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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왕 22년(101년) 금성(金城)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月城)이라 불렀고, 혹은 재성(在城)이라고도 불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경주 월성에 대한 이 같은 기록이 나온다. 초승달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월성(반월성)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2세기부터 800여 년간 신라의 왕궁으로 역할을 했다. 당대에는 ‘재성’으로도 불렸는데 월성 유적지에서는 ‘在城’이라고 적힌 명문기와가 출토되기도 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재성의 의미에 대해 ‘재(在)’의 뜻인 ‘있다’에 주목하거나 신라의 이두식 발음 ‘겨(在)’의 변형인 ‘계시다’로 해석해 “왕이 머무른 성”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 같은 인식에 의문을 들게 하는 사료가 등장한다. “서경(西京·평양)에 행차하였고, 새로 궁부(宮府)와 원리(員吏)를 두었으며 비로소 재성(在城)을 쌓았다.” 고려 건국 초기였던 922년 평양의 모습을 서술한 고려사(高麗史)에서 재성이 다시 나타난 것. 918년 건국 이래 고려의 황제는 수도 개경(개성)을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성의 의미는 무엇일까.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문헌조사팀장은 최근 한국고대사학회 학술대회에서 ‘신라 재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는 논문을 통해 “월성의 또 다른 명칭 ‘재성’은 해자(垓字)를 갖춘 성이라는 뜻”이라며 학계의 통설과 다른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논문에 따르면 고려사에는 “5년(922년) 처음으로 서경(西京)에 재성(在城)을 쌓았다. (재(在)는 방언(放言·우리말)으로 밭도랑(畎)을 뜻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재(在)’의 용례에 대해 밭도랑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밭도랑은 비가 많이 올 때 물을 빼기 위해 밭두렁 안쪽을 따라 고랑보다 깊게 판 물길이다. 이는 물이 흐르는 동시에 성 안팎을 구분하는 해자의 모습과 같다. 실제로 월성의 동-서-북쪽에는 인공 해자가 놓여 있었고, 남쪽으로 흐르는 남천을 자연 해자로 삼았다. 평양성 역시 동쪽의 대동강, 서쪽 보통강과 함께 평양성 남문 앞에 해자를 쌓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옛 평양성의 지세(地勢)는 신월성(新月城)이었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표현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전 팀장은 “신라의 주요 성은 대부분 산성(山城)이었기 때문에 해자를 갖춘 월성의 지형적 특성이 부각돼 명칭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며 “그동안 월성 관련 고고학 발굴 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문헌 연구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100년 전 한반도의 혼란을 수습한 통일 제국이자 중세 미술과 불교문화를 꽃피운 ‘고려(高麗)’. 화려한 고려의 문화유산을 한데 모은 대규모 전시회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 건국(918년)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을 4일부터 연다. 이번 전시에선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의 11개 기관과 국내 34개 기관이 소장한 고려시대 관련 문화재 450여 점이 공개된다. 3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대고려전은 규모와 노력, 예산 면에서 다른 전시를 압도하는 특별전”이라며 “향후 100년 동안 보지 못할 이번 전시를 통해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부심을 느끼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에는 국보 19건과 보물 34건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53건이 출품됐고, 해외 기관에서 소장 중인 국보·보물급 유물까지 더해져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왕실 미술품을 선보이는 1부 ‘고려 수도 개경’부터 고려의 불교 문화유산을 모은 ‘1100년의 지혜’, 고려인의 일상에 녹아 있던 차 문화를 소개하는 ‘다점(茶店), 차가 있는 공간’과 예술성의 정점을 이룬 공예 미술을 만날 수 있는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 등 총 4부로 구성됐다. 최초로 공개하는 유물들이 눈에 띈다.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이 소장 중인 ‘아미타여래도’는 처음 고국에서 선보인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 전하는 고려불화는 160여 점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독존(獨尊) 형식의 아미타여래도는 10점이 채 안 되는 매우 희귀한 도상으로, 이번 전시에서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 ‘대고려전’에는 총 20점의 고려불화가 출품됐다.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 은제 금도금 주자(注子·주전자)와 승반(承盤·그릇 받침)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 보스턴박물관이 소장 중인 이 주자는 연꽃 위에 날개를 모은 봉황 한 마리를 표현한 뚜껑과 대나무를 구부린 듯한 손잡이로 구성돼 기법과 미적 측면에서 고려 금속공예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전 세계에 불과 9점만 전해 내려오는 고려의 나전경함 중 하나인 ‘나전 국화넝쿨무늬 경함’(영국박물관 소장)과 한국 최고(最古)의 목판 ‘대방광불화엄경 수창년간판’(국보 제206-16호) 등 귀중한 유물들을 대거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특별전의 최대 기대작이었던 북한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소장 ‘왕건상’이 오지 못한 점은 특히 아쉽다. 애초 박물관은 왕건의 스승인 합천 해인사 소장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과 나란히 전시해 1100년 만에 스승과 제자의 만남을 연출하려 했다. 그러나 북한 측과의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결국 왕건상의 자리를 비운 채 전시를 개막하게 됐다. 