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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세월호의 선박직 승무원 15명 가운데 8명이 입사 6개월 미만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저임금의 계약직 채용 때문에 이들은 세월호에 대한 소속감이 부족했고, 결국 승객 구조를 외면하고 먼저 탈출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9일 검경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기관원과 조기수를 관리 감독하는 조기장 전영준 씨(56)는 입사한 당일인 15일 처음으로 세월호를 탔다. 15일은 사고 하루 전날로 세월호가 제주를 향해 인천에서 출발한 날이다. 전 씨는 구속되기 전 본보 기자와 만나 “입사하자마자 계약서도 쓰지 않고 탔다. 제주에 도착해서 계약서를 쓸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또 1등 항해사 신정훈 씨(34)는 이달에 입사해 사고 당시 세월호 운항을 처음 한 것으로 알려졌다. 2등 항해사 김영호 씨(47)는 1월부터 세월호에 탑승했다. 선원 15명 중 선장 이준석 씨(69)를 포함해 기관장 박기호 씨(48), 조기장 전 씨 등 4명은 대리근무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장 이 씨 등은 사고 직후인 16일 오전 9시 1분부터 37분 사이에 일곱 차례에 걸쳐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통화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승객안내 담당 승무원 강모 씨(33)가 오전 9시 1분 가장 먼저 청해진해운과 통화를 했지만 30초 만에 끊어졌다. 강 씨는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을 구조하다 마지막으로 탈출해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잃을 뻔했다. 이어 선장 이 씨와 1등 항해사 강원식 씨(42)가 배를 빠져나오기 전인 오전 9시 3분부터 37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청해진해운과 통화했다. 이 씨는 청해진해운이 걸어온 전화를 35초간 통화했다. 강 씨는 3분간 통화했다. 두 사람의 정확한 통화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합수부는 이 씨와 강 씨가 매뉴얼대로 사고 사실을 알리는 통화였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승무원들이 청해진해운의 지시로 배를 버리고 탈출을 감행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세월호 방송시설은 3층 안내데스크와 5층 함교 등 2곳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층 안내데스크 방송시설은 침수로 작동이 되지 않았고 5층 함교 시설은 작동됐으나 선원들이 도주해 대피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목포=이형주 peneye09@donga.com·정승호 기자}

시시각각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승객들이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기다리는 사이 선원들은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경비정에 올라탔다. 배가 50도 정도 기운 상태였지만 선원과 해경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배 안에 들어가 대피 방송이나 승객 구조에 나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의 최초 구조 상황이 담긴 9분 45초짜리 동영상이 28일 뒤늦게 공개됐다. 동영상은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 직원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16일 오전 9시 28분 58초부터 11시 17분 59초까지 주요 장면을 부분적으로 찍은 것이다. 동영상에는 선원들의 ‘나 홀로 탈출’ 과정과 침몰 상황, 승객 구조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23정이 목포해경 상황실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고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반경. 당시 세월호는 이미 왼쪽으로 50도가량 기울어진 상태였다. 9시 39분 해경 고무보트가 세월호 좌현으로 접근하자 3층 난간에 있던 기관부 선원 4명이 옮겨 탔다. 처음으로 배로 달려온 구조보트에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7분 후 4층 조타실 옆에 밀착한 123정에는 팬티 차림의 선장 이준석 씨(69·구속)와 항해사, 조타수 등 선원 8명이 차례로 올라탔다. 이들 중 일부는 선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이 구조될 당시 조타실 바로 옆에는 구명벌 46개가 있었지만 이를 작동시키려는 선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배가 크게 기운 상태는 아니었다. 갑판으로 나오거나 바다에 뛰어든 승객도 없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해경에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고 있는 선실로 가자고 한 선원은 없었다. 선장 이 씨가 “배가 급격히 기울었고 승객들이 빠져나오면 조류와 차가운 바닷물 때문에 위험할 것 같아 탈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는 진술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선원들은 여유롭게 구조됐지만 여객선이 60∼70도로 기울면서 곧 아비규환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바다로 뛰어내린 승객은 수십 명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선내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기다리다 탈출 기회를 놓치고 배와 함께 차디찬 바다에 갇혀버렸다. 목포해경 123정은 16일 오전 8시 58분경 출동명령을 받은 뒤 오전 9시 반경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고무보트 등을 통해 구조작업을 폈다. 해경은 당초 수사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채증인 만큼 첫 구조 동영상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해경이 선체에 진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승객에게도 탈출을 독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계속 일자 해명 차원에서 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목포=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이 계열사 내부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과 회삿돈 빼돌리기 등 자신의 일가를 위한 불법·편법 경영을 직접 지시했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검찰은 “회사 지분이 한 주도 없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유 전 회장 측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보고 