주겠다는 의미다. 국가안전처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임무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국가재난안전 통신망을 구축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점도 국가안전처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재 해양경찰청과 해군, 중앙 부처의 무선통신망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국가안전처 중심으로 국가통신망을 통합하겠다는 것이다.이재명 egija@donga.com·이건혁 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 도심에서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17일 오후 6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가 ‘범국민 촛불행동’ 집회를 개최해 주최 측 추산 5만 명(경찰 추산 1만1000명)이 참가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치색을 띤 집회에는 불참한다는 원칙에 따라 참가하지 않았다. 이날 집회에선 세월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둔 권혁선 씨(52)는 “울분, 분노, 미안한 감정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왔다”고 말했다. 청계광장 한쪽에서는 대통령 탄핵을 위한 서명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받기도 했다. 오후 8시가 넘자 참석자들은 보신각을 지나 종로3가, 을지로를 거쳐 서울광장까지 행진했다. 이들 중 일부는 “박근혜는 퇴진하라” “청와대로 행진하자”는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쳤고 500여 명이 종로3가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이들은 종로구 계동 방면에서 경찰에 막혔으며 경찰은 3차례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불응하자 115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미성년자 등을 제외한 113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할 예정이다. 행진은 이날 오후 10시경 마무리됐다. 원탁회의 측은 24일 같은 곳에서 다시 집회를 열 예정이다. 이날 촛불집회 장소 맞은편인 동화면세점 앞에선 경우회, 고엽제전우회 등 5000여 명(경찰 추산 1000명)이 ‘세월호 애도 분위기 악용세력 규탄 국민대회’를 오후 5시 반부터 열었다. 유가족들은 이들 집회가 잘잘못을 가려내고 사건의 신속한 해결을 촉구한다는 점에서는 반가워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변질되는 것은 우려했다. 한 유가족은 “이럴 때 국가가 탄탄해야 하는데, 이걸 기회로 자기 뜻을 주장하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8일 오후에도 서울 시내를 행진하던 일부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자”고 선동해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추모 청년 모임’ 회원 1명이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현장에서 연행됐다. 경찰은 시위대가 신고한 행진로를 벗어나자 길목을 차단하고 이들 중 일부를 연행했다.이건혁 gun@donga.com·임현석 / 안산=홍정수 기자}
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를 낸 교통경찰관이 의식을 잃은 운전자를 방치하고 도망쳤다가 자수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경찰관들의 음주운전 등 부적절한 행동이 잇따라 이성한 경찰청장이 파면, 해임 등 중징계를 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17일 오전 4시 44분경 부산 기장군 부울고속도로 일광 나들목 진입로 인근에서 해운대경찰서 소속 김모 순경(34)이 모닝을 몰다가 앞서 달리던 정모 씨(44)의 코란도 차량을 들이받았다. 사고 충격으로 정 씨가 정신을 잃어 차량이 고속도로의 3차로에 멈춰 섰다. 그러나 김 순경이 구호조치 없이 그대로 차를 몰고 달아나 정 씨는 차와 함께 20분 넘게 고속도로에 방치됐다. 경찰은 뺑소니를 친 용의자가 김 순경임을 확인하고 검거에 나섰으나 김 순경은 행방을 감췄다. 김 순경은 사고 발생 37시간 만인 18일 오후 5시경 가족을 통해 자수 의사를 밝힌 뒤 부산 기장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김 순경은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가 났는데 세월호 사고 추모 상황에서 이런 사고를 내면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 순경이 음주운전을 했을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채혈 검사에서는 음주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경찰은 코란도 차량 운전자 정 씨가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112%로 만취 상태였던 것을 확인하고 면허취소 처분을 내릴 예정이다.부산=조용휘 silent@donga.com / 이건혁 기자}

