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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되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 수용에 대해 거센 역풍이 불자 각 부처가 일제히 “김영철이 주범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남북 대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지나치게 북한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오히려 역풍이 더 거세질 조짐이다. 통일부는 23일 이례적으로 A4 용지 6장 분량의 설명자료를 내 “일부 국민들께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문과 관련해 염려하는데 충분히 이해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 여러분께서도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대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어 “천안함 폭침은 분명히 북한이 일으켰으며 김영철 부위원장이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던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 관련자를 특정해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김영철을 배후로 지목해 왔지만 북한이 김영철의 방한을 통보한 뒤 정부가 전날에 이어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대북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도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김상균 국정원 제2차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김영철에 대해 “추측은 가능하지만 명확하게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을)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보고했다고 정보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이 전했다. 국방부 최현수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김영철의 주범 가능성에 대해 “공식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며 “(국방부 공식 문건에) 공식적으로 김영철이나 정찰총국을 언급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 국정원, 국방부 등 대북 관련 기관들이 일제히 ‘김영철 변호’에 나선 형국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남북 대화를 넘어 북-미 대화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김영철의 방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전부장은 북핵·미사일 문제 등을 총괄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실무 총책임자”라며 “(우리가 북한과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고는 북-미 대화 문제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북한이 김영철을 보내겠다는데 우리가 마냥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서 북한 김여정에게 “남북 관계와 북-미 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전한 메시지에 대한 답변을 김영철이 갖고 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과 김영철의 접견에서는 북-미 대화를 위한 여건 조성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다음 달 9∼18일 열리는 평창 패럴림픽의 북한 대표단 참가를 논의하는 남북 실무회담이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다.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박훈상 기자}
지난해 남북한 평화지수 격차가 전년보다 더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22일 세계평화포럼(이사장 김진현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통계 수집이 가능한 195개국을 대상으로 종합 분석해 발간한 ‘세계평화지수(WPI·World Peace Index) 2017’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평화지수는 75.3점(70위)으로 2016년(72.7점)보다 2.6점이 상승했다. 북한은 2016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54.8점을 유지해 163위에 머물렀다. 세계평화포럼은 2016년까지 143개국을 대상으로 지수를 산정했다가 지난해 52개국을 새롭게 조사 대상으로 추가했다. 기존 조사 대상 143개국만을 추려서 보면 한국은 2016년 52위에서 지난해 46위로 6계단 올라왔고, 북한은 114위에서 116위로 2계단 떨어졌다. 이날 발표된 WPI는 2017년 1월 1일 0시를 기준으로 측정됐다. 따라서 WPI 산정 이후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화성15형’ 등의 시험 발사로 악화된 한반도 상황을 반영하면 남북한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는 또 한국의 국내 정치평화 수준은 46위(87.5점), 사회·경제평화 수준은 22위(82.6점)로 높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 탄핵 사태 속에서도 평화시위가 유지됐던 점 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군사·외교 평화 수준에서는 173위(55.8점)로 나타나 악화된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세계에서 평화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는 덴마크(90.8점), 가장 평화가 취약한 국가로는 남수단(20.2점)이 꼽혔다. 일본은 22위, 미국은 83위, 중국은 141위를 기록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김정은이 천안함 폭침사건의 배후이자 한국 미국 등 전 세계 31개국의 제재 대상인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72)을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위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보내기로 하고 우리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영철은 정부가 천안함 배후로 지목해 직접 사과까지 요구했던 인물이지만 정부가 이제 와서 “주역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며 청와대 예방까지 검토하고 있기 때문.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지난 방한에서 천안함 기념관을 찾은 것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천안함 배후’ 김영철을 보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한미동맹, 대북제재망의 동시다발적 균열을 노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철은 1989년 2월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북측 대표로 시작해 남북대화 대표 경력만 30년 가까운 ‘대남 사업’ 베테랑. 인민군 대장 출신의 군내 대표적 강경파이기도 하다. 2009년 대남공작 사령탑인 총참모부 정찰총국장, 2016년 통일전선부장(부총리급)을 맡으며 대남 정책을 지휘해 왔다. 올해 남북대화 국면에서 자신의 ‘오른팔’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내세웠지만 이번에는 직접 전면에 나선 것이다. 김영철은 2012년 8월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에 올랐고, 2016년 3월 우리 정부의 금융제재 대상이 됐다. 일본과 호주, 유럽연합(EU) 제재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폐막식 참가를 위해 오는 만큼 대승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받아들일 예정이다. 미국과도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당시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에서도 누가 주역이었다는 부분은 없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선 천안함 사건과 무관하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김영철은 대남 도발을 인정하지 않거나 오히려 한반도 긴장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정부는 2014년 10월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당국자 간 접촉에서 북측 단장으로 나온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에게 천안함 폭침 책임 시인 및 사과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영철은 발뺌을 했다. 