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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참여의 14일 북한 방문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불만을 나타냈다. 중국과 한국을 거쳐 16일 일본을 방문한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일본 측으로부터 이지마 참여의 방북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사전 협의 없이 방북한 것에 대한 불신감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날 오후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데이비스 대표와 만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시절 이지마 당시 비서관은 두 차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그 인맥을 살려 이번에 방북해 납치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도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한미일은 물론이고 국제사회가 긴밀한 대북공조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이지마 참여의 방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인사의 비밀 방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도쿄=박형준 특파원·윤완준 기자 lovesong@donga.com}

윤병세 외교부 장관(사진)은 12일 “중국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이 가능한 한 빨리 중국을 방문해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누차 외교채널을 통해 밝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같이 말하고 “지난달 만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이런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윤 장관은 “중국의 그런 희망이 있어 가능한 한 빨리 박 대통령이 방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중 일정을 중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중 시기에 대해 “가을 이전으로 추측한다”며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으나 양국 정부는 6월 20일 전후로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통령의 방중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며 “중국을 방문해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결과에 대해 (중국 측에) 소상히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분명히 느낀다”며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대해 과거 어느 때보다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은행이 북한 조선무역은행을 제재한 것은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박근혜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에 대해서는 “중국이 공개 자료와 여러 (외교)채널을 통해 긍정적 입장을 밝혀 왔고 미국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통해 연성문제(비안보 문제)부터 다루는 것에 대해 대체로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한편 윤 장관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이 문제가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동맹정책,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들과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며 “외교적 파장이 될 것이라는 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외교적 문제라기보다 미국 경찰 당국에서 수사를 진행 중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미국 측이 아직 윤 전 대변인의 신병 인도 요청을 해오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이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1953년 7월 27일) 직후인 1953년 8월부터 휴전선 인근에서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했으며 이 작업에 국군포로를 동원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전 국회의원)은 12일 “정전협정 체결 직후 한국에 귀순한 북한 군인 출신의 한가람(가명·84) 씨가 이렇게 증언했다”며 “북한이 남침용 땅굴 공사에 국군포로를 이용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건 군사력 강화를 위한 경제·국방 병진 노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1960년대 초·중반으로 알려져 왔다. 한 씨의 증언이 사실일 경우 북한은 정전협정 직후부터 남침을 시도했음이 확인되는 셈이다. 박 이사장에 따르면 한 씨는 “북한 인민군 15사단 50보병연대 1대대 1중대 3소대 3분대에 배치돼 1953년 8월부터 강원 양구군의 휴전선 맞은편으로 추정되는 북한 명칭 ‘김일성고지’의 뒤쪽에서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나(한 씨)와 같은 분대원 가운데 김기택, 이봉오 씨 2명이 국군포로였다”는 것이다. 한 씨는 “북한은 국군포로 중 비교적 젊고 전쟁 기간 부상하지 않아 신체가 건강한 사람을 선발해 자원 입대 형식으로 인민군에 입대시켰다”고 말했다고 박 이사장이 전했다. 박 이사장은 “실종되거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6·25전쟁 당시 국군의 군번을 조사한 결과 김기택이라는 이름을 4명 확인했고, 군 당국이 1951년 1월 전사한 것으로 처리한 경기 김포 출신의 이봉오라는 이름을 1명 확인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6월 20일 전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9일 “박 대통령의 방중이 6월 20일 이후로 얘기돼 온 것으로 안다”며 “한국이 대(對)중국 정상외교를 적극 제안하자 중국도 이를 받아들여 ‘정상회담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6월 하순 가능성이 높은 한중 정상회담의 시기가 두 정상의 의지에 따라 앞당겨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도 “6월 중하순경 박 대통령의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중 정상회담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5월 방미, 6월 방중’으로 이어지는 발 빠른 외교를 전개하는 셈이다. 이는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격상된 한미관계를 이번 방미를 통해 공고히 한 만큼 대중국 외교를 통해 방미 성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정부의 외교전략에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이명박 정부 때 상대적으로 서먹했던 한중 관계를 복원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1차 과제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또 G2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주도의 전방위 외교(Korea Initiative Diplomacy·키-디플로머시)가 성공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중이 함께 협력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동선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잇단 도발에 중국이 이례적으로 대북 압력을 가하는 등 대북정책의 변화 조짐이 보이는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중국전문가는 “박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 것처럼 시 주석으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강화를 대변하는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과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의 중심축이 한국임을 강조했다. 서울 외교가 일각에선 중국이 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중국은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강화를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중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한층 격상하고 한국 정부가 안보 이외의 사안에서는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를 취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 함경남도 검덕광산으로 끌려가 집단 수용생활을 했던 국군포로 69명의 명단이 나왔다. 