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구속기한(16일 밤 12시)이 임박하자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보수단체들이 구속 기간 연장을 막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친박 단체들은 박 전 대통령 추가 구속 여부 결정을 위한 법원의 청문절차가 진행될 10일부터 집회 수위를 높인다. 친박계 조원진 의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대한애국당은 10일부터 ‘박근혜 대통령 구속 연장 반대 총궐기 투쟁’에 나선다고 9일 밝혔다. 조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구속 연장 반대 투쟁을 선언한 뒤 당원 100여 명과 17일까지 단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12일에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태극기 집회를 연다. 이후 재판 상황에 따라 17일까지 법원 앞 집회를 열 계획이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도 “이번만큼은 박 전 대통령 구속을 막기 위해 합심하겠다”며 10일부터 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12일 열리는 보수 총집결 집회에 참여한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1만 명가량 참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19일 부산 영도다리(영도대교)에서 국토대장정을 시작한 자유대한호국단 회원 30여 명은 20일 만인 9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도착했다. 이들은 10일부터 법원 앞에서 노숙집회를 하며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할 예정이다. 재판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친박 단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앞서 대한애국당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 태블릿PC에 대해 “최순실이 아닌 박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8일 주장했다. 2012년 박 전 대통령 대선 캠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본부에서 근무한 신혜원 씨는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2년 10월 말경 김철균 SNS본부장의 지시로 흰색 태블릿PC 1대를 건네받아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카카오톡 계정 관리를 했다”며 “대선 캠프 SNS팀 내에 다른 태블릿PC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친박 단체들은 “태블릿PC를 증거로 채택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라며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재판은 모두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최지선 aurinko@donga.com·송찬욱 기자}

추석 연휴가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열흘간 쉰다는 게 먼 나라 이야기인 사람도 많았다. 특히 59개 공공기관의 첫 합동채용을 앞둔 취업준비생에게 이번 연휴는 휴식이 아니라 마지막 담금질 시간이었다. 이번 합동채용으로 3000∼4000명이 취업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연휴를 잊은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추석을 하루 앞둔 3일 오전 8시경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학원가. 청년들은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상징하는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학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김모 씨(24·여)도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학원에 있었다. 강의실은 이미 공시생으로 가득했다. 김 씨는 시험이 50일가량 남아 긴장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내일은 오전 7시부터 나와서 자리를 잡아야겠다”며 “저녁에는 학원이 문을 닫아 근처 대학 도서관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오 무렵 노량진 명물인 ‘컵밥’ 가게들은 공시생들로 북새통이었다. 한 가게 사장은 “역대 최장 연휴라지만 시험 준비생들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며 이마의 땀방울을 닦아냈다. 사법시험은 폐지됐지만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도 연휴와는 거리가 멀었다. 카페마다 두꺼운 책을 탁자에 놓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들어찼다. 10년째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오모 씨(48) 역시 신림동에서 연휴를 보냈다. 고향은 경남이지만 명절에 언제 내려갔는지 까마득하다. 오 씨는 “나이도 많은 데다 직장도, 아내도 없어 고향에 가면 부모님과 친척 눈치만 봐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신 추석 당일 저녁에 친한 고시생들과 맥주 한 모금 함께 하며 향수를 달랬다. 다음 달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대표 학원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는 연휴 내내 불야성이었다. 학원들은 각종 ‘추석 특강’을 내세우며 쉼 없이 움직였다. 학원 앞은 여느 때처럼 자녀들을 태우러 온 학부모 차로 정체를 빚었다. 박모 양(18·고3)은 명절이면 부모님 고향인 대전에 갔지만 올해는 가족 모두 가지 않았다. 대전의 할아버지는 “명절보다는 손녀 대학 진학이 우선”이라고 선언했다. 박 양은 “친구들과 ‘코인 노래방’에 잠시 들르는 걸로 스트레스를 날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향에 갈 생각을 미룬 채 아르바이트에 열중하는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서 만난 임모 씨(25)도 연휴를 아르바이트로 보냈다. 연휴에는 시급을 평소의 1.5배로 준다. 부산이 고향인 임 씨는 “정규직 공채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도 하는데 시급을 이만큼 주는 때도 드물어 자원했다”면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연휴”라며 웃었다. 상당수 근로자 역시 긴 휴식은 꿈같은 얘기였다. 지하철 근로자가 그랬다. 서울 강남구 서울교통공사 수서차량기지 기관사 218명 가운데 이번 연휴에 92명이 일했다. 5일 만난 22년 경력 최병진 차장(50)은 ‘징검다리 근무’로 연휴 기간에 6일을 일한다. 이날도 오전 근무를 한 최 차장의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충남에 있는 아버지 산소 벌초도 못했다. 그는 열차 운전을 하며 “추석 때 쉬지는 못해도 추석 연휴를 즐기는 시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는 안내 방송을 틈틈이 했다. 이날 오전 그의 코멘트는 “가을볕에 알곡이 익어가듯 풍요로운 추석에 가족과 함께 웃음 풍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였다.구특교 kootg@donga.com·김예윤·최지선 기자}

22일 오후 10시 40분 광주 북구 번화가의 한 카페 2층. 윤모 씨(23·여)는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남성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중년의 등산복 차림이었다. “‘○○’에서 채팅했던 사람입니다.” 남성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은(는) 주로 조건만남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윤 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주민등록증까지 꺼내 보이며 “사람을 잘못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년 남성은 막무가내였다. 뒤이어 나타난 한 젊은 남성도 윤 씨를 향해 다가왔다. 두려워진 윤 씨는 다급히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떴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왜 그러느냐”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나섰는데 중년 남성이 따라 나왔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윤 씨는 지인을 만났다. 남성은 사라졌다. 윤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성희롱도 아니고, 단순히 물어본 것만으로는 적용할 만한 혐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윤 씨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가 해코지할까 봐 겁이 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변을 살펴보면 윤 씨처럼 범죄 피해의 경계까지 몰렸다가 간신히 벗어난 경우가 많다. 