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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이 최근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에 대한 기술에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표현을 뺀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외무성은 최근 홈페이지에 올린 ‘양국 관계’라는 문서에서 한국에 대해 별다른 수식어 없이 “한일 사이에는 곤란한 문제가 있지만 이를 적절히 관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행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진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만 기술했다. 외무성 북동아시아과가 작성하는 이 문서는 2개월마다 수정되는데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를 대내외에 알리는 공식적 의미가 있다. 일본 외무성이 한국 수식 표현(‘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을 삭제한 것은 올 1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시정연설과 궤를 같이한다. 아베 총리는 2016년과 2017년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했지만 올해는 별다른 수식어 없이 “문재인 대통령과 지금까지 양국 간 국제 약속, 상호 신뢰 축적 위에 미래지향적으로 협력 관계를 심화하겠다”고만 말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과정을 검증하고 그것이 ‘잘못된 합의’라고 규정한 것에 대한 불쾌감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인 2013년과 2014년에는 한국을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했다. 당시 외무성 홈페이지 기술에도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이란 표현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한국 검찰에 의해 기소되자 아베 총리는 2015년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만 표현했다. 외무성도 이를 그대로 따라 썼다. 2015년 말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지고 가토 전 지국장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2016년부터 외무성 홈페이지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이란 수식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표현까지 전부 삭제한 것이다. 일본은 최근 대북 문제 등과 관련해 한미일 3국 공조를 강조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한일관계를 격하시키는 조치를 취한 셈이어서 적잖은 외교적 논란이 예상된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김영하(50·사진)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제4회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2016년 12월 1일부터 지난해 말까지 13개월 동안 일본어로 번역 출판된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주는 것이다. 수상작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 살인범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독특한 구조로 일본에선 지난해 10월 번역 출간됐다. 독자들로부터 ‘갈고닦은 문장 하나하나가 빛난다’ ‘올해 읽은 소설 중 최고’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화돼 한국과 일본에서 개봉됐다. 번역자는 한국에서 시인으로도 등단한 요시카와 나기(吉川지) 씨. 현재 박경리의 ‘토지’ 완역에도 참여 중인 요시카와 씨는 “일본 독자를 감동시키는 역량을 가진 한국 작가들이 많아 최근 번역 출판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번 수상은 그런 큰 흐름의 결과”라고 소감을 밝혔다. 주최 측은 독자가 추천한 13개 작품에 심사위원이 추천한 5개 작품을 더해 18편을 후보로 올렸는데 여기에 한국 작품이 3편 포함됐다. 이후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 5편이 선정됐는데 ‘살인자의 기억법’은 폴란드 작가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인형’과 함께 15일 대상 수상작으로 발표됐다. 시상식은 도쿄(東京) 시내에서 28일 열린다. 최근 일본에선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수상작을 펴낸 출판사 쿠온의 김승복 대표는 “한국 소설이 일본어로 많이 번역되면서 자연스럽게 의미 있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 작가들은 민감한 사회 문제를 비켜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 작가들과 대비된다”고 말했다. 독자들이 크라우드펀딩으로 만든 이 상은 2015년 1회 때 박민규의 ‘카스테라’가 대상을 받아 한국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11일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5월 초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과는 별도로 문 대통령의 방일을 희망한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복수의 일본 관계자를 인용해 13일 보도했다. 신문은 “문 대통령이 다음 달 9일 도쿄(東京)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 때 일본에 오지만 한국에서의 업무 때문에 당일치기 방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같이 전했다.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하길 원하는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의 추가 방일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일본 측은 이르면 5월 중이라도 다시 와 달라는 입장이라고 한다. 신문은 “문 대통령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또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이견과 대북 온도차 등의 이슈가 있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지지도를 높이려는 생각이 아베 총리에게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노 외무상은 13일 ‘문 대통령에게 추가 방일을 요청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든 기회에 고위급 상호 방문을 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만 밝혔다. 아베 총리는 지난 달 문 대통령과 통화할 때 “남북 정상회담 전에 일본에 와 달라”고 요청하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일을 요청하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가케(加計)학원 스캔들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위증 논란으로 확산되며 새 국면을 맞았다. 