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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여행 등을 소재로 ‘덕후’를 위한 책을 만드는 ‘The Kooh’ 편집장 고성배 씨(34)는 올 6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후원금액의 0 개수를 잘못 본 건 아닐까.’ 고 씨는 자신이 갖고 싶은 책을 200~300권 제작해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등을 통해서 판매해 왔다. 그러다 올 4월 한국 전래 귀신이나 괴물을 일러스트와 함께 담은 책 ‘동이귀괴물집’을 만들겠다며 텀블벅에서 후원자를 모집했다. 목표 금액은 200만 원. 한데 두 달 만에 후원자 8881명이 1억4537만6000원을 냈다. 무려 9200권을 선판매한 셈이다. ‘연결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크라우드펀딩’이다. 크라우드펀딩이 활성화되면서 문화예술계 지도가 바뀌고 있다. 특히 소규모 문화예술창작자들이 숨어 있던 후원자, 소비자를 만나면서 숨통이 트이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다수의 개인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의미한다.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창작자가 추진하려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올리고 목표 후원 금액이 달성되면 나중에 후원자들에게 창작물로 보상하는 ‘리워드’ 방식이 일반적이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업체 10여 개 가운데 문화예술 후원이 많이 이뤄지는 곳은 단연 텀블벅이다. 2011년 설립해 성공한 프로젝트는 약 8000건(누적 후원금 500억 원). 총 프로젝트 가운데 30% 가까이가 문화예술 분야다. 고 씨는 “전래 판타지 캐릭터를 원하는 독자가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창작을 계속하는데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크라우드펀딩은 마니아들이 존재하는 서브컬처(Sub-Culture·주변부 문화) 분야에서 특히 힘을 발휘한다. 취미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동호회가 있지만 판매 목적 활동은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면 수요 예측도 가능하다. 국내 미발매된 셜록 홈스 소재 보드게임의 한글판 출시 프로젝트로 최근 2100여 명으로부터 1억1300여만 원을 후원받은 창작자는 “상상도 못한 결과”라고 크라우드펀딩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창작 비용이 부족한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작지 않은 힘이 되고 있다. 건축 전공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CFL(Context Free Lab.)’은 크라우드펀딩으로 1500여만 원을 모아 지난달 초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전시를 열었다. 현대미술 작가 8인의 베니스비엔날레 도전기를 담은 예술 다큐멘터리 ‘Sleepers in Venice’의 후반 작업 제작비도 모금에 성공했다. 크라우드펀딩은 팬 층을 모으는 플랫폼이 된다. ‘프리즘오브’(11호 발간 예정)는 한 호에 한 영화만 자세히 다루는 형식의 잡지다. 텀블벅에 발행 프로젝트를 산발적으로 올리다 8호부터는 고정적으로 올리고 있다. 발행인 겸 편집장 유진선 씨(26)는 “호별로 최대 2500명, 평균 600~700명이 우리 잡지를 후원했다”며 “후원자인 독자와 바로 소통하면서 요구를 확인하기 편해 고정 독자층을 모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기성 아티스트와 출판사가 새로운 팬을 확보하는 기회로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장수 밴드 ‘크라잉넛’은 정규 8집 ‘리모델링’ 제작비 일부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마련하고, 지난달 27일 기념 공연을 했다. 크라우드펀딩을 많이 활용하는 젊은 층과 접점을 확대하려는 시도다. 출판사 창비는 맨부커상을 받은 퀴어 소설 ‘아름다움의 선’을 최근 번역 출간하면서 후원 프로젝트를 올려 200명의 후원을 받았다. 건물이나 배경을 그려 웹툰 작가 등이 활용하도록 판매하는 ‘스케치업’ 후원 프로젝트가 최근 활성화되는 등 창작 관련 새로운 시장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등장하기도 했다. 이용제 계원예술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문화예술 창작자는 늘 생존 문제로 위태로운 것이 현실인데 크라우드펀딩으로 기존에 없던 시도를 해볼 만한 바탕이 마련되고 있다”며 “후원자에게 유형의 보상을 줄 수 있는 분야뿐 아니라 기초 연구처럼 무형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까지 후원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작지만 함께하면 의미있는 행동, ‘참여형 크라우드 펀딩’ “처음에는 우리 얘기에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멋진 프로젝트 응원합니다’라는 댓글이 달리더니 한 달 만에 100만 원 목표액을 채웠죠. 지금도 믿기지 않는 경험이에요.” 유시현 양(18)은 지난해 7월 뉴스를 보다 궁금증이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문정왕후의 어보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린 것. 해외에 뺏긴 우리나라 문화재가 16만여 점에 이른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유 양은 대구청소년창의센터에 함께 다니는 친구 4명과 의기투합해 지난해 8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오마이컴퍼니’에 해외 소재 문화재의 실상을 알리고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후원자들에게는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 뒤뜰에 있는 이천오층석탑과 프랑스에서 소장 중인 직지심체요절 등 주요문화재를 형상화한 배지와 롤케익을 선물했다. 한 달 만에 100만 원을 모금한 이들은 세금 등을 제외한 89만 원 전액을 올해 1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기부했다. 유 양은 “올해 9월에는 대구남부경찰서와 함께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를 후원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했는데 160만 원 넘게 모였다”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사회 이슈에 참여하는 캠페인성 프로젝트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동안 후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이들에게 특히 큰 힘이 된다는 평가다. 