범죄의 ‘빨간불’이 켜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피해를 모면한 것이다. 대부분 여성이다. 일단 범죄를 피해도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강력범죄 직전의 단계, 즉 ‘노란불 범죄’의 피해자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노란불 범죄는 가해자를 제재할 법적 수단이 없다. 서울 동작구에서 자취하는 제모 씨(23·여)는 버스에 오를 때마다 악몽이 떠오른다. 몇 달 전 밤늦게 정류장으로 향하던 제 씨의 뒤를 한 40대 남성이 말을 걸며 따라왔다. 제 씨가 도망치듯 버스에 오르자 남성도 뒤따랐다.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제 씨가 내리자 남성도 따라 내렸다. 제 씨의 문자메시지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이 남성은 동작구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수상했지만 경찰도 별 도리가 없었다. 결국 경찰은 제 씨에게 “신고해 봐야 신변만 노출되니 그냥 집에 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하게 돼 더 무서워졌다”고 말했다. 최근 노란불 범죄가 실제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7월 서울 강남의 한 미용업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피해자(30·여)는 인터넷방송에 노출된 뒤 “이상한 연락이나 이상한 손님이 자주 온다”며 주변에 불안감을 호소했다. 올 1월 강남의 한 빌라에서 전 여자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남성도 사건 3시간 전 피해자의 집에서 행패를 부리다 경찰에 연행됐지만 이내 풀려난 뒤 범행했다. 29일 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이 비출동으로 분류한 112 신고 중 강력범죄로 접수된 경우가 2만340건에 달했다. 성폭력은 377건, 살인과 강도는 각각 72건, 58건이었다. 경찰이 지난해 6월 여성을 대상으로 ‘불안요소 신고’를 받은 결과 전체 3629건 중 30.2%(1097건)가 ‘특정인 또는 불특정인에 대한 불안’ 신고였다. 강력범죄의 조짐이 있어도 미리 막기가 쉽지 않다. 개인 관련 범죄 중 예비나 음모죄가 인정되는 건 강도 살인 등 일부에 그친다. 성범죄의 경우 강도강간죄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정되지 않는다.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 조성’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과태료 5만 원에 불과하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잠재적 가해자가 직접적 위해를 가하기 전에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억제할 수 있는 적절한 (공권력) 개입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여러 차례 고심했습니다.” 22일 오후 인천지법 413호 법정. 주문을 읽던 재판장(허준서 부장판사)은 5초가량 숨을 고른 뒤 조심스레 말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공범 박모 양(18)에 대한 선고 직전, 내내 판결문만 읽던 재판장은 처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방청석을 쳐다봤다. “유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직접 살해한 김 양과 그렇지 않은 박 양 책임의 경중을 따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재판장은 박 양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생명 경시의 극단” 박 양과 주범 김모 양(17)은 이날 나란히 피고인석에 섰다. 변호사는 없었다. 여러 차례 재판이 열렸지만 두 사람이 바로 옆에 서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재판이 이어진 40분 동안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 대신 재판장만 응시했다. 박 양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재판장의 말을 들었다. 한 번도 모은 손을 풀지 않았다. 반면에 김 양은 불안해 보였다. 깍지 낀 손이 파르르 떨렸다. 감형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 재판장의 말이 이어지자 손을 책상에 짚고 몸을 기댔다. 마침내 김 양과 박 양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무기징역의 중형이 선고되자 김 양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잠시 재판장을 바라봤다. 박 양의 무덤덤한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두 사람은 재판부를 향해 목례도 하지 않은 채 법정을 떠났다. 이날 선고는 검찰 구형량 그대로다. 10대 청소년에게는 이례적인 중형이다. 김 양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약취 또는 유인한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살해한 경우라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올해 만 17세라 만 19세 미만에게 적용되는 소년법 대상자에게 가능한 최고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김 양이 주장한 감형 사유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양의 변호인은 재판 내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고 곧바로 자수했으며 우발적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재판장은 “당시 김 양의 현실인지 능력과 지능은 평상 수준”이라고 일축한 뒤 “범행 당일 ‘도축’ 등을 검색했고 목표로 삼은 시신 일부를 잘라낸 뒤 운반이 쉽게 정리한 점, 트위터에 ‘우리 동네에 애가 없어졌다’는 글을 올린 점 등을 볼 때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공범인 박 양에게 처음 살인방조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가 살인으로 바꾼 이유에도 모두 동의했다. 재판장은 “미성숙함 탓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피고인의 생명 경시 태도가 심하고 결과가 참혹하다”며 “박 양 행위는 김 양과의 관계에서 지위나 장악력을 감안할 때 기능적(살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 범행의 성격과 비중이 다를 바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장은 이번 사건을 “일면식도 없는 아이를 대상으로 특정 신체부위를 얻으려 한 생명 경시의 극단이었다”고 규정하며 “반사회성과 결과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미온적 대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중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가상세계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행동한 걸 감안할 때 다시 살인을 저지를 위험이 있다”며 두 사람 모두에게 출소 후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렸다. 재판장이 읽은 김 양의 판결문 분량은 18페이지, 박 양은 47페이지였다. 김 양 측 변호인은 “김 양에게 항소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반면 박 양 측은 “즉시 항소할 것이고 항소심에서 우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딸 억울하지 않도록 끝까지…” 피해 아동의 유족을 돕는 김지미 변호사는 “수긍할 수 없는 낮은 형량이 나올까 걱정하던 어머니는 선고 결과를 듣고 ‘정말 다행이다’고 했다. 상급심에서도 무기징역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아동의 아버지도 지인을 통해 “하늘에 있는 딸이 조금도 억울하지 않도록 1심 결과가 끝까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방청석에는 피해 아동이 살았던 지역의 주민들이 상당수 참석했다. 이들은 선고 순간 참았던 한숨을 토해냈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도 터져 나왔다. 김모 씨(45·여)는 “주민들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 선고 결과를 바로 알렸다”며 “어제 한숨도 못 잤는데 이제 다 됐다”며 울먹였다. 사건 발생 후 상당수 주민도 심리적 고통에 시달렸다. 주민들이 중형 선고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모임을 만들어 재판 때마다 “충분한 죗값을 치르게 해 달라”며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던 주민들은 “검찰 구형만큼 선고가 돼 모임은 오늘부로 해체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말했다.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한 주민은 “원하던 재판 결과를 얻었으니 이제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인천=김단비 kubee08@donga.com·최지선 / 김윤수 기자}
