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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판매업자 연모 씨(33)는 2012년 6월 고급 수입차인 ‘페라리 360 모데나’ 한 대를 구입했다. 2004년식 중고차이지만 신차 가격이 2억8000만 원에 이르는 명품 슈퍼카였다. 연 씨는 초등학교 동창 모임 때 자랑스럽게 페라리를 몰고 나갔다. 그는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자신의 페라리로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내자는 것. 고급 수입차의 수리비가 비싼 점을 악용한 보험 사기였다. 이에 동의한 친구 김모(33), 심모 씨(33·이상 회사원)는 2012년 10월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연 씨의 페라리와 접촉사고가 난 것처럼 꾸몄다. 자동차 공업소는 원래 페라리에 있던 가벼운 흠집을 사고 흔적으로 여기고 3700만 원의 견적서를 만들었다. 연 씨는 이를 보험사에 낸 뒤 미수선 수리비 800만 원을 받아냈다. 미수선 수리비는 보험사들이 외제차 사고 때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올 것을 우려해 피해자와 협의해 현금으로 보상하는 것. 연 씨 일행은 같은 해 11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서 교통사고를 조작했다. 보험사가 진위를 의심하며 수리비 지급을 거부하자 슈퍼카 중 하나인 벤틀리를 빌려 타면서 보험사를 압박했다. 벤틀리의 하루 렌트 비용은 160만 원. 결국 보험사는 미수선 수리비와 렌트비 등 3500여만 원을 뜯겼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1일 사기 혐의로 연 씨를 구속하고 김 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중고차 판매업자 연모 씨(33)는 2012년 6월 고급 수입차인 '페라리 360 모데나' 한 대를 구입했다. 2004년 식 중고차이지만 신차 가격이 2억8000만 원에 이르는 명품 슈퍼카였다. 연 씨는 초등학교 동참 모임 때 자랑스럽게 페라리를 몰고 나갔다. 그는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자신의 페라리로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내자는 것. 고급 수입차의 수리비가 비싼 점을 악용한 보험사기였다. 이에 동의한 친구 김모, 심모 씨(33·이상 회사원)는 2012년 10월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연 씨의 페라리와 접촉사고가 난 것처럼 꾸몄다. 자동차 공업소는 원래 페라리에 있던 가벼운 흠집을 사고 흔적으로 여기고 3700만 원의 견적서를 만들었다. 연 씨는 이를 보험사에 낸 뒤 미수선 수리비 800만 원을 받아냈다. 미수선 수리비는 보험사들이 외제차 사고 때 수리비용이 많이 나올 것을 우려해 피해자와 협의해 현금으로 보상하는 것. 연 씨 일행은 같은 해 11월 동대문구 답십리동에서 교통사고를 조작했다. 보험사가 진위를 의심하며 수리비 지급을 거부하자 슈퍼카 중의 하나인 벤틀리를 빌려 타면서 보험사를 압박했다. 벤틀리의 하루 렌트비용은 160만 원. 결국 보험사는 미수선 수리비와 렌트비 등 3500여만 원을 뜯겼다. 이들의 범행은 사고 관련자들이 모두 동갑내기인 점을 의심한 보험사의 신고로 꼬리가 잡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1일 사기 혐의로 연 씨를 구속하고 김 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의리(義理)가 대세다. 영화배우 김보성 씨가 수년간 고집스럽게 강조하던 의리가 이제는 누구나 즐겨 쓰는 유행어가 됐다. 한국의 유행어를 예습했는지 모르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4일 서울대 강연 때 두 나라 관계를 ‘의리’로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의리로 주목받는 곳이 또 있다.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김형식 서울시의원(44·구속)과 팽모 씨(44·구속)의 관계다. 경찰 조사에서 팽 씨는 “10년 친구인 김 의원의 부탁을 받아 송모 씨(67)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앞서 팽 씨는 2004년 둘째 형의 소개로 김 의원을 만났다. 동갑내기인 둘은 친구가 됐다. 자주 만나 어울리며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남다른 친구 사이가 되면서 돈이 오가기 시작했다. 2008년 팽 씨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 김 의원은 생계가 어려운 친구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100만 원 안팎의 용돈을 쥐여줬다. 이렇게 건넨 돈이 경찰 조사 결과 1300만 원에 이른다. 이때만 해도 팽 씨는 “형식이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2년 12월 김 의원은 팽 씨에게 심각한 고민을 털어놨다. “송 씨에게 돈을 5억 원 정도 빌렸는데 빨리 갚으라고 압박한다”는 것. 그리고 끔찍한 일을 부탁했다. 이후 김 의원은 망설이는 팽 씨에게 “(살인) 왜 안 해?” “이번이 마지막이다. 꼭 실행해라”라며 세뇌하듯 독촉도 했다. 결국 팽 씨는 자신을 도와준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의 비뚤어진 의리는 범행 이후에 맨얼굴을 드러낸다. 김 의원은 5월 말 팽 씨가 중국 선양(瀋陽)에서 체포되자 중국 구치소에 있는 팽 씨에게 “죽어버리든지 탈옥하라”고 했다. 실제로 팽 씨는 구치소에서 4∼5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팽 씨가 잘못된 의리를 끊은 계기는 6월 24일 한국에 들어왔을 때다. 그는 공항에서 경찰이 보여준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펑펑 울었다. ‘사실대로 다 이야기하고… 왜 당신이 혼자 다 안고 가려고 해… 죽지 마’라는 아내의 부탁이었다. 팽 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한 와중에도 김 의원은 여전히 의리를 강조하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중이던 김 의원은 팽 씨에게 ‘정말 미안하다. 사과를 받아줄지 모르겠다’고 달래며 ‘무조건 묵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팽 씨에 대해 “의리는 있으나 깡패”라고 묘사했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는다. 김 의원이 생각한 의리와 팽 씨가 생각한 의리 사이에 너무 큰 차이가 느껴진다.박성진·사회부 psjin@donga.com}
“속옷까지 벗은 남자가 계속 소리를 쳐요.” 7일 오후 8시경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로 이런 신고가 들어왔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여의도 한강공원. 여름밤 더위를 피해 한강을 찾은 시민들 사이에서 30대 남성 A 씨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손등에 핏줄이 서도록 깍지 낀 두 손을 머리 위로 흔들고 있었다. A 씨는 “유병언을 빨리 잡게 해주세요” “하느님이 벌을 내릴 거예요” “미국 만세” 등의 말들을 반복해 중얼거렸다. 출동한 강정모 경위(42)는 서둘러 경찰차에 있던 비옷으로 나체 상태인 A 씨를 감싸 인근 지구대로 데려갔다. 벗어 놓은 옷은 기도하던 자리에서 60여 m 떨어진 잔디밭 위에서 발견했다. A 씨는 지구대에 와서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참을 기도했다. 20여 분간의 대화 끝에 집 주소를 알아낸 경찰이 A 씨의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오후 9시 30분경 도착한 아버지의 표정은 담담했다. 아버지를 통해 알고 보니 A 씨는 정신지체 3급이었다. 기도하는 법은 어렸을 때부터 다닌 정신병원에서 배운 것이었다. A 씨는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인근 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김형식이 (범행에 연루된 게) 맞지?” 5월 중순 중국에 도피 중이던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 용의자 팽모 씨(44)에게 후배 이모 씨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팽 씨의 아내 A 씨에게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자꾸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이 씨는 TV에서 팽 씨의 뒷모습이 잡힌 폐쇄회로(CC)TV를 보고 김 의원과의 관계를 직감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아니다. 알면 너도 다친다”였다. 