이 스캔들은 아베 총리가 그의 40년 지기가 이사장인 학교법인에 ‘52년 만의 수의학과 신설’이라는 특혜를 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에 의해 10일 공개된 에히메(愛媛)현 문서에는 2015년 4월 야나세 다다오(柳瀨唯夫) 당시 총리비서관이 현 관계자를 만나 “이 안건은 총리 안건으로 돼 있다. 최근 아베 총리가 학원 이사장과 회식할 때 (동석한)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이 가케학원 관련 얘기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는 아베 총리가 2015년 4월 이전에 수의학과 신설이 추진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지난해 7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해당 지역이 국가전략특구로 공식 결정된 2017년 1월 20일에야 가케학원의 신청을 알았다”고 밝혔고 이후에도 여러 번 같은 설명을 되풀이했다. 문서 내용이 정확하다면 아베 총리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다. 설상가상으로 나카무라 도키히로(中村時廣) 에히메현 지사는 문서 내용이 보도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직원이 나에게) 구두로 보고하기 위해 만든 메모”라며 문서의 존재를 인정했다. 또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까지 말했다. 아베 총리는 1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가케학원 이사장, 시모무라 당시 문부상과 셋이서 식사를 한 일이 없다”며 “나한테 (가케학원을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사람도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다만 “에히메현의 문서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야나세 전 비서관도 “기억하는 한 에히메현 관계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 내에서 신속하게 내용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재무성의 문서 조작이 드러난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 국회에 ‘없다’고 했던 문서가 매일같이 나오는 자위대 문서 은폐 사건에 이어 가케학원 스캔들까지 재점화되면서 아베 총리는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도발적인 사진으로 ‘외설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일본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荒木경惟·78·사진)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의 유명 작가가 미투 논란에 휩싸인 것은 처음이다. 2001∼2016년 아라키의 모델로 활동하며 ‘뮤즈’로 불렸던 카오리(KaoRi)는 이달 초 인터넷 칼럼을 통해 “이것은 나의 미투”라며 자신이 당한 피해를 폭로했다. 칼럼에 따르면 아라키는 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누드 촬영을 요구했으며 누드 촬영 현장에 멋대로 외부인을 불러들이곤 했다. 그는 “상의도 없이 내 이름을 제목으로 한 사진집과 DVD가 출판돼 세계에 전시 판매됐다”고 털어놨다. ‘뮤즈’라는 이름으로 전시회 오프닝이나 취재 등에도 동행해야 했지만 금전적 대가는 없었다. ‘카오리 섹스 다이어리’ 같은 이름도 마음대로 붙였고 “누드가 아니어도 된다”는 말을 믿고 갔다가 가슴을 내보여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마음대로 해도 되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다. 카오리는 지속적인 스토킹과 가택 침입 등에 시달렸지만 아라키는 “나는 관계없다”는 말뿐이었다. 2016년 2월 “더 이상은 한계”라고 말하자 “아라키에 대해 명예훼손이나 영업방해 행위를 일절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강요했다. 카오리는 이후 자살까지 고민했다. 최근 미투 운동에 힘입어 “지금까지 과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진 공개 범위를 같이 정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카오리의 글이 퍼지자 아라키의 또 다른 모델이었던 미즈하라 기코(水原希子)도 자신이 당했던 촬영 강요를 폭로하며 “아라키, 당신에게 여자는 도대체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라키 측은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성향이 있는 30대 무직자가 할머니, 아버지, 큰어머니 등 친족 4명을 포함해 5명을 살해한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져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일본 남단 가고시마(鹿兒島)현 히오키(日置)시의 한적한 시골 마을 주택에서 3구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6일 오후. 경찰은 “동생 안부를 확인하러 간 부인과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이 집을 방문했다가 시신들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그날 저녁 인근에 사는 이와쿠라 도모히로(巖倉知廣·38) 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집에 있던 시신은 용의자의 큰어머니(69)와 그 언니(72), 그리고 주민(47)이었다. 집주인인 할머니(89)와 아버지(68)의 시신은 사건 발생 현장에서 400m 떨어진 산속에서 매장된 채로 발견됐다. 용의자는 경찰에서 “할머니와 아버지가 평소 시끄럽게 해서 며칠 전 목을 졸라 죽였다”고 진술했다. 또한 살해 후 차로 시신을 옮겨 산속 공터에 묻었다고 털어놨다. 안부를 물으러 찾아온 큰어머니 등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선 피해 사실이 들통날까 봐 목 졸라 살해했다고 밝혔다. 용의자는 부품 공장 등에서 일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어느 한곳에 터를 잡지 못했다. 1년가량 육상자위대 주둔지에서 일하기도 했다. 조용했지만 욱하는 성격도 있었다고 한다.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지내다 몇 년 전 할머니 소유 주택으로 이사 왔다. 친척들은 “히키코모리 경향을 보이며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 일도 하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할머니가 “손자가 집에 틀어박혀만 있는다”며 자주 손자 걱정을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슈퍼에서 일해 받은 돈으로 모친을 간호하고 아들 용돈도 줘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며칠 동안 계속 결근하자 6일 정오 슈퍼에서 큰아버지(70)에게 연락했고, 큰아버지는 부인에게 집으로 찾아가 안부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부인의 언니가 동행하면서 피해가 커졌다. 두 시간 만에 부인도 연락이 끊기자 큰아버지는 이웃 주민에게 안부 확인을 부탁했는데 불과 30분 후 이웃 주민조차 연락이 끊겼다. 