배 관장은 “눈에 두드러지는 대비 효과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며 “왕건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설령 오지 않더라도 남북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남북 공동 발굴조사로 개성 만월대에서 발견한 금속활자도 전시되지 못했다. 그 대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딱 한 점의 고려 금속활자인 ‘복(윾)’자가 공개된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인 고려의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보지 못한 점도 안타깝다. ‘직지’를 대여하는 조건으로 프랑스 측이 요구한 ‘압류면제법’(해외 문화재를 들여와 전시할 때 압류·압수를 금지하는 조항) 입법이 무산됐기 때문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쉴드(방패, 보호막)가 필요해요. 그룹에서 나오면 저는 왕따를 당하거나 별것 아닌 것들한테 맞기도 해요. 엄청 자존심 상하죠. 하지만 센 그룹에 있으면 공격을 못해요. 가끔 짱한테 시달려도 혼자 있으면서 받는 설움보다는 낫죠. 나오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거든요.” 저자와 상담한 어느 비행 청소년의 토로는 학교폭력의 복잡함을 잘 보여준다.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가 뒤섞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간 정부와 전문단체,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에 대한 수많은 매뉴얼과 사례집, 논문과 책을 쏟아냈다. 2004년부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시행 중이지만 오히려 더 잔인하고, 해괴한 학교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23년간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수석교사이자 상담심리를 전공한 저자는 학교폭력의 근본적 원인을 추적한 결과를 담았다. 학생들을 직접 면담한 내용과 심리학 이론을 적절히 교차해 현재 교실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양상과 해결방향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청소년의 독특한 심리적 특성도 예리하게 포착한다. 흔히 가해학생을 대할 때 “그 아이(피해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니”라며 비난의 말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억지로 공감을 요구하는 식으로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대부분 실패하고야 만다. 그렇기에 전문 상담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가장 소외받기 쉬운 피해학생에 주목한다. 역설적이게도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주변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개입하는 대상은 가해학생이다. 피해학생은 집 안에 틀어박혀 스스로 유폐되거나 주위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잔인하게 받으며 또 다른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에 현행 처벌식 생활지도가 아닌 회복에 초점을 둔 생활교육을 강조한다.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동아리 등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실제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교육현장의 뜨거운 열정을 살펴볼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 할아버지와 삼촌들이 모두 목수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직접 만든 연과 팽이, 스케이트는 늘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가구공장을 운영하던 8촌 형의 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55년이 지났고,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小木匠)이 됐다. #2. 스무 살, 입시지옥을 견디고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청년은 우연히 길을 가다 흘러나온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을 듣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잊고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졸업 후 대우전자 중앙연구소에서 오디오 담당 엔지니어로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 10년 전부터 독립한 이후 우리나라 전통 한지(韓紙)로 ‘콘(진동판)’을 만들어 내는 오디오 명장이 됐다. 소병진 소목장(68·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과 김준 오디오 명장(60)은 살아온 경로와 관심사가 전혀 다른 두 사람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전통 가구와 오디오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점. 이들이 함께 뭉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달 9일부터 15일까지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린 ‘헤리티지 사이언스를 만나다’ 전시회에서는 전통문화의 디자인과 현대적 기술이 합쳐진 독특한 작품 수십 점이 공개됐다. 그중에서도 소병진 소목장과 홍춘수 한지장(80·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 김준 명장이 협업해 만든 ‘평판스피커’는 놀라움을 자아냈다. 백두산 자락에서 자라나는 600년 수령의 홍송(紅松)을 오디오의 외벽에 해당하는 평판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닥나무 한지를 오디오의 소리를 내는 핵심 부분인 콘으로 사용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스피커를 만들어낸 것이다. 선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이들은 “답습하는 전통만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기치 아래 힘을 모았다. 전통 문화유산의 현대화·세계화를 모색하는 소병진 소목장과 김준 명장을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소목장은 3명에 불과해요. 평생을 바친 덕분에 제가 만든 전통 장롱 등을 찾는 분들이 여전히 많죠. 하지만 늘 세계에 우리의 전통을 알리고 싶은 갈망이 있었어요. 