경찰은 여비서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73)을 조만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20일 “여비서 A 씨(29)가 제출한 동영상에 두 사람의 신체적인 접촉 장면이 담겨 있다”며 “A 씨는 지속적인 추행을 주장하고 있으며 조만간 김 회장에 대한 소환 일정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A 씨는 “올 2∼7월 김 회장 집무실에서 상습적으로 추행을 당했다”며 김 회장을 고소했다. A 씨는 김 회장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김 회장과 동부 측은 A 씨의 주장이 허위라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노린 계획적 협박극’이라는 주장이다. 동부 관계자는 “둘 사이에 신체적 접촉이 있었던 건 맞지만 A 씨의 동의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동영상에 “원치 않으면 하지(만지지) 않겠다”고 김 회장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동부 측에 따르면 7월 말 김 회장은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A 씨는 김 회장 출국 직후 사표를 냈다. 이어 8월 초 회사 법무팀에 “김 회장님의 동영상을 갖고 있다. 만나고 싶다”는 한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다. 약속 장소에는 A 씨의 지인이라는 신원 미상의 남성이 나와 동영상을 보여주며 “A 씨가 합의금으로 100억 원을 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동부 측은 A 씨 지인이라는 남성들이 2, 3차례 합의 대가로 거액을 요구했지만 “터무니없다.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거절했다고 주장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73)이 30대 여성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전 여비서 A 씨가 올 2∼7월 김 회장이 자신을 상습 성추행했다며 낸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 중이라고 19일 밝혔다. A 씨는 김 회장이 사무실에서 자신의 몸을 만지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동영상에는 A 씨의 허벅지와 허리 등을 김 회장이 만지는 모습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미혼인 A 씨는 3년간 김 회장 비서로 일하다가 7월 말 사직했다. 동부그룹 측은 김 회장과 A 씨 사이에 신체 접촉은 있었지만 상호 동의 아래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A 씨와 연관된 브로커가 지난 두 달 동안 동영상 3편을 보내 협박하면서 100억 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6월 12일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취업준비생의 고통을 전하면서 “이력서 100장이 기본”이라고 했다. 이어 “청년 일자리는 자식들의 문제이자 부모들의 문제”라며 조속한 추경 통과를 요청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희망이 생겼다는 청년 취업준비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취업 성적표는 희망보다 ‘절망’에 가깝다. 당장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올해 8월 청년(15∼29세) 실업률(9.4%)이 단적인 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청년이라 죄송합니다’ 기획시리즈를 준비하며 심층 인터뷰를 한 전국 취준생 135명을 추적해 이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인 이유다.○ 와 닿지 않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 14일 다시 만난 취준생 임우영 씨(24·충북대 토목공학과)의 생활은 본보 기자가 처음 만난 3월과 비교해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여전히 매일 도서관에서 인적성검사 문제집을 풀거나 자기소개서를 나흘에 한 번꼴로 완성해 원서를 넣는 일을 반복했다. 임 씨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제 취업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도 좋지만 민간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늘려야 하는데, 정부가 이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정윤식 씨(26·서울대 중어중문학과)는 해외교환학생 경험에, 영어와 중국어능력시험(HSK) 점수도 최상으로 올렸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직무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으로도 일했다. 그럼에도 그는 “실업률이 역대 최고인데도 이제는 뭐가 힘든지도 잘 모르겠다. 계속 힘들다 보니 그냥 면역이 됐다”며 “기업이 채용 인원을 더 늘릴 수 있는 정책을 보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준생 135명에게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을 묻자 ‘규제 완화 등을 통한 민간기업 활성화’라는 응답(41.5%)이 가장 많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이 달갑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정부의 블라인드 및 합동 채용엔 부정적 의견도 취재팀이 다시 만난 취준생들은 현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에 ‘청년의 목소리가 빠졌다’고 하소연했다. 블라인드 채용 확대나 공공기관 합동채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에 대한 불만이었다. 광주 건강보험공단 인턴으로 일하며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 중인 선석 씨(26·전남대 사학과 졸업)는 블라인드 채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취지는 나쁘지 않지만 면접 시 정말 블라인드인지 의구심이 크다”고 했다. 취준생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역차별’이다. 공대생은 건설사 지원 시 기사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을 주기 때문에 1년간 휴학하고 자격증을 2개 정도 따는 일이 많다. 취준생 최원기 씨(25)는 “블라인드 방식의 자기소개서만 보고 1차 당락을 결정하면 열심히 준비한 사람은 뭐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모든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유사업무 공공기관이 같은 날짜에 필기시험을 치르는 ‘공공기관 합동채용’에 대해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높았다. 대학생 김지선 씨(24·여)는 “하루 시험을 망쳐도 다음 기회가 많아 부담이 적었지만 이제는 한 번 잘못 보면 끝”이라고 하소연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도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에서 시간제 계약직으로 일하는 이윤재 씨(25·여·청주대 경영학과 졸업)는 “애초에 숫자가 많지 않은 ‘기간제 계약직’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보여주기식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래도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 취준생의 절반 이상인 54.1%는 ‘청년 취업 문제가 앞으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청년이 선호하는 기업들이 대규모 신규 채용에 나서지 않는 데다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취업을 미루면서 청년 고용 지표들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지만 이들은 높디높은 취업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기획시리즈 당시 스펙에 집착하는 청년들을 뜻하는 ‘호모스펙타쿠스’로 소개된 취준생 송동준 씨(25·전주대 금융보험학과)는 최근 KT에 입사했다. 송 씨는 “스펙 쌓기에 집착하지 않고 전북 지역 20개 통신사 대리점을 찾아가 직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고 들었다”며 “처음엔 대리점 직원들이 경쟁사 스파이인 줄 알고 경계했지만 그런 노력에 결국 취업했다”고 말했다. 8월 최악의 실업률을 현 정부의 책임으로만 볼 수는 없다. 정책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 6개월 뒤 지표를 봐야 해서다. 그럼에도 민간 채용을 확대하려면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기업이 채용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주는 등 정책적 보완이 있어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만들려면 새로운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영국은 금융과 정보기술(IT)을 융·복합한 서비스가 나오면서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형성해 청년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며 “일자리 정책 하나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경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빼곡한 삼선 슬리퍼… 청년들 “올해가 기회, 친구 절반이 공시 준비”▼노량진 공시생 학원가에선15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공무원 시험 준비학원 외부 흡연구역에 수험생 2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쉬는 동안에도 공무원시험 준비생(일명 공시생)들은 시험 이야기 삼매경이었다. 