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1조2199억 원의 공적자금을 받은 김성필 전 성원토건 회장이 지난해 3월 자신의 배우자를 전면에 내세운 건설사를 통해 경남 창원시 임대아파트 사업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자금 2조6266억 원이 투입된 성원건설의 전윤수 전 회장은 해외 지사를 통해 회삿돈을 아들에게 불법 송금해 부(富)를 대물림했다. 국민의 혈세(血稅)로 부실을 막은 일부 기업주들이 국가에 빚을 갚아야 할 의무를 도외시한 채 재산을 교묘히 빼돌려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것으로 동아일보 취재 결과 드러났다. 》 ▼ ‘공적자금 먹튀’ 회장들의 행태 ▼1997년 말 터진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공적자금을 들여서라도 기업들을 살려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 실제로 정부는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168조70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는 분식회계 횡령 사기대출로 대한민국 경제를 멍들게 한 부도덕한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의 오너들은 재산을 친인척 명의 등으로 은닉해 정당한 공적자금 회수를 방해하고 대형 로펌의 도움을 받아 경영권을 유지하고 처벌도 교묘히 피해나갔다. 이에 따라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법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불교 방패’로 재산 지키기 26일 서울 성북구의 한 저택. 3970m² 대지에 건물 세 채가 들어선 이 저택에는 김성필 전 성원토건 회장이 살고 있다. 1998년 부도 직후 명의를 ‘조계종 통도사’로 바꾸고 대문에 ‘연화사’라는 사찰 문패를 달았지만 실제로는 스님이 아니라 김 전 회장 부부가 살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성북구의 저택은 사찰이 아닌 주택으로 등록돼 있었다.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 무렵인 1997년 자신이 대주주인 한길종금과 경남종금을 통해 채무상환 능력이 없는 10개 계열사가 4200억 원을 불법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김 전 회장 스스로 회삿돈 200억 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정부가 두 종금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1조2199억 원에 이르지만 현재 김 전 회장과 성원토건 등으로부터 회수한 돈은 6547억 원에 그친다. 김 전 회장은 횡령 및 배임 등으로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김 전 회장은 최근 재기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3월 김 전 회장의 부인 하모 씨는 경남 창원시 임대아파트(1430채) 사업 인허가를 받았다. 이 사업부지 80%의 소유권은 하 씨와 하 씨가 대표인 해원건설이 갖고 있다. 재산 은닉 의혹이 일고 있지만 하 씨는 “창원 땅은 남편과 아무 상관이 없다. 빚을 내 샀다. (남편의) 복역으로 모든 처벌이 이뤄진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건설사를 인수합병(M&A)하면서 주변인에게 “캐나다, 홍콩에 숨겨둔 자산이 많고 골드바 몇 개면 50억∼60억 원은 금방 마련한다”고 재력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초 사적화의로 경영권 사수 전윤수 전 성원건설 회장은 ‘창의적인 법망 피하기’로 회사 빚을 공적자금으로 충당한 대표적인 ‘먹튀 회장’으로 꼽힌다. 성원건설은 1990년대 연매출 4000억 원에 달하던 중견 건설기업이었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부도를 낸 뒤 ‘사적화의’를 신청해 가까스로 경영권을 사수했다. 사적화의는 기업이 파산·위기에 처했을 때 법원 중재로 일정 채무를 탕감해주는 변제 협정이다. 대형 로펌 변호사들의 활약으로 당시 화의가 받아들여져 성원건설과 계열사인 성원산업개발은 각각 3381억 원, 1335억 원 등 4700억여 원의 채무를 면제받았다. 이후 전 전 회장의 행보는 무책임했다. 전 전 회장 부부는 회사가 또 한 번의 부도 위기에 놓였던 2011년 5월, 123억 원에 이르는 직원 임금을 체불하고 회사 자산인 골프장을 팔아 도피자금을 마련해 미국으로 달아났다. 그는 또 2010년 영국에서 유학하던 아들의 명문 사립고 진학을 위해 회삿돈 10억여 원을 학교 기부금으로 내놓았다. 동아일보는 전 전 회장 부부가 자신들이 거주했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한 고가 빌라(감정가 10억 원 상당)를 미국에 도피 중이던 지난해 8월 아들 이름으로 바꾼 사실도 확인했다. 전 전 회장의 아들은 앞서 12세이던 2006년 성원건설 주식 19.45%(평가액 250억 원)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서기도 했다. 한편 검찰은 전 전 회장이 받고 있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가 미국에선 범죄인 인도 요청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이 부부의 송환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그의 부인인 조모 씨가 서울행정법원에 낸 여권발급제한 처분 취소소송이 최근 기각돼 전 씨 부부는 조만간 미국 법원의 추방 심사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적자금 회수 법 제도 정비 시급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1년 12월 검찰, 국세청, 관세청, 예금보험공사(예보) 합동으로 공적자금비리 특별수사본부를 꾸렸고 4년 동안의 추적 끝에 2005년 비리사범 290명을 적발했다. 김 전 회장과 전 전 회장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들은 비리사범 중에서도 재산 은닉에 가장 적극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예보 관계자는 “환수 대상자의 재산이 새롭게 드러나면 즉시 행동에 나서지만 배우자나 친인척 명의로 돼 있으면 환수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업 오너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도록 기업구조조정 관련법에 오너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적시하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부인, 자녀 등 경영에 참여한 친인척 등에 대해서는 재산 변동을 수시로 정밀 조사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김재형 기자}
5일 검거된 경기 안산시 대부도 ‘토막시신’ 사건의 피의자 조모 씨(30)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다. 너무나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했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 조사 결과 조 씨의 기이한 행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는 살인 직후인 지난달 초부터 이달 5일까지 살인 장소이자 피해자 최모 씨(40)와 함께 거주하던 인천 연수구의 원룸에서 주로 영화를 보며 생활했다. 영화 채널만 시청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지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1일 대부도 내 불도방조제 인근에서 피해자 하반신을 발견하고 2600여 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나머지 시신을 수색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것도, 2일 뒤 상반신을 발견한 것도 몰랐다. 조 씨는 또 4월 한 달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활했다. 그는 ‘5∼10년 안에 2억 만들기’(24일), ‘잘 맞던 바지가 흘러내리는 이유’(30일) 등의 글을 SNS에 올렸다. 시신을 유기하기 전날인 26일에는 “난 그냥 발버둥칠래. 내 기도, 내 의지…꼭 이루어낸다”고 올렸다. 1일 살인 사건이 알려진 이후에도 ‘사업아이템이 떠오른다’ 등의 글을 썼다. 조 씨는 살인 이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직장에 출근했고 퇴근 후 열흘에 걸쳐 화장실에서 시신을 훼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건 정황으로만 추측한다면 사소한 일로 살인까지 저지르고 영화 보느라 수사가 진행 중인 것도 몰랐다는 점에서 편집증 환자의 성향이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살인·사체훼손·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조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조 씨의 얼굴과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6일 결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 씨의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해 영장실질심사나 현장검증 때 얼굴을 자연스럽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경기 안산시 대부도 남성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이 붙잡혔다. 평소 자신을 무시했다는 게 살인 동기였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희생자 최모 씨(40)의 거주지인 인천 연수구 원룸에서 조모 씨(30)를 긴급 체포했다고 5일 밝혔다. 올해 1월 인천의 한 여관에서 최 씨와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조 씨는 3월 말부터 생활비를 아낀다며 최 씨와 원룸에서 함께 생활해 왔다. 경찰 조사에서 조 씨는 “4월 초 어리다고 무시하던 최 씨와 집안일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부엌칼로 찔렀다”고 진술했다. 조 씨는 10여 일간 시신을 화장실에서 훼손한 뒤 지난달 26일 렌터카를 빌려 대부도 일대에 유기했다. 