아무 조건 따지지 않고, 협업에 나선 이유입니다.” 소 소목장은 국내 유일의 조선 왕실 가구를 재현하는 전통 기술을 보유한 장인이다. 하지만 그는 정체돼 있는 국내 전통시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전통 문화재 역시 세계화가 되지 않으면 사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오디오처럼 실생활에서 충분히 사용 가능한 가구였다. “글로벌 오디오 시장에서는 독일의 클랑필름이나 미국의 웨스턴일렉트릭 등에서 1920년대에 만든 작품들이 명기로 여겨지고 있어요. 소리를 내는 핵심 부분인 콘을 서양식 펄프 등을 사용해서는 그들을 절대로 뛰어넘을 수가 없어요. 우연히 한지에서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섬유 조직이 길어 소리가 섬세하면서도 고음과 저음을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는 한지야말로 오디오 시장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핵심 열쇠인 거죠.”(김준 명장)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 관계자들이 참석해 내년도 이탈리아 현지 전시를 의뢰하는 등 해외 전문가들의 호응이 컸다. 소 소목장은 “전통의 기법과 정신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며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는 전통이어야 살아있는 문화유산이 된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조선의 3대 왕 태종이 딸 정혜옹주(?~1424)를 위해 세운 사리탑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조선 초 왕실의 불교 신앙을 보여주는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7호)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사리탑은 경기 남양주시 운길사 수종사에 전해오는 석조탑으로, 팔각오층석탑(보물 제1808호), 삼층석탑(비지정)과 함께 대웅전 옆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2.3m로 2단으로 된 8각형의 기단 위에 둥근 구형의 탑신을 올리고,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지붕돌의 낙수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439년 태종의 첫째 후궁인 의빈 권씨(1384~1446)가 정혜옹주의 사리탑을 조성하고, 문화 류씨와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아들·1426~1457)이 시주한 내용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은 형태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고, 탑 안에 왕실이 가지고 있던 사리가 봉안돼있다”며 “조선 초기 왕실의 불교 신앙과 그 조형의 새로운 경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보물 지정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국보 제105호)이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7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27일 야외전시장에서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을 공개하고, 고향으로의 복귀를 축하하는 점안식을 열었다. 상설전시실 개편 공사가 완료되는 30일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9세기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경남 산청 경호강이 바라보이는 둔철산 자락에 서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서 폐사지가 되면서 석탑 역시 허물어졌고 일제강점기에는 하염없이 떠돌아다니는 운명을 맞이한다. 불행의 시작은 1941년. 대구의 골동품상이었던 오쿠 지스케(奧治助)가 범학리 주민들을 꼬드겨 단돈 100원(엔)에 석탑을 구입했다. 당시 물가로 쌀 5가마니에 불과한 헐값에 팔린 것이다. 조각난 채 진주로 옮겨진 후 철도에 실려 대구로 운송됐다. 대구의 한 공장터에 숨겨져 있던 이 석탑은 이듬해 조선총독부가 불법 반출 사실을 인지한 후 회수해 경성(서울)의 총독부 박물관으로 이송했다.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미군 공병대의 도움으로 경복궁 안에 세워졌다. 그러나 1994년 경복궁 정비사업으로 다시 17개의 부재로 해체돼 23년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속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지역을 대표하는 석조문화재가 수장고 안에 보관돼 관람이 어려운 점을 안타깝게 여겨 석탑의 고향 근처인 진주 이관을 요청했다. 결국 지난해 2월 국립중앙박물관은 석탑의 이전·전시를 결정하면서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박물관은 최근 석탑 재건을 위한 터파기 공사를 시작으로 원형 그대로 복원을 완료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석탑 운반 과정에서 사라진 하대석을 복원하면서 산청군 범학리 근처인 정곡리에서 석탑의 원석인 섬장암(閃長巖)을 찾아내 훼손된 부분 등 복원에 사용했다. 범학리 삼층석탑은 미술사적으로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경남 지역 석탑 중에는 유일하게 탑 외부에 부조상이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씨름이 2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우리나라는 총 20건의 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2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다. 중국이 31건으로 가장 많고, 일본이 21건으로 뒤를 잇는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한 것은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조선시대 국가 제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중요도가 높았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제례에서 연주하는 기악(樂)과 노래(歌), 춤(舞) 등이다. 이후 판소리(2003년)와 강릉단오제(2005년), 강강술래·남사당놀이·영산재·제주칠머리당영등굿·처용무(2009년), 가곡·대목장·매사냥(2010년), 택견·줄타기·한산모시짜기(2011년), 아리랑(2012년), 김장문화(2013년), 농악(2014년), 줄다리기(2015년), 제주해녀문화(2016년) 등이 차례로 무형유산에 등재됐다. 