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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1일 청와대로부터 넘겨받은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실 문건 16건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 사건 담당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재판부는 변호인 측 의견을 들어본 뒤 증거 채택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특검에 따르면 이 문건들은 2014년 9월경 민정수석실에서 근무 중이던 파견 검사 이모 행정관과 다른 행정관들이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50)의 지시로 작성했다. 부부장 검사였던 이 행정관은 2014년 7월 검찰에서 의원면직 절차를 밟은 뒤 청와대에 들어갔고 2016년 재임용 형식으로 검찰로 돌아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최근 이 검사에게서 문건을 다른 행정관들과 함께 작성해 우 비서관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의 공판에서 양재식 특검보(52)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건들을 재판부에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양 특검보는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정부 차원의 지원 필요성, 지원 방안과 관련한 문건의 사본들과 검사가 작성한 청와대 담당 행정관의 진술 사본”이라며 “당시 청와대에서 삼성그룹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입증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문건이) 청와대에서 발견됐다는 정도는 사실 확인이 돼야 할 것 같다”며 삼성 변호인 측에 관련 의견 제출을 요구했다. 변호인 측은 “문건 내용을 전혀 검토하지 못한 상태라 즉답을 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문건을 더 이상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실 정무수석실 등에서 확보한 문건은 대부분 발표한 상황”이라며 “국가안보실 관련 문건이 남아 있는데, 외교·안보와 관련된 내용인 만큼 공개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호재 hoho@donga.com·문병기 기자}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판사 권양희)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47)이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49)을 상대로 낸 이혼 및 친권자 지정 1심 소송에서 두 사람은 이혼하고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에게 86억1031만 원을 지급해 재산을 분할하라고 20일 판결했다. 또 자녀의 친권·양육자로 이 사장을 지정하고 임 전 고문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일요일 오후 4시까지 자녀를 볼 수 있도록 면접교섭 권리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자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원고(이 사장)는 면접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의 변호인은 “재판부가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판결해 주신 데 감사드린다”며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임 전 고문 측은 “(이 사장이 보유한) 주식이 재산 분할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로서 공동친권을 행사하고 싶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이혼 소송은 이 사장이 2014년 10월 이혼 조정과 친권자 지정 신청을 법원에 내며 시작됐다. 임 전 고문은 2016년 6월 1조2000억 원대의 위자료와 재산 분할을 청구했다. 또 올 3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임 전 고문 소유의 2층짜리 단독 주택이 법원 경매에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6월 한 언론은 임 전 고문과의 인터뷰 내용이라며 임 전 고문이 “내가 여러 차례 술을 과다하게 마시고 아내를 때렸기 때문에 아내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보도를 한 언론사 기자와 임 전 고문이 만나는 자리에 동석했던 혜문 스님은 “여러 사람이 만나는 자리였고 인터뷰는 아니었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에 대한 구인장을 발부했다고 17일 밝혔다. 19일 열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도록 한 조치다. 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18일 이 부회장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19일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유서에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재판을 일주일에 4차례씩 받고 있고 발가락 통증 등 건강 문제가 있기 때문에 증인으로 재판에 나가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5일에도 이 부회장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같은 이유로 이 부회장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법원이 구인장을 발부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법정 증언이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비선 진료’ 방조 혐의로 기소된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38·구속)의 5월 31일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증언을 거부했고 재판부는 구인장을 발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당시 서울구치소의 박 전 대통령을 찾아가 구인을 시도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끝내 불응해 증언은 무산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국정 농단 사건 수사와 재판을 거치며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딸 정유라 씨(21), 조카 장시호 씨(38) 등 최씨 집안 여성들이 연일 법정 안팎에서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최 씨는 자신과 딸 정 씨를 위해 국정을 농단했고, 장 씨는 이 과정의 중요한 조력자였다. 하지만 이들은 법의 심판대 앞에서 이제는 서로를 배신하며 물어뜯는 관계가 됐다. ○ 최순실 패밀리의 ‘각자도생’ 정 씨는 지난달 20일 2차 구속 영장이 기각되기 직전 검찰 조사를 받으며 “엄마 비자금은 장시호 언니가 숨겨 놓고 가로챘다”며 사촌 언니 장 씨를 ‘저격’했다. 최 씨 비자금을 찾고 있던 검찰은 장 씨에게 전화를 걸어 정 씨의 진술 내용을 들려주며 답변을 요구했다. 장 씨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발끈하며 “자꾸 이쪽을 걸고넘어지려 하는데, 제발 찾아서 (비자금이) 있으면 다 가져가 달라”고 답했다고 한다. 정 씨는 검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통화할 때, 옆에 장시호 언니와 최순득 이모(장 씨의 어머니)도 함께 있었다”는 진술도 했다. 