불길한 예감이 든 큰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가족에 대한 불만을 범행 동기로 보고 9일 오후 용의자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또 구체적인 살해 동기와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가케(加計)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논란과 관련해 총리 비서관이 지방자지단체와의 협의에서 ‘총리 안건’이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총리 부인이 명예교장으로 있는 학교법인에 국유지를 헐값 매각했다는 모리토모(森友) 스캔들에 이어 가케 스캔들도 재점화되면서 아베 총리가 코너에 몰리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소관 지자체인 에히메(愛媛) 현 문서를 인용해 2015년 4월 야나세 다다오(柳瀨唯夫) 당시 총리비서관이 현 관계자를 만나 “이 안건은 총리 안건이 돼 있다”며 “지자체가 죽을 정도로 실현하고 싶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가케 학원은 아베 총리의 40년 지기가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 52년 만에 수의학과 신설 허가를 받아 특혜 논란을 빚었다. 이와 관련 지난해 6월에는 내각부가 ‘총리의 의향’을 들먹이며 문부과학성을 압박하는 문서가 재조사 끝에 발견됐다. 이번 문서까지 사실로 드러나면 ‘관여한 적 없다’던 아베 총리 해명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야나세 비서관은 지난해 국회에서 “현 관계자를 만난 기억이 없다”고 말해 위증 논란도 예상된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관련 부처에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국회에선 재무성이 모리토모 학원에 “(헐값 매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쓰레기 철거비가 많이 나와 트럭 몇 천대가 움직였다고 말하는 게 어떠냐”며 허위진술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한편 방위성에선 이라크 파병 부대의 일일보고 등 국회에 ‘없다’고 했던 문서가 매일 발견되고 있다. 사면초가에 몰린 아베 총리는 전날 국회에서 “깊이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지지율은 NHK 조사 결과 한 달 만에 6%포인트 떨어진 38%로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6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약속 장소에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머리를 묶은 여성이 있었다. 자료에서 본 모습과 전혀 달랐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29) 씨는 “얼굴을 알아볼까 봐 일본에 오면 이렇게 다닌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폐쇄적인 일본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실명 기자회견을 연 첫 사례다. 이토 씨는 2015년 4월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 당시 TBS 워싱턴지국장과 도쿄에서 취업 상담을 위해 만나 식사 후 의식을 잃고 피해를 당했다. 이토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내 의지로 호텔에 가지 않았고 합의도 없었다. 명백한 성폭행”이라고 밝혔다. 사건 직후 상담센터에 전화했지만 “직접 찾아와야 상담이 가능하다”는 말에 포기했다. 일본 경찰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자주 있는 일이라 수사가 어렵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데이트 강간약 사용이 의심됐지만 지원을 받지 못해 초기 증거가 사라졌다”고 했다. 저널리스트 지망생이던 이토 씨는 ‘스스로 진실과 마주하지 못하면서 언론인이 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경찰에 피해신고를 하기로 결심했다. 일본에서 성폭행 피해자의 신고 비율은 4%에 불과하다. 경찰이 조사에 나서면서 사건 당일 의식을 잃은 이토 씨를 야마구치 지국장이 안고 가는 호텔 폐쇄회로(CC)TV 장면이 발견됐다.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 확보에 나섰다. 그런데 막판에 경찰 고위 간부에 의해 직권 취소됐다. 이토 씨는 “현장에 수사관이 대기 중인 상황에서 법원이 발급한 체포영장이 취소된 건 전대미문”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가까운 야마구치 지국장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침묵을 지켰다. 수사 과정에서 이토 씨는 남성 수사관 앞에서 인형을 상대로 당시 상황을 재현해야 했다. 수사관들이 돌아가면서 “처녀냐”고 묻는 등 상식 이하의 대우도 당했다. 불기소 결정이 나자 이토 씨는 검찰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이토 씨는 “일본 언론도 냉담했다.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지난해 5월 실명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과 그 이후 일본의 반응을 다룬 책 ‘블랙박스’를 내고 주일 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실명 증언의 대가는 컸다. 인터넷에는 ‘일본의 수치’라는 등의 비판과 협박이 쏟아졌다. 혐한(嫌韓) 세력을 중심으로 한국계라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나왔다. 그는 “가족과 친구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꽃뱀이라는 소문 때문에 언론사에서 일하기도 어려워 결국 영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고 했다. TBS는 나왔지만 여전히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야마구치 측과는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토 씨의 기자회견 이후 일본에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들이 나왔지만 한국이나 미국처럼 큰 흐름을 형성하진 못했다. 지난달 유엔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토 씨는 “사회적 압력이 강한 일본은 내부로부터 바뀌기 어렵기 때문에 유엔이나 해외 미디어를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투 운동이 활발한 한국에서 배울 게 많다”고 했다. 최근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주변에서 폭력을 방관하지 말자는 ‘위투(WeToo)’ 캠페인도 시작했다. 이토 씨는 자신과 유사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일단 자신을 믿으세요. 지금은 미약하고 반향이 없더라도, 당신의 말이 반드시 나중에 중요한 목소리로 세상에 받아들여질 때가 올 겁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1일과 3일 평양에서 열린 한국 예술단의 ‘봄이 온다’ 공연 이후 가수 백지영이 부른 노래 ‘잊지 말아요’가 북한에서 최고 인기를 얻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북한 소식통이 8일 전했다. 소식통은 “남조선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동영상으로 담은 USB메모리(휴대용 저장장치)가 벌써 북-중 국경 시장에서 몰래 유통되고 있다”며 “동평양대극장 공연(1일)은 1부, 류경정주영체육관 공연(3일)은 2부로 소개돼 팔린다”고 말했다. 북한은 남측 예술단 공연 실황을 아직 TV로 방영하지 않았다. 소식통은 “공연을 몰래 본 사람들은 백지영이 부른 ‘잊지 말아요’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 노래는 2009년 방영된 TV 드라마 ‘아이리스’의 주제곡이다. 남북 간 ‘제2차 6·25전쟁’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첩보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지금도 북한에서 인기리에 몰래 유통되고 있다. 