그 대신 북측은 우리 정부가 천안함 폭침 이후 취한 ‘5·24조치’의 해제를 요구했다. 물론 이와 별개로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남북대화 기조를 올림픽 후에도 이어갈 수 있는 실질적 파트너라는 데 남북이 공감대를 형성했을 수도 있다. 대남 사업 전문가인 만큼 북핵 이슈 등 한반도 상황을 논의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 정부도 김영철 방남 수용 논란에 “결과로 말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은 25일 폐막식 당일 와서 이틀을 더 머무는데 이는 폐막식 이후 활동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청와대를 예방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수도 있고, 우리 측 카운터파트인 서훈 국가정보원장과도 만날 것으로 보인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폐막 후 일정을 넉넉히 잡은 것은 결국 국정원과 얘기를 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철이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 등 미국 인사를 공식 접촉할 가능성은 적지만 비공식 접촉 가능성은 열려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 대표단 중 김영철이 만날 사람이 딱히 없는 만큼, 한국에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 인사들과 접촉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황인찬 hic@donga.com·신나리 기자}
감사원이 올 상반기(1∼6월)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처, 국가안보실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20일 밝혔다. 청와대 기관운영 감사는 2003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감사원은 청와대에 대해 2004년부터 예산에 대한 재무 감사만 해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상위 기관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지적과 함께 현 정부 청와대가 아닌 이전 정권에 대한 표적 감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감사원 관계자는 “최근 1년간의 업무를 중점적으로 볼 것”이라며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된 것은 열람이 어려운 만큼 지난 정부를 타깃으로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감사원은 자율주행차와 드론, 태양광에너지,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등 ‘혁신성장’을 이끌 신성장 산업 5개 분야에 대해서는 감사를 자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감사 자제 대상은 5개 분야 총 13개 사업이다. △무인이동체(자율주행차, 드론) △정보통신기술(ICT) 융합(IoT·클라우드·로봇, 정보보호, 스마트시티·팜·공장) △바이오헬스(유전체·바이오, 의료기기) △신소재와 에너지신산업(바이오에너지, 태양광에너지, 풍력·조력·연료전지) △신서비스(O2O, 핀테크)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대상 산업을 선정했다는 게 감사원 설명이다. 박찬석 감사원 기획조정실장은 “신산업이 태동하는 단계에 감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줄이고 공무원들이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감사를 자제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회계 비리 등 명백한 위법행위는 예외 없이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평창에서 ‘진짜 이방카’가 한국인을 사로잡을 것이다.” 20일 정부 고위 당국자는 23일 방한할 것으로 알려진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사진)의 방한 효과를 이렇게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방남 활동을 두고 “북한의 이방카가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인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 것을 빗댄 것이다. 3박 4일간 한국에 머물 것으로 알려진 이방카의 일정은 스포츠와 인권 이슈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방카는 방한 첫날 평창에서 미국 선수단을 방문해 응원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김여정이 고위급 대표단으로서 북측 선수단을 응원하고 예술단을 격려 방문했던 것과 비슷한 행보다. 다만 김여정이 옅은 미소와 도도한 표정으로 공개적인 발언을 아낀 것과 달리 이방카는 적극적인 발언과 제스처로 시선을 끌어모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악관은 이방카의 방한 기간에 평창 겨울올림픽 스키 종목 경기를 직접 관전하는 일정을 정부와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포츠광’인 이방카는 스키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체코 스키 선수 출신인 친모 이바나 트럼프의 영향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한 소식통은 “이방카가 슬로프에서 직접 스키를 즐길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방카가 탈북 여성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북한 인권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 김정은 정권 압박에 나설지도 관심이다. 아버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취임 첫 국정연설에 탈북자를 초청한 데 이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방한해 탈북자를 면담한 것과 같은 기조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박상학 북한인권단체총연합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 정부 인사로부터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10, 20대 여성들을 (이방카 방한 시) 연결시켜 달라는 부탁을 최근 받았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이어 “미국 정부 관계자가 ‘이방카는 (탈북자에) 관심이 많다. 자신의 재단을 움직여 탈북 여성들을 도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만남이 성사되면 이방카는 방한 첫날인 23일이나 24일 4, 5명의 탈북 여성을 만나 북한 인권 실태를 듣고 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회식에 참석했던 펜스 부통령이 천안함을 찾아 북한을 ‘감옥 국가’라고 쏘아붙인 것과 같은 직접적인 대북 압박 발언은 자제할 듯하다. 정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이 북한에 대해 ‘배드 캅(나쁜 경찰)’ 역할을 했다면 이방카는 상대적으로 ‘굿 캅(좋은 경찰)’ 역할을 맡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림픽 경기 관전과 폐막식 등 4일간의 일정 중 이방카에게 대북 정책과 통상 문제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방카 방한 시 유력한 카운터파트로 꼽혔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방카 접대’엔 한발 비켜설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열릴 올림픽 폐회식에 불참하기 때문이다.신진우 niceshin@donga.com·신나리 기자}

