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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침략 사실마저 부정하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유례없는 우경화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외교가 엄중한 시험대에 올랐다. 2015년까지 구체화할 계획이던 박근혜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은 출항하자마자 ‘일본의 역사 도발’이란 큰 암초를 만났다. 정부는 이 암초를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아베 총리는 23일 일제의 침략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 데 이어 24일에도 참의원 예산위원회 답변에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 각료들에게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3일 밤 ‘영토·주권을 둘러싼 내외 발신에 관한 전문가 간담회’ 회의에서 “일본의 입장이나 생각을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침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본의 영토와 주권에 대한 도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영토를 단호하게 지키는 결의가 기본”이라고 말했다.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에서 한국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이나 분쟁에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늦어져도 역사 문제에서 타협은 없다”는 강경 기조를 정했다. 정부는 금명간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일대사의 본국 소환 등 추가적인 강경 대응책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대일 대응 기조는 3대 전략으로 압축된다. 복수의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선 정부는 한일 관계 정상화의 출발이 늦어지더라도, 임기 초 보여주기 식 관계 개선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역사 문제를 덮어두는 지난 정부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초 과거보다 미래를 강조하며 한일 관계를 개선했다가 임기 말인 지난해 독도를 전격 방문해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 주일대사 소환 등 강경책 검토 ▼둘째, 정부는 일본에 새로운 사죄보다 기존의 공식 사죄를 무력화하지 말 것과 함께 사죄에 따른 일본군 위안부 배상 등 구체적 행동을 요구할 계획이다. 한 당국자는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해 사죄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처럼 일본 총리나 일왕이 다시 사죄해도 좋지만 이를 공식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도 일본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협력할 때나 가능하다고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24일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며 실천을 강조했다. 셋째, 이런 상황에서도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경제 협력과 북핵 공조는 이어가기로 했다. 역사인식을 비판하는 것이지 국교를 단절하자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 감정을 건드리는 한일 간 군사협력은 어렵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아베(총리)에 대한 박근혜(대통령)의 실망감과 배신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당초 5월 서울 한중일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 간 별도의 담판 회동을 통해 한일 국교 수립 50주년인 2015년까지 한일 과거사 문제를 풀 단초를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배상 등 과거사 사죄 문제는 일본 정상의 정치적 결단 없이 당국자들 간 외교협상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중-일 영토분쟁으로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의 5월 개최가 물 건너가고 아베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잇단 역사 도발로 박 대통령의 이 구상은 모멘텀(동력)을 찾기 어렵게 됐다. 정부의 대일 전략은 작금의 비상 상황 때문에 마련한 ‘플랜B’(차선책)인 셈이라고 외교소식통은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본을 자제시킬 실질적 힘이 있는 미국을 적극 활용하는 외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베 총리의 고노 담화(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 수정 검토에 제동을 건 게 버락 오바마 행정부이기 때문이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제의 침략을 부정한 아베 총리의 발언은 바꿔 말하면 ‘미국이 일본을 침략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이성적인 주장 아니냐”면서 “대미외교를 펼쳐 미국이 일본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비공식 경로로 일본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신호를 함께 보내 힘을 잃은 일본 내 친한파가 목소리를 낼 여지를 만들어주는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도쿄=박형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북한이 잘못하고 있다. 개성공단을 볼모로 삼으면 안 된다. 그건 북한이 자해하는 일이고 남북을 같이 해치는 일이다. 북한이 영원히 폐쇄된 고립국가로 갈 작정이 아니라면 개성공단을 열어야 한다.” 개성공단 산파역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사진)은 이렇게 강조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개성공단 출입이 제한된 지 20일째인 22일 그가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했던 그는 인터뷰 내내 책상을 주먹으로 쿵쿵 내리치며 한국 정부에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다 “개성공단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시금석이다. 북한이 잘못했지만 남측이 형의 위치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11일 대화를 제의한 박근혜 대통령이 잘 판단했다. 문제는 후속조치가 없다는 점이다. 참모들 모두가 박 대통령의 입만 보고 있다. 양질의 보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왜 개성공단이 중요한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한국이 대북정책의 그림을 그리면 미국은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는 태도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성공의 좋은 기회다. 그 첫 단초가 개성공단이다. 지금과 같은 최악의 정치·군사적 위기에서 개성공단을 살려내면 박근혜정부의 유연한 대북정책이 결실을 맺고 반석에 올라간다. 한국의 레버리지(지렛대)와 주도권이 생긴다. 북핵 문제는 남-북-미에 걸쳐 있지만 개성공단은 남북문제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북한은 더이상 경제특구 외자유치 얘기를 할 수 없다. 멀쩡히 잘 돌아가는 공단을 닫고 무슨 경제특구며 외자유치냐. 북한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 정부 5년의 남북 경색을 되풀이하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좌초할 수도 있다. 개성공단이 덜커덕 닫히는 날 한국 신용등급도 떨어질 것이다.” ―중요한 기로란 뜻인가. “박근혜정부가 정말 개성공단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공단을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 문제를 풀기 위한 회담의 날짜와 장소, 대표의 급을 구체적으로 정해 북한에 제안해야 했다.