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

신규진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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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에서 국방부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newjin@donga.com

취재분야

2026-03-09~2026-04-08
대통령37%
정치일반32%
경제일반9%
국방6%
국제정세4%
미국/북미4%
국제일반2%
외교2%
사고2%
국회2%
  • 소재는 좋았지만…제작비 수백 억 들이고도 고전하는 두 대작 드라마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야심 차게 내놓은 대작 드라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MBC ‘이몽’은 200억 원대, SBS ‘녹두꽃’은 100억 원대 제작비를 투입한 시대극. 두 드라마 모두 반환점을 돌았지만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몽’은 방영 전 화제성이 차라리 나았던 경우다. 당시 제작진은 “실제와 허구가 뒤섞였다. 약산 김원봉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 아니다”고 해명할 정도로, 바깥에서 이념적 논란이 컸다. 하지만 2회(지난달 4일) 7.1%(닐슨코리아)로 최고점을 찍은 뒤 갈수록 관심도 시청률도 저조하다. 15일 23회는 3.3%까지 추락했다. 현재 시청자게시판을 봐도 약산의 월북 행적을 지적하는 글만 눈에 띈다. 심지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도, 드라마는 정치적 공방(?)에서 자유로웠다. 시청자들은 ‘만듦새’를 지적하고 나섰다. 함께 항일운동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인물들의 이몽(異夢)을 섬세하게 그려내지 못했다. 그저 독립투사와 ‘악’ 일제의 쫓고 쫓기는 서사가 지루하게 반복된다. 의열단장 김원봉(유지태)은 언제나 과격하기만 하고, 외과 의사이자 밀정인 가상 인물 이영진(이요원)은 시대를 저버린 채 청순가련하다. “인물의 행동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평이 쏟아진다. 독립투사를 ‘조폭(조직 폭력배) 판타지’로 만들었단 비난도 있다. 특히 지난달 11일 방영한 6회에서 김원봉이 중국 청방에 홀로 뛰어들어 이영진을 구하는 장면은 “어벤져스 급”이란 반응. 조선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 관리들이나 세트장이 드러나는 헐거운 컴퓨터그래픽(CG)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다. 짧지만 차분한 전략가의 면모로 김원봉의 존재감을 드러낸 영화 ‘암살’(2015년)이나 ‘밀정’(2016년)과 다르게, 액션에만 치중해 캐릭터 깊이감은 옅어졌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심리묘사에서 오는 긴장감 등 세밀한 장르물을 원하던 시청자의 기대와 다르게 단순한 선악 구도가 반복된다”고 했다. 오히려 ‘녹두꽃’은 “물건은 좋은데 마케팅이 별로”라는 평이 많다. 초반인 2회(4월 26일) 가 시청률 11.5%였을 때만 해도 ‘웰메이드 드라마의 성공’이란 평이 많았다.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이 작품은 가상의 이복형제를 앞세워 차별화를 꾀했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보단, 이복형제로 농민군인 백이강(조정석)과 토벌대 백이현(윤시윤)의 대립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잘 담아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해 결말이 예측 가능하다는 ‘역피셜’(역사와 오피셜의 합성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던 점도 긴장감을 한껏 올려줬다. 하지만 방영시간대가 발목을 잡았다. ‘녹두꽃’을 방영하는 금·토 오후 10시는, 시청자가 가벼운 예능이나 자극적인 막장드라마에 더 익숙한 시간대다. 동학농민운동이란 무거운 주제의식에 “우울해서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양한 민초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구현한 점은 나쁘지 않지만, 너무 산발적으로 벌려놓아 새로운 시청자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결국 8일 방영한 27회는 시청률이 4.6%까지 내려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두 작품 모두 시의 적절한 소재를 다뤘지만, 편성과 연출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녹두꽃’은 주말에 비극적인 시대상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고, ‘이몽’은 김원봉을 액션스타로 만들어버린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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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장수프로의 딜레마 “예전엔 되던 것이 지금은 안돼요”

    “(프로그램을) 잘못 선택하신 듯하네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검색 몇 번이면 금방 찾을 줄 알았다. 오히려 방송 분량이 안 나올까 걱정까지 했다고 한다.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형사 출신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이 MC 윤정수에게 한 말처럼, 2011년 9월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사람 찾는 게 더 까다로워졌다. 김 위원이 “사람 조회하면 조회해준 경찰관은 옷을 벗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프로그램 주기가 더욱 짧아진 시대, 그나마 과거부터 명맥을 이어온 장수 프로그램들이 방송환경 변화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변화를 줘야 한다는 부담감과 제작 과정의 시행착오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방영한 ‘TV는 사랑을 싣고’는 최고시청률 47%를 기록한 KBS의 대표 장수 예능. 지난해 9월 8년 만에 리부트를 하면서 ‘The Power Of Love’ 노래와 함께 연예인이 찾고 싶은 지인과 감격적으로 상봉하는 스튜디오 촬영 대신, 직접 발품을 파는 외부 촬영을 택했다. 교사가 리포터에게 생활기록부를 폭로(?)하는 특유의 설정이 이젠 시대가 바뀌어 연예인 본인이 직접 가야 가능하기 때문. 구청이나 학교에서 “안 된다”는 답을 듣기 일쑤라 촬영 전후 제작진 3, 4명이 의뢰자를 수소문하는 일도 버거워졌다. 인요한 연세대 교수 편은 6개월 만에 방송이 됐을 만큼 사람을 찾을 단서가 부족하다. 때문에 아예 제작도 못한 연예인도 많다고 한다. 정택수 CP는 “방송 촬영을 나가면 다소 혜택을 보던 시절보다 확실히 제작이 어려워졌다. 전화 한 통이면 풀리던 문제도 지금은 일일이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야 한다”고 전했다. 달라진 시대의 흐름이 야속한 건 1999년부터 방영하고 있는 KBS ‘개그콘서트’도 마찬가지. 지난달 1000회를 맞았지만 5∼8% 시청률로 콩트 코미디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 원종재 PD는 지난달 간담회에서 “과거 자주 사용하던 가학성, 외모 비하 등의 소재를 더 이상 쓸 수 없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대사 하나도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녹화날인 수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회의를 하지만 혹여 논란이 될까 발전시키지 못한 아이디어도 수두룩하다. 일부 출연진의 유튜브 1인 방송 활동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코너 2개를 맡고 있는 개그맨 신봉선은 “과거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선을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 후배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방송용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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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색만 하면 찾을 줄 알았는데…달라진 시대에 어려워진 장수 TV프로그램