이명박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진)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성과가 담보되지 않는 남북 정상회담은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 교수는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19일 개최한 제8회 화정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북한이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완성했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훈풍이 부는 현재의 남북 관계를 ‘파시(波市·풍어기에 열리는 일시적인 시장)’에 비유하며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바뀔 듯한 착시 현상에 빠져 있지만 곧 맞닥뜨리게 될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평화 공세로 이어지는 남북 대화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이긴 하지만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라고도 했다. 현 교수는 “남북 대화를 진전시키겠다고 하면서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 및 중단이나 대북제재 해제 등 여러 가지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자질구레한 전제조건이 달린 대화는 해봤자 싹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이 요구를 하느냐 여부가 대화의 진정성과 의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1차 관문이 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현 교수는 대북특사 이슈가 부드럽게 풀려야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부에서 일했던)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작은 대화가 모여서 큰 대화가 되진 않았다. 큰 대화는 단번에 된다. 그리고 그것만이 한반도 위기 해결이라는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또 “남북 정상회담 추진 시 가장 어려운 사안은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낼 수 있느냐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2009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 사절로 방남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청와대에서 김정일의 초청장을 구두로 전했던 일을 언급하며 “그 이후 남북 간에 정상회담에 대한 후속 대화도 있었지만 결국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해 무산됐다”고 했다. 현 교수는 북핵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북-미 간 빅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노 레짐 체인지’(체제 유지)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맞바꾸는 것만이, 가능성은 바늘구멍만큼 작아 보이지만 실낱같은 희망이자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북한 눈높이에 맞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단연코 실패할 것”이라며 “판을 더 크게 위에서 보고 미국과 긴밀한 협조를 해야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조언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정부는 14일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 숙식 지원 등을 위해 남북협력기금에서 28억6000만 원을 떼어내 마련키로 의결했다. 정부는 이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 주재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이하 교추협)를 열어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23억 원, 대한체육회에 1억8000만 원, 세계태권도연맹에 1억2000만 원을 지원하는 등 총 26억 원 규모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산정했다. 여기에 예비비 조로 10%를 얹어 지원 기금 규모를 확정했다. 이는 단일 스포츠대회 참석을 위해 방남한 북측 대표단을 위해 정부가 의결한 남북협력기금으로는 최대 액수다. 통일부는 당초 23억 원 규모로 내부 검토를 마쳤다. 그러나 현재 북측 대표단의 체류 상황 등을 고려해 조직위원회 지원액을 3억 원가량 늘렸다고 한다. 남북협력기금 지원은 사후정산 방식이어서 실제 집행액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의결한 금액의 70% 이하인 10억 원대 후반으로 집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마지막 공연을 한 북한 태권도시범단 31명은 15일 오전 인천공항(임원진 3명)과 경의선 육로(시범선수 28명)로 돌아간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3일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 응원단 등 300여 명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남북 대화 기조를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지난달 1일 신년사 발표 후 전개하고 있는 평창 드라이브를 넘어 남북 간 교류 확대를 구체적이고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김정은, 한국에 이례적 감사 표시까지 김정은은 이날 김여정 등 고위급 대표단의 한국 방문 결과를 보고받고 “이번 올림픽 경기대회를 계기로 북과 남의 강렬한 열망과 공통된 의지가 안아온 화해와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더욱 승화시켜 훌륭한 결과들을 계속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남북교류 발전에 대한 실무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은 또 “김여정 동지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남측 고위인사들과 접촉 정형(상황), 이번 활동기간에 파악한 남측의 의중과 미국 측의 동향을 자상히(상세히) 보고했다”고 전했다. 2011년 12월 집권한 뒤 북한 땅을 벗어난 적이 없는 김정은이 여동생을 통해 서울과 평창에서 파악한 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동향을 보고받았다는 것. 이어 신문은 “(김정은이 김여정의 보고에) 만족을 표시했고 남측이 우리 측 성원들의 방문을 각별히 중시하고 온갖 성의를 다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면서 사의(謝意)를 표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한국에 감사를 표한 것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조문에 사의를 표한 후 처음이다. 이런 내용은 노동신문 1면 톱기사로 실렸다. 10일부터 나흘 연속 남북교류 기사가 노동신문 1면을 장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은이 평창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쥐어보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진짜로 대화 기조를 이어가려는 것인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을 잠시 벗어나려는 것인지는 지난달 고위급회담의 결과물 중 하나인 남북 군사회담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군사회담에서 북한이 4월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무조건 중단이나 연기를 막무가내로 요구한다면 다시 남북, 한미 관계가 복잡한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고 말했다. ○ 靑, “속도조절하되 남북, 북-미 대화 원샷 추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에 대해 “미국이 ‘최대압박(maximum pressure)’과 함께 ‘관여(engagement)’ 정책을 취하겠다고 밝힌 것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이 평창 개회식을 마치고 11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대화할 것이며 이게 최대 압박과 관여 정책”이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면서다. 청와대는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를 병행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인도적 교류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고 비핵화 협상으로 나가려는 구상이었지만 이젠 한 테이블에 다 놓고 협의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미국의 반응이 아직 유동적인 만큼 속도를 조절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방침이다. 한편 정부는 14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고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지원을 위한 남북협력기금의 집행 규모를 정할 예정이다. 본보 확인 결과 23억 원이 기금에서 나갈 것으로 보인다.황인찬 hic@donga.com·문병기·신나리 기자}

