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김상운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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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학술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단행본 ‘국보를 캐는 사람들’(글항아리)을 냈고, 고고학 유튜브 채널 ‘발굴왕’을 제작했습니다.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sukim@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48%
문학/출판17%
역사10%
미술7%
국제일반3%
중동3%
미국/북미3%
국제정세3%
문화 일반3%
대통령3%
  • 김여옥 시인, 네번째 시집 ‘나는 언제나 나를 향해 서 있었다’ 펴내

    월간문학 편집국장 출신의 시인 김여옥이 네번째 시집 ‘나는 언제나 나를 향해 서 있었다’(들꽃)를 최근 펴냈다. 1963년 해남에서 태어난 김여옥은 1991년 월간 ‘문예사조’에 발표한 연작시 ‘제자리 되찾기’가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 ‘제자리 되찾기’(1994), ‘너에게 사로잡히다’(2008), ‘잘못 든 길도 길이다’(2019) 등의 시집을 펴냈다. 1996년 마케도니아 제35차 스트루가 국제 시축제, 1998년 불가리아 문화성 초청 ‘한·불가리아 문학의 밤’에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지나온 생에 대한 끈질긴 탐구와, 사회적 존재로서 현실의 문제를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승철 시인은 “이순의 삶터에서 길어 올린 시적 떨림이자 울림이기에 한 줄기 강렬한 빛으로 다가온다. ‘고통만이 우리를 승화시킨다’는 결론에 다다른 영혼의 진혼곡이자, 우리 사회의 혼돈을 외면치 않는 간곡한 선언”이라고 평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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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묘서 차담회 연 김여사…국가유산청 “사적 사용 맞다” 사과문 발표키로

    김건희 여사가 서울 종묘에서 차담회를 연 데 대해 국가유산청이 ‘사적 사용’에 해당한다며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겠다고 20일 밝혔다. 이재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장은 2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김 여사의 종묘 차담회가 국가행사라고 생각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 질의에 “개인적인 이용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적 사용이 맞다”고 답했다. 앞서 김 여사는 종묘 휴관일인 9월 3일 종묘 망묘루에서 외국인 남녀 2명, 신부 1명, 스님 1명과 차담회를 가진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종묘 내 시설을 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불거진 것. 이날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국가유산청 내규에 따른 절차를 준수해 사용허가를 했느냐’는 민주당 양문석 의원 질의에 “당시에는 당연히 국가적인 행사라고 판단해서 관행대로 했다. 추후 상황 판단을 해보니 판단이 미숙했던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이 궁능유적본부장과 협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공식적인 행사로 판단해 사용을 허가해 주는 게 맞지 않겠냐고 제가 판단했다”고 했다. 최 청장은 이와 관련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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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학자들, 1960년대 中과 공동발굴때 고조선의 영역 내몽골까지 확대 의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강상(崗上) 무덤 발굴 ‘비파형동검’은 평양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도 거의 똑같은 것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북한에 있는 유물은 진품이고, 남한에 있는 건 복제품이라는 것. 이것은 1963∼65년 북한과 중국이 다롄 일대를 공동으로 발굴 조사한 끝에 찾아낸 고조선의 핵심 유물이다. 다만, 당시 중국 측은 북한의 ‘고조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청동기’ 유물이라고만 명명했다. 고조선의 강역을 둘러싼 북한과 중국의 고대사 논란이 이때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이다.중국 고고학자 안즈민(安志敏·1924∼2005)의 일기를 최근 번역 출간한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 고고학)는 18일 기자와 만나 “1960년대 북중 고고 발굴단(조중 고고 발굴대)은 구성부터 운영까지 다분히 정치적 색채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중소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북한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어야 했던 중국이 북한의 공동 발굴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당시 북한 역사학계에선 고조선 중심지를 중국 대릉하 일대로 보는 ‘요동(遼東) 중심설’이 주류였다. 이에 따라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王儉城)이 평양이 아닌 요동에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 현지 발굴조사가 필요했다. 안즈민은 북중 발굴단에서 중국 측 고조선 연구팀을 이끈 고고학자. 그는 자신의 일기에 리지린(1915∼?) 등 북한 학자들과 겪은 갈등을 비롯해 공동 조사 과정에서 겪은 일화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안즈민 일기’(주류성)에 따르면 북한 학자들은 중국 요동지역의 하이청현 일대를 고조선 수도인 왕검성으로 지목하고 관련 증거를 찾기 위해 곳곳을 답사했다. 하지만 중국 측은 이들이 찾아다닌 성터들 대부분이 명나라 때 조성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의 역사 갈등은 ‘스파이 논란’으로까지 비화됐다. 