북한은 아리랑(2014년)과 김치담그기(2015년)에 이어 씨름까지 총 3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씨름을 계기로 기존에 남북이 따로 등재한 아리랑과 김장문화를 공동 등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5세기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角저塚·씨름 무덤)’에는 짧은 바지를 입고, 오른쪽 어깨를 맞댄 채 상대의 허리띠를 잡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18세기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단원풍속도첩’에서도 씨름 장면이 나타나는 등 각종 문헌과 회화 등에서 씨름의 명확한 역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씨름은 1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회 및 지역적 배경, 성별에 관계없이 계승되어 온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지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처음으로 남북 공동 등재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씨름의 남북한 공동 등재가 처음 논의된 것은 2014년이다. 그러나 이듬해 3월 북한이 유네스코에 씨름을 단독으로 등재 신청하면서 무산됐다. 2016년 열린 제11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북한의 씨름에 대해 등재 보류 판정을 내렸다. 신청서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용어’와 ‘엘리트 체육 위주’로 작성된 점을 지적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2016년 3월 유네스코에 단독으로 씨름 등재 신청서를 냈고, 북한이 지난해 3월 재도전에 나서면서 원치 않게 경쟁 구도가 돼버렸다. 반전의 계기는 올 4월부터였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씨름 공동 등재 아이디어가 다시 부각됐다. 불을 붙인 건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었다. 대북제재에 대한 부담 없이 남북 화해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분야가 유네스코의 과학·문화 분야라고 여긴 아줄레 사무총장은 올해 8월 적극적으로 남과 북에 씨름 공동 등재를 권유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수락했으나 북한은 거절하겠다고 밝혔다. 각각 따로 등재를 신청해도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어서 굳이 같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꺼져가던 남북 공동 등재의 불씨를 되살린 건 지난달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이었다. 프랑스 방문길에 아줄레 사무총장과 만난 문 대통령은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씨름 공동 등재가 좋은 아이디어다. 다시 추진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이병현 주유네스코 대표부 한국대사가 파리에 나와 있는 김용일 주유네스코 북한대사와 만나 문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했다. 북한은 처음에는 “남북 경제 협력 사업에 집중하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세계 평화에 대한 북한의 강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자 남북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득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북한 외무성에서 수용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줄레 사무총장도 평양에 유네스코 사무총장 특사를 파견해 설득하고, 남북 공동 등재가 “세계 평화를 위한 좋은 방향”이라며 예외적으로 서둘러 절차를 진행하도록 배려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결국 유네스코 무형유산위는 씨름이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전승된 민속경기로, 남북이 신청한 유산이 사실상 같다고 판단해 26일 공동 등재 결정을 내렸다. 씨름을 계기로 남북 문화유산 공동 등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차기 후보로는 문 대통령이 아줄레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 언급했던 비무장지대(DMZ) 생물다양성 보존 등이 꼽힌다.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4km 폭의 DMZ는 6·25전쟁 이후 출입이 통제돼 생태계가 잘 보존됐다는 점에서 자연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궁예가 강원도 철원에 세운 계획도시인 태봉국 철원성과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각종 군사시설이 존재해 문화유산으로서의 성격도 갖추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남북 간에 먼저 논의가 이뤄진 후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유네스코로 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 신나리 기자}
한반도 고유의 민속경기인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사상 처음으로 남북 공동 등재됐다. 문화재청과 외교부는 26일 “아프리카 모리셔스의 포트루이스에서 개막한 제1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에서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남북 공동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무형유산위는 ‘씨름’의 남북 공동 등재를 긴급 안건으로 상정했고, 참여한 24개 위원국의 만장일치로 공동 등재를 결정했다. 위원회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for peace and reconciliation)” 차원의 결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남북은 ‘대한민국의 씨름(전통 레슬링·Ssireum)’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씨름(한국식 레슬링·Ssirum)’이라는 명칭으로 각각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후 유네스코의 적극적인 권유와 남북한 정부 간 협의 등 국제공조 끝에 공동 등재라는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무형유산위는 이날 회의에서 “남북한의 씨름이 전승 양상과 공동체에 대한 사회 문화적 의미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우리 문화유산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남북이 함께하면 더욱 수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016년 ‘제주해녀문화’ 이후 2년 만에 무형유산을 등재시키며 총 20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迎秋門·사진)이 1975년 복원 이후 43년 만에 전면 개방된다. 