올해 1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후원을 위한 예술작품이 담긴 휴대전화 케이스’라는 펀딩이 시작됐다. 전문작가들이 위안부 소녀의 밝은 모습을 그린 휴대전화 케이스를 후원자들에게 선물하고, 수익금 전액을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전달했다. 다가오는 겨울을 앞두고 유기동물들의 방한용품 구입을 위한 금액을 마련하는 ‘미미야. 이번 겨울은 따뜻할거야’(텀블벅)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파란장미’(와디즈) 등 다양한 참여형 펀딩이 진행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여형 크라우드 펀딩의 증가는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로,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1867)의 유명한 시집 ‘악의 꽃’ 희귀 초판본(사진)이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된다. 15일 고려대에 따르면 올해 8월 타계한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교수가 ‘악의 꽃’을 투병 중에 고려대 도서관에 전달했다. ‘악의 꽃’ 초판본은 1857년 첫 출간 직후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판매가 금지돼 전 세계적으로도 몇 권 남아 있지 않은 희귀본으로 꼽힌다.고인은 이 책을 스승인 강성욱 고려대 명예교수(1931~2005)에게서 받았다. 강 교수는 프랑스 고서점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던 이 희귀본을 작고하기 전 황 교수에게 건넸다고 한다. 황현산 교수는 스승의 뜻에 따라 후학을 위해 이 책을 전달했다. 강성욱 교수는 ‘악의 꽃’ 외에도 불문학 관련 장서 1만8000여 권을 고려대 도서관에 기증했다. 황 교수는 생전 ‘악의 꽃’ 전편을 완역해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암 발병으로 인해 주석을 다는 작업까지 완성하지 못한 채 작고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다산 정약용(1762∼1836) 연구의 권위자이자 저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는 2006년 전남 강진군 백운동의 한 골짜기를 찾아갔다. ‘떡차’와 관련한 다산의 간찰(簡札)을 소장한 한 노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다산의 막내 제자 이시헌(1803∼1860)의 5대손인 노인은 “무슨 책인가 몰라” 하며 ‘강심(江心)’이라고 적힌 고서적 한 권을 무심히 내밀었다. 이때의 만남은 생각지 못했던 엄청난 실학 저술의 발굴로 이어진다. 책 속에는 ‘기다(記茶)’라는 제목의 글이 수록돼 있었다. 차(茶)에 대한 세부 내용은 물론이고, 국가 전매를 통해 국부를 창출하자는 내용이 가득했다. 다성(茶聖)으로 여겨지는 초의선사(1786∼1866)가 쓴 ‘동다송(東茶頌)’에서 ‘동다기(東茶記)’의 일부를 인용했다는 내용과 완벽히 같았다. 동다기의 원전이 바로 기다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쓴 이는 누구일까. 힌트는 책 말미에 ‘전의(全義) 이(李)’라는 본관밖에 없었다. 조사 결과 형이었던 이덕사(1721∼1776)가 능지처참을 당하면서 20년 세월을 귀양살이해야만 했던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1725∼1797)였다. 이 책은 ‘상두지(桑土志)’와 동다기 등 18세기 지성사에 획을 그은 이덕리와 관련된 고문헌을 좇는 한 학자의 추적기다. 상두지는 변방의 둔전 경영과 축성 및 도로와 수로 운영, 각종 화포와 수레 제도의 적용을 꼼꼼히 정리한 책이다. 동다기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재원 마련 방법으로 농한기 유휴 인력을 활용한 차 생산과 수출을 내놓았다. 그동안 학계에선 두 책이 다산의 저술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저자의 치밀한 고증으로 200년 만에 주인을 되찾았다. 흥미진진한 남도의 현장과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면모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좌병사 박진(?∼1597)이 경주성 밑에서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성 안으로 쐈다. 왜적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지 못하여 구경하고, 밀고 굴려보기도 했다. 갑자기 포가 폭발하여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고, 쇳조각이 별처럼 부서져서 흩어지니 즉사한 사람이 30여 명이나 됐다. (중략) 왜적들은 드디어 경주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의 전모를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에는 전쟁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짜릿한 전투장면이 나온다. 1592년 9월 왜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1562∼1611) 휘하의 군사들에게 함락당한 경주성을 탈환한 대목이다. 이 전투뿐 아니다. 한산도대첩과 진주성대첩, 행주대첩까지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승리를 거둔 주요한 전투의 배경에는 모두 비격진천뢰가 있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비밀병기 비격진천뢰가 전북 고창군 무장현 관아와 읍성(무장읍성·사적 제346호)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호남문화재연구원은 무장읍성 내부 동쪽 성벽 근처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비롯해 조선시대 훈련청과 군기고로 추정되는 건물지 등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날 무장읍성에서 공개된 비격진천뢰는 군기고로 사용된 건물의 수혈(竪穴·구덩이) 유적에 6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머지 5점은 주변 퇴적층에서 발견됐다. 크기는 지름 21cm에 무게는 17∼18kg이다. 겉모습은 볼링공과 비슷하지만 사용되지 않은 폭탄이어서 내부에 화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영덕 호남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지금까지 발견된 비격진천뢰는 총 6점인데 모두 폭발이 일어난 후 탄피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며 “원형 그대로 묻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병기사(兵器史)에 획기적인 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비격진천뢰가 출토된 구덩이 바로 옆에서는 실제로 포를 쏜 시설로 추정되는 포대(砲臺) 유적이 함께 발견됐다. 