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김갑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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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갑식 부국장입니다.

취재분야

2025-09-09~202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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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英석학이 한국 사찰서 찾은 삶의 지혜

    삶은 왜 괴로운가? 나는 누구인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은 생물학계 석학으로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인 데니스 노블(85)이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Noble Asks’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노블 교수는 24세 때 세계 최초로 심장을 스스로 뛰게 하는 신경세포를 발견하고, 가상 심장을 개발해 심장 연구에 새 장을 연 인물이다.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 결정론을 비판하며 생명은 유기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해왔다.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마치 알파벳 글자와 같습니다. 내 몸 안에 있는 DNA라는 글자를 가지고 우리는 아주 두껍고 커다란 책을 만들어내죠. 그 책이 바로 생명입니다.” 서문에 실린 그의 생명론이다. 글자 하나하나가 책이 아닌 것처럼 유전자 하나하나가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을 방문해 4명의 출가자를 만났다. 통도사의 가장 큰 어른인 방장(方丈) 성파 스님, 생명공동체 운동을 펼쳐온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 오랜 시간 참선 수행법을 전파해온 전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이다. 출가자들은 걱정이나 불안, 이기심, 괴로움은 본래 마음에는 없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에 때가 묻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이들의 말을 그대로 살려 생생하게 소개하지 않고 일반 문장으로 정리한 점은 아쉽다. 다큐멘터리는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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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짊어진 삼 아까워 금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경전에 삼(麻)을 지고 가던 사람이 금(金)을 보았지만 삼이 아까워 금을 두고 가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담마기금(擔麻棄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욕망과 분노로 출렁이는 습관을 내려놓으면 더 좋은 미래가 열린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인 1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법요식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사진)은 봉축사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에서 봉축 법요식이 일제히 거행됐다. 조계사 법요식은 육법공양, 삼귀의례, 관불 등 불교 의식에 이어 불자대상 시상,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 등으로 진행됐다. 진제 스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자연과 인간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깨닫게 됐다”며 “자연은 우리의 조상들이 깨끗하게 보존하기를 기원하며 물려준 것이며, 우리도 미래의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원행 스님은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미얀마를 향해 “미얀마 당국은 북방의 부처님오신날인 (음력) 4월 초파일(19일)부터 남방의 부처님오신날인 4월 보름(26일)까지 모든 적대행위의 중단을 선언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는 축하 메시지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비극이 우정의 끈을 단단히 묶어주고 있다”며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연대와 실천하는 보살핌이라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독한 메시지를 통해 “불교계가 여러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대자대비와 상생의 마음으로 방역의 모범을 보이고 힘든 이웃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법요식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좌석 간 1m 거리를 두고 200석의 간이의자만 배치됐다.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NCCK 이홍정 총무, 원불교 오도철 교정원장을 비롯한 종교계 인사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여영국 정의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무소속 홍준표 의원 등이 법요식에 참석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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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재료의 소중함 되새기는 ‘조화로운 미덕’ 한 입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에 있는 ‘발우공양’은 사찰음식 전문 레스토랑이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전통문화와 불교문화가 담긴 사찰음식의 원형을 보전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식문화의 원형을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2017∼2019년 미슐랭가이드 원스타를 연속 수상했다. 발우공양은 제철 재료에서 나오는 고유의 맛을 활용해 우리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사찰음식을 제공한다. 5∼20년 이상 전통방식으로 숙성한 전통장과 천연양념을 이용해 계절에 맞는 사찰음식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수행자의 소박한 음식부터 아픈 이를 위한 치유식, 명절에 먹는 명절식, 국가 규모의 대규모 의례행사에 쓰인 의례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통 사찰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사찰음식은 서로 다른 재료가 제 역할을 다해 조화로운 음식으로 완성된다. 먹는 이로 하여금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따라 삶의 방식과 태도가 결정된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한다. 메뉴는 선식, 원식, 마음식, 희식, 법식의 총 5개 코스 요리로 구성돼 있다. 법식의 경우 단순한 식사를 넘어 사찰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체험형 코스로 운영된다. 식사 장소가 별도 공간으로 이뤄져 안전하고 편한 식사를 할 수 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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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도사, 6·25전쟁 때 육군병원 분원