경찰은 1일 대부도 내 불도방조제 인근 배수로에서 마대에 담긴 하반신 시체를 발견해 수사를 벌여 왔다. 2600여 명의 경찰이 투입돼 대대적인 수색에 나선 결과 수색 이틀째인 3일 대부도 북단 방아머리선착장 인근에서 상반신도 발견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후 경찰은 최 씨의 통화 기록을 확인해 조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적해 왔다. 희생자인 최 씨는 5년 전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생활해 실종 신고조차 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경기 안산시 대부도 남성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이 붙잡혔다. 평소 자신을 무시했다는 게 살인동기였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피해자 최모 씨(40)의 거주지인 인천 연수구 원룸에서 조모 씨(30)를 긴급 체포했다고 5일 밝혔다. 올해 1월 인천의 한 여관에서 최 씨와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조 씨는 3월 말부터 생활비를 아낀다며 최 씨와 원룸에서 함께 생활해왔다. 경찰조사에서 조 씨는 “4월 초 어리다고 무시하던 최 씨와 집안일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부엌칼로 찔렀다”고 진술했다. 조 씨는 10여 일간 시신을 화장실에서 훼손한 뒤 지난달 26일 렌터카를 빌려 대부도 일대에 유기했다. 경찰은 1일 대부도 내 불도방조제 인근 배수로에서 마대에 담긴 하반신 사체를 발견해 수사를 벌여 왔다. 2600여 명의 경찰이 투입돼 대대적인 수색에 나선 결과 수색 이틀째인 3일 대부도 북단 방아머리선착장 인근에서 상반신도 발견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후 경찰은 최 씨의 통화 내역을 확인해 조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적해 왔다. 피해자인 최 씨는 5년 전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생활해 실종 신고조차 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경기 안산시 대부도 남성 토막시신 사건의 용의자가 붙잡혔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피해자 최모 씨(40)의 거주지인 인천 연수구 자택에 숨어있던 용의자 조모 씨(30)를 긴급 체포했다고 5일 밝혔다. 경찰은 1일 대부도 내 불도방조제 인근 배수로에서 마대에 담긴 하반신 사체를 발견해 수사를 벌여왔다. 900여 명의 경찰이 투입돼 대대적인 수색에 나선 결과 수색 이틀째인 3일 대부도 북단 방아머리선착장 인근에서 상반신도 발견했다. 경찰은 최 씨의 통화내역을 확인해 조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적해왔다. 경찰에 따르면 조 씨는 최 씨와 함께 살던 후배로 5일 오전 1시 47분경 탐문수사를 받던 중 살인 사실을 자백했다. 체포 당시 조 씨는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검거에 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씨는 시신을 훼손한 뒤 렌터카를 빌려 사체를 유기했다. 피해자인 최 씨는 5년 전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홀로 생활해 실종신고조차 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반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최 씨의 사인이 ‘두부 손상’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내놨다. 또 얼굴뼈와 갈비뼈가 골절됐고 오른팔과 폐가 예리한 흉기로 손상된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경기 안산시의 한 배수로에서 성인 남성의 사체 하반신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이날 오후 3시50분경 단원구의 한 방조제 인근 배수로에서 성인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체의 하반신이 발견됐다고 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사체는 이불에 쌓여 마대자루에 든 것을 관광객이 발견했으며 훼손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시신은 옷을 입지 않은 채였고 경미하게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육해공 3군 통합기지 계룡대 소속 영관급 장교가 최근 수십억 원의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된 사실이 28일 확인됐다. 군검찰, 육군 등에 따르면 계룡대 근무지원단(근지단) 소속 차모 육군 중령이 군내 재건축과 관련해 건설 및 군수물품 납품 업체로부터 수십억 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3월 25일 구속됐다. 계룡대에서는 2009년 김영수 전 해군 소령의 군납 비리 폭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뒤 5년이 되지 않은 2014년 차 중령의 비리가 불거졌다. 군검찰과 육군은 최근에야 결정적인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 중령은 계룡대 내 강당과 아파트 등의 재건축 사업 입찰이 진행되던 2011년 철거 업자들에게서 1억 원 상당의 돈을 받고 담합 입찰을 주도했다. 또 군수물품 납품 업체로부터 수십억 원을 받고 재건축이 끝난 뒤 남은 기자재를 되팔아 넘겼다. 차 중령은 이렇게 챙긴 돈을 친동생 명의의 계좌에 입금해 비리를 숨겨 왔다. 군 내부에서는 군 고위 간부가 연루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육군 관계자는 “재건축 등의 계약은 윗선의 허락이 필수적”이라며 “2년 이상 수사에 진척이 없었던 것은 상부의 압력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계속 이어지는 군 납품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선 행정 업무에 한해 외부 감찰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군검찰 출신 김진환 변호사(열린사람들)는 “군 업무가 폐쇄적이라 비리 적발은 내부 고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군과 거래하는 업체가 적은 데다 이들은 사후 보복이 두려워 내부 고발을 하기 힘들다. 검찰, 감사원 등 외부 감찰 기관이 행정 업무라도 감시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10여 년간 담배를 피운 직장인 한동훈 씨(32)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담뱃갑 경고 그림을 본 뒤 인터넷으로 담배 케이스를 주문했다. 경고 그림이 지나치게 혐오스러워 그냥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다. 담배를 꺼내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씨는 “흡연을 즐길 권리도 있는데 정부가 담뱃세를 과도하게 인상한 데 이어 혐오스러운 그림까지 넣으려는 건 흡연자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1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담뱃갑 경고 그림 시안(試案) 10종을 두고 담배업계와 흡연 단체들이 “지나치게 혐오스럽다”며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와 금연 단체는 흡연 욕구를 낮추기 위해선 불가피할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 혐오 강도도 낮다고 반박한다. 경고 그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대표적인 비(非)가격 금연 정책이다. 한국은 지난해 6월 도입을 확정했다. 복지부가 이번에 발표한 경고 그림 후보에는 △암 덩어리가 부풀어 있는 후두암 환자의 입 △구멍이 난 환자의 목 △절개 수술을 받은 환자의 가슴 등이 포함됐다. 복지부는 경고 그림의 면적을 담뱃갑 앞뒤 총면적의 30% 이상이 되게 하고 상단에 위치시켜 눈에 잘 띄게 한다는 계획이다. 6월 23일까지 경고 그림과 문구 선정이 끝나면 12월 23일부터 담뱃갑에 경고 그림이 들어가게 된다.○ 혐오성 논란 최비오 한국담배소비자협회 정책부장은 “담뱃세 인상 이후 약 1100만 명의 흡연자들이 10조 원에 이르는 세금을 냈는데도 정부는 흡연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혐오스러운 그림까지 넣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미 금연 구역 확대 등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흡연자들이 이번에는 ‘혐오 대상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흡연자들은 경고 그림의 혐오성 강도가 ‘지나치게 혐오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국민건강증진법 단서 조항에도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담배를 피울 때마다 흉측한 그림을 보게 하는 것은 흡연자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만든 조항이다. 한 흡연 단체 관계자는 “TV 광고라면 모자이크 처리될 것이 뻔한 그림들이 무차별적으로 흡연자와 비흡연자에게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와 금연 단체는 “흡연자에게 충격을 줄 수 없는 경고 그림은 무용지물”이라고 반박한다. 또 혐오감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1890명을 온라인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번에 제작한 시안 10종은 해외의 경고 그림보다 혐오감이 덜하다고 반박한다. 문창진 차의과학대 대학원장(경고 그림 제정위원회 위원장)은 “선정한 시안은 흡연자에게 충격을 줘 금연 효과는 감소시키면서도 혐오감은 해외에 비해 강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금연자들은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 부착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금연 직장인 박슬기 씨(29)는 “경고 그림을 본 뒤 애연가인 아버지에게 금연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며 “아버지 또한 가족에게 이런 그림을 노출시키며 충격을 줄 바엔 차라리 끊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그림 위치 논란 경고 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넣으면 흡연자뿐 아니라 판매인과 비흡연자도 정신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담배 진열대는 주로 계산대 근처에 있고 담배 상단은 가려지지 않아 근무 중인 판매인의 시야에 노출된다. 