돌을 깔아 평탄면을 조성한 뒤 흙을 다졌고, 포를 거치하기 위해 뚫은 기둥구멍 2개도 확인됐다. 조선 후기의 병서 ‘융원필비(戎垣必備)’에는 “중완구(中碗口·화포)에 실어 발사하면 300보(약 360m)를 날아간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고문헌에 나와 있는 기록 그대로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 화포장(火砲匠) 이장손이 개발한 비격진천뢰는 조선의 독창적인 발명품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융원필비에 따르면 무쇠 속에 화약과 철 조각을 넣고, 오늘날 폭탄의 신관 역할을 하는 죽통(竹筒)을 넣었다. 폭발 시간을 조절하는 도화선을 감은 목곡(木谷)이 들어있어 시한폭탄과 같은 역할을 했다. 날아서 친다는 ‘비격(飛擊)’이라는 용어처럼 400∼500보(약 500∼600m)까지 날아가는 동안 폭발하지 않도록 한 비결이다. 중국에서도 진천뢰(震天雷)라는 이름의 무기가 개발된 적이 있지만 비격진천뢰처럼 폭발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는 죽통이 없어 직접 던져 터뜨리는 방법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다만 이번에 발견된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 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 고종 시대의 포탄으로 추정된다. 무장읍성은 1894년 당시 전북 고창과 정읍지역을 중심으로 봉기했던 동학 농민군이 무력시위를 벌인 끝에 관군을 내쫓고, 점령한 곳이다. 윤덕향 호남문화재연구원장은 “19세기 양식의 조선기와도 함께 발견됐는데 당시 동학군의 위세에 눌린 관군이 읍성이 함락되기 전 포탄을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비격진천뢰가 1591년부터 300여 년간 조선 국방의 핵심적인 무기였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창=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국 근대 서화가이자 사진가인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이 1905년 경운궁(덕수궁)에서 촬영한 고종황제의 초상 사진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대한제국 시대의 궁중미술을 조명하는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전시회를 15일부터 연다. 미술, 사진, 공예, 회화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대한제국 시기 미술품 2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의 백미는 김규진이 찍은 고종의 초상 사진이다. 사진 속 고종은 익선관(翼善冠)에 황제를 상징하는 황룡포(黃龍布)를 입고, 일본식 자수병풍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촬영 후 황룡포, 병풍, 화자, 카펫 등은 옅게 채색했다. 촬영 장소는 덕수궁 중명전(重明殿) 1층 복도다. 사진의 오른쪽 위에 ‘대한황제진 광무9년 재경운궁(大韓皇帝眞 光武九年 在慶運宮)’이라고 묵서돼 제작연도(1905년)를 확실히 알려준다. 이 사진은 미국의 철도·선박 재벌 에드워드 해리먼(1848∼1909)이 1905년 10월 초 대한제국을 방문했다가 고종황제로부터 하사받았다. 해리먼 사후 1934년 미국 뉴어크박물관에 기증됐다. 2015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조사로 박물관에서 잠자던 이 사진의 존재가 알려졌다. 1884년 지운영(1852∼1935)이 고종황제를 처음 사진 촬영한 후 두 번째로 한국인이 찍은 어사진(御寫眞)이다. 내년 2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 3000원.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비가 밤새 내린 뒤 청량한 하늘과 마주한 9일 경남 합천군 해인사. 비바람에 떨어진 단풍들이 오히려 가야산 품에 안긴 산사(山寺)의 향기를 더욱 짙게 했다.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장경판전(국보 제52호) 가운데 마당에는 정갈하게 가사를 걸친 스님 30여 명이 법보전(法寶殿)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려목판 일부와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 등 해인사 주요 유물의 안전한 이운(移運)을 부처에게 기원하는 고불식(告佛式)을 위해서다. 오전 10시가 되자 법보전에서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 주본’(국보 제206호)이 꺼내져 나왔다.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과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조심스레 목판을 받아 연(輦·가마)에 실은 뒤 단단하게 묶었다. 행사에선 안전을 위해 복제품을 사용했다. “삼보님과 천룡들께서는 이운 과정과 특별전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도록 가피하소서.” 향적 스님의 고불문이 끝나자 목판은 해인사 일주문까지 이동해 무진동 트럭에 실렸다. 이날 트럭에 실린 문화재는 총 11점. 다음 달 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 선보이기 위해 해인사를 나섰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930년경 제작된 이래 처음으로 해인사 밖을 나서는 희랑대사좌상이다. 희랑대사가 그의 제자인 왕건과 무려 1100년 만에 조우를 바라며 나들이를 나서기 때문이다. ‘1100년 만의 조우’란 다름 아닌 북한에서 소장하고 있는 ‘왕건상’과의 만남을 일컫는다. 현재 협의 중에 있으나 ‘대고려전’에 왕건상이 출품될 가능성이 높다.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대고려전에 북한 문화재를 공동 전시할 것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의해 김 위원장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박물관은 북측에 17점의 문화재 대여 희망 목록을 전달했다. 배 관장은 “후삼국 시대를 통일한 왕건과 희랑대사의 만남이 실현된다면 남북 교류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희랑대사와 왕건의 인연은 920년대 말 시작됐다. 가야산 일대에서 견훤의 후백제군과 혈투를 벌이던 왕건은 해인사를 이끌던 희랑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해인사는 견훤의 편에 섰던 남악파(南岳派)와 왕건을 지지하는 북악파(北岳派)로 갈라져 있었다. 희랑대사는 해인사 종파를 통합해 승군을 이끌어 고려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왕건은 희랑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전답 500여 결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가야산해인사고적’ 등에 남아있다. 