    16일 찾은 경남 양산시 통도사 용화전(龍華殿)에선 옥으로 조성된 부처를 봉안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곳은 1369년 고려 공민왕 때 만들어졌는데 현재의 전각은 1725년 중수된 후 1899년 수리를 거쳤다. 안에는 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2019년 이 불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당대 고승 구하 스님(1872∼1965)이 붓글씨로 쓴 연기문(緣起文)이 나왔다. 문서에는 불상과 전각의 조성 과정뿐 아니라 당시 상황이 기록돼 있었는데, 국군 상이용사 3000여 명이 입사(入寺)한 후 퇴거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는 6·25 전쟁 당시 통도사가 육군병원 분원(分院)으로 사용됐다는 여러 증언에 대한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통도사와 이별한다” “停戰(정전)이 웬 말?” 등의 문구뿐 아니라 탱크와 트럭, 아이 얼굴 등 사찰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광명전 벽면의 낙서들에 얽힌 궁금증도 함께 풀렸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뒤 56억7000만 년이 지나면 사바세계에 출현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다. 이를 반영해 용화전에는 567개의 작은 옥 부처를 봉안한다. 통도사는 “불자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400여 부처님 조성을 위한 기금이 모였다”고 밝혔다. 통도사는 올해 6·25 전쟁 71주년을 앞두고 용화전 567 옥부처 봉안식과 더불어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다. 가장 많은 부상병들이 입원해 치료를 받은 옛 보광중 자리(현재 성보박물관 앞)에는 기념물이 조성될 예정이다. 주지 현문 스님은 “통도사 육군병원을 국가적으로 인정하는 작업을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 통도사가 전쟁 중에는 호국불교의 역할을 기꺼이 담당했음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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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 가르침 따라 베풀고 나누는 강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배려의 마음입니다. 불자(佛子)들께서는 몸에 익히고 계신 거죠.”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13일 만난 정순균 서울 강남구청장의 말이다. 그는 기자 출신으로 국정홍보처장과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을 지냈으며 2018년 8월 민선 7기 강남구청장으로 선출됐다. 정 구청장은 4월 한국참선지도자협회(이사장 의정 스님), 한국명상총협회(회장 각산 스님·참불선원장)와 함께 제2회 대한민국명상포럼을 개최하는 등 명상과 힐링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 알고 있는데…. “세례명은 요셉이다. 하지만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사랑과 자비, 나눔으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관내에 있는 봉은사 앞에서 17년째 살고 있는데, 이른 아침 봉은사와 주변을 1시간 정도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불교와는 어떤 인연이 있나. “봉은사는 ‘강남의 보배’다. 관내에는 구룡사와 능인선원 같은 큰 도심사찰과 비구니회관이 있는 범룡사도 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불교가 편안하고 따뜻해 큰 스님들과도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다.” ―명상포럼은 어떻게 평가하나.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힐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달 9∼11일 강남구민회관과 양재천 일대에서 명상포럼과 양재천 명상걷기’를 진행했다. 각산 스님과 베르나르 신부님, 이시형 박사 같은 명사들의 강연이 있었고, 온라인으로도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강남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면서 따뜻한 위로가 됐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반응이다.” ―코엑스 지하에 ‘강남힐링센터’가 있다고 들었다. “강남구는 한국의 성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그래서 더 정신적인 힐링이 필요하다. 깊은 산이나 바닷가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웃, 도심 한가운데에 그런 정신적 쉼터를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신사동과 개포동 등지에 3, 4곳의 힐링센터를 만들어 강남을 물질뿐 아니라 정신문화가 꽃 피는 곳으로 변모시키고 싶다.” ―강남구의 구호인 ‘기분 좋은 변화, 품격 있는 강남’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기분 좋은 변화’를 위해 지난 2년 10개월간 강남의 거리환경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대규모 개발사업을 충실히 준비하며 하드웨어 측면의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강남이 베풀고 나누는 따뜻한 도시가 될 때 품격 있는 강남이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 이제는 강남의 내적인 가치를 본격적으로 뉴디자인할 때다.” ―코로나19로 올해도 연등회가 취소되는 등 어려움이 많다. “우리는 ‘성불(成佛)하시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이 시대의 성불은 자비와 사랑, 나눔으로 함께 잘 사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출가자뿐 아니라 불자와 국민 모두 누렸으면 하는 가치다. 강남이 집안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은 물론 이웃까지 넉넉하게 챙기는 어머니 마음을 닮은 ‘마더 시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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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부처님, 통도사에 모셔 “두 나라 佛心으로 하나되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경남 양산시 통도사에 인도의 불상이 봉안됐다. 인도 정부 차원에서 조성한 불상이 한국에 온 것은 처음이라는 게 통도사 측 설명이다. 통도사는 16일 오전 10시 국제템플스테이관 청풍당에서 ‘한국·인도 국제문화교류 불상 봉불식’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삼귀의례와 반야심경 낭독 등 불교 의례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기금 전달식, 주지 현문 스님의 환영사, 스리프리야 랑가나탄 주한 인도대사의 인사말, 방장(方丈) 성파 스님의 법어 등으로 진행됐다. 통도사는 국내 사찰 중 인도와 인연이 많은 곳으로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는 불보(佛寶) 사찰이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 설법한 곳으로 알려진 영축산과 같은 명칭의 산이 있어 영축총림으로 불린다. 통도사 승가대학장인 인해 스님은 고불문(告佛文)에서 “인도 영축산과 통도사 영축산이 둘이 아님을 증명하듯, 인도 정부에서 석가모니 불상을 조성하고 이곳 통도사에 기증하여 봉안하게 됐다”며 “인도와 한국이 불심으로 하나 되는 행복한 불사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랑가나탄 대사가 통도사를 방문해 주지 현문 스님을 예방한 것이 이번 불사의 시발점이 됐다. 당시 현문 스님은 통도사 창건 설화와 함께 사찰을 품은 산의 이름이 부처가 법화경을 전했던 인도 영축산 이름에서 왔다는 사연을 전했고, 랑가나탄 대사는 큰 감동을 받아 불상 기증 의사를 밝혔다. 청동으로 조성된 불상의 무게는 225kg이다. 이 불상은 4월 15일 항공기를 통해 한국에 도착했고 4월 30일 주한 인도대사관에서 기증 및 이운(移運) 행사를 했다. 현문 스님은 “가야 수로왕의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설화는 한국과 인도의 오래된 교류사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며 “한국과 인도가 지리적으로 가깝지는 않지만 부처님 성지를 통해 우리 불자들과 연결돼 있어 심리적 거리는 가깝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청동불상의 통도사 봉안을 계기로 양국의 교류가 종교에 국한하지 않고 문화와 경제 분야로 더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통도사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도를 지원하기 위해 코로나 극복 성금과 마스크 30만 장을 기부했다. 랑가나탄 대사는 “인도 정부의 선물인 청동불상을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는 통도사에 모실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인내는 행하기 어렵지만, 인내하는 자에게 승리가 찾아온다’는 부처의 메시지를 가르침 삼아 세계가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문화부장 오심 스님이 대독한 축사에서 “인도는 부처님의 위대한 족적이 남아 있고 불자들은 그곳들을 찾아 가르침을 얻고 있다”며 “통도사가 기증한 토지를 기반으로 인도 부다가야 분황사 설립이 꽃을 피우게 됐다”고 했다. 통도사의 가장 큰 어른인 성파 스님은 법어를 통해 인도 불상을 통도사에 모시는 의미를 밝혔다. “인도 부처님을 모신 것을 계기로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 법망(法網)은 법률, 행정적 차원뿐 아니라 촘촘한 법망으로 고해에 시달리는 중생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구하겠다는 부처님의 뜻을 담고 있다. 부처님을 모시는 공덕으로 자신 속의 부처를 찾고, 법등을 밝히길 바란다.” 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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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부처님 모신 통도사, 깨달음의 法燈 밝히다

