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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스마트폰을 세로에서 가로 방향으로 바꿔 쓸 때 화면이 늦게 반응하거나 제대로 변환되지 않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만약 스마트폰 화면을 원하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전환하는 별도의 아날로그 다이얼 같은 전환 장치가 있으면 어떨까 하다가 만들어봤습니다.” 제41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이성민 군(경기 보평고 1)은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수상자 발표에 참석해 스마트폰 화면 회전 다이얼을 개발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군은 평소 누워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원하는 방향으로 화면이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짜증이 많이 나더라는 것이다. 이 군은 혼자만 느끼는 유난스러운 불편함이 아닐까 싶어 인터넷에서 구글 설문조사를 돌려봤다. 놀랍게도 설문 참여자 60명 중 40명이 이 군과 마찬가지로 불편함을 호소했고 이 군은 무릎을 탁 쳤다. 자신의 문제의식이 멋진 발명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감한 순간이었다. 이 군은 스마트폰의 가로세로 화면 전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회전 다이얼을 떠올렸다. 스마트폰 뒷면에 다이얼을 설치해 이를 돌리기만 하면 화면이 전환되는 것이다. 스티커처럼 붙였다 뗄 수 있도록 설계해 편의성도 고려했다. 관건은 스마트폰과 아날로그 다이얼이 서로 어떻게 통신할 수 있도록 하느냐였다. 이 군은 먼저 전자기기끼리 통신하는 데 많이 쓰이는 블루투스를 적용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금방 포기했다. 블루투스를 사용하면 배터리를 주기적으로 충전해야 하고 크기가 커지는 문제도 간단히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근거리무선통신(NFC) 태그를 이용하기로 했다. NFC 태그는 10cm 이내의 거리에서 무선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기술로 배터리가 필요 없고 가까이 가면 작동한다. 이 군은 “NFC 태그 코일을 중간에 끊고 스위치를 넣으면 화면 전환을 조정할 수 있는 입력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NFC라서 추가적인 전기 공급이 필요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군이 개발한 다이얼 형태의 화면전환 스위치는 돌리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스위치가 눌리고, 그 결과 다른 NFC 태그가 활성화돼 화면을 90도씩 전환시킨다. 다이얼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스마트폰의 화면이 시계 방향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화면이 반시계 방향으로 90도씩 돌아간다. 이 군은 발명가들이 놓치기 쉬운 편의성도 충분히 고려했다. 코일부터 스위치, 기판 등 핵심 기기를 손수 제작하면서도 크기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지름 3cm의 제품을 완성했다. 스마트폰의 손가락걸이 겸 받침대용 고리처럼 뒷면에 붙였다 뗄 수 있도록 했다. 작품 심사를 맡은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총장은 “이 군의 작품은 화면 회전을 설정할 때 상단 메뉴바를 내리는 수고를 덜어준다”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쓰는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한 실용적인 발명이라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평했다. 이 군은 중간고사가 끝나면 시제품 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아직 발명 단계 수준이라 디자인 등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시제품이 완성되면 상품화도 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세종=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이달 21∼25일 대구에서는 뇌 과학자들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뇌신경과학총회(IBRO 2019)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뇌 전문가 4400명이 참석한 이번 대회에서는 정신질환, 신경윤리학, 뇌질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소개됐다. 이 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분야는 뇌 연구와 생명과학의 혁명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광(光)유전학’이다. ‘빛의 학문’인 광학과 유전학의 합성어인 광유전학은 빛으로 세포 속 물질을 마음대로 조작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보는 기술이다. 세포에 빛을 비추면 열렸다 닫히는 스위치를 만들어 세포 및 조직의 활성을 조절하고 관찰하는 원리다. 이 방식을 활용하면 살아 있는 세포의 기능을 훨씬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광유전학은 생명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살아 있는 동물의 뇌 활동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필요하면 조작할 수 있어 뇌 상태를 살펴보기만 하던 기존 연구방식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특히 빛으로 뇌세포 속 물질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광유전학은 우울증, 알츠하이머병 등 다양한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핵심 기술로도 부상했다. 부작용이 적은 정신질환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선 뇌와 관련한 신경세포의 정확한 기능 규명이 필수적인데 광유전학은 신경세포를 선택적으로 작동시켜 새롭게 신경세포를 정의하고 작동 원리를 규명하는 데 활용된다. 세계 뇌과학계가 차세대 주자로 꼽는 하일란 후 중국 저장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 광유전학을 이용해 동물 마취제로 쓰이는 케타민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을 밝혀냈다. 케타민은 마약으로 악용될 정도로 우울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케타민이 어떤 작용을 통해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후 교수는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뇌를 관찰하며 케타민이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케타민은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하게 하는 뇌 부위인 ‘외측고삐핵’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의 시상상부에 위치한 외측고삐핵이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는 있었지만 케타민과 외측고삐핵 간의 관계가 밝혀진 건 처음이다. 광유전학이 케타민과 외측고삐핵 간의 중간 퍼즐을 맞춘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올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케타민 유사 약물을 우울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케타민을 우울증 치료제로 사용할 경우 즉각적인 효과와 동시에 일주일 이상의 지속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우울증 치료제는 75% 정도의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고 그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약 2주에서 3주로 긴 편이다. 크리스틴 데니 미 컬럼비아대 교수팀은 2017년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알츠하이머병 치료법의 실마리를 찾았다.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알츠하이머 질환 모델 쥐의 뇌 신경세포에 레이저를 가했더니 기억이 복원된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신경세포 안팎의 노폐물 단백질이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신경세포를 파괴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광유전학은 알츠하이머 질환의 기억 장애가 기억 저장의 문제가 아니라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이런 이유로 광유전학은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생리학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199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에르빈 네어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물리화학연구소 명예교수는 가장 유력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후보로 광유전학을 꼽았다. 글로벌 학술데이터 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도 25일 올해 유력한 노벨과학상 수상 후보를 공개하면서 광유전학 발전에 기여한 칼 다이서로스 미 스탠퍼드대 교수와 에른스트 밤베르크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물리학연구소 명예소장, 게로 미젠뵈크 영국 옥스퍼드대 생리학과 교수의 수상을 점쳤다. 