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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 기간) 걷히지 않을 짙은 정치의 안개가 베이징을 덮고 있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우리는 지금 중국 공산당 당내 ‘문화혁명’을 보고 있다.”(케리 브라운 영국 킹스칼리지 연구소 이사) 이르면 10월 말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각 파벌 간에 벌어지는 권력투쟁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당 대회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2기의 판도뿐 아니라 시 주석이 집권 10년이 되는 2022년 이후까지도 권력을 유지할 것인지 관측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 행사다. 중국 공산당의 불문율인 ‘10년 집권’ 관행이 깨진다면 시 주석은 덩샤오핑(鄧小平)이 남겨 놓은 집단지도체제를 뛰어넘어 1인 집권체제를 굳히게 된다. 시 주석이 헌법상 임기 제한에 따라 2022년 국가주석에선 물러나지만 제한이 없는 총서기 등으로 계속 실세로 남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시 주석 다음의 차기 최고지도자 유력 주자였던 쑨정차이(孫政才) 충칭(重慶)시 서기가 15일 전격 낙마하고 비리 혐의로 공식 조사를 받으면서 권력 재편의 신호탄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도 당 대회를 앞두고 유력 주자들이 권력투쟁 끝에 낙마한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과거처럼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이번 당 대회 권력투쟁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후계자 지명 여부다. 관례대로라면 2022년 시 주석 퇴임 이후 최고지도자에 오를 후보자 한두 명이 결정된다. 그런데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서기와 함께 유력 후보였던 쑨 전 서기가 전격 낙마하면서 시계 제로 상태가 됐다. 이번 당 대회에서 ‘7상8하(七上八下·당 대회 시 67세면 남고, 68세 이상이면 퇴진)’ 원칙이 깨질지도 관심이다. 시진핑의 최측근인 왕치산(王岐山·69) 중앙기율위원회 서기가 나이 제한에 구애받지 않고 유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발 더 나아가 왕 서기가 총리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통상 총리는 주석과 함께 임기를 마쳤으나 중간에 바뀌면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물론이고 리 총리 계보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도 큰 타격이 된다. 시 주석과 공청단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상하이(上海)방 견제를 위해 연대를 계속할지도 관심이다. 이는 공청단계 후춘화 서기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 지난해 반(反)부패 척결로 공청단에 대한 대대적인 숙정이 벌어졌지만 공청단과의 연대도 필요해 후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없지 않다. 하지만 최근 친이즈(秦宜智) 공청단 서기처 제1서기(장관급) 등 핵심 인사 5명이 당 대표 선출에서 빠져 연대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쑨 전 서기를 밀어낸 천민얼(陳敏爾·57) 신임 충칭시 서기가 정치국원(25명)을 넘어 곧바로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7명)으로 직행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시 주석 인맥의 큰 줄기인 저장(浙江)방의 대표 주자인 천 서기가 상무위원이 된다면 차기 최고지도자의 유력 후보가 될 수 있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우며 중동 문제 개입에 소극적이었던 중국이 각종 분쟁에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대외경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원활한 추진과 함께 중동 지역에서의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19일 아랍에미리트(UAE)의 외교를 관장하는 술탄 알자베르 국무장관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만난 데 이어 20일에는 셰이크 무함마드 알타니 카타르 외교장관과 만나 “외세의 도움 없이 걸프협력회의(GCC)에서 카타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궈푸(李國富)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중동센터장은 “중국은 양측 국가 모두와 이해관계가 깊다”며 양측을 모두 불러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주문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의 개입을 제한하면서 단교 사태 때문에 일대일로에 제동이 걸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시 주석은 18일 방중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과 비공개 회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 해결을 위해 중국이 참가하는 3자 회담을 제의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0일 보도했다. 일대일로의 성공을 위해선 두 나라의 평화 공존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시 주석이 중동 등 국제문제에 적극 개입할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은 2015년 12월 31일 전국에 방송된 신년사에서였다. 시 주석은 “세계는 중국의 목소리를 듣고 중국이 제시하는 해법을 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년사가 나온 며칠 후 중국은 시리아 정부 대표와 반군 대표를 베이징에 초청해 중재에 나섰다. 지난해 4월에는 셰샤오옌(解曉巖) 시리아 특사도 처음으로 임명했다. 이달 초 베이징에서는 200여 개 국유기업 임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주중 시리아대사관과 반관영 중국아랍교류협회 등이 ‘시리아 재건 페어’를 개최했다. 중동의 최대 현안인 시리아 내전에 중국이 점차 개입을 가속화하는 데는 내전 후 재건 특수를 선점하기 위한 목적이 드러난다. 중국이 2009년에 우쓰커(吳思科) 중동 특사를 처음 임명했지만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중국은 이 밖에 아프가니스탄과 수단 내전 등에서도 중재자로 나서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이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 해결에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할 뜻이 있다”고 밝히자 인도 외교부는 다음 날 “양자 관계 틀에서 이뤄질 일이지 제3국의 중재는 원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우리는 중국의 한 양심적 인사의 죽음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류샤오보(劉曉波)에 이어 부인 류샤(劉霞) 구출에도 실패하면 정말 미안할 것입니다.” 중국의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류샤오보와 함께 활동한 우얼카이시(吾爾開希·49·사진) 씨는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류샤오보는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1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13일 간암으로 숨졌다. 우얼카이시 씨는 톈안먼 사태 후 외국으로 망명한 대표적 반체제 운동가 중 한 명으로 대만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경없는기자회(RSF)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는 ‘탈진실 시대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열렸다. 그는 “류샤오보의 사망은 ‘암살’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며 그가 간암에 걸리고도 감옥에서 제대로 치료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을 비판했다. 그는 “류샤오보가 ‘자유로운 국가에서 죽고 싶다’고 했던 마지막 희망도 중국 당국이 무참히 거부했다”며 “국제사회가 중국에 압력을 가해 그의 부인만이라도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일본 야마하사의 간부들은 최근 북한 평양의 ‘보통강 류경상점’에서 자사의 드럼과 색소폰, 키보드 등이 팔리고 있는 사진이 북한 뉴스 전문 사이트인 ‘NK뉴스’의 프리미엄 서비스인 ‘NK프로’에 공개되자 깜짝 놀랐다. 일본 정부가 2012년 대북 수출을 전면 금지한 뒤 직접 수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 금수 물품을 공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싱가포르의 A사와도 거래한 적이 없어 어떤 경위로 자사 제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 갔는지 조사하고 있다. NK프로가 17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제품의 북한 수출이 금지된 후 일부 화물선들이 홍콩이나 중국 톈진(天津)을 거쳐 평양과 가까운 남포에 도착했다고 북한 노동당 외화벌이 기구인 39호실의 전 관리는 말했다. 