장 씨와 이모도 국정 농단 사건에서 책임이 있는데, 자신과 어머니 최 씨만 집중 수사를 받게 돼 억울하다는 취지였다. 올해 2월 덴마크 올보르 구치소에서 국내 송환을 거부하며 소송을 벌이던 중에도 정 씨는 장 씨를 꾸준히 비난했다고 한다. 정 씨는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사촌 언니(장 씨)의 행동에 모든 대통령님 지지자들께 고개를 들 낯이 없다.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돼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장 씨는 사촌 동생 정 씨의 공격이 껄끄러운 눈치다. 정 씨가 계속 장 씨를 물고 늘어지자, 검찰은 한때 장 씨에게 정 씨와 대질신문을 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 씨는 “필요하면 돕겠지만 정 씨와 대질은 힘들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정 씨의 튀는 언행이 당황스러운 건 장 씨뿐만이 아니다. 정 씨가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 재판에 ‘깜짝 출석’한 일 때문에 어머니 최 씨는 “딸과 인연을 끊겠다”고 격노했다. 최 씨는 변호인을 통해 정 씨에게 “굳이 증언을 하려거든, 내가 한 다음에 하라”며 출석을 말렸다고 한다. 최 씨 모녀의 변호인단도 “살모사(어미를 죽이는 뱀) 같다”며 경악했다. 변호인단은 정 씨의 아버지 정윤회 씨(62)를 통해 정 씨를 설득하고 있다. ○ “감방 문턱서 가족애는 사치” 최 씨 일가의 치열한 다툼은 장 씨가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특급 도우미’를 자처하면서 시작됐다. 장 씨는 이모 최 씨가 자신에게 맡긴 태블릿PC를 특검에 증거로 제출했다. 태블릿PC에는 최 씨가 독일 코레스포츠 법인 설립을 준비하며 주고받은 이메일 등이 들어 있었다. 또 최 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손바닥으로 그만 하늘을 가리라”며 이모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최 씨가 “집안을 팔아먹었다”며 이를 갈 정도였다. 장 씨는 이처럼 적극 협조한 결과 추가 구속을 면했고 구치소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법조계에서는 정 씨가 어머니 최 씨의 말을 듣지 않고, 사촌 언니 장 씨를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나선 것이 ‘장시호 학습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 씨가 수사·재판에 협조하고 풀려난 과정을 지켜본 정 씨가 두 살배기 아들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배신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덴마크에서 국내로 처음 압송됐을 때만 해도 정 씨는 ‘철부지 외동딸’ 이미지를 고수했다. 자신은 어머니 최 씨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국정 농단 사건의 전말은 알지도 못하고 책임도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5차례 검찰 조사를 받고 2차례 자신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후 정 씨는 완전히 달라졌다. 최 씨 주변에서는 검찰이 장 씨의 사례를 들며 정 씨를 회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 농단 사건 재판에서 최 씨 모녀와 장 씨의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도 이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이유 중 하나다. 최 씨와 장 씨는 누가 주도해 삼성에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받았는지를 놓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밀고 있다. 정 씨는 어린 아들을 돌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어머니 최 씨 등 주변 사람들에게 법적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다.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 기자}

발가락 통증을 이유로 3차례 연속 재판에 불출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14일 샌들을 신고 재판에 다시 출석했다. 7일 재판 참석 이후 일주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14일 낮 12시 51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한 서울구치소 호송버스에서 내렸다. 여성 교도관 한 명의 부축을 받으며 왼쪽 다리를 조금 절뚝거렸다. 회색 정장에 발가락이 드러나는 검은 샌들을 신은 상태였다. 박 전 대통령은 전날 재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왼발 4번째 발가락에 통증과 부기가 있다며 14일 재판 불출석 의사를 밝혔으나 재판부가 강제구인 가능성을 거론하자 법정에 나오기로 생각을 바꿨다. 박 전 대통령이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공판에 참석한 건 오후 5시 4분. 이날 재개된 전날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 교도관 2명이 박 전 대통령을 부축한 상태였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자 함께 재판을 받는 최순실 씨(61·구속 기소)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 전 대통령을 쳐다봤다. 인사는 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양손으로 피고인석 책상을 짚고 자리에 앉았다. 재판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몸 상태는 괜찮으신가”라고 물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재판장은 “몸조리 잘하시길 바란다. 구치소를 통해 피고인의 상담 상태를 면밀히 체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래를 쳐다보며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재판장은 “피고인(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걱정되는 점이 있다”며 오후 7시 20분경 재판을 끝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해상 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 도입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최윤희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64·사진)에 대해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는 아들을 통해 무기중개상 함모 씨에게 돈을 받은 혐의(뇌물 수수) 등으로 기소된 최 전 의장에 대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력을 갖춘 증거가 없다”며 13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 전 의장이 자신의 아들이 함 씨에게 2000만 원을 받은 사실을 알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최 전 의장이 아들이 돈을 받은 날 함 씨와 통화했고, 함 씨가 최 전 의장 공관을 방문했던 사실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최 전 의장이 해군참모총장으로 재직할 때 해상 작전헬기 구매실험 평가 결과 서류를 조작한 혐의도 1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항소심 판결을 수긍할 수 없다”며 즉각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1심 재판부가 오랜 재판 끝에 