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2009년 11월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A소프트개발업체 사무실. 사장 김모 씨(39)가 입을 열자 전 직원 조모 씨(39)의 눈이 커졌다. 김 씨는 “내가 선물 투자 매매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걸로 투자해서 큰돈을 벌고 있다”며 “10억 원을 투자하면 매달 2%의 이자를 주고 언제든지 다시 돈이 필요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주겠다”고 꼬드겼다. 조 씨는 프로그램이 진짜인지 확인도 하기 전에 KAIST 석사 출신에 재무설계사 자격까지 갖춘 김 씨의 간판만 믿고 1억 원을 건넸다. 이후 10번에 걸쳐 10억9000만 원을 김 씨에게 줄 때까지 사기인 줄 몰랐다. 4월까지 10명이 김 씨에게 130억 원을 건넸다. 김 씨는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앞사람에게 이자를 주는 ‘돌려막기’ 수법으로 2년 6개월을 버텼다. 4월 말 사기당한 사실을 안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해 이달 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은신처에서 붙잡혔다. 김 씨는 “프로그램 성능이 뛰어나 수익이 많이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계속 손실이 나서 다른 투자자를 찾아야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단순한 매매 프로그램을 특별한 것처럼 속여 투자금을 끌어 모은 전형적인 사기”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이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 관악경찰서는 여론조사 조작 혐의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대외협력위원장 이모 씨와 보좌관 조모 씨 등과 함께 이정희 전 공동대표(사진)를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이 씨와 조 씨 등이 여론조사 부정응답을 유도하고 결과를 조작하는 데 개입한 혐의(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경찰은 여론조사 조작이 일어난 당일 사건 핵심 인물과 이 전 대표의 동선이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5개월 동안 수사한 결과 이 전 대표가 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결론 냈다”고 밝혔다.}

3일 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수서경찰서에 흥분한 중년 남성 조모 씨와 박모 씨가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는 선해 보이는 50대 남성의 멱살이 잡혀 있었다. 사기를 당했다는 두 사람은 몇 달을 추적해 강남구의 한 주택 월세방에 숨어 지내던 이 남성을 붙잡자마자 경찰서로 끌고 온 것이다. 50대 남성은 경찰에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대고 지문을 찍었다. 하지만 지문은 주민번호에 등록된 게 아닌 2000년 사망한 안모 씨(53)의 것이었다. 12년간 유령으로 살며 사기행각을 벌인 안 씨에게 족쇄가 채워지는 순간이었다.1988년 결혼한 안 씨는 부인과 아들을 낳아 키우며 평탄하게 살았다. 부산의 한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잘나가는 공기업에 취직도 했다. 하지만 1993년 퇴직 후 시작한 건설사업이 내리막길을 타면서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빚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1995년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부인은 실종 신고를 했고 민법에 따라 신고 5년이 지난 2000년 12월 안 씨는 서류상 사망 처리됐다.유령이 된 안 씨는 사기꾼으로 다시 태어났다. 안 씨를 잡아온 두 남자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순하게 생겨가지고 진짜 타고난 사기꾼이다”라고 했다. 경찰이 확인한 것은 2009년 이후의 사기행각이다. 안 씨는 사회생활을 하다 만난 대학 동창의 명의를 빌려 경기 남양주시에 껍데기뿐인 건설회사 법인을 차렸다. 이 동창은 안 씨가 ‘죽은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대가도 없이 명의를 빌려줬다. 안 씨는 타고난 언변과 회사 명함 한 장만으로도 돈을 투자받았다. 그는 “경북 포항, 경남 사천 일대에 사업단지가 조성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도심형 생활주택 사업이 인기인데 곧 대박이 난다”는 말로 거액을 투자받은 뒤 잠적했다. 안 씨를 붙잡아 온 피해자들은 “월셋집 주인과 한 번 들른 식당 주인에게도 돈을 빌릴 정도로 언변이 뛰어났다”고 혀를 내둘렀다. 안 씨의 실명을 알게 된 한 피해자가 지난해 수사기관에 신고했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망자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하니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안 씨는 “사망자로 살아도 불편한 점이 없더라”고 했다. 다른 사람 명의의 건강보험증과 휴대전화를 썼고 12년 동안 불심검문도 당하지 않았다. 운전은 절대로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경찰은 안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14일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상 영업하게 됐습니다. 부득이하게 피해 끼친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더 최선을 다하는 ○○○ 상무가 되겠습니다.’최근 서울 강남의 최대 룸살롱 ‘어제오늘내일(YTT)’ 고객들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지난달 5일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영업을 잠정 중단했던 YTT의 영업 재개를 알리는 문자였다.○ 유흥업계 YTT 영업 재개에 반색금요일인 10일 오후 11시경 서울 강남구 논현동 S호텔 내 YTT 앞.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줄지어 업소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하게 꾸민 젊은 여성들의 모습도 자주 보였다.이날 한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는 ‘YTT에서 일할 여성 종업원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구직전화를 받은 B 마담은 “아가씨들은 2차(성매매) 단속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다”며 “오늘이라도 당장 찾아오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경 단속의 철퇴를 맞고 문을 닫았던 강남 최대의 성매매 룸살롱 YTT가 영업을 재개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검찰이 아직 불법 성매매와 관련해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 요청을 해오지 않아 현재는 영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그동안 단속 움직임에 숨을 죽였던 강남 룸살롱들은 YTT 영업 재개를 반기는 분위기다. 