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자신들이 손해라고 생각하도록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한다.” ―대북 특사 얘기도 나온다. “급한 건 형식보다 내용이다. 북한은 1인 집중 체제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귀에 개성공단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가 직접 전달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특사든, 국정원의 팩스든, 중국 베이징에서의 면대면(面對面) 접촉이든, 편지든, 뭐든지 해야 한다. 김정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지금은 (최근 김정은을 만난) 미국 농구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한테나 물어봐야 하는 상황 아닌가.” ―박 대통령의 대북 대응을 평가하면…. “세 가지 장점과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을 말하겠다. 우선 출범 초기 대북 대응을 신중히 잘했다. 둘째, 박 대통령은 북한 최고지도자(김정일)와 직접 소통한 경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정신과 가치를 물려받으면 대북정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장점들을 살릴 보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우파 반공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어냈기에 미국 국내 여론이 분열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에서 적극적인 이니셔티브(주도권)를 행사하며 대화에 나서도 우리 내부가 분열되지 않을 것이다. 닉슨 옆엔 헨리 키신저가 있었다. 박 대통령에게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이행전략을 짤 ‘한국판 키신저’가 필요하다. 20년을 끌어온 북핵의 한반도 냉전구조를 바꿀 좋은 타이밍이다. 이 구조를 해체하면 박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이 될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는 북한 붕괴론의 유혹에 빠져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다렸다. 북한이 그걸 몰랐겠나”라고 말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박 대통령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 지도부는 체제 생존이 제1가치다. 박 대통령이 ‘우리는 당신들을 붕괴시키려 하지 않는다. 체제 보장과 경제 발전을 도와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하면 북한도 협력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한일관계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일본의 역사 도발이 한국 정부를 크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아베 총리가 공물을 보내고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을 비롯한 현직 각료들이 참배한 데 항의해 일본 정부와 구체적 일정까지 합의됐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방일을 22일 전격 취소했다. 윤 장관은 26, 27일 이틀간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방일을 무기 연기한 것이다. 당분간 일본에 가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일본 정부는 역사를 망각한 시대착오적 행위를 즉시 중단하라”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내각 2인자인 아소 부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중대 행위로 보고 있다. 아소 부총리는 박 대통령 취임식 때 한국을 방문해 박 대통령을 접견한 인물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그에게 “한일 간의 진정한 우호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역사를 직시하면서 과거의 상처가 더이상 덧나지 않고 치유되도록 노력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가 있어야 한다”라는 당부를 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일본이 외면한 셈”이라며 어느 때보다 강경하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도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도 강력히 항의했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이 과거 침략 역사를 심각히 반성해야만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진정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며 일본에 강한 유감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반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윤 장관의 방일 취소에 대해 “각각의 나라에는 각각의 입장이 있다. (참배 문제 등이) 외교에 너무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각료 3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개인 차원의 참배로 이해하고 있다. 각료의 사적 행동에 관해 정부로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윤완준 기자·도쿄=박형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의 목적은 1974년에 발효된 협정을 한미 양국의 달라진 현실에 맞게 고쳐서 미래의 공동 이익을 위한 튼튼한 발판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협상 전략은 △40년 전 ‘주는 미국’과 ‘받는 한국’이란 일방적 구도 속에서 체결됐던 협정을 호혜적으로 바꾸고 △세계 5위의 원전 보유국에 걸맞은 우라늄 저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5차 본협상 이후 14개월 만에 6차 협상 테이블(16∼18일 미국 워싱턴)에 마주 앉은 한미 대표는 ‘협정 시한 2년 연장’이란 초라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정부 일각과 서울 외교가에서는 “한국 정부가 다음 달 초 첫 한미 정상회담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원자력 국익을 기필코 관철하겠다’는 당초 배수진 전략을 접고 운신의 폭을 너무 빨리 좁힌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실제 정부 관계자는 “한미 정상회담이 협상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고 털어놨다. ○ 한국, 얻은 것 없이 협정 시한만 연장 정부 고위 관계자는 19일 “협상 첫날 결과보고 때만 해도 한미 간 이견을 조율하기 어렵다는 내용만 있었다. 연장안 논의가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협정 기간 2년 연장’ 타협안이 다분히 미 측의 공세에 밀린 결과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한국 측은 협상에서 △핵연료의 안정적인 공급에 필요한 우라늄 저농축 권리 조항을 마련하고 △포화상태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활용(재처리) 방식인 ‘파이로 프로세싱(건식처리)’ 기술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받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이 일부 허용할 의사를 밝히면서도 한국 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단서를 많이 다는 바람에 의견 조율이 불가능했다고 다른 고위당국자가 전했다. 이에 정부 일각에서는 “강경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자 한미 정상회담의 갈등 요소를 없애는 쪽으로 협상 전략이 선회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최근까지 방한한 미국의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한국의 국익을 고려한 미래지향적 협정 개정’을 강한 어조로 당부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협상에서 우리가 얻으려는 게 있고 그걸 위해 협상 준비를 해왔다. ‘협정 시한 연장’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협상 대표단이 귀국한 뒤 관련 보고를 하고 박 대통령의 최종 결심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미국과 협정 개정에 타협의 여지는 아직 있다. 