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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ure(인듀어) 1. 견디다, 참다, 인내하다 2.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계속해서 싸우며 현재 상태를 유지하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 위의 짤막한 설명. 좀 부풀리자면, 이게 제목과 함께 이 책의 ‘앙꼬’다. 기록 경신에 도전하는 운동선수가 신체적 능력을 한 톨까지 쥐어짜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스포츠에서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그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쫓는 여정이 이 책에 담겼다. 뼈대만 놓고 보자면, ‘인듀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신체적 능력을 발현하는데 결국은 뇌가 중요하더란 얘기다. 앞서 언급한 인듀어의 두 번째 뜻을 잠시 되새김질하자. 이는 이탈리아 과학자 새뮤얼 마코라가 ‘지구력’에 대해 내린 정의이기도 하다. ‘노력(effort)’이란 말로도 대체 가능한 이 지구력은 육체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둘 다 강조한다. 예컨대, 몸과 기술을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마지막 차이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어쩌면 ‘뻔하고 맥 빠지는’ 설명이다. 이 책도 내가 바라면 우주의 만물이 도와준다는 ‘시크릿’류의 판타지였단 말인가. 물론 그럴 리야 없다. ‘인듀어’는 스포츠라는 무대에서 인간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신체 시스템 자체에 주목한 책이다. 인간도 기계처럼 좋은 하드웨어를 갖추면 성적이 오르는 것일까. 당연히 그게 기본 전제겠지만, 여기엔 소프트웨어라 할 만한 뇌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든, 뇌가 지닌 보호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든 말이다. “뇌 자극이 우리 몸의 숨겨진 지구력 저장고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험이 선수들에게 지구력 저장고의 존재를 믿게 해 주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안장 위에 앉은 두 명의 경쟁자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무기는 자신이 더 나은 기술로 무장하고 있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일단 이 책은 재밌다. 딱히 위트가 넘치는 건 아닌데, 과학책이 이렇게 흥미진진해도 될까 싶다. 이는 저자가 캐나다 육상 대표선수 출신이란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자신의 경험을 잘 살려 운동선수와 과학자의 다양한 면모와 속내를 잘 짚어냈다. 마라톤 등산 경보 사이클 등 여러 분야를 취재해 재밌게 엮은 점도 높이 살 만하다. 특히 통증과 근육, 산소, 더위, 갈증, 연료 등 운동능력의 한계와 직결된 여섯 가지 분야를 정리한 2부는 탁월하다. 콘텐츠와 문장력이 이만큼이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저술은 쉽게 만나기 힘들다. 다만 책의 흐름과는 별개로, 묘한 ‘세상의 이치’도 묻어난다. 물리학 생리학 등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이런 인체 과학이 실은 다 목적이 있어서 발전했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산업혁명 전후엔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을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엔 얼마나 더 강인한 군인을 키워낼 수 있을까가 이런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지금은? 수많은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곳은 다름 아닌 글로벌 스포츠 의류나 음료 업체다. 운동선수와 과학자들의 순수성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살짝 입안이 텁텁하긴 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ndure(인듀어) 1. 견디다, 참다, 인내하다 2.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계속해서 싸우며 현재 상태를 유지하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 위의 짤막한 설명. 좀 부풀리자면, 이게 제목과 함께 이 책의 ‘앙꼬’다. 기록 경신에 도전하는 운동선수가 신체적 능력을 한 톨까지 쥐어짜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스포츠에서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과학 전문 칼럼리스트인 저자가 그 오래토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쫓는 여정이 이 책에 담겼다. 뼈대만 놓고 보자면, ‘인듀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신체적 능력을 발현하는데 결국은 뇌가 중요하더란 얘기다. 앞서 언급한 인듀어의 두 번째 뜻을 잠시 되새김질하자. 이는 이탈리아 과학자 새뮤얼 마코라가 ‘지구력’에 대해 내린 정의이기도 하다. ‘노력(effort)’이란 말로도 대체 가능한 이 지구력은 육체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둘 다 강조한다. 예컨대, 몸과 기술을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마지막 차이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어쩌면 ‘뻔하고 맥 빠지는’ 설명이다. 이 책도 내가 바라면 우주의 만물이 도와준다는 ‘시크릿’ 류의 판타지였단 말인가. 물론 그럴 리야 없다. ‘인듀어’는 스포츠라는 무대에서 인간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신체 시스템 자체에 주목한 책이다. 인간도 기계처럼 좋은 하드웨어를 갖추면 성적이 오르는 것일까. 당연히 그게 기본 전제겠지만, 여기엔 소프트웨어라 할만한 뇌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든, 뇌가 지닌 보호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든 말이다. “뇌 자극이 우리 몸의 숨겨진 지구력 저장고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험이 선수들에게 지구력 저장고의 존재를 믿게 해 주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안장 위에 앉은 두 명의 경쟁자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무기는 자신이 더 나은 기술로 무장하고 있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일단 이 책은 재밌다. 딱히 위트가 넘치는 건 아닌데, 과학책이 이렇게 흥미진진해도 될까 싶다. 이는 저자가 캐나다 육상 대표선수 출신이란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자신의 경험을 잘 살려 운동선수와 과학자의 다양한 면모와 속내를 잘 짚어냈다. 마라톤 등산 경보 사이클 등 여러 분야를 취재해 재밌게 엮은 점도 높이 살만 하다. 특히 통증과 근육, 산소, 더위, 갈증, 연료 등 운동능력의 한계와 직결된 여섯 가지 분야를 정리한 2부는 탁월하다. 콘텐츠와 문장력이 이만큼이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저술은 쉽게 만나기 힘들다. 다만 책의 흐름과는 별개로, 묘한 ‘세상의 이치’도 묻어난다. 