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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 거부 우편함엔 방부제 같은 먼지만 쌓여 가고/휘휘친친 거미줄 감으며/홀로 잠들 그물 침대 깁고 있어요/애당초 천국이란 건 없었으니/이곳이 지옥일 리 없죠//나는 뻐덩뻐덩 말라 가는 물고기/누구든 내 영혼을 사 가세요/비싸게 굴 이유가 없죠.’ 1990년 등단한 시인은 시 ‘근황’을 통해 그동안 외롭고 치열했던 집필 기간을 전한다. 그는 1994년 문법을 무시하는 한 편의 장시로 된 시집 ‘붉은 기호등’을 내놨지만 문단의 엇갈린 평을 받았고, 절필했다. 이 시집은 2003년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 시들을 묶은 것으로 사실상 등단 21년 만의 첫 시집이다. ‘꽃 피었어요 달도 떴구요/발그레한 봉오리 하나 꺾어 안고 춤추는 밤/…’(‘춘화1’에서), ‘한 잔의/태양’(‘낮술’ 전문)처럼 시는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인 박정대 씨는 “생을 온 마음으로 연주하며 지금에 이른 김요일의 시는 더욱 넓고 깊어졌다”며 돌아온 문우를 반겼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화려한 싱글을 꿈꾸지만 대부분의 20, 30대 여성들의 현실은 다이아몬드보다는 ‘큐빅’같이 이상과 어긋난다. ‘스타일’ ‘다이어트의 여왕’ 등 두 편의 장편을 통해 싱글 여성들의 일상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낸 저자가 8편의 단편을 묶어낸 첫 소설집. 다양한 인간 군상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가족드라마’에선 고깃집 일가족의 모습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진다. 극심한 변비로 고생하다가 홀연 집을 나간 뒤 유방암에 걸린 아버지, 집안일보다 드라마가 중요한 엄마, 도박중독에 빠진 삼촌, 외모지상주의자인 여동생, 그리고 삼류 잡지사 기자인 나까지. 해체된 가족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유쾌하게 그려진다. 단편 ‘아주 보통의 연애’는 잡지사 관리팀 여직원이 짝사랑하는 남자 직원의 영수증을 처리하며 연애감정을 키운다는 얘기를 감각적으로 그렸다.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등단작 ‘고양이 산티’도 수록됐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제가 좀 사는 데 서투른 사람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결례, 실례도 많이 했지만 그것을 풀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문학이 있으니까 사는 건 서툴러도 되겠구나 생각했죠. 여생은 성실히, 성심껏 황소가 뚜벅뚜벅 걸어가듯이 넉넉하게 인생을 살겠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이호철 팔순 기념회’에서 여든을 맞은 소설가 이호철 씨는 행사장을 가득 메운 200여 참석자에게 이같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작가는 6·25전쟁 때 월남해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했다. 1966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서울은 만원이다’를 비롯해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을 발표하며 대표적 ‘분단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축사에서 “이호철 선생은 소설로, 저는 평론으로 비슷한 시기에 등단했다. 우리 시대는 일제강점기 때는 배고팠고, 젊었을 때는 (전쟁으로) 피 흘리며 어렵게 살았다. 팔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박석무 한국고전번역원장은 “후배들을 아끼는 대인적 풍모가 있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행사에서는 최일남 한말숙 이어령 이근배 씨 등 문인과 지인 87명의 글을 모아 만든 팔순 기념문집 ‘큰 산과 나’ 출간기념회와 이호철문학재단의 발족식도 함께 열렸다. 정종명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이동하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 시인 신경림 성찬경 씨, 소설가 방영웅 김원일 씨 등 문인들과 가야금 명인 황병기 씨, 이재오 특임장관 등이 참석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老작가와 묘령 여인의 여행 다룬 ‘항항포포’ 펴내 ‘다산’ ‘추사’ 등 굵직한 역사소설을 주로 써온 소설가 한승원 씨가 일흔 둘의 나이에 말랑말랑한 로맨스 소설을 펴냈다. 제목은 ‘항구와 포구들’이라는 뜻의 항항포포(港港浦浦·현대문학). 예순이 넘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여제자와 사랑에 빠지고, 제자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를 잊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다시 묘령의 여인과 동행한다는 줄거리. 번뇌하는 비구니의 얘기를 다루며 불교에 심취(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했거나 정약용(‘다산’) 김정희(‘추사’) 등 역사적 인물을 진중하게 다뤘던 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단단히 마음먹고 시도한 문학적 변신이다. 한 씨는 6일 “소설가가 한편 한편 소설을 쓰는 것은 껍질을 벗는 것과 같다. 이 작품에서는 젊은 감각으로 감각적인 글을 아름답게 쓰고 싶었고, 이제 그것(그 변신)을 독자로부터 확인받고 싶다”며 웃었다. 작품 속에는 그의 요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다. 주인공인 베스트셀러 소설가 임종산은 자신을 ‘서재에 갇혀 사는 무기수’ ‘자본주의 세상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돈이 되는 글을 쓰는 노역(勞役)의 무기수’라고 부른다. 아내에게 “나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어쩌는지 알 수가 없어”라고 말하곤 훌쩍 여행을 떠난다. 작가 한 씨와 주인공은 얼마나 겹치는 것일까. “임종산은 제 분신과도 같은 존재예요. 요즘 들어 제가 길을 잃어버리고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인생의) 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렸고, 그 길을 다시 찾아간다는 일종의 구도(求道)적 소설이죠.” 임종산은 출강하던 학교 제자인 소연과 애정 행각을 벌이지만 소연은 암으로 죽는다. 소연을 잊기 위해 집을 떠난 임종산은 여행길에 우연히 자신을 유혹하는 미스코리아 광주 진 출신의 묘연을 만나 함께 여행한다. 조폭의 아내였던 묘연은 집을 도망쳐 나와 쫓기는 상황. 조폭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임종산과 묘연은 흑산도, 홍도, 목포항, 제주도, 해남, 포항, 울릉도까지 해안선을 따라 도피여행을 한다. 소설 곳곳에서 고혹적인 장면을 엿볼 수 있다. 묘연은 임종산과의 첫 만남에서 “선생님, 저 주워가지고 가세요”라며 접근한다. 묘연이 꽃뱀이라고 의심하던 임종산은 아리따운 그의 끈질긴 구애에 “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돈뿐입니다. 좋은 세월과 함께 젊음은 깡그리 흘러갔고…”라며 마침내 받아들인다. 이들의 제주 우도 데이트의 한 장면은 어떤가. “그가 묘연에게 우리 말 탑시다, 하고 말했다. 그가 말한 ‘우리’라는 말이 그녀의 가슴을 덥게 만들었다. 그녀가 화들짝 웃으며, 좋아요,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장면을 상세히 다룬 데 대해 오해를 받지는 않을까. 작가는 “허허. 주변 문인들이 농을 많이 걸겠지요”라며 웃어넘겼다. 그는 ‘소설가 남편 관리를 충실하게 하는 내 순한 아내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책에 넣었다. 작품 곳곳엔 아름다운 섬과 항구들을 배경으로 농어회, 자연산 전복, 자리돔물회, 꽃게탕, 가자미회무침 등 각종 별미가 등장한다. 여행 책자로도 손색없을 정도. “한 편의 영화를 찍는다는 생각으로 영상미를 살렸습니다. 책에 소개된 장소들을 답사하며 주인공의 대화를 되짚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겁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식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마침 한식을 다룬 노래도 많거든요. 이런 곡들로 ‘한식 콘서트’를 만들고 싶었죠.” 오세종 서울시합창단장(64·사진)은 23, 24일 오후 7시 반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체임버홀에서 ‘시골밥상 콘서트’를 여는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콘서트 순서를 보면 군침이 절로 돈다. ‘꽁보리밥’ ‘내 사랑 김치’ ‘월드비빔밥’ ‘산낙지를 위하여’ ‘냉면’ ‘자장면’ ‘막걸리’ ‘메밀묵 사려’ 등 맛난 음식이 가득하다. 