특별전에 앞서 이들은 예비 만남을 가졌다. 9일 고불식을 마치고 서울로 온 희랑대사좌상은 다음 날인 10일 경기 연천군 숭의전지(사적 제22호)로 향했다. 이곳은 왕건 등 고려 임금 4명과 공신 16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고려 황궁이 자리했던 송악산과 직선거리로 불과 20여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1100년 만에 제자와 만난 스님은 이날 오후 취타대와 전통 의장대의 안내를 받으며 박물관에 무사히 도착했다. 희랑대사좌상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유일한 목조 승려 초상 조각으로 10세기 중엽 조각 작품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건칠(乾漆·여러 겹 삼베를 바르고 옻칠하는 방식) 기법으로 표현됐으며, 우뚝 선 콧날과 잔잔한 미소가 탁월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4일부터 열리는 ‘대고려’ 특별전에서 진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합천=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같은 오상(五常)은 인간과 동물이 하늘로부터 동등하게 받았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온전하지만 동물은 치우쳐 있다는 정도입니다.”(이간·1677∼1727) “이(理)의 관점에서만 보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기(氣)로 인해 만물은 제각각 달라지므로 오상 또한 온전할 수가 없죠.”(한원진·1682∼1751) 1709년 봄 충청도 홍주(현재 충남 보령시)의 한산사(寒山寺)에서는 조선의 미래를 이끌어갈 신진 유학자들이 모여 일주일간 열띤 학술 토론회를 펼쳤다. ‘인물성동론’을 주장한 이간과 ‘인물성이론’을 펼친 한원진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노론의 영수 송시열(1607∼1689)의 맥을 잇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 권상하(1641∼1721)의 수제자들이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미묘하게 달랐다. ‘한산사 논쟁’으로 불리는 이들의 토론은 조선 후기 100년을 지배했던 ‘호락(湖洛)논쟁’의 시작을 알렸다. 호락논쟁은 16세기 중반 이황·이이 등이 주도했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과 17세기 후반 왕실의 복제(服制)를 둘러싼 ‘예송(禮訟)’논쟁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논쟁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앞의 두 논쟁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게 현실이다. 논쟁의 시기가 길었고, 개념과 논리가 복잡해 이해하기가 여간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등장인물들의 주변 정보를 풍부히 제공하고, 역사와 철학이론을 교차 편집해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쉽게 읽히는 것이 강점이다. 호론과 낙론이 치열하게 논쟁한 주제는 크게 3가지였다. 미발(未發)로 불리는 마음의 본질과 인성과 물성이 같은지 다른지, 성인과 범인의 마음은 차이가 있는지 등이다. 이 같은 논쟁은 현실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짐승처럼 여기지만 날로 융성하는 오랑캐(청나라)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경제가 성장하면서 존재감이 두드러진 중인·여성·상민들과의 관계 설정 등과 연결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인물성동론은 가장 치열한 논쟁이었다. 대체로 낙론에 속한 학자들은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주장했다. 서울을 기반으로 했던 낙론은 학풍이 자유롭고, 국제정세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편이었다. 만물의 평등을 강조하면서 청나라의 선진 문물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지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번번이 “명나라에 대한 의리도 없이 야수와 같은 청나라를 용납하자는 말인가”라는 호론의 반발에 부닥친 것.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호론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짙어 기존 신분제와 성리학적 질서의 유지를 중시했다. 애초 학파의 분화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파적 파벌의 성격이 짙어졌다. 결국 정조(正祖) 말기에는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낙론-시파(時派)와 정권에서 배제된 호론-벽파(僻派)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시했다. 정조 사후 잠시 호론-벽파가 정권을 잡기도 했지만 이후 안동 김씨 가문을 비롯한 낙론-시파 계열이 정권을 독차지해 세도정치를 이끈다. “낙론은 유연함을 지녔지만 세파를 따르다 스스로 소멸했다. 호론은 차별주의에 사로잡혔지만 적어도 이중적으로 처신하지는 않았다. 비록 시의에 뒤떨어지더라도 언행이 일치했던 그들은 보수의 진면목을 보여줬다”는 저자의 평가는 조선시대뿐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도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삼척 영장 이준명이 울릉도에서 자단향(紫檀香)과 청죽(靑竹), 석간주(石間朱)를 조정에 바쳤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는 ‘석간주’란 다소 생소한 공납품이 등장한다. 이는 산화철을 많이 포함한 붉은 흙을 일컫는데, 단청이나 불화에 많이 쓰는 천연 안료의 재료다. 조선에서 정기적으로 진상하던 귀하신 몸으로, 지금도 울릉도 토굴에서 발견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울릉도에서 석간주를 채취해 연구를 계속해왔다. 2013년 숭례문을 복원하며 단청이 논란이 된 뒤 천연 안료는 문화재계에서 중요한 화두였다. 7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구소와 한국광물학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 ‘전통 안료와 원료광물’은 전통 안료의 현재와 미를 되짚어보는 자리였다. 연구소는 2014년부터 진행하는 ‘전통 안료 복원과 문화재 현장 적용을 위한 기준 마련’ 연구 성과 등도 공개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전통 안료의 등급과 산지, 수입된 유통경로까지 다양한 기록이 남아 있다. 최근엔 전통 안료를 복원할 주요 산지 후보군도 거론되고 있다. 