역삼동의 한 풀살롱(성매매까지 이뤄지는 업소) 이사는 “YTT가 다시 영업을 시작했으니 분위기도 풀릴 것 같다. 다시 홍보를 시작해야겠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검찰이 YTT 고객을 대거 소환조사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손님들이 ‘내가 (이 업소)단골이란 사실을 절대 함구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고 덧붙였다. 논현동의 다른 풀살롱 이사는 “YTT가 문을 닫으면 도미노 효과로 강남 유흥업소가 줄줄이 타격을 받을까 봐 걱정했다”면서도 “우리 업소에만 여성 종업원, 웨이터, 주차관리요원 등 100여 개 일자리가 달려 있으니 단속을 한다고 해도 쉽게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룸살롱 영업이 주춤하면서 강남에는 ‘립(Lip)카페’ 등 신종 변태성 업소도 등장했다. 간판은 카페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유사 성행위를 제공하는 업소다. 강남경찰서가 지난달 단속한 성매매업소 9군데 중 4곳이 립카페였다. ○ 경찰, “성매매 룸살롱 뿌리 뽑겠다”숨죽였던 유흥가가 다시 고개를 들지만 경찰은 강남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이뤄져 왔던 성매매 룸살롱의 불법 영업을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검경 간의 룸살롱 단속은 검찰이 올 초 ‘룸살롱 황제’ 이경백 씨(40·집행유예 중)가 경찰에 뇌물을 준 의혹을 수사한 것을 계기로 불붙었다. 경찰은 업소와 유착해 불법을 눈감아 주는 경찰관이 나올 수 없도록 발본색원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이경백 사건 이후 경찰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고강도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며 “검찰이 수사권 문제 때문에 악의적으로 경찰을 옭아매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도 있어 검사나 검찰 수사관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는지도 유심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진우 기자 uns@donga.com }

2005년 ‘형제의 난’으로 퇴출된 고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 중원 씨(45·사진)가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 12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인터넷쇼핑몰 운영자 홍모 씨(29)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중원 씨에게 올 3월 5000만 원을 빌려줬는데 약속 날짜가 두 달 지나도록 받지 못했다”며 중원 씨를 6월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중원 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출석을 통보했다. 두산그룹 박승직 창업자의 증손자로 두산산업개발 경영지원본부 상무였던 중원 씨는 두산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2005년 7월 그룹에서 퇴출됐다. 이후 박 씨는 2007년 코스닥 상장사 ‘뉴월코프’ 인수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돈을 투자하면서 자기자본으로 인수하는 것처럼 허위 공시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로 구속 기소돼 2010년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산부인과 의사 시신 유기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문제의 의사가 일했던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호산산부인과가 수면유도제 등을 부실 관리한 책임을 물어 병원 대표와 병원 소속 약사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한편 호산산부인과는 사건 발생 12일째인 11일 병원 홈페이지에 ‘저희 병원에서 월급 받는 봉직의사 한 명이 발생시킨 사건으로 산모 및 환자 여러분들께 심리적 부담과 걱정을 끼쳐 드린 점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의사 김모 씨(45)가 병원에서 처방전 없이 수면유도제, 마취제 등 13종의 약물을 투약해 이모 씨(30·여)가 사망한 것과 관련해 병원 측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 병원은 최근 병원 실명이 공개되고 환자들 사이에서 여론이 나빠지자 사과문에 ‘병원에 내원하시는 모든 분께는 사은의 차원에서 진료비 및 출산비용 부분에 파격적인 혜택을 드리려고 합니다’라는 내용도 포함시켰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7월 31일 0시경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성수대교 남단 사거리에 있는 H산부인과 병실 안. 이 병원 소속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 씨(45)는 링거에 담긴 수면유도제 ‘미다졸람’ 5mg과 생리식염수를 이모 씨(30·여)에게 투약했다. 수면유도제가 이 씨의 왼쪽 팔로 흘러들어가자 이 씨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15분 뒤 이 씨가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이 씨를 바라보던 김 씨는 다른 링거의 주입량 조절장치를 열었다. 뚝뚝. 약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김 씨는 이 씨와 성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이후 이 씨는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두 번째 링거에는 사람의 호흡을 멈추는 치명적인 약물이 섞여 있었다. ○ 호흡 멈추는 마취제 섞어사건 발생 10일째. 산부인과 의사 시신 유기 사건의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 씨의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의사 김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사체유기,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9일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당초 “이 씨에게 수면유도제를 투약했더니 숨졌다”는 김 씨의 진술과 달리 김 씨는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는 마취제를 투여한 것으로 드러났다.지난달 30일 오후 10시 반경 미혼여성인 이 씨는 김 씨가 보낸 “언제 우유주사 맞을까요”란 문자메시지를 받고 오후 11시경 병원에 왔다. 우유주사는 흰색인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지칭하는 은어다. 잠을 푹 자게 해 피로를 풀어준다고 해서 의사나 유흥업소 종업원 사이에서 ‘힘주사’라고도 불린다.이 씨가 먼저 김 씨의 진료실로 들어갔고 밖에서 술을 마시던 김 씨도 곧 들어갔다. 이곳에서 김 씨는 이 씨가 보는 앞에서 직접 약을 섞었다. 링거 한 병에는 생리식염수와 수면유도제 미다졸람을 섞었다. 