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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위해 학년대표 포기한 ‘양반장’ ▼구조 직전 선실 달려간 양온유양양온유 양은 4남매 중 맏이였다. 아버지는 “첫째는 참고 양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양 양은 피자를 먹을 때 부모 것부터 덜어놓고 남은 조각을 동생들에게 나눠준 뒤 자기 걸 집어 들었다. 그는 친구들이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학교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급을 타면 동생들에게 간식을 사주곤 했다. “난 왜 참아야 돼? 왜 난 만날 손해만 봐야 되냐고!” 양 양이 열다섯 살 때 이렇게 한 번 반항한 것으로 사춘기를 넘겼다고 아버지 양봉진 씨(48)는 전했다. 어머니는 “불만이 있으면 편지를 써서 바른 소리를 곧잘 하는 당찬 딸이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양 양의 별명은 ‘양반장’이었다. 지난해 1학년 대표에 이어 올해는 학급 반장을 맡았다. 단원고 2학년 A 양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온유가 살갑게 대해준 덕분에 친구들도 사귀고 그렇게 싫어하던 사진도 같이 잘 찍게 됐다”고 말했다. 양 양은 원래 올해도 학년대표를 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온유가 ‘친한 친구가 학년대표를 하고 싶어 한다’고 고민하기에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더니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양 양은 어릴 때부터 처음 듣는 소리도 건반으로 음을 짚어낼 정도로 음감이 좋은 편이었다. “레슨비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 가르쳐보고 싶다”고 하는 피아노 선생님도 있었다. 마음을 다친 사람을 돌보는 음악심리치료사가 되는 게 양 양의 장래희망이었다. 수학여행 며칠 전 그는 아버지에게 사회복지 관련 경험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단원노인복지회관과 군자사회복지관 등에 “우리 딸을 자원봉사자로 써 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태였다. 아버지는 “온유가 일찍 하늘나라로 떠난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게 있다”고 했다. “이 아이가 살았더라면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을 텐데 그 마음을 펼쳐보기도 전에 이렇게 차가워져서….”안산=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 덩치 커도 살뜰히 남 챙긴 딸같은 아들 ▼친구 구한 정차웅군키 177cm, 몸무게 102kg인 거구의 아들을 아버지 정윤창 씨(47)는 ‘딸 같은 아들’이라고 불렀다. 정차웅 군은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덩치가 컸다. 눈썹이 진하고 이목구비도 커서 처음 보면 잊혀지지 않는 강한 인상이다. 하지만 생긴 것과 다르게 검도장에 가면 관장님과 “오늘은 집에 있는 컴퓨터를 바꿨어요” “학교에서는 친구들이랑 ○○ 하고 놀았고요” 하면서 미주알고주알 자기 이야기를 했다. 검도장에서 초등학생 꼬마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았다. 처음 들어와 낯설어하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돌봐 주는 자상한 ‘형아’였다. “남이 좋아하는 걸 해주려고 하기보다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진짜 배려하는 거라고 형이 가르쳐줬어요.”(석모 군·11) 수련회를 가면 저녁 때 삼겹살을 구워 아이들 접시에 하나하나 놓아주고 본인은 마지막에 남은 걸 집어 먹었다. 덩치에 비해 유난히 사근사근한 성격 때문에 한 번 봤던 학부모들도 정 군을 기억했다. 수학여행 가기 전엔 기념품 사가지고 돌아오겠다며 검도장 동생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지난달 23일 시신이 발견된 러시아 출신 학생 슬라바(본명 세르코프 빌라체슬라브·17) 군은 정 군의 단짝이었다. 정 군은 사고 당일(지난달 16일) 가장 처음 사망자로 확인됐다. 친구 둘을 구하고 나서 배 안에 남은 친구들을 찾으러 다시 들어갔다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발견됐다. 친구를 구하다 희생된 정 군에게 가족들은 “국민 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며 가장 싼 수의를 입혔다. 정 군을 10년 전부터 봐온 이양호 해동검도 관장은 정 군을 ‘된장 같은 아이’였다고 표현했다. “검도장 아이들에게 시간이 갈수록 남을 더 배려하고 인내하는 ‘된장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요. 차웅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가 먼저 살려고 하지 않고 친구들을 끝까지 배려한 거잖아요. 된장 중의 된장, 진국 중의 진국인 거죠.”안산=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엄마, 가스 잠갔어?” 확인하던 꼼꼼이 ▼최초 신고 최덕하군“엄마, 가스 불 제대로 잠갔어? 끄고 나온 것 맞지?” 최덕하 군은 초등학생 때 외출한 엄마에게 전화해 가스 불 점검을 하곤 했다. 가스 불 위에 올려놓은 냄비를 깜빡해 불이 날 뻔했던 기억을 최 군은 자주 떠올렸다. 어머니 김상희 씨(45)는 “어릴 때부터 어른보다 주변을 잘 챙겼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차분하게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최 군은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신문과 뉴스를 열심히 챙겨봤다. 가족들은 뉴스를 보다가 모르는 게 나오면 최 군에게 물었다. 한때 장래희망으로 아나운서를 꿈꾸기도 했다. 아버지 최성웅 씨(52)는 “주변 일에 관심이 많고 어딜 가면 자기 의견 말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적극적인 아이였다”고 말했다. 최 군은 중학교 2학년 때 반장과 학년회장을 맡았다. 장래희망은 여러 번 바뀌었다. 검도를 시작한 중학생 무렵엔 경호원이 되겠다고 했다가, PC방에 드나들면서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기 때 꿈은 ‘아파트 사장님’이었어요. 엄마 아빠한테 집 지어주겠다고….” 어머니는 최 군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최 군에게 검도를 가르쳤던 차이성 관장(31·여)은 “남자 관장님에게 ‘아버지, 배고파요. 맛있는 거 사주세요’ 하면서 곰살궂게 굴었다. 엉덩이를 툭 치면 ‘어허 아버지, 왜 이러십니까’라면서 생긋 웃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고 뭐든 스스로 한 아이”라고 했다. 수학여행 짐도 혼자 쌌다. 집에서 나설 땐 “잘 다녀올게. 엄마 사랑해” 하며 꼭 껴안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때 온기가 아직도 느껴진다. 그 온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덕하가 최초 신고자라고 들었을 때 ‘전화하는 시간에 살아 나와 주지’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엄마 아빠한테 끝내 전화 한 통 못한 게 마음 아프지만 자랑스럽고 감사해요.”안산=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고교때 암투병 친구어머니 보살펴 ▼민간 잠수사 이광욱씨학창 시절 아들은 한강에서 시신을 건지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수영과 잠수를 배운 아들은 나이가 들며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갔다. 민간 잠수사 이광욱 씨의 아버지 고 이진호 씨는 해군 특수전전단(UDT) 5기 출신이다. 아버지는 1974년 팔당댐 공사 때 잠수사 일을 하다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에 눌러앉았다. 