이 관리는 또 홍콩과 톈진에서 컨테이너를 교체하는 방법으로 ‘화물 세탁’을 했다고 증언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화물을 취급하는 데 직접 개입하지 않고 중국인 등 대리인을 고용하며, 제3국을 거치는 등 핵과 미사일에 관계된 전략 물자를 들여올 때 쓰는 수법을 사치품 수입에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화물 세탁 과정은 해당 제품을 공급한 회사들도 모르게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A사가 평양에서 운영하는 두 개의 호화 상점 중 한 곳인 보통강 류경상점에서 고가의 자사 시계가 팔리고 있는 것에 대해 몽블랑의 싱가포르 법인 ‘리치몬트 럭셔리’ 관계자는 “A사와 어떤 거래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법인 관계자는 NK프로에 보낸 이메일에서 “북한에서는 몽블랑뿐 아니라 어떤 제품도 판매하지 않는다”며 “평양에서 노출된 제품은 ‘회색 시장’을 거쳤거나 모조품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강 류경상점에서 일본 ‘아메리카야’사의 신발이 팔리고 있는 것은 A사가 수출 전문 자회사인 T사를 통해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T사와 거래해 온 회사들 중에는 T사가 A사의 자회사인 것을 몰랐거나 간접적으로 북한과 관계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A사가 평양에서 설립해 운영해 온 류경상업은행이 올해 3월 유엔이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대동은행과 거래 관계가 있는 것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대동은행은 유엔 제재 대상 기관과 거래하고 중국을 통한 무기 거래를 지원해 온 것으로 유엔 전문가 패널이 확인했다. 싱가포르의 한 북한 전문가는 “싱가포르는 중국, 말레이시아와 함께 북한이 금수 품목 등을 들여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구자룡 bonhong@donga.com·주성하 기자}
싱가포르의 무역회사 A사는 평양 고급 상점에서 판매할 대북 금수 사치품을 중국 등을 우회하면서 여러 차례의 ‘화물 세탁’을 거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제품은 제조업체도 모른 채 북한으로 수출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 핵실험에 대한 제재로 전략 물자나 사치품 등의 대북 수출을 금지했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다. 미국의 북한 뉴스 전문 사이트인 ‘NK뉴스’의 프리미엄 서비스인 ‘NK프로’가 17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A사는 일본이 2012년 자국 제품의 대북 수출을 전면 중단하자 일본산 ‘포카 커피’를 싱가포르로 수입해 이를 다시 중국으로 먼저 수출한 뒤 북한으로 반입시켰다. 중국 내 기항지에서 송장을 바꿔치기한 뒤 중국과 북한 간 무역으로 위장하는 전형적인 ‘화물 세탁’ 방법을 쓴 것이다. A사의 안보리 결의안 위반 행위가 NK프로 추적 과정에서 드러나자 싱가포르 외교부 대변인은 NK프로 측에 “싱가포르에서 발생한 어떤 개인이나 기관의 비위 행위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1년이 넘는 탐사 취재를 통해 A사의 금수 사치품 북한 수출을 보도한 NK프로의 저스틴 롤릭 기자는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사가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잘 알려진 북한 무기밀매상이 A사 해운담당 계열사의 선박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싱가포르기업청(ACRA)과 홍콩 당국 서류 분석 등으로 확인되는 등 관련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A사가 북한에 반입한 사치품을 제조한 글로벌 회사들의 불만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평양 ‘보통강 류경상점’에서 판매되는 프랑스산 몽블랑 시계의 싱가포르 법인 ‘리치몬트 럭셔리’ 측은 “A사에 이 같은 제품을 공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구자룡 bonhong@donga.com·한기재 기자}

싱가포르의 한 무역회사가 북한 노동당의 외화벌이 기관인 ‘노동당 39호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유엔이 대북 금수조치를 내린 사치품을 북한에서 판매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훙샹(鴻祥)그룹이 지난해 북한에 전략 금수 물자를 수출하다가 적발된 것처럼 유엔의 제재를 무력화하는 불법 거래가 드러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의 북한 뉴스 전문 사이트인 ‘NK뉴스’의 프리미엄 서비스인 ‘NK프로’는 17일 보고서에서 싱가포르의 무역업체 A사가 평양 시내 고급 매장에서 서양 고급 브랜드 술과 화장품, 가방 등을 판매해 온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탈북한 39호실 관리와 서방의 평양 주재 외교관의 증언, 위성사진 자료 및 공개된 자료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 등을 토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1718호(2006년 첫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사치품 수출 금지)에서 금지하는 품목이 싱가포르를 통해 북한에 흘러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북한도 대북 제재로 사치생활을 하지 못한 부유층의 불만을 달래는 동시에 개인의 외화를 흡수하기 위해 사치품 판매를 장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CNN 방송도 17일 NK프로의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과 싱가포르의 비밀 커넥션을 보도했다. 방송은 “모두가 북한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에 관심을 가질 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러시아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무역 통로도 존재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A사가 평양에서 운영하는 명품 상점은 두 곳이라며 모란봉구역의 ‘북새상점’과 류경호텔 부근의 ‘보통강 류경상점’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외제 명품 가방과 화장품, 보석, 주류 등이 즐비한 여러 장의 상점 내부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사진 속 상품들이 금수 품목에 해당되거나 유엔 제재 대상 기관인 39호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에 A사는 유엔 결의 1718호 위반으로 ‘제2의 훙샹그룹’이 돼 자산동결 및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고 유엔 대북 전문가패널의 전 위원인 윌리엄 뉴컴 씨가 말했다. 39호실은 2016년 3월에는 제재 대상 기관으로도 지정됐다. 동시에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이행에 허점이 크다는 논쟁도 이어질 수 있다. NK프로 취재팀이 가족기업인 A사 대표의 딸로 지목한 B 씨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A사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말레이시아에 기반을 둔 결혼 및 케이터링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뿐”이라고 부인했다.구자룡 bonhong@donga.com·주성하·조은아 기자}

북한 평양에서 근무한 한 서방 국가의 전직 외교관은 모란봉 구역에 있는 ‘북새상점’에 들어간 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고급 브랜드의 가방과 화장품, 주류 등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평양 부유층 시민들이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를 들고 와 척척 꺼내 계산을 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 평양에 달러로 수입품을 살 수 있는 곳이 또 있지만 이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격이 다른 데보다 두 배 이상 비싸고 달러 위조지폐 감별에 유난히 신경 쓰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그는 부인과 함께 쇼핑하러 갔다가 위조지폐가 자외선 감별기를 통과하지 못해 거부되는 장면도 여러 차례 봤다. NK프로가 17일 폭로한 북한 명품 및 사치품 전문매장 풍경은 ‘여기가 평양이 맞나’ 싶을 정도다. 싱가포르 무역회사인 A사는 평양에서 금수품을 판매하는 두 개의 상점을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중 한 곳인 북새상점의 ‘고급 화장품’이라는 안내판이 붙은 매장에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 코너가 마련돼 있다. 매장 곳곳에는 ‘사진 촬영 금지’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샤넬 구치 프라다 버버리 몽블랑 등 서방 브랜드와 소니 파나소닉 야마하 세이코 포카 등 일본 브랜드도 있었으며 외제 캔커피도 팔았다. 랑콤 로레알 비달사순 등의 화장품과 평면 TV, 노트북 컴퓨터, 보석류, 카메라 등의 전용 매장도 있었다. 북새상점에는 유럽산 및 일본산 최고급 주류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 금수품이다. 지난해 ‘보통강 류경상점’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싱가포르에서 사용되는 ‘세 구멍 콘센트’도 있었다. 북새상점은 큰길에서 벗어난 눈에 덜 띄는 곳에 있다. 또 다른 명품 매장인 보통강 류경상점은 105층 류경호텔 부근에 있으며 평양 시민들에게는 ‘싱가포르 가게’로만 알려져 있다. 두 곳 모두 평양을 관광하는 외국인들이 다니는 동선에서는 빠져 있고 여행 가이드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한 고위 탈북자는 당국이 상류의 핵심 ‘로열 계층’의 돈을 ‘빨아들이기’ 위해 이 같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사는 두 상점 외에도 평양의 고려호텔과 양각도호텔의 상점과 바에도 물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상점 운영 방식이나 이윤 배분 등 해당 회사와 북한의 자세한 거래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A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활동했으며 2006년 북한 관영 매체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 대표는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하기 6개월 전인 2006년 4월 김정일에게 최고의 찬사를 건네기도 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싱가포르에서 온 물품은 평양 만경대 구역의 보관창고에 있다가 상점으로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사진을 검토한 바에 따르면 이 창고는 2006년경 지어진 후 2009년 규모가 확대됐다. A사 관련 의혹에 대해 싱가포르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CNN에 “우리는 유엔 결의에 따라 2010년 대북 금수 사치품 품목을 대폭 확대했으며 지금도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거부했다.구자룡 bonhong@donga.com·주성하 기자}