드라마 주제곡으로 듣던 한국 노래를 실제 가수가 평양에 와서 직접 불러 주민에게 큰 감동과 충격을 줬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사람들이 아이리스는 꿈과 같은 상상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주제곡을 부른 가수가 직접 평양에 온 현실에 놀랐다”며 “백지영이 (북한 최고 악단인) 모란봉악단보다 노래를 훨씬 잘 부른다는 평가도 받는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노래의 후렴구인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우리 이제 헤어지네요/같은 하늘 다른 곳에 있어도/부디 나를 잊지 말아요’는 남북의 안타까운 분단 상황을 연상시킨다. 당시 공연 현장에서도 이 가사에 눈물짓는 북한 관객이 유독 많았다. 현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김정은도 백지영의 노래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예술단을 이끌고 평양에 다녀온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백지영이 ‘총 맞은 것처럼’을 부르고 나자 김정은은 ‘어느 정도 레벨의 가수냐, 저 노래는 최근 노래냐’고 물었다”고 5일 전했다. 유통되는 USB메모리엔 북한 중앙방송이 4일 공연 소식을 전할 때 통째로 편집했던 걸그룹 ‘레드벨벳’의 공연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당시 남북 예술단 합동공연 소식을 3분 20초가량 방영했지만 이선희의 ‘J에게’ 외에는 우리 가수의 이름이나 노래, 발언을 무음으로 처리했다. 특히 화제를 모았던 레드벨벳의 무대는 통째로 들어냈다. 소식통은 USB메모리 영상을 본 북한 주민도 레드벨벳 노래 ‘빨간 맛’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USB메모리는 중국에서 누군가가 한국 녹화방송을 복사해 돈을 받고 북에 유통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선 주로 돈 있는 권력층이 이런 영상을 요구한다. 평양 출신 탈북자는 9일 “중국에서 밀수된 동영상은 수요가 가장 많고, 가장 비싸게 팔리는 평양으로 직행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자도 “요즘 외부 동영상을 가장 많이 퍼뜨리는 사람들은 이런 영상을 단속하는 보안원(경찰)들”이라며 “보안서에 압수한 각종 영상물이 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전기난으로 지방에서 TV를 거의 볼 수 없지만 태양광 등을 통해 충전시켜 USB메모리 저장물을 볼 수 있는 ‘노트텔’이란 기기가 광범하게 퍼져 있다. 한국 가수가 평양에서 부른 노래가 북한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 탈북 청년은 “2002년 윤도현밴드의 평양 공연 후 가요 ‘너를 보내고’가 전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며 “당시 청년들이 모이면 이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잊지 말아요’도 당분간 북한 최고 인기 가요 반열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남북 유화 모드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여전히 한국 가요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8일 “양강도 삼수군에서 금지된 한국 가요 50여 곡을 듣고 춤을 춘 16, 17세 청소년 6명이 지난달 22일 공개재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가요를 USB메모리에 복사해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려고도 했다. 신문은 “반국가음모죄로 2명은 중범죄자들이 가는 교화소에 갔고, 4명은 노동단련형 1년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미일 양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세 번째 골프 회동을 조율 중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복수의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8일 전했다. 아베 총리는 17∼20일 미국을 방문한다. 신문에 따르면 골프 회동은 미국 측에서 제안했으며 일본 측도 “양국 정상이 얘기할 기회가 많을수록 좋다”고 호응했다. 장소는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인근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골프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미국 방문을 통해 최근 제기되는 ‘저팬 패싱’ 논란을 불식시키고 굳건한 미일 동맹을 과시할 계획이다. 또 다음 달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 의제에 일본 측 관심 사안인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골프 외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접근하는 아베 총리의 비책이다. 아베 총리는 당선 직후인 2016년 11월 뉴욕에서 만났을 때 순금 장식이 달린 한화 500만 원짜리 혼마 골프채를 선물했다. 두 정상은 지난해 2월에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인터내셔널 골프장에서 27홀을 함께 돌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아베 총리가 2020년 올림픽이 열리는 사이타마(埼玉)현 가스미가세키(霞が關) 골프장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초대했다. 미국산 쇠고기 햄버거로 점심식사를 하고 일본 최고 프로 골퍼인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 선수와 함께 라운딩을 했다. 하지만 이번 골프 회동이 예전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될지는 미지수다. 아베 총리는 한반도 변화 국면에서 일본이 소외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다. 철강 알루미늄 고율관세 부과 등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중심의 경제정책을 펴는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한편 교도통신은 7일 북한이 올 들어 일본에 ‘일본인 납치 문제는 해결이 끝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검토 중인 일본에 납치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북-일 양국은 2014년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납치 문제 재조사와 제재 해제를 약속했으나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사문화된 상태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한국 고교생들이 미국 중국 일본에 비해 가장 늦게 자고, 식생활 습관도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국립청소년교육진흥기구가 지난해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4개국 고교생 8480명(한국은 1, 2학년, 미중일은 전 학년)을 대상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를 설문조사해 최근 발표한 결과다. 한국은 밤 12시 이후에 자는 비율이 69.5%로 중국(11.7%), 미국(17.9%), 일본(45.1%)에 비해 크게 높았다. 기상 시간도 늦었다. 다른 국가 고교생 절반 이상이 ‘오전 6시 반 전에 일어난다’고 답했지만 한국은 10명 중 2명만 같은 답변을 했다. 