이 씨가 “평소 맞던 프로포폴과 다르다”고 하자 김 씨는 “이것도 효과가 괜찮다”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하트만덱스(포도당 영양제) 1L가 담긴 나머지 링거에 수술용 마취제의 일종인 나로핀, 베카론, 리도카인 및 비타민제 비콤, 진통제 케로민, 항생제 박타신 등 10종류의 약품을 섞었다. 낯선 약들이 불안했을까. 이 씨는 스마트폰으로 베카론, 리도카인, 박타신의 용도를 검색했다. 수면유도제는 김 씨가 직접 간호사에게 “내가 잠을 못 잔다”며 받아왔고 마취제는 제왕절개 수술이 끝난 3층 수술실에서 다른 의사와 간호사 몰래 가져왔다고 진술했다.▲동영상=‘우유주사’ 피해 여성 마지막 모습 CCTV○ 과실치사인가, 고의살인인가경찰은 “혼합한 마취제로 사람이 사망할 수 있다는 전문의 의견을 토대로 미필적 살인을 포함한 ‘살인의 고의’에 의한 범행으로 보고 엄중 추궁했으나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링거로 투약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으며 살해할 의사는 없었다는 피의자 진술과 ‘살인의 고의’로 볼 만한 증거가 없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김 씨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 당시 “피의자는 피해자를 살인할 의도가 있었나”, “(상대방이)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투약했나”라는 경찰의 질문에도 거짓반응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의료 전문가들은 다르게 보고 있다. 공명훈 고려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교수는 “전신마취제인 베카론이 호흡 정지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경력 10년차 의사가 모를 리 없다”고 말했다. 또 한 전문가는 “호흡 대체기 없이 심장이 멎을 수 있는 국소마취제 나로핀까지 마구 섞은 것을 볼 때 살인할 의사가 있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고 말했다. 김 씨가 투약한 나로핀 병에는 ‘정맥 내 주입 금지’라는 문구가 표시돼 있다.경찰은 “김 씨는 약을 섞은 이유에 대해 ‘이 씨가 잠이 잘 안 온다고 해서 섞었다’는 진술로 일관한다”며 “부검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김 씨가 마취제를 투약한 동기를 우리가 알 수는 없다”고 했다. 2009년 6월 프로포폴 과다 복용으로 자택에서 숨진 마이클 잭슨 사건 당시 주치의 콘래드 머리 박사(58)의 과실치사 여부를 두고 오랜 논란을 빚었는데 프로포폴만 투약한 잭슨의 경우에 비해 이번엔 마취제까지 섞었다는 점에서 살해 의도를 놓고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성도착증 의혹도 사건 당시 김 씨가 이 씨에게 마취제를 투약하고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자 일각에서는 김 씨가 강한 성적 자극을 노리고 마취제를 쓴 것이 아니냐는 추정도 나온다. 1년 전 알게 된 두 사람은 가끔씩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가져왔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S 씨는 “김 씨의 과거 전력 그리고 산모가 입원하는 병실에서 성관계를 맺은 정황을 볼 때 강한 성적 자극에 집착하는 성도착 증세도 보인다”며 “마취상태에선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지기 때문에 ‘네크로필리아 증후군’(시체애호증·시신을 상대로 성행위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에 가까운 변태성향도 추측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수면유도제나 수면마취제를 손쉽게 구하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투약하고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하는 사건이 간혹 발생하지만 이미 내연관계에 있는 여성에게 상습적으로 투약을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의혹도 남았다. 경찰은 “두 사람 사이의 돈 거래 관계는 드러난 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끔 연락을 할 때마다 약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맺은 정황을 감안했을 때 김 씨와 이 씨가 서로 수면유도제와 성을 교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씨는 1년 전 진료를 계기로 이 씨를 알게 된 이래 경찰이 확인한 것만도 6차례 이 씨의 집에 들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의 지인은 “이 씨가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아 의사 김 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며 “평소 잠을 잘 자지 못해 수면제를 자주 복용하긴 했다”고 말했다.한편 경찰은 의약품을 허술하게 관리한 병원의 책임을 물어 대표 방모 씨 등을 입건해 수사할 예정이다. 정확한 사인을 밝혀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는 열흘 뒤 나올 것으로 보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 관악경찰서는 4·11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의 여론조사 과정에서 당원들에게 연령대를 속여 중복 투표하라고 유도한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로 전 통합진보당 대외협력위원장 이모 씨(52)와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의 보좌관 조모 씨(38) 등 3명을 7일 구속했다. 법원은 “민의를 왜곡시킬 수 있는 여론조사 조작행위의 반사회성과 함께 피의자들의 가담 정도를 고려해 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 등은 올 3월 이 전 대표와 김희철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의 총선 후보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연령대를 속여 이 전 대표에게 중복 투표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정보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절대 되돌릴 수 없다.”주한미군은 6일 공식 페이스북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보안을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동아일보가 4일자 1면에 ‘“훈련 갑니다” 군기 빠진 페이스북 생중계’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게 계기가 됐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페이스북 등 SNS에 군사기밀 유출 위험이 있는 군 내부 사진을 올리는 신세대 장병의 실태를 고발한 바 있다.이날 올라온 글에는 “당신이 올린 게시물이 무해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적에게 중대한 군사 기밀 정보를 주는 행위다”며 “방심하지 마라. 