    부처님오신날(19일)을 앞둔 16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에 인도의 불상이 봉안됐다. 인도 정부 차원에서 조성한 불상이 한국에 온 것은 처음이라는 게 통도사 측 설명이다. 통도사는 이날 오전 10시 국제템플스테이관 청풍당에서 ‘한국·인도 국제문화교류 불상 봉불식’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삼귀의례와 반야심경 낭독 등 불교 의례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기금 전달식, 주지 현문 스님의 환영사, 스리프리야 랑가나탄 주한 인도 대사의 인사말, 방장(方丈) 성파 스님의 법어 등으로 진행됐다. 통도사는 국내 사찰 중 인도와 인연이 많은 곳으로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는 불보(佛寶) 사찰이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 설법한 곳으로 알려진 영축산과 같은 명칭의 산이 있어 영축총림으로 불린다. 통도사 승가대학장인 인해 스님은 고불문(告佛文)에서 “인도 영축산과 통도사 영축산이 둘이 아님을 증명하듯, 인도 정부에서 석가모니 불상을 조성하고 이곳 통도사에 기증하여 봉안하게 됐다”며 “인도와 한국이 불심으로 하나 되는 행복한 불사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랑가나탄 대사가 통도사를 방문해 주지 현문 스님을 예방한 것이 이번 불사의 시발점이 됐다. 당시 현문 스님은 통도사 창건 설화와 함께 사찰을 품은 산의 이름이 부처가 법화경을 전했던 인도 영축산 이름에서 왔다는 사연을 전했고, 랑가나탄 대사는 큰 감동을 받아 불상 기증 의사를 밝혔다. 청동으로 조성된 불상의 무게는 225kg이다. 이 불상은 4월 15일 항공기를 통해 한국에 도착했고 4월 30일 주한 인도대사관에서 기증 및 이운(移運) 행사를 했다. 현문 스님은 “가야 수로왕의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설화는 한국과 인도의 오래된 교류사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며 “한국과 인도가 지리적으로 가깝지는 않지만 부처님 성지를 통해 우리 불자들과 연결돼 있어 심리적 거리는 가깝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청동불상의 통도사 봉안을 계기로 양국의 교류가 종교에 국한하지 않고 문화와 경제 분야로 더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통도사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도를 지원하기 위해 코로나 극복 성금과 마스크 30만 장을 기부했다. 랑가나탄 대사는 “인도 정부의 선물인 청동불상을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는 통도사에 모실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인내는 행하기 어렵지만, 인내하는 자에게 승리가 찾아온다’는 부처의 메시지를 가르침 삼아 세계가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문화부장 오심 스님이 대독한 축사에서 “인도는 부처님의 위대한 족적이 남아 있고 불자들은 그곳들을 찾아 가르침을 얻고 있다”며 “통도사가 기증한 토지를 기반으로 인도 부다가야 분황사 설립이 꽃을 피우게 됐다”고 했다. 통도사의 가장 큰 어른인 성파 스님은 법어를 통해 인도 불상을 통도사에 모시는 의미를 밝혔다. “인도 부처님을 모신 것을 계기로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 법망(法網)은 법률, 행정적 차원뿐 아니라 촘촘한 법망으로 고해에 시달리는 중생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구하겠다는 부처님의 뜻을 담고 있다. 부처님을 모시는 공덕으로 자신 속의 부처를 찾고, 법등을 밝히길 바란다.”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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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판’ 유언남긴 법정스님, 친필 유고 34년만에 출간

    법정 스님의 미발표 유고를 모은 책 ‘진리와 자유의 길’(사진)이 부처님오신날(19일)을 앞두고 최근 출간됐다. 책의 원고는 법정 스님이 1987년 전남 송광사 수련원장으로 있을 때 작성한 기록들이다. 법정 스님은 1980∼1991년 수련원장을 맡아 수련생들을 위해 불교의 핵심 내용을 담은 교재를 만들어 강의했다고 한다.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을 시작으로 초기 경전 이야기, 중도·사성제와 팔정도·육바라밀 등 핵심 원리, 선문답과 참선 방법 등 불교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이 담겨 있다.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 야운 스님의 자경문, 지눌 스님의 수심결도 다뤘다. 법정 스님이 직접 쓴 책은 2008년 출간된 ‘아름다운 마무리’가 마지막이다. 2010년 입적을 앞두고 ‘글빚도 남기지 말라’며 자신의 책들을 절판하라는 유지를 남겼다. 법정 스님의 맏상좌인 덕조 스님은 “이번에 월간 ‘맑고 향기롭게’에 싣기 위해 스님의 원고를 정리하다가 친필 유고를 발견했다”며 “책의 판매 수익은 우리 사회를 좀 더 맑고 좀 더 향기롭게 만들어 보자는 법정 스님의 뜻을 실천하는 모임 사업에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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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담 스님 “잠시도 헛되게 시간 보내지 말라… ‘不息寸陰’의 가르침 생생”

    펼쳐진 책과 손때 묻은 공책, 오래된 경전 테이프, 종이학…. 6일 경기 부천시 석왕사를 찾아 둘러본 고산 스님의 거처에는 3월 23일 88세로 입적한 스님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과 계율(戒律)을 관장하는 전계대화상, 쌍계총림 방장을 지낸 스님은 종이학 접기를 비롯해 손으로 하는 것은 못하는 게 없었다고 한다. 10일 오전 10시 반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치러지는 49재를 앞두고 맏상좌이자 쌍계사 주지인 영담 스님을 만나 스승인 고산 스님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 고산 스님의 임종게(臨終偈) ‘봄이 오니 만상이 약동하고(春來萬像生躍動·춘래만상생약동)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秋來收藏待次期·추래수장대차기) 내 평생 인사가 꿈만 같은데(我於一生幻人事·아어일생환인사)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今朝收攝歸故里·금조수섭귀고리).’ 고산 스님이 남긴 임종게다. 요즘 스님들의 임종게는 제자들이 쓰는 경우가 많지만 고산 스님의 임종게는 입적 2개월 전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확인됐다. 몇 년 전 큰 고비를 넘긴 뒤 매년 임종게를 썼다고 한다. 고산 스님의 생일 무렵 제자들이 모이면 가벼운 입씨름이 오갔다. “임종게를 뭐 하러 매년 쓰십니까. 100세까지 사실 텐데.”(영담 스님) “내 수명은 여든셋이 정명(定命·정해진 수명)인데 영담이 덕분에 더 살고 있다.”(고산 스님) 영담 스님은 임종게에 대해 “봄은 시작을 알리고, 가을은 결실 아니냐”며 “평소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면서 영원한 것은 없고 시작과 함께 돌아온 길로 간다는 이치를 전하고 있다”고 했다. 고산 스님은 언젠가 있을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다른 노스님들의 장례에 참석해 쓴 추모글과 법문, 사찰 창건에 얽힌 옛날 금전출납부까지 꼼꼼히 챙겨 남겼다.○ 영담 스님의 사부곡(思父曲) 불교에서 스승은 속세의 아버지에 비유된다. 특히 13세 때 출가해 50여 년 고산 스님의 곁을 지킨 영담 스님은 더욱 그렇다. 49재 때 헌정되는 추모 사진집에 영담 스님이 쓴 글에는 이런 심정이 절절이 담겨 있다. “1967년 가을 어느 날, 첩첩산중 청암사 극락전 골짜기에서 스님을 처음 뵙고 반평생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 때로는 엄한 스승이었고, 때로는 따뜻한 어머니셨고,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셨습니다. 스님 앞에서 저는 여전히 13세 행자이고, 스님은 저에게 이 세상 전부이셨습니다.” 고산 스님은 경·율·론(經律論) 3장에 두루 능한 종단의 대표적 원로이자 평생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을 지켜 ‘지리산의 무쇠소’로 불렸다. 그만큼 자신은 물론 제자들에게도 엄한 스승이자 아버지였다. “어릴 때는 많이 힘들었다. ‘세속에서는 가정교육, 출가는 스승교육인데 그것이 안 돼 있으면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게 고산 스님의 가르침이었다.”(영담 스님) 고산 스님은 수행과 함께 평생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삶과 잠시도 헛되게 시간을 보내지 않는 불식촌음(不息寸陰)의 모범이었다. “어느 날은 전화를 걸어 ‘장독대를 만들고 김칫독을 묻어라’ 하고, ‘내일 아침은 영하로 떨어지니 농사지은 배추를 잘 덮어 두어라’고 하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1975년 쌍계사 주지로 부임해 밥 먹기도 어려웠던 이 도량을 가꾸기 위하여 서울로 부산으로 동분서주하며 46년간 이 산중을 지키셨다.”(영담 스님) 석왕사 옆에 새로 들어선 건물 4층에는 스승의 건강이 좋아지면 새 거처로 쓰려던 공간이 있다. “햇볕 잘 드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고 했는데 결국 모시지도 못하고…. 이 공간은 기념관으로 조성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제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담 스님은 “제자들은 평소 늘 말씀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 불식촌음의 가르침을 유언 삼아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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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과학에 상상 곁들인 방구석 시간여행