북한 학자 리지린이 1959∼1961년 베이징대에서 고조선에 대한 박사논문을 쓸 때 지도교수였던 고힐강(顧頡剛)이 간첩 활동을 도와준 혐의로 취조를 받기도 했다. 양국의 역사 갈등 이면에는 북중 발굴단이 한창 활동하던 1964년 체결된 ‘북중 국경 조약’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북중 접경지대인 만주지역은 고대부터 한민족의 활동 무대였던 데다 조선인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당시 북한 학자들은 내몽골까지 고조선의 강역으로 확대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며 “북한이 고조선 강역을 바탕으로 만주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것을 중국이 우려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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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학자들, 내몽골까지 고조선 강역으로 간주해  中과 역사갈등”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강상(崗上) 무덤 발굴 ‘비파형동검’은 평양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도 거의 똑같은 것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북한에 있는 유물은 진품이고, 남한에 있는 건 복제품이라는 것. 이것은 1963~65년 북한과 중국이 다롄 일대를 공동으로 발굴 조사한 끝에 찾아낸 고조선의 핵심 유물이다. 다만, 당시 중국 측은 북한의 ‘고조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청동기’ 유물이라고만 명명했다. 고조선의 강역을 둘러싼 북한과 중국의 고대사 논란이 이때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이다. 중국 고고학자 안즈민(安志敏·1924∼2005)의 일기를 최근 번역 출간한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 고고학)는 18일 기자와 만나 “1960년대 북중 고고 발굴단(조중 고고 발굴대)은 구성부터 운영까지 다분히 정치적 색채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중소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북한을 자국 편으로 끌어 들어야 했던 중국이 북한의 공동발굴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당시 북한 역사학계에선 고조선 중심지를 중국 대릉하 일대로 보는 ‘요동(遼東) 중심설’이 주류였다. 이에 따라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王儉城)이 평양이 아닌 요동에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 현지 발굴조사가 필요했다. 안즈민은 북중 발굴단에서 중국 측 고조선 연구팀을 이끈 고고학자. 그는 자신의 일기에 리지린(1915∼?) 등 북한 학자들과 겪은 갈등을 비롯해 공동 조사과정에서 겪은 일화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안즈민 일기’(주류성)에 따르면 북한 학자들은 중국 요동지역의 하이청현 일대를 고조선 수도인 왕검성으로 지목하고 관련 증거를 찾기 위해 곳곳을 답사했다. 하지만 중국 측은 이들이 찾아다닌 성터들 대부분이 명나라 때 조성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의 역사 갈등은 ‘스파이 논란’으로까지 비화됐다. 북한 학자 리지린이 1959~1961년 베이징대에서 고조선에 대한 박사논문을 쓸 때 지도교수였던 고힐강(顧頡剛)이 간첩활동을 도와준 혐의로 취조를 받기도 했다. 양국의 역사 갈등 이면에는 북중 발굴단이 한창 활동하던 1964년 체결된 ‘북중 국경 조약’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북중 접경지대인 만주지역은 고대부터 한민족의 활동무대였던데다 조선인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당시 북한 학자들은 내몽골까지 고조선의 강역으로 확대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며 “북한이 고조선 강역을 바탕으로 만주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것을 중국이 우려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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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제인 에어, 마리 퀴리… 삶 개척한 여성들

    ‘나는 그와의 싸움을 중지하고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지난날 다른 남성에 의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음의 자유를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에 의해 마음의 자유를 잃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나 이제나 나는 바보였다. 그때 굴복했더라면 그것은 신조의 과오였으리라. 그리고 이제 굴복한다면 판단의 과오가 될 것이었다.’ 샬럿 브론테의 로맨스 고전 ‘제인 에어’(1847년)에서 주인공 제인 에어가 성직자 존 세인트 리버스의 청혼을 접하고 번민하는 구절이다. 그녀는 결국 리버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이 떠나온 자산가 에드워드 로체스터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주목할 건 로체스터가 시각 장애인이 되는 등 철저히 무너지고 나서야 제인 에어가 그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에게 순응하는 순간,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여성 차별이 극심했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발표된 파격적 서사에 유종호 문학평론가는 “여성주의 혁명 소설”이라고 평했다. 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신간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여성 27명의 삶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살핀다. 제인 에어 같은 소설 속 주인공부터 마리 퀴리 등 과학자까지 다양한 여성들을 망라했다. 