사단법인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전 국회의원)은 8일 “2000년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A 씨가 자신과 함께 노역한 국군포로 69명의 명단을 최근 작성했다”며 그 명단을 동아일보에 공개했다. 탈북 국군포로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군포로 명단을 만든 건 처음이다. 이 명단엔 A 씨와 함께 6·25전쟁 때 포로로 끌려간 직후부터 검덕광산에서 생활한 국군포로들의 이름과 나이, 출신지, 광산에서 강제노동한 직종, 국군포로들의 당시 건강상태, 수용생활 이후 행적, 사망자의 사망 시기까지 적혀 있다.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생사 확인이 최우선 과제인 만큼 이 명단은 정부가 국군포로들의 실상을 확인하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박 이사장은 말했다. A 씨의 명단에는 검덕광산에서 노역한 국군포로들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적지 않게 담겨 있다. A 씨의 증언에 따르면 6·25전쟁 이후 검덕광산에서만 약 600명의 국군포로가 강제노동을 했다. 인근의 용양광산에서도 400여 명의 국군포로가 노역했다. 두 광산의 국군포로들은 1956년 7, 8월경 농장이나 다른 지역의 광산으로 보내졌다. 검덕광산은 함남 단천에 있으며 납과 아연광산으로 유명하다. 600명 가운데 명단이 확인된 69명만 해도 검덕광산에서 운광공(광석을 나르는 일을 하는 사람) 굴진공(굴을 뚫는 작업을 하는 사람) 발파공 측량공 기계수리공 시료채취공 보일러수리공 목공 농장원 설계원 자재조달원 등 광산 운영에 필요한 온갖 일에 동원됐다. 6·25전쟁 이후 북한의 광산과 탄광이 국군포로들의 강제 노역으로 운영, 유지됐음을 보여 준다. 69명 중 운광공이 29명으로 가장 많았다. 상당수 국군포로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단순하고 힘겨운 노동을 반복해야 했던 것이다. 69명 가운데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귀환한 국군포로는 4명뿐이다. 이들 4명 중 2명은 한국에서 2007, 2008년 세상을 떠났다. ▼ 집단수용 69명 나이-건강상태 등 꼼꼼히 기록 ▼A 씨는 2000년 탈북하기 전까지 69명 중 12명이 북한에서 사망했음을 확인했다. 그 12명 중 절반에 가까운 5명이 포로로 처음 끌려온 검덕광산 인근의 동암광산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12명 중 6명이 60대 나이로 1990년대에 눈을 감은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 중 충청 출신의 김모 씨는 1960년대에, 전북 출신의 김모 씨는 1990년대 초 숨졌다. 동암광산으로 보내진 전남 출신의 박모 씨는 1990년대 말 사망했다. 명단상 국군포로들은 현재 생존해 있다면 81∼87세가량이다. 고령으로 인해 자칫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국군포로 상당수가 세상을 떠날 우려가 높은 이유다. 69명의 출신지는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로 고루 퍼져 있었다. 명단에 따르면 경상도 출신의 김모 씨는 검덕광산에서 보일러수리공으로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그렇게 고생했음에도 그는 결국 1970년대 국가안전보위부에 연행된 뒤 소식이 끊겼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안타깝게도 처형됐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전북 출신의 고모 씨는 광석을 나르는 운광공으로 강제노동을 했다. A 씨는 고 씨가 폐병으로 고생했다고 기술했다. 공기가 탁한 광산에서 치명적인 폐병을 앓으며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는 얘기다. 전북 출신의 김모 씨는 몸이 허약해 어느 지방 농장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박 이사장은 “명단에 이미 한국으로 귀환한 4명의 국군포로 이름도 포함돼 있는 걸 보면 69명 명단의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A 씨는 6·25전쟁 중인 1953년 포로가 돼 30여 년을 광산에서 노역했다. 그는 북한 내무성 건설대(1708부대)로 배치돼 검덕광산으로 끌려갔다. A 씨는 최근 박 이사장에게 “국군포로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는 한국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함께 생활한 국군포로 중 얼굴과 이름, 특징을 기억하는 69명의 명단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익명을 요청했고 물망초가 13일 개설하는 국군포로 신고센터에 이 명단을 접수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박 이사장은 전했다. 박 이사장이 A 씨에게 “왜 이제야 명단을 만들었느냐”고 묻자 A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정부기관에서 많은 조사를 받았지만 내 신상 이외에 다른 국군포로의 생사나 실태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물어야 답을 하지 않겠느냐.”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는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한국이 쥐고 전방위 외교를 펼치는 이른바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orea Initiative Diplomacy·키-디플로머시)’에 대해 미국의 동의를 끌어냈다는 데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미국과 한국 관계에 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정상회담이 북한의 실패를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굉장히 강하고 분명하게 상황 파악을 하고 있다. 분쟁이나 갈등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지혜를 갖고 있다”며 박 대통령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해서는 “대화를 나눠 보지 않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면서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으로 평가해 볼 때 도발적이고 막다른 골목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까지 북한이 강성대국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김정은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며 “행동의 변화가 있다면 우리는 열려 있다. 이것이 박 대통령과 나의 접근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협박과 보상의 고리를 끊겠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강한 지지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위기를 만들고 보상을 받던 시기는 끝났다”며 “우리는 북한과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지만 박 대통령의 말처럼 책임은 평양에 있다. 평양은 버마(미얀마)와 같은 나라를 주시해야 한다. 버마는 개혁하면서 더 많은 투자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분명히 북한이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한목소리를 냄으로써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우리 군에 어떤 도발을 할 때 나는 군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며 즉각 대응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한 두 정상의 공통된 인식은 정상회담 뒤 발표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공동선언에서는 ‘박 대통령이 주창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을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의무를 준수하도록 함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증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간다’고 명시돼 있다. 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일본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대한 박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동선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한미동맹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정의 핵심 축(linchpin·린치핀)’이며 ‘한미 양국은 21세기 아시아 미래의 공동 설계자’라는 표현이다. 