유죄로 판단한 사안에 대해 별다른 사정 변경 없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와일드캣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을 계기로 잠수함 대응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이후 선정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져 최 전 의장을 비롯해 당시 사업에 관여한 이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최 전 의장이 아들을 통해 함 씨에게서 2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과 벌금 4000만 원, 추징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왼발을 다쳤다는 이유로 이틀 연속 재판에 불출석했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10일 늦게 구치소 측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 진료 결과 (발가락) 인대 쪽 손상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불출석 이유를 설명했다. 유 변호사는 “12일 접견을 가서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10일에도 같은 이유로 법정에 불출석했다. 검찰은 “구치소에서 확인한 바로는 피고인이 왼발 네 번째 발가락이 평소 안 좋았는데 문지방에 몇 번 부딪혀 통증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딸 정유라 씨(21)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에 증인 불출석 신고서를 제출했다. 정 씨는 12일 이 부회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다. 정 씨의 변호인은 “이 부회장 재판이 정 씨가 수사를 받고 있는 형사사건과 관련이 있고, 정 씨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아 불출석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 기자}

법원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 단체가 신청한 주한 미국대사관 주변 행진을 허용했다. 미대사관을 에워싸는 형태의 이른바 ‘포위 집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강석규)는 23일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전국행동)이 낸 ‘금지 통고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미대사관 뒷길 행진을 금지한 경찰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 것이다. 단 ‘24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사이에 1회에 한해 20분 이내에 신속히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앞서 전국행동은 1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미대사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변을 지나 광화문시민열린마당으로 향하는 집회 및 행진 개최를 신고했다. 예상 참가자는 약 5000명(신고 기준)이다. 그러나 경찰은 미대사관 앞길(제2경로) 상위 차로의 행진만 허용하고 뒷길(제1경로)은 금지하는 제한 통고 조치를 내렸다. 이에 전국행동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이번 집회가 한미관계에서 민감한 현안인 사드 배치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게 목적이지만 미대사관은 사드 배치에 관한 의사결정 기관이 아니다”며 “행진은 사드 배치 반대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일 뿐 미대사관에 어떤 위해를 가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제1경로의 행진을 허용해도 미대사관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신청인(서울지방경찰청장)이 제1경로 행진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건 집회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다만 행진 경로에 있는 종로소방서의 긴급 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통과 횟수와 시간을 제한했다. 경찰은 비상이 걸렸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0분 만에 수천 명이 좁은 도로를 통과하려면 병목 현상 때문에 사실상 대사관을 에워싸는 집회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며 “그 자체가 마치 미대사관을 위협하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최 측이 평화적 집회를 약속했지만 돌발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59개 중대 4700여 명을 투입하고 미대사관 주변에는 폴리스라인을 설치할 계획이다. 차벽은 설치하지 않는다. 이날 사드 반대 집회에 앞서 오후 2시 서울역광장에서는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철도적폐 청산 공공철도 실현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가 열린다. 참가자 5000명(주최 측 신고 기준)은 집회 후 서울광장으로 행진한다. 차량 통행이 많은 휴일 오후 대규모 집회가 잇달아 열리면서 극심한 교통 혼잡도 우려된다.김예윤 yeah@donga.com·이호재 기자}

어머니는 20년간 도시락을 쌌다. 10년은 아들의 학창시절을 위해, 다음 10년은 아들의 사법시험을 위해서다. 21일 어머니는 아들의 ‘마지막 도시락’을 쌌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관. ‘제59회 사법시험 제2차 시험’이 열렸다. 전날 어머니와 아들은 강원 강릉시의 집을 떠났다. 연세대 근처 모텔에서 하루를 지내고 아들을 먼저 시험장에 보낸 뒤 어머니는 시험장 앞을 찾았다. 한 손에는 어김없이 도시락이 든 가방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사법시험일마다 늘 하던 일이다. 점심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칠순의 어머니는 마흔두 살 막내아들이 혼자 밥을 먹게 놔둘 수 없었다. 이어 차가운 땅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아들을 기다렸다. 어머니는 자주 무릎을 굽혔다 폈다. 식당일을 40년이나 하면서 무릎이 상한 탓이다. 애가 타는 듯 계속 구형 휴대전화를 열고 닫으며 시간을 확인하던 어머니는 시험장을 바라보며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은 똑똑했다.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늘 ‘우등생’이었다. 재수 끝에 서울의 한 사립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사시 패스’를 목표로 삼은 아들은 군대를 다녀와 오로지 책만 들여다봤다. 20대 후반에 사법시험 1차 시험에 붙었다. 그러나 더 이상 서울에서 공부하지 못했다. 형편이 어려워 서울에서 지낼 생활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고향인 강릉으로 내려갔다. 공부만 할 순 없어 어머니 식당일과 밭일을 도왔다. 용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도 했다. 합격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1차 시험에 3차례나 붙었지만 최종 합격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름 탓인가 싶어 개명(改名)까지 했다. 