광유전학 국내 전문가인 허원도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및사회성연구단 그룹리더(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다이서로스 교수 외에도 에드워드 보이든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광유전학 기술을 선도한 연구자들의 수상이 예상된다”며 “광유전학은 부작용도 많고 정확하게 신경세포를 자극할 수 없었던 기존 뇌과학 연구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광유전학 연구는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허 교수 연구팀은 수술 없이 뇌에 빛만 비추는 방법으로 동물의 뇌 유전자를 켜고 끄는 기술을 개발했다. 평소에는 단백질이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가 빛을 비추면 마치 스위치를 켠 것처럼 작동하는 원리다. 스마트폰 손전등이나 레이저 포인터로 켜고 끈다. 허 교수는 “광유전학을 이용하려면 지금까지는 수술을 통해 실험동물의 뇌에 광섬유를 심어야 했다”며 “수술을 하지 않고 세포에 빛만 비춰도 유전자를 작동시킬 수 있어 광유전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1970년 미국 과학자들은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새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529종에 이르는 새들을 관찰하고 그 내용을 세세히 기록했다. 워낙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연구이다 보니 1세대 연구자들은 이미 은퇴했고 제자들인 2, 3세대 과학자들이 뒤를 이었다. 케네스 로젠버그 미국 코넬대 조류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50년간 미국과 캐나다에 서식하는 새의 개체수가 29% 줄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9일자에 발표했다. 이들이 관찰한 변화는 충격적이다. 2018년 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새 개체수는 약 70억 마리로 1970년에 비해 29억 마리가 줄었다. 연구팀이 이런 수치를 얻는 데까지는 연구자가 세대교체를 거듭하며 반세기 동안 축적한 데이터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참새, 휘파람새, 찌르레기, 종달새, 쏙독새, 칼새 등 12종의 개체수가 가장 크게 줄었다. 반면 대머리독수리 같은 맹금류와 오리나 거위 같은 물새류는 오히려 개체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로젠버그 연구원은 “일찍부터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해 관리를 받은 조류는 개체수가 늘었다. 이번에 개체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조류에 대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넬대 조류학연구소는 1915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조류 연구기관이다. 로젠버그 연구원을 비롯해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도 50년 전 선배 과학자들이 착수한 연구를 이어받아 이번에 결과를 냈다. 로젠버그 연구원은 “단기 연구로는 인간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아내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활용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이처럼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간 이뤄지는 연구들이 값진 성과를 내고 있다. 노화와 수명 연구처럼 장기간의 환경 요인이 인체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 프로이 영국 에든버러대 진화생물학연구소 연구원도 26년간 스코틀랜드 서부의 세인트 킬다 군도에 사는 양을 관찰한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놨다. 연구팀은 양 800마리의 삶과 죽음의 주기를 관찰하면서 노화가 양의 면역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양은 나이가 들면 기생충에 대한 면역저항이 떨어지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겨울철 생존율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에든버러대에서는 ‘500년간 진행될 실험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찰스 코켈 우주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박테리아의 일종인 크루코키디옵시스와 고초균이 들어 있는 완전 밀폐 유리병을 만들고 2514년에 열어보기로 했다. 동결 건조한 박테리아에 수분을 공급하고 얼마나 많은 박테리아가 살아나는지, DNA가 500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손상됐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2년간 박테리아 생존 능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토마스 반 뵈켈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환경시스템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농장에서 기른 돼지와 닭을 조사한 결과 항생제 내성을 가진 병원체를 소유한 개체의 비율이 50%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세계 돼지와 닭의 절반 이상이 사는 중국과 인도, 브라질, 케냐에서 내성을 가진 개체들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뵈켈 교수는 “항생제의 오남용이 늘어나며 약에 내성을 가진 돼지와 닭이 늘어나고 있다”며 “돼지와 닭을 소비하는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국내에서 처음 치사율 100%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함에 따라 소비자와 양돈농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ASF는 인수공통 전염병이 아니다. 국산 돼지고기를 안심하고 소비해도 된다”고 말했다. ASF 관련 궁금증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Q. 돼지고기를 먹어도 괜찮나. A.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ASF는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열에 약해서 섭씨 70도에서 30분 동안 가열하면 모두 사멸한다. 평소처럼 돼지고기를 충분히 익혀 먹으면 된다. Q. 가열 시 바이러스가 없어진다면 감염된 돼지를 도축 후 유통해도 되지 않나. A. 그렇지 않다. 감염 돼지를 도축하거나 고기를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를 다른 돼지가 먹으면 ASF에 걸릴 수 있다. 감염된 돼지와 접촉해도 발병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중국에서 ASF가 발견된 지 10개월 만에 중국 전역으로 퍼진 것도 감염 농장과 인근 지역 돼지를 도살 처분하는 대신 식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Q. 돼지고기 값이 폭등할까. A. 국산 냉장 돼지고기의 경우 단기간 내 가격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국에 일시 이동중지 명령이 내려지면서 경매시장에 새 돼지가 들어오지 않아서다. 17일 오후 6시 기준 수도권에서 팔린 돼지고기 평균 경매가는 전날보다 41.6% 오른 kg당 6070원에 달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대비 돼지 사육 마릿수가 13%가량 늘었다. 상황을 더 지켜보고 필요하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Q. 외국 피해 사례는…. A. 지난 3년간 세계 52개국(한국 제외)에서 발병했다. 중국에선 지난해 발병 뒤 3억 마리 돼지 중 1억 마리가 도살 처분됐다. 현지 돼지고기 값은 40% 뛴 것으로 알려졌다. Q.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이유는…. A. 바이러스 종류가 많아 백신 개발이 어렵다. 총 23종인 이 병의 바이러스는 유전형이 많은 만큼 바이러스가 만드는 단백질의 종류도 200종이 넘는다. 백신 개발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백신 판매가 힘들 것이라는 점도 제약회사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다. ASF가 발생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백신을 사기 힘들 정도로 가난해서다. Q. ASF 발생 농가의 돼지 중 다른 곳으로 이동된 돼지가 있나. A. ASF가 발생한 S농장(번식농장)에서 지난 일주일 동안 가족이 운영하는 인근 2개 농장(비육농장)으로 돼지가 이동된 사례는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주일 동안 정확하게 몇 마리가 인근 2개 농장으로 이동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ASF가 발생한 농장뿐 아니라 인근 2개 농장의 돼지까지 모두 도살 처분했다고 농식품부는 설명했다.세종=주애진 jaj@donga.com / 고재원 기자}