특히 소설가 브론테가 그린 제인 에어는 기구한 여성이라기보다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여성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로체스터의 전 부인인 메이슨은 단순한 사랑의 장애물이 아닌, 제국주의와 남성주의의 피해자로 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시각도 제시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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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언어 연결된다는 믿음 없다면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말을 건네고 글을 쓰고 읽고, 귀를 기울여서 듣는 과정 자체가 결국은 우리가 가진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가 한강(54)은 11일(현지 시간) 국내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글 쓰는 일의 ‘희망’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글을 쓰려면 최소한의 믿음은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언어가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다. 꼭 사회적인 일을 다루지 않는 글이라고 해도, 아주 개인적으로 보이는 글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최소한의 언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쓰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는 앞서 수상 강연에서 ‘언어는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견해를 밝혔었다. 자신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이해하는 ‘진입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이 소설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만큼 더 조심스러웠다. 이 책이 광주를 이해하는 데 어떤 진입로 같은 것이 돼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어떤 작품을 먼저 읽으면 좋을지를 묻는 질문에는 “한국 독자에게는 처음이 ‘소년이 온다’이면 좋을 것 같고, 이 책과 연결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어서 읽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진한 책보다 조금 성근 책을 원한다면 ‘흰’이나 ‘희랍어 시간’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채식주의자’는 처음부터 읽기보다 다른 책을 읽은 뒤에 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웨덴의 어린이 테마파크인 ‘유니바켄’의 평생 무료 이용권을 받은 사실도 소개했다. 유니바켄은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과 캐릭터를 다룬 박물관 겸 테마파크. 그는 “딱 세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이 있었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곳을 추천받아 갔다. 그 얘기를 유니바켄 측에서 들었는지 내게 평생 무료 이용권으로 주었다.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선물이었다“고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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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미국에 한미동맹이 필요한 까닭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가 일어난 밤,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은 미 8군 벙커로 피신해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있었다. 이날 반란군 진압에 나선 장태완 수도방위사령관이 상부에 요청한 수도기계화사단과 26보병사단은 위컴의 작전통제권 아래 있는 병력이었다. 위컴은 “아직 어둡기 때문에 진압군과 반란군 간 오인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노 장관에게 부대 이동을 허가하면 안 된다고 했다. 결정적인 순간, 미국이 반란군 진압을 만류한 이유에 대해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12일 밤과 13일 새벽 북한을 자극할 한국군 간의 충돌과, 민간 정부가 전복돼 한국의 정치적 자유가 무산되는 것 두 가지를 방지하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그러나 둘 중에서도 전자를 특별히 경계했다”고 자신의 회고록에 썼다. 민주정 붕괴보다 남한 군부의 내전을 틈탄 북한군의 남침 방지에 주력한 미국의 방침이 한국 현대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 책은 육군사관학교 교수 출신으로 국제정치와 핵전략을 연구한 저자가 한미동맹의 변천사를 미국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한미동맹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이해해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합리적인 한미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부자인 한국을 미국이 왜 지켜줘야 하느냐?”며 문제를 제기한 트럼프의 발언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가치를 끊임없이 재평가하며 주한미군 감축을 저울질해 왔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닉슨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결정 등에 맞서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 등으로 대응한 게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한미관계는 탈냉전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 한미동맹에서 한국의 역할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며 위험을 분담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미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저자는 “미국은 패권 유지를 위해 한미동맹이 필요하고, 한국은 영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한미동맹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트럼프 2기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서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썼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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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상운]신앙과 배교 사이… 다산의 진심은