서울 최고기온이 27.1도까지 오르는 등 전국의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던 18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분수대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기상청은 19일에는 대구 31도, 청주 전주 30도, 대전 광주 29도 등 일부 지역이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씨를 보이겠다고 예보했다. 서울은 18일과 비슷한 27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선박 운항관리에 대한 감독은 강화됐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땜질식 응급처방 수준에 머물고 있어 승객, 선사, 행정당국 사이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 14일 오전 8시경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바로 세월호가 출항했던 곳이다. 백령도행 대형 여객선 하모니플라워호(2071t)를 타려는 승객들에 대한 신분증 대조, 탑승권 발권, 수하물 통관 절차가 까다롭게 진행됐다. 탑승권 창구에서는 얼굴과 주민등록증을 일일이 비교했고, 전산입력을 통해 승객들의 신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승객들이 직접 쓴 기록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허위나 부실 기재를 해도 손쓸 방도가 없었다. 맞이방에서는 승객의 수하물 기준(1인당 15kg)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수시로 흘러나왔고, 탑승구 길목에서는 승객 손에 들린 수하물을 저울대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았다. 하지만 이런 기준을 수긍 못하는 승객과 선사 직원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는가 하면 개찰구에서의 신분 대조 작업 과정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승객들은 승선권과 주민등록증을 들고 개찰구를 통과해야 했지만 직원 4명이 수백 명의 얼굴을 일일이 대조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화물 선적을 둘러싼 승객들과의 마찰은 심각했다. 해운당국이 임의대로 수하물 반입기준을 1인당 15kg으로 정하면서 기준을 초과한 화물처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섬 주민들은 생활필수품과 어류 등을 30∼40kg 정도 들고 타더라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백령도를 자주 왕래한다는 김선행 씨(55)는 “그동안 발권 절차가 수월했는데, 갑자기 승객 편의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엄격한 잣대로 규제를 하니 적응이 잘 안 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승객들은 기준을 넘는 화물을 별도로 탁송해야 하지만 여객선 내에 이를 처리할 공간이 없어 화물차 2, 3대를 투입해 임시로 수송하고 있었다. 세월호에서 지적됐던 허술한 고박(화물 고정 작업)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차량에 화물을 담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선사 관계자는 “수하물을 편하게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를 여객선에 적재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1년 뒤 정기점검 때나 가능하다”며 답답해했다. 한국해운조합의 출항 전 현장점검도 꼼꼼하게 진행되긴 했지만 예전과 크게 달라질 수 없는 구조였다. 조합 관계자는 “출항 직전에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만재흘수선(화물을 실을 수 있는 최대한도의 한계선) 적정성과 기본 장비의 정상 작동 여부”라며 “3∼4시간 이상 소요되는 16개 항목을 전부 검사하면 여객선이 출항할 수 없을뿐더러 이를 수행할 직원도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전국 여객터미널에서는 인천항과 유사하게 과적을 막으려는 노력을 보이곤 있지만 지속가능한 시스템이라기보다는 ‘눈 가리고 아웅’이란 비난이 많다. 박남춘 의원(새정치민주연합·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은 “여객선 과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면 공항과 유사한 화물 취급 시설을 먼저 갖추고 표준화된 기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이것만은 꼭 지켜주세요배에 타는 승객들이 구명조끼 입는 법을 설명하거나 비상시 행동요령 같은 안내 방송을 할 때 거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구명조끼도 안 입은 아이들이 배에서 뛰어다니거나 배의 난간에 매달려도 부모가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성욱(52·한강 유람선 여객운항팀 차장)}