물리학 생리학 등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이런 인체 과학이 실은 다 목적이 있어서 발전했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산업혁명 전후엔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을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엔 얼마나 더 강인한 군인을 키워낼 수 있을까가 이런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지금은? 수많은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곳은 다름 아닌 글로벌 스포츠 의류나 음료 업체다. 운동선수와 과학자들의 순수성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살짝 입안이 텁텁하긴 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히가시노 vs 히가시노. 마침 두 책이 하루 간격으로 출간돼 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꽤 오랫동안 국내 일본문학의 인기는 이런 구도였다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무라카미 하루키 등 쟁쟁한 작가들을 폄하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히가시노가 쌓은 성벽은 그만큼 압도적이다. 출판사들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비밀’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60여 종. 특히 제134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용의자 X의 헌신’이 큰 반향을 일으킨 뒤 10년 넘게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최근 100만 부를 넘어선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이 아니어도 “제일 실적이 떨어지는 작품도 3만 부 이상은 나간다”고 한다. 자, 그럼 또다시 최소 3만 부는 팔릴 이 두 작품은 어떤 내용일까. 미리 얘기하면 둘 다 정통 ‘히가시노 스타일’은 아니다. 팬들은 알겠지만, 원래 저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추리소설 작법을 지녔다. 사건도 범인도 첨부터 다 밝혀지는데 ‘어떻게’와 ‘왜’가 극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방식. 하지만 요즘 들어, 이것도 히가시노의 ‘한 영역’일 뿐이란 생각도 든다. 대박을 친 ‘나미야…’도 힐링 판타지물이었으니까. 어쩌면 작가는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받는 걸 제일 싫어할지도. ‘살인의 문’은 굳이 따지자면 심리소설이다. 주인공 다지마 가즈유키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일생 고달프다. 괴롭힘도 어찌나 많이 당하는지. 그러다 보니 ‘살의’를 느낀 적도 꽤 많다. 그리고 그 주위엔, 항상 ‘친구’ 구라모치 오사무가 있다. 실은 그를 친구라 부르긴 애매하다. 다지마가 처음 죽이고 싶단 맘을 먹은 상대도 구라모치였으니까. 그만큼 그는 주인공 인생에 자꾸만 끼어드는데…. 다지마와 구라모치의 질긴 악연은 어디쯤에서 멈춰 설까. 반면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는 산뜻한 수사물이다. 살인사건을 쫓는 얘기에 산뜻하다 해서 미안하지만, 그만큼 깔끔하고 야무지다. 이미 1편 ‘매스커레이드 호텔’과 2편 ‘매스커레이드 이브’가 국내에서 약 13만 부가 팔린 인기 시리즈인지라, 이번에도 반응이 뜨거울 터. 일본에선 3편이 지난해 나왔는데 도합 300만 부를 돌파했단다. 특급호텔을 배경으로 경시청 형사 닛타 고스케와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 콤비가 보여준 케미는 이번에도 명불허전. 예고 살인을 쫓는 재미가 맛깔스럽게 펼쳐진다. 같은 히가시노 작품이지만 색깔은 무척이나 다르다. 상수도와 하수도를 관통한 기분이랄까. ‘매스커레이드…’가 쫀득쫀득한 수사 드라마를 마주한 분위기라면, ‘살인의…’는 내면의 극단까지 몰아가는 끈적끈적한 하드코어 영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취향에 따라 반응은 다소 갈리겠지만, 어디서든 필력과 매력은 넘쳐난다. 그걸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남북한 유명 작가들의 그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특별전시회 ‘아름다운 동행―평화, 꽃이 피다’가 14일부터 개최된다. 서울대총동창회(회장 신수정)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K-메세나네트워크(이사장 손은신)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는 서울대총동창회가 통일을 준비하며 문화 예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꾸준히 준비해온 사업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김환기 박수근 등 남한 대표적 화가들의 작품 120여 점과 월북 작가부터 최근 현대 작가까지 북한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80여 점을 선보인다. 특히 8·15광복 직후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초대 서기장을 지냈던 102세 최고령 현역 작가인 김병기 화백의 최근작 ‘성자를 위하여’도 만날 수 있다. 2019년 1월 31일까지. 서울 마포구 SNU장학빌딩 2층 베리타스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잠깐, 눈을 감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자. 추억도 좋고 공상도 좋다. 일단 넓은 공터를 떠올리고. 거기에 뭔가를 채워 넣어보자.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신나고 즐거운 기분만 꼭 붙들면 된다. 충분히 떠올렸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되새김질해보길. 당신의 ‘놀이터(playground)’는 어떤 모습이었나. 삭막하거나 뻔한 풍경만 가득했더라도, 너무 괘념치 말자.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실제로 동네 가까운 놀이터를 보라. 그네와 시소, 미끄럼틀…. 언제부터인가 대다수가 그냥저냥 ‘있으니까 있는’ 공간이 돼버렸다. 심지어 가끔은 ‘주폭(酒暴) 터’나 ‘우범 터’란 이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생활기술 연구가’ ‘놀이터 디자이너’란 직함을 가진 저자는 이런 인식의 탈바꿈을 강력히 요구한다. 놀이터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이곳은 아동 노동을 착취하던 산업자본주의 태동기를 지나며 생겨났다. 공장에선 벗어났지만, 돌보는 사람 없이 길가에 방치되던 아이들을 보호하고 치유하려는 목적이 컸다. 이 때문에 초창기 놀이터는 시설은 부실했을지언정, 아이들에게 훨씬 많은 자유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이 더욱 성장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놀이터도 안전을 이유로 규격화 표준화란 틀에 갇히게 된다. 지금의 천편일률적인 생김새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놀이터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사회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제목에도 등장하는 ‘모험 놀이터’의 도입을 적극 권장한다. 모험 놀이터란 다양한 형태를 띠긴 하는데, 아이들의 본능을 일깨울 수 있는 곳을 일컫는다. 예컨대, 흙과 목재 철재더미만 있더라도 만들고 뒹굴고 부딪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안전이나 청결 문제로 께름칙할 터. 