    1795년 7월, 천주교를 신봉했다는 이유로 금정찰방에 좌천된 다산 정약용이 황급히 충남 보령 땅을 찾았다. 천주교 배교를 증명하려면 천주교 지도자 이존창을 잡아오라는 정조의 명에 따른 것. 성거산에 숨어들어 수년간 충청도 관찰사조차 검거하지 못한 이존창은 달랑 포졸 한 명만 데리고 간 다산에게 손쉽게 붙잡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고전학자인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신간 ‘다산의 일기장’(김영사)에서 이 미스터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천주에 대한 신앙과 왕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평생 번민한 다산이 신앙에서 완전히 떠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 정 교수는 “많은 신도들의 도움을 받은 이존창이 별 저항 없이 붙잡힌 것은 이미 다산과 천주교 측 사이에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해당 사건이 다산과 이존창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음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문헌 자료도 남아 있다. 왕의 언행을 날마다 기술한 일성록(日省錄)의 1797년 2월 23일자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이존창은 재작년 금정찰방(다산)의 염찰(廉察·몰래 탐문하는 것)에 걸려 감영 감옥에 갇혔다. 그가 바친 공초(供招·죄인의 범죄사실 진술)를 보니 전날에 뉘우쳐 깨달은 것과 상반된다. 그렇다면 지난날 공초를 바친 것은 속마음에서 나온 게 아니다. 이존창이 풀려난 뒤에도 옛 습관(천주교 신앙)을 고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의 이 같은 행적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영화 ‘사일런스’(2016년)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가톨릭 탄압이 극심했던 17세기 전반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들의 고뇌를 그렸다. 극에서 막부 정부는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배교를 강요하며 일본인 신자들을 잔인하게 고문, 살해한다. 결국 로드리게스는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배교를 선택하고, 이후 막부의 감시를 받으며 40여 년간 일본에서 살다 숨을 거둔다. 그런데 마지막 신에서 영화 ‘식스센스’급의 반전이 펼쳐진다(스포일러 주의). 막부 감시하에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되는 관 속에 작은 십자가를 쥐고 있는 로드리게스의 손이 클로즈업된 것. 막부의 탄압에 어쩔 수 없이 배교를 했지만, 평생 그의 내면에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어쩌면 다산도 겉으로는 배교를 선언했지만, 로드리게스처럼 남몰래 천주교 신앙을 지킨 게 아닐까. 사실 다산이 정통 주자 성리학의 궤도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실학(實學)을 집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천주교를 비롯해 서양 학문과 과학기술을 통칭한 서학(西學)의 영향이 컸다. 그런데도 다산의 배교 이후 천주교 신앙이 그의 삶 전체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주목한 연구는 드물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국학계는 다산이 천주교에 미쳤지만 자기 손으로 털고 나왔으니 더 연관시키면 불순하다고 하고, 천주교계에서는 다산이 배교자이니 관심 없어 한다”고 설명했다. 훌륭한 예술작품의 캐릭터에는 선과 악의 양면이 공존하듯, 역사적 인물을 영웅 혹은 배신자의 이분법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세상을 일도양단의 흑백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걸 우린 3일 밤 경험하지 않았는가.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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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엔 ‘겸재 정선’展… 8월엔 ‘루이스 부르주아’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과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시가 내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5일 삼성문화재단이 밝힌 2025년 리움·호암미술관 전시계획에 따르면 내년 재단 창립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고미술 및 현대미술 전시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호암미술관에서는 4월 ‘겸재 정선’전이 열린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함께 여는 전시로, 국보 ‘금강전도’ 등 진경산수화는 물론이고 산수화, 인물화, 화조영모화(꽃과 새, 동물을 그린 그림) 등 대표작 120여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8월에는 미국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이 열린다. 국내에서 25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호암미술관 인근 호숫가에 있는 거대한 거미 조각 ‘엄마’, ‘밀실 XI(초상)’을 비롯해 리움미술관 소장품과 한국에서 처음 소개하는 초기 회화 등을 볼 수 있는 기회다. 