정부가 14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이하 교추협)를 열어 북한 대표단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남북협력기금 약 23억 원을 지원하는 계획을 의결할 것으로 확인됐다.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자유한국당 정양석 의원실에 따르면 △겨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20여억 원 △대한체육회 1~2억 원 △세계태권도연맹(WT) 1억 원 내외 등의 지원안이 교추협을 통과할 것으로 파악됐다. 통일부는 총 지원 규모를 20억 원 대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이 완료된 이후 비용이 정산되는 만큼 기존 사례에 비춰 볼 때 실제 집행되는 금액은 의결 금액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주요 지원 항목별 세부내역은 크게 세 가지다. △북측 응원단과 선수단·기자단·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단 등의 숙식비로 10억여 원 △경기장 등 입장료 10억여 원 △수송비 등 명목으로 1~2억 원이다. 이 가운데 대한체육회에 지원되는 남북협력기금은 지난달 31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강원 원산 인근 마식령스키장에서 열린 남북 스키선수 공동훈련을 위해 방북한 한국 선수단과 대표단 등이 이용한 아시아나 전세기 항공지원비로 약 9000만 원이 포함됐다. 선수단 본진에 앞서 먼저 내려온 북한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진천선수촌 입촌비 및 숙식비도 들어있다. WT 지원금은 북한 태권도시범단 숙식비와 수송비, 자재구입비 등의 명목이다.정 의원은 앞서 6일 교추협 사전절차적 성격으로 열린 남북협력기금관리심의위원회(기심위)에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 예술단 사전점검단과 북한 선수단 선발대에 대한 지원 금액으로 약 2700만 원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당시 기심위에서는 북한 대표단 참가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액을 29억 원 내외로 산정했으나 실제 교추협에서는 6억 원 가량이 깎일 것으로 보인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강릉과 서울 두 차례 공연으로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전후에 화제를 모았던 삼지연관현악단이 12일 북한으로 돌아갔다. 15년 6개월 만에 열린 북한 예술단의 한국 공연이었지만 우리 노래를 많이 공연에 포함시키고, 북한 체제 선전 노래를 빼 대체로 무난한 공연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삼지연관현악단 단원 137명(예술단 114명, 기술진 23명)이 이날 오전 11시 20분경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돌아갔다. 예술단은 6일 만경봉92호를 타고 동해시 묵호항에 도착한 뒤 엿새 만에 돌아간 것. 올 때는 배편으로 왔지만 돌아갈 때는 경의선 육로로 갔다. 현 단장은 출입사무소 귀빈실에서 천해성 통일부 차관 등과 30여 분간 환담을 나눴지만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단원들은 남한에서 보낸 소감 등을 묻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 등 북측 대표단이 보는 앞에서 중창단과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을 불렀던 현 단장도 별다른 소감을 밝히지는 않았다. 삼지연관현악단은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8·15민족통일대회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북한 예술단이었다. 방한 전에는 현 단장의 사전점검 방문 취소, 만경봉92호로 이동수단 변경, 북한의 유류 공급 요청 및 취소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예술단이 북으로 돌아갈 때 출입사무소에는 우리 당국에 북송을 요구하는 탈북 여성 김련희 씨가 기습적으로 등장해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원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자 김 씨가 한반도기를 흔들며 달려 나와 “얘들아 잘 가!” “평양 시민 김련희다”라고 소리쳤다. 일부 단원은 김 씨를 알아보기도 했고, 한 북측 단원은 “김련희 씨 북으로 가고 싶다는데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입통제구역인 CIQ에 김 씨가 들어오게 된 경위에 대해 당국은 진상조사 중이다. 김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출입사무소 근처에 지인이 살고 있어서 놀러갔다. 오늘 아침에 예술단이 들어간다는 소식에 이 땅에서 가장 마지막 끝에 있는 길에서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서 고향 사람들 얼굴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바래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1년 9월 중국 선양(瀋陽)의 북한 식당에서 일하다 탈북한 김 씨는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으로 잘못 왔다.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 국민을 북송할 근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파주=공동취재단}

“‘북한의 이방카’가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인을 사로잡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 이렇게 분석했다. 김여정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미국을 주무르고 있는 이방카에 빗댄 것이다.○ 대통령, 총리,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까지 총출동 김여정은 9일 도착해 11일 평양으로 돌아갈 때까지 서울과 강원지역을 종횡무진하며 가는 곳마다 시선을 모았다. 인천공항에서부터 각종 오찬·만찬장까지 그를 둘러싼 철벽 경호와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 수수한 화장과 옷차림에 우상단을 향하는 글씨체 등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김일성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다. 정부는 국빈급 예우로 김여정을 맞았다. 2박 3일간 만난 인사들 면면만 봐도 여느 해외 정상 못지않다. 문 대통령만 네 차례 만났고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천해성 차관 등 대한민국 외교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을 다 만났다. 올림픽 개회식, 대통령 오찬, 통일부 장관 만찬, 총리 오찬, 비서실장 환송 만찬까지 특급 환대가 쉴 틈 없이 펼쳐졌다. 이 총리는 11일 김여정 숙소로 직접 가서 오찬을 했다. 이 총리는 “평창 올림픽은 작은 시작이다. 남과 북은 평창 올림픽으로 열린 대화의 기회를 올림픽 이후에도 살려 나가야 한다”고 말한 뒤 김여정과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라며 건배했다.○ 김여정 “갑자기 (서울에) 오게 되리라 생각 못 했다” 국내외의 큰 관심에 비해 김여정의 발언은 별로 공개되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하면서 발언에 무게감과 신뢰감을 실으려 노력한 모습이었다. 임 실장이 11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주재한 만찬에서 건배사를 제의하자 김여정은 “제가 원래 말을 잘 못한다”고 수줍어했다. “솔직히 이렇게 갑자기 (서울에 특사로) 오게 되리라 생각 못 했고 생소하고 (평양과) 많이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비슷하고 같은 것도 많더라. (남북이) 하나 되는 그날을 앞당겨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을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공연 후에도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에게 “늘 건강하시라. 문 대통령과 꼭 평양을 찾아오시라”고도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객관적으로 봐도 절제되어 여러 가지를 준비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여정은 고위급 대표단으로서 북측 선수단을 응원하고 예술단을 격려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여성 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와 삼지연관현악단 서울 공연을 관람하며 주로 웃고 손을 흔들었다. 예술단 공연에서 김영남이 손을 높여 박수를 치거나 골 찬스에서 흥분하고 탄식했던 적극적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정부는 김여정의 일정 내내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김여정 일행을 위해 정부 측이 10일 강릉 스카이베이호텔과 씨마크호텔 두 곳에 각각 양식과 한식을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다 한식이었던 10일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메뉴를 감안해 씨마크호텔에는 만찬 5시간 전에 갑작스럽게 예약 취소를 통보했다. 김여정 일행을 위해 정부가 ‘노쇼’를 감수한 것. 