있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은 26일 청해진해운, 다판다 등 유 전 회장 장남과 차남이 지분을 갖고 지배하고 있는 계열사의 회계·감사 업무를 맡아온 회계사무실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 특히 검찰은 유 전 회장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S회계사무소의 회계사 3, 4명을 소환 조사해 “유 전 회장이 직접 회사 고위 관계자를 시켜 회계사무실로 자금 조성에 대한 지시를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 사무실의 회계사 김모 씨(51)는 2008년까지 청해진해운의 모회사 천해지의 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한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27일 목포해경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등 초동대처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전면 수사에 나섰다. 앞서 26일에는 진도연안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제주 VTS를 압수수색해 세월호와의 교신 내용 등을 확보했다.인천=장관석 jks@donga.com / 목포=정승호 기자}
세월호 침몰 당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고(故) 최덕하 군(17)의 최초 신고전화 외에도 31분 동안 119에 총 22건의 구조요청 전화가 더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울어지는 배 안에서 승객들은 “빨리 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애타게 외쳤다. 25일 전남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최 군은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에 119에 최초로 신고전화를 했다. 119에는 최 군이 통화하는 동안에도 승객들로부터 3건의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오전 8시 55분 55초에 다른 회선으로 걸려온 전화는 다급한 목소리로 “살려주세요. 배가 기울었어요”라고 말했다. 접수요원이 “지금 해경에서 갈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신고자는 안심이 안 된 듯 “살려주세요. 점점 더 기울어요. 빨리 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했다. 이후에도 오전 9시 23분 56초까지 9건의 통화가 이어졌다. 오전 9시 7분 2초에 전화를 건 승객은 “배가 45도 정도 기울었다. 고등학교 10개 반이 타고 있으니까 승객 수가 500명쯤 될 것”이라고 알렸다. 이날 신고자 중 한 차례 전화를 한 사람은 5명, 2차례 신고자는 2명, 4차례 신고자는 1명, 무려 5차례나 구조 요청 전화를 한 승객이 2명이었다. 최 군 전화를 포함해 총 23건의 신고 전화 중 13건은 통화가 이뤄졌으나 3건은 응답 없이 끊겼다. 7건은 회선 9개가 모두 통화 중이어서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전환됐다.목포=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게 느껴졌다. 전남 목포에서 진도까지는 40여 km. 승용차로 빨리 가면 40분 정도 걸리지만 길은 천리 길 같았고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고교 동창들에게서 친구 아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22일.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동창생은 기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워낙 경황이 없었던 데다 졸업한 후 20년 넘게 만나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다음 날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으로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가족대책본부로부터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짐을 챙겨 떠난 터였다. 그는 문자메시지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이 ‘134번’이라고 알려왔다. 팽목항에 도착했지만 한동안 그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초점 없는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어머니, 사망자 현황 게시판 앞에서 행여 자녀 이름이 오를까 숨죽인 채 지켜보는 아버지…. 내 자식만은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 온 이들 앞에서 친구를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항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신원확인소’(임시 안치소)에 있었다. “아이들을 봤는데 그 얼굴이 그 얼굴 같고… 아들 얼굴도 못 알아보는 내가 아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는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어갔다. “아내는 (아들이) 맞다고 빨리 (안산으로) 올라가자고 하는데 혹시 시신이 바뀔지 몰라 DNA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이 징한 바다를 보고 싶지 않지만 통보가 늦어지니 어쩌겠느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믿고 여행을 가다가 죽었잖아. 그럼 누구 하나 뺨 맞을 각오를 하고 나서야 하는 것 아니야. 이게 대한민국이냐고…”라며 울부짖었다. 무거운 침묵 끝에 친구가 말을 건넸다. “너는 애들이 어떻게 되니.” “중학생과 초등학생 딸 둘이 있다”고 하자 그는 “집에 가면 꼭 안아 줘라. (아들한테) 그러지 못한 나는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친구의 얼굴에는 아버지로서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자식을 잃은 그 친구만이 짊어져야 할 아픔일까. 책임은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을 사지로 내몬 무능한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있는데 말이다. 대형사고가 나면 재발 방지책을 만든다고 부산을 떨다가도 금세 사고 수습 매뉴얼을 서랍 속에 처박아 놓는 나라. 천금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차디찬 바닷속 아이들을 어찌해주지 못하고 우왕좌왕 시간만 보내는 나라. 도대체 이 큰 죄를 어찌할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진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안녕하세요! 후배님들. 2014년 GS칼텍스 도서학교 원어민 영어교실 개강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달 24일 전남 여수시 남면 여남중학교. 여수항에서 배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금오도에 자리한 여남중학교에 화상메시지가 도착했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서울대 인문학부 1학년인 진성일 씨(20). 