하지만 실제 해외에서 운영하는 모험 놀이터를 보면 규칙만 잘 지키면 사고 발생률도 기존 놀이터보다 훨씬 떨어진다고 한다. “놀이 기구의 수량이 놀이의 즐거움을 보장하지 못한다. 놀이 기구들이 상호 연결성을 갖고, 아이들 스스로 놀이 경험과 놀이의 경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모험과 탐색의 요소가 있어야 하고 상상이 깃들 여지가 있어야 한다.” ‘마을이…’는 신선하다. 무덤덤하게 지나치던 놀이터란 장소를 다시 보게 한다. 일단 놀이터가 이런 역사와 함의를 지녔다는 게 놀랍다. 게다가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진정한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특히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고개를 끄덕일 대목이 많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기성세대로서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에 이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데, 공감 가는 바가 적지 않다. 다만 책이 다소 결연한 분위기인 건 아쉽다. 양질의 정보와 내용을 담은 건 좋은데, 좀더 낙낙하게 정리했으면 어땠을지. 숨통을 틔워주는 놀이터를 제안하는 글이 어깨가 딱딱하게 굳게 만들면 안 되지 않을까. 이 운동이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성공하길 바라는 뜻에서 사족을 붙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우리는 미술을, 아니 예술을 왜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맨몸으로 부딪쳐 보고 싶었습니다. 인정이나 대접 받지 못해도, 왜 아티스트는 무모한 도전을 벌이는 걸까요. 해답을 찾았냐고요? 그건….”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승민 큐레이터(38)는 한마디로 ‘스스로 가시밭길을 걷는 이’다. 영국 런던대에서 미술사 석사학위를 딴 뒤 한국현대도자전,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 등 중량감 있는 전시 80여 개를 기획했다. 주영 한국문화원 전시기획자로도 일하며 ‘우아하고 평탄한’ 삶을 보내기 충분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정해놓은 루트를 따라가질 않았다. 23일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공개한 ‘슬리퍼스 인 베니스’는 김 큐레이터가 어떤 나침반을 지녔는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5년 5월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선 정규 행사만큼 화제가 됐던 이벤트가 있었다. 당시 그가 비엔날레에 초대받지 않은 작가 강임윤 구혜영 김덕영 등 8명과 함께 ‘게릴라성 전시’를 연 것. 사비를 쏟아부어 가며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는 기분”으로 진행한 전시는 관람객 6000여 명이 몰리고 유럽 유명 매체가 소개할 정도로 이목을 끌었다. ‘슬리퍼스…’는 그 동명의 전시 전후에 있었던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베니스는 미술인에게 올림픽과 같은 무대입니다. 거기서 무명에 가까운 우리가 ‘판’을 바꿔 보려고 한 거죠. 큐레이터인 저는 그런 아티스트들에게 자리를 깔아준 사람이고요. 영화 역시 또 다른 ‘전시의 공간’이라 여겼습니다. 단발성으로 끝내지 않는, 하나의 ‘울림’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지만 그는 결국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설국열차’를 편집했던 최민영 감독과 2007년 영국 터너상 수상자인 마크 월린저, 전 ‘삐삐밴드’ 멤버였던 이윤정 등이 힘을 보탰다. 최근 영화 ‘독전’에 출연해 주목받는 배우 이주영도 출연했다. 김 큐레이터는 “다들 고맙게도 예술을 향한 꿈의 도전이란 취지에 공감해 줬다”며 “세계적인 국제영화제에도 출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화에 그 무모한 도전의 답이 나오느냐고요? 하하.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예술가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게 목적이 돼야 한다는 걸요. 우리의 질문은, 이제 시작입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고, 만족하지도 않을 거예요.”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여동생 케이트가 결혼을 한다. 지금까지 본 결혼식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다. 나는 발을 똑바로 지탱하기 위해 양말 안에 보조기를 찬다. 축하연 이틀째 되는 날, 문자메시지가 온다. ‘세상 소식들’이 벨파스트 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나는 춤을 춘다. 내 인생의 마지막 춤이다.” 어쩌면 지루하거나 불편할 수 있다. 그만큼 삶의 끝자락에 선 이들이 남긴 책은 꽤나 많다. 때론 과한 감정이 버겁고, 혹은 덩달아 가슴을 짓눌리는 걸 피하고도 싶다. ‘어둠이…’ 역시 똑 닮은 체험이 될지도. 하지만 최소한, 이 책은 ‘찬란하다’. 아일랜드 영화감독인 저자는 1973년생. 히말라야 산행을 다녀올 정도로 정력적이던 그는 2008년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겨우 35세에 3, 4년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까지. 당연한 절망과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그와 아내 루스는 망설이진 않았다. 더 삶을 아름답게 가꾸자고. 더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진 사실, 기시감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남은 생’을 잘 지내자는 게 아니었다. 남과 똑같이, 아니 더 근사하게 살리라 맘먹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여행도 가고, 아이(심지어 쌍둥이)도 더 가졌다. 그리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0년경. 저자는 큰 위기를 겪는다. 폐렴으로 호흡 곤란에 빠졌다. 의료진조차 ‘마지막’을 언급하며 인공호흡기를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했다. 어떤 장치를 달고서라도 버티려 한다. 그게 자신의 순수한 욕망이니까. 사랑하는 이들 곁에 1분 1초라도 더 머물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었다. “나는 살고 싶다. 그게 잘못된 일인가? 무엇이 인생에 의미를 주는가? 의미 있는 삶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살아있다. 그것도 순간의 착오 때문에. 그들은 내게 삶을 주었고, 나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큰 매력은 문장이다. 간결하고, 담박하다. 부질없는 미사여구는 걷어내고, 적확한 단어만 골라낸다. 실은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거란 생각도 들긴 했다. 온몸이 마비된 뒤, 눈동자 움직임으로 글을 쓰는 ‘아이 게이즈(eye-gaze) 컴퓨터’로 작업했으니. 물론 그게 글이 지닌 품격을 흠집 내진 않지만. 저자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판정보다 5, 6년을 더 산 셈이다. 하지만 감히 추측건대, 그는 만족하지 않았으리라.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을 테다. 