시험이 얼마나 남았는지 손으로 헤아리는 수험생도 있었다. 같은 시간 동작경찰서 앞 카페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대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자리마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공시생들이 가득했다. 실전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문제를 함께 푸는 ‘스터디 모임’도 눈에 띄었다. 정부가 ‘공공 일자리 81만 개 확충’을 공언하면서 청년들 사이에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8월 청년실업률이 18년 만에 가장 높은 9.4%를 기록하는 등 갈수록 취업여건이 나빠지자 ‘기댈 곳은 공무원시험’뿐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경일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 박경옥 씨(22·여)는 올해 상반기까지 일반 사기업 취업을 준비했지만 현재는 공무원 시험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박 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친구들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며 “주변에서 ‘올해가 기회’라며 공무원 시험 준비에 나선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학원가에서도 이런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교육업체들은 앞다퉈 공시생 대상의 추가 커리큘럼을 준비하고 시험 설명회를 여는 등 ‘특수’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기대감만큼 현장에서 취업난 개선을 체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공부문만 준비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며 “청년들의 기대만큼 큰 일자리 공급은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지금 이루어지는 공공부문 일자리는 신규로 만드는 것이 있지만 기존 비정규직을 전환하는 자리도 있다”며 “청년들이 공공부문 일자리만 염두에 두고 ‘고시 낭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민관 일자리의 균형을 맞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최지선 aurinko@donga.com·김동혁 기자}

“늘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던 우리 아들이 왜 여기 있죠….”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말했다. 자신보다 아버지 걱정만 하던 아들은 소방관 정복을 입은 채 영정 속에 있었다. 아들의 눈빛은 여전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아버지를 향했다. 17일 강원 강릉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경포119안전센터 이호현 소방사(27)의 아버지 이광수 씨(55)는 “전날도 근무 나가며 ‘식사 챙겨 드시고 걱정 마시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경 강릉시 경포 석란정(石蘭亭) 화재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숨졌다. 이 소방사의 ‘멘토’였던 이영욱 소방위(59)도 함께 희생됐다. 30년 경력의 베테랑인 이 소방위는 내년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해병대 전역 후 이 소방사는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과에 편입하며 뒤늦게 소방관을 준비했다. 이 소방사는 소방관을 준비하며 주변에 “나중에 결혼한 뒤 태어날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올해 1월 소방관의 꿈을 이룬 뒤 그는 “남을 도우면서도 이만큼 자랑스러운 직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소방관이라는 일의 자부심이 컸다. 이광수 씨는 “우리 호현이가 노량진 쪽방에서 독하게 소방관 시험을 준비했는데…. 그토록 바라던 소방관을 1년도 못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소방사 빈소에는 상복을 입은 여자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내년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계절별로 여러 사진을 찍어 놓기로 했다. 그러나 올여름 이 소방사가 정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 됐다. 이 소방사의 고모는 영정 앞에 술잔을 놓으며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던 조카가 죽어서야 술맛을 본다”며 울먹였다. 동료들은 “이 소방사가 항상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멘토인 이 소방위는 ‘잉꼬부부’로 소문났다. 재치가 넘쳐 늘 가족을 즐겁게 해주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싫은 소리, 화 한 번 내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비보에 이 소방위의 아내는 이날 남들의 부축을 받지 않고는 걸을 수도 없었다. 이 소방위의 형 이영환 씨(71)는 “금실이 너무 좋은 부부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2000년대 초 어머니(91)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자 이 소방위는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6남 2녀 중 일곱째인 이 소방위는 쉬는 날이면 빠짐없이 요양원을 찾아 노모의 말동무 역할을 했다. 그의 소원은 매일같이 노모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그는 “퇴직하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매일 뵙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정년퇴직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그는 늘 현장을 지켰다. 주변에서 “말년인데 몸 생각하라”고 말해도 그는 사이렌이 울리면 가장 먼저 장비를 챙겼다. 동료들은 “최고참인데도 이날 새벽 호출을 받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 불 앞에서 늘 앞장서던 선배였다”고 말했다. 이 소방사는 베테랑 이 소방위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이 소방위 역시 현장에 출동하면 이 소방사를 아들처럼 여기며 가르쳤다. 최상규 경포119안전센터장은 “한 팀을 이뤄 화마와 싸워 온 동료를 잃게 돼 너무 안타깝다”며 “강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던 이 소방위와 팀 막내로 센터 분위기를 밝게 만들던 이 소방사가 순직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소방관에게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된다.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거행된다.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강릉=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강릉=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늘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던 우리 아들이 왜 여기 있죠….”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말했다. 자신보다 아버지 걱정만 하던 아들은 소방관 정복을 입은 채 영정 속에 있었다. 아들의 눈빛은 여전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아버지를 향했다. 17일 강원 강릉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경포119안전센터 이호현 소방사(27)의 아버지 이광수 씨(55)는 “전날도 근무 나가며 ‘식사 챙겨 드시고 걱정 마시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경 강릉시 경포 석란정(石蘭亭) 화재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숨졌다. 이 소방사의 ‘멘토’였던 이영욱 소방위(59)도 함께 희생됐다. 30년 경력의 베테랑인 이 소방위는 내년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해병대 전역 후 이 소방사는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과에 편입하며 뒤늦게 소방관을 준비했다. 이 씨는 “우리 호현이가 노량진 쪽방에서 독하게 소방관 시험을 준비했는데…. 그토록 바라던 소방관을 1년도 못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소방사의 고모는 영정 앞에 술잔을 놓으며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던 조카가 죽어서야 술맛을 본다”며 울먹였다. 동료들은 “이 소방사가 항상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6남 2녀 중 일곱째인 이 소방위는 치매 증상이 있는 노모(91)를 열심히 보살폈다. 그는 “퇴직하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매일 뵙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주변에서 “말년인데 몸 생각하라”고 말해도 그는 사이렌이 울리면 가장 먼저 장비를 챙겼다. 동료들은 “최고참인데도 이날 새벽 호출을 받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 불 앞에서 늘 앞장서던 선배였다”고 말했다.강릉=최지선 aurinko@donga.com / 황성호 기자}