이 씨는 수해나 사고가 났을 때 아버지가 시신을 건져 올리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이 씨의 가족은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동네에서 유명했다. 이 씨의 아버지는 10년 동안 이장을 했고 어머니는 부녀회장을 하며 봉사활동을 했다. 동생은 자율방범대원이다. 지명관 조안면 면장(54)은 “이 잠수사 부모님은 없는 형편에 사재 털어서 남들 돕고 그랬다. 아들도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남양주시 소년소녀가장 돕기에도 앞장섰다고 한다. 이 씨는 정도 많았다. 이 씨의 빈소를 찾은 친구 윤명규 씨(53)는 기자에게 ‘38년 전 자라사건’을 털어놨다. 당시 두 사람은 고교 1학년생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위암 수술 받은 걸 어떻게 알았는지 꼭두새벽부터 집에 찾아와 자라를 내밀더라고요.” 이 씨는 몇 달 동안 밤마다 강에서 자라와 붕어를 잡아 이튿날 아침 윤 씨 집을 찾았다. 키 180cm의 거구인 이 씨가 ‘오늘 몇 마리 못 잡았어’ 하며 머쓱해하던 표정을 윤 씨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씨는 세월호 실종자 구조를 위해 급하게 진도로 내려갔다. 어머니 장춘자 씨(71)는 “밥상 차려놨는데 어디를 빨리 가야 한다며 밥 한술 못 뜨고 나갔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 이모 군(18)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진도에 가신 걸 알았다”고 했다. 앳된 소년의 얼굴로 검은 상복을 입은 둘째 아들은 단원고 학생 희생자들과 동갑이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생일날 제자들과 케이크 장난친 ‘남쌤’ ▼학생들 대피시킨 남윤철 교사점심 직후 나른한 5교시, 영어담당 남윤철 선생님이 칠판에 ‘while’이라고 쓰며 물었다. “이 단어 무슨 뜻이지?” “∼하는 동안요.” “딱 선생님 단어네. 선생님도 동안(童顔)인데.” 남 선생님은 졸고 있는 제자를 깨울 때도 웃기려 공을 들였다. 출석을 부를 땐 이름 석 자만 읊고 넘어가진 않았다. ‘애들이 말장난을 만들어와 평가를 받고 간다. 그중 최우수작. 예수님이 제자와 쇼핑하다 맘에 드는 옷이 있어 하는 말… 예루살렘(얘로 살 거야라는 뜻).’(2011년 10월 페이스북 게시글) 남 선생님이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맡는 날 학생들은 평소보다 많이 남았다. 어느 땐 느닷없이 들어와 ‘1’을 외쳤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2’ ‘3’ 이어가면 주머니에서 떡을 꺼내줬다. 그의 생일날 학생들은 교단으로 몰려가 케이크 생크림을 그의 얼굴에 문질렀다. 그는 생크림 범벅인 채로 다시 제자들 얼굴을 비비는 스승이었다. 그는 수업시간 학생들 질문에 길게 답하는 편이었다. 단원고 2학년 A 양은 “남쌤은 항상 기본부터 설명해주셨다. 다른 선생님은 ‘다 알겠지’ 하고 건너뛰는 부분을 쌤은 지나치지 않았다”고 했다. 제자들 성적이 50점에서 55점으로 오르든, 80점에서 100점으로 오르든 그는 똑같이 말했다. “많이 올랐네.” 교실에서 그의 별명은 ‘송일국’이었다. 한 여학생은 그가 ‘○○아, 생일 축하한다. 요즘 영어공부 열심히 하던데 계속 열심히 하고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어’라고 써준 메모를 1년 넘게 지갑에 넣고 다녔다. 미혼의 아들을 떠나보내던 날 남 선생님의 어머니는 “의롭게 갔으니 됐다. 아이들 놔두고 살아나왔어도 못 견뎠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학생들이 많이 희생돼) 아들 장례 치르는 것조차 미안하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남 선생님의 발인 직전 그의 아버지는 “사랑한다. 내 아들. 잘 가거라. 장하고 훌륭한 내 자식”이라고 다 들리게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엄하지만 맞장구 잘 쳐주던 ‘왕언니’ ▼아이들 먼저 내보낸 최혜정 교사지난해 단원고에서 교사로 첫발을 내디딘 최혜정 선생님은 올해 담임을 맡은 2학년 9반 학생들과 일곱 살 차였다.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면 “네 입장에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고 공감해주는 ‘왕언니’ 같은 교사였다. 최 선생님의 교무일지에는 제자들의 가정형편이나 말할 때 특징 같은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부임하자마자 카메라를 장만해 틈나는 대로 제자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의 카카오스토리에는 학생들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다. 최 선생님은 야간 자율학습 때 휴대전화를 만지는 아이들을 보면 불쑥 다가가 ‘핸드폰!’ 하고 인상을 쓰며 엄하게 보이려 했다. 하지만 친구들한테는 “내가 어린 걸 알면 무시할까 봐 나이는 비밀로 하는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강한 척해도 속이 여리다며 친구들은 그를 ‘외강내유(外剛內柔)형’이라고 놀렸다. 생일이었던 지난해 11월 26일 한 제자가 그에게 편지를 건넸다. ‘제 생일 때 주신 핸드크림 잘 쓰고 있어요. 나이 차가 별로 안 나 편한 것 같아요. 선생님, 학기 마지막 날엔 나이 알려주세요!’ 최 선생님은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에 두 동생 아침밥을 챙겨주는 맏이였다. 동생들 진학 상담도 전담했다. 사촌동생들에게도 대입 자기소개서를 보내라고 해 일일이 첨삭했다. 고모에게는 뱃살을 만지며 ‘언제 뺄 거냐’고 농담을 하고, 삼촌이 담배를 피우면 엉덩이를 툭 차며 ‘내가 끊으라고 했지’ 하고 너스레를 떨던 조카였다. 아버지 최재규 씨(53)는 “학교 다닐 때 용돈 30만 원을 주면 5만 원은 저축하고 돈을 남겨서 나한테 등산 장비를 사주곤 했다”고 말했다. 최 선생님은 집에서 부모와 복분자주 마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 최 씨는 지난달 전북 고창에 놀러갔다가 딸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함께 마시려 특산품인 복분자주를 여러 병 사왔다. 이 복분자주는 지난달 19일 고인의 빈소 영정 옆에 놓여 있었다.임현석 기자 ihs@donga.com ▼ 학교에선 ‘딸바보’… 집에선 ‘제자바보’ ▼선실 다시 내려간 박육근 교사8일 밤 12시 박육근 선생님의 빈소에 20대 청년이 한쪽 다리를 절며 들어왔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박 선생님의 제자였다. 장애가 있었던 이 제자는 영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돼 찾아오면 웃으며 맞아준다고 하셨잖아요. 저한테 ‘선생님이 되라’고 먼저 말씀하셔 놓고 약속을 깨면 어떡해요.” 몸집이 큰 한 제자도 영정 앞에서 입을 열었다. 용인대 태권도 선수였다. “선생님 저 경기 있어서 공항 가는 길이에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학교에서 싸움을 자주 했던 이 제자는 박 선생님의 조언으로 태권도를 시작했다고 했다. 제자들은 토요일 오후 운동장에서 박 선생님과 축구 했던 추억을 많이 떠올렸다. 말썽부린 아이들에게 박 선생님이 내건 벌칙은 ‘토요일에 나랑 공차기’였다. 학생부장을 오래 맡아 사달이 나면 경찰서에 달려가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한 학부모는 “선생님이 학교폭력 대책 회의 건으로 저한테 전화할 때마다 ‘죄송하다’며 몸을 낮추셨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박 선생님의 친형 박춘근 씨(61)는 “육근이가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시골에서 어렵게 성장해 넉넉지 않은 집 아이들을 많이 챙겼다. 사고 친 애들 직접 합의해 준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한 단원고 학생은 “선생님이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돈 안 내도 수학여행 갈 수 있으니 걱정마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전했다. 