석간주와 함께 경북 포항시 일대에서는 ‘뇌록(磊綠·녹색 계열의 천연 원료)’이 상당량 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혜영 학예연구사는 “일성록에서 ‘뇌록의 수요가 많은데 생산되는 곳은 장기현(현 포항시 남구 장기면) 고을뿐’이란 내용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조현구 경상대 교수는 “개화기 이후 값싼 유럽 및 일본산 합성 원료가 급격히 자리를 대체했다. 1970년대 이후 전통 안료 관련 국내 생산 기반은 단절된 게 현실”이라며 “한반도의 전통 안료를 되살리고 활용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의 근간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사진)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독립운동가 조소앙(본명 조용은·1887∼1958)이 삼균주의(三均主義)에 입각해 독립운동과 건국 방침 등을 국한문 혼용으로 적은 친필 문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6일 밝혔다. 임시정부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정치사상가인 조소앙이 제창한 삼균주의는 개인과 민족, 국가 간 균등과 정치·경제·교육 균등을 통해 이상사회를 이루자는 이론이다. 조소앙이 만든 초안은 가로세로 36.9×27.1cm 크기의 원고지 10장 분량이다. 총강(總綱)과 복국(復國), 건국(建國) 등 3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초안을 바탕으로 1941년 11월 28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일부 수정을 거쳐 건국강령이 통과됐다. 문화재청은 “임시정부가 광복 이후 어떠한 국가를 세우려 했는지 알려주는 유물이자 조소앙이 고심하며 고친 흔적이 남아 있어 더욱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도 이날 문화재로 함께 등록 예고됐다. 1956년 지어진 경희대 본관은 고대 그리스식 기둥과 삼각형 박공벽을 사용한 서양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이다. 한국적 요소인 태극과 무궁화 문양을 가미한 점이 특징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명필이 되기 위한 옛 문인들의 노력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립한글박물관은 17세기 이후 한국과 중국의 서예문화를 조명하는 특별전 ‘청인의 임서’와 ‘명필을 꿈꾸다’를 함께 연다고 6일 밝혔다. ‘청인의 임서’는 중국 산둥박물관과의 교류특별전으로 우리나라의 국보에 해당하는 1급 문화재를 포함해 중국 유물 23건 30점이 출품됐다. 한국 유물은 71건 90점이 나왔다. ‘청인의 임서’ 전시에서는 원본과 임서 글씨를 나란히 배치해 둘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임서(臨書)는 옛 글씨를 따라 쓰는 작업이다. 청나라 문신 왕탁(1592∼1652)이 왕헌지(348∼388)의 ‘경조첩(敬祖帖)’을 따라 쓴 작품 등이 공개된다. ‘명필을 꿈꾸다’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한나라 전서(중국 진시황이 제정해 도장에 많이 사용하는 서체)를 모아 쓴 ‘한전잔자(漢篆殘字)’를 비롯해 조선 왕실의 한글 궁체 임서와 습자 자료 등을 선보인다. 내년 1월 20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쌀쌀한 날씨 속에 역대급 귀빈 앤젤리나 졸리 배우님께서 연세대 투어를 함께하셨습니다.” 4일 오후 연세대 학생홍보대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연’에는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들 매덕스(17), 팍스(15)와 함께 3일 서울 연세대를 방문한 소식을 알린 것. 졸리 가족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1시간가량 학생홍보대사의 안내를 받으며 본관과 윤동주 시비, 광혜원 등 캠퍼스를 둘러봤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졸리의 아들이 2019학년도 연세대 수시입학 외국인특별전형에 지원했다”는 미확인 정보가 삽시간에 SNS에 퍼져나갔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 등도 “한국문화와 케이팝 팬인 매덕스가 한국 대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연세대는 졸리 가족의 방문이 입시와는 관련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연세대 관계자는 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매덕스는 대입 지원을 하지 않았고 면접도 보지 않았다”며 “미리 일정을 알리지 않은 채 개인적인 관심으로 방문했다”고 밝혔다. 졸리 가족은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견학 프로그램을 신청했으며 특별한 의전도 요구하지 않았다. 졸리는 3일 저녁에는 팍스와 서울 강남구 한식당 ‘가온’을 찾기도 했다. 이곳에서 송이전복선과 꽃게찜, 등심구이 등을 즐긴 것으로 전해졌다. 가온은 2016년부터 3년 연속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식당이다. SNS에서는 2일 입국 때부터 ‘졸리의 비공식 방한’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삼청동 고깃집에서 마주쳤다는 인증샷도 공개됐다. 졸리는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 자격으로 방한했다. 졸리는 2001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였고 2012년부터 특사자격으로 세계 각국을 방문해 난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해 왔다. 3일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2015년부터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정우성을 만나 “동료로서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4일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만나 예멘 난민 신청자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보호 조치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졸리는 전남편인 배우 브래드 피트와의 사이에 낳은 샤일로, 녹스, 비비언과 함께 입양한 자녀 매덕스, 팍스, 자하라 등 자녀 6명을 두고 있다. 매덕스는 캄보디아, 팍스는 베트남, 자하라는 에티오피아에서 입양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나무로 만든 불교 유물만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린다. 동국대 박물관은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불교 목조유물 수십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전단지향(栴檀之香)―나무에서 피어오른 향기’를 12일부터 연다고 4일 밝혔다. 