가정형편 탓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 뒷바라지 능력이 안 돼 로스쿨을 못 보내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들의 출세를 위한 사다리가 영영 사라진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자주 밤잠을 설쳤다. 오전 시험이 끝났다. 아들이 나오자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김밥을 입에 넣는 아들에게 물을 건네며 “이렇게 밥을 먹여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아들이 “이제 괜찮다”며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어머니는 천천히 숙소로 발걸음을 뗐다. 이날 시험장 주변에 모인 다른 응시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초조해 보였다. 정모 씨(64)는 “서른 살 딸을 뒷바라지하려고 아내와 함께 강원 원주시에서 올라왔다”며 “딸이 집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해서 근처 숙소에서 밥까지 해 먹였다”고 말했다. 장수생이나 초심자나 마지막 시험이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다. 한 응시자는 “나야 이렇게 시험이라도 봤지만 후배들은 아예 기회조차 없게 된 것이 안타깝다”며 “오래 공부한 탓인지 솔직히 시험 후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2차 시험은 나흘에 걸쳐 치러진다. 10월 12일 응시자 186명 중에서 약 50명의 합격자가 발표된다. 이들은 3차 시험인 마지막 면접만 무사히 통과하면 마지막 ‘사시 패스’의 주인공이 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모 씨(30)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기숙형 학원’에서 지내고 있다. 늦깎이 수험생은 아니다. 이 씨는 취업준비생이다. 그가 머무는 학원은 토익시험만 준비하는 곳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주 6일 강의실에서 토익만 공부하는 학원이다. 숙소가 없는 기숙형이라 잠은 근처 고시원에서 해결한다. 아침식사는 언제나 1500원짜리 김밥이다. 입시생도 아니고 서른 살 안팎의 나이에 일거수일투족을 관리받는 생활은 견디기 쉽지 않다. 하지만 ‘영포자(영어 포기자)’를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다. 이 씨는 “하루 종일 학원에 갇혀 있으면 움직이지 못해 속이 더부룩하기 일쑤”라며 “하지만 목표 점수를 달성해 ‘토익 감옥’을 탈출하고 싶어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토익성적은 기본 스펙으로 꼽힌다. 올해 7급 공무원 영어과목을 토익 성적 등으로 대체하면서 다시 토익 책을 찾는 청년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생들은 여름방학 때 성적을 올리기 위해 스케줄을 철저히 관리하는 기숙형 토익학원을 찾기도 한다. 19일 경기 지역 A학원의 한 강의실. 토익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필기 놓치지 마세요. 영어 약한 사람은 필기가 필수입니다.” 강사가 입을 뗄 때마다 학생들은 빠르게 받아 적었다. 대입 기숙학원처럼 어학원 이름이 쓰여 있는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 입은 상태였다. A학원은 국내 최초의 기숙형 토익학원으로 알려져 있다. 기숙형 토익학원 수강료는 7주 과정에 110만 원 남짓. 학생들은 이곳에서 매일 15시간씩 스파르타식으로 토익을 공부한다. 7주 동안 연애는 물론이고 통성명도 금지된다. 서로의 이름을 몰라 학용품을 빌릴 땐 “1번님 수정테이프 좀 빌려 주세요”라고 출석번호를 부른다. 학원 측에 미리 알리지 않고 지각하거나 결석하면 부모에게 통보할 수도 있다. 또 학원에 나오지 않는 휴일이라도 술을 먹지 못하게 한다. 휴대전화 사용도 금지된다. 강의 전에 미리 휴대전화를 제출해야 한다. 갖고 있다가 적발되면 벌금 2만 원을 내야 한다. 대입 기숙학원 못지않게 까다롭지만 수강 신청이 줄을 잇는다. 일부 토익 교육업체의 과장광고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장광고를 한 온라인 업체 10곳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여전히 비슷한 내용의 광고가 이뤄지고 있다. B업체는 여름방학을 맞아 ‘토익 환급반’을 모집 중이다. 출석만 잘하면 ‘수강료를 100% 현금으로 환급한다’고 광고한다. C업체 역시 ‘수강료 0원, 수강료 100% 현금 환급’이라며 여름방학 단기 속성반을 모집하고 있다. 그러나 두 업체에서 수강료를 100% 환급받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까다로운 출석·수강 조건을 간신히 충족해도 세금을 뺀 수강료만 돌려준다. 업체들은 ‘제세공과금 본인 부담’이라는 문구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표시하고 있다. ‘꼼수’이지만 법적으로 제재가 불가능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가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채용 때 영어 점수보다 실무 능력을 중요하게 판단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많은 취업준비생은 ‘토익 점수라도 높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김정명 취업컨설턴트는 “기본적인 토익 점수를 넘어선 고득점은 큰 의미가 없다. 과도한 경쟁 탓에 사회 전체적으로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김하경 whatsup@donga.com·이호재 기자}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생 A 씨(28)는 석사논문 심사를 앞두고 한 도시락업체에 연락했다. 그가 주문한 상품 이름은 ‘논문 심사 다과상자’. 논문 심사 때 교수들이 먹고 마실 간식을 도시락처럼 만든 것이다. 수제 샌드위치와 제철 과일 등으로 구성된 다과상자의 가격은 3만 원. 교수 3명의 논문 심사를 받는 A 씨는 배송비까지 12만 원을 썼다. A 씨는 “학생 처지에 만만치 않지만 교수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됐지만 대학가에선 논문 심사 접대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특급호텔 식사 등 값비싼 접대는 거의 사라진 반면 다과세트 판매는 더 활기를 띠고 있다. 학점을 주고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는 액수에 상관없이 대상 학생으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안 된다. 서울 송파구 B업체가 판매 중인 논문 심사용 다과상자는 1만5000원에서 3만5000원 정도다. 샌드위치와 제철 과일, 마카롱, 고급 음료 등으로 구성됐다. 경기 광명시 C업체도 영양찰떡과 아몬드, 머핀 등으로 구성된 다과상자를 판매한다. 논문 심사 철이면 주문이 밀려 2, 3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3만 원짜리 다과상자가 가장 인기 상품이다. 23일까지 예약이 꽉 차 배송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다과상자에 교수 이름을 써서 배송하는 게 원칙처럼 통용됐다. 하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후에는 교수 이름이 사라졌다. 한 푼이 아쉬운 대학원생들은 전문업체에 맡기는 대신 스스로 발품을 팔아 준비한다. 교수 취향에 맞춰 직접 ‘수제 다과상자’를 만들기도 한다. 학교 차원에서 다과비를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일부일 뿐 대부분 학생이 돈을 낸다. 만약 혼자 심사를 받을 경우 10만 원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원생 D 씨(27)는 “학과에 다과비 지원을 요청했으나 ‘학생들이 해결하라’는 답변을 들어 좌절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다과 준비에 목매는 건 논문 통과 여부가 교수에게 ‘전권 위임’되기 때문이다. 