그런 자신과 아내, 가족을 자랑스러워했을 게다. “나는 온몸을 불사르며 이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죽음과 싸우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삶과 싸웠다. 원제 ‘It‘s Not Yet Dark(아직 어둡지 않다)’가 더 맞춤한 이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생명의 나무’ 시리즈로 유명한 이정록 사진작가(47)의 개인전 ‘라이트 업 더 모먼트(Light Up The Moment)’가 28일부터 열린다. 이 작가가 2007년부터 10년 이상 천착해 온 ‘생명의 나무’ 시리즈는 “신과 인간이 교통(交通)하는 장소”라는 작가의 말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직접 설치한 대상을 필름카메라로 ‘순간 광(光)’을 중첩시켜 2∼6주 가까이 공을 들여 찍는 작품이다. 모두 12점을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 역시 초자연적인 에너지와 영혼의 만남을 만끽할 수 있다. 미국 로체스터공과대 영상예술대학원에서 순수 사진을 전공한 이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무가 지닌 신성한 존재성, 인류와 신화의 교감에 주목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지난해 영국 필립스옥션에서 2만2500파운드(약 3360만 원)에 팔릴 정도로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다. 이번 전시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정샘물 플래그십 스토어 플롭스(PLOPS)에서 1년에 걸쳐 진행하는 ‘플롭스 인 아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자다. 앞으로 최랄라 홍성준 지근욱 찰스장 등의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10월 28일까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봄을 보내는 여름 깃발. 냉면집 깃발이 철을 만난 듯.’(동아일보 1921년 4월 26일) 냉면 좀 안다고 자부했던 이라면 지나치기 어려운 책이다. 물론 그간 ‘정보’에 치중한 관련서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평양냉면을 문학적 문화사적 측면에서 다뤘다. 소문만 들었던, 냉면 노포(老鋪)를 드디어 찾아간 기분이다. 명성만큼 맛도 만족스러울까. 일단 다양한 구색은 갖췄다. 조선 시대부터 최근까지 냉면을 언급한 글을 모아 호기심을 돋운다. ‘길게 뽑은 냉면 가락에 배추김치 곁들인다네’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시를 마주하면 괜스레 흐뭇하다. 일제강점기 성업했다는 냉면 배달을 담은 신문 삽화는 정겹기도 하지. 역시 냉면의 내공은 진득하니 깊다. 하나 이렇게 ‘기획’으로 태어난 책이 지닌 한계도 또렷하다. 잡학사전 이상의 감흥을 전하진 않는다. 하긴 그래서 이런 무더위엔 더 안성맞춤일지도. 갈수록 솟구치는 냉면 값만 야속할 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침잠(沈潛)의 무게란 이런 것일까. ‘나의 우울증을…’은 묵직하다. 쉽사리 평을 내놓기 어렵다. 소설가이자 출판평론가인 저자는 1954년생. 환갑이 넘어 내놓은 자전적 에세이에 평생 사투를 벌인 삶의 여정을 담았다. 그 대상은 바로 ‘우울증’이다. 솔직히 정신질환을 두고 싸웠단 표현을 쓰는 게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터. 저자 역시 그런 시선을 잘 안다. 특히나 그처럼 집안이 유복하면 “배부른 푸념”으로 여겨지는 것도 익숙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안,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충동. 저자에게 삶이란 지옥 같은 고통이었음을 털어놓는다. “우울증은 전 세계 3억5000만 명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지구촌 전체의 문제이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1600만 명이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겪었고 2014년에는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망자 수가 4만 명을 넘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 슬픔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길 원치 않는 듯하다.” ‘나의 우울증을…’은 모두보단 누군가를 위한 글이다. 어차피 겪어보지 못한 이에겐 신세 한탄으로 들릴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같은 아픔을 겪거나 마음의 상처가 짙은 이에겐 위안이 되리니. “내 우울증에 대해 승리를 선포하지는 못하지만 밀쳐내고 피하며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으며, 우울증의 반대는 상상도 못 할 행복이 아닌 대체적인 자족감”이라며 서로를 다독인다. 다소 현란하긴 하나, 새겨둘 만한 값진 문장이 빼곡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꾀는 줄 알면서도 꾀였다. 왜 아니겠는가. 이 날씨에 ‘폭염 사회’라니. 못 본 척하는 게 더 이상하다. 요맘때 이 책을 낸 의도야 뻔하지만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다. 부제처럼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는 이제 우리에게도 절체절명의 화두니까. 흔쾌히 유혹당하련다. 미리 말하면, 이 책은 초판이 2002년에 나왔다. 2015년 나온 재판을 번역했지만, 새로 실린 서문 말곤 ‘옛날 일’이란 소리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서 폭염으로 521명이 사망한 사건을 다뤘으니 자그마치 23년 전. 그런데 ‘지금, 여기’를 마주한 듯한 이 기시감은 뭘까. 뉴욕대 교수인 저자는 재난이 발생했던 시카고 출신. 자기 고향에서 벌어진 사태를 끈질기고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사실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지만, 폭염을 사회학 측면에서 분석한다는 건 여간해선 엄두가 나지 않을 일. 자연재해인 데다 지진이나 태풍처럼 극적이질 않다 보니 더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그 때문에라도 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autopsy)”이 꼭 필요하다고 여겼다. “대부분의 세월 동안 가장 치명적인 형태의 기상이변은 폭염이었다. 폭염은 소리와 형체 없이 다가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걸고 폭염을 무시하고 있다. …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사회과학, 특히 사회학에서 기후변화는 연구와 대중의 참여가 집중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리라는 점이다.” 얼핏 자연재해는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도 숱하게 겪어 봤지 않나. 대부분 천재(天災)는 인재(人災) 탓에 호미면 됐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당시 시카고 역시 그랬다.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이상고온이지만, 그걸 최소화하기는커녕 기름을 끼얹은 건 인간의 우매함이었다. 저자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점잖게 짚었지만. 물론 폭염이 참화로 이어진 데는 복잡한 요소들이 얽히고설켰다. 희생자들이 대다수 빈곤층 홀몸노인이었던 건 누구나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시카고의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은 둘 다 못사는 데다 바로 길 건너 동네인데도 사망률이 크게 차이 났다. 