린치 핀은 지금까지 주로 미일동맹에 쓰였던 것으로 한미 간 공식문서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정책을 내세우며 대아시아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이 협력 파트너의 무게 추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기고 있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지도자를 만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당장 만난다고 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며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일본에 대해선 “거울을 보고 책임 있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워싱턴=이재명 기자·윤완준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의 8일(현지 시간)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은 의원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서 진행됐다. 박 대통령이 입장할 때 의원들은 약 3분간 기립박수로 박 대통령을 맞았다. 박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섰는데도 기립박수가 계속돼 10초 넘게 연설을 시작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찰스 랭걸 의원 등 6·25전쟁에 참전한 의원 4명의 이름을 언급할 때, 3대가 한국에서 근무한 데이비드 모건 중령 가족을 소개할 때, “북한의 도발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도발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등 총 6회에 걸쳐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를 포함해 40차례의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참전용사 의원 4명을 한명 한명 소개할 때는 환호까지 터져 나왔다.○“미국의 헌신에 감사한다” 박 대통령은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새겨진 문구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 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인사말로 이날 연설을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이 무역 규모 세계 8위의 국가로 성장했다”며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운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특히 미국은 가장 가깝고 좋은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어 “성취의 역사를 만든 자랑스러운 한국 국민과 함께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라는 4대 국정기조를 통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한미동맹 60년의 산증인’으로 모건 중령 가족을 소개했다. 6·25전쟁 당시 워런 모건 씨는 해군 예비군 지휘관으로, 아들 존 모건 씨는 포병중대장으로 참전했다. 손자 데이비드 모건 중령은 1992년과 2005년 주한미군에서 근무했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헌신과 우정’에 대한 감사를 표시한 뒤 자신의 정책 비전을 설명하는 데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한미동맹의 목표가 한반도 통일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나아가 한미동맹의 궁극적 목표를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동북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로 확대하는 비전을 제시한 점이 주목받았다. 6·25전쟁의 총성이 멈춘 1953년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이 60년 만에 세계 인류의 자유와 인권, 법치에 기여할 수 있는 나라로 우뚝 섰음을 천명한 것이다. ○ 한미, 통일 한국과 세계 평화 여정에 함께하자 박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이 만들어 갈 ‘우리’의 미래를 강조하면서 제시한 3가지 비전과 목표의 첫 번째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기반 구축이다. 박 대통령은 “남북한 간 점진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해 가면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가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한반도에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한 모두 평화롭고 행복한 통일 한국을 향한 여정에 함께 나설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목표로 △북한이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지구촌 이웃들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여를 잇달아 제시한 뒤 “미국 독립선언서에 새겨진 행복추구권은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미동맹의 궁극적 목표는 전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어 왔다”고 말했다. 협정 만료 시한만 2년 연장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에 대해선 “한국은 확고한 비확산 원칙 하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추구하고 있다. 선진적이고 호혜적으로 한미 원자력협정이 개정된다면 양국의 원자력 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비확산 원칙을 이유로 한국에 우라늄저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허용에 난색을 보인 데 대해 ‘한국을 믿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미 의회가 이 문제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보다 더 원칙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일본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동북아 과거사 갈등을 언급하며 “역사에 눈감는 자 미래를 보지 못한다”며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비판했다.장원재·윤완준 기자 peacechaos@donga.com}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후(한국 시간 8일 오전)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만찬에서 흥남철수 얘기를 꺼낼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흥남철수에 대한 이야기가 박 대통령의 만찬 연설 초안에 포함됐다. 대통령 방미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만찬 행사에서 박 대통령이 63년 전 흥남철수를 화두로 삼고자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1950년 12월 23일 함경남도 흥남부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쳤다. 유엔군은 중공군에 밀려 남쪽으로 후퇴하고 있었고 한국인들도 고통의 피란길에 올랐다. 23일은 흥남철수 마지막 날이었다.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7600t)가 미군의 철수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부두에서는 수많은 피란민이 두려움과 추위에 떨고 있었다. 유엔군과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 로버트 러니 사무장 등 선원들은 피란민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미군보다 피란민을 먼저 태우기 시작했다. 미국 선원들은 “하느님께 운을 맡기자”고 외쳤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00명 이상 태우기 어렵다던 배에 약 1만4000명의 피란민이 탄 것이다. 같은 달 25일 빅토리호는 무사히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2박 3일의 항해 중 피란민 임신부들에게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선원들은 그 아기들에게 ‘김치(kimchi) 1’ ‘김치 2’ ‘김치 3’ ‘김치 4’ ‘김치 5’라는 별칭을 붙였다. 빅토리호는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박 대통령이 이런 스토리의 흥남철수를 한미동맹 60주년을 기념하는 만찬사의 화제로 삼으려 한 것은 한미동맹의 오랜 역사가 군사·안보 차원을 넘어 전쟁의 포화 속에 피어난 감동의 휴머니즘에 기초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자국 군인보다 한국 피란민을 먼저 살린 박애주의 정신이 한미동맹의 따뜻함을 지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만찬에는 6·25전쟁 참전 미국인 용사, 주한미군 근무자, 평화봉사단 근무자와 미국 정계 및 경제계 인사 등 한미동맹의 산증인 500여 명을 초청했다. 정부는 애초 박 대통령의 이번 방미에 흥남철수 중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5’ 수의사 이경필 씨(63)를 동행시키는 방안도 검토했다. 유엔군과 미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이 씨가 훌륭하게 성장해 한국의 지성인이 된 과정이 성공적인 한미동맹을 상징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 조율 문제 등으로 성사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남철수의 상징인 빅토리호는 노후해 사라졌지만 그 자매선이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운항하고 있다. 정부는 이 배가 한미동맹의 휴머니즘을 상징하는 만큼 한미동맹 60주년인 올해 한국에 입항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윤완준 기자·워싱턴=이재명 기자 zeitung@donga.com}