    “(프로그램을) 잘못 선택하신 듯하네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검색 몇 번이면 금방 찾을 줄 알았다. 오히려 방송 분량이 안 나올까 걱정까지 했다고 한다.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형사 출신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이 MC 윤정수에게 한 말처럼, 2011년 9월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사람 찾는 게 더 까다로워졌다. 김 위원이 “사람조회하면 조회해준 경찰관은 옷을 벗어야한다”고 말할 정도다. 프로그램 주기가 더욱 짧아진 시대, 그나마 과거부터 명맥을 이어온 장수 프로그램들이 방송환경 변화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변화를 줘야 한다는 부담감과 제작과정의 시행착오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방영한 ‘TV는 사랑을 싣고’는 최고시청률 47%를 기록한 KBS의 대표 장수 예능. 지난해 9월 8년 만에 리부트를 하면서 ‘The Power Of Love’ 노래와 함께 연예인이 찾고 싶은 지인과 감격적으로 상봉하는 스튜디오 촬영 대신, 직접 발품을 파는 외부 촬영을 택했다. 교사가 리포터에게 생활기록부를 폭로(?)하는 특유의 설정이 이젠 시대가 바뀌어 연예인 본인이 직접 가야 가능하기 때문. 구청이나 학교에서 “안 된다”는 답을 듣기 일쑤라 촬영 전후 제작진 3, 4명이 의뢰자를 수소문하는 일도 버거워졌다. 인요한 연세대 교수 편은 6개월 만에 방송이 됐을 만큼 사람을 찾을 단서가 부족하다. 때문에 아예 제작도 못한 연예인들도 많다고 한다. 정택수 CP는 “방송 촬영을 나가면 다소 혜택을 보던 시절보다 확실히 제작이 어려워졌다. 전화 한 통이면 풀리던 문제도 지금은 일일이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야한다”고 전했다. 달라진 시대의 흐름이 야속한 건 1999년부터 방영하고 있는 KBS ‘개그콘서트’도 마찬가지. 지난달 1000회를 맞았지만, 5~8% 시청률로 콩트 코미디에 대한 떨어진 관심을 체감하고 있다. 원종재 PD는 지난달 간담회에서 “과거 자주 사용하던 가학성, 외모 비하 등 소재를 더 이상 쓸 수 없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대사 하나도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녹화날인 수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회의를 하지만 혹여 논란이 될까 발전시키지 못한 아이디어도 수두룩하다. 일부 출연진의 유튜브 1인 방송 활동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코너 2개를 맡고 있는 개그맨 신봉선은 “과거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선을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 후배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방송용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 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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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면 하나하나 직접 그려 콘티대로 촬영… 이래서 ‘봉테일’

    “감독님 콘티 안에는 모든 디테일이 그려져 있어요. ‘이미 모든 게 머릿속에 있구나’ 싶더라고요.”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최우식의 말이다. 9일 기생충이 개봉 11일 만에 관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봉준호 감독(50)의 작업 방식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처럼, 스토리보드 안에 카메라 앵글, 동선, 배경 등 그의 디테일이 모두 담긴다. 컷만 나누는 게 아니라 핸드헬드(손으로 들고 찍기) 등 연출 느낌까지 스케치로 표현한다. 그는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년)부터 전문 작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시나리오와 콘티를 직접 작업해 왔다. “스토리보드를 미리 해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현장에 못 나가거든요. 콘티 없이 현장에 가는 건 마치 바지를 안 입고 팬티만 입고 시부야 한복판에 서 있는 그런 느낌이죠.” 홍경표 촬영감독도 1000개 가까운 컷이 담긴 완벽한 콘티 덕분에 77회 차 만에 기생충 촬영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한 만큼 촬영 현장에서 겪는 시행착오도 줄었다. 표준근로계약서를 준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봉 감독은 찍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 편집본대로 찍는다. 집을 지으면서 ‘못 한 포대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못이 53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크리스 에번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동시에 (배우들은) 매우 자유로워진다. 마치 유치원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틸다 스윈턴) 배우들 입장에서 연기하기 한층 수월해지는 건 당연지사. 직접 그린 콘티를 만화책처럼 만들어 보여주고, 디테일한 설명이 이어진다. ‘마더’(2009년)의 김혜자, ‘옥자’(2017년)의 제이크 질런홀 등 연기파 배우들에게 직접 명연기(?)를 선보이는 일도 잦다. 기생충을 함께한 배우 장혜진, 이선균이 “모든 것을 맡기고 자판기 연기를 하고 싶었다” “가이드 봉준호가 이끄는 패키지여행”이라고 촬영 후기를 남길 정도. 그는 어릴 적 만화가를 꿈꿨던 ‘만화광’이었다. 외할아버지인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보단 국내 1세대 디자이너인 아버지 봉상균(1932∼2017)의 영향이 더 컸다고 한다. 외국 출장 때마다 아버지가 사온 그래픽 책과 서재에 놓인 화집들을 읽어온 그는 5세부터 만화를 그렸다. 2005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 서점에서 접한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는 결국 영화로 만들었다. 10대 시절 열광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1978년)에서 코난을 돕는 라나는 ‘괴물’(2006년)에서 세주(이동호)를 지키는 현서(고아성)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강원도 산골에서 미자(안서현)와 옥자가 교감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원령공주’(1997년)를 떠올리게 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인 그는 군 전역 뒤 1993년 학보사 ‘연세춘추’에 4컷 만화와 만평을 1학기 동안 연재했다. 문민정부 초기 노동 현실, 대학생의 처지 등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장르 규칙을 따르지 않고 그 틈바구니로 사회 현실이 들어간다”는 봉 감독의 말처럼, 사회 비판적 메시지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영화 스타일과도 닮아 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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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준호 감독 “‘이것’ 없으면 불안해서 촬영 현장에 못 나간다”