이달 말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한미 간 협의를 더 진행한 뒤 ‘협상 시한 연장’ 안을 받을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초 박 대통령의 방미 전까지는 협상 성과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예상보다 더욱 강경한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은 최근 방한했을 때 “한국의 원자력 안전관리에 믿음과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비확산 정책에 따른 농축과 재처리 금지를 핵심 동맹국이자 ‘핵 모범국가’인 한국에까지 엄격하게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중요한 국정 철학인 핵 비확산 정책 앞에 동맹국 한국의 국익이나 국민 정서는 철저히 외면당한 셈이다. 미국 의회 관계자는 “미국 행정부는 한국의 요구가 핵무장이 아닌 경제적 상업적 핵 이용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협정 개정안의 비준권을 가진 의회 관계자들은 ‘한국의 농축 재처리’와 ‘북한의 핵 개발’을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미국 측은 협상에서 한국 보수진영 일각에서 제기된 ‘핵 주권론’까지 거론하며 한국이 요구해온 재처리 농축 권리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핵 주권 여론이 한국 측의 협상 카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미 측의 공세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것은 한국이 미국에 완전히 밀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미 대표 언론 뉴욕타임스도 19일 원자력협정 개정에 강력히 반대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 신문은 “한국 측 요구를 수용하면 국제사회 안보가 취약해질 수 있으니 협상에서 미국이 강경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한국이 농축과 재처리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최근 심각해진 남북관계 긴장 때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윤완준 기자·워싱턴=신석호 특파원 zeitung@donga.com}
박근혜정부와 미국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 간 한미관계 설정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돼온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양국 간 의견 차이 때문에 사실상 결렬됐다. 정부는 당초 ‘협정이 깨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각오하는 배수진을 친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지만 미 측의 완강한 태도에 가로막혀 ‘협정 시한 2년 연장’이란 타협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의 협상 전략이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19일 복수의 미국 워싱턴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박노벽 한미원자력협정 협상 전담대사와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16∼18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개정 본협상을 갖고 원자력협정 시한(2014년 3월)을 2016년 3월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윤완준 기자 kyle@donga.com}

정부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취임식(19일)에 야당인 민주통합당 소속 박병석 국회부의장(사진)을 정부 특사로 18일 파견했다. 이번 특사는 정치권과 외교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우선 박 부의장이 야당 의원으로서는 처음 상대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정부 특사라는 점이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박 부의장이 한-베네수엘라 의원 친선협회 회장이라는 점과 함께 ‘외교안보에 여야가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두로 대통령이 당선된 14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박 부의장에게 “정부 특사로 갈 수도 있다”고 즉시 연락했고 17일 오후 9시경 특사 파견이 확정된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경기 파주시의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에덴하우스’를 찾아 장애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직업재활시설 ‘에덴하우스’ ‘형원’ 등 2곳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좀 더 좋은 일자리와 훈련, 교육의 기회를 늘려 (장애인들이) 희망을 갖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게 저와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파주=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이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데 이어 ‘비핵화에 대한 의미 있는 조치’를 조건으로 “대화를 원한다”는 미국의 메시지도 16일 거부했다. 북한은 이날 오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우리가 먼저 비핵화 의지를 보여줘야 대화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법을 감히 무시하려 드는 오만 무례하기 그지없는 적대행위”라며 “대화를 반대하지 않지만 핵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상대와의 굴욕적인 협상에는 마주 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대화 타령을 늘어놓고 있다”며 “이것은 미국이 마치 군사행동을 자제하고 대화를 원하는 듯 행세해 전쟁으로 치닫는 긴장격화의 책임에서 벗어나 보려는 교활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 공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진정한 대화는 오직 우리가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막을 수 있는 핵 억제력을 충분히 갖춘 단계에 가서야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날 새벽 최고사령부 명의로 발표한 ‘최후통첩장’에서는 한국 정부에 “대화를 원한다면 모든 반북행위를 사죄하라”며 “남조선 괴뢰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인 반공화국 집회에서 우리 최고 존엄의 상징인 초상화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남측이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 지금까지 감행한 모든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사죄하고 전면 중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밝혀 대화 가능성의 여지는 남겨뒀다. 개성공단을 관할하는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이날 밤 비망록을 내고 개성공단 중단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리면서 “남측이 우리의 중대 조치에 계속 시비를 걸며 책임을 전가하려 들면 사태는 더욱 악화돼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6일 “북한이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잠재적인 해결책 논의에 동의하기에 앞서 앞으로 몇 주간 북한으로부터 더 도발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NBC방송의 ‘투데이’ 프로그램에 나와 “북한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은 없다고 보지만 미국은 모든 긴급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도발적인 행동에 보상하지 않을 것이다. 