외부 병균과 싸우는 인체의 면역 작용을 이용해 암 치료제를 개발한 과학자들이 ‘미국판 노벨 생리의학상’으로 불리는 래스커상을 받는다. 앨버트 앤드 메리 래스커재단은 10일(현지 시간) 올해 래스커상 기초의학 부문 수상자로 자크 밀러 호주 월터 앤드 일라이자홀 의학연구소 명예교수와 맥스 쿠퍼 미국 에모리대 의대 에모리백신센터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공공서비스 등 3개 부문에서 시상하며 각 부문 수상자는 상금 25만 달러(약 3억 원)를 받는다. 올해 기초의학 부문 수상자인 밀러 교수와 쿠퍼 교수는 특정 병원체와 암세포를 인식해 방어하는 면역세포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정아 zzunga@donga.com·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장영실이 만든 조선시대의 자동 물시계인 ‘흠경각 옥루’가 복원됐다. 1438년 처음 제작된 뒤 581년 만이다. 복원된 흠경각 옥루는 9일부터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공식 전시를 시작했다. 9일 국립중앙과학관에 따르면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과학유산보존과장 연구팀은 3년간의 복원 과정을 거쳐 흠경각 옥루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흠경각 옥루는 농촌과 자연의 사계절을 묘사한 모형에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장치와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천문시계 장치를 한데 결합한 형태다. 사계절을 담은 산과 들이 폭 3.3m, 높이 3.3m의 크기로 돼 있다. 선녀와 무사들이 산과 평지 곳곳에서 징과 종을 울리고 북을 두드리며 시간을 알리는 구조다. 흠경각 옥루는 세종 즉위 기간 중인 1438년 장영실이 경복궁 흠경각 내에 처음 설치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광해군 때 복원했지만 효종 때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 사라졌다. 역사학자들은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종실록 등에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겉모습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며, 자세한 작동원리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럼에도 복원팀은 국립중앙과학관을 중심으로 고천문학자, 고문헌학자, 복식사학자, 조경사학자, 고건축학자 등이 협력해 고문헌을 통한 고증을 거쳤다. 흠경각 옥루는 4년 앞선 1434년에 만들어진 또 다른 물시계인 ‘자격루’와 제작 의도와 내부 구조가 다르다. 자격루는 당시 조선의 표준시계로서 시간을 정밀하게 알려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에 비해 흠경각 옥루는 농경 생활의 모습을 통해 하늘이 정해주는 시간(사계절)의 중요성을 알리면서 하늘과 자연,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당시 백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농본정치의 최우선으로 한 세종의 꿈을 담은 것이라는 게 과학관 측의 설명이다. 흠경각 옥루는 한국의 시계 제작 역사에도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 후기 이민철의 혼천의나 송이영의 혼천시계의 원형이 됐기 때문이다. 또 조선 신유교의 사상, 중국의 수차 동력장치, 이슬람의 구슬을 활용한 인형 구동장치 등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을 융합시켜 만든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기념물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연구책임자인 윤용현 과장은 “옥루는 장영실이 중국을 찾아 북송 시절의 물시계 수운의상대 등을 보고 관련 문헌을 수집한 뒤 조선에 돌아와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달 정복을 향한 인류의 도전이 다시 한 번 시작된다. 미국과 옛 소련, 중국에 이어 이번에는 인도다.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는 “무인 탐사선 ‘찬드라얀 2호’에서 분리된 착륙선 ‘비크람’이 7일 오전(한국 시간) 달 남극 착륙에 나선다”고 밝혔다. 인류가 달의 남극에 탐사선을 보낸 건 처음이다. 찬드라얀 2호는 2008년 발사된 찬드라얀 1호에 이은 인도의 두 번째 무인 달 탐사선이다. 찬드라얀 2호는 인도 우주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비크람 사라바이 박사의 이름에서 따온 달 착륙선 비크람, 산스크리트어로 지혜라는 뜻의 로버(탐사차) ‘프라기안’으로 구성된다. 개발과 발사에 총 1억4400만 달러(약 1700억 원)가 투입됐다. 찬드라얀 2호는 올 7월 22일 인도의 ‘정지궤도우주발사체(GSLV) 마크3’에 실려 달을 향한 장도에 올랐다. 이달 1일 달 궤도에 진입한 이후 여섯 번째 궤도 변경 기동을 통해 달에 한층 가깝게 접근했다. 2일 비크람이 120km 상공에서 찬드라얀 2호에서 분리된 데 이어 4일 새벽에는 고도 35km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고도를 더 낮춘 비크람은 역추진 로켓을 이용해 하강 속도를 초속 6km에서 뚝 떨어뜨려 달 표면에 부드럽게 안착할 예정이다. 달 착륙 방식은 소프트랜딩(연착륙)과 임팩트(경착륙)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소프트랜딩은 탐사선이 역추진 로켓을 활용해 부드럽게 내려앉는 것을 뜻한다. 현재까지 소프트랜딩 방식으로 달에 착륙한 나라는 미국과 옛 소련, 올해 초 달 뒷면에 탐사선을 보낸 중국 등 세 나라뿐이다. 임팩트는 탐사선을 달 표면에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 역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인도는 이 중 소프트랜딩이라는 더 어려운 기술로 착륙을 시도할 예정이다. 비크람이 달 남극 표면에 착륙하면 인도는 네 번째로 달에 착륙한 나라가 된다. 같은 착륙 방식을 택했지만 국가마다 달 착륙 지점은 제각각이다. 1966년 세계 첫 번째로 달에 무인 소프트랜딩을 성공한 옛 소련은 달의 서부에 위치한 ‘폭풍의 대양’에 루나 9호를 보냈다. 1969년 7월 20일 미국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인 이글호는 달의 적도 북쪽 부근에 있는 ‘고요의 바다’에 도착했다. 중국의 무인 달 탐사선 ‘창어(嫦娥) 4호’는 올해 초 달의 뒷면 에이킨 분지의 ‘폰 카르만 크레이터’에 착륙했다. 인류가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 뒷면에 착륙한 것은 처음이다. 비크람이 이번 도전에 성공하면 인도는 달 남극에 최초로 착륙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비크람이 착륙할 구체적인 지점은 달의 남극 근처 분화구 내부의 평지다. 인도가 비크람의 착륙 지점으로 달의 남극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달 남극에는 얼음 형태의 물이 풍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헬륨3, 수소, 암모니아, 우라늄, 메탄, 나트륨, 희토류 등의 자원도 풍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물은 향후 미국과 유럽이 추진하는 달기지 건설과 거주에 필요한 자원이다. 헬륨3는 핵융합 반응의 원료가 되는데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달에는 100만 t 이상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달은 지금까지 많은 탐사를 통해 자원의 보고임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자원의 정확한 매장량이나 분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특히 달 남극 지역은 태양빛이 잘 들지 않아 태양전지를 사용하는 로버를 보내는 데 난제로 작용했다. 로버 프라기안은 달에 햇빛이 드는 약 14일 동안 달 남극에서 탐사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만에 하나 물의 존재를 확인할 경우 이곳은 향후 유력한 달기지 후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태블릿 PC에 달린 카메라가 텅 빈 무대를 향하자 화면 속에 고양이 여섯 마리가 등장한다. 화면 속 고양이들은 의자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다가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군무를 추고 노래를 부른다. 평생 강아지와 함께 살던 주인공 고양이 ‘티미드’에게 길고양이 다섯 마리가 음악과 춤을 통해 고양이의 세계를 알려준다는 내용의 이 영상은 실제 영상과 가상의 입체(3D) 이미지를 결합한 증강현실(AR) 기술 뮤지컬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컴퓨터 그래픽 분야 최고 학회인 ‘시그래프’에서 이 뮤지컬을 처음 공개했다. 이번에 세계무대에 공개된 AR 뮤지컬은 ETRI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토즈가 함께 제작했다. 일반 뮤지컬이라면 배우, 무대, 관객, 노래와 춤이 함께 어울리겠지만 이 뮤지컬에는 배우가 없다. 그 대신 특수 제작된 무대를 태블릿PC로 비추면 AR 배우들이 나와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태블릿PC와 무대만 있으면 상상 속 캐릭터들이 마치 눈앞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연구팀은 AR 뮤지컬에 생동감을 주는 핵심 기술을 이번에 함께 개발했다. 이 기술의 핵심은 AR 뮤지컬 속 배우가 텅 빈 무대 가상 입체 공간에서 정확하게 위치를 잡도록 하는 것이다. 배우들 사이에 정교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연출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다. 일반 뮤지컬처럼 여러 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인터랙션 기술도 개발했다. 연구팀은 이 두 기술이 AR 뮤지컬을 앞으로 상업화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로 보고 있다. AR 뮤지컬 외에도 예술에 과학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국내외에서 잦아지고 있다. 오일권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에 차세대 로봇에 활용하는 인공근육을 접목하고 있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키네틱 아트는 간단한 기계 장치의 움직임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해 전달하는 장르다. 