“류샤오보(劉曉波)를 죽인 중국의 악행은 보다 큰 분노와 애도의 물결을 일으킬 것이다.”(16일 대만 거주 반체제 인사 왕단·王丹 페이스북) “류샤오보의 죽음으로 해외에서 중국 인권운동은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다.”(15일 미국 거주 반체제 인사 샤예량·夏業良 전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 언론 인터뷰) 중국 당국이 서둘러 류샤오보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을 바다에 뿌린 것은 그의 무덤이 중국 반체제 인사들의 성지가 되고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중국 안팎에서 숨죽이고 살아온 반체제 운동가들은 류샤오보 사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류샤오보의 장례일인 15일 만기출소한 인권변호사 쉬즈융(許志永·44)도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그의 변호사가 전했다. 쉬 변호사는 공직자 재산 공개 등을 요구하는 ‘신공민(新公民)운동’을 주도하다 2013년 4월 공공질서 교란죄로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해 왔다. 2010년 류샤오보에 대한 노벨 평화상 발표가 나온 직후 베이징(北京) 자택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샤예량 교수는 “인터넷 등에 실명을 공개하며 공산당의 일당 집권을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지식인이나 사회지도층 인사가 수천 명이다. 류샤오보 체포의 계기가 된 ‘08 헌장’의 첫 서명자는 303명이지만 그 후 2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말한 바 있다. 샤 교수는 2013년 해직된 후 사실상 미국으로 추방돼 현재는 워싱턴 소재 카토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갈수록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있는 반체제 혹은 체제 비판 세력의 목소리가 결집할까 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반체제 인사’로 불리는 인물들은 대부분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학생 지도부 21명 가운데 수배 1호였던 왕단(48)은 대만 칭화(淸華)대 인문사회학원 객원 교수 활동을 마치고 이달 미국으로 건너가 민주화 연구 싱크탱크를 설립할 예정이다. 두 차례에 걸쳐 7년간 복역한 후 1998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석방됐다. 당시 베이징사범대 학생이던 우얼카이시(吾爾開希)도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학한 뒤 대만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다. 학생운동 지도자 출신으로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웨이징성(魏京生·67), 천체물리학자로 톈안먼 사태 후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 들어가 13개월간이나 몸을 피했다가 미중 간 마라톤협상 끝에 미국으로 망명한 팡리즈(方勵之) 박사 등이 대표적인 반체제 지식인이다. 공산당 일당 집권을 비판하지는 않지만 중국 당국이 ‘체제 도전 세력’으로 간주하는 인권운동가도 많다. 쉬즈융 변호사와 함께 인권·환경운동가로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됐던 후자(胡佳)가 대표적이다. 후자는 에이즈 환자 인권운동을 벌이다 수감되기도 했으며 2008년 사하로프상을 받았다. 시각장애인 변호사로 인권운동가인 천광청(陳光誠)은 2012년 4월 산둥(山東)성 린이(臨沂)시 자신의 집에서 연금 중 담을 넘어 탈출해 베이징의 미국대사관에 들어간 뒤 미중 협상 끝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중국 당국이 불법으로 규정한 종교 단체인 파룬궁(法輪功)을 창시한 인물로 1997년 미국으로 도피한 리훙즈(李洪志)와 지하 기독교 교회 종교활동가들도 중국 당국이 경계하는 인물이다. 중국 당국에 가장 눈엣가시이자 ‘불순분자’는 분리 독립운동을 부추기는 소수 민족 지도자나 지식인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노벨 평화상(1989년)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82)는 1959년 인도 다람살라로 넘어가 망명정부를 설립해 중국으로서는 가장 뜨거운 감자다. ‘위구르족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있는 위구르인 지도자 라비야 카디르(70)는 중국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을 지내는 등 한때 제도권 내 지도자였으나 1999년 미국 의회 대표단과 만난 것이 문제가 돼 2000년 3월 국가기밀 유출 죄목으로 8년형을 받자 반체제 인사로 돌아섰다. 지금은 미국으로 망명해 세계위구르회의(WUC) 의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위구르족 출신의 일함 토티 전 베이징 중앙민족대 교수(48)는 2014년 ‘위구르 온라인’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소수민족 정책을 비판하다 분리주의를 조장한 혐의(국가분열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중국 사회에서 일평생 자유를 갈망했던 중국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 류샤오보(劉曉波)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해외 치료를 받지 못한 채 13일 오후 6시 40분경 중국의 감시 아래 숨을 거뒀다. 향년 62세.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류샤오보 사망이 중국 내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될지 주목된다.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는 5월 간암 말기가 돼서야 선양(瀋陽)의 중국의대 제1병원으로 뒤늦게 옮겨졌다. 병원은 지난달 26일에야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 류샤오보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미국 독일 의사 2명이 9일 가능한 한 빨리 독일이나 미국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고 미국과 독일 정부가 출국 허용을 요구했음에도 병원 측이 해외 치료 불가 방침으로 시간을 끌다가 17일 만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병원 측은 12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려 “병세가 극도로 악화돼 사경에 이르렀다”며 “병원은 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생명 유지를 위해 기관에 튜브를 삽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가족들이 류샤오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기관 삽입을 거부했다”고 밝혀 사망을 예고했다. 이어 “가족들도 상황을 이해하고 (필요한 조치를 위해) 서명했다”고 올려 가족들이 사실상 류샤오보 사망을 인정했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혼수상태에 빠지고 나서야 석방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고인은 2008년 10월 중국 헌법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표현의 자유라는 당연한 주장을 담은 ‘08 헌장’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류샤오보는 2009년 국가전복선동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고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교도소에 수감됐다. 류샤오보의 사망으로 해외 치료를 거부한 중국당국에 대한 국제적 비판 여론도 커지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관련국들이 중국 주권을 존중하고 개인의 사건을 이용해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반박했다. “나는 우리나라(중국)가 자유를 표현할 수 있는 땅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국민의 발언이 모두 동등한 대우를 받고 다른 가치관, 신앙, 정견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국민이 어떤 두려움도 없이 정견을 발표하고 절대 박해받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인권운동가이자 중국인 첫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는 ‘자유의 갈망자’라 불렸다. 그는 2008년 10월 표현의 자유와 공산당 일당독재 종식을 주장한 ‘08 헌장’ 발표 뒤 체포됐다. 2009년 12월 23일 법정에서 한 이 최후 변론이 그가 남긴 마지막 공개 발언이다. 그는 “언론의 자유를 막는 건 인권을 짓밟고 인성을 질식시키며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변론 직후 그는 11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가 세상에 다시 나온 건 간암 말기로 죽음을 앞두고서였다. 