우리의 적은 블로그와 채팅방 개인홈페이지를 뒤져 정보를 모은다”고 썼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동아일보 보도를 계기로 미군 병사들에게도 작전보안(OPSEC)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글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대 박사과정 졸업생 4명 중 1명이 실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6일 서울대 2011년 통계연보 ‘졸업생 취업·진학 현황’에 따르면 2010년 8월과 2011년 2월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생 1054명 중 총 289명(27.4%)이 미취업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비율은 최근 10년간 통계 중 최고치로 2004년 미취업 비율 10.6%에서 16.8%포인트나 올랐다. 통계연보는 매년 직전 해 8월 졸업생과 그해 2월 졸업생을 조사해 작성된다. 순수 취업률도 급감했다. 박사과정 내국인 졸업생 가운데 진학 인원과 입대자를 뺀 순수 취업률은 2004년 87.7%에서 2011년 70.3%로 17.4%포인트나 줄었다.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원 졸업예정자들은 ‘학업 문제’보다 ‘진로 문제’와 ‘경제적·현실적 문제’를 더 많이 고민한다고 답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일요일인 5일 오전 7시 35분경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아파트에서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단지를 뒤흔들었다. 이날 새벽 런던 올림픽 축구대표팀 경기를 보고 늦잠을 자던 주민들은 “뭐가 터진 거냐”며 112와 119에 연이어 문의 겸 신고 전화를 걸었다.폭발음의 원인은 다름 아닌 쌀벌레였다. 이 아파트 3층에 사는 박모 씨(25)는 최근 늘어난 쌀벌레 때문에 고민이 컸다. 고온다습한 최적의 번식 조건에서 알을 깐 쌀벌레 수가 빠르게 늘었다. 박 씨는 쌀벌레를 잡으려고 스프레이형 가정용 살충제를 밀폐된 다용도실에 마구 뿌렸다. 살충제의 즉각적인 효과를 확인하려 기다리던 박 씨는 무심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인 화재가 발생했고 다용도실 유리창도 산산조각 났다.경찰 관계자는 “다행히 박 씨가 손에만 화상을 입어 병원 치료만 받고 퇴원했다”고 밝혔다. 최돈묵 가천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는 “밀폐된 공간에 가정용 살충제를 과다하게 뿌리면 라이터나 가스레인지 불에도 폭발할 수 있다”며 “실내에서 살충제를 비롯한 스프레이 제품을 사용할 때는 충분히 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 중국에서 전시되고 있다. 제주도와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주 세계자연유산 국제사진 공모전’ 수상작 8점이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중국 산둥(山東) 성 룽청(榮成) 시의 적산호텔 로비에서 전시된다. 수상작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제주 한라산 거문오름 성산일출봉 등의 모습을 담았다. 중국에서 인기 관광지로 꼽히는 제주의 사진이 걸리자 중국인의 발길도 이어졌다. 쥐밍쯔(具明子) 씨는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중국에서 느낄 수 있어 새롭다”며 “한국과 중국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른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장융창(張永强) 중국 장보고역사연구회 회장은 “제주의 풍경을 본 중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인들도 이곳을 많이 찾길 바란다”고 격려했다.룽청=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200년 전인 통일신라시대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만들어 한국 중국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 항로를 개척한 ‘해상왕’ 장보고(張保皐·?∼846). 동아시아 지역을 넘어 동남아와 인도, 이슬람 지역까지 국제무역을 펼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였던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 초중고교 교사들이 서해 뱃길을 건너 중국 산둥(山東) 성 일대를 누볐다. 동아일보와 재단법인 한국해양재단(이사장 이부식)이 주최한 ‘2012 해상왕 장보고 중국 유적지 답사’는 교사들이 현지답사를 통해 장보고의 개척정신을 배우고 이를 제자에게 전수하도록 마련된 행사다. 2001년 시작돼 지금까지 3000여 명의 교사가 참가했다. 올해는 7월 25일부터 8월 20일까지 4회에 걸쳐 각각 5박 6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올해 첫 행사가 진행된 지난달 29일 교사들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산둥 성 룽청(榮成) 시 스다오(石島) 진에 있는 적산법화원이었다. 장보고가 당나라 거주 신라인을 결집하기 위해 지은 불교사원으로 장보고 영정이 모셔져 있다. 중국 내 장보고 유적이 가장 많이 모인 이곳에 장보고기념관과 기념비까지 세워져 해마다 10만 명의 한국인뿐 아니라 40만 명의 중국인이 찾는 명소가 됐다. 충북 음성군 용천초등학교 김경란 교사는 “답사를 통해 글로벌 시대 선구자 장보고를 직접 만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오늘날 선박 기술 분야 세계 1위의 씨앗을 장보고가 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윤재운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장보고 유적지를 찾은 중국인들은 1200여 년 전부터 한중이 주요 교역국이었음을 눈으로 확인한다”며 “최근 중국 내 혐한류(嫌韓流)를 우려하는데 이곳이 한중 우호 증진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룽청=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성수대교 남단 사거리에 있는 H산부인과 병원의 외래진료실이 있는 2층 맨 안쪽. 내연관계이던 30대 여성의 시신을 버린 혐의로 구속된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 씨(45)의 진료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진료실 문 옆 벽에 여전히 그의 이름이 적혀 있고 책상 위에는 명패가 올려져 있다. 진료실 내부 왼쪽에는 환자들이 누워 진찰받는 침대가 하나 놓여 있다. 이곳은 지난달 30일 김 씨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오후 11시경 병원에 도착한 피해자 이모 씨(30·여)가 김 씨와 함께 1시간가량 시간을 보낸 곳.김 씨와 이 씨는 이후 위층의 빈 병실로 함께 올라갔다. 그리고 김 씨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이 씨에게 수면유도제 ‘미다졸람’이 섞인 수액과 하트만덱스(포도당 영양제) 등이 들어 있는 수액을 섞어 투약했다. 병실은 병원의 3층부터 7층까지 있다.김 씨가 수액을 투약한 것으로 추정되는 VIP병실 내부는 호텔 등 숙박시설과 비슷한 구조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앞에 가림막이 쳐져 있고 그 뒤로 대형침대가 하나 놓여 있다. 병실에는 침대와 신생아 침대, 간병인을 위한 소파와 침대, 화장실이 있다. VIP병실과 마주한 일반 병실에는 가림막이 없어 들어서면 바로 침대가 놓여 있다.H산부인과에 입원한 산모 10여 명을 만나 보니 한 명을 제외하고는 김 씨의 범행이 이곳에서 벌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4일 입원했다는 한 부부는 “뉴스에서 본 사건이 이 병원에서 일어난 줄 몰랐다”며 “입원 수속을 밟을 때도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병원 1층에선 경비원이 폐쇄회로(CC)TV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각 층 복도부터 주차장까지 병원 내외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촬영되고 있었다. 