금오도 출신으로 여남고에 다니던 지난해 ‘도전 골든벨’을 울렸던 주인공이다. 그는 메시지를 통해 “중학교 1학년 때 ‘Apple’이라는 단어도 쓸 줄 몰랐지만 원어민 영어 선생님의 수업 덕분에 지금은 영어로 진행되는 대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며 “원어민 영어교실에 참여해 존 매클린톡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덕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혹시 자신의 영어 실력이 좋지 않다는 생각으로 겁을 먹고 있는 후배님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존 선생님에게 다가가길 바란다”며 “영어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 친해지는 것”이라며 6년간 경험한 영어 실력 향상의 노하우도 전했다. GS칼텍스는 8년째 여수 섬마을 학교에 ‘원어민 영어교사’를 보내 학생들의 영어실력 향상에 힘을 쏟고 있다. 원어민 영어교실은 도시지역보다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취약한 여수 섬지역 학생들의 영어회화 능력을 키우기 위해 2007년부터 시작한 GS칼텍스의 대표적인 지역 사회공헌 프로그램. 지난해까지 남면, 화정면 등 도서지역 1940명의 초·중·고교생이 강의를 들었다. 원어민 강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존 매클린톡 씨(42). 키가 197cm로 학생들에게 ‘키다리 아저씨’로 통하는 존 씨는 섬과 섬을 옮겨 다녀야 하는 힘든 여건에도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7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금오도에 살고 있는 존 씨는 “섬에서 만나는 모든 학생들이 특별한 존재로 느껴진다”며 “아이들의 영어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2월까지 월∼금요일에 5개 섬(島)을 순회하며 13개 학교 193명의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영어수업을 진행한다. 최선영 여남중 영어교사는 “섬이라는 특성상 아이들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며 “8년째 이어지고 있는 GS칼텍스 도서학교 원어민 영어교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여수는 유인도 49개와 무인도 316개가 별처럼 흩어져 있다. 별 같은 섬 365개 가운데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와 백도에 먼저 눈길이 간다.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114km 떨어진 거문도는 뱃길로 2시간이 걸린다. 거문도는 1885년 영국 해군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불법 점령했다. 당시 영국 해군은 거문도 발견자인 해밀턴의 이름을 따 해밀턴항으로 불렀다. 아이러니하게 거문도는 국내에서 최초로 테니스·당구가 보급된 곳이다. 현재 거문도에는 해밀턴 테니스장이 있다. 거문도에는 또 1905년에 세워진 등대나 영국 해군 수병들의 묘지가 있다. 서도마을 언덕에는 인어해양공원이 조성돼 있다. 거문도에는 인어가 어민들은 보호한다는 전설이 있다. 인어해양공원에는 돌담장, 자연석을 깐 1.5km 길이의 산책로가 이색적이다. 동백나무 천지인 거문도 본섬은 고도 동도 서도로 이뤄졌다. 내년에 섬 3개가 모두 다리로 연결된다. 거문도 주변 섬 가운데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백도다. 거문도에서도 뱃길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백도는 국가명승지 제7호다. 백도는 돌섬 39개로 이뤄져 있다. 허민 여수시 삼산면장은 “거문도는 평생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3위에 꼽혔다”고 말했다. 여수시 화정면 사도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섬이다. 평평한 바위 위에 공룡의 발자국들이 새겨져 있다. 사도(沙島)라는 명칭은 ‘바다 한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는 의미다. 7개 섬으로 이뤄진 사도는 음력 2월이 되면 섬을 따라 바닷물이 ㄷ자 형태로 갈라지는 장관을 연출한다. 사도 인근 하화도(下花島)는 동백꽃, 진달래꽃 등이 만발해 꽃 섬으로 불린다. 하화도 서쪽에 자리한 장구도를 잇는 길이 340m의 출렁다리가 올해 완공될 예정이다. 정현자 여수시 문화관광해설가는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도 하화도 등 섬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전남 여수의 날씨는 쾌적하다. 연간 100일 이상 화창한 날씨를 보인다. 또 연평균 기온은 14.3도, 평균 일조시간은 2372시간으로 따뜻하다. 광주지방기상청 여수기상대 관계자는 “여수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3개월 동안 2.2cm가량 단 한차례 쌓였을 뿐이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눈이 쌓이는 것은 2, 3년에 한번 꼴에 불과해 도심이 은빛으로 변하면 축제 분위기가 된다. 남해안 정중앙에 위치한 여수는 일교차가 적다. 30년 평균 기온은 8월 25.8도, 12월 2.4도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쾌적한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다. 또 평균 풍속은 초속 14.3m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 같은 기후 특성으로 여수는 노인이나 어린이들 살기 좋은 관광휴양 도시 기후라고 평가받고 있다. 기후 특성 못지않게 바다와 산, 강, 논경지가 어우러져 주거환경에도 적합하다. 바다를 낀 농어업 복합지역이라 낚시, 등산, 텃밭 가꾸기를 하기 좋다. 해풍을 맞고 자란 돌산 갓과 서대회, 하모회 등 건강한 먹을거리도 있다. 돌산읍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신상도 씨(61)는 여수기후 매력에 흠뻑 빠졌다. 신 씨는 군인으로 20년간 복무했고 10여 년을 서울에서 살았다. 신 씨는 “여수는 기후, 경치 등 환경적인 축복을 받은 곳”이라며 “싱싱한 농수산물을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생활비가 서울의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수는 2005∼2006년 세계적인 컨설팅사인 미국 머서 휴먼 리서치 컨설팅(MHRC)이 발표한 삶의 질 평가에서 ‘사람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힌 세계 217개 도시 가운데 2번이나 109위에 선정됐다. 여수는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개최하면서 도시 접근성이 향상됐다. 고속철도(KTX)로 서울 용산에서 여수까지 3시간이면 도착한다. 또 전북 전주∼전남 광양 간 고속도로가 개통돼 서울에서 4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여수의 매력을 일찍 발견한 것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여수시 소라면 궁항마을 앞 해변에 별장을 지으려 한다. 별장에서는 여수와 고흥 사이 바다인 가막만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일상해양산업은 여수시 화양면에 상당한 땅을 확보했다. 이 밖에 다른 대기업 최고경영자들도 여수에 별장을 지으려 하고 있다. 