중국당국이 병세가 위중하다는 이유로 출국을 불허한 배경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11일 “중국당국은 그의 무덤이 반체제 인사들의 성지가 되는 걸 막으려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그를 ‘우리 시대의 만델라’라고 불렀다. 류샤오보도 중국의 일부 다른 인권운동가들처럼 1993, 1998년 등 몇 차례 미국의 도움으로 중국을 떠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죄가 없는 내가 왜 떠나야 하느냐”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1955년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태어나 강단에서 중국 현대문학을 가르쳤다. 촉망받는 작가이자 학자였던 류샤오보는 1989년 6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톈안먼(天安門) 사태 시위에 참여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당시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학자로 체류 중이었지만 톈안먼 사태가 터지자 귀국했다. 지식인으로서 책임의식 때문이었다. 시위대 측 대표로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는 톈안먼 사태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다 공직이 박탈되고 20개월 동안 구속되기도 했으며 1996년에는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다 노동개조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민주화 투쟁의 정점은 2008년 12월 ‘08 헌장’을 기초하고 발표했던 시점이다. ‘08 헌장’은 1977년 자유파 지식인 257명이 체코슬로바키아 구스타프 후사크 정권의 인권 탄압을 고발한 ‘헌장 77’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헌장에는 반체제인사 303명이 서명했지만 류샤오보만이 체포됐다. 샤예량(夏業良) 전 베이징대 교수는 류샤오보가 체포 후 헌장을 혼자 만들었다며 책임을 떠안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08 헌장’의 발표 취지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관료 부패가 날로 악화되고 법치의 실현은 점점 요원해졌으며 인권은 실종되고 도덕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민주화 운동의 핵심 아이콘으로 부상한 그는 2010년 10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으나 자신은 물론 아내와 가족, 친구 누구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해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진행된 시상식은 빈 의자에 류샤오보의 사진을 올려놓고 진행됐다. 다른 사람이 대독한 수상 소감에서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기초이자 인간 본성의 바탕이고 진리의 어머니”라는 명문은 2009년 그가 최후 변론에서 한 말이다. 그는 생전 옥중결혼한 아내 류샤(劉霞·56)에 대한 순애보를 담은 많은 시를 발표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사랑하는 이여/독재자의 감옥에서는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자유의 그날까지 투쟁하겠습니다/당신의 죄수가 된다면 시간의 구속 없이 나는 영원히 당신의 감옥에 갇히겠습니다.”(‘나는 당신의 영원한 죄인’) 고인이 죽음을 앞두고 해외 치료를 받으려 했던 것도 사망 뒤 혼자 남겨질 류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였다. 고인의 투병 소식이 알려진 올해 7월 1일 홍콩 반환 20주년을 즈음해 홍콩 민주화 운동 세력은 홍콩의 자치 강화와 함께 류샤오보의 석방을 주요 주제로 내걸었다. 류샤오보의 죽음이 홍콩과 대만은 물론 대륙에서도 민주화 운동에 새로운 불씨가 될지 주목된다. 고인은 2009년 12월 최후 변론에서 “내가 중국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온 필화 사건의 마지막 피해자이기를 기대한다. 이제부터 (정권의 생각과) 다른 말과 글이 유죄가 절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중국에서 아직 표현의 자유는 꽃피지 못했다.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구자룡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지난해 대선 기간 러시아 인사들과의 회동에 앞서 교환한 e메일 내용을 공개하면서 러시아 스캔들이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할 로버트 뮬러 특검은 트럼프 주니어의 e메일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CNN이 전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11일(현지 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러시아 여성 변호사 나탈리야 베셀니츠카야와 자신의 회동을 주선한 러시아 팝스타 에민 아갈라로프의 대리인과 나눈 복수의 e메일 내용 전체를 공개했다. 스스로 밝힌 대로 ‘완벽하게 투명하게 하기 위해’ 둔 초강수였다. 트럼프 주니어가 베셀니츠카야를 만나기 6일 전인 지난해 6월 3일. 러시아 팝스타 에민의 홍보 대리인 롭 골드스톤은 트럼프 주니어에게 e메일을 보내 “러시아 ‘크라운 검찰총장’이 에민의 아버지 아라스를 만나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싶어 한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를 지원하는 매우 민감한 내용이다.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라고 묻는다. 트럼프 주니어는 17분 후 “감사하다. 그런 내용이라면 나는 매우 좋다”고 회신한다. 러시아 정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제공하겠다고 분명한 의사를 표시했고 트럼프 주니어도 이를 받아들였다. 만남 3일 전인 6일 두 사람은 하루 동안에만 6차례 e메일을 주고받으며 러시아 정부 측의 제보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상의한다. 7일 골드스톤은 “러시아 정부의 변호사가 모스크바에서 직접 날아와 만나고자 한다”고 트럼프 주니어에게 알리고 보안 조치를 미리 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트럼프 주니어와 베셀니츠카야 변호사를 실질적으로 연결한 에민과 아라스의 역할도 주목된다. 에민은 2013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러시아에 유치하는 과정에서 대회 소유주 트럼프를 만나 친분을 쌓았고, 부동산 부호이자 푸틴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친(親)정부 인사인 그의 아버지 아라스도 트럼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e메일 공개 후 논란이 확산되자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은 문제의 회동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이어 “만남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시간을) 낭비한 부끄러운 20분이었다”며 “e메일을 주고받은 것은 상대 후보(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조사 차원이었지만 아무 성과를 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필요하면 의회에서 관련 증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CNN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주류 언론들과 야당인 민주당은 역으로 이것이 러시아 스캔들의 실증적 증거라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트럼프 주니어와 베셀니츠카야 변호사의 만남에 대한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NYT는 11일 “이보다 더 구체적일 수 없다”고 평가하고 트럼프 주니어가 베셀니츠카야를 만난 곳은 트럼프 후보의 사무실 바로 아래 층이라고 지적했다. 의혹의 정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는 뜻이다. 힐러리 클린턴 캠프의 대변인을 지낸 브라이언 팰런도 CNN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고 흥분했다. 특히 베셀니츠카야가 문제의 e메일에서 러시아 정부 변호사로 언급된 만큼 러시아 스캔들의 핵심 연결 고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그가 러시아 정부 공식 직책이 없는 데다 크렘린을 위해 일한 걸 부인하고 크렘린도 그를 모른다고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주니어가 접촉한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정부와 직결된 믿을 수 있는 인사’라는 점이 드러나야 하는 만큼 결국 특검 조사를 해봐야 의혹의 진위를 가릴 수 있다. 이와 함께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트럼프 주니어와 베셀니츠카야의 만남에 동석한 것도 트럼프 측의 추가 설명과 특검의 수사가 필요한 대목으로 꼽힌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구자룡 기자}