국군포로 출신의 김모 씨(87)는 3일 ‘6·25전쟁 때 서울대 의대 교수가 집단 납북돼 결국 대부분 숙청됐다’는 동아일보 보도(A1면)를 보고 바로 편지지를 집어 들었다.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전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써나갔다. 포로로 북한에 끌려갔던 자신을 도와줬던 납북 교수의 이름이 동아일보 기사에 언급돼 있었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인 이혜경 박사(물망초인권연구소 간사)가 밝혀낸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의 납북자 명단에 포함된 김시창 교수였다. 이 박사에 따르면 김 교수는 1955∼1960년 평양의대 신경외과 강좌장(학과장의 북한말)을 지냈지만 북한에 이용당한 뒤 간첩 혐의로 처형당했다. “동아일보 지면에 신경박사 김 선생의 이름이 나와 나를 몹시 감동시켰습니다. 김 선생은 내가 (전쟁 포로로 끌려갔을 때) 북한 인민군 39호 병원에서 만나 머리 신경 방조(곁에서 도와준다는 뜻)를 받은 잊을 수 없는 선생이었습니다.” 김 씨가 박 이사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김 교수가 북한 당국에 의해 어떻게 처형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도 언급됐다. “그 뒤 (나는) 함경남도 북청으로 생활터전을 이동해 김 선생과 연계가 없었습니다. 노동신문에서 김 선생이 독일에서 열리는 의학 논문 발표 모임에 참가했다가 남한 영사관에 드나들어 감시 대상이 됐다는 기사를 봤을 뿐입니다.” 평양의대 출신 탈북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이 박사의 연구결과대로 김 교수가 간첩 혐의로 처형당했을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인 셈이다. 김 씨는 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제의 노동신문 기사를 본 건 1960년대였다”고 말했다. 편지에서도 “납북된 의사 집단은 평양병원을 주도했다”며 “서울 광화문 공안과 병원의 박사 선생도 납북돼 54호 병원에서 안과담당 박사로 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 최초의 안과 전문의로 납북됐다가 탈출한 공병우 박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와 국군포로 지원단체인 물망초는 13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머리재빌딩 309호에 국군포로 신고센터를 개설한다고 밝혔다. 02-585-9963, 070-4194-9962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하루빨리 개성공단이 정상화돼서 우리 모두 함께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제한 조치(4월 3일)를 취한 지 한 달 만에 귀환한 홍양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장(사진)은 3일 오후 7시 20분경 3명의 관계자와 함께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 입경장(개성공단→남북출입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초 오후 5시 반경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2시간가량 지연된 것이다. 다소 초췌한 표정의 홍 위원장은 “귀환 과정에 적극 협조해주신 정부와 입주 기업, 개성공단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홍 위원장은 짧은 모두발언 뒤 취재진으로부터 간단한 질문을 받았다. 이날 귀환이 지연된 이유에 대해선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절차 문제 때문에 늦어졌다. 북한도 귀환 과정에서 적극 협조했다”고 답했다. 미수금, 남북의 견해차 등 협상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정부에서 자세히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공단에 남아 있는 입주 기업들의 기계설비에 대해선 “개별 기업의 의견을 받아 안전장치를 해놓고 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에 관해선 거듭 북한에 얘기했고 향후 여러 채널을 통해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뒤 CIQ를 떠났다. 이번 개성공단 실무협상은 남측의 홍 위원장과 북측의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이 지휘했다. 남측은 이금철 총국장과 담판하자고 지난달 제의했지만 이금철은 끝내 나서지 않았다. 홍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첫 통일부 차관을 지냈고 2011년 10월부터 관리위원장을 맡아 개성공단에 상주하며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관계자들을 상대했다. 홍 위원장은 1999년과 2001년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에서 일했고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에 걸쳐 남북회담사무국 상근회담 대표를 맡아 남북회담에 관여했다. 그만큼 남북대화에 경험이 많다. 차관 시절인 2009년 북한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을 파견했을 때 조문단장이었던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상대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홍 위원장의 이런 경험과 경륜 때문에 이번 실무협상에 대해 ‘단순한 미수금 처리 이상의 의미 있는 남북대화가 오고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박 부총국장은 2006년부터 개성공단 건설 실무접촉 단장 등을 맡으며 개성공단에 계속 관여해온 인물이다. 2009년 남북이 함께 개성공단 발전 방안 마련을 명목으로 중국과 베트남에서 해외시찰을 할 때 북측 단장을 맡았다. 도라산=손영일 기자·윤완준 기자 scud2007@donga.com}
통일부가 ‘6·25전쟁 때 서울대 의대 교수가 집단 납북돼 결국 대부분 숙청됐다’는 본보 보도(3일자 A1면)와 관련해 “납북 사실에 대해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직권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김형석 대변인은 3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런 역사적 아픔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역사적 아픔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곧바로 사실관계 확인에 들어갔으며 납북자 여부를 심의하고 최대한 아픔이 치유되도록 정부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6·25전쟁 당시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집단으로 납북됐으며 이들이 평양의대에서 북한의 의료체계를 만드는 데 이용된 뒤 대부분 숙청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탈북자 출신인 이혜경 박사(물망초인권연구소 간사)는 2일 “6·25전쟁 때 납북돼 평양의대에 다닌 탈북자의 증언과 북한 자료를 바탕으로 1955∼1960년 평양의대에서 근무한 29명의 교원 명단을 확보했다. 그중 20명이 남한의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내각의 고위직 등을 지낸 일부를 제외하고 16명 이상의 교수가 납북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사실은 처음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의대 출신의 한 탈북자도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시창 이정복 이정두 이제복 임문빈 김종순 계운흥 신성우 씨 등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납북돼 북한에서 보건의료 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데 이용됐다”고 말했다. 