밥상 위에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제 갈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윤완준·조숭호 기자·워싱턴=신석호 특파원 zeitung@donga.com}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을 중국으로 가져가서 논의하겠다.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2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후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이 11일 북한에 전격적으로 대화를 제의한 것을 지지하고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과도 협의해 이를 외교적으로 지원할 의향이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케리 장관은 한국에 이어 13∼15일 중국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해 북한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케리 장관이 사실상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 케리, “한국 주도의 남북대화 지지” 이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한미 양국 외교장관 회담은 2일 워싱턴에서의 회담 뒤 열흘 만에 열린 것이다. 그 열흘 사이에 북한은 개성공단 운영 중단, 평양 내 외국 대사관 철수 권고 같은 새로운 위협카드를 꺼내들었고, 현재는 중거리 무수단 미사일 발사 준비까지 마친 상태다. 케리 장관은 이를 의식한 듯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우리 동맹국을 방어할 것”이라고 잇달아 강조했다. 또 “모든 것은 김정은의 선택에 달렸다. 좋은 쪽의 가능성과 옵션을 선택하라”며 북한에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윤 장관도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가동될 수 있도록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박 대통령이 북한에 던진 대화 제의를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만큼 국제적 관심이 쏠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케리 장관은 “박 대통령을 만나 여러 질문을 했는데도 인내심을 갖고 잘 답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미국 측이 한국의 대북 전략과 대북 대화 전망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실제 그는 박 대통령에게 “대북 대화 제의 의미가 뭐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뭐냐” “어떻게 신뢰를 쌓으려고 하느냐” 등을 꼬치꼬치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느냐”고 묻자 그는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충분히 전하려는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한 배석자가 전했다. 이날 접견은 예정 시간(50분)을 20분 넘겨 1시간 10분간 진행됐다.○ 한국 주도의 ‘키-디플로머시’ 본격 가동 토대 마련 케리 장관은 회견에서 “우리도 적절한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이야기해왔고 그 상황이 무엇인지는 한국 측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절대로 한국의 주권이나 독립적 선택, 의견을 방해할 생각이 없다”고도 했다. 한국이 북한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I-Diplomacy)’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 셈이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남한의 대화 제의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면 현재의 경색 국면에서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케리 장관은 이날 가는 곳마다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의 핵 위협에 경고를 보내는 한편으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앞두고 한국 보수 진영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 주권론’도 경계하기 위한 다목적용으로 풀이된다. 그는 공동 회견에서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도 핵보유국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1일(현지 시간)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공개된 ‘현재 북한이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적절한 확신이 있다’는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 기밀 보고서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부정확한 보고서”라고 일축했다. 케리 장관은 이어 “북한이 점점 위험한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 완전히 시험되고 가용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저녁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주최한 간담회에서도 “북한 같은 나라 하나가 핵을 갖게 되면 ‘억제력의 작용과 반작용’ 현상 때문에 다른 나라도 핵을 가지려 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런 핵 도미노 위험을 막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는 중국”이라며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이정은·윤완준 기자 lightee@donga.com}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2일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6자회담이든 양자회담이든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과거와) 다른 평화의 비전을 갖고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정치가 현실화되기를 희망한다”며 강한 지지 의사를 보냈다. 이날 한국을 처음 방문한 케리 장관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국제적인 의무를 받아들이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비핵화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박 대통령의 대북 대화 제의에 대해 “한국과 완전한 협력의 프로세스를 통해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대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며 이례적으로 ‘통일’을 세 차례나 언급했다. 그는 북-미 직접대화의 조건에 대해 북한의 태도 변화가 먼저라고 선을 그었다. 케리 장관은 “매번 반복돼온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려는 사람은 더이상 없다. 이런 대화는 불필요하고 위험하다”고 못 박았다. 또 “만일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이는 국제사회를 무시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심각한 오판”이라며 “북한 주민은 미사일이 아니라 식량을 원하고, 힘자랑하고 싶은 지도자가 아니라 기회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모든 것이) 김정은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케리 장관을 만나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히 응징하겠지만 북한이 변화를 받아들여 대화의 장에 나오면 상호 신뢰를 쌓아나가 공동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문제에 대해 “선진적, 호혜적 협정 개정을 위해 창의적으로 접근해 가자”며 미국의 전향적 태도를 요청했다. 한미 양국은 협정 개정을 위해 가까운 시일 내에 수석대표 협상을 열기로 합의했으나 미묘한 인식 차이를 보였다. 케리 장관은 “지금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 등으로 상당히 민감한 시점이고 우리는 그런 문제들이 원자력협정에 미칠 영향에 예민하다”고 말했다. 