비는 야속하게도 화마(火魔)를 잠재우지 못했다. 9월의 셋째 주말(16~17일) 강원 강릉시는 먹구름에 휩싸여 간혹 떨어지는 빗줄기로 적셔졌다. 그러나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石蘭亭)에서 16일 오후 9시 45분경 발생한 불길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 불은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곧 진압됐지만 이튿날 오전 3시 52분경 석란정 바닥에서 다시 피어올랐다. 경포119안전센터 소속 이영욱 소방위(59)와 이호현 소방사(27)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이유였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9개월로 끝난 자랑스러운 제복 “‘걱정 마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우리 아들이 왜 여기 있죠….” 17일 두 ‘영웅’의 빈소가 차려진 강릉시 강릉의료원. 이 소방사의 아버지 광수 씨(55)는 아들의 순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복을 입은 영정 속 아들은 여전히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하는 눈빛이었다. 광수 씨는 “전날도 근무 나가면서 ‘식사 챙겨 드시고 걱정 마시라’고 했는데…”라며 허망해했다. 이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경 경포 석란정(石蘭亭) 화재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렸다. 이 소방위도 함께였다. 둘은 18분 뒤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곧 숨을 거뒀다. 소방공무원이 된 지 9개월이 된 이 소방사와 30년 경력으로 내년 말 정년퇴직을 앞둔 이 소방위는 ‘멘티’와 ‘멘토’처럼 묶인 한 조였다. 이 소방사는 해병대 전역 후 뒤늦게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과에 진학해 소방관의 꿈을 키웠다. 그는 평소 주변에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그만큼 소방관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소방관만큼 자랑스러운 직업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가 최근 간식을 양 손에 한가득 든 채 모교를 찾아 “강릉 전체를 책임지는 소방대원이 되겠다”고 말한 까닭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빈소를 찾은 가족들과 친구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사의 고모는 그의 영정 앞에 술잔을 놓으며 “남들 지켜야 한다고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던 조카가 죽어서야 술맛을 본다”며 울먹였다. 광수 씨는 “우리 호현이가 노량진 쪽방에서 독하게 소방관 시험을 준비했는데…그토록 바라던 소방관을 1년도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눈물로 보낸 평생의 단짝 ‘잉꼬 부부’로 동네에서 소문이 난 이 소방위의 아내는 빈소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아들의 어깨에 기대 힘겹게 빈소에 앉아 있었다. 재치가 넘쳐 늘 가족을 즐겁게 해주던 남편이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화 한번 내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비보에 이 소방위의 아내는 남들의 부축을 받지 않고는 걸을 수도 없었다. 이 소방위의 형 영환 씨(71)는 “금실이 너무 좋은 부부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6남 2녀 중 일곱째인 이 소방위는 치매증상이 있는 노모(91)를 열심히 보살폈다. 그는 “퇴직하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매일 뵙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 소방위는 퇴직 전 공로연수 대상자로 현장근무에서 빠져도 되지만 사이렌이 울릴 때면 앞장서서 출동했다. 동료들은 “최고참인데도 이날 새벽 호출을 받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 불 앞에서 늘 앞장서는 선배였다”고 말했다. 한편 두 소방관의 죽음에 동료들은 비통해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이 소방사는 베테랑 이 소방위를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한다. 이 소방위는 이 소방사와 함께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아들처럼 여기며 가르쳤다. 최상규 경포119안전센터장은 “한 팀을 이뤄 화마와 싸워온 동료를 잃게 돼 너무 안타깝다”며 “강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던 이 소방위와 팀 막내로 센터 분위기를 밝게 만들던 이 소방사가 순직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소방관에게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된다.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거행된다.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강릉=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강릉=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북한 해커가 국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침입해 13만5000여 명의 개인정보 23만여 건을 빼내 이를 중국 범죄조직에 팔아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6일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따르면 북한 해커는 지난해 10월 말 ATM 관리대행업체 청호이지캐쉬가 운영하는 ATM에 침입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를 빼갔다. ATM에 설치된 백신 프로그램의 원격 업데이트 서버를 통해 ATM에 악성코드를 심은 것이다. ATM의 보안이 허술하다는 점을 확인한 북한은 올 2, 3월 대대적인 해킹에 나섰다. 청호이지캐쉬가 관리하는 ATM 63대에서 개인정보 23만8073건이 유출됐다. 공격 대상이 된 기기들은 2011년에 제작된 구형 기종이었다. 이들 구형 ATM은 해당 기기에서 사용된 카드의 개인정보를 최대 1년까지 보관하도록 설정돼 있었던 까닭에 피해가 컸다. 유출된 데이터는 카드번호와 유효기간, 비밀번호, 카드 소유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이었다. 북한 해커는 빼돌린 개인정보를 올 2, 3월경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만난 조선족 A 씨에게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 담아서 넘겼다. A 씨는 다시 이를 조선족 허모 씨(45·구속)와 한국인 조모 씨(29·구속)를 통해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등 6개 국가 범죄조직에 팔았다. 허 씨 등은 경찰에서 “A 씨가 북한 해커에게 개인정보 판매 등으로 얻은 수익의 20∼45%를 주기로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A 씨와 접촉한 해커가 북한 정찰총국 사이버부대인 121국 산하 해커그룹 ‘랴오닝성 조직’ 소속인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이 지난해 9월 국방부를 해킹했을 때와 사용된 악성코드, 해킹 경로 등이 같다는 이유에서다. 북한 해커가 유출한 개인정보로 제작된 복제 카드는 529장, 피해 금액은 1억264만 원가량이다. 범인들은 복제한 카드로 국내외 ATM에서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하이패스 카드를 충전해 이를 현금을 받고 파는 식으로 돈을 빼갔다. 조동주 djc@donga.com·최지선 기자}