동적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기계 장치가 사용되는데 여기에 첨단 로봇 연구가 결합한 것이다. 연구팀은 금속처럼 전기가 잘 흐르고 표면 기능을 제어하는 나노 신물질인 ‘맥신’과 전기가 잘 통하는 고분자 물질을 결합해 부드럽고 잘 휘는 전극을 제작했다. 전극은 1볼트(V) 이하의 낮은 전압에서 1초 만에 반응을 하며 문어 다리처럼 180도 구부러진다. 연구팀은 이 전극을 이용해 인공근육을 만들었다. 1만8000번 이상 구부렸다 펴도 성능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 인공근육을 이용해 나비의 날갯짓이나 수선화가 시간에 따라 피고 지는 모습,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구현했다. 나무에 앉아 우아하게 날갯짓을 하는 가짜나비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실제 나비로 착각할 정도다. 오 교수는 “기존 인공 근육은 잘 구부러지지 않고 수명이 짧았다”며 “부드러운 움직임이 요구되는 소프트 로봇이나 웨어러블 플랫폼, 몸속에 들어가는 능동형 생체의료 디바이스, 키네틱 아트 분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김진영, 권오흥, 이상원, 김주혜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키네틱 아트에 활용할 수 있는 입체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했다. ‘동적 실물 영상 투사 카멜레온형 서페이스 기술’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이 기술은 쉽게 말하면 변형 가능한 디스플레이다. 디스플레이 화면 뒤에 설치된 구동장치(액추에이터) 400개가 화면을 잡아당겼다 펴면서 입체감을 주는 원리다. 살아있는 카멜레온의 몸만큼은 아니지만 화면 그 자체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잡아당겨도 잘 부서지지 않고 다시 제 위치로 오는 스킨 소재를 개발했다. 이 소재는 화면이 잘 변형됐다가 원위치로 돌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다. 화면을 변형하는 액추에이터의 속도와 변이를 조절하는 모듈과 400개에 이르는 액추에이터를 한꺼번에 제어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이렇게 개발된 입체 디스플레이는 이미 광고 분야와 공공예술 쪽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기술을 시연하는 전시회를 열었고 올해 10월에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김진영 수석연구원은 “3D 입체 디스플레이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탄생한 분야”라며 “앞으로 광고, 전시,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 영역에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2년 카틱 라마니 미국 퍼듀대 교수 연구팀도 키네틱 아트에 쓰일 새로운 모핑 기술을 개발했다. 모핑은 하나의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연속적으로 변형시키는 디지털 시각효과로 수학적인 과정을 프로그래밍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만들어진다. ‘칼레이드오가미’라 이름 붙인 이 기술은 종이 한 장으로도 정확하게 접힘 구조를 만들 수 있어 다양한 디지털 시각효과를 낼 수 있다. 라마니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키네틱 아트 작품을 만드는 새로운 기하학적 알고리즘과 방법이 될 것”이라며 “우리의 목표 중 하나는 성장하고 있는 키네틱 아트 분야를 위해 새로운 영감을 줄 예술 형태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한국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이스라엘 등과 함께 인공지능(AI)을 무기화하는 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는 나라로 분류됩니다. 무기화가 이뤄지기 전에 이를 금지하는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해야 합니다.” 컴퓨터 과학자인 토비 월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사진)는 지난해 세계 29개국 AI 전문가 57명과 함께 KAIST와의 연구 교류를 중단하겠다는 보이콧 선언을 했다. KAIST가 한화시스템과 함께 세운 국방AI융합연구센터를 통해 AI의 무기화를 추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보이콧은 KAIST 측이 신성철 총장의 해명과 ‘유의미한 인간 통제’하에서 작동하는 AI를 개발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으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월시 교수는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AI 자율살상무기 금지를 위한 국제적 협약에 반대하고 있다”며 다시 한번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월시 교수는 7일 이뤄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이 AI 무기 금지협약 추진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4년 5월 유엔이 개최한 자율무기시스템 전문가 회의에서 한국 측은 군사 목적으로 활용되는 로봇 운영과 관련해 윤리 문제에 신경 쓰고 있다고 밝혔지만 한국 정부는 유럽연합과 세계 과학자들, 노벨 평화상 수상자, 종교계가 추진하는 AI자율살상무기 금지협약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시 교수는 2000년 초반부터 AI 관련 연구를 진행하다 무기화 반대 운동을 계기로 행동파 AI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2013년부터 AI자율살상무기 생산을 금지하는 국제적 운동에 참여해 ‘캠페인 투 스톱 킬러로봇(살상로봇 금지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호주 국립정보통신기술연구소(NICTA)에서 과학국장도 맡고 있다. 그는 “AI는 인간이 가진 도덕, 양심, 감정을 가지지 못했다”며 “AI가 인간의 목숨을 결정하고 무기화한다면 화학무기,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보다 더 큰 파괴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월시 교수의 이런 주장이 분단 상태로 대치 중인 한국의 상황을 간과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보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도 AI 무기를 만들어 이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월시 교수는 이에 대해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이 방어용으로 AI를 사용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며 “다만 이런 방어용 AI 무기도 인간의 통제 밖으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월시 교수는 “사람을 해치는 무기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데 AI를 활용해야 한다”면서 “민간 앰뷸런스가 지나가면 미사일 발사를 곧바로 멈추게 하는 것이 AI 자율 시스템이 쓰여야 할 분야”라고 했다. 북한의 AI 자율살상무기 소유에 대해서는 더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3차원(3D)프린터로 값싸고 손쉽게 제조된 AI 자율살상무기가 북한의 손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월시 교수는 “본격적으로 AI 무기 생산이 시작되고 방산업체가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면 AI 무기는 더 싸질 것이며 구하기도 쉬워질 것”이라며 “핵무기를 얻기 위해 했던 그간 노력들을 보면 북한은 머지않아 중국이나 AI 무기가 허용된 국가를 통해 AI 무기를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월시 교수는 AI 자율살상무기 확산 과정에서 한반도가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전락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그는 “비무장지대(DMZ)에서 한국과 북한의 로봇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그리고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며 “오히려 한반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시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대로 AI에 기반을 둔 자율살상무기가 확산하면 우리 인류가 미처 알기도 전에 AI가 마음대로 핵전쟁을 벌이는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우리에겐 아직 그런 미래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사진)는 반도체 설계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히든카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 후보자는 특히 지능형 반도체와 저전력 시스템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을 위해 지난해 12월 서울대 KAIST 포스텍 UNIST 등 4개 대학과 손잡고 출범시킨 대형 산학협력 프로젝트인 뉴럴프로세싱연구센터의 센터장을 맡기도 했다. 청와대는 최 후보자가 1991년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기 전 금성사(현 LG전자) 등 현장에서 일했다며 “반도체 산업 현장 경험과 연구 실력을 두루 갖춰 일본의 수출 제재에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밝혔다. 최 후보자는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의 처남이기도 하다. 김 교수의 부인인 최영애 전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누나, 최무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동생이다. 최 후보자는 지명 직후 낸 소감문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연구개발(R&D) 혁신 등 근본적 대응방안을 마련해 국가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64세) △중앙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KAIST 전기및전자공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박사 △금성사 중앙연구소 연구원 △미국 케이던스 연구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뉴럴프로세싱연구센터장황태호 taeho@donga.com·고재원 기자}