지난달 24일 한국으로 송환돼 구속 수감된 팽 씨는 “김 의원이 부탁해 송 씨를 살해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팽 씨가 중국에서 보낸 메시지들은 이와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팽 씨는 “중국에서 공안에 잡히고 나서도 한동안은 내가 다 짊어지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는 중국에서 대여섯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팽 씨가 혼자 범행 책임을 떠안으려 한 정황은 3월 20일 오후 11시 김 의원에게 ‘미안하다. 친구를 이용해서…’라고 카톡 메시지를 보낸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팽 씨는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 6개를 연달아 보냈지만 김 의원은 답하지 않았다. 팽 씨는 다른 지인에게도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그는 경찰 조사에서 “3월 20일 오후 5시경 아는 후배가 ‘경찰이 형을 찾고 있다’고 알려와 김 의원이 추적당할까 봐 자발적으로 그런 내용을 보냈다”고 진술했다. 한편 경찰은 2012년 500억 원대의 호남고속철도 궤도공사에 레일 부품 납품업체로 선정 된 AVT사가 팽 씨 부인에게 보낸 돈이 다시 제3자 계좌로 흘러간 것을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2012년 4월 4일 팽 씨 부인 계좌에 AVT사 대표 이모 씨 명의로 1300만 원이 입금됐다. 이 돈은 곧바로 팽 씨와 동업관계에 있던 B 씨의 계좌로 이체됐다. 이에 대해 팽 씨는 “당시 김 의원에게 15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며칠 뒤 이 씨 명의로 입금됐다. 이 돈은 부모님 집수리 등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데 썼다”고 밝혔다. 이는 김 의원이 AVT사의 돈으로 팽 씨에게 선심을 쓰면서 훗날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팽 씨 부인 계좌로 이체하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다. 입금된 1300만 원은 팽 씨가 김 의원에게 빚진 돈 7000만 원 중 일부다. 서울남부지검은 김 의원의 살인교사 동기를 입증하는 데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7일 “경찰에게 넘겨받은 증거자료 분석을 마쳤고 보강수사를 하고 있다”며 “건물 용도변경 관련 로비 의혹 등 살인교사 동기 부분을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팽 씨의 구속 만기일(12일)까지 살인교사 동기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구속 기간을 연장(최장 10일)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김형식 서울시의원(44·구속)의 살인교사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하고 있는 서울남부지검이 피살된 송모 씨(67) 가족으로부터 송 씨의 금전출납 장부 원본을 제출받은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이 장부엔 송 씨가 1992년부터 매일 만났던 사람의 이름과 지출 내용이 손글씨로 적혀 있다. 장부에는 정치인과 공무원 10여 명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부엔 김 의원의 이름이 20여 회 들어 있고 차용증에 적힌 금액 5억2000만 원과는 별도로 7000만 원가량을 술값 등으로 쓴 것으로 적혀 있다. 평소 김 의원이 살인 피의자 팽모 씨(44·구속)에게 “(송 씨에게) 6억 원 정도 받았다”고 말한 것을 봤을 때 이를 다 포함해 6억 원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김형식 서울시의원(44)의 굳게 닫힌 입술이 순간 더 앙다물어졌다. “유치장에서 (팽모 씨에게) 쪽지를 왜 보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들은 직후였다. 3일 오후 2시 서울 강서경찰서 입구에 김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 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으로 송치되던 차였다. 흰 셔츠, 검은 양복 차림에 코 밑과 턱에 수염이 거뭇하게 자라 있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시선만 살짝 아래로 내렸다. “시의원으로 살인 사건에 연루돼 국민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지적엔 고개를 끄덕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결백하다는 듯 ‘얼굴을 가려주겠다’는 경찰의 제안도 거부했다. 이날 오전 장성원 형사과장은 “살인교사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는 본인의 자백 빼곤 다 확보됐다.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김 의원이 범행 시점 이후 대포폰을 폐기한 사실이 확인됐고 “송모 씨와 김 의원 간 차용증을 찾아오라 했다”는 팽 씨의 진술과 실제 폐쇄회로(CC)TV에 찍힌 행동이 일치하는 점, 숨진 송 씨가 김 의원을 언급했다는 진술이 확보된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무엇보다 김 의원이 유치장에서 팽 씨에게 두 번에 걸쳐 전한 3장의 쪽지 내용이 결정적이었다. 유치장에서 경찰 몰래 수감자들이 주고받는 쪽지를 ‘비둘기’라고 한다. 지난달 28일 건네진 첫 번째 쪽지에는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사과를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고백해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 더 적으면 안 될 것 같아 할 말 많더라도 못 적겠다’고 적혀 있었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전해진 두 장의 쪽지 내용에 집중하고 있다. 거기엔 ‘지금 증거는 니 진술밖에 없다. 그러니까 무조건 묵비해라. 절대 쫄지 말고 지금은 무조건 묵비권. 지금 저들이 가진 증거는 니 진술(바뀔 수도 있는)뿐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김 의원은 자신이 쪽지를 썼다고 경찰에 인정했다. 이에 경찰은 사실상 살인 교사를 시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당초 검토했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은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대한 확인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송 씨에게서 7000여만 원의 술값 등을 지원받은 건 자백했지만 업무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날 수사 자료도 함께 송치했다. 500MB 용량의 외장하드 30개, 휴대용 저장장치(USB 메모리) 70여 개, 부검감정서와 통화기록 등 3200쪽의 서류와 내용 압축 CD도 33장에 이른다. 법조계에서는 팽 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다면 쪽지 3장과 별개로 충분히 유죄를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최진녕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자백을 뒷받침하는 보강 증거의 문제다. 지금 드러난 쪽지 3장만으로는 전체적인 정황을 알아내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검찰이 살인의 동기 같은 다각적인 정황을 더 보강한다면 교사 혐의를 입증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김 의원이 시켰다는 팽 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다면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면서도 “‘지금 증거가 네 진술뿐이다. 진술 거부해라’ 식으로 보낸 쪽지 3개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보기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또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해 달라’든가 ‘나는 이 사건에서 빼 줘’ 같은 명시적인 언어가 있지 않는 한 쪽지 3장만으로는 유죄를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강은지 kej09@donga.com·박성진·신나리 기자}