“택시 타는 사람들, 열에 아홉은 ‘아저씨, 빨리 가주세요’라고 얘기해요. 그런 얘길 매일 듣는다고 생각해보세요.” 5년째 택시 운전을 하는 김한배 씨(53)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시내 도로가 꽉 막히면 손님들은 “버스전용차로로 가 달라” “저 앞차는 끼어들기도 잘하는데…”라고 채근한다. 끼어들기와 꼬리물기, 과속과 무리한 차선변경을 서슴없이 하는 택시들. 대도시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김 씨는 “빨리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다 보니 일부 택시기사들이 불법 유턴부터 과속까지 위험한 운전에 내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정류장에선 시민들과 버스가 엉키기 일쑤다. 구파발에서 광화문을 지나 강남으로 가는 한 시내버스 운전사는 “버스가 여러 대 몰리면 2차로에서 앞 차가 빠지길 기다릴 때가 있는데 시민들이 버스들 사이로 나와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버스는 뒤가 잘 안 보이는데 그렇게 이동하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했다. 일산에서 서울역으로 출퇴근하는 이기열 씨(39)는 “버스가 한 번에 여러 대 올 땐 도로로 뛰어들어 먼저 타려고 애쓰는 편”이라며 “40여 분을 차 안에서 서서 오지 않으려면 위험해도 그게 낫다”고 말했다. 고속도로를 오가는 광역버스는 입석이 불법이지만 여전히 입석 승객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에서 과속으로 달리다 급정거할 때마다 승객들은 다리에 힘을 줘 버티며 출퇴근 시간을 견딘다. 광화문에서 일산으로 가는 한 광역버스 운전사는 “사람들이 몰리는데 안 태울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200여 명이 부상한 2일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 사고 이후에도 지하철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8일부터 13일까지는 매일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철 역사 내에서 화재 등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신속하게 밖으로 대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역사들이 있다. 지난해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현황자료를 보면 지하철 1∼9호선 역사 271곳 중 80곳(29.5%)이 국토교통부가 정한 대피 소요시간(4분 이내 승강장 벗어나기, 6분 이내 외부로 대피)을 초과했다. 그중 지하철 8호선 산성역은 사정이 심각하다. 13일 오후 기자가 시간을 재보니 승강장이 있는 지하 3층에서 탑승 시간만 1분 20초가 걸리는 긴 에스컬레이터를 2개 거쳐야 겨우 매표소에 도착했다. 실제 도시철도공사 조사에서도 이 역은 외부 출입구까지 탈출하는 데 13분 6초가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대피시간 기준에 맞춰 구조변경 등을 하려면 수백억 원의 예산이 들기 때문에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강은지 kej09@donga.com·장선희 기자이것만은 꼭 지켜주세요차내 안전사고가 가장 많습니다. 운전 중 손잡이나 기둥을 잡지 않아 넘어지는 승객이 많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에 빠져 두 손 놓고 서 있는 손님을 보면 운전자는 크게 불안감을 느낍니다. 또 노인이나 어린이에 대한 자리 양보도 안전입니다. ―이수영(51·서울 정릉~개포동 143번 버스 운전사)}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대표적 다중이용시설인 지하상가는 화재나 정전 시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하지만 기본적인 안전 수칙도 지키지 않는 사례가 허다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지하상가는 지하철 3, 7, 9호선 고속터미널역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연결돼 있어 하루 유동 인구가 20만∼30만 명에 달하는 대표적인 지하상가. 13일 이곳을 찾아 휴대용 비상손전등의 비치 상태를 확인해 봤다. 지하상가 특성상 여러 이유로 정전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져 앞다퉈 출구를 찾다가 서로 충돌하거나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그래서 비상상황 시 ‘생명줄’ 역할을 하는 손전등은 필수 장비로 비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손전등은 가게에서 진열된 상품 사이에 가려 쉽게 찾기가 어려웠다. 반포지하상가를 자주 찾는다는 장모 씨(31)는 “휴대용 비상손전등이나 소화기를 거의 보지 못해 있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하상가에서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 유도등과 함께 소리로 피난 방향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또 일부 지하공간에는 천장을 강화유리로 만들어 외부에서 빛이 들어올 수 있게 한 곳도 있다. 소화기도 마찬가지였다. 