전단(栴檀)은 불교에서 가장 신성시 여기는 나무 ‘단향목’을 뜻한다. ‘석굴암 석굴 중수상동문(重修上棟文)’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19세기 후반 석굴암의 중수 과정과 석굴암의 원형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는 귀중한 사료로 1891년 제작됐다. 지난해 본보의 보도를 통해 상동문의 구체적 내용이 소개돼 학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63년 8월 보수공사 도중 석굴암 경내 간이 화장실 문짝에 붙어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가로세로 83×34cm 크기에 확인 가능한 글자는 총 617자로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 일부 잘려나가 160자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수준 높은 목조 공예품 역시 눈길을 끈다. ‘보타전(寶陀殿) 목조감실’은 목조 건축의 세부적인 구조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으로 현존하는 예가 드물다.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85cm 높이에 용마루 지붕과 기와, 치미 등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이 밖에도 부처의 얼굴과 옷자락을 정교하게 새겨 넣은 목조경패(보물 제175호)와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의 무릎 위에 올려놓은 독특한 모양의 ‘목조지장보살반가상’ 등 희귀 유물 다수를 선보인다. 김봉건 동국대 박물관장은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의 80%를 산이 차지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불교문화를 꽃피우는 데 목조유물이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며 “불전과 가구, 불상, 불교 공예, 경판 등 다양한 불교 목조유물을 한꺼번에 즐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우리 남편은 저승에 가서도 못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그저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밌게 손잡고, 구름 타고 그렇게 슬슬 놀러 다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4일 남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배우 엄앵란 씨(82)는 평생의 동반자 신성일에게 마지막으로 이 같은 말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1964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신성일 엄앵란 부부는 사랑과 원망, 애증과 연민으로 55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부부가 인연을 맺은 것은 ‘로맨스 빠빠’(1960년)에 함께 출연하면서부터다. 엄 씨는 남편에 대해 “가정 남자는 아니었다. 사회 남자, 대문 밖의 남자지 집 안의 남자는 아니었다. 일에 미쳐서 집 안은 나한테 다 맡기고, 영화만 하러 돌아다녔다”고 회고했다. 그는 “집에는 늦게 들어와서 자고 일찍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늘그막에 재밌게 살려고 했더니 내 팔자가 그런가 보다”고 아쉬워했다. 신성일의 유언은 그의 삶처럼 자유롭고 로맨틱했다. 엄 씨는 “딸이 ‘아버지 재산 뭐 있소?’라고 물어봤더니 ‘재산 없다’고 했단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한테 가서 ‘참 수고했고, 고맙다 그래라. 미안하다 그래라 가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며 “사회적인 남자이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지만 존경할 만해서 55년을 살았지, 흐물흐물하고 능수버들 같은 남자였으면 그렇게 안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성일은 임종 직전까지 촬영 예정이었던 영화 ‘소확행’(가제)의 세세한 준비 사항까지 직접 챙기고 있었다. 엄 씨는 “우리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물이 들어간 영화인이다”라며 “까무러쳐서 넘어가는 순간에도 영화는 이렇게 찍고, 저렇게 만들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지만 ‘이토록 영화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위기 때 빛나는 부부의 사랑이었다. 엄 씨가 2015년 12월 채널A 건강정보 프로그램 ‘나는 몸신이다’에 출연하면서 유방암 확진 판결을 받자 20여 년간 별거 중이던 남편이 달려와 극진히 간호했다. 엄 씨는 이듬해 1월 수술을 받아 완쾌한 후 “수술 후 깨어나니 웬 남자가 침대를 끌고 있더라. 누군가 살펴봤더니 그렇게 욕하던 남편이었다. 한참 안 보다가도 급한 상황에 나타나니까 의사 선생님보다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며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반대로 신성일이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자 엄 씨가 수천만 원 병원비를 부담하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엄 씨는 올해 3월 채널A 뉴스TOP10과의 인터뷰에서 “내 남편 신성일이 초라하게 죽을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VVIP 특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원비를 준비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유원모 onemore@donga.com·이지운 기자}