송광용 신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에 이어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까지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의 두 수장이 같은 방식으로 제자의 논문을 자신의 논문으로 포장해 학술지에 버젓이 게재했다는 점에서 교육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청와대도 인사검증 시스템에 또 구멍이 뚫렸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보자는 물론 가족과 사돈, 주변 지인까지 조사 대상에 올려 조사했지만 표절 문제에 있어선 검증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조사(助詞)만 다를 뿐 대부분 일치 김 후보자가 2002년 6월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자율적 학급경영방침 설정이 아동의 학급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제자 정 씨가 2002년 2월 석사논문으로 제출한 같은 제목의 논문을 발췌한 수준으로 대부분 조사 하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 씨의 논문 5항 ‘연구결과 및 논의’ 부분에 대해선 김 후보자가 정리하고 요약한 흔적이 보였다. 김 후보자 논문은 전체적으로 210개의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75개가 정 씨 논문에 나온 문장과 정확히 일치했다. ‘거의 같은’ 수준인 ‘표절의심문장’도 133개에 이르렀다. 정 씨의 석사학위논문은 △서론 △이론적 배경 △가설 △연구방법 △연구결과 및 논의 △요약 및 결론의 순서로 78쪽 분량. 김 후보자의 논문은 △서론 △이론적 배경 △가설 △연구방법 △연구결과 및 논의 △결론의 순서로 24쪽 분량이다. 두 논문의 구성은 대부분 같았다. 정 씨 논문의 서론에 있는 ‘용어의 정의’, 이론적 배경의 ‘선행연구고찰’, 요약 및 결론 부분의 ‘요약’ 항목 등이 빠져있을 뿐이었다. 내용도 거의 같았다. 김 후보자 논문의 서론만 놓고 보면, 정 씨 논문 서론에서 ‘더구나 학급운영은 자신을 검증해 주고 또다시 교사인 자신을 만들어 가는 최고의 실험장이건만 자율성을 담보하지 못한 학급 경영방침 설정으로 인하여 실천 전문가라고 하는 교사의 전문성 확보와 신장은 점차 확산되지 못했다’는 한 개 문장만을 뺀 것이었다. 가설 부분은 완전히 같았다. 표, 각 가설을 구분하기 위한 로마 숫자, 구두점까지 같았다. 취재팀의 요청으로 김 후보자와 정 씨의 논문을 꼼꼼하게 검증한 두 명의 교수는 “유사 논문인지 들여다볼 필요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 씨의 석사논문 중 일부를 김 후보자가 뽑아 쓴 수준이란 얘기다. 서울 A 국립대의 교수는 “간혹 제자의 논문을 본인이 제1저자로 발표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제목, 구성, 내용 등 일부는 편집해 가공한다”고 꼬집었다. ○ 연이은 교육 수장의 파문에 술렁이는 교육계 송 수석에 이어 김 후보자까지 제자 논문을 본인이 제1저자로 버젓이 학술지에 등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교육계는 술렁이는 분위기다. 한 교원단체 관계자는 “교사 양성의 양대산맥인 서울교대와 한국교원대 출신의 두 인사가 동시에 같은 논란에 휩싸였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교육계에선 이들이 제1저자로 논문을 발표한 사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B 사립대 교수는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려면 최소 한 명의 저자가 학술지 정회원이어야 하는 게 관행이라 지도교수가 공동저자로 나갈 때는 있다”면서 “하지만 제1저자가 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잘라 말했다. 제1저자냐 제2저자냐에 따라 교수의 논문 실적 평가, 연구력 지표 등이 좌우되기 때문에 교수가 편법으로 실적을 쌓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일부 교수들은 ‘책임론’을 들었다. 본인이 제1저자로 발표한 제자의 논문이 만약 짜깁기 등 이유로 이후 문제가 불거진다면 그 책임 역시 교수가 모두 질 수 있겠냐는 얘기다. 특히 김 후보자와 송 수석은 모두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교편까지 잡았던 교육자 출신이란 측면에서 충격이 더하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각각 한국교육행정학회장(김 후보자), 한국초등교육학회장(송 수석)으로 있을 때 정진곤 당시 대통령교육과학문화수석 내정자에 대한 표절 의혹이 일자 “표절로 보기 힘들다”는 공식 입장을 내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16일 취재팀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만 해도 1저자냐 2저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교수님을 존경하니까, 실어준 것만 해도 학생은 고맙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신진우 niceshin@donga.com·박성진 기자}

28일 전남 장성군 효사랑요양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간호조무사 김귀남 씨(53·여·사진)는 연기 속에서 불을 끄려 노력하다 질식해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별관 2층에서 당직 근무를 하던 김 씨는 화재경보음이 울리자 즉각 소화전으로 달려갔다. 소방호스를 꺼낸 김 씨는 불길이 치솟는 3006호 쪽으로 다가갔고 동시에 환자들에게 끊임없이 “대피하라”고 소리 질렀다. 조카 김진식 씨(51)가 사고 당시 같이 근무했던 간호사에게 전해 들은 김 씨의 마지막 모습이다. 숨진 김 씨의 어머니도 4년간 치매를 앓다 1월 세상을 떴다. 김 씨는 치매에 거동도 불편한 어머니를 전남 광양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 모신 뒤 수시로 찾아가 병수발을 들었다. 조카 김 씨는 “고모(김 씨)가 형제 중 막내라 할머니 병수발을 주로 맡았는데,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평소 치매 환자들을 각별하게 돌봤다. 딸 노진화 씨(28)는 “대학생일 때 엄마가 근무하는 병원에 따라 간 적이 있다. 치매 걸린 환자들이 엄마를 ‘언니, 언니’ 부르며 따라다니는데 괜히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광주 신가병원에 차려진 빈소를 찾은 김 씨의 친구 박경남 씨(53·여)도 “귀남이는 환자들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면서 “환자들과 엄마처럼, 딸처럼, 친구처럼 지내는 생활이 즐겁다며 밝게 웃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기억했다.광주=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불이야!” 28일 0시 24분 전남 장성군 삼계면 소재 효실천사랑나눔(효사랑) 요양병원 별관 2층 3006호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이 병원 별관 1, 2층에는 총 78명의 환자가 있었고 대부분은 잠을 자고 있었다. 본관에 있던 간호사가 비상벨 소리를 듣고 0시 27분 소방서에 신고했다. 0시 31분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해 2분 만에 큰 불길을 잡았지만 입원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지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고령에 치매를 앓던 노인들이 수면 중 유독가스를 피하지 못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 치매 노인들 잠자다 그대로 질식 사망자 21명(남성 16명, 여성 5명)은 모두 환자 34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있던 별관 2층에서 나왔다. 소방관들이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를 간호 접수대까지 밀고 나온 뒤 환자를 업고 빠져나오길 되풀이했지만 모든 환자를 구하지는 못했다. 별관 2층에 진입해 환자들을 구출한 한 소방관은 “환자 7명은 자력으로 탈출했고, 일부는 구조됐지만 주무시고 계셨던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미처 연기를 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사히 대피해 목숨을 건진 한 환자는 “저녁에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은 사람들은 못 빠져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령 사망자는 92세의 양의묵 할아버지이고 80대 사망자도 5명에 이른다. 병원 측은 화재 당시 2층에 간호사 1명과 간호조무사 1명 등 2명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간호조무사 1명만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야간에 간호조무사 1명이 수십 명의 환자를 돌보도록 한 조치가 적절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유사시에 환자들을 모두 대피시키기에는 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이 간호조무사는 홀로 불을 끄려다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1층에 있던 환자 44명은 모두 구조됐다. 