진흥기구는 “한국의 경우 아침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비율이 36.1%로 일본(6.5%), 중국(7.5%)을 크게 상회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주일 동안 3회 이상 즉석라면이나 컵라면(instant or cup noodles)을 먹었다는 답변도 한국(17.5%)이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중국(10.4%), 미국(8.1%), 일본(4.8%) 순이었다. 반면 채소류를 매일 섭취한다는 비율은 30.1%로 한국이 꼴찌. ‘진학·진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답변(58%)과 ‘나는 뭘 해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비관적 답변(66.2%)은 4개국 중 가장 많았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한국 청소년들이 미국 중국 일본 청소년에 비해 늦게 자고, 식생활도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 국립청소년교육진흥기구가 지난해 한국 일본 중국 미국 등 4개국 고교생 약 8500명을 대상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를 설문조사해 최근 발표한 결과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9~11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전국 38개 학교의 고교생 2015명을 조사했다. 취침 시간의 경우 한국은 자정 이후에 자는 비율이 69.5%로 일본(45.1%), 미국(17.9%), 중국(11.7%)에 비해 크게 높았다. 새벽 1시 이후에 잔다는 답변도 27.9%에 달했다. 늦게 자는 만큼 일어나는 시간도 늦었다. 다른 국가 고교생 절반 이상이 ‘6시 반 전에 일어난다’고 답한 것에 비해 한국은 10명 중 2명만 같은 답변을 했다. 기상이 늦은 만큼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는 비율도 가장 높았다. 국립청소년교육진흥기구 측은 “한국의 경우 아침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비율이 36.1%로 일본(6.5%), 중국(7.5%)을 크게 상회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매일 아침을 먹는 비율이 73.5%였다. 식생활의 질도 좋지 않았다. 최근 일주일 동안 3회 이상 인스턴트 라면이나 컵라면을 먹었다는 답변은 한국이 17.5%였다. 중국(10.4%), 미국(8.1%), 일본(4.8%)에 비해 크게 높았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3회 이상 먹었다는 답변은 미국 다음으로 많았다. 반면 야채류를 매일 섭취한다는 비율과 유제품을 주 3회 이상 섭취한다는 비율은 4개국 중 가장 낮았다. 몸과 마음의 건강도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학교나 지역의 스포츠 모임에 참가하는 비율은 17.1%로 다른 나라들의 절반 이하였다. 특히 여학생은 수업시간 외에 30분 이상 땀을 흘릴 정도로 운동을 하지 않는 비율이 유일하게 50%를 넘었다. 또 최근 취업난을 반영한 듯 ‘진학과 진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답변이 58%로 가장 높았다. 일상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는 답변도 가장 많았으며, ‘뭘 해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답변은 66.2%로, 4개 국 중 유일하게 과반이었다. 다만 한국 고교생은 교우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다는 답변은 87.5%로 가장 높았다. ‘부모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고민을 잘 들어준다’는 답변도 4개국 중 가장 높았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1월 사상 최대 가상통화 유출 사건이 벌어진 코인체크가 결국 독자 생존에 실패하고 금융회사에 넘어가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4일 “인터넷 증권사 모넥스그룹이 매수를 위한 최종 조정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인수금액은 수십억 엔(수백억 원)이며 이르면 이번 주 공식 발표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수가 확정되면 와다 고이치로(和田晃一良) 사장 등 현 경영진은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와다 사장이 대학 재학 중 창업한 코인체크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한 달에 4조 엔(약 40조 원)어치의 가상통화를 취급하는 일본 최대급 거래소다. 하지만 고객 자산을 네트워크와 연결된 채로 보관하는 등 기초적인 보안관리를 하지 않아 1월 말 580억 엔(약 5740억 원) 상당의 가상통화 뉴이코노미무브먼트(NEM)를 도난당했다. 피해자는 26만 명. 회사는 경찰 및 발행단체와 함께 범인을 추적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 금융청은 코인체크에 두 차례 업무개선 명령을 내렸으며 다른 거래소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3월 말까지 거래소 5곳이 철수를 결정했다. 신문은 “야후저팬이 자회사를 통해 거래소 지분 참여를 검토하는 등 향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가상통화 업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광화문에서 본 ‘피플 파워’는 정말 대단했고, 경의를 갖게 됐습니다.” 3일 일본 도쿄(東京) 시내에서 만난 스와하라 다케시(諏訪原健·26) 씨는 2016년 12월 서울시 주최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했다 촛불시위 현장을 찾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충격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땐 마침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날이었다. 당시 한국에서의 경험은 최근 일본 총리 관저 앞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금요일마다 시위를 주최하는 시민단체 ‘스탠드 포 트루스’의 핵심 멤버인 그는 “일본에 촛불시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번엔 한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말했다. ‘진실을 위해 거리에 서자’고 외치는 이 단체는 2015년 안보법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 멤버와 젊은 직장인 등이 지난달 만들었다. 이 단체는 모리토모 학원 공문서 조작 사건의 진상 규명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스와하라 씨는 “박근혜 대통령 사태와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은 권력자가 사익을 추구했고, 규정을 무시한 채 마음대로 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며 “한국에서 촛불로 정권을 끌어내렸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 누리꾼들이 인터넷에 ‘#RegaindemocracyJP’(일본의 민주주의를 되찾자)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응원 글을 올리는 것에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스와하라 씨는 “촛불을 들고만 있어도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총리 관저 앞 시위에는 지난달 23일 1만 명, 30일엔 1만3000명이 모였다. 현장에는 구호를 외치지 않고 촛불을 들고 서 있기만 하는 구역도 있다. 다만 안전을 위해 진짜 촛불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촛불을 택했다. 스와하라 씨는 “일본에선 경찰에게 페트병에 든 물을 뿌리기만 해도 체포된다. 