스카이베이호텔도 만찬 당일인 10일 오전 1시경 급하게 정부 요청을 받고서는 사전 예약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의 만찬 장소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 일행의 숙박 여부를 정부가 확정하지 않아 VIP 전용인 스카이베이호텔 4층 객실을 모두 예약 상태로 유지하기도 했다. ‘김여정맞이’에 들어간 두 호텔의 의전 비용은 정부가 전액 세금으로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홍정수 / 강릉=이지훈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31)이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가하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 일행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6·25전쟁 이후 김일성 일가의 첫 방남이다. 전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서 연설 중인 오빠 뒤에 나타났다가 황급히 기둥 뒤로 숨었던 김여정은 하루 뒤 한국에 와서는 고개를 살짝 치켜든 도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실세 단장은 나” 9일 오후 1시 47분 김정은의 전용기인 ‘참매 1호’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편명은 ‘PRK-615’. ‘PRK’는 북한을 의미하며, ‘615’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6월 15일을 뜻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도착 10여 분 뒤 공항 VIP접견실에 가장 먼저 들어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멈춰서 문 쪽을 뒤돌아보며 잠시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김여정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웃으며 방향을 돌려 소파로 향했다. 착석할 때도 비슷한 모습이 나왔다. 김영남이 김여정에게 상석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자 김여정이 환하게 웃으며 ‘사양’하는 손짓을 한 것. 결국 잠시 승강이 끝에 김영남이 그자리에 앉았다. 김여정은 김일성의 피를 직접 이어받고 북한의 고위 관료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김정은의 최측근. 김영남이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이지만 북한 체제에 비춰 볼 때 김여정이 양보하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김여정이 과거 북한 권력자들과 다른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접을 나온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귀한 손님들이 오신다고 하니까 날씨도 거기 맞춰서 이렇게 따뜻하게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김영남 위원장은 “우리 동양 예의지국으로서 알려져 있는 그런 나라임을, 이것도 우리 민족의 긍지의 하나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여정은 시종일관 고개를 살짝 든 도도한 모습이었다. 조 장관을 보며 살짝 눈을 흘기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 엷은 화장에 별 액세서리 없어 김여정의 모습은 수수한 편이었다. 칼라와 소매에 모피가 달린 검은색 롱코트 차림이었다. 머리는 별다른 액세서리 없이 꽃핀으로 단정하게 묶었고, 옅은 화장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어깨에 멘 체인백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검은색 가방이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명품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연달아 선보이며 화려함을 과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모습이 베일에 싸여 있던 김여정은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의 영결식 때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오빠를 수행하는 장면이 여러 번 목격됐다. 하나같이 검은색 투피스나 짙은 회색 점퍼 등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짙은 색 계열의 옷들을 즐겼다. 예술인 출신으로 패션 감각을 뽐내는 올케 리설주와도 패션 취향이 거리가 있는 것이다. 다만 다소 아담한 체격의 김여정이 이번 방문에서는 북한에서 신었던 것보다 높은 굽의 구두를 신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 ‘김정은 친위대’의 경호 김여정이 이동할 때는 철벽 경호가 따라붙었다. 인천공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 장신인 북측 경호원 4명이 앞뒤좌우를 에워싼 통에 김여정은 눈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검은색 양복과 선글라스, 푸른색 넥타이 차림에 귀에 무전기 리시버를 꽂은 북측 경호원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팀장 격이 앞에 서고 나머지 짧은 머리의 건장한 청년 3명이 ‘역삼각형’으로 김여정을 둘러싸며 이동했다. 양복 상의에 동일한 배지를 단 이들은 김정은을 비롯한 김 씨 일가에 대한 근접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사령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때 찾은 황병서 총정치국장 경호에 2명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이번엔 최소 두 배 이상으로 경호가 강화된 셈이다. 김여정의 최근접 경호는 북측 요원들이 맡고, 청와대 경호처 요원들이 좀 떨어진 거리에서 이중의 경호를 펼쳤다. 사실상 국가 정상 수준의 경호가 벌어진 것. 김여정 일행 주변 지역은 휴대전화와 카메라 영상 전송용 장비 등의 통신이 일시 먹통이 되기도 했다. 김여정 등 북측 대표단에는 제네시스(EQ 900) 4륜 구동 차량이 제공됐다. 이 차량에는 방탄 기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고용희 쏙 빼닮아 김여정의 모습은 그동안 북한 매체가 편집해 공개하는 짧은 영상이나 해상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진을 통해서만 대외에 공개됐다. 이날 제대로 얼굴이 공개된 김여정의 모습은 생모인 고용희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았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김여정과 두 오빠인 정철 정은의 생모인 고용희는 김정일의 셋째 부인이다. 1953년 일본 오사카 인근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무용수였고 1971년 북한 만수대예술단에서 활동하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 하얀 피부에 비교적 아담한 체구, 갸름한 얼굴선과 비교적 수수한 인상 등 고용희의 20대 때 활동 모습이 이날 김여정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고용희는 1990년대 후반 유선암 수술을 받았지만 완쾌되지 못하고 앓다가 2004년 결국 사망했다. ○ 극도로 말 아낀 김여정 김여정은 언론 등 대외에 노출된 장소에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인천공항 접견실에서 조명균 장관과 김영남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며 분위기를 띄울 때도 입을 꾹 다물고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인천을 출발한 지 2시간 10분 만인 오후 4시 47분 김여정 등 북측 대표단을 태운 KTX가 진부역에 도착했다. 북측 사진기자가 먼저 열차에서 내린 뒤 이어 하차하는 김여정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이 기자는 수시로 김여정에게 근접해 사진을 찍었다. 북측 기자는 개회식에서 김여정과 김영남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있는 장면을 다수 촬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진을 대내외에 보내 ‘정상 국가’임을 선전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여정은 한국 기자들이 ‘기분이 어떠신가’ 등 가벼운 질문을 던졌지만 옅은 미소만 띤 채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김여정은 개막식 이후 서울로 이동해 호텔에서 대표단과 1박을 했다.황인찬 hic@donga.com·신나리 / 인천=황금천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와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을 놓고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9일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에서 1시간 동안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베 총리의 방한은 2015년 11월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등 과거사 문제는 예상을 깨고 문 대통령이 먼저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수차례 밝혔듯이 역사를 직시하면서도 총리님과 함께 지혜와 힘을 합쳐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국가 대 국가의 합의로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야 한다는 게 국제 원칙”이라고 공세를 폈다. 