별관 1층에 있던 환자 이채규 씨(71)는 “자다가 ‘불이야’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우르르 병실을 빠져나갔다”며 “연기가 가득 차 있어서 벽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뛰어나왔다”고 말했다. 탈출한 환자 김재후 씨(70)는 “원래 병실 문은 잠겨 있다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데 문이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화재 뒤 1층 근무 간호사가 문을 연 것으로 추정된다. 15명의 병원 본관 근무자는 119구조대, 경찰과 함께 환자를 구조하고 본관 앞마당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유독가스에 질식해가는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별관 2층에 들어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병길 장성소방서 소방교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비상벨 소리에 뛰어나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별관 2층에 들어가서 환자를 데리고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고 초기 ‘일부 환자의 손이 묶여 있어 대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경찰은 감식 결과 그런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병원 측의 과실이 있는지 밝히기 위해 소방점검과 근무기록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이날 신청했다.○ 치매 환자가 유력 용의자 경찰은 별관 2층에 입원해 있던 환자 김모 씨(82)를 유력한 방화 용의자로 보고 장성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김 씨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별관 2층에 설치돼 있는 폐쇄회로(CC)TV에는 화재 3분 전 김 씨가 처음 화재가 난 3006호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 촬영돼 있었다. 경찰은 김 씨 외에는 이 시간대에 복도에 나온 환자가 없다고 밝혔다. 김 씨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뇌경색 증세로 1일 이 병원에 입원했으며 치매 증세도 있었다. CCTV 화면에서 김 씨는 담요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0시 15분경 자신의 병실인 3002호에서 나와 0시 16분 42초 화재 발생 장소인 3006호에 들어갔다. 5분 뒤인 0시 21분 30초경 3006호에서 나올 때는 빈손이었다. 그리고 약 3분 뒤인 0시 24분에 불길이 올랐다. 화재 현장에서는 라이터의 잔해가 발견됐다. 김 씨가 라이터를 갖고 들어간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3006호는 침대나 이불 등을 쌓아 놓는 창고로 쓰였다”며 “어디에 불이 붙으면서 화재가 시작된 것인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방화 혐의를 부인했다. 김 씨는 관련 전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의사 자문 결과 김 씨의 증세가 심하지 않아 혼자서도 조사를 받을 수 있는 상태인 것으로 판단하고 심적 안정을 취하게 하고 방화 여부를 규명할 방침이다.○ 일주일 전 점검에는 “이상 없음” 최근 이 병원에 대해 안전 점검이 두 차례 이뤄졌지만 ‘이상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와 점검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남도가 세월호 참사 이후 위기 관련 매뉴얼 현장 작동 여부 점검을 지시하자 병원 측은 소방설비 구비 여부 등을 자체적으로 점검한 뒤 9일 장성군에 “이상이 없다”고 보고했다. 장성군도 21일 직원들이 현지 점검을 했지만 별다른 이상을 확인하지 못했다. 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야간에 요양병원은 환자 200명이 넘으면 당직 의사를 최소 2명 배치해야 하지만 이 병원은 환자가 324명이었음에도 사고 당일 밤 당직 의사를 1명만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장성=조종엽 jjj@donga.com·권오혁광주=박성진 기자 사망자 명단 (21명·가나다순)△기세영(75) △김귀남(53·여) △김영례(74·여) △김재명(82) △김종만(51) △박기녀(88·여) △박의웅(77) △박인귀(75) △박종신(85·여) △안종길(81) △양의묵(92) △유재복(58) △이복순(76·여) △이상규(62) △이순열(72) △이순응(67) △임동운(62) △장이식(53) △정윤수(88) △최병섭(70) △홍기광(71)}

27일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41층). 기자는 아셈타워에 화재가 났다고 가정하고 3층 에스컬레이터 옆 복도에서 비상 탈출을 시도해 봤다. 3층 콘퍼런스룸 옆 복도에서 불이 켜진 비상구 등 아래의 문을 열었지만 황당하게도 계단은 없었다. 정면과 왼쪽은 벽으로 막혔고, 오른쪽에는 청소도구함만 있었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꼼짝없이 갇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아셈타워 3, 4층에만 이처럼 ‘막힌 비상구’가 층별로 3곳씩 6곳이나 있었다. 아셈타워 4층 무역아카데미 앞에서는 대피 안내 표지로 보이는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갔지만 무역아카데미 IT센터 강의실로 들어가는 문만 나올 뿐이었다. 비상시에 오히려 실내로 안내받은 셈이다. 소방 관계자는 “아셈타워 지하는 출구로 통하는 경로들이 얽혀 복잡하고 방향을 분간하기도 어려워 화재가 발생하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26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종합터미널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희생자들은 순식간에 퍼진 연기에 질식됐다. 생존자들은 “검은 연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를 가려 출구를 찾기 어려웠다”고 증언했다. 전문가들은 고양터미널과 같은 대형 복합건축물은 영화관과 대형마트, 쇼핑몰, 터미널, 지하철 역사 등이 한데 모여 있다 보니 통로가 복잡해 화재 발생 시 방향감각을 잃은 사람들이 대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본보 취재진이 27일 대형 복합건축물과 다중 이용시설의 대피경로 등을 살펴본 결과 대낮이고 실내가 밝았는데도 탈출로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 위치한 복합쇼핑몰 디큐브시티는 내부가 곡선형 미로처럼 생겨 이용객들의 대피 동선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초행길이던 기자가 지하 2층과 지하 1층 구조를 층별 안내도를 보지 않고 파악하는 데 15분이 넘게 걸렸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IFC몰도 복잡했다. 27일 오후 IFC몰을 방문한 이시연 씨(34)는 “세 바퀴를 돌았는데 제자리일 정도로 내부가 너무 넓어 늘 위치가 헷갈린다. 불이 나면 어느 방향으로 탈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근영 강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쇼핑몰은 매출 증대를 위해 고객이 모든 쇼핑 공간을 볼 수 있도록 에스컬레이터와 통로 등 동선을 길게 만들지만 빠른 대피에는 방해가 된다”며 “설계 단계에서부터 매출과 안전을 모두 고려하게 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의 건물이 늘고 있지만 방재시설과 기준은 여전히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축물은 21세기인데 방재시설은 20세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영업장의 넓이에 따라 피난통로 수를 정하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 사용 면적, 수용 인원, 보행 거리의 적정성, 스프링클러 설치 등 피난 관련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난통로의 수와 배치를 정하고 있다. 복잡한 건물 내 각 공간들 사이의 조그만 틈새를 막는 규정을 마련해 유독가스가 퍼질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양종합터미널 화재에서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8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이었다. 