    “감독님 콘티 안에는 모든 디테일이 그려져 있어요. ‘이미 모든 게 머리 속에 있구나’ 싶더라고요.”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최우식의 말이다. 9일 ‘기생충’이 개봉 11일 만에 관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봉준호 감독(50)의 작업 방식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처럼, 스토리보드 안에 카메라 앵글, 동선, 배경 등 그의 디테일이 모두 담긴다. 컷만 나누는 게 아니라 핸드헬드(손으로 들고 찍기) 등 연출 느낌까지 스케치로 표현한다. 그는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년)부터 전문 작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시나리오와 콘티를 직접 작업해왔다. “스토리보드를 미리 해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현장에 못 나가거든요. 콘티 없이 현장에 가는 건 마치 바지를 안 입고 팬티만 입고 시부야 한복판에 서있는 그런 느낌이죠.” 홍경표 촬영감독도 1000개 가까운 컷이 담긴 완벽한 콘티 덕분에 77회 차 만에 ‘기생충’ 촬영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한 만큼 촬영 현장에서 겪는 시행착오도 줄었다. 표준근로계약서를 준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봉 감독은 찍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 편집본대로 찍는다. 집을 지으면서 ‘못 한 포대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못이 53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크리스 에번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동시에 (배우들은) 매우 자유로워진다. 마치 유치원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틸다 스윈튼) 배우들 입장에서 연기하기 한층 수월해지는 건 당연지사. 직접 그린 콘티를 만화책처럼 만들어 보여주고, 디테일한 설명이 이어진다. ‘마더’(2009년)의 김혜자, ‘옥자’(2017년)의 제이크 질런홀 등 연기파 배우들에게 직접 명연기(?)를 선보이는 일도 잦다. ‘기생충’을 함께한 배우 장혜진, 이선균이 “모든 것을 맡기고 자판기 연기를 하고 싶었다” “가이드 봉준호가 이끄는 패키지여행”이라고 촬영 후기를 남길 정도. 그는 어릴 적 만화가를 꿈꿨던 ‘만화광’이었다. 외할아버지인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보단 국내 1세대 디자이너인 아버지 봉상균(1932~2017)의 영향이 더 컸다고 한다. 외국 출창 때마다 아버지가 사온 그래픽 책과 서재에 놓인 화집들을 읽어온 그는 5세부터 만화를 그렸다. 2005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 서점에서 접한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는 결국 영화로 만들었다. 10대 시절 열광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1978년)에서 코난을 돕는 라나는 ‘괴물’(2006년)에서 세주(이동호)를 지키는 현서(고아성)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강원도 산골에서 미자(안서현)와 옥자가 교감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원령공주’(1997년)를 떠올리게 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인 그는 군 전역 뒤 1993년 학보사 ‘연세춘추’에 4컷 만화와 만평을 1학기 동안 연재했다. 문민정부 초기 노동 현실, 대학생의 처지 등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장르규칙을 따르지 않고 그 틈바구니로 사회 현실이 들어간다”는 봉 감독의 말처럼, 사회 비판적 메시지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영화 스타일과도 닮아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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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둡고 싸늘한 시선 많이 걷혔지만…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그대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속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예상치 못한 반전은 2011년부터 ‘블랙 미러’ 시리즈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 영국 총리와 돼지의 수간(獸姦)을 요구하는 납치범의 이야기를 다룬 시즌1의 첫 에피소드처럼 ‘블랙 미러’는 줄곧 기술의 진보로 파생된 여러 문제들을 충격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난해 영화판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에선 시청자가 극 중 서사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미래형 드라마가 등장했다’(가디언)는 평까지 받았다. “‘블랙 미러’는 기술이 나쁘다고 묘사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기술을 어떻게 잘못 사용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죠.” 시즌1부터 각본 및 제작에 참여해 온 찰리 브루커가 7일 국내 언론과의 화상 통화에서 전한 말처럼, 넷플릭스가 최근 공개한 시즌5의 3개 에피소드도 동일한 주제의식을 이어받았다. 희망적인 기술의 진보를 보여준 시즌3 ‘샌주니페로’처럼 시리즈 특유의 어둡고 싸늘한 시선도 많이 걷어냈다. 오랜만에 대학 친구와 재회한 대니는 가상현실(VR) 기술로 출시된 격투게임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하게 되고, 물리적 접촉이 모두 실제처럼 느껴지는 게임 속 현실에 성실한 가장이던 대니의 삶이 흔들린다. ‘스미더린’에선 동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으로 인해 부인을 잃었다고 주장하는 한 남성이 기업 사장과의 통화를 요구하는 인질극을 벌인다.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정체불명의 약까지 먹이며 가수에게 창작을 강요하는 잔혹한 아이돌 산업의 실체를 드러낸다. 기술적 상상력은 그대로, 비판의 날은 무뎌졌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에 접속하기 위해 관자놀이에 붙이는 첨단 기기는 우주 함선 속 이야기로 에미상까지 수상한 시즌4의 ‘USS 칼리스터’에서 쓰인 기술 그대로다.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통해 경찰, 미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기관보다 더 많은 정보력을 지닌 SNS 기업들의 전지전능함은 그간 반복돼 온 주제. SNS 중독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마저 준다. “전 시즌 에피소드들을 살짝 뒤튼 기시감이 든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도 알 수 없는 가까운 미래를 간접 체험하는 시리즈 본연의 재미는 여전하다. 하이틴 드라마스러운 ‘레이철, 잭, 애슐리 투’의 분위기는 이질적이지만 분명 색다른 시도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팰컨(앤서니 매키), 영국 드라마 ‘셜록’의 짐 모리아티(앤드루 스콧),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 등 익숙한 얼굴들의 호연도 다소 아쉬운 서사에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몰입감을 준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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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나가던 로맨스 드라마, 요즘 무슨 일?

    봄과 여름 사이, 로맨스 드라마가 TV를 메우고 있다. SBS ‘열혈사제’, KBS ‘국민 여러분!’ 등 범죄, 코미디 장르에서 최근 로맨스로 분위기가 확실히 전환된 모양새다. 7편의 멜로물이 몇 주 간격으로 편성돼 평일 저녁은 ‘로맨스 드라마’ 대전이 됐다. 그중 판타지물은 5편. 물론 SBS ‘별에서 온 그대’(2013년), tvN ‘도깨비’(2016년) 같은 기발한 상상력과 신선함으로 시청률 20∼30%를 오가던 과거의 아우라는 사라졌다. “10%만 넘겨도 대박”이라는 척박한 드라마 시장을 고려하더라도 2∼3% 시청률로 김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일단 소재 면에서는 새로움을 찾기 위한 노고가 엿보인다. 향수를 뿌리면 젊었던 ‘리즈 시절’로 돌아가고(KBS ‘퍼퓸’) 천사가 등장하거나(KBS ‘단, 하나의 사랑’) 안면실인증에 걸린 기업 본부장과 비서와의 사랑(SBS ‘초면에 사랑합니다’)을 다룬다. 죽은 이를 되살리는 ‘영혼 소생 구슬’이나(tvN ‘어비스’) 연인용 피규어까지 등장했다(SBS ‘절대그이’). 어중간한 코미디 요소를 덜고 발레 공연으로 볼거리를 준 ‘단, 하나의 사랑’이 그나마 시청률이 9%대로 가장 높다. 안구 기증으로 시력을 되찾은 냉소적인 발레리나 연서(신혜선)와 사고뭉치 천사 단(김명수)의 조합이 신선하다는 평이다. 6%대 시청률로 출발한 ‘퍼퓸’은 향수 기운이 떨어지면서 예린(고원희)의 옷이 찢어지고 살이 삐져나오는 과정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판타지 배경과 소재를 벗겨내면 신데렐라, 키다리 아저씨 등 해묵은 서사에 의존해 갈수록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오랜 시간 기다린 피규어 제로나인(여진구)에게 “그쪽 바보예요? 기다리다가 몇 시간씩 안 오면 그냥 돌아가야지”라는 다다(방민아)의 대사는 지고지순한 기다림을 표현하는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를 답습한다. 안면실인증 소재를 빼면 ‘초면에…’는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구도를 빼다 박았다. 반면 시청률 6%대 MBC ‘봄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결혼할 상대가 있는 정인(한지민)과 싱글 대디 지호(정해인)의 만남을 잔잔하게 그린다. 안판석 PD와 정해인의 전작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비슷한 감성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MBC ‘이몽’, SBS ‘녹두꽃’, tvN ‘아스달 연대기’ 같은 대작 드라마에 많은 비용을 투입한 방송사들이 가성비가 높은 멜로물을 선택한 건 예견된 일”이라며 “자극적인 요소보다 서사의 힘으로 승부를 봐야 시청자에게 외면받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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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진기 “법조계 프로 중 가장 리얼… 마니아적인 ‘굿피플’ 내 소설 닮은듯”