이외에 북한의 다른 의대에도 납북된 교수들이 있을 수 있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박사에 따르면 당시 김일성이 의료체계를 세우고 부족한 보건의료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직접 납북을 지시했다. 이 박사는 “북한이 이들을 의료교육시스템의 기반을 만드는 데 이용한 뒤 사상문제 등을 이유로 숙청, 처형, 좌천시켰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평양의대 정신과 강좌장(학과장의 북한말)이었던 임문빈 씨는 차에 태워져 납북될 때 사시나무 떨듯 두려워했다고 한다”며 “그는 정신의학계에서 유명해 소련의 한 재판관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발작이 멈췄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김시창 신경외과 강좌장과 김종순 조직학 강좌장은 간첩 혐의 등으로 처단됐고, 신성우 안과 강좌장도 수용소행을 피하지 못했다. 이혜경 박사는 3일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 전 의원)와 북한인권의사회가 여는 세미나에서 이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근혜정부의 외교통일 라인 인사들이 가장 강조해온 말이 김대중·노무현 정책의 포용정책도, 이명박 정책의 대북강경책도 아닌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앞선 세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화(유화) 또는 압박(강경)의 어느 한쪽에 치우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포용정책이었다. 포용정책은 ‘engagement policy’로 번역된다. 그러나 본래 이 말은 국제정치에서 웃는 얼굴의 대화뿐 아니라 성난 얼굴의 압박을 병행하는 관여정책을 뜻한다. 진보 성향의 한 북한 전문가는 “햇볕정책은 남북 화해를 위한 대화에 무게를 뒀다는 점에서 ‘embracement(포옹) policy’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정경분리 방침에 따라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협을 확대했고 차관 형태로 쌀과 비료를 북한에 대규모로 지원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 긴장완화라는 성과를 거둔 한편 안보불감증, 대북 퍼주기 논란 등으로 남남갈등을 키운 측면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계승해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심각해진 북핵 문제 해결과 별도로 남북관계를 개선해간다는 기조였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에도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지 않은 게 대표적인 예다. 이에 앞서 대규모 식량지원과 남북경협이 계속됐고 2004년 말 개성공단이 문을 열었다. 반면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 도출 과정에서 한미 간 대북정책의 균열이 보이기도 했다. 남남갈등이 되풀이되면서 접촉과 교류를 통해 북한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킨다는 포용정책이 북한을 실제로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부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이명박 정부의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다. 북한이 비핵화하면 향후 10년간 북한 주민의 소득을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지원한다는 ‘비핵·개방 3000’을 내세웠다. 실용주의로 시작했으나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대북기조도 강경해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남북 간 신뢰 수준이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최악의 상태”라는 말조차 나왔다. ‘원칙 있는 남북관계 정립’을 내세우면서도 불투명하게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은 개밥이 담긴 캔과 같다. 캔을 열지 않은 채 선반 위에 두면 매우 오래간다. 하지만 캔을 한번 열면 내용물은 금방 상해 버린다.” 커트 캠벨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최근 고위 중국 외교관이 자신에게 한 얘기라며 지난달 30일 소개한 내용이다. 그는 “이것이 북한의 김씨 왕조가 직면한 난제다. 캔이 열리지 않은 채로 얼마나 오래갈지 불확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급변사태 관련 미중 간 논의 필요성 급부상 방한 중인 캠벨 전 차관보는 이날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국제회의의 사전 연설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실제 연설에선 이 부분을 포함해 “북한의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해 중국과 시급히 논의를 해야 한다. 한반도의 현상유지(status quo) 변경을 논의할 가장 중요한 상대는 중국”이라는 내용을 발표하지 않았다. 한반도 통일과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미중, 또는 한미중 간 논의가 북한과 한반도 정세에 상당한 폭발력을 가진 민감한 문제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캠벨 전 차관보가 전한 “북한은 열면 금방 상하는 ‘개밥 캔’과 같다”는 중국 고위 외교관의 발언은 적잖은 함의를 담고 있다. 중국 당국이 북한 체제의 근본적 불안정성과 김정은 체제의 급속한 붕괴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도 대외적으로 공개하지는 못하지만 북한 체제의 예기치 못한 사태에 내부적으로 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물론 한반도 통일과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미국과 중국 정부 간 논의가 아직 표면화된 건 아니다. 그러나 미중 양국 학자들 사이에는 이미 이 문제가 본격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대비책을 여러 채널로 논의해 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미국과 중국 정부도 이미 물밑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정책을 내세우며 대아시아 정책을 강화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맞대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는 만큼 한반도 급변 사태 대비는 미중 양국의 핵심적인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새로운 대국 관계(新型大國關係)’를 내세우며 같은 ‘대국’인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중국 시진핑(習近平) 정부와 미 버락 오바마 정부 모두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국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는 걸 가장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의 군사적 충돌 개연성이 가장 높은 곳이 한반도와 주변 해역이다. 북한이 도발하거나 북한에 체제 변화가 발생하고 미중 간 사전 대비 논의나 관련 협의가 없었을 경우 군사 갈등으로 비화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미중 간 논의의 필요성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 북한체제 유지와 한반도 통일 간 저울질 시작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도발 반복이 중국의 전략적 국익을 해치고 있다고 중국 정부가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정은 체제 유지와 (남한 중심의) 한반도 통일 중 무엇이 더 중국 국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은 예전과 달리 중앙 당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이행을 산하 기관에 지시하는 등 대북정책의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캠벨 전 차관보도 “북한의 새 지도자에 의해 잇따라 도발이 일어나자 한반도에서 얻을 수 있는 궁극적 이익에 대한 중국의 생각이 많이 조정됐다”고 말했다. ‘궁극적 이익의 조정’은 북한 체제 유지에서 한반도 통일로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중국의 전략적 이익 무게추가 한반도 통일로 기울 경우 중국으로서도 미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해진다. 