불길과 유독가스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등을 통해 전용통로처럼 뻗어나갔다. 닫힌 엘리베이터 문의 좁은 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존자 문용찬 씨(33)는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면서 연기가 새어들어 왔다”고 증언했다. 최규출 동원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미국처럼 모든 건물에 ‘파이어스톱(fire-stop)’을 쓰도록 의무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물 틈새에 끼워 넣거나 표면에 발라 화재 발생 시 불길과 연기가 퍼져나가는 걸 막는 물질들을 통틀어 일컫는 ‘파이어스톱’은 최근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국내 대형 건물이나 공장 등에서도 확산되는 추세다. 화재 발생을 알리는 데 통상 사용되는 비상벨은 큰 소리가 지속돼 화재 시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고 판단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진국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음성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많다.:: 파이어스톱 (Fire-Stop) ::연기를 막고 불길이 퍼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건물 내부의 빈 공간이나 틈새를 밀봉하는 화재 차단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형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불에 타지 않는 실리콘 혼합물질을 사용한다.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매표소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천장이 까매졌어요. ‘정전됐나’ 싶어서 둘러보는데 뒤쪽 에스컬레이터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어요.” 충남 서산에 있는 기독교 대안학교 ‘헤브론원형학교’를 다니는 김서준 군(16)은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학교에 가기 위해 26일 오전 경기 고양종합터미널을 찾았다. 무심코 김 군이 시계를 본 건 오전 9시 2분. 바로 그때 솟아오르는 불길을 보고 김 군은 옆에 둔 짐을 챙길 새도 없이 건물 밖 버스승차장으로 뛰어나갔다. 곧 건물은 검은 연기로 휩싸였다. 지하 1층 푸드코트의 CJ푸드빌 리모델링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불길은 순식간에 2층까지 퍼졌다. CJ푸드빌은 올해 초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 임대사업자로 선정돼 종합 관리해 왔으며 이곳에 자사 외식 브랜드뿐만 아니라 미용실 등 여러 가지 편의시설을 입점시켜 7월부터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지하 5층, 지상 7층의 고양종합터미널은 연면적 14만6000여 m² 규모로 시외버스 터미널을 비롯해 영화관과 대형마트 등이 입점한 대형 다중이용시설이다. 불이 났을 때는 지하 2층에 있던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영업을 막 시작하려던 시간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고 터미널을 이용하는 출근 승객들도 대부분 빠져나간 뒤였다. 많은 이용객이 붐비는 시간대였다면 엄청난 대형 참사로 번질 뻔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영향인 듯 시민들은 “불이야” “피해”라고 서로 외치며 대피를 독려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이날 버스터미널과 대형마트, 영화관 등 건물 안에 모두 700여 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사상자를 제외한 650여 명이 검은 연기를 보자마자 신속히 건물 밖으로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직전인 오전 9시 1분경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 주차장으로 가던 문용찬 씨(33)는 지하 2층에서 덜컹거리며 연기가 조금씩 들어왔고, 지하 3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을 때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뿌연 연기가 들어왔다고 했다. “무작정 ‘닫힘’ 버튼을 눌렀어요. 지상 3층에 도착해서 연기와 함께 기침하며 주차장과 연결된 통로로 뛰어나왔습니다.” 문 씨가 엘리베이터에서 연기와 함께 뛰어나올 땐 3층에서 공사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화재 경보가 울리며 대피 방송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의 경우 ‘화재가 났으니 대피해 주십시오’란 안내 방송이 제때 나와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다. 2층 대합실에 앉아 있던 서지숙 씨(47·여)는 “녹음된 여자 목소리로 ‘화재가 났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주변에 앉아 있던 20여 명이 함께 외부로 뛰어나갔다”고 했다. 스프링클러도 작동해 지하 2층 매장에 있던 사람들 중엔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뛰어나온 이도 있다. 건물 5∼7층에 있는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비상등이 켜지고 타이어 타는 냄새가 퍼지자 “불이야”를 외쳤고, 직원들이 관객들을 대피시켜 피해는 없었다. 메가박스 측에 따르면 오전 9시 전체 8개 관(1224석) 중 2개 관에서 30여 명이 영화를 보던 중 9시 5분에 화재 사이렌이 울렸다. 지하 2층 홈플러스에선 보안요원들이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외부 인도와 연결된 지상 1층, 버스승차장과 연결된 지상 2층, 터미널 뒤편 주차장과 연결된 지상 3층, 옥상 공원과 연결된 지상 5층 등 건물 구조가 비교적 대피하기 수월한 상태였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지상 2층 매표소 사무실 안과 화장실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데 대해 소방 관계자는 “(사망자가) 매표소 안쪽에 있었고, 화장실에 있던 피해자는 유독가스를 피해 피신하다 고립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면적이 워낙 넓고 연기가 순식간에 퍼져 출구를 찾는 데 애를 먹은 시민도 적지 않았다. 오전 9시 15분경 버스터미널과 연결된 백석역에서 내린 회사원 이혁재 씨(28)는 “지하철 내부에 연기가 가득해 카드로 찍고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앞이 안 보였다”고 했다. 이 씨는 목이 아프고 어지러워 병원을 찾았다. 이승연 씨(34·여)도 2층 대합실에서 가방 정리를 하다 조금 늦게 나오며 출구를 찾아 헤맸다. 이 씨는 “출구 방향을 봐놓지 않았으면 나오는 데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의 옷과 얼굴에는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사망자와 부상자들은 일산병원, 일산백병원, 명지병원, 일산동국대병원 등으로 나뉘어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고양=강은지 kej09@donga.com·박성진 기자 ◇사망자 명단 △이강수(50·KD운송 고양권 지사장) △김선숙(48·여·KD운송 터미널 매표소 직원) △김점숙(56·여) △김탁(37·중국인) △신태훈(46) △ 정연남(49·여) △이일범(65)}