    명색이 추리소설가라 굉장히 쉬울 줄 알았다. ‘못하는 척해야 되나’ 고민(?)까지 했다고 한다. 채널A 예능 ‘신입사원 탄생기―굿피플’에서 추리소설가 도진기 변호사(52)의 역할은 과제별 로펌 인턴 8명의 순위를 맞히는 일. 예능에선 능력보다 인간미 등 감동 코드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그의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서울 서초구 법률사무소에서 3일 만난 도 변호사는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소설 쓰기가 예능 출연보다 훨씬 쉽다”고 웃었다. 하루 6시간의 녹화를 마치면 자동으로 1kg씩 체중 감량이 된단다. 말을 더듬었던 기억에 VCR 속 인턴처럼 자책한 적도 많다. ‘굿피플’은 그의 말대로, “정말 현실적인 예능”이다. 철저히 실력으로 평가받는 냉혹한 세계다. 그는 “드라마에선 변호사가 변론하다 갑자기 일어나 소리친다”는 MC 이수근의 말에 “실제 법정에서 그렇게 변론하면 판사가 논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현실을 짚어준다. 어려운 법률용어 설명도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법조계의 삶을 드러낸 프로그램 중 가장 리얼해요. 진입장벽은 다소 높지만 그만큼 ‘마니아’적이죠. ‘굿피플’이 제 소설을 닮았다고 생각해요.” ‘선택’(2010년)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한 그는 10편이 넘는 글을 써왔다. 2017년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20여 년의 판사 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주말 시간을 쪼개 틈틈이 글을 썼다. 일본 걸작들로 추리소설에 관심을 가졌고 “한국이라고 못할 게 뭐 있냐”며 호기롭게 펜을 잡았다. “처음엔 아내가 ‘당신이 무슨 소설이냐’며 비웃었죠. 상을 받으니 마트에서 6만 원짜리 테이블을 사주더라고요.(웃음)” 그는 살아오면서 늘 현실에 입각한 글쓰기를 해왔지만 “항상 상상의 세계를 갈망해왔다”고 말한다. ‘메시지보단 흥미가 중요하다’는 원칙 아래 “독자들이 소름끼칠 만한 트릭을 떠올리면 혼자 키득거리며 글을 쓴다”고 한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2016년)의 집필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탐방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로펌 면접에서 당당히 “저는 반골 기질이 있다”고 말하는 임현서 인턴을 보면 왕년의 판사 도진기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 “동년배들보다 사회화가 늦었고 세상 물정을 잘 몰랐으며 개성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저희 세대는 ‘골든 에이지’였죠. ‘굿피플’ 인턴들은 저보다 낫더라고요. 다들 준비가 돼 있는데도 경쟁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요.” 올해만 벌써 두 권을 내놨지만 한 권을 더 쓰는 게 목표다. 논픽션 ‘판결의 재구성’에선 국내 유명 사건 판결문을 분석해 법의 허점을 지적했다. 추리소설 ‘합리적 의심’은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3년 전 판사 시절 초고를 써 놨다. 언젠간 공상과학(SF) 소설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논픽션을 쓰다가 다시 추리소설을 잡으니 ‘멀어진 옛 친구’ 같은 느낌이네요. 빨리 슬럼프를 극복해야죠. 하하.”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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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세계관, 익숙한 캐릭터… 한국형 판타지 통할까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2회까지만 지켜봐 달라”는 제작진의 간곡한 요청(?)처럼, 1일 첫 편이 방영된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방대한 세계관을 천천히 풀어냈다. 답답할 수 있지만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준 김원석 PD의 잔잔하고 섬세한 연출을 떠올리면 수긍이 간다. 어쨌거나, 약 540억 원을 들인 이 대작 드라마는 7%대 시청률로 출발했다. “어떤 사료도 없이 창조했다”는 상고시대 세계관은 신선하면서도 어렵다. ‘어스(지구)’에서 따온 태고의 땅 아스에 세워진 고대 도시 아스달에는 군사와 농경을 담당하거나(새녘족) 제례를 주관하고(흰산족), 청동 기술을 보유한(해족) 부족들이 어울려 산다. 아스달과 대흑벽을 경계로 맞닿은 이아르크 지역에는 수렵과 채집을 하는 씨족사회(와한족)가 형성돼 있다. 옛날이야기가 그렇듯, 혈통이라는 소재도 빠질 수 없다. 사람의 모습과 흡사하지만 더 빠르고 힘이 센 뇌안탈은 파란색 피를 흘린다. 사람과 뇌안탈 사이에서 태어난 이그트는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은 보라색 피를 지녔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기 위해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의 조언을 받아 음운을 거꾸로 한 뇌안탈어를 창조하는 수고까지 들였다. 하지만 기존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일단 ‘비주얼적’으로 그렇다. 새녘족 타곤(장동건)은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한 존 스노의 털옷을 입고 있으며, 그가 앉아 있는 곰왕좌는 ‘철의 왕좌’를 닮았다.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뇌안탈을 사냥하는 극악무도한 새녘족은 호전적 유목민 도트라키를, ‘외부 세력’ 와한족은 웨스테로스 대륙과 얼음 장벽을 경계로 사는 야만인 와일들링을 떠올리게 한다. 가혹하지만 ‘왕좌의 게임’의 원작 ‘얼음과 불의 노래’를 패러디한, ‘마늘과 쑥의 노래’라는 풍자적 별명은 이 드라마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자연과 공존하는 와한족이 정복 민족 새녘족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은 마야 문명을 다룬 ‘아포칼립토’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와한족과 함께 사는 이그트 은섬(송중기)이 ‘말의 후손’ 칸모르에 오르는 장면은 제이크 설리가 커다란 새 이크란을 길들이며 나비족에게 인정받는 ‘아바타’와 묘하게 겹친다. 갈라진 가슴골에 더벅머리 송중기는 7년 전 ‘늑대소년’의 순수함 그대로다. 그럼에도 태고의 땅에서 벌어지는 장대한 서사를 한국적인 대사와 비주얼로 풀어내려는 노력은 신선하다. 경기 오산시에 지은 2만1000m²(약 6350평) 규모의 세트와 브루나이 해외 촬영으로 완성된 이국적이고 색감 짙은 자연 풍광은 국내 드라마 중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만하다. 찌르고 잘리는 액션도 살육의 태고시대를 간접 체험하게 한다. 하지만 “한국어에도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알아듣기 힘든 대사는 이 드라마가 극복해야 할 디테일이다. 극 초반 은섬의 탄생부터 방대한 세계관을 장황하게 풀어낸 점은 불가피했더라도,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등을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콤비의 흡인력 있는 전개가 필요하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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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예술가와 철학자에게 수학은 오랜 뮤즈였다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갈릴레오의 절친이었다. 그래서 그는 ‘홀로페우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를 그릴 때 당시 갈릴레오가 발표했던 발사체 운동법칙에 따라 죽은 장수의 피가 포물선을 그리며 뿜어지도록 표현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한 수학과 과학, 예술의 진화, 발전 과정을 총망라했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창조와 진보가 수학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다. 900명에 가까운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를 통해 수학과 예술의 지적 연결고리를 증명한다. 역사적으로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는 당대의 수학 원리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수학자들과의 교류도 적극적이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올 수 없다”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많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피타고라스학파는 수의 조화가 우주 만물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게 한다는 신념을 종교화했다. 천체물리학자 닐 디스래그 타이의 말처럼, “예술가와 철학자에게 수학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뮤즈였다.” 중국의 수학책 ‘구고정리’부터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에 쓰인 기하학, 현대 컴퓨터의 원리에 이르는 문화사를 종횡으로 훑었다. 사진으로 보는 500여 점의 작품들은 예술가들이 어떻게 당대에 중요한 수학적 개념을 표현했는지 보여준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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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시 파켓 “봉준호 감독과 작업은 기분 좋은 어려움”