메뉴판을 보는 듯하고, 이런 곡들이 실제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음식과 관련된 곡을 찾느라 여러 작곡가에게 전화도 하고 여러 자료도 살펴봤지요. 음식 노래가 많아 저도 놀랐습니다.” ‘내 사랑 김치’는 가사만 봐도 정겹다. ‘아무리 풍∼성한 식탁이∼라∼도 김치가∼ 없∼으면 밥맛이 밥맛이 정∼말 밥맛이 없어∼요’라고 시작해 중반에는 배추김치 하얀백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갓김치 나박김치 등 김치 종류를 바쁘게 나열한다. 반면에 ‘시래기’는 사뭇 진지하다. ‘껍데기라∼고 얕보지 말∼라 함부로 함∼부로 얕∼보지 말∼라 정월이라 대보름날 오곡밥에 아홉 가지 묵은 나물 중에 시래기가 으뜸 아니던∼가.’ “작사가 탁계석 씨가 직접 식당 주인장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해설에 나섭니다. 저는 객석으로 내려가 ‘좋다’ ‘캬∼ 시원하다’ 등 추임새를 넣죠.” ‘그림의 떡’에 그치는 공연은 아니다. 막걸리 제조회사 ‘천둥소리’의 지원을 받아 하루 200병씩 총 400병의 막걸리를 공연 뒤 관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예정. 24일에는 인근 고깃집에서 열리는 뒤풀이에 관객들을 초대할 계획이다. 오 단장의 이색 합창 공연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오 단장은 그해 5월 비보이와 함께하는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비보이와 만나다’를 무대에 올렸고, 12월에서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부를 때 관객 400명이 함께 일어나 합창하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관객들이 합창 공연은 재미있거나 특이하지 않으면 선뜻 보려 하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고민이 많죠.” 내년 1월 임기를 마치는 오 단장은 서울시합창단이 “확 변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단다. “우리 합창단이 경직돼 있고, 몸과 마음이 풀리지 않았어요. 아직 악기(단원)를 클리닝하는 과정이에요. 앞으로 더 맑고 깊은 화음을 선사할 수 있을 겁니다.” 02-399-1779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고은 시인(78·사진)이 지난달 24일 미국 ‘컨템퍼러리 아츠 에듀케이셔널 프로젝트’가 주관하는 ‘아메리카 어워드’의 2011년 수상자로 선정됐다. 1994년에 제정된 이 상은 세계문학에 기여한 문인에게 주어지는 공로상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와 포르투갈 작가 조제 사라마구 등이 받았으며 아시아 문인으로는 2003년에 수상한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 이후 두 번째다. 고 시인은 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상반기에 시집 두세 권을 낼 예정으로 작업 중이어서 시상식에는 못갈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수많은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 봤지만 신랑이 부케를 들고 있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나이 쉰의 노총각 신랑은 그제야 슬며시 동갑내기 신부에게 부케를 건넸다. 축가를 맡은 가수 안치환 씨는 “파격적인 결혼식이니 저도 신나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라며 직접 기타를 들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했다. 150여 석 좌석과 식장 뒤, 양옆을 가득 메운 300여 친척과 문우들도 박수를 치며 따라 불렀다. 흥겨운 한바탕 잔치였다. ‘문단의 대표 노총각 시인’인 함민복 시인(50)이 동갑내기 제자 박영숙 씨를 아내로 맞았다.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학연금회관 2층. 결혼식장 앞에는 이육사문학관이 보낸 ‘문단의 쾌거’라고 쓰인 화환이 하객을 맞았다. 함 시인은 7년 전 경기 김포시에서 시창작교실 강의를 하다 수업을 들으러 온 신부를 만났다. 2년여 전부터 인천 강화군에서 함께 살다 이날 뒤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구순인 신부의 어머니가 5남 5녀 중 막내인 신부의 결혼식을 꼭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 1988년 등단한 그는 ‘말랑말랑한 힘’ 등 4편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 가난과 외로움 등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서정적 시로 주목을 받았다. 1996년엔 월세방을 구해 강화 동막해변으로 들어갔다. 홀로 외딴곳에서 생활하며 시 창작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에 문우들은 걱정이 컸다. 그래서인지 식장을 찾은 문인들은 묵은 근심이 다 풀리는 듯 환한 모습이었다. 김요일 시인은 “강화도에 가면 혼자 사는 노총각이 궁상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 여름에 가도 추워 보였다. 결혼을 하니 내 마음이 더 따뜻해지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시인인 아내 김소연 씨와 함께 온 함성호 시인은 “결혼은 안하고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데 실수를 한 것 같다”며 농담을 건넸다. 이 말이 좀 미안했던지 함 씨는 곧바로 “결혼 이후에는 더 따뜻한 시가 나오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이날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소설가 김훈 씨의 주례였다. 김 씨는 “아침에 나올 때 주례를 하러 간다고 했더니 아내가 ‘당신 자신이 좀 새로운 인간이 되라’고 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신랑 신부는 강화에서 인삼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6개월 동안 가게를 보면서 딱 두 번 팔았다는군요. 매출은 7만1000원. 제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했죠. 그런데 그중 한 번은 손님이 카드로 계산하려고 하는데 (함 시인이) ‘매출도 적은데 수수료 때문에 안 된다’고 해서 현금으로 받았대요. 그래서 제가 ‘그건 잘했다’라고 했죠.” 김 씨는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주례를 마쳤다. 시인 이정록 씨는 축시 ‘우주의 놀이’를 낭독했다.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새싹 신랑신부의/영원한 소꿉놀이입니다./사랑사랑, 배냇짓 춤입니다./화촉을 밝히는 순간,/태초가 열립니다. 거룩한/우주의 놀이가 탄생합니다’ 이날 장석남 박형준 권대웅 우대식 유정룡 이문재 조동범 손택수 문태준 씨 등 시인 소설가 70여 명이 식장을 찾았다. 식이 끝난 뒤 함 씨 부부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처음 비행기를 탄다는 신랑 함 씨의 얼굴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시종 환했다. “남들은 20, 30년 전 한 건데 쑥스럽네요. 문단엔 아직 노총각인 분이 꽤 있어요. 40대 노총각에게는 희망을 주고, 50대 후반 이상 분에게는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은 대한제국 말기 우리 역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 작품이 주목한 것은 면암 최익현(1833∼1907). 한반도가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역사적 격동기, 실천하는 지성으로 활동했던 면암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일본이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키자 면암은 제자들을 불러 모아 나라의 위기를 알린다. “왜국과 같이 작은 나라가 노서아와 같은 큰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아시아를 평정하자는 속셈인데…, 그것이 바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아니하고 조선을 집어삼키겠다는 흉계가 아니냐.” 같은 달 일본의 전쟁 수행에 대해 대한제국이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한일의정서가 체결되자 면암은 경운궁 앞에서 상소를 올린다. “온 나라의 땅덩이를 왜적들에게 송두리째 내주고자 하시지 않고서야 어찌 그와 같은 망국의 의정서가 맺어질 수 있습니까.” 