이에 윤 장관은 “한국이 세계 5위의 원전보유국으로서 필요한 여러 조건을 맞추는 결과가 상호 신뢰 위에서 나오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윤완준·이재명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의 김정은은 지난해 4월 11일 노동당 제1비서와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군사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이 해외유학파 20대 청년이 이끈 북한의 ‘지난 1년’은 핵실험, 두 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 노골적인 대남 대미 위협과 협박으로 얼룩졌다. 북한 같은 세습 독재국가는 지도자의 개인적 특징이 국가정책에 그대로 투영된다. 벼랑 끝 전술로 북한을 까마득한 벼랑 끝에 세운 ‘김정은의 3대 코드’를 분석했다.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은은 어릴 적부터 강한 승부욕을 보였다. 형인 김정철과 각자 팀을 이뤄 농구경기를 할 때도 자기 팀원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승리를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김정철이 팀원을 다독이는 리더십을 보인 것과 대조됐다. 구슬놀이를 하다가 화를 못 참고 김정철의 얼굴에 구슬을 던진 일도 있다. 2009년 4월엔 김정은의 지시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맏형 김정남이 머물던 평양의 안가를 습격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정은 나이 25세 때의 일이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이런 기행(奇行)적 승부욕이 대남 대미 정책에도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고 봤다. 한국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욕구가 노골적인 남침 위협 등의 극단적 호전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핵 공격 위협도 지기 싫어하는 성정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봤다. 김정은이 현실적으로 한국을 무력 공격하지 못하는 울분을 대남 사이버테러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② 처음부터 군사지도자 수업 김정일은 젊은 시절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그가 권력투쟁에서 자신의 삼촌이자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를 숙청하며 후계자로 올라선 것은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선전선동에 능했던 덕분이다. 반면 김정은은 어린 시절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을 마치고 2001년 귀국한 뒤 2006년 12월까지 김일성군사종합대에서 군사학(포병)을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그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에 기초한 새로운 작전지도’를 북한 최초로 만들었다고 선전한다. 이 지도는 졸업논문으로 작성한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처음부터 군사지도자로 후계 수업을 받은 점이 지금의 극단적 공격성으로 고착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2010년의 연평도 포격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 복무 경험이 없는 김정은은 자신을 군부지도자로 보이게 포장하고 집권 초기 전과(戰果)를 만들어 권력 안정의 기반을 다지려 한다. 따라서 극단적 군사모험주의를 선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스로 권력기반을 구축한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권력 지도부에 의해 군사지도자로 디자인돼 가고 있다”며 “미국과 전쟁하려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도 그 디자인의 과정”이라고 말했다.③ 냉전시대의 김일성 모델로 회귀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스타일과 행보가 유독 김일성을 닮았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대중 앞에 서는 걸 꺼렸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대중 앞에서 육성 연설하는 모습까지 북한 매체를 통해 선전한다. 김정은이 김일성을 ‘롤 모델’로 삼은 건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일성이 김정일보다 인기가 높다는 걸 노린 결과다. 군대를 직접 지휘했고 전략전술에 능해 미 제국주의에 승리했다고 선전돼온 김일성 신화를 김정은에게 덧씌워 체제 내부의 불안을 해소하고 세습 권력의 정통성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 선포한 ‘경제와 핵무력의 병진노선’도 김일성 시대의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복사판이다. 노골적이고 장기화 조짐마저 보이는 북한의 최근 도발 위협도 6·25전쟁, 빨치산식의 대남 도발, 남침 위협, 대미 항전이라는 냉전시대의 군사전략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일 시대에는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미국 공격을 위협하진 않았다. 김일성 시대 때 유행했던 ‘미제의 각을 뜨자’란 섬뜩한 표현이 최근 다시 자주 등장하는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미 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미국은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고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는 경우에도 한미 간 긴밀히 조율하고 먼저 남북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회의를 느낀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을 배제한 북-미 양자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정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미국은 자신들이 나서서 상황을 돌파할 생각이 없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주도의 전방위 외교, 즉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I-Diplomacy)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선 오바마 행정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 북한과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미국과 북한의 대표적 접촉선인 뉴욕채널의 역할이 크게 퇴색됐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9일 “뉴욕채널은 수년간 제 역할을 못한 데다 최근 북한의 잇단 도발 위협으로 사실상 ‘외교적 우체통’ 역할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도 뉴욕채널 당사자인 클리퍼드 하트 미국 6자회담 특사와 한성렬 북한 차석대사가 9일 뉴욕에서 만나긴 했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고 전했다.윤완준 기자·워싱턴=정미경 특파원 zeitung@donga.com}
정부가 유럽연합(EU)을 ‘대북 메신저’로 활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9일 “북한이 미국과 중국의 말조차 듣지 않는 상황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북한과 수교한 EU를 새로운 대북 채널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EU가 북한과 접촉할 기회에 정부의 대북 메시지를 EU를 통해 북한에 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끝 모를 ‘벼랑 끝 전술’로 대화 통로가 꽉 막혀 있는 데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당사국들도 거의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EU를 현 상황 타개를 위한 ‘구원투수’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EU를 통해 북한에 태도 변화를 촉구하면서 ‘북한이 일정 기간 도발하지 않으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EU가 북한과 수교했고 EU 회원국 27개국 중 25개국이 수교했으며 평양에 공관이 있는 회원국도 7곳이어서 대북 메시지를 북한 지도부에 전달하기가 수월하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EU 회원국인 독일에 대해 “북한은 독일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북한-독일 관계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한 당국자는 “북한이 미국보다 EU 말을 비교적 잘 듣는다”며 “북한 인권 문제도 미국보다 EU가 제기하면 북한의 저항감이 덜하다”고 말했다. EU와 회원국들은 주요 인사의 방북이나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도 비교적 잦은 편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8일 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외교장관)와 통화를 하고 한-EU 간 대북정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애슈턴 대표는 “대북정책에서 한국과 함께 연대할 것이고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분명한 대북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말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밝혔다. 