    영화 ‘기생충’이 상영된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화 초반,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집구석을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터진 웃음은 영화 내내 이어졌다. 2000여 명의 관객 중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에 담긴 한국적인 정서를 외국인도 쉽게 이해했다는 뜻이다. 이는 영어 번역을 맡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씨(47·미국)의 공이 크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30일 만난 그는 유창한 우리말로 “훌륭한 영화로 번역의 중요성이 새삼 조명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1997년 고려대 영어 강사로 한국에 와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그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20여 년간 100편 가까이 작업했지만 영어 번역은 여전히 “단점만 보이기 쉬운, 힘든 일”이다. 대사가 많은 ‘기생충’도 시나리오 초고를 번역하는 데만 열흘이 걸렸다. 봉준호 감독과 최종본 수정을 하며 이틀 동안 밤을 새웠다. “Wow,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 없나?)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딸 기우(박소담)에게 기택이 하는 말은 “직역을 하면 서울대가 상징하는 의미가 전달될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를 지울 것이냐, 직역을 택할 것이냐는 항상 반복되는 고민.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두만(송강호)의 대사도 외국인에게 더 친숙한 “Do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o?”로 바꿨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 대한 고민도 필수다. 기택이 박 사장(이선균)네 과외 면접을 보러 가는 기우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 하는 대사도 ‘make me proud’보다 더 진지한 ‘proud of you’를 써 우스꽝스러움을 강조했다. “워낙에 ‘브릴리언트(뛰어난)’하잖아요”라는 연교(조여정)의 허세 넘치는 영어는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박 사장네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북한 아나운서를 따라 하는 대사도 ‘(North korean news anchor)’라는 설명으로 이해를 도왔다. 극 중 ‘대만 카스텔라(Taiwan cakeshop)’, ‘반지하(semi basement)’ 등 지극히 한국적인 단어들은 의미 전달이 쉽지 않다. ‘짜파구리’도 ‘ramdong(ramen+udong)’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송강호 특유의 맛깔나는 연기나 사투리를 볼 때마다 너무 아쉽다. 외국인은 100%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봉 감독과 작업하는 것은 기분 좋은 어려움이에요. 대사의 리듬감을 중시해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지만, 영어의 주술을 뒤바꾸기도 해요.” 그는 ‘플란다스의 개’(2000년)의 번역 감수를 시작으로 ‘옥자’(2017년)를 제외한 모든 봉 감독 작품을 번역했다. 봉 감독은 항상 “짧고 한 번에 느낌이 오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 ‘마더’(2009년)에서는 영어로 썼을 때 짧은 ‘도준’(원빈)이라는 이름을 택했을 정도다. ‘기생충’ 작업 때도 극 중 반복되는 ‘계획’, ‘상징’ 등 단어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작업하면서 기생충을 7번이나 봤어요. 2월에 영화를 봤으니 입이 얼마나 근질거렸겠어요. 이제 친구들이랑 ‘기생충’ 얘기를 해도 되겠네요. 하하.”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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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충’ 7번이나 본 이 남자, 칸 관객들에 한국 말 ‘맛’ 전했다

    영화 ‘기생충’이 상영된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화 초반,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집구석을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터진 웃음은 영화 내내 이어졌다. 2000여 명의 관객들 중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에 담긴 한국적인 정서를 외국인도 쉽게 이해했다는 뜻이다. 이는 영어 번역을 맡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씨(47·미국)의 공이 크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30일 만난 그는 유창한 우리말로 “훌륭한 영화로 번역의 중요성이 새삼 조명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1997년 한국에 와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그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20여 년간 100편 가까이 작업했지만 영어 번역은 여전히 “단점만 보이기 쉬운, 힘든 일”이다. 대사가 많은 ‘기생충’도 시나리오 초고를 번역하는 데만 열흘이 걸렸다. 봉준호 감독과 최종본 수정을 하며 이틀 동안 밤을 샜다. “Wow,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 없나?)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딸 기우(박소담)에게 기택이 하는 말은 “직역을 하면 서울대가 상징하는 의미가 전달될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를 지울 것이냐 직역을 택할 것이냐는 항상 반복되는 고민.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두만(송강호)의 대사도 외국인에게 더 친숙한 “Do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o?”로 바꿨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 대한 고민도 필수다. 기택이 박 사장(이선균)네 과외 면접을 보러가는 기우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 하는 대사도 ‘make me proud’보다 더 진지한 ‘proud of you’를 써 우스꽝스러움을 강조했다. “워낙에 ‘브릴리언트’ 하잖아요”라는 연교(조여정)의 허세 넘치는 영어는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박 사장네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북한 아나운서를 따라하는 대사도 ‘(North korean news anchor)’라는 설명으로 이해를 도왔다. 극 중 ‘대만 카스텔라(Taiwan cakeshop)’, ‘반지하(semi basement)’ 등 지극히 한국적인 단어들은 의미 전달이 쉽지 않다. ‘짜빠구리’도 ‘ramdong(ramen+udong)’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송강호 특유의 맛깔나는 연기나 사투리를 볼 때마다 너무 아쉽다. 외국인은 100%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봉 감독과 작업하는 것은 기분 좋은 어려움이에요. 대사의 리듬감을 중시해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지만, 영어의 주술을 뒤바꾸기도 해요.” 그는 ‘플란다스의 개’(2000년)의 번역 감수를 시작으로 ‘옥자’(2017년)를 제외한 모든 봉 감독 작품을 번역했다. 봉 감독은 항상 “짧고 한 번에 느낌이 오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 ‘마더’(2009년)에서는 영어로 썼을 때 짧은 ‘도준(원빈)’이라는 이름을 택했을 정도다. ‘기생충’ 작업 때도 극 중 반복되는 ‘계획’, ‘상징’ 등 단어에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작업하면서 기생충을 7번이나 봤어요. 2월에 영화를 봤으니 입이 얼마나 근질거렸겠어요. 이제 친구들이랑 ‘기생충’ 얘기를 해도 되겠네요. 하하.”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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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란티노 형님 남아있어 시상식 끝까지 긴장감”