    시간여행은 영화와 드라마의 인기 테마다. 현실 속에서 공인된 시간여행자가 없거나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상상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긴 제목의 이 책은 시간 여행을 위한 동화책에 가깝다. 역사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력의 양념이 뿌려졌다. 책은 ‘취향대로 떠나는 테마여행’ ‘과거로 돌아가 더 나은 세상 만들기’ ‘시간여행자를 위한 필수 여행정보’ 등 3부로 구성돼 있다. 독일 출신의 두 저자는 싱크탱크를 설립해 활동하며 ‘무지의 사전’ ‘여행의 기술’ 등을 공동 출간했다. 테마여행은 만국박람회에서부터 과학자들의 역사적 순간을 더듬는 과학기행, 고대문명, 공룡왕국, 우주의 빅뱅 등으로 이어진다. 중세를 여행하는 이들은 냄새와 위생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경고다. 당시 사람들은 대체로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고, 간혹 씻을 때에도 여러 사람이 같은 용기의 물을 썼다. 따뜻한 물을 얻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시간여행지의 하나인 공룡왕국에는 공룡 말고도 도처에 위험이 도사릴 것이다. 공기 중 산소 농도도 지금과 다르고, 대부분의 동식물도 우리에겐 생소한 것들이다. 먹을거리 모두를 가져가야 할지도 모른다. 2부와 3부는 작은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나비효과나 여러 버전의 우주의 존재 등 시간여행에 얽힌 신화와 필수적인 정보를 다뤘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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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역 군법사가 펴낸 에세이… 금강경 번역-해설서도 나와

    부처님오신날(19일)을 앞두고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들이 출간됐다. ‘부처님 군대 오신날’(맑은소리 맑은나라·사진)은 현역 군법사로 활동 중인 지용 스님의 에세이다. 군법사는 군부대에 배속돼 군법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포교하는 스님이다. 법사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스님들 이야기, 부처님오신날 군법당 풍경, 군법사·군종 목사와 신부를 돕는 군종병,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사연이 담긴 편지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군인이자 수행자의 삶을 사는 군법사들의 일상도 접할 수 있다. 책에 담긴 글은 지용 스님이 육군본부 군종실에 근무하면서 잡지에 연재한 글을 보완한 것이다. ‘술술 읽으며 깨치는 금강경’(운주사)은 대승불교의 정수로 꼽히는 금강경을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 해설한 책이다. 번역과 해설을 나누지 않고 번역 경문을 현대 한국어로 매끄럽게 해석해 번역 자체가 그대로 해설서 역할을 하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히말라야 문화권에 관심을 가지고 교류하는 비정부기구(NGO) ‘나마스떼코리아’ 회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한 결과물을 엮었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가 14년 동안 히말라야 지역을 다니며 카메라에 담은 사진도 수록돼 있다. 동방불교대 학장인 상진 스님이 감수를 맡았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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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석 추기경, 명동밥집 ‘콕’ 찍어 기부… 마지막까지 나눔 실천”

    지난달 선종(善終)한 정진석 추기경이 2월 입원한 이후 각별하게 관심을 쏟은 곳이 있다. 생명 존중과 나눔 실천을 위해 설립된 천주교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One-Body One-Spirit)다. 이 단체는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한 해 앞둔 1988년 설립됐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초대 이사장, 정 추기경이 2대 이사장을 지냈다. 2006년 이 단체에 장기기증을 서약하고 연명치료를 거부했던 정 추기경의 안구는 선종 직후 적출돼 연구용으로 기증됐다. 정 추기경 통장의 잔액 중 1000만 원은 이 단체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에 기부됐다. 정 추기경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던 지난달 29일 서울 명동대성당 인근 명동밥집과 본부 사무실에서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정환 신부(51)를 만났다. ―나눔에 대한 정 추기경의 관심이 각별했다. “사랑과 나눔을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한 분이었다. 2006년 서울성체대회 개최를 앞두고 장기기증을 서약하면서 ‘나이가 많아 장기를 쓰기 어려우면 안구라도 써 달라’고 하셨다. 추기경님 서약 뒤 서울대교구에서도 600명 넘는 신부들이 장기기증에 동참했다. 남모르게 매달 용돈 일부를 본부에 후원하셨다.” ―명동밥집도 정 추기경이 지원한 5곳 중 한 곳이다. “당신의 시간과 돈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 게 그분 삶이었다. 명동밥집을 ‘콕’ 찍어 기부해주신 것도 소외된 이웃에 대한 그동안의 나눔 실천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추기경님이 ‘나는 마지막 떠나면서 이렇게 할 테니, 여러분도 함께 합시다’, 이런 메시지를 주셨다.” ―정 추기경님의 장기기증과 연명 치료 거부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교회 큰 어른들의 실천이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9년 김 추기경님의 안구 기증이 대표적 사례다. 이전에는 한 해 장기기증 서약자가 3000명 정도였는데, 그해 10배가 넘는 3만1940명이 서약했다. 정 추기경의 안구 기증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약자와 상담자도 늘고 있다.” ―이후 계획은…. “부끄럽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면접촉이 어려워 장기와 조혈모세포 기증사업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추기경님의 깊은 뜻과 큰 실천이 있었던 만큼 사제들과 신자, 시민들까지 동참하는 캠페인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명동밥집 상황은 어떤가. “1월 6일 시범운영을 시작한 뒤 수, 금, 일요일에 운영하는데 평일 기준 400명, 일요일은 500명이 찾고 있다. 그간 코로나19로 도시락만 제공했는데 5일부터 대형 텐트를 마련해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현장 배식으로 따뜻한 한 끼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명동밥집, 작명(作名)이 잘됐다. “명동 한복판, 한국 천주교의 심장에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필요하고 기부와 봉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염수정 추기경님을 비롯한 교구의 생각이었다. 처음엔 성인의 이름을 딴 ‘○○의 집’도 후보였는데 일반인도 오기 쉽고, 밥집이라는 따뜻한 이미지가 있어 명동밥집이 됐다.” ―정 추기경님과 개인적 인연이 있나. “1998년 청주교구에서 서울대교구장으로 오신 당시 정 대주교님이 명동대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주셨다. 교회에서 서품을 준 주교님과 사제들의 관계를 세속의 부자 관계로 비유한다. 그래서 제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착한 사제로 살라’는 말씀이 기억난다. 동기들이 서품 뒤 3년 만에 군종신부로 다시 입대하는데 정 대주교님과 부모님들을 모시고 ‘군대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쳤던 기억도 난다.” ―정 추기경님의 유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늘 한결같이 사제가 살아야 할 모습으로 사신 분이었다. 유언처럼 사람들에게 ‘행복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추기경님도 누구보다 행복한 사제이셨다. 우리 본부도 최선을 다하고, 저도 행복한 사제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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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느님 뜻대로’… 정진석 추기경, 행복 안고 영면