다른 물품을 사러 온 손님도 마찬가지다. 윤용식 한국담배판매인회 중앙회 홍보실장은 “흡연자의 흡연 욕구를 줄이겠다는 목적이면 구매 이후 흡연자들이 볼 수밖에 없는 담뱃갑 하단도 상관없다”며 “점포엔 다른 식품도 많은데 굳이 다른 손님들에게까지 이를 노출시켜 혐오감을 줄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경고 그림 선정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애초에 ‘구매 욕구’ 자체를 차단하기 위해 경고 그림을 상단에 노출시킨 것”이라며 “일반 소비자의 거부감이 커진다면 앞으로 담배 진열대를 소비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흡연 예방 효과 논란 경고 그림의 흡연 예방 효과를 두고도 논박이 이어진다. 백혜진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장)는 “WHO 가입 국가 중 우리보다 먼저 경고 그림을 도입한 나라에서 흡연율이 떨어졌다는 통계가 있다.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와 파키스탄에서는 경고 그림을 도입하자 오히려 흡연율이 약 3%포인트 증가했다”며 “WHO 가입국의 흡연율은 이미 떨어지는 추세였고, 경고 그림 도입으로 흡연 욕구가 감소했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긴 힘들다”고 반박했다. 정부가 금연 정책을 강하게 쓰는 캐나다 등의 사례만 참고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국내에 출시된 담뱃갑이 지나치게 미화된 측면이 있어 이를 규제한다는 점에선 경고 그림이 효과적일 수 있다”며 “다만 너무 자극적인 그림으로 충격을 주는 방식을 쓴다면 소비자들이 금방 익숙해져 효과가 단기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불황 탓에 요즘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을 운영하는 영세업자들은 정말 힘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이 들어간 담배가 등장하면 영세업자들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담뱃갑 경고 그림 시안과 관련해 우제세 한국담배판매인회 중앙회장(60·사진)은 18일 깊은 우려의 뜻을 밝혔다.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금연 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담뱃갑 경고 그림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영세 담배 소매상들의 평균 매출에서 담배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계산대 위에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이 들어간 담배가 진열되면 담배도 담배지만 다른 것을 사려는 손님들의 발길마저 줄어들 것을 더 우려하고 있다. 우 회장은 “편의점은 특히 바쁜 직장인과 혼자 사는 사람들이 도시락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식당이자 차 한잔 나누며 담소하는 카페 역할을 한다”며 “혐오스러운 그림이 뻔히 보이는 곳에서 마음 편하게 밥 먹고 차 마실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경고 그림 시안을 발표하기까지 담배 판매인들과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우 회장은 “경고 그림 시안에 대해 혐오스러움을 느낀 사람도 많은데 갑자기 발표됐다”며 “경고 그림을 최종 선정하기 전에 담배 판매인들과도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중앙회는 5일 성명서를 내고 △경고 그림을 담뱃갑 하단에 배치할 것 △경고 그림 시안을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지나치게 혐오스럽지 않은 수준’으로 재선정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우 회장은 “지난해 정부가 담배로 거둬들인 세수(稅收)는 10조 원을 훌쩍 넘는다”며 “국가 재정에 이렇게 기여하는데도 흡연자를 죄인 취급하는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유가족도 지켜보는 사람도 모두 지쳐간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세월호 천막은 ‘유민 아빠’ 김영오 씨(49) 등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 이후 세월호 참사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면서 각종 집회의 최종 목적지가 됐다. 14일로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곳에서 농성을 벌인 지 1년 9개월을 넘어섰다. 천막을 지켜온 유가족 측은 “원인을 규명하기 전엔 떠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생때같은 자식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사고를 기억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고민해 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광장을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직장인 김모 씨(29·서울 종로구)는 “보면 볼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 피로감이 쌓인다. 따로 추모관을 만들어 사고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일부 보수단체는 이곳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에게 천막을 제공해 줬다는 이유로 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고 농성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어왔다.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상징인 경기 안산 단원고 ‘추모교실’은 세월호 유가족(4·16가족협의회)과 재학생 학부모들이 이전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양측은 최근 8차 협의회를 열어 추모교실을 안산교육청 별관에 임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단원고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당시 2학년 학생들이 쓰던 교실 10개를 그대로 비워두고 있었다. 그동안 재학생 학부모 측은 “신입생이 들어와 교실이 부족해졌고, 아이들이 추모교실을 보면서 불안감과 죄책감, 우울감을 호소한다”며 해체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4·16가족협의회 측은 “추모교실은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현장인데 반성의 교실, 장소를 벌써부터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갈등은 지난달 17일 4차 협의회 때 극에 달해 재학생 학부모 측이 “앞으로는 회의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후 종교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양측을 중재해 이번 합의를 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재난이 발생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먼저 해결 가능한 것부터 합의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사안 하나하나에 발목이 잡힌다면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피로도는 극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조용하던 아파트가 왁자지껄 아이들 노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인근 마을 주민들이 문화강좌를 듣기 위해 수시로 아파트를 오갔다. 집에만 있던 노인들도 젊은 엄마들에게 전통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겠다며 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167채가 모여 사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 극동아파트 주민 이미실 씨(55·여·마을활동가)는 2013년을 잊지 못한다. 1980년대 초 지어진 이 아파트에 그해 약 70평 넓이의 지하 대피소를 문화센터(햇살문화원)로 개조하며 찾아온 변화가 엄청났다. 그동안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 안부를 물으며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쾨쾨한 지하에 들어선 소통의 장 주거의 편리함만 강조하다가 이웃과의 단절을 초래하는 아파트로 지어졌어도 주민들이 어떻게 공간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극동아파트처럼 19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엔 지하에 대피소가 마련돼 있다. 남북 대치 상황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속칭 ‘지하 벙커’로 불리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 거미줄이 쳐져 있고 곰팡이가 생겨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다. 지난달 22일 찾은 극동아파트 ‘지하 벙커’는 달랐다. 문을 열자 하얗게 칠해진 벽면에 주민들이 손수 만든 공예품이 걸려 있었다. 문화센터로 변신해 있었던 것이다. 이 씨는 “개조 공사 초기엔 소음 탓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우렁각시’처럼 이곳에 들러 청소하고 가꾸고 가는 주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웃과 소통할 공간을 원했던 주민이 많았다. 