한차례 태풍이 지나고 비를 뿌리며 누그러지나 싶었지만 여전히 폭염은 기세등등하다. 도심 한복판 숨 막힐 듯한 더위 속에 있으면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빌딩만큼 반가운 것은 없다. 문제는 비싼 전기료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2017년 분석에 따르면 미국 도심에 있는 빌딩이 사용하는 전기에너지 중 에어컨 시스템을 가동하는 데만 15%가 쓰인다. 미국 듀크대 연구진이 지난해 말 공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력 소비가 많은 중국 상하이의 경우 여름철 온도가 1도 상승하면 전력소비가 14.5% 늘어난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전력수급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과학자들은 전기를 쓰지 않고도 도심 속 빌딩을 시원하게 만들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4년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건물 냉방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래를 바꿀 아이디어로 지목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받는 기술이 복사냉각을 이용한 방식이다. 낯에 햇빛을 받아 뜨거워진 지표면이 밤새 열을 방출하며 온도가 내려가는 원리를 빌딩에 적용해 흡수한 열기를 신속하게 복사를 통해 바깥으로 방출하는 것이다. 최근 연구 중인 에너지 자립형 기술 가운데 가장 유망한 냉방기술로 손꼽힌다. 미국 버팔로대 연구진은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연구진과 공동으로 이 같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공동 연구진은 폴리디메틸실록산(PDMS)이라는 고분자 물질에 알루미늄을 코팅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 건물 냉각 효과를 입증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 5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 서스테이너빌러티’에 발표됐다. 알루미늄은 태양빛을 반사하는 효과가 있다. PDMS라는 고분자 물질은 주변 공기에서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특성이 있다. 연구진은 바닥이 윗면보다 작은 사각뿔대 모형의 구조물을 만들어 바닥면을 PDMS에 알루미늄을 코팅한 소재로 처리하고 건물 꼭대기에 설치했다. 건물이 받은 열을 바닥면이 흡수해 하늘을 향해 복사 방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시스템으로 건물 내부의 온도를 주간에는 약 6도, 야간에는 약 11도 낮출 수 있음을 입증했다. 연구를 주도한 류주(Lyu Zhou) 버팔로공대 및 응용과학대학 박사과정 연구원은 “이번에 개발한 고분자 물질은 열복사를 통해 주변 온도를 낮출 수 있어 전기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도 빌딩을 냉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복사냉각 방식으로 빌딩을 식히는 연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샨후이 팬(Shanhui Fan) 교수는 2014년 11월 전기를 쓰지 않고 빌딩을 식히는 ‘광 복사냉각’ 장치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했다. 흔히 열은 물질을 흐르는 전도나 가열된 공기가 흐르는 대류, 물체로부터 열이 방출되는 복사 방식으로 전달된다. 팬 교수 연구진은 이 중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을 통한 열 복사 방식에 주목했다.적외선 카메라가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열을 감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연구진은 알루미늄 호일보다도 얇은 1.8㎛(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두께의 초박형 물질에 이산화규소와 산화하프늄을 불규칙적인 두께로 덧씌워 마치 거울과 같은 초박형 다층구조 물질을 개발했다. 이 물질의 내부 구조는 특정 주파수 적외선을 외부로 내뿜도록 설계했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으로 열 방출과 태양빛 반사를 결합해 낮 시간 온도를 주변보다 약 5도 정도 낮추는 데 성공했다. 팬 교수는 2017년 이 연구를 더 진전시켜 같은 원리로 광 복사냉각 장치 표면을 흐르는 물의 온도를 주변 기온보다 낮추는 시스템도 개발했다. 현재 팬 교수와 동료들은 ‘스카이쿨시스템즈(Skycoolsystems)’라는 회사를 창업해 광 복사냉각 장치의 상용화를 준비중이다.팬 교수는 “건물 내부의 열을 시스템에 전달하는 방법과 큰 빌딩에 적용할 수 있는 대규모 패널을 대면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며 “미래에는 전기에너지 없이 빌딩을 냉각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KAIST가 국내 기업의 소재·부품·장비의 원천기술 개발을 돕기 위해 전현직 교수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렸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핵심 소재 부품의 국산화를 지원하자는 취지다. KAIST는 3일 오후 신성철 총장과 주요 보직 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부회의를 열어 명예교수를 포함한 전현직 교수 100명으로 구성된 ‘KAIST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KAMP)’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이날부터 운영에 들어간 자문단은 일본의 수출규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1194개 품목 중 주력산업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는 159개 소재·부품 관련 기업의 연구개발(R&D)과 국산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자문단은 단장 1명과 기술분과장 5명, 명예교수 및 현직교수 10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으로 구성된다. 기술분과별로 해당 분야의 명예교수 및 현직교수 20여 명씩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형태다. 자문단장은 최성율 공대 부학장(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이 맡았다. 이혁모 신소재공학과장은 첨단소재분과, 이영민 화학과장은 화학·생물분과, 이재우 생명화학공학과장은 화공·장비분과, 문재균 전기및전자공학부장은 컴퓨터분과, 이두용 기계공학과장은 기계·항공분과장을 맡는다. 신 총장은 “중견·중소기업의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학내 전담 접수처를 운영하기로 했다”며 “접수 즉시 각 분과장이 자문위원을 지정해 애로 기술에 대한 진단과 기업 현황, 모니터링과 연구개발 계획 수립을 돕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AIST는 자문단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재정을 확충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운영 성과를 보고 지원범위를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기술 자문을 희망하는 중견·중소기업은 전화이나 e메일로 문의하면 된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면역세포를 이용해 암세포만 골라 제거하는 ‘면역항암’ 치료가 진화하고 있다. 숨바꼭질하는 암세포를 정확히 찾을 수 있도록 암세포의 ‘변장’ 능력을 없애기도 하고, 반대로 암세포만이 남기는 희미한 발자국을 탐지하기도 한다. 암세포가 스스로 죽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최근 나왔다. 어빙 바이스먼 미국 스탠퍼드대 발달생물학과 교수팀은 암 세포 표면에서 ‘날 잡지 마’라는 일종의 면역세포 회피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을 발견해 ‘네이처’ 7월 31일자에 발표했다. 우리 몸에서 자라는 암세포는 ‘경찰’ 역할을 하는 면역세포가 천적이다. 이 때문에 암세포는 면역세포를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스스로 체득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변장 전략이다. 면역세포가 다가와도 체포할 대상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기술이다. 바이스먼 교수팀은 암세포 표면에서 면역세포에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을 찾았다. 기존에도 PD-L1, CD47이라는 이름이 붙은 단백질이 일종의 안테나처럼 나 있어 ‘나를 잡지 마’라는 신호를 낸다. 