    2일 경기 용인시 천주교 성직자 묘역에는 정진석 추기경의 묘소를 찾은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행복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남기고 지난달 27일 선종(善終)한 정 추기경 시신은 1일 하관예절 뒤 이곳에 안장됐다. 선종 순으로 정해진 묘소 위치는 김수환 추기경, 김옥균 주교 옆 자리다. 그의 사목표어였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새겨진 묘비가 들어설 예정이다.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한 하관예절은 시작기도와 분향, 성수를 뿌리는 예식으로 시작했다. 이어 정 추기경의 관을 묘 안에 내린 후 주교단과 사제단, 유가족 등이 관 위에 성수를 뿌리고 흙을 얹는 것으로 끝났다. 이에 앞서 서울 명동대성당에서는 장례미사가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강론을 이어가던 염 추기경은 감정이 북받친 듯 2분여 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그는 2월 병자성사 때 일화를 언급하며 “추기경께서 ‘하느님 만세’를 외쳐 참석자들이 깜짝 놀랐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의미였다”며 “정 추기경님은 이미 천국에서 김대건 신부와 시복시성이 추진 중인 최양업 신부님을 만나셨을 것”이라고 했다. 정 추기경의 관 위에는 그의 사목표어 구절이 있는 성경이 펼쳐져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애도 서한에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을 슬퍼하는 모든 분께 부활하신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보증하는 징표로 저의 진심 어린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고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는 “정 추기경님은 1931년 태어나신 후 이 순간까지 하느님 섭리에 따라 대장정 마라톤을 앞만 보고 뛰어 완주했다”고 애도했다. 사제단 대표 백남용 신부는 “한잔의 와인을 사랑했던 추기경님, 이제는 ‘예수님 직영 공장’에서 나오는 와인을 편히 음미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장례미사에는 방역 지침에 따라 사제 80명과 유족 등 320명이 참석했다. 명동대성당 앞에서는 1200명의 추모객이 자리를 지켰다. 정 추기경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량은 낮 12시 20분경 조종(弔鐘)이 울리는 가운데 90년 인연을 맺은 명동대성당을 떠났다. 조문이 진행된 사흘 동안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각계에서 4만6000여 명이 빈소를 찾았다. 한편 서울대교구는 2일 정 추기경의 유지에 따라 통장에 남긴 약 800만 원은 지역화폐로 바꿔 자신을 치료한 의료진과 봉사자 등에게 감사 선물로 전달한다고 밝혔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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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제이자 사회의 큰 어른 떠나보낸다”…故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 봉헌