미모의 러시아 여성 변호사 나탈리야 베셀니츠카야가 미국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그가 대선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만난 사실이 공개되면서 러시아의 로비가 트럼프 일가를 향해 깊숙이 진행됐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주립 법률아카데미를 졸업한 베셀니츠카야는 3년가량 연방검사를 지낸 뒤 2003년 법률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주요 고객은 대형 국영기업이나 고위 관리의 자제들이 세운 회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 인근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가 지난해 뉴욕에 진출한 것도 고객인 고위 관리의 자제가 지중해 소국 키프로스에 세운 투자회사 ‘프레베존 홀딩스’와 관련된 재판의 변호인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베셀니츠카야가 미-러 갈등의 대상이 되는 미국 법의 폐지에 나서고 있는 점이 크렘린과의 관계설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러시아인 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가 2008년부터 프레베존 홀딩스 조세 사기 사건에 러시아 검찰과 경찰, 판사, 세관원 등이 관련돼 있다는 내용을 조사하다 오히려 탈세 방조 혐의로 기소돼 조사를 받던 중 숨졌다. 미국은 2012년 12월 이 사건 관련자들의 미국 입국과 미국 내 자산 동결을 담은 ‘마그니츠키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러시아에 경고를 보냈고, 러시아는 러시아 아동의 미국 입양을 금지하는 대미인권법 제정으로 맞섰다. 베셀니츠카야는 지난해 6월 트럼프 주니어를 만났을 때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마그니츠키법의 폐지를 위해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과정에는 베셀니츠카야를 트럼프 주니어에게 소개하고 이메일을 보낸 지인으로 알려진 음악 홍보업자인 롭 골드스톤이 등장한다. 그는 아제르바이잔 출신 러시아 팝스타 에민 아갈라로프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2013년 에민의 뮤직비디오 ‘또 다른 삶에서’에 카메오로 출연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가 9일 트럼프 주니어와 베셀니츠카야의 만남을 보도하자 트럼프 주니어는 즉각 “2013년 미스 유니버스 행사 때 알게 된 ‘지인(골드스톤)’의 소개로 만났지만 만나기 전 이름도 몰랐다”고 공모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자 NYT는 10일 베셀니츠카야가 대선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6월 트럼프 측에 제공하려던 클린턴 관련 정보의 출처가 러시아 정부라는 내용이 트럼프 주니어가 받은 이메일에 들어 있었다고 추가 폭로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베셀니츠카야가 제공한 정보가 너무 모호하고 무의미했다고 주장했지만 클린턴을 괴롭힐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러시아 변호사를 만났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트럼프 주니어는 올해 초 NYT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측 인사와 정해진 만남을 가진 적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어 거짓말을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베셀니츠카야도 11일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주니어를 만났으나) 클린턴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러시아 정부를 위해 일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WP는 트럼프 주니어와 베셀니츠카야의 만남은 트럼프 캠프 측이 클린턴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라고 평가했다. 숨어 있던 장남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러시아 커넥션’ 의혹은 트럼프 일가로 번지는 상황이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홍콩을 이용해 중국을 파괴하는 행위는 최저선(最低線)을 넘는 것으로 용납하지 않겠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일 홍콩 완짜이(灣仔)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린 반환 20주년 기념 및 5대 캐리 람(林鄭月娥·60·여) 행정장관 취임식에서 홍콩 일각에서 제기되는 분리 독립 요구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시 주석은 31분 동안의 연설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24차례나 언급했다. 시 주석은 “국가 주권의 안전을 해치는 모든 활동, 중앙 권력과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헌법격) 권위에 대한 도전, 홍콩을 이용해 벌이는 중국 본토에 대한 침투·파괴 활동이 모두 최저선을 넘는 것”이라며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람 장관은 선서와 취임 연설을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화(廣東話) 대신 푸퉁화(普通話)로 하면서 중앙 정부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하지만 홍콩 민주화 세력은 보다 높은 자치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행사가 끝났다. 시 주석의 첫 방문을 맞아 홍콩 당국은 경찰 인력의 3분의 1가량인 1만1000여 명을 동원해 철통 경비를 벌여 별다른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기념식이 끝난 몇 시간 뒤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민진) 등 범민주파 시민단체 회원과 시민들은 홍콩 민주화 촉구를 위한 ‘7·1 대행진’을 벌였다. ‘일국양제 거짓말 20년, 민주자치 홍콩 탈환’을 주제로 한 행진은 오후 3시 30분경 시작됐다. 시 주석이 사흘간의 홍콩 방문 일정을 마치고 떠난 지 약 2시간 후였다. 행진은 홍콩섬 빅토리아공원 인근에서 애드미럴티(金鐘) 정부청사까지 약 3km 구간에서 진행됐으며 주최 측은 6만5000여 명이 참가했다고 밝혔으나 경찰은 1만4500명 수준으로 2003년 이후 가장 적었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이날 행진에서 간암 말기인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의 석방을 요구했다. 북한 인권 단체인 ‘탈북자관주조(脫北者關注組)’도 거리에서 “시 주석은 탈북자의 송환을 중단하라” 등 북한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전단을 나눠줬다. 기념식 행사장 인근에서는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 동향회 등 대륙 각 지역의 동향회와 상공회 등이 반환 기념 및 시 주석 환영 모임을 가져 반환 20년을 맞는 혼돈스러운 홍콩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1일 오후 8시 빅토리아항 상공에서는 23분간 3만9888발이 쏘아 올려진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20차례에 걸쳐 상공에 ‘中國 HK’라는 글자가 불꽃으로 새겨지고 웃는 얼굴이 하트 모양으로 변하는 불꽃쇼도 연출됐다. 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홍콩을 이용해 중국을 파괴하는 행위는 최저선((底線)를 넘는 것으로 용납하지 않겠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1일 홍콩 완차이(灣仔)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린 반환 20주년 기념 및 5대 캐리 람(林鄭月娥·60·여) 행정장관 취임식에서 홍콩 일각에서 제기되는 분리 독립 요구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시 주석은 31분 동안의 연설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24차례나 언급했다. 시 주석은 “국가 주권의 안전을 해치는 모든 활동, 중앙 권력과·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헌법격) 권위에 대한 도전, 홍콩을 이용해 벌이는 중국 본토에 대한 침투·파괴 활동이 모두 최저선(底線)을 넘는 것”이라며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국양제를 관철하는 두 가지 원칙으로 △단호하고 변함없는 실천 △정확하고 전면적인 실천을 들었다. 앞서 람 장관은 선서와 취임 연설을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동화(廣東話) 대신 보통화로 하면서 중앙 정부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하지만 홍콩 민주화 세력은 보다 높은 자치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행사가 끝났다. 시 주석의 첫 방문을 맞아 홍콩 당국은 경찰 인력의 3분의 1 가량인 1만1000여명을 동원해 철통 경비를 벌여 별다른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기념식이 끝난 몇 시간 뒤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민진) 등 범민주파 시민단체 회원과 시민들은 홍콩 민주화 촉구를 위한 ‘7·1 대행진(七一大遊行)’을 벌였다. ‘일국양제 거짓말 20년, 민주자치 홍콩 탈환’을 주제로 한 행진은 오후 3시 30분경 시작됐다. 시 주석이 사흘간의 홍콩 방문 일정을 마치고 떠난 지 약 2시간 후였다. 행진은 홍콩섬 빅토리아공원 인근에서 애드미럴티(金鐘) 정부청사까지 약 3㎞ 구간에서 진행됐으며 주최 측은 6만5000여명이 참가했다고 밝혔으나 경찰은 1만4500명 수준으로 2003년 이후 가장 적었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이날 행진에서 간암 말기인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의 석방을 요구했다. 북한 인권 단체인 ‘탈북자관주조(脫北者關注組)’도 거리에서 “시 주석은 탈북자의 송환을 중단하라” 등 북한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전단을 나눠줬다. 기념식 행사장 인근에서는 푸젠(福建) 성 푸저우(福州) 동향회 등 대륙 각 지역의 동향회와 상공회 등이 반환 기념 및 시주석 환영 모임을 가져 반환 20년을 맞는 혼동스런 홍콩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1일 밤 8시 빅토리아항 상공에서는 23분간 39888발이 상공으로 쏘아 올려진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20차례에 걸쳐 상공에 ‘中國 HK’이라는 글자가 불꽃으로 새겨지고 웃는 얼굴이 하트 모양으로 변하는 불꽃쇼도 연출됐다. 