집에서 박 선생님은 두 딸에게 ‘서운하다’는 불평을 듣는 아버지였다. 아내는 “학생들한테 하는 만큼만 애들한테 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박 선생님은 ‘딸 바보’로 통했다. 학생들 앞에서 “우리 둘째딸이 너희들과 동갑인데…”란 말을 습관처럼 했다. 단원고 2학년 A 양은 “처음에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취지로 딸 얘기를 꺼냈다가 결국 매번 딸 자랑으로 끝났다”고 말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에서 학생들이 멘토 교수님에게 편지와 선물을 전달했다. 밝게 웃는 교수님 앞에는 학생들이 감사의 마음을 적은 메모들로 꾸민 나무 모양의 종이가 놓여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자유청년연합 회원들이 손석희 JTBC 앵커와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회원들은 이 3명이 다이빙벨의 성능을 과대 포장해 결국 정부의 구조작업을 방해했다며 공무집행 방해 및 사기죄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7일 오후 인천 서구 연희동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 준공식이 열렸다. 아시아경기의 개최 연도를 상징하는 2014명의 시민과 행사 참석자들이 준공식에 참석해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인천시는 한국기록원에 ‘최다 인원 동시 테이프커팅’ 기록 등재를 요청했다. 인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일 오후 3시 30분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전동차 추돌 사고는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다. 서울메트로의 종합관제소에서는 두 열차가 가까워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고를 미리 막지 못했다. 또 서울메트로 측은 “안내방송을 했다”고 했지만, 승객들은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는 방송이 아니었고 그냥 기다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추돌 위험 왜 몰랐나… 브레이크 밟았는데 사고 사고 당시 상왕십리역에 있던 2258 전동차는 여러 번 문을 열고 닫은 뒤 막 출발하는 순간이었다고 승객들은 전했다. 그때 뒤에 오던 2260 전동차와 추돌한 것이다. 전동차의 운행 안전을 실시간으로 살펴보는 종합관제소는 사고를 왜 막지 못했을까. 정달오 서울메트로 운전팀장은 “열차와 열차 사이는 비상 장치에 의해 200m 거리가 확보된다. 종합관제소는 전반전인 운행만 관리한다. 두 열차가 가까워진 것은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사고는 막지 못했다. 서울메트로 사고대책본부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열차가 역에 들어오거나 나오면 역에 설치돼 있는 감지시스템을 통해 해당 역 관제실과 종합관제소에 위치가 파악된다. 하지만 역과 역 사이에는 이 감지시스템이 촘촘히 배치돼 있지 않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뒤쪽 전동차를 운행하다 사고를 낸 기관사는 조성근 서울메트로 운전처장에게 사고 당시를 이렇게 밝혔다. “상왕십리역으로 진입하면서 커브 구간을 도는 순간 적색 신호등과 앞 열차가 보였다. 최선을 다해서 비상 제동을 했다”는 것이다. 서울메트로 측은 “제동 거리가 모자라 열차가 추돌한 것 같다”고 했다. 전동차는 쇠바퀴여서 시속 60km로 달려도 최소 제동 거리가 154m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피 방송 논란… 시민들 침착한 대응 이번 사고는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때와는 달랐다. 지하철 지하 역사에서 앞뒤 전동차가 부딪치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침착하게 전동차에서 나왔다. 앞쪽 전동차에 탑승했던 김유미 씨(20)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상왕십리역 전동차 내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충격으로 넘어지면서 손을 다쳤다. 하지만 승객들은 전동차 내에서 서로 먼저 나가려고 밀치는 등의 혼란이 빚어지진 않았다. 어디선가 ‘침착해’라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지하철 칸에 있는 문을 열어 선로를 통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번 전동차 추돌 사고에서 가장 먼저 신고한 건 ‘시민’이었다. 광진경찰서는 이날 “최초 119 신고는 사고 전동차에서 내린 여자 승객이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사망자 228명, 실종자 74명(2일 오후 11시 30분 현재)의 사상자를 낸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에도 최초 신고자는 여객선에 타고 있던 단원고 2학년 최덕하 군이었다. 사고 직후 대피 안내방송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메트로 측은 사고 직후 안내방송을 했고 승무원들이 사고 현장에서 승객들을 대피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승객은 안내방송이나 직원을 보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역내방송은 들렸을 수 있지만 정전이 된 사고 전동차에서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안내방송을 들었던 승객들은 “앞차와의 간격 때문에 잠시 정차 중이라는 방송이 나왔고 대피하라는 얘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가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지켰는지도 확인돼야 할 대목이다. 이날 본보가 입수한 ‘비상대응 운영절차―지하부 본선구간 열차추돌사고’라는 제목의 사고 매뉴얼에 따르면 사고 발생 즉시 전동차 승무원은 종합관제소에 추돌 사고 발생을 신고하고 열차 내에 추돌 사고 발생 및 안내방송을 실시해야 한다. 이어 사고 발생 10분 이내에 승무원과 역사 직원은 승강장에서 부상 승객을 이송하고, 다른 승객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서울시청 집무실에 있다가 사고 소식을 보고받고 서울시 행정 1부시장과 서울메트로 사장에게 연락해 신속한 현장 복구를 지시했다. 오후 5시 30분에 상왕십리역에 도착한 뒤 늦은 밤까지 상황실에 머물며 복구 상황을 점검했다. ‘서울시민의 발’인 서울 지하철은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3월 30일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하행선 열차가 모터 이상으로 멈췄고, 이틀 뒤인 4월 1일에는 역시 지하철 1호선 서울역∼구로역 구간에서 전기 공급 중단으로 하행선 열차 10대가 최대 21분 지연 운행되기도 했다.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이번 추돌 사고를 계기로 서울 지하철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황인찬 hic@donga.com·김성모 기자}