‘수학여행 가기 전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던 제 아들을 이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저는 아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동혁이가 원할 것 같아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진상규명 철저하게 해주십시오.’ 24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촛불집회. 경찰 추산 7000여 명(주최 측 추산 3만 명)이 모인 이곳에서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생 김동혁 군의 아버지 김영래 씨(44)는 긴장한 듯 여러 번 고쳐 쓴 글을 들고 발언대로 갔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입니다. 시민들께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진상규명 꼭 해달라는 내용 올라가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최 측은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측과 사전 협의된 내용이냐”고 물었고 김 씨가 아니라고 하자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 씨는 “(세월호 관련 집회에서) 정작 유가족 이야기를 넣어줄 수 없다고 하니 서운하다”며 집회가 끝나기 전 안산시로 돌아갔다. 예정됐던 유경근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과 장동원 단원고 생존자 부모 대표의 발언은 그대로 진행됐다. 유 대변인은 아직 구조되지 않은 실종자 16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잊지 말고 진실을 규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후 8시경 청계광장에서 보신각, 명동성당을 지나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행진을 하던 중에는 보신각 쪽에서 집회 참가자들끼리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오후 9시경엔 민노총 조합원 300여 명이 서울 YMCA 앞 건물 인근에서 방향을 바꿔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하는 등 도로를 점거하고 연좌 농성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은 다섯 차례 해산 방송을 내보낸 뒤 유기수 민노총 사무총장과 송경동 시인 등 30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일반교통방해(도로 불법 점거) 등의 혐의로 연행했다. 이 가운데 고교생 1명을 제외한 29명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임현석 기자 ihs@donga.com}

6·4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22일 0시 시작되면서 모든 후보는 일제히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갔다. 보통 첫날에는 선거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유세가 진행되지만 이날은 사정이 달랐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각 당이 떠들썩한 유세를 자제하기로 하고 후보자들도 몸을 사리면서 전례 없이 조용한 스타트를 보였다. 그 대신 온라인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치열함을 넘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종 불법·탈법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유세 대신 조용하게 ‘얼굴 알리기’ 22일 오후 2시 반 서울 서초구 지하철 2호선 방배역 3번 출구 앞. 곽세현 새정치민주연합 서초구청장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시민들 앞에 섰다. 기호 2번이 적힌 파란 띠를 두르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악수를 건네는 모습은 여느 선거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후보 주변에 선 운동원들의 가슴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유세 때마다 등장하는 확성기와 마이크, 요란한 음악소리와 단체 율동도 사라진 상태였다. 선거운동에서 대중가요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역대 각종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당대의 인기 있고 활기찬 음악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대중가요와 율동이 모습을 감췄다. 지하철 입구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율동하는 모습, 단체 구호 등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처럼 음악 틀고 율동하는 선거운동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발로 뛰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양창호 새누리당 영등포구청장 후보는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기자가 지켜본 한 시간 동안 지역구 내 장애인시설과 노인정, 시장 등 세 군데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기호 1번입니다”를 크게 외쳤다. 조길형 새정치민주연합 영등포구청장 후보도 오전 7시와 오후 6시 지하철역 출퇴근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것 외엔 하루 종일 시장과 지역구를 다니는 데 시간을 쏟았다. 조 후보 측은 “세를 과시하며 함성을 지르거나 하는 선거운동은 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로를 다니며 쩌렁쩌렁하게 ‘기호 몇 번’을 외치는 유세차량의 수도 확 줄었다. 각 후보의 얼굴과 기호, 구호가 인쇄된 유세차량은 지하철 입구 앞이나 대로변에 세워는 놨지만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나 확성기 없이 간판 역할만 할 뿐이었다.○ 은밀하고 교묘해진 불법 선거운동 차분한 오프라인(현장) 선거운동과 달리 온라인 선거운동은 과열 분위기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 전체가 침울한 상황이어서 오프라인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선거운동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불법·탈법은 더욱 은밀해지고 교묘해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처음으로 지방선거에 맞춰 가동한 ‘사이버선거범죄대응센터’에는 최근까지 2439건의 위법행위가 적발됐다. SNS 등을 통한 비방이나 흑색선전이 1329건으로 가장 많았다. 회원들에게만 내용이 공개되는 폐쇄형 SNS(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등)를 이용한 위법행위가 늘고 있는 게 특징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SNS는 선거법 위반행위가 의심되더라도 당사자의 인적사항을 확보하기 어려워 추적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날부터 24시간 비상근무에 들어가는 등 불법·탈법 선거운동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안부를 비롯해 특수부 형사부 인력까지 투입해 공무원 선거 개입, 금품선거, 특히 SNS,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한 흑색선전을 대대적으로 단속할 방침이다.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의 ‘해경 해체’ 선언으로 해양경찰시험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수험생들이 대혼란에 빠졌다. 해경은 19일 홈페이지에 ‘대국민 담화에 따라 2014년도 제1회 해경 채용시험 일정을 향후 정부 조직개편 확정 시까지 연기한다’고 공고했다. 이에 따라 3월에 1차 필기시험을 통과한 수험생들과 당장 20일부터 1차 실기시험을 봐야 할 수험생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당초에는 20, 21일 함정운용 부문에서 50명의 신규 직원을 뽑는 1차 구술 실기시험이 여수해양경찰 교육원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20일 접수 마감 예정이었던 올해 4차 해경 의무경찰(358기) 선발시험은 전면 취소됐다. 4년 동안 해경 시험을 준비하다 올해 1차 필기시험 전경 부문에 합격한 김모 씨(28)는 “올해 시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박 대통령의) 해경 해체 발언만 나왔는데 현재 진행 중인 신규 채용이 연기돼 지원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라며 괴로워했다. 올해 해경 시험은 상반기와 하반기 2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전반기 시험은 현재 진행 중이었다. 3월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수험생들은 6월 초부터 시행될 적성 및 체력 평가 및 최종 면접만 남겨둔 상태였다. 하반기에도 11개 분야에 321명을 뽑는 채용 일정이 남아 있어 19일 관련 학원가에는 수험생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일부 대학 해경학과들도 관련 대책을 논의 중이다. 전남대 해양경찰학과 장덕종 교수는 “아침부터 학부모와 학생에게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해경이 해체되면 전공 명칭이나 일부 교육과정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백연상 baek@donga.com·박성진 기자}