    봉준호 감독(50)의 기억 속에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 편의 영화로 남아 있다. 폐막식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은 받았지만 어떤 상을 받을지 몰랐다. 다른 부문 시상이 진행될 때마다 “허들을 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전달 과정의 착오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폐막식까지 남아 있어 긴장감이 더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9일 만난 봉 감독은 “타란티노 형님이 오지 않았다면 저희가 상을 수상했을 때 서스펜스가 없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와 대저택, 두 공간에서 90% 이상 촬영했다. 그만큼 공간의 디테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루 종일 자연광이 내리쬐는 부잣집과 하루 30분 정도 햇살이 비치는 반지하의 대비는 빈부의 차이를 드러내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도 봉 감독에게 “어디서 그렇게 완벽한 집을 골랐느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봉 감독이 “세트에서 촬영했다”고 답하자 이냐리투 감독이 놀랐다고 한다. 가난한 집과 부잣집이 한 공간에 얽히는 이야기는 2013년 ‘설국열차’ 후반 작업 당시 떠올린 연극 소재에서 확장됐다. 전작들과 달리 ‘기생충’은 공간의 이동이 적고 대사가 많다는 점에서 다분히 “연극적”이다. 그렇게 묵혀 놨던 시나리오를 2017년 ‘옥자’가 개봉한 뒤 3개월에 걸쳐 완성했다. 다른 영화들을 꾸준히 봐온 덕에 배우 섭외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인간중독’(2014년)에서 조여정, ‘우리들’(2015년)에서 장혜진의 가능성을 봤다. “평소 시나리오를 쓸 때보다 빠르게 완성시켰어요. (주제 면에서) 당시 ‘설국열차’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전작들보다) 후회나 미련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에요.” ‘마더’의 김혜자처럼, ‘기생충’도 송강호를 머릿속에 전제하고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다. 연체동물처럼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 가는 기택 역에 생활 연기의 달인인 송강호가 단번에 떠올랐다. ‘살인의 추억’(2003년)부터 4개 작품을 함께한 송강호는 이날 “솔직히 시나리오를 읽고 ‘걸작’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봉 감독의 작품 세계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좋은 의미에서 ‘정말 이상한’ 영화”라고 했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말은 아직 부담이다. “(봉 감독과) 작품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붙여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의 작품의 깊이나 예술적 비전을 제가 다 담아냈는지는 사실 모르겠어요.”(송강호) 봉 감독은 박 사장네보다는 기택네에 감정이입을 했다고 한다. “같은 듯해도 자세히 보면 다른 두 가족”이라는 의미로 붙인 ‘데칼코마니’라는 처음 제목도 그래서 바꿨다. “칸에서 ‘이 영화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냐’는 외국 기자들의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마다 ‘어느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답했어요. 다들 수긍하더라고요.”(송강호) 그래도 둘에겐 한국 관객의 반응이 가장 궁금하다. 봉 감독은 “미묘한 뉘앙스를 국내 관객이 크게 공감할 것”이라며 “칸에서 웃음이 많이 터졌고, 박수도 나왔지만 배우들 특유의 말맛까지는 공감을 못 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차기작을 물었다. “미국과 한국에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에요. 대작은 아니고 ‘기생충’ 사이즈의 영화요. 장르는 공포? 액션? 지금껏 그래 왔듯 제가 규정한다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 모르겠네요. 하하.”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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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스운데 눈물이 나는… ‘봉테일’이 그려낸 한국인

    봉준호 감독의 장기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셀프 오마주를) 의도하지 않았다”지만, 전작들에서 보인 봉 감독 특유의 디테일이 ‘기생충’ 곳곳에 포진해 있다. 131분 동안 블랙 코미디를 바탕으로 한 서사에 스릴러 특유의 공포, 긴장감이 한데 어우러져 장르적 일관성은 보란 듯이 파괴됐다. 시작부터 카메라는 햇살이 간헐적으로 스며드는 반지하에 걸린 빨래들을 담는다. 꼬질꼬질한 양말들의 주인은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족.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방역소독제가 창문으로 스며드는, 봉 감독의 말대로 “분명히 지하인데 지상으로 믿고 싶어지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이다. 비좁은 반지하방에 오순도순 모여 살지만, 기택네는 평화롭다. 요금을 내지 못해 휴대전화가 끊기고, 남의 집 와이파이를 몰래 쓰지만 처지를 비관하는 이가 없다. 장미(고수희)와 현남(배두나)이 서로를 위로하는 문방구(‘플란다스의 개’), 강두(송강호)의 가족이 함께 몸을 맞대는 매점(‘괴물’)처럼 좁은 공간이 주는 그 안정감이다. 반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경영하는 박 사장(이선균)네는 화려한 노란 조명이 감도는 언덕 위 저택에 산다. 비가 오면 물이 차는 반지하와 극과 극의 공간.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두 가족은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 집에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면서 한 공간에 어우러진다. 드넓은 논두렁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지거나(‘살인의 추억’) 버스 창가로 보이는 한강 둔치에 괴물이 출몰하는(‘괴물)’, 넓은 공간이 주는 정서적 불안감은 ‘기생충’에서도 반복된다. ‘설국열차’가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 이어지는 계층 구조를 수평적으로 담아냈다면 ‘기생충’은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이를 형상화한다. 제작 전 다시 봤다던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년)처럼 극 후반부 계단은 섬뜩한 공간이 된다. “지하철 냄새”, “행주 냄새” 등 냄새도 빈부를 구별 짓는 중요한 장치. 봉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 자는 동선이 달라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냄새는 영화에서 유일한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라고 설명한다. 부자의 환경에 자신을 맞춰 가는 빈자의 처절함은 ‘기생’을 유발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두 4인 가족 모두 누구 하나 선악으로 재단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봉 감독은 “가난한 가족도 적당히 뻔뻔하고, 부잣집 가족도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악당이 아니다.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는데도 끝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마더’ 이후 10년 만의 한국어 영화라 그런지 봉 감독 특유의 ‘말맛’은 이 영화가 지닌 큰 무기. 한국 관객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디테일들도 반갑다. 클래식 선율과 롱테이크, 슬로모션의 이질적인 조합은 비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최우식의 노래는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의 일부라고 하니 가사를 곱씹어 보길 권한다. 30일 개봉. 15세 관람가.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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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자의 환경에 맞춰가는 빈자의 처절함…봉준호 특유의 ‘말맛’ 반갑다