장수시대와 베이비붐 세대 취향을 고려해 전원 휴양단지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도농복합 도시의 장점과 수려한 자연경관, 온후한 기온 등 자연여건이 바탕이 된 쾌적한 은퇴자 도시가 제격이다. 여수시는 2018년까지 은퇴도시 조성을 하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여수시는 장성·웅천지구, 돌산읍 평사지구, 소라면 복산지구, 율촌면 봉전지구, 화양면 장수지구에 은퇴자 도시(마을)를 조성하려 하고 있다. 마을별로 면적은 2만∼330만 m²에 20∼1500채로 꾸며진다. 여수시 화양면은 지난달 전남도로부터 은퇴도시 관리 후보지로 선정됐다. 여수의 은퇴자 도시 장래는 밝다. 여수시가 지난해 8월 여수 출신 출향인 900명을 대상으로 은퇴자 도시 입촌 의향을 물었을 때 68명이 입촌 의사를 밝혔다. 또 지난해 12월부터 2개월 동안 여수국가 산업단지 내 기업 13곳의 근로자 1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은퇴자 도시 입촌 의향자 2349명을 확보했다. 조태용 여수시 건설교통국장은 “여수는 인근 지역과 비교해 여름에는 2∼3도 기온이 낮고 겨울에는 2∼3도 높다. 청정해역에서 발생한 음이온으로 공기가 좋아 은퇴자 도시에 최적지”라고 말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세월호에 탑승한 안산 단원고 남학생이 소방본부에 침몰 사실을 처음 신고했으나 해경이 우왕좌왕하면서 출동시간이 지연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해경이 세월호 구조작전에 나선 것은 제주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의 출동 요청이 아닌 전남119의 신고에 따른 것이었다. 22일 공개된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과 목포해경의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사고 당일 해경은 급박한 침몰 상황을 신고한 고등학생에게 알기 어려운 세월호의 위도와 경도를 묻는 등 이해하기 힘든 대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침몰사고 최초 신고자는 단원고 2학년 6반 남학생으로 밝혀졌다. 이 학생은 사고 발생 일주일째인 현재까지 생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학생은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에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살려 달라. 배가 침몰하는 것 같다”며 침몰 사실을 알렸다. 세월호가 제주VTS에 조난 신고를 한 것보다 3분 앞선 시각이다. 이 학생은 119 상황실에 “제주도에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라고 밝혔다. 침몰 선박의 선명도 ‘세월호’라고 전했다. 119 상황실은 8시 54분 7초에 ‘휴대전화 위치를 파악해 보니 기지국 위치가 진도 조도 서거차도리로 나온다’며 신고자 전화번호를 해경에 알려줬다. 이어 8시 54분 38초에 신고자, 119 상황실, 해경이 3자 통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해경은 또다시 위치 파악에 나섰다. 해경은 신고자가 고등학생이라는 것도 파악하지 못한 채 “위치, 경·위도를 말해 주세요”라고 물었다. 해경은 계속 배 위치를 묻고 “GPS 경·위도가 안 나오느냐”고 물었다. 계속되는 해경의 황당한 질문에 학생은 몹시 당황하는 듯했다. 해경은 최초 통화로부터 1분이 지난 뒤인 8시 55분 38초에야 배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가장 먼저 파악했어야 할 선박 이름보다 신고한 학생이 알지도 못하는 경·위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때서야 학생으로부터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최초 신고 시간에서 4분 이상 지난 8시 56분 57초에 경비정을 출동시켰다. 이에 대해 해경 관계자는 “신고자가 처음에 선원인 것으로 착각했다”고 해명했다. 목포=정승호 기자shjung@donga.com}
전남지방경찰청은 21일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관련 TV 인터뷰를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홍모 씨(26·여)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홍 씨에 대해 22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홍 씨는 민간 잠수사를 자처하며 18일 오전 구조 현장인 진도군 팽목항에서 가진 종합편성TV MBN과의 인터뷰에서 “해경이 민간 잠수사 구조활동을 막고 있으며 대충 시간만 때우고 가라고 하고 있다”며 “민간 잠수사들이 수색작업을 못하게 해서 굉장히 격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씨의 인터뷰가 방송되자 해경은 “홍 씨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반박했고 경찰은 홍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홍 씨는 거주지인 경북 구미 등 친척집을 오가며 경찰의 추적을 피하다 20일 오후 자진 출석했다. 조사 결과 홍 씨는 잠수사 자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홍 씨는 경찰에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에 흥분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잘못 전했다”고 진술했다. 목포=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승객들이 물에 뛰어들기만 했어도 많이 구했을 텐데….”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할 당시 현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구조에 나선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항공대 소속 512호 헬기 조종사 김재전 경위(45)는 “안타깝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고 이후 매일 세월호가 가라앉은 해상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서고 있는 김 경위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김 경위는 사고가 난 16일 오전 우리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 조업 중국 어선 단속을 벌이고 있었다. 서해해경 상황실로부터 사고 해역으로 출동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오전 9시 2분. 김 경위는 최고 시속 250km로 130km 정도 떨어진 사고 현장에 25분 만에 도착했다. 서해해경 소속 513호와 511호도 도착해 함께 구조에 나섰다. 당시 세월호는 왼쪽으로 60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고 선체의 3분의 1 정도가 물에 잠긴 상태였다.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선체 오른쪽 난간에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몇몇 승객이 바다에 뛰어든 게 보였다. “배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여객선에 500명 가까이 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상공에서 봤을 때 밖으로 나온 승객이 몇 명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김 경위는 “물이 상당히 들어차 선내 상황이 급박하다고 느꼈다”며 “‘배가 저 정도 기운 상태에서는 승객들이 물속에 뛰어들어야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와 교신도 되지 않아 답답했다고 한다. 