“우리 남편은 저승에 가서도 못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그저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밌게 손 잡고, 구름 타고 그렇게 슬슬 놀러 다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4일 남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배우 엄앵란 씨(82)는 평생의 동반자 신성일에게 마지막으로 이 같은 말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1964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신성일 엄앵란 부부는 사랑과 원망, 애증과 연민으로 55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부부가 인연을 맺은 것은 ‘맨발의 청춘’(1964년)에 함께 출연하면서부터다. 엄 씨는 남편에 대해 “가정 남자는 아니었다. 사회 남자, 대문 밖의 남자지 집안의 남자는 아니었다. 일에 미쳐서 집안은 나한테 다 맡기고, 영화만 하러 돌아다녔다”고 회고했다. 그는 “집에는 늦게 들어와서 자고 일찍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늘그막에 재밌게 살려고 그랬더니 내 팔자가 그런가보다”고 아쉬워했다. 신성일의 유언은 그의 삶처럼 자유롭고, 로맨틱했다. 엄 씨는 “딸이 ‘아버지 재산 뭐 있소?’라고 물어봤더니 ‘재산 없다’고 했단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한테 가서 ‘참 수고했고, 고맙다 그래라, 미안하다 그래라 가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며 “사회적인 남자이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이지만 존경할만 해서 55년을 살았지 흐물흐물하고, 능수버들 같은 남자였으면 그렇게 안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성일은 임종 직전까지 촬영 예정이었던 영화 ‘소확행(가제)’의 세세한 준비사항까지 직접 챙기고 있었다. 엄 씨는 “우리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물이 들어간 영화인이다”며 “까무러쳐서 넘어가는 순간에도 영화는 이렇게 찍고, 저렇게 만들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지만 이토록 영화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위기 때 빛나는 부부의 사랑이었다. 엄 씨가 2015년 12월 채널A 건강정보 프로그램 ‘나는 몸신이다’에 출연하면서 유방암 확진 판결을 받자 20여 년간 별거 중이던 남편이 달려와 극진히 간호했다. 엄 씨는 이듬해 1월 수술을 받아 완쾌한 후 “수술 후 깨어나니 웬 남자가 침대를 끌고 있더라. 누군가 살펴봤더니 그렇게 욕하던 남편이었다. 한참 안 보다가도 급한 상황에 나타나니까 의사선생님보다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며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반대로 신성일이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자 엄 씨가 수천만 원 병원비를 부담하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엄 씨는 올해 3월 채널A 뉴스TOP10과의 인터뷰에서 “내 남편 신성일이 초라하게 죽을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VVIP 특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원비를 준비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30년 된 승복을 기워 입어 ‘누더기 스님’으로 불리는 부산 영일암 주지 현웅 스님. 단지 겉모습뿐만이 아니다. 스님은 인재불사(人材佛事)를 위해 써달라며 사찰의 전 재산인 7억 원 상당의 금액을 동국대에 기부해왔다.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녀 ‘포대화상’으로 불리는 무원 스님의 일화와 12년간 8000km를 달리며 모금해 소외된 이웃을 도와온 ‘철인 스님’ 진오 스님까지. 종교인들의 속살을 살펴볼 수 있는 각종 일화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동아일보 종교전문기자다. 2014년부터 ‘뫔길’이라는 제목의 칼럼에 쓴 글을 각색해 엮었다. T길은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닌 조화된 삶의 길을 전한다는 의미다. 특정 종교를 넘어 한국 사회에 울림을 주는 이들의 활동은 읽는 내내 따뜻함을 준다. 송길원 목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시민들이 유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팽목항에 ‘진도 하늘나라 우체통’을 만들어 우리 사회에 위로를 선사했다. 은둔의 생활이 아닌 팟캐스트로 소통하는 바오로수도회 소속 김젬마 수녀와 황인수 수사의 이색적인 도전은 디지털시대 종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 종교의 위기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도 눈에 띈다. 비구니의 권한 확대를 강력히 제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의 행태를 비판하고 교회 세습을 둘러싼 개신교의 갈등에 일침을 가하며 존경받는 지도자가 부재한 한국 종교계의 문제를 꼬집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한국 음식문화의 뿌리인 ‘장(醬)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이를 건조·발효하는 과정을 통해 된장과 간장 등을 만드는 ‘장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신규 종목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일 밝혔다. 장 담그기는 고대부터 이어져왔으며 세대 간에 전승돼 모든 한국인이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우리 음식문화와 조리법 등 다양한 갈래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 주거문화와 세시풍속, 기복신앙, 전통과학과 관련한 요소를 지닌다는 점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승하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김치 담그기(제133호), 제염(제134호)처럼 특정 보유자와 단체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강원 강릉시 초당동 유적지에서 4세기 신라시대의 찰갑(札甲)이 출토됐다. 찰갑은 작은 미늘조각을 꿰매어 붙인 갑옷으로 영동지역에서 신라시대 갑옷이 완형으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릉 초당1처리분구 하수관로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을 조사 중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유적 내에 직사각형 형태의 토광목곽묘(덧널무덤)에서 찰갑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토광목곽묘 내부에 지름 5~10cm 크기의 돌을 사용해 만든 시신 안치대(시상대)가 있었는데 찰갑은 시상대의 서단벽 쪽에서 발견됐다. 몸통을 보호하는 부분 외에 목의 뒤부분을 보호하는 목가리개(경갑·頸甲), 어깨를 보호하는 어깨가리개(견갑·肩甲) 등도 함께 확인됐다. 