팩션의 상상력은 이 광경을 지켜본 이토 히로부미가 경외감을 느끼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일본이라면 상급 무사에게 언성만 높여도 그 자리에서 살해되는데 임금에게 직언상소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게 조선이 50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법도인가.’ 단호하고 강건한 인물로 그려지는 고종 황제, 확고한 신념의 충신으로 그려지는 충정공 민영환의 모습도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1905년 11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이야기는 빠른 호흡으로 전개된다. 면암은 1906년 6월 전북 정읍시 무성서원에서 임병찬 등 800여 명과 함께 의병출정식을 갖는다. 총이나 칼을 든 의병도 있었지만 죽창이나 낫을 든 유생이 태반이었다. 면암은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지 못한다면, 놈들에게 유린당하기 전에 먼저 싸워 죽는다면, 악귀가 되어서라도 기어코 원수 놈들에게 이 땅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결연히 다짐했다.의병군은 정읍, 순창에 의병기를 꽂으며 승승장구했지만 곡성 인근에서 대규모 군대를 만났다. 일본군이 관군을 앞세우고 의병들을 맞은 것이다. 몇 차례 교전 후 고심하던 면암은 “이젠 총칼을 버려야겠다”고 말한다. 나라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댈 수는 없다는 고뇌에 찬 결심이었다. 의병은 자진 해산했고 면암과 그의 제자 13명은 일본군 헌병대에 투항했다. 면암은 일본 쓰시마 섬에 유배됐지만 그의 우국충정마저 꺾을 수는 없었다. 면암은 그곳에서 식음을 전폐하다 유배 5개월 만에 74세의 나이로 순절했다. “아침에 일어나 북두를 바라보고 임금님 계신 곳에 절하고 나니, 흰머리 오랑캐의 옷자락에 분한 눈물 쏟아져 흐르는구나. 만 번을 죽는다 한들 어찌 부귀를 탐하리요….” 면암이 남긴 통절의 마지막 말이었다. ‘조선왕조 500년’ ‘난세의 칼’ 등 역사소설을 써왔던 저자는 “1905년 당시 수많은 애국지사가 있었지만 논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면암 선생만 한 분이 없었다. 쓰시마 섬에서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아사(餓死)하신 것은 지식인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소설은 역사만 가르쳐서는 안 되고 국가관, 국가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이 소설이 젊은 세대들뿐만 아니라 정치가들에게도 우리나라의 근본정신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박범신 씨(65·사진)가 중국의 거대 문학시장을 뚫는 첨병 역할에 나섰다. 신작소설 ‘비즈니스’를 중국 계간지 ‘샤오숴제(小說界)’와 국내 계간지 ‘자음과모음’의 지난해 가을, 겨울호에 선보인 그는 지난해 12월 이 소설의 단행본을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출간하는 실험에 나섰다. 자음과모음에 따르면 출간 3개월여 만에 ‘비즈니스’ 중국어판 초판 1만 부가 거의 판매돼 2쇄 인쇄에 들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박 씨는 1월 중국의 후난런민(湖南人民)출판사와 ‘외등’ ‘은교’ ‘킬리만자로의 눈꽃’ ‘죽음보다 깊은 잠’ ‘숲은 잠들지 않는다’ 등 작품 5편에 대한 출판 계약을 했다. 작품당 선인세는 3000달러, 인세는 1만 부까지 6%, 1만∼2만 부 7%, 3만 부 이상 8%다. 외국 작가들의 선인세가 보통 2000달러 내외에 그치는 점을 감안하면 후한 대우다. 박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소설 ‘고산자’도 출판될 예정이어서 ‘비즈니스’까지 더하면 작품 7편을 한꺼번에 중국에 선보이게 된다. 한국 작가가 중국 현지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고 다수의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처음 선보인 ‘비즈니스’가 중국 평단의 호평을 받은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 작품은 서해안의 방조제 공사로 인해 새로 들어선 도시가 급성장하며 사회 계층 간 갈등과 천민자본주의가 고개를 드는 과정을 그린 사회비판소설. 중국 ‘샤오숴제’의 웨이신훙(魏心宏) 문학평론가는 “이야기와 주제가 중국의 현 실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대중의 정서에 잘 부합된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성취한 소설”이라고 평했다. 박 씨도 직접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다른 문인들이 대부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중국에 한국문학을 알려온 반면 박 씨는 중국 메이저 출판사인 상하이문예출판공사와 직접 계약을 하고 현지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이 출판사는 1월 베이징국제도서전에 박 씨를 초청해 기자간담회를 여는 등 ‘비즈니스’를 자사의 주력 상품군에 포함시켰다. 박 씨는 5월쯤 다른 작품이 소개될 때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독자 이벤트 등에 참여할 예정이다. 박 씨는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중국소설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현지 반응이 좋다. 중국에 드라마로 한류가 불었듯이 문학에서도 한류가 불 수 있다”고 말했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문학시장도 거대하다. 국내 소설 베스트셀러의 경우 100만 부를 넘으면 대성공으로 부르지만 중국은 3000만 부 내외가 팔려야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 이 시장을 잡기 위한 노력도 커지고 있다. 중국에 수출된 한국 출판 저작권 수는 2006년 110건에서 지난해 660건으로 4년 만에 6배 늘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소개된 국내 문학작품도 2006년 11건에서 지난해 22건으로 두 배 증가했다. 그러나 중국 문학시장 공략이 쉽지만은 않다. 계약을 한 뒤 검열 때문에 출판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임후성 21세기북스 문학주간은 “김훈 씨의 ‘칼의 노래’가 2년 전 중국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했다가 결국 출간이 힘들어진 예에서 보듯 소설 내용에 제한이 많다”고 말했다. 저작권 에이전시인 실크로드의 고혜숙 대표는 “한국 문화나 콘텐츠를 중국어로 맛나게 옮길 만한 현지 번역 인력이 크게 부족한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에서 근승랑(본명 이종승) 사진작가가 법정 스님 1주기를 맞아 마련한 ‘비구, 법정 추모 사진전’ 개막식이 열렸다. 최근 법정 스님 헌정 사진집 ‘비구, 법정’(동아일보사)을 펴낸 작가가 법정 스님의 생전 모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연 자리였다. 이 전시에는 사진집에 실린 18점 외 2005년 부처님 오신 날에 법정 스님이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모습 등 12점을 추가해 모두 30점이 전시됐다. 길상사 관음상을 조각한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사진이) 한 점, 한 점 그냥 흘려보내기가 어렵게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인 작가는 2004년 6월부터 7년여 동안 길상사와 법정 스님의 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작가는 “스님의 무소유와 선택한 가난, 그리고 수행자의 결기를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으나 당신을 이해하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아 쉽게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법정 스님의 유지를 받드는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의 새 이사장으로 선출된 현장 스님도 전시회를 찾았다. 법정 스님의 외조카인 현장 스님은 “(법정 스님의) 1주기를 맞은 마당에 여러 물의를 일으켜 심려를 끼친 데 사과한다”며 “법정 스님을 가까이 모시면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베이징 만월사 주지 진명 스님, 길상사 전 주지 덕조 스님,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전시회는 무료로 8일까지 열리며 사진집 수익금은 맑고향기롭게에 기부한다. 02-734-7555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서울역사박물관이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겪은 서울의 역사를 담은 ‘지역조사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문헌 조사와 거주자 인터뷰 등을 통해 이태원, 세운상가, 서촌, 아현동 일대 등 4곳의 ‘동네 변천사’를 담았다. 