병원을 둘러본 결과 범행 당시 김 씨의 행동을 병원 관계자들이 몰랐다는 점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는다. 병실에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하나뿐인 데다 3층 병실 입구에는 간호사 데스크가 있다. 김 씨가 숨진 이 씨를 휠체어에 태우고 내려왔기 때문에 비상계단 이용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5일 본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건 당시 김 씨는 시신을 앉힌 휠체어를 밀고 병원 밖을 나서 병원 옆 주차장으로 가려다 병원 경비원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자동차 문을 대신 열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경비원이 “옮기는 걸 도와드릴까요”라고 하자 김 씨는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휠체어를 쓰고 있다. 내가 직접 하겠다”고 말했다. 경비원은 휠체어에 있는 여성의 팔이 축 늘어져 있었지만 얼굴에 마스크를 쓴 상태이고 의사가 아내라고 해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이어 김 씨는 시신을 자신의 차에 싣고 자신의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다른 차를 몰고 따라오라고 한 뒤 다시 병원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어 시신을 숨진 이 씨의 아우디 승용차에 옮겨 싣고 한강공원으로 갔다.이처럼 풀리지 않은 의혹이 무수히 남아있는 가운데 경찰은 5일 “김 씨가 우발적으로 시신유기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며 “곧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병원 전체를 수사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다만 처방전 없이 미다졸람을 건네주고 관리 장부에 해당 사실을 기재하지 않은 간호사 2명은 수사할 방침이다. 미다졸람에 대한 병원 측의 허술한 관리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황성혜 인턴기자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 ▲동영상=‘우유주사’ 피해 여성 마지막 모습 CCTV}

“중대전술 & 대대종합전술 훈련 무려 2주짜리 다녀오겠습니당.”현역 육군 이모 중위는 최근 야간훈련 나가는 장갑차가 줄지어 선 사진과 함께 훈련소식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 속 장갑차에는 차량 식별번호와 장비가 노출돼 있었다. 이 중위는 3월 18일엔 ‘5분 대기 출동준비 중!’이란 글과 함께 부대 마크와 계급장이 붙은 군복을 입고 소총과 야시경 등 장비를 착용한 부대원 10여 명과 병영생활관에서 찍은 사진도 올렸다. 동료 군인은 ‘이 사진 보안에 걸릴걸?ㅋㅋㅋ’라고 댓글을 달았다. 이 중위는 ‘전술훈련 평가’라고 적힌 노란색 문서 폴더의 표지를 찍어 올리기도 했다.현재 해당 사진은 지워졌지만 이 중위의 페이스북을 검색하면 어느 부대 어느 중대 소속인지, 그의 부대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까지 쉽게 알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줄줄 새는 군사기밀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군 기밀이 노출될 수 있는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군인이 많다. SNS 특성상 사진을 올린 위치와 시간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해당 부대의 위치나 일과 등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필중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는 “함께 찍힌 사람의 크기로 무기나 시설의 제원을 짐작할 수 있어 적에게 고스란히 우리 정보를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병사들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SNS에 사진을 올리고 있다. 사병은 휴대전화 소지가 금지돼 있다. 지난달 25일 경기 동두천 지역 모 부대 소속 유모 병장은 위장크림을 바른 자신의 얼굴과 방탄모 사진을 올리고 “상황이 걸려도 난 뭐 ㅋㅋㅋㅋ 잉여”라고 썼다. 유 병장의 게시물들에는 ‘모바일에서’란 태그가 달려 있어 훈련 중 스마트폰으로 찍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도권 부대의 현역 A 중위는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지만 스마트폰 소지를 100%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도의 한 부대에서는 5분 대기조 사병이 무기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행정보급관이 뒤늦게 발견해 지우기도 했다.▼ 스마트폰 속에 기밀사진 제대뒤 유출땐 속수무책 ▼○ 스마트폰 속 미공개 사진이 더 위험국방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1월 31일 국방부는 ‘군 장병 SNS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프로필에 군 관련 정보 △군 위치가 노출되는 글 △군 기강 훼손 글 등을 올리지 말 것을 교육했다. 휴대전화 이용을 막을 수 없는 휴가 중에도 이런 지침을 지키라는 의미다. 육군 관계자는 “사진을 올린 간부와 병사는 군인복무규율에 따라 처벌할지 결정할 것”이라며 “부대 내 개인 얼굴 사진 촬영은 큰 문제가 없지만 작전계획이나 주요 시설이 노출된 사진을 올린 장병은 엄벌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일부에서는 현역 병사의 스마트폰 이용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군 특성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우세한 편. 군사전문지 ‘제인(JANE)연감’에는 각국 군인이 유출한 전 세계 무기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스마트폰을 허용하면 50만 장병 중 99%는 잘 사용하겠지만 1%의 실수로 군사기밀이 유출된다면 안보에는 치명적이다”라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서울 강남의 유명 산부인과 병실에서 숨진 뒤 한강공원에 버려진 30세 미혼여성은 자신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한다. 시신을 버리고 달아났던 40대 의사는 경찰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할 때마다 말을 바꾸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일째가 됐지만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의혹 1: 강제 성관계 있었을까?