리움미술관은 내년 첫 전시로 2월에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 피에르 위그 개인전을 연다. 생태학부터 기술과학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현대사회를 다루는 작가다.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인 9월에는 한국 작가 이불의 개인전이 열린다. 홍콩 엠플러스(M+)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전시로, 리움 전시 이후 2026년 3월 M+에서도 전시가 이어진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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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호암미술관, 4월엔 ‘겸재 정선’ 8월엔 ‘루이스 부르주아’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과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시가 내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5일 삼성문화재단이 밝힌 내년 리움·호암미술관 전시계획에 따르면 내년 재단 창립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고미술 및 현대미술 전시들을 선보인다. 호암미술관에서는 4월 ‘겸재 정선’ 전이 열린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함께 여는 전시로, 국보 ‘금강전도’ 등 진경산수화는 물론 산수화, 인물화, 화조영모화(꽃과 새, 동물을 그린 그림) 등 대표작 120여 점을 선보인다. 8월에는 미국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이 열린다. 국내에서 25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호암미술관 인근 호숫가에 있는 거대한 거미 조각 ‘엄마’, ‘밀실 XI(초상)’을 비롯해 리움미술관 소장품과 한국에서 처음 소개하는 초기 회화 등을 전시한다. 리움미술관은 내년 첫 전시로 2월에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 피에르 위그 개인전을 연다. 생태학부터 기술과학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현대사회를 다루는 작가다.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인 9월에는 한국 작가 이불의 개인전이 열린다. 홍콩 엠플러스(M+)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전시로, 리움 전시 이후 2026년 3월 M+에서도 전시가 이어진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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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혹적 분위기의 ‘모자를 쓴 여인’… ‘빈 분리파’ 거장들 작품 한자리에

    검은색 정장 차림에 모자를 쓴 여인이 영롱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전시장 천장에서 쏘는 조명을 받은 뽀얀 여인의 얼굴이 몽환적으로 다가온다. 검은색 코트와 모자로 몸을 온통 휘감았음에도 화가의 다른 작품인 ‘유디트’(1901년) 못지않은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특별전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모자를 쓴 여인’(1898년)이다. 대표작 ‘키스’(1908년) 등으로 ‘황금의 화가’로 불리는 클림트가 환상적으로 그린 이 여인은 패션디자이너 에밀리 플뢰게. 생전 바람둥이였던 클림트가 평생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이자, 죽음을 앞둔 그가 유일하게 찾은 여인이었다. 이번 특별전은 클림트와 에곤 실레, 오스카어 코코슈카 등 현대 서양화 사조에 큰 영향을 미친 오스트리아 ‘빈 분리파’ 거장들의 작품 191점을 선보이고 있다. ‘빈 분리파’는 역사주의 등 정통 회화의 보수성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1897년 결성한 클림트 등의 젊은 예술가 집단을 말한다. 19세기 말 당시 빈은 쇠락해 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로, 세기말 특유의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캔버스에 탁월하게 표현한 이가 클림트의 제자 실레다. 5부 전시의 서막을 여는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년)은 이번 전시 포스터로도 쓰인 실레의 대표작. 어깨를 비튼 채 얼굴을 옆으로 살짝 돌리며 정면을 응시한 자화상은 내면의 불안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실레의 ‘스스로를 보는 이 II’(1911년)도 죽음을 상징하는 유령이 사람의 어깨를 감싸는 그로테스크한 도상으로 인간의 불안과 고통을 파격적으로 담았다. 이에 비해 그가 그린 ‘피아노를 치는 레오폴트 치하체크’(1907년)는 전체적으로 따스한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그려져 대비를 이룬다. 그림 속 인물은 실레의 삼촌으로, 14세 때 죽은 부친을 대신해 그를 돌봐준 은인이다. 빈 분리파의 양대 거장 클림트와 실레의 드로잉을 따로 모아 소개한 공간도 눈길을 끈다. 특히 결혼 전 각이 지고 비쩍 마른 실레의 거친 인물 드로잉과, 결혼 후 그린 부드럽고 풍만한 누드화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두 거장의 그림 외에 에른스트 슈퇴어가 그린 ‘호숫가의 남녀’(1903년)도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큰 관심을 보이는 걸작. 연보라색 톤의 해 지는 호숫가를 두 남녀가 관조하는 서정적인 장면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하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1만8500원.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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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주 무섬마을 만죽재·해우당 고택, 국가민속문화유산 됐다