광복 이후 서울 시내 대표적인 유흥 지역으로 성장한 이태원은 1990년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다국적 거주 공간의 모습도 띠게 된다. 90년대 중반 이슬람중앙성원에서 도깨비시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조선족 등 중국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에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권 국가에서 온 산업연수생들의 정착이 늘었고,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 나이지리아, 가나 등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각기 다른 인종, 문화의 사람들이 밀집한 이태원은 한국에서 외국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이색적인 거리가 돼 이곳을 찾는 한국인도 늘고 있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산업화 부흥을 타고 기계·금속·인쇄 등 영세 상가들의 밀집촌이 형성됐으며 최근에는 인쇄산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서촌은 청와대와 인접해 있어 개발이 제한돼 주민들의 원성이 컸지만 지금은 보존된 한옥과 골목길이 관광 자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1960, 70년대 부촌으로까지 불리던 아현동 일대는 개발이 정체돼 대표적인 서민동네가 됐지만 최근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다시금 변모하고 있다고 책은 분석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김숨 씨(37·사진)가 소설집 ‘간과 쓸개’(문학과지성사)를 냈다. 2007년 ‘침대’ 이후 4년 만의 소설집이다. 아홉 편의 단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힘없고 병든 사람들의 얘기를 담담하게 풀어간다. 애써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천불을 꾹꾹 누르고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이다. 단편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에는 35년간 버스정류장 간이매표소에서 껌이나 우유를 팔던 엄마 얘기가 나온다. 위를 반 정도 잘라내 아주 조금밖에 먹지 않고, 배설할 때만 밖에 나올 정도로 운동량이 적어 두 다리가 홍학처럼 가늘어진 엄마다. ‘간과 쓸개’에서는 간암을 앓는 아버지가 투병하는 모습이 쓸쓸하게 그려진다. 김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질병이 우리 가까이에 있듯 죽음도 그런 것 같다. 고요한 듯하지만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응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지방에 살면서 서울을 오가며 치료받는 간암에 걸린 노인, 뱀장어 식당에서 뱀장어 손질하는 일을 하는 왜소한 할아버지 등 작가가 그려낸 노년 세대는 그 우울한 숨소리가 들릴 듯 생생하다. 30대 중반인 작가가 어떻게 그려낸 걸까. “저는 또래보다 어르신들하고 대화가 더 잘돼요. 동네 할머니들하고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시장 가서도 어르신들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듣는데 소설보다 재미있어요.” 아픈 얘기를 건조하고 무덤덤하게 단문으로 끊어 쓰는 스타일은 여전하다. 가장 인상 깊은 한 구절을 꼽아 달라고 했더니 ‘간과 쓸개’의 한 부분을 들려줬다. ‘죽은 귀뚜라미들 속에서 저 홀로 악착같이 살아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끔찍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살아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구차스럽고 징글징글하기만 하였다.’ 죽음을 앞에 둔 간암 환자가 죽은 동료들 틈에서 버둥거리는 귀뚜라미를 보며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대목이다. 묘사는 세세하지만 결말은 대개 미완으로 종결된다. 아픔은 파멸이나 치유, 그 어느 쪽에도 안착하지 않는다. “워낙에 삶 자체가 부조리하고 모호하고 결국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소설의 결말도 자유롭게 남겨두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김인혜 서울대 음대 교수(49·여)가 제자 폭행 혐의로 지난달 28일 학교에서 파면되면서 불합리한 음대 교육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만난 음대생과 음대 졸업생들은 “교수의 폭행은 흔한 일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음대생이 레슨비와 졸업 논문비 요구, 연주회 표 강매 등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몹시 힘들어한다”고 증언했다. 음대생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로는 레슨비가 꼽힌다. 수업 중에 받는 레슨은 등록금에 포함돼 있지만 교수들이 ‘별도의 레슨이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하는 일이 잦다고 학생들은 호소했다. 유학이나 콩쿠르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요청하는 형식으로 별도 레슨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학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교수가 “레슨 나오라”고 하면 사실상 거부할 방법이 없다고 학생들은 설명했다. 》이화여대 음대 대학원 졸업생 A 씨는 “레슨은 주로 방학 중에 이뤄지는데 교수가 오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 담당 교수가 ‘너는 실력이 미흡하니 더 배워야 한다’는데 거부할 수 있는 학생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추가 레슨비는 시간당 15만∼30만 원 선. A 씨는 “20만 원을 봉투에 넣어드리면 (적다고) 돌려주는 교수도 있다. 어떤 교수는 ‘너 뭔가 잘못 알고 있다. 레슨비 이 정도 아니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교수들은 현금으로 레슨비를 받지만 세무 당국에 이를 신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연스럽게 탈세까지 이뤄지는 셈이다.교수들에게 주는 고가의 선물도 대다수 음대에서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고 학생들은 말했다. 중앙대 음대생 B 씨는 “선물은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것만 세 번이다. 지도교수님 생신, 스승의 날, 교수님 연주회다. 클래스가 10명이어서 5만 원씩 걷어 해외 명품 머플러를 해드렸더니 교수님이 굉장히 좋아하시더라”라고 말했다. 연세대 음대생 C 씨는 “5만 원짜리 상품권을 드렸더니 ‘조카 세뱃돈으로도 15만 원을 준다’라며 기분 나빠한 교수도 있었다”고 전했다.선물 외에 학부모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목돈을 내기도 한다. 서울대 음대 졸업생 D 씨는 “(교수의) 라인을 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돈을 걷어서 교수 방의 소파, 에어컨을 바꿔주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교수가 논문심사를 하며 학생에게 수십만 원씩 돈을 받는 경우도 흔한 사례로 꼽혔다. 일부 대학에서 공식적인 논문심사비를 받기도 하지만, 이와는 별도의 개인적인 ‘심사 수고비’다. A 씨는 “돈을 주지 않으면 논문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데 차라리 돈을 주는 게 낫다. 주로 케이크를 준비해 돈 봉투를 넣는다”고 전했다.자신의 공연 티켓을 학생에게 대량으로 파는 경우도 관례로 통했다. 한양대 음대 대학원생 E 씨는 “공연 티켓의 경우 교수가 ‘몇 장 필요해’라고 물으면 (필요 없는데도) ‘5장 이상 주세요’라고 말한다. 독주회는 표 값이 1만∼2만 원이지만 여러 명이 출연하는 콘서트의 경우 10만 원까지 해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교수 방을 청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톨릭대 음대생 F 씨는 “주로 저학년들이 조를 짜서 한다. 음대 기강도 바로잡고, 교수님 편의도 봐드리는 일이다. 불합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 학교 문화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음대생들이 이처럼 교수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음대 특유의 폐쇄된 교육시스템이 꼽힌다. 