김 경위는 “선장과 교신만 됐어도 승객들을 빨리 탈출시키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경위는 “승객 10명을 호이스트 바스켓으로 끌어올려 서거차도로 이송하고 다시 와보니 배가 선수 바닥만 남긴 채 가라앉았다”며 “더 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당시 구명벌을 떨어뜨려 10명을 추가로 구조했다.목포=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는 승객을 빨리 탈출시키라는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선장과 승무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조타실이 있는 ‘브리지(선교)’에 모여 허둥대고 있다가 인명 피해가 커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전남 진도군청에 있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20일 공개한 세월호와 진도VTS 간 교신 내용 녹취록에서 드러났다. 교신 녹취록을 보면 진도VTS는 오전 9시 7분 세월호와 첫 교신을 했다. 이후 오전 9시 38분까지 31분간 27차례 교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첫 교신에서 세월호는 “지금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7분 후 진도VTS가 탈출이 가능하냐고 묻자 세월호는 “배가 많이 기울어서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오전 9시 17분에는 “선원들도 브리지에 모여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며 선장과 승무원들이 브리지에 모여 외부의 구조만 기다렸을 뿐 자체적으로 승객 구호 조치에 나서지 않았던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오전 9시 23분 진도VTS가 “방송을 해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입도록 하라”고 지시하자 세월호는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보고했다. 1분 후 진도VTS가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와 두껍게 옷을 입히라”고 지시했지만 세월호는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나”라고 되물었다. 이에 진도VTS는 “라이프링(구명튜브)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워라. 빨리!”라고 다그쳤다. 오전 9시 25분 진도VTS는 “선장이 직접 판단해서 빨리 인명 탈출시킬지 결정하라”고 거듭 승객을 탈출시킬 것을 지시했지만 세월호는 1분 후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세월호가 “경비정은 언제 오느냐. 바로 구조가 되느냐”는 대답만 반복하는 사이 진도VTS는 세월호 주변을 운항하던 다른 선박 4척에 실려 있는 구명정과 라이프링을 전부 바다로 투하해 세월호 승객들이 탈출하면 곧바로 구조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했다. 오전 9시 38분 배가 왼쪽으로 60도 기울었다는 세월호의 보고를 마지막으로 진도VTS와 세월호 간 교신이 끊겼다. 한시가 다급한 상황에 제주VTS에 첫 조난 신고를 한 오전 8시 55분 이후 금쪽 같은 43분간을 허비한 채 선실에 남아 있는 승객들을 뒤로하고 자신들만 탈출한 셈이다. 세월호와 진도VTS의 교신은 제주VTS에 첫 조난 신고를 한 시간보다 12분 늦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VTS는 세월호 신고를 받고 사고 지점과 18km 떨어진 진도VTS에 연락을 했다. 진도VTS와 교신한 사람은 선장 이준석 씨(69·구속)가 아닌 2등 항해사 김모 씨(47)로 알려졌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생존한 선박직 승무원 등 40여 명을 출국금지하고, 승무원들의 카카오톡 계정을 압수수색해 사고 당시 이들이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민관군합동구조팀은 선체 진입에 성공하면서 실종자 수색 및 구조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구조팀은 19일 선체 4층 격실 내부에 처음으로 진입해 시신 3구를 수습한 데 이어 20일 시신 16구를 추가로 수습했다. 또 해상에 떠오른 6구도 인양했다. 21일 0시 30분 현재 사망자는 58명으로 늘었고 실종자는 244명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경기 안산시와 전남 진도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은 대형 사고나 재난을 당해 정부 차원의 사고 수습이 필요한 지역에 선포된다.목포=정승호 shjung@donga.com·장관석 기자진도=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급선회’ 때문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면서 왜 급선회를 하게 됐는지를 두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6825t급 대형 여객선 ‘세월호’는 항적(航跡·항해 기록)을 통해 사고 직전 급선회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사고 당시 해역은 파도가 잔잔했고 암초도 없는 곳이었다.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사고 변수가 있었다는 얘기다. 운항 전문가들은 ①침몰 사고 전에 이미 세월호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거나 ②다른 선박과의 충돌을 피하려 했거나 ③항해사의 운항 부주의 가능성 등을 꼽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분석에 따르면 16일 오전 8시 48분 세월호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최초 사고 신고가 접수된 8시 52분보다 4분 앞서 뭔가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급선회한 뒤에 400여 m를 진행하던 여객선은 8시 52분 갑자기 방향을 다시 북쪽으로 틀었다. 세월호의 속도가 크게 줄면서 방향을 잡지 못한 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약 18노트(시속 약 30km)로 가던 배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속도가 5, 6노트로 줄었고 이후 4.3km를 지그재그로 운항했다. 해수부는 이때부터 사실상 세월호가 동력을 잃고 해류에 휩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여객선은 오전 10시 12분 완전히 멈춰선 뒤 오전 11시 20분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갑자기 항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대형 컨테이너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한쪽으로 쏠렸고 배의 무게 중심이 기울면서 침몰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해양학자들은 세월호가 일부 손상된 상태에서 출항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교수(항해학부)는 “침몰 당시 상황으로 미뤄 여객선 왼쪽에 금이 가 있었을 수 있다. 