문화센터 한쪽 방에선 주민 6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뜨개질 수업을 듣고 있었다. 문윤선 씨(36·여)는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땐 어린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어 우울증이 왔다. 외출을 할 수도 없어 친구와 전화로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며 “이제는 이곳에서 아이는 친구끼리 놀고 나는 또래 엄마들과 수다를 떨 수 있게 돼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손뜨개질 등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열리는 다양한 문화강좌는 아파트 주변 주민들까지 이곳으로 모여들게 했다. 인근 마을에 살고 있는 정희경 씨(52·여)는 “문화강좌도 열리고 수다도 떨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며 “덕분에 아는 이웃이 늘어 요즘은 심심할 새가 없다”고 전했다. 극동아파트 원영례 관리소장(동우개발)은 “강의가 없는 날에도 30여 명의 주민이 수시로 이곳을 찾아 쉬어간다”며 “특히 그간 소외됐던 노인들도 이곳에서 젊은 주민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이 가장 달라진 모습”이라고 전했다.○ ‘소행주’의 소통 공간 철학 이웃 간의 소통을 위해 아예 새로운 건축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1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마을에 처음 들어선 코하우징(공동 주거) 주택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이 대표적이다. 이곳 입주자들은 건물 설계부터 입주 후 관리까지 도맡아 한다. 건물 안을 한 마을처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복도와 계단, 옥상 등을 소통하기 쉽게 디자인했다. ‘소행주’의 건축 철학은 ‘따로 또 같이’로 요약된다. 각자의 생활을 존중받으면서도 필요할 땐 이웃과 소통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우선 이곳 주민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공간 중 1평씩을 떼어내 커뮤니티실(씨실)을 만들었다. 저녁이면 이곳에선 직장일로 바쁜 입주민들을 위한 식사가 제공된다. 식사 준비하는 시간을 아껴 각자의 밤 시간을 보장해주자는 취지다. 그 덕분에 자녀의 식사를 챙기기 힘든 이곳 맞벌이 부부들은 걱정을 덜었다. 이곳은 시간에 따라서 아이들의 독서실과 놀이터가 됐다가 입주민들의 회의실이자 수다 장소로도 쓰인다. 신발장을 집 밖에 설치하고 복도와 계단 바닥을 목재로 꾸며 신발을 벗고 이동할 수 있게 한 점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복도에 주저앉아 같이 숙제하거나 장난을 치고 있었다. 빨래 건조대를 놓아 둔 집도 있었다.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는 통로일 뿐이던 공간을 사람이 활동하는 장소로 만든 것이다. 옥상엔 여행용 캐리어 등 자주 쓰진 않지만 집 안에 두기엔 부담스러운 물건을 두는 공용 창고도 마련했다. 버리는 공간을 최소화해 이를 사람이 활동하는 장소로 사용하자는 의도이다. 또 여름이면 텃밭을 꾸미고 주민끼리 바비큐 파티를 열 수 있게 옥상을 설계했다.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사생활 보호를 놓치진 않았다. 각자의 집은 문만 닫으면 아파트와 다를 것 없이 외부와 철저히 차단됐다. 집들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구조라 소음 걱정도 적다. 주민들은 각자 생활을 즐기다가 외로워지거나 이웃의 도움이 필요할 때 커뮤니티실이나 이웃집을 찾는다. 윤상석 씨(39·성산동)는 “내 생활을 보장받으면서도 가끔 고향에서처럼 마음 맞는 이웃과 어울리며 외로움을 덜고 싶어 이곳에 이사 왔다”고 말했다. ‘소행주’는 아파트와 빌라 일색인 고립된 주거환경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면서 5년 만에 성산동을 넘어 경기 과천시 등지로 확산돼 모두 8곳으로 늘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9호가 들어설 예정이다. ‘소행주’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류현수 공동대표는 “지금까진 주로 아이들 교육문제로 주거지를 선정하고 자주 이사를 다녔지만 점점 꾸준히 한집에 살면서 자식까지 함께 살 수 있는 주거공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아파트로 대변되는 기존 단절식 건축이 소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서울의 대표적 판자촌인 노원구 상계동 양지마을에 살다가 15년 전 마포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사 온 이모 씨(78·여). 그는 현재 마음 터놓고 지내는 이웃이 단 세 명이다. 아파트로 오기 전엔 담 너머로 이웃이 보였고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나눴다. 또 서로 집을 오가며 언니, 오빠라고 부르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아파트에선 문만 닫혀도 노크조차 부담될 정도로 이웃 사이에 심리적 문턱이 높았다. 이 씨는 ‘외로움 상자’ 속에 사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기쁜 마음으로 이사 왔지만 갈수록 힘이 돼주던 이웃의 빈자리가 커져갑니다.”○ 아파트는 외로움 상자 임대아파트 거주민의 평균 소득은 하위 20% 이하의 저소득층이다. 노인과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주민도 많아 생활공간은 대부분 단지 내로 한정된다. 인적 관계망이 이웃을 넘어서기 힘들다. 지난달 16일 본보가 만난 이 씨의 하루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집 안에서 TV를 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장보러 나가는 것이 외출의 전부였다. 그나마 아파트 인근에 복지관이 있어 가끔 이곳 ‘노래교실’에 참석해 외로움을 달랜다. 김주영 세종대 건축학과 박사는 “임대아파트는 대부분 보행로가 좁고 단지에 울타리가 쳐져 있다. 또 외부에 마트와 공원이 있어도 몇 안 되는 출입구가 엉뚱한 곳에 위치해 이를 이용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아파트의 이 같은 고립된 건축이 주민들의 외로움을 부추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연구팀은 2007∼2011년 소득 수준이 비슷한 노원구 전체 임대아파트 9개 단지 1만3472채와 판자촌 5개 마을 2818채의 주민을 조사해보니 임대아파트의 자살률(39.21명·인구 10만 명당 환산 수치)이 판자촌(29.84명)보다 높게 나왔다. 연구팀은 소통공간의 유무와 건물 배치가 자살률 차이를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판자촌은 내부에 동네길이 이어져 있어 주민들 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만 임대아파트는 바둑판식으로 길(단지)을 배치해 주민들이 마주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람 냄새 나는 달동네 지난달 14일 양지마을에서 만난 최종임 씨(71·여)는 외로울 때마다 골목길을 걷는다. 이웃과 마주치면 수다라도 떨고 싶어서다. 마을 한복판에 조촐하지만 사람이 붐비는 ‘만남의 장소’도 있다. 공사장 폐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비닐을 덧댄 7평짜리 비닐하우스다. 2014년 말 이곳 주민 노재범 씨(61)가 만들었다. 골목길에 주저앉아 얘기를 나누던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어울렸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노 씨는 “골목에서의 우연한 만남 하나도 다 삶의 재미”라며 “이곳은 그런 재미를 사시사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약 100채가 자리 잡은 이 마을엔 홀몸노인이 80%가량이다. 이웃들은 길에서 자주 보던 노인이 하루라도 안 보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을 찾아 안부를 묻는다. 김희선 양지마을 통장은 “홀로 사는 노인에겐 이웃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지대”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양지마을 주민들은 임대아파트로 이사할 조건이 되지만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파트가 살기에는 편하지만 문만 닫으면 고립된 섬처럼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정영숙 씨(71·여)는 “명절에 한 번 보는 가족보다 아플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와주는 이웃이 고맙다”며 “소득과 재산이 없어 (임대아파트) 입주조건은 되지만 다 늙어 이웃을 떠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마을 통장은 “정 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거들었다. 양지마을의 사례만으로 임대아파트보다 달동네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스페이스신택스연구소 연구팀이 그동안 송파구 화훼마을, 강남구 수정마을 등 서울시 31개 달동네를 찾아다니며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신행우 연구실장은 “동네길이 발달돼 있고 이웃 간 친밀도가 높은 달동네가 많다. 그곳에선 주민들이 ‘굳이 임대아파트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 높았다”며 “판자촌에 살다가 임대아파트로 이사 간 주민들 중에도 후회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사생활과 공동체의 갈림길 아파트의 외로움은 임대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 아파트의 설계와 건축은 ‘사생활 보호’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건설사들은 너도나도 ‘나만의 해방구’를 마련해 주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지어진 고가의 신식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단지 구성을 차가 쉽게 이동할 수 있게 설계해 주민들은 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엘리베이터로 자신의 집까지 올라간다. 