지난달 31일 이모 씨(30·여)의 시신을 버린 혐의로 3일 구속 수감된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 씨(45)는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수면유도제 투약 후에도 15분가량은 이 씨의 의식이 있었고 신체 접촉도 했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일 성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한 것이다. “수면유도제를 투약하고 2시간 이후 돌아와 보니 이 씨가 숨져 있었다”던 처음 진술은 거짓으로 드러났다.경찰이 확보한 병원 폐쇄회로(CC)TV 영상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11시경 병원에 도착해 김 씨의 진료실에서 김 씨와 시간을 보냈다. 이어 31일 0시 1분 이 씨가 진료실에서 나와 병실로 걸어 들어갔고 김 씨도 바로 뒤따라 들어갔다. 김 씨가 병실에서 나온 것은 오전 2시 42분이었다. 김 씨는 “이 씨에게 수면제를 투약한 뒤 간병인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보니 이 씨가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이 역시 당초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이 씨의 죽음을 확인한 뒤 병실에서 나온 김 씨는 휠체어를 갖고 다시 들어가 시신을 병실 밖으로 옮겼다. 이 씨가 이날 밤 병원에 온 것은 김 씨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영양제 맞을래?’라는 문자를 보냈기 때문이다. 김 씨가 이 씨 사망 전 신체관계가 있었다고 시인함에 따라 수면유도제를 성관계를 위한 최음제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의혹 2: 왜 아내까지 끌어들였을까?김 씨의 아내 A 씨(40)는 사체유기방조 혐의로 3일 경찰에 입건됐다. 김 씨는 오전 2시 44분 숨진 이 씨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지하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승용차에 옮겼다. 이어 시신을 실은 채 자신의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환자가 죽었다고 알린 뒤 “차를 몰고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다시 병원으로 차를 몰고 온 김 씨는 이 씨의 시신과 차량을 유기할 생각에 이 씨의 아우디 차량 조수석으로 시신을 옮겼다. 이어 아우디 차량을 몰고 오전 4시 40분경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따로 차를 몰고 병원에서 한강공원으로 남편을 따라온 아내 A 씨는 남편과 멀리 떨어져 편의점에서 초콜릿우유를 마시며 기다렸다. 시신과 아우디 승용차를 버리고 온 김 씨는 아내의 승용차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산모를 진료했다. A 씨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집에 온 남편이 자기 실수로 환자가 죽었다고만 말했다”며 “둘 사이가 내연관계인지는 몰랐다”고 진술했다. 김 씨가 자신과 불륜 관계였던 여성이 죽었는데 먼저 아내에게 찾아가 아내를 데리고 왔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의혹 3: 진짜 사인은?김 씨는 자수 직후엔 경찰에 이 씨와의 관계에 대해 “1년 전 수술을 계기로 알게 돼 다른 사람들과 저녁을 같이 먹을 정도로 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이 씨와 석 달에 한 번씩 만나 영양제 주사를 놓아주기도 했고 성관계를 가졌다”고 시인했다. 김 씨는 수면유도제 앰풀 1개(5mg)를 투약했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그 정도로는 죽음에 이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외관상 상해나 성폭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 씨 죽음의 진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감식에 달렸다. 김 씨가 왜 굳이 당직 의사와 간호사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가 병실에서 수면유도제를 놓았는지 하는 부분도 의문으로 남았다. 사건 당시 병실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지만 병원 내에는 당직 의사와 간호사, 입원환자들이 있었다. 경찰 안팎에서는 “김 씨가 과거에도 병원에서 스릴을 위해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김 씨는 “병원 밖에서만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해왔다.피의자 김 씨는 명문 S대 의대를 졸업하고 S대 병원에서 인턴을 마쳤다. S대 의대 외래교수도 지냈다. 김 씨로부터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K 씨는 “시골 사람처럼 순박하고 다정다감한 의사여서 산모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 씨가 일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성수대교 남단사거리에 있는 H산부인과는 강남 일대 M산부인과, C산부인과와 함께 ‘빅3 산부인과’로 꼽힌다. 강남의 부유층과 연예인이 주로 찾는 고급 병원이다. 실제로 2일 H산부인과를 찾아가 보니 주차장에는 외제차가 즐비했다.피해자 이 씨의 주변 사람들은 “이 씨는 미모가 뛰어나고, 항상 잘 웃고 활발해 주변 사람들에게 늘 인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미국에 입양돼 갱단 중간 보스를 지내다 강제 추방된 30대 남자가 대낮에 접이식 낫과 칼, 쇠뭉치 등을 들고 들어가 은행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강도 상해 등 혐의로 A 씨(39)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A 씨는 이날 오후 3시 57분 강남구 개포동 우리은행 개포동역 지점에 하얀색 가발과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 쇠뭉치로 청원경찰을 때리고 가스권총을 빼앗은 뒤 창구에 있던 은행 직원들을 위협해 현금과 수표 등 약 2000만 원 상당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직후 A 씨는 인근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택시를 빼앗아 타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택시 운전사가 완강히 저항하자 뒤에 서 있던 다른 택시의 운전사를 가스권총으로 위협해 차에서 내리게 한 뒤 차를 몰고 도주하려 했다. 각각 자동차 열쇠와 자동차를 뺏긴 택시 운전사 2명이 달려들어 A 씨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A 씨를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한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양부모가 사망하는 바람에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한국인이다. A 씨는 애리조나 주를 무대로 멕시코계 갱단의 중간 보스로 활동했다. 