음대는 입학과 동시에 지도교수가 정해지면 졸업까지 4년 내내 한 교수의 지도를 받는다. 교수는 학생의 학점뿐만 아니라 콩쿠르, 유학, 취업 등 학생의 장래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학생은 지도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불이익을 당할까 봐 내색할 수 없다. 한 음대생은 “교수는 음대생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거역할 경우 음악계를 떠나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음대생도 “교수의 인격이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지도교수를 바꾸겠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완전히 ‘찍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잘 보여야 하고, 힘들어도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들은 바 없는데…” 대학당국은 뒷짐만 ▼개인간 레슨 파악 어렵고 금품수수 처벌 규정도 없어음대생들이 교수들에게 원하지 않는 레슨을 받으며 금품을 바치거나 개인적 시중을 들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하는 데는 음대와 대학 당국도 책임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취재에 응한 음대와 대학 모두 이 같은 현실에 대한 기본적 실태 파악조차 외면하고 있었다.서울대 음대 행정실장은 “교수가 다른 학교에 가서 강의할 때는 학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을 정규수업 외에 가르치는 것에는 별도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시간에 교수가 실기 지도를 하는 일은 있지만 별도의 돈을 받고 수업 외 레슨을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이화여대 음대 행정실 측도 “과에서 전공 실기 향상을 목적으로 교수와 학생이 MT식으로 레슨을 가는 일은 있다. 하지만 교수와 학생이 (개인적으로) 별도 레슨을 하는 것에 대해서 학교 측이 신경 쓰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레슨은 교수와 학생 사이에 개인적으로 이뤄지고, 시기 또한 주로 방학에 집중되기 때문에 학교 측이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음대에 만연한 레슨비나 선물 등에 대해 별도 규정이나 실태 파악이 없어 문제가 불거진 다음에야 사태 수습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서울대가 이번에 파면한 김인혜 교수에게 적용한 규정도 학교 전체나 음대의 별도 기준이 아닌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청렴의무 △국가공무원법 제63조 품위유지의무 등 국가공무원법 위반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한 교수는 “서울대나 한예종 등 국립대는 국가공무원법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다른 사립 음대의 경우 처벌이 가능할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는 학교로부터 월급을 받기 때문에 학생이 수업 외에 배운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대가 없이 가르치는 게 맞다. 선물이나 레슨으로 학생을 노예처럼 부리는 교수들의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교수들 스스로도 (불합리한 음대 현실에 대한) 양심 선언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취업문 넓은 외국선 ‘교수독재’ 상상못해 ▼한국 특유 ‘연줄-간판문화’ 한몫유럽과 미국 같은 예술 선진국도 음악인을 양성하는 교육제도 자체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합대학에 음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음악전문교육기관(콘서버토리)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교수가 지위를 악용해 학생에게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횡포를 부리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게 유학생들의 전언이다.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 많은 음악인은 음대생들의 진로가 한정돼 지도교수에게 온전히 장래를 맡길 수밖에 없는 한국 특유의 구조를 꼽았다. 유럽이나 북미의 경우 사회 음악교육이 발달했고 이는 대부분 초중고교나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진행돼 수많은 음악교육인을 필요로 한다.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오페라극장이 있어 실력에 따라 단원으로 취업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제한된 수의 교직이나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진로가 한정돼 있고 채용 경로도 교수들의 학맥과 인맥에 의지하기 때문에 교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독일에 유학 중인 30대 음악인 M 씨는 “유럽에서는 지자체나 학교에서 이뤄질 수준의 음악교육도 한국에서는 사적인 레슨 형태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학생이 어릴 때는 갓 음대를 졸업한 이른바 ‘새끼선생’이 레슨을 하다 이후 학맥으로 엮인 강사급 음악인에게 인계하고, 고등학교 때는 같은 학맥의 교수에게 ‘넘기다’ 보니 그 학교 파벌에서 찍히면 레슨조차 쉽지 않다는 것. M 씨는 “한국에서는 오케스트라 등의 오디션도 형식적이고 실제로는 학맥 위주로 뽑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한국의 치열한 입시경쟁도 이유로 꼽혔다. 한국에서 음대를 가는 학생은 대부분 부모의 뜻에 따라 어릴 때부터 레슨을 받는다. 대입을 앞두고는 시험곡만 집중적으로 연습한다. 결국 연주 실력은 비슷비슷해지고 심사위원의 주관이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 학부모로서는 그 학교 교수에게 불법적인 과외라도 받게 해 합격의 가능성을 높이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학생이 교수에 종속된다.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한 40대 초반의 음악인 K 씨는 “불법 레슨의 가격을 올려놓고 교수에게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식을 더 유리하게 만들고 싶은 부모”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류원식 기자 news@donga.com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2004년 6월 취재차 길상사에 갔다가 큰 인상을 받았어요. 요정이던 곳이 김영한 씨의 기부로 절로 변하고, 그곳에서 스님과 불자들이 공양하는 모습을 봤죠. ‘나눔의 요체’인 길상사의 모습을 앵글에 담고 싶었습니다.” 법정 스님 1주기(28일)를 맞아 이번 헌정 사진집을 낸 저자(본명 이종승)는 길상사와 법정 스님을 찍게 된 연유를 이렇게 밝혔다.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으로 근무 중인 저자는 취재 이후 매일 길상사를 찾아 108배를 한 뒤 스님과 불자들을 찍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오전 5∼6시에 길상사에 들렀고 일요일이면 거의 하루 종일 머물렀다. 2008년 2월까지 이 생활을 반복했고, 업무상 지속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틈이 날 때마다 들렀다. 당시 길상사 주지였던 덕조 스님은 저자에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와 사진을 찍는 것 같다”며 ‘일여(一如)’라는 불명(佛名)을 주기도 했다. 저자의 블로그(www.urisesang.co.kr)에는 길상사의 사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가 찍은 길상사와 법정스님 사진은 수만 장에 달한다. “매번 다르게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게 고민이었죠. 하지만 3, 4년쯤 지나자 예전에 보지 못하던 법정 스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뒷짐을 지고 손가락을 튕기는 버릇이 있던 거친 손, 풀을 먹여 빳빳하게 날을 세운 행전(종아리에 차는 헝겊) 등 법정 스님의 모습은 한참 뒤에야 앵글에 담을 수 있었다. 사진집에는 고르고 고른 법정 스님 관련 사진 18점이 동영상 DVD와 함께 들어있다. 