이어 “일본은 그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약속을 지켜온 만큼 한국 정부도 약속을 실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외교상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북한은 평창 올림픽 기간 남북대화를 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북한의 ‘미소 외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하게 우려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비핵화를 흐린다거나 국제공조를 흩뜨린다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며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가 결국 비핵화로 이어져야 한다. 일본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정상이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제재와 압박 원칙은 공감하지만 어렵게 얻은 계기인 만큼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정상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발표 20주년인 올해 양국 간 미래지향적 발전의 비전을 담은 새 청사진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또 지난해 한일 양국이 합의한 셔틀외교를 본격화하기로 해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조만간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북한이 삼지연관현악단(예술단)을 태우고 강원 동해시 묵호항에 입항한 만경봉92호에 대한 유류 지원 요청을 철회했다. 남북 협의 과정에서 정부가 ‘편의 제공’ 수준의 기름 지원을 검토했으나 북측이 더 많은 지원을 요청했다가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9일 오후 “북한이 유류 제공 요청을 철회함에 따라 만경봉92호에 대한 별도의 유류 제공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 예술단이 10일 오전 다음 공연이 예정돼 있는 서울로 출발한 이후 묵호항에 정박해 있는 만경봉호는 북한으로 귀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예술단은 11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뒤 12일 경의선 육로를 이용해 돌아갈 예정이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만경봉호가 7일 입항한 후 북측이 요청한 유류 지원에 대해 정부는 난방 등에 필요한 규모로 산정하면서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그러나 북측이 더 많은 양을 원했고 이틀간의 협의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유류 지원은 결국 없던 일로 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협의 과정에서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받지 않겠다’는 취지로 언급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협의 과정에서 북측이 지원을 요청한 유류 용량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7일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이 “북한에 편의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미국 등 유관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제재에 저촉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한 만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허용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유류 지원 철회와 만경봉호의 귀환 일자는 선후 관계를 따질 수 없는 별개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고위급 대표단의 2박 3일 방한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10일 열릴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미국의 대북 강경 기조 속에 자신의 피붙이를 한국으로 보내는 ‘깜짝 카드’를 꺼낸 김정은이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파격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9일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11시 청와대 본관에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접견하고 오찬을 한다”고 밝혔다. 북한 측 참석자는 김여정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다. 한국 측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한다. 북한 인사가 청와대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11월 남북 총리회담 이후 처음이다. 특히 김여정은 친오빠인 김정은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인 만큼 문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에서 김정은의 친서(親書)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김여정을 직접 한국으로 보낸 만큼 김정은이 ‘평창 이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수 있는 파격적인 제안을 던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CNN은 이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김여정이 문 대통령에게 올해 안에 북한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CNN은 또 “문 대통령의 방북이 광복절인 8월 15일에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매년 8월 15일을 조국해방절로 기념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9일 라디오에 출연해 “김여정은 평양판 문고리, 유일한 문고리”라며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얘기했던 정상회담에 대해 뭔가 답을 보내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건이 갖춰지고 성과에 대한 전망이 선다면 언제든지 정상회담에 응할 생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 회복을 징검다리로 미국과의 대화를 타진하려는 전략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북한과의 회동을 거부하며 비핵화 없인 북-미 대화가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통남통미(通南通美)’ 전술로 태세를 전환했다는 것.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복원을 바탕으로 ‘한반도 운전석’을 잡으려다 미국의 제동에 부딪힌 문재인 정부로서도 남북 정상회담이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전제로 북한의 핵 활동 동결 약속 등을 끌어내고 비핵화 협상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여정 1부부장이 상당한 재량권을 쥐고 있는 인물인 만큼 오찬 회동에서 평창 이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8일 오전 정부 소식통을 통해 “북한이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정작 북한 조선중앙TV에선 열병식 생중계는 물론이고 예고조차 나오지 않는 등 잠잠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 열병식 당시 대대적인 생중계에 나선 것과는 딴판이었다. 이날 열병식은 종료 4시간 반 만인 오후 5시 반부터 녹화중계 형식으로 뒤늦게 송출됐다. 대외 선전 역시 ‘로키(low key)’였다. 지난해 열병식 때 40여 개사 외신 기자들을 초청했던 것과는 달리 외신 기자도 초대하지 않았다. 유튜브 생중계도 없었다. 