미국 경찰이 강제 추방해 2007년 한국으로 돌아와 영어학원 강사로 일했지만 마약 전과가 알려지면서 취업이 힘들어지자 일주일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 A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은행 직원들은 A 씨가 범행 당시 한국말로 “돈을 여기에 담아라”라고 외쳤다고 진술했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병원에서 숨진 여환자의 시신을 버린 혐의를 받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 씨(45)는 지난달 30일 사망한 이모 씨(30·여)에게 수면유도제뿐 아니라 영양제 등 다른 약물을 함께 투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2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김 씨는 “7월 30일 이 씨에게 수면유도제 미다졸람이 섞인 수액과 하트만덱스(포도당 영양제) 등이 들어 있는 수액을 섞어 투약했다”며 “1년 전 이 씨를 수술하며 환자와 의사로 처음 만난 이후 3개월에 한 번씩 따로 만났다”고 진술했다. 김 씨는 3개월에 한 번씩 만나 영양주사를 직접 투여해주고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그는 이 씨와 내연관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날 김 씨가 병원 허락 없이 몰래 약물을 갖다 쓴 사실도 확인됐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H산부인과 관계자는 “김 씨가 이 씨에게 약물을 투여한 상황이 정상적인 진료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경찰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떳떳한 목적으로 약물을 사용한 게 아니라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날 경찰은 시신을 유기한 혐의(사체유기 등)로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날 이 씨의 가족 입회하에 진행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외관상 특별한 외상이나 성폭행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투약된 약이 실제로 미다졸람인지, 투약량은 어느 정도인지, 사건 당일 성관계가 있었는지 등의 확인은 유전자(DNA) 정밀 분석이 필요해 20여 일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안팎에서는 김 씨가 이 씨와의 성관계를 인정한 사실에 비춰 미다졸람을 영양제와 함께 투약해 성관계 시 흥분을 돋우는 환각제나 최음제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전에도 의사들이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이나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 등 정맥마취제를 짧은 시간에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마약처럼 사용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초 성형외과 전문의 A 씨는 환자에게 투약하고 남은 정맥마취제를 병원 건물 화장실에서 직접 투약하고 잠이 들었다가 건물 청소부의 신고로 경찰에 입건됐다. A 씨는 경찰의 추궁에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고 잠도 오지 않아 잠도 자고 기분도 전환하려고 투약했다”고 진술했다. H산부인과 인근의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약품은 마취과에서 관리하지만 의사나 간호사가 정맥마취제를 빼내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다른 병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귀띔했다. 2010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국내 102개 병원 마취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정맥마취제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내 72개 병원 중 6개 병원 의료종사자 8명이 정맥마취제에 중독됐으며 이 중 2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명훈 고려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교수는 “정맥마취제가 최음제나 환각제, 피로해소제 작용을 한다고 알려진 것은 불법 유통업자의 상술”이라며 “잠을 잔 후 일시적인 진정작용으로 오히려 정맥마취가 주는 안정감에 중독되면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40대 남자 산부인과 의사가 30대 여성의 시신을 버리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자수했다. 숨진 여성은 1년 전 문제의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은 것을 계기로 내연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서울 서초경찰서는 1일 강남구 신사동의 한 산부인과 소속 의사 김모 씨(45)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김 씨는 경찰에서 “7월 30일 오후 10시 반경 산부인과에서 A 씨(30·여)에게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 5mg을 주사로 투여했다”며 “주사를 맞고 잠든 A 씨를 두 시간쯤 뒤 깨우러 갔을 때 이미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진료 중에 환자가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 병원에 누를 끼치고 나 자신과 아내, 가족의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의사 7, 8명이 근무하는 중대형 산부인과의 ‘월급의사’다. 산모들이 많이 찾는 유명 인터넷카페에는 김 씨에 대해 “푸근하고 친절하다” “실력 있고 믿음이 간다”는 내용의 글이 많이 올라 있다.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사건 당시 개인적으로 A 씨와 약속을 하고 병원에서 따로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씨 진술과 달리 정식 진료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 씨는 외부 술자리에 참석했다 술에 취한 채 병원에 와 A 씨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유부남인 김 씨는 1년 전 진료를 계기로 A 씨를 알게 돼 종종 병원에서 만남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김 씨는 A 씨가 사망한 지 23시간 만인 7월 31일 오후 9시 반경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 자수했다. 김 씨는 “시신을 유기한 것에 죄책감을 느껴 자수를 결심했다”고 밝혔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우선 단순 의료사고로 처리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적발되면 훨씬 중한 처벌을 받는 시신 유기를 선택한 김 씨의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업무상 과실치사는 5년 이하 징역에 처하지만 사체유기는 7년 이하 징역을 선고받는다.김 씨는 시신을 옮기는 과정에서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숨진 A 씨에게 마스크를 씌운 채 휠체어에 태워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승용차로 옮긴 뒤 조수석에 앉혔다. 출발하려던 김 씨는 병원 측의 ‘진료 콜’을 받고 다시 병원에 들어갔다. 3시간가량 진료를 하고 나온 김 씨는 31일 오전 4시 반경 자신의 차에 있던 시신을 A 씨의 아우디 차량 조수석으로 옮긴 뒤 그 차를 몰고 한강잠원지구 주차장으로 갔다. 