윤 장관은 애슈턴 대표에게 “EU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여론 조성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내려오시기 전에 개성공단을 잠정 중단하고 북측 근로자 철수시킨다는 얘기 못 들으셨어요?”(기자) “내려오기 전엔 못 들었죠. 북측 근로자들은 당 상부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내색을 전혀 안 해요.”(익명을 요구한 개성공단 업체 관계자 A 씨) “언질이나 귀띔도 없었고요? 개성공단을 관할하는 조선특구개발지도총국은요?”(기자) “총국은 말하기가 그렇고…. (잠깐 말을 멈춘 뒤) 총국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할 남측 사람 몇 안 될 겁니다. TV 카메라가 없으니 얘기할게요. 실은 오늘 김양건(북한 노동당 대남사업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개성공단에 온 뒤에 제가 총국 관계자를 만났는데…. 김양건이 왔으니 좋은 쪽으로 될 것으로 기대하고 총국 사람과 이야기를 계속 나눴어요. (한참 주저하다) 하지만 결국 좋은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요.”(A 씨) 8일 오후 5시 50분경 동아일보 기자와 대화하던 A 씨는 취재진이 몰려오자 “나 이제 가볼게요”라며 서둘러 차를 타고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를 떠났다. A 씨는 이날 오후 5시 반경 개성공단을 오가는 길목인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남측으로 돌아왔다. 애초 이날 5시경 돌아오기로 한 남측 업체 관계자 29명은 30분이나 늦게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개성공단을 잠정 중단하고 북측 근로자를 철수시킨다는 김양건의 담화 사실이 오후 5시경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알려진 뒤였다. 서울로 돌아온다는 뜻의 남북출입사무소 입경(入京)장을 나서는 업체 관계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들은 ‘철수 사실을 알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노코멘트” “내려온 다음에 알았다”는 짧은 말만 반복했다. 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내려온 현대아산과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관계자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남북출입사무소 안에 마련된 각자의 사무실로 직행해 긴장된 표정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개성공단에서 9일 나오겠다고 신고한 남측 업체 관계자가 77명이라고 전했다. 8일 현재 남아 있는 479명의 남측 업체 관계자 수에 비하면 적은 수다. 남측으로 귀환하겠다고 통일부에 통보된 시점인 이날 오후 4시경까지 업체 관계자들이 북한의 개성공단 잠정 중단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통일부 관계자가 말했다. A 씨처럼 이날 오전 김양건이 개성공단을 찾았을 때만 해도 개성공단과 남북출입사무소에 있던 업체 관계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전문가들도 대남사업을 담당하는 김양건이 개성공단 통행 제한 조치를 풀기 위해 온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김양건은 이날 오전 개성공단을 잠정 중단하라는 평양의 지시를 총국에 전했다. 이후 북측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이날 오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개성공단기업협회 옥성석 부회장은 “개성공단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면서도 “아직 협회에 구체적인 철수 계획을 밝혀온 회사는 없다”고 했지만 결국 업체들은 철수 직전의 운명 앞에 섰다. 남북출입사무소가 업무를 끝낸 오후 6시경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파주=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한 지 8일로 6일째에 접어들면서 북한이 차단을 계속하면 우리 근로자들이 철수할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정부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7일 통일부에 따르면 개성공단 입주기업 123곳 중 13곳이 조업을 중단했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자재와 가스가 5일째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장 가동을 중단한 기업은 섬유, 식품, 기계 관련 업체들이다. 개성공단 입주 업체 관계자들은 의류, 섬유 제품을 다리기 위해 가스를 공급받아 보일러를 가동해야 하는 섬유·의류업체들이 제일 먼저 타격을 입어 가동 중단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입주기업 가운데 60%가량이 섬유·의류업체이다. 정부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8일이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재는 물론이고 개성공단 체류자들이 먹을 음식 재료도 5일째 공급이 끊겨 한계상황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원·부자재가 다 떨어져가고 있어 8일부터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123개 기업 모두 조업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옥성석 부회장은 “음식 재료가 거의 떨어져 회사들끼리 서로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고 전했다. 한 입주기업 관계자는 “8일에 최소한 물류 통행이라도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북측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행 제한 6일째가 되는 8일엔 39명이 남측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예정대로 귀환하면 개성공단에 남은 남측 주재원은 475명이 된다. 많은 인원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개성공단 내 장비 등 자산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입주업체들의 최소 핵심 인력만 남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공장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편 휴일인 7일은 원래 남측으로 귀환할 계획이 없었지만 입주기업 근로자인 하모 씨(43)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돌아왔다. 통일부는 북측과의 충돌이나 폭행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윤완준·강유현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이 평양 주재 공관들에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상황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철수할 건지 말 건지 계획을 알려 달라”고 한 시한이 10일이다. 어떤 공관에는 “10일 이후에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개성공단에서 남측으로 돌아갈 사람 명단과 계획을 제출하라”며 언급한 마감 시한도 ‘10일까지’다. 