    경북 영주의 무섬마을을 지켜온 수백년 된 고택들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됐다. 국가유산청은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과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을 각각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3일 밝혔다. 만죽재 고택은 1666년 반남 박씨 가문의 박수(1641∼1729)가 지은 집으로, 약 360년간 가옥이 온전히 유지됐다. 이곳에는 현판을 비롯해 다양한 생활 유물들이 남아있다. 혼례를 치를 때 신랑 측에서 신부 집안에 보내는 혼인 문서인 혼서지(婚書紙), 말판에 ‘관직도표’를 그려놓고 주사위를 던지는 승경도(陞卿圖) 놀이 흔적도 남아있다. 특히 명성황후가 1895년 10월 일본군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영남에서 일어난 항일운동 기록을 필사한 항일의병격문(抗日義兵格文) 기록은 역사적 가치가 크다. 해우당 고택은 선성 김씨 집안의 김영각(1809∼1876)이 1800년대 초반에 지은 집이다. 그의 아들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1877∼1879년 집을 수리한 후 150년 가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김낙풍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친구로, 현재 사랑채에 걸려있는 ‘해우당’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쓴 친필로 알려져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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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조선시대 부자들은 뭐가 달랐을까

    지금도 경북 경주 시내 관광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경주 최 부잣집은 17세기 초부터 약 400년에 걸쳐 부를 유지했다.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부를 수백 년 동안 누릴 수 있었던 건 물질만 추구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철저히 실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 부잣집 가훈 중 하나는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였다. 과도한 부의 축적이 도리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계한 것. 후손들은 가산의 일부를 빈민 구휼 등 지역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내놓았다. 이 책은 한국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조선 부자 23명이 어떤 원칙을 갖고 부를 축적하고, 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정리한 역사 교양서다. 일반적으로 성리학 질서가 지배한 조선에서는 부의 축적을 사회적으로 터부시했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조선에서 부의 축적 자체를 부정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것이 의로운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한 공자의 말처럼 정당한 이윤을 추구하는 건 권장됐다는 얘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 부잣집, 수년 동안 이윤도 나지 않는 막대한 투자를 감행해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인 윤선도, 허생전의 모델로 청과 일본을 오가는 중계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역관 출신 변승업 가문 등. 조선 부자들은 아낌없는 기부와 적선, 성공을 이루기까지의 집요함 등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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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에 훼손된 국가 제례 공간, 사직단 안향청 권역 복원 추진

    조선 왕실 최고의 제례 공간으로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사직단 안향청(安香廳) 권역에 대한 복원이 추진된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안향청 권역 복원 공사를 27일부터 착수한다고 밝혔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곳으로 도성 궁문 밖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원칙에 따라 현 종로구 사직동에 1395년 건립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1년 사직제례가 폐지되고 1920년대 공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 건물과 담장이 철거됐다. 사직단 내 북쪽에 있는 안향청 권역은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을 비롯해 제례를 수행하는 집사들이 머무는 집사청, 행사용 악기를 보관하는 악기고, 천막을 보관하는 차장고, 국왕의 수행원이 머무는 중문채로 구성됐다. 국가유산청은 안향청 권역 복원에 총 76억 원을 투입해 2026년경 이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안향청 복원이 이루어지면 사직대제 같은 행사에 활용해 제례 공간으로서의 역사성을 국민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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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글 아름다움 표현한 ‘한글 서예’,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