진짜 촛불을 들었다가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주최 측은 매주 LED 촛불과 야광봉 약 2000개를 준비한다. LED 촛불을 직접 준비해 오거나 대량으로 가져와 나눠주는 시민들도 있어 매주 관저 앞에서는 수천 개의 촛불 바다가 펼쳐진다. 비용은 현장 모금으로 충당한다. 스와하라 씨는 “내각책임제인 일본은 내각이 행정에 책임을 진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자신은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과 관련해 책임이 없고 관료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나오는데 이는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시위에 나가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스와하라 씨 역시 실즈 활동을 하며 시위 현장에 나갈 때 부모님이 반대했고 친척으로부터 ‘공산당에 들어갔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는 “한국처럼 개인의 정치적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일본의 과제”라고 덧붙였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의 대형 서점 ‘아카데미아 고호쿠텐’이 한국문학 특설 코너를 만든 것은 지난해 7월. 사쿠라이 노부오 점장은 처음에는 한두 달 정도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책이 술술 팔렸다. 멀리서 트위터를 보고 온 사람도 있었고, 들기 힘들 정도로 여러 권을 한 번에 사가는 고객도 있었다. 결국 ‘상설 같은 특설’ 코너로 지금까지 유지 중이다. 사쿠라이 점장은 “공통된 반응은 한국문학이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만 니혼게이자이, 요미우리, 도쿄 신문에서 한국문학 특집 기사를 썼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류 붐에 의해 K드라마, K팝 등을 (일본인들이) 가깝게 느끼게 됐다. 다음은 K문학”이라고 단언했다. 한국문학을 시리즈로 내는 일본 출판사만 3곳이다. 왜 갑자기 한국문학일까. 먼저 일본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작품이 늘었다. 과거 일본에 소개됐던 작품은 분단이나 민주화운동을 다룬 것이 많아 한국문학은 저항적이고 무겁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한국문학을 일본에 소개 중인 쇼분샤의 사이토 노리타카 편집대표는 “젊은 작가들은 일본의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세련되게 다룬다”고 평가했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는 등 국제적 위상도 올라갔다. 동시에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들이 늘었다. 실력 있는 번역가도 여럿 등장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로 시를 쓰는 사이토 마리코 시인이 대표적이다. 그는 2015년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번역해 제1회 일본 번역대상을 받았다. 올해 번역대상 후보 18편 중 한국소설은 3편이다. 국가별로는 미국(5편)에 이어 두 번째. 좋은 작품이 한두 권 번역된다고 흐름이 되진 않는다. 씨줄과 날줄을 엮어 흐름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낸 대표적 인물이 한국 책 전문 출판사 쿠온의 김승복 대표다. 그는 2011년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7권의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를 냈다. 세련된 표지와 유려한 번역으로 일본 내에서 한국작품의 인상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K북 진흥회’를 결성하고 일본어로 번역해도 좋을 책을 정리해 정기적으로 일본 출판사에 알렸다. 한국문학 투어를 기획했고, 번역가도 양성 중이다. 대하소설 ‘토지’ 완역이란 불가능해 보이던 프로젝트도 성사시켰다. 김 대표는 도쿄의 고서적 거리인 간다진보정에서 한국 북카페 ‘책거리’도 운영한다. 매년 100개 이상의 이벤트를 여는 한국문학의 전진기지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설가 김연수,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이 작은 카페에서 팬을 만났다. 문학에서도 한일 격차는 아직 크다. 한국에 소개되는 일본문학은 매년 1000여 편에 달하지만 일본에 소개된 한국소설은 지난해 23권이었다. 상대국의 문학을 읽는 건 대중가요를 듣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과 또 다르다. 시와 소설을 통해 서로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며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한일관계가 안 좋을수록 문학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기대하며 응원한다. 브라보 한국문학, 힘내라 김 대표! 장원재 도쿄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중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26일 밤 처음 알려지자 미국과 일본 언론은 저마다의 관측을 내세우며 ‘미스터리 풀기’ ‘수수께끼 맞히기’와 같은 취재 및 보도 경쟁을 벌였다. 가장 먼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름을 단정적으로 거론한 외신은 미국 블룸버그통신이었다. 27일 0시 40분경 이 매체는 “김정은이 베이징을 깜짝 방문했다. 이는 그가 2011년 집권한 후 처음으로 갖는 해외 순방인 것으로 알려졌다”며 익명의 소식통 세 명을 인용해 김 위원장을 특정해 보도했다. 이에 해외 매체들은 ‘중국의 미스터리한 손님(CNN)’ ‘베이징에 도착한 열차가 김(김정은 위원장)의 방문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워싱턴포스트)’ ‘김정은이 베이징에 있나(뉴욕타임스)’ 등의 보도를 통해 김 위원장의 방중이 확실하진 않지만 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을 강조해 보도했다. ‘베이징의 김정은 안개’가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던 27일 오후 CNN은 “김정은이 베이징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북한에 정통한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속보를 전했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를 태운 것으로 알려진 열차가 27일 오후 베이징을 떠났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금까지 거론된 관측을 모두 종합해 전하면서도 ‘1호 열차’가 베이징을 떠날 때까지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일본 언론 역시 중국을 방문한 이가 김 위원장인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인지를 두고 혼선을 빚었다. 다만 산케이신문은 27일 오후 1시경 익명의 중국 공산당 당국자를 인용해 “김정은이 베이징을 방문해 여러 공산당 지도부 인사와 회담을 했다”는 속보를 전했다. 