    “정 추기경님은 교회의 사제이자 사회의 큰 어른인 김(수환) 추기경님을 떠나보내는 심경을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정 추기경님을 마음으로 의지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뵙는 것만도 해도…큰 힘이 됐습니다.” 1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에서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강론 중 눈시울을 붉히며 어렵게 말을 이어가다 감정이 북받친 듯 2분여 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누군가 수건을 건네 놓기도 했다. 겨우 감정을 추스린 염 추기경은 “우리 교회와 사제들에게 김 추기경님은 아버지, 정 추기경님은 어머니와 같은 분이었다”며 “정 추기경님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라는 사목표어처럼 사셨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행복에 대해 늘 강조하셨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릴 때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을 실천하셨다”고 했다. 한국 천주교주교단의 입장으로 시작한 이날 장례미사는 시작예식과 말씀 전례, 성찬 전례, 영성체 예식, 추도식, 고별식 등으로 2시간 여 동안 진행됐다. 이날 정 추기경은 시신이 안치돼 있는 삼나무 관 앞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관 위에는 그의 사목표어 구절이 있는 성경이 펼쳐져 있었다. 장례미사에는 방역 지침에 따라 사제 80명과 유족 등 250명이 참석했다. 명동대성당 앞에는 1200여명의 추모객들이 성당 내부에 들어가지 못한 채 자리를 지켰다. 염 추기경은 강론 중 “정 추기경님은 교회법의 권위자이자 기도하는 분이었다”며 “같은 곳에서 산책하고 기도하면서 늘 우리나라, 교회와 사제, 북한 동포,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회고했다. 지난 2월 22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진행된 병자성사 당시 일화도 언급됐다. “마지막에 추기경께서 ‘하느님 만세’를 외쳐 참석자들이 깜짝 놀랐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의미였다. 정 추기경님은 항상 순교자의 삶을 본받을 것을 다짐했는데, 이미 천국에서 김대건 신부와 시복시성이 추진 중인 최양업 신부님을 만나셨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가 대독한 애도 서한에서 “오랜 세월 한국 교회와 교황청을 위하여 봉사하신 정진석 추기경님께 여러분들과 한마음으로 감사드리며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연민 어린 사랑에 추기경님의 고귀한 영혼을 맡겨드리는 장엄한 장례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과 함께 하겠다”며 “부활의 확고한 희망 안에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을 슬퍼하는 모든 분께 부활하신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보증하는 징표로 저의 진심 어린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고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는 “정 추기경님은 1931년 태어나신 후 이 순간까지 하느님 섭리에 따라 대장정 마라톤을 앞만 보고 뛰어 완주했다”며 “이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로 한국 사회를 비춰주시고 이 땅의 모든 이가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살도록 성모님께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소신학교 시절 제자인 백남용 신부는 “한잔의 와인을 사랑했던 추기경님, 이제는 ‘예수님 직영 공장’에서 나오는 와인을 편히 음미해 주십시오”라며 “이제는 매년 책 한권 쓰시는 수고를 내려놓으시고, 천상의 주님 신탁에서 편히 음미해 달라”고 했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는 “밤하늘의 작은 별이 되고 싶다던 추기경님은 이제 큰 별이 되셨다”며 “정 추기경님이 지금 말씀하실 수 있다면 모두에게 감사하다, 고맙다고 말씀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이날 장례미사를 끝으로 90년에 걸쳐 인연을 맺은 서울 명동대성당과 작별을 고했다. 1931년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출생 나흘 만에 이곳에서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1961년 사제 서품과 이로부터 50주년을 맞은 금경축(金慶祝), 60주년인 회경축(回慶祝)도 모두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장례미사 뒤 운구 차량은 경기 용인시 성직자 묘역으로 향했다. 주교 묘역 중 선종 순으로 묘지 위치가 정해진다. 옆에는 2010년 선종한 김옥균 주교, 그 옆에는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묘가 있다. 정 추기경의 묘비에는 그의 사목 표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진다. 28일 조문이 시작된 뒤 사흘간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각계 인사 등 4만 6000여명이 정 추기경의 빈소를 찾았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 애도 서한천주교 서울대교구장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 전 서울대교구장이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저는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이에 서울대교구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의 말씀을 전하며 기도로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오랜 세월 한국 교회와 교황청을 위하여 봉사하신 정진석 추기경님께 여러분들과 한마음으로 감사드리며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연민 어린 사랑에 추기경님의 고귀한 영혼을 맡겨드리는 장엄한 장례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과 함께하겠습니다. 부활의 확고한 희망 안에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을 슬퍼하는 모든 분께 부활하신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보증하는 징표로 저의 진심 어린 사도적 축복을 보냅니다. 2021년 4월 28일, 바티칸에서교황 프란치스코}

    •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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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석 추기경 마지막 길, 손에 묵주 하나뿐

    고 정진석 추기경의 입관예절이 30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정 추기경의 묘비 문구로는 생전 사목 표어였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옴니부스 옴니아)’이 결정됐다. 이날 오후 거행된 입관식에서는 투명 유리관에 안치된 고인의 시신이 삼나무 관에 옮겨졌다. 손의 묵주를 제외하면 아무런 부장품도 들어가지 않았다. 천주교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정 추기경의 관은 다른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삼나무 관이며 머리에 쓰고 있는 주교관 때문에 사제들 관보다 10cm 긴 230cm”라며 “문장(紋章)이 (관에) 새겨지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정 추기경의 문장은 민족의 복음화와 일치를 이루고, 평화를 증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선종(善終)한 정 추기경은 90년에 걸쳐 인연을 맺은 서울 명동대성당과 1일 작별을 고하게 된다. 1931년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출생 나흘 만에 이곳에서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1일 오전 10시 장례미사 뒤 정 추기경의 시신은 경기 용인시 성직자 묘역에 안장된다. 주교 묘역 중 선종 순으로 묘지 위치가 정해진다. 옆에는 2010년 선종한 김옥균 주교, 그 옆에는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묘가 있다. 장례미사는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과 한국 주교단이 공동 집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염 추기경 앞으로 보낸 애도 서한에서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연민 어린 사랑에 추기경님의 고귀한 영혼을 맡겨드리는 장엄한 장례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 추기경이 생전 마지막으로 쓴 글은 6월 가톨릭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종군신부 카폰’ 개정판 서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추기경은 3월 10일로 날짜가 적힌 서문에서 자신의 서명과 함께 “지난달(2월)부터 병원에 입원한 후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며 “주님 안에 안식하는 것이 큰 은총이지만 아직 부족한 제가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지난달 28일 조문을 받은 이후 30일 오후 8시까지 약 4만5000명의 추모객이 정 추기경의 빈소를 찾았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표회장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과 공동 회장단도 30일 조문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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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추기경님이 장미꽃이라면, 鄭추기경님은 안개꽃”