단 한 명의 이웃과도 마주치지 않고 외출과 귀가가 가능한 점을 자랑거리로 내세웠다. 하지만 최근 건축업계는 아파트를 공동체 친화적으로 짓는 것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층간 소음, 주차 문제 등 이웃 간 소통이 안 돼 생겨나는 갈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내 분쟁과 주민의 고독감을 줄이기 위해 단지 내에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이 경기 화성시에 짓고 있는 아파트에는 주민들 간 화합을 돕는 공용공간이 마련된다. 주민들이 함께 요리를 배우고 노인들이 바둑교실을 열거나 영·유아 공동육아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이다. 200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뮤니티시설을 대규모로 아파트 단지 내에 구축한 GS건설 반포자이 아파트 또한 같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김억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사생활에만 방점이 찍혀 있던 기존 도시건축(아파트)에 싫증을 느끼고 공동체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늘자 건축의 지향점이 서서히 공공성으로 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진단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드라마 ‘응답하라 1988’(사진) 속의 이웃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매일 얼굴을 맞대며 미주알고주알 속사정을 털어놓았고 갈등이 생겨도 금세 풀었다. 사람냄새 나는 그 시절, 어른들은 동네 평상에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눴고, 아이들의 운동장은 그 주변이었다. 한국 사회는 1970, 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에 비례해 급변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했다. 사람들은 “산업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건축학계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길의 형태, 그리고 인접한 다른 길과의 연결성에 따라 이웃, 나아가 사회와의 교류가 달라진다고 본다. 동아일보는 세종대 스페이스신택스연구소와 함께 서울지역 길이 1km 이내의 ‘생활권’ 도로와 인도 전체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동네 길은 상당수 파괴되거나 사라진 상태였다. 이웃과 점점 얼굴 맞대기가 어려워지는 셈이다.▼ 아파트 개발로 사라진 동네길… 이웃사이 교류도 끊어져 ▼동아일보 취재팀과 세종대 스페이스신택스연구소의 공동 분석 결과 서울에서 동네 길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은 성북구 정릉동·돈암동, 도봉구 쌍문동·방학동, 강북구 미아동, 중랑구 면목동, 동대문구 제기동, 서대문구 남가좌동 등이다. 스페이스신택스연구소는 도시와 건축물의 공간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주민끼리의 의사소통이 활발했고 마을 사업도 활기를 띠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도시 개발에서 비켜나 낙후된 지역으로 치부되지만 ‘사람 냄새’가 더 나고, 건강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강남이 개발되면서 격자형 간선도로가 뻗은 역삼동 테헤란로 뒷골목 주택가는 고립도가 높았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초고층 아파트 단지도 내부의 길은 주민 간 교류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구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쭉쭉 뻗은 간선도로 위주의 도시 설계가 기존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을 없애면서 동네 안 커뮤니티까지 파괴한 것이다. 만약 사람을 마주치기 좋은 길에 산다면 이웃과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을까. 취재팀은 동네 길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정릉동과 그렇지 않은 마포구 성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을 대상으로 각각 ‘내 이웃을 소개합니다’라는 실험을 진행했다. 일종의 이웃 관계망(網) 조사다. 동네에서 친화력이 있는 사람을 1번, 즉 ‘마스터 이웃’으로 지정한 뒤 자신이 아는 이웃 사람을 차례로 소개받는 방식이다. 2번→3번→4번으로 이어지는 릴레이 이웃 소개가 몇 번까지 계속되는지 살펴봤다.“저랑 친한 ○○이 엄마는요”… 이웃 관계망 조사해 보니 “우리 동네는 이웃끼리 우애가 있으니 계속 연결될 것 같은데….”(김경숙·56·여·정릉동) “이 아파트에선 서로 모르면 둘 중 하나가 간첩이지.”(박금순·59·여·성산동) 지난달 17일 만난 두 지역의 마스터 이웃은 자신만만했다. ‘정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 씨는 권계숙 씨(67·여)를 소개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자기 만들기를 배우는 목요일 모임이 있는데 그곳에서 자주 본다는 게 이유였다. 바통은 1983년 정릉동으로 시집온 이미성 씨(58·여)에게 넘어갔다. 이 씨는 시부모님이 살던 곳에서 신접살림을 차린 뒤 줄곧 정릉동에서 살았다. 이름은 몰라도 교류의 끈은 이어졌다. ‘정육점 아저씨’, ‘북악당 아저씨’, ‘헤어살롱 아줌마’처럼 장소가 이름을 대신하거나 ‘지명이 엄마’, ‘윤주 엄마’처럼 자녀의 이름으로 이웃을 기억하기도 했다. 조사는 30번으로 끝났다. 마스터 이웃이던 김경숙 씨는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은 더 많은데 직장에 나가 집에 없는 이가 적지 않아 더 길게 이어가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성산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는 부녀회장인 박금순 씨부터 출발해 11번째에서 끝났다. 다시 통장과 노인회장 두 명을 기준으로 실험을 해 봤지만 이웃 소개는 각각 7번째, 3번째에서 더 이어지지 못했다. 이웃끼리 알고 지내는 관계망의 크기가 정릉동에 훨씬 못 미친 것이다. 주상복합건물인 서울 종로구 A아파트도 비슷했다. 젊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이웃이 수두룩했다. 그나마 발이 넓을 것 같은 마스터 이웃을 선정해 실험을 해봤지만 2, 3명 옆집을 소개하다 금세 끊겼다.그 동네엔 잘 모이는 비결이 있다 이웃 관계망이 탄탄한 동네는 무엇이 다를까. 주민들은 “동네 구조상 이웃집이 보인다”고 말한다. 80가구가 모두 서로 알고 지낸다는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은 골목길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골목길을 오를 때 다른 집 대문이 차례로 보인다. 골목길을 오르내리다 대문을 열고 나오는 이웃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산 우주봉 씨(72)는 “이웃끼리 얼굴을 자주 보다 보니 근황을 주고받게 되고 큰일이라도 생기면 옆집에서 금세 눈치를 챌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도시 한옥이 많은 정릉동 단독주택가 역시 골목길을 따라 이웃집 대문을 마주 보는 방식이다. 마을버스를 타러 내려가거나 큰길로 나가려면 수많은 이웃과 마주친다. 동네 사람들을 융화시킬 수 있는 구심점인 마스터 이웃의 존재 역시 중요했다. 김경숙 씨는 정릉동에 산 지 7년밖에 되지 않는다. 20년 이상 거주한 터줏대감 동네 어르신이 많지만 김 씨는 ‘중간 허리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그의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에는 이웃 100여 명의 전화번호가 있다. 동네 사정에 밝은 또 다른 마스터 이웃 김효순(63·여), 이명희 씨(57·여)의 이웃관계망까지 합치면 인근 주민들의 대소사를 내 일처럼 챙길 수 있다. 공통 관심사가 있다는 점도 관계망을 튼실하게 만들어 줬다. 정릉동 단독주택가에는 꽃을 좋아하는 주민이 많다 보니 ‘집 앞에 꽃을 심어 보자’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하나둘 집 앞을 가꾸기 시작했고 동네 길이 아름다워졌다. 그러자 “아예 각자 집 정원도 개방해 보면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릉동 이웃들은 2014년부터 매년 봄가을 한 번씩 자신의 정원을 공개하고 차도 대접하는 정원 축제를 열고 있다.‘만남의 장소’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사람들이 자주 마주치는 길에 특정 구조물이 있으면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종로구 통인시장 입구에 있는 마을 정자가 그렇다. 이곳은 자하문7길과 옥인동길이 마주치는 데다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어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고 자연히 문방구점, 소아과 병원, 빵집 등이 포진하고 있다. 종로구는 이 다섯 갈래 골목길이 만나는 곳을 주차장으로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바닥을 높이고 2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는 정자를 세웠다. 만남의 장(場)을 만들어 준 것이다. 2일 통인시장 입구 정자를 찾았다. 정자에 앉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남녀노소’ 각양각색이었다. 옥인문방구점에서 뽑기 놀이를 한 아이들은 정자 바닥에 장난감을 펼쳐 놓고 서로 “내 것이 좋다”며 자랑하고 있었다. 한 부부는 빵집에서 단팥빵을 사들고 이곳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옆에 앉은 아기가 보채는 통에 엄마가 진땀을 흘리자, 한 할머니가 “힘들 때지만 제일 예쁠 때예요, 아기 엄마 힘내요”라며 말을 건넸다. 