슬픔에 잠긴 어머니는 아들에게 가장 값싼 수의를 입혔다. ‘장례비용도 세금’이라며 빈소는 차리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지난달 23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실종됐던 안산 단원고 2학년 박모 군(17)을 찾았다. 금쪽같은 아들은 바다 깊이 가라앉은 세월호 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 군의 부모는 절망에 빠진 순간에도 ‘나랏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소신을 지켰다. 빈소를 차리지 않은 것이다. 장례비용이 모두 세금에서 나간다는 것을 알고 박 군의 가족은 직계가족만 모여 화장을 했다. 기자에게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박 군의 어머니는 “국가 세금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다 간소하게…”라고 말하며 “장례를 성대하게 치른다고 아들이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요”라고 울먹였다. 부모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아들. 어머니는 “속 한 번 안 썩이고 잘 커줬다”고 했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박 군의 부모는 맞벌이를 해 경제적으로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지만 ‘한 번 입고 가는 옷’이라며 아들에게 20만 원대의 수의를 입혔다. 박 군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그거 하루 잠깐 걸치는 게 400만 원짜리인 게 너무 현실적으로 이해가 안 돼서…”라고 말했다. 나라는 소중한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박 군의 부모는 차마 나랏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앞서 친구를 구하려다 희생된 단원고 정차웅 군 부모도 세금으로 장례를 치르는 점을 감안해 가장 저렴한 장례용품을 이용했다.안산=채널A 서환한 bright86@donga.com김성모 기자}

가슴 철렁한 사고가 또 발생했다. 이번에는 서울 도심의 지하철에서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대중교통의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2일 오후 3시 30분경 서울 성동구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잠실 방향으로 가던 서울메트로 2260 전동차가 승강장에 멈춰 있던 2258 전동차를 들이받았다. 사고가 나면서 2260 전동차 3개 칸이 탈선했고 두 전동차의 차량연결기(열차 칸을 잇는 고리) 7, 8개가 파손됐다. 사고 충격으로 두 전동차에 탔던 승객 238명이 다쳤으나 다행히 대부분 경상에 그쳤다. 병원에 입원한 50여 명 가운데 추돌한 전동차를 운전했던 기관사 엄모 씨(45) 등 3명은 어깨탈골 골절 등 중상을 입었다. 엄 씨는 서울메트로 조사에서 “상왕십리역에 진입하는 커브 구간을 도는 순간 앞에 적색 신호등과 전동차가 보였다. 급히 비상제동을 했지만 거리가 짧아 추돌했다”고 말했다. 당시 두 전동차에는 1000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대부분의 승객은 수동으로 문을 연 뒤 선로 위를 걸어서 탈출했다. 사고 여파로 2호선 잠실 방향 9개 역(을지로입구역∼성수역)의 지하철 운행이 9시간 가까이 중단됐다가 3일 0시 17분경 정상화됐다. 정달오 서울메트로 운전팀장은 “자동정지장치(ATS) 등 기기 결함과 인적 결함(과실) 가능성에 대해서 조사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ATS는 앞뒤 전동차의 거리가 200m 이내로 가까워질 경우 추돌에 대비해 자동으로 작동된다. 대피 방송 유무에 대해 정수영 서울메트로 운영본부장은 “앞 전동차에서는 대피 안내 등 방송을 전혀 하지 못했다”며 “뒤 전동차에서는 사고 직후 ‘객실에서 기다려 달라’ ‘정확히 상황을 파악해 다시 알리겠다’는 내용을 각각 한 차례씩 방송했으며 사고 7분 뒤인 3시 37분경 대피를 알리는 방송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승객 상당수는 대피 방송 전에 문을 열고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고가 난 지 3시간여가 지난 오후 7시 8분경에는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의정부 방향으로 가던 전동차에서 타는 냄새가 나 운행이 잠시 중단됐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측은 “승객을 내리게 한 뒤 다음 전동차를 이용하도록 했다. 제동장치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날은 선박 사고도 잇따랐다. 오후 2시 40분경 경북 울릉군 사동항을 출발해 독도로 운항하던 ‘돌핀호’(310t급)가 엔진 고장으로 회항했다. 승객과 승무원 396명이 탄 돌핀호는 독도 도착 20여 분을 남기고 갑자기 엔진 2개 중 1개가 고장이 나면서 되돌아왔다. 오후 6시 28분경에는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외도 북쪽 0.1마일 해상에서 141명이 탄 38t급 유람선이 갑자기 기관 고장을 일으켰다. 승객들은 다른 유람선 2척에 옮겨 탄 뒤 장승포항으로 이동했다.김성모 mo@donga.com / 포항=장영훈거제=강정훈 기자}
검푸른 바다에서 아들은 너무 늦게 돌아왔다.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은 부패가 진행돼 시신 기증조차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가슴을 쳤다. 29일 오전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A 군(17)은 침몰한 세월호 선체 객실에서 발견됐다. 차디찬 바닷속에서 벌써 2주일이나 지난 뒤였다. 가족은 더딘 수색작업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아버지 B 씨는 고심 끝에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평소 남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아들의 뜻을 기리고 싶었던 것이다. B 씨는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시신 기증을 제안했다. 그는 “그렇게 보내야 세상을 밝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시신 기증의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A 군의 가족은 결국 빈소를 예약한 뒤 시신 기증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하지만 아버지의 큰 뜻은 이뤄지지 못했다.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전화로 기증 의사를 밝힌 유족에게 “훼손된 시신은 기증받을 수 없다”는 의사를 전했다. 사망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 시신의 부패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B 씨의 지인은 “시신 기증은 숨진 지 몇 시간 안에 가능하다더라.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니 얼마나 한스럽겠느냐”고 말했다. A 군 가족의 결정이 좌절됐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 사람들은 더욱더 안타까워했다. 가족의 한 지인은 “빨리 구했으면 기증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느냐”며 “늦어도 너무 늦었다. 가족들은 더 큰 상처를 입은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진도=박가영 채널A기자 bbacga@donga.com}