하지만 소수의 단백질만으로는 신호가 약해 암세포가 효과적으로 면역세포를 피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때문에 추가 단백질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연구팀은 암세포가 성장할 때 가장 많이 분비되는 단백질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일반 세포나 그 주변 조직 세포와 비교할 때 CD24라는 단백질이 암세포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CD24도 면역세포 회피 신호를 보내는 여러 단백질 가운데 하나로 판단된다”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실제로 인간의 암세포를 주입한 쥐에서 CD24 신호를 막은 결과 면역세포가 암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바이스먼 교수는 “앞으로는 면역세포를 회피하는 신호를 막는 게 항암치료법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암세포가 남긴 ‘발자국’을 찾는 것이다. 암세포가 남기는 DNA 조각이 대표적인 발자국이다. 체내 단백질 중 하나인 ‘스팅’은 암세포에서 나온 DNA 조각을 탐지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이 있다. 경찰(면역세포)을 돕는 사설탐정 같은 역할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스팅의 기능을 좀 더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보다 효율적으로 찾아 공격하는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김찬, 전홍재 차의과대 종양내과 교수팀은 스팅 단백질에 추가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 밝혔다. 암세포에는 면역세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변 길목(혈관)을 변형시켜 차단하는 능력이 있다. 변형된 혈관은 암세포가 영양분이나 산소를 얻는 데에도 활용된다. 김 교수팀의 연구 결과 스팅은 이런 암세포의 작전을 방해해 암세포 주변의 비정상적인 혈관을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333명의 암 환자를 대상으로 암 혈관에서 스팅을 활성화시킨 후 조직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암 내부의 비정상적인 암 혈관만 제거돼 종양의 성장과 전이가 억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몸속의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을 치료하는 면역항암제는 70%의 환자에서 내성을 갖는다”며 “그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가 비정상적인 혈관이 면역세포가 침투하는 것을 막는 것인데 스팅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암 혈관 내 스팅 단백질이 많을수록 치료 효과가 더 좋다”며 “난치성 암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클리니컬 인베스티게이션’ 7월 25일자에 발표됐다. 김유천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와 윤채옥 한양대 생명공학과 교수팀은 아예 암세포가 스스로 죽도록 유도하는 항암제를 개발했다. 무기는 세포 내 물에 녹아 있는 ‘이온’이다. 세포 내에는 칼륨, 포타슘, 마그네슘, 인산염, 황산염, 중탄산염과 같은 이온이 들어 있다. 이들은 세포의 성장, 분열, 대사 작용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농도가 크게 달라지면 세포가 생존하는 데 치명적인 문제가 되기에, 세포는 늘 체내 이온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김 교수팀은 세포 내의 칼륨 이온을 밖으로 방출시키고 칼슘 이온은 세포 내로 유입시키는 항암제를 개발했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세포 내의 전반적인 이온 항상성을 교란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사이언스’ 5월 24일 온라인판으로 발표됐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국내 연구팀이 치매를 유발하는 뇌 속 찌꺼기의 배출 경로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뇌 속 찌꺼기는 뇌의 대사활동을 통해 생성되는 부산물로 뇌에 축적되면 치매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일으킨다. 앞으로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할 신약 개발의 돌파구가 열릴지 기대된다.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장(KAIST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팀은 뇌 속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 경로가 뇌 하부에 위치한 ‘뇌막(뇌척수막) 림프관’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혀 국제학술지 ‘네이처’ 25일자에 발표했다. 뇌막은 뇌와 신경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3중의 막으로 다른 물질이나 병원체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림프관은 면역세포와 체액이 이동하는 체내 통로다. 연구팀은 쥐의 뇌척수액에 형광물질을 주입한 뒤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뇌척수액이 배출되는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뇌 하부에 위치한 뇌막 림프관을 통해 뇌에 쌓인 대사산물을 밖으로 배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뇌 상부에 위치한 ‘거미막 융모’를 주요한 배출구로 추정했던 기존 연구를 뒤집는 결과다. 연구팀은 노화가 일어났을 때 대사산물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는 현상과 그 원인도 확인했다. 노화 실험쥐의 뇌를 분석한 결과 노화와 함께 뇌 하부의 뇌막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고재원 jawon1212@donga.com·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제압하는 게임이 점차 늘고 있다. 바둑과 체스, 장기는 이미 AI가 일찌감치 인간을 눌렀다. 올해 1월에는 알파스타라는 AI가 ‘스타크래프트2’ 같은 전략 게임에서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10승 1패를 기록하며 인간을 압도했다. 올해 5월에는 ‘포더윈’이라는 AI가 3차원 공간을 돌아다니며 총을 들고 싸우는 복잡한 게임인 ‘퀘이크 3 아레나’에서도 인간 고수를 이기기도 했다. AI가 정복한 게임의 숫자가 늘어나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의 복잡성 때문이다. 바둑, 체스, 장기 같은 보드 게임의 경우 여러 수를 두면서 게임이 진행된다. 한 수를 둘 때마다 경우의 수가 발생하며 이는 AI의 학습 재료가 된다. 여러 수에 걸쳐 쌓인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반복 과정을 거쳐 AI의 지식은 계속 강화된다. 강화된 지식을 확보한 AI는 게임 분야 외에 헬스케어, 보안,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할 수 있는 범용 AI 개발의 기반이 된다. 게임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AI가 얻는 지식의 범위가 넓어지고 범용성도 함께 확대된다. 이런 이유로 게임을 학습하는 AI 연구가 진보하고 있다. 최근 AI가 정복한 게임 영역이 또 하나 늘었다. 피어 발디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루빅 큐브를 약 1초 만에 풀어내는 AI ‘딥큐브에이(DeepCubeA)’를 개발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신인텔리전스’ 15일자에 발표했다. 루빅 큐브는 퍼즐의 일종으로 6가지 색깔의 정육면체가 모여 만들어진 큰 정육면체 6면을 각각 하나의 색깔로 맞춰야 하는 게임이다. 1974년 헝가리의 건축학 교수인 루비크 에르뇌가 처음 개발해 시판됐다. 보통 한 큰 정육면체에 9개의 작은 정육면체가 존재하며 약 4300경의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6면의 색깔이 같아지는 경우는 오직 하나뿐이다. 인간이 가장 빨리 루빅 큐브를 풀어낸 기록은 3.47초다. 연구팀은 루빅 큐브를 빠르게 풀어내는 AI를 개발하기 위해 100억 개의 루빅 큐브 조합을 보여주고 30회 이하로 퍼즐을 풀어내는 연습을 시켰다. 그런 다음 이런 과정을 1000번 반복하며 모든 조합을 딥큐브에이에 학습시켰다. 그 결과 딥큐브에이는 100% 모든 루빅 조합을 풀어냈으며 해법을 찾기 위해 평균 1.2초가 소요됐다. 인간의 경우 일반적으로 50회의 움직임이 필요하지만 딥큐브에이는 평균 20회의 조작으로 루빅 큐브를 맞췄다. 발디 교수는 “AI가 바둑과 체스 분야에서 인간 최고 실력자를 이겼지만 루빅 큐브 같은 어려운 퍼즐은 그전까지 해결하지 못했다”며 “루빅 큐브의 해법은 상징적, 수학적, 추상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AI의 능력은 점점 더 인간의 사고 능력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기다리던 휴가를 떠나며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내비게이션이 예측한 도착시간을 보니 목적지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착오였다. 목적지로 갈수록 차량이 늘어 소요시간이 늘어났고 가족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결국 휴가지에는 반나절이나 늦게 도착했다. 점심 대신 이른 저녁을 먹으며 가족을 달래다가 애꿎은 내비게이션을 원망했다. 누구나 겪어봤을 이런 상황을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고성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팀은 AI의 ‘딥러닝’(심층기계학습)을 이용해 교통정체의 원인을 파악하고, 미래의 도로 상황을 예측해 이를 그래픽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각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현재 쓰이는 도로 교통상황 분석, 예측 시스템은 확률통계기법을 이용한다. 