정자는 아이들 놀이터에서 주부들의 수다 장소로, 다시 어른들의 마실 공간으로 하루 종일 변신했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주변의 상권도 활기를 띠었다. 이웃 관계망 조사에서 소개가 오래 이어지지 못했던 곳의 주민들은 “서로 마주치는 장소가 주차장 외에는 특별히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반포 K아파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차량이 늘면서 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중 삼중 주차가 불가피해지면서 사람들은 차에 길을 내주고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마포의 한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상가(부녀회)와 종합복지센터(노인회) 등으로 모이는 장소가 나뉘다 보니 교류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욱 스페이스신택스연구소장(세종대 건축학과)은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교류 정도가 바뀐다”며 “외로움을 부르는 주거문화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노지현 isityou@donga.com·김재형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제성장률만으로 한 사회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로 2011년부터 매년 5월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이 지수엔 공동체 지수를 비롯해 △삶과 일의 균형 △안전 △양극화 지수 등 여러 지표가 포함돼 있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정(情)과 ‘우리’를 강조하는 사회였다. 그런데 지난해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가운데 ‘공동체 지수’를 보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 충격을 안겼다. OECD 회원국과 러시아, 브라질을 포함한 36개 국가 중 점수가 가장 낮았다. 공동체 지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웃이나 친구 등 사회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다. 이 설문에서 한국인은 72%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전체 평균인 88%보다 16%포인트 낮다. 1위를 차지한 아일랜드는 96%였다. 건축학계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가 파괴되는 주 요인은 아파트가 보편화되고 동네 길이 사라져 고립된 생활 공간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람을 마주치기 힘든 길과 건물 배치가 이웃 간 소통을 가로막고 갈등이 생겨도 이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갈수록 폭력성이 심각해지는 층간소음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해 5월 경기 부천의 한 연립주택에서 아래층 남자가 윗집에 살던 모자(母子)를 흉기로 찔렀다. 2013년 2월에는 서울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아래층에 살던 남자가 위층 주인의 두 아들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말로 해결할 수도 있었던 층간소음 갈등이 살인으로 번진 사례들이다. ‘주차장 불화’도 잦아졌다. 이웃의 차가 자신의 주차 공간을 침범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도 대화보다는 법과 절차가 앞선다.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 주민 조경미 씨(38)는 “얼굴 붉히면서 이야기하기 싫다는 이유로 신고부터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구청에 신고하거나 익명으로 견인 신청을 하는 사람도 자주 본다”고 말했다. 공동체가 파괴되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 이웃의 손길을 기대하기도 힘들어졌다. 올해 연이어 터져 나온 아동 학대 사건을 살펴보면 옆집 아이가 수개월 동안 보이지 않아도 이웃은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자기 집에서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죽음을 맞는 고독사(孤獨死)가 지난해 1200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형성되면 이웃 간 분쟁이 생겨도 대화와 배려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며 “신뢰는 공동체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인데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곳일수록 갈등을 해결할 때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훨씬 적다”고 말했다.※ 공동체 지수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제성장률만으로 한 사회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로 2011년부터 매년 5월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이 지수엔 공동체 지수를 비롯해 △삶과 일의 균형 △안전 △양극화 지수 등 여러 지표가 포함돼 있다. 김재형 monami@donga.com·김재희 기자}
진보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조회를 요청할 때 검증 절차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적이 필요한 수사기관이 ‘저인망식 수사’의 일환으로 통신자료를 무분별하게 조회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4년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조회할 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고 미래창조과학부에 권고했다. 정보 보안 전문가들도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전 대통령안보특별보좌관)은 “이슬람국가(IS)가 세계 각지에서 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등 안보가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자료 조회를 법적으로 차단하는 나라는 없다”며 “다만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깜깜이 조회’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어 1년에 한 번이라도 통신정보를 제대로 폐기했는지, 적합한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장 발부를 의무화하거나 당사자에게 미리 조회를 통보하는 ‘사전 검증 절차 강화’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공범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통신자료 조회를 사전에 통보해 줄 순 없다”며 “테러가 의심되는 상황처럼 급박한 상황에 수사기관이 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통신자료를 누가 조회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수사기관 스스로 조회 남용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어떤 수사기관이 몇 건의 개인 통신정보 조회(감청·압수수색 영장 집행)를 요청했는지 ‘투명성 조사 보고서’를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를 모니터링해도 개인 통신정보 조회를 남용하는 수사기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선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반기별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국내 통신3사나 공공기관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통신사도 투명성 조사 보고서를 공개한다면 수사기관 대부분의 통신자료 조회 실태가 확인된다. 사찰을 우려하는 공포심이 상당히 사그라들 것”이라며 “수사기관 차원에서도 자체적인 조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한 시간을 공들여 만든 ‘도라에몽’은 결국 한쪽 다리가 없는 미완성품이 됐다. 부품 두 개가 모자랐다. 잡념을 잊기 위해 틈틈이 나노블록(nano-block·초소형 조립식 장난감)을 조립하고 있는 직장인 박슬기 씨(30·여)는 최근 들어 쉽게 부서지거나 아예 부품이 모자라는 불량품 탓에 분통이 터질 때가 많다. 박 씨는 “중국산 아홉 개를 샀는데 그 중 두 개가 부품이 모자랐다. 만들 때도 잘 부서져 행복감보다 허탈감이 클 때가 많다”고 말했다. 나노블록은 대표적인 ‘키덜트(어른 아이)’ 상품으로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조립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노블록의 인기에 편승해 중국산 불량 모방 제품이 대거 유입되고 있어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박 씨처럼 부품이 모자라거나 설명서가 없는 불량품 탓에 기분이 상했다는 경험담이 줄을 잇고 있다. 직장인 김재승 씨(29)는 “축구동호회 회원들이 단체 토론방에 자신들이 만든 나노블록 사진을 올렸는데 총 20개의 제품 중 3개를 부품 부족으로 완성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나노블록은 부품 하나가 5mm나 8mm 크기이며 설명서에 따라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의 장난감 모형으로 조립할 수 있다. 나노블록은 일본 완구업체 ‘가와다’의 독점 상표다. 이를 정식으로 국내에 유통하고 있는 업체는 ‘재미니아’이다. 만화 캐릭터로는 포켓몬스터, 그 외 파리 에펠탑 등의 건축물 모형을 판매한다. 23일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나노블록이 포함된 블록 상품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359%가 증가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중국산 모방 제품이었다. 