제 기능도 못하고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던 구명벌(텐트 모양으로 펴지는 구명보트)이 뒤늦게 떠올랐다. 28일 오전 3시경 사고 현장에 있던 구조팀은 빨간색 구명벌을 발견했다. 3시간 반 동안 총 5개를 발견했다. 발견 당시 구명벌은 모두 펼쳐진 상태였다. 침몰 사고 12일 만이다. 사고 당시 구명벌은 목포해경 소속 이형래 경사가 내린 2개 중 1개만이 펼쳐졌다. 이 경사는 쇠줄에 묶인 구명벌을 힘겹게 떼어 냈다. 안전핀이 이미 녹이 슬어 잘 뽑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로 차고 던진 끝에 간신히 선체에서 떼어내 바다로 떨어뜨렸다. 구명벌은 배가 침몰하면 수압에 의해 자동으로 팽창하게 돼 있다.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면 수동으로도 펼 수 있다. 구조팀은 구명벌의 수압분리계가 뒤늦게 작동해 자동으로 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구명벌은 물속으로 3∼5m만 내려가도 터지도록 돼 있다. 사고 12일 만에 떠오른 것은 이 구명벌이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세월호에 달려 있던 46개의 구명벌은 세월호가 일본에서 처음 취항한 1994년에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선박 검사기관인 한국선급은 올해 2월 안전점검에서 세월호의 구명벌에 대해 ‘정상’ 판정을 내렸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모두가 ‘상주(喪主)’처럼 슬퍼했다. 조문객 누구도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영정 앞에서 울음을 참지 못했다. 분향소가 처음 열리던 날 22명이었던 영정은 닷새 만에 143명으로 늘었다. 27일에만 24명의 희생자 영정이 합동분향소에 더해졌다. 이제는 희생자의 친구들도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고서야 친구의 사진을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한 위패에는 아직 아이의 죽음을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 이름을 적지 않았다. 늘 붙어 다녔던 친구의 시신을 찾을 때까지 몇몇 영정은 옆자리를 비워뒀다. 각 영정마다 담긴 사연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27일 오전 경기 안산시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향소 입구부터 2km 남짓 긴 줄이 생겼다. 1시간을 꼬박 기다려야 먼발치로 합동분향소가 보였다. 전날에는 햇볕이 뜨거웠고 27일은 봄비가 내렸지만 늘어선 줄은 점점 길어졌다. 해가 진 뒤에도 조문객은 줄어들지 않았고 누구도 불평 없이 차분히 자리를 지켰다. 조문객 옆으로는 수시로 운구차가 지나갔다. 분향소 주변은 건물이 낮고 도로가 좁아 운구차가 유독 커 보였다. 몇몇은 운구차를 향해 목례를 했다. 경기도 합동대책본부는 지금까지 총 16만 명이 넘는 조문객이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조문 행렬이 계속되면서 준비된 10만여 송이의 국화가 동났다. 그 대신 검은색 근조 리본이 제단에 올려졌다. ‘어른으로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이렇게 죄스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그 추운 곳에서 당장이라도 구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이들은 포스트잇에 각자의 생각을 적어 벽에 붙였다. 내용은 달라도 희생자에 대한 미안함은 같았다. 검은 옷을 입고 홀로 분향소를 찾은 한 60대 여성은 “봉오리도 제대로 여물지 않은 싹을 어른들이 짓밟았다. 우리 모두가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며 울먹였다. 전국 곳곳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마다 희생자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도 슬픈 발길이 이어졌다. 비가 내렸지만 분향소가 차려지기 1시간 전부터 100여 명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분향소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렸다. 많은 시민은 우산도 쓰지 않고 줄을 선 채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분향소 한편에 희생자들과 실종자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공간에 한 초등학생은 ‘형아 누나 지금 살아있어? 춥지 않아? 하늘나라 가서 행복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오후 3시 반 분향소를 찾아 노란 리본에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박원순’이라고 적었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크고 작은 촛불기도회도 전국에서 열렸다. 주말 동안 안산 화랑유원지에서는 단원고 총동문회와 안산시민이 함께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촛불기도회가 마련됐다. 안산=홍정수 hong@donga.com·김성모 기자}
‘슬픔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25일 낮 경기 안산 올림픽기념관 합동분향소는 섭씨 25도를 오르내리는 초여름 날씨였지만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를 애도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분향소가 차려진 지 사흘째인 이날 조문객은 총 6만 명을 넘어섰다. 조문객이 크게 늘면서 분향소 앞에는 100m가 넘는 긴 줄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고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검은색 양복과 블라우스 차림의 한 70대 노부부는 “손주뻘 되는 아이들이 이렇게 덧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안타깝다. 이들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기를 바라기 위해 예복을 갖췄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온 김모 씨(32)는 “단원고 학부모들이 심신이 피곤할 텐데도 일일이 절을 하며 조문객을 맞이해 마음이 더 아팠다”며 울먹였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조문도 계속됐지만, 예전처럼 사진 촬영이나 방명록을 작성하느라 부산을 떠는 경우는 사라졌다. 이날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서남수 교육부 장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등이 조문했다. 일반 조문객과 마찬가지로 순서대로 줄을 서서 분향을 마쳤다. 정부 장례지원단 관계자는 “슬픔을 나누고 진정한 마음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족들은 수많은 조문객의 위로를 받다 아이들의 영정을 바라보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오후 2시 반경 희생자인 다문화가정 S 군(17)의 어머니가 합동분향소를 찾아 오열했다. S 군의 어린 동생은 형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형을 찾기도 했다.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 가운데 일부는 걸어서 100여 m 떨어진 단원고를 찾아 정문 앞 주변에 노란 리본을 걸고 메시지를 남겼다. 안산=김성모 mo@donga.com·남경현 기자}
정부가 침몰한 세월호에서 발견된 시신의 인계 절차를 두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1일 오전 전남 진도군청에 있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DNA) 검사 때문에 시신이 유족에게 늦게 인계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신 인계 절차를 간소화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DNA 검사 확인서가 나오기 전이라도 가족들이 원하면 다른 병원으로 시신을 옮길 수 있게 됐다. 다만 장례 절차는 DNA 확인 결과가 나온 뒤에 진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확한 인계 절차까지는 유족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22일 오전 목포 기독병원에서는 시신을 인계받으려는 유족들에게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 유족들이 격렬하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족들은 “이 새벽에 어디에 가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 오냐”고 크게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유족과 경찰관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는 20일부터 진도 팽목항에서 1차 신원확인을 마친 시신들이 이송되는 목포 중앙병원과 기독병원 인근 주민센터를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유족들은 거의 없었다. 한 유족은 “오늘(22일) 아침이 돼서야 그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 대표단은 가족들이 위임장을 작성하면 대표단 측이 일괄적으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받아오기로 했다. 한편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와 단원고 학생 실종자 가족 측은 22일 장례 절차에 합의했다. 장례는 검안이 끝난 시신을 안산으로 옮긴 뒤 정부가 마련한 영안실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진도=박희창 ramblas@donga.com / 안산=김성모 기자}