통일 코리아에 주한미군을 둘지, 어느 정도 사거리의 미사일을 배치할지, 통일 코리아와 미국의 군사협력이 어떤 수준이어야 하는지 등이 중국의 이해와 직결되기 때문에 한국, 미국과 이런 현안에 대해 공감대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중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주도적 전방위 외교(Korea Initiative Diplomacy·키-디플로머시)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한미중 3국 전략대화는 외교적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추진 과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캠벨 전 차관보도 “그동안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는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이 한국을 소외시키고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 김정은 체제가 근본적인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한반도 통일과 북한 급변사태 대비에 관한 미중 협력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방한 중인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30일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국제회의에서 “한미가 (북한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해 중국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당국은 그동안 북한 급변사태 대비와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꾸준히 협의해 왔는데 이 논의에 중국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서울의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이날 “중국 학계와 정부 일각에서도 북한의 도발이 (중국의) 국익을 저해한다는 판단 아래 한반도 통일이 중국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5월이 한반도 정세 변화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정부 관계자는 “5월 중에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될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은 주중 북한대사관과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 등 여러 외교 경로를 통해 북한에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설 것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이나 우다웨이(武大偉) 6자회담 수석대표 같은 고위급 인사를 북한에 특사로 파견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7일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6월경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한중 정상외교를 통해 북한에 대한 설득과 압박을 병행하게 될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김성한 전 외교부 2차관은 “5월은 북한 일방의 도발 위협 게임에서 대화의 게임으로 변화시키려는 ‘게임 체인지’를 한반도 주변국들이 시도하는 국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개성공단에서 (귀환하는 직원이) 작은 차에 (각종 자재와 완제품 등을) 바리바리 싣고 나오는 장면을 우리 국민도, 세계도 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경제발전은 물론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산하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스티브 샤벗 위원장을 청와대에서 접견한 자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거기서(귀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납품해야 하는 업체들도 많은데, 납품을 받지 못할까 봐 불안해서 판로를 끊어버리는 업체도 생겼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활동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샤벗 위원장은 개성공단 사태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도 “우리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에서 물건을 하나라도 더 싣고 나오려고 승용차 지붕에 가득 싸매고 나오는 모습을 전 세계인들이 TV를 통해 봤다. 남북 간 서로의 합의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서 이제 세계 어느 누가 북한에 투자를 하려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 개성공단을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친 셈이다. 북한의 기존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한 폐쇄 수순을 피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이자 배수진의 성격도 짙다. 정부 당국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을 북한에 분명히 심어주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홍용표 대통령통일비서관도 이날 외교부가 주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개성공단 문제는 분명히 북한이 잘못한 것이기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당장 해결을 위해 양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북한)의 잘못한 행동에 확실히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점은 ‘부정적 신뢰’(부정적인 면에서도 예측 가능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와 관계가 있다. 약속을 지켜야 관계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신뢰 구축”이라고 말했다. 홍 비서관은 남북 신뢰 구축의 3단계로 약속을 통한 신뢰 쌓기→서로의 이익을 찾아 교환→이익 교환을 통한 신뢰 쌓기의 제도화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개성공단 남측 인원의 완전 귀환 이후 적절한 시점에 ‘개성공단 문제를 풀기 위한’ 회담을 다시 제안하는 걸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 문제가 해결된 뒤 개성공단 정상화 여부를 놓고 대화를 통해 북한이 태도를 바꿀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윤완준·이재명 기자 zeitung@donga.com}
“불행한 역사에 대한 일본 일부 지도자의 시대착오적, 역사 퇴행적 언행은 동북아의 새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국가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개탄스럽다.”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5회 한중일 국제심포지엄은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극단적 우경화에 대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경고로 시작됐다. 윤 장관은 축사에서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미래를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중일의 새로운 리더십과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을 주제로 열린 이번 심포지엄은 애초 ‘중국의 부상’을 논점으로 삼았지만 한중일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침략전쟁 부정과 내각 고위 관료들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로 촉발된 사태에 대해 설전을 방불케 하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심포지엄은 한국의 동서대와 동북아역사재단, 중국의 사회과학원 아태·글로벌전략연구원, 일본의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 현대한국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했다. 