판매수익금은 법정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활동하는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에 기부하기로 했다. 3월 2∼8일 ‘법정 스님 입적 1주기 사진 전시회’를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02-734-7555)에서 연다. “법정 스님의 모습을 담으려는 여러 사진기자가 있었지만 스님은 ‘사진을 찍지 마라’고 제지하기도 하셨어요. 그런 스님이 왜 저에게만 촬영을 허락하셨는지 아직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자는 요즘 전국을 돌며 사찰을 찍고 있다. “길상사를 보면 ‘나눔’이 떠오르듯 사찰을 통해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싶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가을 밤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띄운다. “당신과의 23년 세월, 세월이 쌓일수록 당신을 아내로 얻었음을 감사하게 되오. 당신도 나를 남편으로 얻었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을까 봐 두렵소.” 소설가 조정래 씨는 아내인 김초혜 시인에게 절절한 연애편지를 띄웠다. 1985년 9월 22일 쓴 편지 말미에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할 당신의 남편 정래’라고도 남겼다. 소설가 박범신 씨가 부인 황정원 씨에게 1971년 12월 6일 보낸 편지는 진지하면서도 익살맞다. “그렇다. 우린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은 우리가 백번 겸손해도 좋을 만큼 깊고 뜨겁고 목이 멘다. 목이 멘다.(꾸룩…꼬르룩- 목이 메는 소리)” 농담을 섞어가며 아내를 편안하게 만드는 재치가 눈에 띈다. 책은 문인, 화가 등 예술가들이 쓴 친필 편지 49점을 소개한다. 예술가들의 사랑, 우정 등 작가의 내밀한 생각이 편지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는 “편지는 일인칭으로 쓰인 작가의 육성이고 내면 소리의 직역본(直譯本)”이라고 말한다. 김상옥 시인은 딸에게 “공부도 소중하지만, 몸이 더 소중하니 부디 몸조심하여라”라고 말하고, 김남조 시인은 신달자 시인에게 “아기가 그새 많이 자랐겠지. 산후에 보내준 편지 받고 한번 가보고 싶어서 쉬이 가보리라는 생각으로 답장도 못 썼었어”라고 정감어린 글을 전한다. 지난달 별세한 박완서 소설가가 2005년 11월 12일 이해인 수녀에게 쓴 편지는 너무 솔직해서 아프게 다가온다.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 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고인은 이해인 수녀의 시집 ‘민들레영토’의 출간 30주년을 맞아 보낸 글에서 1988년 남편과 외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린 아픔을 솔직히 밝히고 그간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런 저에게 수녀님의 존재, 수녀님의 문학은 제가 이 지상에 속해 있다는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지상에 속했고, 여러 착하고 아름다운 분들과 동행할 수 있는 기쁨을 저에게 가르쳐준 수녀님 감사합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서른 살 전후 젊은 여성 소설가 일곱 명이 비를 주제로 쓴 중·단편 소설을 한데 묶었다. 이들이 본 비의 모습은 무지개처럼 다양하다. 윤이형은 ‘엘로’에서 “더 조그맣고 투명했고, 무엇보다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탱글탱글 맺혀 있었다”며 마법과 같은 비의 모습을 상상해냈고, 김이설은 ‘키즈스타플레이타운’에서 세찬 폭우가 몰아치는 날 아버지가 방 안에서 딸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묘사하며 비의 무섭고 폭력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낮의 햇살은 봄볕처럼 따사로웠다. 정원에는 앵두나무, 박태기나무, 모란, 할미꽃들이 새봄이 오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돌보던 안주인은 뜰에 나서지 않았다. “잡초의 생명력은 대단해. 사시사철 나는 잡초들이 다 달라” 하며 살뜰히 정원을 가꾸던 고(故) 박완서 선생. 고인이 없는 정원은 봄의 기운이 움트는 날에도 허전해 보였다.》 박완서 선생이 생전 살갑게 돌봤던 경기 구리시 아천동 집을 찾았다. 생전에 고인의 도움을 받았던 장애재활기관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이사가 인사차 나선 길에 동행한 것이다. 지난달 22일 고인이 80세의 나이로 타계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아차산 자락의 ‘아치울 마을’로 불리는 주택가에 자리 잡은 노란 2층집은 박 선생이 1998년 새로 지어 13년 동안 살았던 공간이다.“어머니는 집을 지으면서 ‘혼자 살고, 내 맘대로 살겠다’고 하셨죠. 분홍색으로 칠해 달라고 공사를 맡은 이에게 말씀하셨는데, 그쪽이 고집이 있었는지 마음대로 노란색으로 칠했어요.” 고인의 장녀인 수필가 호원숙 씨(57·사진)가 외벽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살다가 맘에 안 드시면 분홍색으로 다시 칠해 주겠다”는 약속을 들었지만 고인은 “노란색도 괜찮다”며 다시 손보지 않았다.정갈한 집안에서 가장 눈에 띈 곳은 1층 현관으로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고인의 작업실. 별 문이 없이 거실 한편에 위치한 작업실은 고인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창이 없는 쪽의 세 벽면을 채운 책장에는 책이 가득했다. 책상 위 데스크톱과 랩톱 컴퓨터, 프린터기와 팩스에 눈길이 갔다. “어머니가 원고지에 글을 쓰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는 데도 뒤처지지 않으셨어요. 외부에 나갈 때 쓰는 작은 랩톱도 따로 있었고, e메일도 초기부터 사용하셨죠.” 호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안 배치를 바꾸지 않아 고인이 생활하던 공간 그대로라고 했다. 달라진 것은 책상 위 벽에 걸린 고인의 영정과 책상 위에 놓인 금관문화훈장, 초와 향뿐이었다. 영정 속에서 고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머니가 평소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요. ‘내가 참 행복했을 때 사진 같다’고요.” 고인이 30여 년 전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살 때 김종구 사진작가가 찍은 작품으로, 김 작가의 사진전시회에 갔다가 구입했다.평소 고인이 즐겨 마시던 따스한 홍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호 씨와 마주 앉았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어머니는 (임종 직전) 많이 호전됐었어요.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내가 많이 회복돼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죠. ‘봄에 꽃 피면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시기도 했어요.”유언은 없다고 했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남은 친필 원고도 없고, 컴퓨터에 저장된 미발표 작품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고인은 10여 년 전부터 일기를 썼다고 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많은 예감을 하신 것 같아요. 일기는 거의 매일 쓰셨는데 (지난해 10월) 병원에 입원한 뒤에는 쓰지 않으시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마지막으로 쓰셨죠.”호 씨는 어머니의 사생활을 밝히기 죄송스럽다며 일기를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것을 먹고, 미장원에 가고 그런 일상사였어요. 돌아가시기 이틀 전 일기에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셨죠.”고인은 2007년부터 푸르메재단에 매달 기부금을 냈고 신간이 출간되면 목돈도 쾌척했다. 백 이사는 “2006년 일면식도 없던 상태에서 드린 원고 청탁을 흔쾌히 들어주셨고, 먼저 기부 의사까지 밝히셨다”고 말했다. 백 이사는 고인에 대한 글과 그림을 담은 ‘동아일보 스포트라이트’(1월 26일자)를 동판으로 만들어 호 씨에게 건넸다. 5월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들어서는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에 고인의 이름을 딴 ‘박완서 치료실’도 만들 예정이다.구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MOVIE◆블랙스완순수한 ‘백조’와 치명적인 매력의 ‘흑조’ 역을 연기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 주연으로 선발된 발레리나 니나는 테크닉과 아름다움을 겸비했지만 뭔가 부족하다. 