노스론데일은 경제가 낙후되며 많은 주민이 떠난 뒤 범죄자의 터전이 됐다. 이로 인해 노인들은 밖으로 나오질 않고 고립돼 버렸다. 반면 사우스론데일은 가난해도 인구가 밀집돼 여전히 거리에 은행이나 가게가 성행했다. 비상사태가 벌어져도 도움을 구할 지역 커뮤니티 덕분에 최악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정 없는 이웃들 문제라고 봐선 곤란하다. 이 지경이 된 건 위기상황에 대한 시청(혹은 정부)의 대응전략이 부재했고, 응급구조 시스템의 원활한 운용이 미비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갈수록 지자체도 기업처럼 ‘효율성’만 추구하는 경향과 자극적인 사건만 쫓는 언론의 생리도 한몫했다. 나아가 당시 시카고 시장은 약점을 감추는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시정이란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더라도 묵묵히 도시 저변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폭염 사회’는 읽을수록 후덥지근해지는 책이다. 아, 저자의 분석은 선명하고 깔끔하다. 곳곳에서 겹쳐지는 우리네 모습이 떠올라서 그렇단 얘기다. 남의 나라도 엇비슷하게 후졌구나 하며 위안 삼기엔 입맛이 씁쓸하다. 해마다 여름은 더 뜨거워진다는데, ‘인재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는지. 불현듯 제목이 ‘폭염 지옥’으로 읽힌다. 원제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꾀는 줄 알면서도 꾀였다. 왜 아니겠는가. 이 날씨에 ‘폭염 사회’라니. 못 본 척 하는 게 더 이상하다. 요맘때 이 책을 낸 의도야 뻔하지만.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다. 부제처럼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는 이제 우리에게도 절체절명의 화두니까. 흔쾌히 유혹 당하련다. 미리 말하면, 이 책은 초판이 2002년에 나왔다. 2015년 나온 재판을 번역했지만, 새로 실린 서문 말곤 ‘옛날 일’이란 소리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서 폭염으로 521명이 사망한 사건을 다뤘으니 자그마치 23년 전. 그런데 ‘지금, 여기’를 마주한 듯한 이 기시감은 뭘까. 뉴욕대 교수인 저자는 재난이 발생했던 시카고 출신. 자기 고향에서 벌어진 사태를 끈질기고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사실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지만, 폭염을 사회학 측면에서 분석한다는 건 여간해선 엄두가 나지 않을 일. 자연재해인데다 지진이나 태풍처럼 극적이질 않다보니 더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그 때문에라도 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autopsy)”이 꼭 필요하다고 여겼다. “대부분의 세월 동안 가장 치명적인 형태의 기상이변은 폭염이었다. 폭염은 소리와 형체 없이 다가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걸고 폭염을 무시하고 있다. …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사회과학, 특히 사회학에서 기후변화는 연구와 대중의 참여가 집중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리라는 점이다.” 얼핏 자연재해는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도 숱하게 겪어봤지 않나. 대부분 천재(天災)는 인재(人災) 탓에 호미면 됐을 일을 서까래로도 막지 못한다. 당시 시카고 역시 그랬다.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이상고온이지만, 그걸 최소화는커녕 기름을 끼얹은 건 인간의 우매함이었다. 저자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점잖게 짚었지만. 물론 폭염이 참화로 이어진 데는 복잡한 요소들이 얽히고설켰다. 희생자들이 대다수 빈곤층 독거노인이었던 건 누구나 예상가능하다. 하지만 시카고의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은 둘 다 못 사는데다 바로 길 건너 동네인데도 사망률이 크게 차이 났다. 노스론데일은 경제가 낙후되며 많은 주민이 떠난 뒤 범죄자의 터전이 됐다. 이로 인해 노인들은 밖으로 나오질 않고 고립돼 버렸다. 반면 사우스론데일은 가난해도 인구가 밀집돼 여전히 거리에 은행이나 가게가 성행했다. 비상사태가 벌어져도 도움을 구할 지역 커뮤니티 덕분에 최악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정 없는 이웃들 문제라고 봐선 곤란하다. 이 지경이 된 건 위기상황에 대한 시청(혹은 정부)의 대응전략이 부재했고, 응급구조시스템의 원활한 운용이 미비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갈수록 지방자치단체도 기업처럼 ‘효율성’만 추구하는 경향과 자극적인 사건만 쫓는 언론의 생리도 한몫했다. 나아가 당시 시카고 시장은 약점을 감추는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시정이란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더라도 묵묵히 도시 저변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폭염 사회’는 읽을수록 후덥지근해지는 책이다. 아, 저자의 분석은 선명하고 깔끔하다. 곳곳에서 겹쳐지는 우리네 모습이 떠올라서 그렇단 얘기다. 남의 나라도 엇비슷하게 후졌구나하며 위안삼기엔 입맛이 씁쓸하다. 해마다 여름은 더 뜨거워진다는데, ‘인재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는지. 불현듯 제목이 ‘폭염 지옥’으로 읽힌다. 원제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출판사 편집인 수전은 짜증이 났다. 인기 추리소설 작가 앨런 콘웨이의 원고 때문이다. ‘탐정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 최종판을 받았건만, 마지막 장이 없는 게 아닌가. 뭔가 착오가 생겼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 뉴스에서 앨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속보가 쏟아진다. 어찌 됐건 수전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원고를 찾으려 동분서주. 그런데 앨런의 죽음에 께름칙한 구석이 있음을 눈치챈다. 심지어 소설이 현실과 무척 닮았다는 것도 깨닫는데…. 제목에서 짐작 가듯, 이 책은 추리소설이다. 그것도 살인 사건과 탐정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액자소설 형태를 취했는데, 퓐트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은 1950년대 영국이 무대. 수전이 원고의 누락분을 찾는 얘기는 2015년이 배경이다. 원래 소설가는 주위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은 거의 앨런의 지인들을 빼닮았다. 그래서 가상과 현실이 얼기설기 얽히며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그렇다고 ‘맥파이…’가 굉장히 복잡한 소설이란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단순한 쪽에 가깝다. 영국표 정통 추리물이라고나 할까. 액자소설의 안팎 분량이 거의 반반인데, 퓐트 탐정 얘기는 애거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을 읽는 기분도 든다. 끝내 찾아든 마지막 원고엔, 익숙하지만 기다려지는 ‘범인은 바로 당신!’ 장면도 나오고. 원래 추리나 스릴러, 호러물은 여름철 단골손님이다. 올해는 워낙 무더워서인지 특히 이런 장르의 소설이 확 늘었다. 그런데 ‘맥파이…’는 엄청 새롭거나 충격적인 스토리는 아니다. 