논문 통과가 미뤄지면 졸업과 취업 역시 줄줄이 연기된다. 교수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과거 대학원생들은 논문 심사 때 식사와 다과 대접, 선물 비용으로 수십만 원을 써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 시행 후 교육부는 전국 240개 대학에 ‘교수들이 논문 접대를 받지 않도록 하라’고 통보했다. 한 대학원생은 “지금도 논문 지도를 받기 위해 교수 연구실을 찾아갈 때면 빈손으로 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학생이 교사에게 캔커피나 카네이션을 주는 행위도 청탁금지법 위반이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은 직무 관련성이 높고 상시적 평가가 가능한 관계이므로 논문 심사 때 다과를 접대하는 건 청탁금지법 위반 사항에 해당한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의 피의자 김모 씨(25·기계공학과 대학원생)가 폭발물 사용 혐의로 15일 구속됐다. 김 씨는 스승인 김모 교수(47·기계공학과)로부터 논문 지도 등을 받는 과정에서 반감을 갖게 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부지법 조미옥 영장전담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할 염려가 있다”며 이날 오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도착한 김 씨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5월 13일부터 22일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렀다. 전공 관련 단기연수 프로그램으로 같은 연구실 학생 2명과 함께였다. 김 씨는 출국하기 직전에 기사 검색을 통해 러시아 지하철 폭탄테러를 알았다. 그러나 경찰은 김 씨의 범행과 러시아 폭탄테러의 직접 연관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김 씨는 5월 말 논문 작성을 지도하는 김 교수로부터 크게 꾸중을 들은 뒤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는 평소에도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 씨의 일기장에는 ‘힘들다’는 표현이 곳곳에 적혀 있었다. 김 씨는 경찰에 “(교수에게) 겁을 주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살해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가혹 행위나 폭행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 교수는 논문 작성 과정에 이견이 있어 교육적 의도로 대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경찰에 전했다. 텀블러 폭탄 사건을 계기로 대학 내 비뚤어진 사제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날 서강대에서는 대학원생을 위한 권리장전 선포식이 열렸다. 박종구 서강대 총장(64)은 “텀블러 폭탄 같은 안타까운 불상사를 막기 위한 예방적 조치”라고 밝혔다. 현재 연세대 등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소속 14개 대학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함께 대학원에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률 입안을 추진 중이다.김예윤 yeah@donga.com·이호재·황성호 기자}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의 피의자 김모 씨(25·연세대 기계공학과 대학원생)는 4월 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지하철 폭탄 테러를 모방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범행을 결심하기 직전 러시아를 직접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14일 폭발물 사용 혐의로 김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 씨는 스승이자 피해자인 김모 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47)와 최근 논문 작업을 하며 빚어진 갈등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무너진’ 사제 관계에 대한 자조 어린 목소리가 대학가 안팎에서 나온다.○ 우선 폭발물 사용 혐의 적용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김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일단 폭발물 사용 혐의만 적용했다. 당초에는 살인미수 혐의 적용도 함께 검토했다. 그러나 폭발물을 이용해 살인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걸 입증하려면 정확한 폭발력 검증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텀블러 폭탄의 위험도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조사 중이다. 추가로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김 씨는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부상만 입힐 목적이었다”며 부인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달 20일을 전후해 범행을 결심했다. 그는 같은 달 13∼22일 러시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4월 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벌어진 폭탄테러 기사를 나중에 접하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폭탄테러로 당시 10여 명이 숨졌다. 이슬람 테러 단체인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조직이 배후를 자처했다. 이 조직이 사용한 사제 폭탄은 소화기에 쇳조각을 가득 담은 형태의 ‘소화기 폭탄’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자신의 하숙집에서 김 씨가 폭탄을 만드는 데는 20여 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재료는 하숙집 인근 문방구 등에서 구했다. 텀블러 폭탄은 범행 3일 전인 10일 완성됐다. 김 씨는 폭탄을 만든 후 실행에 옮기기까지 사흘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근처 PC방에서 인터넷으로 사제 폭탄 제조법을 검색해 보기는 했지만 따라하지는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으로 본 사제 폭탄 만드는 방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재료도 구하기 힘들어 본인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폭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논문 작성 과정에서 갈등 김 씨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는 등 범행 과정에서 치밀한 모습도 보였다. 그는 범행 당일인 13일 오전 3시경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1공학관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로 가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시간에는 연구실에 동료가 있었다. 