문화재청은 경복궁과 서촌 지역 방문 관람객들의 편의를 높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경복궁의 서문 영추문을 다음 달 6일부터 전면 개방한다고 26일 밝혔다. 이로써 경복궁은 남쪽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동쪽 국립민속박물관 출입구 등을 포함해 사방으로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영추문은 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주로 출입한 문으로,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불렸다. 송강 정철(1536∼1593)이 지은 ‘관동별곡’에서 “연추문 드리다라 경회남문 바라보며 하직하고 물러나니”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조선 후기 고종의 집권 시기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지어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인 1926년 전차 노선이 만들어진 뒤 석축(石築)이 무너지면서 철거됐고, 1975년에 다시 세웠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영추문 복원 이후 한시적으로 퇴장객에 한해 통행을 허락한 적은 있으나, 양방향의 통행을 허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영추문 개방 첫날 하루 동안 경복궁 입장은 무료다. 다음 달 7일부터 관람료는 3000원으로 동일하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씨름은 지역별 개성을 간직한 채 보존돼 현재까지 160종이 전해지고 있다. 현대 씨름의 형태가 갖춰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7년부터다. 당시 창설된 조선씨름협회에서 전국대회를 추진하면서 허리와 다리에 샅바를 매는 통일된 규칙을 도입했다. 이전까지 함경도, 평안도 일대에서는 다리에만 띠를 두르는 ‘바씨름’, 경기·충청지역은 허리에 띠를 매는 ‘띠씨름’, 경상·전라도 지역에서 유행한 샅바를 사용하지 않는 ‘민둥씨름’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광복 이후 70년 이상 분단이 지속되면서 남북의 씨름도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 북한에서는 모래판이 아닌 원형 매트에서 경기를 진행하고, 상의를 벗는 한국과 달리 상의를 입고 경기한다. 일어선 자세에서 샅바를 잡고 경기를 시작하는 것도 북한 씨름의 특징이다. 씨름 용어도 조금씩 다르다. 잡치기를 북한에서는 접치기로, 밭다리걸기는 빗장걸이로 부른다. 매년 추석을 앞두고 북한에서는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라는 전국 대회를 연다. 올해 열린 15차 대회에서는 몸무게 94kg의 김정수 선수(28)가 우승했다. 이만기 인제대 교수는 “북한 씨름은 선수들의 몸무게가 100kg 이하로 비교적 가벼워 기술 씨름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일부 차이를 빼고 기술이나 샅바를 매고 겨루는 방식은 똑같다. 심승구 한국체육대학 교수(한국사)는 “대구 출신으로 1930년대 조선 씨름의 최강자였던 나윤출(1912∼?)이 6·25전쟁 중 월북한 후 북한 씨름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면서 남북한의 씨름이 큰 차이가 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조응형 기자}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사상 최초로 남북 공동등재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씨름은 5세기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角抵塚·씨름 무덤)’에 짧은 바지를 입고, 오른쪽 어깨를 맞대고 상대의 허리띠를 잡는 씨름의 모습이 기록될 만큼 씨름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한반도 고유의 민속경기다. 18세기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씨름 장면이 소개되는 등 사회 및 지역적 배경, 성별에 관계없이 즐겨 온 전통문화다. 씨름의 남북한 공동 등재가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이다. 하지만 이듬해 3월 북한이 씨름에 대해 유네스코에 단독으로 등재를 신청하면서 공동 등재는 흐지부지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2016년 11차 정부간위원회에서 북한의 씨름에 대해서 정보보완(등재 보류) 판정을 내렸다. 신청서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용어’와 ‘엘리트 체육 위주’로 작성된 점을 지적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2016년 3월 유네스코에 씨름 등재신청서를 냈고, 북한 역시 2017년 3월 재도전에 나서면서 원치 않게 경쟁체제가 돼버렸다. 반전의 계기는 올 상반기.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씨름 공동 등재 아이디어가 다시 부각됐다. 불을 붙인 건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었다. 대북 제재에 대한 부담 없이 남북 화해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분야가 유네스코의 과학 문화 분야라고 여긴 아줄레 총장은 올해 8월 적극적으로 남과 북에 씨름 공동 등재를 권유했다. 한국은 이를 수락했으나 북한은 거절하겠다고 밝혔다. 각각 따로 등재를 신청해도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어서 굳이 같이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꺼져가던 남북 공동 등재 불씨를 되살린 건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이었다. 프랑스 순방 길에 아줄레 사무총장과 만난 문 대통령은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씨름 공동 등재가 좋은 아이디어다. 다시 추진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이병현 주유네스코 대표부 한국대사는 파리에 나와 있는 김용일 주유네스코 북한 대사와 만나 문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했다. 