말기 암 투병으로 진도에 내려가지 못하고 기다리던 아버지가 결국 실종된 아들을 시신으로 맞았다. 아들은 다른 집의 자식으로 오인돼 아버지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경기 안산으로 옮겨져 있던 상태였다. 22일 오후 심모 씨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실종된 아들(17)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편도암 말기로 투병 중이던 심 씨는 진도로 가지 못한 채 안산 단원고 강당에서 막연히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침몰 사고 이후 심 씨는 줄곧 단원고 강당 맨 앞자리를 지켰다. 심 씨의 부인과 딸은 진도에 내려갔지만 심 씨는 투병 중이라 갈 수 없었다. 심 씨는 강당에서 마이크를 잡고 “네가 살아올 때까지 내가 학교를 지킬 테니 네가 좋아하던 학교로 돌아와서 네가 지켜라”라며 흐느끼기도 했다. 주변에선 끼니때마다 음식을 권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만 마셨다. 당초 아들 심 군은 21일 오전 1시경 이모 군으로 신원이 잘못 파악돼 안산 제일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빈소에는 유족과 학교 선후배 등의 조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22일 오전 10시경 DNA 검사 결과 유족과 불일치 판정이 나와 시신이 바뀐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을 확인한 해경은 심 군을 자기 자식으로 잘못 알고 있던 이 군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에 따라 23일로 예정된 발인은 잠정 보류됐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신원 미상의 시신을 다시 진도로 보내지 않고 안산에서 신원확인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시신이 뒤바뀐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7일에도 허술한 신원 확인 때문에 신원 미상의 시신이 목포와 안산을 오가는 일이 벌어졌다. 실종된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심 씨가 아들 사망 소식을 통보받은 것은 22일 오후 5시경. 차 안에서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던 그는 넋을 잃은 사람마냥 표정이 없었다. 심 씨는 기자에게 “내 몸이 어떻게 되면 휴대전화를 꼭 살펴봐 달라”고 했다. 하지만 휴대전화에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는 말하지 않은 채 차를 몰고 떠났다. 식자재 운송 일을 하던 그에게 아들은 금쪽같은 존재였다. 동네 주민에 따르면 심 군은 딸 둘에 이어 낳은 막둥이였다. 심 씨의 이웃은 “편도암으로 수술했는데 재발한 것 같더라. 요즘 급격히 더 안 좋아졌다”며 “최근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다니는 것 같던데 아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인 것 같다”고 전했다. 다른 주민은 “몸이 안 좋은 상황이라 아들이 유일한 희망이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안산=김성모 기자 mo@donga.com}

6·4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송진섭 경기 안산시장 예비후보(새누리당)는 21일 오전 10시 자신의 공식 홍보사이트에 ‘비 내리는 진도 팽목항에서의 긴급보고’라는 글을 남겼다. 실종자 가족이 모인 진도체육관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저는 어제 이곳(진도)에 와서 배 앞머리를 보이고 있는 뒤집혀진 침몰함을 보며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 끝 부분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배 인양에만 매달리지 말고 해상 배 앞머리를 특수용접으로 철판은 떼어내고 파고들면서(마침 근처에 삼호현대중공업이 있음) 국내 최고 실력의 머구리를 긴급 공수해….’ 송 예비후보의 주장은 이미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폐기된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여객선에 대한 상식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박전자기계공학부 교수는 “영화같이 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여객선 구조상 앞머리에 실종자가 있을 가능성도 없고 구멍을 뚫는 즉시 내부에 남은 공기가 빠져 배가 가라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검증되지 않은 섣부른 주장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일부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발언과 처신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특히 6·4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후보자 중 일부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이용해 눈도장을 받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다음 날이었던 17일 오전 충북도교육감 홍순규 예비후보는 한 학생이 침몰 직전 부모에게 보낸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사랑해’라는 문자를 인용하며 ‘오늘 하루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슬픔을 함께하며 하루를 보내려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전송했다. 경남 김해시장 새누리당 임용택 예비후보도 ‘무사귀환을 기도합니다. 새누리당 김해시장 예비후보 임용택 ★경선기호 1번★’이란 문자를 같은 날 보냈다. 새누리당 대구시장 이재만 예비후보는 ‘…구조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여론조사가 실시됩니다. 이재만을 적극 지지해 주시기 바라며…’란 문자를 보냈다. 문자메시지를 받은 유권자뿐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이 사실을 접한 시민 상당수는 “출마자들이 지금의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을 한 번 더 알리려고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안산=서동일 dong@donga.com·김성모 기자}