김 씨는 약 4시간 반 뒤 폭탄을 김 교수의 방문 앞에 두고 나서 연구실로 돌아와 연구를 계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미국 대학(스탠퍼드대) 로고가 찍힌 텀블러를 범행에 사용한 것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치밀한 범행의 배경에는 누적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김 씨로부터 “최근 논문 작성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석·박사 통합과정 7학기째인 김 씨는 김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연구한 수년 동안 불만이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협화음 때문에 불만이 증폭돼 범행까지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김 씨는 주위에 “병역특례업체 전문연구요원이 되려면 영어 성적을 올려야 하는데 교수님이 시킨 일이 많아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주변 인물들에 따르면 김 씨는 인간관계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학부 시절 동아리 회장을 맡는 등 활발한 성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끔 사소한 일에도 심하게 화를 냈다는 얘기도 있다. 친구 A 씨는 “김 씨가 ‘나는 학부 때는 활달했는데 김 교수를 만나고 내성적이고 소심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 ‘어쩌다…’ 술렁이는 대학가 피의자가 지도교수를 노린 대학원생 제자로 밝혀지자 대학가는 술렁이고 있다. 서울의 사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교수라는 자리만으로도 존중을 받았다”면서 “지금은 스승으로 존경받으려면 제자에게 취업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쉬는 시간도 별로 없이 지도교수의 지시 아래 연구에만 매달리는 이공계 대학원생의 현실 때문에 벌어진 범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공계 박사인 연구원 B 씨는 “연구 성과를 못 낸다 싶으며 더욱 심하게 관리, 더 나아가 감시를 한다”며 “연구 성과와 투자한 시간을 일일이 검사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모욕감을 주는 일도 흔하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사이에서 유독 김 씨에 대한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과학 전공자들이 즐겨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BRIC·브릭)에는 “대학원 수료하고 뛰쳐나온 지 2년이 지났건만 매일 밤 교수 목을 조르는 꿈을 꾼다” “유서에 교수 원망 글 잔뜩 써 놓고 죽을까도 고민했었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저랬을까 싶다” 등 피의자를 옹호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황성호 hsh0330@donga.com·이호재·김단비 기자}
‘캔 폭탄 2분 만에 빠르게 만드는 법.’ 지난해 말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한 해외 누리꾼이 올린 동영상이다. 영상 속 제조자는 음료수 캔과 본드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캔 폭탄을 만든다. 탁구공을 작게 자른 뒤 폭탄 안에 넣어 ‘살상력’을 높이는 방법까지 소개한다. 이슬람국가(IS)의 테러에 쓰이는 사제 폭탄 제조 방식과 비슷하다. 영상을 찾아본 누리꾼들은 “재밌다” “멋지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 영상의 조회 수는 지금까지 50만 건을 훌쩍 넘었다. 이처럼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제 폭탄 제조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3일 연세대에서 발견된 ‘텀블러 폭탄’도 캔 폭탄과 제조법이 거의 같다. 캔 폭탄, 텀블러 폭탄보다 어려운 시한폭탄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영상도 있다. 해당 동영상에서 제조자는 건전지와 소형모터, 성냥개비 등으로 “시한폭탄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유튜브나 구글에서 ‘사제폭탄 제조법’ ‘make bomb’이라고 검색만 해도 쉽게 사제 폭탄 제조법을 찾을 수 있다. 공개된 영상이라 별도 제재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다. 2014년 재미교포 신은미 씨(56)의 토크콘서트에서 사제 폭발물을 터뜨린 오모 씨(당시 19세)도 인터넷에서 제조법을 확인했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제 폭탄 제조법을 인터넷에 올리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상이 해외 사이트에 게시된 탓에 한국 경찰이 단속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법경찰학부 교수)은 “파키스탄의 한 업체가 한국에 있는 나에게 사제 폭탄을 100달러에 판매하겠다는 e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며 “제조법뿐 아니라 밀수를 통해 사제 폭탄을 구하는 방법까지 퍼져 있는 만큼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3일 오전 연세대에서 사제 폭탄이 폭발해 교수 1명이 다쳤다. 피의자는 교수에게 불만을 품은 연세대 대학원생이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이날 오후 연세대 대학원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 씨(25)를 폭발물 사용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김 씨는 자신이 만든 사제 폭탄으로 같은 과 지도교수 김모 씨(47)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의 한 대학원 친구는 “병역특례업체 전문연구요원을 희망하던 김 씨가 원하는 영어 성적을 받지 못해 걱정이 많았다”며 “김 교수 밑에서 일이 많아 영어 공부를 할 시간이 없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제 폭탄은 이날 오전 8시 37분경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1공학관 4층 기계공학과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터졌다. 그가 문 앞 복도에 놓인 종이가방을 연구실로 가져가 안에 들어 있던 택배용 상자를 여는 순간 폭발했다. 김 교수는 얼굴과 손, 목 등에 1, 2도의 화상을 입어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상자에는 음료용 텀블러가 들어 있었다. 지름 7cm의 텀블러 안에는 파편 기능을 하는 6mm 길이의 나사 수십 개가 있었다. 뇌관과 기폭장치, 화약도 확인됐다. ‘텀블러 폭탄’은 테러단체가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크기만 작을 뿐 기본적인 제조법이나 작동원리가 같았다. 2013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테러 때 쓰인 ‘압력솥 폭탄’(압력솥에 뇌관과 장약, 금속 파편 등을 넣은 것)과 비슷하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이호재 기자}