발레단장은 니나에게 내부의 성적 욕망을 끌어내 관객을 유혹할 수 있어야 ‘흑조’역을 소화할 수 있다고 다그친다. 여기에 성적 매력이 넘치는 동료 발레리나 릴리가 흑조 배역을 호시탐탐 노린다. 니나는 흑조가 되기 위해 마약과 술에 손댄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내털리 포트먼, 밀라 쿠니스, 뱅상 카셀 출연. 24일 개봉. 18세 이상.20자평: 아름다움과 광기의 합주곡, 내털리 포트먼의 치명적인 매력만으로도…. ★★★★ (이상용)현대 여성의 욕망을 시리도록 무섭게 드러낸다. ★★★★ (정지욱)◆더 브레이브14세 소녀 매티는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무법자 톰 채니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젊은 시절 악명 높았던 연방보안관 코그번을 고용해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술주정뱅이 코그번은 매티를 계속 실망시키고, 여기에 현상금을 노린 텍사스 특수경비대원 라뷔프까지 가세해 무법자 톰 채니를 잡기 위한 위험한 동행에 합류한다. 티격태격하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사람이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숨 막히는 추격전을 펼친다. 이선 코언, 조엘 코언 감독. 맷 데이먼, 제프 브리지스, 해일리 스타인펠드 출연. 24일 개봉. 15세 이상. 20자평: 뻥쟁이 무법자와 간 큰 딸내미의 복수혈전. ★★★ (정지욱)소녀 주인공이 코언 형제의 총명함을 다 가져갔나? ★★☆ (민병선 기자)◆아이엠 넘버 포타 종족을 학살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잔혹한 모가도어인. 침략당한 로리언 행성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9명의 초능력자를 지구로 탈출시킨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지구인 틈에서 조용히 살아왔지만 모가도어인이 지구까지 쫓아와 그들을 순서대로 죽인다. 1, 2, 3번이 세계 곳곳에서 잡혀 제거됐고 이제 4번의 차례.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살아가던 넘버 포 존 스미스는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닥친 걸 알고 자신의 위대한 유산인 초능력으로 운명에 맞서기로 한다. D J 카루소 감독. 알렉스 페티퍼, 티머시 올리펀트, 테레사 파머 출연. 24일 개봉. 12세 이상.20자평: SF 영화를 가장한 청소년 성장 이야기. ★★☆ (정지욱)속편이 뻔히 예상되는 초능력자 시리즈의 무한 반복 ★★ (민병선 기자)◆센티미엔토 : 사랑의 감각어시장 잡부와 킬러, 두 가지 삶을 살아가는 류의 친구는 나이 든 음향기사뿐이다. 음향기사와 류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류의 침묵까지도 특별하게 느끼던 음향기사는 류의 주변 모든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류는 음향기사에게 사랑을 느끼던 어느 날, 새로운 살인 의뢰를 받게 된다. 와인숍을 운영하는 데이비드를 제거하기 위해 가게로 찾아간 류는 계획과는 달리 그와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낸다. 이사벨 코익세트 감독. 기쿠치 린코, 세르히 로페스 출연. 24일 개봉. 18세 이상.20자평: 이사벨 코익세트의 실추된 감각의 영화. ★★ (이상용)특화된 여성성이 돋보이는 격정 로맨스 ★★★ (정지욱)■ CONCERT◆엘비스 코스텔로 내한공연영화 ‘노팅 힐’의 OST ‘She’를 부른 영국 싱어송라이터 엘비스 코스텔로의 첫 내한공연. 록에서 현악4중주단과의 협업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가 네 대의 기타로 어쿠스틱 공연을 선보인다. 5만∼15만 원. 27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577-5266◆나원주 소극장 콘서트 Vol.1‘자화상’ 출신 싱어송라이터 나원주가 소극장에서 팬들과 만난다. 지난해 말 발표한 3집 ‘올 이즈 세임 인 러브’의 곡을 포함해 과거 발표곡과 자신이 작곡해 다른 가수에게 준 곡들을 선보인다. 4만 원. 25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상상마당 라이브홀. 02-747-1252◆이승환 ‘차카게 살자 season2’10년간 진행해 오다 2009년을 끝으로 멈췄던 이승환의 자선콘서트가 다시 시작됐다. 이승환 국카스텐 윤종신 원모어찬스 장재인 등의 아티스트들이 나와 자선바자회를 열고 파티 형식의 공연을 펼친다. 7만7000원. 26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악스홀. 1544-6399◆포플레이 데뷔 20주년 내한공연재즈밴드 포플레이의 다섯 번째 내한공연. 기타리스트가 척 로브로 바뀌었고 깔끔하고 경쾌한 멜로디로 재정비했다. 지난해 말 발표한 앨범 ‘레츠 터치 더 스카이’의 수록곡 등을 선보인다. 7만7000∼13만2000원. 3월 2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941-1150■ PERFORMANCE◆사랑은 비를 타고 2009년까지 4000회 상연한 인기 창작 뮤지컬. 동생들을 돌보느라 마흔 넘게 결혼 못한 장남 동욱이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는데…. 오은희 작·연출. 최귀섭 작곡. 김성기 김장섭 임춘길 소유진 출연. 2만∼4만 원. 5월 29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02-764-7858∼9◆민들레 바람 되어2008년 ‘연극열전2’ 작품으로 초연돼 10만 관객을 동원한 창작극. 박춘근 작. 김낙형 연출. 조재현 이광기 이한위 김성미 황영희 출연. 3만5000∼4만5000원. 5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02-766-6007◆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 인기몰이를 한 동명의 TV 드라마를 극화했다. 가진 것 없는 노처녀 김삼순의 러브 스토리. 박은혜 작. 정세혁 연출. 김유진 황선화 김해은 이동하 김익 맹주영 출연. 2만5000원. 4월 24일까지. 서울 대학로 상명아트홀 1관. 02-501-7888◆지젤국립발레단이 2002년 이후 9년 만에 무대에 올리는 낭만주의 발레의 대표작.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수석무용수 라에티시아 퓌졸, 마티외 가니오 씨도 주역으로 무대에 선다. 5000∼10만 원. 2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7-6181■ CLASSICAL◆신춘 가곡의 향연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한데 모여 우리 가곡을 통해 봄소식을 전하는 무대. 소프라노 김금희는 ‘동심초’ ‘행복’을, 메조소프라노 백남옥은 ‘목련화’ ‘비목’을, 테너 박성원은 ‘초혼’ ‘농부가’ 등을 선보인다. 연주는 한국심포니오케스트라. 2만∼8만 원. 3월 2일 오후 7시 반.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730-7475◆금난새와 함께하는 실내악 갈라 콘서트지휘자 금난새와 실력파 연주가 11명이 함께 실내악의 정수를 선사한다. 클라리네티스트 마이클 콜린스, 지난해 보르도 국제현악콩쿠르에서 우승한 쳄린스키 현악사중주단 등 출연. 2만∼10만 원. 27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44-1555◆한독 교류음악회 서울그랜드합창단이 독일 캄머필하모니 카메라타 레오폴디나를 초청해 브람스 ‘집시 노래’, 바흐 ‘커피 칸타타’, 슈베르트 ‘G장조 미사’를 선보인다. 소프라노 오주현, 테너 하만택, 바리톤 정건채 등. 2만∼3만 원. 25일 오후 7시 반. 서울 세종로 세종체임버홀. 02-6081-4186◆물-베니스에서 대서양까지 ‘시인 피아니스트’ ‘낭만주의 음악의 대변인’으로 칭송받는 빌리 에디 파리고등음악원 및 리옹고등국립음악원 교수가 물을 주제로 한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선보인다. 드뷔시의 ‘기쁨의 섬’ 등 8곡을 연주. 2만∼5만 원. 27일 오후 7시 반.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 02-3491-2370■ EXHIBITION◆명명할 수 없는 풍경-손정은 전왜곡된 남성권력과 억압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작가의 송곳 같은 시선을 담은 사진과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 ‘무대: 사라진 비밀’ ‘현장: 너는 젊고 아름답다, 3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 02-737-7650◆보이는 운율에 맞춰 춤추다 전불규칙적으로 배열된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운율과 리듬을 살려 전시를 한 편의 시처럼 엮어냈다. 독립큐레이터 오선영 씨의 기획으로 히맨 청, 최승훈+박선민, 최선아, 조은지 씨 등이 참여했다. 3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02-720-5114◆철학자의 나무-마이클 케나 전‘나무는 내 세상의 중심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말하는 사진작가의 나무가 있는 풍경 사진전. 이탈리아 영국 러시아 프랑스 미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찍은 흑백사진들. 3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근혜갤러리. 02-738-7776◆서울 튜더-리처드 우즈 전전통적 목판 기술을 사용해 영국의 고전 장식패턴을 재해석한 작품들. 영국 시골 정원의 정취를 표현한 튜더 스타일과, 동양을 상징하는 버드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새롭게 해석한 패턴을 볼 수 있다. 4월 8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트클럽 1563. 02-585-5022}