북한은 처음에는 “남북 경제 협력 사업에 집중하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세계 평화에 대한 북한의 강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자 남북 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득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북한 외무성에서 수용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에는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이 더뎌지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어려움에 처하자 이에 대한 화답의 차원도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줄레 사무총장도 평양에 유네스코 사무총장 특사를 파견해 설득하고, 남북 공동 등재 절차가 “세계 평화를 위한 좋은 방향”이라며 예외적으로 서둘러 절차를 진행하도록 배려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원칙적으로 남북이 각각 낸 신청서를 철회한 후 다시 공동 등재 신청서를 작성해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완료된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의 심사 역시 따로 진행됐고, 대한민국의 씨름과 북한의 씨름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애초 13번째(북한)와 30번째(대한민국) 심사 대상이던 씨름을 26일 긴급안건으로 변경해 남북 공동등재로 최종 결정했다. 유네스코는 “씨름은 한반도 전 지역에서 널리 행해지는 운동 경기로, 예로부터 한민족은 노동에서 벗어나 휴식에서 취할 때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씨름을 즐겼다”며 “공동등재에 대한 양국의 의지를 인식하고, ‘한민족의 씨름’을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한반도 고유의 민속경기인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사상 처음으로 남북 공동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과 외교부는 26일 “아프리카 모리셔스의 포트 루이스에서 개막한 제1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를 등재하기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무형유산위는 ‘씨름’의 남북 공동등재를 긴급안건으로 상정했고, 참여한 24개 위원국의 만장일치로 공동등재를 결정했다. 앞서 남북은 ‘대한민국의 씨름(전통 레슬링·Ssireum)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씨름(한국식 레슬링·Ssirum)이라는 명칭으로 각각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후 우리 정부가 올해 4월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공동등재를 제안했고, 북한 역시 이에 호응하면서 공동등재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10월 16일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프랑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씨름’의 남북 공동등재를 제안하는 등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도 잇따랐다. 무형유산위는 이날 회의에서 “남북한의 씨름이 전승양상과 공동체에 대한 사회·문화적 의미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앞서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가 남북한 씨름을 모두 등재 권고함 점을 고려해 전례에 없던 개별 신청 유산의 공동등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016년 ‘제주해녀문화’ 이후 2년 만에 무형유산을 등재시키며 총 20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국과 일본의 공통된 문화는 목가구를 일상에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전시회가 한일 문화 교류에 새로운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 다명공방의 ‘제2회 조선 목가구 재현 재창조전’ 개막식에 참석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는 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한일 관계가 긴장감 속에 놓여 있지만 전통 문화를 매개로 양국의 활발한 문화 교류를 이어가자는 것이다. 함명주 다명공방 대표는 “나가미네 대사가 축사 전체를 한국어로 직접 말하는 등 한일 문화 교류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명공방 회원들이 100여 년 전 조선 목가구의 원형을 되살린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잊혀져 가는 전통 목가구를 실생활에서 쓰일 수 있는 가구로 재탄생시켜 옛 장인들의 솜씨와 선조들의 숨결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음 달 3일까지.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사무원이던 야코프 더주트는 일본 나가사키에 위치한 인공섬 데지마에 도착한다. 총길이가 120m에 불과한 이 섬은 당시 쇄국정책을 고수한 일본이 유일하게 서양과의 교류를 허락한 곳이었다. 야코프의 목표는 하나. 몇 년간 돈을 모은 후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여인 안나와 결혼하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산파 일을 하는 일본인 여성 오리토와 우연히 마주친다. 데지마에서 서양 의술을 배우던 그녀는 얼굴 한쪽에 화상 흉터가 있었지만 영리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야코프는 망설임 끝에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통역관인 오가와 씨에게 부탁해 오리토에게 전달하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지역의 영주이자 지체 높은 승정인 에노모토의 산사(山寺)에 팔려 가는 처지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 산사는 기형이나 흉터가 있는 여성들을 모아놓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엽기적인 곳이었다. 한때 오리토의 정혼자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다른 여성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오가와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영국 출신 작가이지만 8년간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과 치밀한 고증 덕에 18세기 일본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그려진다. 