“이딴(이런) 졸속행정과 비리로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생들을 유린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달 18일 서울 A대학의 페이스북 ‘대나무숲’(익명 게시판)에는 해외탐방 프로그램의 선발 과정에 비리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선발 권한이 있는 교직원과 친한 학생들이 뽑히는 ‘특혜’가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이 글이 게시된 뒤 “같이 면접 볼 때 질문 요지도 파악하지 못해 면접관이 몇 번이고 다시 알려줘 겨우 대답한 팀이 합격했다. 합격자 프로젝트를 그대로 공개하라” “합격한 20개 팀 중 9개 팀은 특정 교직원이 관여하는 활동에 동참한 학생들이다” 등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듯한 글도 속속 올라왔다. 대자보가 나붙고 불합격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문제 제기를 계속하는 등 사태가 커지자 대학 당국은 “허위사실이 계속 유포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학생에게 여행 기회와 ‘취업 스펙’을 제공하는 해외탐방 프로그램이 일부 대학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 취업난에 경쟁률 더 치솟아 해외탐방 프로그램은 대학이 방학마다 학생을 선발해 유럽, 미국, 중국 등 해외로 2주 안팎의 견학을 보내주는 장학제도다. 2000년대 들어 기업이 학생 공모 형식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2010년경부터 전국 주요 대학들이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매년 학교 돈 수억 원을 들여 운용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취업 스펙으로 활용하기 좋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A대학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은 “비록 한두 주짜리 견학이지만 ‘유럽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이수했다’고 이력서에 쓰면 교환학생이나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경쟁률은 보통 5 대 1 정도다. 3년 전 서울 B대학의 해외탐방 프로그램 경쟁률은 14.5 대 1까지 치솟았다. 학기 말만 되면 여러 대학 인터넷 게시판엔 ‘취업 스터디’를 구성한다는 글에 이어 “함께 해외탐방을 준비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넘쳐난다.○ 허술한 선발·운영 과정 그러나 선발 과정의 투명성이 낮고 프로그램의 관리, 감독 역시 허술해 전국 여러 대학에서 비슷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서울 C대학에서도 “선발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충남의 D대학에선 대상자를 비공개로 모집해 “일부 학생에게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해외탐방 프로그램 공모가 시작되면 학생들 스스로 일정과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대학 측은 1차 서류심사, 2차 면접 등을 거쳐 100명 안팎을 선발한다. 대부분 대학은 합격자 명단만 공개할 뿐 심사 성적이나 낙방 사유는 공개하지 않는다. 외유성 해외여행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E대학 4학년 이모 씨(25)는 “이슬람국가(IS) 테러를 조사하러 프랑스 파리에 가겠다고 지원서를 냈지만 루브르박물관과 에펠탑을 보고 올 예정”이라며 “다녀와서 A4용지 1장짜리 견학보고서만 제출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등록금으로 일부 학생에게 수혜를 주게 되는 프로그램일수록 선발 기준과 운영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호재 hoho@donga.com·김하경 기자}

‘니 고추 장불고기 주먹밥.’ 11일 강원 지역 한 대학의 축제장 주점 메뉴다. 주변 다른 메뉴판에는 ‘오빠가 꽂아준 어묵탕’ ‘탱탱한 황도 6900원’ 등이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글귀에 담긴 성적 의미가 생각나면 대부분 웃음보다 불쾌한 기분이 든다. 축제의 주인공인 학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학생이 일부 메뉴 내용을 문제 삼아 논란이 일자 단과대 차원의 사과문이 발표됐다. 그러나 거기까지. 학교 차원의 조사나 징계는 없었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징계까지 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대학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상업화다. 도를 넘은 상업화가 성(性) 상품화와 지나친 음주문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7일 유튜브에는 충청 지역 한 대학의 축제 무대를 찍은 영상이 올라왔다. 여성 4인조 댄스그룹이 짧은 반바지와 브래지어만 입은 상태로 격렬한 춤을 추는 영상이다. 한 멤버는 마이크를 바지에 넣으며 마치 성행위를 암시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누리꾼들은 “학교 축제냐 아니면 유흥업소냐”며 부정적 반응을 쏟아냈다. 축제 주점의 부실한 음식과 바가지 가격 문제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건국대 대나무숲에 “축제가 열리면 시중에서 파는 1000원짜리 튀김을 3000원에 판다”는 글이 올라오자 학생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실제 대학 축제장에서 팔리는 음식은 대부분 시중 음식점보다 1.5∼2배 비싸다. 학생들은 “임대료도 내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비싸다”는 의견과 “단기간에 수익을 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주말 유흥가에서나 볼 수 있는 호객행위와 만취 학생들로 인한 난장판은 축제 기간에 매일같이 벌어진다. 24일 고려대에서도 학과별로 주점이 열리고 있었다. 일부 학과 학생들은 광고판을 들고 다니며 “합석시켜 줄 테니 한잔하고 가라”며 호객행위를 했다. 일부 학생들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서울 성북경찰서 안암지구대 관계자는 “축제 기간에 술이 원인이 돼 시비가 붙거나 몸싸움까지 벌이는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며 “위력순찰(공개적인 순찰 활동)을 통하여 사고와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hoho@donga.com·김하경 기자}

16일 오후 9시 서울 마포구의 한 병원. 환자 6명이 병원 앞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평소에도 흡연 공간으로 쓰이는지 건물 외벽 여기저기에 담뱃불 자국이 선명했다. 바로 근처 편의점 파라솔에서도 환자 2, 3명이 담배를 피웠다. 편의점에는 환자복을 입은 채 소주와 맥주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환자 정모 씨(41)는 “병원 직원들이 환자복을 입은 채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는 하지만 가까운 편의점이나 식당에 가면서 옷을 갈아입기는 귀찮다”며 “병실 점검을 하는 밤 12시까지 다시 들어가면 된다”고 귀띔했다. 사망자 38명, 학교 2700곳 휴업, 사회경제적 손실 10조 원(정부 추산).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남긴 피해다. 20일이면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2년이다. 당시 메르스 확산의 원인 중 하나는 동네 병원은 물론이고 중소 병원과 대형 병원까지 환자와 보호자 출입 관리가 부실했던 탓이다. 메르스 사태 후 대형 병원은 전자 출입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중소 병원은 2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출증 없어도 외출 가능” 16일 본보 취재진은 서울 시내 100병상 안팎의 중소 병원 5곳을 둘러봤다. 사실상 감염병 확산에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오후 8시 서대문구 A병원. 중년 남성 환자 2명이 병원 현관문을 유유히 걸어 나갔다. 환자복을 입고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이를 말리는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접수처에 직원 한 명이 있었지만 이어폰을 낀 채 컴퓨터로 뭔가를 하느라 환자들을 보지도 못했다. 