    “김수환 추기경님이 장미꽃이라면 정진석 추기경님은 안개꽃 같은 존재였죠.” 시인이자 수도자인 이해인 수녀(76)는 2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선종(善終)을 애도하며 이처럼 비유했다. 그와 정 추기경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정 추기경 착좌(着座) 행사에 사용할 곡의 노랫말을 의뢰받은 것. 이 수녀는 “음악을 맡은 신부님의 부탁으로 추기경님만을 위한 노랫말을 만들었다. 정 추기경께서 ‘좋은 노랫말을 써주고 행사 참석을 위해 부산에서 먼 길을 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고 전했다. 그 뒤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정 추기경의 여러 책을 통해 신학적인 물음에 대한 도움과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정 추기경님은 생명윤리를 지키고 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힘썼다. 시인의 입장에서 볼 때 추기경님이 고위 성직자로 바쁜 중에도 매년 책을 출간해 51권의 저서를 냈다는 게 놀랍다. 성직자이자 학자로 잠시의 시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증표 아니겠나.” 그는 동아일보에 게재된 정 추기경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대를 이은 안구 기증에 얽힌 사연을 다룬 허영엽 신부 추모글(29일자 A10면)에 감동을 받았다며 “6·25전쟁 중 세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외동아들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더 큰 사랑을 선택한 젊은 시절 추기경님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수녀는 2018년 연명 치료를 거부한 정 추기경의 결정이 수도원 내에서도 큰 화제였다고 전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는 말도 있지 않나요. 수도원에 나이 든 수도자들이 많다 보니 남 일이 아니죠. 추기경님의 선종을 지켜보면서 연명 치료를 거부하겠다고 서약하거나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자는 다짐이 많아요.” 이 수녀는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도 떠올렸다. 암 치료를 위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던 힘든 시기였다. 마침 김 추기경도 병실에 있어 ‘입원 동기’ ‘환우(患友)’라고 했다고 한다. “하루는 힘들어 기도를 부탁드렸더니 너무 길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왜 이렇게 기냐고 했더니 ‘글 잘 쓰는 수녀니 하느님께 특별히 잘 봐달라고 부탁했어’라며 웃으시더군요.” 이 수녀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김 추기경은 아버지, 정 추기경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했다. 시인은 두 추기경의 삶을 꽃에 비유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님이 유머를 갖춘 카리스마의 장미꽃이라면 정 추기경님은 사람들에게 여유와 위로를 주는 은은한 안개꽃 같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의 큰어른들이 차례로 선종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접 조문은 못 하지만 수도원 내 동산을 돌며 묵상으로 정 추기경님을 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수녀는 1990년대 중반 피아니스트인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소개로 알게 된 배우 윤여정 씨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서울에 가면 신 교수 자택에서 식사 모임을 갖는데, 어머니가 가톨릭 신자인 윤여정에게 율리아나라는 세례명을 권하며 신앙을 가지라고 조르곤 했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뒤에는 ‘세례받으라고 당분간 안 조르겠다. 그동안 수고했고 마음껏 당당하게 즐기라’는 문자를 보냈어요. 바쁜지 아직 답은 없네요.”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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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장 잔액 800만원, 의료진 위해 써주세요”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을 남긴 정진석 추기경의 통장 잔액은 800만 원이었다. 정 추기경은 자신 때문에 고생한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 등에게 이 돈을 모두 써달라고 당부했다는 게 서울대교구의 설명이다. 앞서 정 추기경은 2월 통장 잔액 모두를 교구 내 무료급식소 명동밥집과 음성꽃동네, 아동신앙교육 담당 부서 등 5곳에 기부한 바 있다. 그 사이 통장 잔액이 늘어난 것은 투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30년 이상 경력의 사제에게 지급되는 교구지원비와 6·25전쟁에 참전해 보훈처에서 지급하는 금액 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정 추기경은 생전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장학회도 허락하지 않아 선종 뒤 추진 중이다. 한편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정 추기경은 한동안 안정된 상태였지만 26일 늦은 저녁부터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27일 오전 “어려우실 것 같다”는 의료진의 의견에 따라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측은 선종에 대비했다. 선종 시간은 27일 오후 10시 15분. 오후 11시 반경 병원을 출발한 운구차가 밤 12시경 명동대성당으로 들어설 무렵 공교롭게도 선종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울렸다. 세 번의 위기 때마다 의식을 회복한 정 추기경이 주변에 건넨 말은 “평화를 빕니다”였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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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환 추기경이 아버지라면,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였다”

    27일 선종(善終)한 정진석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는 28일 오전부터 정 추기경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명동대성당에 들어서자 환하게 웃는 고인의 생전 사진이 보였다. 뒤편에는 사목 표어로 삼았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주교관을 쓴 정 추기경은 손에 묵주를 든 채 유리관 속에 누워 있었다. 대성당에서는 1시간마다 가톨릭식 위령 기도인 연도(煉禱)가 낭송됐다. 추모객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기다리다 차례가 되면 대성당 제대 앞에 마련된 유리관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눈시울을 붉히면서 조문을 마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 이병순 씨(82)는 “정 추기경님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신 인자한 사제였다”며 “그동안 투병 중에 힘드셨을 텐테 이제 편히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28일 새벽에는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선종미사가 봉헌됐다. 염 추기경은 강론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아버지였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였다”며 “투병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통 중에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하느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고 밝혔다. 각계의 추모도 이어졌다.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는 추도사에서 “모든 사람을 신뢰하시며 인자로이 대해 주신 정 추기경님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라는 사목 표어에 따라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삶으로 일관하셨다”고 회고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 스님은 “평소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라셨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셨다”며 “정진석 추기경님이 남기신 평화와 화해의 정신은 우리 종교지도자들이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개신교 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은 대표회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평소 생명을 존중하며 행복하게 사는 삶을 추구했던 추기경님의 선종을 국민과 함께 애도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한국 천주교의 큰 언덕이며 나라의 어른이신 추기경님이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에 드셨다”며 “국민 모두에게 평화를 주신 추기경님의 선종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애도를 표했다. 여야도 한목소리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정 추기경의 장례는 전임 교구장 규정에 따라 5일장으로 치러진다. 조문은 30일(오전 7시∼오후 10시)까지 가능하며, 화환과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게 서울대교구 측의 설명이다. 30일 오후 5시에는 정 추기경 시신을 정식 관으로 옮기는 입관 예절이 예정돼 있다. 5월 1일 오전 10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염 추기경 주례로 장례미사가 봉헌된다. 미사가 끝나면 고인의 시신은 명동대성당을 떠나 장지인 경기 용인시 성직자묘역으로 향할 예정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박효목 기자}

    •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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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계 “가족제도 해체될 우려” 반발… 여성계 “사회 변화에 발맞춰야” 환영

    가족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대해 종교계는 이미 우려와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21일 ‘생명 주일’(5월 2일)을 앞두고 발표한 담화문에서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비혼 동거’ ‘사실혼’의 ‘법적 가족 범위 확대 정책’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가치로 여겨졌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염 추기경은 또 “여가부의 가족 범위 확대 정책은 가정과 혼인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신앙 및 윤리관과 어긋난다”며 “동성애로 이해되는 ‘비혼 동거’와 ‘사실혼’을 법적 가족 개념에 포함하는 것도 평생을 건 부부의 일치와 사랑, 그리고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가정의 고유한 개념과 소명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수 성향의 개신교계는 “건강한 혼인과 가족 제도를 해체한다”며 명백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교계 최대 연합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올 2월 발표한 성명에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차별금지법안과 그 궤를 같이하는 과잉 입법의 대표적 예”라며 즉시 철회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특히 이 개정안이 교계에서 반대해온 동성애와 동성 결혼 인정 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교총은 이 성명에서 “가족의 구성 방식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규정한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에 ‘사실혼’을 추가해 비혼·동거 가정도 가족 범주에 포함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법이 여가부의 의도대로 개정되면 동성 동거자는 사실혼 관계로 해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여성계 등에선 이번 발표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한 것이란 주장이 많았다. 한국한부모연합은 “미혼부(父) 자녀 출생신고를 용이하게 하는 등 사회 변화에 발맞춰 가족의 정의를 확대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 관계자는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형태를 한부모 가정, 위기가구 등으로 분류하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대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가부에서 이번에 좀 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줬으면 했는데, 너무 조심스러운 발표”라며 “의미 있는 변화에 찬반 논란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말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갑식 문화전문 기자}