주룽(九龍)반도 연안에서 23만6000명 등 26만3000여명이 지켜봤다고 경찰 측은 추산했다. 홍콩=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30일 오전 9시 반 홍콩 북부 신계(新界)의 인민해방군 섹콩(石崗) 병영.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태운 차량이 도착하자 홍콩주둔군 사령원이 사열 준비 완료를 보고하면서 사열이 시작됐다. 반환 20주년을 맞아 28일 홍콩을 방문해 3일간의 일정에 들어간 시 주석은 이날 홍콩 주둔군을 사열함으로써 도시의 주권이 중국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육해공군과 헬기부대 장갑차 부대 등 20개의 방진(方陣) 대형으로 3100여 명의 병력이 도열한 가운데 시 주석이 차를 타고 지나가며 각 부대를 사열했다. 부대원들 뒤로는 헬기와 장갑차 등 100여종의 무기와 장비들이 배치돼 위용을 과시했다. 시 주석이 “동지들 안녕하십니까” “동지들 수고합니다”고 외치면 부대원들은 “시 주석 안녕하십니까” “인민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를 우렁차게 외쳤다. 행사장에는 홍콩 각계에서 초대된 4000여 명의 인사들이 시 주석의 군부대 열병식을 지켜봤다. 열병을 위해 도열한 병사들 뒤에는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의 위대한 방침을 전면적으로 관철한다’는 문구를 새긴 간판이 세워졌다. ‘홍콩의 장기적 발전과 번영, 안정을 굳게 지킨다’는 다짐도 적혔다. 20년 전 홍콩이 영국으로부터 155년 만에 반환될 때 푸젠(福建)성 부서기였던 시 주석은 1일 반환 20주년 기념식에 참석에 반환 이후 20년을 맞으면서 ‘독립과 탈중국’ 분위기도 없지 않은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예정이다. 기념식에 하루 앞서 진행한 군부대 사열하고 다음달에는 첫 항모 랴오닝(遼寧)호 전단이 홍콩에 기항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은 시 주석이 주석이기도 한 중앙군사위원회 직속 부대다. 1997년 7월 1일 반환에는 당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리펑(李鵬) 총리, 첸지천(錢其琛) 외교부장이 등이 영국의 찰스 왕세자, 토니 블레어 총리, 마가릿 대처 전 총리, 로빈 쿡 외무장관 등이 참석해 역사의 현장을 지켰다. 1일 홍콩섬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반환 20주년 기념식 및 신임 캐리람(林鄭月娥·59·여) 행정장관 취임식에는 홍콩특별행정구 요인과 각 국 외교단 등 1000여 명이 참석한다. 한국은 김광동 홍콩총영사가 초대를 받았다. 시 주석은 1일 오후 강주아오(港珠奧·홍콩 주하이 마카오) 대교‘ 건설 현장을 시찰한 뒤 전용기로 베이징(北京)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1일 기념식 행사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8시 빅토리아항 상공에서 펼쳐질 불꽃놀이 축제다. 23분간 20차례에 걸쳐 상공에 ’中國 HK‘이라는 글자를 불꽃으로 새겨지고 웃는 얼굴이 하트 모양으로 변하는 불꽃쇼도 연출된다. 불꽃놀이는 8개의 막(幕)으로 구분되며 빅토리아항에 띄운 5척의 선박에서 39888발이 23분38초간 발사된다. 23초간 200발의 초대형 예포가 발사되면서 불꽃놀이 행사는 끝난다. 홍콩 언론은 비용은 1200만 홍콩 달러(약 17억5000만 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일부에서는 환경오염과 비용 낭비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홍콩=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내가 홍콩에 온 목적은 세 가지입니다. 홍콩 회귀(回歸·반환의 중국식 표현) 20주년과 그동안의 성과를 축하하고, 홍콩의 발전과 민생 개선에 대한 지지를 표하며, 홍콩의 미래를 기획하는 것입니다.” 29일 홍콩공항에 도착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일(7월 1일)에 즈음한 자신의 방문 목적을 이렇게 밝혔다.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을 찾은 것은 1997년 7월 홍콩 반환 기념식에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이 참석한 이후 처음이다.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이 시 주석 전용기에 올라 영접했으며 홍콩 주민 수십 명이 오성홍기와 홍콩기를 흔들며 환영했다. 캐리 람(林鄭月娥·59) 행정장관 당선인도 공항에 나왔다. 시 주석은 홍콩의 미래와 관련해 “향후 20년 동안에도 홍콩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홍콩이 반환 이후에도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넷판은 “일국양제에 대한 강조는 앞으로 3일간 그의 홍콩 방문 주제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가 도착 일성으로 일국양제와 함께 민생을 말한 것은 지난 20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홍콩 민심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홍콩이 지난 20년간 평온하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2014년 ‘우산혁명’ 시위 등 홍콩 주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실제로 29일 홍콩과 주룽(九龍)반도를 잇는 해저터널 입구에는 시 주석의 방문을 환영하는 대형 문구가 걸린 반면, 다른 거리에는 ‘홍콩 몰락 20주년’이라는 문구가 걸리는 등 홍콩인들은 반환 20년을 맞아 복잡한 심경을 보이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시 주석의 방문을 앞두고 현지에서는 육해공 입체 경호 작전이 전개됐다. 홍콩 전체 경찰관 2만9000명 중 약 1만1000명을 시 주석의 숙소인 르네상스 하버뷰 호텔 주변과 그의 동선을 따라 배치했다. 테러 위협 수준도 ‘보통’에서 ‘높음’으로 올라갔다.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주변은 무장한 경찰과 물을 채운 플라스틱 바리케이드로 완전히 둘러싸였다. 빅토리아항과 기념 행사장 건물 상공에서는 헬기가 선회 비행했다. 경찰은 시 주석 방문 기간인 29일∼7월 1일 보트 10대를 동원해 빅토리아항 주변을 24시간 순찰하고 있으며, 홍콩 서부 상업지구 완짜이(灣仔)와 빅토리아항 상공을 비행제한구역으로 설정했다. 특히 시위가 예상되는 완짜이와 인근 애드미럴티(金鐘) 지역 일부는 통행을 제한하고 도로를 폐쇄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보도블록을 뜯어내 경찰에 던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블록을 접착제로 붙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홍콩에서 시 주석의 근접 경호는 친위부대인 중앙경위단(8341부대) 단원들이 전담한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전 설립한 중앙경위단은 소장급이 지휘하는 전투 준비태세를 갖춘 부대로 알려졌다. 시 주석의 방문을 맞는 홍콩 민주당파 의원들은 다소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명은 28일 실명으로 시 주석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일국양제가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홍콩은 중국과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일국과 양제가 모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앙정부는 홍콩의 특성을 존중하고 홍콩인을 신임해 주길 바란다”면서 ‘솽푸쉬안’(雙普選·입법회의원과 행정장관을 1인 1투표로 선출하는 보통선거)을 요구했다. 반면 다른 의원 10명은 시 주석이 30일 오후 숙소에서 베푸는 연회에 참석해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방문 첫 일정으로 주룽반도의 대규모 문화공원인 시주(西九)문화구 건설 현장을 참관하고 ‘홍콩고궁문화박물관’ 건립에 관한 중국과 홍콩 간 협정 체결식에 참석했다. 저녁에는 과거 영국 총통이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했고 현재는 홍콩 행정장관 관저 겸 국빈관인 ‘예빈부(禮賓府)’의 만찬 연회에 참석했다. 방문 이틀째인 30일에는 여성 행정장관 당선인인 캐리 람과 내각 각료들을 면담할 예정이다. 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28일 오후 3시 빅토리아항 너머로 주룽(九龍)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홍콩섬 컨벤션센터 앞 ‘골든 바우히니아(金紫荊)’ 광장. 다음 달 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이곳에는 섭씨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에도 100여 명의 관광객과 시민이 나와 반환 축제를 미리 즐기고 있었다.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20대 사진사는 “시 주석이 행사장 인근 호텔에 투숙해 29일부터 3일간 바우히니아 광장이 통제되기 때문에 이날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광둥(廣東)성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50대 중반의 한 여성은 “반환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컨벤션센터 인근 대형 빌딩들에는 ‘반환 20주년 축하’ 문구가 새겨지는 등 홍콩 당국은 축제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었다. 기념식장 주변에는 차량 돌진 테러 등에 대비해 수백 개의 물을 채운 플라스틱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시 주석 부부가 경호원들이 묵는 그랜드하이엇호텔(1박 8만8000홍콩달러)에 비해 숙박비가 3분의 1에 불과한 하버뷰호텔(1박 2만8000홍콩달러)에 투숙하는 것도 화제가 됐다. 이는 하버뷰호텔의 경우 내부에서 방탄 리무진을 타고 바로 행사장으로 향할 수 있는 경호상의 이유 때문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8일 보도했다. 