어느 외신은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전율을 일으킨다”고 썼던데, 솔직히 그 정도까진 아니다. 하지만 간만에 클래식이 지닌 풍미를 맛보려는 이에겐 딱 맞는 메뉴 선택이리니. 그래, 아무리 끈끈해도 가끔 정찬이 당길 때가 있지 않나. ‘추리’라 쓰고 ‘추억’이라 부르고 싶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실은 이 책은 그다지 설명할 게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뭐라 보탤 말이 굳이 필요 없다. 표지부터 포근한 기운이 물씬한 ‘나무가…’는 그 기대에서 반 뼘도 벗어나질 않는다. 아마 저자 설명만 봐도 다들 촉이 오리라.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골에서 나고 자라 산림학 전공. 목수였던 아내의 할아버지에게 얻은 교훈과 자신이 평생 산림관리사로 일하며 얻은 경험을 담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울창한 숲의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온다. 그렇다고 그저 잔잔하지만 않은 게 또 매력적이다. 원래 현지에선 20년 전 나왔다는데 아홉 번 수정을 거쳤고, 요즘 시대에 맞게 크게 개정한 최신판을 이번에 국내에 출간했단다. 그 속엔 나무와 목재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도 쏠쏠하다. 꽤 전문적인 구석이 많은데도, 이렇듯 편안한 게 신기할 정도. 저자는 “세계적으로 선인들의 지혜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며 “그 지혜를 얻는 길이 바로 나무와 자연으로 가는 길에 있다”고 권한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없어도 곁에 두고 봄 직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참, 책꽂이를 서성거렸다. 몇 번의 이사. 여러 책을 떠나보냈다. 그 와중에 남아준 이들. 애정이라 부르며 집착으로 붙잡았다. 귀퉁이에서 곰삭은 먼지의 때깔. 겨우 찾아든 옛 친구는 무표정했다. 그래도, ‘곽재구의 포구기행’(열림원)은 다시 곁을 내줬다. 16년. 닳아빠진 세월은 찰나의 영겁. 2002년 우린 어디서 무얼 했던가. 몇 줄로 채워질 추억에 섞이지 않는 마음.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법처럼. 책을 펼치면 몽실몽실 빚어지는 흑백사진. 조심스레 양손에 담아 ‘곽재구의 신(新) 포구기행’을 맞아들였다. 시인은 왜 다시 포구로 돌아온 걸까. 전화를 걸어 우문(愚問)을 던지려다 꾹 눌렀다. 답은 책에서 구해야지. 작가는 글로 전했건만. 지름길만 찾는 심보 같으니. 길이 어긋나도, 혹은 가로막혀도. 목적지는 각자의 몫이다. “생의 어느 신 하나는 내게 이 포구마을의 불빛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시간들 속에서 나는 위로받고, 갈망뿐인 나의 시가 더 좋은 인간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작은 물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 하늘과 땅이 함께 아름다운 색 도화지가 됩니다. 다시 새로운 생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없이 평범하고 누추하면서도 꿈이 있는 새로운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를 따라 떠난 두 번째 여행은 옹골지다. 뭉툭한 현실에서 길어 올린 시어(詩語)가 메마른 목젖을 두들긴다. 고맙고 미안하다. 주머니 털어 시집 한 권 샀던 게 언제였던가. 남 탓, 세상 탓하며 바스러진 기억. 부끄러워 성마르다 짐짓 외면한 채 잊어버린. 매몰찼던 우리네를 포구는 나지막이 불러 세웠다. 그래도 시인은, 시를 쓰노라고. 당신과 나의 노래를. 물론 전작과 신작은 ‘다르다’. 문장은 간명한데도 깊어졌다. 선창을 때리던 파도는 잦아들었건만, 발목을 적시는 물살은 더 찐득해졌다. 외로운 절창이 여백마저 채우던 지난날. 오늘은 마주 잡은 합창이 굳이 공간을 비워낸다. 후회건 희망이건 상념이건 다짐이건. 퍼 담든지 게워 내든지 알아서 할밖에. “망상 해변으로 가는 동안 망상이란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헛된 꿈(妄想)이라면 충격일 것이다. 이정표에서 망상(望祥)을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삶은 여전히 꿈꾸는 자의 것이며 쓸쓸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기약하는 이의 것이 아니겠는가. 동해의 파도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려왔다.” 시인은 여전히, 때로는 아프다. 팽목항에서 삼킨 울음. 학동에서 짊어진 서글픔. 그래도 그는 다독인다. 서럽다 읊조린들 붙잡지 못하는 이별. 잊지 말되 걸음을 옮기자고. 시계가 만든 인연의 씨줄날줄을 고르게 펴가며. 당신이 찾아와서, 만나서, 알아봐서 참 좋았단 기척을 보낸다. 어쩌면 뒷목을 움켜쥐던 열정은 다시 오지 않겠지. 처연했던 생채기도 이미 포구 멀리 휩쓸렸을 테니. 그런들 바다가 아닐까. 시가 아닐까. 우리가 아닐까. 만선의 뿌듯함은 지워졌을지언정. 노를 젓는 삶은, 지난해도 기대가 영근다. 시인이 발걸음마다 반겼던 붉은 우체통처럼. “우체통은 종일 그 자리에 서있을 것이고 노을은 하루에 한 번 꼭꼭 그 우체통을 쓰다듬고 지나갈 것”이기에. 우린 또, 길 떠날 채비를 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소설이다. 실은 의아했다. 무대는 20세기 초 러시아. 시류에 영합하지 못한 구시대 백작 얘기가 왜 이다지 화제였단 말인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추천 도서’ ‘뉴욕타임스 58주 베스트셀러’…. 숱한 월계관들이 거품은 아닐지 흘겨보았다. 꽤 두툼하지만 스케일도 그리 크진 않다. 오로지 백작, 알렉산드로 로스토프의 일생이다. 끝내주던 귀족으로 누리고 살다가, 혁명 뒤 기거하던 호텔에서 평생 머물라는 ‘종신 연금 형(刑)’을 받는다. ‘도시의 로빈슨 크루소’까진 아니지만…. 2004년 영화 ‘터미널’의 빅터(톰 행크스)랑 비슷한 처지가 된다. 호텔이란 섬에 갇힌 백작은 그래도 의연하다. 스위트룸에선 쫓겨났지만, 일단 꿍쳐둔 돈푼이 꽤 있으니까. 게다가 고결한 품성과 박식함도 갖춘 편이라 사람도 잘 사귀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예속됐을지언정, 우정과 사랑을 만나는 인생은 여기서도 굴러간다. 다시 말하지만, ‘모스크바의 신사’는 기품 있다. 사극(史劇)이라 그런지 클래식의 향취가 찌릿하다. 20년 동안 투자전문가로 일했다는 양반이 어찌 이리 글이 좋을꼬. 2013년 ‘우아한 연인’이 ‘원 히트 원더’가 아니었음을 또 한 번 홈런으로 증명했다. 게다가 고전의 외피를 썼지만, 굉장히 쫀쫀하다. 20세기 옛날영화가 아니라, 21세기에 새로 만든 싱싱한 역사물이다. 딱히 추리나 스릴러 같은 장르적 혼용도 없건만, 느슨한 구석이 없다. 백작 등등이 야밤에 몰래 부야베스(프랑스식 스튜)를 만들어 먹는 장면처럼 오랫동안 잔상에 남을 만한 대목도 잦다. 하지만 ‘선’이 뚜렷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굳이 짚자면 ‘백인(白人)의 소설’이랄까. 뭔가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분위기도 있고. 현지에선 반응이 엄청났다는데, 좀 살 만한 이들이 좋아했겠지 싶은 근거 없는 추측을 던져본다. 너무너무 재밌긴 한데, 괜히 삐죽거리게 된다. 잘 읽고 나선 웬 심통이람. 역시 신사가 되긴 글렀나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도 사랑하는 세계적 장난감 ‘레고(LEGO)’로 만든 환상의 세계가 서울에 찾아온다. 동아일보와 ㈜자하가 주최하는 전시 ‘아이 러브 레고’의 월드투어 첫 번째 전시가 20일부터 서울 강서구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 문화홀에서 열린다. ‘아이 러브 레고’는 덴마크 레고그룹이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레고 타이틀을 허락한 전시회다.