김 씨는 차를 주차장에 둔 채 떠났다. 이날 오후 한 시민이 숨져 있는 A 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A 씨에게 종종 약물을 투입한 뒤 성관계를 맺어 온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날 A 씨가 갑자기 숨지자 당황해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김 씨가 A 씨에게 투여한 수면유도제 ‘미다졸람’은 향정신성의약품인 만큼 사용할 땐 병원 측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김 씨는 그런 절차 없이 임의로 약을 빼다 쓴 것으로 조사됐다.A 씨 시신에 외상 흔적은 없었지만 수면유도제 투입만으로 사망했다는 것도 의문스럽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평소 우울증과 불면증이 있었고 사건 당일 피곤하다며 수면진정제를 놓아 달라고 했다”며 “미다졸람 5mg 외에 다른 약물을 투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하지만 미다졸람 5mg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교실 김희수 교수는 “미다졸람은 수면내시경 등에 흔하게 사용하는 약품으로 5mg만으로 사망에 이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며 “어린이에게도 통상 그 정도 양을 투입한다. 100차례 이상 한꺼번에 맞지 않는 이상 사망에 이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미다졸람을 과다 복용했을 경우 해독제를 투여하면 위급상황을 넘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A 씨에게 수면유도제를 투여할 때와 숨이 멎어 심폐소생술을 시도할 때 모두 간호사 없이 혼자 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병원에는 다른 당직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었지만 김 씨가 심폐소생술을 할 정도의 위급상황에서 다른 의료진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죄책감을 참지 못해 자수를 선택했다는 김 씨의 진술도 의심스럽다. 김 씨가 변호사와 함께 자수를 하러 온 시간은 A 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 3시간 만이었다. 한 범죄 심리학과 교수는 “김 씨가 변호사와 상의한 뒤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자수를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단순 과실치사가 아니라 A 씨가 살해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

내 이름은 ‘박귀남(바퀴남)’. 수컷 바퀴벌레야. 할아버지 고향은 머나먼 아프리카지만 현재 보금자리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원룸주택. 처음 발견한 사람의 국적을 따서 독일바퀴라 불려. 나는 밤에 노는 걸 좋아해. 낮에는 주로 찬장 틈새나 침대 구석진 곳에서 쉬어. 창밖이 어둑어둑해지면 부엌이나 방으로 나와 고픈 배를 채우기 시작해. 남은 음식과 과일껍질부터 사람 머리카락이나 피부 각질까지 마구 먹어. 배가 부른데 더 맛있는 음식이 나타났다면? 토해 내고 다시 먹으면 그만이지. 최근 들어 아내와의 금실이 무척 좋아졌어. 우린 한 번의 교미로 평생 8번 정도 산란하는데 날씨가 고온다습해지면서 생식주기가 더 빨라졌거든. 덕분에 아기도 많이 생겼어. 아내는 1년에 새끼를 10만 마리나 낳아. 나를 특히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동거인 정모 씨(26·여)가 켜놓은 TV 뉴스에선 폭염이라 해서 난리지만 난 요즘처럼 습하고 찌는 무더위가 정말 좋아. 친구 바퀴벌레들 얘길 들어봐도 최근 수십 년간 중에 요즘처럼 살기 좋은 날씨는 없었대. 생큐! 북태평양고기압.○ 공포의 ‘미국바퀴벌레’ ‘스르륵스르륵.’ 유례없는 무더위 속에 바퀴벌레가 급속히 늘고 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무더운 날이 많고 국지성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1일 해충방제전문기업 세스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바퀴벌레 개체수가 60% 정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스코는 표본지역을 정해 바퀴벌레 개체수를 모니터링한다. 온도 상승을 고려할 때 올 8월 바퀴벌레 수는 7월보다 26%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바퀴벌레의 생장주기는 높은 기온과 순간적으로 습도가 빠르게 올라가는 날씨에 더 빨라진다. 무더운 날씨에 실내에서 에어컨을 틀면 선선한 곳을 좋아하는 바퀴벌레가 더 많이 온다. 최근에는 한국에 사는 바퀴벌레의 85% 정도를 차지하는 독일바퀴보다 크기가 훨씬 크고 날기까지 하는 일명 ‘미국바퀴’가 급속히 늘고 있다. 미국바퀴는 몸길이가 3.5∼4cm로 1.3∼1.6cm인 일반 바퀴벌레보다 훨씬 크다. 미국바퀴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난다. 사람이 잡으려고 해도 겁내지 않고 오히려 깨물기도 한다. 미국바퀴는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데 도시화 이후 지하층이 있는 건물과 지하철이 늘면서 지하 배수로 등을 따라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다. 세스코 위생해충기술연구소 손영원 연구원은 “미국바퀴는 6·25전쟁 때 한국에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주로 지하배수로를 따라 이동하는 미국바퀴는 과거엔 대형 건물 지하 등에 주로 있었으나 요즘은 일반 가정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연가시’ 열풍 타고 ‘꼽등이’ 공포까지 생김새가 기괴한 꼽등이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꼽등이는 생김새는 귀뚜라미와 비슷한데 덩치가 보통 3∼5cm로 크다. 습하고 물기 많은 곳을 좋아하는 꼽등이는 지난해 폭우 때 급격히 늘어났다. 게다가 꼽등이가 죽으면 그 안에 기생하던 기생충 연가시가 사람 몸속으로 파고들어 사람의 뇌를 조종해 죽게 만든다는 괴담까지 초중고교생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최근엔 이 괴담을 소재로 만든 영화 ‘연가시’도 개봉했다. 하지만 최근 갑자기 개체수가 불어나면서 주택가로 온 꼽등이는 주로 자연에서 살고 사람들에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처럼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 바퀴벌레를 비롯한 해충들이 늘어나면서 ‘바퀴벌레 공포증’이나 ‘바퀴벌레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주부 김모 씨(27·여)는 최근 마련한 신혼집에서 날갯짓하는 미국바퀴를 보고 충격을 받아 바퀴벌레 퇴치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고 다른 사람과 고민을 나누고 있다. 심할 경우 정신과를 찾는 사람도 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병원 원장은 “바퀴벌레 공포증 같은 특정 공포증은 고대 시절 맹수나 해충에 대한 공포가 인간 기억에 남아 있거나 바퀴벌레와 얽힌 무서운 경험이 오래 남아 있어 생긴다”며 “바퀴벌레 모형이나 죽은 바퀴벌레를 멀리서 보면서 바퀴벌레가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진우 기자 uns@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