캐릭터 라이선스 계약을 하지도 않고 미키마우스, 원피스 등 300여 종에 이르는 상품이 나노블록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판매되고 있다. 본보가 이날 나노블록 판매 사이트 3곳, 총 83개의 제품을 조사한 결과 모두 캐릭터 이름이 진짜와 다르게 표기돼 있었다. 한 완구업체 대표는 “중국산은 정품 가격(1만3000원)의 10∼15%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패키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이크로 블록’ 등으로 씌어 있다”며 “대부분 캐릭터 사용 라이선스를 계약하지 않은 것들이라 도라에몽은 도라에냥, 피카츄는 번개소년 등으로 교묘히 이름을 바꿔 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방 제품이다 보니 불량품이 속출했다. 중국 업체들은 가와다의 나노블록을 본떠 금형(金型)을 만들고 부품을 찍어 낸다. 하지만 5∼8mm 크기의 작은 블록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힘들어 불량품이 나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중국산 불량 모방 상품의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저작권보호센터가 나선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위임을 받아 4월 라이선스 계약을 맺지 않고 유통되는 중국산 모방 상품의 실태를 대대적으로 조사해 처벌하기로 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부모의 학대를 받던 자녀가 숨진 지 1년 가까이 방치되다 발견됐다. 아버지는 딸이 죽은 뒤에도 경찰에 버젓이 실종신고를 했고 “기도하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믿었다”고 주장했다. 경기 부천소사경찰서는 3일 딸 이모 양(사망 당시 13세)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 등)로 목사인 아버지 이모 씨(47)와 부인 백모 씨(40)를 긴급체포했다. 백 씨는 숨진 딸의 계모다. 또 2년간 이 양을 데리고 있던 백 씨의 여동생(39)도 폭행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난해 3월 17일 오전 7시부터 5시간 동안 집에서 이 양을 빗자루 등으로 때렸는데 같은 날 오후 7시경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3일 오전 이 씨 자택을 압수수색해 작은 방에서 이 양의 시신을 확인했다. 시신에는 이불이 덮여 있었고 주위에는 냄새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초와 방향제, 습기제거제 등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이 씨는 2007년 전처와 사별한 뒤 2009년 백 씨와 재혼했다. 그러나 자녀들과 계모 사이에 갈등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의 아들(19)은 가출해 따로 살았으며 큰딸(18)은 지인 집에서, 숨진 이 양은 2012년경부터 백 씨의 여동생 집에서 살았다. 이 양은 중학교에 입학한 직후인 지난해 3월 12일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이 양 부모에게 가출신고를 하라고 종용하자 이 씨는 같은 달 31일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했다. 이 양은 이미 숨진 뒤였다. 미궁에 빠질 뻔한 이 양의 실종 사건은 지난해 말 인천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재조사하면서 밝혀지게 됐다. 이 양의 친구 A 양으로부터 “이 양의 몸에 멍이 있었고 ‘부모로부터 맞았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 경찰은 이 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이날 시신을 찾아냈다. 이 씨 부부는 딸이 숨진 당일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살해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시신을 방치한 이유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기도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사망 원인을 찾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지만 시신 훼손이 심해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종신고 후 이 씨가 딸의 사망 사실을 숨기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경찰 관계자는 “실종신고 후 3차례에 걸쳐 이 씨를 만났는데 자택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거절해 밖에서 면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종아동전문기관도 지난해 4월 초부터 3차례 이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 씨는 전화와 문자메시지 모두 외면했다. 이 씨는 또 이 양의 실종 3개월째인 지난해 6월 학교 측이 장기결석자에 대한 ‘정원외’ 처리를 하려고 하자 학교를 직접 찾아와 ‘유예신청서’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부천=박창규 kyu@donga.com / 김재형 기자}

대한민국 기부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전에는 매년 말 기업 임직원들이 작업복을 입고 달동네에 연탄을 배달하는 사진이 신문에 크게 실렸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꼭 현물이나 현금으로만 하는 게 기부가 아니다. 동아일보와 소셜빅데이터 분석업체 인사이터가 2008년 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기부와 관련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650만 건의 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상위 10개 연관어를 살펴본 결과 2012년 이후 ‘재능’이 65만9196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뒤를 ‘돈’(15만1839건), ‘문화’(14만4126건), ‘사회’(14만3499건) 등이 이었다.○ 돈보다 재능 기부… 목표는 학생 교육 기부와 관련해 ‘재능’이라는 말이 SNS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2008년과 2009년에는 한 건도 없었다. 재능기부는 2007년 국내 일부 전문직에서 시작된 ‘프로보노 운동’의 영향으로 태동했다. 라틴어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란 말에서 유래한 프로보노는 외국에서는 변호사가 무료 법률 조언을 해 주는 용어로 쓰인다. 그 무렵 국내에서도 프로보노 운동에 대해 언급하는 광고 전문가와 패션디자이너가 등장했다. 이들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재능기부란 말이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2011년부터는 평범한 음대생이 지역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것처럼 일반인들의 나눔 소식이 빠르게 전파됐다. 재능기부는 새로워 보이지만 목표는 다른 기부와 같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구축한 뉴스빅데이터에서 1995∼2015년 기부 관련 기사 19만 건을 분석해 보니 2000년 이후 학생과 장학금은 이 기간 항상 10위권을 지켰다. 그동안 국내 기부자들은 전반적으로 불우가정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도약의 사다리’를 만들어 주려 했던 것을 보여 준다. 기업들의 사회공헌 형태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지난달 23, 24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열린 ‘CJ도너스캠프 꿈키움 스테이지’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중학생 200명이 무대에 올랐다. 요리, 미디어, 음악, 방송쇼핑, 뮤지컬 등 미래에 하고 싶은 일에 관해 32개 팀이 5개월 동안 준비한 작품을 선보이는 장이었다. 팀당 3명의 멘토가 함께 준비했다. 예컨대 학생들의 관심 분야가 요리라면 요리학과를 다니는 대학생, 스타 요리사, 식음료 담당 기업 임직원이 붙어 학생들에게 ‘요리사’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직업 선택을 하기 위해 준비 과정 노하우도 자세히 전달했다. 일회성 장학금으로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 셈이다. 붉은 꽃 코르사주로 장식한 발랄한 흰색 미니드레스를 입은 장예은 양(16·수원 중앙기독중 3) 팀은 딸기 쇼트케이크, 요구르트를 올린 샐러드, 선지해장국 등 음식을 모티브로 옷을 만들었다.○ 한국형 팬 기부와 핀테크 기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은 2011년부터 기부 관련어 상위 30위권에 ‘팬’이란 단어가 꾸준히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탤런트 박유천(30)의 팬클럽 ‘블레싱유천’은 6년간 기부 활동을 이어 왔다. 회원들은 2010년 말 박유천이 방송사 시상식에서 신인상 등을 받게 되자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기부를 결정했다. 5000여 명의 회원들이 조금씩 힘을 보태 3600여만 원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한 어린이 화상 환자에게 전달했다. 이들의 기부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회원들은 다 읽은 책을 모아 전남 신안군에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지었고, 헌옷을 기부해 인천 계양구의 생태공원 조성을 도왔다. 이미영 블레싱유천 회장(48)은 “그동안 기부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미루던 회원들이 뜻 맞는 사람끼리 모여 생활 속에서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탤런트들도 팬들과의 유대를 활성화하면서 사회공헌에 동참하고 있다.