운항 도중 이곳으로 물이 들어왔고 갑자기 항로를 돌리는 과정에서 균열이 커지면서 침몰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윤철 한국해양대 교수(해사수송과학부)는 “배가 암초를 타고 넘어가듯 통과하다 밑바닥(선저)이나 선미 쪽이 살짝 긁혔을 경우 배 안에서는 충격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그 후 손상된 부위에 물이 스며드는 걸 모른 채 계속 운항하다 침몰 지점에서 중심을 잃으면서 급격히 가라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 산하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조사팀으로 이번 사고 관련 자료를 분석한 박성현 목포해양대 교수(국제해사수송과학부)는 침몰 원인을 다르게 봤다. 그는 “병풍도에서 제주도 방면으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뱃머리를 돌린 건 돌연 나타난 다른 선박을 피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아니면 여객선 조타기의 고장 때문에 급선회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의 한 선원 역시 “세월호가 사고 직전 다른 선박을 피하기 위해 선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미숙한 조종에 따른 과실도 침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사고 당시 조타실에는 세월호 운항에 투입된 지 5개월도 안된 3등 항해사 박모 씨(26·여)가 ‘키’를 잡고 있었다. 조류가 빠른 데다 좁고 굽은 협수로를 제대로 운항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선장 이준석 씨(69)와 박 씨에 대한 해경 조사 결과가 나와야 의문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목포=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 현장을 전격 방문해 “이렇게 많은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됐는데, 구조가 더뎌서 걱정이 많다”며 “어렵고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광주 인근 군사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차로 전남 진도 서망항으로 이동해 해경 경비함정을 타고 사고 현장을 둘러봤다. 안개가 짙게 끼고 바람이 많이 불어 앞이 거의 보이지 않자 “날씨가 좋아도 (구조 작업이) 쉬운 게 아닌데 바람도 불고… (해서 걱정)”이라며 “물속은 더 춥지 않겠느냐. 생존자가 있다면 1분 1초가 급하다”고 말했다. 또 “구조요원의 안전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이어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읍 실내체육관을 찾아 일일이 손을 잡고 위로했다. 가족들은 ‘현장 구조 작업을 실시간으로 보게 해달라’ ‘대통령 직속으로 책임자를 진도에 한 명 파견해 달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으로 책임질 사람들을 엄벌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0시경 이곳을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는 울분을 참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로 겉옷 상의가 벗겨지고 물세례를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여객선 침몰사고 이틀째인 이날 사고 해역 기상이 악화돼 수색이 잠정 중단됐다. 만조와 간조가 바뀌면서 조류가 멈추는 정조시간대인 오후 9시 40분부터 재개된 수색작업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해경은 처음으로 무인 로봇을 동원해 선체 진입을 시도했다. 이날 오후 2시경 실종자 수색 작업에 나선 민간 잠수사 3명이 실종됐다가 20분 만에 인근 어선과 다른 민간 잠수부들에게 구조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잠수부 수색과 함께 한 가닥 기대를 모았던 ‘선체 공기 주입 작업(에어호스)’은 선체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지연되고 있다. 해경은 이날 사고 해역 인근에서 시신 18구를 인양해 사망자는 24명으로 늘었고 실종자는 272명으로 집계됐다. 구조자 179명을 포함해 총 탑승객은 475명이다.목포=정승호 shjung@donga.com / 이재명 기자}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선원들이 선실에 갇혀 있는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채 선장을 먼저 탈출시킨 것으로 드러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선장은 사고가 난 지 30여 분 만인 오전 9시 반경 가장 먼저 배를 빠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선장은 승객이 탈 때부터 모두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선원법 10조 규정마저 지키지 않은 것이다. 17일 목포해양경찰서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기관사 손모 씨(59)는 “오전 8시 반경 ‘드르륵’ 하는 소리가 난 후 배가 급격히 기울었다”며 “기관실에 있던 승무원들과 함께 사다리를 타고 탈출한 후 해경 구명보트로 선장을 구출했다”고 말했다. 배에서 탈출을 지시한 선원은 기관장 박모 씨(48)였다. 조기수(기관사 보조역할)인 박모 씨(60)는 “배에서 ‘쿵’ 하는 소리를 듣고 10분 후에 기관장이 탈출하라는 전화를 해서 3명과 함께 배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선원 29명 가운데 구조된 선원은 모두 20명. 당초에는 17명이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1명의 선원이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3명이 더 구조된 사실이 확인됐다. 3명의 선원은 구조된 뒤 병원에 가지 않고 목포에서 머물다 이날 밤 늦게 경찰에 출두했다. 선원 가운데 사망하거나 실종된 9명은 선원 조리원이나 사무장, 여승무원,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선장과 기관사 등이 탈출하는 동안 승객들은 기울어가는 여객선에서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구조된 생존자들은 “배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 순간에도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10차례 넘게 반복됐다”고 전했다. 이는 선사 측에서 승무원들에게 ‘긴급 상황 시 모두 제자리를 지키도록 하라’는 원칙 이외에 별도의 대응수칙을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여객선 침몰 당시 조타실을 맡았던 항해사는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초급(3급) 항해사 박모 씨(26)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세월호에 투입된 지 5개월여밖에 안 된 상태였다. 항해사는 조타실에서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다. 