확률통계기법은 도로 등 교통정보를 통계 자료로 만든 뒤 교통량의 변화를 따져 계산하는 기술이다. 현재의 교통 상황을 판단할 때에는 비교적 정확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 도착지로 갈수록 소요시간이 늘어나는 등 예측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게 단점이다. 고 교수팀은 미국 퍼듀대 및 애리조나주립대와 공동으로 확률통계기법에 딥러닝 기술을 도입해 최대 15분 뒤 미래까지 교통상황을 정확히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크게 두 단계로 교통량을 예측한다. 먼저 첫 번째 단계에서는 특정 도로 구간의 과거 평균 이동속도, 도시 도로망, 주변 도로 정체상황, 최근 3개월 치의 출퇴근 교통 정보를 시스템에 학습시켜 이를 바탕으로 교통상황을 분석하고 예측하게 했다. 여러 도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까지 계산해 교통정체를 예측하는 것이다. 제1저자로 연구에 참여한 이충기 UNIST 컴퓨터공학과 연구원은 “특정 도로가 막히는 상황이 주변 도로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착안해 새롭게 알고리즘을 짰다”며 “과거 데이터와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함께 학습하면서 예측하기 때문에 기존 방식보다 예측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팀이 울산 전역 도로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특정 도로 구간에서 15분 후에 벌어질 도로 속도를 평균 시속 4km 내외의 오차로 예측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또 15분 후의 도로 정체 상태 예측에선 서행의 경우 88%, 정체의 경우 78%의 정확도로 예측했다. 이어 두 번째 단계에서는 AI가 예측한 정보를 시각화했다. 도로별로 통행하는 차량 수와 평균 이동속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현재 정체되는 도로에서 정체가 시작된 지점과 향후 도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한 모습을 색깔과 도형으로 시각화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시스템은 현재 울산교통방송에서 활용 중이다. 올해 말 광주와 대전, 부산, 인천 교통방송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고 교수는 “현재 다수의 내비게이션 회사와도 협의 중”이라며 “향후 다가올 자율주행차 시대에도 좋은 기초 자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 교수는 “새로운 데이터 시각화 기술은 도시교통정보센터(UTIC) 웹사이트에 올려 누구나 쉽게 도로 교통 상황을 파악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시각화와 컴퓨터그래픽’ 지난달 12일 온라인판으로 발표됐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가 한 달 넘게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수돗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구경북 지역 수돗물에서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돼 한때 마트의 생수가 동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수돗물 속에 포함된 질산염이 허용 기준치 이하여도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와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질산염은 유기물 중 질소화합물이 산화하면서 분해돼 무기화한 물질로, 식수를 통해 몸 안에 들어올 경우 아질산염으로 바뀐다. 아질산염은 헤모글로빈을 산화시켜 조직에 산소를 원활히 실어 나르지 못하게 하는 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질소질비료, 축산 분뇨, 생활하수 등이 상수원으로 흘러 들어가면 수돗물의 질산염 농도가 높아진다.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라 음용수 기준으로 L당 10mg 이하로 지정했다. 서울 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6개 아리수정수센터의 수질검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2월부터 최근까지 평균 L당 1∼3mg의 질산염이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있다. 문제는 질산염이 허용 기준치 이하여도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비영리 환경단체 EWG는 미국 내에서 해마다 1만2594건의 암 발생이 수돗물 속에 포함된 질산염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환경연구’ 최근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010년부터 2017년 질산염 오염이 발생한 미국 내 수도 시스템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약 8100만 명이 L당 평균 1mg 이상의 질산염에, 약 600만 명이 L당 평균 5mg의 질산염에 노출돼 있었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오염물질에 특정 농도로 노출됐을 때 나타날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확률로 평가했다. 분석 결과, 해마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미숙아 출산 가운데 2939건, 조산 가운데 1725건, 신경관결함(뇌와 척수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나타나는 선천성 기형) 가운데 41건이 수돗물 속에 포함된 질산염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대장암과 난소암, 갑상샘암, 신장암, 방광암을 포함해 연간 1만2594건의 암 발생과도 관련이 있었다. 연구팀은 “특히 질산염으로 발생하는 암 중 84%는 대장암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덴마크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토르벤 시그스고르 덴마크 오르후스대 공중보건과 교수 연구팀은 1978∼2011년 덴마크인 270만 명을 추적해 질산염에 노출된 사람들과 대장암 발병 간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현행 기준치를 크게 밑도는 L당 3.87mg 이상의 질산염에 노출될 경우에도 대장암 발병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WG의 올가 나이덴코 선임고문팀은 추가적으로 질산염이 대장암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 8개를 모아 메타분석을 했다. 메타분석은 특정 주제의 연구 결과들을 수집해 통계적으로 재분석하는 방법이다. 연구팀은 “질산염이 L당 0.14mg 이상일 경우 몸에 유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나이덴코 고문은 “질산염은 현행 기준치의 10분의 1 수준이어도 암이나 다른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초소형위성 제작 스타트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이달 3일 서울에서 부산으로 회사를 옮겼다. 올해 4월 ‘지역발전투자협약 시범사업’에 부산형 초소형위성인 ‘부산샛’ 구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미래해양도시 부산의 해양신산업 혁신성장 생태계 조성’ 사업이 선정됐기 때문이다. 기존 산업에 첨단기술을 도입하려는 부산시와 위성 해양측정기술을 보유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위성 제작기술을 갖춘 기업이 모여 초소형위성을 통한 해양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지자체가 우주기술을 해양관리에 이용하는 국내 첫 시도다. 2022년경 420km 고도에 초소형위성 12개를 띄워 부산항을 1시간 이내 간격으로 상시 관측하는 것이 첫 목표다. 1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광학 카메라와 적외선 카메라를 탑재해 해양과 항만 지역을 감시한다. 선박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선박용 무선통신기술(VDE)과 선박 자동식별장치(AIS)도 들어간다.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페리지항공우주로켓’은 2020년 소형발사체를 쏘아 올린다. 한국에서 민간이 주도해 개발한 소형발사체가 우주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발사체에는 2021년 나라스페이스가 개발한 초소형 시험위성도 탑재체로 실릴 예정이다. 우주개발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의 사업으로 바뀌고 있다. 이른바 ‘뉴스페이스’ 시대다. 이제는 세금을 들여 지원해야 할 분야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 상업적으로 투자하고 사업을 통해 이윤을 얻는 산업의 일부가 된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민간 주도하에 우주산업 시장 규모가 2017년 3240억 달러(약 378조 원)에서 2040년 1조1000억 달러(약 1286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미국 우주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스페이스 에인절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투자자금이 들어간 우주개발업체는 2000년 24개에서 올해 375개로 늘어났다. 지난 10년간 발생한 민간 투자액은 190억 달러(약 22조1000억 원)에 이른다. 나라스페이스가 주력하는 초소형위성은 2010년대 초부터 상업적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뉴스페이스 사업 분야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2014년 설립된 미국의 우주개발업체 ‘플래닛랩스’가 꼽힌다. 100대 이상의 초소형위성을 이용해 24시간 지구 전역을 그물망처럼 촬영하며 하루 120만 개 이미지를 생성한다. 