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아이 러브 레고’는 들어간 레고 조각이 총 101만6000여 개에 이른다.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고대 중세의 로마부터 현대의 도시, 먼 미래의 우주 세계까지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제작 기간만 몇 년씩 걸린 작품이 많은데, 그 압도적 위용은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특히 놓치지 말아야 할 섹션은 ‘그랜드 시티’다. 현대 도시의 이모저모를 재현한 이 작품은 2010년부터 제작해 지금까지 28만 개의 레고 조각이 들어갔으며, 여전히 계속 확장하고 있다. 높다란 초고층 빌딩부터 움직이는 열차와 행인까지 세세하게 만들었다. 전시 측은 “다양한 도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레고 색상만 1000가지나 된다”고 설명했다. 뭣보다 로마브릭은 이번 서울 전시를 기념해 특별 신작도 선보인다. 바로 한국의 ‘국보 1호’ 숭례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을 고심한 끝에 5000여 개의 조각으로 1개월 이상 작업해 숭례문을 만들었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팬이라면 3년 동안 제작해 완성한 ‘독수리 요새’도 꼭 봐야 할 작품.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에 등장하는 아린 가문의 성을 형상화한 것으로, 2016년 유럽 토스카나 만화축제에 첫선을 보여 약 30만 명이 관람하는 기록을 세웠다. 모형인데도 성 높이가 1.8m에 이르며 들어간 레고 조각은 약 33만 개다. 이 밖에도 고대 로마의 모습을 형상화한 ‘네르바 광장’과 카리브해 해적의 모습을 담은 ‘해적선’, 제작 기간만 4년이 걸렸다는 ‘중세시대 성’ 등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전시 배경을 알고 보면 관람이 더 흥미롭다. 레고는 덴마크 장난감인데, 전시 부제가 ‘From Italy To Seoul’이다. 실은 이번 전시를 선보이는 이들이 이탈리아 레고 사용자 모임인 ‘로마브릭(Romabrick)’이기 때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레고 사용자 모임 가운데 하나인 로마브릭은 주로 이탈리아 로마 출신들로 레고그룹의 인증을 받아 직접 레고 조각을 제작하기도 한다. 로마브릭 측은 “참여 멤버 중에는 실제 건축가와 엔지니어도 여럿 있어 더욱 사실감을 높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들이 선보이는 ‘아이 러브 레고’ 전시는 2016년 말 처음 이탈리아에서 소개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유럽 전역에서 몰려든 관람객이 50만 명 이상 다녀갔다. 전시 관계자는 “이런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월드투어를 하기로 결정했고, 그 첫 번째 도시로 서울에 오게 됐다”며 “현지에서는 아동, 청소년만큼 많은 성인 관람객이 몰려들어 높은 전시 수준에 찬사를 보냈다”고 귀띔했다. 12월 30일까지. 9000∼1만5000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요즘 직장인 신혜영 씨(24)는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든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그가 손에 든 건 스마트폰.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삼성 갤럭시 노트 S펜으로 그린 그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더니 반응이 나쁘지 않아 더욱 자신을 갖게 됐다. 그는 “S펜으로 그린 그림을 업로드하는 모바일 앱 ‘펜업(PENUP)’에 올리면 다양한 평가도 받고, 수준 놓은 아티스트의 테크닉도 배울 수 있어 더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미술이나 문화재 등 순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첨단기술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문화 향유의 트렌드가 번지고 있다. 바뀐 모바일 환경 덕에 그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을 어디서든 관람할 수 있는 데다 실물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큼 생생한 화질의 관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지난달 구글이 공개한 사이트 ‘코리안 헤리티지’가 대표적 사례. 온라인 예술작품 전시 플랫폼인 ‘구글 아트 앤드 컬처’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 국립무형유산원 등과 협력해 조선 왕실 유물 2500여 점과 민속 유물 2만8000여 점을 제공한다. 구글이 자체 개발한 ‘아트 카메라’로 10억 픽셀 이상의 고화질로 피사체를 정밀하게 담아냈다. 심지어 직접 육안으로 봐도 분별이 어려운 붓 터치나 질감까지도 즐길 수 있다. 자그마한 휴대전화 화면으로 성이 차지 않을 경우에는 TV로 연결해 볼 수도 있다. 스마트TV로 화면을 송출할 수 있는 ‘크롬 캐스트’를 설치하면 집 거실의 대형 화면으로 예술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프 스타일 TV ‘더프레임’은 55∼65인치 초대형 화면을 통해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집 안의 미술관’으로 불린다. 주변 환경에 따라 작품의 명암과 색감을 자동 조정하는 ’조도 센서‘까지 탑재돼 현장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기분을 전해준다.이미 더프레임은 미술계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열린 현대미술축제 ‘유니온 아트페어 2017’에서는 전시작 일부를 이 새로운 TV로 선보이는 ‘컬래버레이션’으로 관심을 끌었다. 구본창 박형근 이완 등 국내 유명 아티스트 19명의 작품을 더프레임을 통해 선보였는데 어떤 이질감도 없었다. 이완 작가는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방식에 더프레임은 좋은 표현 매체가 되어줬다. 기술의 발전은 작가에게 표현의 자유와 역량을 준다”고 기대했다. 예술과 더프레임의 조우는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 ‘아쿠아리오 치비코’에서 열려 현지에서 관심이 드높았다. 5월에는 시민들이 S펜으로 직접 그린 ‘내 아이의 방에 걸고 싶은 그림’을 공모했는데 1846점의 응모작이 쏟아졌다. 입상작은 더프레임의 ‘아트 스토어’에 올려져 TV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더프레임은 TV가 꺼져 있을 때는 내장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트 스토어’에 올려져 있는 그림을 전시해 주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같은 걸작 명화는 물론이고 가족사진도 띄울 수 있어 집 안 거실에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던져준다. 지난해 전시회에서 대표작 ‘백자’를 선보였던 구본창 작가는 “이런 시도는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좋은 도전이다. 일상의 순간이 아름다워지면 그만큼 예술에 대한 감수성도 높아진다. 더프레임이 생활 속에서 예술의 영감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정양환 기자}