일본 측 발표자인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아베 정권의 외교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면서도 “일본 사회 전체가 우경화된다고 보는 한국과 중국의 시각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국민이 아베 총리의 사상에 열광적 지지를 보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 국민은 역사, 영토 문제에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소에야 교수는 “아베 총리는 그동안 한국 중국을 배려해 참고 있다고 생각했던 본심을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 측 토론자로 나선 박준우 전 주유럽연합(EU) 대사는 “이런 주장은 아베 정부를 대변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한국 중국을 배려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전 대사는 “자민당은 우경화를 통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확보하고 이후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측 발표자인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무라야마 담화 등 일본이 과거를 사죄한 담화들을 스스로 부정하면 한일관계에서 공든 탑의 기초가 무너져 다시 쌓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본 측 토론자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일본 정권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상적으로 상당히 우경화돼 있다. 일본 전체가 우경화되면 이번과 같은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 장관은 이날 외교협회 정기총회 축사를 통해 “가까운 시일 내에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 방문 시 지난 20년의 한중 관계를 회고하면서 앞으로 20년의 양국 관계 비전과 로드맵에 대해 합의하고 공동성명도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예상보다 일찍 ‘개성공단 전원 철수’라는 강경카드를 꺼냄으로써 남북 간 기 싸움이 본격화됐다. 박 대통령은 ‘북한 위협 후 남한 지원’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만큼 북한이 대화로 나오기 전에는 강경 원칙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화의 문은 계속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 북한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첫걸음으로 개성공단 국제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만큼 개성공단의 유지 발전은 박 대통령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자 미련 없이 ‘개성공단 전원 철수’ 카드를 꺼냈다. 이어 당장 27일 개성공단에 입주한 123개 업체의 직원 127명을 모두 철수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개성공단에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와 현대아산, 한국전력 등 인프라를 담당하는 직원 49명만이 남게 된다. 입주기업 직원이 모두 철수함에 따라 사실상 개성공단이 가동 10년 만에 멈춰서는 셈이다. 이어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 내 단전, 단수 조치를 취할지 주목된다. 한전이 공급하는 개성공단 내 전기가 끊기면 공단 내 시설을 북한이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없다. 전기가 끊기면 물 공급도 자동으로 끊긴다. 현재 공단에 제공되는 식수는 공단뿐 아니라 개성시 일반 가구에도 공급되고 있어 단수 조치가 이뤄지면 개성시 가구의 4분의 1 정도가 식수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박 대통령이 단전, 단수 조치를 취한다면 이는 사실상 개성공단 폐쇄를 염두에 둔 조치로 볼 수 있다. 실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까지를 전제로 모든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남북관계는 당분간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개성공단은 남북관계가 신뢰로 나아갈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밝혀 왔다. 다시 말해 북한이 남북 간 약속을 어기고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박 대통령이 구상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더이상 진행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개성공단 폐쇄로 입주기업들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박근혜정부가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관계를 강경 일변도로만 끌고 가는 것도 박근혜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 국제적 여론을 조성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미 우리는 여러 차례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고,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우리가 다음에 어떤 카드를 쓰느냐는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가 성명을 발표하면서 각종 표현을 두고 고심한 것도 ‘강(强) 대 강’ 대결 국면으로만 비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정부는 ‘강제 철수’라는 표현 대신 ‘전원 귀환’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여기에는 북한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면 언제든 개성공단을 원상 복구할 수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것은 아니다. 대화를 통해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쨌든 북한의 도발 위협이 최근 다소 주춤해진 게 사실이고 냉각기를 거치면 대화의 모멘텀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이재명·윤완준 기자 egija@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행동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적 충동’을 연상시킨다. 이 같은 행동이 계속되면 히틀러 같은 나치를 낳는 불행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 한일관계 문제의 권위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85)은 2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우려했다.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부정한 아베 총리의 발언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 대한 반역”이라고 꾸짖었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동서대 일본연구센터에서 이뤄졌다. ―왜 아베를 보며 히틀러를 떠올렸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 뒤 나라가 약해지는 데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커졌다. 히틀러가 ‘강한 독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며 극우적 발언을 하자 독일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렇게 탄생한 나치가 2차 대전을 일으켰다. 일본은 패망 이후 민주국가로 발전하다가 경제침체로 사기가 떨어진 상태이다. 자민당으로 다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강한 일본을 원하는 심리가 발동했고 그것이 아베 내각의 우경화로 나타나고 있다. 아베 정권도 (히틀러처럼)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일본도 독일처럼 또 한 번 당하지(패전하지) 않고 이 병을 못 고친다는 뜻일지 걱정스럽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이를 심각하게 걱정할 것이다.” ―왜 그런가. “아베의 망언은 도도한 세계 역사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자기 정당성을 내세우려다가 고루한 모순을 저질렀다. 아베의 주장은 2차 대전이 잘못이라는 전제 아래 일본에 항복을 권고하고 일본에 대한 처리 방침을 표명한 1945년 포츠담 선언을 부정하는 것이다. 2차 대전 종전 전으로 돌아가 그 당시의 일본을 다시 실현하겠다는 뜻인지 반문하고 싶을 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한일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전 인류 차원의 문제다. 아베 내각은 세계사적으로 큰 문제를 초래했다. 침략전쟁을 부정한 아베의 발언은 일본의 주요 전쟁범죄자 처리를 위해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마저 부정한 것이다. 도쿄재판은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죄를 받은 재판이었다. 또 (아베의 발언은)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포츠담 선언을 부정한 것은 1943년 미국 영국 중국이 공동 발표한 카이로 선언도 부정하는 것이다. 포츠담 선언에서 카이로 선언이 재확인됐기 때문이다. 즉, 세계가 용서할 수 없는 일본이 됐다. 인류 역사에 대한 반항이고 2차 대전의 결론에 대한 반항이다. 이는 일본의 주변국인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일본 자신에도 불행한 일이다. 