    먹과 붓을 사용해 한글을 쓰는 ‘한글 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다.국가유산청은 한글 서예를 국가무형유산 신규 종목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무형유산위원회 결정을 거쳐야하지만 지정 예고된 종목이 탈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가유산청은 한글 서예를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을 먹과 붓을 사용해 글로 쓰는 행위와 그에 담긴 전통지식’으로 규정했다.한글 서예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15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지뿐 아니라 금석(金石), 섬유 등 다양한 재질에 구현돼 왔다. 조선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한글로 쓴 문학작품의 필사본이나,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편지글에서도 사용됐다. 궁체 등 다양한 서체와 필법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에는 캘리그래피 등 한글의 독자적인 조형성이 예술로 승화되고 있다.국가유산청은 한글 서예의 국가무형유산 지정 가치로 ▲한글 창제부터 현재까지 오랜 역사성 ▲문학작품, 편지 등에 사용돼 민속사, 국어사, 음식사, 문화사, 서체사 연구에 기여한 점 ▲한민족 고유 문자로 독특한 필법을 구현한 점 ▲현재도 전승되며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예술분야로 확장된 점을 들었다.한글 서예는 다양한 교육기관이나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현재도 왕성하게 전승되고 있고, 온 국민이 향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키로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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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이팟의 아버지’가 애플을 떠난 이유

    모바일 기기 개발에 미쳐 있던 서른 살의 야심만만한 청년이 1999년 회사를 창업했다. MP3 파일을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듣던 시절, ‘워크맨 같은 휴대용 플레이어로 MP3를 들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건 것. 벤처캐피털을 대상으로 무려 80차례에 걸쳐 투자 설명회를 열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닷컴 버블이 붕괴돼 주식시장이 침체된 당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신생 스타트업을 눈여겨볼 여유가 없었던 것. 결국 창업에 실패한 그는 이후 스티브 잡스와 만난 뒤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었다. 애플 ‘아이팟’의 창시자 토니 퍼델의 이야기다. 이 책은 그가 개발자로 시작해 사업가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일대기를 엮은 것이다. ‘아이팟의 아버지’로 불리는 퍼델이 처음 펴낸 책이기도 하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아이팟으로 대성공을 거두고도 잡스에게 아이폰 개발을 설득한 사례가 대표적. MP3 플레이어를 내장한 아이폰 출시는 아이팟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했지만, 퍼델은 아이폰 3세대 개발에 참여했다. 아이폰이 대박을 치고 나서는 돌연 애플을 떠났다. 서른 살에 좌절된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는 2010년 네스트 랩스를 창업해 스마트 온도 조절기 ‘네스트 러닝 서모스탯’을 개발했다.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연 획기적인 제품으로, 네스트 랩스는 2014년 구글에 32억 달러에 인수됐다. 퍼델은 책에 “나는 실패할 때마다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썼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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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당상에 故김민기… “음악 통해 국민 화합시켜”

    우당이회영선생교육문화재단(이사장 이종찬)이 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제6회 우당상, 영석상, 우당학술상 시상식과 장학금 전달식을 열었다. 우당상에는 올 7월 별세한 김민기 전 학전 대표가 선정됐다. 영석상은 ㈜동진쎄미켐(대표 이부섭)이, 우당학술상은 박환 수원대 명예교수가 각각 수상했다. 우당상은 우당 이회영의 독립운동 정신을 구현한 국내외 인사에게 수여한다. 영석상은 구한말 자산가로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우당의 둘째 형 영석 이석영을 기리는 차원에서 사회공헌에 모범을 보인 기업에 시상한다. 우당학술상은 독립운동사 연구에 현저한 공을 세운 학자를 대상으로 한다. 재단은 김 전 대표의 우당상 수상 사유에 대해 “‘아침 이슬’ 등 음악을 통해 전 국민을 화합시키는 정서적 토대를 마련한 문화 창작가, 음악가, 연출가로서 ‘뒷것’을 자처하며 겸손한 자세로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소극장 학전을 통해 수많은 가수과 배우를 양성했다”고 밝혔다. 영석상을 수상한 반도체 소재기업 동진쎄미켐은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등 금수 조치에 대응해 반도체 업체를 지원하고 지역 사회 발전과 인재 양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았다. 우당학술상을 받은 박 명예교수는 만주와 러시아, 중앙아시아에서 한국 독립 운동사를 개척한 원로 역사학자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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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상욱-에드워드 리-신유빈 ‘한국이미지상’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사장 최정화)이 제21회 한국이미지상 수상자로 펜싱선수 오상욱(디딤돌상), 요리사 에드워드 리(징검다리상), 탁구선수 신유빈(꽃돌상)을 선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오상욱은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단체전과 사브르 남자 개인전 2관왕의 쾌거를 이뤄 펜싱 불모지였던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에드워드 리는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에서 창의적인 한식을 선보여 한국 문화의 깊이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신유빈은 파리 올림픽 탁구 혼합복식과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얻어 한국 탁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밖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 번역가들을 ‘특별 오마주’에 헌정했다. 한국이미지상 시상식은 내년 1월 15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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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종자 보관소까지 둔 고대 제국 히타이트