“초 단위 싸움이다.” 응급 상황에서 생존 및 구조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5분.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간을 넘기면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구조를 받는 사람의 생존 확률도 급격히 떨어진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골든타임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현장에서 골든타임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13일 오후 7시 59분. 서울 영등포소방서에 마포대교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남자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골든타임을 적용하면 오후 8시 4분까지 마포대교에 도착해야 하는 상황. 기자가 119구조대의 차량에 동승해 봤다.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영등포소방서에서 영등포역 교차로 방향으로 우회전하기 전 횡단보도. 행인들은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도 태연히 길을 건넜다. 사람들이 모두 길을 건너기를 기다린 시간 18초. 오후 8시 00분 23초 영등포 교차로. 좌회전하려 신호대기 중인 차량 11대가 1, 2차로를 내주지 않았다. 소방차는 우회전 차로의 차량 5대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가 3차로를 통해 좌회전했다. 1분 47초가 지났다. 좌회전하자마자 맞닥뜨린 횡단보도도 지나기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횡단보도와는 달리 교통경찰관이 교통 통제를 했다. 하지만 행인들은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 오후 8시 2분 22초가 되어서야 구조 차량은 영등포 교차로를 빠져나왔다. 약 347m의 거리를 지나오는 데 3분 19초를 허비했다. 결국 구조대는 출동한 지 8분이 지나서야 마포대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살 기도자가 그냥 자리를 뜬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좁은 골목길 불법주차도 신속한 구조를 방해하는 요소다. 고시원과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인 서울 관악구 신림9동.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14일 오전 10시경 주택들 앞뒤 사이에 확보된 폭 약 3.5m의 이면도로에 많은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골목길 곳곳은 차가 진입할 수 없는 주차장이 돼 있었다. 불이 났을 때 출동하는 소방 펌프차의 폭이 약 2.5m인 것을 감안하면 평소에도 소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도로다. 2012년 10월 31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극장 뒤편에서 불길이 솟았을 때도 소방관 184명과 차량 54대가 나섰지만 불길은 1시간 반이 지나서야 잡혔다. 식당과 상패 제작·판매소 등 17곳을 태운 뒤였다. 골목길이 좁고 시설물이 많아 소방차들이 제대로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이것만은 꼭 지켜주세요사람들이 구급차가 ‘골든타임’을 지키도록 협조해야 하는 건 알지만, 잘 안 지킵니다. 운전자들은 구급차가 지나가면 반드시 양보해야 합니다. 골목길처럼 좁은 길에 불법 주차를 하면 위급 시 구급차가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김미호(48·서울 영등포소방서 119구조대 팀장) 》}

세월호 침몰 23일째인 8일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은 눈에 띄게 썰렁한 모습이었다. 실종자 수가 30여 명으로 줄면서 이날 오후 체육관을 지킨 가족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이불을 걷어 먼지를 털어내는 대청소를 하는 모습이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실종된 단원고 여학생의 아버지는 “빈자리가 늘었지만 아내가 ‘깔려 있는 이불이 없어지고 맨바닥이 드러나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고 해서 주변 이부자리를 치우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몸이 아파 누워있던 한 여학생의 어머니는 “소조기인 만큼 오늘은 꼭 나와야 한다. 나올 거다. 썩어문드러져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내 자식이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날 소조기가 시작됐지만 8일 오전 기상 악화로 수색작업은 계속 난항을 겪었다. 체육관 게시판에는 전날 수습된 269번째 희생자 이후로 새로운 시신 수습을 알리는 종이가 붙지 않았다. 남은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고 있다. 한 남성은 “승무원 가족이라 지금까지 슬퍼도 내색 못하고 입을 닫고 있었는데 몇 가족이 남지 않고서야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며 “이제 서로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수색이 막바지에 접어들어 시신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이들을 힘들게 했다. 한 일반인 실종자의 가족은 “실종자가 ‘0’이 될 수 없다는 건 아마 모두 알고 있지 않을까. 알지만 내 가족이 실종자로 남지 않길 바라는 거지”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를 줄일지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진도군청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실종자 가족에 비해 봉사자가 더 많은 상황이라 주말까지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진도=주애진 기자 jaj@donga.com·박성진 기자}

그날 이후 아빠의 눈가는 항상 젖어 있었다. 막내딸 솔이(17)가 탔던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지난달 16일. 악몽에 쫓겨 오듯 내려온 진도에 머문 지 6일로 21일째가 됐다. 윤종기 씨(49)는 진도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5일 오후 윤 씨는 진도 실내체육관 1층에 앉아 있었다. 어젯밤 꿈에 솔이가 나왔다. 누군가 택시를 타고 집 앞에 와 솔이를 내려놓고 갔다. 허겁지겁 뛰어나가 보니 몸은 분명 솔이가 맞는데 얼굴은 솔이의 둘째 언니였다. 솔이는 두 언니 아래로 얻은 막내딸이었다. 깨어난 뒤에도 한참 동안 꿈이 잊혀지지 않았다. ‘이제 얼굴이 온전치 않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오후 3시경 정홍원 국무총리가 체육관을 방문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수색 상황을 설명하는 브리핑 중간, 윤 씨는 1층 상황실을 박차고 나왔다. 매일 같은 이야기만 반복됐다. 화가 났지만 솔이를 찾으려면 수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야만 했다. 10분 뒤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상황실로 들어갔다. 오후 6시 40분경 지친 가족들과 배식봉사를 하는 천막을 찾았다. 밥 한 숟가락, 김치 두 젓가락을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사고 며칠 전 솔이는 아빠에게 계란말이를 해달라고 졸랐다. 일을 마치고 피곤했기에 다음에 해주겠다며 미뤘다. 사고 후 그날 일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윤 씨는 체육관 앞마당에 마련된 전광판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저녁 내내 세월호 도면만 들여다봤다. 해경 측에서 나눠준 A4 크기의 도면. 침몰하는 배에서 솔이를 마지막으로 본 친구는 3층 출구에서 헬기 구조를 기다리는 줄 마지막에 솔이가 서있었다고 했다. ‘평소 정의감이 강했던 딸이 위급한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양보하고 마지막에 섰던 것 아닐까.’ 윤 씨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솔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솔이가 떠나는 아침, 화장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나 간다.” 