이 때문에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10일을 전후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라는 도발 형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큰 이유도 연평도 포격 같은 국지도발을 할 경우 한국군과 미군에 의해 몇 배의 응징을 감수해야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북한이 10일을 데드라인으로 정한 이유에 주목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15일이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이고 11일과 12일은 김정은이 노동당 제1비서와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군사위원장으로 잇달아 추대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3일은 1년 전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가 실패한 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를 감안해 10∼15일에 추가 도발을 계획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 10일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방한 일정(12, 13일) 직전이란 의미도 있다. 여러모로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기 좋은 날짜인 것이다. 반면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대사관에 통보한 10일과 개성공단에서 언급된 10일이 우연의 일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치밀한 전략전술에 따른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다”며 “북한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정부가 북한의 도발 위협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해외에서 한반도 전쟁을 우려하거나 이를 이유로 한국의 투자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상황이 확산되기 전에 조기에 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7일 “외교부 본부와 전 세계 해외 공관을 통해 해당국가에 ‘북한의 위협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레토릭(수사)이자 심리전이며 북한의 내부 움직임으로 볼 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알리고 있다”고 밝혔다. ○ 북한의 전쟁 고조 전술에 스마트한 전략으로 대처 이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에 각국이 불필요하게 동요하지 않도록 하면서 한국 정부가 상황을 안정적이고 스마트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 설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평양 주재 해외 공관에 철수 계획을 밝히라고 한 데 대해서도 정부는 ‘한반도 긴장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북한 특유의 전쟁 공포 프로파간다(선전선동)’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평양 주재 대사관 중 철수나 이전을 고려하는 국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북한의 선전전인 만큼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도 7일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의 유사시 소산계획 요구에 대한 답변’에서 “북한 내 중국 외교 공관은 아직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도 북한의 주장을 수사(修辭)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기획재정부는 5일 국제신용평가사들에 북한 관련 정세와 정부 대응 기조가 담긴 설명자료를 배포하는 등 국가신용등급 관리에 나섰다. 재정부 고위당국자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등 글로벌 금융시장 지표를 면밀히 모니터했지만 이렇다 할 특이 동향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외교부 재정부 등 관련 부처가 ‘북한 리스크’에 대해 차분하게 대처하기로 기조를 정했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이는 대북정책의 변화라기보다는 단계별 진전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의 첨단무기 등으로 핵우산과 대북 억지력을 충분히 과시한 만큼(1단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춰 장기적으로는 대화의 모멘텀(계기)을 찾는 출구전략(2단계)으로 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남북대화의 계기는 북한이 만들어야”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정부의 대북 대응 태세를 ‘오리론’으로 설명했다. 오리가 물 위를 평화롭게 떠다니지만 물 밑에서는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는 것처럼 청와대가 관계부처와 쉴 새 없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겠다는 의미다. 김 실장은 연일 고조되는 북한의 도발 위협을 ‘헤드라인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매일 (국내외)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수 있는 내용을 한 건씩 터뜨려 우리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정부 대북정책의 전환을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실장은 “(북한이) 우리 국민의 여론을 자기들의 힘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도발 위협을 높여) 미국의 특사, 중국·러시아의 중재, 한국의 대화 제의 등을 유도해 북핵 사태의 상황 반전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북한이 잘못된 태도를 바꾸기 전에 먼저 대화를 제의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이다. 김 실장은 “손자병법에 ‘무약이청화자 모야(無約而請和者 謨也)’라는 말이 있다. 약속이 없는데 (북한이 화해든 무엇이든) 청하는 것은 모략이 있다는 의미”라며 “(북한과의)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위기라고 해서 섣부른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화할 계기를 북한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5일 “대화 제의보다 북한이 하루 빨리 이 비정상적인 상태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어떤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일정기간 이상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 것도 ‘대화의 제스처’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남북대화의 문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열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윤완준·이재명 기자·세종=유재동 기자 zeitung@donga.com}