촬영된 사진과 영상은 농업, 국방, 첩보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일본 우주개발업체 ‘악셀스페이스’도 소형위성으로 관측한 데이터를 판매하고 있으며 2022년까지 총 50개의 인공위성을 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통적인 위성서비스 기업도 활발히 활약하고 있다.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SES는 정지궤도와 중궤도에 73개의 인공위성을 운용 중인 세계 최대 위성운용회사다. 1985년 설립된 뒤 1988년 첫번째 위성 ‘아스트라1A’를 발사하며 유럽 최초의 민간 위성운용회사가 됐다. 지금은 통신, 방송, 데이터 중계 등 다양한 위성서비스를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다. 2017년 매출액은 약 20억 유로(약 2조5000억 원)에 달한다. 위성기술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도 선전하고 있다. 해상용 위성통신 안테나로 세계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업체 ‘인텔리안테크놀로지’는 올 5월 세계 최대 위성 콘퍼런스인 ‘새틀라이트 2019’에서 ‘올해의 위성기술상’을 수상했다. 세계 최초로 2.4m 크기의 다주파수, 다궤도 안테나를 개발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세 가지 대역의 주파수와 정지궤도, 중궤도 등 여러 궤도의 위성을 자동으로 추적하는 세계 유일의 안테나다. 속도도 10배 이상 높였다. 세계 최대 크루즈선사인 카니발사의 선박에 설치되는 등 초고속 대용량 위성인터넷이 필요한 곳에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계획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2012년 설립된 영국 스타트업 ‘원웹’은 2021년까지 130kg의 위성 648개를 1200km 상공에 올려 세계에 무선 네트워크를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저장과 처리에 비용이 많이 드는 인공위성 데이터 다운로드를 위한 클라우드 기반의 지상국 서비스를 제공한다. 샤인 호손 AWS 총괄은 “우주산업 인프라를 제공해 우주통신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조승한 shinjsh@donga.com·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국내 화학 분야 최고 권위자인 장석복 KAIST 화학과 특훈교수(기초과학연구원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와 시스템반도체 제조공정 개발에 힘쓴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선정한 2019년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에 2일 선정됐다. 이 상은 국내 과학기술 분야의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장 교수는 기초과학 분야인 ‘탄소-수소 결합 활성화 촉매반응’ 분야에서 선도적인 업적을 달성해 전 세계적 연구방향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료로 쓰이는 메탄, 프로판, 부탄 등을 적절한 반응을 통해 의약품이나 소재 등 유용한 분자로 만드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장 교수는 “연구 현장에서 국가와 사회에 더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김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 제조공정 및 설계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해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크게 도약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부회장은 1983년 64K D램 개발부터 2014년 20나노급 4기가 D램 세계 최초 개발 및 양산, 2017년 3차원 V-낸드 플래시 메모리 양산, 세계 최초 14나노 핀펫 및 극자외선(EUV) 적용 7나노 제조공정기술 개발을 이끌어오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시상식은 4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대한민국 과학기술연차대회’와 함께 열린다. 수상자들은 대통령 상장과 함께 각각 3억 원의 상금을 받는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 논고악 오름(작은 화산체)에서는 귀가 먹먹할 정도의 굉음이 들렸다. 한라산 등산로의 입구인 성판악 부근에 있는 논고악은 제주 전역에 걸쳐 있는 386개 오름 중 하나다. 정체불명의 굉음은 지름 8cm의 구멍을 뚫는 소형 시추장비가 낸 소리다. 이날 오전 헬기로 산 아래에서 공수된 시추장비는 오전에 조립 작업을 마친 뒤 곧장 우렁찬 소리와 함께 첫 시추에 들어갔다. 한참 땅을 파내려가던 시추장비가 잠시 작동을 멈추자 분화구 속 흙을 담은 파이프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1m 단위로 시추를 반복하자 논고악은 점점 그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임재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논고악 분화구 속 퇴적층은 수천수만 년 전 기후(고기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며 “분화구 내부 깊은 곳의 퇴적층까지 채취하기 위해 깊이 30m까지 시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임 책임연구원은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기초학술조사’ 사업의 책임을 맡고 있다. 2016년 시작한 이 사업은 한라산천연보호구역의 보전을 위해 이 지역 지형·지질, 동식물, 기후 등을 연구한다. 올해는 고지대 분화구 퇴적물 시추 및 시료 채취를 통해 오래전 제주도 기후 환경을 해석하는 연구를 중점 진행하고 있다. 연구원들이 지상으로 올라온 파이프 속 퇴적층을 반으로 갈랐다. 이어 1m 간격으로 시료를 채취해 준비한 봉투에 담았다. 임 책임연구원은 “이렇게 채취된 시료를 분석하면 퇴적층이 1m 쌓이는 동안의 기후 변화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퇴적층이 1m 쌓이는 데 걸린 시간은 탄소 동위원소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탄소는 질량이 12인 것과 14인 것이 있다. 자연에는 탄소12와 14가 일정한 비율로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탄소14의 양만 일정한 속도로 줄어든다. 이를 역산해 최대 5만∼500만 년 전 유기물이 존재하던 연대를 계산할 수 있다. 지질 연구자들에게 제주도 오름과 내부 퇴적층은 ‘예쁜 그릇’과 ‘타입캡슐’로 불린다. 임 책임연구원은 “마치 오목한 예쁜 그릇처럼 생긴 오름에 쌓인 퇴적층을 통해 타입캡슐을 열어본 듯 흙이 쌓일 당시의 기후를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화구에 물이 적을 때는 풀과 나무가 자라는 면적이 넓어지는 반면 물이 많을 때는 땅이 물에 잠기며 식물이 자라는 면적이 줄어든다. 풀과 나무는 탄소 동위원소 비율이 달라 당시 고인 물과 풀, 나무의 경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어 퇴적층이 생길 당시 기후를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논고악의 경우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더 정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시료를 살펴보던 홍세선 지질연 지질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퇴적층은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쌓이며 나이테처럼 뚜렷한 층을 보인다”며 “그런 퇴적층을 밀리미터(mm), 마이크로미터(μm) 단위까지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주 화산에 대한 연구는 주로 산정상의 백록담 주변에 집중됐다. 아직까지 한라산 보호구역 내 40여 개 오름을 비롯해 제주도 오름 대부분의 형성 과정과 시기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임 책임연구원은 “한라산천연보호구역에서 4년에 걸쳐 진행된 주요 오름의 지질조사와 연대 측정 결과를 종합하면 한라산 전체의 형성 과정을 처음으로 학술적으로 규명하고 한라산 고기후 변화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현재 한라산 곳곳에서 모은 퇴적물 시료를 분석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6년 백록담, 2017년 물장오리 오름, 지난해 사라 오름 속 퇴적층을 채취했다.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기초학술조사는 올해 11월 사업이 마무리된다. 연구진은 이때까지 최종 결과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그동안 연구를 진행해 오며 많은 성과를 냈다. 한라산 백록담이 최소 1만9000년 전에 형성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백두산에만 분포하는 암석으로 알려졌던 코멘다이트라를 한라산 일대에서도 처음 발견했다. 레이저 빛이 물체에 맞고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물체의 형태와 위치를 알아내는 라이다(LIDAR·레이저 레이더)를 항공기에 실어 한라산천연보호구역 전 지역의 모습을 정밀 촬영했다. 이를 통해 한라산의 식생이나 암석, 토양을 살펴볼 수 있는 연구 기초자료를 마련하기도 했다. 성판악 탐방로 침식 및 훼손 현황을 등급화해 한라산 탐방객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임 책임연구원은 “사업 종료 후에도 제주도가 화산과 고기후 연구에 있어 세계적인 기초학술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한라산 연구를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서귀포=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