소화기 앞에 물건을 잔뜩 쌓아둬 소화기가 보이지 않는 곳이 많았다. 지하상가는 화재 발생 시 진열된 의류나 인테리어 소품 등에 불이 쉽게 옮겨 붙어 초기 진화가 중요한데도 상인들의 진열 욕심에 소화기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또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방화 셔터가 내려오는 곳에 물건이 놓여 있는 경우도 보였다. 반포지하상가를 관리하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상인들에게 ‘재난 발생 시 막대한 재산피해와 인명사고 발생 우려가 있어 소방시설 주변에는 물건을 쌓아두지 말라’고 사진과 함께 공고문까지 붙였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각종 시험 준비생이 모여드는 서울 노량진 일대 학원가도 화재나 갑작스러운 위험 사태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14일 방문한 이곳 학원의 교실에는 수강생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입구에서 교실로 가는 통로는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 버거울 정도로 비좁았다. 별도의 비상구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따로 비상구가 있어도 학원에서 사용하는 집기나 폐가전제품을 쌓아 둬 비상시 탈출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일부 학원은 비상구에 ‘학원 뒷문 출입금지’란 경고 문구를 써 붙여 놓고 아예 잠가 놓기도 했다. 또 소화기 및 비상조명등이 있다고 표시된 곳에는 해당 장비가 없었다. 대부분의 학원에서는 화재 시 대처 요령을 알려주는 공고문을 붙여 놓기도 했지만, 미로 형태의 건물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 있는 상황에선 무용지물처럼 보였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이것만은 꼭 지켜주세요다중이용시설 화재 시 건물 구조를 잘 아는 관리자나 시민이 적극적으로 리더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비상구 한 곳으로 몰리다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비상구로 유도하거나 다른 탈출 수단을 이용하도록 정리해줄 수 있습니다.―신동은(46·서울 종로소방서 재난조사관) }

“초 단위 싸움이다.” 응급 상황에서 생존 및 구조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5분.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간을 넘기면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구조를 받는 사람의 생존 확률도 급격히 떨어진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골든타임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현장에서 골든타임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13일 오후 7시 59분. 서울 영등포소방서에 마포대교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남자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골든타임을 적용하면 오후 8시 4분까지 마포대교에 도착해야 하는 상황. 기자가 119구조대의 차량에 동승해 봤다.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영등포소방서에서 영등포역 교차로 방향으로 우회전하기 전 횡단보도. 행인들은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도 태연히 길을 건넜다. 사람들이 모두 길을 건너기를 기다린 시간 18초. 오후 8시 00분 23초 영등포 교차로. 좌회전하려 신호대기 중인 차량 11대가 1, 2차로를 내주지 않았다. 소방차는 우회전 차로의 차량 5대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가 3차로를 통해 좌회전했다. 1분 47초가 지났다. 좌회전하자마자 맞닥뜨린 횡단보도도 지나기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횡단보도와는 달리 교통경찰관이 교통 통제를 했다. 하지만 행인들은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 오후 8시 2분 22초가 되어서야 구조 차량은 영등포 교차로를 빠져나왔다. 약 347m의 거리를 지나오는 데 3분 19초를 허비했다. 결국 구조대는 출동한 지 8분이 지나서야 마포대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살 기도자가 그냥 자리를 뜬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좁은 골목길 불법주차도 신속한 구조를 방해하는 요소다. 고시원과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인 서울 관악구 신림9동.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14일 오전 10시경 주택들 앞뒤 사이에 확보된 폭 약 3.5m의 이면도로에 많은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골목길 곳곳은 차가 진입할 수 없는 주차장이 돼 있었다. 