딸은 문 너머에서 해맑게 인사했다. ‘그때 그 문을 열어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다시 만날 딸의 얼굴이 온전치 못해 알아보지 못할까 윤 씨는 무섭다. 오후 9시 16분경 체육관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무대에 설치된 대형 TV에서 사고 당시 사진과 동영상이 나왔다. 영상 공개가 끝나자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솔이와 같은 반이던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먼저 나와 있었다. “해경에서 탈출하라고 한마디만 했어도 우리 애들 다 살았을 텐데….” 두 아버지는 한숨만 내쉬었다. 단원고 선생님들이 찾아왔다. 함께 솔이 이야기를 하고 난 윤 씨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항상 반에서 5등 안에 들더니 나타나는 건 끝에서 5등 안에 들어가려고 이렇게 안 나오나.” 자정을 넘겼지만 윤 씨는 잠들지 못했다. 6일 0시 45분경 정조시간이 돼 수색이 재개됐는지 보기 위해 체육관 상황실을 찾았다. 추가로 발견된 시신은 없었다. 자리에 돌아와도 잠이 오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뉴스만 계속 검색했다. 오전 2시쯤에야 겨우 자리에 누웠다. 애써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 않다. 체육관에 늘어난 빈자리를 보는 마음이 휑하다. 일부러 자원봉사자들에게 옆에 놓인 빈 이부자리들을 치우지 못하게 했다. 한 시간 뒤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오전 7시 30분경 눈을 뜨자마자 수습된 시신들의 인상착의를 적은 종이가 붙은 게시판으로 갔다. 밤사이 추가로 수습된 시신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세수를 했다. 아침식사 대신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 마시며 TV 뉴스를 봤다.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안산 가나 보네. 참… 부럽네….” 윤 씨는 팽목항으로 나갔다. 오전 9시에 있을 브리핑을 챙기기 위해서다. 오후에 체육관에서 똑같은 내용을 브리핑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수색 소식을 알고 싶었다. 이날 오전 수색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브리핑을 듣던 윤 씨의 마음이 불안하게 뛰었다. 팽목항 등대로 이어진 길가에는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며칠 전 윤 씨가 직접 쓴 리본도 있었다. ‘솔, 아빠가 항상 미안해 힘이 없어! 계란말이 해줄게 빨리 나와’ ‘아빠는 솔 사랑하는데 솔 보고 싶은데 어서 와라 사랑해 -솔 아빠가-’라고 쓴 리본이 바람에 흔들렸다. 체육관에 돌아온 뒤 윤 씨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오후 내내 누웠다가, 뉴스를 보다가, 밖에 나가 담배 피우기를 반복하다 오후 3시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체육관 브리핑이 시작될 시간이다. 그는 어김없이 상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진도=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소중하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겠어요. 실종된 우리 아이 위해 기도하면서 잠수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는데….”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6일 민간잠수사 이광욱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하루 종일 숙연한 분위기였다. 가족들은 말을 잊었고 일부 가족들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실종된 단원고 여학생의 어머니는 “잠수사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며 “제발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 누가 죽었다는 얘기만 들어도 심장이 떨려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한편으론 이번 일로 인해 수색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한 실종자의 아버지는 “무리하게 잠수사를 투입했다는 비난 여론이 일 텐데 그 때문에 잠수사 투입 규모를 줄일까 걱정이다”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실종자의 아버지도 “잠수사의 안전이 중요하다. 잠수사들이 멀쩡해야 우리 애들을 찾을 수 있을 것 아니냐”며 “다만 이 사고로 수색이 주춤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4년 전 천안함 실종자 구조 작업을 벌이다 잠수병으로 순직한 해군 특수전전단(UDT) 고 한주호 준위의 가족들도 소식을 접하곤 심란한 하루를 보냈다. 당시 한 준위는 빠른 유속과 낮은 수온에도 여러 번 잠수를 강행하다 사고를 당했다. 한 준위의 아들 상기 씨(30)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 씨의) 가족들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마음이 아프겠냐”며 안타까워했다. 상기 씨는 “이번 세월호 구조 작업을 보면서 잠수사들의 안전 걱정에 내내 마음을 졸였는데…”라고 말한 뒤 잠시 숨을 들이쉬곤 “이렇게 일이 생겨서 마음이… 굉장히 아프다”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강은지 kej09@donga.com / 진도=주애진 기자}
시신만이라도 찾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황당한 유언비어와 어처구니없는 선동에 또 한번 상처받고 있다. 사고 초기 정부의 어설픈 대응에 분노했던 가족들은 현장에 나타난 자칭 ‘전문가’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돌아온 건 더 큰 좌절감뿐이었다. 무엇보다 ‘훼방꾼’들의 검증 안 된 주장 때문에 분초를 다투는 실종자 구조에 차질이 생기고 사회적으로는 큰 혼선이 빚어졌다. 구조작업을 둘러싼 차질은 사고 초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른바 ‘SOS 괴담’이 유포되면서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식당 쪽에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다.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초기 구조작업은 객실보다 식당 칸에 집중됐지만 이곳에서는 지난달 25일까지 단 3구의 시신만 발견됐다. 오히려 뒤늦게 수색에 나선 선수와 선미 쪽에서 다수의 시신이 확인됐다. 지난달 18일 홍가혜 씨(26)의 종합편성채널 MBN 인터뷰도 빼놓을 수 없다. 홍 씨는 “갑판 벽 하나를 두고 생존자와 대화를 한 민간 잠수사도 있다. 해경이 민간 잠수사의 구조활동을 막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민간 잠수사까지 “들어가서 구할 수 있는데 해경이 막고 있다”고 거들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홍 씨의 말은 송두리째 거짓이었고 구조에 투입할 만한 실력을 갖춘 민간 잠수사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1일 실패로 결론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다이빙벨 투입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구조현장을 뒤흔든 유언비어와 선동은 엉뚱하게 ‘연출’ 논란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조문을 위해 경기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 위로의 말을 나눈 한 할머니가 동원된 인물이라는 것. 이 할머니는 유족이 아니라 근처에 사는 일반인으로 밝혀졌다. 상황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책임은 1차적으로 정부에 있다. 사고 첫날부터 구조자 수가 수차례 오락가락하고 승선자 명단까지 파악하지 못하는 등 무능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황을 100% 파악하지 못하면서 통제 불능의 상태가 이어졌고 그 틈을 타 갖가지 유언비어와 선동이 판을 친 셈이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부모 자녀의 생환을 기다리다 이제 시신만이라도 찾기를 염원하는 가족들은 유언비어와 선동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박희창 ramblas@donga.com·강은지진도=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