이 당국자는 “북-중 양국이 올해 초부터 김정은의 방중 시기를 협의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 측이 북한에 핵 포기를 향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일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이번에 방중이 실현된 것은 북한으로부터 전향적인 답변을 얻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 후지TV와 요미우리신문 등도 김 위원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중국 인터넷에는 26일 차량 행렬을 찍은 동영상이 나돌다 삭제됐으며 며칠 전부터 중국 내에서는 북한에 대한 보도가 삭제되고, 26일에는 당국에서 북한에 대한 보도를 일절 금지한다는 통보가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김정은 방중설에 대해 신중한 자세로 말을 아꼈다. 라지 샤 백악관 부대변인은 26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보도를 확인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 보도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줄리아 메이슨 국무부 대변인도 “중국에 알아보라”고 답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최대한의 관심을 갖고 정보 수집 분석을 하는 단계”라면서도 “현 시점에서 하나하나의 보도에 대해 코멘트하진 않겠다”고만 밝혔다. 다만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누가 중국을 방문했는지) 지금 정보 수집 분석을 하고 있다”고 말해 사전에 최고위급 방중을 몰랐음을 시사했다. 또 “북-중 관계의 진전에 대해 중국으로부터 제대로 설명을 듣고 싶다”고도 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던 중국이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콧 스나이더 브루킹스 선임연구원은 로이터통신에 “중국이 (한반도) 게임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시진핑은 자신이 김정은을 만나는 3번째 국가 정상이 된다는 사실을 못 참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 도쿄=장원재/ 뉴욕=박용 특파원}
일본 정부가 기초자치단체의 지방의원 확보를 위해 공무원의 겸직을 허용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지방의 경우 의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의회 자체가 소멸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7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총무성 자문기구는 전날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상에게 지자체 공무원과 의원의 겸임을 허용하거나 의원 수를 3∼5명 수준으로 줄이고 보수를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의원을 확보하라고 제언했다. 현재 지방자치법은 의회의 감시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공무원과 의원의 겸직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자문기구는 소규모 지자체의 경우 다른 지자체 소속 공무원이 입후보해 지방의원이 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라고 제언했다. 지자체와 거래관계에 있는 단체나 기업의 임원의 겸업도 허용하는 등 다수가 참가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대신 회의는 평일 야간과 휴일에 주로 여는 방안이다. 두 번째 제안은 겸직·겸업 제한을 유지하는 대신 현재 10명 이상인 의원 정수를 3∼5명으로 줄이고 대신 급여를 대폭 인상해 정책 제안 등 전문성 높은 일을 하게 하자는 것이다. 대신 배심원처럼 제비뽑기를 통해 다수의 주민이 조례나 예산 심의에 참가하게 하는 식이다. ‘다수참가형’과 ‘집중전문형’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할지는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정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총무성은 예외를 인정할 소규모 지자체의 규모 등을 검토한 후 내년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방침이다. 하지만 두 방안 모두 의회의 감시 기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동시에 또 전국 927개 정촌(町村) 의회 의장모임에서도 “지방분권 개혁에 역행하며 기초자치단체의 의견을 듣지 않은 일방적 조치”라며 반대 목소리가 나와 실제 입법까진 난항이 예상된다. 총무성에서 개선 방안을 마련한 것은 지방의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턱없이 부족해 지방자치의 근간인 지방의회가 유명무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의원 정수는 조례로 정하는데 후보 확보가 어렵다 보니 지자체가 계속 줄여 20년 동안 절반이 됐다. 2015년 지방선거에선 1000명 이하인 지자체의 65%에서 후보자가 전원 무투표 당선됐다. 홋카이도(北海道) 우라호로(浦幌)정 등 4곳은 정원보다 후보자가 적어 결원이 생겼다. 지난해 고치(高知)현 오카와(大川)촌에선 의회를 아예 폐지하고 주민총회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방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26일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중국 최고위급 인사와 회동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중국 측의 경호 통제 상황으로 볼 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나 적어도 그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방문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과 중국의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탔던 특별열차가 중국으로 들어간 것은 맞는 것 같다. 또 중국의 모든 의전이 정상급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맞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북문 쪽에서 주중 북한대사관 차량들이 목격됐다. 오후 8시 반경에는 국빈이 묵는 댜오위타이(釣魚臺) 동문으로 들어가는 20여 대의 검은색 차량 행렬이 목격됐다. 이날 오후부터 인민대회당 북문 인근 창안제(長安街) 일부가 통제됐고 오후 9시경 국빈 경호급 사이드카들이 등장했다. 오후 10시 10분경 인민대회당을 떠난 대형버스 2대와 구급차를 포함한 차량 20여 대가 정상급 경호를 받으며 10시 반경 댜오위타이로 들어가는 광경이 동아일보·채널A 취재진에 목격됐다. 북한에서 온 최고위급 인사가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중국 최고위급 인사를 만난 뒤 댜오위타이에서 묵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방중한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김 위원장이 맞다면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북-중 정상 간에도 긴급 접촉이나 회담이 이뤄졌다는 뜻이어서 외교적 의미와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들은 “25일 북한에서 출발한 열차가 북-중 접경 도시인 단둥에 25일 밤 도착했고, 이때 단둥역 출입이 공안에 의해 통제되고 경비도 삼엄했다”고 전했다. 단둥 현지 주민은 “북한 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26일에는 베이징 서역과 인근 공항까지 통제됐다는 얘기가 돌았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일일브리핑에서 ‘북한 최고위 인사 방중설’에 대한 질문에 “상황이 파악된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린 일일브리핑 내용에선 문제의 질문과 대답만 삭제돼 있었다. 