여성가족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뒤늦게 별도의 대책을 내놓으면서 “현장의 혼선만 가중시킨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성부는 21일 세월호 피해 가족을 대상으로 ‘긴급 가족 돌봄’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참사의 피해 가족 아동 141명이 다니는 35개교에 전담교사를 지정하고, 해당 전담교사가 아동들을 경기 안산시 건강가정지원센터나 청소년상담센터 등으로 연계하도록 해 각종 돌봄 서비스와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은 이미 정부와 의료계가 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준비를 한 상태. 병원에 있는 환자는 보건복지부, 사고 당사자 이외의 학생과 교사는 교육부, 안산시민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조율이 된 상태다. 복지부는 17일부터 교육부, 의료계 등과 함께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을 구성해 정신건강과 관련해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소속 전문의들과 재난심리 상담가들은 안산시 소재 52개 중고교의 교직원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과 관련한 교육을 21일부터 시작했다. 반면 여성부가 지원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와 청소년상담센터엔 정신건강과 관련된 전문 의료진이 아닌 가족 상담 관련 인력이 주로 근무하고 있다. 전문성도 떨어지고 소관 부처도 아닌 여성부에서 별도 심리상담 대책을 만들면서 혼선만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다 조율된 상태에서 여성부가 갑자기 회의에서 끼어들겠다고 한 뒤부터 기존 계획을 다시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이 사고가 정부 부처가 숟가락 놓자는 식으로 덤벼들 문제가 아닌데 황당하다”고 전했다. 여성부의 보여주기식 전시행정도 도마에 올랐다. 조윤선 여성부 장관은 21일 안산시 초지종합사회복지관에서 피해 가족의 아동들이 다니는 35개 학교의 전담교사 35명을 불러놓고 1시간가량 ‘긴급 가족 돌봄 지원 대책 마련 간담회’를 열었다. 인사말과 마무리말, 정책 소개 등을 빼고 나면 피해자 가족 지원 방안과 관련해 의견을 수렴한 시간은 25분에 불과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한시바삐 피해 가족을 지원해야 할 교사들을 장관의 생색내기 행사에 동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이샘물 evey@donga.com / 안산=김성모 기자}
‘허술한 신원 확인’ 때문에 신원 미상의 시신이 목포∼안산을 오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문이 등록돼 있지 않은 미성년자의 시신이 인양되면 사진을 찍어 단원고 교사들에게 전파하고 학생 명부 사진과 대조해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이 잘못돼 실종학생의 학부모 가슴에 두 번 대못을 박은 것이다. 17일 밤 세월호 사고 해역 인근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돼 진도 팽목항으로 옮겨졌다. 시신 사진을 본 단원고 교사들은 2학년 1반 A 양으로 판정하고 목포기독병원으로 이송시키면서 진도에 있던 친오빠에게 통보했다. A 양의 오빠는 학교 측의 말을 믿고 동생이 맞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신을 경기 안산 한도병원으로 옮긴 뒤 A 양 부모가 다시 확인해보니 친딸이 아니었다. 시신은 다시 목포기독병원으로 돌아왔다. 학교 측은 2학년 2반에 A 양과 같은 이름을 가진 학생 부모에게도 연락했지만 신체 특징이 달랐다. 게다가 시신에 B 양 이름이 적힌 체육복이 입혀져 있어 또다시 신원이 잘못 판정될 뻔했다. 교사들이 재차 확인한 결과 C 양으로 추정돼 진도에 있는 친오빠를 병원으로 불렀다. C 양 오빠가 시신을 보고 동생임을 확인해 안산 산재병원으로 이송했고 병원에 와있던 부모가 최종 확인했다. 목포기독병원 관계자는 “앞으로 부패가 진행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이보다 더 심한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안산=김성모 mo@donga.com / 목포=배준우 기자}

살아남은 자에게도 지금 이 순간은 지옥이다. 눈을 감으면 배 안에서 ‘살려 달라’고 외치던 친구의 얼굴이 생각난다. 지난주까지 운동장에서 함께 농구를 했던 선배의 땀 냄새가 지금도 생생하다. 실종 학생들과 일면식도 없는 동네 주민도 하루 종일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뛰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실종자 가족은 물론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과 주변의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선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S)의 전형적 증상인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 자책감과 분노, 무기력증과 공포 등이 나타나고 있다. 본보 취재팀은 사고 직후 5일 동안 안산시내 병동, 장례식장, 상점, 거리 등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행동 특성을 전문가와 함께 분석했다.○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 사고를 직접 경험한 생존 학생들의 긴장감과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은 생존한 입원환자 76명 중 55명의 스트레스 지수를 검사한 결과 평균 8점에 육박했다. 스트레스 정도는 0점에서 시작해 10점에 가까울수록 심각한 상태로 판정되며 8점은 중증에 해당한다. 입원 중인 한모 군(17)은 “눈을 감으면 선생님이 숨지기 직전의 모습, 친구들이 입술이 파래진 채 벌벌 떨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사고 후유증으로 잠을 못 자고 식사를 못 하는 학생들에게 약물치료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은 대개 식욕 감퇴와 불면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고를 당하지 않은 학생들이나 일반 시민에게도 극도의 불안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말인 19일 안산 시내 장례식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혼자 자는 것도 무섭다”며 “친구들이 대부분 그렇다”고 말했다. 울다 탈진해 응급실로 실려 간 학생도 있다. 안산 시민 김모 씨(48)는 매일 오전 5시가 되면 물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에 깬다. 그는 “같은 사고를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도 워낙 충격적이라 마치 내 일같이 느껴진다”며 “중년 남자가 혼자 샤워하는 것에서조차 공포를 느낀다는 것을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전소방서에서 근무하는 PTSS 전문가 김봉명 팀장은 “언제든 이 사고가 자신한테 닥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자책감과 증오 PTSS의 또 다른 증상은 ‘분노’다. 이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면 ‘죄책감’, 남에게 표출되면 ‘증오’로 이어진다. 김 팀장은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 선생님의 사례가 ‘죄책감’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종 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단원고 선후배들의 걱정과 무기력감은 죄책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사망자 정모 군(17)과 친했다는 A 군(16)은 사고 후 말수가 급격히 줄고, 하루 종일 TV만 보고 있다. A 군의 부모는 “주말마다 함께 운동을 하던 형의 이름을 사망자 명단에서 보더니 처음엔 충격을 받았고, 이후 말이 없어지며 TV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타인에 대한 분노도 극에 달했다. 