“이 물만 마시면 암과 아토피가 금세 나아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기적의 물입니다.” 지난해 7월, 강원 춘천시 한 기도원에서 목사를 자처하는 이모 씨(75)가 신자 300여 명을 모아놓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2L들이 페트병에 든 ‘기적의 유황샘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 씨는 “게르마늄, 셀레늄이 풍부하게 함유된 세계적 수준의 유황샘물 사업에 투자하면 매달 100만원 씩 수익금을 입금해 원금의 3배를 지급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어 “지금은 물을 팔지만 유황샘물이 나오는 곳에 온천을 짓고 유황 콩나물, 유황 버섯을 재배해 판매할 계획”이라고도 했다.아토피가 심했던 주부 김모 씨(47·여)는 혹했다. ‘목사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도원에 가서 직접 유황샘물을 보니 더욱 믿음이 갔다. 김 씨는 사채업자에게 5000만 원을 빌려 투자했다. 하지만 약속했던 수익금은 입금되지 않았다. 당장 아들의 학원비와 월세가 없어 발만 동동거렸다.경찰은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약 1600명으로부터 27억 원을 가로챈 생수업체 일당을 붙잡았다.서울강동경찰서는 사기 및 식품위생법 위반,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업체 대표 최모 씨(57)와 동업자인 이 씨 등 4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6일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해당 샘물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유황 성분은 검출됐지만 게르마늄이나 셀레늄은 검출되지 않았다.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북핵 위기 상황이 고조되면서 국내 거주 외국인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일부 외국인학교는 비상시 대책을 알리는 안내문을 급히 학부모들에게 배포했다. 외국인 강사들이 한국 내 취업을 기피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서울외국인학교(SFS)는 최근 전체 학부모에게 안내문을 보냈다. 안내문에는 ‘최근 한반도에서 긴장 상황이 계속되는데, 학교는 긴급사태가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절차가 마련돼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적혀 있다. 또 ‘군과 대사관 등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기관들과 연결 채널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학부모를 안심시켰다. 비상 상황에 대비해 ‘각자 대사관에 등록하고 협조하라’는 안내와 함께 ‘비상시 학교버스 이용이 어렵기 때문에 직접 데리러 와야 한다’는 등 구체적 행동 요령도 포함됐다. SFS는 국내 대표적인 외국인학교다. 주한 외국 대사관 직원의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 학교 관계자는 5일 “한반도에 긴장 상황이 오면 학부모들이 학교 측의 관련 계획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새 학기를 맞아 안내문을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의 한 외국인학교는 최근 개학을 앞두고 일부 외국인 교사를 교체했다. 그러자 일부 학부모는 “방학 때 한국을 떠났던 외국인 교사들이 전쟁이 날까 무서워 돌아오지 않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이에 학교 측은 비자 문제 탓에 교체한 것이라며 교사들의 입국 거부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규 채용 시장에는 한반도 위기 상황이 여파를 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A국제학교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외국인 교사들이 ‘한국 정세가 불안하다’며 채용 제안을 거절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회사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고? 직장인 사이에 떠돌던 이른바 ‘오피스 괴담’ 중 하나다. 직원들이 업무용 컴퓨터로 나눈 대화 내용을 회사나 상급자가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가능할까?’라며 의심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서울의 한 대학에서 보안 프로그램을 이용해 직원의 대화를 엿본 전산 담당자가 적발됐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한다.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설치한 최신 보안 프로그램이 오히려 ‘빅 브러더’가 될 수 있다. 》 지난달 말 서울의 한 대학 교직원 A 씨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학교 개인정보 담당직원 B 씨. 내용을 본 A 씨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B 씨를 거론하며 제3자와 주고받은 온라인 메신저(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B 씨가 보낸 메시지에는 ‘말조심하라’는 경고가 함께 있었다. 교직원 사이에 “학교 측이 직원들의 개인적 대화를 엿본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 학교는 약 2개월 전 새로운 보안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직원들의 e메일과 메신저 내용을 열람하고 문서 파일로 내보낼 수도 있는 프로그램이다. B 씨는 프로그램 테스트를 위해 시험 삼아 자신의 이름으로 검색해 직원들의 메신저 내용 등을 열람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험담하는 내용을 보자 교내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학교 측은 해당 시스템 운용을 중단했다. 학교 관계자는 “문제가 된 시스템을 완전히 정지시켰다”며 “해당 직원을 대상으로 징계위원회도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학교가 사용한 시스템은 공공기관과 기업 800여 곳에 공급된 정보유출방지(Data Loss Prevention) 프로그램이다. 민감한 정보가 유출되는 걸 막아주는 게 목적이다. 이를 위해 직원의 컴퓨터 이용 기록 등을 수집한다. 하지만 이 기능이 너무 강력해서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일부 프로그램은 카카오톡 등 외부 메신저 대화까지 손쉽게 수집할 수 있다. 다른 프로그램도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은 파일명이나 내용을 추적해 차단할 수 있다. 한 보안업체 대표는 “메신저 대화의 전 구간을 암호화하지 않는 이상 대화 내용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자신의 컴퓨터에서 이뤄지는 모든 업무와 대화를 회사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괴담’이 현실이 됐다며 우려하고 있다. 최근까지 컨설팅업체에 다니던 이모 씨(28·여)는 스마트폰 알림을 통해 회사 컴퓨터의 온라인 메신저가 저절로 로그인된 걸 경험했다. 퇴근 후인 오후 10시였다. 30대 직장인 C 씨는 요즘 회사 내부 와이파이망을 이용하지 않는다. 보안담당자로부터 “당신의 컴퓨터에 업무와 무관한 프로그램이 깔려 있으니 삭제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서다. C 씨는 “회사가 스마트폰 사용 내용까지 엿볼까봐 겁이 났다”고 말했다. 외근이 잦은 박모 씨(33)는 아예 ‘선제적 대응’을 했다. 회사가 웹캠으로 몰래 ‘근태’를 살핀다는 소문이 돌자 노트북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였다. 박 씨는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보안프로그램이 오히려 ‘공포의 대상’으로 꼽히다 보니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조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회사가 보안 등의 이유로 직원의 전산 이용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대화까지 들여다보는 건 자칫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기업들도 수집 정보에 대한 열람 권한을 극도로 제한하고 열람 기록도 공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권기범 kaki@donga.com·김동혁·최지선 기자}

“이재용 피고인 입정시켜 주시지요.” 25일 오후 2시 29분. 김진동 부장판사(49·사법연수원 25기)의 지시가 떨어지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으로 들어섰다. 법정을 가득 채운 200여 명의 시선이 이 부회장에게 쏠렸다. 이 부회장은 김 부장판사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 부회장은 침착한 표정과 태도를 유지했던 앞선 재판 기일과 달리 이날은 선고가 진행되는 동안 꽤 초조한 기색이었다. 판결 선고가 이어진 1시간 동안 이 부회장은 줄곧 재판부만 바라봤다. 간혹 입이 타는 듯 종이컵에 담긴 물을 마셨다. 수시로 침을 삼키고, 손등으로 입가를 닦거나 립밤을 입술에 바르는 모습도 보였다. 김 부장판사가 삼성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을 뇌물로 인정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 부회장의 입가는 잠시 파르르 떨렸다. “피고인 이재용을 징역 5년에 처한다.” 김 부장판사가 주문을 낭독하자 방청석 곳곳에서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 부회장은 표정 변화 없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정면만 응시했다. 두 손은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였다. 