북한을 상대하는 당 대외연락부도 외신들의 문의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 니혼TV 계열 뉴스네트워크인 NNN은 “26일 오후 3시경 삼엄한 경비 속에 북한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열차가 베이징에 도착하는 모습을 포착했다”며 “북한 고위급 인사가 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이날 오후 시내를 통과하는 선로 주변에 무장경찰이 배치되는 등 이례적으로 경비가 강화된 와중에 열차가 도착했다. NNN은 “녹색에 노란 선이 들어간 21량짜리 열차는 2011년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탔던 열차와 매우 비슷하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남북,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중국에서는 “중국이 한반도 대화 국면에서 배제당할 수 있다”는 ‘중국 패싱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북-중이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정동연 채널A 특파원 / 도쿄=장원재 특파원}
“그런 인간쓰레기에다 흡혈귀는 회담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2003년 존 볼턴 당시 미국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이 북핵 6자회담의 미국 대표단 일원으로 참여하자 북한은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볼턴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폭군 같은 독재자’로 지칭하자 이렇게 응수한 것. 북한은 2008년에도 볼턴을 향해 “미 강경보수 세력들이 6자회담의 파탄과 사태 악화만 바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랬던 북한이 정작 볼턴이 미 외교안보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내정되자 잠잠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2002년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이란이 볼턴 임명 소식을 듣자마자 “미국의 최종 목적은 이란 전복”이라며 핏대를 세우는 것과 대조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볼턴이 백악관 중책을 맡아 대북 정책을 세팅할 시점에 괜히 자극하는 게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23일 오후 8시,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총리관저 앞.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 다들 플래카드를 내리고, 촛불을 들어주세요.” 수천 명의 인파가 주최 측의 요청에 따라 일제히 발광다이오드(LED) 촛불과 플래시를 켠 휴대전화 등을 들어 올렸다. 비가 조금씩 왔지만 시민들은 촛불을 흔들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물러나라”, “거짓말을 멈춰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역사적인 광경이 될지 모른다. 꼭 사진을 찍어 달라”고 당부했고 기자들은 촛불 바다를 향해 연이어 셔터를 눌렀다. 여기저기서 “정말 멋지네요”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을 둘러싸고 아베 정권이 코너에 몰린 가운데 총리직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이날부터 촛불시위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정권을 바꾼 촛불이 일본에 상륙한 것이다.○ “촛불로 아베 총리 몰아낼 것” 이날 시위는 2015년 안보법제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의 리더 격이었던 오쿠다 아키(奧田愛基·26) 씨 등이 기획했다. 오쿠다 씨는 지난주 트위터를 통해 “촛불 3000개를 준비했다”는 글을 올리며 참여를 촉구했다. 또 포스터를 배포하며 ‘캔들스 라이트업 데모크러시’ 캠페인을 벌였다. 다만 안전상의 이유로 실제 초 대신 LED 촛불, 야광봉 등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인터넷에는 ‘촛불을 들고만 있으면 되니 부담 없이 시위에 갈 수 있겠다’, ‘시위라면 왠지 무섭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촛불이라면 안심이다’, ‘한국을 본받아 일본도 힘을 내자’는 등의 호응이 잇따랐다. 자발적으로 촛불을 준비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날 현장에서 ‘캔들 스태프’라는 완장을 차고 ‘LED 촛불’을 나눠 주던 쓰노이 덴코(角井典子) 씨는 “지인들과 2000개의 촛불을 준비해 왔다. 한국에서는 촛불이 정권을 바꿨다. 촛불은 부드럽고, 예쁘고, 비폭력적이다”라고 말했다. 복지 관련 일을 한다는 노나카 도시히로(野中俊宏·52) 씨는 “한국처럼 촛불이 힘을 내면 좋겠다. 아베 총리가 물러날 때까지 계속 시위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거리가 촛불로 가득 찬 모습을 보면서 “스고이(멋지다)”, “기레이(예쁘다)” 등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날 경찰은 시위대가 도로의 절반만 사용할 수 있게 했으며 사람이 몰린 곳에는 인간 띠를 만들어 지정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지정 구역이 아닌 곳에서는 서 있기만 해도 확성기로 “통행에 방해가 되니 이동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일부 시민은 촛불을 든 채 거리를 이곳저곳 오가며 시위를 했다. 이날 시위에는 촛불을 들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해 1만 명가량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 측은 앞으로 매주 금요일 촛불시위를 열어 아베 정권을 압박할 계획이다. 이날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운영하는 식당엔 협박편지가 배달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6시 반 외부 행사 참석차 관저를 떠나 촛불을 눈앞에서 맞닥뜨리는 사태를 피했다.○ 우익 “반(反)일본적 한국 따라 하기다” 인터넷에는 사정상 시위에 나오지 못했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이들이 집에서 촛불을 켠 사진과 함께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촛불시위는 온·오프라인에서 확산되는 모습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한국인들의 응원도 쏟아지고 있다. 반면 우익 진영에선 한국의 시위 방식을 따라 한 것에 노골적인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날 촛불시위 직전 관저 앞에서는 ‘아베 총리를 지키자’는 우익단체 집회가 열렸다. 인터넷에는 ‘한국식의 촛불시위는 일본을 흔드는 행동’, ‘데모를 하는 이들은 모두 재일동포나 한국인’ 등의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도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25일 당 대회에서 “행정의 수장으로 책임을 통감한다.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전날(24일) 전국 간사장 회의에 이어 이틀 연속 사과한 것이다. 27일에는 모리토모학원에 국유지를 헐값 매각하고 관련 문서를 조작할 당시 이재국장이자 사건의 핵심 인물인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 장관이 국회에 출석한다. 그의 답변에 따라 정국이 더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