    봉준호 감독의 장기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셀프 오마주를) 의도하지 않았다”지만, 전작들에서 보인 봉 감독 특유의 디테일이 ‘기생충’ 곳곳에 포진해 있다. 131분 동안 블랙 코미디를 바탕으로 한 서사에 스릴러 특유의 공포, 긴장감이 한데 어우러져 장르적 일관성은 보란 듯이 파괴됐다. 시작부터 카메라는 햇살이 간헐적으로 스며드는 반지하에 걸린 빨래들을 담는다. 꼬질꼬질한 양말들의 주인은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족.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방역소독제가 창문으로 스며드는, 봉 감독의 말대로 “분명히 지하인데 지상으로 믿고 싶어지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이다. 비좁은 반지하방에 오순도순 모여 살지만, 기택네는 평화롭다. 요금을 내지 못해 휴대전화가 끊기고, 남의 집 와이파이를 몰래 쓰지만 처지를 비관하는 이가 없다. 장미(고수희)와 현남(배두나)이 서로를 위로하는 문방구(‘플란다스의 개’), 강두(송강호)의 가족이 함께 몸을 맞대는 매점(‘괴물’)처럼 좁은 공간이 주는 그 안정감이다. 반면 글로벌 IT기업을 경영하는 박 사장(이선균)네는 화려한 노란 조명이 감도는 언덕 위 저택에 산다. 비가 오면 물이 차는 반지하와 극과 극의 공간.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두 가족은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 집에 과외선생으로 들어가면서 한 공간에 어우러진다. 드넓은 논두렁에서 연쇄살인이 벌어지거나(‘살인의 추억’) 버스 창가로 보이는 한강 고수부지에 괴물이 출몰하는(‘괴물)’, 넓은 공간이 주는 정서적 불안감은 ‘기생충’에서도 반복된다. ‘설국열차’가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 이어지는 계층 구조를 수평적으로 담아냈다면 ‘기생충’은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이를 형상화한다. 제작 전 다시 봤다던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년)처럼 극 후반부 계단은 섬뜩한 공간이 된다. “지하철 냄새”, “행주 냄새” 등 냄새도 빈부를 구별 짓는 중요한 장치. 봉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자는 동선이 달라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냄새는 영화에서 유일한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라고 설명한다. 부자의 환경에 자신을 맞춰가는 빈자의 처절함은 ‘기생’을 유발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두 4인 가족 모두 누구하나 선악으로 재단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봉 감독은 “가난한 가족도 적당히 뻔뻔하고 부잣집 가족도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악당이 아니다.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는데도 끝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마더’ 이후 10년 만의 한국어 영화라 그런지 봉 감독 특유의 ‘말맛’은 이 영화가 지닌 큰 무기. 한국 관객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디테일들도 반갑다. 클래식 선율과 롱 테이크, 슬로우 모션의 이질적인 조합은 비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최우식의 노래는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의 일부라고 하니 가사를 곱씹어보길 권한다.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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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달 5일 개봉 ‘엑스맨: 다크피닉스’ 제작진-배우 내한 간담회 “19년 대장정… 최강 여성 이야기로 대미”

    19년 동안 이어진 ‘엑스맨 유니버스’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다음 달 5일 개봉하는 ‘엑스맨: 다크피닉스’는 ‘엑스맨’(2000년)으로 시작된 시리즈의 12번째 작품이자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년)부터 이어진 4번째 프리퀄이다. 기존 미국 히어로물들이 1930년대 대공황이나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절대 악과 맞서는 구도로 출발했던 것과 다르게, 엑스맨 시리즈는 1960년대 화려한 성장 이면의 편견과 차별의 정서를 바탕으로 했다. 특히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엑스맨’, ‘엑스맨2: 엑스투’(2003년)는 선악의 대립을 넘어 소수자(뮤턴트)의 어두운 내적 갈등, 계층 갈등 등 사회적 함의를 작품 세계관에 녹여내 히어로 영화의 새 길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뮤턴트와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프로페서 X(제임스 매커보이)와 뮤턴트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의 힘겨루기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엑스맨: 다크피닉스’에서도 이들은 엑스맨 팀원이자 우주에서 불의의 사고로 강력한 힘을 얻게 된 진 그레이(소피 터너)를 두고 다시 한번 대립한다. 마블코믹스 걸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다크 피닉스 사가’(1980년)가 원작이다.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소회도 남달랐다. 2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감독 사이먼 킨버그는 “대학을 졸업하는 느낌과 유사하다. 기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라며 “각본을 쓰면서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낳은 아이를 모르는 사람에게 맡길 순 없었다”고 했다. 이번 영화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년)부터 시리즈 각본에 참여해 온 그의 첫 연출 데뷔작이다. 매그니토 역할의 마이클 패스벤더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오디션 장은 아직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제임스(매커보이)와의 인연도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시리즈 가운데 이례적으로 여성의 서사를 중심에 내세운 점도 눈에 띈다. 극 중 “엑스맨이 아니라 엑스우먼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미스틱(제니퍼 로런스)의 대사는 노골적이다. 억눌린 내면의 어둠에 잠식돼 가는 진을 연기하기 위해 터너는 다중인격 장애에 관한 자료들을 직접 찾아봤다고 한다.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산사 스타크로 유명한 그는 “영화 속 여성들은 누구도 남성들에게 굽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킨버그 감독도 “여성 중심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와야 할 때였다”며 “엑스맨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의 이야기”라고 했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년) 등 화려한 파워게임에 치중해 철학을 잃었다는 혹평을 받을 때도 엑스맨 시리즈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년) 등으로 활로를 모색해 왔다. “19금 히어로”라 불린 ‘데드풀’(2016년) 시리즈도 색다른 재미를 줬다. ‘로건’(2017년)에서 사망한 울버린(휴 잭맨)은 없지만 기존 프리퀄의 미스틱, 비스트(니컬러스 홀트), 사이클롭스(타이 셰리던) 등은 여전히 반갑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년)을 끝으로 히어로 영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던 영화음악가 한스 치머의 복귀도 눈길을 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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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 장르법칙 뒤틀고 융합… 봉준호 자체가 장르”

    장르 영화의 틀 속에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내온 봉준호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들어왔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을 쓴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의 외손자인 봉 감독은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봉준호 자체가 장르”(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라는 말처럼 기존 장르 법칙을 뒤틀거나 융합하는 새로운 시도에도 능하다. 사소한 장면이라도 치밀한 복선을 배치하는 섬세한 연출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연세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그가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영화는 ‘살인의 추억’(2003년)이다. 스릴러 장르의 재미에 1980년대 한국 사회 공권력의 무능함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5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웰메이드 한국 영화’라는 평단의 호평 세례도 잇따랐다. 할리우드 괴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그만의 해학과 풍자를 담은 ‘괴물’(2006년)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괴물과 맞서 싸우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무기력함을 꼬집었고 관객 1301만 명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가족은 그의 주된 소재다. ‘마더’(2009년)에서는 광기 어린 모성애를, 첫 할리우드 진출작인 ‘설국열차’(2013년)와 넷플릭스 ‘옥자’(2017년)에서는 계급과 계층 갈등을 그리면서도 가족 구성원의 삶 속에 담긴 희비를 담았다. ‘기생충’ 역시 가족 드라마라는 평범한 소재에서 한국 사회의 불안한 현실을 꼬집는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생충’은 한국을 담은 영화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도 긴급한 이야기”라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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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이 사랑한 한국인’ 임권택 박찬욱 전도연 이창동