    •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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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이에게 모든것이 되게 하소서”… 바지 한벌로 18년 ‘청빈한 삶’

    얼어붙은 남한강을 걸어서 건너는데 바로 뒤에서 얼음이 깨졌다. 뒤따라오던 동료들이 몰살됐다. 앞에 가던 동료가 지뢰를 밟고 숨져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6·25전쟁은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의 행로를 바꾸었다. 1931년 서울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해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전쟁 때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돼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들을 겪은 것이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끌었다. 1960년 성신대(지금의 가톨릭대)에 들어간 그는 1961년 사제품을 받고 서울대교구 중림동 본당 보좌신부로 사제의 첫발을 내디뎠다. 정 추기경은 1970년 청주교구장을 맡은 뒤 한여름에 에어컨을 켜지 않았고, 바지 한 벌을 18년 동안 입을 정도로 청빈하게 생활했다. 식사 초대를 못 하는 사람이 소외감을 느낄까 봐 일절 초대를 받지 않았고, 식사는 항상 교구 내 식당에서 했다. 그는 신자들이 “생활비에 보태 쓰라”며 한 푼 두 푼 내놓은 돈을 40년 동안 모아 1999년 5억 원을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에 장학기금으로 쾌척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 착좌(着座)에 이어 2006년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된 정 추기경은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가톨릭의 전통을 지켜낸 신앙의 수호자였다. 민감한 현실정치에는 입장 표명을 삼갔지만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정부의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하는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2010년 일부 시민단체가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4대강 개발에 반대한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자 정 추기경은 간담회에서 “주교회의의 결정은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아니었다. 난개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제대로 잘 개발해 달라는 취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의 목소리가 큰 분위기에서 쉽지 않은 발언이었다. 정 추기경의 발언은 초유의 추기경 용퇴 주장과 이에 맞선 서울대교구 사제들의 반발로 이어졌다.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과 함께 평양교구장 서리도 맡아 매일 밤 북한에서 어렵게 신앙을 지켜가고 있는 신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2007년 평양교구 설정 80주년 행사 준비 등 평양교구 재건을 위해 힘썼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 머물며 저술활동에 매진해왔다. 이임 미사의 한 대목에서 서울대교구에 대한 깊은 애정과 소탈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여기(명동대성당)에서 (가톨릭의) 7개 성사 중 (혼인성사와 병자성사를 뺀) 5개를 받았는데….(좌중 웃음) (떠나는) 감회를 말로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교구 사제와 신자들)이 일러주는 대로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14년이 휙 지나갔네요.” 교회법의 권위자인 정 추기경은 작은 것에서부터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한 약속과 원칙의 사제였다. 부제(副祭) 시절 룸메이트였던 고 박도식 신부와 매년 책을 내기로 한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 지난해까지 수십 권의 교리서와 에세이를 출간했다. ‘참신앙의 진리’와 ‘교회법 해설’ 개정판이 마지막 약속이 됐다.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될 당시 그가 세운 사목표어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였다. “사제는 우리말로는 ‘신부님’이지만 서양에선 보통 ‘아버지(father)’라 부르는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책임감이 무거웠다. 그 책임감도 잠시, 사람들로부터 시중과 존경을 받으며 지내다 보니 처음 느꼈던 그 맘도 사라지더라.” 이런 점을 의식해 ‘사제’를 빼놓는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정 추기경은 생전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장기와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글을 직접 써두었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어주었다. 영혼의 농부, 천상의 농부가 되다신달자 시인의 ‘정 추기경 추모’정진석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나’가 아니라 ‘너’를 생각하신 모습에 다시 울컥 목이 멥니다. 이 글을 쓰는 제 손이 떨립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암담한 제 마음이 저립니다. 누구에게나 오는 순연한 결과이지만 추기경님이 이미 이 지상의 분이 아니라는 생각은 제 온몸을 아리게 합니다. 물론 예수님 곁으로 가셨으니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원한 안식보다 부족한 저희들로부터 먼 곳에 계신다는 것이 더 안타까운 것은 아무래도 믿음이 미숙한 제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그리워지는 분입니다. 누구보다 의연하셨지만 누구보다 외로우셨을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추기경님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온전히 자신을 바쳐 예수님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꾸준히 세심하게 쉬지 않고 해 오신 분입니다. 누구보다 청빈하며 몸을 낮추고 가톨릭 정신과 예수님을 성스럽게 가르친 분이셨습니다. 죽음은 그 사람의 삶에 불을 밝히는 일입니다. 평상시 보았는데도 안 본 것처럼 스쳐 지나간 작은 일까지, 그가 눈을 감으면 그 일이 중심에 불을 켜는 것같이 밝아집니다. 추기경님을 처음 뵌 것은 2008년 11월 평화방송의 이스라엘 성지순례 여행에서였습니다. 모든 이에게 어렵지 않고 자연스러운 수평적 분위기를 만들려 매우 노력하셨지요. 어려운 분이 분위기가 기울어지지 않게 하시려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지난해 7월 교계 신문의 주교 수품 50주년 인터뷰를 위해 서울 혜화동에서 뵈었습니다. 6·25전쟁 때 옆 사람들이 죽고 추기경님만 살아남았다고 하셨죠. 추기경님은 “그때 왜 자신을 살렸는가”를 철저히 삶을 통해 답하셨던 충실한 하느님의 제자였습니다. 깊고 넓고 따뜻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쉴 새 없이 일해 온 ‘영혼의 농부’였습니다. 영혼을 밭갈이하며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거두는 농부, 그 험난한 신앙의 박토를 일구신 농부, 예수님의 말씀을 땅으로 삼으신 농부였습니다. 동시대에 함께 살았던 것은 제게 큰 선물이었습니다. 이 생각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겠습니다. 추기경님은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는 우리에게 최종 목적지와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성경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추기경님이야말로 우리에겐 그 길잡이며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등대지기셨습니다. 누가 쳐다보지 않아도 늘 불을 켜고, 바닷가에 외롭고 당당하게 서 있는 등대. 추기경님! 저는 추기경님이 너무나 먼 하늘 어디로 떠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울, 부산처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저희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계실 것을 확신합니다. 저희도 기억할 것입니다. 그 고귀한 흔적은 성경처럼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을 부르셨는데 음정·박자가 하나도 틀리지 않아서 많은 박수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추기경님이 가신 곳은 우리 다 알고 있지요. 빛나는 곳이라는 것을요. 사제로 태어나 사제로 떠나신 분, 정진석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가시는 길에 성모님이 마중하시는 그림을 떠올리며 두 손을 간절히 모읍니다. 김갑식 문화전문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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