오후 3시 29분, 재판이 모두 끝난 뒤 이 부회장은 차분해진 모습으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교도관들은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66)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63)에 대해 법정구속 절차를 진행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64)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55)는 빠른 걸음으로 법정을 떠났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삼성 변호인단 30여 명은 예상치 못한 재판 결과에 당황한 듯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법정에 그대로 서 있었다. 삼성 측 변호인단 송우철 변호사(55)는 “1심은 법리 판단, 사실 인정 모두에 대해 법률가로서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송 변호사는 ‘1심 판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 ‘삼성 승계 작업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항소심에서 상식에 부합하는 합당한 중형이 선고되고 일부 무죄 부분이 유죄로 바로잡힐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법원 정문 앞에서는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등 보수단체 회원 350여 명이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 부회장이 탄 호송차가 법원에 도착하자 태극기를 흔들며 “이재용”을 연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근에서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보수단체에 맞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이호재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남학생 2명이 같은 학교 여학생 6명의 치마 속 사진을 찍었다. 다른 남학생 5명이 가세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몰래카메라(몰카) 사진을 유포했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24일 경찰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5월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몰카 사건이 터졌다. 3학년 A, B 군(14) 등 7명이 여학생 6명의 몰카를 찍고 사진을 유포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몰카 촬영은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A, B 군은 스마트폰으로 여학생들의 치마 속을 몰래 찍었다. 이를 전달받은 다른 남학생 5명은 SNS 메신저로 다른 친구들에게 사진을 퍼 날랐다. 학교가 이 사실을 파악한 건 5월 하순. 학교 측은 경찰에 신고했다. 6월 초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몰카를 찍은 두 명은 전학, 나머지는 각각 출석정지, 사회봉사, 교내봉사 등 징계를 받았다. 경찰은 이들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스마트폰 속 사진은 이미 삭제됐지만 디지털 포렌식으로 대부분 복구했다. 학생들의 범행이 사실로 드러나 경찰은 22일 7명 모두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진 유포 과정에 금전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경찰 조사에서 이런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 해당 학교가 있는 곳은 강남의 대표적 부촌(富村) 중 하나다. 사건이 알려지자 다른 학부모들까지 크게 술렁였다고 한다. 학교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한 뒤 곧바로 서울시교육청에 보고했고 후속 절차를 밟았다”며 “금전 거래는 유언비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단 외형적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워낙 충격이 커 학교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과 SNS 발달은 10대까지 몰카 유혹에 빠뜨리고 있다. 몰카를 범죄로 보는 대신 장난으로 여기는 청소년도 많다. 교실과 학원은 더 이상 몰카 안전지대가 아니다. 최근 경기 파주시 일대 중학교 세 곳에서도 남학생 9명이 5개월 동안 같은 학교 여학생의 신체를 스마트폰으로 몰래 찍어 논란이 됐다. 피해 여학생은 20명이 넘었다. 가해 학생들은 모바일 메신저 단체채팅방에 사진을 공유했다. 경찰은 “남학생들이 몰래 찍은 여학생 신체 사진을 채팅방에 올리고 얼굴이나 몸매를 언급했다”고 말했다. ‘청소년 몰카범’은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를 위반한 혐의로 입건된 청소년(19세 미만)은 2011년 87명에서 지난해 601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몰카 범죄자 중 청소년 비율은 6.0%에서 13.6%로 뛰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극적인 내용에 자주 노출된 10대들은 몰카 촬영과 유포를 범죄라고 여기지 않는다”며 “SNS 때문에 유포 속도와 강도가 훨씬 강해져 사전 예방 노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최지선 aurinko@donga.com·권기범 기자}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 사흘째인 23일 오후 2시.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적의 공습에 대비한 민방공 대피훈련이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됐다. 북핵 위기가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열린 훈련 현장을 동아일보 취재진이 점검했다. ◆쇼핑거리=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사이렌이 울리자 주민센터 직원 3명이 나타났다. 손에는 민방위 로고가 박힌 대형 깃발을 들었다. 행인들은 말없이 서 있는 공무원들을 멀뚱히 바라봤다. 한 외국인은 한국인을 붙잡고 “무슨 소리냐”라고 물었다. 적의 폭탄이 투하되고 지상군 공격이 시작됐을 때 나오는 공습경보였지만 시민들 표정은 한가로웠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행인들은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건물 지하주차장 등 지하시설로 대피해야 한다. 만약 핵 공격이면 지하 4, 5층 깊이인 15m 아래까지 내려가야 폭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행정안전부가 만든 스마트폰 앱 ‘안전디딤돌’을 활용하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피소를 찾아볼 수 있다. ◆도로=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 왕복 8차로 도로를 지나던 차량들은 공무원들의 통제에 일제히 멈췄다. 일부 차량이 경적을 울렸지만 이내 잦아들었다. 8차로를 드문드문 메운 차량들은 정확히 5분 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방위 훈련 규정(5분 정차 후 이동)은 지켜졌다. 하지만 실제 공습 상황에선 차량을 오른쪽 갓길로 옮겨 정차해야 한다. 운전자는 차 키를 꽂아둔 뒤 지하시설로 피신해야 한다. ◆백화점=롯데백화점 1층 안내데스크 앞에 있던 중국인 관광객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화장품 매장의 위치를 안내하던 데스크 직원은 사이렌 소리에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곧 이어 “민방위 훈련이 시작됐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화장품과 귀금속 코너 등 대부분의 직원은 별다른 동요 없이 손님을 맞았다. 한 백화점 직원은 “훈련이지만 오가는 고객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화점은 대표적인 다중이용시설이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직원들은 업무를 중단하고 손님들을 지하주차장 등 대피시설로 안내해야 한다. ◆지하 대피시설=명동 지하쇼핑센터는 대피시설로 지정됐다. 매뉴얼대로면 이 시간 몰려드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뤄야 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지하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비상시에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등 전동장치 대신 계단으로 오가야 한다. 지역 민방위대장은 “지난해 민방위 훈련 때 실제 상황처럼 행인들을 통제하려다 몸싸움까지 난 적이 있다. 어차피 통제에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관=이날 낮 12시 50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덩케르크’ 등 영화 상영이 한창이었다. 훈련 시작 직전인 오후 1시 55분 모든 영화가 중단됐다. 상영관에선 “잠시 후 사이렌이 울리면 20분간 멈춘 뒤 다시 이어 상영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공습경보가 울리자 상영관에 있던 관객 80여 명은 직원 안내에 따라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 1층의 대피시설로 지정된 마트 안으로 이동했다. 