불이 났을 때 출동하는 소방 펌프차의 폭이 약 2.5m인 것을 감안하면 평소에도 소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도로다. 2012년 10월 31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극장 뒤편에서 불길이 솟았을 때도 소방관 184명과 차량 54대가 나섰지만 불길은 1시간 반이 지나서야 잡혔다. 식당과 상패 제작·판매소 등 17곳을 태운 뒤였다. 골목길이 좁고 시설물이 많아 소방차들이 제대로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이것만은 꼭 지켜주세요사람들이 구급차가 ‘골든타임’을 지키도록 협조해야 하는 건 알지만, 잘 안 지킵니다. 운전자들은 구급차가 지나가면 반드시 양보해야 합니다. 골목길처럼 좁은 길에 불법 주차를 하면 위급 시 구급차가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김미호(48·서울 영등포소방서 119구조대 팀장) 》}
해경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정부가 ‘국가안전처’를 신설해 재난안전 관련 기관을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1953년 12월 내무부 치안국 소속 해양경찰대로 출범한 이래 탄탄대로를 걸어온 해경도 변화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교훈 삼아 그동안 누적된 해경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해경의 개편 방향은 신설될 국가안전처와 연결돼 있다. 국가안전처가 안전행정부의 재난안전 조직인 안전관리본부, 소방방재청, 해경이 통합돼 구성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해 해경에 대한 조직개편과 역할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다. 일각에서는 해경이 현재 직원 1만1600명, 연간 예산 1조1000억 원, 경비함 303척과 항공기 24대 등을 보유한 거대 조직이라며 해체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는 해경이 해상구조기관으로서 역할에 충실하도록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해양대 이은상 교수(해양경찰학)는 “안전관리와 해난사고 구조에 문제를 드러낸 만큼 해경의 고유 업무(안전 환경 방위 교통 보안)들을 재인식하고 이를 위한 역량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해양수산부로부터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해경이 해수부를 감시하거나 보조하는 등 역할 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해경의 수사권을 육상 경찰로 이관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아시아퍼시픽 해양문화연구원장)는 “해경이 재난안전 구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수사권을 경찰청으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선 현재 시점에서 해경을 흔드는 것은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양대 유재원 교수(행정학)는 현재 논의되는 국가안전처, 해양방재청 신설 등에 대해 ‘감정적인 대응’이라며 “해경 각 부서가 권한을 갖고 업무를 처리하고, 거기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지우면 될 일이다. 자정(自淨)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해경은 뒤늦게 재난 예방과 관리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해난특수구조대를 신설해 그동안 소홀히 했던 해양 구조 업무를 강화하고, 잠수 구조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2년간 전문교육을 받은 재난대응 전문인력 양성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해경 관계자는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재난 발생 시 매뉴얼도 현실에 맞게 제대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인천=이건혁 gun@donga.com·황금천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들(단원고 박수현 군)을 잃은 박종대 씨는 5일 경기 안산시 합동분향소에서 자식의 영정 사진을 떼어냈다. 이번 사고에서 해양경찰청의 초기 대응이 과연 적절했는지, 사건 당일 왜 적극적으로 생존자 구조를 안 했는지 철저한 수사를 당국에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박 씨는 “해경의 초기 대응과 구조 과정의 부실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배를 침몰시킨 것은 선원들의 잘못이지만 배 안에 있던 생명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데엔 해경의 책임이 크다. 승객 300여 명을 살릴 몇 차례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해경은 이를 놓쳤다. 해경의 초기 대응 부실과 원인을 들여다봤다. ○ 구조의 ABC(기본)만 이뤄졌더라도 첫 신고가 들어왔을 때부터 해경은 허둥댔다. 