    7년 전 현지 취재한 튀르키예 보아즈쾨이의 ‘하투샤’ 유적은 고대 오리엔트 강대국이던 히타이트의 수도답게 웅장했다. 광활한 평원에 사원과 왕궁, 거주지, 요새 등의 흔적을 보여주는 석조 유물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특히 하투샤의 상징이랄 수 있는 ‘사자의 문’은 문 양편을 지키는 사자 석상이 살아서 포효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 놀라운 것은 황무지에 가까운 이곳에서 축구장 넓이의 거대한 ‘종자 보관소’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당시 하투샤 유적을 10년 넘게 발굴한 한 독일 고고학자는 “10∼12년 단위로 큰 가뭄이 들어 생태계가 붕괴될 때를 대비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세계 최초로 철기문명을 발명하고 기원전 16세기 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킨 히타이트를 다룬 통사다. 저자는 일본인 고고학자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당시 히타이트 유적 발굴에 직접 참여했다. 히타이트는 고대 이집트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강성했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20세기 초에야 고고 발굴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헷 족속’ 기록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후 발굴로 3만여 개의 점토판 문서가 발견되고, 여기 쓰인 쐐기문자가 해독됐다. 서양 문명의 기둥을 이룬 종교, 법, 철학 등의 유산이 고대 오리엔트에서 유래됐다는 점에서 히타이트 연구는 현대에도 의미가 작지 않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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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상운]고구려-발해사 중국사라는 中 정부의 자가당착

    약 10년 전 중국 홍산(紅山)문화 중심지인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츠펑(赤峰)시 발굴 현장을 취재했을 때 일이다. 홍산문화는 기원전 4700년∼기원전 2900년경 요하(遼河) 서쪽 일대에서 번성한 신석기 문화. 그런데 시내에서 차로 2, 3시간 거리의 아오한치(敖漢旗) 박물관에서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홍산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옥과 채문토기(彩陶·채색 안료로 무늬를 그린 토기)만 집중적으로 전시돼 있을 뿐, 한반도와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빗살무늬토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옥과 채문토기는 중원 문명의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당시 동행한 국내 고고학자는 “홍산문화가 중원 문명의 원류로 선전되면서 예외적으로 출토되는 채문토기가 요하 지역을 대표하는 선사 유물로 둔갑했다”고 말했다. 민족이나 영토 관념조차 없었던 선사문명마저 중화민족의 역사 속에 끼워 넣은 것이다. 최근 중국의 동아시아 고대사 왜곡 시도가 지성의 요람인 대학 교육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올 3월 발간해 대학교재로 보급한 ‘중화민족 공동체 개론’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시진핑 집권 이후 최근까지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수천 년간 역사를 정리했다. 이 중 “당나라 당시 동북방에 고구려, 발해 등 변방 정권이 연속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자를 썼고 역대 중원 왕조의 책봉을 받았다”는 내용이 문제시되고 있다. 고구려와 이를 계승한 발해를 한반도가 아닌 중국의 변방사로 규정한 것이다. 책은 한 발 더 나아가 고려의 고구려 계승까지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본문에 “918년 왕건이 한반도에 신라인을 주체로 고려 왕조를 세웠는데, 약칭이 마찬가지로 ‘고려’이지만 이전의 고구려나 당나라 번속이던 발해와는 계승 관계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 것. 고려 문신 서희가 993년 자국을 침공한 거란의 소손녕에게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천명한 사실과 배치된다. 이는 고려사뿐 아니라 중국 송사(宋史)에도 기술된 역사적 사실이다. 시진핑이 주창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원’의 선조들이 남긴 역사 기록마저 스스로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역사 왜곡 아닌가. 최근 세계 역사학계는 고대로부터 중원과 변방 민족의 상호작용이 수평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중원의 고급 문화가 변방에 일방적으로 흘러간 게 아니라, 서로 이점을 주고받으며 상호 발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에서 북위, 북주, 북제 등 변방 유목민족의 문화가 중원 왕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썼다. 예컨대 당나라 측천무후가 황제에 오를 때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자처한 것은 군주를 신의 화신으로 본 유목민족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 이처럼 수당 왕조는 5, 6세기 북중국을 지배한 변방 민족들로부터 많은 제도와 관행을 흡수했다는 것이 세계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함을 앞세운 ‘중국몽’에서 깨어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중 갈등에 이어 한국 등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과 불필요한 역사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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