매뉴얼대로 지켜진 사례였다. ◆초고층(50층 이상) 건물=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는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 건물이다. 취재진은 이 건물 34층에 입주한 A업체의 대피 훈련에 참여했다. 사이렌 소리에 직원들은 비상구 계단을 통해 22층으로 걸어 내려갔다. 22층은 피난안전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피난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었다. 일반 건물은 계단으로 대피하지만 초고층 건물은 통상 20층 단위로 1곳씩 설치된 피난안전구역으로 일단 이동한다. 이곳에는 화재나 정전에도 가동되는 피난용 엘리베이터가 별도로 있다. 높은 층에서부터 걸어서 내려가려면 오래 걸리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정체를 빚기 때문이다. A업체 직원들은 매뉴얼대로 대피하긴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2층 피난용 엘리베이터 앞에는 수백 명이 줄지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데만 20분을 기다렸다. 직원들은 “이 정도 시간이면 공습이 이미 끝났을 것 같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학교=서울 도봉구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사이렌이 울리자 모두 운동장과 1층 복도에 모였다. 교내에 별도의 지하 대피소가 없기 때문이다. 행안부 앱 ‘안전디딤돌’을 검색해 보니 서울 강북구 도봉구 동대문구 동작구 용산구 은평구 중구 등 7개구에는 학교 자체 대피소가 한 곳도 없었다. 서울시내 초중고교는 1364곳이지만 자체 대피소를 두고 있는 학교는 75곳에 불과하다. 김예윤 yeah@donga.com·최지선·이지훈 기자}
영화 미술감독 고모 씨(45) 살인사건의 피의자 조모 씨(28)는 미리 예리한 흉기를 준비한 뒤 대낮 서울 도심의 법률사무소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범행 현장에서 달아나지 않은 채 출동한 경찰 앞에서 순순히 범행을 시인했다. 조 씨는 경찰에서 “약속한 돈을 받지 못해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세한 진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난 배경에 한 재일교포 출신 사업가의 재산을 둘러싼 후손들의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이 커지고 있다. 22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고 씨는 21일 오전 11시 40분경 서초구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조 씨를 만났다. 변호사 A 씨가 동석했다. 고 씨는 외할아버지인 B 씨(99)의 재산 증여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조 씨를 만났다. 이 과정에서 ‘수고비’ 문제가 나오며 언쟁이 격해졌고 조 씨는 종이가방에서 날카로운 흉기를 꺼내 고 씨의 목을 한 차례 찔렀다. 조 씨는 경찰에서 “고 씨가 재산권 분쟁에서 유리한 정보를 주면 2억 원가량 사례하기로 해놓고 ‘1000만 원밖에 줄 수 없다’고 말을 바꿔 분노가 치밀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살인 혐의로 조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고 씨의 외조부 B 씨는 일본 교토(京都)의 4성급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18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굴지의 사업가로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서울에도 적지 않은 부동산을 보유하는 등 최소 수백억 원대 자산가로 알려졌다. 2000년대 중반 국내에서 활발한 기부활동으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B 씨가 거의 모든 재산을 장손에게 주기로 하면서 다른 자녀들과의 다툼이 시작됐다. 고 씨는 어머니를 도와 B 씨의 장남(72)과 장손을 상대로 한 재산권 분쟁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B 씨가 장남에게 넘긴 서울 종로구 단독주택을 둘러싸고도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자녀들이 올 3월 법원에 낸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장남은 주택을 처분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은 조 씨가 B 씨 가족의 재산권 분쟁에 연루된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조 씨는 별다른 전과도 없다. 조 씨는 일본 유학 시절 B 씨의 장손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B 씨 장남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고 씨가 살해된 사실도 21일 오후 6시 이후에 알았고, 조 씨가 재산권 분쟁과 관련해 고 씨 측을 찾아갔다는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고 씨의 부인인 배우 송선미 씨(42)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조 씨가 17일경 갑자기 연락해 소송 관련 정보를 주겠다며 접근했고 사건 당일까지 세 차례 만난 것이 전부”라며 “어떤 자료가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액을 주기로 약속할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최지선 aurinko@donga.com·권기범 기자}

배우 송선미(42)의 남편인 영화미술감독 고모 씨(45)가 대낮 강남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흉기에 찔려 숨졌다. 경찰은 고 씨를 살해한 혐의로 조모 씨(28·무직)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21일 오전 11시 40분경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조 씨가 고 씨와 언쟁을 벌이다 미리 준비한 흉기로 고 씨의 목을 찔렀다. 고 씨는 과다출혈로 현장에서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법무법인 직원의 신고를 받고 사무실에 출동하니 고 씨는 이미 숨져있었다”며 “조 씨는 달아나지 않은 채 범행 사실을 순순히 시인했다”고 말했다. 고 씨는 외할아버지가 남긴 거액의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친척과 소송을 진행 중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고 씨는 해당 친척과 알고 지내던 조 씨에게 “상속 관련 정보를 알려주면 수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조 씨는 관련 정보를 파악해 고 씨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당초 약속과 달리 고 씨는 조 씨에게 1000만 원밖에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만남에서 조 씨는 고 씨에게 약속했던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미리 준비한 종이가방에서 흉기를 꺼내 휘둘렀다.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조 씨는 달아나지 않고 멍하니 서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현장의 고 씨의 소송 담당 변호인 사무실이다. 설치예술가인 고 씨는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뜨거운 것이 좋아’ 등에 미술감독으로 참여해 유명하다. 2008년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 초대형 미술작품인 ‘모래시계’를 설치해 화제가 됐다. 2006년 배우 송선미와 결혼해 슬하에 딸을 뒀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50대 남성 경찰이 20대 여성 경찰을 성폭행하고 휴대전화로 이 여경의 나체 사진을 찍어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에 ‘경찰 내부에서 성폭행이 벌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2012년 서울 강남경찰서 관할 파출소 소속 박모 경위가 파출소 동료들과 회식을 한 뒤 회식에 참석했던 여성 후배 경찰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는 것이었다. 신고에는 당시 여경이 만취 상태였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위는 성폭행 당시 휴대전화로 여경의 알몸 사진을 찍은 뒤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수년간 강제 추행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여경은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못 하다가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경찰 동료의 신고로 조사가 시작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박 경위를 대기 발령 조치하고 사건을 성폭력특별수사대로 넘겼다. 경찰은 ‘위계에 의한 간음’ 혐의로 입건한 박 경위를 1차례 소환 조사했다. 경찰은 추가 조사를 한 뒤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