당초 해경은 사고가 난 뒤 지난달 16일 오전 8시 58분경 세월호에서 숨진 단원고 최덕하 군(17)이 휴대전화로 구조를 요청해 사고 사실을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보다 4분 앞선 8시 54분부터 최 군과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 해경 간 3자 대화가 시작됐다. 119 대원이 이 대화에 앞서 해경에 31초간 신고 내용을 전달했지만 해경은 최 군이 이미 8시 52분부터 119 대원과 통화했던 내용을 반복해 묻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해경은 이미 최 군과 통화가 끝난 시각에 최초 신고를 접수했다고 발표하는 꼼수도 부렸다. 경비정의 출동 과정도 문제다. 신고를 접수한 해경은 당시 사고 해역에서 12마일(약 18km) 떨어진 지점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123정 등에 출동명령을 내렸지만 이 경비정은 해역에 도착하는 데 걸린 32분 동안 세월호의 침몰 상태 등을 묻는 교신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123정이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과정에서 세월호와 교신하며 선실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인원 등을 미리 파악한 뒤 갑판 등으로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면 더 많은 승객을 구조할 수 있었다. 이는 엉터리 구조 과정으로 연결됐다. 현장에 도착한 123정은 엉뚱하게도 일반 승객이 아닌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을 가장 먼저 구조했다. 또 123정에 승선한 경찰관 14명이 출동 과정에서 서로 역할을 분담했다면 해상구조는 물론이고 선체 진입도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기 구조도 부실했지만 사건 이후 대응에서도 연신 헛발질을 했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달 16일 청해진해운에 “대형 크레인을 갖춘 샐비지 선박을 동원해 신속히 인양한 뒤 결과를 해경에 통보해 달라”는 황당한 공문을 발송했다. 또 해경은 6일 수색작업 도중 숨진 민간잠수사 이광욱 씨(53)의 사고 직후 이 씨를 “언딘 소속 잠수사”라고 책임을 떠넘겼지만 사실은 해경이 이 씨의 모집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인명구조협회 이원태 서울지회장은 11일 본보 인터뷰에서 “해양경찰청 해상안전과 박모 경감이 이 씨가 숨지기 이틀 전 언딘 관계자와 함께 이 씨를 섭외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경감도 “(민간잠수사를 모으기 위해) 4일 팽목항에 있는 민간다이버지원센터 천막에 갔다”고 인정했다.○ 재난구조 훈련 외면한 탓 해경이 이처럼 무능한 모습을 보인 근본적 원인은 그동안 여객선 침몰사고 등에 대비한 재난구조 훈련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해경은 현재 정부 부처 17개 외청 가운데 인력(1만1600명)과 연간 예산(1조1000억 원) 규모가 4번째로 큰 조직이다. 경비함정 303척과 항공기 24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국 17개 해양경찰서를 나눠 관할하는 4개 지방해양경찰청은 각각 매년 1차례씩 합동전술훈련을 할 뿐이다. 전술훈련의 대부분은 불법조업 중국어선 나포에 필요한 진압작전일 뿐 재난 대응 및 수색구조 훈련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각종 해상사고에 대비한 전문 구조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잠수가 가능한 해경의 구조 전담인력은 전체 232명에 불과하다. 2006년 지방해양경찰청을 신설한 뒤 경찰관이 2200여 명이나 급증했지만 구조인력은 8.7%에 불과한 191명이 늘었을 뿐이다. 올해 관련 예산은 208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1.86%에 그치고 있다. 사고 당시 심해 잠수사가 포함된 해경 특수구조단은 자체 헬기가 없어 김해와 목포 공항을 거쳐 현장에 가는 바람에 오후 1시 40분에야 도착했다.○ 조직 설치 법률 근거도 없어 현재 안전행정부 산하 외청인 해경은 경찰(경찰법), 검찰(검찰청법)과 달리 대통령령에 의해 설치 운영되고 있다. 구조활동 등 전문화된 업무수행이 필요한 기관임에도 해경 설치의 법률적 근거조차 없다 보니 전문성을 키우기는커녕 경찰 고위간부 출신들의 인사이동 자리 중 하나로 인식돼 왔다. 경찰공무원법상 해경청장은 현직 치안총감만 부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해양 관련 경력을 쌓은 경찰이 퇴직하면 원천적으로 해경청장이 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해경 출신 해경청장은 김석균 현 청장과 2006년 8대 권동욱 전 청장 단 2명뿐이다. 감사원은 지난달 29일부터 해경 감사에 들어갔다. 검찰도 해경 구조작업의 문제점을 수사할 예정이다. 감사와 수사 결과가 나오면 세월호 참사에서 낙제 수준에 가까운 위기대응 능력을 보여준 해상치안기관인 해경 조직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인천=황금천 kchwang@donga.com·이건혁진도=이은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