세월호 같은 대형 여객선은 1급 베테랑 항해사가 맡아야 하는데 수백 명의 승객을 초보에게 맡긴 셈이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69)는 17일 오전 목포해양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그는 현재 심정과 왜 먼저 탈출했는지, 사고 원인을 묻는 질문에 “정말 죄송하고 면목이 없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 씨가 2004년 제주지역의 한 신문과 했던 인터뷰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20대 중반 우연히 배를 탄 뒤 20년간 외항선을 탔는데 첫 원목선이 일본 오키나와(沖繩) 인근 해역에서 뒤집혀 일본 해상 자위대가 헬기로 구출해줬다.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이번 사고도 없었을 것”이라는 등의 비난 댓글을 올렸다. 여객선이 침몰하기 직전까지 학생들을 탈출시키다 숨진 박지영 씨(22·여)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승객과 여객선을 두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승객 가족과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진도 체육관에 모인 실종자 가족들은 “어떻게 애들을 놓고 선장이 제일 먼저 배를 뜰 수 있나” “승무원들이 제일 먼저 도망쳤대, 우리 애들 놓고…”라며 가슴을 쳤다. 목포=조동주 djc@donga.com·곽도영·조건희 기자}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한쪽 손끝 아래가 바로 바다와 맞닿은 절벽, 쏴아 쏴아 돌돌돌돌….’ 김준현 여행작가는 전남 여수시 금오도 비렁길을 이렇게 표현했다. 권다현 여행작가는 전남 구례를 ‘걷고 달리고 날며 마시는 바람 한 점까지 맛있는 동네’라고 소개했다. 여행작가와 블로거, 일반인이 남도의 매력을 표현한 여행기 ‘가는 곳마다 추억꾸러미, 보는 것마다 이야기꽃’(사진)이 발간됐다. 여행작가 17명, 블로거 10명, 일반인 22명 등 총 49명이 참여했다. 역사, 생태, 슬로시티, 섬, 음식 등 고유한 멋과 풍광을 간직한 남도만의 속살을 이야기 형태로 실었다. 여행객들의 남도 여행 체험이 녹아 있는 포토에세이 22편, 블로거들의 남도 사랑 이야기 10편, ‘이야기땅 남도에 가고 싶네’ 독서 감상문 공모전 입상작 7편도 실려 있다. 김명원 전남도 관광정책과장은 “여행 정보뿐만 아니라 읽고 볼수록 정감이 느껴지는 글과 사진을 실었다”며 “포근한 남도 이야기를 따라 가족끼리, 친구끼리 떠나는 추억여행의 길잡이”라고 말했다. 책자는 남도여행길잡이 누리집(www.namdokorea.com), ‘여행도우미’ 검색 창에서 ‘관광가이드북’을 파일로 내려받으면 된다. 전남관광정보센터(061-285-9045)에서 우편으로 받아볼 수도 있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14일 전남 목포에서 93km 떨어진 신안군 흑산도. 다도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닷가에 펭귄, 왜가리, 쇠기러기 등을 형상화한 돌 조각이 늘어서 있다. 조각은 미로처럼 보이는 관람로 사이에 배치돼 아담한 돌담과 잘 어울렸다. 이곳은 4일 개장한 ‘천사섬 새 조각공원’. 신안군이 철새 중간 기착지인 흑산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새를 테마로 조성한 국내 최초의 조각공원이다. 유인도 73개, 무인도 931개 등 섬이 1004개인 신안군에 문화예술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다. 섬에 예술이라는 옷을 입혀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가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 ‘예술의 섬’ 신안 흑산도는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518종 가운데 390여 종 30여만 마리가 중간에 쉬어가는 기착지다. 동남아시아나 일본 남부, 호주 등지에 서식하는 새들이 번식하려고 봄에 들어왔다가 가을에 나가는 관문이다. 흑산도 진리 8500m²에 들어선 새 조각공원에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수입한 ‘쇼나(Shona) 새 조각’ 310점이 배치됐다. 돌담(410m)과 전망공간을 비롯해 동백, 배롱나무 등 6000여 그루의 나무도 심어져 있다. ‘쇼나’는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짐바브웨 인구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부족의 이름. 정과 망치 등 전통 도구만을 이용해 만들어 ‘돌에 영혼을 불어넣은 것 같다’는 평을 듣는 조각품이다. 신안군은 공원 종합안내소를 ‘새 인형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해 세계 각국의 새 인형을 수집해 전시할 계획이다. 인근에 건축 중인 ‘철새전시관’도 6월 준공한다. 쇼나 조각품은 압해도 분재공원에서도 만날 수 있다. 2009년 4월 압해도 송공산 남쪽 기슭 13ha에 들어선 분재공원에는 ‘책 읽는 사람’, ‘지상의 천사’, ‘여인’ 등을 테마로 한 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과감한 생략과 과장, 적절한 비유와 감춤 등으로 생동감과 신비감을 자아내면서 자연주의적 질감을 보여주는 조각 작품이 소나무, 주목, 곰솔, 향나무, 금송 등 2000여 점의 명품 분재와 조화를 이뤄 연간 5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섬 곳곳에 미술관 신안군은 일본의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꿈꾸며 섬 곳곳에 미술관 건립 사업을 벌이고 있다. 목포에서 배로 1시간 20분 걸리는 안좌도는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수화 김환기(1913∼1974)의 고향. 이곳에는 1926년 화가의 부친이 백두산 적송을 사들여 지었다는 기와집이 남아 있다. 신안군은 안좌도에 내년 말까지 김환기미술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수화의 생가에서 멀지 않은 신촌리 저수지 옆에 터 10만 m²를 사들이고 공모를 통해 설계를 확정했다. 그의 인생과 미술 세계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수화의 손때 묻은 유품도 확보했다. 청정해변과 염전으로 유명한 비금도에는 조각 전문 미술관과 조각공원이 들어선다. 신안군은 최근 비금도 출신 중견 조각가 김왕현 교수(동신대 산업디자인학과)와 예술작품 기증 협약을 맺었다. 3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김 교수의 40년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86점을 전시한다.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인 증도에는 성화(聖畵)를 위주로 전시하는 ‘골고다기독미술관’이 내년에 문을 연다. 2층 규모의 전시관에 기독교 관련 작품 등을 전시한다는 구상이다. 군은 미술관에 6·25전쟁 당시 스스로 순교자의 길을 걸어 마을 사람들을 살려낸 ‘여성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스토리를 입힐 예정이다. 조선시대 말기 매화의 대가 우봉 조희룡(1789∼1859)의 유배지였던 임자도에는 미술관과 기념관 성격의 ‘조희룡기념관’을, 자은도에는 사진작품 위주의 ‘사진의 섬 갤러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제50회 도서관 주간(12∼18일)을 맞아 호남지역에서 각양각색의 행사가 마련된다. 광주 무등도서관은 15일 오후 3시부터 1층 세미나실에서 ‘김용택 시인과 함께하는 봄날 스케치’ 행사를 갖는다. 선착순 20명에 김용택 시인의 저서를 준다. 16일 오후 4시 20분부터 어린이실 어울림방에서 유아와 부모를 대상으로 ‘오감발달 책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18일 오후 2시부터 우산근린공원에서 점자체험, 보행체험 등 착한 동행 장애체험 활동을 한다. 18일까지 사씨남정기 원화 20점을 전시하는 어린이 도서 원화 전시회와 여행 등 5개 테마를 주제로 봄맞이 살랑살랑 웰빙 도서전을 갖는다. 