중국은 20년 전 ‘50년간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약속했지만 현지에서는 그 약속이 깨지고 있는 현장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비리와 권력 암투를 다룬 책을 내오다 2015년 중국 당국에 직원 5명이 연행된 ‘퉁뤄완 서점’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서점 출입문 등에는 ‘힘내라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홍콩 힘내라’ 등의 격려 문구가 적혀 있었다. 26일에는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21)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 비서장 등이 광장에 세워진 금색 바우히니아(홍콩의 상징 꽃)상에 검은 천을 씌워 중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에 항의했다. 바우히니아상은 중국이 1997년 영국의 주권 반환을 기념해 홍콩에 선물한 것이다. 웡 비서장은 28일 시 주석의 홍콩 방문에 항의하며 20여 명과 함께 시위를 벌인 혐의로 경찰에 구금됐다. 홍콩인 천(陳)모 씨(71)는 “자유가 위축되는 것에 대한 젊은층의 불만은 이해하지만 실력도 없이 독립을 요구해 봐야 소용없고 한 국가 국민은 뭉쳐야 강해진다”며 “한반도도 통일하면 더 강해지지 않느냐”고 말했다. 50대 후반의 택시 기사 저우스위(周師余) 씨는 ‘반환 후 20년간 어떠했느냐’는 질문에 “하이커이(還可以·그런대로 괜찮다)”라면서도 “조금은 글쎄”라며 여운을 남겼다. 높은 점수를 주지는 않은 것이다. 반환 이후 홍콩 사회의 양극화 심화와 중국 경제에 대한 예속, 중국의 영향력 강화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것과 무관치 않다. 홍콩 총독이 1855∼1997년 사무실과 관저로 썼던 건물은 지금 행정장관 관사 겸 주요 행사 장소로 바뀌었다. 영국 해군사령부는 인민해방군 홍콩주둔군 본부가 돼 오성홍기가 걸렸지만 홍콩과 중국은 아직 하나가 되지 못했다. 광둥성 선전(深(수,천))을 통해 홍콩으로 향하려면 외국에 나가는 것처럼 출·입국신고서를 써야 한다. 출입국사무소 벽에 게시된 안내문은 간체자에서 번체자로, 근무자의 말은 푸퉁화(普通話)에서 광둥화로 바뀐다. 선전과 홍콩 간 육지 경계 22km 구간 대부분에는 한국의 휴전선처럼 철조망이 쳐져 있다. 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홍콩이 아편전쟁 이후 155년간의 영국 제국주의 지배의 굴레를 벗고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7월 1일 0시. 홍콩섬 컨벤션센터에 중국 오성홍기와 홍콩특별행정자치구 깃발이 나란히 올라가고 영국 유니언 잭이 내려오면서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실험이 시작됐다. 올해 반환 20년을 맞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9일부터 3일간 홍콩을 방문한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을 찾는 것은 20년 전 반환식에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참석한 이후 처음이다. 시 주석은 30일 오전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 부대를 시찰한다. 다음 달에는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이 홍콩에 처음으로 입항할 예정이다. 자치를 넘어 일부에서 독립 요구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이다.○ 점차 짙어지는 ‘일국(一國)과 중국화’의 그림자 홍콩 대표가 중국의 국회 격인 인민대표대회나 국정자문기구인 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하지만 아직은 ‘두 체제’다. 두 지역 간 통행이 다른 ‘국경’과 비슷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 내 49개 도시 주민은 홍콩 개별 관광을 할 수 있지만 특별 허가가 있어야 한다. 중국인의 홍콩 탈출을 막는 철조망도 있다. 홍콩이 여전히 ‘중국 속의 특별행정구’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더 많다. 대륙에서는 금서인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국가의 죄수’ 같은 책이 발행되고 밍(明)보 등 비판적인 언론의 활동 공간이 남아 있다. 입법원 의원에 ‘중국에서의 독립’을 주장했던 인사가 당선되고 매년 6월 4일 홍콩섬 빅토리아 공원에서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계속 개최된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덩샤오핑(鄧小平) 최고지도자 간 합의와 1984년 12월 19일 ‘중영 연합성명’에 따라 마련된 ‘홍콩 기본법’은 1997년 이후 50년간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고는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의 고도의 자치를 보장했다. 아직 30년이 남았지만 점차 ‘홍인치항(紅人治港·공산당이 홍콩을 통치한다)’ 혹은 ‘경인치항(京人治港·베이징이 홍콩을 통치한다)’으로 바뀌고 있다. 홍콩 경제일보는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태도가 행정장관 재임 시기별로 달랐다며 ‘방임’(둥젠화·董建華·1997∼2005)과 ‘자치 지지’(도널드 창·曾蔭權·2005∼2012)를 지나 ‘간섭과 간여’(렁춘잉·梁振英·2012∼2017)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분수령은 2014년 우산혁명 시위와 2015년 반체제 서점 관계자 대륙 연행 조사 사건이었다. 2014년 9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 79일간의 우산혁명 시위는 행정장관 선출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무산됐다. 그 결과 올해 3월 친중파의 캐리 람 후보가 1200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간접 선거 방식의 ‘체육관 선거’로 당선됐다. 시 주석은 렁 전 장관과 람 장관 당선자를 면담할 때 지방정부 수장을 대하듯 아랫자리에 앉히기 시작했다. 홍콩섬에서 중국 체제에 비판적인 서적을 판매해 ‘반체제 서점’으로 불렸던 ‘퉁뤄완(銅(나,라)灣) 서점’의 대주주 리보(李波) 씨 등 서점 관계자 5명은 2015년 10월에서 12월 사이 잇따라 실종됐다. 이들은 대륙으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경찰이 홍콩 시민을 홍콩에서 사실상 연행해 간 것으로 ‘일국양제’에 대한 심각한 위반 사건이었다.○ ‘일국’ 강요에 대한 높아지는 반발 지난해 9월 4일 실시된 입법회 선거에서 비친중파(범민주파)가 70석 중 30석을 차지했다. 중요 정책 저지선인 24석(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넘어서고 특히 자결과 독립을 주장하는 후보가 6명이 당선된 것은 우산혁명 무산에 대한 반발이었다. 홍콩대 조사 결과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긴다는 응답이 1997년 46.6%에서 지난해 31.2%로 뚝 떨어졌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6월 12일에는 대만 입법원 의원 18명이 ‘대만국회주목 홍콩민주연선’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 모임 창립식에 홍콩 입법회 의원 3명과 우산혁명 당시 학생 지도자 조슈아 웡 등이 참석했다. 홍콩 민주화를 위해 대만과 홍콩이 처음으로 공동 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은 거듭 홍콩의 자치와 민주화가 흔들리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최근 강연에서 “중국이 홍콩의 자치권 통제를 점점 심하게 하고 있다”며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콩 친독립파 정당인 홍콩민족당은 30일 주룽(九龍)반도 침사추이(尖沙咀)에서 ‘홍콩 추락 20주년 애도 집회’를 갖겠다고 밝혔다. 홍콩 민주화 세력은 시 주석 참석하에 홍콩 반환 기념식이 열리는 다음 달 1일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홍콩 정부는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전 경찰력의 3분의 1인 1만 명을 동원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홍콩 내 중국 정부 대표처 격인 주홍콩 중국연락판공실의 장샤오밍(張曉明) 주임은 최근 관영 중국중앙(CC)TV 인터뷰에서 “소규모 친독립 옹호자들이 중국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무관용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 명암 교차하는 홍콩 경제 홍콩 경제는 반환 이후 중국과의 협력이 강화되면서 아시아 금융위기(1997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무난히 극복하고 아시아 허브로서의 기능도 강화됐다는 평가다. 2003년 6월 자유무역협정(FTA) 격인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과 홍콩 증시와 상하이(上海) 선전(深(수,천)) 증시의 교차 거래인 후강퉁(호港通) 선강퉁(深港通) 개시 등이 새로운 활력 요소가 됐다는 분석이다. 국내총생산(GDP)은 1997년 1조3730억 홍콩달러에서 2016년 2조4910억 홍콩달러로 80% 남짓 늘었다. 하지만 중국 경제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제조업이 붕괴된 것은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1980년대 초반까지 제조업이 GDP의 25% 안팎을 차지했으나 2015년에는 금융 및 서비스업의 비중이 98%에 이르는 극단적 서비스업 중심 경제로 변모했다. 2000∼2007년 연평균 5.3%의 성장세를 유지하다 2011년 이후 연평균 2.8%로 동력이 떨어지고 지난해에는 1.9%로 2%대를 깨고 내려간 것은 편향적 경제구조가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홍콩은 한국 경제에는 ‘중국 대륙 진출의 교두보’와 같은 곳이었다. 양측 간 교역은 1997년 126억 달러에서 지난해 344억 달러로 2.6배로 증가했다. 지난해 대홍콩 수출은 328억 달러, 수입 16억 달러로 3위 수출 시장이자, 제2의 무역 흑자 지역이다. 하지만 한중수교 이후 한국 기업이 대륙으로 직접 진출하면서 중간 거점으로서의 중요성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홍콩은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액션 영화와 저우룬파(周潤發) 청룽(成龍) 왕쭈셴(王祖賢) 같은 유명 배우를 비롯한 중화권 문화가 한국으로 소개되는 중간 길목이었다. 