《“1979년 베르디의 오페라 ‘팔스타프’의 펜톤 역으로 마에스트로 카라얀 앞에서 오디션을 봤을 때였어요. 그는 섬세한 소리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반가워했죠. 노래가 끝나자 그가 무대로 올라와 나를 껴안으며 말했죠. ‘이제 당신은 카라얀 가수야.’”》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생전 아꼈던 멕시코 출신의 테너 프란시스코 아라이자 씨(61)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마에스트로와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아라이자 씨는 까다롭기로 정평 난 카라얀의 음악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1980년대 테너계 신성으로 등극했고 지금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카라얀에 대해 얘기하자면 별도의 인터뷰를 해야 할 정도로 이야기가 많아요. 지금은 간단히 얘기하죠. 카라얀과 작업하는 것은 순수한 마술과 같아요. 우리의 감추어진 능력마저 끄집어내죠. 대단합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일부에 불과합니다.” 2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 아라이자 씨는 동아일보와 한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22일 방한해 인터뷰를 하기로 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입국이 늦어져 그 대신 e메일을 통해 질문에 답해 왔다. 아라이자 씨는 국내 팬들에게 현재 활동하고 있는 테너 가운데 레제로 테너(가장 가볍고 기교 있는 소리를 내는 테너)의 대부(代父)로 알려져 있다. 타고난 고음과 현란한 기교로 듣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게 특기.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분명히 말하자면 전 레제로 테너가 아니에요. 제 목소리는 부드럽고 가벼운 레퍼토리에 적합한 리릭 테너(서정적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테너)입니다. 무겁고 드라마틱한 곡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1974년 유럽 무대에 데뷔했을 때 평론가와 언론으로부터 ‘모차르트 리릭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1966년 36세의 나이에 요절한 당대 최고의 독일 출신 리릭 테너)의 정통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높은 음역에서 그가 선보이는 부드러운 음색은 커리어를 쌓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세계 3대 테너와 동시대에 활동해 왔지만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 특히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신데렐라’ 등 높은 음역에서의 화려한 기교가 필요한 레퍼토리에서 그는 다른 테너들이 근접하기 힘든 위치를 구축했다. “제 커리어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기 때문에 3대 테너 때문에 실망하거나 서운한 마음을 가진 적은 없어요. 저 자신이 파바로티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고 카레라스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죠.” 모델 뺨치는 외모의 그는 ‘잘생긴 테너’로도 일찌감치 알려졌다. 로시니의 오페라나 공연 실황을 담은 DVD도 특히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 “외모가 도움이 된 건 맞다고 생각하죠. 영화나 TV의 영향력이 상당한 시대잖아요. 다만 개인적으로 외모보다는 카리스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커뮤니케이션과 연기력도 따라줘야 합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그의 미성은 여전하다. 목 관리는 어떻게 할까. “제 학생들에게 ‘최대한 평범하게 살라’고 가르쳐요.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날씨 변화에 잘 맞춰 옷 입고, 운동도 하고 올바른 발성으로 연습도 하라고요. 무엇보다 최소 하루 8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라고 하죠. 술 담배를 멀리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그는 이번 공연에서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잠들지 말라’, 비제의 ‘카르멘’ 중 ‘꽃노래’ 등을 선보인다. 푸치니의 ‘라보엠’ 중 ‘오! 사랑스러운 여인이여’는 그의 제자인 소프라노 정주희 씨와 함께한다. “제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고 레퍼토리를 짰습니다. 솔로곡은 모두 혼돈에 빠진 주인공들의 노래이고 듀엣 곡들만 행복한 느낌의 곡이죠”라고 그는 설명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초청을 받아왔는데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한국 팬들은 성악가들에게 ‘진지하면서 열정적인 관객’으로 이름 나 있어요. 벌써부터 흥분됩니다.” 02-6377-1250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인의 시각으로 새로 쓴다기보다는 보편타당한 기준에서 세계철학사를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서강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2000년 철학아카데미를 설립하며 일반인을 상대로 한 철학 강의에 힘써 온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52·사진)은 최근 ‘세계철학사’(도서출판 길)를 낸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세계철학사는 모두 세 권으로 구성됐으며 이번에는 서양철학을 다룬 1권 ‘지중해세계의 철학’이 나왔다. 동북아, 인도 등의 철학을 다룬 2권 ‘아시아세계의 철학’은 내년 가을, 근현대 동서양의 철학이 영향을 주고받는 양상을 담은 3권 ‘근현대세계의 철학’은 후년에 나올 예정이다. 세 권을 합하면 총 3000쪽이 넘는다.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 원장은 “한국 철학자의 손으로 쓴 최초의 세계철학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철학사를 다룬 국내 책이 많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중국철학사’ ‘서양철학사’ 등 지엽적인 부분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죠. 세계철학사를 다룬 외국 책들도 서양이나 아시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한국 철학자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동서를 가로지르는 세계철학사를 낸 것은 처음이라고 자신합니다.” 출간된 1권 중 중세 이슬람 사상계를 정의하는 부분에서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그의 시각이 나타난다. ‘이슬람세계 자체 내에서도 수많은 정권이 들어서서 서로 전쟁을 벌이곤 했다. 따라서 이슬람세계에서 나타난 모든 사상을 이슬람사상으로 단일화해서 이해한다면, 그것은 동북아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문으로 쓰인 책을 보고 무조건 중국 사상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게 된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지는 않았을까. “그런 점도 의식해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집필할 양도 많았지만 세계철학사 가운데 특정 부분을 넣고 빼거나 분량을 배분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