아베의 발언은 한일 양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일본이 전 세계의 친구들을 잃게 하는 위험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침략전쟁을 사죄한 담화들을 부정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나. 일본이 세계에 사죄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아베는 태평양전쟁이 잘못된 전쟁이 아니라고 주장한 셈이다. 세계의 어떤 사람이 그 주장을 믿겠나. 일본 사람부터 못 믿는다. 설사 아베의 주장이 일본 국내에서는 견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의 마당에선 결코 견딜 수 없다. 침략전쟁을 부정한 건 미국이 일본을 침략했다는 논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를 적으로 삼는 행위를 누가 받아들이겠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도 정당화했다. “전쟁에서 죽은 선조를 모신 곳에 가는 건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인류의 적으로 단죄 받은 사람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는 점이다. 그게 없으면 누가 반대하겠나. 그런 세계사적 책임을 아베가 진지하게 성찰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자체가 일제가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아베 정권 우경화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오랫동안의 자민당 통치로 훈련된 일본이 잠깐의 민주당 정권에 실망해 다시 자민당 정권을 택했다. 자민당은 이런 여론을 이용해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획득하려 하고 있다. 그래야 정권 유지를 위한 법안 통과가 수월해진다. 그래서 반(反)민주당적인 일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이유로 역사 문제를 악용하는 정치적 타락이다.” 최 원장은 아베 총리에게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돌아가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일본 총리는 A급 전범이지만 과거를 시인하고 잘못을 사죄하는 특사를 한국에 보냈다”고 말했다. ―어떤 뜻인가. “기시 전 총리는 비록 전범이지만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용단을 내렸다. 1958년 보수정객의 거물인 야쓰기 가즈오(矢次一夫)를 특사로 보내는 등 반일 감정이 강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야쓰기는 일본이 과거를 사죄하기 위해 한국에 보낸 최초의 사절이었다. 야쓰기는 일본 언론에서 ‘이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는 비판적 기사가 나올 만큼 진정으로 사죄하고 한국에 용서해 달라고 했다. 기시 전 총리는 퇴임 뒤에 한일협력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기시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총리로서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일본 현역 총리로서는 처음이었다. 그가 총리로 있을 때인 1965년 한일 국교가 수립됐다. 아베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일본 외상은 국내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면 수차례 제주도에 몰래 와 마음을 달랬다. 대한항공이 그의 제주도 여행에 편의를 봐줬을 정도다. 그만큼 한국을 친근하게 여겼다.” ―아베 전 총리가 좋은 유산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것 같다. “자기 선조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1945년 무렵 일본 사회에 ‘2세적 반역’이라는 말이 있었다. 2세가 부모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에 두려움을 표현한 말이었다. 아베도 ‘2세적 반역’을 할 셈인가. 나는 아베가 기시 전 총리와 사토 전 총리의 정신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역사를 반성하는 정신 말이다. 그들은 한국에 잘못했기에 반성한다는 생각으로 친한(親韓)적 행동을 했다. 그래서 한국은 그들의 과거를 알면서도 따뜻하고 좋은 친구가 돼줬다. 이것이 아베의 선조가 남긴 유산이다. 아베는 진정 그 유산을 부정할 셈인가.” 최 원장은 “과거 독일은 히틀러 찬양이 사회적 대세가 되니 이를 부정하는 세력이 미약해졌다. 지금 일본도 우경화해 이에 비판적인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은 아직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정치적 흥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현재는 일본 정부 내에 친한파가 약하다, 줄어들었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머지않아 아베 정권의 우경화가 지나쳤다는 반성이 반드시 나올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아침 신문에서 한국에 대해 나쁜 얘기를 읽어도 저녁에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이 어떻게 되는지를 걱정한다. 그것이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현실이다. 아베는 이 점을 명심하라.”● 최서면 원장은△1928년 강원 원주 출생 △1945년 연희전문 정치과 입학 △1949년 대동신문 기자 △1951년 ‘성(聖) 방지거의 집’ 원장 △1957년 도일(渡日) △1960년 일본 아세아대 교수 △1969년 일본 도쿄한국연구원장 △1973년 국제한국연구기관협의회 사무총장 △1990년 한·몽골친선협회 회장 △현재 국가보훈처 안중근의사 유해발굴추진단 자문위원 겸 자료발굴단 단장,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초빙교수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일본이 중국에 대한 대항의식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외교로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면 적극적으로 따라줄 아시아 국가가 없고 일본 외교가 독선적이라 간주될 것이다.”(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일본 게이오대 교수) 26일 오후 1∼6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한중일의 새로운 리더십과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이란 주제로 제5회 한중일 국제심포지엄이 열린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의 동서대(총장 장제국·사진)와 동북아역사재단, 중국의 사회과학원 아태·글로벌전략연구원, 일본의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 현대한국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다. 일본 측 소에야 교수는 25일 사전 배포된 발제문에서 “일본은 아시아 각국 사이에 대등한 파트너로 공감을 형성하는 ‘아시아 외교’의 감성이 소멸된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를 잊지 않았다. 그는 “과거 아편전쟁의 경험을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감정과 최근 급부상으로 부활한 자신감과 자존심이 합쳐져 오늘날 중국의 독특한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을 형성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도 “한국 외교의 최대 도전은 중국의 부상이 초래하는 동북아 질서의 일대 전환”이라며 “중국이 경제의 급성장으로 대외정책에서도 ‘힘의 정치’에 입각한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족 출신의 박건일(朴鍵一) 중국사회과학원 아태·글로벌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국이 동북아에서 일본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중국의 새 정부는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尖閣 열도)에 대한 순찰 구상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6일 심포지엄에서 한중일 3국 전문가들 간의 뜨거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의 개회사로 시작되는 이번 세미나는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환영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축사가 이어진다. 공로명 동서대 석좌교수(전 외무장관),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 문정인 한석희 연세대 교수, 박준우 전 유럽연합(EU) 대사, 이종국 홍면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이홍규 동서대 교수 등이 사회자나 한국 측 토론자로 참석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