미국(美國)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미친’ 나라였나 보다. 소설가이자 언론가,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저자가 보기엔 확실히 그렇다. 초기 디즈니랜드 한 파트의 이름이었던 판타지랜드. 아마도 그건 이상향이나 행복의 나라를 일컫는 뜻이었을 게다. 여기선 ‘환상에 빠진’ ‘환상에 사로잡힌’ 정도로 정의된다. 그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읽어보면 거의 전자로 기울지만). 자국 역사를 이리도 매몰차게 ‘엿 먹이는’ 저자의 속내는 뭘까. 대략 500년쯤 된 시간 동안 미국은 참 다사다난했던 나라다. 16세기 금과 신세계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오면서부터 숱한 역경과 모험을 겪었다. 안팎으로 전쟁과 갈등도 꽤나 치렀지만,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군사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월등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로 자리 잡았다. 근데 이게 결코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지적 자유라는 위대한 계몽주의적 이상이 미국으로 건너와 실험되는 동안, 모든 개인은 뭐가 됐든 각자 바라는 대로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미국의 극단적 개인주의는 처음부터 영웅적인 꿈, 때로는 영웅적인 환상과 연결됐다. … 미국인들은 온갖 종류의 신비한 생각 및 무차별적인 상대주의와 더불어 우리를 위로하거나 흥분시키거나 공포로 몰아넣는 크고 작은 공상들과 기발한 설명에 대한 믿음에 사로잡혀왔다.” 특히 이 땅에서 천변만화한 종교(특히 개신교)는 이런 비뚤어진 환상을 만들어낸 가장 큰 주범이다. 제도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인 건 좋았는데,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봤다. 자유에 방점을 찍은 나머지, 맘대로 해석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다보니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게 진실이고 정답인’ 이상한 상대주의가 뿌리내려 버렸다. 그런 사상의 자양분은 결국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제1의 가치로 작용한다. “어떤 상상적 이론이 흥미진진하고 아무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없다면, 미국인인 내게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도 그런 태도는 변치 않는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진화생물학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나 외계인의 존재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믿는 세력이 미국에선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은 이를 반증한다. ‘판타지랜드’는 굉장히 재밌다. 솔직히 시간 제약 탓에 서평을 쓸 땐 빨리빨리 읽는 게 미덕인데, 한 글자도 놓치기 아쉬울 정도로 정독하게 만든다. 빌 브라이슨이나 올리버 색스가 떠오를 정도로 ‘글발’도 끝내준다. 다만 목적의식 탓인지 백인의 역사에만 치중해, 유색인종을 곁다리로 만들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읽고 나니 뇌 한쪽에서 이런 ‘의심’도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혹시 트럼프 대통령 ‘까려고’ 너무 나간 거 아닌가.” 미국 지성인들에게 작금의 현실은 참혹할 정도로 개탄스러웠던 걸까. 이 방대한 자료를 엮어낸 재주는 배우고 싶을 정도로 감탄스럽지만, 왠지 입맛에 맞게 재단한 의도도 보인다. 하나 더. 미국 얘긴데 자꾸 한반도가 겹쳐 보이는 건 왜인지. 괜히 찔려서 머리만 긁적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美國)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미친’ 나라였나 보다. 소설가이자 언론가,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저자가 보기엔 확실히 그렇다. 초기 디즈니랜드 한 파트의 이름이었던 판타지랜드. 아마도 그건 이상향이나 행복의 나라를 일컫는 뜻이었을 게다. 여기선 ‘환상에 빠진’ ‘환상에 사로잡힌’ 정도로 정의된다. 그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읽어보면 거의 전자로 기울지만). 자국 역사를 이리도 매몰차게 ‘엿 먹이는’ 저자의 속내는 뭘까. 대략 500년쯤 된 시간 동안 미국은 참 다사다난했던 나라다. 16세기 금과 신세계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오면서부터 숱한 역경과 모험을 겪었다. 안팎으로 전쟁과 갈등도 꽤나 치렀지만,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군사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월등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로 자리 잡았다. 근데 이게 결코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지적 자유라는 위대한 계몽주의적 이상이 미국으로 건너와 실험되는 동안, 모든 개인은 뭐가 됐든 각자 바라는 대로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미국의 극단적 개인주의는 처음부터 영웅적인 꿈, 때로는 영웅적인 환상과 연결됐다. … 미국인들은 온갖 종류의 신비한 생각 및 무차별적인 상대주의와 더불어 우리를 위로하거나 흥분시키거나 공포로 몰아넣는 크고 작은 공상들과 기발한 설명에 대한 믿음에 사로잡혀왔다.” 특히 이 땅에서 천변만화한 종교(특히 개신교)는 이런 비뚤어진 환상을 만들어낸 가장 큰 주범이다. 제도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인 건 좋았는데,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봤다. 자유에 방점을 찍은 나머지, 맘대로 해석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다보니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게 진실이고 정답인’ 이상한 상대주의가 뿌리내려 버렸다. 그런 사상의 자양분은 결국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제1의 가치로 작용한다. “어떤 상상적 이론이 흥미진진하고 아무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없다면, 미국인인 내게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도 그런 태도는 변치 않는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진화생물학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나 외계인의 존재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믿는 세력이 미국에선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이를 반증한다. ‘판타지랜드’는 굉장히 재밌다. 솔직히 시간 제약 탓에 서평을 쓸 땐 빨리빨리 읽는 게 미덕인데, 한 글자도 놓치기 아쉬울 정도로 정독하게 만든다. 빌 브라이슨이나 올리버 색스가 떠오를 정도로 ‘글발’도 끝내준다. 다만 목적의식 탓인지 백인의 역사에만 치중해, 유색인종을 곁다리로 만들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읽고나니 뇌 한쪽에서 이런 ‘의심’도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혹시 트럼프 대통령 ‘까려고’ 너무 나간 거 아닌가.” 미국 지성인들에게 작금의 현실은 참혹할 정도로 개탄스러웠던 걸까. 이 방대한 자료를 엮어낸 재주는 배우고 싶을 정도로 감탄스럽지만, 왠지 입맛에 맞게 재단한 의도도 보인다. 하나 더. 미국 얘긴데 자꾸 한반도가 겹쳐 보이는 건 왜인지. 괜히 찔려서 머리만 긁적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