찰갑 옆에는 긴목항아리(장경호·長頸壺), 짧은목항아리(단경호·短頸壺) 등 신라시대 토기들과 금귀걸이 한 쌍도 함께 출토됐다. ‘삼국사기’에는 “395년 말갈이 북쪽 변방을 침입하여 신라가 크게 패했다”는 사건과 “450년 하슬라(강릉) 성주 삼직이 실직(삼척)의 들에서 사냥하던 고구려 변방 장수를 살해했다”는 기록 등이 남아있다. 4, 5세기 무렵 국경지대였던 강릉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신라 간에 충돌이 빈번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원 측은 신라 토기 연대를 고려하면 4세기 강릉 지역에 주둔한 신라 장수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원은 “신라의 영동 진출 시점과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50년간 전통가구 만들기 외길을 걸어온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박명배 소목장(68)의 네 번째 개인전이 3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박 소목장은 전통의 멋을 살리면서도 현대인의 생활공간 속에 녹아들 수 있는 가구들을 만들어 왔다. 그의 작품(사진)들은 나무 자체의 무늬와 색상을 그대로 살려 자연스럽고 담백한 멋을 자랑한다. 특히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느티나무 용목’을 활용한 가구가 많다. 이번 전시에는 책장과 반닫이, 문갑, 약장, 머릿장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목가구들과 사무 공간에서도 쓰일 수 있는 회의용 테이블, 침실용 수납장으로 디자인한 삼층장 등 40여 점을 선보인다. 박 소목장은 “현대 생활공간 속에서도 전통 목가구가 주는 소박한 호사를 누리며 고유의 미의식을 함께 즐기고 공유했으면 한다”고 전시 의도를 밝혔다. 12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영하의 날씨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얼굴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2016년 1월 충남 태안군 당암포구 앞바다에는 배 위에서 생활하며 바닷속을 하염없이 뒤지는 이들이 있었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38)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진들. 이곳에서 85점의 고려, 조선시대 도자류를 훔쳤다가 붙잡힌 도굴꾼들에게 정보를 입수한 직후였다. 망망대해에서 1주일을 탐색한 끝에 그물에 도자기 1점이 걸려들었다. 1000여 년 전 제작된 고려청자가 훼손 없이 원형 그대로 올라왔다. 당암포구는 좁은 해역에 유속이 빨라 각종 해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2주간의 수색을 거쳐 수사팀이 건져 올린 유물은 20여 점. 도굴꾼들이 이미 가져간 85점을 회수한 것과 더불어 100여 점의 문화재가 다시 안전하게 돌아왔다. “힘겹게 입수한 첩보를 바탕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허탕 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죠. 그런데 바다에서 청자를 건져 내니 머리카락이 삐쭉 설 만큼 짜릿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17일 정부대전청사에서 만난 한 반장은 2년 전 당암포구 고려 문화재 회수 사건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화재청 소속 공무원이지만 그의 주된 일상은 잠복근무와 첩보입수, 현장단속 등이다. 언뜻 경찰관처럼 보이지만 그는 대한민국 전체를 관할구역으로 삼으며 도난당한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는 사범단속반의 수장이다. 1990년대까지 화제를 끌었던 뉴스 중 하나는 이른바 ‘대도(大盜)’로 불리는 전문 도굴꾼의 범죄 소식이었다. 2000년대 들어 주요 문화재 시설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는 등 안전조치가 강화됐지만 도굴꾼들의 범죄도 덩달아 지능화됐다. 철저한 분업화 팀 조직과 함께 비신고 문화재만 털어가는 신종 수법이 나타난 것. 당암포구 사건에서도 5명의 도굴꾼이 절취책, 판매책, 자금팀 등으로 나눠 문화재를 훔쳐갔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점조직으로 연결하고, 외국 경매 사이트에서 도난 경력을 세탁하는 등 도굴 범죄도 디지털화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단속반의 업무는 첩보입수 등 아날로그 방식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대학이나 박물관처럼 보안장치가 견고한 기관 대신 개인이나 문중의 자산을 노리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올해 2월 회수한 어사 박문수(1691∼1756)로 유명한 고령 박씨 집안의 간찰(簡札) 1047점은 2008년 충남 천안의 종중재실에서 도난당했다. 그러나 문중에선 도난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문화재보호법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인 10년을 채웠다고 생각해 간찰을 판매하려다 덜미가 잡혔죠. 2007년부터 선의취득 배제 조항을 신설해 실질적으로 공소시효를 무제한 연장했습니다. 문화재 안전을 위해서는 개인이 보관하는 것보다는 기관에 위탁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8년간 단속반원으로 활동하며 수백 건의 문화재를 회수한 한 반장에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의 회수다. 소유자인 배익기 씨(55)가 2008년 공개한 이후 현재까지 국가에 귀속시키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배 씨는 29일 국정감사에서 “1000억 원을 주더라도 내놓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가지보(無價之寶)’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안전입니다. 수십 번, 수백 번 협의를 해서라도 반드시 국민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죠.” 대전=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인문학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5회 세계인문학포럼이 31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부산 수영구 F1963에서 열린다. 교육부와 유네스코, 부산시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이번 포럼은 ‘변화하는 세계 속의 인간상’이라는 주제로 41개국 130여 명의 인문학자가 참여한다. 첫날인 31일에는 초대 세계인문학포럼 추진위원장을 지낸 이한구 경희대 미래문명원장이 ‘지구촌 시대의 인간상’, 미국 사학계의 거장 타일러 스토발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자유와 인종과 자유의 여신상’이란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한다. 1일에는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 왕후이 칭화대 교수의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의 과제와 도전’, 2일에는 로시 브라이도티 위트레흐트대 교수의 ‘포스트휴먼의 조건과 비판적 포스트 인문학’ 강연이 이어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