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를 기부에 활용하는 것도 한국의 독특한 문화다. 기부 단체들이 소액 기부자를 늘리기 위해 금융과 정보기술(IT)이 결합된 핀테크 기술을 활용해 모금 활동을 하거나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메신저 이용자에게 기부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다.○ 기부에 부정적인 40%를 뚫어라 이번 SNS 빅데이터 분석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40%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20년 동안의 기사를 살펴보면 특히 기부단체가 모금액을 불투명하게 썼을 때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기부 선진국 미국에선 기부 사업의 진행 과정과 그 결과를 홈페이지에 올려 기부금 운영에 대한 불신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1달러 단위까지 어떻게 쓰이는지 사업비와 운영비를 정확하게 나누고, 그래프를 그려 기부자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기부단체 스스로 자정 능력을 갖추도록 감시 제도도 잘 갖춰져 있다. 대표적으로 한 해 평균 690만여 명이 방문하는 미국 ‘채러티 내비게이터’는 ‘주의할 단체 목록’에 회계장부를 불성실하게 공시하거나 공금을 유용해 피소된 기부 단체를 명시해 기부자들이 안심하고 지갑을 열 수 있도록 돕고 있다.노지현 isityou@donga.com·박희창·김재형 기자}

《 2014년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기부 총액은 연간 13조 원에 이른다. 한국인 특유의 에너지와 정(情)은 남을 돕는 데도 아낌이 없다. 해가 갈수록 기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이성(理性)보다는 감성(感性)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 기부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전후한 연말과 새해, 대형 사고가 났을 때 집중되는 것은 물론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관심 분야에 따라 특정 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모습이 흔한 외국의 사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 ‘감성 마케팅’에 약한 한국의 기부문화 2000년대 중반부터 TV광고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모금 광고는 이런 전개 방식을 보인다. 우선 파리가 얼굴에 덕지덕지 붙거나 굶주림으로 핏기 없는 얼굴을 한 앙상한 아프리카 어린이가 화면에 등장한다. “죽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가 있을까요? 매일 1만9000여 명의 아이가, 5초마다 한 아이가 지금도 헛되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잔잔한 배경음악이 깔리고 책망어린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이 아이를 기억하지 마세요…. 어차피 세상을 떠날 아이니까요”로 시작해 “당신의 나눔만이 이 꺼져 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끝난다. 김춘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2012년 9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아프리카를 소재로 한 17편의 광고를 분석해 보니 한국의 기부 광고는 크게 4가지 유형이었다. △특정인의 가정사나 비극적 스토리를 짧은 영상에 담아 풀어내는 일화적 스토리텔링 △기부로 달라진 밝은 모습보다는 현재의 비참한 영상 공개 △죽음의 빈도를 초와 분으로 환산하는 자극적인 계산법 △시청자들에게 지나친 윤리적 책임의식 강요 등이다. 개인 기부 모금액을 기준으로 2015년 상위 50위권 안에 든 기부 단체들도 비슷한 방식의 감성 광고를 많이 했다. 김 교수는 “사람들에게 심적 고통을 주는 방식의 광고가 많고 죄책감을 자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를 미개하고 못 사는 곳이란 편견을 가지기도 쉽다. 아동 관련 단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병원에서 치료받는 고통스러운 아기 얼굴 사진을 올리고 부모의 힘든 경제 상황을 낱낱이 공개한다. 목표 모금액을 막대그래프로 그린 뒤 돈이 들어온 만큼 눈금을 시시각각 올린다. 시각적으로 보여 주고 모금을 독려한다는 뜻이지만 이 차이가 클수록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불편해진다. 기부 단체들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기부 단체 관계자 A 씨는 “우리나라 기부자들은 감정과 동정심에 따른 후원이 많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진을 많이 쓰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기부 액수가 큰 격차가 난다”고 말했다. 기부 선진국에서는 아동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자극적인 사진은 거의 쓰지 않는다. 모금액을 어떻게 썼는지 속속들이 이해하기 쉽게 자료를 만들고, 권위 있는 감사기관의 보고서를 공개하는 ‘이성 기부’에 앞장선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부 단체는 정확한 성과를 전달해야 하고 기부자들도 합리적으로 정보를 알아보고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예인의 기부 영향력 대폭 커져 감성에 약하고 즉흥적인 경향이 있는 한국의 기부문화는 연예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2008년 12월을 기점으로 연예인들의 선행 소식이 많이 소개됐다. 이 시기 상위 10개 기부 연관어를 살펴보면 김장훈, 문근영, 동방신기, 유재석, 현영, 정혜영 등 연예인 이름이 포함돼 있다. 기업인들의 이름도 20년간 꾸준히 오르긴 했지만 인물로 분석할 경우 2008년 이후 전체 상위 70%를 연예인이 차지했다. 기부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연예인은 유재석이다. 동아일보와 인사이터가 2008년 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작성된 기부 관련 SNS 글 650만여 건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유재석의 언급량은 85만7167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2위는 41만8076건의 가수 김장훈이다. 두 사람 모두 ‘유재석, 위안부 피해자들 위해 4000만 원 기부’, ‘김장훈, 기부 숨기고 독도 알리고’ 등과 같이 기부 활동을 소개하는 기사와 함께 언급된 사례가 많았다. 남성전 인사이터 대표는 “기사에 연예인 선행 소식이 나오면 일반인들이 SNS에 전파하면서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연예인의 영향력이 워낙 크다 보니 기부 단체들도 유명인 홍보대사를 모시거나 이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실제로 김혜자(월드비전), 안성기, 김혜수, 소녀시대 윤아(이상 유니세프), 차인표 신애라 부부(컴패션), 션 정혜영 부부(푸르메재단)는 모두 큰 성과를 냈다. 그러나 유명 홍보대사를 내세우는 곳들에만 모금액이 집중될 경우 내실 있는 지역 풀뿌리 단체들에는 기회가 돌아가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기부자들도 어느 단체가 일을 잘하는지 비교하고 투자하는 주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어린이’에 기부 몰려… 관련단체만 급속 성장 ▼한파로 전국이 냉동고처럼 꽁꽁 얼어붙은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지하 보도. 입구마다 기부단체들이 간이 부스를 설치했다. “스티커 하나만 붙여주고 가세요.” 모금활동가들의 간곡한 부탁에 40대 여성이 발길을 멈췄다. 패널에는 ‘더러운 물을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는 질문과 보기 4개가 적혀 있었다. 이들은 힘들게 살아가는 제3세계 아이들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여주면서 마지막으로 “하루 700원, 800원으로 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며 정기후원 신청서를 내밀었다. 적지 않은 행인들이 월 3만∼7만 원씩 자동이체 후원을 약정했다. 한국인의 기부는 유독 어린이에게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작성된 기부 관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 650만 건 중 ‘어린이’(아동, 아이 포함)를 언급한 것이 31만8755건이었다. ‘장애인’(3만4927건)이나 ‘노인’(2만9463건)의 10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실제 어린이 관련 단체의 모금액도 크게 늘었다. 국세청에 공시된 2008년과 2014년 개인 기부금 모금액을 비교해 보면 이 기간 아이들과미래는 20억 원에서 109억 원으로 445% 성장했다. 이어 세이브더칠드런(354%)과 유니세프(330%), 한국컴패션(308%)도 30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으며 월드비전(155%) 초록우산어린이재단(104%)도 모금액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기부 관련 SNS 글에서 어린이에 이어 많은 키워드는 ‘이웃’(9만1531건) ‘학생’(4만5272건) 등이었다. ※기부 연관어 변화 더 궁금하다면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읽으면 20년간 기부와 관련된 주요 연관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컴퓨터 사용자는 구글 크롬을 통해 사이트(donga.insighter.co.kr)에 접속하면 된다. 분석에 사용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는 2월 ‘빅카인즈(BIG Kinds)’란 이름으로 일반에도 공개된다.노지현 isityou@donga.com·박희창·김재형·권기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