    올해는 1919년 단성사에서 최초의 한국 영화인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가 개봉한 지 100주년을 맞는 해로 영화계는 이번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가 국제무대에서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칸 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첫 한국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2000년 영화 ‘춘향뎐’이다. 임 감독은 2002년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또 2004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밀양’(감독 이창동)의 주연 전도연이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09년에는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해 2회 본상 수상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에는 ‘시’(이창동)가 각본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의 칸 본상 수상은 이번이 9년 만이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은 영화 ‘피에타’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의 대상 수상은 100주년을 맞은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높일 사건으로 평가된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세계 영화의 지형도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며 “특히 아시아 영화가 2년 연속 칸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앞으로 세계 영화 시장에서 아시아 영화가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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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감독 “송강호,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

    봉준호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포토콜 행사에서 주연 배우 송강호에게 무릎을 꿇은 채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바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수상자 호명 직후에도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 님의 멘트를 꼭 듣고 싶다”며 스포트라이트를 함께 나눴다. 그의 소개를 받은 송 씨는 숨을 한 차례 가다듬고 “인내심과 슬기로움, 열정을 가르쳐준 존경하는 대한민국 모든 배우들께 영광을 바친다”고 인사했다. ‘살인의 추억’(2003년)부터 4편의 영화를 함께한 송 씨는 명실상부한 봉 감독의 페르소나다. 봉 감독은 ‘기생충’의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송 씨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말했다. 반지하에 살면서 경제력이 전무한 기택은 빈틈이 많아 보이지만 “연체동물” 같은 적응력을 지닌 인물. 특유의 표정과 말투로 소시민 연기에 능한 송 씨가 최적이었다. 송 씨는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받아 봤을 때 느낌과 비슷했다. 한국 영화의 진화라 할 만하다”고 단언했다. 봉 감독은 “배우 송강호는 정신적으로도 의지가 되는 존재다. 영화 전체의 흐름을 규정하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0년대 무명 시절 오디션에 탈락한 송 씨에게 조감독이던 봉 감독이 위로를 해주면서 시작됐다. 그 고마움에 송 씨는 ‘반칙왕’(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로 유명해졌을 때에도 ‘플란다스의 개’(2000년)로 첫 영화 흥행에 실패한 봉 감독의 출연 요청을 단번에 받아들였다고 한다. 봉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송 씨의 해석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송 씨의 애드리브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 이후 송 씨는 ‘괴물’(2006년)에서 가족을 이끌고 괴물과 싸우는 장남 박강두를, 첫 할리우드 진출작 ‘설국열차’(2013년)에서 남궁민수를 연기하며 봉 감독이 깔아놓은 판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 왔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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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난감에서 식음료까지 “귀여운 것이 좋아”

    《#1. “병아리 모양 지우개를 살까, 핫도그 모양 자석을 살까.” 직장인 한선주 씨(32)는 요즘 주말마다 ‘소품 가게 도장 깨기’를 하러 다닌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거리와 망원동 일대에 포진한 소품 가게를 돌면서 눈에 들어오는 물건들을 하나씩 사 모은다. 그는 “도장 깨기 목록에 오른 소품 가게 15곳을 섭렵한 뒤 두 번째 투어를 하고 있다. 깨알 같은 소품 쇼핑을 하다 보면 현실 감각은 옅어지고 행복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2. 30대 남성 직장인 김모 씨는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이허브’에서 어린이용 비타민을 주문한다. 그가 주로 구입하는 제품은 알록달록한 젤리 종합 비타민과 오렌지 모양 비타민C.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약국에서 곰돌이·공룡 모양 비타민을 사주셨다. 비타민 하나에 행복감에 젖어들던 과거로 돌아간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문화를 즐기는 키덜트(kidult). 장난감·소품에서 식음료, 영상, 화장품, 출판으로 외연을 넓혔고, 소비층은 20대 여성뿐만 아니라 30, 40대 여성과 남성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작년 국내 캐릭터 산업 시장 규모는 12조7000억 원. 롯데백화점의 올해 키덜트 상품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50% 이상 급증했다. ○ 귀여움에 홀린 ‘어른이’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품 시장의 성장세다. 서울에서는 홍대 망원동 이태원 성수동 일대에 2, 3년 전부터 소품 가게가 들어서더니 최근에는 30개 이상으로 늘었다. 홍대의 ‘픽시’ ‘미미도넛’과 망원동의 ‘말랑상점’ ‘망원만물’, 성동구 성수동의 ‘잡화게티’ 등이 대표적이다. 세상의 모든 귀여운 개체를 취급하지만 특히 ‘인스’(인쇄소 스티커), ‘떡메’(떡메모지·한 장씩 떼어 쓰는 메모지), 자석, 지우개, 마우스패드 등이 인기가 좋다. 박민이 잡화게티 대표(35)는 “5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 소품 가게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는데 지금은 오프라인 가게만 30여 개에 이른다”고 했다. 음식과의 결합도 활발하다. “이걸 어떻게 먹어?” “30분 동안 감상하자.” 24일 서울 마포구 ‘디저트연구소’를 찾은 10여 명의 손님은 복숭아와 선인장 모양 케이크를 앞에 두고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케이크 한 조각에 9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다. 강민재 매니저(30)는 “최근 선보인 보노보노와 벌 모양 머랭 쿠키는 판매하자마자 동이 났다”고 했다. 디저트 외에도 ‘뽀로로’ ‘인어공주’ 등을 본뜬 귀여운 밥상, 캐릭터를 내세운 음료수의 인증샷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세를 이룬다. 커피 프랜차이즈도 마시멜로 같은 귀여운 디자인의 음료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작은 물건을 취급하는 답례품 시장도 귀여운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 수박 모양 떡설기, 욕조에서 목욕 중인 병아리 모양 방향제, 피카추 디자인의 수세미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외 캐릭터를 내세운 화장품, 출판물, 전시도 잇따르고 있다. ○ ‘남성 편입’ ‘적극 소비’ 귀여운 콘텐츠는 전 세대를 강타하고 있다. 직장인 김현미 씨(46)는 중학생 딸보다 귀여운 인형과 소품을 더 좋아한다. 5년 전부터 하나 둘 사 모은 스노볼, 스티커, 오르골, 봉제인형은 팔아도 될 수준으로 쌓였다. 그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즐기는 기분이 좋다. 만족감이 크다 보니 체면, 쓸모, 경제적 상황, 나이 등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성들도 귀여운 걸 거부하지 않는다. 귀여운 아기 사진을 수집해 공유한다는 직장인 김규민 씨(32)는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을 특히 좋아한다. 최근엔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리락쿠마와 가오루씨’에 빠져 있다”며 “취향일 뿐인데 친한 친구들조차 ‘남자가 이런 걸 좋아하느냐’고 지적하면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귀여움을 소비하는 방식은 적극성을 더해가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올해 가장 귀여운 동물’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기’ 등의 순위 영상을 보고 댓글창으로 웃음 참기 놀이를 벌이기도 한다. 취미 모임 사이트에는 소품 가게 동행자를 구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귀여움이 문화 콘텐츠의 중심으로 돌격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거에 어른은 어른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팽배했다. 최근에는 개성 존중과 소소한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어른다움에 대한 요구가 옅어졌다. 사회·경제적으로 각박한 현실도 1차원적인 위안을 주는 귀여운 콘텐츠의 주가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이설 기자}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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