당초 북한은 한국 일각과 미국이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하루 전날 진행되는 열병식을 비판하자 “국군의 날 행사를 하지 말라고 하면 그만두겠는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올해는 건군절 70주년으로, 북한이 중시하는 ‘꺾어지는 해’(0이나 5로 끝나는 해)인 만큼 생중계로 핵무력 완성을 과시하는 등 대대적인 대외 선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북한이 열병식을 비교적 조용히 넘기자 “북한이 평창 올림픽은 물론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모두 고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열병식이 과도하게 부각될 경우 북한이 주도 중인 ‘평창 공세’를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또 8일 한국에 도착해 대북 압박을 강조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에게 비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게다가 김여정이 고위급 대표단으로 한국 땅을 밟기 전날이었다. 김정은이 여동생을 대놓고 ‘평창 불청객’으로 만들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평창 참가를 계기로 여러 대북제재 완화 조치를 얻어낸 상황에서 더 큰 양보들을 얻어내기 위해 로키 카드를 유지하겠다는 지적도 나온다. 평창 이후 전반적인 제재 완화 분위기 확산을 위해 도발 자제로 또 다른 선전전에 나섰다는 것.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은 “북한은 현재의 대북제재 완화 흐름이 나중에 끊어질 가능성을 우려해 한걸음 물러서는 전략을 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형 무기를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가장 최신형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을 열병식에서 처음 선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열병식의 의미를 마냥 축소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중계를 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인 한겨울에 열병식을 진행하면서 한파 탓에 준비가 부족했고, 병력들이 실수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손효주 hjson@donga.com·신나리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7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체제 선전전의 양대 축인 응원단과 예술단이 동시에 포문을 열었다. 오전 8시 20분경 전날 강원 묵호항에 정박했으나 굳게 닫혀 있던 만경봉92호의 문이 열리고 현송월 등 114명의 삼지연관현악단 본진이 하선했다. 오전 10시 13분경엔 200명이 넘는 미모의 여성 응원단과 북한 기자단, 태권도시범단, 김일국 체육상 및 북한 민족올림픽위원회(NOC) 위원들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로 입경했다. 이날 남한 땅을 밟은 북한 인사만 총 402명이었다.○ 응원단 “지금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지 않습네까?” 응원단 여성 단원들이 출입사무소에 들어서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키 165cm 내외로 또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이게 화장을 곱게 한 20대 여성들이 대열을 맞춰 지나갔다. 북한 여성들의 평균 신장이 159cm라는 2014년 통계에 비춰 보면 북한이 경제난이나 기근에서 벗어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엄선된 재원들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단장 격으로 보이는 한 20대 여성에게 소감을 묻자 “반갑습네다” 하며 활짝 웃었다. 응원 준비를 많이 했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답을 고르더니 “보시면 압네다. 지금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지 않습네까?”라고 받아쳤다. 자신을 25세라고 밝힌 한 단원은 “다들 평양지역에서 온 20대다. 나이는 각양각색”이라고 했다. 관리자로 보이는 40대 여성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왔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응원하도록 준비했다”면서 적극 대답했지만 대다수 단원은 사전교육을 받은 듯 무수한 질문에도 로봇처럼 “반갑습네다”를 반복했다. “평양에서 2∼3시간 걸려 왔다”는 응원단은 출입사무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거나 수속을 마치자마자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41인승 버스 9대에 나눠 타 숙소인 인제스피디움으로 향하던 이들은 고속도로 중간 가평휴게소에서 내려 또다시 열을 맞춰 화장실로 들어간 뒤 단장을 마쳤다. 영문을 모르던 시민들은 뒤늦게 북한 응원단임을 알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 취주악까지 준비 응원단은 이날 “이웃 팀도 응원하겠다”고 수줍게 말했다. 북한 선수들의 경기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뿐 아니라 남한 선수들의 일부 경기에서도 응원전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김일국 체육상은 “취주악을 준비했다. 체육 경기마다 늘 하고 있는 응원이다”라며 “다 같이 이번에 힘을 합쳐 이번 경기대회 잘합시다”라고 말했다. 꽹과리와 징, 소고와 대고 같은 민속악기는 물론이고 ‘떰떰이’로 불리는 악기에 클라리넷, 베이스, 호른과 같은 관현악기도 대거 짐칸에 실렸다. 일제 ‘야마하’ 로고가 새겨진 하얀 소고받침을 착용한 채 걸어가는 단원들도 눈에 띄었다. 합숙훈련을 했느냐, 준비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며칠 못 했습니다”라며 눈을 피하기도 했다. 만경봉92호에서 내린 예술단원들도 온종일 강릉아트센터에 머물면서 막바지 공연 준비에 집중했다. ○ 남남갈등 드라이브 거는 북한의 체제 선전 시선 끌기에 성공한 북한은 당분간 전방위적인 선전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8일과 11일 예술단 공연을 마치고 올림픽 기간 내내 응원을 펼칠 응원단과 태권도시범단 공연 등을 통해 북한 열병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북한 대표단의 일부 행동이 남남갈등을 촉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이 같은 우려보다 북한 손님들을 위한 준비에 분주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만경봉호 입항 후 협의 과정에서 북한 측의 유류 지원 요청이 있었다”며 정부가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 백 대변인은 “북한에 편의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미국 등 유관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제재에 저촉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사회 제재 위반보다 ‘퍼주기’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날 인제스피디움에서 천해성 통일부 차관 주재로 북한 응원단과 체육 관계자 등 100여 명을 초대해 환영 만찬도 가졌다. 오영철 북한 응원단장은 “북과 남이 손을 잡고 함께하는 이곳 제23차 올림픽 경기대회는 민족 위상을 과시하고 동결되었던 북남관계를 개선해 제2의 6·15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충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 “평창”이라고 선창하자 일동은 “평화”로 화답하며 잔을 부딪쳤다. 파주=공동취재단·신나리 journari@donga.com / 홍정수 기자}

북측 예술단 140명을 태운 만경봉 92호가 6일 오후 5시경 강원 묵호항으로 입항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뱃길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달 31일 북한 마식령스키장 공동 훈련을 위한 항공편 이용 때 미국 독자 제재의 예외를 받은 지 일주일도 안 돼 정부가 우리 독자적 대북 제재 조치까지 걷어낸다는 우려가 나온다.○ 뱃길 제재도 예외 만경봉 92호 만경봉 92호의 방남은 정부의 대북 제재망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논란을 빚는다. 이명박 정부에서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단행한 5·24 대북 제재 조치가 대표적이다. 5·24조치는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을 전면 금지했다. 2016년 12월에도 독자 제재를 발표해 북한 선박의 영해 진입, 제3국 선박도 최근 1년 이내에 북한을 기항한 적이 있으면 국내 입항을 전면 허용치 않기로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어떨까. 