실재한 역사와 소설가의 상상력을 영리하게 뒤섞으며 흡입력 강한 이야기를 뽐내는 역사소설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8세기 조선 궁중회화의 대표작인 ‘기사계첩(耆社契帖)’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보물 제929호 ‘기사계첩’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2일 밝혔다. 기사계첩은 숙종이 59세였던 1719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행사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궁중화원이 만들었으며 1720년 최종 완성됐다. 기로소는 70세 이상의 정2품 이상 직책을 가진 노년의 문관을 우대하던 기관이다. 숙종은 지위가 왕이었기 때문에 태조 이성계가 60세에 들어간 전례에 따라 숙종도 59세에 입소했다. 기사계첩은 총 5장의 행사 그림과 기로소 문신 임방(1640∼1724)이 쓴 서문, 경희궁 경현당 연회 때 숙종이 지은 글, 대제학 김유(1653∼1719)의 발문, 기로소 문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반신 초상화, 축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계첩의 크기는 가로세로 59.5×79cm이다. 이 중에서도 계첩에 수록된 그림은 화려한 채색과 섬세하고 절제된 묘사, 명암법을 적절하게 사용해 사실성이 돋보이는 얼굴 표현 등 조선 후기 궁중행사도 중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첩의 마지막 장에 제작을 담당한 도화서 화원 김진여(金振汝), 장태흥(張泰興) 등 실무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도 다른 궁중회화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징이다. 문화재청은 “원형을 거의 상실하지 않았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고, 그림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 조선시대 궁중회화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어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고려 천수관음보살도’, ‘제진언집 목판’, ‘묘법연화경’ 등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동방의 낙원, 중앙아시아의 로마, 황금의 도시.’ 우즈베키스탄의 고대 수도 사마르칸트. 기원전 7세기 ‘아프로시압’이란 이름으로 건설된 이 도시는 1220년 몽골의 칭기즈칸에 의해 폐허가 되기 전까지 1700여 년간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문명의 젖줄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고도(古都)로 다양한 유적이 전해지는데 7세기 소그드 왕국 시기에 제작된 아프로시압 궁전 벽화는 회화사적으로 단연 백미다. 정사각형 건물의 동서남북 4면에 그려져 각각 높이 2.6m, 길이 11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에 왕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에서 온 사절도와 사냥, 혼례, 장례 등 당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벽화 속에 고구려 사신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새 깃털을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머리에 쓰고, 고리 모양 손잡이가 특징인 환두대도(環頭大刀)를 허리에 차고 있는 두 명의 사신이 그려져 있다.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7세기 고구려의 집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보낸 사신으로 추정된다”며 “고대 한반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독자적으로 국제 교류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핵심적 증거”라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우즈베키스탄에 남아있는 고구려 사신도의 현지 보존·복원이 우리 손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내년도 예산안에 ‘중앙아시아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 분야 신규 예산이 포함됐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ODA는 캄보디아 등 주로 동남아 국가에서 진행됐는데,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 복원이 대표적이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 문화유산 ODA 사상 처음으로 북방·이슬람 문화권에 진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화재청은 우선 보호막과 항온·항습 등 기본적인 문화재 보호 시설이 없는 아프로시압 궁전 박물관 보존 환경 개선과 소그드 왕국 유적지 발굴 조사 등에 착수할 계획이다. 김동영 문화재청 국제협력과장은 “중앙아시아는 프랑스 일본 등 이른바 문화선진국에서 문화유산 ODA를 먼저 펼치고 있는 국제 문화재 분야의 각축장”이라며 “대륙에 묻혀 있는 한반도의 흔적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2000년 전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사랑에서 시작된 한국과 인도의 특별한 인연이….” 6일(현지 시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 허왕후 기념공원 착공식에서 김정숙 여사는 허왕후 역사를 특별히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 부인의 단독 해외 방문은 16년 만에 처음으로 이례적인 행사였다. 앞서 7월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역시 2차례나 허왕후를 언급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선 정부의 ‘허왕후 신화’ 띄우기에 우려의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내고 있다. 신화의 존재를 넘어 실재하는 역사처럼 취급돼서는 곤란하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 신화가 사실로 둔갑한 ‘허왕후’ “허왕후는 아유타국(阿踰陁國) 출신 공주다. 16세에 바다를 건너 김수로왕에게 시집가 왕비가 되었고,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낳았다. 157세까지 살았는데 죽은 후 구지봉(龜旨峰) 동북 언덕에 장사했다.” 현존하는 허왕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81년 편찬된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조에 나오는 이 구절이다. 