이들이 주차장 옆 쉼터에서 20분가량 담배를 피우고 병원으로 돌아올 때도 확인하는 직원은 없었다. 외출 허가를 받지 않고 병원 근처 가게를 찾는 환자들도 끊이지 않았다. 오후 9시 서대문구 B병원 앞 카페에는 환자 한 명이 면회 온 지인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환자는 얇은 옷 때문인지 연신 기침을 했다. 지인이 “들어가야 되지 않냐”고 물었지만 환자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환자 김모 씨(51)는 “편의점이나 식당을 갈 땐 환자복을 입은 상태로 나온다”며 “외출증은 필요 없다. 어차피 그냥 나와도 뭐라 하는 직원이 없다”고 말했다. 병원 앞 호프집은 늦은 밤마다 술을 마시러 오는 환자들로 붐빈다. 호프집 주인 민모 씨(50·여)는 “환자복을 입고 오는 건 물론이고 링거를 꽂은 채 오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병실 절반은 ‘활짝’ 보호자 등 면회객을 통해 감염병이 퍼질 수 있지만 제한 조치는 허술했다. 오후 8시에 찾은 종로구 C병원에는 55개 중 30개 병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대부분 침대 위에 누운 환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훤히 보일 정도였다. 가족들이 다른 병실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모습도 보였다. 기자가 1시간 동안 병원 안을 돌아다녔지만 신원을 확인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메르스 사태 후 대형 병원은 병문안과 환자 외출을 제한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이나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부터 병동에 미닫이문을 설치해 출입을 관리한다. 서울아산병원은 바코드 출입증을 가진 보호자 한 명 외에 모든 방문객을 상대로 임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 병원은 재정 여건 탓에 이런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중소 병원 5곳 모두 ‘환자와 보호자의 무단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만 붙였을 뿐 실질적인 출입 제한 시스템은 없었다. 한 중소 병원 관계자는 “늦은 밤에 병문안 오는 사람을 일일이 확인할 정도로 출입 관리를 하기는 어렵다”며 “환자들의 외출 제한도 불만이 커 강하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면 체계적인 출입 관리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감염병 관리를 잘하는 중소 병원에 출입 관리 시스템 설치 비용을 지원하는 등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이호재 hoho@donga.com·신규진·김하경 기자}
개그우먼 이경실 씨(51)가 남편이 저지른 강제추행사건의 피해자를 비방하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썼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단독 정은영 판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이 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씨는 남편 최모 씨(60)가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2015년 11월 6일 자택에서 피해자 김모 씨(38)가 돈을 노리고 남편을 음해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당시 이 씨가 게시한 글은 “(피해자 가족들이) 쫓겨나다시피 이사해야 할 형편이었다. (남편도) 어렵지만, 보증금과 아이들 학원비까지 도와줬다. 김 씨가 다음 날 남편에게 ‘제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취해서 기억이 없어요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최 씨는 2015년 8월 자신의 개인 운전사가 모는 승용차에 김 씨를 태워 집으로 데려다 주던 중 졸고 있던 김 씨의 신체를 만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받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유승민 후보 딸 성추행 사건도 문재인 지지자 소행’ 안철수 전 후보를 지지자한다는 한 누리꾼이 5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누리꾼은 한 남성이 ‘프리 허그’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암살하겠다고 글을 올린 사건도 “문재인 지지자 자작극”이라고 썼다. 근거가 전혀 없는 가짜뉴스다. 그러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졌다. 해당 누리꾼의 팔로워가 2만9000명에 이르는 탓에 전파 속도는 매우 빨랐다. 선거 막판까지 “문재인은 사퇴하라”는 반응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19대 대선 막판에 이를수록 SNS는 각종 가짜뉴스로 뒤덮였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적극적으로 악성 루머를 퍼트리며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데 열을 올렸고, 터무니없는 가짜 여론조사와 선거 조작설이 돌기도 했다. 특히 4일 사전투표일에 SNS를 뒤덮은 건 ‘가짜여론 조사’다. ‘5월 4일 17시 현재 사전투표 비공식출구조사 결과 홍준표 43%, 문재인 21%’라는 글은 카카오톡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발로 뛰는 사전투표 출구조사에서 1위가 안철수 2위가 홍준표 3위가 문재인’이라는 글도 널리 퍼졌다. 그러나 사전투표는 출구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선거일인 9일에는 각종 출구조사 사설정보지(지라시)가 가짜뉴스 역할을 했다. ‘출구조사 결과 홍준표 43.2% 문재인 27.3% 안철수 16.8%’ 같은 글이 9일 오전부터 SNS를 도배했으나 실제 출구조사 결과와는 동떨어진 가짜 조사결과였다. 투표를 하기도 전에 각종 지라시를 받아본 시민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막판까지 선거 조작설도 끊이지 않았다. ‘은평갑 세월호 박주민 변호사 지역 사전선거 투표함 봉인 3군데 없이 이동 중에 적발 되었다’는 글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4월 20대 총선 당시 떠돌던 음모론이지만 유투브 영상 링크까지 포함돼 마치 올해 대선 사전투표 때 일어났던 것처럼 선거 막바지까지 유포됐다. 논리성이 떨어지는 가짜뉴스도 많았다. 재외국민 투표는 출구조사가 없지만 ‘LA한인투표소 출구조사 결과 안철수 65%, 문재인 20%’라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강원 지역에 일어난 산불이 홍준표 전 후보의 당선을 우려한 북한의 소행이라는 글도 돌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직접 나서 각종 SNS에서 삭제 조치 활동을 벌였다. 선관위에 따르면 19대 대선 사이버 위반행위는 4만351건으로 7201건이던 18대에 비해 5.6배 증가했다. 일부에선 극단적 지지자들이 TV토론과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없는 ‘깜깜이 6일’을 노려 가짜뉴스를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막판에 가짜뉴스를 퍼트릴 경우 짧은 기간 내에 해명이나 단속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정점식 검사장)는 10일 “선거사범의 공소시효(6개월)가 11월 9일 만료되는 만큼 특별근무체제를 가동해 신속히 수사를 진행한다”며 “다수가 개입한 조직적·계획적 선거범죄 수사를 위해 형사부와 특수부 인력을 투입”한다고 밝혔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김하경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