이제는 한류가 중국과 아시아로 나아가는 거점으로 바뀌었다. 특히 홍콩은 중화권에서 한류 열풍을 지속시켜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중국 대륙에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이 내려진 지난해 8월 말 홍콩에서 개봉한 좀비 영화 ‘부산행’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올 하반기에는 홍콩섬 센트럴(中環)에 한국문화원이 문을 연다. 홍콩의 중국 반환이 가져온 변화 중 하나는 주요한 탈북 루트 하나가 없어진 것이다. 북-중 국경을 넘어 중국에 온 탈북자들이 홍콩에 들어오기만 하면 당시 홍콩 정청의 협조 아래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신제(新界) 지역의 상수이(上水) 밀입국자 수용소에는 홍콩 반환 이후에는 탈북자는 없어졌다. 홍콩 루트가 막히면서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은 멀리 라오스 등 동남아로 방향을 틀고 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미국과 중국은 21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외교안보 대화에서 자국 기업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대상에 올라 있는 북한 기업들과 거래하지 못하게 하기로 합의했다. 미중 양국이 북한으로 흘러가는 핵개발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 기업들에 대한 거래 중단 조치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미중 합의가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간에 형성된 북핵 난기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중국의 양제츠(楊潔지)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팡펑후이(房峰輝)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이날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첫 외교안보 대화를 갖고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논의했다. 틸러슨 장관은 대화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모든 유엔 안보리 관련 해법을 전적으로 충실히 이행하도록 노력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며 “미국은 중국이 역내 북핵 위기의 상승을 방지하려면 북한 정권에 훨씬 더 큰 경제적·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거듭 중국 측에 강조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일각에서 거론됐던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시행은 일단 유예하지만 중국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북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압력을 넣은 것이다. 중국은 자국 기업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피하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미국과 중국은 ‘완벽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북한에 대해 불법적인 핵무기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22일 오후 홈페이지에 미중 외교안보 대화 결과를 공지하며 “중국 측은 미국의 한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를 재천명하고 유관 배치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철수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는 21일 미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일부 감축을 대가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를 일시적으로 동결시키는 제안을 수개월째 중국으로부터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최근 워싱턴에서 제안한 것과 유사한 것으로,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 대화에서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백악관 관리들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또는 경제적 압박을 해제하도록 요구하는 그 어떤 제안에도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인터넷 검색만 해도 전 세계 북한 여행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북한 여행사 운영자들은 대부분 북한에서 유학했거나 여행을 갔다가 호기심이 생겨 사업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연간 외국인 1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하는 북한은 전방위적으로 이들의 북한 관광을 부추기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 전문 여행사 ‘평양 트래블’을 운영 중인 안드레 비티히 대표는 2012년 친구들과 함께 북한에 여행을 갔다가 ‘김일성 탄생 100주년’ 군사 퍼레이드를 보고 반해 베를린에 있는 북한대사관을 찾아갔다. 비티히는 “북한대사관은 매우 적극적으로 북한 관광청 대표부와 주선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 신청이 들어오면 북한 관광청과 연결해준다. 여행사 창업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았다. 비티히는 별도의 사무실도 두지 않고 친구 두 명과 함께 온라인으로 운영 중이다. 중국의 북한 전문 여행사 영파이어니어투어는 “유럽, 아시아, 심지어 미국에도 북한 전문 여행사가 있다”고 말했다. 비티히는 북한만큼 비자를 받기 쉬운 나라도 없다고 했다. 전 세계 북한대사관에 가서 40∼60유로만 내면 별 어려움 없이 2∼4주 안에 비자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인과 기자, 두 부류만 아니면 된다. 각 여행사는 수십 개의 관광상품을 운영 중이다. 북한은 자강도를 제외한 8개도를 모두 외국인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북한 나선까지 배로 가는 스쿠버다이빙 코스도 새로 생겼다. 요즘 북한 여행사들이 가장 추천하는 상품은 4월 평양 마라톤대회다. 여행사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대체로 북한을 찾는 서방 외국인은 20∼40대 남자가 대부분이다. 비티히는 남녀 비율이 8 대 2라고 했다. 전 세계로 여행을 많이 다닌 마니아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북한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북한의 국내 축구경기 관람 투어는 축구를 좋아하는 유럽인에게 인기가 있다. 유럽인에게 여행비용이 싼 편은 아니다. 일주일 정도 단체여행을 하면 보통 2000유로(약 250만 원) 이상 든다. 안전 문제와 관련해 비티히는 “여행 전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사전에 교육한다”며 “예를 들어 군과 관련된 사진은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나라건 그 나라 법을 심각하게 어길 경우 범죄가 된다”고도 했다. 여행 도중 몸이 아플 경우 “외교관과 외국인을 위한 평양 병원을 이용한다”고 했다. 호주에서 활동 중인 통일투어는 “평양에 있는 스웨덴대사관이 긴급 의료 상황에 필요한 기구들을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 외국인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은 상대적으로 안전 이슈가 덜한 편이다. 중국 국적을 가진 북한 관광객의 경우 김일성 김정일을 비하하는 발언 금지 등 주의 사항은 있지만 북한을 관광하다가 문제가 돼서 억류된 경우는 없다. 지난해 7월에는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비자 신의주 반나절 관광상품’이 나왔다. 북한은 여권 없이 관광할 수 있는 신의주의 면적을 현재의 3만 m² 이내에서 13만 m²로 4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직접 차를 몰고 압록강 다리를 넘어가는 신규 관광상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 관광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린(吉林)성 창바이(長白)조선족자치현 항구 및 허룽(和龍)시 항구를 통해 배를 타고 북한을 둘러보는 두만강 수상(水上) 관광상품도 나왔다. 허룽시는 북한과 함께 백두산 ‘무봉국제관광특구’ 관광 인프라 확충에 나선다. 북-중 통관 수속을 간소화하고 특구 내 온천 호텔 승마장 등 관광시설도 늘릴 계획이다. 그동안 미국은 사업 목적의 북한 방문은 금지했지만 여행은 허용해왔다. 북한에 장기 억류됐다가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을 계기로 미국 내에선 북한 여행을 즉각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1일(현지 시간) 북한으로의 여행을 잠정적으로라도 즉각 금지하라고 미 정부에 촉구했다. CSIS는 이날 성명에서 “일시적으로 미국 시민의 북한 여행을 즉각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고려할 수 있다”며 “미 정부가 북한 당국에 대해 웜비어 씨의 억류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설명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웜비어 씨의 여행을 주관한 여행사를 포함한 모든 북한 여행 관련 회사들에 대한 제재를 재무부가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파리=동정민 ditto@donga.com / 베이징=구자룡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