“남측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4일 오전 10시 40분경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남측으로 돌아오기로 돼 있던 개성공단 입주 기업 주재원 권모 씨(38·여)는 북한이 귀환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얘기에 덜컥 겁이 났다.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되돌리던 중 뒤늦게 귀환 승인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숨 돌렸지만 북한의 세관은 살벌할 정도로 까다로웠다. 가방 한 번 열어본 뒤 통과시키던 평상시와 전혀 달랐다. 철모를 쓴 군인들이 세관 검사를 담당했고 세관장마저 군용 위장막을 쳤다. 군인 수가 평소 세관 검사원의 두 배나 됐고 태도는 고압적이었다. 북한 군인들은 권 씨의 가방 속 물건을 일일이 뒤졌다. 남측으로 돌아가는 차량에 실은 물품들도 하나하나 확인했다. “승인 나지 않은 장비는 가져갈 수 없다고 했어요.”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남측으로 귀환하는 사람들은 막지 않았지만 장비의 반출을 철저히 차단한 것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때보다 많이 심각한 상황이에요. 그때 개성공단 분위기는 평소와 똑같았거든요. 이번엔 (북측이) 비상태세 상황입니다.” 권 씨는 “남아 있는 남측 주재원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한 상태”라고 전했다. 주재원들은 일주일 이내에 공단의 정상화든, 전원 철수든, 또는 완전 폐쇄든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돌아온 김모 씨(56)는 “불안감에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임모 씨(49)도 “연락이 두절되고 소통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답답했다”며 “북측 관계자들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 전혀 말을 안 했다”고 했다. 북한은 이날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철수까지 운운하며 위협했다. 김 씨는 “북측 근로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나태해졌다고 해야 하나. 예전엔 일을 시키면 곧바로 했는데 오늘(4일)은 일을 시켜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고 전했다. 한 주재원은 “오후에 가스 공급이 안 돼 북한 근로자 900여 명 중 절반가량을 조기 퇴근시켰다”고 전했다. “오늘(4일) 지나면 끝이에요. 음식 재료의 반입이 막혀 내일(5일) 지나면 라면만 먹고 살아야 합니다. 남아 있는 주재원들도 6일이나 8일엔 다 나올 겁니다. 이제 문 잠가야겠죠….”(익명을 요구한 주재원) 5일은 북한의 공식 휴일(청명절)이어서 개성공단 출입 자체가 없다. 7일도 원래 개성공단으로 가는 통행이 없는 날이다. 6일도 출입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내 남측 주재원들은 닷새간(3∼7일) 음식 지원 없이 지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조업을 위한 원자재와 가스 공급 중단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한 업체가 생겼다.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만난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가스 공급이 안 돼 의류기업 3곳이 조업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4일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의 조속한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북측은 끝내 통행 차단을 풀지 않았다. 파주=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은 독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며 북한-독일 관계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은 것으로 확인됐다. 3일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외교부 통일부 합동 업무보고에서“독일은 북한과 협력사업을 진행할 때 서로 지키기로 한 약속을 북한이 깨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북한이 ‘독일과의 약속은 절대 깨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신뢰가 중요하다. 일관성을 갖고 정책을 추진해 북한이 잘못했을 때 ‘대가를 치르겠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하나라도 약속을 안 지키면 독일과의 관계가 파탄난다는 걸 북한이 잘 알아 독일의 대북 지원 등이 신뢰를 바탕으로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 인사는 “독일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쌓인 신뢰관계를 말한 것”이라며 “북-독 관계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핵심 개념의 기반이 되는 중요 사례”라고 말했다. 한 당국자도 “북한이 한국이나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이를 정당화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하게 둬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외교부와 통일부는 북-독 관계의 실제 사례를 본격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대북정책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 중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먼저 선의를 베풀되 북한이 약속을 저버리고 배신하면 응징하고 선의로 화답하면 협력을 이어가는 ‘팃포탯(tit for tat)’의 상호주의 측면이 강하다”고 해석했다. 이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에 취한 협력 방식과도 같다. 독일 전문가인 김영희 전 주세르비아 대사는 “북-독 관계는 동서독 관계를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며 “서독은 동독에 경제지원을 하되 동독이 동독 주민의 서독 방문 범위를 넓히는 등 상응하는 조치를 함께 취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협력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사는 “독일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북-독 관계 벤치마킹’ 발언은 북한이 2일 영변의 5MW급 흑연감속로 재가동 등을 선언하며 2007년의 6자회담 합의를 깬 상황과 맞물려 주목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부는 이를 당면한 위협의 측면보다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면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독일은 2001년 북한과 수교한 이래 2005년 약 170만 유로, 2006년 약 120만 유로, 2008년 약 255만 유로를 지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슈테판 드라이어 주한 독일문화원장이 최근 북한을 방문했고 기민당 소속의 위르겐 클림케 독일 연방 하원의원이 5월 인도적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은 2009년 3월에도 세 차례나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했다. 통행 차단(9, 13, 20일)과 차단 해제(10, 17, 21일)를 되풀이한 것이다. 북한은 3월 9일 남북 군 당국 간 통신선을 차단한 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지구 통행을 완전히 막았다. 이번엔 지난달 27일 먼저 군 통신선을 끊은 뒤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통행을 막았다. 2009년에 비해 시차는 있지만 군 통신선 차단→통행 차단의 수순을 그대로 밟았다. 당시 북한이 내세운 차단 이유는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였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지구 통행을 전면 허용한(3월 21일) 명분도 하루 전의 키리졸브 종료였다. 이번 통행 차단은 키리졸브 훈련이 끝난(3월 21일) 지 열흘이 지난 시점에 이뤄졌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통행 차단을 통보하면서, 김정은을 비난하고 ‘북한은 돈을 벌자는 생각 때문에 개성공단 문을 못 닫는다’는 식의 (한국) 언론 보도를 문제 삼은 것으로 안다”며 “북한이 그게 아니라는 걸 보이려고 막가자는 식의 행태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09년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된 시점이었고 이번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도발했다. 2009년엔 남측으로의 귀환까지 막아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 등 북한지역에 있던 한국인들이 사실상 억류됐다. 이번에는 개성공단으로 들어오는 것만 막는 ‘반쪽 차단’인 점도 다르다. 정부 당국자는 “2009년의 전례로 볼 때 북한이 개성공단 통행 허용과 차단을 반복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09년 3월 21일 개성공단이 풀리자마자 같은 달 30일의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 억류사건이 일어난 것도 유의할 부분이다. 북한의 추가 도발적 조치가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