사직도서관은 ‘동화야 놀자! 동극놀이’, 마음치유 도서전시회, 해 지난 잡지를 나눠주는 장터를 연다. 산수도서관도 웃음치료, 패널시어터 공연, 전래놀이 체험, 이웃나라 전래동화 그림그리기 등 8개 행사를 마련한다. 문의는 도서관 홈페이지(citylib.gwangju.kr)나 무등도서관 문헌정보과(062-613-7729). 전남도립도서관은 ‘재미있다 우리 고전―홍길동전, 춘향전’ ‘가방 들어주는 아이’ 등 초등학생이 보는 사계절 대표 그림책 19권의 원화를 전시한다. 061-288-5234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에 있는 득량역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 간이역이다. 1930년 영업을 시작한 득량역이 코레일의 문화공간 프로젝트로 새롭게 태어났다. 역 주변 거리는 1970, 80년대 시골 번화가의 모습으로 재현됐다. 초등학교, 문방구. 상회, 다방, 사진관, 이발관, 만화방 등 추억의 향수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남도해양열차인 ‘S-트레인’을 타고 도착하면 풍금 치는 역장도 만날 수 있다. 역장 3명이 교대로 근무하며 ‘고향의 봄’ 등 동요를 들려준다. 대전을 출발해 전남 순천을 거쳐 광주 송정리로 향하는 S-트레인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1시 17분 득량역에 도착한다. 17분간 정차하는 동안 승객들은 역장의 풍금 연주를 듣고 추억의 거리를 걷는다. 역 주변에 야생화 단지도 조성됐다. 2만 m²의 화단에는 비올라, 꽃잔디, 금잔화 등 야생화 5만여 본이 심어져 향긋한 꽃내음을 맡을 수 있다. 인근 오봉산 편백나무 숲과 소원바위를 연결하는 2km의 산책로와 쉼터도 있다. 체험거리도 늘어난다. 보성군은 ‘득량 추억의 거리 문화전시공간 조성사업’의 하나로 역전 롤러장과 오락실, 전시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코레일은 S-트레인과 득량역을 테마로 한 철도여행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남만종 역장(42)은 “1일부터 S-트레인 승객을 위해 풍금 연주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다”며 “역 왼편 500m 거리에 조성된 추억의 거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네 삶을 잔잔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득량역 061-749-2507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이제 하나만 남았네요.” 8일 전남 담양군 용면에서 ‘추성고을’이란 술도가를 운영하는 양대수 씨(58)는 약간 들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전통주 ‘타미앙스(TAMIANGS)’가 한 달 새 세계 3대 주류품평회 가운데 2곳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이날 전해 들었다. 세계 3대 주류품평회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류품평회, 벨기에 브뤼셀의 몽드셀렉션, 영국 런던의 국제주류품평회가 꼽힌다. ‘타미앙스’는 지난달 열린 샌프란시스코 주류품평회 증류주 부문에서 대상인 ‘더블골드’를 수상했다. 품평회에는 전 세계 70개국에서 1474종의 술이 출품됐다. 주류 평론가, 바이어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 33명은 술맛을 보고 ‘원더풀’을 외쳤다. 3주 후에 열린 몽드셀렉션에서도 찬사가 쏟아졌다. 대나무 숯으로 여과하는 독특한 제조 비법과 오랜 숙성을 통해 나온 황금 빛깔에 매료된 심사위원들은 ‘그랜드골드’ 메달을 선사했다. “6월 런던에서 열리는 품평회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여기서도 최고상을 타면 우리 전통주가 당당히 세계 명주 반열에 오르게 될 테니까요.”○ 5대째 이어가는 술도가 양 씨의 술도가에는 120년 넘게 전해 내려오는 비방이 있다 ‘추성주(秋成酒)’라는 전통주 제조 기법이다. 양 씨 증조할아버지가 족자에 300여 자의 한자로 써 놓은 것을 할아버지가 한글로 풀어 쓴 것이다. 모든 전통주가 그렇듯 추성주도 일제강점기에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았지만 비법을 고이 간직한 덕에 ‘전통 명주’로 재탄생했다. 양 씨는 20년 전 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농협에 다니던 그는 1998년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직장을 그만두고 양조장을 차렸다. 부인 전경희 씨(58)와 함께 ‘가문의 비법’을 익혀 나갔지만 복원은 쉽지 않았다. “추성주는 한약재가 첨가되기 때문에 술을 빚는 과정이 까다로워요. 한약재마다 달이거나 찌고 볶는 방식이 제각각이거든요.” 약재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추성주를 빚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2년 가까이 대학과 연구기관, 한약방을 찾아다니며 약재 연구에 매달렸다. 구기자와 갈근 등은 달이고, 오미자와 우슬 등은 볶고, 연뿌리는 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술을 빚어 주위 사람들에게 맛을 보였는데 ‘술이 싱겁다’, ‘냄새가 난다’ 등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숙성 과정을 조절하고 약초 분량을 가감하는 등 노력한 끝에 2000년 국내 22번째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두 세기에 걸친 양 씨 가문의 ‘술 빚는 솜씨’가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 양 씨는 “지문이 지워질 만큼 멥쌀을 씻고 산비탈을 오가며 약초를 캐온 아내가 없었다면 추성주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아들 재창 씨(32)가 기능전수자로 나서 가양주(家釀酒)의 맥을 5대째 잇게 됐다. ○ 전통주를 세계 명주로… 알코올 도수가 40도인 ‘타미앙스’는 ‘추성주’의 형님뻘이다. 도수는 천연암반수를 얼마나 넣어 희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00일 이상 발효시킨 후 10년 이상 숙성시킨 타미앙스는 연간 1000병 정도만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술 이름은 ‘담양(Damyang)’을 프랑스어 식으로 명명한 것이다. 술맛은 어떨까. 묵직한 첫맛과 부드러운 목 넘김, 깔끔한 뒷맛이 혀를 감싸며 오감을 자극했다. 양 씨에게는 ‘전통주 세계화’라는 꿈이 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고 했다. “외국의 유명 와인이나 위스키는 숙성 기간을 표시해 신뢰감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충 몇 년 정도 됐을 거라고 하고 판매합니다. 오크통과 같은 규격화된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죠. 디자인도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어필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부분 영세한 전통주 제조업체는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술맛의 30%는 재료에서, 나머지는 정성에서 나옵니다.” 산세 좋고 물 좋은 추월산 자락에서 빚어진 술은 양 씨의 당찬 꿈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