여타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처럼 기이한 이야기로 포장돼 있지만 유독 허왕후만은 실재한 역사처럼 여겨진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푸른역사) 책을 낸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조선시대 양반 가문정치가 허왕후 신화를 부풀렸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1647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허적(1610∼1680)이 자신의 관할지에 있던 허왕후릉에 ‘허왕후가 아들 열을 낳고, 그중 두 아들에게 허씨 성을 하사했다’는 비석을 세웠다”며 “자신이 속한 양천 허씨 집안의 역사성을 치켜세우려는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고려시대까지 전해지는 허왕후 신화에는 단지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기록밖에 없다. 이후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장유화상’이란 허왕후의 오빠가 불교를 한반도에 전래했다는 이야기와 허왕후의 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국을 세웠다는 설화가 덧대졌다. 특히 1972년 아동문학가 이종기 씨(1929∼1996)가 쓴 소설 ‘가락국탐사’가 발표된 후 재야사학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허왕후가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 교수는 “허왕후 신화는 고고학적 증거나 문헌에 의한 고증이 아니라 김해 김씨, 양천 허씨 등의 문중과 일부 불교 사찰,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재야사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윤색돼 왔다”고 설명했다. ○ 허왕후 찾겠다며 발굴 조사하는 지자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허왕후와 관련된 유적지를 찾겠다며 발굴 조사를 벌이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남 김해시는 올해 9월 허왕후가 한반도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곳이라는 ‘망산도(望山島)’ 유적지를 찾겠다며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김해시 삼정동 전산마을 일대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 가야 시기 토기 몇 점만 수습했을 뿐이다. 김해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조선 후기 제작된 ‘대동여지도’ 등에 망산도로 표시돼 있는 등 근거가 있다”며 “망산도뿐 아니라 가야시대 해양 제사 유적 전반을 살피려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천수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는 “허왕후가 서기 48년에 인도에서 건너오려면 동남아시아, 남중국, 산둥반도 등을 거쳐 들어와야 하는데 그 당시 항해술로는 이미 몇 번을 난파당했을 것”이라며 “허왕후를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신화 속 인물을 실재 역사에 편입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조선 목가구를 현대적으로 되살린 작품(사진)을 통해 옛 장인들의 솜씨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다명공방(회장 함명주)은 제2회 조선 목가구 재현 재창조전을 24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연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다명공방 회원들이 100여 년 전 조선 목가구의 원형을 되살린 작품 30여 점을 공개한다. 잊혀져 가는 전통 목가구를 실생활에서 쓰일 수 있는 가구로 재탄생시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과 선조들의 숨결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처음에는 우리 얘기에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멋진 프로젝트 응원합니다’라는 댓글이 달리더니 한 달 만에 100만 원 목표액을 채웠죠. 지금도 믿기지 않는 경험이에요.” 유시현 양(18)은 지난해 7월 뉴스를 보다 궁금증이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문정왕후의 어보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린 것. 해외에 뺏긴 우리나라 문화재가 16만여 점에 이른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유 양은 대구청소년창의센터에 함께 다니는 친구 4명과 의기투합해 지난해 8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오마이컴퍼니’에 해외 소재 문화재의 실상을 알리고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후원자들에게는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 뒤뜰에 있는 이천오층석탑과 프랑스에서 소장 중인 직지심체요절 등 주요 문화재를 형상화한 배지와 롤케이크를 선물했다. 한 달 만에 100만 원을 모금한 이들은 세금 등을 제외한 89만 원 전액을 올해 1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기부했다. 유 양은 “올해 9월에는 대구남부경찰서와 함께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를 후원하기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했는데 160만 원 넘게 모였다”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사회 이슈에 참여하는 캠페인성 프로젝트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동안 후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이들에게 특히 큰 힘이 된다는 평가다. 올해 1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후원을 위한 예술작품이 담긴 휴대전화 케이스’라는 펀딩이 시작됐다. 전문작가들이 위안부 소녀의 밝은 모습을 그린 휴대전화 케이스를 후원자들에게 선물하고, 수익금 전액을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전달했다. 다가오는 겨울을 앞두고 유기동물들의 방한용품 구입을 위한 금액을 마련하는 ‘미미야. 이번 겨울은 따뜻할거야’(텀블벅)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파란장미’(와디즈) 등 다양한 참여형 펀딩이 진행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여형 크라우드펀딩의 증가는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로,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