선장이 먼저 대피하고, 사고 이후 정부의 대응이 혼란에 빠진 것 등이 중첩되면서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모두가 우리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증오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박주언 계요병원 원장은 “남에 대한 분노와 나에 대한 분노는 ‘종이 한 장 차이’”라며 “극도의 분노증세를 보이는 학생들은 죄책감을 더 깊이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단순 위로’ 상담은 무용지물…장기치료 필요 20일 안산시 고잔동의 한 커피숍에선 주부 셋이 모여 ‘단원고 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커피숍 주인은 테이블 쪽을 쳐다보며 “내 주변에 애 잃은 부모를 아는 사람들이 많다”며 “나도 며칠 아이가 걱정돼 하굣길에 태우러 갔다. 항상 불안하다”고 말했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여기저기서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다고 하지만, PTSS는 일반 상담치료와 달리 사고 상황과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고려한 정밀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힘들었지?”라는 수준의 상담으로는 증상을 완화시킬 수 없다고 지적한다. PTSS 증상이 있다는 것을 해당 환자에게 주지시킨 뒤 이를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최소 1년 동안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기 치료를 위해선 정부가 PTSS 전문치료센터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쟁으로 인한 PTSS 호소 환자가 많은 미국에서는 PTSS를 전담하는 의료기관을 세워 참전자 등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Post Traumatic Stress Syndrome·PTSS)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으로 입은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트라우마(trauma)라고 한다. PTSS는 트라우마가 직접적 원인이 된 일련의 정신질환군(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보다 폭넓은 개념이다. 트라우마를 입었던 당시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공포에 시달리고 우울증 공황장애 알코올사용장애 등을 동반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준다.안산=김수연 sykim@donga.com·김성모·서동일 기자}

여객선 침몰 사흘째인 18일 오후 경기 안산 한도병원 장례식장 장미실 분향실. 세월호 침몰로 숨진 안산 단원고 이다운 군(17)의 빈소 앞 복도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로 붐볐다. 33m² 크기의 분향실 안엔 교복을 입은 학생 8명이 서 있었다. 다운이의 친구들이었다. 아이들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멍하니 다운이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운이의 할머니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더니 “아까워서 어떡해”라며 통곡했다. 영정 속의 다운이는 앳된 얼굴이었지만 뽀얀 피부에 작은 얼굴,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이었다. 작은아버지 이기호 씨(38)는 “다운이는 누구나 다 좋아하는 애늙은이”라고 했다. 그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겉으로는 되게 밝은데 속은 정말 깊은 아이였다”며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나 보다”라고 말했다. 다운이의 분향실에는 유독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다운이가 다니던 미용실 아주머니, 동네 곱창집 주인도 다녀갔다고 한다. 이 씨는 “다운이가 자주 가던 곱창집 주인도 오셨는데 다운이가 거기서 기타 치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고 말했다. 다운이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밴드 동아리를 하던 다운이는 노래를 잘 불렀고 기타도 잘 연주했다고 한다. 같은 학교 선배인 한 여학생은 “수련회 같은 데를 가면 꼭 노래를 불렀는데 정말 노래를 잘했다”고 말했다. 이어 “얼굴이 잘생겼고 성격도 좋아서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안산 단원고 다운이의 반 앞에는 ‘다운 오빠 보고 싶어요. 노래 듣고 싶어요’, ‘많이 힘들었죠. 편히 쉬고 있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다운 오빠’라고 쓰인 포스트잇이 많이 붙어 있다. 다운이는 수학여행 가기 1주일 전부터 가서 부를 노래를 연습했다고 한다. 다운이의 한 친구는 영정을 보며 말했다. “가수가 꿈이라고 했는데 다운이는 이미 가수예요. 학교 친구들부터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다운이의 노래를 들었다면 기억해줄 테니까요.” 안산=김성모 기자 mo@donga.com}

“난간 끝에 매달려 한 손으로 구명조끼를 던져주시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라니….” 경기 안산시 고려대 안산병원에 입원 중인 단원고 재학생 한상혁 군(17)은 남윤철 교사(35·사진)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는 배 끝 쪽으로 홀로 걸어가 학생들에게 조끼를 던져주며 “침착하라”고 다독인 게 남 교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하 객실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한 군은 갑자기 배가 심하게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바닥에 두었던 짐들은 경사면을 따라 한쪽으로 쓸려 내려왔다. 당황한 학생들은 객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서성였다. 남 씨는 구명조끼부터 찾았다. 조끼는 배 끝 쪽에 몰려 있었다. 배는 머리만 수면 위로 드러낸 채 꼬리 부분이 점점 가라앉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 씨는 흔들리는 배 안에서 한 손으론 난간을 쥔 채 중심을 잡으며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졌다. 한 군은 “복도에서 탈출한 학생 중엔 내가 거의 마지막이었는데, 선생님이 학생 전부 구명조끼를 입고 올라갈 때까지 계속 난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한 군은 사고 후 충격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눈을 감으면 어둡고 흔들리던 배 안의 상황이 떠올라 잠을 자지 못한다.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17일 기자와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한 군은 당시의 아수라장이 떠오르는 듯 멍하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가 몇 초 뒤에 다시 입을 열곤 했다. 남 씨는 사고가 난 직후 갑판까지 올라갔지만 아래층의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객실 쪽으로 내려간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남 씨의 인도를 받아 구명보트에 탄 김모 군(17)은 “처음 배가 흔들렸을 때 선생님이 우리들을 위에 데려다주고, 남은 학생들을 위해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번 수학여행에 동행한 단원고 교사 14명 중 17일 현재까지 생존자는 2명뿐이다.안산=김수연 sykim@donga.com·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