외교부 당국자는 “통일부로부터 소식을 듣고 확인했는데 만경봉호나 배를 소유하고 있는 선박회사도 안보리 결의안에 지목된 것은 없다”면서 “미국의 독자 제재 역시 만경봉호가 미국까지 가거나 입항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만경봉 92호가 정박했을 때 기항지에서 제공하는 기름, 식료품들이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만 원유 제공이 금지된 것이 아니라 연간 50만 t이라는 상한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선(先) 지원 후(後)유엔제재위원회 통보’가 이뤄지면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다. ○ “모로 가도 평창 올림픽이면 된다”는 정부 만경봉 92호가 입항하면 북측의 방문으로 ‘육(육로)-해(만경봉 92호)-공(전세기 방북)’이 다 뚫린다. 북측이 묵호항을 택한 것은 여객선 비중이 작은 화물 위주 항구여서 일반인 접근 차단이 비교적 용이한 점이 고려된 조치로 보인다. 5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입경한 선발대 23명 외에 북측 예술단 140명이 그대로 오면서 예술단 관련 파견만 163명이 됐다. 정부가 제재 예외를 거듭 인정하면서 북측으로 하여금 또 다른 요구를 할 수 있도록 쉽게 길을 터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보리 제재 대상이 아니라서 항로 개방은 괜찮다”는 시각도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도 대북 압박 원칙을 희석시킨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 제일 중요하게 내세우는 평창 올림픽 관련 정신은 ‘올림픽 성공을 위해 미국 제재든 유엔 제재든 무엇이든 폭넓게 허용하는 분위기로 가자’는 것이다”라며 “정부의 독자 제재 예외 허용은 이번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열려 있는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제안으로 삼지연관현악단의 방남 경로가 세 번째 뒤틀렸지만 정부는 그대로 제안을 수용했다. 북측은 지난달 15일엔 판문점 육로로, 23일 보낸 통지문에서는 경의선 육로를 제안했다가 돌연 뱃길로 오겠다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얼마나 정박할지에 대해선 “(북측은) 강릉 공연 기간이라고 한정했다. 서울서 어디서 묵을지, 다시 배로 돌아갈지는 더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북의 연이은 ‘제재 예외 요구’에 점차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 북측은 4일 오후 ‘8일 강원 강릉 공연 기간 (예술단) 숙식의 편리를 위해’ 만경봉 92호를 내려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정부는 12시간가량 지난 후에 만경봉 92호 소식을 전하면서 “관련 부처 간의 협의 때문에 발표가 늦어졌다”고 밝혔다. 미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는 점도 덧붙여 강조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을 즉시 알렸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홍정수 기자}
“‘국군의 날’ 행사 말라면 그만두겠나.” 북한 노동신문은 3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전날 예정된 70주년 건군절 열병식을 강행할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신문은 이날 개인논평을 통해 “세계의 그 어느 나라나 자기 군대의 창건일을 중요시하며 성대한 행사들로 기념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관례이며 초보적인 상식”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동당 창건기념일일 10월 10일에 국가적인 중요 행사들을 진행하니 남조선에서 해마다 그 직전에 벌려놓는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놀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만두겠는가”라고 되물었다. 또 “애당초 겨울철 올림픽경기대회 개최 날짜를 달리 정할 것이지 이제 와서 횡설수설할 것이 뭐 있나”라면서 “생억지, 생트집”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런 북의 주장이 억지라는 해석도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 일정은 이미 수년 전 확정돼 공개된 반면, 북한은 지난달 23일 돌연 건군절 일자 변경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초 인민군이 창설된 1948년 2월 8일을 건군절로 정한 뒤 1978년부턴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4월 25일로 변경했으나 이번에 다시 돌아간 것이다. 이에 정부는 “열병식이 우연히 개막식 전날과 겹친 것”, “북한 내부용 행사”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주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를 제안했다. 2일 밤늦게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예고 없이 성사된 한미 정상 통화에서다. 대북 강경 기조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미국과 대규모 열병식 강행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북한 사이에서 ‘평창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승부수를 띄운 것.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인권을 새로운 압박 카드로 꺼내 들면서 오히려 한미 간 온도차가 분명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 통화가 이뤄진 것은 2일 오후 11시 반부터 밤 12시까지 약 30분간이다. 당일 오후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 제안으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이어 문 대통령과 연쇄 통화를 했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향후 지속되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했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전했다. 8일 방한하는 펜스 부통령이 평창 올림픽에 파견될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만나는 북-미 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제안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최대 압박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날 통화가 느슨해질 수 있는 대북 압박의 고삐를 죄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미 간 시각차는 한미 정상 통화 직후 펜스 부통령이 2일(현지 시간) 미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가진 ‘미국 우선주의 정책’ 행사 연설에서 더욱 극명해졌다. 펜스 부통령은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평창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탄도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미국을 위협할 때, 우리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트럼프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인권 문제를 새로운 대북 압박 카드로 꺼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 시간) 탈북자 8명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대화를 나누며 “문 대통령과 통화했는데, 그들(남북)은 올림픽과 관련해서 대화하고 있다. 그것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좋은 일”이라면서도 “올림픽이 매우 잘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음은 누가 알겠느냐.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매우 빨리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탈북자들은 “김정은 정권을 제거할 수 있는 나라는 유일하게 미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북한인권단체 노체인의 정광일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일부 의원이 북한 문제를 대화로만 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문 대통령과 통화한 후 낸 보도자료에서도 “두 정상은 북한 인권 개선의 중요성을 논의했으며 이 문제를 위해 협력하는 데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역할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청와대 발표에선 북한 인권 관련 내용이 아예 빠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 인권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잘 봤다’며 먼저 언급한 내용”이라며 “다만 한미 간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